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웅산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보정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이유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동성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번식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27
  • ‘미얀마의 봄’에 在美 미얀마 교포사회도 술렁

    ‘미얀마의 봄’에 在美 미얀마 교포사회도 술렁

    미얀마(버마) 군사정부가 민주화의 아이콘인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구금 조치를 15년 만에 풀고 보궐선거 참여를 허용하는가 하면 정치범 석방과 소수민족 반군과의 평화협상 등 민주화 조치에 나서면서 군사정부의 탄압을 피해 미국 땅으로 건너온 재미 미얀마 교포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인디애나와 동부 주들에 거주하는 상당수 미얀마계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일부 교포는 이미 귀국을 감행했고 그들로부터 고국에 대한 다양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군사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온 미얀마 사람들은 조국을 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전의 이름인 버마로 부른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오전 9시 30분쯤 미국 메릴랜드주 스프링필드의 한 미얀마식 사원. 법당에 들어서자 삭발에 미얀마식 승복을 입은 6명의 승려와 10여명의 미얀마계 신도들이 바닥에 앉아 법회를 하고 있었다. 녹음 테이프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독경 소리를 들으며 신도들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불상 머리 주위에 전자식 장치로 광휘가 발산되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매주 일요일 이처럼 법회가 진행되는 이 절은 ‘주미 버마 불자 연합회’에 속한 곳이다. 이 연합회 부회장인 틴 멍 터(63)는 “오늘은 저녁에 특별법회가 있기 때문에 아침 법회 참석자가 적은 편”이라면서 “이곳 신도들의 상당수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 온 정치적 난민들”이라고 말했다. ●반정부 활동으로 미국행 터 부회장 역시 33년 전 ‘생존’을 위해 조국을 등져야 했다. 당시 랭군대학 경제학과 4학년이었던 그는 군사정부의 폭정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 그의 부모는 졸업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복학시켜 달라고 탄원했고 군사정부는 졸업과 동시에 학교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는 조건으로 졸업을 허용했다.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계획이었던 터 부회장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아들의 신변 안전을 우려한 부모는 그에게 미국행을 종용했다. 같은 처지의 학교 친구들 중에는 태국이나 인도 등으로 피신한 경우도 있었지만 터 부회장은 미국에 이미 정착해 있던 여동생의 도움으로 1978년 12월 30세의 나이에 버지니아로 부인, 딸과 함께 이민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한 리서치 회사에 취직했고 이후 연방하원의원 보좌관 등으로 일하며 미국 사회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33년간 단 한번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군사정부가 입국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터 부회장은 “버마 교포 20만여명 가운데 30~40%가 정치적 난민”이라면서 “군사정부는 이들에 대해 오랜 세월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미얀마 군사정부가 최근 일부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정책 변화를 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군사정부가 터 부회장 같은 정치적 난민들에게 입국을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얀마 교포 중에는 고국으로의 귀향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중 일부는 벌써 미얀마로 돌아갔다고 한다. 특히 미얀마 교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인디애나주를 중심으로 6개월 전부터 교포 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미얀마 부동산값 10년 새 5배 폭등 이날 사원에서 법회가 끝난 뒤 만난 50대 남성은 “버마 교포 중에서도 미국에서 성공한 부류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포들이 귀국에 더 적극적”이라면서 “미국에서 배운 노하우로 고국에서 사업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족 중 일부가 고국에 남아 집을 소유하고 있던 교포들은 지금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10~20년 전에 비해 미얀마의 부동산값이 무려 50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반면 집이 없는 교포들은 비싼 주택값 때문에 고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미얀마로부터 미국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직장에서 은퇴해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돕고 있는 터 부회장은 고국으로의 귀향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신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미얀마 정부의 공언을 아직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 버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화 세력이 승리하고 신변 안전이 보장된다면 고국을 방문할 생각”이라고 했다. 스프링필드(메릴랜드)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허기진 영혼 채우는 고향의 맛 ‘솔 푸드’

    허기진 영혼 채우는 고향의 맛 ‘솔 푸드’

