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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드 브리핑] “시장님, 가로수대책 절실합니다”

    “시장님, 바람이 주는 메시지를 알아야지요. (가로수 특성을 무시한 채) 길가에 가죽나무를 쫙 심었으니 대책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장님~.”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지난 3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건넸다는 말이다. 그는 제7호 태풍 ‘곤파스’가 할퀴고 지나간 최근 상황에 대해 7일 “가슴을 쓸어내린 나날이었다.”며 이렇게 운을 뗐다. 진 구청장은 “마침내 오늘 도시공원위원회로부터 ‘현장 조사에 나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인명이나 자동차 등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평소에도 툭하면 나뭇가지가 떨어져 가뜩이나 민원이 많았다.”고도 했다. 곤파스 때문에 1000만명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특히 ‘잘나간다’는 강남지역 공무원들은 며칠째 곤욕을 치렀다. 서초구는 잠원동 가죽나무 365그루를 모두 마로니에 나무로 바꿀 계획이다. 가죽나무는 뿌리가 겨우 50㎝에 지나지 않는다. 소나무나 잣나무 등 뿌리가 1.5m까지 내려가는 다른 수종(樹種)에 견줘 너무 약한 편이다. 게다가 심은 지 40여년이나 돼 ‘늙다리’에 속한다. 강남권 도시계획 이전에 들어섰다. 특히 잠원로는 시내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가죽나무 시범가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이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징성을 내세웠지만, 자칫 인명피해까지 낳을 수 있는 터여서 이제는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놓인 셈이다. 서초구는 지난 4일 서울시에 가로수 종류를 바꾸는 데 드는 예산 7억원을 요청했다. 진 청장은 또 “어쨌거나 직원들이 애쓴 덕분에 발빠르게 대응과 복구에 나선 자치단체로 손꼽혔다.”며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총리실 국회 승인없이 69억원 신규사업”

    국무총리실이 지난해 69억원이 드는 신규사업을 국회 승인 없이 책정했던 것으로 5일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선숙 의원에 따르면 총리실은 지난해 국회 승인 없이 녹색성장사업, 국민원로회의 및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 운영비 등 3개 사업에 69억 5100만원을 책정해 이중 53억 8500만원을 집행했다. 69억 5100만원은 국회가 국무총리실의 신규사업으로 승인한 3건의 총예산액 24억 4800만원의 2.9배에 달하는 액수다. 박 의원은 “총리실의 이 같은 처사는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조속히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국회 예산심의가 마무리된 뒤 긴급히 추진된 사업이라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예산을 편성할 때 사업계획을 면밀히 검토해 적정한 예산반영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부고]‘사랑의 교회’ 개척 옥한흠 원로목사 소천

    [부고]‘사랑의 교회’ 개척 옥한흠 원로목사 소천

    국내 대형 교회 가운데 한 곳인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옥한흠(玉漢欽) 원로 목사가 2일 소천했다. 72세. 사랑의교회는 2006년 폐암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고인이 지난달 8일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으나 2일 오전 8시43분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38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고인은 성균관대 영문학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캘빈신학교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목사안수를 받은 뒤 1978년 서초동에 사랑의교회(예장 합동)를 개척해 현재 재적 교인 8만명, 출석교인 4만 5000명에 달하는 대형 교회로 키워 냈다. 고인은 ‘평신도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취지로 평신도의 영성을 일깨우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고, 이를 다른 교파 목회자들에게도 널리 전파해 한국복음주의 교회를 이끄는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철저하게 성경 중심적이면서도 실제 생활에서의 실천 방안까지 제시하는, 진지하고 품격 있는 설교로 정평이 났던 고인은 목회자들의 롤모델이었다. 정년을 5년 남긴 65세 때 조기 은퇴를 단행, 개신교계의 문제점이던 담임 목사직의 일가 세습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한국 교회가 후원해 설립한 연변과학기술대학 명예이사장을 맡았던 고인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 북한 어린이 돕기, 장애인 선교, 호스피스 선교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도 펼쳤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순씨와 성호씨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천국환송예배)은 6일 오전 11시다. 장지는 경기 안성 양성면. (02)3480-6501∼2.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마드리드 클럽, 세계 전직 정상 ‘SKT’ 본사 방문

