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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해남·충남 서산등 5개 시·군 유치전 치열

    경남 진해에서 옮기게 될 해군 교육사령부를 붙잡기 위해 전남 해남·영암·신안 등 3개 군과 충남 서산시, 강원 동해시 등 전국 5개 시·군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해군은 진해의 현 교육사령부(78만평)가 비좁고 시내권으로 편입되면서 100만평 규모의 새터를 찾고 있다. 사업비 3000억여원에 2007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의 연간 교육생은 1만 5000여명이고 영외 거주자 등 주변 상주인구는 2000여명으로 알려졌다. 전남 해남군은 정유재란 때 배 12척으로 왜선 300여척을 수장시킨 충무공의 명량대첩지(울돌목) 인근 등 2개 후보지를 선정해 해군에 제시했다. 제1 후보지로 문내면 용암리와 황산면 옥동리 사이 간척지 180만평을 추천했다. 이곳은 울돌목과 500m 거리로 역사적 유적지 인근인데다 땅 임자가 1명이어서 매입이 쉽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목포시까지 20분밖에 걸리지 않고 국도 18호선(해남읍∼진도읍) 주변으로 접근성도 좋다. 특히 여기서 6㎞쯤 떨어진 산이면 덕호리 간척지 90만평에다 해군이 통신기지를 건설중이다. 제2 후보지로는 흙 매립공사를 마치고 논바닥을 고르고 있는 영산강 3-2 간척지구인 계곡면 잠두리와 덕정리 사이 160만평이다. 영암군은 민·관으로 유치위원회(70여명)를 구성하는 등 범 군민이 나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위원회는 금정면과 군서면을 후보지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신안군도 목포시와 다리로 연결중인 압해도 일대 공유수면을 매립해 후보지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충남과 강원도에서도 자치단체의 행정적 편의 등 인센티브를 내세우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1) 간월도와 웅도 어리굴젓 맛 대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1) 간월도와 웅도 어리굴젓 맛 대결

    지방자치단체마다 특산품 홍보에 잔뜩 열이 올라 있다.이런 마당에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인지도가 높은 고부가가치의 특산품이 있다면 오죽 좋으랴.충남 서산 어리굴젓이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 아닐까.오랜 역사와 전통을 밑천삼아 팔아먹을 수 있는 ‘해양지적소유권(海洋知的所有權)’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분다고 느끼는 순간,어리굴젓 생각이 간절해졌다.뜨끈뜨끈한 흰쌀밥에 맵짠 어리굴젓을 올려서 먹는 맛이란! 그런 충동 때문이었을까.뜬금없이 천수만 간월도로 향했다.홍성나들목에서 불과 15분 거리.천수만 간척지에 포함돼 더 이상 섬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촌에 돌아와 살면서 ‘해양벤처’를 주도하고 있는 유명근(섬마을어리굴젓 대표)씨는 “어리굴젓이 없었더라면 아마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을는지 모르지요.” 한다.우리에게 어리굴젓은 바로 이런 것,가히 ‘마력의 혼불’이 아니겠는가. 제조 과정을 물으니 대답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시범부터 한다.굴과 소금을 버무려 옹기에서 숙성시킨 강굴을 함지박에 쏟아 놓는다.태양초를 물에 개어 만든 고춧가루 범벅을 붓고 손으로 버무린다.손맛이 중요하다.이걸로 어리굴젓 만들기는 끝. 너무 단순해 재설명이 필요없다.의문이 풀린다.뒷맛이 개운한 것은 들어가는 재료가 소금과 고춧가루뿐이라는 데서 비롯된다.재료가 많으면 맛은 오묘할지 몰라도 뒷맛의 담백함은 놓치기 쉽다. ●간월도 굴은 알보다 털날개가 커 이곳의 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왜 어리굴젓 앞머리에 ‘간월도’가 붙어야 제격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쉽게 이해된다.굴은 몸체인 알과 날개부분으로 이루어진다.그런데 간월도굴은 알보다도 털날개가 크기 때문에 고춧가루로 버무릴 때 양념이 스며드는 면적이 커서 한결 맛이 좋다.간월도 주변은 돌보다 개펄이 많은데 자잘한 돌에 붙어 살던 굴이 2년쯤되면 떨어져나가 펄 속에서 자란다.‘토굴’이니 ‘토화’니 하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으니 깊은 수심에서 크게 키운 양식굴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소금만큼은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소금이 맛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말이다.중국 소금을 쓰면 어김없이 쓴맛이 난다.이곳에서는 천수만 건너 태안군 곰섬의 소금을 들여다 쓰는데 최소한 1년 이상을 묵히며 간수를 뺀다.예전에는 소금을 뜸뿍 쳐서 아예 ‘짠젓’이라 불렀으나 냉장고 덕분에 한결 싱거워져 저염도를 요구하는 현대인의 입맛에도 맞다. 천수만이 방조제에 가로막히면서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몰려들던 ‘천혜의 만(灣)’이 이제는 새들이 몰려드는 ‘천혜의 들판’으로 변해 상전벽해를 실감하게 한다.예전에 조기떼가 몰려들어 우는 소리에 잠못이루던 천수만에 이제는 철새들이 몰려와 임무교대를 하였다.바닷물고기는 사라지고 하늘새가 공간을 대신 차지한 셈.천수만 민중의 삶도 급변해 대를 이어 고기잡이를 하던 어민들이 횟집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어로수입보다 관광수입이 훨씬 벌이가 좋다.어리굴젓만으로는 생계 유지도 어려워 근동 몇 집이 어울려 이를 상품화,내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간월도에서 건너보이는 창리 포구에는 지금도 ‘조기의 신’ 임경업 장군을 모신 영신당이 있어 해마다 정초면 북소리 드높이며 배치기 소리에 맞춰 영신제를 올린다.간월도 건너편의 안면도 황도에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황도붕기풍어놀이’가 전승되고 있으니,간척으로 고기는 줄었어도 오래 지속돼 온 천수만의 민속문화만은 잔존해 그 옛날의 영화를 웅변해 준다. ●생산 주체인 여성 주도의 삶 간월도는 수산의례가 남아 있는 곳이어서 관심이 배가된다.