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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스님 다비식] “한 조각 구름이 없어지듯 가셨다”

    [법정스님 다비식] “한 조각 구름이 없어지듯 가셨다”

    “한 조각 구름이 없어지듯 가셨다.” 법정 스님과 30년 넘는 인연의 끈을 이어온 윤형두(75) 범우사 대표는 14일 관악산에 올랐다. 스님에게 “잘 가시라.”란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울컥하는 마음이 가슴 밑바닥을 치며 올라왔지만 애써 눈물을 꾹꾹 눌렀다. 스님의 성품을 워낙 잘 알기 때문이다. ●“책 내기 어렵던 깐깐한 저자” 윤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평소 스님은 ‘사람이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생기는 것이요, 사람이 죽는 것은 그 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말처럼 그렇게 가셨다.”며 말끝을 흐렸다. 윤 대표와 법정 스님의 인연은 잘 알려진 대로 산문집 ‘무소유’가 맺어줬다. ‘범우 에세이 문고’ 시리즈를 내고 있던 윤 대표는 1976년, 당시 서서히 문명(文名)을 알려가던 스님을 처음 만났다. ‘무소유’ 출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첫 인상은 상당히 깐깐한 모습이셨습니다. 선천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로 솔직하셨고, 쉽게 타협하지도 않았고, 실없는 우스개를 하지도 않으셨죠.” 윤 대표는 “책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던 저자”라고 스님과의 첫 대면을 회고했다. “책 제목을 정하기 위해 출판회의를 처음 가졌는데 당신이 미리 생각해 온 ‘무소유’라는 제목을 꺼내놓으시더라고요. 편집자가 (조금 어렵다며) 다른 제목도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스님은 끝까지 ‘무소유’를 굽히지 않으셨지요.” ●인세로 어려운 학생 장학금 지원 인세(印稅) 문제만 해도 그랬다. 원고료를 한꺼번에 주기로 하고 책을 만들었던 터라, 출판사로서는 따로 스님에게 인세를 줄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스님은 느닷없이 “좋은 데 쓰려 한다.”며 인세를 요구했다. “무슨 스님이 돈을 밝히나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고민 끝에 결국 10% 인세를 드리기로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인세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셨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선행을 단 한번도 입 밖으로 꺼내 생색낸 적이 없다는 윤 대표는 스님의 이런 ‘숨은 나눔’이 불교계뿐 아니라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끌어낸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경허 스님 등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민중을 위해 불심을 심고 대중적 사랑을 받은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성철 큰스님, 법정 스님 정도였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비식에 모여든 것만 봐도 법정 스님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돌이켜 보면 스님은 ‘무소유’라는 수필 한 편에 자신의 평생 삶을 건 게 아닌가 싶어요. 무소유에서 말씀하신 삶을 살아오셨고, 돌아갈 때까지 그 끈을 놓지 않으셨으니까요.”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김규리에 패소한 美쇠고기 수입업체 항소

    김규리에 패소한 美쇠고기 수입업체 항소

    배우 김규리(개명 전 이름 김민선)의 광우병 발언과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한 재판에 패소한 국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업체가 항소를 결정했다. 국내 미국산 쇠고기 전문 수입업체인 에이미트 측은 13일 “최근 법원이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와 이에 대한 검찰의 제소를 무죄로 판결한 것이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이미트의 대표 박모 씨는 “회사가 광우병(관련 프로그램) 방영 후 사업에 막대한 손실을 입어 왜곡 보도를 한 MBC와 ‘PD수첩’ 제작진과 청산가리 운운하며 발언한 영화배우 김민선(개명 김규리)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법원 판결에 승복할 수 없어 재산상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본 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재산적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소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규리는 지난 2008년 5월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다니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는 글을 올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에이미트 등 국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들은 김규리와 MBC ‘PD수첩’ 제작진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 15부(김성곤 부장판사)는 지난달 9일 이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규리가 개인 홈피에 올린 글은 원고를 방해할 의도로 작성된 것이 아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문기술자 모델로 악의 얼굴 변화과정 추적

