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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입양아 학대 살해 양부, 1심서 22년형

    화성 입양아 학대 살해 양부, 1심서 22년형

    법원이 두 살짜리 입양아를 때려 숨지게 한 ‘화성 입양아 학대 살해’ 사건의 피고인인 양부에게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아동학대살해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지난 5일 인천 ‘3살 딸 방치 살해’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올해 3월 신설된 아동학대살해죄는 고의로 아동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하한이 징역 5년 이상인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이 무겁다.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 조휴옥)는 25일 아동학대살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부 A(36)씨에게 이 같은 징역형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 및 10년간의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또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양모 B(35)씨에 대해서는 징역 6년을 선고하고, 80시간 이수 명령 및 5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피해 아동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흥분해 얼굴과 머리 부위를 여러 차례 강하게 내리쳐 뇌출혈로 쓰러지게 했고, 의식을 잃은 아동을 장시간 방치해 사망하게 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유죄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린 아동학대살해죄에 관해서는 “살해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 아동이 생후 33개월에 불과한 점, 아동의 머리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경우 뇌 손상으로 이어져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B씨에 대해서는 “피해 아동이 심한 학대를 당하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 것 외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특히 사건 당일에는 맞고 쓰러진 피해 아동에 대한 학대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뒤늦게서야 병원에 가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은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된 것은 다행이지만, 형량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탄식했다.
  • 화성 두살 입양아 숨지게 한 양부, 아동학대살해죄 징역 22년

    화성 두살 입양아 숨지게 한 양부, 아동학대살해죄 징역 22년

    두 살짜리 입양아를 때려 숨지게 한 ‘화성 입양아 학대 살해’ 사건의 피고인인 양아버지에게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징역 22년을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15부(조휴옥 부장판사)는 25일 아동학대살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아버지 A(36)씨에게 징역 22년 형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 및 10년간의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또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양어머니 B(35)씨에 대해서는 징역 6년을 선고하고, 80시간 이수 명령과 5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법원이 올 3월 신설된 아동학대살해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지난 5일 인천 ‘3살 딸 방치 살해’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재판부는양아버지 A씨에게 “피고인은 피해 아동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흥분해 얼굴과 머리 부위를 여러 차례 강하게 내리쳐 뇌출혈로 쓰러지게 했고,의식을 잃은 아동을 장시간 방치해 사망하게 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유죄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린 아동학대살해죄에 관해서는 “살해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 아동이 생후 33개월에 불과한 점, 아동의 머리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경우 뇌 손상으로 이어져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인정된다”며 “그러나 피고인은 당시 피해 아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및 위험을 인식하고도 범행했고, 이후에는 별다른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양어머니 B씨에 대해서는 “피해 아동이 심한 학대를 당하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 것 외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특히 사건 당일에는 심하게 맞고 쓰러진 피해 아동에 대한 학대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뒤늦게서야 병원에 간 점에 미뤄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들 부부가 다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처음부터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아 온 B씨를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임해온 A씨는 그대로 수감됐다. 재판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던 두 피고인은 주요 혐의에 관해 유죄 선고가 나자 눈물을 흘렸다. 반면 방청석을 가득 메운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은 재판부가 주문을 읽는 순간 탄식을 내뱉었다. 한 방청객은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된 것은 다행이라고 보지만 피고인의 형량은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법원은 이날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는 점을 고려해 보다 많은 방청객이 재판을 볼 수 있도록 중계법정을 설치했다. 양아버지 A씨는 지난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경기 화성시 주거지에서 2018년 8월생으로 당시 생후 33개월이던 입양아 C양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는 이유로 나무로 된 등긁이와 구둣주걱,손 등으로 여러 차례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 양어머니 B씨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8일 폭행으로 인해 반혼수 상태에 빠진 C양을 즉각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7시간가량 방치한 혐의도 있다. 뒤늦게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던 C양은 지난 7월 11일 끝내 숨졌다. 검찰은 C양 사망 이후 사인과 학대의 연관성을 검토해 당초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 중상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아동학대 살해죄를 적용하고,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 만으로 기소됐던 B씨에게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더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어 지난 5일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무기징역, B씨에게 징역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 지리산 청학골 이장부부, 여섯째 아기 낳았다…“저출산 극복 희망됐으면”

    지리산 청학골 이장부부, 여섯째 아기 낳았다…“저출산 극복 희망됐으면”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요즈음, 지리산 청학골에서 여섯 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주인공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시목마을 이장댁 박재훈(41)·김연림(41) 씨의 여섯째 막내아들(11월 19일생)이다. 이들 부부는 최근 진주의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여섯번째 자녀를 품에 안았다. 박씨 부부에게는 ‘하동군 인구증대시책 지원 조례’에 따라 만 5세까지 출산장려금 3천만원이 분할 지급된다. 또한 30만원 상당의 출산 축하 용품 세트와 다둥이 안전 보험, 취학 전까지 영유아 양육수당 월 10만원 등 각종 출산장려 혜택도 부여된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우리 하동군의 큰 경사”라며 여섯째 자녀 출산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하동군은 우선 출산축하금 100만원과 30만원 상당의 출산 축하 용품세트와 축하난을 이들 부부에게 전했다. 하동군에서 여섯째 다둥이가 출생한 것은 2017년 넷째 아이 이상 출산장려금 시책이 시행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시목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가정을 꾸린 박씨 부부는 동갑내기로, 고향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이들은 지난 2019년 하동군 다자녀 가족 행복수기 공모에서 ‘엄마는 신나는 육아전쟁 중’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다. 박씨 부부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가장 큰 힘이자 삶의 원동력”이라면서 “우리 집의 사례가 하동군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로 퍼져나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작은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둘 쏴죽여도 무죄 평결 위스콘신주에서 차량이 축제 행렬 덮쳐 5명 사망