정월 대보름에 아낙들이 펼치는 ‘굴부르기 놀이’가 그것.이 의례는 생산 주체인 여성 주도의 문화유형이다.굴 채취는 물론이고 억척스럽게 머리에 이고 홍성 광천장까지 판로 개척에 나섰던 여성들의 힘이 굴부르기란 축제로 압축되어 유형화한 것이다.굴을 부르는 주술적 의례의 주도권을 여성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섬의 경제 행위에서도 여성의 역할과 권한이 막강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그래서 “간월도의 남자들은 여자들 덕에 놀고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어리굴젓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북쪽의 대산읍 웅도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까닭이 있다.웅도어리굴젓 또한 다른 독특한 맛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맛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웅도는 물때를 잘 맞춰서 가야 한다.경기도 화성의 제부도처럼 물때에 따라서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기 때문이다.웅도가 자리잡은 가로림만은 태안반도에서 그나마 오염되지 않은 곳.대호방조제,석문방조제,이원방조제 등으로 태안반도의 지도가 바뀌는 와중에도 가로림만은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남았다.간만조차가 심해 해남의 울돌목과 더불어 조력발전이 늘상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웅도에도 ‘수산벤처인’이 있다.체험어장 등을 운영하는 김종희씨가 그 대표격이다.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는 ‘해수김치’도 개발해 내고 웅도 어리굴젓의 명맥도 이어간다.간월도 어리굴젓이 ‘김장김치’라면,웅도 것은 ‘겉절이김치’쯤 될까.잘게 자른 쪽파와 생밤,고춧가루 등을 넣어서 즉석에서 먹거나 숙성시켜 먹는다.같은 서산 관내에서도 어리굴젓 제조법이 전혀 다른 것은 해양문화의 지역적 다양성이 매우 중층적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생굴을 바로 담근 것이라 맛이 신선하다.필자 같은 도시민은 대개 갓 담은 젓갈을,현지인들은 조금 발효된 젓갈을 선호한다.사람의 입맛 기준치도 문화적 다양성만큼이나 중층적이다. 간월도와 웅도의 젓갈 맛이 다름은 단지 제조법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광해군 11년(1619)에 서산지방의 풍물을 기록한 한여현의 호산록(湖山錄)을 보면,‘화변과 마산(지금의 간월도 근역)에는 석화가 가을과 겨울철에 여물고 2∼3월에 사라진다.대산과 지곡(지금의 웅도 근역)에는 3∼4월에 여물고 5월에 사라지니 가히 남북 갯벌이 같지 않다.’고 하였다.간월도와 웅도의 갯벌이 다르고 같은 굴이라도 생태적 환경조건에 따라 예전부터 변별성이 있었음을 이르는 말이다.그러한즉 앞으로는 두루뭉술하게 ‘서산 어리굴젓’으로만 부르지 말고 ‘간월도 어리굴젓’이라거나 ‘웅도 어리굴젓’으로 불러 양자의 개미(個味)와 특성을 인정해 줄 일이다. 사실 웅도의 명물은 어리굴젓만이 아니다.호산록에 “홑옷 입은 가난한 어민들이 얼음을 깨고 굴을 따며 눈을 쓸고 낙지를 잡는데,맨발로 언 갯벌에 들어가 천번 만번 죽을 고생하여 관청에 헌납하면 관리들은 인정도 없이 해산물을 더 배정한다.”고 했듯 예로부터 낙지 잡이가 성행했다.지금도 인근 중왕리와 더불어 낙지가 엄청 잡히는 곳으로 꼽힌다. 남도의 세발낙지와 달리 색깔이 붉고 선명하다.초여름부터 11월 무렵까지 잡히는데,맨손어업,혹은 주낙으로 잡는다.맨손으로는 한 사람이 한번에 40∼50마리는 거뜬하고,주낙이라면 한 물때에 200∼300마리까지 잡아 올린다.마리당 4000원쯤 받으니 하루 벌이가 10만∼20만원에서 운 좋은 날은 70만∼80만원까지 치솟을 때도 있다.그래선지 웅도는 인근의 알아주는 부촌이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어린 낙지가 스물스물 펄 밖으로 기어나온다.이때 잡은 낙지를 넣고 ‘밀국낙지’를 끓여냈다.아예 박속에 낙지를 넣어서 끓인 ‘박속낙지’도 있다.추억의 어촌음식인데 이제는 서울 등 대처의 대중음식점 메뉴로까지 변신했다.웅도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소달구지 전통도 이어오고 있다.‘물펄’이라 경운기 바퀴가 빠지는 것도 이유겠지만 전래의 소달구지를 이용해 저물 무렵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일명 ‘달구지마을’이란 웅도의 닉네임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보리 익을 무렵 ‘밀국낙지’ ‘박속낙지’ 별미 그러나 낙지가 지천인 천혜의 가로림만도 이상 징후를 보인 지 오래다.인근의 대규모 간척으로 만에 유입된 조류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는 탓에 펄이 사라지고 있다.펄이 사라지자 자갈밭이 드러나고,해변의 산이 파이고,경관 자체도 변했다.지천에 널렸던 갯지렁이도 거지반 사라지고 없다.갯지렁이가 사라졌다는 것은 가로림만의 생태환경에 적신호가 울렸다는 뜻이다.‘부풀’이나 ‘오리밥’으로 불리는 작은 조개류는 낙지의 먹을거리여서 일명 ‘낙지밥’으로도 불렸으나 15년쯤 전부터 이 조개가 사라지면서 낙지가 줄어 이제는 어과도 예전 같지 않다.미역,우뭇가사리,청각,톳 따위도 지천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황금산을 오른다.태안반도를 굽이쳐 돌아가며 경기만으로 치고 올라가는 해류가 흐르는 황금곶(串).서산 남쪽의 천수만 창리에 영신당이 있다면,웅도 북쪽 방향 끄트머리인 독곶에는 임경업 장군의 신당을 모신 황금산이 있다.남쪽 천수만에 간월도가 있다면 북쪽 가로림만에 웅도가 있는 격이다.일망무제로 태안반도에 북쪽 바다가 펼쳐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임해공단의 굴뚝과 대산항이 먼저 눈에 든다.미려한 사구가 펼쳐진 독곶은 공단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밥상머리에서 비벼 먹는 어리굴젓의 입맛 내림만 의연할 뿐,바다삶의 조건이 이처럼 곳곳에서 급변하고 있으니,이런 기록이나마 남겨두지 않으면 후세가 그 단절의 역사를 어찌 알 것인가.
