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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銃風 재판 파장­朴舜用 서울지검장 일문일답

    ◎“이 총재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조사”/3인방외 직·간접 관련자 의혹도 발견 朴舜用 서울지검장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韓成基씨의 보고서를 전달받았는지 등 직접 확인할 부분이 많다”면서 李총재에 대한 직접조사 방침을 분명히 했다.다음은 朴지검장과의 일문일답. ●李총재를 조사하나. 韓씨가 직접 보고서를 전해줬다고 하니 전달받았는지,전달받았다면 어떻게 이해했는지,다른 접촉은 없었는지,본인한테 직접 확인할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총재라고 해서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조사시기와 방법은. 기초조사부터 한 뒤 단계적으로 검토하겠다. ●소환조사 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기초조사가 마무리되면 참고인이 될지 피의자가 될지 결정될 것이다. ●韓씨의 보고서를 직접 받은 李총재의 수행비서,운전기사와 보고서에 등장한 인물들도 모두 조사하나. 실무 검사들이 알아서 결정할 사항이다.확인할 사항이 있는 사람은 기초조사에 모두 포함되지 않겠나. ●한나라당에서 안기부가 문건을조작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저장된 시간과 출력시간까지 다 나온다. ●이 사건에 대한 기본입장은. 3인방 외에 직·간접적인 관련자들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할만한 사안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 銃風 재판 파장­검찰 수사 전망

    ◎“배후규명 자신” 칼날 세운다/이 총재 총격요청사실 부인이 걸림돌/직접 개입 못밝히면 사법처리 불투명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한 검찰의 배후수사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첫 공판에서 韓成基씨(39·전 포스데이터 고문)와 李총재와의 연결고리로 추정되는 ‘총풍보고서’ 2건이 공개됨에 따라 李총재를 향한 검찰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韓씨가 지난 10월2일 검찰조사과정에서 이 사건의 배후는 ‘李秀永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한나라당 朴寬用 의원­李총재’로 이어진다는 진술서를 작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朴舜用 서울지검장은 1일 그동안 애매모호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기소된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韓成基 피고인(39·전 포스테이터 고문) 등 3명 이외에 직·간접적인 관련자들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돼 따라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검찰의 배후수사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朴지검장의 발언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이에 따라 李총재에 대한 직접조사 방침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韓씨는 지난해 12월9일 유세차량에 탑승한 뒤 李총재의 수행비서에게 ‘특단카드협상 정보보고서’를 건넬 때와,6일 후 운전기사에게 ‘존경하옵는 李후보님께’라는 보고서를 줄 때 모두 李총재에게 ‘눈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게다가 운전기사가 뒷좌석에 탄 李총재에게 보고서를 넘기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韓씨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李총재가 지닌 정치적인 비중이나 상징성 때문에 소환조사라는 직격탄을 구사할지,방문조사나 서면조사 등 우회로를 택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설혹 李총재가 보고서를 본 뒤 ‘북한이 12월15∼17일 행동할 것’이라는 내용을 알았다 하더라도 사법처리로 이어질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검찰이 李총재를 사법처리하려면 李총재가 韓씨 등 3인방의 행위를 적극 지지했거나 지시한 사실,즉 공모 및 개입 여부를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韓씨 등이 총격요청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첫 공판­재판 속기록

    ◎“서류전달땐 윤원중·신경식씨 봤다”/한씨 “북측과 만남 주선은 장씨 전공이라 했다”/오씨 “진로 장진호 회장이 자금지원 의사밝혀”/장씨 “북측인사 만나 후보별 지지율 얘기했다” 30일 오후 서울지법 법정에서 열린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첫 공판에서 검찰의 직접신문에 대한 피고인들의 답변을 간추린다. ▷韓成基 피고인◁ ▲吳靜恩 피고인에게 진로 화의신청에 대해 부탁한 적이 있나. 있다. ▲吳피고인의 소개로 張錫重 피고인을 알게 됐나. 그렇다. ▲97년 10월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하비비 다방에서 吳피고인을 만났을 때 吳피고인이 정치활동을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한 적이 있나. 그렇다. ▲李會昌 후보 비선참모조직은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목적으로 조직됐나. 당시에는 몰랐다.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에게 청년홍보단 계획과 소요비용으로 15억원의 자금지원을 약속받은 사실이 있나. 있다. ▲李후보 자택에 가서 보고서를 직접 전달한 적이 있나. 있다. ▲경호원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만날 수 있었나. 경호원에게 사전에 양해를 받았다고 말해 만날 수 있었다. ▲중국에 갈 때 가지고 갔던 보고서가 吳피고인과 함께 李후보에게 전달한 보고서인가. 그렇다. ▲서류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尹源重 후보 비서실장과 辛卿植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본 일이 있나. 있다. ▲97년 12월5일 朴燦鍾씨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할 때 직접 전달했나. 운전기사에게 전달한 적도 있었다. ▲보고서를 받은 운전기사는 서류를 어떻게 처리했나. 차량 뒷좌석에 놓아두었다. ▲97년 9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3회에 걸쳐 李會晟씨와 張震浩 진로그룹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나. 그렇다. ▲만남을 주선한 목적은 선거자금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었나. 그렇다. ▲97년 11월 하순쯤 탈당 움직임을 보인 朴燦鍾씨의 탈당을 막기 위해 李후보와 朴씨와의 회동을 주선한 적이 있나. 주선한 것은 아니다. ▲97년 11월 하순쯤 吳靜恩 피고인의 소개로 張錫重 피고인 등과 만나 金順權 박사의 방북 추진건을 대선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한 적이있나. 그렇다.▲97년 11월 하순쯤 서울 삼청동 하비비 다방에서 吳靜恩 피고인을 만나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국민회의가 ‘李후보 죽이기’ 1,2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나. 내가 한 말은 아니다. ▲張피고인이 북한 군부를 움직이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나. 張피고인이 정보를 감지하고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자신의 전공이라고 말한 적 있다.북풍은 분명히 일어난다.북풍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베이징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총풍 3인방’이 능력있는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나. 李會晟씨와도 적극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과의 접촉을 위해 좋다고 판단했다. ▲金順權 박사의 방북은 결국 이루어질 것이지만 吳피고인에게 金박사의 방북을 늦추어 달라고 한 적이 있나. 吳피고인이 그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吳피고인에게는 그냥 당신이 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꼭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아주 강한 톤이었다. ▲吳피고인은 뭐라고 말했나. 대선을 이기기 위해서는 북한의 무력시위 여부와 시기 등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張피고인이 북한의 리철운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가. 그런 적 있다. ▲베이징에 가는 여비와 경비는 내가 책임진다고 한 적이 있나. 무력시위 건은 아니고 다만 대북사업 경비 일반을 이야기한 것이다. ▲吳피고인이 베이징에 가거든 팀워크를 이루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는가. 그런 말 들은 적 있다. ▷吳靜恩 피고인◁ ▲대선 사조직을 만들자는 말은 누가 먼저했나. 韓成基 피고인이 했다. ▲張震浩 회장으로부터 15억∼20억원 지원을 약속받은 적 있나. 받은 적 없다.지원의사는 밝혔지만 정확한 금액은 얘기하지 않았다. ▲朴寬用 한나라당 의원에게 金順權 박사의 방북을 도와 달라는 협조요청을 했나. 안했다. ▲金박사를 방북시키면 대선에도 좋으니 대선 활용방안을 모색하자고 했나. 지난해 11월30일 우리 세명이 처음 만났을 때 金박사를한나라당에 입당시켜 대북 화해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지난해 11월 하순 韓피고인을 만났을 때 韓피고인이 李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나. 없다. ▲李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은 한 적이있나. 없다. ▲韓피고인이 국민회의의 공작이 성공하면 李후보는 한방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는데. 없다. ▲지난해 11월 말 張·韓피고인을 만났을 때 張피고인이 북은 李후보쪽으로 선회한 것 같다는 설명을 한 적 있나. 있다. ▲韓피고인에게 북한측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보라는 말을 한 적이있나. 있다. ▲판문점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무장시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총기난사나 카메라 등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 ▲韓피고인에게 북측과 韓피고인을 연결시켜 주겠다고 말한 적은 있나. 있다. ▲韓피고인이 북측에 경력을 부풀려 말하려 한 적 있나. 무역이 잘 되기 위해 그랬다. ▲韓피고인에게 李후보 특보 같다고말한 적 있나.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張피고인이 베이징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나. 94년 서로 알기 시작한 이후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북풍요청을 지시한 적은. 없다. ▲金박사의 방북허가를 통일원으로부터 책임지고 받아내겠다는 말을 했나. 알아보겠다고 했을 뿐이다. ▲韓피고인은 베이징에서 북측 인물과 접촉해 무력시위를 요청키로 했나. 전혀 모의한 적 없다. ▲지난해 12월 초 코리아나호텔에서 張·韓피고인을 만나 金박사 방문과 대북접촉시 보안유지 등에 대해 논의한 적 있나. 나는 인사만 하고 갔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하비비 다방에서 韓피고인이 베이징 방문에 대한 상황보고를 한 적이 있나. 아마 했을 것이다.나는 잠시 있다가 갔다. ▲그 자리에서 북한주민 접촉신청과 비행기표 예약 등에 관한 상황을 듣지 않았나. 들은 것 같다. ▲그날 張피고인이 북에서 중요한 사람이 나올지 모르니까 이쪽에서도 비중있는 사람을 보내야 겠다는 말을 했나. 그렇다.그러나 대선 문제에 대해선 얘기 안했다. ▲金박사의 방북허가가 15일까지는 나와야 북측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을 했나. 그렇다. ▲지난해 12월 초순과 하순 두차례 통일원에 전화했나. 초순에 한번 했다. ▲베이징에 가기 전인 지난해 12월 초순 저녁 7시쯤 오복집에서 張·韓 피고인을 만나 베이징에 대해 최종 점검한 적이 있나. 기억이 안난다. ▲떠나기 전에 만난 적이 없단 말인가. 기억이 안난다. ▲당시 張피고인이 金박사 방북허가를 받아 북측이 우리를 믿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했나. 있었던 것 같다. ▲북풍과 관련,북측 의도를 파악한 뒤 우리 의도를 전달하라고 지시한적 있나. 없다. ▲韓피고인이 金박사 방북허가가 제때 안 나오면 모든 것이 안된다며 방북문제를 피고인에게 책임져 달라고 했나. 그렇다. ▲북풍이 공안기관에 드러나면 金박사를 연관시키면 된다고 한 적 있나. 기억이 안난다. ▲韓피고인 등이 베이징에 있는 동안 이들로부터 계속 보고를 받은 적이 있나. 기억이 안 난다.베이징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나는 당시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張피고인이 귀국 후 피고인과 만나 베이징 방문 무마에 대해 논의한 적 있나. 전혀 없다. ▲韓피고인이 “안기부가 베이징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것 같다.張피고인이 알려준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張피고인이 알려줬다는 말은 없었다. ▲조선호텔에서 張震浩 회장을 만난 적 있나. 있다. ▲그때 張회장으로부터 韓피고인이 베이징에 가서 대선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을 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있다. ▷張錫重 피고인◁ ▲吳靜恩 피고인을 안 뒤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나. 한달에 2번 정도 만나고 2번 통화하는 정도였다.그러나 吳피고인을 통해 편의를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吳피고인과 朴寬用 의원에게 金順權 박사의 방북추진을 요청했나. 金박사의 방북을 추진한다는 사실만 알렸지 부탁한 적은 없다. ▲지난해 11월 하순 韓피고인을 만나 현대에 진 채무 2억원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나. 부탁한 적은 있다.알아봐 주겠다고만 했지 해결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吳피고인이 金박사 방북과 대선상황을 연결시키려고 했나. 모르겠다. ▲지난해 11월30일 吳·韓피고인과 만난 자리에서 북측이 DJ는 거부감을 느끼고 처음에는 이인제 후보를 선호하다가 이회창 후보쪽으로 돌아섰고 DJ를 낙선시키기 위해 DJ후보쪽에 북한자금 유입설 등 모종의 음모를 꾸밀지 모른다는 말을 했나. 기억나지 않는다. ▲韓피고인이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으니 이럴 때 ‘쾅’ 하고 터져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나. 아니다. ▲韓피고인이 선거가 임박해서 무력시위가 있으면 국민회의가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나. 아니다. ▲이때 吳피고인이 북풍을 북측이 자진해서 일으키는 방안을 알아보라고 대안을 제시했나. 들은 적 없다. ▲吳피고인에게 북측 군부인사를 잘 아니까 한번 알아봐 주겠다고 제의했나. 아니다. ▲베이징에서 북측인사를 만날 때 金박사의 방북은 성사되지만 아직 승인은 나지 않았으니까 이점을 이용하라고 吳피고인이 지시했나. 그런 적 없다. ▲吳피고인이 韓피고인에게 북측인사를 만나게 되면 “나 대신 왔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나. 아니다. ▲지난해 12월 초 북측의 리철에게 전화해 대선문제 등을 논의했나. 리철과 전화통화는 거의 매일 했지만 전적으로 사업얘기만 했지 대선문제는 언급한 적 없었다. ▲吳피고인에게 지난해 12월15일까지는 金박사의 방북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우리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나. 아니다.지난해 말까지 金박사의 방북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재배권을 따내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방북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韓피고인이 진로그룹 고문과 李후보의 특보역도 맡고 있으며 金박사의 방북에 막강한 힘을 쥐고 있다고 소개했나. 韓피고인은 진로그룹 고문이고 나보다는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소개했다. ▲북측인사들을 만나 국내 대선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나. 후보별 지지율을 얘기한 적은 있지만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다.
  •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첫 공판­정치권 반응