    고문기술자 모델로 악의 얼굴 변화과정 추적

    등단 작품을 담은 첫 소설집 ‘바늘’은 욕망의 소외와 일그러짐을 그렸다. 누군가에게는 참 불편했을 수 있지만, 애써 감추고팠던 속살을 거침없이 찔러대는 날것인 문장의 연속에 또 다른 누군가는 열광했다. 단숨에 문단의 관심 작가로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그는 2005년 첫 장편소설 ‘잘가라, 서커스’를 내놓았다. 욕망의 쓸쓸함을 달래주는 첫 장편은 많이 편안해졌다.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의 뒤안길에 대한 위로는 따뜻하기만 했다. ●1년 가까이 준비·취재 꼬박 5년이 지났다. 천운영(39)이 1000쪽 남짓의 두껍게 비어 있는 원고지 더미 앞에 다시 앉았다. 두 번째 장편소설 제목은 ‘생강’이다. 공포, 폭력과 대면한 악(惡)이 싹트고 변화하는 그 지점과 모습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소설 속에는 10년이 넘도록 은신하며 지낸 고문 기술자와 그의 딸이 나온다. 1년 가깝게 준비하고 취재했건만 선뜻 자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주일에 다섯 번 매일 원고지 10장씩 쓰기로 자신을 강제한다. 첫 일일 연재다. 무대는 창비가 최근 문을 연, 소박한 밥상 느낌의 문학블로그 ‘창문’(blog.changbi.com/lit)이다. 이곳에서 앞으로 다섯 달 동안 생강의 톡 쏘듯 향긋하면서도 쌉싸래한 냄새가 강렬하게, 때로는 은은하게 풍긴다. 네 번째 연재 글을 올린 직후인 지난 9일 천운영을 만났다. 그는 “고문기술자가 주된 인물로 등장하고 그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작품인데 어떻게 풀려갈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도 “고문을 사이에 두고 선악구도로 단순화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용서와 화해를 보이거나, 또는 시대 속 또 다른 피해자로서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다. 천운영이 쓰는 작품이 그렇게 도식화될 리는 만무하다. 사람들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를 좇는 한편, 악의 얼굴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추적하겠다는 생각이다. 천운영은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고문 피해자 10여명을 만나 고문 상황과 사후의 모습까지 확인했다. 목회자로 변신한 고문 기술자와 어렵게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그 분노와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는 고문 피해자들을 만나다 보니 감정적 동화가 생기는 것 같았고, 고문 장본인 역시 올해 초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목회자로서만 살고 싶다.’고 취재를 사양했다.”면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도 아닌데다 더이상 만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소설 쓰기에 도움될 것 같아 중단했다.”고 말했다. ●“생강은 소설속에서 중요한 소재” 소설 제목인 ‘생강’의 실체는 매개체로서도, 소재로서도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왜 하필 ‘생강’이었을까. “김치를 먹다가 생강이 나오면 골라내듯 과거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는 그렇게 골라내졌잖아요. 또한 고문 기술자와 딸의 관계 속에서 생강은 중요한 소재로 곧 등장할 거예요. 더이상 말하면 스포일러(줄거리 등을 미리 유포시키는 감상 훼방꾼)가 되니까…. 아무튼 생강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그는 “내가 고문 기술자로서 다락방에 갇혀 있는 삶이라면, 내가 고문 기술자의 딸이라면, 내가 그 고문 피해자라면, 이런 식으로 입장을 바꿔서 쭉 따라 읽어 주면 좋겠다.”고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이미 분명한 팬들을 가진 천운영이다. 천운영을 처음 접한 이들도 어려움 없이 따라가도록 그가 조금씩 친절해지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손바닥 위에 쓴 가와바타의 삶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俳句)는 한 줄 문장 안에 우주를 담아낸다고 한다. 극히 짧은 형식으로 커다란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시에 하이쿠가 있다면 소설에는 콩트가 있다. 콩트는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이야기로 한 손바닥에 써질 정도의 분량이란 뜻에서 ‘장편(掌篇)소설’로도 불린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며 ‘설국’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는 일생동안 콩트를 썼다. 그가 40여년 동안 남긴 175편의 콩트는 여러 평론가, 연구자들에게 ‘가와바타 문학의 고향’, ‘가와바타 문학을 여는 열쇠’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가 남긴 짧은 소설들이 ‘손바닥소설’(문학과지성사 펴냄)이란 재치있는 이름으로 번역돼 나왔다. 가려뽑은 68편의 손바닥소설들은 보통 원고지 15장 내외, 적게는 2장, 길어도 30장을 넘지 않는 짧은 분량다. 하지만 짧은 호흡 안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특징들은 고스란히 살아난다. 서정적인 문체도 그대로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의 손바닥소설에는 시와 같은 아늑함이 있다. 가와바타는 보통 콩트에서 기대하는 기발한 반전이나 재치·풍자보다는, 차분하고 애수에 젖은 분위기를 통해 삶의 비의(秘意)를 포착해 낸다.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 남녀 간의 심리나 애정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주로 그가 20대 초반에 쓴 것들로, 서정적 문체와 맞물리며 여리고 감성적인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부모, 부부, 아이 3대째 폐병을 앓지만 “당신과의 결혼 덕분에 행복하다.”고 병상에서 서로 말하는 부부, 보름 동안 임시 아내로 함께 했던 항구의 남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여인 등이 그런 예다. 가와바타의 삶과 서로 통하는 자전적 내용의 작품들도 많이 보인다. ‘어머니’라는 작품에서는 부모의 죽음을 처연한 어조로 전한다. 또 첫사랑 소녀 이야기를 그린 ‘양지’에서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남의 집 신세를 지게 되면서 늘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음을 고백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법정스님의 ‘마지막 소유’를 만나다