    마드리드 클럽, 세계 전직 정상 ‘SKT’ 본사 방문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SK텔레콤은 2일 서울 원로정상회의(외교통상부, 국가브랜드위원회, 마드리드 클럽 공동 주관)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마드리드 클럽’ 회원들이 SK텔레콤 본사 ICT 전시관 T.um(T Ubiquitous Museum)을 방문했다고 밝혔다.마드리드 클럽은 지난 2001년 설립된 전직 국가 원수 및 행정 수반들의 모임(약 70명)이다.이날 행사에는 빔 콕(Wim Kok) 네덜란드 전 총리,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 프랑스 전 총리, 리카르도 라고스(Ricardo Lagos) 칠레 전 대통령, 호아킴 치사노(Joaquim Chissano) 모잠비크 전 대통령, 세자르 가비리아(Cesar Gaviria) 콜롬비아 전 대통령, 비센테 폭스(Vicente Fox) 멕시코 전 대통령과 전 영부인이 참석했다.이어 존 쿠푸오르(John Kufuor) 가나 전 대통령 등 11명과 이두희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 심오택 국가브랜드위원 사업단장 등 정부관계자, SK텔레콤 조기행 GMS사장, 남영찬 CR&L 총괄(부사장) 등이 참석했다.마드리드 클럽 회원들은 T.um에서 ▲동작인식 기술을 통한 홈 네트워킹 서비스 ▲휴대폰으로 자동차를 제어하는 MIV(Mobile In Vehicle) ▲자신의 신체를 복제한 아바타 구현 및 의상 코디 서비스 ▲이미지 인식을 통한 상품 구매 서비스 등 다양한 미래 ICT 서비스를 체험했다.T.um에는 마드리드 클럽 이외에도 Yulia Tymoshenko 우크라이나 전 총리, Nathalie Kosciusko-Morizet 프랑스 전 국무장관, Nguyen Thien Nhan 베트남 부주석 등 15개국의 차관급 이상 VIP 30여명이 방문한 바 있어 국빈들의 한국 ICT기술 체험을 위한 필수 방문 코스로 인식되고 있다.SK텔레콤은 국빈을 포함해 현재까지 128개국 1만 6천명이 방문하여 T.um은 한국의 국제적인 ICT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원희룡 “논란 헌정회 육성법 개정 추진”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최근 통과된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헌정회 육성법)’을 대체할 입법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헌정회 육성법은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130만원씩의 국고를 지원토록 하고 있어 논란이 됐다. 원 사무총장은 27일 “헌정회에서 자체 후원금을 내는 등 펀드를 만들어 진짜 어려운 분들에게만 지원을 해야지 국고 예산에서 충당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헌정회에서도 실제 어려운 사람들만으로 연금 수혜 대상을 한정하면 300명 정도”라며 헌정회 육성법 개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재호 헌정회 부회장은 한 방송에서 해당 법 통과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이를 감춰가면서 쉬쉬했다는 시각은 온당치 못하다.”며 유감을 표했다. 정 부회장은 “현재 (국회의원에 대한)연금제도가 없기 때문에 지금 그러한 원로 지원금 형식으로 발전된 것이며 (연금의) 전 단계 장치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원금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연로 회원들 중에는 컨테이너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92세 어른이 80대 후반의 치매 걸린 부인과 단 둘이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눈물겨운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한·일 시민단체 의기투합 ‘미래 100년’ 물꼬 트다

    [경술국치 100년] 한·일 시민단체 의기투합 ‘미래 100년’ 물꼬 트다

    #장면1 지난 5월10일 오전 11시30분 한국의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와 일본 도쿄 일본교육회관은 각각 취재기자들과 방송 카메라로 북적댔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대표들은 “100년 전 한국과 일본이 맺은 병합조약은 불의부당한 만큼 무효다.”라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한국에서 109명, 일본에서 105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후 서명에 참여한 두 나라 지식인 숫자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불법’이라는 표현 앞에 망설이던 일본 지식인들도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무효 선언과 사과 담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에게 전달했다. #장면2 지식인 공동선언문이 나오기 몇 달 전,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의미심장한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 실행위원회’다. 결성은 일본 시민들이 먼저였다. 올 1월31일 도쿄 와세다 봉사원에서 창립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일본 사회의 왜곡된 과거사 인식,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일본 시민들의 역할 등을 둘러싸고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이후 ‘일본 실행위원회’는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수차례 벌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3월 ‘한국 실행위원회’가 꾸려졌다. 부끄러운 과거’ 100년을 반성하고 ‘발전적인 미래’ 100년을 모색하기 위한 한·일 두 나라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식인들이 주로 전자(前者)를 책임지고 있다면 후자를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민단체의 대표 격인 한·일 실행위원회는 을사늑약 체결일인 지난 22일부터 선포일인 29일까지를 ‘강제병합 100년 한·일 시민대회’ 기간으로 정했다. 22일 도쿄에서 개막식을 가졌고, 29일 서울에서 폐막식을 갖는다. 박한용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 실행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은 “폐막식에서 식민지배 자체가 반인륜적 범죄임을 국제적으로 천명할 방침”이라며 “한·일 시민 공동선언문 외에 부속문서로서 한·일 시민행동 계획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한·일 시민 공동선언을 기초로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시민 공동선언을 끌어내는 한편 국제행동프로그램을 만들어 동아시아 시민연대조직도 구성할 작정이다. 해외에서도 동참한다. 일본이 벌인 전쟁에 강제 동원된 러시아 사할린 한인의 후예들은 29일 사할린에 모여 강제병합 100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집회를 갖는다. 전쟁 뒤 방치한 일본의 법적·역사적 책임을 묻고 강제 동원에 대한 사과와 배상도 요구할 계획이다. 시민대회 기간 국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와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고찰하는 국제학술대회 등이 열렸다. 백범 김구 선생 유적지를 좇아 전국 1470㎞를 자전거로 순례하기도 했다. 국내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사업 공동추진위원회’(이하 100추위)는 아시아 차세대 평화 리더들을 위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100추위는 지난해 4월 30여개 단체로 출발해 116개 단체로 세를 불렸다. 12주 과정의 강좌는 두 나라 역사에 대한 실체적 접근과 함께 역사 속 평화의 의미, 시민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청소년들과의 공유도 모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얼마 전에는 ‘100년 전의 한국사’라는 책도 펴냈다.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원했다는데 사실일까?’ ‘갑오개혁 주인공들이 돌에 맞아 죽은 까닭은?’ ‘일본에 병합을 요청한 조선인은 누구인가?’ 등 지난 100년의 역사를 쉽고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문답식으로 풀어 썼다. 일반인은 물론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교육현장의 역사 교사와 역사학자, 대학 교수 등이 함께 중요 질문을 발췌해 만들었다. 100추위는 지난해 8월 일본·타이완 등의 시민단체와 국제 합동워크숍을 가진 이래 ‘전쟁 없는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주제로 순회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서울, 도쿄, 오사카, 교토를 거쳐 중국 난징, 미국 워싱턴, 뉴욕, LA, 독일 베를린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원로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지식인들의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시민들부터 진정한 역사적 화해를 통해 국가 간 화해, 나아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 질서의 출발점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정일 돌연 訪中] 베이산공원은…김일성 복무 동북항일연군 유적지