    둘 쏴죽여도 무죄 평결 위스콘신주에서 차량이 축제 행렬 덮쳐 5명 사망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21일(현지시간) 한 자동차가 성탄 축제 행렬을 덮쳐 5명이 숨지고 어린이 등 20명 이상이 다쳤다고 영국 BBC가 경찰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이날 오후 5시쯤 붉은색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이 밀워키 서쪽 워커샤 마을 사람들이 성탄 축제 행렬에 참가해 행진하는 것을 덮치는 장면이 생생하게 잡혔다. 사람들이 차량에 받혀 길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댄 톰프슨 경찰서장은 취재진에게 용의자 차량을 확보했다면서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했지만 더 이상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못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이제 현장은 안전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죽은 사람이 있다고 확인하면서도 가족에게 통보하기 전에는 더 이상 상세한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숀 릴리 시장은 “오늘밤 우리 시는 트라우마가 덮친 상황이 됐다”고 취재진에게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주민 안젤리토 테노리오는 밀워키 저널 센티널에 “행진을 마칠 때쯤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는 SUV를 목격했는데 (액설러레이터의?) 페달에 금속을 덧댄 듯 퍼레이드 루트를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커다란 굉음이 들렸을 때 차량에 받힌 이들이 내는 울음과 비명 소리에 귀가 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리노이주의 18세 청년 카일 리튼하우스가 지난해 8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참가한 백인 둘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하고 한 명을 다치게 만들고도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받아낸 것이 이날 난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리튼하우스의 총격에 도화선이 된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를 반신불수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난 곳도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였다. 경찰관들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가게에 들어가 몸을 숨기라고 외쳤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한 여성은 Fox6 방송에 문제의 차량이 9~15세 소녀들이 춤추던 곳으로 돌진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한 관리는 “워커샤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주정부와 현지 관리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 싹 보인다! 김연경 이을 ‘황금 막내’ 정지윤

    싹 보인다! 김연경 이을 ‘황금 막내’ 정지윤

    출전 시간은 짧지만 코트에 나서기만 하면 불같은 화력을 뽐낸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막내 정지윤(20·현대건설)의 얘기다. 올해 한국 여자배구의 과제 중 하나는 황금세대를 잇는 유망주의 성장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김연경(33)과 양효진(32), 김수지(34)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유망주 가운데 대표팀 막내 정지윤의 성장세는 팬들에게 큰 관심이다. 정지윤은 이번 시즌 선발로 나서지는 않지만, 교체로 투입되면 강한 공격력으로 현대건설 9연승 질주에 힘을 보탰다. 정지윤은 지난 17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돼 막강한 전위 공격으로 7득점(공격 성공률 58.33%)을 올렸다. 현대건설의 공격이 막힐 때마다 활로를 뚫은 것이다. 팀에서 센터를 맡았던 정지윤은 이번 시즌 레프트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김연경도 다음 세대를 이끌 주역으로 정지윤을 꼽았고, 강성형 감독에게 레프트로 키워야 한다고 부탁까지 했다. 공격력은 이미 검증됐다. 하지만 완성형 레프트가 되기 위해선 수비력 보강이 절실하다. 리시브가 불안한 탓에 상대 팀들은 목적타 서브로 정지윤을 수시로 괴롭힌다. 정지윤은 리시브 부담감에 경기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빼어난 공격력을 지닌 정지윤을 주전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강 감독은 ‘레프트 정지윤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강 감독은 “리시브에서 흔들림이 있지만 경험을 하면 할수록 실수가 없어지는 모습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 국대 막내 정지윤의 레프트 성장기…강성형 감독 “갈수록 실수 없어”

    국대 막내 정지윤의 레프트 성장기…강성형 감독 “갈수록 실수 없어”

    출전 시간은 짧지만 코트에 나서기만 하면 불같은 화력을 뽐낸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막내 정지윤(20·현대건설)의 얘기다. 올해 한국 여자배구의 과제 중 하나는 황금세대를 잇는 유망주의 성장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김연경(33)과 양효진(32), 김수지(34)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유망주 가운데 대표팀 막내 정지윤의 성장세는 팬들에게 큰 관심이다. 정지윤은 이번 시즌 선발로 나서지는 않지만, 교체로 투입되면 강한 공격력으로 현대건설 9연승 질주에 힘을 보탰다. 정지윤은 지난 17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돼 막강한 전위 공격으로 7득점(공격 성공률 58.33%)을 올렸다. 현대건설의 공격이 막힐 때마다 활로를 뚫은 것이다. 팀에서 센터를 맡았던 정지윤은 이번 시즌 레프트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김연경도 다음 세대를 이끌 주역으로 정지윤을 꼽았고, 강성형 감독에게 레프트로 키워야 한다고 부탁까지 했다. 공격력은 이미 검증됐다. 하지만 완성형 레프트가 되기 위해선 수비력 보강이 절실하다. 리시브가 불안한 탓에 상대 팀들은 목적타 서브로 정지윤을 수시로 괴롭힌다. 정지윤은 리시브 부담감에 경기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정지윤은 컵 대회 이후 꾸준히 리시브를 연습하며 레프트 포지션 완성에 주력하고 있다. 빼어난 공격력을 지닌 정지윤을 주전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강 감독은 ‘레프트 정지윤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강 감독은 “공격력만큼은 워낙 실력이 있는 선수”라면서 “리시브에서 흔들림이 있지만 경험을 하면 할수록 실수가 없어지는 모습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 “눈 마주쳤지만 그냥 나와”…불난 집서 12개월 아들 두고 대피한 母 ‘무죄’

    “눈 마주쳤지만 그냥 나와”…불난 집서 12개월 아들 두고 대피한 母 ‘무죄’

    불이 난 집에서 생후 12개월 아이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은 20대 여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2019년 4월 A씨의 자택 안방 멀티탭 전선의 과부하로 화재가 발생했다. B군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A씨는 안방에서 울고 있던 B군과 눈이 마주쳤지만 구조하지 않고 연기를 빼내기 위해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A씨는 이후 다시 방으로 갔지만 연기와 열기 때문에 B군을 구하지 못한 채 집을 빠져나왔다. 또 1층으로 곧장 내려가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사이 불길이 더 번져 A씨와 행인 모두 집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B군은 연기를 흡입해 현장에서 사망했다. 검찰은 “화재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거리는 2m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데리고 나온 다음 도망치는 게 일반적임에도 혼자 대피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A씨의 유기로 B군이 사망했다고 보고 징역 7년을 구형했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나름의 판단에 따라 아들을 구조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구조하지 못한 것일 뿐 고의를 가지고 유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은 “A씨가 안방문과 현관문을 열면서 집 밖으로 새어나오던 연기가 거실쪽으로 급속히 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A씨가 처음 방문을 열었을 때 손잡이가 뜨겁지 않았고 B군의 얼굴이 보였다고 해도 A씨가 망설임 없이 안방으로 바로 들어가 B군을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A씨가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바로 피해자를 구조하는 것보다는 현관문을 열어 연기를 빼낸 후에 피해자를 구조하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하고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되지 못했다는 점만으로 A씨에게 피해자를 유기한다거나 방임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A씨는 밖으로 나오고나서 119에 신고한데다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건물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며 “A씨가 피해자를 유기·방임 내지 학대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에 출석한 A씨는 선고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앞서 법원에는 2심 선고를 앞두고 A씨를 엄벌해달라는 진정서가 200건 넘게 접수됐다. 사건이 뒤늦게 아동학대 관련 카페와 맘카페에 알려지면서 탄원이 줄지은 탓이다. 검사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 소독한다더니 웰시코기 때려죽인 중국 방역요원