    법정스님의 ‘마지막 소유’를 만나다

    11일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은 수필집 ‘무소유’에 수록돼 있는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이런 유언을 남긴 적이 있다. “내 머리맡에 놓여 있는 책들을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하러 오는 사람에게 주어라.”라고. 그말은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이 책들만은 내 머리맡에 두어라.”는 의미와 같다. 불교계 최고의 문필가이자 ‘무소유’의 가르침을 설파한 시대의 스승 법정 스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소유하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이었다. 법회에서 빠지지 않은 주제 중 하나가 책이었고, ‘맑고 향기롭게’ 회보를 통해서 매달 읽을 책을 선정해 주기도 했다. 스님은 깊은 사유를 가진 문필가이자 폭넓은 독서가였고, 무엇보다 지독한 애서가였다. ●현대문명 사고방식 비판 책 많아 그런 그가 강원도 오두막에서 밤을 새우며 읽었던 책들은 무엇이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던 책은 어떤 것일까. 또 그토록 맑고 향기로웠던 스님의 사유를 키워낸 책들은 뭘까. 스님의 입적 직전에 나온 책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 펴냄)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스님이 평소 법문이나 수필집을 통해서 언급했던 책 중 50권을 가려 뽑아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다 스님이 언급 또는 인용한 대목들도 자세하게 전하며, 이를 통해 법정 스님의 독서편력를 전하고, 그것이 그의 지성과 가치관을 어떻게 구성해 놓았는가에 대한 지도를 그려준다. ‘무소유’를 통해 물질문명에 치우친 사람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스님은 배타적·공격적이며 경쟁적인 현대 문명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책을 많이 읽어왔다. 특히 격월간지인 ‘녹색평론’은 스님이 창간호부터 빠짐 없이 읽은 책이라고 한다. 소비적인 현대 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사람과 자연의 공생적 문화 재건을 목표로 간행되는 이 책을 두고 스님은 “이런 잡지가 널리 읽힌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스님은 ‘성장을 멈춰라’, ‘슬로 라이프’,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나무를 심은 사람’, ‘육식의 종말’ 등 문명 비판적인 책을 자주 언급했다. 이런 비판 정신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세상,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다룬 책들로 스님의 손이 가게 했다. 대표적으로 자연주의 운동가 스콧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그렇고,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위기’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펀드혼 농장 이야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등도 모두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다룬 것이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꼼꼼히 문장 수정 스님은 또 ‘월든’ ‘여기에 사는 즐거움’ ‘걷기 예찬’ ‘그리스인 조르바’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을 읽으며 본질적인 삶에 대해 고민했고,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행복의 정복’ ‘풍요로운 가난’ 등에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타진했다. 소유에 대한 개념은 ‘톨스토이 민화집’에서 배우고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는 직접 현장까지 찾기도 했다고 한다. 책은 부록으로 스님이 언급한 책 300여권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스님이 한 법문에서 “늘 곁에 두고 읽으며 의지하는 스승”이라고 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도 눈에 띄고, 스님이 직접 번역까지 했던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鑑)’이나 초기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 수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로게’ ‘정법안장’ 등도 자리하고 있다. 이들 경전 외에도 ‘어린 왕자’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같은 동화들도 목록에 포함돼 있다. 스님은 ‘나의 과외 독서’라는 글에서 ‘어린 왕자’를 두고 “누워서 부담 없이 읽히는 동화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툭 트이는 그런 책”이라면서 “내 나날의 생활에서 시들지 않은 싱싱한 초원”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책은 문장가로서의 스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출판사 측은 처음에 스님이 언급한 책 300권 목록을 뽑았고, 이를 다시 2년여에 걸친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50권으로 추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법정 스님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 주었다고 한다. 1만 85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동해·묵호항 문어잡이 허용

    어로행위가 엄격히 제한된 강원 동해항과 묵호항 내의 일부수역에서 어민들이 한시적으로 문어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동해해양경찰서는 11일 연안어장의 자원고갈과 유가인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지역 어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문어의 산란기를 피해 이달부터 다음달 18일까지 매일 100여척의 어선에 대해 오전 4시부터 낮 12시까지 조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문어 잡이는 선박 통행에 지장이 없는 동해항과 묵호항 북방파제 외측의 일부 수역으로, 작업 중에는 해상교통 안전 확보를 위해 해경 경비함정이 주기적으로 순찰하면서 질서유지와 계도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들 지역은 보안 등의 이유로 그동안 어로행위가 금지됐었다. 동해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문어 잡이는 400g 미만의 문어와 문어 이외의 다른 어로행위는 금지되고 입출항하는 선박의 항해에 지장이 없도록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해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천주교 100년만에 도마 안중근 품다