    ◎여 “재판 지켜보자” 야 당혹·충격·초조/국민회의­“법정에서 진위 밝혀질것”/자민련­이 총재의 직접 해명 촉구/한나라­성명 발표 등 진화에 진력 韓成基씨의 법정진술이 전해진 30일 국민회의는 공식 논평을 자제하면서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鄭東泳 대변인은 비공식 논평을 통해 “법정에서 韓成基씨 진술의 진위여부가 밝혀질 것”이라며 “우리 당은 재판 진행과정을 예의주시하겠다”며 짤막한 반응이 전부였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개입여부 등 총풍사건의 실체가 법정에서 밝혀지게 돼있는 만큼 굳이 한나라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당의 한 관계자는 “경제청문회와 예산안 처리를 놓고 정국이 꼬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경국정색으로 급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그러나 薛勳 기조위원장은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이 부인해왔던 것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자민련은 강력한 톤으로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직접 해명을 촉구했다.金昌榮 부대변인은 “韓씨의 법정진술은 당시 李후보의 북풍개입 혐의를 시사하는 중대발언으로,누구도 자의적 법정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李총재가 직접 자신의 개입의혹을 해명하고 검찰은 북풍공작의 전모를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金부대변인은 이어 “한나라당측 ‘북풍(北風)’공작의 핵심인 韓씨의 말은 대단히 구체적이며 李후보의 실제(實弟)인 會晟씨와의 통화기록 등 물증도 확보된 상태”라며 “韓씨의 문건을 수행비서나 운전기사가 묵살하고 李후보에게 전달하지 않을 입장이 못된다는 것은 세살짜리 어린이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총풍사건 고문조작 의혹’에 휘말렸던 안기부는 이날 공식논평을 내지 않은 채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입을 다물었다.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재판 초기상황인데 우리가 진행 과정 하나하나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전제,“그러나 우리가 고문을 통해 총풍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재판을 통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한나라당은 30일 열린 ‘총풍(銃風)사건’ 첫 공판에서 韓成基 피고인이 북한측 인사와 만난 내용을 李會昌 총재에게 서면보고하고,李총재의 동생인 會晟씨와도 통화했다는 진술내용이 전해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진술내용을 뒤집는 것이어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당은 부랴부랴 성명을 내는 등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具凡會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긴급 성명을 내고 “韓씨의 진술은 전혀 사실 무근이며 허무맹랑한 날조된 진술”이라면서 “우리는 韓씨가 안기부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그같은 진술을 했다는 의구심과 추측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안기부의 고문협박에 못이겨 허위진술했다고 주장한 韓씨가 갑자기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무언가 뒷거래가 있을 것이라고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일부 당직자들은 韓씨를 ‘도대체 못믿을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여권의 李會昌­會晟 형제 죽이기가 다시 시작된 것 같다고 불안감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지난 번 金大中 대통령과 李총재의 청와대 총재회담에서 총풍사건은 검찰수사를 지켜본다고 해 잠자코 있었더니,결과가 이것이냐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한 방 맞았다는 얘기도 이곳 저곳에서 튀어 나왔다. 具부대변인은 이와 함께 “會晟씨는 韓씨가 베이징에 있었다는 지난해 12월10일부터 12일사이 그가 베이징에 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韓씨와는 북한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韓씨가 법정진술을 통해 ‘특단협상카드 정보보고’ 문건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李총재의 당시 수행비서 金右錫씨도 “문건은 커녕 韓씨를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한나라당 관계자도 당시 유세차량에 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었고,경호원들이 삼엄하게 후보를 경호해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사(韓成基씨 지칭)가 金비서에게 접근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 안기부 증거물 누락시킨 이유는