    스마트폰 하나면 못하는 것이 없는 디지털 시대지만, 사람들은 더 쉽게 지치고 초조함을 느낀다. 이렇게 마음이 허기지고 의기소침해질 때, 누구나 한 가지쯤 떠올리는 음식이 있다. 바로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 주고 영혼을 채워주는 솔 푸드(soul food)가 그것이다. 30일 밤 11시 40분에 KBS 1TV에서 방송되는 수요기획 ‘삶의 허기를 채우는 소울 푸드’ 편에서는 6인의 명사가 초대하는 마음의 식탁에 앉아서 지나간 추억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맥가이버와 가제트 형사의 목소리로 알려진 ‘국민성우’ 배한성은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인절미 세 개를 꼽는다. 죽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을 만큼 가난했던 시절,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한 아들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는 어디선가 인절미 세 개를 구해 오셨다. 얼른 떡을 집어 먹으려던 동생은 어머니에게 혼쭐이 나고, 떡 하나를 입에 넣고 집을 나서던 소년 배한성은 눈물을 닦으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홍대 앞 전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을 만날 수 있다. 월간지 기자로 일하던 십여년 전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탈리아로 날아가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요리사가 된 그는 수입 식재료 대신 한국 산천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이탈리아 파스타를 완성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고등어 파스타와 멍게 파스타다. 새벽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시작된 그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마음에서 시작되고 사람 손에서 시작되는 솔 푸드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여수항을 출발해 바다를 쾌속정으로 달려도 두 시간은 훌쩍 지나야 도착하는 섬, 거문도. 그곳에는 섬에서 태어나 그곳 사람들의 입담으로 따뜻한 사람살이의 정한을 담아온 한창훈 작가가 있다. 말하자면 그는 귀향작가다. 유년의 추억이 깊이 스민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고향의 맛을 잊을 수 없어서다. 삶에 지쳐 결핍을 느낄 때마다 떠오른 것이 바로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항각구국(엉겅퀴 갈치국)은 작가에게 치유의 음식인데, 오직 거문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작가가 인생이 허기질 때마다 찾는 솔 푸드인 항각구국의 맛을 함께 느껴보자. 이 밖에도 일본 태생 귀화 한국인인 요리강사 나카가와 히데코씨가 솔 푸드로 꼽은 스페인 음식 파에야와 재즈 가수 웅산의 몸과 마음을 달래준 사찰 음식,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추억을 되살리는 빈대떡을 소개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北보다 종북세력 더 문제”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늘 그래 왔던 북한의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 세력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라디오연설에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듯이 선진국 대열에 선 대한민국에서 국내 종북주의자들도 변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이 ‘종북 세력’이란 단어를 쓰면서 북한 추종 세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종북 세력 논란을 빚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 등의 19대 국회 등원을 계기로 남한 내 종북 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2주 전 미얀마를 방문해 1983년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분들이 누구 손에 목숨을 잃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 울분을 참을 수가 없다. 가슴이 메어 왔다.”고 회상한 뒤 “아웅산 테러 사건은 20세기 역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코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미얀마 정부는 물론 유엔도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공식 발표했지만 북한은 오히려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고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똑같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면서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 세력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북한”이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00만 북한 주민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진정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수치 “교육 중요성 한국과 공감… 자유·번영 함께 가야”

    수치 “교육 중요성 한국과 공감… 자유·번영 함께 가야”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 있는 세도나 호텔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다. 지난 2010년 11월 21년간의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수치 여사는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고 지난달 1일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전체 45석 가운데 43석을 휩쓸며 압승을 거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등 최근 미얀마를 방문했던 인사들은 모두 수치 여사의 양곤 자택에서 면담을 가졌지만, 이 대통령은 시내 호텔에서 수치 여사와 면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고 수치 여사는 이미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상태로 야당 지도자로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만큼 예우상 수치 여사가 이 대통령이 머무는 호텔을 찾아와서 면담을 가진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수치 여사의 이날 회동은 공동기자회견을 포함해 55분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수치 여사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미얀마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얀마에서도 경제 성장의 중요한 과제도 있지만 민주화가 함께 이뤄지는, 그런 변화를 맞을 수 있도록 한국 국민들도 깊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오늘 수치 여사가 교육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 주셨다. 교육을 통해 한국은 성장했다. 미얀마 교육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살리는 만큼 민주주의 또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얘기했고 그것에 대해 수치 여사도 전적으로 공감했다.”고 소개했다. 수치 여사는 “한국과 버마(미얀마의 옛이름)는 서로 유사한 공통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정의와 자유, 번영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아울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양국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정의와 자유, 그리고 번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고 둘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대통령과 버마의 실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이 대통령이) 버마의 실상을 이해하신 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수치 여사와의 면담이 끝난 뒤 아웅산 국립묘지를 전격 방문했다. 