  • 진도 / 글씨·노래·그림에 비경은 덤

    전남 진도에 가면 자랑하지 말라는 세가지가 있다.첫째가 글씨,둘째가 노래,셋째가 그림이다. 남도문화의 정수만 모아놓았다는 진도는 어느 마을에 가도 남도창 한 가락쯤 멋드러지게 뽑아내는 이가 서넛은 있게 마련.또 진도 출신의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許維) 선생의 화풍은 지금도 한국 전통화단의 중심 맥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진도 나들이에서 진한 육자배기 한 가락,소치의 그림 한 점 구경못했다면 공연히 헛발품만 판 것.‘섬중의 보배’라는 진도의 비경도 구경할 겸 예술 향기 그윽한 진도로 나들이를 떠난다. ●구름속 화실 ‘운림산방’ 운림산방(雲林山房).소치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다.마침 비 갠뒤 올라가기 시작한 구름이 산방뒤 첨찰산 중간쯤에 걸려 있는 풍광을 보면서 ‘당호(堂號) 한번 절묘하게 지었다.’란 느낌이 든다. 산방 앞 널찍한 연못엔 연(蓮) 잎이 수면을 반쯤 덮고 있다.군데 군데 봉곳이 솟은 하얀 연꽃이 초록 일색의 심심함을 덜어준다.연못 중앙엔 자연석을 쌓아 만든 둥근 섬이있는데,여기에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그루가 서 있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소치는 초의대사,추사 김정희로부터 서화수업을 받았다.특히 추사 문하에서 중국의 미불,황공망,예찬 등의 화풍과 추사의 서체를 익혔는데,스승으로부터 ‘압록강 동쪽에 너를 따를 자 없다.’란 칭찬을 듣기에 이른다.‘소치’란 호도 중국 원나라 4대 화가중 한 사람인 대치 황공망과 견줄 만하다며 추사가 붙여주었다고 한다. 운림산방엔 소치가 기거하던 초가와 사랑채,화실, 전시관 등이 있다. 전시관엔 소치,그리고 그의 화풍을 이은 아들 미산 허형,손자인 남농 허건 및 의재 허백련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입장료 500원.(061-543-0088) 소전미술관과 남진미술관도 진도 예술나들이의 필수 코스.소전미술관(061544-3401)은 국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을 엮임했던 소전 손재형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올해 개관했다.중국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른바 ‘소전체’란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한 그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구성진 남도가락 어깨춤 저절로 남진(南辰)미술관(061-543-0777)은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로 세운 전시관.장전의 작품 뿐만 아니라 흥선 대원군,김옥균,민영환 등 유명 인사들의 서화작품,고려청자,백자 등 국사책에서나 보았던 국보급 미술품 등이 전시돼 있다.하지만 장전 선생이 노환과 경제적 문제로 미술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진도 민요를 듣고 싶다면 진도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토요민속기행에 참가해보자.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된다.강강술래를 비롯,진도 씻김굿,진도북놀이,남도 들노래,진도 다시래기,진도만가 등이 이어진다. 공연 끝 부분에서는 진도아리랑,둥덩게타령 등 흥겨운 가락을 관람객들과 함께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061)540-3139. 진도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진도대교를 건너자 마자 나오는 녹진 전망대.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 꼭대기에 서니 동쪽으로 거센 물살이 흐르는 울돌목과 그 위로 지나는 진도대교,구불구불 이어진 해남의 해안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숨막히는 옥색 물빛따라 드라이브 울돌목은 이 충무공의 3대 해전중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곳.남해에서 서해로 나가는 길목으로 시속 12노트 정도의 거센 물살이 굉음을 내면서 흐르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이 충무공은 당시 왜선 130여척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궤멸시킴으로써 왜군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23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진도는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그중에서도 서부해안쪽이 최고로 꼽힌다.진도대교를 지나 우측으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드라이브는 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세방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목길목 다도해의 옥색 물빛과 어우러진 섬들이 눈길을 끄는데 그중 압권은 약 5㎞에 이르는 세방길.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노송과,투명한 바닷물,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절묘한 조화가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진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식후경/ 혀끝에서 살~살 ‘갈치구이’ 진도읍 성내리 진도초등학교 아래 ‘제진관식당’의 음식이 맛 좋기로 유명하다.요즘은 갈치구이(사진),간재미(일명 상어가오리)회가 잘나간다.갈치구이 맛의 생명은 재료의 선도.잡은지 오래됐거나 냉동했던 갈치는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육질이 팍팍해 금방 표가 난다고.식당주인 조권의씨는 싱싱한 갈치 구입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갈치구이 백반(1만원)엔 민어탕과 몇가지 나물,젓갈 등이 포함되는데,요즘 민어가 잘 안잡혀 서대,우럭으로 탕을 끓여낸다.간재미회는 오독오독 뼈째 씹히는 고소한 맛이 일품.진도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간재미를 적당하게 썰어 몇가지 야채와 양념,막걸리 식초를 넣어 버무린 회무침은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을 낸다.도톰하게 썰어 묵은 김치에 싸먹어도 좋다.1접시(2만원)면 2,3명이 먹기에 적당하다.(061)544-2419. 가이드/ 근처 관매도 들러 해수욕도 ●가는 길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13,18번 도로를 차례로 갈아타면 진도대교로 진입할 수 있다.서울서 5시간 쯤 걸린다.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광산IC에서 빠져 13번 도로를 타고 나주,영암을 거쳐 18번 도로로갈아타면 된다.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진도행 고속버스가 하루 4회 출발하며,광주와 목포에서 시외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다.광주 또는 목포까지 비행기 또는 열차를 타고가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진도 시외버스터미널(061-544-2141),군내 버스(061-544-2062). ●숙박 진도대교 인근의 군내면 녹진리 및 진도읍 일원에 프린스모텔(061-542-2251),대동모텔(061-543-5188),진도하우스(061-542-7788) 등 여관이 많다.콘도형 통나무집에서 묵고 싶으면 의신면 송군리의 마린빌리지(061-544-7999)를 찾으면 된다. ●관매해수욕장 해수욕을 즐기고 싶다면 여섯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 군도중 대표적인 절경을 모아놓았다는 관매도로 가보자.진도 서남단 팽목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엔 마치 금방 미장일을 끝낸 것처럼 고운 백사장을 자랑하는 관매해수욕장이 있다.길이 2㎞의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물이 맑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백사장 주위론 3만여평에 달하는 송림이 들어서 있다.팽목항에서 조도페리호가 오전 6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출발한다.요금은 6800원.승용차(2만6000원)도 가져갈 수 있다.팽목 매표소(061-544-5353,019-9162-1000).
