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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이젠 성장 포기하고 공동체 회복 실천 신앙을”

    “교회 이젠 성장 포기하고 공동체 회복 실천 신앙을”

    “은퇴하거나 별세한 1세대 목회자들을 이어 2세대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를 이끌고 있지만 카리스마의 공백현상이 심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지요.” 오는 16일부터 3일간 경기 가평군 필그림하우스에서 ‘오늘의 교회가 직면한 도전’이란 주제로 국제실천신학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은준관 총장. 은 총장은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교회와 목회자들이 문화사역에 치중하고 대형 건축물을 짓는 등 몸부림치지만 다가오는 시대를 제대로 맞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교회, 목회자들이 프로그램 개발과 조직관리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보다는 초기교회의 공동체를 되찾기 위한 신학적 고민을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바로 그 실천신학의 측면에서 한국교회를 진단하고 미래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 은 총장과 하워드 스나이더(캐나다 틴데일신학교) 교수, 이동원(지구촌교회 원로) 목사가 강연에 나선다. “지금 교회는 역사 속 교회의 존재 이유와 함께 교회 공동체가 어떤 모습으로 현존하는지, 그리고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매개로 제대로 작용하는지 따져 봐야 합니다.” 은 총장은 특히 교회가 어떻게 다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목회자가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 것인지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대인들은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스스로 영적인 삶을 사는 세속적 영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추구하는 프로그램과 조직관리로는 다가오는 탈세속 이후의 시대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교회는 결코 과시하고 정복하기 위한 종교성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은 총장은 그래서 대형 교회든 작은 교회든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이제 교회는 성장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작은 교회도 더 이상 큰 교회를 모방하는 서바이벌 게임에 매여선 안 됩니다. 교회와 교단의 확장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일구는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예배와 선교 등 모든 형태의 실천적 신앙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기교회처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고민과 그를 통한 치유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 총장은 공동체 회복의 차원에서 심포지엄 첫날 저녁, 떼제 공동체예배와 성만찬을 겸한 독특한 예배 워크숍을 시도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광두·안종범·윤병세 등 정책전문가 ‘선봉’

    김광두·안종범·윤병세 등 정책전문가 ‘선봉’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인력 풀은 국가미래연구원 등 정책 주도 학자 그룹, 친박 신·구주류와 원로 멤버 등 정치인 그룹, 비상대책위 그룹, 실무 비서진 그룹으로 나뉜다. 정치인 중심이었던 2007년 경선 캠프와 달리 정책 중심으로 진용이 구축되면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인사들이 부각되고 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2010년 12월 설립된 박 전 위원장의 싱크탱크다. 회원들이 캠프 요직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박근혜의 ‘두뇌집단’으로 떠올랐다. 연구원장인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 안종범 의원을 비롯해 정책위에 합류한 윤병세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 기획조정특보를 맡은 최외출 영남대 교수 등이 연구원 멤버다. 경제 전문가인 강석훈 의원도 2007년 경선에 이어 박근혜 경제공약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최경환 캠프 총괄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친박 신주류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박 전 위원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최 총괄본부장은 4·11 총선 공천 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에 휘둘리기도 했으나 캠프를 총괄하는 중임을 맡으면서 굳건한 입지를 재확인했다. 비서실장 출신으로 직능본부장인 유정복 의원, 조직본부장 홍문종 의원, 비서실장 이학재 의원, 윤상현 공보단장 등도 신주류로 분류된다. 박근혜의 입 역할을 자처했던 이정현 최고위원, 2007년 경선 캠프 대변인이었던 김재원 의원도 신주류로 구분된다. 이들이 박 전 위원장에게 직언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 친박 구주류는 대선 국면에서 박 전 위원장과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07년 경선 당시 좌장이었던 김무성 전 의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유승민 의원, 재벌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이혜훈 의원 등이 그들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을 필두로 한 원로그룹 7인회와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후방 지원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을 함께한 비대위, 공천심사위 멤버들은 가장 최근에 합류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은 새누리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그가 박 전 위원장 경제공약을 중도로 수렴해 지지층을 확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반 MB’ 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비대위원 출신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비서진 그룹은 박 전 위원장의 1998년 정치 입문 이후 한솥밥을 먹어온 이재만·이춘상 보좌관,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대표적이다. 친박 의원들의 보좌진인 음종환, 남호균, 김춘식, 이희동, 이동빈, 이춘호 보좌관도 박 전 위원장이 직접 인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1948년 런던올림픽 그때 그 태극기·휘장’ 찾긴 찾았다는데

    ‘1948년 런던올림픽 그때 그 태극기·휘장’ 찾긴 찾았다는데

    64년 전 런던 하늘 아래 대한민국의 위상을 처음으로 떨쳤던 그 태극기가 과연 맞을까. 정부 수립 보름여 전인 1948년 7월 29일 막을 올린 런던올림픽에 한국은 6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개회식에 입장한 선수단 기수가 누구였는지, 그가 들었을 태극기는 어찌 됐는지에 대해 아무런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 개회식은 우리 국호와 태극기를 세계 만방에 사실상 처음 알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데도 태극기의 보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올림픽 참가 결정이 내려진 것이 미군정의 혼란기였고 폐회 뒤에도 건국 뒤의 혼란이 지속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2010년 12월 발간된 ‘대한체육회 90년사’에도 기수의 신원과 태극기 보존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기수가 당시 농구 대표로 고려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안병석(1923~1984년) 선수였다는 주장이 9일 제기됐다. 외아들인 안모(68)씨가 태극기(위)를 비롯해 휘장(가운데)과 페넌트(아래), 농구대표팀의 붉은색 하의 유니폼을 뒤늦게 공개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태극기는 색이 조금 바랬지만 어느 한곳 해지지 않고 부드러운 천의 감촉도 그대로 남아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휘장에는 오륜기와 함께 영문 이름 ‘KOREA’와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페넌트에는 태극기와 ‘KOREA’ 그리고 ‘1948’이 또렷이 남아 있다. 하지만 부친의 유품을 공개한 안씨는 64년 동안 가보로 간직해온 이들 자료의 도난을 우려해 주소지와 자신의 이름도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당시 마라톤 선수로 출전했으며 오는 27일(현지시간) 개막하는 런던올림픽 참관단으로 다시 런던을 찾을 예정인 최윤칠(84)옹<서울신문 7월 5일자 27면>은 “안병석 선수가 선수단 기수로 활동한 것이 맞다.”고 회고했다고 대한체육회가 이날 전했다. 하지만 당시 선수로 참가한 이들 가운데 생존해 있는 다른 5명의 원로 중 일부는 “손기정(1912~2002년)옹이 기수였다.”고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다. 이를 확인해야 할 대한체육회는 안씨의 주장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없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안씨는 부친의 유품을 모아 올림픽박물관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독립국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했던 감격을 알릴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64년 만의 런던올림픽 개회를 17일 앞둔 시점에, 이런 기초적인 사실 하나 정리하지 못한 우리가 부끄럽고 안쓰럽기만 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대법관 후보 왜 하나같이 흠결투성이인가

