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울음바다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개편안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매매가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마약 사범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계약서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7
  • “젊은 넋이여 호국의 등불되소서”/전사 3인 합동영결식

    『탕 탕 탕…』 3군합동 의장대의 조총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가슴에 사무친 총성」,영결식장은 또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아들아.아들아.내 아들아…』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이병희 상사의 어머니는 목이 메어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했다.어깨를 들먹이며 『내 아들아』를 되뇌였다. 지병인 심장병으로 고향 전남 순천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달려 온 송관종 상병의 어머니는 애끊는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25일 상오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 수도통합병원의 연병장에서 열린 고 이병희 상사(25)와 강정영 병장(21) 송관종 상병(21)의 합동 영결식장. 녹음조차 지친 첩첩산중에서 무장공비를 쫓다 젊음의 날을 마감한 고인들의 관이 태극기에 쌓여 의장단에 의해 합동연결식장에 내려졌다.이어 3군 합동 군악대의 조악이 울리는 가운데 고인들에게는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조총이 발사되고 유가족들의 국화 헌화와 떠난 이들의 넋을 신에게 의탁하는 종교의식이 거행됐다. 고인들이 산화하던 그날처럼 조국의 하늘은높고 푸르렀다.
  • 각계 조문발길 잇달아/산화 사병 빈소/유족 오열 “눈물바다”

    무장공비와의 교전도중 전사한 고 이병희 상사와 강정영 병장,송관종 상병(1계급 특진 추서)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 수도통합병원 영안실에는 22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비서진을 보내 유족들을 위로하고 금일봉을 전달했으며 이수성 국무총리와 이홍구 신한국당대표,김우석 내무부장관,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이양호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 고위관계자와 전사자들의 동료 등 5백여명이 조문했다. 이날 하오 도착한 강병장과 송상병의 유족들은 영정을 끌어안고 오열,빈소는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육군은 이상사 등 산화 병사들의 합동분향소를 별도로 설치하는 한편 이들의 합동영결식을 오는 25일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구체적인 장례절차를 유가족과 협의중이다. 산화 장병들의 시신은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 미 여객기 사고 이모저모

    ◎“에이즈 감염 혈액 8ℓ 수송중…” 수색 전력/각국별 희생자 미국인 169명·불 42명·이 11명/불 전문가 “기내압력 떨어져 동체파괴 가능성” ○…사고기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에 감염된 혈액이 컨테이너에 실려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수색대원들이 혈액 8가 담긴 흰색 컨테이너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수색대측은 그러나 이 컨테이너가 사고기에 실린 과정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탈리아인 도메니코 곤살레스씨(66)는 사고기인 TWA기를 타기 직전까지 갔다가 항공사직원의 실수로 다른 비행기를 타 목숨을 건졌다.곤살레스씨는 당초 사고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그가 예약한 항공기는 로마행 YTW­848편.그러나 사고 하루 전날 아침 항공사로부터 이 비행기가 취소됐으니 대신 800편을 타고 파리를 경유해 로마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죽음의 통보」가 될뻔한 것이다.사고날인 이튿날 곤살레스씨는 이 죽음의 비행기를 타려고 케네디공항으로 갔다.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를 공항에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게 만들어주었다.TWA항공사의 공항직원은 일찍 도착한 그에게 사고기보다 먼저 출발하는 로마행 840편의 빈좌석을 주었다.그는 이 사실도 모른채 자기가 800편을 타고 파리로 가는줄 알고 비행기를 타고가고 있었다.이륙 한참 뒤에야 그는 자기가 로마행 비행기를 탄줄을 알았고 로마공항에 도착한뒤 자기가 탈뻔한 비행기의 끔찍한 사고소식을 들었다. ○…가슴 아픈 죽음들 중엔 프랑스로 불어 어학연수차 떠나던 펜실베이니아주 작은마을의 고등학생 21명이 모두 참변을 당한 경우가 들어있다.이들은 방학을 맞아 10일 일정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길이었다.18일 추도식이 열린 몬터스빌 고교 체육관에는 주민 절반에 해당하는 2천여명의 추모인파가 몰려 마을 전체가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이밖에 각계의 유명인사도 사망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ABC방송 스포츠담당 총국장인 잭 오하라씨(39)부부와 13살짜리 딸도 끼여있다.월트 디즈니사가 지난 1월 ABC방송을 합병한 후 진로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이날 회사측에 사표를 낸뒤 휴가여행에 나섰다 참변을당했다. ○…미국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인 웨인 쇼터의 부인과 재즈싱어 존 루시안의 딸도 사망자 명단에 들었다.유럽순회공연중이던 쇼터는 사고소식을 듣고 모든 연주일정을 취소한 뒤 급거귀국했다. ○…TWA 항공사는 폭발 추락한 TWA 800편의 국적별 탑승자 수를 19일 발표했다. 전체 탑승자 2백30명중 미국인이 35명의 승무원을 포함,1백69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프랑스인 승객이 42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은 국적별 탑승자 수다. ▲미국:1백69명 ▲프랑스:42명 ▲이탈리아:11명 ▲노르웨이:2명 ▲스페인 영국 중국 포르투갈 스웨덴 독일:각 1명. ○…프랑스 전문가들은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기체 결함 등으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보잉 747기의 한 기장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 『보통 고도 8천∼1만m 상공에서 기내 폭발이 있을 경우 기내 압력이 떨어져 동체가 파괴될수 있다』면서 지난 89년 니제르 상공에서 발생한 UTA항공소속 DC10기와 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 항공 소속 747기 사건을 예로 들었다.
  • 8순 노파의 목메인 절규/박성수 전국부기자(현장)

    ◎“산불 경계령에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23일 하오 4시.동두천시청 3층 상황실. 이날 낮 발생한 동두천 소요산 줄기 산불로 순식간에 직원 7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실은 울음바다를 이뤘다. 상황실 복도 한켠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 온 한 노파가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한채 실성한듯 그대로 바닥에 나딩굴고 말았다. 『아이구 어떻게 키운 손잔데…』 이날 희생된 녹지과 산림계 이강욱 계장(39·임업6급)의 할머니 임상천씨(88)의 목메인 절규였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잠까지 설치며 일을 하더니 끝내 목숨까지 내놓았구나.』 군사지역으로 둘러싸인 동두천지역은 곳곳에 지뢰나 불발탄이 묻혀 있어 산불이 났다 하면 거의 손을 쓰지 못하기가 일쑤다. 지난해 1월 진급과 함께 산림계장으로 임명된 이씨는 그동안 불을 끄기 위해 5차례나 산을 누벼왔다. 평소 친형처럼 직원들을 아끼고 책임감이 강한데다 어려운 살림에 조부모까지 봉양하는 등 효성까지 극진해 부하직원들의 신뢰를 받아왔다. 한 동네 사는 김국한씨(39)는 『이계장은 매일 새벽마다 조부모들을 모시고 약수터를 찾아 이웃들로부터 효성이 지극하다는 칭송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산림과장 김준만씨(59)는 『이달들어 산불경계령으로 직원들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오열속 치러진 영남중 졸업식