미얀마의 건국 영웅이며 수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유해가 안치된 이곳은 1983년 10월 9일 당시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에게 북한 공작원이 폭탄 테러를 가했던 아픔이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17명이 사망했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대통령의 참배에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 동행했다. 이 대통령은 묘역에 도착해 ‘17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쓴 조화를 앞에 두고 묵념을 한 뒤 조화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 대통령은 “이곳이 17명의 고위관료들이 희생된, 역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곳이기 때문에 방문한 것”이라면서 “(희생자) 가족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폭탄 테러의 악몽이 있던 양곤을 29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만큼 경호에 극도의 신경을 썼다. 청와대 경호처 소속 암살대응팀(CAT) 요원들은 전용기에 탑승, 이 대통령이 양곤공항에 도착해 트랩을 내리는 순간부터 수치 여사와의 면담, 아웅산 국립묘지 방문에 이어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밀착경호’를 펼쳤다.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 암살대응팀 요원들이 동행한 것은 처음이다. 양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대통령 “경제 위해 민주주의 희생 안돼”

    이대통령 “경제 위해 민주주의 희생 안돼”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만나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수치 여사의 희생과 노고를 평가하고 향후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양곤의 세도나 호텔에서 이뤄진 수치 여사와의 회동에서 “경제를 살린다고 민주주의가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경제를 살리는 만큼 민주주의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수치 여사가 긴 시간을 오로지 미얀마 국민을 위해 민주화와 인권신장 등 여러 중요한 문제를 일관되게 지켜와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온 시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존경을 보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어기고 있는 북한과 국제 규범에 위반되는 거래를 하지 않도록 요구했다.”면서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이 잘 이행되면서 한국과 미얀마 협력이 보다 잘될 것이라고 (테인 세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수치 여사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변화와 번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이 존엄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참민주주의는 국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며 국민에 의해 이뤄지는 민주주의”라면서 “버마(미얀마의 옛이름)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데 세계가 도와 주고 있다.”고 밝혔다. 수치 여사와의 면담을 마친 이 대통령은 1983년 10월 9일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가 발생했던 현장인 아웅산 국립묘지를 전격 방문,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미얀마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첫 국빈으로 방문한 것인 만큼 아웅산 국립묘지를 찾아오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면서 “17명의 고위관료들이 희생된, 있을 수 없는 이런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3박 4일간의 중국·미얀마 순방 일정을 마친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양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아웅산 악몽’… 얽히고설킨 남·북 그리고 미얀마

    ‘아웅산 악몽’… 얽히고설킨 남·북 그리고 미얀마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29년 만에 방문한 미얀마는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남북한과 관계를 설정하는 데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3년 10월 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서남아·대양주 6개국 순방 첫 방문국인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를 방문했을 때 북한군에 의해 감행된 것으로 밝혀진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1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을 입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미얀마는 수교국이었던 북한과 단교하고 남한과도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당시 미국 등 상당수 국가들이 미얀마에 대해 자산 동결, 군부 인사 방문 불허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나라도 이에 동조해 정치·외교 교류뿐 아니라 경제 협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5년 당시 이원경 외무부 장관의 미얀마 방문, 1987년 우 산 유 미얀마 대통령의 방한이 있었지만 한·미얀마 관계는 사실상 끊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2005년에 미얀마 정부가 아웅산 수치 여사를 다시 가택 연금하면서 국제사회의 미얀마 제재가 강화됐고 우리나라도 유상 원조를 중단하는 등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그러나 2010년 들어 미얀마가 변화 조짐을 보이면서 양국 경제 부처 장·차관 등의 인사 교류가 이뤄졌고 지난해 3월 미얀마 민선정부가 출범하면서 같은 해 11월에 유상 원조가 재개되는 등 양국 관계가 호전됐다. 최근 수치 여사의 정계 진출 등 미얀마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김성환 외교장관이 지난 1~2일 한국 외교장관으로서는 27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한 데 이어 이 대통령의 방문까지 성사돼 정치·외교 관계 회복의 신호탄이 됐다고 평가된다.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미얀마와 북한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다. 1983년 단교 후 24년 만인 2007년 4월에 외교 관계가 복원되면서 양국 간 협력이 모색됐지만 단교 기간에도 양측이 무기를 거래한다는 의혹을 국제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받았다. 특히 2009년에는 금수 무기를 실은 북한 선박이 미얀마로 가다 적발되면서 ‘북·미얀마 핵·무기 커넥션’이 불거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성환 장관의 최근 미얀마 방문에서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이 북한과 핵 개발 및 군사 협력 관련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며 북·미얀마 커넥션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고 전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9년 만에 미얀마 방문… MB 15일 수치 만난다

