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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TA 시대-지자체 반응] 수도권 ‘성장책’·지방 ‘대응책’ 희비

    [FTA 시대-지자체 반응] 수도권 ‘성장책’·지방 ‘대응책’ 희비

    ‘위기인가 기회인가.’서울을 비롯,16개 광역자치단체는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소식을 접한 뒤 FTA 협상 발효 이후 접하게 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동북아 금융허브를 앞당기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인천시는 국제도시로서의 위상 강화를, 부산시는 조선을 앞세운 레저보트산업 육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강원도 등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는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 금융허브 추진에 기대 서울시는 ‘서울시의 입장’을 내고 “FTA 타결이 서울의 동아시아 금융허브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여의도에 서울국제금융센터(SIFC)를 세우고 서울을 동아시아 금융산업의 허브로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SIFC와 같은 금융 클러스터를 만드는 등 금융 인프라 설치를 적극 지원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시는 또 서울의 관광도시화에도 FTA 체결이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FTA가 인적·물적 교류의 자유화와 확대인 만큼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자연스럽게 늘 것으로 기대한다. ●부산, 조선·섬유산업 활성화 FTA 체결 효과 극대화를 위해 수혜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집중한다. 부산신항 및 항만 배후 수송로 등 항만물류 인프라를 조기 구축하고 글로벌 물류기업 유치를 통한 물류산업 육성 강화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또 기계·부품·소재 등의 클러스터화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섬유·의류·신발 등의 신기술과 고기능성 소재 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화할 계획이다. 농수산업 등 피해 예상분야에 대해서는 정부의 농어촌 지원 종합대책과 연계해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시장을 겨냥한 레저보트산업 활성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대구, 섬유산업 육성 주력산업인 섬유의 대미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섬유산업 육성에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또 달성군 등 일부 축산농가의 피해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 지원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한·미 FTA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기업과 농민은 물론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 국제도시 위상 강화 경제자유구역 개발에 치중하고 있는 인천시는 FTA 타결이 외자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이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인병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타개될 것으로 판단한다. 시는 경제자유구역이 치중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 IT·BT·CT 개발은 물론 제조업의 2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엠대우자동차 성장에도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광주, 기아차 선전 기대, 한우 농가 보호 주력산업인 자동차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관세 철폐와 FTA 타결에 따른 부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조 9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기아차 광주공장 등 자동차 관련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사랑운동 등을 펼쳐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시는 또 농업 분야의 피해 최소화하기 위해 260여 한우농가에 송아지 평균 거래가격이 기준이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을 보전하는 송아지 생산안전사업을 실시한다. 또 한우 인공수정 지원사업, 한우거세지원사업 등 한우농가 지원에 3억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울산,3대 주력산업 성장 기대 오는 12일 시청 의사당에서 협상타결 내용을 설명하는 지역순회 설명회를 개최하고 이어 이달말 FTA 지역별 영향을 분석하는 세미나를 개최한다. 시는 FTA 타결이 울산지역 3대 주력산업인 자동차·조선·석유화학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FTA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로 했다. 울산시는 자동차 산업은 물론 조선기자재분야에서 수출증대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했다. 또 석유화학산업도 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화와 수요시장 확대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했다. ●강원, 한우 브랜드화 횡성한우·대관령한우·하이록·한우령·늘푸름한우 등 고급 한우의 브랜드화를 통해 FTA 파고를 넘을 계획이다. 전국 한우 사육 규모의 9%에 이르는 지역 축산업 육성을 위해 브랜드화를 더욱 강화해 고급육 육성에 힘쓸 방침이다. 이를 위해 종축통일·사료통일·사용관리시설통일 등 ‘3통’체제를 갖춘다. 양돈 문제도 고급육 생산과 브랜드화, 대규모화로 대형 유통점과 연계해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또 친환경 수출농업과 산림농업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주요 과채류 산지 물량의 규모화 및 조직화를 통한 연합마케팅에 나선다. ●경기, 고품질 농산업, 물류산업 육성 경기도는 김문수 지사 명의의 ‘한·미 FTA 체결에 대한 경기도 입장’이라는 보도자료에서 “FTA 체결 후 뒤따르는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어려움이 예상되는 농업과 일부 제조업 및 서비스업 대해서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면서 “이번 기회에 국가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경기도는 FTA 파장을 대비해 고품질·친환경농업, 수출농업, 농어촌관광활성화 등 10개 분야에 대한 예산지원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대전·충남·북, 농축산 경쟁력 강화 부심 충남도는 농수축산업에서 약 1조 2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됨에 따라 이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충남발전연구원에 의뢰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충남도는 이를 토대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관련 조례정비도 서두르고 있다. 또 오는 9월 외부대책위원회를 소집, 대책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 대책위원회는 경제계 학계 등 인사들로 구성했다. 충북도 역시 농축산업분야의 피해가 예상됨에 따라 고급 브랜드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충북도는 농가지원을 확대하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FTA를 넘을 각오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는 교육 부문과 R&D 부문이 제외돼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IT 등 첨단 업체가 많아 수혜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북, 농식품산업 육성 앞으로 정부의 구체적인 협상내용을 지켜본 뒤 그 영향을 분석해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농식품산업 육성 및 친환경농업 확대, 농가 조직화와 규모화, 농산물 브랜드화 등 농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한다.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축산분야에 대해서는 생산안정, 수급안정 정책을 강화하고 시설 현대화, 친환경유기축산 등 품질경쟁력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 ●전남, 농업부문 육성 74개 과제 FTA 체결로 이익을 보는 산업에서 재원을 마련해 손해를 보는 농업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농·수·축산업의 제도개선 과제 74개를 마련해 정부 각 부처에 건의하기로 했다. 또 수입 쇠고기에 맞선 생산이력제와 브랜드 한우 등 전남도 한우산업종합대책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한우를 제외한 농·수·축산물에 대해 수급 및 가격 동향 등을 자세하게 분석 중이다. 박준영 지사는 “119조원이 들어가는 농림부의 농업농촌종합대책이 6월말까지 나오면 이를 토대로 농업·농촌·농업인 등 이른바 전남도의 3농 정책을 강도높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경북,10대 프로젝트 추진 급변하는 농어업 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경북 농어업 10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위기의 농어업 핵심 분야를 선정,2016년까지 10년 동안 총 4조 543억원을 투입해 중점 육성한다는 청사진이다. 주요 내용은 ▲농어촌 재개발 ▲경북 한우산업 육성 ▲신경북형 사과생산 체계 구축 ▲경북쌀 신유통 체계 구축 ▲친환경 농업·수출전문농업 육성 ▲농업전문 CEO 양성을 위한 농민사관학교 설치·운영 ▲바다 목장화 실현 등이다. ●경남, 축산분야 대책 마련 FTA가 타결되자 관련 부서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TF팀을 구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번 협상 타결이 도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 대책 및 향후 계획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피해가 예상되는 축산분야에 대해서는 정부에 특별대책을 건의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김종부 농수산국장은 “농림부가 앞으로 10년간 농업분야에 119조원 지원계획을 수정하거나 이와는 별도의 대책이 요구된다.”면서 “농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감귤 육성전략 마련 제주 감귤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감귤산업 육성전략을 마련, 단계별로 추진하기로 했다. 감귤육종연구소를 설치해 고품질 우량 신품종 감귤을 집중 공급하고, 권역별 고품질 감귤 생산단지 조성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권역별 거점산지 유통센터 건립 등 선과장 대형화 시설 등으로 유통체계를 대폭 개선할 방침이다. 특히 국회 등을 통해 제주 감귤을 쌀과 대등하게 대우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전국종합 김경운·대구 김상화기자 kkwoon@seoul.co.kr
  • 지방 경제 작년말부터 ‘주춤’

    지난해 중반 이후 개선 조짐을 보이던 지방 경제가 지난해 12월 이후 다소 주춤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6일 발표한 ‘최근의 지방경제 동향’ 자료에서 지난해 4·4분기 중 지방의 제조업 생산이 뚜렷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기업 체감경기 역시 나빠지고 있다고 밝혔다.지역별 제조업 생산은 경기와 경북, 경남의 경우 전자부품·영상·통신기기의 수출둔화로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울산은 이상고온과 잇따른 파업으로 인한 석유정제·자동차의 생산 저조, 충남은 전자부품·영상·통신기기 및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들어서도 주력 업종들의 생산활동이 크게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서비스업 업황은 대다수 지역에서 전년보다 길어진 추석 및 연말 휴가, 쌍춘년 특수, 물동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견실한 확대 추세를 지속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4분기 소비는 백화점 매출이 보합에 그쳤고 대형마트 매출은 신규출점 효과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그러나 올해 1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겨울, 작년 1월에 있었던 설 연휴가 올해 2월로 이동한 데 따른 영향 등으로 상당폭 둔화됐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시·군·구별 지방자치경쟁력’ 강남구·성남시·청원군 상위

