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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재 베트남에 ‘첫선’

    영산재 베트남에 ‘첫선’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靈山齋)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불교계의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에서 영산재 시연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태고종 봉원사 영산재보존회(회장 환우 봉원사 주지)가 26일부터 31일까지 호찌민시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에서 봉행하는 ‘베트남전 전몰 양국 영령 천도 영산재’.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한국군과 베트남군·민간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행사로, 베트남에 영산재가 진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영산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당시의 법회 광경을 상징화한 불교의식. 많은 사찰에선 일반적으로 죽은 영혼을 천도하는 전통의식인 49재에 포함시키고 있다. 베트남 천도재에선 범패 보유자인 김구해(인간문화재) 스님을 비롯해 전수생 30여명이 컨벤션센터 무대에 올라 영산재를 시연하며 천도법회를 진행한다.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과 부원장 보경 스님, 중앙사정원장 월운 스님, 중앙종회의장 인공 스님 등 최고 지도자를 포함한 태고종 스님 150여명이 현지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행사는 최근 방한했던 베트남 보건복지부 장관이 봉원사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마련된 만큼 베트남의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티베트에 범패의 일부가 전하지만 음악(범패)과 춤(작법), 기예가 어우러진 종합예술 형식의 불교의식인 영산재가 행해지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범패는 한국불교의 전래기부터 행해져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성악곡으로 꼽힌다. 영산재는 태고종 스님들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구전방식으로 전승되어왔으며, 1969년 태고종 사찰인 서울 신촌 봉원사에 옥천범음회가 결성되면서부터 종단 차원에서 후진양성에 나서고 있다. 불교계는 “한국만의 전통적인 문화양식을 담은 종합예술인 영산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을 모아 지난해부터 불교학자들이 포함된 ‘세계문화유산 등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5∼6년간 캐나다·미국·독일 등에서 잇따라 영산재 초청 공연이 열리는 등 세계인들의 관심도 늘고 있다. 내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문화축제에도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영산재를 시연할 것으로 알려졌다. 태고종 관계자는 “영산재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종합예술”이라면서 “한국과 베트남간 문화예술교류 차원에서 성사된 이번 행사를 계기로 아시아권에 널리 알려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그동안 인기리에 연재됐던 ‘산이 좋아 산이’ 코너는 전국의 가볼 만한 명산을 대부분 다뤘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산 소개를 중단하고, 대신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 남도의 주요 산자락에 숨어 있는 ‘산골 마을’을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혹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산골을 지키는 마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등산을 떠날 적에 그곳 주변 마을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다면, 그 보람과 의미 또한 일석삼조이겠지요. 먼저 지리산 지역의 산마을을 10여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구례 최고의 명당이라는 토지면 오미리에서 지리산 품속으로 차를 돌려 닿는 곳이 ‘문수리’인데, 저수지 위쪽의 상죽(웃대내)·중대(영암촌)·불당·밤재 등이 문수리에 속한 마을들이다. 노고단(1507m)∼왕시루봉∼형제봉을 삼각점으로 생성된 이 골짜기의 넓이는 약 2660㏊. 따라서 예부터 좁고 긴 계곡과 동·북·서로 막힌 산자락 때문에 사람이 숨어살기 적당했고, 그것이 또 문수리 일대를 ‘피의 전장’으로 전락시켰다. ●사람 숨기 적당한 지형이 주민에 고통 안겨 해방과 분단을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기간은 지리산 촌로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특히 명당 인근에 산다는 문수골 사람들에겐 목숨이 수십 개라도 모자랄 괴로운 시기였다. 지리산과 강 건너 백운산이 여순사건(10·19사건) 때 소위 빨치산과 경찰 토벌대의 피 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구만들을 거쳐 문수골로 숨어든 주민들은 경찰 추산 2000여명.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야 했던 문수골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이 희생된 것은 물론 동네도 급격히 쇠락해 간다. 구례군 토지면 주민들은 1948년부터 약 7년의 세월을 전쟁 속에서 보낸 셈이다. 다시 이념이 갈리고 전쟁이 난다면 그때 또 지리산은 반란군을 품어줄 은신처가 될 것인지, 그때도 이 산은 그들을 잡아내려는 토벌대의 총성과 그 총성 속에 쓰러진 수많은 젊은이의 피로 물이 들 것인지, 이제 문수골은 과거의 일 따위는 잊은 것처럼 한없이 고요하고 청명하다. 문수사로 이어지던 도로 우측으로 ‘영암촌’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기 전에 조금 더 직진하면 폐교된 문수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앞에서 내려다보는 영암촌의 모습이 제법 아름답다. 영암촌에서 태어나 여태껏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조삼남(87) 할머니는 “타지에선 데려갈 총각이 없어 고향인 이 마을에서 혼례를 치렀다.”고 너스레다.“한때는 35가구쯤 되었던 마을이 여순사건 때 많이 사라졌다.”며 지금도 한숨을 쏟아낸다.“14연대 반란군이 먼저 들어오고 그 후에 군인들이 들어왔지. 바위틈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붙였응께.”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서울과 부산을 거쳐 20년 전쯤 영암촌으로 들어온 황창옥(64)·신연남 동갑내기 부부의 어둑한 방안에는 외손자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딸만 넷을 둔 딸부잣집이다. 밤과 한봉, 고로쇠 수액 채취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사실 큰돈이 될 만큼은 아니다. “물 좋고 산도 좋지만 노인들은 불편해.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 하거든.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몇 배는 더 비싼께. 노인들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해 전만 해도 다랑이논에 농사도 지었고, 기계가 들어갈 수 없으니 소로 밭을 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땅을 경작할 사람도 없어 경작지라야 텃밭 정도가 고작이다. 작년 추석 즈음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내려와 이곳에서 생포되기도 했다. 도로 끝에 자리한 문수사에선 불자가 방생했다는 곰을 키울 정도니 이래저래 산이 깊긴 깊은 모양이다. ●봄엔 산수유·여름엔 피서인파로 북적 영암촌 곳곳에 멋지게 들어선 집들은 예상대로 외지인들의 별장이다. 번창하던 마을이 주민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바다가 되기도 하였으니, 이 마을에 다시 집이 들어서고 사람이 드나드는 건 차라리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봄이면 마을 곳곳에 핀 산수유 꽃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모이고, 여름엔 계곡을 찾아든 피서 인파로 북적이고, 가을엔 밤과 감을 수확하는 손길로 바쁘고, 겨울이 되어야 그나마 조금 한가해지는 작은 산골마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 노고단 너머로 짧아진 하루해가 황급히 저물고 있었다. ●교통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는 있지만 문수리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영암촌까지 택시비는 1만원 안쪽.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진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전주∼순천간 4차선 산업도로로 들어서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꽃과 잎이 평생 못만나는 ‘상사화’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꽃과 잎이 평생 못만나는 ‘상사화’