    [김정일 돌연 訪中] 베이산공원은…김일성 복무 동북항일연군 유적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이 26일 오후 방문한 베이산(北山)공원은 항일 유적지이자 지린시의 대표적인 시민공원이다. 옛날부터 지린8경으로 불렸던 각종 정자와 누각, 사찰, 사당 등이 산재해 있다. 1920년대에 공원으로 조성됐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불상 등을 유심히 살펴본 뒤 혁명열사릉과 혁명열사기념관 등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산공원은 김 위원장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1920년대말 공원내 약왕묘 지하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 소년부를 책임지게 되는 일종의 ‘김일성 유적지’다. 1953년 1만 500㎡의 면적에 조성된 혁명열사릉에는 웨이정민(魏拯民)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사령관 등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6·25(중국명 항미원조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 특히 김 주석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2군 6사장을 거쳐 이후 제1로군 2방면군 지휘관을 지내는 등 동북항일연군은 북한 정권 1세대를 이어주는 핵심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혁명열사릉 앞에는 30m 높이의 혁명열사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상층부에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샤오치(劉少奇), 주더(朱德) 등 혁명원로 4명의 추모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혁명열사릉 옆 야산 정상에는 혁명열사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1993년 준공한 5000㎡ 규모의 기념관에는 웨이정민 등 항일전쟁과 6·25 혁명열사 22인의 업적 내용이 전시돼 있어 김 위원장의 눈길을 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유탄 맞은 곽민정… 다시 메뚜기 훈련

    유탄 맞은 곽민정… 다시 메뚜기 훈련

    ‘환상의 커플’ 김연아(20·고려대)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결별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오서에게 지도받던 곽민정(16·군포수리고)도 코치를 잃어 새 시즌 어려움이 예상된다. 곽민정은 허리 재활을 포함, 현지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한국으로 유턴한다. 귀국은 다음 달 초순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곽민정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올댓스포츠는 25일 “곽민정은 3월 토론토에 간 이후부터 최근까지 오서에게 훈련을 받았다. 2010~11시즌 프로그램 역시 ‘김연아 드림팀’ 데이비드 윌슨이 안무했고, 오서 코치가 지도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허리 부상으로 1주일 정도 훈련을 쉬었지만, 10월 열릴 대회 참가엔 큰 무리가 없는 상태다. 진실이 뭐든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싱글 13위에 오른 ‘겁 없는’ 곽민정은 돌아온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기량이 완성된 데다 이룰 것을 다 이룬(?) 김연아에 비해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곽민정에게 코치가 없는 것은 치명적이라는 시선이다. 2010~11시즌은 내년 3월까지. 앞으로 6개월 이상 남았다. 곽민정이 당장 코치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피겨 코치는 “시즌을 코앞에 두고 민정이 레벨의 선수를 맡기는 쉽지 않다. 일단 가르치기도 어렵고, 만약 성장하지 못하면 책임감도 크다. 선뜻 맡으려는 코치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피겨 원로는 “통상적으로 비시즌에 해외 링크로 훈련을 다니는 만큼 전지훈련을 한 셈 치면 쉽다. 일단 새 시즌 프로그램이 있으니 촉박할 건 없다. 게다가 ‘월드챔피언’ 김연아를 보면서 기량이 많이 늘었을 거다.”고 말했다. 곽민정이 이번 사건의 ‘희생양’이라는 시선에 선을 그은 것. 내년 3월 세계선수권까지 대회 불참을 선언한 김연아와 달리 곽민정은 11월 스케이트 아메리카(12~14일·미국 포틀랜드)를 통해 시니어 그랑프리시리즈에 데뷔한다. 코치는 정해지지 않았고, 잠실·화성·태릉링크를 전전하는 ‘메뚜기 훈련’은 다시 시작된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인순이, 원로가수 故신세영 향한 동료들 ‘무관심’ 비판

    인순이, 원로가수 故신세영 향한 동료들 ‘무관심’ 비판

    가수 인순이가 22일 별세한 노래 ‘전선야곡’의 가수 故신세영의 쓸쓸한 빈소에 대해 동료들에게 한 마디 했다.인순이는 24일 자신의 미투데이에 “전선야곡을 부르신 대선배님께서 돌아가셨다. 전쟁 통에도 격정의 세월 속에서도 오로지 노래만을, 한길을 걸어오신 분인데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없어졌겠지만 너무도 썰렁한 빈소를 보며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져 몇 시간을 지키다 왔다”고 입을 열었다.이어 “전화기에 입력돼 있는 선후배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며 “내일은 많은 동료들이 와서 그분을 쓸쓸하지 않게 보냈으면 한다. 동료들도 물론 바쁘겠지. 이해한다”고 주변의 무관심에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마지막으로 인순이는 “가수도 방송팀도 없는 원로가수의 빈소. 나 생각해 본다”며 “쓸쓸하지 않게 가려면 팬들 기억 속에 있을 때?”라고 씁쓸함을 내비쳤다.故신세영(본명 정정수)이 향년 85세의 나이로 2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951년 ‘전선야곡’(작사 유호 / 작곡 박시춘)으로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故신세영은 ‘무영탑 사랑’과 ‘영 너머 고갯길’의 대표곡을 보유하고 있다. 신세영은 가수 나훈아가 부른 ‘청춘을 돌려다오’, 최무룡의 ‘정처 없는 방랑자’, 배호의 ‘화전민’을 작곡하기도 했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강서정 기자 sacredmoon@seoulntn.com▶ 강민경, 찍기만 하면 여신..셀카에 팬들 열광 ▶ 안산 여고생, 체벌사진 ‘검은 피멍’ 공개 논란 가열’▶ 이시영, ‘키스를 부르는’ 입술화보…’섹시미 철철’▶ 박명수, 소녀시대 뺨치는 팔다리 ‘극세사지’ 노출 폭소▶ 김연아, 오서 코치와 갑작스런 결별 왜?
  • 일제 한국병탄 불법성 조목조목 지적