    소독한다더니 웰시코기 때려죽인 중국 방역요원

    중국 방역당국 공무원들이 코로나19 격리자의 반려견을 쇠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돼 현지 온라인이 들끓고 있다. 15일(현지시간) CNN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장시성 상라오시에 사는 여성 푸모씨는 지난 13일 방역당국의 지시에 따라 코로나19 접촉자로 분류돼 인근 호텔에 격리됐다. 중국어로 볶음면을 뜻하는 ‘차오펀’이라는 이름의 웰시코기 한 마리를 키우던 푸씨가 반려견의 안전을 걱정하자 방역요원들은 “집을 소독하려는 것일 뿐이며 개를 데려오거나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안심시켰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요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고 푸씨는 주장했다.푸씨가 웨이보에 올린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집 거실을 비추는 감시카메라가 포착한 장면이었다. 영상은 방호복을 입은 방역요원 2명이 쇠몽둥이로 웰시코기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중 한 명은 “여기서 해결하라고 한 거지?”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네”라고 답한다. 웰시코기가 구타를 피해 침실로 달아난 후의 장면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지만 희미한 개 울음소리가 들렸다. 푸씨는 웨이보에 “두 사람이 그것(사체)을 처리하고 노란 비닐 봉지를 들고 가져가겠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영상이 온라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푸씨 거주지인 신저우지구를 관장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성명을 통해 “방역을 위해 엄격한 소독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안전하게 처분했다”고 밝혔다. 개를 숨지게 한 요원들은 업무에서 배제됐으며 보호자에게 사과했다고 덧붙였다.푸씨는 그러나 방역당국과 직장 상사로부터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이번 사건은 방역을 위해 공권력이 어느 선까지 허용돼야 하는지와 동물권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야기했다고 WSJ는 전했다. 앞서 지난 9월 하얼빈에서도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 고양이 3마리가 병원 치료를 받던 보호자 동의 없이 살처분돼 논란이 일었다. 중국의 모든 지자체가 반려견을 엄격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상하이시는 지난 1월 반려동물을 격리장소에 동반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 부모 이혼재판서 울음 터진 아이 2시간 동안 품에 안아준 中판사

    부모 이혼재판서 울음 터진 아이 2시간 동안 품에 안아준 中판사

    중국의 한 판사가 부모의 이혼 재판 도중 울음이 터진 아이를 2시간 동안 품에 안아 달래줬다. 15일 웨이보 등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9일 중국 허난성 푸양시의 인민법원에서 한 판사가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사진 속 주인공은 재판을 담당했던 장즈치 판사로, 장 판사는 부모의 이혼 소송 재판정에 따라온 2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직접 품에 안아서 달랬다. 당시 아이의 아버지는 아내의 외도 이후 태어난 아들의 친자 불일치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간의 언쟁이 격해지자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장 판사는 재판석에서 내려온 후 아이를 직접 품에 안았다. 장 판사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약 2시간 동안 아이를 계속 품에 안고 재판을 진행했고, 아이는 장 판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안정을 되찾았다. 장 판사의 선행이 알려진 후 중국 네티즌들은 “진정한 어른”, “마음이 참 따뜻하다”, “판사이기 전 아빠로서 한 행동 아닐까” 등의 반응을 보이며 감동을 표했다.
  • [월드피플+] 부모 이혼 재판서 우는 아이 2시간 동안 안아준 판사 화제

    [월드피플+] 부모 이혼 재판서 우는 아이 2시간 동안 안아준 판사 화제

    이혼 재판 중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아 재운 재판장이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 9일 중국 허난성 푸양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에서 재판관의 품에 안겨 잠든 3세 아동의 모습이 온라인에 공개돼 이목이 쏠린 것. 화제가 된 사건은 지난 9일 허난성 푸양시 인민법원에서 열린 ‘친자불일치’ 이혼 소송 재판에서 목격됐다. 아내의 외도와, 이후 태어난 아들의 친자불일치 소송을 제기한 남편이 재판에서 아내와 갈등을 빚으며 소동이 벌어졌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혼소송은 부부 양측의 갈등이 커지면서, 한때 심한 폭언이 오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소송이 집중됐던 친생부인 이혼 소송 중 현장에 있었던 부부의 3세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자 판사가 아이를 안고 달래주는 모습이 SNS를 통해 공개됐다. 앞서 세 차례에 걸쳐 이혼 조정 단계를 거친 부부였지만, 이날 역시 친자 관계 여부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면서 양육비 조정 시 부부 양측 간에 폭언이 계속됐다. 이를 보고 있던 부부의 아들은 작은 분홍색 어린이집 가방을 멘 채 얼음이 된 듯한 모습으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울먹였던 것으로 전해졌다.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에 따르면, 이날은 부부의 이혼 소송이 최종 결정되는 재판으로 이에 앞서 총 세 차례의 조정과 20여 차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재판이 열리기 이전 양육비 등 금전적인 문제에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실제로 재판장에 마주 서자 날이 선 폭언과 비난 등의 발언이 심해지면서 소송은 약 2시간 이상 중단과 재개가 계속됐다. 부부는 법원 입구에 마주친 순간부터 폭언을 시작했다고 현장 목격자는 증언했다. 부부의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아내의 친자로 확인된 3세 아들은 재판장 입구에서부터 얼음처럼 한 자리에 멈춰 선 채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설명이다. 이때 재판장 아래로 내려와 아이를 위로한 것은 다름 아닌 재판을 담당했던 장즈치 판사였다. 장 판사는 부부의 폭언이 계속되는 동안 재판장 한쪽에 방치돼 있던 부부의 아들 정 군을 번쩍 안에 품에 안으며 조용히 다독이기 시작했던 것. 이후 장 판사는 소송이 종료되기까지 약 2시간 동안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지 않은 채 소송을 진행했다.당시 촬영된 사진 속 장 판사는 부부 양측 변호인과 가족들 사이의 언쟁이 높아지는 동안 가족 누구도 아이를 달래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 같은 행동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부부의 아들은 판사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장 판사의 선행은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이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해당 소식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은 ‘재판관이기에 앞서 아버지이자 진정한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 사례다’면서 장 판사를 향한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이혼으로 아이가 받을 상처는 고려하지 않은 채 돈 문제에만 눈이 먼 부부의 어리석은 행동이 안타깝다”면서 “재판 현장에서도 돈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지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갈등에 아이를 방치한 부부를 손가락질한다. 판사의 너그러운 행동이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 줬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엄숙한 재판장에서 누구보다 엄격한 재판관이지만 힘없는 아이 앞에서는 훌륭한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아이를 달래준 판사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이 사건은 존경받는 판사와 힘없고 가난한 아이, 증오만 남은 부부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드러낸 이혼 사건이다”고 했다.
  • 피살 고교생 부모 호소 “멈춰버린 시간...최대 형량 내려달라”