  • [2002 길섶에서] 울돌목

    남도 여행길에 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 부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동이 틀 무렵,산책 삼아 검정바위들이 가득한 해안가를 걸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불과 12척 전선으로 400척의 왜군을 맞아 133척의 왜선을 수장시킨 명량(鳴梁)대첩의 현장이 코앞에 펼쳐진다.아침 햇살이 비치자 비늘처럼 반짝이는 물결이 골을 이루며 빠르게 흘렀다.간만의 차로 하루에도 몇번씩 물길이 바뀐다.세찬 물살이 암초와 부딪쳐 바다가 운다고해서 명량이라 하고,울돌목이라 했던가. 무인 순신은 눈앞에 보이는 왜적의 목을 벨 수는 있었지만,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곤궁함과 조정 대신들의 탁상공론은 벨 수가 없었다.분명히 멸(滅)해야 할 집단으로서 적(敵)은 있는데,어부·농부로 있다가 끌려운 개별 적은 멸할 수가 없었다.(김 훈의 소설 ‘칼의 노래’) 비리를 범한 죄인은 처벌할 수 있어도 부패의 온상은 처벌할 수가 없고,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신당론은 봇물을 이루는데 진정한 지도자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경형 논설실장
  • [괴짜 인생 별난 세상] 시인 해양탐험가 채바다씨

    채바다(58)씨는 시집 ‘파도가 바람인들 어쩌겠느냐’로 잘 알려진 제주 시인이다.그러나 그의 명함에는 ‘시인 채바다’는 온데간데 없고 ‘한국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채바다’다. 시를 먼저 탐닉하게 됐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바다와 파도가 너무 좋아 항해탐험이 아예 본업이 돼 버렸다는 그다. 본명 채길웅(蔡吉雄)도 바다 탐험과 추구에 더욱 충실하기위해 10년 전 ‘채바다(波多)’로 아예 바꿨다. 문약한 ‘백면서생’과 터프한 ‘인디아나존스’와의 절묘한 조화,그것이 ‘채바다’의 진면목이다. 그의 본격적인 해양 탐험은 지난 96년 5월 시작됐다.다섯명의 대원과 함께 제주의 전통 떼배인 ‘테우’를 타고 제주도 성산포에서 일본 오도열도(五島列島)까지 간 6일간의 탐험이었다.원시배 형태인 떼배로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문화 이동 경로를 직접 답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감을 얻어 97년 10월에는 2명의 대원과 11일에 걸쳐 성산포∼오도열도∼나가사키간 탐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또지난해 4월 전남 영암군 ‘왕인문화축제’때는 백제제14대왕인 근구수왕(近仇首王) 당시 천자문과 논어 10권을 갖고일본으로 간 왕인(王仁)의 항로를 되밟았다.영암군 삼호면대불항∼진도 울돌목∼완도∼거문도∼이끼섬∼가라쓰(唐津)시에 이르는 대탐사였다. 채씨가 타고 탐험한 ‘천년 1호’와 ‘천년 2호’ 등 떼배들은 지금 서귀포시 천지연 입구와 성산포 오조포구 등에 전시돼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떼배를 수상 레포츠와 관광용 문화체험 상품으로 개발,활용하기 위해 실용신안특허를 받기도 했다. 남제주군 성산일출봉 앞 오조리 포구에는 그 자신이 직접짓고 꾸민 40평짜리 보금자리겸 찻집인 ‘시인과 사람들’이 있다. 장식이라고는 자신의 탐험 기사를 실었던 국내외 신문과 잡지의 글,그리고 관련 사진들을 확대해 붙여 놓은 것이 전부다.그는 이곳에서 떼배 제작비와 탐험비용 등을 조달한다. 짬이 없는 채씨지만 성산일출봉을 찾는 신혼관광객들에게는 곧잘 ‘결혼훈’을 써준다.가장 아끼는 결혼훈은 ‘신뢰와존중’‘처음 시작처럼’. 그의 외줄타기식 아슬아슬한 생활에 애간장이녹아 서울로가버린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써주노라 했다. 채씨는 94년 월간 ‘한국시’에 ‘밤하늘에는’‘타향’‘풀꽃의 노래’ 등 3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파도가 바람인들 어쩌겠느냐’‘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어머니 눈물은 아니시겠지요’‘일본은 우리다’ 등 3권,수필집으로는 ‘일출봉에 해뜨거든’ 등이 있다. 논문도 다수다.‘한국해양문화의 시원과 떼배의 역사적 고찰’‘해양역사의 뿌리와 해양한국의 미래’‘하멜표류기의역사적 재조명과 표착지에 관한 연구’ 등이다.재작년에는두 차례에 걸쳐 ‘떼배 항해기록 사진전’도 열었다. 공교롭게도 대학에서는 화학공학을 전공했다.하지만 섬인제주 성산포에서 태어나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입대한 것 등 모두 바다와의 끈끈한 인연 때문이라는 그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한줄의 시를 쓰는 문학정신으로일본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찾는 일을 탐험이라는 방법으로 시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글·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I)

    ◆이슬털기-편혜영상현이다. 이제 달은 차츰 차올라 만월이 되어 갈 것이다.그러다가 다시 조금씩 이지러지며 하현이 되고,그믐 사흘 무렵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릴 것이다.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달의 모습에 따라 시간을 측정한다지.나는 그들이 땅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이의 기준을 달로 삼은 것을 흉내 내듯이 상현이니까,음력 8일 경이로군,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예정일은 이제 겨우 오일 남았다.아기는 봉긋이 솟아오른 원피스 자락 밑에서 꼼짝 않고 양수에 폭 쌓여 있을 것이다.예정대로라면,아기는 만월이 되는 즈음에 태어날 터였다. 안방에서 징소리가 들려왔다.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대문가에 서 있었는데도귀청이 울릴 정도였다.굿이 시작된 모양이었다.마당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좁은 마루로 몰려 가고 있었다. 경칩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바닷가여서인지 유난히 밤바람이 차가운 곳이었다.나는 마당 구석으로 가서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무녀의 에에루하는 불분명한 소리가 들려왔다.굿이 시작되기 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할 생각이었으나 나는 달만 쳐다보며 계속 시간을 미루고 있었다.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어쩌면 요즘 들어 야근이 잦은 남편은 아직 회사에 있을지도 몰랐다.회사에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나는 전화기를 그냥 가방 속에 넣어 버렸다. 어딜 간다고?산책을 다녀와 막 자리에 누운 남편에게 진도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꺼내자남편은 못미덥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진도요. 당신이?왜?대학 선배가 죽었는데,고향집에서 굿을,안돼. 단호하게 말하고는 남편은 등을 돌려 버렸다.이내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남편의 구부린,그러나 단단해 뵈는 등을 보며 예정일이 일주일도 채 안남은 주제에 어딜 가겠다는 거냐고 큰 소리 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하긴,이 몸으로 진도에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안된다고 진도에 가려던 마음을 접었다. 