    일제 한국병탄 불법성 조목조목 지적

    22일이 체결일이고 29일이 공포일이니 이번 한 주는 사실상 ‘경술국치 100년 주간’이다. 100년 주간을 맞아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주최하는 ‘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 국제학술대회가 24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다. ●“식민주의를 반평화적 범죄로 규정해야” 학술대회에 앞서 23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무샤코지 긴히데 오사카경법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은 기조 연설을 통해 “일본의 식민주의 범죄 또한 ‘반평화적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뉘른베르크 재판 등을 통해 반평화적 범죄로 단죄됐지만, 일본의 전범재판인 도쿄재판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샤코지 교수는 “따라서 한일병합은 ‘실제로 존재하는 법(lex lata)’이 아니라 ‘법적 정의에 따라 있어야 할 법(lex ferenda)’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면서 “일본인들이 식민지 범죄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런 측면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병합조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한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을 이끈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선언 이후 비슷한 선언이 이어지는 등 물꼬가 터졌고, 여기에는 전문역사가들도 많이 참여했다.”면서 “이제 ‘상류’의 물줄기가 바뀌었으니 ‘하류’로 내려가는 과정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고종황제 독살설’ 입증 자료 내놓아 재단이 주최한 이번 국제 학술대회에는 한·중·일 3국뿐 아니라 타이완, 미국, 독일 등의 33명의 연구자들이 참가한다. 식민지화 과정을 실질적으로 규명하는 데 앞장서온 원로학자들뿐 아니라 식민시대의 일상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킨 젊은 소장 학자들까지 두루 포함됐다. 또 병합의 불법성을 규명해 온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종 황제 독살설에 대한 주장을 내놓는다. 데라우치 마사타케 당시 일본 총리대신이 후배인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1905년 11월의 보호조약이 유효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문서를 덕수궁의 이태왕(고종 황제)에게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독살하라.”는 밀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방자 여사의 수기와 일본 궁내청 관리 구라토미 유자부로의 수기를 토대로 이런 주장을 하면서 “이는 용서받기 어려운 문제로 일본인들의 자성으로 치유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27일까지 국회서 강제병합 기록 전시회 재단은 또 학술대회 외에도 27일까지 국회에서 ‘한·일 강제병합 100년 조약자료 전시회’를 연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에 이르기까지 양국이 체결한 조약 관련 74개의 사진자료 등을 통해 한국 병탄의 불법성과 강제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당시 고종 황제가 한·일 병합을 별 말 없이 받아들였다는 허위기사를 통해 조선이 합병에 순순히 동의했다고 여론을 조작한 일본의 행태도 상세히 밝힌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선거참패 ‘3鄭체제’ 종언… 4말5초 黨·靑·政 전면에

    ‘이상득·최시중·강만수·류우익(2008년), 정정길·정몽준·정운찬(2009년), 이재오·임태희·백용호(2010년)’ 이명박 대통령 주변의 권력 핵심부는 정치적인 사건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다. 때문에 임기 반환점을 맞는 현재의 권력지도도 정권 출범 때와는 많이 달라진 양상이다. 집권 첫해인 2008년에는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측근라인’이 권력의 핵을 이뤘다. 초대 내각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 이영희 노동부 장관 등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독점했다. ‘원로그룹’이 포진하면서 내각 평균 연령도 62.4세로 지금에 비해 높았다. ●“대통령실장·정무수석 靑·국회 가교역” 청와대에서도 이 대통령의 ‘복심’인 류 대통령 실장을 비롯,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 측근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등 친이(이명박) 직계들이 실세였다. 이상득 의원도 막후에서 실세 후견인 그룹으로 파워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들 측근 라인은 이른바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S라인(서울시라인)’으로 대표되는 인사 잡음에 시달리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거세지면서 이 대통령은 두 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하는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2인자’ 이재오 전 의원은 낙선을 하고, 미국 워싱턴으로 외유를 떠난다. 취임 4개월 만에 류우익 실장과 곽승준·이주호 수석도 청와대를 떠난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정두언 의원과 마찰을 빚다 청와대를 나가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2009년 들어선 2기 이명박 정부의 최고위 핵심 자리는 대선 당시 캠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쇠고기 파동의 위기 때 구원등판한 정정길 대통령실장,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직접 영입한 정몽준 의원, 지난해 9월 취임한 정운찬 국무총리 등 이른바 ‘3정(鄭)’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측근 색깔이 옅어졌고 연령대도 낮아졌다. 친박(박근혜)계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주호영 특임장관 등 정치인 출신 5명도 이때 입각했다. ‘한번 쓴 사람은 또 쓴다.’는 이 대통령의 인사철학에 걸맞게 1기 때 물러났던 측근 세력들이 다시 자리를 잡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류우익 주중대사,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등이 권력 주변에 ‘복귀’한다. 올 들어서는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을 깨고 ‘참패’를 하면서 당·정·청 물갈이 폭이 훨씬 커졌다. 청와대에서는 ‘핵심 3인방’인 박형준 정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모두 옷을 벗었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정길 실장과 정몽준 대표가 물러난 데 이어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면서 정운찬 총리까지 퇴진하면서 ‘3정 체제’는 1년도 못 가고 막을 내렸다. 이들의 빈자리는 ‘세대교체’ 요구가 거세지면서 ‘4말5초(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하는 젊은 인사들이 대신 메웠다. 지난달 14일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40대 중후반과 50대 초반인 나경원·정두언 최고위원이 각각 지도부에 입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에서도 만 54세 동갑인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과 백용호 국세청장이 각각 대통령실장과 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투톱체제’를 이뤘다. 이어 ‘8·8개각’을 통해 만 48세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격 내정된 것이 여권 세대교체의 하이라이트다. 3기 내각과 청와대에는 집권 후반기 여의도와의 소통을 고려해 정치인 출신을 대거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1~3기 박재완 중용… ‘MB맨’ 입증 3선 의원인 임태희 대통령실장, 역시 3선의 중진인 정진석 정무수석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고 국회와의 가교역할을 맡았다. 이재오 특임·진수희 보건복지·유정복 농림수산식품·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새로 내정되면서 무려 8명의 정치인 출신 장관(내정자)이 3기 내각에 포진하게 됐다. 박재완 후보자는 청와대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진정한 ‘MB맨’임을 입증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의 향후 행보다. 야권에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의 역할을 빗대, ‘인턴 총리(김 후보자)’, ‘특임총리(이 후보자)’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이 후보자가 ‘정권 2인자’로서, 여야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부고] ‘전선야곡’ 원로가수 신세영씨