    ◎한씨 컴퓨터 등 9월12일 압수/송치과정서 검찰에 일부러 안넘겨/“보완수사 통해 신빙성 높이려 했을 것” 분석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을 1차 수사한 국가안전기획부가 수사 때 압수한 증거물 가운데 배후 의혹과 관련된 일부 물증을 검찰에 누락한 채 송치한 것으로 밝혀져 그 경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가 지난 19일 韓成基·吳靜恩·張錫重 피고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결과 안기부가 吳씨 등을 검찰에 송치하기 13일전인 지난 9월12일 이들로 부터 상당량의 증거물을 압수하고도 일부를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이에 따라 검찰은 안기부에 누락 압수품을 즉시 송치토록 요구,지난 21일 韓씨의 컴퓨터 본체와 디스켓 등을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누락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이날 첫 공판에서 韓씨가 진술함에 따라 이를 공개했다. 검찰은 韓씨의 물품에 대한 정밀검토 결과,韓씨가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측 인사들을 만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시점을 전후해 당시 李會昌 한나라당 후보측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파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韓씨의 파일에서 확보한 새 증거물은 ▲韓씨가 베이징으로 가기 하루전인 지난해 12월9일 아시아나 항공편을 이용,李후보가 유세중이던 부산으로 내려가 李후보측에 ‘특단카드 협상정보 보고서’를 전달한 것과 ▲베이징에서 귀국한 뒤인 지난해 12월15일 ‘존경하옵는 이후보님께’란 편지를 작성,서울 종로구 구기동 李후보 자택 앞에서 李후보 운전기사에게 전달한 것 등이다. 안기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며 유죄 입증에 자신감을 보여왔다.야당쪽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주장을 제기했을 때에는 “피고인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가족과 면회하는 장면을 폐쇄회로 TV로 녹화해두었다”면서 미공개 증거물을 상당 부분 확보했음을 시사했다. 이런 맥락에서 안기부가 일부 물증을 뒤늦게 넘긴 것은 심증적으로는 신뢰가 가지만 배후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보완수사를 통해 물증의 신빙성을 높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안기부는 “공식적으로 언급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첫 공판­새로 드러난 사실들

    ◎한씨 북경서 이회성씨와 2번 통화/12월9일 ‘특단카드 보고서’ 이 후보측에 전달/박찬종씨,이 후보와 회동 깨지자 신당에 입당 ‘판문점 총격요청 3인방’ 가운데 한사람인 韓成基 피고인이 30일 열린 첫 공판에서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직전과 직후 모두 두차례에 걸쳐 한나라당 李會昌 대통령후보측에 ‘북한카드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총풍사건’의 배후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이날 공판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을 간추린다. ●李會昌 후보에게 두차례 서면보고 韓피고인은 지난해 12월9일 ‘특단카드 협상 정보보고서’라는 문건을 작성한 뒤 비행기편으로 부산에 내려가 李후보의 수행비서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12월15일에도 ‘존경하는 李후보님에게’라는 편지형식의 보고서를 작성,서울 구기동 李후보의 자택앞에서 운전기사에게 전달했다. 韓피고인은 이 문건들이 李후보에게 직접 전달됐는지 여부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러나 韓피고인이 당시 문건을 전달할 때 李후보와 ‘눈맞춤’을 한 사실 등을 들어 李후보가 추후에라도 문건내용을 확인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경에서 李會晟씨 등과 통화 韓피고인은 지난해 12월10∼12일 베이징 캠핀스키호텔에서 李후보의 동생인 李會晟 전 에너지연구원장에게 2차례,張震浩 진로그룹 회장에게 8차례 전화통화를 했다.또 吳靜恩 전 청와대 행정관과도 12차례 통화했다. 통화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베이징 방문을 전후해 활발한 접촉을 시도한 점은 입증된 셈이다. ●李會晟씨­張震浩 회장 면담 주선 韓피고인은 지난해 9월∼11월 진로 張회장에게 李會晟씨를 만나도록 세차례 주선했다.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이유는 張회장의 자금지원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朴燦鍾 전 의원 한나라당 탈당 경위 韓피고인은 지난해 12월7일 張회장과 朴燦鍾 한나라당 고문을 만나 朴고문의 거취에 대해 최종적으로 논의하기로 하고 그날 밤 11시30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李후보를 기다렸다. 李후보측에 대해 ‘이날 나오지 않으면 朴고문을 놓치게 돼 선거에 질지 모른다’는 얘기를 전했지만 끝내 李후보는 나오지 않았다.결국 朴고문은 ‘바람’을 맞았고 다음 날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곧바로 국민신당에 입당했다. 韓피고인은 “張회장이 돈도 주고 공도 들였는데 李후보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조로 말했다.
  • 변호사 등 전문직도 부가세/내년부터…부가세법 개정안 재경위 통과

    국회 재경위는 30일 변호사,세무사와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내년 1월부터 부가가치세 10%를 부과하는 내용의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 올해로 종료되는 농·수·축·임·신협과 인삼협동조합,새마을금고 등 7개 서민 금융기관의 예탁금과 출자금에 대한 비과세기간을 2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조감법 개정안은 농어민들의 재산 형성을 돕기 위해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대한 비과세기간을 2년 연장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당초 정부는 이들 금융기관의 예탁금과 출자금에 대한 비과세기간이 올해로 만료됨에 따라 내년에는 5%,2000년엔 10%로 낮춰 부과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재경위는 그러나 개정안 중 사설입시학원과 자동차학원 등에 대해 부가세를 부가하려던 정부안은 삭제,현행대로 비과세하기로 했다. 재경위는 이와 함께 일반택시 운전기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택시운송사업자에 대한 부가세 경감기한을 연장하는 내용 등의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교통문화 수준(IMF시대의 자화상:4)

    ◎자가용 10부제 77%가 찬성/10명중 6명이상 “신호등 잘지켜”/대학생들이 교통법규 가장 안지켜/주부와 나이많은 사람 준수율 높아 지난 6월 주한 외국인들은 우라나라의 교통문화 수준을 낙제점이라고 평가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이 외국인 손수 운전자 176명에게 한국인의 교통문화 수준을 묻는 질문에 평균 40점이라고 응답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의 교통문화 수준을 어느 정도라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과는 달리 국민들은 스스로에게 매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대한매일과 유니온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개개인들은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자동차나 사람이 없어도 신호등을 잘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자평했다. ◆대학생이 교통질서를 가장 안지킨다=평소의 교통법규 준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잘 지킨다’는 사람은 65.1%,‘잘 지키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3.2%뿐이었다. ‘보통’이라는 사람은 31.6%였다. 남성(62%)보다는 여성(68.2%)이 교통질서를 잘 준수하고 있다.연령 별로는 60세 이상(71.9%),50대(67%),30대(65.7%),20대(59.7%)의 순으로 나타나 나이가 많을수록 교통질서를 잘 지켰다. 교육수준 별 교통법규 준수율은 중졸 이하 67.5%,대졸 이상 66.7%,고졸 64.8%,대학 재학 55.6%로 대학생들의 교통질서 의식이 가장 희박했다. 직업 별 조사에서도 교통질서를 가장 잘 준수하는 계층은 주부(71.4%),가장 지키지 않는 부류는 학생(54.9%)인 것으로 나타나 좋은 대조를 이뤘다. 이와 함께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65.1%)은 신호등을 잘 지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7.3%만이 신호등을 잘 지키지 않았다.남성(60.4%)보다 여성(69.9%),미혼(56.5%)보다 기혼(68%)이 신호등을 훨씬 잘 준수한다. 신호등 준수율은 50대(70.8%)에서 가장 높고,20대(58.6%)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배부른’ 사람일수록 10부제에 소극적=자가용 10부제를 찬성하는 국민은 77.3%로 반대하는 사람(6.1%)보다 월등히 많았다. 나머지 16.6%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10부제에 대한 남성(76.5%)과 여성(78%)의 견해 차이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연령 별로는 30∼50대에서 10부제 찬성률이 평균치를 밑돌았다. 10부제로 인해 생업에 지장받을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10부제 찬성률은 60세 이상 87.5%,20대 78.3%인 반면 30대 75.6%,40대 76.3%,50대 75%였다. 교육수준과 소득에 따라 10부제를 보는 시각은 편차를 보였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반대율이 높아 중졸 이하 79.2%,고졸 78.5%,대졸 이상은 73.6%로 나타났다. 또 고소득층일수록 10부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냉소적이었다. 월 가구 소득이 100만원 미만 계층(80.2%)과 100만∼199만원 계층(78.8%)만 10부제 찬성률이 평균치를 웃돌았을 뿐 200만∼299만원 계층의 찬성률은 76.4%,300만원 이상인 계층의 경우 70.8%에 불과했다. ◎자가용 유지비/“차량유지 힘들다” 10명중 7명/“부담 느낀다” 사무직 최다/보유율 30대가 가장 높아/한달 21만8,000원 들어/작년보다 5,000원 더 늘어 자가용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은 승용차 유지비가 버겁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돈을 벌지 않는 대학생 운전자들은 경제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승용차를 갖고 있는 응답자의 73.5%가 승용차를 유지하는데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24.4%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경제적 부담 정도는 직장을 은퇴한 60세 이상에서 77%로 가장 심했으며 교육비 등 가계지출이 많은 40대가 75.1%로 뒤를 이었다. 이어 20대(73.7%),30대(73.2%),50대(70.4%)의 순으로 부담 정도가 덜했다. 특히 교육 수준 별로 볼 때 대학생은 69.7%만이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고졸(74.3%)이나 대졸 이상(73.2%)보다 훨씬 낮았다. 직업 별 부담정도는 화이트컬러 계층이 77.2%로 가장 컸고 자영업자는 66.7%로 가장 낮았다. 소득 별로는 큰 차이를 보여 월 가구 소득이 300만원 이상인 계층은 57.5%만이 부담을 느꼈다. 반면 100만∼200만원 소득자는 78.7%,100만원 미만인 계층은 90.8%가 ‘버겁다’고 응답했다. 자가용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은 한달 평균 유지비로 21만8,000원을 쓰고 있는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의 한달 평균 21만3,000원에 비해 월 5,000원이 늘었다. 휘발유 가격이 지난해보다 50% 남짓 오른 점을 감안하면 승용차 유지비 상승폭은 예상외로 크지 않다. 이는 승용차 유지비를 아끼기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많이 이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국의 자가용 승용차 보유율은 65.2%이고 30대(71.9%)와 40대(70.6%)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역 별로는 광주 대전 춘천 창원의 보유율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교통수단과 만족도/“버스 이용” 35%로 가장 많아/대중교통수단 만족도엔 지하철이 65.6%로 1위/“체증유발 등 교통문제 너무 많은 승용차 때문” 교통수단 별 평균 이용비중은 버스 35%,지하철 17.6%,택시 13.4%,승용차 34.1%로 버스가 여전히 대표적인 교통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의 경우 버스 27.6%,지하철 33.8%,택시 11.1%,자가용 27.5%이며 부산은 버스 42.5%,지하철 18.1%,택시 15%,자가용 24.9%였다. 서울 거주자들은 지하철 이용비중이 높은 반면부산 거주자들은 버스 이용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부산이 지하철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통수단에 대한 만족도는 버스 53.7%,지하철 65.6%,택시 54%,자가용 75.7%였다. 자가용에 대한 만족도가 단연 높으며 대중교통수단 중에서는 지하철 만족도가 으뜸을 차지했다. 특히 서울지역에서 버스와 택시 이용에 관한 만족도는 각각 30.9%와 29.7%에 그쳐 전국 평균치인 32.5%와 36.5%를 크게 밑돌았다. 우리나라 교통문제의 주된 원인으로는 국민의 45.3%가 승용차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전반적인 교통정책의 부재’가 21.1%,‘잦은 공사 및 좋지 않은 도로 사정’이 14.7%를 차지했다. 서울 전주 창원 춘천지역에서 승용차가 너무 많아 교통문제를 유발한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와 함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힘써야 할 주체로는 국민 개개인을 든 사람이 44.5%로 가장 많았다. 정부 교통관련 부처를 꼽는 국민도 38.7%나 됐다. 지자체 교통관련 부처(7.5%)와 지방자치단체장(3.3%),교통경찰(2.4%),대통령(2%),직업 운전기사(1.5%)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40대 중년층의 45%와 서울·수도권 거주자들의 50%는 국민 개개인보다 정부의 교통관련 부처가 교통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 이동전화 예절(이것부터 고치자:2)