아침이 되자,나는 등교 시간에 늦은 꼬마처럼 어수선해져서 서둘러 남편을 출근시키고 다음날치 남편의 식사거리를 준비해 두었다.그리고 작은 가방에 하루치의 짐을 챙겨 수정과 함께 진도로 내려왔다.내려오는 동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하면서도,전화를 걸지 않았다.진도에 가는 것이 야유회라도 되는 듯 일부러 들떠 있는 수정과 나의 뻔한 거짓말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진도에 가기 전이라도 내내 막대유리처럼 가늘고 위태로운 즐거움일지라도 누리고 싶었다. 들어 가자. 수정이 대문가에서 엉거주춤 선 채로 달이나 올려다 보고 있던 나를 끌어 마을 사람들을 헤집고 안방 문 앞에 세웠다.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도,마을 사람들은 굿구경을 한다면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마루가 사람들로 가득차고,마당도 벌써 반이나 사람들로 차올랐다.그의 동기며 선배들은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하긴,서울에서 퇴근하고 예까지 오려는 생각이라면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할 것이었다. 영등살 축제 때문인지 해남에서부터 진도로 오는 길은 길게 밀려 있었다.수정과 나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8시가 넘어서야 진도대교를 건널 수 있었다.진도로 들어서는 길목 여기저기에 영등살 관광 안내 플래카드가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진도 대교 초입에 걸린 스피커에서는 축제 기간이어서인지 서어산에 지는 해애는 지고 싶어 지느냐아,나알 두고 가아는 이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아는 진도 아리랑이 잡음과 함께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닷길 갈라지는 것 본 적 있니? 아니. 갈라진 바닷길을 따라 한없이 걷다보면 이상하지,다시 물이 차올라도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어떤 때는 관리인이 계속 호각을 불면서 나오라는데도 안나가고 있다가 끌려 나온 적도 있다니까.바닷길로 영혼이 올라간다는 말이 맞는가봐,그래서 영등(靈登)이라고 부른다는거야. 그리고 수정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8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면서도 우리는 마치 어디 가까운 곳에 소풍이라도 가듯이 들떠 있었다.휴게소에 내려 남편에게 전화를 해야지 싶다가도 배를앞으로 불룩 내밀고 맛이 덜 밴 우동을 먹고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다음휴게소에서는 망태기에 담긴 귤을 사 느릿느릿 까 먹기도 했다.해 지기 전에 진도에 닿거든 망금산 전망대에라도 다녀오자는 계획도 세웠다.다도해의 푸른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을 보면서 우리는정말 소풍이라도 온 듯 사진도 찍고 호탕하게 웃을 생각이었다. 나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건 영혼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삭 무렵과 망 무렵에 달과 태양과 지구가 일직선으로 늘어서 조수 간만을 일으키는 힘이 강해져 해수면의 오르내림이 커지는 것 뿐이라고 대꾸할 생각도 없이,묵묵히 설설 휘감기며 흘러가는 울돌목 좁은 해협을 내려다 보았다. 아왕 임금의 굿이야 공심은 저라지요,소복을 입고 한지를 오려서 만든 넋전을 든 무녀가 징을 오른손으로 간간이 치면서,불쌍하신 최씨망자 부디도와주시어서,천도하게 하옵소서라고 큰 소리로 외고 있었다.그리고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잠깐 춤을 추다가 쌀알을 방안에 뿌렸다.무녀가 어기야청청 살이로구나라고 선창하자,그의 어머니와 시집간 두 누이가 무녀의 노래를 받아 후렴을 불렀다.나는 꼭 잡고 있는 수정의 손을 풀었다.굿판 정면에 병풍을 친 자리에 그의 한 벌 뿐인 양복이 걸려 있는 것이보여 울컥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의 옷이 무녀가 덩실 팔을 들어 올리며 춤을 출 때마다 조금씩흔들렸다.수정이 입모양으로 어디가? 라고 물었으나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살짝 추어 올렸다. 마루를 내려 서려는데 아랫배가 묵진하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며 허리가 끊어질 듯한 진통이 느껴졌다.나는 훅,가쁜 숨을 내쉬며,허리를 잔뜩 구부려 배를 감싸 안았다. 으윽,잇새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누군가 마루로 올라오며,오매,괜챦으요? 어깨를 잡아 주었다.그 소리를 듣고 수정이 얼른 내 곁으로 왔다.진통은 여진과도 같이 짧은 것이었음에도 내 얼굴에는 식은땀이 잔뜩 배어나 있었다. 방에 들어가 숴야지,큰 일 나것네,아,기환이랑은 어찐 사인데 그 몸해서 여글 왔다요? 동네 아주머니인지 수정의 곁에서 나를 부축해 방에 눕혀주며 물었다.기환의 방이었던 것 같았다.어떤 사이냐고? 나는 앉은뱅이 책상 하나와 작은 옷장이 하나 있을 뿐인,주인을 잃은 지 오래인 그것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수정이 내게 베개를 받쳐주며,대학 친구예요,짧게 대답하자,아 그라요,그럼 서울서 왔겠구만,어찌게 이렇게 아파서 어쩐다요,아줌마가 걱정해 주다가 좀 쉬소,난 굿구갱 갈라요,아프면 또 부리오,하고는 마루로 나갔다. 너 정말 괜챦니? 여기서 애 받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책상 위에 꽂혀 있는 책의 제목을 읽고 있었다.진통은 이미 간질병 환자의 발작처럼 진땀만 남겨 놓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선배 방이었나봐,저 책들이 그대로 있네. 수정이,내 눈을 따라 책상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저 인형 봐라,사내 방에 왠 인형이라니. 수정이 쿡,웃음을 터뜨렸다.책상 한 끝에는 털에 잔뜩 때가 묻어 있는,본래는 보솜거리는 털로 덮혀 있었던 누런 곰인형 하나가 앉아 있었다.인형은,기환선배가 내게 사준 것을 내가 다시 그에게 보낸 것이었다.그가 자기 아이에게 털이 보숭한 곰인형을 사주고 싶었다고 편지와 함께 인형을 보내왔다.나는 그 인형을 곧 반송시켰다. 그는 나와 동기였던 은미의 애인이었다.은미는 예쁘고 영리했지만,그것보다는 자기가 상처 받는 걸 두려워해서 복잡한 상황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겁장이였다.나는 집요하게 그에게 매달렸다.그는 남자로서보다는 내 선배였기 때문에 단호하게 내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그가,떠나버린 은미 때문에 괴로워하며 잠결에도 은미야 사랑해,내가 잘못했어,중얼거리던 때에 나는 덜컥 그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임신했다는 말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그를 만나던 날,그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다가 곧 입을 다물고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선배,우리 결혼해요.서툰 연극배우의 과장된 대사같은 그 말을 하고 나자,기환은 금방 멍한 표정이 되었다.그러다가 점점 그의 속내를 복사하는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휘청,현기증이 인다는 듯이 몸을 기울기도 했다.나는 그런 그의 반응에 불끈 화가 치밀어 뒤따라 나가 길거리에서 그를 맘껏 패주었다.