    [부고] ‘전선야곡’ 원로가수 신세영씨

    ‘전선야곡’의 가수 신세영(본명 정정수)씨가 22일 오후 1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84세. 1926년 부산 동래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7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 주최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이 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 발탁됐다. 1948년 ‘로맨스 항로’로 데뷔한 고인은 1951년 고(故) 박시춘 작곡의 ‘전선야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히트곡으로는 ‘병원선’, ‘무영탑 사랑’ 등이 있다. 1960년대에는 작곡 활동도 했는데 신행일, 나훈아, 현철이 취입한 ‘청춘을 돌려다오’를 비롯해 최무룡의 ‘정처 없는 방랑자’가 대표곡이다.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 명예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평동 적십자병원에 마련된다. 장지는 경기 이천 국립호국원이다. 25일 발인. (02)2002-8479.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전선야곡’ 부른 원로가수 신세영 씨 별세

    ‘전선야곡’ 부른 원로가수 신세영 씨 별세

    병영에서 군가보다도 더 많이 불리웠던 노래인 ‘전선야곡’(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신세영 노래, 1951년 10월 발표)을 부른 가수 신세영 씨가 22일 오후 1시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빈소는 서대문적십자병원에 마련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 DB 서울신문 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김성은, 촬영당일 연락 두절 연예계 복귀 불발 ▶ f(x) 초미니 ‘눈길’..크리스탈 ‘매끈’ 루나 ‘말벅지’ ▶ ’후덕봄’서 ‘여신봄’으로..다이어트 성공 인증샷 ▶ 박휘순은 짝사랑 전문? “지금까지 7번..결국 차여” ▶ 최현우, 미쓰에이 수지 몸 잘랐다?’절단마술’ 경악
  • ‘무한도전’ 김태호PD “프로레슬러 우롱 아닌 존경” 반박

    ‘무한도전’ 김태호PD “프로레슬러 우롱 아닌 존경” 반박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이 프로레슬링을 우롱했다는 것에 대해 반박했다. 김태호 PD는 21일 오후 새로 개설한 포털사이트 다음 블로그(http://blog.daum.net/teoinmbc/2)에 ‘무한도전 WM7에 대한 또 다른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업계 간의 갈등으로 확대해석하더니, 오늘은 책임을 모호하게 회피하는 모습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이 글을 통해 김태호 PD는 윤강철 선수의 ▲출연료 문제와 ▲푸대접 문제 ▲프로레슬링 우롱 ▲협회와 왜 같이 시작하지 않았나 ▲손스타 영입 등 논란을 일으킨 5개의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출연료 지급 지연되고 약속했던 금액을 주지 않았다는 윤강철 선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확히 4월 19일 지급됐다. 촬영일인 2월 11일 보다는 두 달 뒤지만, 통상 출연료 지급 기준이 되는 방송일 8월 7일 기준으로 보면 네 달 전이다”고 해명했다. 또한 “출연료 40만원 지급 약속을 애초에 없었고, 60만원으로 세 사람이 나눠 갖겠다고 해서 그 액수를 입금했다”고 주장했다. 윤강철 선수의 푸대접 주장에 대해서는 “윤 선수가 차량지원 필요 없고 본인 차량으로 오신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1박 2일 촬영이 될 수도 있다고 미리 설명드렸다"며 "녹화가 끝난 후에는 ‘방도 있으니 여기서 자고 가겠다’고 본인이 말씀하셨다”고 반박했다. 김태호 PD는 프로레슬링 우롱 논란에 대해 “협회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무한도전에서 벌칙맨으로 출연해 프로레슬링 원로 및 팬들의 지적을 받았고 이것이 논란이 돼 징계에 처할 수 있다고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프로레슬러의 위상을 떨어뜨릴 정도로 안 좋은 일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또한 김태호 PD는 “협회나 프로레슬러와 손잡지 않고 프로레슬링에 접근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은 저희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여러 입장이 엮이다 보면 기획의도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 아래 저희 독자적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룹 체리필터 멤버이자 아마추어 프로레슬러인 손스타를 출연시킨 것에 대해 김태호 PD는 “매번 프로레슬링 관련 방송이 진행될 때마다 떠오르는 분들이 이번 ‘WM7’ 특집에도 나오게 되면, 결국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답습의 의미가 더 커서 무한도전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태호 PD는 “프로레슬링을 시작한 후 멤버들은 공통적으로 ‘프로레슬러들 존경스럽다’고 말하는데, 우롱했다는 건 너무 섣부른 판단인 것 같다”며 “애꿎게 ‘WM7’ 선수들은 관련짓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무한도전레슬링협회 ‘WM7’은 8월 19일 꾸었던 한여름밤의 꿈을 악몽으로 마감한 채 해단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김태호 PD의 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힘내세요. 태호 PD님”, “PD님과 멤버들의 진정성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WM7 파이팅!”, “방송 기대하고 있습니다” 등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MBC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대만 여가수 린 웨이링 ‘한국몽상’ 출간…"한국활동때 수차례 성접대…"▶ 옥주현 심사태도 논란에 네티즌 “똑 부러진 심사” 호평▶ 박진영 “유일하게 눈치보는 멤버는 ‘원걸’ 소희” 왜?▶ ‘우결’ 조권, 가인과 ‘결혼증명서 사인+기습키스’▶ ‘원스’ 스웰시즌, 공연중 팬 투신자살…국내외 ‘경악’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에선 무슨 일이…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에선 무슨 일이…