    29년 만에 미얀마 방문… MB 15일 수치 만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미얀마를 국빈 자격으로 방문,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은 1983년 10월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약 29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15일 양곤으로 이동, 시내의 한 호텔에서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만난다. 이 대통령은 면담에서 미얀마 민주화와 인권 증진을 위한 수치 여사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편한 때에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통상 분야 협력 강화, 개발 경험 공유, 에너지·자원 개발 협력 및 문화·인적 교류 증진 등에 대해 협의했다. 회담에서는 미얀마와 북한 간 군사 협력 차단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미얀마는 아웅산 참사 직후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가 2007년 4월 관계를 복원했다. 이번 방문은 테인 세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이 대통령을 초청해 이뤄졌다. 미얀마는 최근 민주화와 개혁·개방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미국·유럽연합(EU)은 지난달 각각 경제 제재 완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아웅산 폭탄 테러 이후 소원했던 한·미얀마 관계가 복원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자원 부국’인 미얀마와의 경제 협력이 늘어나고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폐쇄적인 북한에 개혁과 개방을 우회적으로 촉구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미얀마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미래를 논의할 수 있고 협력 관계를 추진할 수 있는 역외 파트너도 찾고 있어 우리나라에는 한·미얀마 관계 발전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 방지 등 북한 문제와 관련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후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2주일 이상 지속되는 북한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문제와 관련, 한·중·일 간 민항기 왕래 등 안전 문제에 유의하고 관련 정보를 교환하면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한편 오전에 발표된 제5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 선언문에는 50개의 합의 조항이 포함됐으나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항목은 제외됐다.네피도(미얀마)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北, 잇단 대남공격 공언… 靑, 출발 직전까지 철통보안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일정과 관련, 막판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그만큼 경호와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쏟은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미얀마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국가인 데다 최근 북한이 이 대통령에 대한 비난 발언의 수위를 높이면서 노골적으로 대남 공격을 공언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미얀마는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의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베이징 한·중·일 정상회의에 이은 미얀마 방문이 이미 지난달 초 결정됐지만 미얀마로 출발하는 당일인 14일 오후(한국시간)에야 이 사실을 외부에 공개했다. 최근 미국, 인도, 캐나다 등 해외 각국 정상의 방문이 많아진 미얀마는 각국 정상들의 방문 일정을 사전에 대외에 알리고 싶어 했고 통상 방문 3, 4일 전에 일정을 공개하는 것을 양보해 이틀이나 하루 전에 발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경호상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고 결국 방문 당일인 14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간), 한국시간으로는 14일 오후 1시에 발표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아웅산 테러의 기억이 생생한 만큼 우리나라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은 대단히 특수성이 있어 일정 공개에도 각별하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네피도(미얀마)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北 개혁·개방 압박… ‘한국 6대 전략 광물’ 개발 협력 탄력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미얀마 방문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적으로는 미얀마와의 자원 개발 협력 강화, 외교 안보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개방 촉진이다. 미얀마는 62년간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있다가 1948년에 독립했지만 1962년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군사 독재 체제를 유지해 왔다. 1988년 8월 8일엔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대규모 유혈 사태도 겪었다. 그러다 지난해 테인 세인 대통령이 민간 정부를 출범시킨 뒤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북한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 조치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미얀마를 방문한 데 이어 캐나다와 유럽연합(EU), 호주도 제재 완화를 약속했고 일본도 대규모 부채 탕감 조치에 나섰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유화적인 조치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2010년 11월 21년간의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것을 기점으로 민주화와 개혁·개방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과 맞물려 있다. 미얀마는 지난달 1일에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지만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고 최근에는 정치범을 대규모로 석방하고 있다. 