    위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대리에 도착해 무작정 위도상사화를 찾아서 마을 주변을 돌아다녔다. 상사화속(屬) 식물들이 사는 곳을 감안할 때, 마을 근처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같은 길을 몇 번 오간 끝에 무덤 옆 덤불 속에서 꽃을 갓 피운 그 식물과 첫 대면을 했다. 땅 위로 솟은 꽃줄기 끝에 꽃들이 달렸지만 잎은 이미 시들어 없어진 모습이 상사화의 습성과 똑같아서 위도상사화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한국 특산식물인 위도상사화를 보기 위해 전라북도 부안 앞바다의 위도를 찾았을 때의 일화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상사화들 가운데 유일하게 흰색 꽃이 피는 이 식물은 처음에는 붉노랑상사화의 한 변종으로 발표되었다가 다시 종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붉노랑상사화보다 보름쯤 일찍 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진노랑상사화가 있다.7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붉노랑상사화와는 꽃이 피는 시기 외에도 꽃 색깔과 꽃잎 모양이 서로 뚜렷하게 다르다. 진노랑상사화는 분포 지역이 매우 좁은 희귀식물로서 현재까지 밝혀진 자생지는 내장산, 불갑산, 선운산 등이 고작이다. 이 때문에 환경부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상사화속 식물 가운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상사화다.8월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에도 가끔 꽃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들여다 심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절 마당에 많이 심는다.‘잎과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해서 서로 그리워하는 꽃’이라는 뜻으로 상사화(相思花)라고 부르는데,‘이별초’라고도 한다. 늦가을 또는 이른 봄에 잎이 먼저 나와서 무성하게 자란 다음, 잎이 모두 스러진 후에 꽃줄기가 나와서 꽃이 피는 생태적 습성은 상사화속 모든 식물이 가진 특징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자생 상사화류 가운데 하나인 백양꽃이 피기 시작한다. 백양꽃은 꽤 오랫동안 우리나라 특산변종으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 연구에서 일본에 자라는 식물과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백양꽃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오직 백양사 일대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거제도, 경주 등지에서도 확인되었다. 상사화속 식물 가운데 가장 늦게 꽃이 피는 것은 석산이다.9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10월 초순까지도 볼 수 있다.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며, 중국 원산으로 주로 남부 지방에서 심는데 중부 지방에서도 겨울을 잘 난다. 숲 속의 깜깜한 그늘에서 새빨간 꽃이 피면 숲에 불이 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꽃이다. 남부 지방 어디에서나 군락으로 심어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석산으로 유명한 산은 역시 선운산이다. 추석을 전후해 이곳에 석산 꽃이 필 무렵이면 이 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선운산도립공원을 찾아온다. 고찰 선운사, 천연기념물 송악, 동백나무숲과 함께 선운산의 명물이 되어가고 있는 석산이지만 생물학자 눈으로 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 선운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자연성 높은 생태계를 간직한 산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숲 전체에 인공적으로 석산을 심어 기르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다. 석산은 워낙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숲 바닥에 사는 변산바람꽃 같은 다른 풀들을 압사시킬 수 있고, 이로 인해 숲 속의 생물다양성이 감소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2007 남북정상회담] ‘팔도 대장금 요리’ 북측에 대접