    천주교 100년만에 도마 안중근 품다

    도마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도였다. 이토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그는 성호를 그으며 감사 기도를 올렸고, 뤼순 감옥에서 형장으로 나아갈 때도 기도를 잊지 않았다. 그는 18살에 영세를 받은 이후 마지막까지 신앙을 놓지 않은 신실한 천주교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천주교는 그를 적극 품지 않았다. 십계명의 하나인 ‘살인죄’를 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조선교구장인 뮈텔(1854~1933) 주교는 사형을 앞두고 마지막 성사를 원한 안 의사의 요청을 거부했다. 심지어 명령을 어기고 안 의사에게 성사를 베푼 빌렘 신부에게 미사 집전 금지 조치를 내렸다. ●공식미사 외면한 천주교 왜? 그런 천주교가 안 의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올해 그의 순국 100주기를 맞아 처음 공식 추모미사를 여는 것이다. 집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맡았다. 그동안 소규모 미사는 있었으나 교구 차원에서 대규모 추모미사를 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을 통해 안 의사의 기독교 정신과 세계평화 정신을 기리는 각종 추모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순국 100주년 미사는 안 의사의 순국일인 오는 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봉헌된다. 이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천주교인으로서의 안 의사를 다시 알리고, 동양은 물론 세계 평화를 꿈꾼 숭고한 정신과 신앙을 기릴 예정이다. 그렇다고 천주교가 안 의사를 공식 복권한 것은 아니다. 살인했다는 이유로 공식 파문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파문이 없으니 복권도 있을 리 없다. 대신 한국 천주교는 1993년 김수환(2009년 선종) 추기경이 “일제 치하 교회가 안 의사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과오를 범한 데 연대 책임을 느낀다.”고 한 것을 상징적인 복권으로 여기고 이후 추모 행사를 조금씩 개최하고 있다. ●10월 평양서 남북공동 추모행사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25~27일 뤼순 일대 안 의사 관련 유적지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남북한 공동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남측 기념사업회에서 100명,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재언 북한적십자 총재)에서 30명가량이 참석해 공동 미사를 보고 유적지 탐방, 안 의사 평화정신 계승·실천 방안 토론회 등을 이어간다. 윤원태 기념사업회 실장은 “안 의사는 남북 공동으로 추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립투사”라면서 “오는 10월 의거 기념 행사를 평양에서 공동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회는 홈페이지(www.greatkorean.org)를 통해 사이버 추모 전시관도 운영한다. 천주교평신도 모임인 ‘직암선교후원회’는 뤼순 감옥 인근의 중국 다롄한인성당, 일본 오타시 성당 신자들과 함께 한·중·일 신자가 참여하는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예수의 생애를 묵상하며 드리는 묵상기도는 ‘주님의 기도’ 한 번, ‘성모송’ 열 번, ‘영광송’ 한 번을 1단으로 삼는다. 지난해 10월26일 시작한 봉헌운동은 이달 4일 현재 목표치를 훨씬 넘어 154만 7408단이 누적됐다. 후원회는 인터넷카페(cafe.daum.net/jigammissions)에서 댓글 형식으로 기도를 취합하고 있다. 안 의사 신앙과 사상 현대화를 주제로 한 원고와 서평도 모집 중이다. 대안공동체의 하나인 천주교 예수살이공동체(대표 박기호 신부)는 23~27일 닷새간 ‘안중근 순국 100주년 기념 순례’를 진행한다. 안 의사 유적지를 돌아보고 추모 미사에도 참석한다. ●기독교·불교 “천주교 신자인데…” 원불교도 지난 11일 전남 함평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 청사 복원터에서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 특별 천도재’를 올렸다. 행사를 진행한 정광일 청년아카데미 대표는 “안 의사와 원불교는 직접적 인연이 없으나 100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범국민운동 차원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26일 복원터에서 안 의사 추도식 및 동상 제막식도 연다. 반면 기독교나 불교계는 안 의사 100주기와 관련해 이렇다 할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라는 점이 소극적 행보의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구본준 지음, 이지선 그림, 한겨레아이들 펴냄) 신문사 문화부에서 건축을 담당하는 ‘본본 기자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건축 이야기다. 부드럽게 솟은 지붕의 곡선부터 통통하거나 춤추듯 휜 기둥, 소박하지만 풍성한 마당, 안채가 보일 듯 말 듯 야트막한 돌담 등 우리네 전통 건축물 여기저기를 함께 손잡고 다니듯 꼼꼼히 설명해 준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도 비교하며 각각의 장단점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1만원. ●사계절 웃는 코끼리 시리즈(사계절 펴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이들은 이제 그림책에서 읽기 책으로 슬슬 넘어갈 때다. 하지만 어지간한 저학년 동화는 아직은 버겁기만 하다. ‘웃는 코끼리 시리즈’는 원고지 50매 남짓의 길지 않은 동화 4~5편을 엮어 아이들이 혼자서 책 한 권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일단 1권 ‘보물상자’, 2권 ‘달을 마셨어요’, 3권 ‘여름이와 가을이’, 4권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까지 나왔다. 각권 7000원. ●안 알려진 호랑이 이야기 묶음(이진숙·김향수·조미라 지음, 백대승 등 5인 그림, 한솔수북 펴냄) 우리네 옛이야기 속에는 호랑이가 무던히도 등장한다. 썩은 동아줄 타고 올라가다 떨어진 호랑이, 곶감을 무서워하며 도망치는 호랑이 등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모습이 많다. 시리즈는 가슴 따뜻한 호랑이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욕심 많고 잔꾀 부리는 사람을 잡아먹는 눈썹이 하얀 호랑이,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짐승들을 막아주는 암행어사 호랑이, 꽹과리 배워 인간 형님을 구해주는 호랑이 등 여러 호랑이들은 읽다 보면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된다. 전 5권 1세트 4만 6200원. ●딸꾹질 한 번에 1초(헤이즐 허친스 지음, 케이디 맥도널드 덴톤 그림, 이향순 옮김, 북뱅크 펴냄) 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어제’, ‘화요일’, ‘작년’이니 하는 이름을 부여하며 단절된 듯 만든 것은 어른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역시 1시간, 하루, 일주일, 1년 등 시간의 개념을 파악해야 하는 것은 숙명적 과제다. 자연의 변화, 내 몸의 변화 등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9500원. ●책(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펴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책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임을 인식한다. 또한 아이들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 속에 생생히 살아가고 있는 책 속 등장인물을 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동화와 역사소설, 추리소설, 우주여행 이야기 등을 좇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픈 꿈에 부풀게 한다. 1만 1000원.
  • [우리고장 최고]충남 당진 필경사