    오늘부터 13일까지 대법관 후보 4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국회 동의를 요청한 대법관 후보자의 크고 작은 흠결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 후보자는 종교 편향이, 김병화 후보자는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구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야당은 다른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국회 늑장 개원으로 초래된 6일간의 대법관 공백 상태가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하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신 후보자는 기독교 편향 행태가 도마에 올라 대법관 자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대법원이 후보를 제청했을 때 그는 장애인이면서 지역 법관 출신이어서 보수 성향에 관료법관 일색인 대법원의 다양성을 보완해줄 인물로 평가됐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대법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009년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 교회 부목사 사택 취득은 과세 대상이라는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과 달리 비과세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또 교회 내분을 다루면서 당사자를 불러 화해를 위한 기도를 하도록 하고, 평신도와 원로목사가 예배방해죄로 다툰 형사재판에서 당사자들의 화해·조정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재판할 때 다른 종교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특정 종교인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도 법정에서 기도를 하게 하고, 형사재판에서 화해·조정을 하려 한 것 등은 법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본다. 위장전입해 서울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을 시인했던 김병화 후보자는 군복무 중이던 1981년 농지를 소유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문중 농지를 문중 결정에 따라 아버지가 명의이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철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대법관 임명동의가 늦어지면 재판부 구성이 안 된다며 국회를 찾아갔던 대법원은 민망하게 됐다. 스스로의 잘못으로 헌법기관 공백이 장기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대상자들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후보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취약한 인재풀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국회도 대법원에 수모를 당한 것에 대한 역공세 차원이 아니라 대법관 자질만을 냉철히 가늠하는 청문을 해야 한다.
  • “인도 지진은 하나님 경고” 김신 후보 종교편향 논란

    민주통합당 대법관 인사청문특위는 8일 “김신 대법관 후보가 지난해 1월 부산지법 민사합의부 수석부장판사 때 교회 간 분쟁 사건을 다룬 민사재판에서 원고와 피고 측의 화해를 위한 기도를 요청했고, 끝나자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등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적인 재판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2006년에는 교회 원로목사의 예배 방해 혐의를 다룬 형사 재판에서 해당 목사와 평신도를 조정실로 불러 종교적 화해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최재천 의원은 김 후보가 2010년 2월 “부산의 성시화(聖市化)를 위해 기도하자.”는 발언을, 2001년 발생한 인도 대지진에 대해 “지진은 하나님의 경고”라는 글을 2002년 게재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 6월 울산지법원장 취임 후 교계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울산에도 성시화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이날 “미숙한 표현을 써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국회는 10일부터 하루씩 나흘간 고영한·김병화·김신·김창석 후보 순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상득·정두언 구속영장] ‘형님·개국공신’ 동시 구속위기… 檢, 공범관계로 판단한 듯

    [이상득·정두언 구속영장] ‘형님·개국공신’ 동시 구속위기… 檢, 공범관계로 판단한 듯

    ‘임석 리스트’를 쥔 검찰의 강공이다. 검찰은 6일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3선인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동시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 정부 초기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최고실세였던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을 임석(50·구속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각각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게다가 제1야당의 원내 수장인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수억원을 받은 의혹으로 오는 16일 또는 17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검찰이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을 모두 사법처리할 경우, 향후 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수사는 한층 강도 높게 진행될 전망이다. 검찰로서는 ‘큰 산’을 넘었다. 이 전 의원은 현 정권 창업을 이끈 원로자문그룹인 ‘6인회’ 핵심 멤버이자 국회부의장을 지낸 6선 의원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의원 소환에 앞서 “굉장히 큰 산이어서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바위라고 뚫으면 안 뚫리겠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2월 이 전 의원이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이후 5개월여간 수사해 물증을 확보했다. 검찰은 지난 3일 이 전 의원 소환 전에 이미 ‘소환→사전구속영장 청구→오는 20일 전후 구속기소’ 수순의 사법처리 방향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처리를 자신해서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청와대는 이 전 의원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는 현 정부 초기인 2008년 12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전직 대통령의 형은 현 정부 초기에, 현직 대통령의 형은 정권 말기에 사법처리하는 셈이다. 검찰은 당초 불구속 기소 쪽으로 기울던 정 의원을 예상 밖으로 이 전 의원과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게다가 적용 혐의도 같다. 검찰은 정 의원을 소환하며 “단순히 해명을 듣고자 부른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었다. 검찰은 정 의원과 이 전 의원을 ‘공범 관계’로 판단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전 의원이 2008년 초 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을 당시 정 의원이 동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터다. 이 전 의원을 이틀 먼저 조사하고도 정 의원의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다 함께 영장을 청구한 사실도 ‘공범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통상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구속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수수 금액이 2억원을 넘겨야 한다. 검찰은 박지원 원내대표를 다음 표적으로 삼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한 반면 검찰은 “혐의나 수사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지만 풍문 수준은 아니다.”라고 공언했다. 여권 핵심이었던 인사들을 사법처리한 만큼 박 원내대표도 직접 겨냥하겠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관계 수사가 이제부터”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 구속영장 청구로 ‘임석 리스트’의 신빙성이 입증된 까닭에서다. 현재 임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정관계 인사들이 최소 5명, 최대 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다른 거물급 인사들이 수사 선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마라톤 원로’ 최윤칠옹 64년 만에 런던 간다