    ‘시·군·구별 지방자치경쟁력’ 강남구·성남시·청원군 상위

    서울 강남구와 경기 성남시, 충북 청원군이 전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초자치단체로 선정됐다. 한국공공자치연구원(원장 정세욱)이 지난 5∼8월 전국 230개(특별 자치도인 제주도 제외) 지자체들의 경영자원·경영활동·경영성과 등 3개 분야를 평가해 30일 발표한 ‘2006년도 한국지방자치경쟁력조사’ 결과, 자치구 가운데 강남구(종합평점 584점), 시 단위에서는 성남시(554점), 군 단위에서는 청원군(542점)으로 각각 1위에 차지했다. 자치구에서는 강남구에 이어 서울 서초·중·종로·영등포구가 2∼5위를 휩쓸었다. 시 단위에서는 성남시에 이어 경남 창원시, 충남 천안시, 경기 수원시, 경북 구미시, 충북 청주시가, 군 단위에서는 충북 청원군에 이어 울산광역시 울주군, 충북 단양군, 충북 증평군,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뒤를 이었다. ●서울 자치구 1∼5위 독식 구별로는 강남구가 전년도 3위에서 1위로 도약하고, 이어 서초구, 중구, 종로구, 영등포구가 2∼5위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1위였던 중구는 1위와 10점차로 3위로 물러섰지만 잠재력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인구와 주택보급률, 도로포장률, 사회복지시설수 등 기초자원과 기반시설 등 29개 지표로 평가한 ‘경영자원부문’에서는 서초구가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강남구(3위), 종로구(6위), 영등포구(7위), 송파구(8위), 관악구(9위), 중구(10위) 등 7개 자치구가 ‘톱 10’에 포함됐다. 인구성장률과 지역고용률, 학급당 학생수 등 주민소득과 고용, 환경오염, 교육문화 등 18개 지표로 평가한 ‘경영성과부문’에서는 중구(1위), 강남구(2위), 서초구(4위), 종로구(5위), 영등포구(6위), 강서구(7위), 용산구(8위)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충북권 지역 경쟁력 강세 충북권 약진도 돋보였다. 행정도시 건설, 호남고속철도 분기점 확정 등으로 각종 지표가 상승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청원군과 단양군이 종합평가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증평군도 4위로 새롭게 상위권에 진입했다. 기초시에서는 청주시가 5위를 차지했다. 경영자원부문 평가에서 옥천군이 지난해 10위에서 1위로 10단계 도약했고, 단양군이 5단계 상승한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증평군(5위), 청원군(6위) 등 향후 국토발전의 흐름이 충청권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남·북, 경북 여전히 낮아 전통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아 왔던 전남·북과 경북 지역은 상대적으로 갈수록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종합 평가에서 전남·북은 군 단위에서 전남 영광군 10위를 차지한 것이 유일하다. 또 지역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경영자원부분에서는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경북도 구미시(5위)와 칠곡군(7위) 등 2곳만이 종합평가 10위내에 포함됐을 뿐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과거 제조업을 근간으로 하던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경쟁력 패러다임으로서의 첨단지식 및 첨단기술산업과 문화관광, 환경자원이 부각되고 있다.”면서 “도로, 철도, 항구, 공항, 상수도 등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관광, 복지부분 등의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지역이 전반적으로 지역 경쟁력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美 특수가스제조사, 울산에 500억 투자

    세계적인 산업용 특수가스 제조업체로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어프로덕트(AP)사가 울산에 5000만달러를 투자해 삼불화질소(NF5/8) 생산공장을 건설한다. 울산시는 28일 에어프로덕트사가 5000만달러를 투자해 울산시 남구 성암동 203의 1 일대 5000여평에 삼불화질소 생산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울산시와 에어프로덕트사는 이날 울산시청에서 이같은 내용의 투자양해각서를 맺었다. 에어프로덕트사는 연간 삼불화질소 500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2008년 3월31일까지 건설할 예정이다. 삼불화질소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인 TFT-LCD와 반도체 제조과정에 세정제로 사용된다. 울산시는 울산에 삼불화질소 생산공장이 가동되면 연간 300여억원의 수입대체와 안정적인 제품 공급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생산유발 426억원, 부가가치창출 115억원,188명의 고용창출 등의 효과가 생긴다고 덧붙였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서울 산업경쟁력 대폭 강화

    서울 산업경쟁력 대폭 강화

    서울시가 19일 발표한 4대 산업벨트 조성사업의 목표는 서울의 낮은 산업경쟁력을 울산, 충남, 경북 등에 버금가도록 끌어올리는 데 있다. 서울시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전국 5위에 불과하다. 오세훈 시장의 새 산업벨트 방안은 전임 이명박 시장 때 마곡 연구개발지역 등 개발 거점을 만든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외형을 넓혀 벨트로 묶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도심 창의 산업벨트… 2010년 완료 4대 산업벨트 조성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 사업 부지 안에 건립될 ‘디자인 콤플렉스’다. 서울시는 2010년까지 800억원을 들여 완공될 디자인 콤플렉스에 디자인 박물관과 전시 컨벤션 시설, 디자인 자료실, 디자인 교육실,R&D 센터 등을 조성한다. 디자인 콤플렉스 일대의 동대문 디자인 클러스터와 상암동 DMC, 여의도·용산의 국제 업무단지 등을 벨트로 묶었다. 방송·영화·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 산업과 디자인, 패션, 금융 산업의 메카로 육성된다. ●서남 첨단산업벨트… 관악 벤처밸리등 편입 마곡 R&D 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 관악 벤처밸리 등이 편입되면서 IT,NT,BT 등 첨단 기술을 융합한 정밀기기와 의료 소프트웨어 등을 생산하는 메카로 거듭난다. 마곡 R&D 단지에는 2015년까지 35만평 부지에 연구·교육·생산 시설이 들어선다. 컨벤션 센터 등 공공문화와 국제업무 시설도 갖춘다. ●동북 NIT산업벨트… 의료산업 중추기능 담당 나노기술과 정보기술을 융합해 신약, 인공장기, 첨단 의료기기 등 의료 산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공릉 NIT 미래산업단지에는 2014년까지 2단계에 걸쳐 총 4951억원을 투입해 바이오 산업기지를 만든다. 성동 준공업지역과 홍릉 벤처밸리 등을 한 데 묶었다. ●동남 IT산업벨트… 강동 업무단지등 거점 조성 기존의 테헤란밸리와 포이 밸리를 비롯해 앞으로 조성될 강동 첨단업무단지, 문정·장지 물류단지를 기반으로 영화·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 산업과 IT, 컨벤션 산업의 메카로 육성된다. 컨벤션 사업과 금융산업도 가속이 붙도록 지원한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준공업지역 가운데 자치구별로 1곳 이상을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곳에는 각종 기반시설을 공급하고 용적률, 건폐율 완화, 시세 감면, 중소기업 육성자금 융자 확대 등의 혜택을 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6월까지 관련 조례를 개정하고 내년 말까지는 구별 1개 시범지역을 지정할 예정이다. 또 내년 9월까지 준공업지역을 권역별로 정비하는 종합계획을 세워 ▲영등포·강서는 기계산업, 금속산업 ▲구로·금천은 정보통신 제조업, 첨단기계 산업 ▲성동구 성수는 인쇄, 출판, 의류 산업의 가치를 한단계 높일 방침이다. 시는 이를 위해 연구개발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융자와 신용보증 지원을 확대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6%(종사자수)에 이르지만 그 생산성(GRDP)은 6.6%에 불과하다.”면서 “수도 서울에 걸맞는 산업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힘빠진 사무직, 부러운 생산직

    힘빠진 사무직, 부러운 생산직

    “예전에는 넥타이를 멘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보수가 (거의)같아진 마당에 그깟 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올해로 입사 19년째를 맞은 한 대기업체 부장의 얘기다. 생산직 근로자들이 스스로를 “기름밥 인생”이라며 자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유·자동차·전자 등 소위 장치산업의 경우 업종의 특성에다 전문기술, 노조원의 신분 등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편이다. 일부 기업체에서는 월급이 사무직 근로자를 앞지르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을 ‘사오정(45세 정년)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화이트 칼라들은 이제 생산직 근로자들을 “보험든 인생”이라며 부러워한다. 물론 모든 생산직 근로자들의 복지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정유 자동차 전자 등 소위 장치산업에 속하는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들이 주된 부러움의 대상이다. ●생산직 근로자들이 승진을 기피하는 이유 사무직이 생산직을 부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이다.A제조업체 직원의 얘기다.“사무직은 언제 잘릴지 모르지만 생산직은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58세 정년을 꽉 채웁니다. 일손이 달릴 때는 정년퇴직 후에 재채용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소속부서가 없어지거나 무슨 일이 터지면 당장 짐을 싸야 하는 게 관리직의 운명입니다.” 실제 B자동차회사에서는 임원 1명이 최근의 파업사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자조가 나올 법도 하다. 상황이 이쯤되다 보니 일부 생산현장에서는 과장 승진을 기피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C정유사의 관계자는 “과장으로 승진하면 노조에서 자동 탈퇴하게 돼 이때부터는 승진연한에 맞춰 반드시 승진해야 하는 등 정년과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울산공장에 15년 이상된 고참 대리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화섬업계의 맏형으로 꼽히는 ㈜코오롱은 사규에 정해진 정년에서도 생산직(56세)이 사무직보다 1년가량 더 길다. ●“넥타이가 밥먹여주나…” 월급도 역전 H전자의 사무직 10년차(과장 3년차) 연봉은 4200만원 수준. 같은 연차의 생산직 연봉은 4500만원 정도로 사무직보다 7%가량 더 많다. 성과급과 초과 근무, 연월차 등 각종 수당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전자·자동차·정유·철강 등 많은 업종에서는 생산직에만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한다. 임금단체협상 타결로 얻는 ‘부수입’도 적지않다. 직종간 기본급 차이는 거의 없어졌다. 이 때문에 생산직 연봉이 관리직을 웃도는 사례가 적지 않다.F정유사의 경우, 소수이지만 20년쯤 근무한 총반장(대리)의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 이 정도 경력이면 사무직은 보통 부장급이다. 이들의 연봉은 8000만원선. 농반진반으로 ‘굵고 길게’(보수 많고 정년길다는 뜻)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올해 관리직 임금을 동결한 G자동차사는 생산직과의 임금 격차가 커지자 “최소한 차액은 회사에서 보전해주겠다.”며 관리직을 달래고 있다. 이 회사의 12년차 과장은 “사무직 중에서도 과장급 이상은 노조와 회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인생”이라며 “노조의 보호도, 그렇다고 회사의 배려도 받지 못해 소외감과 자괴감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최용규 안미현 김경두기자 hyun@seoul.co.kr
  •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한국경제 외교관’ 역할 톡톡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한국경제 외교관’ 역할 톡톡