    ◎가스폭발 희생 학생들에 명예졸업장 수여/“우리 아들은 어디갔나…” 끝내 울음바다 『병득아 이 졸업장을 왜 내가 받아야 하니』 지난해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대구 영남중의 졸업식이 13일 정오 거행됐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사고로 희생된 학생 43명과 이종수교사에 대한 묵념에 이어 15명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됐다. 병득군의 아버지 손동휘씨(44)와 근호군의 아버지 이정수씨(44)가 15명의 학부모를 대표해 명예졸업장을 받자 식장은 숙연해졌다. 『사고나기 한달전 병득이가 졸업선물로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는데…』 목수일로 어려운 생활을 해왔지만 손씨는 아들에게 컴퓨터를 선물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맺힌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식이 끝난뒤 3학년9반 교실에 들른 손씨가 노란 튤립과 안개꽃다발을 병득군의 책상에 놓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또 3학년4반 교실을 찾은 근호군의 아버지 이씨는 『근호 친구들은 모두 여기 있는데 우리 근호는 어디갔지…』라고 중얼거리며 『그동안 아들을 숨지게 한 죄인이라는 생각에 하루도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오늘 가슴이 아픈 것은 함께 자리를 하지 못한 15명의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특히 이 친구들에게 겨우 졸업장 한장밖에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교정에서 불과 1백여m 떨어진 사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굉음이 이길우교장의 회고사를 듣고 오열하는 졸업생 5백36명의 등뒤에서 울려퍼졌다.
  • 청소년 “충격”… 사회문제 비화우려/「서태지와 아이들」전격 은퇴

    ◎10대팬들 살던 집앞서 이름 부르며 통곡/방송 스케줄 등 차질… 가요계도 파장 클듯 인기 최정상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22일 전격적인 은퇴선언은 「X세대 대중적 우상의 퇴장」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10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최근 표절시비끝에 활동을 중단한 「룰라」에 이어 터져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선언은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해온 10대 팬들에게 일시적이나마 「심리적 공황」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23일 상오 서대문구 연희3동 서태지가 살던 집 앞에서는 새벽부터 30∼40명씩 떼지어 몰려든 학생들이 서태지의 이름을 불러대며 울음바다를 이루었으며 일부는 담을 넘어들어가 물건을 챙겨 나오기도 했다.10대 팬들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울분을 터뜨리는가 하면 PC통신에 은퇴번복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다투어 띄워 이날 하루 PC통신은 서태지 이야기로 가득 찼다. 또 지방 학생팬들이 대거 상경,「서태지와…」가 소속돼있던 기획사 앞에서 『서태지가 없는 세상 무슨 맛으로 사느냐』『학교에 다니기 싫어졌다』며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태지 은퇴저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어 방학중인 일선 여중·고 교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은퇴선언에 따라 25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핸드볼 대잔치」축하공연이 취소되는 등 이미 출연계약이 돼있던 각종 공연 및 방송스케줄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서태지…」의 정확한 은퇴이유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있다.다만 최근 4집앨범을 발표하면서 노래가사와 관련해 공연윤리위원회와 마찰을 빚고 형사고발 당하자 가수활동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서태지 자신이 음악성에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선택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또 서태지가 최근 새로운 록음악 세계를 시도하면서 다른 두 멤버 양현석·이주노와 갈등을 빚은 것이 은퇴이유가 됐다는 소문도 있다. 은퇴이유야 어떻든 「서태지…」의 은퇴선언에 충격을 받은 10대들의 걷잡을 수 없는 집단행동과 파행이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없지 않아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불안해 하고있다.
  • 「대책본부」 이전… 삼풍주유소 영업 준비/「삼풍」현장 이모저모

    ◎일반병실 옮긴 박양 밥먹기 시작/고객 대피시킨 삼풍간부 시체로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 나흘째 입원하고 있는 박승현(19)양은 건강회복이 예상외로 빨라 18일 하오 4시쯤 일반병실로 옮겨 저녁에는 죽대신 밥을 먹었다고 병원관계자가 전언. 병원측은 이날 『박양의 콩팥기능과 혈압,맥박,체온 등 신체기능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이며 정신적인 충격도 치료를 받으면서 상당히 나아지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 ○…이날 하오 3시쯤 롯데월드 김승웅(52)관리이사가 박양의 입원실로 찾아와 잠실 롯데월드어드벤처 연간 초대권 1장과 롯데월드 인형인 「로티」「로리」,격려금등을 전달. 김이사는 유지환(18)양과 최명석(20)군에게도 1회용 초대권 20장을 전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난 지난달 29일부터 서초구청의 임시대책본부로 쓰여 그동안 날마다 2천∼3천명의 자원봉사자·취재진등이 북적대던 삼풍주유소가 19일 임시대책본부가 사법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20일만에 정상을 회복. 삼풍주유소가 그동안 입은 경제적 손실은 지난해 이 기간동안 하루 평균 5천만원의 매출을 보인 점을 고려할 때 모두 10억원에 이른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 때문에 다른 어떤 자원봉사단체보다 큰 기여를 한셈. ○…잔해 제거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서울시 사고대책본부는 B동 지하 점포주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 상오 11시쯤부터 물품반출을 시작. 이날부터 오는 22일까지 5일동안 실시되는 물품반출은 무너지지 않은 B동 지상 1층 서울은행 삼풍지점을 비롯,52개 점포가 대상. 서울은행 삼풍지점 이병하(44)차장과 직원 15명은 이날 상오 11시부터 3시간여동안 지상 1층 사무실과 금고,대여금고의 잠금장치를 풀고 안에 있던 대출·예금관련 서류와 전표등 서류를 자루에 담아 반출. ○…서울시 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시체의 신원확인에 필요한 「정밀조사카드」 1백3장을 다시 배포하는등 신원확인 작업에 비상. 대책본부는 이 카드에 사고당시 실종자가 갖고있던 반지와 목걸이등 장신구와 의상 종류및 색깔,명찰 패용등을 상세히 기록하도록 조치. ○…시신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 그동안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숙녀복담당부 강신태(40)부장과 김정문알로에 김정문(68)회장의 부인과 아들의 시신이 이날 상오 차례로 발견돼 온통 울음바다. 특히 강부장은 사고가 나자 직원들과 일부 고객을 대피시키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고객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가 소식이 끊긴 희생의 인물로 소식을 들은 백화점 동료들은 모두 울음. 상오 9시40분쯤 중앙홀 지하에서 함께 발견된 김회장의 부인 유인자(32)씨와 아들 남늘군(2)은 사고가 나던날 저녁 찬거리를 사기위해 백화점에 갔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는 것. 김회장은 어린 아들과 부인의 생환을 기다리며 애태워 오다 이날 비보를 접하고 시신이 안치된 중앙대 용산병원에 가족과 함께 달려와 오열. ○…A동 지하1층 서점에 갔다가 실종됐던 네살난 장혜영양과 외할머니 서애경씨(65)의 시신도 이날 상오 7시15분 나란히 발굴돼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평소 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혜영이는 사고날 하오 5시30분쯤 엄마를 졸라 차를 타고 백화점에 도착,외할머니 손을 잡고 책을 사러 서점에 들어갔다가 끝내 20일만에 주검으로 되돌아온 것.
  • 이회장 과실부인… 책임회피 일관/「삼풍」붕괴수사·압수수색 이모저모