    ‘마라톤 원로’ 최윤칠옹 64년 만에 런던 간다

    1948년 런던 하늘 아래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마라톤 경기를 뛰었던 최윤칠(84)옹이 64년 만에 다시 런던 땅을 밟아 그리운 얼굴을 만난다. 대한체육회는 27일 개막하는 런던올림픽에 최옹과 함기용(82)옹을 참관단으로 초청한다고 4일 밝혔다. 이들은 대회 기간 마라톤 경기 등을 참관하고 선수촌도 방문해 후배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두 원로와 당시 자원봉사자 주디스 파월(89) 할머니가 재회한다는 점. 파월은 64년 전과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 선수단의 위상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담은 편지를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보내 왔다. 그는 편지에서 “64년 전 올림픽 때 한국 육상선수들이 발목을 다쳐 치료를 받으러 오면 최선을 다해 도왔던 기억이 또렷하다.”고 밝히며 두 원로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밝혔다. KOC는 이에 따라 파월을 초청해 두 원로와의 만남은 물론 선수단 격려 방문, 한국 경기 관전과 기자회견 등을 하게 해 주기로 했다. 베드퍼드대학에서 체육학과 물리치료학을 전공한 파월은 물리치료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한국 선수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최옹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앞세워 참가한 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약 40㎞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근육 경련과 탈수증으로 기권해 ‘비운의 마라토너’로 불렸다. 메인스타디움 장내 방송으로 최옹이 1위로 들어오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많은 관중이 그가 1위로 골인하는 줄 알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함옹도 당시 마라톤 후보 선수로 뽑혀 런던에 갔지만 최종 출전 선수에는 들지 못했다. 그러나 2년 뒤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하는 쾌거를 이뤘다. 두 원로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선수단 결단식에도 참석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李대통령, 형 검찰 출두 TV로 보지 않고…

    李대통령, 형 검찰 출두 TV로 보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조사를 받은 3일 이 대통령은 평소와 다름없이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오전 첫 일정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이어 열린 국민원로회의에도 참석, 원로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 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 이 전 의원이 검찰에 도착한 모습이 TV로 생중계될 때 국무회의에 이어 김황식 국무총리의 주례보고를 받는 시간이어서 생중계를 직접 지켜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보통 때와 다름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국무회의를 비롯한 공식 일정을 챙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적 멘토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이 전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대통령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전 의원에 대해 이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둘째형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형은 서울에서 고학을 하며 우리 못지않게 고생을 했다.”면서 애틋한 정을 나타낼 정도로 두 사람의 형제애는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청와대에는 침울하고 긴장된 기류가 흘렀다. ‘권불오년’(權不五年)을 절감하듯 향후 검찰 수사가 몰고 올 후폭풍을 가늠하면서 직원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 전 의원의 여권 내 정치적 비중을 고려할 때 만일 검찰 수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게 되면 그 충격이 클 뿐 아니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브리핑에서 이 전 의원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언급할 게 없다.”고만 답했다. 다른 참모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검찰 수사 결과를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어차피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테니 그때 가서 얘기하겠다.”고 했다. 핵심 관계자는 “TV 생중계로 검찰 소환을 지켜봤다. 현직 대통령의 형 일인데 안타깝다.”면서도 “지금으로서는 (혐의) 내용을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핵심 참모는 “이 전 의원의 검찰 출석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선 수사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전 의원 문제를 이번에 가능한 한 빨리 털어버리는 게 오히려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兄’ 출두시간에 주례보고… MB 담담한 일정

    ‘兄’ 출두시간에 주례보고… MB 담담한 일정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조사를 받은 3일 이 대통령은 평소와 다름없이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오전 첫 일정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이어 열린 국민원로회의에도 참석, 원로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 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 이 전 의원이 검찰에 도착한 모습이 TV로 생중계될 때 국무회의에 이어 김황식 국무총리의 주례보고를 받는 시간이어서 생중계를 직접 지켜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보통 때와 다름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국무회의를 비롯한 공식 일정을 챙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적 멘토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이 전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대통령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전 의원에 대해 이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둘째형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형은 서울에서 고학을 하며 우리 못지않게 고생을 했다.”면서 애틋한 정을 나타낼 정도로 두 사람의 형제애는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청와대에는 침울하고 긴장된 기류가 흘렀다. ‘권불오년’(權不五年)을 절감하듯 향후 검찰 수사가 몰고 올 후폭풍을 가늠하면서 직원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 전 의원의 여권 내 정치적 비중을 고려할 때 만일 검찰 수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게 되면 그 충격이 클 뿐 아니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브리핑에서 이 전 의원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언급할 게 없다.”고만 답했다. 다른 참모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검찰 수사 결과를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어차피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테니 그때 가서 얘기하겠다.”고 했다. 핵심 관계자는 “TV 생중계로 검찰 소환을 지켜봤다. 현직 대통령의 형 일인데 안타깝다.”면서도 “지금으로서는 (혐의) 내용을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핵심 참모는 “이 전 의원의 검찰 출석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선 수사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전 의원 문제를 이번에 가능한 한 빨리 털어버리는 게 오히려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문학·무용·연극… 이 시대 원로와 ‘행복한 만남’

    문학·무용·연극… 이 시대 원로와 ‘행복한 만남’