    그러니까 그해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즉위한 지 4년째인 융희(隆熙) 4년이었다. 대부분 백성들은 그냥 경술년이라 불렀고, 뒷날 서기년도를 본격 도입하면서 1910년으로 기록했다. 허나 한동안 신문, 자료 등 여러 기록에서는 그해를 메이지(明治) 43년으로 표기했다. 백중도 지나갔건만, 여름 막바지 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그해 8월22일 ‘국치의 날’ 이후부터였다. 꼬박 100년 전 그날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한합방조약’이 체결됐다. 무력한 나라의 가여운 백성들은 하루 아침에 나라를 잃고 황국의 신민이 되고 말았다. 그날 오후 2시 서울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興福軒)에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회의 안건은 단 하나였다. 한·일병합조약의 전권을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순종과 총리대신 이완용은 물론,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탁지부대신 고영희, 법부대신 이재곤, 궁내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등 각료들과 왕족 대표 이재면, 원로 대표인 중추원 의장 김윤식 등이 참석했다. 회의 자리는 침울했다. 순종의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각료들도 쉬 입을 떼지 못했다. 침묵은 길었고 더위에 지친 매미만 흥복헌 바깥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이완용이 5년 전 1905년 을사조약 당시의 ‘활약’에 이어 다시 한 번 나선다. 합방의 필요성과 불가피성, 그동안 일본과 교섭한 내용 등을 한 시간 가까이 설명했고, 이미 닷새 전 이완용이 모두 손을 써 놓았던 나머지 각료들은 모두 마지못해 “옳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순종은 이완용의 발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어갔다. 마침내 순종은 “권신이 모두 가(可)하다면 짐도 이의가 없다. 동양평화를 위해 기쁜 일이다.”며 조약에 관한 전권을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완용은 위임장을 들고 지체 없이 농상공부대신 조중응과 함께 마차에 올라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있는 통감관저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명의로 데라우치와 함께 합방조약을 체결했다. 함께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했다. 숱한 외적의 침입과 전란 속에서도 지켜온 나라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910년 8월22일 월요일 오후 5시였다. 이날 서울 거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서울 주재 외신 기자들은 저녁 헌병사령관 아카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해 취재 라인이 사실상 봉쇄됐다. 거리를 순찰하는 헌병과 경찰의 눈초리는 더욱 엄중해졌지만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어떤 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외교권 박탈은 물론, 군대가 해산되고 경찰권까지 넘겨주는 등 합병의 수순이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 가슴 속에 쌓인 체념은 이미 컸다. 그러나 이에 앞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겪은 혼란과 불안감, 전민족적 항거를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일주일 동안 이를 공포하지 않은 채 물밑 작업을 벌였던 점도 평온한 분위기 조성에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예비검속이 단행됐고, 수천명의 항일인사가 체포됐으며, 어지간한 민족주의 단체는 대부분 해산당했다. 모든 저항의 싹을 잘라낸 뒤, 8월29일 일본의 강제 병합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순종은 끝끝내 조인된 조약서에 국새를 찍지 않는 소극적 방식으로나마 저항했지만 일본의 강제 병합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훗날 국제법상 불법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라도 남겨 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날의 공로로 이완용은 훈1등 백작이라는 작위를 받고 은사금 15만원을 ‘하사’받았다. 36년의 일제 강점이 사실상 시작된 날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짜릿한 기쁨으로, 누군가에게는 무기력한 체념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심한 일상 속에서 저물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주말 데이트]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주말 데이트]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저는 학생일 때 선생님이 작품 한번 보자 하면 도망갔어요. 간섭 받기 싫어서. 제 춤에 다른 색채를 입히려고 하는 게 싫었어요. 못된 제자였죠. 우리 후배들 중에 저보다 더 지독한 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웃음).” 올해 한국 현대무용계에 큰 획이 그어졌다. 숙원이던 국립현대무용단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초대 예술감독에 오른 무용가 홍승엽(48) 감독의 첫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겼다. 무용가로서 그가 살아온 인생이 보이고, 예술감독으로서 그가 단체를 이끌 방향이 감지된다. ●공학도에서 변신…‘올해의 예술상’ 거부 일화 유명 지난 17일 육완순, 남정호, 박명숙 등 원로 무용가들과 손관중, 이윤경 등 신진 무용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왁자지껄한 설립 기념식이 열렸다. 홍 감독은 지난달 선보였던 신작 ‘벽오금학’ 한 단락을 축하공연으로 선보였다. 행사 뒤 여전히 얼굴이 상기돼 있는 그를 만났다. 먼저 ‘초대감독 홍승엽’에 대한 현대무용계의 반응을 물었더니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동년배나 후배들은 아주 반겨줬고, 선배님들은 닫혔던 마음을 많이 열어주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용가로서 그의 삶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공학도에서 무용가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고 무용 입문 2년 만인 198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현대무용가로 유니버설발레단에서 3년간 활동해 화제를 낳았고 비디오로 심사를 보는 관행을 비난하며 2004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을 거부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1993년 현대무용단 ‘댄스시어터 온’을 만들어 작품 활동과 함께 단원은 물론 본인의 생계를 꾸리느라 고군분투했다. 무대, 연습실, 집을 오가는 사이사이 부족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주말도 없었다. “공연도 안 보러 다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독자 행보, 반골 기질이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퇴임을 앞두고 국립현대무용단이란 큰 선물을 선사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에게 “그래서 시켰는데 그래서 걱정이다.”라고 했다며 웃는다. ●“나보다 지독한 놈 나왔으면” “어릴 적부터 음악을 듣는 귀, 그림을 보는 눈 등 예능에 기질이 있었다.”는 그는 뒤늦게 타이즈를 입게 된 것에 대해 영화 ‘빌리 엘리엇’에 나오는 대사를 언급했다.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는 질문에 빌리가 ‘몸 안에 전기가 일어난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처음 그 대사를 접했을 때 소름이 끼쳤어요. 저 작가가 저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요.” ‘빌리 엘리엇’은 발레 무용수가 되고 싶은 탄광촌 소년이 사회적 편견과 가족의 반대를 딛고 꿈을 이룬다는 영국 영화다. 그 또한 집안 형편과 사회 환경 때문에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지 자신도 빌리처럼 “몸속에 진동을 지니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무용에 대한 소명의식 하나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고생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내가 좋아서 했기 때문에 고생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성공한 무용가에게조차도 척박했던 시간.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은 날로 발전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후배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 자연스레 그의 바람이 됐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진로는 여기서 정해졌다. 안무가 육성, 작품의 레퍼토리화, 현대무용의 대중화가 당면한 과제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안무가 육성. 우수한 무용수는 넘치는데 실력 있는 안무가는 희귀한 실정이다. 왜 그럴까. “무용은 학교에서 배우지만 안무는 아닙니다. 현장에서 자신이 배우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안무가는 키워집니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파고 들어야 하는데 그러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죠.” ●날마다 1시간30분 춤 연습으로 아침 열어 그는 오로지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안무가가 자신도 몰랐던 독창성을 발견하도록 물심양면 돕겠다고 했다. 참견과 간섭은 그의 사전에 없다. 안무가와 무용수는 상주 인원을 두지 않고 프로젝트별로 그때그때 선발한다. 이를 둘러싸고 진통도 있었지만 타성을 배격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홍 감독은 말한다. ‘국립’이라는 단어는 품격과 안정감을 주다가도 종종 예술과 만나면 ‘안일한’ 느낌을 풍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용가로, 안무가로 부딪쳤던 현장 경험을 살려 한국현대무용계가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17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댄스시어터 온’은 “법적으로 휴무, 실질적으로 해단”에 들어갔다. 10년 넘게 상주해온 단원들은 아쉬움에 눈물을 훔쳤지만 더 큰 일을 짊어질 그에게 감상은 금물이다. 창단 공연은 내년 1월로 잡았다. 자신의 작품 가운데 하나를 골라 무대에 올린다. 이에 앞서 그는 올 가을 혼자 판을 벌일 계획이다. 정식 공연장이 아닌 사찰, 화랑 등 작은 무대에서 거문고를 파트너 삼아 홀로 펼치는 공연이다. 예술감독이란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자신은 무용수라는 생각. 거의 매일 1시간30분의 연습으로 아침을 연다. 쉰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무용수와 견줘 손색없는 몸이다. 그의 몸이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엄격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올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 국립현대무용단 홍보를 위해 제 몸을 팔겠습니다(웃음).”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경총회장에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