    피살 고교생 부모 호소 “멈춰버린 시간...최대 형량 내려달라”

    “피고인은 아들 찌르고 조롱…최대 형량 선고해 달라”“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자괴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10일 오전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 강동원) 301호 법정. 전북 완주군 한 노래방에서 살해당한 고교생의 아버지는 법정 방청석에서 일어나 애써 울음을 참고 어렵게 입을 뗐다. 강 부장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이 사건 피해자 유족에게 진술 기회를 줬다. 아버지는 “나는 지난 9월 25일 완주군 이서면 소재 노래방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고교생의 부모”라고 소개하며 “그날 이후 나와 아이 엄마의 시간은 멈췄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어 “병원 영안실에 누워있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가슴이 미어지고 분통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살해한 피고인은 집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노래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범행했다”며 “아들을 죽일 의도로 몸 여러 곳을 흉기로 잔인하게 찔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는 또 “피고인은 항거불능 상태인 아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면서 ‘지혈하면 살 수 있다’고 조롱했다고 한다”며 “사건이 불거진 이후 피고인은 유족에게 용서도 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아버지는 “흉기에 찔려 죽어가던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며 “피고인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대 형량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법정에 함께 앉아 있던 어머니는 한동안 흐느끼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유족의 말을 들은 재판부는 검찰 측이 신청한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 재판을 속행했다. 다음 재판은 12월 15일 열린다.
  • 40년 가까이 스코틀랜드 외딴 오두막에서 혼자 살아온 74세

    40년 가까이 스코틀랜드 외딴 오두막에서 혼자 살아온 74세

    40년 가까이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외딴 호숫가에 손수 통나무 오두막을 짓고 전기도, 수도도 없이 홀로 지내 온 남자가 있다. 켄 스미스(74)는 “좋은 인생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삶”이라고 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 스코틀랜드에 털어놓았다. 하지만 사실 모두가 그처럼 고립되고 은둔하는 삶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열매 따고 낚시하고 장작 모으고 추운 바깥에서 옷 빠는 일 등등이 그가 누리는 일상의 전부다. 그마저 70대 중반인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이 돼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는 혼자 살고 있다. 그의 통나무 오두막은 란노크 무어의 막다른 길 끝에서 두 시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언덕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그는 “이곳은 워낙 외로운 호수로 알려져 있다. 여기는 도로도 없지만 댐을 짓기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파괴된 것들은 모두 저기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여성 영화감독 리지 맥켄지가 9년 전 처음 그를 찾아와 지난 2년 동안 그를 촬영해 BBC 스코틀랜드의 다큐멘터리 ‘트레이그의 은자’를 만들었다. 이날 밤 10시에 방영된다. 켄은 원래 더비셔주 출신이며 15세 때부터 소방서 짓는 일을 했다. 그의 삶은 26세이던 어느날 밤에 외출을 했다가 깡패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뒤 극적으로 바뀌었다. 뇌출혈을 일으켰고, 23일 동안 의식을 잃었다. 의사들은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도 다시 하지 못하며, 걷지도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해냈다. “그 무렵 결심했다.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내 스스로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켄은 여행을 시작해 야생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알래스카와 경계를 이루는 캐나다 유콘에서 그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무작정 걸으면 어떤 곳에 이르게 될까 궁금해져 진짜로 3540㎞를 걸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영국에 돌아와서야 들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란노크에 이르렀을 때에야 갑자기 부모 생각이 떠올라 울기 시작했다. “난 걷는 내내 울었다. 영국에서 가장 고립된 곳이 어디인지 생각했다. 모든 만을 따라, 집 한 채 들어서지 않은 곶을 따라 걸었다. 수백 마일을 걸어도 걸어도 아무것도 없었다. 호수 건너를 바라보며 이 숲을 봤다. 머무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여기구나 싶었다.” 그곳에서 울음을 멈추고 방황하던 여정을 끝내겠다고 결심했다. 통나무 오두막을 짓기 위해 먼저 작은 장작들로 설계를 해봤다.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전기는 물론 가스도, 수도도 없이, 물론 휴대전화 시그널도 잡히지 않는 곳에서 살았다. 장작을 패 헛간에 쌓아두고, 채소를 기르고 베리를 따먹지만 주 먹거리는 모두 호수에서 찾는다. 독립 생활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낚시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2019년 2월 리지 감독이 촬영을 마치고 떠난 지 열흘 만에 켄은 눈밭에서 심정지를 일으켰다. 며칠 전에 선물받은 GPS 위치추적 신호기를 눌러 SOS 신호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자동 발신했는데 영국 해상보안청에 연락해 포트윌리엄의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곳에서 몇주 동안 회복하며 지냈다. 병원에서야 당연히 문명 생활로 돌아올 것을 권했지만 켄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심정지 여파로 사물이 둘로 겹쳐 보이는 후유증과 기억상실 증세를 겪고 있다. 숲 관리인이 몇 주에 한 번씩 음식을 가져다주면 그는 연금에서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고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일년 뒤에도 장작 더미가 그를 덮쳐 또 한 번 병원에 후송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천하태평인 그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는 지상에 영원히 살지 못한다. 결단코 내 마지막 날은 이곳에서 맞는다. 사고도 숱하게 겪었지만 난 모두를 이겨낸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또 아플지도 모른다. 다른 모두에게 그렇듯 나도 한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난 102세까지 살기를 바란다.”
  • [따뜻한 세상] “아내를 안아주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따뜻한 세상] “아내를 안아주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상대 차주 분께서 제 아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에 순간 울컥해졌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운정동에 사는 김민걸(31)씨는 최근 본인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던 중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가 운전 중 사고를 냈는데, 오히려 상대 차주가 아내를 안심시키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던 겁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 5일 김씨의 생후 11개월 된 둘째 아이가 전날부터 고열에 시달리다가 탈수증상을 보이자, 출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 A씨(27)가 직접 차를 운전해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었습니다.운전대를 잡은 A씨는 몸이 아픈 아이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긴박한 상황에 차선변경을 시도하던 A씨는 미처 뒤따라오던 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곧바로 차에서 내린 A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거듭 사과의 말을 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파서…” A씨가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이를 본 차주 B씨(57, 여)는 조용히 그를 안아주었고, 얼굴을 감싸며 토닥여주었습니다. 이어 사고 처리는 나중에 해도 된다며 A씨가 빨리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김씨는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아내에게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논란 마음에 회사 대리님께서 빌려주신 차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갔다”며 “이후 보험사에 블랙박스 영상을 보내기 위해 확인하던 중 상대방 차주께서 떨고 있는 아내를 안아주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모습에 울컥한 김씨는 곧바로 차주에게 전화했고, 또 한 번 울컥했다고 합니다. 그는 “오전에 사고 났던 운전자 남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제일 먼저 아기와 아이 엄마는 괜찮냐고 물어보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상대 차주 분의 배려 덕분에 아이도 많이 건강해졌고 아내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며 “그분에게는 작은 배려일 수 있지만, 저희에게는 큰 배려로 다가왔다. 저도 그런 것을 배워서 다른 운전자를 먼저 생각하도록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끝으로 김씨는 “회사 신경 쓰지 말고 가족부터 챙기라고 얘기해준 과장님과 사고 현장으로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본인의 차를 내어주신 대리님까지, 배려해 준 회사 동료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 옥천 발길마다 ‘정종’ 한 모금의 시… 그 맛 꿈엔들 잊힐 리야