    ◎오나가나 ‘삐리릭’ 공중도덕 0점 수준/문제점­연주회 등서 호출음·큰소리 통화.길거리 곳곳서도 ‘난데族’.운전중 사용 교통사고 급증 ‘주범’/개선방향­기기 오작동 유발 우려.비행기·병원선 반드시 ‘Off’.공공장소선 ‘진동’ 전환을/보급현황­휴대폰·무선호출기 가입자 성인 2명중 1명꼴 ‘생필품화’/외국사례­비즈니스외엔 자제 상식화.日·유럽 운전땐 법으로 금지 ‘이동전화는 있지만 예절은 없다’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도 전화 예절은 한마디로 무례(無禮) 그 자체다. 한국통신에 따르면 지난 달 말 현재 이동무선전화 가입자는 1,304만293명,무선호출 가입자는 1,038만7,437명이다. 성인남녀 두명 가운데 한명은 이동전화와 무선호출기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보급률이 자동차보다 높다. 이처럼 이동전화는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됐지만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공해’가 되기도 한다. 한 선전광고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울리는 탓이다. 혼자 있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휴대전화를 걸거나 받는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일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극히 당연한 상식임에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文智英씨(25·여·서울 동대문구 면목동)는 요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모자라는 잠이라도 보충하려고 눈을 감으면 반드시 휴대전화 신호음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통화에 잠이 깨기 때문이다. 文씨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꿔 놓지 않고 굳이 ‘삐리릭’ 울리도록 내버려두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부 張美善씨(32·여·서울 영등포구 대림동)는 더욱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피아노 독주회에 갔다가 관객들의 무례함에 모처럼 부풀어 올랐던 기분을 완전히 잡쳤다. 연주회가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 휴대전화의 날카로운 호출음이 울렸다. 주위 관객들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그 사람은 “나 피아노 연주회에 와 있어”라고 큰 소리로 자랑까지 해댔다. 외국에서는음악회,영화관,미술관 등을 찾을 때면 휴대폰의 전원을 끄는 것이 상식이다. 급한 일이 있으면 음성사서함이나 메시지 서비스 등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휴대전화나 호출기를 주로 비즈니스용으로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동통신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휴대폰 사용자들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부득이 이용하더라도 차를 도로 한쪽에 세우고 통화를 하거나 핸드프리 키트를 이용하는게 바람직하다. 崔健永씨(26·회사원)는 지난 5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도로에서 가족과 통화를 하다 앞차와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崔씨는 “분명히 앞차와의 거리가 상당하다고 느껴 통화내용에만 신경을 썼는데 ‘꽝’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앞차의 뒷 범퍼와 충돌한 뒤였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교통사고조사반의 한 경찰관은 “운전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사고를 일으켜 피해자와 함께 조사반에 오는 사례가 한 달에 10건 정도 된다”면서 “대부분의 운전자가 휴대폰 사용사실을 감추기 때문에 실제로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사고를 일으키는 건수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 운전자들의 핸드폰 사용도 문제다. 河晟元씨(28·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지난 달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길에서 택시를 탔다가 아무 꺼리낌없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운전기사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수동변속기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는 핸드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낀 채 과속과 추월을 일삼아 河씨를 불안에 떨게 했다. 일본에서는 택시기사가 운전 도중 담배를 피우거나 핸드폰을 사용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싱가포르나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운전할 때 핸드폰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길을 걸을 때도 휴대폰 사용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통화에 몰입해 통행인들과 어깨를 마구 부딪히는 ‘나대로 족(族)’들이 도로 곳곳에 널려 있다. 한마디로 무례함의 극치다. 90년대 문명의 총아로 부상한 이동통신이 최근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면서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곳도 생겼다. 특히 병원이나 비행기 등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휴대전화나 개인휴대통신(PCS)과 정밀기기의 주파수가 중복되거나 서로 전파간섭 현상을 일으켜 오작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吳龍鎭씨(27·대학원생)는 지난 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은 방을 쓰던 환자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환자는 진단결과 핸드폰의 이상현상으로 순간적인 전파충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吳씨는 휴대전화의 위험성을 열심히 홍보하고 다닌다. 의료기기가 주파수 간섭으로 인해 오작동 된다면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휴대폰 예절의 중요성은 누누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휴대전화는 작게는 남의 생활을 방해할 수 있으며 때로는 타인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의식의 확산이 절실하다.
  • 전국 택시 오늘 총파업/민노총 소속 222개 사업장

    민주노총 산하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민택노련)은 11일 오전 4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민택노련은 “전국 222개 사업장을 중심으로 쟁의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조합원의 83.9%가 찬성함에 따라 택시 2만대,운전기사 3만여명이 총파업에 참가,택시월급제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강행하기로 했다”밝혔다.
  • 鄭周永 명예회장 재방북 이모저모

    ◎차분한 소떼몰이 ‘얼굴에 웃음 가득’/마중 北 인사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남북운전사 전통술·담배 등 주고받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재방북은 1차 때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진행됐다. ○…27일 오전 10시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선 鄭회장은 金潤圭 현대건설 사장의 부축을 받으며 묵묵히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재방북 소감이 어떤가”라는 기자질문에 鄭회장은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북쪽 문을 나선 鄭회장은 북한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鄭회장은 취재진에 포즈를 취한 뒤 북측이 마련한 검정색 벤츠 뒷자리 오른쪽에 올랐다. ○…이에 앞서 鄭회장 일행은 예정보다 46분 늦은 오전 9시26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자유의 집에 도착. 소떼 501마리와 사료 85t을 실은 트럭 51대는 9시30분쯤부터 15분간 중립국감독위원회 북측 경비병 휴게실 오른쪽 길을 통해 북측에 인계됐다. 현대측 운전기사들은 북측으로부터 백두산 들쭉술,인삼곡주,붉은별 담배(낙원담배,공작담배 등)등을 선물로 받고 북측 안내요원 3명에게 문배주,안동소주,시나브로담배 등을 전했다. ○…판문점 주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모습. 오전 8시40분쯤 남측 적십자사 연락관이 임순일 북측 적십자사 연락관에 소떼 검역증과 차량별 한우탑재 명세표를 전달했고 곧 이어 소와 차량에 대한 인수인도 서명식을 갖고 양측은 악수를 교환.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에는 우리측 취재진이 사진촬영을 했으며 북측에서도 3,4명의 카메라맨과 기자가 취재에 열중. ○…鄭명예회장은 오전 8시30분쯤 임진각 근처에 마련된 환송행사장에 도착. 행사장 주변에는 실향민 30여명이 플래카드 등을 들고 鄭명예회장 일행을 환송. 한국근우회 회원 金允子씨(52·서울 마포구 성산동)는 “이런 역사적인 행사에 참석해 기쁘다”면서 “鄭명예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金正日 총비서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특히 북한 연안에 석유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석유가 나오면 남북이 협력해 개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27일 오전 6시40분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에 도착,환영나온 현대 직원들과 취재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이발소에서 머리손질을 한 鄭명예회장은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임진각으로 출발. 鄭명예회장이 손을 흔들자 현대직원 500여명이 태극기와 적십자기,현대그룹기 등을 흔들며 환송.
  •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상(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2)