    |몽고메리(미국 앨라배마 주) 이도운특파원|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이 미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미국 내 현대차 생산기지라는 본연의 기능 말고도 앨라배마의 보수적인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경제 외교관’의 역할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에 놀라고 아셈몰에 반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지난해 5월 생산을 개시한 이후 반기마다 300명의 직원을 한국에 보내 연수를 시키고 있다.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연수를 떠나기 전까지 현대차를 그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회사라는 정도로만 인식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한국전쟁과 폭력 시위, 북한 미사일 정도가 대부분이었다고 김영기 인사담당 과장은 설명했다. 그러나 일단 연수를 다녀오면 직원들의 생각이 180도 달라진다고 한다. 우선은 대한항공을 타고 가면서 승무원들의 세련미와 기내 서비스에 반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천공항의 규모와 첨단 기능에 다시 놀란다고 한다. 세번째로 서울의 엄청난 규모와 활력에 눈을 크게 뜨게 되고, 네번째로 숙소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도착하면 감격한 표정이 역력하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저녁에 주변의 아셈몰까지 한번 구경하고 나면 이미 직원들은 ‘한국 신도’로 바뀐다고 김병관 경영지원 담당 상무는 전했다. 이어 직원들이 세계 최대 규모인 울산 공장과 최첨단 시설을 갖춘 아산 공장 등을 돌아보고 나면 현대차에 대한 ‘충성심’을 더 이상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 ●“현대차는 앨라배마의 보물” 현지 직원들뿐만 아니라 몽고메리시에 자리잡은 공장을 견학하는 앨라배마 주민들도 ‘친한파’로 변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4만여명이 참가한 현대차 공장 투어는 이미 연말까지 예약 접수가 끝났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투어에 참여했던 앨라배마 주민인 마리 호로위츠는 “현대차가 우리 지역에 온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앨라배마 주민은 모두가 투어를 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인근 맥스웰 공군기지의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이끌고 앨라배마 공장을 견학했던 낸시 쿠퍼 교사는 “공장에서 로봇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 너무 흥분됐다.”면서 “현대차 공장이 학생들의 과학적 창의성을 고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편지를 현대차측에 보내기도 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 현대차는 현재 세계 6위의 자동차 제조업체다. 현대차의 단기적인 목표는 5위로 도약하는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현대’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과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는 쏘나타의 공장도가격은 1만 6000달러. 한 대를 팔 때 얻는 수익은 100달러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경쟁자이면서 벤치마킹 대상으로도 삼는 도요타의 1대당 판매 수익은 1000달러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브랜드의 가치가 수익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안주수 현대차 앨라배마 법인장은 “성능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먼저 최고의 품질을 가진 자동차를 만들고 난 다음 홍보와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가치 향상이라는 ‘정공법’의 단계를 밟아가겠다는 것이다. 앨라배마 공장의 내부에는 ‘품질이 현대의 길(The Quality is the Hyundai Way)’이라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dawn@seoul.co.kr
  • [열린세상] 정책에 시장접근방식 도입해야/ 박중구 서울산업대 경제학 교수

    각종 정책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요란하다. 경기부양, 부동산, 자유무역협정(FTA), 지역혁신, 과학기술, 전시작전통제권 등 거의 모든 정책이 혼란을 낳으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가적 주요정책에서 수요와 공급 간에 불일치가 발생하고, 결정된 정책마저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서 비롯된다. 부동산 정책만 해도 정부는 부동산 보유의 적절성에 대해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지 ‘세금폭탄’이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종합부동산세·양도세·보유세 등 정책 가격을 높이면서 각종 정책을 쏟아내왔다. 반면 정책 수요자인 일반 국민은 이런 정책 가격이 너무 비싸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부동산 정책시장에서 정책의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높은 가격이 설정돼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도 문제다. 정부의 신기술 개발 지원정책이 성과가 미흡하고, 수요자인 기업들의 수준과 요구에 맞지 않거나 오히려 연구개발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 체제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대기업들이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에서 가능한 한 빠지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 정책의 공급에 대해 수요자인 기업들이 정책 가격이 너무 높고 정책의 양이 과잉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의 수급 불일치와 효율성 저하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기획·수립·집행 과정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즉 정부 주도의 과도한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 벗어나 이해당사자들, 즉 현안에 대한 정책의 수요자·공급자 간 견해(정보)가 공개되고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도록 시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정책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일정조건 하에서 정책 선택의 가격과 양을 결정하는 시장접근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시장에서 정부는 이해당사자로서 한 축을 담당하면서 시장 형성과 성공적 운영을 위해 촉매(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하고 기회주의적 행동 등 실패 요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예를 들면 국가간 자유무역협정 정책의 수립 및 체결 과정에서 관련 정부 부처와 제조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주체들 간에 각기 수요자로서, 공급자로서 의견개진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정책의 유효가격과 범위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과학기술 정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결정보다는 이해당사자들인 과학기술 개발의 수요·공급자, 금융기관, 기술중개 기관, 경영·법률·품질검사 등 기업지원 서비스기관 등 유관기관이 과학기술 시장에서 만나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이 컨소시엄간의 경쟁입찰을 통해 가장 경쟁력이 강하고 효율적인 컨소시엄을 선택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개별 기능을 수행하는 많은 기관이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도록 해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이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기관을 구조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책의 기획 및 평가, 업무체제의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일시 높아질 수 있으나 갈등이 낮아짐에 따라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실현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정책에 시장접근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얻을 추가적인 효과는 지난 몇년간 이해관계의 극심한 대립을 통해 심지어 사회 해체의 우려까지 낳고 있는 현실을 극복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경쟁 극대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한편 협력하지 않고서는 생존·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세계적 경영학회지인 ‘하버드경영연구’(Harvard Business Review)가 2000년 1·2월 첫호에서 21세기형 발전전략으로 경쟁과 협력의 동시 추진을 뜻하는 공진(Coevolution)을 들고 있는 데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박중구 서울산업대 경제학 교수
  • 올 경영목표 줄줄이 하향

    올 경영목표 줄줄이 하향

    기업들이 올해 경영목표를 낮춰잡기 시작했다. 고유가, 원자재값 상승, 환율 하락 등의 피해를 직접 받는 수출기업의 목표치 하향조정이 눈에 드러난다. 상반기 실적 저조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고 불투명한 하반기 경기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이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기업뿐 아니라 국내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체도 목표치를 낮춰잡았다. 업계는 장기 경기 침체에 따른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신(新)3중고’가 원인 원료를 들여와 가공한 뒤 이를 수출하는 업종의 타격이 크다. 타이어 업종이 대표적이다. 한국타이어는 매출목표를 당초 2조 1595억원에서 2조 1135억원으로 낮췄다. 상반기 매출은 1조 102억원으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978억원,1005억원으로 각각 29.9%,12.2% 떨어졌다. 천연고무 가격이 34% 급등했고 환율 하락으로 인한 매출 감소분만 300억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도 상반기 매출액이 8577억 52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05억 36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1% 줄어들었다. 전자업종도 매출 하락 버티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LG전자는 하반기에도 휴대전화 사업 부진으로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매출 목표 24조원 달성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LG필립스LCD도 경영목표 수정이 불가피하다. 상반기 영업손실이 32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50억원 늘어났다. 패널 가격 급락이 원인이다. 하반기에도 TV용 LCD 패널 가격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8000억원이나 줄어들었다. 하반기에 D램 시장 강세와 휴대전화 신제품 출시를 계기로 반격에 나섰지만 워낙 변수가 많아 당초 영업이익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사관계, 국내 수요감소도 가세 현대차는 상반기에 연간 매출 목표액의 47%를 이루는 데 그쳤다. 장기간 파업의 영향이 컸다. 신차 출시 등으로 반전을 모색하지만 내수 경쟁이 만만치 않다. 기아차도 상반기 부진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쌍용차 역시 노사관계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라 목표 수정 가능성이 커졌다. 주택건설업계도 아파트 공급 목표를 수정하고 있다. 일반 제조업에 비해 ‘신3중고’ 타격은 적지만 국내 소비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는 연초 아파트 1만여가구를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목표치를 7000가구로 내렸다. 지방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울산과 진주에서 공급키로 했던 2000여가구 아파트 사업을 포기했다. 수원 지역 아파트 분양 시기도 내년으로 미뤘다. 다만 정유·철강 업종은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銅)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업종은 오히려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류찬희 류길상기자 chani@seoul.co.kr
  • 코스닥 가는 대기업 임원들

    코스닥 등록사들이 최근 ‘잘 나가는’ 대기업 임원들을 대표이사로 잇따라 영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코스닥 등록사들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대기업과 뗄 수 없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한다. 또 대기업의 탄탄한 조직 문화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대기업 임원들도 최고경영자(CEO)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여서 코스닥 등록사로 말을 갈아타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영화 최대 제작사인 싸이더스는 지난달 30일 윤강희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윤 대표는 SK그룹의 사업개발팀 출신이다. 이에 따라 싸이더스는 향후 게임유통 전문회사로 탈바꿈할 것으로 보인다. 싸이더스는 그동안 차승재-홍동진 각자 대표제로 운영됐다. 여과기 제조업체인 크린에어텍도 최근 당일증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당 대표는 홍익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중앙대에서 금융론 석사학위를 받았다.LG투자증권에서 강원지역 본부장을 거쳐 케이엠에스아이의 상임 고문으로 재직했었다.폐기물 처리업체인 와이엔텍은 지난달 28일 진성익 전 한화종합화학 전무를 새 대표로 선임했다. 진 대표는 한화에서 18년간 근무했으며, 울산과 여천 공장장을 역임한 현장 전문가이다. 국내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업계의 선두주자인 디지털큐브는 지난 5월 유연식씨를 새 대표이사로 발탁했다. 유 대표는 서울대 지질학과를 졸업했으며,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997년부터 2년간 삼성전기 자동차부품사업부 연구소 전자제어팀에서 일했다. 또 미주제강의 대표가 된 김충근씨는 쌍용화재 부사장을 역임했다. 인디시스템과 아이즈비전도 최근 삼성물산 출신의 박찬호씨,LG전자 출신의 임재병씨를 대표이사로 각각 선임했다고 공개했다. 씨피엔의 신임 대표이사가 된 김상희씨는 삼성증권에서 근무했고, 세중나모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재찬씨는 ㈜대우에서 중화학 본부장을 지냈다.지난 5월 모티스의 대표이사가 된 안우형씨는 제일기획 출신이며, 에이스테크의 각자 대표로 새로 선임된 최진배씨는 삼성전자 해외전략실장을 지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5·31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후보명단