    옥천 발길마다 ‘정종’ 한 모금의 시… 그 맛 꿈엔들 잊힐 리야

    매일 역에서 기차에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를 싣는 시인이 있다. 비유가 아닌 실제로 그는 고향인 충북 옥천과 대전, 신탄진을 비롯해 경부선 라인 그 어디쯤을 오가며 일을 한다. 옥천에서 먼저 살다 간 선배 정지용의 시를 사랑해 첫 시집의 권두시에 정지용의 동시 ‘딸레’를 오마주한 시인 송진권의 이야기다.그에게 ‘옥천’과 ‘정지용’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직업 정신이 투철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부선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유달리 산세가 뾰족하고 험난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 옥천을 중심으로 경부선 라인을 따라서 이원, 지탄, 삼계, 영동, 황간, 추풍령에서 나물을 뜯은 어미들이 대전으로 가서 그것을 팔아 돈을 삼은 고장이라는 대답이었다. 철로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읍내를 벗어나면 어디에서나 금강의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는 지리적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지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척 많아서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그의 시집의 권두시 ‘딸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의 말들 사이로 언뜻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는 황소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어린 누이가 성근 별빛 사이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산나물 잔뜩 짊어진 고향의 어미들을 싣는 기차의 마음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는 곳, 아니 그보다 더 먼저 ‘흙에서 자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향수에 젖은 시인이 살던 곳, 그곳이 바로 옥천이다. 정지용은 1902년 6월 20일 옥천에서 태어났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7세인 1918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정지용은 매우 우수한 학업 성적과 빼어난 시 창작 재능 덕분에 주변 학생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때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이태준과 학교 선후배로 교류했다.휘문고보를 졸업한 정지용은 일본의 도시샤대 영문과에 진학한다. 휘문고보에서 장학금을 지원해 준 덕분이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휘문고보의 교사로 재직하며 그 인연을 이어 간다. 정지용이 고향을 떠나던 시기는 일제의 억압으로 농촌 붕괴가 시작되던 때와 맞물린다. 1918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면서 농민들은 농토를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경부선은 일제의 조선 착취의 혈맥이 됐으며,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의 빈민으로 스미거나 연해주로 가 버렸다. 고향을 잃은 설움은 곧 나라를 잃은 설움으로 병치돼 시인 정지용의 가슴에 맺혀 있었을 터.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는 이른바 휘문사태의 주동자가 돼 무기정학에 처해졌으나 곧 다시 입교됐다. 이해에 자신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소설인 ‘삼인’을 ‘서광’지에 발표한다. 고향인 옥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것이다. 그 이후에 쓴 시인 ‘향수’는 정지용의 지극한 고향 사랑을 보여 준다. 정지용은 구인회를 창립했으며 일제 탄압에 저항하는 의미로 모더니즘 시를 썼다. 1941년엔 시집 ‘백록담’을 출간했다. ‘백록담’은 후에 청록파 시인들(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에게 영향을 줬다고 알려지는데, 실제로 정지용이 그들을 문단에 데뷔시킨 주인공이다. 정지용은 계속해서 문예지 심사를 통해 윤동주와 이상을 발굴하기도 했다. 매우 활발하게 시작 활동을 하던 중 일제와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 1942년에 절필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1945년 8·15 광복 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의 교수로 재직했다. 이때 워낙에 ‘정종’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정지용이라는 이름을 빠르게 발음하면 ‘정종’이 돼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이 ‘정종’이 됐다고 한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이 됐으나 본의가 아니었던 터라 그에 관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 좌우 대립이 더욱 극렬해진 1950년 이후에는 월북을 선택한 동료 문인들과는 달리 전향을 선택해 보도연맹에 가입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정지용은 정치보위부로 끌려간다. 이후에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됐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됐다. 납북인가, 월북인가 하는 행로의 문제와 그의 사인을 두고 여러 설들이 분분하지만 그중에 가장 믿음직한 말은 ‘납북되던 중 소요산 부근에서 폭격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만 2001년에 북한에 있던 셋째 아들과 남한에 있던 첫째 아들의 상봉으로 북한에서 통용되는 정지용의 사인이 전해졌다. 북으로 가던 중에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정지용은 9월 25일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따로 확인한 바 없다.남한에 있던 가족들의 활발한 정지용 복권 활동으로 1988년 해금 조치된 이후에 ‘지용회’가 세워졌고, 옥천에 정지용 문학관이 개관했다. 그 이전까지는 친북인사로 규정되는 바람에 교과서에 시가 실리지 못했으며, 시인의 이름을 적는 난에 ‘정X용’, 혹은 이름이 새카맣게 지워지거나 무명씨로 각인된 채 독자들에게 ‘비밀스럽게’ 읽혔다. 매우 탁월한 시어를 구사해 고향과 조국 그리고 모더니즘을 한데로 아울렀다는 평을 받는 정지용의 시들은 독특한 줄글식 산문시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시인의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가 아닌 대상 혹은 배경 묘사들이 탁월했다는 평을 받는다.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답게 이미지를 중시했으며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주로 썼다. 그리하여 정지용은 전통적인 순수시와 모더니즘 시를 병합해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문학평론가 최동호)했다고 평가받는다.정지용의 동시 ‘딸레’에 송 시인이 살을 붙이고 구전과 판소리의 음률에 맞춰 재해석한 시 ‘딸레’다. 송 시인의 말에 따르면 정지용의 많은 시편이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이어서 고향에 대한 것들은 초기 시 몇 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지용의 동시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자랐던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다고 했다. 당시의 입말과 풍습,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그리움 같은 것들에 대해. 어쩌면 옥천은 정지용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그리움이 금강처럼 흐르고 있는 곳이 아닐까. 단순히 경부선 철로에 놓인 수많은 역 중의 하나가 아닌, 누군가의 사무친 고향인 것이다. ‘향수’의 시이자 노래의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일까.기차 위의 시인 송진권에게 정지용의 시들을 배경으로 한 옥천의 시(詩) 지도를 그려 주십사 부탁을 해 봤다. 그는 ‘향수’는 옥천의 어지간한 식당마다 액자와 벽화 등에 쓰여 있고, 정지용의 시비 또한 옥천역과 공원 등지에 놓여 있으니 그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라고 권했다. 또한 옥천과 그 주변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어 그것을 찾아보는 간이역 투어도 좋으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그가 며칠 후에 보내온 옥천의 시 지도는 이와 같았다. 이것으로 이번 호를 갈음하고자 한다. 이번 가을 여행의 목적지는 옥천과 금강 곁의 정지용 문학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송진권 시인이 추천하는 옥천의 詩와 간이역 투어 옥천역(지용 시비, 오래된 플라타너스)→이원역(구미, 구장터의 묘목시장들)→지탄역(금강변에 세워진 작은 역.)→심천역(근대문화유산, 1980년대풍의 시가지)→각계역(창고 같은 건물 한 채가 전부. 주민들이 희사해 만든 역), 영동, 황간, 추풍령역.
  • 밀치고, 올라타 때리고, 또 때리고… 의식 잃은 여친 버려둔 그놈