    경총회장에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

    이희범 STX 에너지·중공업 회장이 제5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 취임한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전임 이수영 회장의 사의 표명 이후 난항을 겪어온 경총 회장 선임 문제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경총은 지난 5월 경총 회장에 추대됐으나 고사를 거듭하던 이 회장이 고심 끝에 회장직을 수락하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총은 다음달 6일 임시 총회를 열어 회장 선임절차를 마무리짓고 같은 날 취임식을 가질 계획이다. 경총은 타임오프제 등 민감한 노사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많은 재계 원로들을 앞세워 이 회장에게 삼고초려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 관계자는 “지난 16일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등 회장추대위 위원들과 김창성 경총 명예회장 등이 이 회장을 방문,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경총회장추대위는 지난 5월 “차기 회장은 노조 업무를 전담하는 경총 조직의 특성상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하고, 기업 내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아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회장을 추대했다.”고 밝혔다. 회장 임기는 2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회장은 서울 공대(전자공학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수석 합격, 상공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발탁돼 2006년까지 산자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임기 직후인 2006∼2009년에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활약, 처음으로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는 경제 5단체 중 2개 단체의 회장을 맡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마지막 길까지 순백의 예술혼으로…

    마지막 길까지 순백의 예술혼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은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마지막 길도 순수한 흰색이었다. 지난 12일 세상을 떠난 원로 디자이너 고(故)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의 장례식이 유족과 지인들의 애도 속에 15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숙하게 치러졌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고인의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유족과 지인, 연예계 관계자 등 200여명이 스님들의 독경 속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생전 흰색을 가장 사랑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영정사진은 물론 관과 운구차량까지 모두 흰색으로 맞춰졌다. 아들 김중도(30)씨가 부인, 세 자녀와 함께 시신의 뒤를 따랐으며 배우 권상우를 비롯해 많은 지인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시신은 고인이 30년 넘게 살았던 서울 압구정동 자택과 강남구 신사동의 앙드레 김 아틀리에, 고인이 지난해 완공했던 경기도 기흥의 앙드레 김 아틀리에까지 고인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을 거쳐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됐다. 정치인과 연예인을 비롯해 전·현직 주한 외교사절도 앙드레 김의 애도 물결에 동참했다. 각국 외교관들은 장례 기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고 빈소에는 스페인과 우즈베키스탄, 부탄 등 각국 대사들이 보낸 조화가 줄을 이었다. 특히 글레브 이바셴초프 전 주한 러시아대사는 주한 러시아대사관을 통해 애도 성명을 냈다. 2005~2009년 주한 러시아 대사로 근무했던 그는 “앙드레 김은 하이패션과 디자인의 진정한 마에스트로였다. 그의 작품은 그 자신과 한국에 영광을 안긴 세계적인 자질을 가진 예술이었다. 위대한 한국인 앙드레 김은 안팎으로 많은 친구를 갖고 있었으며 우리도 그 일원이었다는 데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앙드레 김은 2008년 열린 한·러 교류축제에서 이바셴초프 전 대사 초청으로 패션쇼를 열었다.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무초 마사토시 일본 대사 부부와 비탈리 편 우즈베키스탄 대사 부부, 조지프 필 주한 미 8군 사령관이 직접 찾아와서 조문했다. 앙드레 김은 패션계나 연예계 못지않게 ‘민간 외교관’로서 활약이 컸기에 주한 외교사절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그는 1962년 데뷔 직후부터 주한 외교 사절을 초청해 패션쇼를 열었고 매년 해외 각국의 대표적 명소에서 패션쇼를 열어 한국 패션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2002년 5월 서울에서 열었던 유니세프 자선 패션쇼에는 영국과 핀란드, 캐나다, 스위스, 독일 대사 부인 등이 앙드레 김과의 인연으로 패션쇼 무대에 직접 모델로 나섰다. 앙드레 김은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굵직한 클래식 공연이 열리면 자비를 들여 입장권을 사서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함께 관람하곤 했다. 28년간 앙드레 김의 패션쇼를 함께 한 도신우 모델센터 인터내셔널 대표는 앙드레 김 브랜드의 계승에 대해 “추후 결정되면 알릴 것”이라며 “(유언장 공개 등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윤창수기자 hyun@seoul.co.kr
  • 각계인사 조문행렬… 15일 영결식