    ◎3곳 수색 실시… 뇌물준 증거 확보실패/잠긴 이사장집 열쇠전문가도 못열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 신광옥 서울지검 2차장)는 6일 하오 1시 이 백화점 이준(73)회장의 서울 중구 신당동 399의 46 자택,이한상(42)사장의 서초동 삼풍아파트 21동 503호 자택,서울 동대문구 청평화상가 4층 삼풍건설산업 사무실 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구청 공무원 등에 대한 뇌물수수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는데는 실패. 수사본부는 이회장 집에 서초경찰서 강폭반 형사 3명을 투입,장롱·서랍 등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비밀장부나 예금통장 등을 찾지 못했으며 3중으로 잠겨있는 이사장의 집 현관문은 열쇠전문가조차도 열지 못해 하오 4시쯤 철수.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백화점측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이미 중요한 서류 등을 빼돌렸을 것으로 보고 이번 수색에서 큰 소득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 한편 이회장의 집은 대지 2백여평에 건평 80여평의 2층 슬라브 주택으로 주변 땅값을 1평에 7백만원씩 쳐서 14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설명.70년대 중반 1백20여평의 단독주택을 구입한 이회장은 옆집 3채를 더 사들여 정원으로 꾸몄다는 것. ○…서초경찰서에 구속수감돼 있는 이회장은 여전히 백화점 붕괴에 대한 과실부인과 책임회피로 일관,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 수갑을 차고 서울시청 관계자들과 피해보상단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잠시 유치장에서 나온 이회장은 『사고 직전 왜 대피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백화점은 내 전재산이었다』고 동문서답. 이회장은 또 재산기증 등 구체적인 보상책에 대해서도 『아직 생각해본 바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미안하다』,『할말이 없다』는 등 상투적인 사과발언으로 일관. ○…수사본부는 설계변경을 승인해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수배된 양주환(44·현 중구청 건축계장)씨 등 전·현직 서초구청 공무원 9명을 검거하기 위해 전담반을 편성,이들의 자택과 연고지 등에 급파했으며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전화도청에 나서는 등 총력. ○…삼풍백화점에 대한 불법 증축허가 등으로 검찰수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청에서는 직원의 대부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사방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 특히 조남호 초대민선 구청장이 검찰에 곧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지방자치시대에 구민의 대변기관으로 탈바꿈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이날 하오 4시10분쯤 발굴돼 노원 을지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이해경씨(26)의 유족들은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상태여서 사고 당시 차고 있던 예물시계와 반지,제왕절개 수술 자국으로 가까스로 신원을 확인. 남편 임성욱씨(26)는 이제 겨우 84일 된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뜬 아내의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 망연자실하며 눈물. 숨진 이씨는 이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다 출산을 앞두고 그만둔 뒤 사고 3일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지하 1층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해왔는데 사고 당일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 ○…지난달 30일 B동 1층 엘리베이터안에 갇혀 8시간여의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진 변동희(50·건축업)씨의 장남인 변성재(20·연세대 전기공학과 1년)군이 이날 상오 아버지가 비명에 숨져간 장소를 찾아 오열. 변군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집안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버지가 지난 89년 작성한 유서를 공개하기도. ○…6일 상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영희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이 학교 4학년 4반 담임 김영옥(48)교사의 노제는 2백여명의 어린 제자들과 동료,학부모들의 통곡으로 울음바다. 친구들과의 모임 때문에 백화점에 들렀다가 운명을 달리한 김교사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는 20여분 동안의 노제를 마친 뒤 학생들의 비명과 통곡 속에 비가 올듯 잔뜩 흐린 하늘을 뒤로 하고 장지로 향했다. ○…서울시 사고대책본부는 B동 지하 2·3층 주차장에 있는 차량 1백16대의 소유주들이 차량을 빨리 돌려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차량번호 및 소유주 확인작업을 거쳐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정. ○…이번 사고는 동원된 소방인원과 장비의 투입 규모면에서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사건·사고 부문 신기록을 수립할 것으로 소방관계자들은 전망. 서울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현장에 투입된 인원과 장비는 각각 6천2백32명과 1천4백38대로 이제까지 최대의 인원과 장비가 투입된 것으로 기록된 지난해 12월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때의 10배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구조작업을 위해 부산·대구·광주·인천·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원정을 온 것 또한 전에 없던 일.
  • 자!5월이다(임춘웅 칼럼)