학교 근처였고 간혹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지은아,왜 그래,그러지마,선배 저리 좀 가세요,말리기도 하였으나,그는 피하지 않았고 나는 계속 그를 후려쳤다.그를 향해 가방을 휘두르면서,문득 나는 내가 왜 그를 때리나,그는 왜 내게 맞고 있지,하는 의문이 생겼고,그러자 내가 임신을 한 것이나,우유부단하여 망설임만 많은 그나,다 불쌍하게 느껴졌고,모든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여겨져서 때리는 것을 관두었다. 집에 돌아오니 그에게서 편지가 와 있었다.나는 편지 겉봉에 쓰여진 하지은이라는 내 이름을 불길하게 쳐다보며 봉투를 뜯었다. 사하라 사막 남부에 있는 부르키나파소의 구르마 지역에 사는 종족들은 사람이 죽으면 2,3 개월 동안 매일 밤 북소리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거야. 그러나,이런 긴 장례의식을 지내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낮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해,옥수수를 심으며 웃기도 하고,떼지어 사냥을 나가 큰 짐승 포획에 성공했을 때에는 기쁨에 찬 커다란 함성을 지르기도 하지.낮동안 구르마족마을에는 마른 풀이 벌판 한복판에 우수수 부서져 내리는 소리나,수수 찧는소리,혹은 떼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지.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횃불을 밝히고 북을 치기 시작해.그들은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춤을 추며 신의 품으로 돌아간 죽은 이를 추억하는거야.너 역시 평범하고 일상적인 낮시간을 보낼수 있을꺼야,밤이 되면,잠깐 나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지만,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추억해야 할 일이야.지은아,너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행동이 부족한 나는 생각만 많았지,한 번도 단호하지 못했구나.네 곁에 있을 수 없다.그렇다고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처럼 은미에게 돌아가려는 것도 아니다.단지,혼자 있고 싶다. 나는 편지를 갈갈이 찢고 그 길로 택시를 타,그의 자취집으로 갔다.찢은 편지를 손에 꼭 쥐고 자리에 누워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그는 사흘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나는 여전히 그의 방에 누워 있었다.가끔 화장실만 들락거렸을 뿐,돌아 눕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아무 것도 먹지 않으니 힘이 없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나흘째 되던 날 밤에 그가 잔뜩 술이 취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덜컹거리며 그가 문을 여는데도 나는 이미 돌아볼 힘마저 없어 멍하니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그가,잔뜩 술 냄새를 풍기며 뛰어 들어와 나를 안아 일으켰다.나는 손에 쥐고있던 찢은 편지를 그에게 뿌렸다.내 선배이기도 한 그의 친구들이 들으라는 듯이 나는 개새끼 내 애기가 죽으면 너도 죽을 줄 알아,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가 애기? 너 애기라고 한거야? 물으며 나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어 갔다. 밖에서,아가씨 좀 보소,서울서 대핵교 친구들이라고 안 왔소,하는 아낙의 목소리가 들려 수정이 밖으로 나갔다.어머 선배 왔어요,아는 체 하는 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상대의 목소리는 또렷이 들리기는 했으나 누군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여기 있었니?누군지 알 수 없는 상대방이 물었다.수정이 응,굿보다가 잠깐 여기 있었지.누구랑? 상대가 물었다.수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아마 수근거리며 글쎄 지은이가 다 왔다고,진통이 나서 방에 누워 있다고 조심스럽게 대꾸하는 것 같았다.그리고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대화가 한참 이어지다가,그럼 이따 봐,하는 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곧 수정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이미 진통의 여운도 가시고,주인을 잃은 지 오래인 빈 방에 더 누워 있기가 뭣해서 나가려던 참이었다. 마루에 굿상이 차려져서정신 없을텐데,괜챦겠어? 수정은 누가 왔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나를 부축해 마루로 나갔다. 상청 앞에 무녀가 혼자 장고를 치면서 오구풀이를 부르고 있었다.마당의 구경꾼들까지 죄다 마루 앞에 몰려 있었다.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바리데기가 마침내 아버지를 살려내는 대목에서 구경꾼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오구풀이를 끝낸 무녀가 징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간간이 치면서 최씨 망제 어서 오소,큰 목소리로 청하고는 가족에게 상청에 제사를 올리라고 했다.망제요 망제요 불쌍코 초라한 최씨망제여 무신 나이 많아여 망제란 웬말이뇨 무녀가 소리하자 그의 둘째 누이가 참았던 오열을 터뜨렸다.큰 누이는 상에 술을 올리고 향을 피운 후 젓가락을 올려 대접하고 절을 했다.절을 하는 동안 무녀는 망자의 넋을 넋상자에 담았다.수정이 훌쩍이며 울음을 터뜨려 나는 손을 꼭 잡아 주었다.그의 큰 누이와 사촌 형제들의 오열 섞인 제사가 끝나자 무녀는 오구시루에서 명실 복실을 꺼내어 손가락에 감으면서 최씨망제 오늘 이 굿 받으시고 극락세계 가십시다 가아족들 모두에게 추욱원을내리인후 거리거리 인정쓰고 염불하며 가십시다,크게 소리한 후 나무아미타불을 고인들과 함께 부른 후 굿을 마당으로 내렸다. 나는 이번에는 소란해진 마당을 피해 아까 나왔던 방으로 들어가 집에 다시 전화를 했다.벨이 여러 번 울렸으나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어쩌면 남편은 밤 산책을 나갔을지도 몰랐다. 남편의 산책은 신혼 초 아파트에 이사온 후부터 계속되었다.아무리 피곤해도 남편은 산책을 그만두지 않았다.그가 아직 주임이 되기 전이었고,그의 부서에 갑자기 금액이 큰 해외 거래처가 생기기 전이라 야근을 하는 일도 없던때였다.남편은 초저녁에 불과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퇴근해서 돌아왔다.나는남편과 식어 있는 찌게를 조금 데워 싱거운 계란찜을 반찬으로 함께 저녁을먹었다.남편은 너무 뜨거운 국물은 먹지 않았고,간이 덜 밴 듯 싱거운 음식을 좋아했다.나는 맹탕이나 다름없는 계란찜을 젓가락으로 떠내느라 식탁에흘리면서,평생 싱거운 계란찜을,입을 델까 주저할 염려도 없이 먹고 살꺼라는예감으로 잠깐 우울해 하기도 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은 9시 뉴스를 보면서 그날치 조간 신문을 읽었다.뉴스가 끝나고 대충 훑어보는 신문 읽기도 끝나면 남편은 막 공사가 시작된아파트 단지까지 산책을 나갔다. 왜 산책을 나가세요?어느 날은 선을 보고 한 달만에 결혼한,아직도 낯설기만 한 남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를 들으면 불길이 확확 치솟는 것 같아 아침나절의 선잠처럼 얕은 잠을 자게 돼.당신은 신경쓰지 말고 그냥 자도록 해. 날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마중을 나올 필요도 없어.