    [우리고장 최고]충남 당진 필경사

    ‘브나로드(민중속으로).’ 러시아의 이 운동을 모티브 삼아 쓴 농촌소설의 백미가 ‘상록수’이고, 이 소설은 충남 당진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筆耕舍)’에서 탄생했다. 심훈 선생이 직접 건립하고 이름 붙인 태어난 집이다. 마을 일대는 상록수의 무대이기도 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남쪽 송악IC를 빠져나와 현대제철 방향으로 가는 길은 부곡리와 한진리를 가로 지른다. 소설 속 ‘한곡리’는 두 마을을 합쳐 이름 지은 가상의 마을로 주인공 박동혁이 열정적으로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곳이다. ● 마을 곳곳 소설 소재로 지금은 부곡국가산업단지로 변했지만 농촌인 부곡리와 갯마을 한진리는 아산만 갯벌과 염전을 가르는 신작로로 연결돼 있었다. ‘해변에서 새우를 잡아 말리고, 준치나 숭어 잡는 철이 되면’이란 묘사는 당시 한진리의 실제 풍경이다. 지금은 준치, 새우가 잡히지 않지만 서해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관광지로, 해맞이 명소로 인기를 끈다. 소설에 실제 지명을 넣은 ‘큰덕미’도 고대공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박동혁이 농촌운동을 함께하면서 사랑을 키우던 채영신을 맞은 한진리 뒤 해변의 조그만 산이다. ‘하루 한 번 똑딱이(석유발동선)가 와닿는 조그만 포구로 주막 몇 집과 미류나무만 엉성하게 선 나루터’라고 묘사했다. 큰덕미가 아니라 한진리가 그랬다. 1970년대 초반까지 인천을 왕래하는 여객선이 드나들었고, 80년대 초까지 손님을 태우고 경기 평택을 오가는 배가 운행됐다. 심훈 선생은 경기 안산에서 농촌운동을 하다 숨진 ‘최용신’과 큰조카 ‘심재영’을 주인공 모델로 해 상록수를 썼다. 부곡리에서 마을 청년들과 공동경작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벌였던 심씨는 1995년 작고하기 전 저술한 수필집에서 “숙부는 11살이 많았지만 나와 친구처럼 지냈다.”고 회고했다. 심훈 선생은 심씨의 권유로 1932년 서울에서 부곡리로 내려왔다. 선생은 심씨 집 사랑방에 머물다 소설 ‘직녀성’의 고료로 200여m쯤 떨어진 곳에 필경사를 짓고 가족을 데려와 살면서 상록수를 썼다. 야트막한 구릉을 뒤로하고 소나무, 대나무, 측백나무 등 상록수로 둘러싸인 초가의 필경사는 1989년 충남도문화재자료 312호로 지정됐다. 건평 60㎡ 정도에 방 2개, 다락방, 드레스룸, 거실, 주방으로 이뤄졌다. 당시로는 화장실과 목욕탕을 집 안에 둔 점이 특이하다. 필경사 옆에 심훈 선생이 직접 심은 수령 150년 된 향나무가 아직 있다. 선생의 묘도 2008년 11월 경기 안성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 그 옆에 1993년 지어진 ‘상록수문화관’이 있다. 소설 원고의 사본과 선생이 출연한 영화 관련 신문기사 등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하루 평균 100여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당진군은 상록문화제와 심훈추모제 등을 열고 있다. ● 상록초교 등엔 그의 발자취 마을에는 또 심씨가 세운 상록초등학교가 있다. 그가 농촌운동을 하면서 집 근처에 지은 야학당이 전신이다. 이 학교는 최근 황해경제자유구역에 포함되면서 이전설이 나와 주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필경사 관리사무소 구자원(51·당진군 문화체육과)씨는 “당진 최고의 문학 명소이자 농촌운동의 성지다운 면모를 더욱 갖추려면 진짜 육필 원고와 유품을 확보해 전시 기능을 강화하고 필경사에서 상록초교 사이 터 10만여㎡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당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긍정보도 혜택은 다 누리면서 부정보도엔 소송… 언로막혀”

    긍정적인 기사에는 혜택을 누리다가 비판적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남발하던 공직자들의 ‘이중적 행태’에 법원이 일침을 가했다. 서울 남부지법 민사9단독 송명호 판사는 4일 “허위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지역방송국 T사와 소속 기자 이모씨 등 4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박모(67) 국회의원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직자들이 긍정적인 보도로 혜택을 누리다가 부정적인 보도가 나오면 곧바로 언론매체를 민·형사상으로 압박하면 결국 다양한 정보가 나오는 언로가 막힌다.”며 “공직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가진 언론의 성격상 보도의 자유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위 공직자들이 비판적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남발하면 민주주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의 명예는 일한 결과에 따라 국민이 인정해 줄 때만 주어지는 것이지 본인이 나서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악의적인 보도는 보호할 가치가 없지만 이번 보도는 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이어 “공직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언론의 기능을 위축시키는 행태는 가능한 한 제한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씨 등은 2008년 10월 방송 뉴스에서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된 사학재단 소유주가 박 의원 측에 3000만원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이씨는 방송 보도에서 “금품을 건넨 시점은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실체적인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이씨의 허위 기사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며 1억원을 보상해야 한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2010 우리구 이슈]정송학 광진구청장 “상업지역 비율 두배 이상 늘릴 것”

    [2010 우리구 이슈]정송학 광진구청장 “상업지역 비율 두배 이상 늘릴 것”