    대구지하철공사장 도시가스폭발사고로 우리는 또한번 분노하고,개탄했다.서울 아현동 도시가스폭발사고가 난 지 5개월이 채 안됐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터지는 이 땅의 현주소가 과연 어딘지 우리는 다시 한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4월은 일본 요코하마시 전철역 독가스테러사건,미국의 오클라호마시 폭판테러사건으로 더욱 어지러웠다.요코하마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한 도쿄 사린독가스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도 안된 일이었고 일본 전국이 비상경계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바로 우리와 지근거리에 있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지만 테러의 성격이 우리도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라는 우려와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사건이다. 오클라호마사건도 다를 바 없다.이런 테러는 바로 우리자신이 피해자 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독가스사건과 우리에게 준 심리적 충격이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장이 「양심선언」이란 것을 하는 세상이다.지하철공사의 최종책임자가 지금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하철공사가 엉망이란 고백이다.시장의 「양심선언」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그러나 잘못된 것을 덮어두거나 위험한 것을 아니라고 우기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알만한 사람들을 시켜 알아봤더니 지금 공사중인 5호선지하철 하나에서만 무려 2백쪽 책한권 분량의 지적사항이 나타났다는 고백이다.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이것이 우리의 수준이고 우리의 한계다. 잔인했던 4월의 마지막날,대구사고로 졸지에 세상을 떠난 대구영남중학교 학생 32명의 합동영결식장에서 한 급우는 조사를 이렇게 했다.『잘 가거래이……』 어른들은 4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일까.영결식장을 울음바다속으로 몰아넣은 그 절절한 한마디 『잘 가거래이……』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4월의 아픔과 4월의 교훈을 새기고,다시 새기는 자기시련이 따라야 한다.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부터 무슨 일을 어디서부터 해나가야 할지를 챙겨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5월을 맞아야 한다.어둡던 그 4월에 영영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이제 5월이다.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어느새 푸르름이 무성해진 5월의 감동을 맛보아야 한다.저 신록의 감동은 바로 생의 환희다.그 빛나는 색깔은,그 위대한 생명력은,쌓였던 고통과 슬픔,절망과 좌절을 털어버리고 일어서라는 신의 계시다.그래서 봄은 더욱 빛나고 찬란하다. 자! 이제 4월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서자.모두들 일어나 저 빛나는 신록의 산야를 바라보자.자연은 5월이 되며 다시 태어난다.어둡고 칙칙하던 겨울옷을 벗어 던지고 밝고 산뜻한 새옷으로 갈아입는다.이제 우리도 새옷으로 갈아입을 때다. 자! 5월이다.다시 시작하자.
  • “못다핀 꽃들 당신이 인도하소서…”/사고후 첫 등교 영남중 표정

    ◎희생된 교사 영결식장 또한번 통곡의 바다로/슬픔딛고 열심히 공부… 사고없는 세상 만들자 대구 가스폭발 사고 4일째인 1일까지 피해복구가 웬만큼 이뤄졌으며 장례식도 이어졌다. ○…42명의 희생자를 낸 영남 중학생들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1일 사고 후 처음 등교.그러나 정상 수업 대신 자율학습을 했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 2명을 잃은 3학년 8반 교실에는 교단과 빈 책상을 국화꽃이 대신한 가운데 학생들의 흐느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3명이 희생된 2학년 1반 교실은 『친구를 잃은 슬픔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 이런 사고가 없는 세상을 만들도록 하라』는 담임 교사의 당부에 한동안 울음바다를 이뤘다. ○…영남중 교정에서 열린 이종수 교사(39)의 영결식장은 통곡의 도가니였다.『우리는 압니다.당신과 마흔두명의 우리 아이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게 한 것은 잘못이 거듭되어도 반성할 줄 모르는 불성실과 뻔뻔스러움이라는 것을…』 이길우 교장이 추도사를 읽는 중 50여명의 교사와 1천6백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오열했다. 가랑비까지 뿌린영결식에서 총학생회장인 나형준군(15·3학년9반)은 『어처구니없는 참변이 이 땅에서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세상을 바로 잡아가는데 선생님의 남기신 뜻이 큰 힘이 돼 주시옵소서…』라고 추도. ○…대구시와 자매결연이 된 미국 애틀랜타시와 중국 청도시 등 외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대구 가스사고 희생자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하는 전문을 보내왔다. ○…대책본부는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끝나는 2일부터 유가족을 방문,위로하기로 했다. 구청 과장급 이상의 간부들이 애도의 뜻을 전하고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청취,수습대책의 요구사항을 청취,수습대책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한편 대책본부에 이날까지 1백70여건에 42억3천여만원의 성금이 접수했다.
  • 비탄속 유족들의 분노/박찬구 사회부 기자(현장)

    ◎“사후처리 미흡”… 2중 설움 폭발 『아이고 석아…』 어이없는 참사를 빚은 대구도시가스 폭발사고 이틀째인 29일 대구보훈병원에는 밤새 통곡한 유족들이 이날 아침 빈소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앞에 주저앉아 불귀의 객이 돼버린 가족의 영정을 힘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영안실이 턱없이 좁아 앞마당에 20여개의 천막을 치고 밤을 꼬박 샌 유가족들은 아직도 엄청난 비극이 믿기지 않는 듯 도리질치고 있었다. 이틀째 슬픔을 삭이느라 기진맥진해진 이들은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한탄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아들을 찾으며 몸부림치는 어머니,지아비를 잃은 여인,손자의 신발을 쥐고 눈물만 흘리는 할아버지­이들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 이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영안실에는 기가 막힌 죽음의 사연들이 가득 차 있었다. 『몇분만 늦게 갔어도 살 수 있었는데…』『버스가 조금만 일찍 출발했다면…』 그러나 유가족들의 애끊는 몸부림을 누구도 속시원히 받아줄 수 없었다. 『사고대책본부가 복구에만 신경쓸뿐 유가족들의 처지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30대남자의 절규에 합동분향소는 온통 울음바다로 돌변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당국은 사건의 파장을 줄이는 데만 급급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번만큼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치인들의 방문 때문에 구조활동이 늦어지고 있다더라』는 등 격렬한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합동분향소의 울부짖음이 순식간에 터무니없는 사고를 당한 분노로 이어졌다. 사각형 반듯한 영정에서 조용히 미소짓는 어느 나이어린 중학생의 꿈이 차가운 영안실 한 귀퉁이에서 애절한 향냄새와 함께 스러져가고 있었다.
  • “죽음의 향연”… 6·25(두만강 7백리:8)