  • 국내 첫 潮流발전소 추진

    경기도 하남에서 열리고 있는 ’99 하남환경박람회 참가하기 위해 지난 달한국을 찾았던 세계적인 수력발전 전문가 알렉산더 고를로프박사(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수력발전연구소 소장)는 자신이 개발한 헬리컬터빈(일명 고를로프 터빈)을 이용한 조류발전소를 울돌목에 건설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울돌목을 선택한 이유는 이곳 조류속도가 최대 12노트여서 자신이 개발한 터빈을 이용해 조류발전소를 설치할 경우 최대 10만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를로프박사는 이메일을 통해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5월 국제환경포럼참가차 한국을 찾았을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하는 울돌목의 조류를이용해 16세기에 이순신장군이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현장을 직접 답사한 결과 울돌목이 조류발전에 최적의 장소임을 확인했다”고밝혔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헬리컬터빈형 조류발전은 연료비가 안들고,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나 공해물질을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환경친화적이며완벽한 대체에너지원이라고 소개했다. 비행기 날개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 헬리컬터빈은 물이 1노트(시속 1.85㎞)의 속도로 흐르더라도 날개를 회전시킬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완만한 흐름에서도 고속회전을 한다.이 터빈은 조류방향이나 파도의 방향과 관계없이 항상 동일 회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미해안경비대 사관학교,미 해군,미시건대학 등에서의 실험 결과 열효율이 기존의 다리우스터빈의 23%보다 높은 35% 이상으로 나타났다. 현재 울돌목 조류발전소 건설계획은 전라남도측으로부터 80% 이상 승인을얻은 상태.고를로프박사는 “케이블을 고정시키는 것을 포함해 건축·토목공학적 문제가 남아 있지만 무난히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고를로프박사는 알렉산더 솔제니친과 친하다는 이유로 지난 76년 구 소련에서 추방돼 미국으로 망명한 뒤 노스이스턴대학 기계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그는 모스크바 지하철,애스완댐 터널 및 수력발전단지,그루지아공화국 쉬람강 및 아르메니아공화국 세반호(湖) 수력발전소 등을 설계했다. 조력발전은하구나 만을 방조제로 막아 바다물을 가두고 수차발전기를 설치,밀물과 썰물의 수위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으로 해양에너지에 의한 발전 방식 중에서 가장 먼저 개발됐다.현재 가동 중인 대표적인 조력발전소는 프랑스의 랑스(용량 20만㎾)와 캐나다의 아나폴리스(용량 2만㎾) 등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충남 가로림만이 최적지로 선정돼 한국해양연구소가 80년과 82년 프랑스와 공동으로 정밀타당성조사와 기본설계를 실시한 바 있다.86년에영국의 기술진이 82년의 조사를 재검토한 결과 시설용량이 40만㎾로 평가됐으나 구체적인 건설계획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무관 조9단… 「무심선」은 들었으나(박갑천 칼럼)

    조훈현 9단이 「무관」으로 되었다.국내의 모든 타이틀을 거머쥐는 전관왕에 두번이나 올랐던 「바둑황제」.그런 그가 대왕전의 왕관마저 이창호 7단에게 내줌으로써 백두로 전락한다.제왕전·동양증권배·후지쓰배 등의 타이틀을 갖고있긴 하나 그것들은 선수권전이므로 왕관으로서의 빛이 없다.2일 현재 3대3이 된 기성전의 결과가 주목된다. 10여일전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린(임해봉)9단과의 결승전때 그는 자신이 「무심」이라고 쓴 부채를 들고나와 눈길을 끌었다.「무심」하자는 자계였던 것이리라.그래선가 그는 이김으로써 한국한테 3년연속우승의 영예를 안겼다.실력으로야 세계의 으뜸자리.하건만 이7단에게만은 승률이 낮다.「무심」으로 두지 못해서일까.「나이탓」이라기보다는 대국할 때면 돌부처로 되는 「내제자」와의 「무심」겨룸에서 지고 있다고 할것인지도 모른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 울돌목(명량)해전 얘기가 나온다.세계해전사에 빛나는 그 싸움을 앞두고 충무공은 여러장수들을 불러 신칙한다.『…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하면 죽는다(필사칙생,필생칙사)고 했다.그대들이 군령을 어긴다면…』.『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하면 죽는다』는 말은 가령 「위료자」(위료자:제담편)같은 병서에도 나온다.이는 전쟁에서의 「무심」의 경지를 이른다고 하겠다. 싸우되 생사를 초월하는 것과 같이 싸우되 승패를 초월하는 마음이 「무심」이다.하지만 「감정」있는 사람에게 그건 쉽지않다.조9단은 이7단과 대국하면서 「제자」라는 심리적 부담감을 털지 못하는것 아닐지.사실,정상급 기사들의 경우 얼마나 더 마음을 비우는 부동심으로 될수 있느냐 없느냐로써 승패는 갈라진다고도 할것이다.마음이 흔들리면 판세도 흔들린다.아마추어들도 『꼭 이겨야겠다』고 벼르는 판일수록 대체로 지는 일은 얼마든지 경험하는 터이다.『꼭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없기에 20층에서 떨어진 아기는 살아날 수도 있는것 아니던가. 「장자」(장자:재물론)에서 구작자가 하는 말이 이「무심」과 관계된다.『…성인은 세상사에 안달하며 매달리지 않는다.이익이 되는것을 구하지도 않고 손해되는 것을 피하려 들지도 않는다.도를 구하여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애써 도에 따르려 하지도 않는다.…』 바둑은 세상살이 이치와 많이 통한다.