북한과 달리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한 중국과 베트남의 모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속에서도 여전히 폐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에는 ‘닮은 꼴’이었던 미얀마의 급격한 변신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결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통일정책 최고위과정 특강에서 민주화 바람이 아프리카를 넘어서서 미얀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테인 세인 대통령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2009년 6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제주에서 할 때 총리 자격으로 방한한 테인 세인 대통령에게 ‘민주화를 하지 않고는 미얀마는 경제 발전을 하기 어렵다. 총리께서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국도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다’고 했다.”고 소개하고 “당시 조금 불쾌한 듯 서먹서먹하게 갔는데 이후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났을 때 테인 세인 대통령이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미얀마와의 경제 협력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는 석유, 천연가스, 납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한국이 6대 전략 광물로 분류한 유연탄, 우라늄, 구리, 철, 니켈, 아연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인구가 6240만명으로 노동력도 풍부하고 문맹률이 3~4%로 낮아 기술력이나 국민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얀마에는 현재 170여개의 한국 기업이 활동 중이며 지난해 기준 양국 간 교역 규모도 9억 7000만 달러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 안정을 찾고 있는 미얀마에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경험까지 합쳐진다면 경제 발전에 급속히 탄력이 붙고 우리나라로서도 ‘자원 외교’를 통한 또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되는 ‘윈윈’ 효과가 기대된다. 네피도(미얀마)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기고] 미얀마의 개혁과 북한의 선택/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기고] 미얀마의 개혁과 북한의 선택/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독재국가로 고립되었던 미얀마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가 미얀마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미얀마는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수십년 동안 독재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결국 개혁의 길을 선택했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킨 테인 세인 대통령은 영웅이 되었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얀마에 그동안 갈망하던 ‘새로운 정치와 역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난 4월 1일 보궐선거가 민주적으로 진행된 이후 압승을 거둔 야당 ‘국민민주주의연맹’(NLD)의 지도자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역할에 여러 나라의 관심이 뜨겁다. 이미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미얀마의 개혁 조치들을 높게 평가했으며 각료들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미국도 미얀마에 대한 제재 완화에 동참했고, 일본이 수천억엔 규모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했으며, 중국·인도 등도 적극적으로 경제지원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혈맹국인 중국은 1970년대 말 ‘시장중심적’ 개혁·개방을 통해 30년이 넘은 현재 주요 2개국(G2)의 반열로 들어섰다. 또 1970년대 중반 사회주의 통일 이후 낙후된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빈곤에서 신음하던 베트남 역시 1980년대 후반 ‘국가중심적’ 개혁·개방을 통해 성공적으로 경제발전을 달성하고 있다. 이렇게 주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은 물론 미얀마도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발전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3대 세습체제의 절대권력 공고화에 주력하면서 북한주민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고통을 받고 있다. 또 소수 핵심 특권계층의 충성심 속에 대규모 정치범수용소가 현존하는 최악의 인권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몰락해 가는 사회주의 체제 고수를 위해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김정은은 불안정한 정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는 태양절 행사를 통한 당·정·군 장악에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시장중심적이나 국가중심적 개혁·개방 정책 없이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패 이후 가해진 유엔 안보리 강경 제재의 국제사회 압박과 달리 유화적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주요 핵심은 북한의 변화와 그런 변화를 우리 정부는 수용할 수 있고 지지 및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얀마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 또는 개방을 선택한다면, 국제사회도 북한에 가해진 제재를 완화하고 각종 지원을 할 것이다. 북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은 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자처하지 말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군비 경쟁과 추가도발을 하루속히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적반하장의 대남 도발 협박을 중단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선 북한 권력층이 정권을 유지하고 경제 파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중국, 베트남과 최근 미얀마처럼 개혁·개방을 단행하고 국제사회와 대화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 24년만에 여권 받아든 수치… 첫 방문국은 노르웨이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24년 만에 외국 방문길이 열렸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니얀 윈 대변인은 “수치 여사가 지난주 정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아 가지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수치 여사는 1988년 미얀마 입국 이후 첫 해외 나들이 국가로 노르웨이를 선정했다. 