    ◎“조국위해 몸바쳐라” 조선족 징집/인민군에 편입… 2달 훈련받고 출전/연합군 폭격에 화룡시 일대 “쑥대밭”/돌아온 포로들 “차라리 남쪽에 남았더라면” 중국에 사는 전 북한의 인민군 부소대장이상 퇴역 군인들이 불합리한 대우에 항의하여 서명운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오늘 중국에 자리잡은 인민군 퇴역 군인들은 거의 모두 중국 인민 해방군 출신이다.이들은 본래 중국 내전의 공로자들인데 1949년 모택동과 주덕의 명령에 좇아 조선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였다.이들은 6·25전쟁에서 주역 노릇을 했지만 퇴역하여 중국으로 돌아온 후 농민이 아니면 공장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이에 비해 중국 지원군에 소속되었던 군인들은 간부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자연 분통이 터질 일이기도 했다. ○두달간 훈련받다 출전 이들은 연변 자치주 정부의 지지를 받아 대표를 파견하여 중앙에 신소,끝내 승소하였다.모든 조선인민군 부소대장이상 퇴역 군인들은 현재 간부대우를 받고 있고 자식들도 취직시켰다. 화룡시 승선진 고성리촌의 김성묵(70)은 1947년 중국 내전에 참전,1950년 4월 조선으로 나가 인민군 7사단에 편입되었던 사람이다.중국군의 군사민주에 젖어 있던 그들은 인민군 명령제에 잘 습관이 되지 않았다.소련군인식으로 다리를 꼿꼿이 펴고 행군하고 총도 왼쪽에 메야 했다.돌격시에는 꼿꼿이 서서 달렸다.두달동안 훈련을 받다가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고 한다. 『6월25일 새벽 맹렬한 포사격을 끝내고 국군진지로 돌격해보니 여자 방송원 한사람만 남았습데다.참말로 포탄 값도 못한 셈이디요.인민군들이 물밀듯 탕크를 몰고 서울에 들어가니끼리 우리를 소련군인줄로 알았다고 기래요.인민군이 탕크에서 나오자 깜작 놀라는 눈치였읍네다.내가 소속된 사단은 이천에서 국군의 반격을 받아 쌍방이 숱한 사망자를 냈수다.국군 포탄이 대피호에 떨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는데 팔이 끊어지고 다리를 상했디요.평양 웽그리아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다가 매일 20리씩을 걸어서리 평양에서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지 뭡네까.유수현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이듬해 3월에 전쟁에 참가했디요.그 전쟁 말도 말라우요』 연합군의 인천상륙으로 후퇴한 북한 인민군은 중국경내로 전이했다.겨울에 두만강을 건너 온 인민군은 연변의 화룡·용정 등에 집중하여 사민들 집에 10여명씩 거주했다.중국에 친척이 있는 백성들도 강을 건너 피란을 했고 그외는 산속에 땅굴을 파고 살았다.그해 음력 10월1일(상사날)미군 비행기가 무산을 처음으로 폭격했고 이틀 후에 두번째로 폭탄을 내리부었다.화룡시 덕화진 천증백노인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 상황이 잘 떠오른다. 『첫 폭격을 당한 무산에서는 17살 최호림학생이 죽었디요.비행기는 중국쪽에서 선회하여 조선쪽으로 꽂히면서 대두병같은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포를 갈겨댔지 뭡네까.비행기가 어찌도 낮게 떴던지 자루 긴 올개미로 잡아댕기면 떨어질것 같습데다.조선쪽에서 폭파하는 진동에 중국쪽 마을 유리며 문짝이 떨어져 나갔디요.공습 사이렝이 울리면 조선 사람들이 새까맣게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왔는데 그러면 중국 쪽에서는 못오게 막더라 이 말입네다.사람들은 울면서 같이 삽시다고 손이 발이되게 빌어댔디요』 ○온마을 온통 울음바다 화룡시 승선진 고성리와 조선의 삼장은 한 마을이나 다름없어 폭탄세례를 당했다.한족 한사람이 수레를 몰고 가다가 폭탄에 맞아 죽었는데 유일하게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승선진 소학교 운동장에는 땅에 박힌 불발탄이 70년대에까지 있었다.그것은 반미 교육의 증거로 오래오래 써먹었다.천증백노인의 회고담을 계속 들어보면 연변의 조선족들도 6·25전쟁에 많이 시달렸다. 당시 민심은 황황하기 짝이 없었다.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식구들이 살아 있을 때 먹는다고 가축들을 잡아 얼려두고 먹어댔다.군인 모집이 나오면 적령 청년들은 물론 온집안이 숨이 후줄근했다.참전하면 영광이라고 온마을이 나서서 환송했지만 참전당사자와 가족들은 상사가 난 집 모양으로 울음바다였다.용정시 백금향의 박창묵(67)은 당시 6·25전쟁에 참전한 조선족의 한 사람이다.『나는 국민당군과 싸우다 47년에 부상을 입고 대퇴했수다.그후에 연변 통역학교를 다닐 때에 조선전쟁이 터졌디요.하루는 주장이자 우리 학교 교장인 주덕해동지가 와서 조선전쟁의 준엄한 형세를 이야기하면서 청년들은 국가를 위해 몸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동원을 하데요.총알에 죽을 팔자거니 생각하니 눈앞에 아뜩합데다.우리 학급은 33명인데 여성 6명을 빼고 몽땅 잡혀갔디요.결국 절반이 죽었디만….다행이 지원군에 편입되어 통역을 맡는 통에 살아왔디요.물론 싸움판이었습네다만,안전지대에서는 남한 구경을 하고다녔디요. 마을에 열사증이 내려오면 군인가속들은 잔뜩 긴장해서 촌장과 말다툼하기 일쑤였다.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영광이요 뭐요 하고 말꼭지를 떼면 개나발을 불지 말고 이름부터 대라고 소리를 질러댔다.일단 희생자를 알게 되면 가속들은 기절해 버리고 다른 가속들도 자기의 불행처럼 여겨 통곡을 했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한국전쟁에 나갔다가 12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번에 찾아온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의 김진수(65)는 동해바다 함포사격에 부상을 입고 1952년 9월23일에 붙잡혀 거제도에서 포로로 있다가 정전후 1954년 8월5일 포로 교환에 넘어왔다.포로병을 반역자처럼 대했던만큼 문화대혁명시기까지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고 살아왔다.지금은 매달 소대장급으로 3백50원의 연금을 받고있지만 알코올중독으로 흐리멍텅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남에 떨어져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괜히 돌아와서 고생을 했수다.부암에서 나와 같이 참전했다가 포로되었던 남원준과 이동준은 한국에 남았었는데 지금 꽤 잘 사는가 봅데다.나한테 편지가 왔댔소.보고 싶다면 보여주갔수다』 ○약혼녀… 다른데 시집가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의 조창렬(84)노인의 둘째 동생 봉룡(1926년생)은 1945년 중국내전에 참군했다가 용케 살아났으나 한국전쟁에 나가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전사했다.그는 결혼날까지 받아놓고 미처 성례를 이루지 못하고 군에 갔었다.매년 두번씩 오던 편지가 한 이년 끊기더니만 하루는 문득 열사증이 왔다.약혼자가 돌아와 머리를 얹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미혼녀는 다른 데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열사증과 함께 무흘금 2백80원을 줍데다.지금은 매달 45원씩의 돈을 부모 대신내가 받고 있디요.동생 목숨 값이라 생각하니 돈을 받아 쥘 때마다 가슴이 미여집네다』 벌써 미수를 바라보는 조창렬노인은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동생의 열사증 앞에서 한숨을 지었다.
  • 경찰 컴퓨터 조회로 30년만에 남매 상봉