    밀치고, 올라타 때리고, 또 때리고… 의식 잃은 여친 버려둔 그놈

    변호인측 “100번이라도 사죄… 혐의 인정”황씨 어머니 “형량 줄이려 사과” 엄벌 요구자신과의 연인 사이를 주변에 알렸다는 이유로 고 황예진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유족들은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안동범)는 4일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모(31)씨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방청석은 황씨의 어머니를 비롯한 유족과 지인 20여명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수의를 입은 이씨가 법정에 나타나자 유족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씨를 바라봤다. 이씨는 손을 떠는 등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본 신상정보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씨가 울먹이며 작은 목소리로 답하자 유족들은 “뭘 잘했다고 우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재판부는 유족의 항의에 “심정은 알겠지만 재판 진행에 협조해 달라”고 다독였다. 검찰이 이씨의 혐의를 설명하자 유족들은 숨죽여 흐느꼈다. 이씨는 지난 7월 25일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에서 황씨와 말다툼을 하던 중 황씨를 10차례가량 밀쳐 유리벽에 수차례 부딪히게 했고 황씨의 몸 위에 올라타 여러 차례 폭행했다. 황씨가 뒤따라오자 주먹으로 폭행하고 의식을 잃은 황씨를 내버려뒀다. 의식을 잃은 황씨는 외상성 뇌저부지주막하출혈(뇌출혈)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지난 8월 17일 숨졌다. 이씨 측 변호인은 “100번이라도 사죄할 의향이 있지만 유족한테 접근이 어려워서 못 하고 있다”며 “피해자 측 변호인을 통해서라도 사죄 의사를 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말을 들은 유족은 “사람을 죽여 놓고 할 소리냐”, “나도 똑같이 죽이고 사과하겠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재판을 마친 이씨가 법정을 빠져나가자 유족들은 “살인마”, “사형해야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변호인은 이날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혐의를 전부 인정한다”고 말했다. 황씨의 어머니는 “변호인을 통해 사과하겠다는 것은 형량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18일 예정됐다. 이날 황씨의 어머니가 직접 증인으로 출석한다.
  • [여기는 중국] 생후 7개월 때 납치된 中 아들 22년 만에 찾은 부모의 사연

    [여기는 중국] 생후 7개월 때 납치된 中 아들 22년 만에 찾은 부모의 사연

    생후 7개월 때 납치된 아들을 22년간 찾아 헤맨 부모가 꿈에 그리던 아들과 다시 상봉했다. 27일 중국 텅쉰신원 등 다수의 매체는 광둥성 둥관 허우제(厚街)에 사는 리위 씨 가족의 재회소식을 전하면서 그들이 이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지난 1999년 7월 리 씨 가족들이 살고 있었던 공동주택 방으로 침입한 유괴범들에게 생후 7개월의 장남 A군을 잃어버린 지 무려 22년 만의 상봉이었다. 리 씨 가족들은 장남 A군을 찾기 위해 지난 22년 동안 중국 전역을 이동하며 아동 매매로 팔려간 A군을 추적해왔다. 사건은 지난 1999년 7월 19일 주택가 안에서 발생했다. 당시 리 씨 가족들은 고향인 안후이성을 떠나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일하면서 근로자들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주택가에 입주해 살고 있었다. 사건 당일 모친 리 씨는 인근 건축사무소로 업무를 나간 상태였고, A군은 부친과 함께 공동 주택 작은 방 한 칸에서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건 당일 A군을 방에 눕힌 리 씨의 남편은 공용 화장실 이용을 위해 잠시 방을 비웠고, 아들 A군이 방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사건 당일 오전 6시 경 단 2분여 간의 짧은 시간 동안 방을 비운 사이 A군은 유괴범들에게 납치돼 종적을 감췄다. 그로부터 리 씨 가족들의 일상은 모두 정지됐다. A군을 되찾기 위해 가족들은 작은 봉고차 한 대를 중고로 구매, 매주 중국 전역을 이동하면서 A군를 찾기 시작했던 것. 이 과정에서 리 씨는 남편과 함께 거리를 떠돌면서 작은 노점상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꾸렸다. 리 씨 가족들에게 지난 22년은 하늘이 무너지는 세월과 같았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윈난성, 푸젠성, 광시, 장시, 후난, 구이저우, 저장, 쓰촨, 산시,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모든 지역을 찾아 헤맸다. 이 시기 리 씨 가족들은 그동안 저축했던 저금과 리 씨 명의로 있던 고향 안후이성의 작은 주택 한 채도 모두 팔아야 했을 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상태에 빠졌을 정도였다. 리 씨는 “값 나가는 물건은 모두 팔아야 했다”면서 “하지만 아들을 잃어버린 이후 세상을 잃은 것과 다름없었는데, 아들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했다. 집이나 돈은 아무 필요가 없는 세월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29일 광둥성 관할 공안국은 무려 22년 만에 리 씨의 장남 A군의 생존 소식을 전했다. 관할 공안국은 리 씨를 통해 확보한 DNA 정보를 통해 총 4만 명의 유괴된 아동 리스트를 대조한 결과 리 씨의 친자로 확인된 남성 류모 군을 찾아 가족에게 인계했다. 공안국의 전화를 받은 직후 리 씨와 그의 가족들은 지난 6일 급하게 구매한 항공기에 탑승, 이제는 류펑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들 A군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무려 22년 만의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눈물의 상봉기였다. 리 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전화를 받은 당일부터 아들을 만나기까지 단 한순간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면서 “잠도 오지 않고 마음도 복잡해서 어떤 말로 아이를 안아줘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못했다. 그 동안 엄마 곁을 떠나 해를 입고 고생했을 것을 떠올리면 엄마가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파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그 후 가족들은 지난 7일 관할 공안국 사무실에 꽃다발을 든 채 모친 리 씨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던 A군을 만나 눈물의 상봉에 성공했다. 당시 리 씨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쏟아내며 아들 A군을 부둥켜 안고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목 놓아 우는 리 씨를 안고 휴지로 눈물을 닦던 A군 역시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을 정도였다. 현재 광둥성 광저우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 중인 A군을 위해 리 씨와 가족들은 매일 문자 메시지와 전화 등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 씨는 “지금까지 주지 못했던 엄마로의 사랑과 관심을 늦었지만 가득 주고 싶다”면서 “모성애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을 아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이라고 매일 밥은 먹었는지, 최근 후 잘 쉬고 있는지 관심을 주고 받으면서 늙어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관할 공안국은 지난 1999년 7월 19일 생후 7개월 된 A군을 납치해 아동 매매한 혐의로 용의자 3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아동 매매 전담 수사팀에 붙잡힌 용의자 3명은 수십년에 걸쳐 광둥성과 쓰촨성 일대에서 다수의 아동을 납치해 매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야옹야옹” 모친 살해하고선 스스로 고양이라 주장하는 남자