    ■ 경기도 ●수원시장 염태영(45·우·정당인) 김용서(65·한·수원시장) 이대의(57·민·정당인) ●성남시장 이재명(41·우·변호사) 이대엽(71·한·성남시장) 장영하(48·민·변호사) 김미희(40·노·약사) ●의정부시장 박영하(57·우·변호사) 김문원(65·한·의정부시장) ●안양시장 이승민(41·우·변호사) 신중대(59·한·안양시장) 김규봉(50·민·메리카코리아나 사장) 강현만(41·노·정당인) ●부천시장 방비석(51·우·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홍건표(61·한·정당인) 이혜원(40·노·정당인) 박상규(56·국·회사임원(코리아정보기술(주)이사)) 김제광(39·무·부천시의회 의원) ●광명시장 방호현(40·민·정당인) 이병렬(44·노·정당인) 김인겸(55·국·자영업) 이연호(45·무·주택관리사) 김경표(44·우·메가시네마 대표이사) 이효선(51·한·현대자동차 직원) ●평택시장 유성(41·우·사회단체 대표) 송명호(50·한·평택시장) 남정수(37·노·정당인) 이익재(61·국·평택시의회의원) 차화열(45·무·송탄IC주유소 대표) ●양주시장 임충빈(62·무·공무원) 이흥규(49·우·정당인) 이범석(56·한·정당인) 윤광노(59·민·정당인) ●동두천시장 오세창(55·우·정치인) 최용수(60·한·동두천시장) 노시범(48·무·무직) ●안산시장 부좌현(50·우·정당인) 박주원(47·한·겸임교수) 김동현(61·민·변호사) 이하연(48·노·정당인) 김봉구(50·국·정당인) 손동걸(60·무·농업) ●고양시장 김유임(41·우·고양시의회의원) 강현석(53·한·고양시장) ●과천시장 김진숙(51·우·과천시민정책포럼 대표) 여인국(50·한·과천시장) ●의왕시장 이수영(48·우·정당인) 이형구(60·한·의왕시장) 김원봉(61·민·정당인) 신하철(72·국·정당인) ●구리시장 박영순(58·우·정치인) 지범석(49·한·기업인) ●남양주시장 이해일(60·우·정당인) 이석우(58·한·정당인) 김종범(46·민·남양주시의회의원) ●오산시장 곽상욱(41·우·(주)현대영어스쿨 대표이사) 이기하(41·한·삼보IT직업전문학교장) 임명재(54·민·대명화학 대표) 신건호(57·국·국민중심당 경기도당 지역경제위원회 위원장) 박신원(60·무·오산시장) 이춘성(50·무·미도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조윤장(44·무·한국테러리즘연구소 연구위원) ●화성시장 박광직(41·우·변호사) 최영근(46·한·화성시장) 박봉현(58·무·정치인) ●시흥시장 이연수(52·한·시흥미래발전포럼 대표) 이명운(58·민·시흥시의회 의장) 정종흔(62·무·시흥시장) ●군포시장 김윤주(57·우·군포시장) 노재영(55·한·정당인) 임채영(48·민·대림개발주식회사 이사) 송재영(45·노·정당인) 이종근(48·국·이종근 경영지도사 사무소 대표) 조용민(41·무·비정규직 건설 일용근로자) ●하남시장 유병직(42·우·국회의원 보좌관) 김황식(55·한·정당인) 김시화(48·민·사회복지사) 박우량(50·무·행정전문가) 이교범(54·무·공무원) ●파주시장 윤건(63·우·정당인) 유화선(58·한·정무직 공무원) 최수회(56·무·무직) ●여주군수 권재국(50·우·정당인) 이기수(56·한·정당인) 김효정(64·국·정당인) 윤승진(49·무·여주군의회의원) 임창선(66·무·여주군수) ●이천시장 이완우(49·우·(주)경우 대표이사) 조병돈(57·한·정당인) 이세구(60·민·새마을금고 이사장) 박재한(57·무·무직) ●용인시장 이우현(49·우·용인시의회의원) 서정석(56·한·정당인) 김현욱(42·무·명지산업개발 대표) 이정문(59·무·용인시장) ●안성시장 한영식(54·우·(주) 보경종합건설 회장) 이동희(62·한·안성시장) 정장훈(63·무·회사원) ●김포시장 유영록(43·우·정당인) 강경구(59·한·정당인) 김창집(45·민·치과의사) 김동식(45·무·김포시장) ●광주시장 신동헌(54·우·KBS 프리랜서 PD) 조억동(49·한·광주시의회의원) 이윤수(67·민·정치인) 손동원(48·무·광주시의회의원) 이우경(53·무·광주시의회의원) ●포천시장 서장원(48·우·정당인) 박윤국(50·한·포천시장) 홍찬기(66·무·(주)한·중 문화교류 회장) ●연천군수 이운구(52·우·관인 초로서예학원 원장) 김규배(58·한·연천군수) 강보원(62·무·연합건설(주) 대표이사) 최의순(35·무·시민단체 활동가) ●양평군수 유병덕(65·한·정당인) 김건호(58·무·농업) 우정규(45·무·뷰닉스 이사) 한택수(59·무·공무원) ●가평군수 조영욱(67·한·정당인) 양재수(66·무·가평군수) 이진용(48·무·정치인) ■ 울산 ●중구청장 조용수(53·한·중구청장) 이철수(59·무·울산사회교육연구소장) ●남구청장 임동호(37·우·정당인) 김두겸(48·한·공무원) 김진석(42·노·정당인) ●동구청장 김원배(46·우·정당인) 박정주(53·한·정당인) 김종훈(41·노·울산광역시의회의원) 정천석(54·무·동구문화원 자문위원) ●북구청장 강석구(45·한·진산선무(주)대표이사) 김진영(41·노·현대중공업(주)) 이재경(50·무·구의원) ●울주군수 박진구(71·우·정당인) 엄창섭(65·한·공무원) 김성득(54·무·울산대학교 교수) ■ 대전 ●동구청장 권득용(49·우·(주)푸른환경 회장) 이장우(41·한·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김정태(59·국·정당인) 박병호(60·무·구청장) ●중구청장 전종구(51·우·학교법인 한빛학원 이사) 이은권(47·한·정당인) 박용갑(49·국·정당인) 박태우(43·무·정치인) 이기호(43·무·정치인) ●서구청장 김용분(42·우·시민운동가) 가기산(64·한·서구청장) 김경시(51·국·서구의회의원) ●유성구청장 노중호(43·우·출판업) 진동규(48·한·유성구청장) 신현관(47·노·한국화학연구원 근무) 박종선(42·국·(주)오너스 샵 대표이사) ●대덕구청장 박영순(41·우·정당인) 정용기(44·한·정당인) 송인진(50·국·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책연구원) 김창수(51·무·대덕구청장) ■ 광주 ●동구청장 임택(42·우·구의원) 유태명(62·민·동구청장) 양회창(51·무·(주)동호 대표이사) ●서구청장 김종식(58·우·공무원) 전주언(58·민·정당인) 강기수(54·노·정당인) 신현구(46·무·정치인) ●남구청장 김화진(47·우·남구지방자치연구소 소장) 안영신(47·한·교수(동강대학)) 황일봉(48·민·남구청장) 김창훈(43·노·(사)시민의소리 상임이사) 강도석(51·무·문학가) 최영호(41·무·정치인) ●북구청장 이형석(44·우·정당인) 김천국(48·한·정당인) 송광운(52·민·정당인) 오창규(39·노·정당인) 나정만(47·무·정치인) ●광산구청장 이상갑(38·우·변호사) 전갑길(48·민·정당인) 이승남(36·노·정당인) 김익주(43·무·광산구의회의원) 송병태(67·무·공무원) ■ 인천 ●중구청장 이상용(49·우·정당인) 박승숙(69·한·정당인) ●동구청장 허인환(37·우·공무원) 이화용(55·한·동구청장) 윤대영(53·민·동구의회의장) 문성진(39·노·정당인) ●남구청장 박우섭(50·우·남구청장) 이영수(55·한·정당인) 신영현(62·민·정당인) 정수영(39·노·정당인) ●연수구청장 안귀옥(48·우·변호사) 남무교(64·한·정당인) 박광래(43·민·대학교수) 이혁재(33·노·정당인) ●남동구청장 박순환(41·우·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 윤태진(58·한·남동구청장) 신맹순(64·민·2000년대를 내다보는 인천연구소장) 배진교(37·노·정당인) ●부평구청장 노재철(71·우·무직) 박윤배(54·한·부평구청장) 곽영기(58·민·정당인) 한상욱(44·노·정당인) ●계양구청장 박형우(48·우·정당인) 이익진(65·한·운수업) 윤창호(59·민·정당인) 김종열(42·노·회사원) ●서구청장 박균열(57·우·정당인) 이학재(41·한·서구청장) 권중광(61·민·정당인) 이상구(42·노·정당인) ●강화군수 유병호(65·한·강화군수) 최미란(41·노·정당인) 김윤영(57·무·자영업) ●옹진군수 김철호(56·우·옹진군의회의원) 조윤길(56·한·정당인) 김필우(57·무·농업) ■ 강원도 ●춘천시장 황석희(61·우·한국전력공사 감사(비상임)) 이광준(50·한·무직) 김종수(47·노·회사원) 유종수(63·무·춘천시장) ●원주시장 원창묵(45·우·건축사) 김기열(63·한·원주시장) 이용옥(72·민·자영업) 김광림(63·무·생명환경운동가) ●강릉시장 정부교(50·우·건축사) 최명희(51·한·정당인) 김봉래(40·노·정당인) 선복기(64·무·무직) 심재종(57·무·21C 새강릉정책포럼 회장) ●동해시장 김학기(58·한·정당인) 최경순(53·우·상공회의소 회장) 김진모(69·무·무직) 오원일(51·무·정치인) ●삼척시장 안호성(50·우·정당인) 김대수(64·한·정당인) 신상균(53·무·삼덕기업(주) 감사) 이정훈(44·무·삼척시의회 의원) ●태백시장 김동욱(48·우·대한석탄공사 노동조합 위원장) 박종기(58·한·정당인) 김강산(55·무·태백문화원장) 김용희(51·무·무직) 나창덕(57·무·(주)포스벨 상임기술고문) 박무봉(45·무·정당인) 장경덕(54·무·대성의원 관리원장) 정원교(64·무·농업) ●정선군수 신선웅(61·우·무직) 유창식(52·한·자영업) ●속초시장 황돈태(66·우·정당인) 채용생(52·한·한나라당 강원도당 정책자문위원) 최용철(59·무·무직) ●고성군수 김성진(53·우·한국파이로(주) 대표이사) 함형구(58·한·고성군수) 김원기(47·무·무직) ●양양군수 김남웅(59·우·농업) 이진호(59·한·양양군수) 정상철(60·무·농업) ●인제군수 김장준(60·우·인제군수) 박삼래(55·한·인제군의회 의장) ●홍천군수 최기석(49·우·홍천군의회 부의장) 노승철(62·한·홍천군수) ●횡성군수 고석용(58·우·정당인) 한규호(55·한·정당인) 전인택(58·무·상업) ●영월군수 엄민현(53·우·영진기업 대표) 박선규(49·한·정당인) 이상춘(67·민·정당인) ●평창군수 이석래(49·우·농업) 권혁승(54·한·평창군수) 박정렬(35·무·농업) 이경진(52·무·삼원측량 대표) ●화천군수 이현대(62·우·농업) 정갑철(61·한·화천군수) 장동화(53·노·농업) ●양구군수 최형지(45·우·농업) 전창범(53·한·무직) 박경섭(51·민·정당인) 김현택(48·무·한반도 정중앙 미래연구소장) 원종성(53·무·행정사) ●철원군수 문경현(59·우·정당인) 정호조(58·한·정당인) 김용빈(41·노·농업) ■ 대구 ●중구청장 김정태(49·우·열린우리당 