    ◎독 이민 여동생­음식점 경영 오빠 해후 4살때 가족과 헤어져 고아원과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혼자 지내다 결혼직후 독일로 이민간 30대주부가 6일 경찰 컴퓨터조회로 30년만에 오빠와 해후해 화제. 86년 독일인과 결혼,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오정미(34·요리강사)씨는 지난달 28일 관광차 입국했다가 서울 마포경찰서에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이날 하오3시쯤 경찰서 민원실에서 오빠 오권택(36·음식점 경영·경기 오산시 청학동)씨를 다시 만났다. 오씨 남매는 너무 어렸을때 헤어져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처음에는 어색한 표정이었으나 『박석고개에서 살던 것 기억나느냐,둘째 이모가 겨울에 폐렴으로 죽었지』라는 말에 남매임을 확인,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바다.
  • 성수교 참사 무학여고 장세미양/어제 「눈물의 영혼졸업」

    ◎아버지가 명예졸업장 받아/“수학선생님 꿈 못피우고…” 고실 울음바다 13일 상오 11시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 강당에서 열린 제50회 무학여고 졸업식. 5백2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이날 졸업식에서는 지난해 10월19일 어처구니 없는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장세미양의 아버지 장영남(49)씨의 모습이 보였다. 장씨는 딸의 명예 졸업장을 받기위해 식장으로 나왔다.가슴에는 평소 딸이 좋아하던 노란색 튤립 여섯송이에 안개꽃을 감싸 만든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장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졸업식장을 지켜보며 눈물을 애써 참았다. 식장에서의 졸업식이 끝난뒤 장씨는 세미양의 학급이었던 3학년 2반 교실로 돌아왔다. 『장세미』담임인 유갑례 선생이 졸업생중 맨 먼저 세미양의 이름을 부르자 대신 세미양의 자리에 앉아있던 장씨의 눈가엔 이슬이 맺혀지기 시작했다.결국 명예졸업장을 전달받으면서 장씨는 끝내 오열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교실안의 조용한 울먹임은 이내 흐느낌으로 이어졌다.흐느낌은 이내 통곡으로 변했고 교실안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졸업도 못한 자식한테 이제 졸업장이 무슨 소용입니까』 장씨는 세미양이 친구들과 찍은 졸업사진이 담긴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쓰다듬으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용돈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더 잘해 주는 건데…』 장씨는 사고가 나기전 세미양이 생일선물로 준 라이터를 마치 졸업하는 세미양의 손이라도 되는 양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세미양과 가장 친했던 친구 오명자(18)양은 『세미는 수학선생님이 되고 싶어했어요.같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었는데….아마 하늘나라에서는 대학생이 됐을꺼예요』라고 울먹여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 우리에겐 「국민적 영웅」이 없는가(박갑천칼럼)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체포하러간 의금부도사 일행이 한산도에 닿았을때 충무공은 자리에 없었다.군사를 이끌고 가덕도앞바다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이 온 까닭을 안 군사들과 백성들은 배쓱거리면서 울분의 울음을 터뜨렸다.­『이럴수가 없습니다.정녕 이럴수는 없습니다』 함거(함차)를 타고 압송길에 오르자 온섬이 울음바다로 되었다.바다도 함께 울었다.지나는 고을마다 백성들은 길을 막으며 몸부림쳤다.­『사또,어디로 가십니까.우린 인제 죽었습니다』 그가 3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어 호남쪽으로 내려갈때 백성들은 끄먹거리던 국운에 파랑불이 켜짐을 느낀다.연도에 엎드려 소리친다.­『우리 사또가 다시 왔다.인젠 우리도 살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긴 하다.그렇대서 누구나 이렇게 추앙을 받는 것은 아니다.그는 백성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백성의 영웅이었다. 이충무공의 경우야 국난 속에서 나라를 구한 백전백승의 명장이었기에 그렇다 치자.문신으로서 그같은 민중의 영웅이 될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할것인가.사람마다 꼽는 기준은 다를 것이다.그러나 요즘의 시류와 연관지으면서는 정암 조광조를 생각해 볼수도 있겠다.그는 썩은 냄새가 물씬거리는 훈구세력을 견제하면서 혁신정치를 펴나갔던 이상정치인이요 철인정치가였다.너무 과격해서 꺾였다고 말하여지지만 이율곡이 그의「석담일기」에 적어놓은걸 보면 오히려 자체내 과격론 억제에 노력했던 것으로도 나타난다.부정부패를 추방하며 새바람을 몰고 오는 그가 그당시 백성들의 눈에는 영웅으로 비쳤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의 이탈리아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되고 있는 사람이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이다.우리 조정암의 혼령이 그쪽으로 건너가 재생했나 싶어질 정도로 그는「깨끗한 손 운동」(부패추방운동)을 주도해온 사회정의 구현의 행동파였다.그의 사임이 몰고온 파문이 온 이탈리아를 뒤흔든다.정부와는 관계없는 사임이라 해도 「이탈리아식 훈구파」의 입김이 서린 사임이었을 것임은 그의 몸맨두리로 미루어 짐작할만 해진다.과연 아퀴는 어떻게 날것인지. 「영웅숭배」는 과거에 있었듯이 현재에도 있고미래에도 영원히 있을것이라고 토머스 칼라일은 말한 일이 있다.그런데 「과거의 사람」아닌 「현재의 사람」을 두고 하는 영웅숭배가 오늘의 우리에게 있는것인가 생각해본다.가슴에 와닿는 영웅은 우리에게 없는 것인가.있는데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숭배」도 못하고 있는것인가.피에트로 검사는 우리에게까지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 상장 못받고 떠난 태민군/김병철 전국부기자(현장)