    “야옹야옹” 모친 살해하고선 스스로 고양이라 주장하는 남자

    “피고인의 이름이 니콜라스 힐 페레그가 맞습니까?” “야옹야옹.” 아르헨티나에서 어머니와 이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이 스스로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법정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다가 밖으로 쫓겨났다. 라나시온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서부 멘도사에서 이스라엘 출신의 니콜라스 힐 페레그(40)의 살인사건 배심원 재판이 처음 열렸다. 페레그는 지난 2019년 1월 멘도사 과이말렌에서 어머니 피리아 사로시(63)와 이모 릴리 페레그(54)를 총기로 살해하고 자신의 집 근처에서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됐다.과이말렌에서 여성 살해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이날 멘도사 사법당국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한 재판 영상을 보면 붉은색 상의와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법정에 들어선 페레그는 법정에 들어설 때부터 “야옹! 야옹!”하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쉬지 않고 외쳐댔다. 판사가 “조용히 하지 않으면 내보내겠다”고 경고했지만 멘도사는 여전히 “야옹! 야옹!”하며 계속 소리를 크게 질렀다. 곧이어 “당신의 이름이 힐 페레그가 맞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그저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 눈치를 살피는 듯 고양이 울음소리를 큰 소리로 냈다. 판사는 결국 재판 시작 몇 분 만에 페레그를 내보낼 것을 지시했고, 이에 페레그는 순순히 법정 밖으로 끌려 나갔다. 페레그는 2019년 체포 이후 수감된 교도소에서 끊임없이 고양이 소리를 내서 다른 재소자들의 불만을 샀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고양이맨’(hombre gato)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현재 교도소 대신 정신병원에 수감된 상태다.페레스의 변호인들은 그가 자신이 동물이라고 믿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라나시온에 따르면 변호인 막시밀리아노 레그란드는 이날 배심원들에게 “피고인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자식으로 부르는 고양이 37마리와 인간 이하의 위생 상태 속에 살고 있었다”며 “자신이 인간이 아닌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페레그가 살해 당시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며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레그가 법정에서 고양이 흉내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2월 변호인의 요청으로 정신감정 심리를 받았을 때에도 고양이 흉내를 냈고, 당시 판사는 일단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9년 1월 어머니와 이모가 실종됐을 당시 페레그를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그는 정상적으로 이웃들과 대화하고 취재진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이 때문에 그가 교도소 수감을 피하기 위해 고양이 흉내를 내며 정신질환을 앓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야지디족 다섯 살 소녀 목말라 죽게 만든 ‘IS 신부’ 독일 여성에 10년형

    야지디족 다섯 살 소녀 목말라 죽게 만든 ‘IS 신부’ 독일 여성에 10년형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극렬 무장집단 이슬람 국가(IS) 이라크 지부에 가입해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다섯 살 소녀를 노예처럼 부려 죽음에 이르게 한 독일 여성이 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제니퍼 웨니쉬(30)란 여성인데 이라크인 지하디스트인 남편 타하 알주마일리가 2015년 팔루자에서 이 가엾은 소녀를 작렬하는 햇볕 아래 쇠사슬로 묶인 채 서 있게 했을 때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아 목 말라 죽게 만들었다. 미국 매체 워싱턴 이그재미너에 따르면 소녀가 침대보를 젖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부부는 소녀의 엄마인 노라가 이 참혹한 장면을 지켜보도록 강요했다. 또 소녀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총으로 쏴버리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뮌헨 법원은 그녀가 해외 테러조직에 가입했고, 살인 시도를 도왔으며, 전쟁범죄를 의도했으며, 인류애에 반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중형을 선고했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남편 알주마일리의 재판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음달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웨니쉬는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노라가 믿을 만한 증인이 아니라며 아이가 실제로 죽었는지도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라도 2014년 이라크 북부를 쳐들어간 IS가 야지디족의 고향인 신자르를 장악했을 때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당시 6000명의 야지디족 여성과 소녀들이 노예가 돼 성적 노리개가 됐는데 7년이 흐른 지금까지 3000명 이상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IS가 야지디족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로 유죄 판결과 함께 실형이 선고된 것은 처음으로 보인다고 방송은 전했다. 야지디족은 이라크 북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의 한 집단으로 IS가 끔찍하게 유린한 소수민족이다.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웨니쉬는 2016년 터키에서 체포된 뒤 독일로 송환돼 대량학살을 포함한 전쟁범죄가 해외에서 발생했을 때 기소를 허용하는 보편 사법권 원칙에 따라 독일 법정에 세워졌다. 그녀는 IS의 이른바 ‘악덕 반대 별동대’ 대원으로 모술과 팔루자에서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는 행동에 앞장섰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인권 변호사이자 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으로 유명한 아말 클루니가 노라의 법률 대리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 “강아지 성대 자르고…” 美 파우치 소장, ‘잔인한 동물실험’에 세금 펑펑