대구시당 대외협력 수석부단장) 윤순영(53·한·분도문화예술기획대표) 정재원(63·무·중구청장) ●동구청장 이승천(44·우·대구미래대학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재만(47·한·영진전문대학 디지털경영계열 겸임교수) ●서구청장 윤진(59·한·서구청장) 서중현(54·무·정치인) ●남구청장 임병헌(52·한·정당인) 김현철(45·무·남구의회의원) 이신학(61·무·남구청장) ●북구청장 이철우(48·우·치과의사) 이종화(56·한·북구청장) ●수성구청장 김형렬(46·한·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 이성수(57·무·(주)디씨시스템 회장) ●달서구청장 정판규(46·우·정당인) 곽대훈(50·한·정당인) 강신우(42·노·민주노동당 달서구위원회 위원장) ●달성군수 이종진(56·한·무직) 김문오(57·무·무직) 석창순(61·무·무직) 양시영(62·무·무직) 표명찬(61·무·달성군의회의장) ■ 부산 ●중구청장 김은숙(61·한·정당인) 이인준(56·무·중구청장) ●서구청장 박극제(54·한·남일자동차 대표이사) 김영오(66·무·서구청장) ●동구청장 정현옥(64·한·동구청장) ●영도구청장 김희겸(42·우·개인사업) 어윤태(60·한·전문 경영인) 한영중(44·민·자영업) 김유덕(62·무·무직) 이재인(41·무·(주)마린소프트 대표이사) 장세훈(53·무·(주)부산이오컨백스 회장) ●부산진구청장 김영재(50·우·주식회사 동성바텍 대표이사) 하계열(60·한·정당인) 민병렬(44·노·정당인) ●동래구청장 김은호(40·우·정당인) 최찬기(54·한·아마란스화장품 CEO) 이진복(48·무·동래구청장) ●남구청장 박기욱(56·우·정당인) 이종철(62·한·정당인) ●북구청장 전재수(35·우·정당인) 이성식(56·한·동아대학교 교수) ●해운대구청장 홍순헌(43·우·교수) 배 덕 광(57·한·해운대구청장) ●기장군수 손현경(43·우·경성대학교 외래교수) 최현돌(56·한·기장군수) ●사하구청장 이해수(50·우·정당인) 조정화(41·한·정당인) ●금정구청장 박춘길(60·우·금정구의회의원) 고봉복(60·한·부산시의회의원) 김문곤(66·무·금정구청장) 윤석천(71·무·금정문화원 원장) ●강서구청장 구대언(51·우·대지수산 대표) 강인길(47·한·강서구청장) 윤무헌(62·민·정당인) 김원준(63·무·무직) 조명래(42·무·체육인) ●연제구청장 이창용(45·우·정당인) 이위준(63·한·연제구의원) ●수영구청장 이남중(50·우·정당인) 박현욱(51·한·정당인) ●사상구청장 윤경태(45·우·정당인) 윤덕진(68·한·공무원) 이호승(55·무·무직) 정대욱(53·무·샛별유치원 이사장) ■ 서울 ●종로구청장 김영종(52·우·건축사) 김충용(67·한·종로구청장) 정흥진(61·민·정당인) 전재갑(64·무·시인) ●중구청장 전장하(58·우·정당인) 정동일(51·한·기업인) 최형신(67·민·약사) 박복수(57·무·신당종합사회복지관 전문위원) 유재택(46·무·한국외대 정치외교학 강사) ●용산구청장 정남길(44·우·용산구의회 의원) 박장규(71·한·용산구청장) 성장현(51·민·정당인) 김종민(35·노·정당인) 김중완(43·무·건설사 대표) 명영호(56·무·정치인) ●성동구청장 오성욱(46·우·변호사) 이호조(61·한·정당인) 정병채(51·민·한국 청소년 한마음 연맹 법인이사) 김성기(34·노·정당인) ●광진구청장 김태윤(44·우·변호사) 정송학(52·한·정당인) 김기동(59·민·정당인) 이중원(40·노·정당인) 김광해(62·국·시민운동가) 권혁모(58·무·무) 정국환(67·무·무직) ●동대문구청장 유준상(58·우·정당인) 홍사립(61·한·동대문구청장) 유운영(59·민·정당인) ●중랑구청장 김준명(52·우·(주) 우영 고문) 문병권(56·한·공무원) 강병진(67·민·정당인) ●성북구청장 진영호(62·우·미기재) 서찬교(63·한·공무원) 조경복(53·민·치과의사) 박창완(47·노·정당인) ●강북구청장 강영조(65·우·정당인) 김현풍(64·한·강북구청장) 신승호(56·민·강북구의회 의원) 김정남(57·무·상업) ●도봉구청장 이동진(45·우·정당인) 최선길(66·한·도봉구청장) 홍우철(51·노·회사원) ●노원구청장 서종화(40·우·대통령자문 차별시정위 위원) 이노근(52·한·한나라당 행정자치위원회 부위원장) 김학주(51·민·정당인) 최창우(49·노·사회운동가) 김양섭(58·국·정희건설 대표) 정재복(60·기·알즈너 강남대리점 대표이사) 이기재(65·무·노원구청장) ●은평구청장 고연호(43·우·우진무역개발(주)대표) 노재동(64·한·은평구청장) 송재영(50·민·정당인) 정두형(65·무·현대건축사 대표) ●서대문구청장 문석진(50·우·공인회계사) 현동훈(47·한·서대문구청장) 이동거(59·민·(주) 매일환경 연구청장 책임자) 이상훈(34·노·민주노동당 서대문구위원회 위원장) 고은석(67·무·임대업) ●마포구청장 김충현(59·우·정당인) 신영섭(50·한·정당인) 정형호(50·민·세무사) 홍순광(36·노·정당인) 박홍섭(63·무·마포구청장) ●양천구청장 유선목(54·우·서울시의원) 이훈구(57·한·정당인) 문영민(55·무·양천구의회의원) 추재엽(50·무·양천구청장) ●강서구청장 이창섭(43·우·강서구의원) 김도현(63·한·디지털사상계 대표) 고재익(52·무·강서구의원) 유영(58·무·강서구청장) ●구로구청장 남승우(45·우·정당인) 양대웅(64·한·구로구청장) ●금천구청장 최병순(54·우·건우종합건설(주) 대표이사) 한인수(60·한·금천구청장) 나이균(63·민·정당인) 최석희(41·노·정당인) 여병용(64·국·정치인) ●영등포구청장 정경환(43·우·정당인) 김형수(58·한·영등포구청장) ●동작구청장 서승제(46·우·대한티엠에스(주) 고문) 김우중(63·한·공무원) 김기옥(63·민·호남대 교수) 김익수(40·무·동작구의원) 윤여연(51·무·인쇄업) ●관악구청장 진진형(71·우·세무사) 김효겸(52·한·전문경영인) 김희철(58·민·관악구청장) ●서초구청장 서병찬(54·우·(주)신우이엔씨 대표이사) 박성중(47·한·정당인) 정내현(59·민·기술사) ●강남구청장 이판국(50·우·기업인) 맹정주(58·한·정당인) ●송파구청장 이유택(67·우·송파구청장) 김영순(56·한·정당인) 김종호(62·민·의사) 김현종(42·노·정당인) 민경엽(50·무·기업인) ●강동구청장 손석기(49·우·정당인) 신동우(52·한·강동구청장) ■ 충청북도 ●청주시장 오효진(61·우·정당인) 남상우(61·한·충청포럼21 대표) ●충주시장 권영관(59·우·정치인) 한창희(52·한·공무원) 최실경(66·무·자영업) ●제천시장 권기수(59·우·정당인) 엄태영(48·한·제천시장) ●단양군수 이규천(52·우·정당인) 김동성(57·한·정당인) 이영희(54·국·정당인) 김천유(58·무·무직) 박주진(71·무·농업) 이완영(53·무·매포진흥지업사) ●청원군수 변장섭(49·우·청원군의회의원) 김재욱(58·한·청원발전 연구소 소장) 박노철(57·국·법무사) 김병국(53·무·(주)충북택시장 대표이사) ●영동군수 정구복(49·우·경성전기 기술이사) 손문주(68·한·영동군수) ●보은군수 이향래(55·우·농업) 박종기(66·한·보은군수) 김기준(40·국·전 충청투데이 신문사 지방부장) ●옥천군수 한용택(57·우·열린우리당 충청북도당 부위원장) 안철호(65·한·기업인) 손만복(55·국·정당인) 이근성(56·무·노란이 농장 대표) ●음성군수 이원배(65·우·정당인) 김학헌(60·한·정당인) 박수광(59·무·공무원) ●진천군수 유영훈(51·우·정당인) 김경회(53·한·진천군수) 남명수(63·무·군의회의원) ●괴산군수 김문배(58·한·괴산군수) 임각수(58·무·무직) ●증평군수 김영호(53·한·증평세림신경외과 원장) 연기복(52·무·기성상사 대표) 유명호(64·무·증평군수) ■ 충청남도 ●천안시장 구본영(53·우·(주)동양이엔피 사외이사) 성무용(62·한·자치단체장) 임형재(58·국·정당인) 양승연(50·무·어머니 슈퍼 근무) ●공주시장 남상균(49·우·정당인) 김선환(54·한·정당인) 이준원(41·국·공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오영희(59·무·공주시장) 조은호(62·무·무직) ●보령시장 이병준(65·우·정당인) 신준희(68·한·정치인) 이준우(59·국·정치인) ●아산시장 곽용구(47·우·정당인) 강희복(64·한·아산시장) 김광만(49·국·정당인) ●서산시장 조규선(57·우·서산시장) 조한구(60·한·정당인) 이복구(60·국·정당인) 김오경(42·무·서산태안사회정책연구소장) ●태안군수 김세호(56·우·반도자동차운전전문학원 대표) 명귀진(69·한·농업) 진태구(60·국·태안군수) ●금산군수 최영준(43·우·정당인) 유숭열(58·한·진산자연휴양림 대표) 박동철(54·국·정치인) 강봉구(54·무·(주)미래원토건 근무) 길호섭(62·무·정치인) 박찬중(59·무·정치인) ●연기군수 최준섭(50·우·정당인) 김준회(64·한·정당인) 이성원(68·민·연기새마을금고 이사장) 이기봉(69·국·연기군수) 김부유(42·무·사회운동가) 성태규(43·무·한성디지털대학교평생교육원겸임교수) ●논산시장 황명선(39·우·정당인) 박원래(56·한·논산대우약국 대표) 임성규(66·국·논산시장) 이창원(48·무·세무사) ●계룡시장 이기원(53·한·계룡시의원) 최홍묵(57·국·계룡시장) ●부여군수 김무환(57·한·부여군수) 윤경여(56·국·동성이앤지(주) 대표) ●서천군수 나소열(47·우·서천군수) 노박래(56·한·정당인) 전영환(43·국·치과의사) ●홍성군수 이두원(41·우·농업) 이종건(64·한·정당인) 김석환(61·국·정당인) ●청양군수 이희경(57·한·정당인) 김시환(63·국·공무원) ●예산군수 안세용(55·우·회사원) 최승우(64·한·정당인) 김영호(58·국·정당인) 이용면(56·무·상업) 이준호(68·무·자영업(체험학습원)) ●당진군수 민종기(55·우·당진군수) 이덕연(50·한·당진군의회의원) 손창원(36·노·노동자) 이철환(60·국·정당인) ■ 전라북도 ●군산시장 함운경(42·우·열린우리당 열린 정책연구원 교육연구센터 소장) 한상오(36·한·정당인) 문동신(68·민·비전 새군산포럼 대표) 권형신(60·무·무직) 김귀동(55·무·변호사) 송웅재(60·무·무직) 조현식(55·무·전북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본부장) 최관규(44·무·국가원자력관리통제소(NNCA) 연구원) ●익산시장 이한수(45·우·정당인) 고현규(47·한·정당인) 허영근(61·민·정당인) 박경철(50·무·익산시민연합 상임대표) ●정읍시장 