    ◎시상 하루전 유괴당해 하늘나라로 『이 상장을 누구에게 줘야합니까…』 3일 상오10시30분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선부국민학교 3학년3반 교실. 집앞에서 친구와 놀다 영문도 모른채 낯선 어른에게 끌려가 무참히 살해된 급우 강태민군(8)의 죽음을 애도하는 고사리들의 기도회는 금세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한난수 담임교사(59·여)는 『이제 이 상장을 누구에게 줘야합니까』라며 주인잃은 상장을 어루만졌다. 이 상장은 태민군이 우수 독서감상문을 써내 유괴된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주기로 했던 것. 그러나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태민군은 끝내 이 상장을 받을 수 없었다. 한교사는 『얼마전 엄마를 돕기 위해 앞으로 설거지와 빨래를 도와드리겠다며 「엄마 화이팅」이라고 외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태민이가 며칠째 학교를 나오지 않아 아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너는 평소 나에게 나쁜 사람이 잡으러 오면 교통순경이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살려달라고 말하라고 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했니.그 아저씨가 너무 무서웠니』 태민이의 짝 문경이(8)는 마지막 편지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 태민이를 마구 원망했다. 문경이는 『너는 나쁜 아저씨때문에 우리들 곁을 떠났지만 우린 어른이 되서 그러지 말자』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지만 태민이는 우리곁에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반 급우들은 조막만한 손을 감싸며 간절히 기도했다.하늘나라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영원히 잃지 말라고. 기도회가 끝나고 급우들이 마지막 편지를 쓰는 동안 태민이가 없는 빈 자리에는 「우리 착한 태민이를 돌려주세요.태민이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라는 고사리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노란 국화송이가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놓여져 있었다.
  • “선생님 다시 뵐수 없나요”/김태균 사회부기자(현장)

    ◎“사고 날벼락” 안암국교생들 눈물 범벅 『다시는 선생님을 볼수가 없는 건가요』 22일 상오 9시10분쯤 서울 성북구 안암동 안암국민학교 전체교실에서는 출근길에 성수대교사고로 희생된 이 학교 윤현자(59)·최정환교사(55)에 대한 어린이들의 추도묵념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문에서부터 시작된 숙연한 분위기는 교실안 어린이들의 흐느낌으로 이어져 평소와 같은 토요일 아침의 들뜬 분위기는 어디서고 찾을 수 없었다. 윤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2학년 4반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날 아침에야 전해들었다.4반 어린이들은 묵념이 시작되자 서로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울어 장내가 울음바다가 됐다. 교실앞 윤교사의 책상위에는 『어린이들을 잘 가르치기위해서 때로는 매도 필요하다』고 얘기해오던 노선생님의 「사랑의 매」만이 주인을 잃은채 덩그마니 놓여있었고 의자에는 윤교사가 교실에서 항상 입던 보라색 셔츠가 생전처럼 그대로 걸려 있어 어린이들의 슬픔을 더했다. 『선생님은 분명히 천당에 가실거예요.친할머니 같았으니까요』 정다운양의 모아쥔 두손에는 가신 선생님에 대한 애틋한 기도가 가득 담겨있었다. 최교사의 3학년2반 어린이들은 이미 사고당일인 21일 낮 선생님들끼리 모여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놓았지만 임시로 한 학부모가 들어와서 진행하는 수업중에도 혹시나 선생님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흰 국화 한다발이 놓여있는 교탁에만 연신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허리디스크로 몸이 불편하면서도 『몸이 약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며 자신들과 축구도 함께 하던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젖은 눈가에 가득했다. 말썽꾸러기였지만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았던 김규훈군은 『복도에서 떠들고 뛰어다니다가 선생님한테 들켜 벌청소를 할때 「앞으로는 떠들지말고 공부열심히해라」고 한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 자꾸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슬픔이 가득한 학교를 뒤로 하면서 불시에 따르던 선생님들을 잃은 동심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야 할 것인가 착잡한 마음이었다.
  • “친구여 고이 잠들어라”/무학여고 눈물의 애도식

    ◎전교생 국화들고 등교… 수업중 오열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8명의 학생이 숨진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에서는 22일 상오 9시15분부터 15분동안 교내방송을 통해 「성수대교참사 희생학생 애도식」을 가져 교내가 온통 울음바다. 묵념을 시작으로 이 학교 김영의교장의 목메인 애도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자 36개 학급 1천7백여명의 학생들이 눈물을 글썽였으며 더러는 책상에 엎드려 오열. 학교측은 애도식이 끝난 뒤 상오 9시40분 수업을 시작했으나 학생들의 흐느낌은 수업시간에도 계속. 학생들은 이날 등교때 국화꽃을 들고와 숨진 친구들의 책상 위에 하나 둘씩 올려놓아 애도식이 시작될 때는 수북히 쌓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학교측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직원 조문단」을 구성,방지거병원 등에 흩어져있는 학생들의 빈소를 번갈아 찾아가 유가족들을 위로. 교사들은 모두 가슴에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검은 리본을 달고 영안실을 찾은 조문객들을 직접 맞이하는 등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을 대신해 궂은 일을 맡기도.
  • 버스안 피 얼룩… 책가방·신발 널려/성수대교 붕괴 현장