    ◎‘암흑속 노동’ 고발 ‘암흑속 수감’ 7년/야간고시절 어두운 현실 눈떠/‘노동의 새벽’ 민중문화 기폭제로/85년 본격 노동운동가 변신/수배·은둔·고초… 91년 끝내 구속/지난 8월 광복특사로 ‘햇빛’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통해 노동현장의 어두운 실상을 고발했던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7년간의 감옥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인생의 새벽을 열고 있다.지난 8월15일 상오 10시 경주교도소.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박노해씨(40·본명 朴基平)가 상기된 얼굴로 교도소 문을 나섰다.지난 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과 관련,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꼬박 7년을 감옥에서 지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박씨가 모습을 나타내자 부인 金眞珠씨(43)와 여동생,그리고 장인 장모,친척 등 10여명이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셨다.가족들과 뜨거운 인사를 마친뒤 모여 있는 기자들 앞에서 “이 시대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또박또박 읽어내리곤 교도소를 떠났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옆에 앉은 부인의 얼굴을 자꾸만 쳐다보았다.결혼후 수배로 인한 은둔생활과 구속·수감 탓에 밝은 세상을 함께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부부였다.이화여대 약학대 재학중이던 부인 김씨를 알게 된 것은 선린상고 야간시절.야학 여교사와 학생 신분으로 만났다.이들은 사노맹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82년 결혼했다.신분노출을 염려해 서울 명동성당에서 아주 가까운 몇 사람만 초대해 숨죽이며 결혼식을 올렸다.그러나 91년 부인 김씨가 구속됐다.10일후 박씨도 구속됐다.김씨는 95년 먼저 석방된 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주며 뒷치닥거리를 해왔다. 어린시절 작가가 꿈이던 그에게 고교시절 야학은 그의 인생의 물꼬를 새롭게 터주었다.중학교 다닐땐 신부가 꿈이었다.그전엔 한때 정치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하지만 선린상고 야간시절 낮에 공장에 다니면서 체험한 현실 앞에서 신부는 낭만적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그래서 본격적으로 야학에 열중했다.창작과 비평(創作과 批評),사상계(思想界) 등을 탐독(探讀)하면서 명동성당 기도회와 반정부집회 투쟁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고교졸업후 최전방의 기술병을 자원해 군생활을 마친 뒤 곧바로 안양의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입사했다.운전기사와 안내원들에게 의식화 학습을 시키는 등 노동운동을 벌이던중 노동조합 위원장에 출마한다.여기에서 내건 구호들이 당시엔 불온(不溫)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사측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회사는 학력위조란 핑계로 그를 해고시켰다. 84년 발표한 ‘노동의 새벽’(풀빛출판사刊)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이 때 쓰인 것들이다.작업장 한 귀퉁이에서,혹은 기숙사의 한 켠에서 구부린 채 작업일지 등에 끄적거린 것들이다.세상 사람들의 첨예한 관심의 대상이 됐던 시집 ‘노동의 새벽’은 이렇게 태어났다.‘얼굴없는 시인’이란 별명도 따라붙기 시작했다. ‘노동의 새벽’이 나오자 문단에선 무성한 평들이 쏟아졌다.“이 땅의 조악한 노동현실의 구체적 체험에 깊이 뿌리박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절망과 슬픔,한과 분노의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히 담고 있다”“인간다운 삶을 향해 몸부림치는 서민들,못가진 자들,억압받는 자들의 정서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이른바 박노해문학의 등장은 80년대에 확산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민중들의 문화적 자기표현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계간 문예중앙이 지난 88년 40명의 중견 평론가들에게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 한 편을 선정해 달라고 의뢰한 결과 ‘노동의 새벽’이 뽑혔을 정도였다.또 같은해 실천문학사가 선정한 ‘제1회 노동문학상’을 받았으며 91년 구속때까지 ‘노동의 새벽’은 7만여부가 팔려나가는 인기를 얻었다. ‘노동의 새벽’은 물론 철저하게 신분을 숨긴채 낸 시집이다.형 기호씨가 가톨릭대학 학보에 한 면에 걸쳐 ‘노동의 새벽’에 대한 평론을 게재하면서도 동생의 작품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다.기호씨는 나중에 사실을 알곤 몹시 섭섭해했다고 한다.“여러 사람을 거쳐 시와 평론들을 출판사에 보내거나 공중전화 박스 등 특정 장소를 지정해 원고를 갖다놓는 방법으로 신분을 은폐했습니다.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료 노동자들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덕분에 문단과 노동계에서 ‘얼굴없는 시인’이란 별명이 붙게 됐지요” 본격적인 정치색을 띠기 시작한 것은 85년 8월 창립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 가입하면서부터.서노련 기관지인 서노련신문에 노동해방투쟁을 선동하는 방대한 분량의 시·산문·정치평론을 잇따라 발표했다.본격적인 노동운동가로 나선 것이다.초기시절 ‘노동의 새벽’식의 문학과는 엄청난 변화가 느껴지는 글들이었다.곧 평론가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노동의 새벽’을 통해 시대적 서정과 비전이 문학적 형태로 충분히 제시됐다고 판단했습니다.다음은 행동의 시기라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분신과 고문,의문사가 계속되는 시점에서 시에 천착하는게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그런 분위기에서 행동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중심에 서게 됐다고나 할까요” 86년 5·3인천사태 배후인물로 지목돼 경찰의 추적을 받다가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점차 ‘급진적인 노동운동가’‘사회주의적 혁명가’로 변신해 갔다.그리고 89년 11월 마침내 사노맹 출범을선언한 후 공개수배를 받다 91년 영어의 몸이 됐다.암울한 노동현장,경찰수배,구속 등 어둠의 세상에서 탄압받았던 그의 삶과 작품은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사연들/박노해와 박기평/80년대초 폭압의 시절 탄압우려 필명 사용/‘공동단체명’ 등 온갖 추측/90년 사노맹사건 뒤에야 ‘박기평’ 본명 알려져 흔히 ‘얼굴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의 본명이 朴基平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90년 안기부가 사노맹 사건 전말을 발표한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노동의 새벽’이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왕성하게 발표해온 시와 평론들로 인해 한때 박노해가 특정인이 아닌 공동 창작단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도 했다.그러나 朴씨가 검거되면서 결국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는 朴基平이란 전남 함평 출신의 노동자 시인임이 밝혀졌다. 그러면 박노해란 이름은 언제부터 쓰여졌고 왜 박노해인가. 박노해란 필명이 처음 쓰여진 것은 83년 가을 시동인지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을 발표할 때였다.당시만 해도 ‘노동자’라는 말만으로도 ‘빨갱이’ 취급을 받는 폭압의 시절이었다.근로기준법을 내세워 노동현장에 가혹한 탄압이 자행되던 때이기도 했다. “흔히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줄인 말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성씨 박을 그대로 땄고 어감도 좋고 해서 노해란 이름을 썼던 것입니다.물론 노동자 해방의 의미도 어느정도는 담고 있었지요” 닥쳐올 탄압을 우려해 필명을 쓸 수 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본명으로 시작(詩作)을 계속할 경우 탄압은 물론 노동운동도 지속하지 못할 것 같아 노해라는 이름을 계속 쓰기로 했다는 게 朴씨의 설명이다. 이후 ‘노동의 새벽’은 물론 서노련 기관지 ‘서노련신문’에 지속적으로 발표한 모든 글과 평론에도 이 이름을 썼고 91년 구속때까지 ‘얼굴없는 시인’은 베일에 쌓여 있었다. 그러면 실체가 밝혀진 이상 박노해라는 이름은 살아있을 수 있을까.朴씨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감옥에서 나올 때 ‘상처 투성이’의 이름 박노해를 벗어 버리고기평이란 이름의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하지만 언제 일자리를 빼앗길 지도 모른 채 살아야만 하는 불안한 시대임을 피부로 느낀다.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평온한 생활을 찾을 때까지 상처많은 이름 박노해를 운명처럼 계속 써야만 할 것 같다” □그의 길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77년 선린상고 야간부 졸업 ▲82년 金眞珠씨와 결혼 ▲84년 안양 버스회사 정비공으로 입사 ▲83년 시동인지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 발표 ▲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85년 서노련 가입 ▲86년 5·3 인천사태 배후인물로 수배 ▲89년 사노맹 결성 선언문 발표. ▲91년 구속·수감 ▲98년 출감
  • 공기업 임원 자기배만 불린다/감사원 국감자료