김생기(61·우·정당인) 이민형(61·민·정당인) 이효신(39·노·농업) 강광(69·무·바르게살기운동 정읍시협의회 회장) 허준호(48·무·정읍유한회사삼동대표) ●남원시장 윤승호(52·우·정당인) 최중근(66·민·정당인) 김영권(59·무·남원변화발전포럼대표) 황의돈(49·무·농업) ●김제시장 황호방(51·우·정당인) 최수(55·민·정당인) 이건식(61·무·정치인) 이홍규(45·무·정치인) 황성호(61·무·농업) ●완주군수 최충일(63·우·공무원(완주군수)) 임정엽(47·민·정당인) ●진안군수 송영선(55·우·상업) 김정길(57·민·상업) 신중하(43·노·농업) 박관삼(60·무·한국통신대학 행정학 강사) ●무주군수 윤완병(50·우·정당인) 강평수(65·민·(주)대우인터내셔널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장) 백광철(45·노·농업) 갈성로(56·기·무직) 김원수(50·무·무주군의회 의원) 이경주(36·무·회사원) 홍낙표(51·무·정치인) ●장수군수 최용득(59·우·농업) 배한진(48·민·춘추건설대표) 장재영(61·무·장수군수) ●임실군수 강완묵(46·우·농업) 박영은(53·민·금광파이프(주) 대표) 김진억(66·무·공무원) 심민(58·무·무직) 윤재붕(48·무·(유)대기개발대표이사) ●순창군수 강인형(59·우·순창군수) 임양호(51·무·자영업) ●고창군수 정길진(65·우·정당인) 이강수(54·민·고창군수) 정원환(49·무·양돈업) ●부안군수 강수원(71·우·무직) 이병학(49·민·정당인) 문창연(58·기·농업) 김경민(51·무·정치인) 김종규(54·무·부안군수) ■ 전라남도 ●목포시장 김정민(53·우·목포대학교 교수) 천성복(43·한·(주)미래2000 목포지사장) 정종득(65·민·목포시장) 박기철(41·노·정당인) ●여수시장 김강식(50·우·남해안발전연구소 소장) 김용우(52·한·에이즈 퇴치 강사) 오현섭(55·민·정당인) 심정우(46·무·호남대학교 교수) ●순천시장 이은(53·우·정당인) 황선호(49·한·(주)기가정보통신 회장) 노관규(45·민·변호사) 이수근(38·노·정당인) ●나주시장 김대동(60·민·민주당 전남도당원) 김영화(61·무·무직) 신정훈(41·무·나주시장) ●광양시장 서종식(47·우·변호사) 이성웅(64·민·광양시장) 김정태(38·노·정치인) 박필순(45·무·고려대학교 외래교수) ●담양군수 최형식(50·우·담양군수) 이정섭(57·민·정치인) 강대령(39·무·박사과정) ●장성군수 고일갑(39·우·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이병직(62·민·정당인) 유두석(56·무·무직) ●곡성군수 고현석(63·우·곡성군수) 허기하(54·민·정당인) 조형래(56·무·자영업) 박정하(50·무·곡성신문 발행인) ●구례군수 서기동(56·우·정당인) 전경태(58·민·공무원) 이몽룡(59·무·무직) ●고흥군수 진종근(57·우·공무원) 박병종(52·민·정당인) ●보성군수 정종해(59·민·정당인) 김종표(59·기·(주)기전 윈텍회장) 하승완(54·무·보성군수) ●화순군수 전형준(50·민·다산건설(주)대표이사) 이영남(49·무·화순군수) ●장흥군수 김점중(47·우·가축인공수정사) 김성(46·민·정당인) 김인규(52·무·장흥군수) 백광준(55·무·장흥군의회 의원) ●강진군수 황주홍(54·민·강진군수) ●완도군수 김종식(55·우·완도군수) 홍종기(57·한·영진수산 대표) 박현호(54·민·정당인) ●해남군수 박희현(61·민·해남군수) 민화식(66·무·농업) ●진도군수 박연수(57·우·정치인) 김경부(67·민·지방정무직) 김상헌(46·무·자영업) 이동진(60·무·경영인) ●영암군수 김일태(61·우·정당인) 장경택(58·민·정당인) ●무안군수 서삼석(46·우·무안군수) 나상옥(52·민·농축산업) ●영광군수 정기호(51·민·의사) 강종만(51·무·금융업) ●함평군수 안병호(58·민·정당인) 이석형(47·무·함평군수) ●신안군수 김수용(46·우·정당인) 김청수(64·민·정당인) 고길호(61·무·신안군수) ●전주시장 송하진(54·우·꿈 힘 멋 전주포럼 상임대표) 진봉헌(49·민·변호사) 김민아(36·노·정당인) ■ 경상북도 ●포항시장 황기석(50·우·(주)늘솔조경 대표이사) 박승호(48·한·포항국제화포럼 공동대표) 김병일(49·노·정당인) 김대성(51·무·포항사랑정책연구소 대표) 박기환(57·무·공인회계사) ●울릉군수 이석준(56·우·(주)바이오쉴드 이사) 최수일(54·한·울릉군의회 의원) 정윤열(63·무·무직) ●경주시장 이상두(65·우·정치인) 백상승(70·한·경주시장) ●김천시장 박보생(55·한·무직) 김정국(63·무·김천시의회의장) 전영수(44·무·학원경영) 최대원(50·무·대구대학교 겸임교수) ●안동시장 김명호(46·우·정치인) 김휘동(61·한·안동시장) 김윤한(47·무·시민운동가) ●구미시장 남유진(53·한·경영지도사) 최근성(41·노·민주노동당 경상북도 위원장) 신수식(43·무·시민단체 대표) 채동익(58·무·(사) 구미 중소기업 협의회 자문위원) ●영주시장 김주영(57·한·정당인) 권영창(63·무·영주시장) 박시균(68·무·청봉의료재단 성누가병원 이사장) 최영섭(41·무·정치인) ●영천시장 손이목(57·한·공무원) 이남희(54·무·무직) 이태곤(58·무·겸임교수) ●상주시장 이정백(55·한·정당인) 강영석(40·무·무직) 김태희(57·무·농업) 민정기(45·무·상주시의원) 정송(51·무·무직) ●문경시장 신현국(54·한·안동대학교 초빙교수) 박인원(69·무·문경시장) 함윤철(45·무·건설업) ●예천군수 김수남(63·한·예천군수) 오창근(58·무·무직) ●경산시장 최병국(50·한·공무원) 서정환(60·무·정치인) ●청도군수 이원동(57·한·청도군수) 김하수(47·무·겸임교수) ●고령군수 김인탁(56·한·고령주유소 대표) 이태근(58·무·고령군수) ●성주군수 우인회(54·우·정당인) 이창우(68·한·성주군수) 오근화(52·무·성주군의회의원) 전수복(76·무·성주군의원) 최성곤(45·무·계명대학교 교수) ●칠곡군수 배상도(67·한·칠곡군수) 박창기(49·무·(주)화동개발 대표이사) 장세호(49·무·무직) ●군위군수 장욱(51·한·정당인) 김휘찬(55·무·군위농업협동조합장) 박영언(67·무·공무원) 이명원(51·무·제일인쇄소 대표) ●의성군수 김주수(54·한·경북대학교 초빙교수) 김복규(66·무·무직) 전병오(57·무·빙계온천대표) 최유철(52·무·법무사) ●청송군수 윤경희(46·한·정당인) 배대윤(57·무·공무원) ●영양군수 남정태(66·우·정당인) 권영택(43·한·영양여자중고등학교 이사장) 권경호(64·무·정당인) 김공박(62·무·사단법인 도시행정발전연구소 이사장) 오근목(54·무·사업) 이호근(57·무·무직) 이희지(57·무·무직) ●영덕군수 김병목(54·한·영덕군수) 남효수(43·무·(주)바이오크랩 대표이사) 박문태(50·무·영화상영업) 정라곤(56·무·무직) ●봉화군수 김희문(50·한·봉화자동차운전전문학원장) 박현국(46·무·농업) 엄태항(57·무·약사) ●울진군수 신정(64·우·(주)아시아엘에스디앤씨 대표이사) 김용수(66·한·울진군수) 임광원(55·무·무직) 장정윤(59·무·시인) 주승환(68·무·고려공업검사(주) 연구소장) ■ 경상남도 ●창원시장 진광현(41·우·열린우리당 김두관 최고의원 정책보좌관) 박완수(50·한·창원시장) 손석형(47·노·두산중공업 근무) ●마산시장 양운진(56·우·평생교육시설 들꽃온누리고 교장) 황철곤(52·한·마산시장) 이상기(66·국·정당인) 권영건(59·무·정당인) ●진주시장 강주열(41·우·정당인) 정영석(59·한·진주시장) 하정우(37·노·정당인) ●진해시장 이재복(59·한·금화개발 대표) 김용호(54·무·무직) 이찬수(52·무·수필가) 주정우(65·무·사업) ●통영시장 박청정(63·우·세계해양연구센타소장) 진의장(61·한·공무원) 강부근(59·무·기초자치발전연구소장) 김미희(41·무·무직) 안휘준(46·무·치과의사) 황종인(42·무·회사대표(메트로마트)) ●고성군수 백두현(39·우·정당인) 이학렬(54·한·정무직공무원) 제정훈(61·무·무직) 최평호(57·무·무직) 하태호(46·무·겸임교수) ●사천시장 김수영(60·한·사천시장) 송도근(58·무·무직) 정만규(65·무·만구수산주식회사 회장) ●김해시장 이봉수(49·우·정당인) 김종간(55·한·가야대학교 겸임교수) 유신현(50·무·김해-마산 지하철 유치위원회 위원장) 유효이(59·무·정치인) 주정화(47·무·김해문화센터관장) ●밀양시장 엄용수(41·우·공인회계사) 박태희(49·한·정당인) 김종상(64·무·선녀상사) 이창연(40·무·밀양경제발전연구소 소장) 이태권(62·무·농업) ●거제시장 변광용(40·우·정당인) 김한겸(56·한·거제시장) 변성준(41·노·회사원) 배길송(64·무·경영인) 설계현(51·무·자영업) 윤성기(51·무·자영업) 황양득(38·무·무직) ●의령군수 한우상(58·한·의령군수) 박민웅(44·노·농업) 김채용(56·무·정치인) ●함안군수 조영규(58·한·(사)더불어사는사회연구소 이사장) 진석규(57·무·함안군수) ●창녕군수 이수영(59·한·사업) 장병길(45·노·농업) 김윤현(55·무·온누리 청소년수련원 원장) 김종규(57·무·정무직 공무원) ●양산시장 정병문(42·우·영풍농장 대표) 윤장우(50·한·정당인) 김영태(54·무·자영업) 손유섭(68·무·무직) 오근섭(58·무·양산시장) ●하동군수 조유행(59·한·하동군수) ●남해군수 정현태(43·우·정당인) 하영제(52·한·남해군수) 김용직(49·무·남성유체기술산업 대표) ●함양군수 천사령(63·우·함양군수) 이철우(57·한·정당인) 최은아(44·민·인산암센터 대표이사) ●산청군수 정막선(74·우·정당인) 이재근(53·한·정당인) 권철현(58·무·산청군수) 박용범(58·무·무직) ●거창군수 최용환(42·우·농업) 강석진(46·한·거창군수) 이상학(56·무·두진바이오 대표) ●합천군수 김기태(44·우·정당인) 심의조(67·한·합천군수) 이병기(60·무·자영업) 이병웅(53·무·제조업) 이창규(59·무·경상남도의회 의원) ■ <범 례> ●우=열린우리당 한=한나라당 민=민주당 노=민주노동당 국=국민중심당 미=한미준 기=기타정당 무=무소속. 후보자는 이름 나이 정당 직업 순. ●광역·기초의원 출마자 명단은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seoul.co.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 제정으로 기초 단체장(시장·군수)과 기초의원을 뽑지 않고 도지사와 도의회 의원만 선출합니다.
  • 삼성 울산에 둥지… 현대 아성 흔들?