    무용으로 말하자면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몸으로 품고, 문학으로 보자면 시대의 사상과 고민을 글로 풀어낸 사람들, 바로 원로라 불리는 이들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원로를 다양한 양식으로 만나는 자리가 준비돼 있다. 한국작가회의와 다음세대재단은 6일부터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소리아카이브 기획특집 ‘내 문학의 기원’ 강연을 연다. ‘우리시대 작가들이 직접 들려주는 자신의 삶과 문학이야기’를 주제로, 대표 원로작가 5명이 연사로 참여해 대표 작품을 낭독하고 후배 작가와 좌담 등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다음세대재단이 운영하는 소리아카이브는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오디오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브(기록창고)로, 이번 기획은 작가의 생생한 육성으로 시대의 역사와 가치를 담은 문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했다. 민영(78) 시인을 시작으로, 소설가 이호철(80)과 현기영(71), 신경림(76) 시인, 박범신(66) 소설가가 차례로 강단에 선다. 강연 내용은 소리아카이브에서 오디오 콘텐츠로 제공할 예정이다. 강연 참가는 소리아카이브 사이트(http://soriarchive.net)에서 신청할 수 있다. 무료. 정동극장은 한국의 근현대 예술사를 이끈 거장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거장의 정동나들이’를 7월 한달간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에 진행한다. 올해는 배우이자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로 활동한 최현(1929~2002)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최현 춤의 비상’을 주제로 잡았다. 최현은 마산고교에 재학하던 1951년 신경균 감독의 영화 ‘삼천만의 꽃다발’에 출연한 뒤 10여년간 영화 12편에 등장하고, 영화 ‘시집가는 날’의 신랑 미언 역으로 주가를 높였다.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뒤 1955년 최현무용연구소를 열어 김천흥, 한영숙, 김진옥, 장재봉에게 전통춤을 가르쳤다. 춤 100여편을 안무하고, 30여년간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제자를 양성했다. “최현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과 공간이 계산된 극장예술로 한국무용의 품격을 높이려는 연마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고 김영태 무용평론가)고 할 정도로 이 시대 춤의 바탕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 최현의 춤 세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무료(사전예약). (02)751-1500. 연극에서도 원로의 시대정신을 엿보는 공연이 준비돼 있다. 5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전하의 봄’이다. 신명순(70) 작가가 1962년에 발표한 ‘전하’를 젊은 작가 이해성이 현재의 관점에서 재창작한 작품이다. 원작 ‘전하’는 세조와 신숙주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연습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세조와 사육신의 모습, 권력 찬탈의 역사적 사실과 역사 속 인물들의 내면, 이상과 현실의 갈등과 고뇌 등을 밀도 있게 드러내는 극중극 형식의 작품이다.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김승철 연출은 50년이 넘도록 여전히 유효한 원작의 주제의식을,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로 풀어냈다. 3만원. 070-7869-2089.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으로는 단연 정조가 으뜸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구축한 왕권을 이어받은 데 더해, 스스로도 끝없이 학문을 닦아 군사(君師)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또한 당시 조선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해결책을 강구했다. 정조 때 시전상인들의 독점판매권을 상당 부분 폐지해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한 신해통공(辛亥通共·1791)은 미래지향적인 제도의 변화라는 점에서 역사전문용어로서 ‘개혁’으로 부를 만하다. 서얼과 노비를 대상으로 세습신분제의 완화를 시도한 점이나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한 점도,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지만 조선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당쟁으로 갈래갈래 찢긴 정치지형을 국왕을 중심으로 대승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탕평책도 평가할 수 있다. 정조를 보좌한 대표적인 원로급 인물로는 김종수(1728~1799)와 채제공(1720~1799)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최고의 벼슬인 재상의 반열에 올라 정책결정 과정에 깊이 개입했을 뿐 아니라, 정조의 신임이 남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 거의 사사건건 대립했다. 둘 다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탕평책에 동의했으나, 속으로는 상대방을 제거하지 못해 안달했다. 김종수가 노론집안인 데 비해 채제공은 남인이었다. 또한 김종수가 사도세자를 죄인으로 간주한 벽파의 거두인 데 비해,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무고를 주장한 시파의 거두였다. 그런데도 이 둘이 모두 정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정조가 즉위하기 전에 맺은 관계 덕분이었다. ●경제개혁·천주교 반대… 수구적 재상 김종수 먼저, 김종수는 왕세손의 학문을 담당한 시강원에 근무하면서 정조의 스승이라는 각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정조가 김종수를 크게 신임한 이유가 이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종수가 정조에게 설파한 군주론이 정조의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통 주자학 신봉자인 김종수는 군주는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스승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군주나 스승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그 둘을 겸함으로써 이른바 군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한 정조가 품었던 군주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면 김종수는 정조가 진정한 군사가 되도록 성심으로 돕고 그의 탕평책을 적극 지지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철저한 당론자(黨論者)였기 때문이다. 그는 노론의 강경론자로서 소론과 남인을 역적이자 소인배의 무리로 간주해 공존하기조차 싫어했다. 그는 군자만이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나, 그에게 군자는 오직 노론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군자정치론은 사실상 노론의 전제를 뜻했다. 말로는 군사를 운운했으나, 그는 정조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탕평책을 불편해했다. 오히려 정파의 보스가 지방에 앉아 중앙의 정치에 대해 훈수하는 산림정치를 지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신해통공과 같은 경제개혁에도 극력 반대했으며,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서도 강경일변도였고, 신분제의 완화에도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정조의 조정에 출사한 이유는 권력욕 때문이었다. 어떤 변화에 대해 반대한다면 자기가 고수하려는 것들에 대한 분명한 논리를 세워야 하는데, 김종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입으로는 군사와 군자를 말했으나, 마음은 언제나 노론의 권력 독점에 있었다. 국왕의 총애를 받아 중책을 담당한 일국의 재상으로서 국가의 현안이나 제반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었다. 보수란 변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변화의 절박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해 서서히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종수는 보수로서의 정치철학조차 갖고 있지 않은 수구였을 뿐이다. 혹자는 김종수를 보수파로 평가하지만, 솔직히 자격 미달의 보수였다. ●신분제 완화에 우호적… 정조의 돌격대장, 채제공 채제공이 정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사도세자를 극구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그의 정치철학과 국가 현안에 대한 해결책이 정조와 매우 비슷한 덕분에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정통주자학에서 벗어나, 국왕의 절대권을 강조하면서 그 바탕으로서 충효를 강조했다. 이런 군주론은 군주의 특성을 최소화해 사대부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낮추려던 주자학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천자로서 군주의 권력을 절대시한 동중서(董仲舒)의 군주론에 가까웠다. 사대부 문벌을 타파하고 왕의 권위를 높이려던 정조가 이런 채제공을 홀대할 리 없었다. 정책 차원에서도 채제공은 늘 정조의 편에 섰다. 군주를 중심으로 한 탕평책에 적극 동조한 것이나, 신해통공을 적극 추진한 것이나, 주자학과 충돌을 빚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일부 포용하려 한 점이나, 신분 차별의 완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다 그런 예이다. 특히 조선사회에서 거의 진리처럼 굳어져 있던 ‘왕안석=소인’이라는 인식에 맹종하기를 거부하고 왕안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서도 채제공과 정조는 생각이 비슷했다. 사실, 정조 집권 후반기에 추진한 몇몇 정책에서 정조의 오른팔로서 돌격대장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 바로 채제공이었다. 그렇다면 채제공은 진심으로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했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채제공이 재상이 된 후에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가 벽파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였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였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사도세자를 죄인이라 한 벽파에 대해 공격 나팔을 불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죄를 입어 부왕에게 ‘처형’된 것이라면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기에 국왕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사도세자가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라면, 당시 사도세자를 공격한 자들은 모조리 역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문제이기에, 정조조차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덮고 벽파와 시파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는 탕평책을 폈던 것이다. 정조를 보좌하면서 그동안 구상했던 ‘개혁’을 추진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에, 채제공이 온건파나 중도파까지도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 버릴 사도세자 문제를 굳이 끄집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왕권을 보다 확실히 하고, 그럼으로써 정국을 주도해 개혁을 추진할 발판을 만들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채제공을 전격적으로 재상에 임명하면서 정조는 그 등용 이유를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설명했는데, 채제공이 그것을 벽파세력에 대한 공격신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정조가 끝내 중립을 지킨 점을 고려할 때, 정조가 의도한 ‘이열치열’이 그런 노골적인 공격이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김종수와 마찬가지로 채제공 또한 벽파와는 한 조정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벽파를 역적으로 몰아붙였으며, 김종수 또한 채제공을 역적으로 불렀다. ●정조의 김종수·채제공 등용은 탕평책?이열치열? 이렇듯 태생적으로 물과 기름 관계인 노론과 남인 출신인 김종수와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는 입장에서도 철천지원수 관계인 벽파와 시파에 속했다. 그 계파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그 둘은 그런 정치계보에 충실했다. 그렇다는 것은 김종수와 채제공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견원지간인 두 사람을 재상으로 쓴 정조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인사정책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탕평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고, 그 둘의 적당한 대립을 통해 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그 또한 다른 왕들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은 많으나 과단성이 부족했던 정조 자신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주자학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김종수와 채제공은 모두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다. 그렇다면 그 둘은 모두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열심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제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과거사에서 비롯된 사도세자 문제를 둘러싸고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치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정조 말년에 그 둘 모두 권력을 잃었고, 같은 해 같은 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생을 마감했다. 죽어서도 둘 사이의 엎치락뒤치락은 끝나지 않았다. 정조의 죽음으로 노론 벽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미 죽은 채제공은 관작 추탈이라는 욕을 봤다. 그런데 7년 후 정순왕후의 대리청정이 끝나고 노론 시파가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이미 죽은 김종수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역적으로 몰려 역시 수모를 당했다. ●권력잡은 노론, 채제공 관작추탈… 죽어서도 혈투 김종수와 채제공이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대립하더라도 그것을 ‘시대정신’에 기초한 정책대결로 승화시키면서 정조를 보필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실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점적 권력 그 자체였다. 김종수와 채제공이 보여준 사례는 한시도 잠잠한 날이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김종수의 처신은 일국의 정치를 책임질 재상이 보일 처신은 전혀 아니었다.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로서 그는 초지일관 ‘당권파’의 이해에 따라 행동했다. 무엇인가 개혁을 추진한 점에서 채제공이 김종수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또한 200년 이상 이전투구로 벌어진 당쟁구도에 보다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 ‘토끼와 원숭이’ 만화책 문화재 1호 되나