    ◎5년간 임금인상률 직원보다 최고 2.2배/일부 기관선 1년중 120일이 휴일로 한국전력공사와 포항제철 등 16개 정부투자기관에서 지난 93년부터 97년까지 임원 보수 인상률이 직원 보수 인상률보다 최고 2.2배까지 높았으며 차량 등을 과다하게 운영하는 등 공기업 임원의 경영혁신 의지가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 감사원이 16일 산업자원위 소속 南宮鎭 의원(국민회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3년부터 97년까지 포항제철의 경우 직원 보수 인상률은 58%인데 반해 임원보수 인상률은 130%로 2.24배나 높아 경영진이 오히려 임금 인상에 앞장 선 것으로 나타났다.이 기간동안 국정교과서의 임원보수 인상률은 직원보다 2.18배,국민은행은 1.83배,한전은 1.79배,주택공사는 1.57배나 각각 높아 경영진의 보수결정 체계를 다시 조정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또 산업은행 등 6개 정부투자기관에서 전용차량 지원대상이 아닌 자가운전 대상자 40명에게 전용차량과 운전기사를 배정,연간 12억3,600만원 상당의 예산이 추가 소요된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신용보증기금 등 7개 정부투자기관에서는 사장 전용차량을 구입한지 1년여만에 신형차량으로 교체,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보증기금 등 10개 정부투자기관에서는 사장실을 기준보다 최고 2.3배까지 넓게 사용하는 등 임원들의 경비절약 의지가 약한 것으로 지적됐다.포항제철의 경우 포항과 광양에 각각 회장과 사장의 사택을 따로 운영하면서 97년 연간 사용일수가 3일 내지 17일에 불과한데도 유지관리비 등으로 연간 1억1,199만원을 부담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산업은행 등 40개 기관은 유급휴가일수가 근로기준법상 기준보다 최고 11일이 많고 미사용 휴가일수 보상기준도 근로기준법에 비해 과다하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산업은행의 경우 20년 근속직원은 법정공휴일 60일,근로기준법상 연월차 휴가일수 41일 등 109일에 체력단련,결혼기념일 등 근로기준법을 초과한 유급휴가일 11일을 합하면 최대 120일이 되어 1년의 3분의 1이 휴일인 것으로 드러났다.
  • 무장탈영 2명 대낮 강도짓/김해서 택시 턴후 도주

    ◎군·경 1천명 수색작업 소총과 실탄을 갖고 부대를 탈영한 사병 2명이 경남 김해에서 타고 가던 택시 운전기사를 위협,금품을 강탈해 달아나 군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12일 오전 9시쯤 육군 00사단 예하부대인 부산시 영도구 모 대대 소속 李상훈 일병(20·충북 음성군 원남면 구암리 5)과 金한수 일병(21·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1308) 등 2명이 M16 소총 1정과 실탄 840발을 휴대하고 탈영했다. 이들은 영도구에서 朴모씨(53·부산시 영도구 동삼동)의 개인택시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가던중 오후 3시30분쯤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덕촌마을에 도착한 뒤 朴씨를 흉기로 위협,현금 8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군과 경찰은 이들이 택시에서 내려 덕촌교회 뒷산으로 달아났다는 朴씨의 진술에 따라 1,000여명의 병력을 배치,야산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날이 어두워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민주열사 열전:10/분신 택시기사 朴鍾萬(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운동 탄압 항거 84년 분신/군사정권 反노동자적 행태에 격분/민주노조 파괴공작 목숨 바쳐 제동 84년 11월30일 오전 11시30분. 조인식 여사(46·국민회의 민원부국장)는 문밖에서 나는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남편 회사차였다.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구나”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조여사는 눈을 감았다. 시커멓게 그을리고 온몸이 부풀어오른 알몸의 사내는 바로 자신의 남편 朴鍾萬이었다. 물을 달라고 소리지르던 그는 부인을 알아보고는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할일이 남았으니 퇴원시켜달라고 떼를 썼고,옆에 있던 동료들에게는 빨리 회사로 가 일을 수습하라고 재촉했다.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동료기사들의 희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몸에 불을 붙였던 택시기사 朴鍾萬. 그는 저녁 8시50분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회사 노조어용화 기도 무엇 때문에,누구를 위해서 그는 죽어야 했을까. 노조대의원이었던 朴鍾萬은 소속회사인 민경교통이 노조사무장 이태길씨를부당 해고하자 이에 항의하는 단식농성 끝에 분신자살했다. 당시 이씨는 조합주택 기금 유용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노조위원장을 대신해 노조를 열성적으로 이끌고 있었고 회사는 사소한 이유를 들어 그를 해고했던 것이다. 그외에도 노사간에는 몇가지 요인으로 갈등이 쌓여 있었고,여기에 노조위원장의 비리의혹과 어용화,노조의 분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회사는 그 이전부터 3차례에 걸쳐 노조간부를 해고하고 정상적인 성과급 지급을 거부하는 등 상습적으로 부당 노동행위를 자행해 왔었다. 또한 고참기사들 중심인 상조회 회원들을 노조에 가입시켜 노조 분열을 조장하고 노조의 어용화를 기도했다고 한다. 朴鍾萬은 노조위원장도 사무장도 아닌 대의원에 불과했지만 그런 부당해고를 통한 노조파괴공작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해고통지서가 게시판에 붙자 鍾萬이는 격분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비단 자신들만이 아닌 전국의 택시기사들이 당하는 문제라고 보았어요”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안을환씨(48·개인운송조합 은평지부 차장)의 회고다. 안씨는 그가 숙직실에서 운행일지 뒷면에 무언가를 적고 있어 무얼 쓰느냐며 다가가자 “알 필요 없다”며 찢어 잠바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그때 쪽지 앞부분에 “내 한목숨 희생되더라도…”란 글귀를 분명히 보았으며 안씨는 쓸데 없는 생각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유서로 보이는 그 쪽지를 찾으려고 잠바를 뒤졌지만 없었다고 했다. 당시 동료들은 朴鍾萬이 유달리 의협심과 동정심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동료 일이라면 발벗고 뛰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항상 그를 먼저 찾았고 따라서 동료들로부터 ‘대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동료 부인이 중병이 걸리자 아이를 자신의 부인 조씨에게 맡겼고 적금을 깨 급한 일을 당한 동료를 돕기도 했다. 과로로 2개월간 쉬고 나온 동료가 한푼의 월급도 받지 못하자 자기일은 팽개치고 동료일에만 매달려 당사자가 그만두자고 하기까지 했다. ○갖은 회유·협박 물리쳐 회사는 모든 기사들이 따르는 그를 회유하려고 새 차를 우선 배정하기도 했지만 즉각 거절당했다. 역시 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배철호씨(48)는 “朴鍾萬은 진실 하나로 조합에 참여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무장의 해고가 결정되기전 전무를 찾아가 ‘해고’가 아닌 ‘자진사퇴’만이라도 허락해달라고 빌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당시 택시회사에서 해고되면 회사마다 비치돼 있는 이른바 ‘취업카드’에 기록됐고 ‘불순분자’로 찍혀 택시를 몰 수가 없었다. 그는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회사정문 앞에 가마니를 깔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동료기사인 배철호 안을환씨도 곧 합류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던 한 회사 고위간부는 추위때문에 동료들이 갖다준 담요까지 빼앗아 갔고,“너희들도 오래 못갈 것”이라고 협박했다. 분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함께 농성을 하던 두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노조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석유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배씨가 낌새를 채고 그를 부른 순간 朴鍾萬은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어 창문을 깨고 튀어나왔다. 당시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이 사건의 배경으로 노사대립을 적절히 수렴할 만한 제도적 장치 미흡과 분규 해결과정에서의 기업과 정부의 진지하지 못한 자세를 꼽았다. 그러나 이것은 핵심을 벗어난 ‘점잖은’ 분석이었다. 실은 독재정권 유지의 자양분인 정경유착에 의한 착취구조와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적 시각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그 이전부터 노동자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정보기관이나 행정관청의 노동운동에 대한 눈에 띄지 않는 감시와 통제,신규노조 설립 신고 반려 및 어용노조 결성 유도,임금인상투쟁에의 경찰 개입 및 민주노조 파괴행위 등이 일상화돼 있었다. 朴鍾萬 열사는 민경교통 노조사무장 이태길씨가 아닌 전국 택시회사의 부당해고와 노조탄압,독재정권의 반노동자적 행태에 항의해 분신했던 것이다. □朴鍾萬 열사 연보 ▲1948년 부산출생 ▲68년 서라벌고교 3년 중퇴 ▲82년 (주)민경교통 입사 ▲83년 노조 복지부장 ▲84년 11월30일 분신 ◎가족·동료들 그후/부인 조인식 여사 민주화투쟁 혼신/동료 이태길씨 충격 딛고목회의 길 朴鍾萬 열사의 죽음이후 부인 조인식여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죽었을때 31살의 평범한 운전기사 아내였던 조여사는 지금 집권여당 민원부국장으로,국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같이 고민하며 해결점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시 장례식때까지만 해도 기가막히고 경황이 없어 죽음의 의미 같은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을 일산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오면서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왔다고. 그때 노동부는 남편 죽음의 배경을 단순한 노조 내분과 朴鍾萬의 개인적인 결함으로 몰아붙였던 것이다. 조합장과 사무장의 실권 장악 다툼에서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하고 朴鍾萬이 전과 3범이라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전과라는 것이 하나는 고등학교때 열차역 앞에 있는 자재를 엿바꿔먹은 행위였고,나머지는 간이매점을 운영할때 옆집 사람과 물품인수과정에서 싸움이 붙었던 것,민경교통에서 동료운전사의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로 회사측과 다툼이 있었던 것이었다. 조여사는 그때부터 남편의 명예회복에 직접 나섰다. 같은 처지에 있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민주화투쟁 및 노동운동 현장에 악착같이 나갔다. 또 박종만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추모사업과 함께 운수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담는 ‘운수노보’를 발행했다. 당시 朴鍾萬과 함께 단식농성을 했던 안을환씨는 그의 죽음이후 노조위원장을 맡아 근무여건 개선에 앞장서다 4년후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분신의 직접적 원인제공자가 됐던 사무장 이태길씨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노동 자체가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그것이 죽음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이 그를 평상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했다. 영안실에 朴鍾萬이 내걸었던 요구조건을 내걸다 경찰서 정보과로 붙들려 갔던 그는 1년여 동안 기도원을 돌며 기도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신학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서울 응암동 응암중심교회에서 목회자로 일하고 있다. ◎당시 택시기사 근무여건/회사마다 ‘취업카드’ 비치 노조활동 방해/사납금 과중으로 사고율 다른 車의 4배 당시만 해도 택시기사는 구조적으로 회사측에 한없이 무력했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종속관계에서,‘돈은 주는 대로 받고 일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전근대적인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곳중의 하나가 택시회사였던 것이다. 우선 노조원들은 해고 앞에 무력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가 회사마다 비치돼 있던 ‘취업카드’에 ‘해고’라는 단어가 기록되면 택시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朴鍾萬씨처럼 해고가 아닌 ‘자진 사직’을 시켜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 운전사들,특히 고참 운전기사들이 기업주에 쉽게 굴복하는 것은 대부분 기사들의 꿈인 개인택시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개인택시를 몰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무사고 운전기록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하는데 회사측의 협조나 배려가 꼭 필요한 것이다. 또 회사에 노조가 있으면 회사를 팔아먹기도 힘들고,따라서 값도 깎이기 때문에 업주들은 기를 쓰며 노조설립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조를 통해 업주에게 대항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기사들은 상당히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해야했다. 다른 차량에 비해 교통법규 위반이나 과속, 난폭운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고빈도가 매우 높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택시는 다른 차량에 비해 4배 정도 높은 사고율을 보였는데 과중한 사납금이 주요 원인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운전사들은 병도 많아 78.5%가 위장병을 앓고 있으며,시력장애는 40%,신경성 질환 38.5%,성욕감퇴 23.1%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 주택은행은 요즘/‘월급 1원 金正泰 행장’ 그후