수치 여사는 다음 달 노르웨이에서 노벨평화상을 21년이나 늦게 수상한다. 수치 여사는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도 방문할 계획이다. 영국은 그녀가 미얀마로 귀국하기 전에 남편, 아들 2명과 수년간 살았던 나라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한국 외교장관 27년만에 미얀마 방문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새달 초 미얀마를 방문, 양국 간 외교장관회담을 갖는다. 한국 외교장관이 미얀마에 가는 것은 1985년 이후 27년 만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는 미얀마와의 관계 증진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김 장관이 30일 태국 방문에 이어 5월 1~2일 미얀마를 방문,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을 예방해 양국 간 실질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이 일어난 뒤 두 해 뒤 당시 이원경 외무부장관을 끝으로 지금껏 한국 외교장관의 미얀마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장관은 우나 마웅 륀 미얀마 외교장관과 만나 최근 한반도 및 미얀마 정세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개발협력, 경제협력, 인적교류 등 분야별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수치, 개원국회 등원 거부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으나 23일 개원한 국회에 등원하지 않았다. 수치 여사는 군부 주도로 제정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선서를 할 수 없다며 등원을 거부했고, 테인 세인 대통령은 선서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고 평행선을 달려 결국 수치 여사의 등원이 불발됐다고 A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제도권 정치에 진출한 수치 여사와 정부의 첫 충돌이다. 미얀마 현지에서는 의원선서 문제가 다음 달 초쯤 해결될 것으로 예측했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 당선자들은 이날 열린 국회에 예고했던 대로 등원하지 않았다. NLD는 의원 선서 내용을 ‘헌법 수호’에서 ‘헌법 존중’으로 변경해 줄 것을 세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세인 대통령은 “의원직을 수행할지는 수치 여사에게 달려있는 문제”라면서 “의원 선서 내용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치 여사가 정부로 들어오는 길도 열려 있다”며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수치 여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수치 여사는 지난 1일 국회의원의 내각진출로 공석이 된 45개 선거구의 보궐선거에 NLD 후보들과 함께 출마해 43곳에서 승리를 일궈냈다. 선거 당시 의원 25%를 군인에게 할당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08년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미얀마는 지난해 3월 수십년 간의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민간정부를 출범시켰고, 세인 대통령은 정치범 석방과 소수민족 반군과의 평화협상 등 민주개혁 조치들을 잇달아 취하고 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수치 여사 24년 만에 해외 나들이?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6월 24년 만에 해외방문을 할 예정이라고 외신들이 18일 보도했다. 수치 여사가 지도자로 있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니얀 윈 대변인은 “수치 여사가 6월쯤 노르웨이와 영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면서 “방문이 성사되면 수치 여사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이를 위해 관계 당국에 여권 발급을 신청했으나 아직 발급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치 여사가 6월 출국하면 1988년 미얀마에 입국,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이래 처음으로 해외를 방문하게 된다. 수치 여사는 1988년 모친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영국에서 귀국한 뒤 모국의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1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가택연금 처지여서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영국인 남편이 1999년 암으로 사망할 무렵 정부는 출국을 허용했지만, 수치 여사는 나가면 돌아올 수 없다며 출국을 거부했다. 이에 앞서 수치 여사는 지난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수십년간의 재야 생활을 마무리하고 제도권 정치에 처음 진출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지금&여기] 힐러리, 수치, 박근혜/이순녀 국제부 차장

    [지금&여기] 힐러리, 수치, 박근혜/이순녀 국제부 차장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미얀마의 민주화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의 첫 만남은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한 역사적 이벤트였다. 지난해 12월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에서 만난 두 여걸은 누구보다 만남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첫날은 파안대소하며 양손을 맞잡는 것으로 반가움을 나타냈고, 이튿날은 진한 포옹으로 동지애를 드러냈다. 천 마디 말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클린턴 장관이 미 국무장관으로선 56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4개월 뒤에 있을 총선 보궐선거에서 수치 여사와 그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였다.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서방국들의 지원에 힘입어 수치 여사는 지난 1일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의원직에 선출됐고, NLD는 압승을 거뒀다. 두 살 차이인 클린턴 장관(65)과 수치 여사(67)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서방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리더인 이들은 각각 대통령 남편(빌 클린턴)과 독립 영웅 아버지(아웅산 장군)의 후광에서 출발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배경의 여성 정치인이 있다. 정치 성향의 차이나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통령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계에 입문했지만 18대 총선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안팎의 예상을 깨고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대권 가도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클린턴 장관은 최근 수치 여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조언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수치 여사에게 “민주주의는 쉽지 않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며 일을 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이 모두 민주주의이며, 타협은 더러운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지만, 대화와 타협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coral@seoul.co.kr