    “광진구가 미래지향적인 명품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상업지역 비율을 지금보다 2배 이상 끌어올리는 등 용도지역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 정송학(57) 서울 광진구청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광진구 상업지역 비율은 1.05%에 불과해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군자동·중곡동 등 낙후지 중점개선 이에 따라 정 구청장은 다양한 지역균형발전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신호탄은 구의·자양 재정비촉진지구 개발사업이다. 첨단 업무와 지역 커뮤니티가 연계된 ‘휴먼 디지털 시티’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안이다. 지난 1월에는 재정비촉진지구 안에 위치한 방지거병원 터에 30층 규모의 주상복합단지를 짓기로 확정하는 등 세부 절차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는 중곡동 국립서울병원 부지에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의료행정타운·의료바이오비지니스센터 등으로 구성된 종합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주민의 80%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이끌어냈으며, 중곡역 일대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정 구청장은 “국립서울병원 이전과 재건축 등을 놓고 21년 동안 갈등을 빚었던 문제가 비로소 해결됐다.”면서 “정부와 주민들이 대화를 통해 혐오·기피시설 문제를 처리한 첫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차산 관광상품화에 총력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반시설이 열악한 군자동 127 일대와 침수지역인 중곡동 245 일대, 구의2동 구의시장 주변, 자양동 노룬산시장 주변 등을 ‘4대 핵심 주거정비지역’으로 꼽았다. 그는 “중곡·능·구의·화양·군자동의 노후주택지역 46곳에 대한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차산 일대 관광상품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아차산성과 홍련봉 보루 등을 묶어 고구려 역사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다. 2012년 개관을 목표로 한 고구려역사 문화관 건설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나아가 아차산 일대를 비롯, 송파구 한성백제문화관·몽촌토성, 강동구 암사선사유적지 등을 포괄하는 ‘선사·고대역사·문화·관광벨트’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정 구청장은 “문화도 이제는 경제”라면서 “역사문화관을 중심으로 한 관광벨트가 조성되면 국내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CEO 출신답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 유치·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이미 대원고속 등 KD그룹 계열 2개사를 유치한 데 이어 포상금과 승진 등 인센티브를 내걸고 우량기업 유치에 팔을 걷었다. 정 구청장은 “기업 유치 가능 지역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기업지원사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업포털시스템 ‘광진 비즈넷’을 구축하는 등 인프라도 갖췄다.”면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하기 위해 2012년까지 중소기업육성기금 100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대법 “음성 꽃동네 광산개발 정당”

    충북 음성군 사회복지시설 꽃동네 주변의 광산개발을 둘러싼 10년간 법정 분쟁이 대법원 판단만도 3번이나 받은 끝에 꽃동네의 패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일 오웅진 신부 등 570명이 광업등록사무소장을 상대로 제기한 광업권설정 허가처분 취소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꽃동네 설립자인 오 신부와 인근 주민들은 지난 2000년 T광업사가 음성군 일대에 금광 등 개발권을 따내자 생태계 파괴 우려가 있다며 광업권과 채광인가를 각각 취소해 달라고 충북도지사와 광업등록사무소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은 오 신부 등이 광업권 취소를 요구할 원고적격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008년 9월 대법원은 원고적격을 인정하면서 광산개발로 인한 공익침해 우려 문제까지 지적하면서 파기환송했고, 서울고법은 채광인가와 광업권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구체적 개발행위인 채광 인가와 포괄적 권리인 광업권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사건을 다시 파기환송했다. 이후 서울고법이 ‘광업권 허가 때문에 토지나 환경에 대한 침해가 일어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한 것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MB연설문 키워드 ‘국민통합·화합’

    MB연설문 키워드 ‘국민통합·화합’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국민통합과 화합’이다. 취임 3년차를 맞은 이 대통령 앞에는 세종시 논란을 비롯, 최근 불거진 ‘제한적 개헌론’ 등 여러 난제가 놓여 있지만, ‘통합의 정치’를 통해 국정 현안을 풀어나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연설 곳곳에서 이런 기류가 읽힌다. “서로 다르지만 하나가 되어 더 큰 가치 속에 화합하는 공화(共和)의 정신”, “숱한 대립과 분열을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국민통합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 “3·1운동의 대승적 화합정신을 계승·승화하는 길” 등을 강조한 대목들이다. 3·1운동 당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또 천도교, 기독교, 불교신자들이 종교의 차이를 넘어 ‘조국 광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투쟁했던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해법을 못 찾고 있는 세종시 문제 역시 국민통합의 연장선상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종시’라는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조화’, ‘화합’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세종시 수정안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나왔던 ‘국가 백년대계’라는 표현도 세 번이나 나왔다. 당초 청와대에서 검토한 연설문 말미에는 보다 구체적인 표현이 있었다.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되 작은 차이를 넘어 최종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커다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28일 저녁 이 대통령이 최종 원고를 점검하는 독회과정에서 ‘최종 결과에 승복함으로써’라는 문구는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실제 연설에서도 빠졌다. 한나라당 내 친박(박근혜)계가 수정안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최종결과에 승복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어 친박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북한에 남한을 진정한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핵을 포기하는 대신 상생발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남북한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위해 현안을 진지한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기념사 전반에 흐르는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와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1절 기념사에 구체적인 대일(對日) 메시지가 담기지 않은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대통령의 실용노선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올 기념사에서는 ‘사회통합’과 ‘공존공영’의 정신 두 가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 “일본에 대한 메시지는 이미 취임 후 여러 차례 (대통령이) 밝혔고, 진정한 과거사 해결과 청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일본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10년만에 첫삽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10년만에 첫삽