    ◎놀란 행장/더 놀란 행원/김 행장이 없앤것­‘그림자’ 수행비서/전용 엘리베이터/임·직원 구분 식당/전용 대형 접견실/관료적 체제에 놀란 김 행장 격식파괴 행보/행원들 ‘문화충격’ 얼떨떨… 신선함 기대도 “돈이 안되는 것은 모두 없애라.격식이나 체면은 필요없다.”.역대 행장을 재무관료들이 맡아왔던 주택은행에 ‘격식파괴’와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동안 행장의 공식·비공식 일정을 챙기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수행비서와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모두 없앴다.식당 구분도 없앴다. 金正泰 행장은 “주택은행에 와보니 식당도 임·직원 따로 구분이 있고 가격도 달랐다.한솥밥 먹는 식구들인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그는 두 개 있던 행장용 접견실 중 하나 만을 사용하고 있다.넓은 것은 이사 회의실로 개조하도록 지시했다. 새 행장의 취임 한달(1일)을 맞는 주택은행의 달라진 모습이다.金행장 자신도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다.“요즘 문화의 충격 속에 산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조흥은행과 대한투금,대신증권을 거쳐 동원증권 사장을 지내 자신을 ‘장사꾼’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역시 아직은 뱅커보다는 비즈니스맨 스타일이다.그래서 재무관료 출신 행장들이 지켜왔던 형식은 몸에 맞지 않는 인상이다. 지난 21일 단행된 인사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본점 직원 80명을 영업점으로 발령내고 대리업무를 보던 과장을 지점장으로 발탁했다.경력 많은 1급이 임명되던 고객업무부장에 2급을 임명했다.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위주 인사였다.그러다보니 주택은행 사람들도 새로운 문화의 충격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예정된 개혁방향은 두가지다.첫째는 전자결재 시스템.金행장은 취임 뒤 본점의 ‘부재(不在) 표시등’ 가동을 중단시켰다.윗사람들 눈치를 본다는 것이 이유였다. 둘째는 연봉제.지난 23일 주택은행은 합병한 동남은행 직원을 5년간 장기계약으로 채용하면서 신규채용도 장단기 계약고용 방식으로 하겠다고 밝혔다.金행장이 취임하면서 데려온 여비서와 운전기사도 계약직이다.본인의 월급은 단돈 1원이다. 일각에서는 金행장의 ‘파격행보’를 다소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시각도 있다.“권위주의는 타파해야 하지만 행장의 권위는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그러나 대다수 행원들은 이런 변화를 긴장감 속에서 ‘신선한 충격’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 공무원의 별… 1급 어떤 자리인가

    ◎사무관서 25∼30년… 능력·운 따라야/차관보·기획실장 연봉 5천만원선/운전기사도 지원 산업자원부에 이어 재정경제부의 1급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1급은 어떤 자리일까. 샐러리맨의 최고의 꿈은 조직의 수장인 사장이다.하지만 공무원들에게 사장에 해당하는 장관의 꿈은 너무 멀다.그저 1급이라도 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한다. 기업에서는 이사,공직사회에서는 1급이 되면 별 달았다고 말한다.1급의 대우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권한은 엄청나게 크다. 1급이라면 정부 부처의 차관보나 기획관리실장을 모두 일컫는다.재정경제부의 세제실장과 국세심판소장,산업자원부의 자원정책실장과 무역정책실장 등이 1급이다. 엄밀히 말하면 차관보는 1급상당 별정직이고 기획실장 등은 일반직의 최고직인 명실상부한 1급이다.1급은 군(軍)으로는 소장이나 중장정도에 해당한다. 국장급에서 1급이 되면 먼저 달라지는 것이 운전기사가 제공된다는 점.관용차는 제공하지 않지만 운전기사를 정부부담으로 제공한다. 연간 보수액은 1급 최고호봉의 경우 5,182만원(월 평균 431만원)으로 국장급 4,733만원(373만원)보다 조금 많다. 대기업의 부장급 정도에 불과하다.개인적인 기밀비는 없고 맡고 있는 부서의 판공비 한도내에서 사용하지만 영수증 첨부 등 절차가 까다롭다. 일반 기업의 샐러리맨과 달리 정부 1급의 권한과 대우는 막강하다.1급은 부처내 인사위원회에 참여한다.중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차관의 대리역으로 부처간 차관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대개 1급의 수명은 1­2년이며 길어야 3년을 넘지 않는다.그 안에 차관으로 승진하거나 옷벗고 산하기관으로 가야 한다.일반기업과 달리 ‘물좋은’ 부처의 경우 차관보에서 바로 그만두는 법은 없으며 대개 산하기관장으로 간다.국장급은 산하 기관장으로 옮기기 어렵다. 1급이 되는 길은 25­30년이 걸린다.능력에다 운과 그리고 연줄이 작용해야 한다.한 경제부처 과장은 “1급은 능력만으로는 안된다.능력은 단지 ‘참고사항’일뿐” 이라며 그외의 변수가 많이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 경찰들 왜 이러나/파출소서 술 마시다 쇠파이프 들고 난동

    ◎2명 해임·부소장 중징계 일선 파출소 직원 2명이 새벽에 파출소 내에서 술을 마신 뒤 인근 사무실에서 쇠파이프까지 휘두르며 30여분 동안 난동을 부려 잠자던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16일 강원도 삼척경찰서에 따르면 삼척시 하장파출소 소속 崔지석 순경(27)은 이날 상오 3시쯤 파출소 안에서 근무중인 동료 경찰관 2명 등 5명과 함께 술을 나눠마신 뒤 파출소 앞 대동화물 사무실을 찾아가 화물차량 앞유리 등을 돌로 깨뜨리고 사무실의 기물을 마구 부쉈다. 崔순경은 뒤따라온 黃삼선 순경(31)과 합세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화물차 운전기사 金모씨(44)의 멱살을 잡고 “경찰관 때린 사람을 찾아내라”며 30여분 동안 행패를 부렸다. 한편 강원지방경찰청은 이날 하오 崔순경과 黃순경을 해임하고 함께 술을 마신 하장파출소 부소장 全찬호 경장(42)을 중징계했다.
  • 클린턴 정치적 앞날 순탄치 않을듯