  • 대상에 창녕 3·1 민속문화회/7일 시상식

    ◎제9회 향토문화대상 7명 선정/서울신문사 제정·금성 협찬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위해 제정한 제9회 향토문화대상수상자가 1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눠 전국 시·군의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등 관련단체에서 추천한 단체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경남 창녕의 3·1민속문화향상회(회장 전병우)가 선정됐다. 또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서는 ▲김기복씨(64·안성남사당보존회 상쇠) ▲안동문화연구회(회장 권오기) ▲고경재씨(60·양양문화원장)▲양인식씨(51·논산문화원 사무국장)등 4명이 뽑혔다.현대문화부문에서는 ▲정용채씨(67·해남문화원부설 문화학교교장) ▲이종찬씨(71·천안문화원장)등 2명에게 돌아갔다.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수상단체및 개인에게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여석기(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씨(서울신문사사사편찬위원장)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금성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린 이번 향토문화대상의 시상식은 오는7일 하오3시 한국프레스센터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3·1 민속문화회」/경남 창녕·전병우 회장/매년 문화제 열어 민속놀이 재현/영남지역 만세발상지… 61년에 발족/쇠머리대기등 행사통해 전통 계승 『이번 수상을 계기로 3·1민속문화향상회는 더욱 훌륭한 향토문화를 계승하는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대상 수상단체로 선정된 경남 창녕군 「3·1민속문화향상회」 전병우회장(49)은 수상의 영광을 모든 창녕군민들에게 돌리며 앞으로 향토문화 계승발전에 향도가 되겠다고 말했다. 창녕군 영산지역은 1919년 당시 서울의 3·1독립만세소식이 전해지면서 구중회,장진수,김추은,남경명 등으로 조직된 22인의 결사대를 중심으로 3월13일 영남지역에서는 최초로 만세의 함성이 울렸던 곳이다. 3·1민속문화향상회는 이같이 영남지역 최초의 독립운동 발상지인 창녕군 영산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선조들의 전통민속놀이를 계승하자는 온 군민들의 뜻이 한데 모아지면서 군민 전체를 회원으로 삼아 지난 61년 발족됐다.이같은 취지에 따라 발족된 3·1민속문화향상회는 61년 발족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3월1일을 전후해 창녕군의 문화행사인 3·1민속문화제를 주최하면서 향토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고있다. 향토문화 전승의 장으로 해마다 개최되는 이 3·1민속문화제의 각종 행사가운데 특히 중요행사로 매년 열리는 무형문화재 제25호 쇠머리대기와 무형문화재 제26호 줄다리기는 창녕 지역의 향토색이 짙게 담긴 고유의 민속놀이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이를 통해 길러진 단결력과 정의감·용감성은 과거 임진왜란의 항쟁을 비롯해 3·1독립항쟁등 조국수호를 위한 희생정신의 밑거름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그 정신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영산쇠머리대기는 영산지방의 마주보고있는 두 산을 힘센 황소로 형상화해 생소나무와 짚줄로 나무소를 만들고 동·서 양군으로 나누어진 수백여명의 장정들이 그쇠머리위에 각각 장군을 태워 메고 함성을 지르면서 부딪치거나 밀치는 가운데 상대편 쇠머리를 땅에 꽂아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이보다 앞서 깃발과 서낭대를 들고 펼치는 진잡이 놀이및 서낭대싸움과 함께 부상자가 생길만큼 박진감 넘치고 실전을 방불케 한다. 벼농사의 풍요를 비는 의례에서 기원된 줄다리기도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해마다 계속 이어가고있는 창녕지역 고유의 대규모 민속놀이다.이밖에 논매기와 관련해 노래와 춤과 농악을 엮은 괭이말타기 놀이나,수호신을 숭상하는 뜻의 토속민속놀이 행사인 호장굿,골목줄다리기등도 창녕지역에서만 볼 수있는 향토민속놀이다. 전통문화를 발굴해 계승하고자하는 군민들의 뜻이 모인 3·1민속문화향상회는 이러한 여러가지 지역 특유의 향토민속놀이를 전승해 해마다 재연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참여와 화합의 정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향토사교실 운영/안동문화연구회 권오기회장 지난84년 창립된 이래 매월 문화강좌및 문화유적현지답사를 계속해 왔으며 86년 이후 매년 「안동문화연구」를 발간하는등 안동지역의 향토문화발전을위해 기여했다. 이밖에도 월례회원발표를 통해 수준높은 연구업적을 보였다.88년부터는 중학교3년∼고등학교2년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향토사교실을 운영해 오면서 교재로 쓰이는 「안동문화의 이해」를 발간하기도 했다. 또 안동지역에 산재해 있는 각종 현판 1백10여점을 탁본,내년 2월에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며 올 9월에는 「향토사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주제로 전국향토사연구회세미나를 안동문화회관에서 가지는등 지역문화단체로는 보기 드문 활동상을 보여온 점을 높이 샀다. ◎현산문화제 정착에 힘써/고경재씨 양양문화원장 양양문화원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다.설립후 초창기부터 16년동안의 사무국장을 거쳐 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향토문화사업을 천직으로 삼고 일하며 지역문화의 파수꾼노릇을 해냈다. 양양군의 유일한 향토축제인 「현산문화제」를 주관,범군민적인 행사로 정착시켰으며 고유의 민속놀이인 패다리놓기,귀애파기놀이,탁장사뽑기등을 발굴했다.또 현산문화제의 인기종목인 양주방어사행차와 신석기인가장행렬등을 발굴·고증·연출하는등 1인3역을 담당한 재주꾼이기도 하다. 향토사연구회,청소년윤리교실,노인회,노인학교등을 조직하거나 구성토록 주선해 문화의 지방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1천회이상의 각종 행사에 초청강사로 나가 지역문화홍보에도 이바지했다. ◎해남문화유산 발굴 40년/정용채씨 해남문화원 문화학교장 46년 옥천국교 교사에서 시작,지난해 화산국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할때까지 40여년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해남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계승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명랑대첩을 조사해 「울돌목」을 펴냈으며 임진왜란때의 충신 정운장군의 전기인 「구국의 횃불」,해남군 금호도의 자연환경과 미풍양속을 수집한 「금호도」,「내고장 해남」「고산 윤선도」를 발간하는등 해남지방의 묻혀 있던 향토사발견에 앞장섰다. 지난해 3월부터는 해남문화원 지역문화학교 교장으로 부임,국민학생 43명에게 매주 글짓기지도를 해오는등 퇴직이후에도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안성남사당 재건에 큰공/김기복씨 안성남사당보존회 17살때 6·25이후 맥이끊길 위기에 처해 있던 이원보남사당패에 들어가 기예를 익힌뒤 82년 남사당의 발상지이자 경기농악의 대명사격인 안성남사당을 재건하는등 남사당의 계승·보존에 기여했다. 86년에는 철도부지였던 안성읍 석정리에 전수장을 건립,88년부터 전승학교로 지정된 서운중학교 학생들에게 남사당풍물놀이를 전수하는등 후진양성에도 정열을 쏟았다. 89년 경남 마산에서 열린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영예의 대통령상및 개인연기상을 수상하는등 각종 경연대회에서 안성남사당의 명성을 드높인 공을 인정받았다. ◎구전 「천안삼거리」 소설화/이종찬씨 천안문화원장 천안로터리클럽회장,한국반공연맹천안시·군지부장,선거관리위원,도·시정자문위원,의료보험조합이사장,도체육회부회장등 천안지역의 사회일꾼으로 일해온 인물. 특히 85년부터 천안문화원장을 맡아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안문화원이 22만 천안시민의 문화사랑방으로 자리잡도록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천안삼거리」로 구전돼 오던 천안의 전설을 책으로 엮어내는 한편 연극으로도만들어 「천안삼거리 능소전」을 국내외에 알렸다. 지난해에는 총25억원의 경비를 들여 2천여평의 부지위에 초현대식 음향시설과 완벽한 공연장·이동벽면·조명이 설치된 전시공간등을 갖춘 전국최대규모의 문화원을 건립하는데 헌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예산향토사 체계적 발간/양인식씨 논산문화원 사무국장 지난84년부터 논산문화원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논산문화의 발굴과 계승 및 발전에 헌신해온 공로.부족한 예산속에서 원고료한푼없이 「놀뫼의 문화­사적지편」등 11권에 달하는 각종 논산문화향토지를 혼자서 자료수집·정리·집필해 발간한 것을 비롯,「내고장소식」「향토연구회지」를 각각 통권43호와 6집까지 펴내는 저력을 보였다.각 1백40페이지짜리 9개읍의 읍면지발간도 그의 작품. 이같은 공로로 지난해에는 전국문화원발간물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올해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중앙도서관으로부터 「논산의 민속」「논산지역의 독립운동사」등 2권을 기증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등 논산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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