    25일 오전. 서울 양재동 양곡유통센터 뒤쪽 비포장도로를 따라 수백m를 들어가자 널따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터 주변으로 드문드문 채소 재배용 대형 비닐하우스와 연탄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닐하우스는 봄이 되면 완전히 철거될 것”이라며 “얼마 남지 않은 주변 주민들과도 협상이 마무리 단계”라고 설명했다. 공터에서는 터파기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이곳에는 화장로 11기를 갖춘 대형 화장장과 가족공원이 들어선다. 2014년에는 국립의료원이 완공될 예정이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추모공원 건립이 결실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주민들의 건립반대소송으로 부지선정 이후 9년여를 끌어온 화장시설인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이 25일 착공식을 가졌다. 추모공원이 완공되면 서울시는 벽제승화원과 함께 화장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가 제2화장장 건설을 공식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당시 시는 20기의 화장로와 5만위의 봉안시설을 갖춘 화장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2001년 7월 원지동 일대를 후보지로 확정했다. 1997년 서울시민 화장률이 30%를 넘어서면서 급증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벽제승화원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서울시민 화장률은 2000년 48.4%, 2005년 64.9%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80.4%, 2020년에는 91.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혐오시설인 화장장이 지역에 설치된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2001년 12월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2007년 4월에야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공사가 지연되는 9년여 동안 시는 430회에 걸쳐 공식적인 주민대화를 시도했고 150여회의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했다. 신면호 시 복지국장은 “국립의료원을 유치하고 화장로를 11기로 줄이는 등 끊임없는 설득작업을 펼쳤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협의가 모두 완료된 것은 아니다. 일부 주민들은 내곡지구 보금자리주택 입주권을 요구하며 철거에 불응하고 있고, 주변 지역에서도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 협상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시는 가능한 한 올 상반기에 관련 민원을 모두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한송이 꽃’을 형상화한 추모공원은 산속 지하에 철저히 숨겨진 형태로 건설된다. 설계도상으로는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지만 지하 20m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 외부에서는 완전히 지하 건물이 된다. 부지 전체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 나머지 한쪽 면에는 종합의료시설이 들어선다. 출입도로도 터널로 연결해 장례행렬이 외부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 화장장은 친환경 신공법이 대거 적용됐다. 소각로는 매연이나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는 완전연소가 이뤄지게끔 화염이 4차례 순환 연소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배출가스의 양은 국가 기준의 10분의1 수준으로 줄였다. 화장장 시설의 냉난방은 소각로에서 나오는 폐열과 지열발전기를 통해 100% 자체 충당하고 건물의 조명을 위해 자연광 활용을 극대화했다. 시 관계자는 “일단 2020년까지의 수요는 해결이 됐지만 승화원과 추모공원의 화장로 34기를 모두 빠듯하게 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제3화장장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본인 서면동의 없는 보험…대법 “추인 거쳤어도 무효”

    제3자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경우 본인의 서면동의가 없으면 보험료 납부 등 계약 후 추인절차를 거쳤어도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4일 사망한 부인에 대한 생명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정모(53)씨 등이 A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보험계약은 정씨가 부인을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로 해 체결한 상법상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으로 계약할 때 부인의 서면동의가 없어 무효”라며 “부인이 추인해 유효하다고 본 원심 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A보험사의 직원으로 일하던 1998~99년 부인을 계약자와 피보험자로 해 4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2003년 부인이 집에서 살해되자 아들들과 함께 총 4억 5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버스정류소 관리 50년만에 경쟁체제로

    50년 만에 서울 시내 버스정류소 표지판과 승차대를 관리하는 사업이 한 회사의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대법원은 서울시의 버스 정류소 사업을 50년간 독점한 A사가 2006년 시와 버스운송사업조합을 상대로한 ‘계약존속확인 소송’에서 원고패소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1961년 A사 설립과 함께 시작해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이뤄진 독점적 사업이 마침내 법적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이 사업은 A사가 시내버스 정류소의 간판과 승차대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대신 광고권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A사 대표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친척으로, 서울시는 윤 의사와 관련한 후원 사업을 한다는 취지에 따라 1972년부터 3년마다 수의계약 형식으로 이 회사에 사업권을 줬다. 하지만 사실상 이 회사가 설립 당시인 1961년부터 서울시의 버스 정류소 사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시내버스 정류소를 3~4개 권역으로 나누고 복수의 사업자를 공모해 버스정류소 정비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A사 관계자는 “서울시의 조치에 따라 대응책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는 민간 업체의 경쟁을 유도해 서울시 디자인 정책과 도로 환경에 맞는 버스 표지판과 승차장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EBS 사탐 역사 명강사 최태성 교사의 ‘공신 팁’

    EBS 사탐 역사 명강사 최태성 교사의 ‘공신 팁’