    각계인사 조문행렬… 15일 영결식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장례 이틀째인 13일에도 각계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새벽에 배우 전도연과 김희선이 달려온 데 이어 원로배우 최은희, 탤런트 최불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 개그우먼 김미화, 방송인 유재석·노홍철 등이 다녀갔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앙드레 김의 마지막 패션쇼 메인 모델이었던 탤런트 이수경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20년 가까이 고인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던 성악가 조수미씨도 모습을 나타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포교원장 혜총 스님도 조문했다. 앙드레 김은 생전에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서울 진관사 총무국장 법해 스님은 “구파발 출신인 앙드레 김 선생이 진관사 아랫자락에 있는 신도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오셨다.”며 “평소의 깔끔한 성격대로 사회활동을 하면서는 종교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지만 집안에 중요한 일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절을 찾으셨다.”고 전했다. 이어 “아들 중도씨가 대학 입시를 치를 때 가장 자주 절에 와 불공을 드렸고 손주들이 태어났을 때도 절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해마다 초파일 등(燈)에 김봉남이라는 본명으로 축원을 해드렸는데 올해는 초파일 사흘 전쯤 오셔서 앙드레 김으로 바꿔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강남홍보대사로 활동하던 고인의 빈소를 찾은 강남구청 관계자는 “올해 10월 열리는 ‘강남 패션페스티벌’에서 앙드레 김을 추모하는 행사 기획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문객들은 유족 측이 조의금을 받지 않고 방명록만 적는 형식으로 조문을 받았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고인의 평소 소박함과 검소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애초 5일장으로 치르려던 장례는 4일장으로 바뀌어 15일 오전 6시 발인이 이뤄진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우리 민족의 뿌리 초원 실크로드서 만나다

    우리 민족의 뿌리 초원 실크로드서 만나다

    중국 내몽고 지역에서 찾아낸 훙산(红山) 문명. 중국사의 근간인 황허(黃河) 문명을 비롯한 세계 4대 문명보다 더 오래됐다고 전해진다. 훙산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중원(황허) 문명을 창조한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이라고 한다. 동이족은 우리의 먼 조상 격이다. 중국이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을 들먹이는 마당에 훙산 문명의 주역이 동이족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교류학의 권위자 정수일(76) 박사는 훙산 문명과 우리 고대 문화 사이에는 여러 상관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반도 20여곳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암각화가 훙산 문명에 속하는 츠펑시에서 발견됐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중원 문명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정 박사는 그러나 역사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면서도 역사의 진실을 100분의1도 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문명중심주의와 문명단원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며 단세포적인 편단이라고 강조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이른바 통일적 다민적 국가론에 입각해 고조선에서부터 발해까지의 우리 민족사를 저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물론, 우리들 속에서 튀어나오는 비현실적이며 복고주의적인 고토 회복 운운도 지양해야 한다.” ●초원길, 오아시스·해상로보다 일찍 개통 정 박사는 중국, 몽골, 시베리아 초원을 거쳐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약 2년간의 답사를 담은 초원 실크로드 기행 실록을 냈다.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창비 펴냄)이다. 동서 문명 교류 통로인 실크로드는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상로가 있다. 이른바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이다. 연구가 집중된 오아시스로와는 달리 3대 간선 가운데 가장 일찍 개통된 초원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 박사는 “근 5000년 전에 신석기시대를 갓 벗어난 에게해의 애송이 문화를 에게 문명으로 정의하면서도 이보다 3000년 후에 완숙한 금속문화를 가꾼 유목기마민족의 문명은 주변 문화로 비하하고 홀대해 왔다.”며 서구의 문명중심주의를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대흥안령산맥에서 시작해 몽골 초원과 카자흐 초원을 지나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폭 수백킬로미터의 초원 지대를 누빈 까닭은 초원로가 거칠고 험하지만 일찍이 찬란한 초원 문명을 잉태하고 전파시킨 소통의 길이며, 문명 교류의 최초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선구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가지를 뻗게 한 결연(結緣)의 길인 까닭이다. ●바이칼 주변 민족 DNA, 우리와 거의 일치 그래서 그는 초원로에서 우리 민족의 삶을 찾으며 뿌리를 더듬는다. 우리의 뿌리를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서 찾기도 한다. 해빙기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바이칼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한반도에 정착했고, 이때문에 야쿠트, 부리야트 등 바이칼 주변의 민족과 우리 유전자(DNA)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초원로에서 우리 뿌리의 흔적은 물론, 오늘날 반추해야할 교훈까지 찾아낸다. 창의적인 조화와 융합이 다문화 사회의 성공 비결이라는 것,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 등이다. 궁극적으로 초원로를 통해 교류와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6년 ‘실크로드 문명 기행:오아시스로 편’을 냈던 저자는 앞으로 해상 실크로드 기행을 통해 실크로드 답사를 완결할 예정이다. 2만 3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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