    ◎증언·연설 직후 CNN 등 공동 여론조사/사임 반대 72%… 탄핵 안된다도 69%/고비 일단 넘겼으나 경제 불안 그림자/지지율 1주일새 20% 낮아져 40%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고비를 일단 넘겼다.하지만 클린턴의 정치적 앞날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미국 국민들은 성추문에 휘말렸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되어서는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대통령직 역시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클린턴에 대한 지지율은 크게 떨어져 형편에 따라 어려움을 겪을 것임을 예고했다.또 미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유도하고 있는 경제적 형편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도 클린턴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CNN방송과 USA투데이,여론조사기관 갤럽은 클린턴의 증언과 TV연설 직후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우선 응답자의 63%가 클린턴이 이번 증언과 연설을 통해 신뢰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르윈스키와의 ‘관계’는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대답,공인으로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문에 대통령직과 관련해서는 클린턴이 높은 지지를 얻었다.사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72%가 ‘아니다’라고 밝혔고 62%는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의회의 클린턴에 대한 탄핵논의에도 대다수가 반대했다.69%나 됐다.또 이제 그만 르윈스키 관련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데도 65%가 찬성했다.상황이 이렇고 보면 클린턴은 소추나 탄핵없이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앞날이 순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클린턴은 이번 대배심 증언 등으로 앞으로 국정수행 등에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지지율 하락이 곧 반증이다.TV연설 직후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favorable opinion)은 40%에 그쳤다.이는 CNN이 지난 12일 조사했을 때의 60%보다 무려 20%나 낮아진 것이다.게다가 미국민의 46%는 이날 대배심 증언에서 진실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떨치지 않고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조짐들도 불리하다.실제 내년초부터는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로 미국 경제가 하강기에 접어들 것이란 예측이 줄을 잇고 있다.클린턴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경제호황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계속해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리란 보장이 없어 보인다.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 클린턴은 이제 TV연설에서도 스스로 털어놨듯 ‘중대한 착오’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전망이다. ◎클린턴 연설 요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국민연설은 미국은 물론 CNN을 통해 전세계에 중계됐다.클린턴 대통령은 4분에 걸쳐 심경 등을 토로하며 국민적 지지를 당부했다.연설 내용을 요약했다. ▷심경◁ 연방 대배심에서 사생활을 비롯,어떤 미국인도 대답하기를 원치 않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공·사적인 모든 행동의 책임을 지겠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및 위증◁ 르윈스키와 적절치 못한 관계를 가졌다.잘못된 일이었다.혼자서,그리고 전적으로 책임져야하는 판단 실수이자 개인적인 실수였다.그러나 한번도 남에게 거짓말을 시키거나 증거의 파괴·은닉을 요청하지 않았다.다른 불법 행동을 취하도록 요청한 적도 없다. ▷사과◁ 나의 공적인 발언과 침묵이 잘못된 인상을 주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내 아내를 비롯,국민들을 오도했다. 깊이 후회한다. ▷증언 번복 배경◁ 내가 한 행동으로 내 자신이 당황하는 것을 막기 위해,또 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이 문제는 나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그리고 하느님간의 문제이다.가족을 위해 가족생활을 되찾을 작정이다.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은 있다. ▷수사중단 호소◁ 개인에 대한 파괴와 사생활을 캐는 행위를 중단,국민의 생활로 돌아가야할 때다.미국은 이 문제로 너무 혼란스러웠으며 해야 할 중요하고도 진정한 일들이 있다. ◎美 역대 대통령 성추문 수난사/제퍼슨­“흑인노예와 아이까지 낳았다”/아이젠하워­전쟁때 운전기사 여성과 정사설/케네디­먼로 등 수많은 여인과 염문 뿌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성추문의 덫에 걸려 끝내 대배심 증언에 이어 국민사과를 했다.그러나 처음이 아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에는 지독한 성추문으로 시달림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42명의 대통령 가운데 클린턴을 포함해 모두 15명이 염문을 피웠다해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하지만 아무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제35대 존 F.케네디도 클린턴 못지않는 염문의 주인공.63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되면서 문란한 사생활은 꼬리를 물었다.영부인 재클린이 자리만 비우면 요절한 명배우 마릴린 먼로,주디스 엑스너 등 수많은 여인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한때 이웃집 여인과 연애편지를 주고 받다가 스캔들에 휘말렸다.제3대 대통령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흑인노예 샐리 헤밍스와 사이에 자식까지 낳았다는 정적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인 엘리너의 개인비서 루시 어서와의 밀회설로 곤욕을 치렀다. 학자출신으로 독신생활을 한 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사생아 시비로,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28대 우드로 윌슨 통통령은 한 여인과의 밀회 사실이 들통나 한바탕 미국을 시끄럽게 했다.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냈던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전쟁당시 운전기사였던 케이 소머빌이란 여인과의 정사설로 궁지에 몰렸었다. ◎증언·연설 이모저모/상기된 표정 연설… 목소리 떨리기도/연설문중 ‘섹스’ 표현은 한마디도 없어/공화당의원·스타 검사 등 정적 겨냥한듯 빌 클린턴 대통령은 17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백악관내 맵룸에서 역사적인 연방대배심 증언을 한데 이어 밤 10시(현지시간) 전국 TV생중계로 대(對)국민 연설을 했다.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담담하게 4분간의 짧은 대 국민 연설을 진행한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인정한 뒤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한 듯 목소리가 잠시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연설문 전체에서 ‘섹스’라는 표현은 한마디도 쓰지 않아 수사의 명수임을 입증. ○…워싱턴의 정치평론가들은 클린턴의 연설이 대 국민 여론무마의 목적 뿐아니라 공화당 의원들과 케네스스타 특별검사 등 정적들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 부인 힐러리와 딸 첼시아 등 가족을 부각,국민들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고 스타 검사의 수사가 국고 낭비는 물론,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고 지적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석했다. ○…일요일 밤 작성된 연설문 초안에는 발표된 것보다 ‘사과’의 내용이 좀 더 담겨 있었으며 클린턴 개인 변호사인 데이빗 캔덜과 힐러리 여사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대통령 측근이 전했다. 한편 클린턴의 성스캔들이 발생했을때 마다 남편을 적극 옹호해온 힐러리 여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시인하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눈길. ○…한국 사람들은 힐러리에 대한 동정론을 언급.지방도시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김지인씨(37)는 “그가 부인과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으므로 어떻게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서울의 회사원 박정일씨(28)는 “대통령으로서 클린턴은 고용 확대 등 좋은 일도 많이 했으므로 미국인들은 이제 그를 놓아 주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클린턴 대통령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닌 힐러리 여사를 어려운 지경에 빠뜨렸다고 지적.
  • 부족한 재원(실업大亂 이렇게 풀자:하)

    ◎실업자 인식 바꿔야 산다/“3D업종은 싫다” 일자리 주선해도 거절 일수/취업돼도 며칠 못가 중도 포기… 눈높이 낮춰야 실업자가 150만명을 넘었지만 3D업종의 구인난은 여전하다. 직장을 잃더라도 9개월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당수의 실업자들은 아직도 힘들고 임금이 낮은 업종에 취업하기를 꺼리고 있다. 실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업자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일자리가 3D업종에만 1만6,000여개에 이른다. 해당 업체들은 사상초유의 대량실업 사태 속에서도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실업자의 3D업종 취업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인력은행 등 정부의 취업알선 기관을 통해 3D업종에 취업알선을 받은 실업자가 취업을 거절할 경우에는 실업급여를 주지 않기로 했다. 대량 실업시대·구직을 호소하는 실직자들의 목소리가 나날이 급박해져 가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서부고용안정센터에 들어오는 기업체의 구인신청은 한달 평균 100여건 정도. 구인자와 구직자가 즉시 연결될 것 같지만 구직을 성사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담원 李貴宣씨는 “한 건을 주선하려면 20명이 넘는 실직자에게 연락을 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애써 일자리를 주선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보수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구직자들이 ‘퇴짜’를 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제약회사에서 실직한 韓모씨(39). 서울 신림동 서울인력은행에 구직신청을 했다. 그렇지만 일자리를 주면 이틀을 못 버틴다. 인력은행 관계자는 “처음엔 무슨 일이든 달라고 해놓고는 막상 주선하면 서서 일해 힘들다,일이 너무 많다느니 하며 중도포기를 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봉제공장에서 실직한 李모씨(31)는 기계부품 조립공장 등 세 군데서 일자리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한 케이스. “손에 익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를 댔다. 버스운전 8년 경력의 柳모씨(41)도 최근 3개월동안 4번이나 퇴짜를 놓았다. 개인 승용차 운전기사로 일해 보라고 권유했지만 “남의 비위 맞춰야 하는 일은 싫다”며 거절했다. 이런 사례는 공공근로사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해도 7만5,000여명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지금은 6만6,000여명만 남아있다. “빠져나간 9,000여명중 일자리가 새로 생겨 나간 경우도 있지만 공공근로가 힘들어 그만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행정자치부 공공근로사업 담당 李모 사무관의 말이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서부고용안정센터 취업알선 창구. 상담원으로부터 구직등록표 양식을 받아든 金모씨(29)는 찌푸린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꼭 이런 걸 써내야 하나” 이름과 전화번호,전직(前職),희망직종,희망 최저급여 등을 적던 중에도 누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다. “몇달만 있으면 갈 데가 있는데…. 실업급여를 안 준다니 안 쓸 수도 없고…” 金씨는 내던지듯 구직등록 서류를 접수시키고 횡하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 곳에서 근무하는 李貴宣씨는 “변변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무엇보다 실직자들이 눈높이를 조금씩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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