    국내 최초로 만화책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한국만화박물관은 21일 “국내 첫 만화 단행본으로 알려져 있는 고 김용환 화백의 ‘토끼와 원숭이’를 지난 4월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1946년 5월 조선아동문화협회가 발간한 이 책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연말까지 등록 문화재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만화박물관은 고 김종래 화백의 ‘엄마 찾아 삼만리’(1958년) 육필 원고도 함께 문화재로 등록할 계획이다. 등록 문화재는 국가가 엄격한 규제를 통해 보존하는 국보·보물·사적 등 지정 문화재와 달리 생성 연도가 크게 오래되지 않아 역사적·학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지만 보존 및 활용 가치가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현존 최고(最古)의 영화 필름인 ‘청춘의 십자로’(1934년) 등이 등록 문화재로 올라 있다. ‘토끼와 원숭이’는 그동안 기록으로만 존재해 왔으며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문 32쪽짜리인 ‘토끼와 원숭이’는 마해송 원작의 동화를 김 화백이 만화로 옮긴 작품으로 그림과 글이 분리된 삽화체 형태다. 일각에서는 김 화백의 또 다른 작품인 ‘홍길동의 모험’이 1945년 후반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단행본 효시로 보기도 한다. 원로 만화가 박기준 화백은 “‘토끼와 원숭이’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림이 뛰어나고 예술적 가치가 높다.”면서 “의인화된 동물을 소재로 한 점은 당시 일본보다 우리 만화가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당장 ‘장거리 핵’ 개발 가능…우파 “강한 일본 위해 필요”

    당장 ‘장거리 핵’ 개발 가능…우파 “강한 일본 위해 필요”

    일본 정부가 21일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 부칙에 ‘안전보장 목적’을 추가한 것이 핵무장 가능성과는 관련이 없다며 서둘러 해명하고 나섰지만 우려를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규제에 관한 법률이지만 핵 기술 개발에 원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핵무장을 하는 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의 길을 열어 놓기 위한 의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현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등 5개 국가다. 하지만 핵 전문가들은 “일본의 기술력으로 봤을 때 플루토늄을 뽑아내 농축, 기폭시켜 핵무기 원료를 만들고 이를 발사체에 실어 핵미사일을 만드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핵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세계 3위의 원전 대국이다. 1987년 11월 4일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일본은 30년간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때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핵폭탄 제조에 들어가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을 지난해 기준으로 1200~1400㎏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운반할 발사체 기술도 뛰어나 마음만 먹으면 당장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플루토늄의 경우 지난해 일본 내각부의 발표에 따르면 30t가량 보유하고 있다. 이는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20㏏ 위력의 핵폭탄 5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인접국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하다. 만약 일본이 중국에 이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핑계로 핵무장에 나선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은 플루토늄 관리나 테러단체의 원전 탈취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도 이해되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빠르게 우경화하고 있는 최근 일본의 분위기가 더더욱 심상치 않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꼽히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취임 이후 군사력 강화와 재무장 행보가 빨라지면서 경계심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원자력규제위원회 관련법에 안전보장 문구를 추가한 것도 노다 총리가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 법안을 자민당, 공명당과 연대해 추진하면서 다른 정책을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과정에서 자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는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 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에 나섰고 의회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활동을 ‘평화 목적’으로 한정한 규정을 삭제했다. 최근에는 자위대가 1970년 이후 처음으로 도쿄와 아오모리 시내에서 무장 훈련을 실시했다. 원자력기본법에 핵무장을 촉구하는 일본 우파들의 목소리도 우려할 수준이다. 차세대 정치 지도자로 꼽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은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선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원로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도 “보수신당에 참가한다면 핵무기 모의실험을 제창하는 것이 조건”이라고 말할 정도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박태준 ‘철강 명예의 전당’ 헌정

    박태준 ‘철강 명예의 전당’ 헌정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철강 명예의 전당’(Steel 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포스코는 ‘제철보국’(製鐵報國) 이념으로 철강 불모지였던 한국에 첫 일관제철소를 세워 산업 근대화에 공헌한 박 전 명예회장이 미국 철강 전문지인 ‘AMM’이 주관하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고 20일 밝혔다. 헌정 행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27회 ‘철강 성공 전략 콘퍼런스’에서 열렸다. 선정된 철강 원로는 박 전 명예회장을 포함해 모두 8명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철강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베세머 제강법’을 만든 영국의 헨리 베세머, 미국 카네기철강의 창업자 앤드루 카네기, 미 US스틸 창업자 저지 엘버트 개리, 미 누코철강 회장을 역임한 케네스 아이버슨 등이다. 또 신일본제철의 초대사장 요시히로 이나야마, 독일 경제 발전의 주역 코르프 코퍼레이션 창립자 빌리 코르프, 미 베들렘철강의 성장을 주도했던 찰스 슈워브 등이다. 1882년 창간된 AMM은 세계 철강학계와 재계 전문가 등을 포함한 ‘명예의 전당 추천위원단’을 구성, 모두 2차례에 걸친 투표를 통해 8명을 선정했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철강 원로들의 활동상과 업적을 기리는 기념 자료들은 오는 8월 미국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 있는 ‘철강박물관’의 헌정관에 영구전시될 예정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6) 연산군과 김일손