    “백두산 근처 이 부분이 신민회가 활동했던 서간도 지역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선생님은 통일이 되면 우리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BS의 ‘갈아만든 사회탐구’ 역사 과목은 사진 자료 등을 보여주며 관련된 내용을 짚어준다. 강사인 서울 대광고 최태성 교사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 무섭게 보이는 이유는 고문 때문에 부었기 때문이라는 등의 설명을 곁들인다. 중간중간 “이건 저번 시간에 무엇 때문이라고 했지?”라는 식의 반말도 한다. 그렇게 20분 동안의 인터넷 강의를 원고도 없이 단숨에 녹화한다. ●사진자료 등 보여주며 내용 짚어줘 최 교사는 2001년부터 꾸준히 EBS의 ‘스타강사’ 자리를 지켜 왔다. EBS가 민간 스타강사 30여명을 추가 영입하는 등 변신을 시도한 올해에는 더 바빠질 전망이다. 올해 처음 도입된 ‘파견 교사제’에 따라 1년 동안 EBS 파견이 확정된 학교 교사 4명 가운데 1명인 그는 교재개발과 연구, 강의법 개발 등의 일정을 빡빡하게 세워뒀다. EBS 안팎의 스타 강사들과의 경쟁에서 최 교사가 활용할 무기로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공교육 역사 과목을 목표로 내세운 것은 역설적이다. 대표적인 암기과목으로 규정돼 ‘태정태세문단세’식으로 쉽고 헷갈리지 않게 외우는 방법을 습득시키는 게 질 높은 교육으로 인정받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교사는 19일 녹화 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고민만큼 중요한 게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오래 남는 교육, 공교육적인 방법이 그동안 인터넷 강의 히트수를 높인 비결이라고 했다. 그래도 ‘시험 성적’을 놓칠 수는 없다. ‘무엇을’만 보고 ‘어떻게’를 놓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강의를 만든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최 교사 강의의 히트수가 높은 것도 그가 ‘무엇을’과 ‘어떻게’라는 토끼를 둘 다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르칠지 항상 고민 비법은 최 교사의 ‘칠판 필기법’에 있었다. 그는 교과서에 흩어져 나열돼 있는 사건들을 묶어 판서 한 장으로 정리해 제시한다. 예컨대 3·1운동의 경우 민족대표 33인의 모임부터 유관순으로 대표되는 학생과 민중운동의 전국적 확산, 재암리 학살로 상징되는 일제의 대응이 지도 한 장에 요약됐다. “그냥 듣지 말고 노트 필기를 하면서 들어라.”라며 최 교사가 ‘잔소리꾼’으로 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생들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필기를 따라하고, 그렇게 이해하며 만든 필기는 자신의 것이 된다. 그때 좀처럼 잊어먹지 않는 ‘암기’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선생님은 ‘판서 디자이너’ 같아요.”라든지 “강의를 들으며 만든 필기노트가 수능 시험을 볼 때 갖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교재였습니다.”라는 학생들의 댓글은 최 교사가 받는 ‘보너스’이다. 초기 댓글 중에는 “돈이 없어서 사설학원 인터넷 강의를 못 들었는데 EBS 강의를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댓글도 있었다. 최 교사는 “처음에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내 강의를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듣는 과목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최고의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EBS 강의를 ‘돈이 없어서 듣는 강의’가 아니라 ‘돈 주고도 못 사는 강의’로 바꾸려는 최 교사와 같은 강사들이 EBS의 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야구게임 캐릭터 日표절 아니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22일 일본 게임업체인 고나미가 자사 야구게임 캐릭터를 무단으로 복제했다며 국내 온라인게임 제작사 네오플과 유통사 한빛소프트를 상대로 낸 저작권침해금지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양사의 게임 캐릭터는 귀여운 이미지에 기초해 머리 크기를 과장하고 발을 크게 표현하는 등 유사한 면이 있다.”면서도 “이는 앞서 만화·게임·인형 등에서 흔히 사용됐던 것이거나 야구 게임의 특성상 유사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데다, 이목구비 생김새 등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 창작적 표현양식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판부는 “네오플의 캐릭터가 고나미의 캐릭터를 복제했거나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라고 말했다. 고나미는 머리가 큰 2등신 캐릭터에 팔다리가 없이 몸통에 손, 발만 달려 있는 네오플의 야구게임 ‘신야구’ 캐릭터가 1994년 자사가 출시한 ‘실황파워풀 프로야구’의 캐릭터를 도용했다며 2005년 8월 소송을 제기했지만 1, 2심에서 패소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찜질방서 음주사망 업주 손배책임없어”

    찜질방 이용객이 술에 취해 자다 사망했더라도 통상의 안전의무를 지켰다면 업주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는 21일 찜질방에서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가 사망한 이모씨의 부모가 찜질방 주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찜질방 시설에 안전상 하자가 있다거나 이씨가 찜질방 내에서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임에도 장시간 내버려 두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만큼 업주의 과실을 인정한 원심 판단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이씨가 2008년 2월 친구와 술에 취한 채로 S찜질방에 들러 추가로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 이튿날 사망한 채로 발견되자 이씨 부모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찜질방 주인이 손해액의 10%와 위자료로 3700만원을, 2심은 29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카사노바 男色까지 탐했네…

    카사노바 男色까지 탐했네…

    희대의 바람둥이 조반니 자코모 카사노바(그림·1725~1798)의 자서전 원고 ‘나의 인생 이야기’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하 도서관)에 700만유로(약 109억원)에 팔렸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3700쪽의 방대한 원고는 이 도서관이 보유한 최고가의 소장품이 됐다. 프레데릭 미테랑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2007년 원고를 소유한 독일 유수의 출판 가문 브로크하우스의 제의를 받고 즉시 매입을 추진했다. 진귀한 카사노바의 원고를 수중에 넣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2년 6개월동안 기금을 모금했다. 마침내 익명의 사업가가 거액을 기부했고 도서관은 브로크하우스와 판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카사노바의 자서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당대 최고의 호색가였던 만큼 화려한 여성편력사는 빠질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사노바가 만났던 122명의 여성과 수녀 1명, 심지어 남성들과의 연애담까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원고를 살펴본 브루노 라싱 도서관장은 “그의 이야기는 지금 봐도 충격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계몽주의가 유럽을 물들이던 18세기 당시의 흥미로운 풍속을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테르, 루소 등 당대의 사상가들과의 교류도 드러났다. 특히 카사노바는 모차르트가 오페라 가사를 쓰는데 충고를 해준 일화도 소개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의 카사노바는 모험가, 변호사, 성직자, 바이올리니스트, 도박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전 유럽을 떠돈 ‘진정한 유러피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사노바가 73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500개가 넘는 다양한 버전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그러나 오직 2권만 원본에 기반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검열당하거나 오류투성이었다고 FT는 전했다. 도서관 측은 수달내에 원본을 디지털화, 온라인에 공개하고 내년부터 국제 전시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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