  • 英-미얀마 64년 만에 ‘화해의 악수’

    미얀마가 1948년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영국 현직 총리가 미얀마를 방문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3일 미얀마 행정수도인 네이피도의 대통령궁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만나 민주화와 미얀마에 대한 제재 완화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서방 지도자가 미얀마를 공식 방문한 것도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처음이다. 캐머런 총리는 미얀마 도착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는 수십년 동안 독재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개혁을 시작했다.”며 미얀마 정부의 개혁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킨 테인 세인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의 방문을 ‘역사적인 일’이라고 환영했다. 캐머런 총리는 테인 세인 대통령과의 회동이 끝난 뒤 옛 수도인 양곤으로 이동해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만났다. 캐머런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수치 여사는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캐머런 총리의 발언을 환영하며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오는 23일 미얀마에 대한 제재 해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EU는 올해 초 미얀마의 개혁 조치들을 높게 평가하면서 미얀마 각료 등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주요 8개국(G8) 외교 장관들은 이날 워싱턴에서 회담을 가진 뒤 공동성명을 통해 “미얀마가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고려할 것”이라며 “미얀마는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등 개혁 조치들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민주주의 쉽지 않다… 타협이 시작”

    “민주주의는 쉽지 않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타협해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국회 등원을 앞둔 미얀마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최근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조언했다고 소개했다. 수치 여사의 생애를 다룬 뤼크 베송 감독의 영화 ‘더 레이디’ 미국 시사회에서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영화협회 본부에서 진행된 행사에 참석, 연설을 통해 “수치 여사는 이제 아이콘에서 정치인으로 옮겨가고 있고, 어느 정도 같은 여정을 겪은 나로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의회에 들어가면 타협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타협은 더러운 단어가 아니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수치 여사에게 “의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일부는 당신과 생각이 크게 다를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약속한 민주적 과정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해 12월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56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했다. 그는 “당시 미얀마 방문길에 이 영화를 봤다. 나로선 상당히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英 캐머런 총리, 미얀마 경제 선점 나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아시아 순방길에 나섰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이번 캐머런 총리의 아시아 순방을 ‘통상 순방’이라며 경제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10일 첫 방문국인 일본에 도착한 캐머런 총리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헬리콥터 등 무기와 관련 장비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다. 13일에는 서방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 미얀마를 방문해 민주화 지원에 나서는 한편 경제적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통상 외교를 펼친다. 캐머런 총리와 노다 총리는 공동성명에서 “적어도 하나의 무기 개발 계획을 조기에 개시한다.”고 명시했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참여했으나 미국 외의 국가와 무기 공동개발에 합의한 것은 처음이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위성 발사와 관련,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이를 금지한 2009년의 유엔 안보리 결의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북한에 자제를 요구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무기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하면서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이 가능해짐에 따라 영국과 처음으로 무기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도 일본의 차기 주력전투기 선정에서 미국에 패한 이후 방위산업 분야에서 일본과의 협력에 전력을 쏟고 있다. 일본이 영국과 무기 공동개발에 나선 것은 기술 이전에 엄격한 제약이 있는 미국에 비해 영국은 라이선스 생산과 기술 이전의 제약이 적기 때문이다. 영국은 수출 관리가 엄격해 공동 개발한 무기가 분쟁 당사국으로 이전될 위험성이 낮다는 점도 고려됐다. 캐머런 총리는 13일에는 미얀마를 방문해 테인 세인 대통령과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영국 총리가 미얀마를 공식 방문하는 것은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처음이다. 캐머런 총리는 시장 개방에 나선 미얀마의 광물 등 풍부한 자원 확보 등 경제적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세일즈 외교에 진력할 방침이다. 