    [선택! 역사를 갈랐다] (16) 연산군과 김일손

    세조의 치세가 열리는 길목은 가파르고 무서웠다. 많은 죽음이 널렸고, 한때의 임금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목숨을 빼앗기고 제사도 받지 못하였다. 또한 문종의 현덕왕후까지 ‘왕이 아닌 자의 어미’라는 이유로 폐출되었다. 문종에 앞서 소릉에 묻혔기 때문에 ‘소릉폐치사건’이라고 한다. 공포와 쇠락의 시대,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일탈과 분노의 서사였다. 세조의 공신들은 정변과 찬탈의 전리품을 즐겼다. 유학의 수기치인과 의리명분을 벗어난 화려한 외도였다. 역사의 상흔을 감추고 기억을 억압하였다. ‘사관의 이름을 적으면 바른 사초가 어렵다.’라고 말하는 관료들도 죽였다. 또한 남이의 옥사와 성종 즉위를 빌미로 공훈을 보탰다. 이들에게 세조는 ‘불세출의 중흥주’였다. 1478년(성종 9) 4월 이심원이 세조 공신의 퇴진을 상소하고, 이레 후 남효온은 소릉복위를 주장하였다. 철벽같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누구도 말하지 못한 금기를 들춘 것이다. 이심원은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종친이며, 남효온은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개국공신 남재의 후예였다. 이 둘은 평소 친분이 깊었고, 논지는 서로 연속하였다. 새 정치 질서를 모색하자면 진실을 밝히고 상흔을 치유하자는 바람을 담았다. 기억운동, 역사운동의 시작이었다. ●왕실의 분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다 남효온이 세조의 최대 흠결을 적시하며 국가의 도덕성 회복을 주장할 즈음 왕실은 원자를 낳은 중전 윤씨 문제로 분란에 휩싸였다. 중전 윤씨는 결국 폐서인되어 사저로 쫓겨났다가 3년 후 환란의 싹을 자른다는 포고문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원자가 7살이던 1482년 8월 세자 책봉이 있기 반년 전이었다. 폐비의 묘는 버려지고 제사도 없었다. 1489년 5월 수호와 제사에 관한 방침이 처음으로 정해졌다. 수령이 주관하였으며, 기일제(忌日祭)가 아닌 명절의 속절제(俗節祭)였다. 물론 묘호나 사당도 없었다. 다만 제례의 물품만은 ‘죽은 왕비’의 예로 하였다. 세자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미래의 국왕을 배려한 고육책이었다. 폐비 윤씨를 제사지냈던 그해 겨울 남효온이 경상도 의령에서 ‘육신전’을 탈고하였다. ‘사육신충신론’이었다. 이듬해(1490) 3월 김일손은 경연에서 “노산군은 유약하여 책무를 이기지 못하였을 뿐이지 종사에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이유로 입후치제(立後致祭)를 건의하였다. 이때 무오사화로 밝혀진 사초를 작성하였다. “노산군의 시체를 숲 속에 버려서 한 달이 지나도 거두는 자가 없자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짊어지고 달아나서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 없다.” ‘세조실록’의 ‘예로서 장사 지냈다.’는 사론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김종직이 과거 들기 전에 꿈속에서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충분(忠憤)을 부쳤다.’는 평가와 더불어 ‘조의제문’ 전문을 옮겨 놓았다. 또한 현덕왕후의 복위를 상소하고는 사초에 “소릉의 관을 바닷가에 버렸다.”고 적었다. 몰래 살폈던 길 위의 노래, 억압된 기억과 기록을 사초에 담았던 것이다. 왕조실록에 실리면 노래는 불멸의 증언이 되고 야사는 국가의 정사가 된다. ●치유와 화해로 미래를 열어야 김일손은 일찍부터 문명이 높았다. 1486년 식년문과에 제출한 ‘중흥대책’(中興對策)은 인구에 비장하였다. 여기에 역대 왕조의 일치일란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면서 당대를 ‘중쇠’(中衰)로 규정하였다. 중쇠에서 중흥의 기회로 삼는 길은 간명하였다. “천지의 억울함을 풀고 일월의 어둠을 걷어내야 비로소 기강과 법도가 찬연하게 수복되고 예악문물이 가지런히 거행되고 마침내 중흥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 것이다. 재야의 역사운동이 조정에 점화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한편 역사운동은 과거로 돌아가기가 아니라 과거에서 교훈 찾기였다. 김일손은 심온 일가를 멸문시키고도 중궁 심씨는 끝까지 보전한 태종의 도량을 새삼 되살렸다. 또한 두 왕자를 부왕에게 희생된 방번ㆍ방석의 후사로 삼아 제사 지내게 하였던 세종의 인정과 고려 왕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숭의전을 세운 문종의 관용을 추앙하였다. 그만큼 좋은 정치, 어진 임금을 향한 바람이 컸던 것이다. 남효온도 사육신을 희생시킨 세조를 광명의 군주로 리메이크하고 싶은 염원이 강렬하였다. “육신으로 하여금 금석 같은 단심을 지키며 강호에 물러나 살게 하였다면, 상왕의 수명도 연장할 수 있었고 세조의 치세는 더욱 빛났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운동은 증오와 분열을 마감하고 화해와 미래를 향한 소망을 담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다. 세자는 처음부터 국왕 수업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공부를 싫어하고 환관들과 희롱하기 일쑤였다. 장성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부왕의 훈계가 두려워 시강원에 나가더라도 건성이었고, 관료가 공부라도 독려할라치면 얼굴을 찌푸리며 배척하였다. 기본경전 ‘사서’를 멀리했다. 읽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만 방대한 ‘명신언행록’을 뒤적일 따름이었다. 날이 지날수록 유희는 심해졌다. 성종도 걱정이 많았다. 인정전 연회에서 우찬성 손순효가 반쯤 술에 취하여 용상 아래 엎드려 무언가를 아뢰고 임금도 몸을 굽혀 화답한 적이 있었다. ‘성종실록’ 21년 8월 22일 기사인데, 너무 소리가 작아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폭군의 맨얼굴 신왕은 경연에 소홀하고 국정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 대신 생모의 추복에 적극적이었다. 먼저 영사전(永思殿)에서 기일제를 지내고 분묘를 천장하고 ‘회묘’(懷墓)라 하고 ‘효사묘’(孝思廟)를 지었다. 신왕 즉위 6개월, 김일손은 시무개혁안 26조를 올렸다. 이때 국왕의 마음 공부를 기본으로 ‘내수사 혁파’ ‘공물 감액과 공안 개정’ ‘사관제도 확대’ ‘제조제의 혁파’ ‘천거제의 확대’ ‘어진 종친의 발탁’ 등을 제안하였다. ‘경국대전’을 보완하는 구상으로 차세대 기묘사림도 개혁과제로 삼았다. 물론 소릉 복위도 포함하였다. 신왕의 반응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김일손은 멈추지 않았다. 왕실 전래의 불교의식인 수륙재 반대에 앞장섰다. 이단을 반대한다는 것보다는 백성을 위한 일이 아니면 복을 빌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척을 우대하는 인사방침이나 폐비 제사도 반대하였다. 신왕은 싸늘했다. “총명을 조작하며 옛 법을 어지럽히지 말라.” 또한 “김일손은 나를 용렬하다고 여겨서 섬기려 하지 않을뿐더러 임금을 아끼는 마음도 없다.”고 비난했다. 결국 김일손은 소릉복위소를 마지막으로 조정을 떠났다. 1498년 봄 모친상을 끝낸 김일손은 고향 청도를 떠나 함양 남계로 옮겼다. 정여창이 살던 마을에서 멀지 않게 정사를 마련하고 서로 강론하고자 함이었다. 김일손은 여기에서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국왕은 모질었다. 처음에는 사초에 나오는 궁중 비사의 출처와 이유를 캤다. 그러다가 추국 3일 만에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풀이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김일손 등은 능지처사되고 김종직은 부관참시였다. 또한 수기철학을 실천하던 도학자까지 난언과 붕당죄로 걸렸다. 무오사화는 왕실과 훈구세력의 비판 언론과 실천 도학에 대한 국가폭력이었다. 정국은 일순 얼어붙었고 국왕은 정국주도권을 틀어쥐었다. 그래도 뜻대로 폐비 복위는 쉽지 않았다. 많은 신료가 성종의 유지를 내세워 반대한 것이다. 겁박으로 제헌(齊憲)란 시호를 얻어내고 회묘는 회릉(懷陵)으로 높였다. 그리고 폐비사건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신료에게 보복하였다. 그동안 무오사화를 처결하고 폐비 추숭을 진행한 윤필상 등 훈구원로나 이미 세상 떠난 세조의 으뜸 공신 한명회까지 참화를 입었다. 또한 국왕의 뜻을 거슬렀던 삼사언론을 ‘능상’(上)으로 처벌하였다. 국왕은 스스로 공도(公道)의 주인임을 포기하였다. 과거로 인재 뽑듯 ‘흥청망청’ 각처 기생을 끌어오는 ‘도가니’ 세상을 연출한 것이다. 민심이반은 심각하고, 군신관계는 결딴났다. 신하들은 묵언패를 걸고 전전긍긍, 생존게임이 벌어졌다. ●자신을 세우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국왕 재위 12년 여름 전라도에서 유배객 김준손·이과·유빈 그리고 옥과현감 김개 등이 반정의병을 준비하였다. 9월 15일 남원 광한루에 출정하기로 하였다. 도성의 성희안·유순정에게도 알렸다. 반정과 반란의 길목에서 혼선을 막고 경중 호응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9월 1일 김개가 격문을 가지고 도성으로 향하였다. 여의치 않으면 진성대군을 호위하여 내전에 대비할 요량이었다. 바로 이날 밤, 도성의 반정세력이 궁궐을 장악하였다. 인심을 잃으면 임금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일대 사변, 중종반정이었다. 국왕은 연산군으로 강등되어 쫓겨났다. 그런데 전라도의 거사에 앞장선 김준손은 김일손의 백형이었다. 연산군과 김일손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과 방향이 정반대였다. 선택과 방식도 천양지차였다. 김일손이 진실을 통하여 상흔을 치유하고 미래가치를 지향하였다면, 연산군은 개인적 분노와 욕심으로 엄청난 폭력을 동원하며 보복하였다. 한편은 관용의 진보이며 다른 한편은 파괴의 퇴행이었다. 이렇게 갈리는 근본은 무엇이며, 교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극기복례, 수기처신(修己處身)의 마음 공부가 아닐까? 이종범(조선대 사학과 교수)
  • “앞으로도 ‘모든 이의 모든 것’ 되려 노력”