    “강아지 성대 자르고…” 美 파우치 소장, ‘잔인한 동물실험’에 세금 펑펑

    미국 전염병 최고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비글 수십 마리가 동원된 잔혹한 동물 실험에 국민의 혈세를 썼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뉴욕포스트, 뉴스위크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동물보호단체인 화이트 코트 웨이스트 프로젝트(WCW) 측은 파우치 박사가 국립보건원(NIH)을 통해 튀니지의 한 실험실에 보조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립보건원 산하의 NIAID는 2018년 10월~2019년 2월, 파우치 소장의 승인에 따라 비글 강아지 44마리가 동원된 튀니지의 약물 실험에 세금 180만 달러(한화 약 21억 1500만 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튀니지 연구진은 비글 강아지 수십 마리의 머리를 작은 상자에 가두고, 굶주린 모래파리(흡혈파리)가 가득한 상자에 풀어뒀다. 비글은 산 채로 곤충에 뜯어 먹혔으며, 일부 비글에게는 질병을 유발하는 기생충이 주입되기도 했다. 해당 보고서는 “튀니지에 위탁된 실험에서는 강아지에게 실험용 약물을 몇 주 동안 주입한 뒤 죽이고, 이후 해부하는 과정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실험 중에 비글이 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개의 성대를 잘랐다는 주장도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NIAID의 관련 문건에는 “이 연구의 목적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및 기타 규제 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적절한 품질과 무결성의 데이터를 얻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으며, 이러한 실험은 파우치 소장이 1984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는 NIAID의 자금으로 수행됐다. WCW와 함께 해당 보고서를 발표한 현지 국회의원들은 “미국 수의학 협회, 미국 동물병원 협회 등이 반대하는 이 잔인한 실험 절차 중 개의 성대를 자르는 것은 실험자들이 개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시행된 것 같다”면서 “이러한 실험은 세금의 남용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CW 측은 “세금으로 진행한 실험을 통해 짖지 못하게 만든 비글을 독살시키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면서 “식약청에 개를 이용한 약물테스트를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실험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었나”라고 비난하며 파우치 소장에게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NAIAD 측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을 둘러싸고 중국 우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곤혹을 치른 바 있다.
  •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왔다, 이름 바꿔 되살렸다, 국민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왔다, 이름 바꿔 되살렸다, 국민가요

    억세게도 운이 나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점을 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아예 이름까지 고치기도 한다. 대중가요에도 문패를 바꿔 달고서야 국민가요가 돼 대운이 터지는 노래가 생각 외로 많다. 이런 문패 바꿔 달기는 가요 초창기부터 있어 왔다. 남인수의 불멸의 히트곡 ‘애수의 소야곡’은 원래 ‘눈물의 해협’에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는 태원의 ‘너의 사랑’에서, ‘어차피 떠난 사람’은 이학춘의 ‘괴로워도 웃으며’에서, 그리고 필자가 작곡한 ‘텍사스 룸바’는 설운도의 ‘사나이 룸바’에서 문패를 바꾼 뒤 성공한 노래들이다.‘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문패를 바꿔 국민가요가 된 곡으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빠질 수 없다. 아마도 이 노래가 없었다면 ‘국민 가수’ 조용필이 있었을까 할 만큼 대단한 인기였다. 1970년대 한국가요를 대표하는 이 곡은 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후잔코오에 가에레’로 불리고 있고, 유럽에서는 팝오케스트라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한 ‘플리즈 리턴 투 부산 포트’라는 제목으로 1970년대 말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대중가요를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한 바로 그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김해일이 노래한 ‘돌아와요 충무항에’에서 문패를 바꿔 단 노래다.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은 본명이 김성술로,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1970년 유니버샬레코드가 발매한 음반의 B면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됐다.‘꽃피는 미륵산엔 봄이 왔건만/ 님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 우네/ 세병관 둥근 기둥 기대여 서서/ 목메어 불러 봐도 소리 없는 그 사람/ 돌아와요 충무항에 야속한 내 님아’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김해일이 24세에 직접 작사한 노랫말에 부산 출신 작곡가 황선우가 곡을 붙여 발표됐다. 그러나 김해일은 음반을 발표한 다음해인 1971년 12월, 서울 대연각 호텔에 투숙했다가 화재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후 작곡가 황선우는 이 노래를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개작해 조용필에게 줬다. 1972년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된 조용필의 첫 독집 앨범에는 ‘꿈을 꾸리’와 ‘일하지 않으면 사랑도 않을래’가 타이틀곡으로 표기돼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타이틀곡이 되지 못하고 B면 두 번째로 수록됐다. 그러나 이 곡은 1976년 ‘조용필과 그림자’의 앨범에 A면 두 번째로 다시 실린다. 이때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던 때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 징용, 종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귀환동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던 약 80만 동포들이 있었다. 그중 약 절반에 이르는 조총련계 동포들은 출신이 대부분 남한 지역이면서도 북한을 위한 선전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의 활동이 조국의 발전상을 잘 모르는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1975년 추석을 기해 조총련계 동포 720여명의 첫 모국 방문이 이뤄졌다. TV로 생중계된 부산항과 김포공항은 이들의 가족 상봉으로 울음바다가 됐다. 이들의 성공적인 모국 방문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976년 4월 한식 때까지 불과 6개월 사이에 무려 7000여명이 대한민국을 찾았다. 마침 이때는 전국에 음악다방이 대유행을 하고 있었다. 음악다방 DJ들은 부산항을 소재로 한 노래를 찾아 모국 방문 소식의 멘트를 붙여 방송하기 시작했다. 부산항을 소재로 만들어진 많은 노래 중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요청곡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런 열기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대히트로 서라벌레코드사는 미리 음반 값을 받아 놓고 후에 제품을 찍어 보내는 입도선매를 해야 할 정도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방송을 한 번도 타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다방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히트한 노래로, 방송미디어를 통하지 않아도 히트곡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또한 트로트의 정형성을 파괴하는 한편 당시에는 그룹사운드라고 했던 보컬그룹에 의해 팝 요소를 융합한 편곡과 연주, 조용필의 독보적인 창법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물길을 바꿔 놓는 대변혁을 이끌었다고 평가된다.최초 노랫말의 일부를 개사해 사연의 무대를 충무에서 부산으로 옮긴 뒤 처음 발표했을 때는 반응이 없다가 4년 후에야 대히트를 했다는 사실은 대중가요의 시대성을 대변한다. 1972년의 부산과 1976년의 부산은 국민적 관심에서 매우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재일동포 모국 방문이라는 시대성과 음악다방의 유행, 창법과 음악의 변화 등이 망라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결코 우연한 탄생이 아닌 필연적인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데뷔 10년 만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 조용필이었지만 1977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 은퇴를 선언한다. 이 은둔 기간이 곧 제2의 ‘위대한 탄생’을 위한 칩거기가 된 셈이다. 조용필은 ‘조용필과 그림자’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호적까지 바꿔 드디어 한국 가요계의 신화로 자리매김했으니, 조용필에 관한 한 개명도 때로는 운을 바꾸는 ‘선기’(善氣)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작곡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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