캐머런 총리의 이번 방문은 특히 지난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둔 직후 이뤄진 것이어서 영국의 미얀마 민주화 지원을 약속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 후 22년 만에 데릭 미첼 국무부 미얀마 특사를 미얀마 대사로 지명한 것과 같이 서방 세계의 미얀마 민주화 지원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는 당초 일본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4개국만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막판에 일정을 바꿔 미얀마도 포함시켰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사설] 민주주의 좌절과 희망 보여준 아웅산 수치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그제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발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 출범 이후 처음 실시된 이번 선거는 미얀마 민주화 개혁의 시험대로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수치 여사의 정계 진출은 민주주의의 커다란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수치 여사 스스로도 “이번 선거는 하나의 전환점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초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미얀마 권위주의 체제 청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역사적 평가도 나온다. 미얀마의 이런 변화는 가택연금과 선거 부정 등으로 총선 등을 보이콧했던 수치 여사 등 미얀마 내부의 민주화 투쟁과 외부의 인권 개선 노력 등이 어우러져 가능하게 됐다.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가 수치 여사를 직접 만난 뒤 정치범 석방, 소수민족 반군과의 평화협상 등 민주화 조치를 내놨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런 조치를 환영하며 미얀마를 방문해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고 올해부터 외교관계도 대사급으로 격상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보여 왔다. 그만큼 국제사회가 미얀마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수치 여사의 민주화 역정에서 보듯 민주주의라는 게 쉽게 오는 건 아니다. 또 민주화가 됐다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는 그동안 보여줘 왔다. 1986년 필리핀, 1987년 한국의 민주화운동, 1988년 미얀마 양곤의 봄,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등은 민주화의 희망과 절망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그런 점에서 수치와 민주화 세력이 나아갈 길이 만만치 않다. 테인 세인 대통령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군 출신이며, 친 군부 성향의 통합발전당(USDP)이 의석 8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가 돼 있는 미얀마 정부와 현실정치에 진출한 수치 여사가 힘을 합치면 민주화와 개혁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아랍권, 쿠바에 이은 미얀마의 민주화 바람이 아시아의 또 다른 동토(凍土) 북한을 민주화의 길로 이끄는 전령이 됐으면 한다.
  • ‘24년 재야의 투사’ 수치, 정치력 시험대에 서다

    ‘24년 재야의 투사’ 수치, 정치력 시험대에 서다

    의회로 가는 재야의 투사가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66)가 1일(현지시간) 보궐선거에서 압승하며 원내 진출을 눈앞에 뒀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지 24년 만의 일이다.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당선을 확정 지은 그지만 당장 눈앞에 난제가 가득 쌓여 있다. 제한된 의석을 가진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갈 수치의 앞날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NLD는 2일 당의 비공식 집계를 토대로 “1일 보선에서 (NLD 후보가 출마한) 44석 중 최소 43석을 차지했으며 하나 남은 북부 샨 주의 개표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군부 거점인 행정수도 네이피도의 4개 선거구에서도 NLD 후보들이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얀마 관영 TV도 “잠정 개표 결과 양곤의 카우무 지역구에 출마한 수치를 비롯해 NLD가 최소 40곳에서 이겼다.”고 보도했다. 수치는 이날 양곤의 NLD 당사 앞에서 가진 자축 연설에서 “우리는 이번 승리가 새 시대의 시작이길 희망한다.”면서 “선거에 참여한 모든 당이 우리와 협력해 진짜 민주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치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선거 결과를 “국민의 승리”로 표현하면서도 “다른 당과 시민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슬프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수치를 만났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투표에 참가한 (미얀마) 국민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말했다. 수치가 의회 진출에 성공하자 미얀마 전역의 지지자들은 크게 들떴다. 50년간의 군부 독재와 서방의 경제제재 탓에 막혔던 숨통을 ‘철녀’가 경제 현대화 등을 통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미얀마는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444달러(약 50만원·2009년 기준)에 불과한 최빈국이다. 특히 수치의 지역구인 카우무는 초가집에 사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며 디젤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끌어 쓰고 땅을 파 물을 긷는 대표적 저소득 지역이다. 농부인 새에 세인 마인트(47)는 “일자리를 달라고 수치 여사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일각에서는 수치가 국민적 염원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와의 투쟁을 주로 했던 원외에서는 ‘강철 의지’로 민심을 사로잡았지만 정부의 파트너로 국무를 다룰 행정적 노하우는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게다가 NLD가 보선에서 압승한다 해도 전체 의석의 80%가량은 여전히 집권당 몫이다. 야당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수치가 정부와 협력해 경제 회생을 이끌기 위해서는 서방이 취해 온 대(對)미얀마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 앞서 유럽연합(EU) 측은 선거가 별 탈 없이 진행된다면 제재가 완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미국의 미얀마 제재법을 주도한 조 크롤리 미 연방 하원의원은 “(미얀마에) 여전히 수많은 정치범이 남아 있고 군부의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이르다.”고 지적했다. 만약 수치의 NLD가 원내에서 원만한 교섭력을 발휘, 난제를 해결한다면 자력으로 정권 창출도 기대할 만하다. 다음 총선은 3년 뒤인 2015년 실시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