    “앞으로도 ‘모든 이의 모든 것’ 되려 노력”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81)이 14년간의 명동성당 생활을 마치고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 추기경은 15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에서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한 각 교구 주교들과 사제단,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정 추기경은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사목을 하면서 상본성구로 선택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살았지만 되돌아보면 부족함이 너무 많아 송구하다.”면서 “명동을 떠나 혜화동에서도 지금처럼 교회와 교구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봉사하며 생활하겠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교구청과 신학교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활동 중인 사제와 원로사제, 평신도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신자들을 향해 “모든 사제들이 사제서품 때의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사랑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홍준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은 송별사를 통해 “정 추기경님이 전임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장엄한 낙조’로 언급한 대목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며 “정 추기경님이야말로 장엄한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961년 명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정 추기경은 1970년 한국 교회 최연소 주교로 임명돼 청주교구장으로 재직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뒤 교회일치와 친교, 생명 존엄성 수호와 가정 사목에 주력했으며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2006년 한국교회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 한편, 정 추기경은 후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의 착좌식이 열리는 25일까지 교구장직을 이어간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도박 판돈 20만~110만원”

    전남 장성군 백양관광호텔에서 도박판을 벌여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승려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허철호)는 14일 조계사 전 주지 토진 스님과 백양사 소속 무공 스님을 도박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고 나머지 승려 5명을 약식기소했다. 도박에 참여하지 않아 가담 정도가 경미한 승려 1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또 투숙객으로 가장 도박 장면을 촬영한 백양사 소속 보연 스님과 폐쇄회로(CC)TV 설치업자를 공동주거침입 및 공동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도박과 관련, “불법·상습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CCTV가 설치된 장소는 사전에 원로 스님들이 투숙하기로 했던 곳”이라면서 “해당 승려들은 우발적으로 도박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국민에게 충격을 안긴 점과 함께 도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차원에서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승려들의 일탈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토진·무공 스님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벌금만 있음에도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성호 스님이 해당 동영상을 입수한 경위는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성호 스님이 제기했던 억대 도박 의혹에 대해 “수사 결과 도박 당시 개인당 20만~110만원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일축했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정동영·정세균 대권행보 시동… 당내 역학구도 앞날은