    삼성 울산에 둥지… 현대 아성 흔들?

    ‘울산=현대=중화학공업도시’ 아성 깨질까. 현대 및 중화학공업도시로 대표되는 울산지역에 삼성이 가볍고 작은 ‘경박단소형’ 첨단 제품인 PDP(Plasma Display Panel) 생산라인의 건설을 추진, 울산의 변화여부에 모으고 있다. SDI는 4일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삼성SDI공장 여유부지 3만평에 최첨단 디스플레이 제품인 PDP 생산시설 4라인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당초 4라인을 현재 PDP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천안사업장(1∼3 라인)에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공장부지 여유가 있는 울산쪽에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7년 4월까지 모두 7300억원을 투자해 단일라인으로는 최대 생산규모인 연간 300만대 생산 능력의 PDP 생산시설을 울산에 신설한다. 생산라인 신설에 따라 울산에서는 연간 3000명의 고용이 창출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SDI는 세계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고부가 제품인 50인치 중심으로 울산 PDP생산시설을 특화하고 앞으로 생산시설을 계속 증설해 울산 사업장을 디지털산업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울산시는 삼성SDI 울산공장을 포함한 주변지역을 지방산업단지로 지정해 도로·수도·공업용수 등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등 삼성의 울산지역 디지털산업 투자를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삼성SDI 울산 사업장에서는 현재 브라운관과 휴대폰용 LCD 등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SDI가 울산에서 첨단산업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지금까지 오래동안 인식돼온 ‘울산=현대=중화학공업도시’라는 등식에도 변화 예상된다. 지난 2004년 말 기준 울산지역 제조업 총생산은 96조 5997억원으로 이 가운데 자동차가 24조 3930억원(25.2%), 조선 11조713억원(11.5%), 석유화학 43조225억원(44.5%)으로 전체의 82.2%를 차지하고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주총시즌…사외이사 누굴 미나