    ◎경찰 사망집계 하루종일 혼선/“남편 출근 했나” 회사마다 전화 빗발/비상신고 전화에 시큰둥한 반응도 ○…경찰은 이날 늑장 출동·구조작업과 함께 사망자 확인작업 또한 지연,상오 한때 사망자가 48명으로 발표되등 하루종일 오락가락해 눈살. 최종 집계결과 사망자는 32명,부상자는 17명으로 밝혀졌는데 사망자가 이처럼 늘어났던 것은 사망자들을 병원으로 바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중복계산되는등 다소 혼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궁색한 변명. ○…구조작업이 진행중이던 상오 9시30분쯤에는 무너져 내린 5∼6번 사이의 교각상판의 인접부분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려 경찰과 구조반이 황급히 성수대교 북단으로 대피하기도 했으며 경찰은 다리의 또 다른 상판이 추가로 무너질 가능성에 대비,붕괴지점에서 1백여m 떨어진 다리 양측에 밧줄을 치고 취재진과 시민을 통제했으나 사고현장 주변인 올림픽대로와 남북단의 강변도로엔 2천여명의 시민들이 몰려 혼잡. ○…이날 출근길에 사고현장에서 추락직전에 멈춰 자신의 승용차 핸드폰으로 경찰서등에사고신고를 한 유해필씨(42·선경증권 법인영업1부장)는 관계당국의 무성의로 사고수습이 늦어졌다며 분통. 유씨는 사고직후 112·119에 전화로 『대형사고가 났으니 빨리 조치를 해달라』고 했으나 상대측에서는 한결같이 장난전화인 것으로 아는 듯 시큰둥했다고 설명. 유씨는 또 114교환에 물어 청와대민원실과 내무부상황실 전화번호를 알아내 이곳에도 전화를 했으나 오히려 『당신 누구야』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해 전화를 끊었다고 흥분. 유씨는 교통방송에 연락,끝내 사고상황등을 알렸지만 신고를 접수한 당국이 좀더 진지했다면 사고수습을 좀더 원활히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 ○…서울시교육청은 사고에 따른 중·고교 및 국교생들과 교사들의 피해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 시교육청은 동부·북부·중부 및 강남과 강동교육청에 긴급공문을 보내 결석학생과 결근교사 실태와 원인을 확인,보고토록 지시. ○…강북지역에 있는 각 직장에서는 출근후 임직원들의 안전여부를 확인하느라 큰 소동을 빚었고 일부 직장에서는 남편의 무사출근을확인하려는 강남지역거주 주부들의 전화가 빗발.아침출근을 「무사히」한 직장인들은 사무실에 삼삼오오 TV를 보며 『지진같은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다리가 중간에 끊어질 수 있느냐』며 흥분. ○…성수대교 붕괴사고현장은 납짝해진 버스의 잔해등 차량들과 처참하게 떨어져내린 교각상판의 잔해등으로 폭파현장을 방불케 하는 참혹한 모습. 붕괴된 교각의 상판은 물위로 내려앉았으며 추락한 한성운수소속 16번 시내버스 1대와 봉고승합차·프라이드·세피아승용차등 3대의 다른 차량들도 어지럽게 널려 사고당시의 아비규환상황을 가늠케 했다. 특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냥갑처럼 납작하게 일그러진 버스와 상판 곳곳에는 희생된 승객들의 피로 얼룩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 상오10시쯤 구조반들이 기중기를 이용,버스를 바로세우자 바닥에서는 짓이겨진 남녀 시체 6구가 발견됐으며 버스안에는 학생들의 가방과 신발·곰인형·사진등 승객들의 소지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경찰과 군은 22일에는 순찰정 6정과 해경 특수구조대 보트 2정·헬기2대를 동원,한강 하구까지 수색작업을 다시 벌일 예정이나 또다른 피해 차량이나 실종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으로 관측. ◎“8명 참변” 무학여고 울음바다/비보에 학우들 부둥켜 안고 통곡/딸 확인하러온 아버지 충격 실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옆자리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였는데…』 성수대교붕괴사고로 꽃다운 8명의 제자와 친구들을 잃어버린 서울 성동구 행당동 무학여고 교사와 학생들은 아침 등교길에 일어난 참변에 넋을 잃었다. 특히 3명의 친구들을 한꺼번에 빼앗긴 1학년2반 학생들은 대부분 충격과 놀라움으로 말문을 열지 못했고 일부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측에서 사고소식을 안 것은 이날 상오 8시쯤.전교생 모두가 아침 자율학습을 받기 때문에 상오7시30분까지 등교를 해야 하는데 이때까지 오지 않은 학생이 20여명이었다.비가 뿌리는 궂은 날씨에다 평소에도 지각생이 종종 있었던 터라 별다른 생각없이 수업을진행하던 교사와 학생들은 8시쯤 각 교실마다 설치된 TV에서 숨가쁘게 방송되는 뉴스를 듣고서야 이들의 「지각」이 평소와 다른 것임을 직감,순식간에 각 교실은 비명소리와 울음바다로 변했고 교사들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서도 학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교무실에는 아침 일찍 등교길에 오른 딸의 안부를 확인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전날 밤샘근무를 하고 귀가하던 길에 「설마」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렀던 환경미화원 황인오씨(41)는 딸 선정양(16)의 사망소식에 한동안 실신,주위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사망자가운데 유일하게 3학년인 장세미양(18)의 담임 유갑례교사(50)는 『수능시험을 한달 앞두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세미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가정형편이 어려운데도 근면하고 착해 유달리 정이 가던 아이였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교사와 학생들은 또 『왜 어른들이 잘못한 일로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느냐』며 그동안 문제가 많다고 지적돼온 성수대교의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당국에 분노를 터뜨렸다. 학교측은 학생들의 충격이 너무 커 정상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4교시가 끝난 하오 1시쯤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어쩔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예고된 인재」로 졸지에 사랑하는 제자와 친구들을 잃고 비통해하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차가운 가을비에 섞여 운동장을 적시고 있었다.
  • 「모택동식 절차」 준용 전망/장례식­추도대회 어떻게

    ◎추도대회 모보다 더 큰 규모로 치를듯 북한은 당초 17일로 예정된 김일성의 장례식 계획을 번복,19일에 장례식을 거행하고 이와별도로 20일에 추도대회를 갖기로 했다. 이같이 장례식과 추도대회를 분리한 것은 장례식날에는 「눈물의 인산인해」를 이루고 추도대회는 소위 김일성의 「혁명위업」을 높이 평가하고 이의 계승이 중요하다며 김정일중심의 일심단결을 촉구하는 분위기 전환의 추대대회로 만들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추도대회의 여세를 몰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등을 개최,노동당 핵심지도자들이 비밀회의에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추대」를 추인하려는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김일성의 장례식과 추도대회를 어떻게 치를지는 알려지지않고 있으나 상당부분 중국 모택동주석의 예를 따를 것 같다는게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모의 장례식은 그가 사망한 10일 뒤인 76년 9월18일 천안문광장에서 1백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치러졌다.북한당국은 김일성 사망 이후 12일 뒤에 열릴 추도대회를이보다 더 큰 규모로 치를 것으로 보인다. 김의 장례식행사는 대략 19일 상오10시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0시부터 주석궁(금수산의사당)에 안치됐던 유해가 김일성광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이때 김의 사망이후 허탈감에 빠진 북한주민들의 오열을 유발,「울음바다」로 추모무드를 이끌어갈 것 같다. 이어 20일 거행되는 추도대회는 「민족의 태양」이라고 떠받들던 그의 위상을 감안,12시 정각 3분간의 묵념으로 시작할 것 으로 보인다.이때 평양시와 각도 소재지에서는 조포를 쏘고 기관차와 선박들이 일제히 고동을 울리게 되며 묵념이 끝나면 고인의 업적보고와 추도사 순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추도사는 한사람이 대표로 하기 보다는 당·정·군 뿐만아니라 각계각층에서 대표로 1명씩 나서 『김일성주석에 이어 김정일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어 우리식 사회주의를 완성하자』는 등의 충성다짐대회의 성격을 띠게 될 것 같다.물론 추도사를 맡는 사람은 향후 북한 권력의 중추가 될 실력자들이다. 추도대회가 끝난뒤 김일성의 시신은 일단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 안치됐다가 어느 정도 기간이 경과한 시점에 평양교외 단군릉 근처에 조성된 김일성기념관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많다는 관측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