    정동영·정세균 대권행보 시동… 당내 역학구도 앞날은

    19대 총선 낙선 후 은인자중해 온 민주통합당 잠룡 정동영(얼굴 위) 상임고문이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문재인·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등 당내 주자들의 대선 플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그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정 고문이 오는 19일 당 정치개혁모임이 주관하는 대선주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대선 구상을 밝히기로 한 만큼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 고문 측은 13일 ‘담대한 변화, 준비된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 이후 정 고문의 정치 행보를 정리한 이른바 ‘정동영 백서’를 배포했다. 인터넷 칼럼니스트 김영국씨가 작성한 백서를 통해 정 고문은 “노선과 비전 없이는 12월 대선 승리도 없다.”며 진보 노선 강화를 대선 승리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김씨는 정동영 백서를 통해 민주당 강령에 담긴 그의 진보적 노선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정 고문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이자 국가 운영전략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 왔다.”며 “민주당의 가치와 노선, 비전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정 고문 측 인사도 “그가 대선 도전 여부를 놓고 각계 원로와 지지자들의 조언을 들으며 고민하고 있다.”며 “7월 초까지 출마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그동안 구상해 온 국가 운영의 방향 및 담론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고문은 최근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 시점을 공표한 유력 주자들과 달리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는 정세균(아래) 상임고문도 이달 안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는 방침이다. 정세균 고문 측 인사는 “오는 25일을 전후로 대선 도전을 밝히고 국가적 정책 화두를 제시할 계획”이라면서 “오래전부터 대선 프로젝트를 가동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왜곡한다. 종북세력들은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며, 이를 방해한 미국은 민족의 원수라고 규정한다. 누굴 위한 조국해방전쟁이었으며, 누굴 해방했단 말인가?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북한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 달 만에 남한의 92%를 적화했다.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북한군과 남한 내 좌익세력은 친미·친일·우익세력 등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당시 남한에는 세 부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12만 2000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이는 난징 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hetto)의 유대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다. 혁명의 주력군이라며 치켜세웠던 하층민도 마찬가지였다. 머슴은 악덕 지주의 앞잡이로, 노동자는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하급노동자는 지식계급의 주구(走狗)이자 무산 대중 착취에 앞장선 반동이라는 이유로 죽였다. 공산주의 원로인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으로, 서울시 인민위원장이자 김일성의 수족이었던 이승엽도 실정과 간첩 혐의로 숙청했다. 조국해방전쟁의 은총을 입은 자는 김일성을 민족의 영도자로, 어버이 수령으로 죽을 때까지 받들어 충성하는 자, 소위 ‘김일성 민족’뿐이었다. 적 치하에 놓인 수도 서울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 농지 분배의 대가로 시민들의 재산을 몰수했고, 젊은이는 의용군으로 끌고 갔다. 노인과 아녀자들은 전쟁지원사업으로, 저명인사는 체제선전용으로 북으로 끌고 갔다. 이때 피랍자가 12만명이라니 이산가족의 상처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대한민국 국민이 경상도의 좁은 모퉁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김일성은 “고양이 낯짝만 한 땅에 버티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하루빨리 남해에 쓸어 넣으라.”며 동족의 수장(水葬)을 다그쳤다. 당시 나이 어린 소년들까지 의용군으로 징집해 국군과 맞싸우게 했다. 형제가 마주 서서 총을 겨누게 한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잔인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인민을 해방하겠다며 저지른 조국해방전쟁의 실체다.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 중에는 북한군을 해방군이나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공산당 이념을 맹종해 자유대한민국을 침략한 적구(赤狗)이며, 같은 하늘에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북한군을 규정했다. 전쟁 발발 63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참화를 딛고 일어나 사상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10위권의 수출, 정보기술(IT)산업과 철강, 조선, 자동차는 세계 최고수준이며, 의학과 생명공학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러나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해야 할 식민지라고 호도하고, 종북주의자들은 앵무새처럼 이에 동조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전쟁을 ‘6·25 남침전쟁’으로 명명하고,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좌익세력들이 해방이란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상을 똑똑히 알리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 “19대부터 의원연금 폐지 이달내 법개정안 제출”

    “19대부터 의원연금 폐지 이달내 법개정안 제출”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에게 자동으로 지급되는 의원 연금을 19대 국회의원부터는 전면 폐지하는 연금지급 폐지안을 이달 중 발표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 쇄신의 첫 단추를 끼우겠습니다.” 새누리당이 12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국회 6대 쇄신안’ 태스크포스(FT)를 꾸렸다. 이 가운데 의원 연금 폐지 TF 팀장을 맡은 재선의 이철우(경북 김천) 의원은 다소 빠르다 싶을 만큼 의욕을 보였다. 이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원로 의원들에게는 연금을 차등 지급해야겠지만 현역 의원들은 포기하자는 게 기본 생각”이라면서 “6월 안에 관련법 개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쇄신의지 있을 때 속전속결 처리” 6대 쇄신안 TF는 연금 폐지를 비롯해 무노동 무임금, 겸직 금지, 국회 내 폭력 처벌 및 윤리 강화 등 국회의원 특권 철폐를 위한 사안별 실천 방안과 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기구다. 의원 연금 폐지는 지난 8~9일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가장 뜨거운 쇄신 이슈 중 하나였다.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대표적 특권이라는 데 공감대는 모아졌지만 각론에서 의견이 갈렸다. 이 의원은 “이달 중에 대략적인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속도를 높이는 이유에 대해 이 의원은 “이렇게 빠르게 추진하지 않으면 곧 있을 국회 개원, 국정감사 등에 치여 쇄신 의지가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지급되는 의원 연금은 2010년 3월 개정 시행된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에 따라 헌정회가 원로의원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그리고 이 돈은 매년 정부 예산에 고스란히 책정된다. 이 의원은 “65세 이상 전직 의원에게 지급되는 월 120만원은 일반인이 월 30만원씩 30년간 부어야 받는 국민연금 액수와 맞먹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 하루만 의원을 해도 평생 연금을 받는 현행 제도는 원칙적으로 폐지가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기득권 인정여부 논란 소지 이 의원은 “국민 법 감정상 다른 제도로의 대체는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다만 기존에 연금을 수령하는 분들에 대한 기득권 인정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어 “어렵게 사는 의원에 대한 조사 및 지원은 필요하다는 당내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헌정회 운영 및 연로회원 지원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당 소속 의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5~6명 규모의 팀을 이번 주 안에 꾸린 뒤 다음 주쯤 토론회를 개최해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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