    주총시즌…사외이사 누굴 미나

    본격적인 주총 시즌에 들어가면서 상장·등록사들의 사외이사 후보 면면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기업들이 투명 경영과 이사회 독립 경영의 ‘창(窓)’으로 사외이사들을 영입하는 만큼 후보에 오른 대다수는 전문성을 갖춘 사회적 명망가들이다. 그럼에도 올해 추천된 사외이사 후보들을 살펴 보면 예년과 달리 몇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논란’의 후보들 ‘후보=사외이사’임을 의미하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논란’을 빚고 있는 후보들의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다. 주총 표대결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이는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KT&G의 사외이사 후보들. 경영권 간섭을 선언한 미국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측(지분 6.59%)은 워렌지 리히텐슈타인 스틸파트너스 대표와 하워드 엠 로버 벡터그룹 대표, 스티븐 올로스키 뉴욕주 변호사 연합 임원 등 3명을 추천했다. 이 가운데 하워드 엠 로버는 미국의 담배 제조업체인 벡터그룹의 최고경영자(CEO)로 경쟁업체 임직원은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다는 규정에 위반돼 논란이 일고 있다. KT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 표대결도 3년 연속 이어진다. 노조는 60만 9572주(지분 1.28%)를 위임받아 사외이사 후보로 송덕용씨를 추천했다. 송씨는 노동정책연구소 연구원과 울산 참여연대 설립위원, 이정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등을 거쳤으며 현재는 한울회계법인 이사, 녹생병원 감사, 민노당 부산시당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노조는 지난 2년연속 이병훈 중앙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지만 주총 표대결에서 졌다. ●‘의외’의 인사 소버린자산운용과 2년간 경영권 분쟁을 치른 SK㈜가 사외이사 후보로 헤지펀드의 대부격인 소로스펀드와 함께 일한 전문경영인을 추천해 매우 의외라는 평이다.SK㈜가 소버린과 싸우면서 투기펀드에 대해 느낀 점을 감안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돈다. 또 젊고, 증권계 업무에 정통한 점도 영입 배경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강찬수(44) 서울증권 회장. 강 회장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1999년 소로스펀드의 서류회사(페이퍼컴퍼니)인 ‘QE인터내셔날’을 통해 서울증권 주식 732만주(주당 6670원)를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되면서 CEO가 됐다. 강 회장은 2001년 회장으로 승진해 서울증권을 이끌면서 주식 1318만 8083주(5.02%)를 보유하고 있다. ●거물급·법조인은 여전히 상종가 사외이사 ‘단골손님’인 관계의 거물급 인사와 법조인들은 올해도 ‘귀하신 몸’이다. 포스코는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과 허성관 동아대 경영학과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허 교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으며, 해양수산부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삼성전자는 김&장 법률사무소 출신 2명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대전고검 차장 검사 출신인 윤동민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황재성 김&장 상임고문은 재추천됐다. 정귀호 법무법인 바른법률 고문 변호사도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됐지만 재추천됐다. 정 변호사는 대법원 대법관 출신이며, 황 고문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땀으로 쓴 빛나는 졸업장

    땀으로 쓴 빛나는 졸업장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못배운 한’을 극복해 낸 이들의 졸업장에는 남다른 감동이 담겨있다. 오는 12일 경동고 부설 방송통신고를 졸업하는 늦깎이 185명의 졸업장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졸업생 중 78명은 영 불가능할 것 같던 대학진학의 꿈도 이뤄냈다. 인생 선후배로 만나 평생의 단짝이 된 방통고 4인방을 만나 삶의 애환과 열정을 들어봤다. ●아이들에게도 감춘 ‘남몰래 면학’ 3년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선(41·여)씨는 다음달 06학번 대학(광주 남부대 미용학과) 새내기가 된다. 남보다 20년 늦은 입학이지만 마음이 들떠 밤에 가끔 잠을 깰 정도. 김씨는 고2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뒀다.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던 김씨는 남편에게만 살짝 말하고 방통고에 입학했다. 아이들은 물론 미용실 직원들에게도 비밀로 했다. “수업이 있는 일요일마다 새벽에 시어머니 몰래 집을 나서기가 어찌나 죄송하고 조마조마하던지, 수학여행 때는 해외출장이라고 거짓말도 했죠.” 13년 미용사 경력을 높게 평가한 남부대에서 퍽 좋은 조건을 걸어 김씨를 붙잡았다. 졸업 후에는 미용학과 강단에도 설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광릉수목원에서 일하는 나성수(41)씨는 지난해 가장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낮에는 전국 산림지역을 강타한 소나무 재선충과 싸워야 했고 밤에는 책과 씨름을 해야 했다. 먼 남해안까지 출장을 갔다가 시험을 위해 혼자 밤차로 돌아온 적도 있다.“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밤새워 공부했는데 대학(서울산업대 컴퓨터공학과)까지 합격해 기쁩니다.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수확이지요.” ●“세월은 못 속여…돌아서면 잊어버려” 학생회장을 지낸 김성대(47)씨는 단짝 4인방의 맏형. 가방제조업체의 사장인 그는 “방통고 입학이야말로 평생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방통고에 입학하기 전 그는 큰 시련을 겪었다. 암에 걸린 아내와 신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병수발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늘 술에 절어 있었다. 방통고는 그에게 새 삶을 가져다 주었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도 학교 친구들에게는 다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려니 30년 세월의 벽이 만만치 않았다. 교실에선 아는 것 같아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복습을 하고 회사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 덕에 졸업식에서 김씨는 우등상,3년 개근상, 학교장상 등 상을 5개나 받는다.“수능시험 때 어쩌다 보니 도시락을 못 가져왔어요. 교사식당에서 감독교사인 척 점심을 얻어먹었죠.” 연매출 100억원 규모 건설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유용상(40)씨는 졸업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등학교는 꼭 졸업했으면 좋겠다.”던 어머니가 지난해 돌아가셨다. 졸업식을 마치면 바로 어머니 산소에 졸업장을 바치고 올 생각이다. 김성대씨와 함께 서경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는 그는 건축공학, 인테리어, 부동산 등 55세까지는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청소년 시절 반항기를 심하게 겪다보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었으면 합니다.”사회에 던지는 유씨의 부탁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중소기업 “인력난 가장 걱정”

    일자리를 찾는 실직자는 많지만 울산지역 중소제조업체는 생산직 분야의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시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는 2일 직원 30명∼299명 규모의 울산지역 중소기업 126개 회사를 대상으로 경영전반에 걸쳐 최근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인력 문제를 꼽은 회사가 49개사(39%)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27개사(21%)는 공장부지문제가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전체 29%인 37개사는 인력난 때문에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인력난에 따른 생산차질은 호황기를 맞고 있는 선박부품업체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제조업 영업형태는 대기업 등에 단순납품이 50개사(40%), 납품과 직접판매의 혼합형 43개사(34%), 직접판매 33개사(26%) 등이었다. 내년도 매출전망에 대해서 77개 업체(61%)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금운영상태는 83개 회사(66%)가 보통이라고 답했으며 27개 회사(21%)는 다소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지원센터는 구직자들이 힘드는 생산업종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중소기업 인력난이 심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설문조사 결과를 중소기업 지원시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의정 포커스] 금천구 의회

    [의정 포커스] 금천구 의회

    서울 금천구의회의 최대 현안은 구가산동에 있는 ‘디지털산업2단지’ 11만 9932평을 국가산업단지에서 해제시키는 것이다. 구청이나 구의회 입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3단지 34만 3372평까지 국가산업단지에서 해제하고 싶지만, 산업자원부 등 관련 중앙부처의 반대가 심해 우선 2단지 해제에 집중할 방침이다. ●“패션타운 발전 막는 전형적 탁상행정” 대형 아웃렛(Outlet)과 의류 쇼핑몰이 속속 들어서면서 서울 최대 패션타운으로 부상한 금천구 가산동(구로구 가리봉동에서 분구·분동) 일대는 대부분 국가산업단지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돼 자생력까지 갖춘 패션타운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산업단지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구로·금천구 일대에 지난 1964년부터 73년까지 10년여에 걸쳐 조성한 서울산업단지(구로공단)는 모두 1·2·3단지 세곳이다. 이곳에서는 70년대 후반 국가수출 실적의 12.3%까지 차지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2003년 현재 수출 기여도는 1.04%로 하락한 상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가산업단지 가운데 금천구에 지정된 2·3단지는 152만 8905㎡(46만 2000평)로 금천구 전체 면적(13.07㎢)의 11.6%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금천구의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구청장은 물론 구의원들의 주장이다. 디지털산업2단지의 국가산업단지 해제를 주장하며 과천정부종합청사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안영식(가산동)구의원은 “산업자원부는 이곳을 해제할 경우 전국에서 잇따를 비슷한 요청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지역 주민의 정서를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구의회 의원들은 이미 지난 지난해 9월 의원 전원이 소속된 ‘서울디지털산업2단지의 국가산업단지 해제 추진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구의원들은 우선 2단지 11만 9000여평에 대한 산업단지 해제를 산업자원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2단지는 이미 의류할인매장 및 생산시설 306개가 입주하는 등 패션타운 점유율이 96%에 달해 국가산업단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형 공장 짓기엔 경쟁력 떨어져 이들은 또 “2단지의 경우 땅값이 평균 평당 1000만원을 넘어서 이곳에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 분양하면 평당 400만원대로 타지역 국가공단에 비해 5배 이상 비싸 경쟁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시화공단이 74만원·남동공단 72만원·아산공단 43만원·구미공단 42만원·대불공단 23만원 선이다. 구의회는 또 금천구에 있는 2·3단지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에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 구 관계자는 “과거 50만평이 필요했다면 최근엔 고층화를 통해 20만평으로도 충분하다.”면서 “2단지는 해제하고 3단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제 특위’는 이밖에 “제조업이 중요하지만 제조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있다는 논리로 2단지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60년대 산업단지 조성후 중앙정부의 기반시설투자가 없었다. 자치단체의 일방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국가산단 해제 주장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구는 지난 2002∼2004년까지 242억 8000만원을 들여 도로건설·침수방지·청소 등을 실시했다. 올해에도 역시 70억 7800만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고용실태를 조사해본 결과 금천구 주민고용은 6.1% 불과했다. 주변 환경개선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금천구에 들어선 까르푸는 직원의 87.9%를, 삼성홈플러스는 35.7%를 금천구민으로 채용하고 있다. 의회와 구청은 2단지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산업 단지 해제를 요구하는 민원을 청와대·산자부·건설교통부 등에 보냈다. 또 6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관련 연혁 ▲2003.2.24 발전방안 연구용역 ▲2004.7.22 용역결과 보고, 건의 서 제출(산자부, 건교부, 서울시) 9.10 해제추진특별위원회 구성, 결의 문 채택(청와대, 산자부, 건교부 등 33개 기관 송부) 9.16 발전방안 세미나 개최 12.21 국회청원 접수 ▲2005.1.05 건교부 대책회의, 1.14 산자부 대책회의, 2.18 관리개선방안 정책회의(서울시), 2.23 건교위 청원심사 소위원회 개최, 6.20 안영식 구의원 1인 시위, 7.14 산집법 개정 관련 의견제출, 8.1 관리권의 지자체 이양(안)관련 의견제출(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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