    노무현 대통령은 3일 밤 10시가 넘어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답례만찬을 주최했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불참했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인사들만 자리를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치른 2차례 정상회담에 대해 “시간이 아쉬울 만큼 유익하고 진솔한 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또 “김 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고 소개했는데, 이는 남측 수행원들과의 오찬에서 이미 언급했던 내용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과 관련해 “서로의 장점을 살려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거점을 단계적으로 넓혀 나간다면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경제공동체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이기도 하다.”며 “경제 협력이 평화를 다지고 평화에 대한 확신이 다시 경제 협력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 상임위원장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해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역사의 기회와 민족의 진로를 자주적으로 열어나가야 한다.”면서 “모든 장벽을 초월해 민족 대의를 앞에 놓고 북남이 뜻과 힘을 합쳐 나가자.”고 화답했다. 이어 “남측의 대통령이 육로로 분계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고, 대통령이 자기 차를 타고 오신 것도 처음이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것은 6·15공동선언 이후 또 하나의 경이적인 현실로서 온 겨레에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평양 체류 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이번 걸음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좋은 걸음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답례만찬 메뉴는 ‘팔도 대장금 요리’라는 주제로 남측 각 지방의 토속 식재료를 이용한 특색있는 향토음식으로 구성됐다. 영덕게살 죽순채, 봉평 메밀쌈, 흑임자죽, 완도전복과 단호박찜, 제주흑돼지 맥적과 누름적, 고창 풍천장어구이, 횡성·평창 너비아니 구이와 자연송이, 전주비빔밥과 토란국, 호박과편, 삼색매작과와 계절과일, 안동 가을 감국차 등이 상에 올랐다. 건배주와 식사주로는 부산의 천년약속, 경기 화성의 백세주, 전북 고창의 선운산 명산품 복분자주가 올라갔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낮 평양 옥류관으로 남측 수행원과 기자단 등 200여명 전원을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메뉴는 평양냉면이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오전에 (김 위원장과)숨김없이 진솔하게 얘기를 나눴다. 분명하게 확고한 평화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를 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합의했다. 논쟁이 따로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솔직하게 말하면 ‘벽’을 느끼기도 했다.”며 “남측은 신뢰하고 있는 사안에 북은 의심을 가지고 있는 불신의 벽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오전에 대화를 나눴지만 세세한 얘기는 오후에 하겠다.”면서 “차비가 많이 들었다.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인사말을 맺었다.강국진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9) 정묘호란 이모저모

    [병자호란 다시 읽기] (39) 정묘호란 이모저모

    ‘인조실록’과 장유(張維)의 ‘계곡만필(谿谷漫筆)’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정묘호란 당시 강화도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불과 100리 밖까지 적의 대병이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 신료들은 대개 화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척화(斥和)파들도 큰소리를 쳤지만 속으로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론이 무서워 자기 입으로 화의를 말하지 못했는데 유독 최명길(崔鳴吉)만이 주저하지 않고 화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화의 후에도 전투가 벌어지다 1627년 3월3일, 화의를 맺은 사실을 하늘에 고하고 그것을 준수겠다는 맹세 의식을 치름으로써 정묘호란은 일단 끝났다. 후금군은 철수 길에 올랐다. 어렵사리 전쟁을 끝내게 되었지만 인조와 신료들은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오랑캐’에게 세폐를 제공하고 화의를 맺은 것도 그랬지만 적이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변변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화의가 성립된 직후 비변사 신료들은 인조에게 ‘적이 철수할 때 이상한 행동을 하면 지방 지휘관들에게 기회를 보아 공격하라.’고 지시할 것을 요청했다. 후금군은 예상대로 곱게 물러가지 않았다. 그들은 철수하는 길에 각지에서 약탈을 자행했다.3월13일에 날아든 보고에 따르면 후금군의 약탈 때문에 평산, 서흥, 봉산, 해주, 문화 등 황해도의 여러 읍들이 텅 비었다고 했다.3월9일 조정은 선전관을 후금군 진영에 보내 약탈을 중지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강홍립에게도 서신을 보내 후금군 지휘관들을 설득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서북 지방의 조선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철수로 주변에 매복했다가 후금군을 습격하여 병사들을 살해하거나 마필(馬匹) 등을 빼앗는 소규모 유격전을 도처에서 벌였다. 평안도 순안에서는 삭주부사 이명길(李明吉), 평양판관 권이길(權 吉 ), 좌척후장 정지한(鄭之罕) 등이 이끄는 조선군과 후금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운산에서는 우후(虞侯) 이직(李 )이 경상도 포수 등 3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후금군 1000명을 야습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후금군에 연행되고 있던 포로들이 탈출하고 가축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조선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후금군 지휘부 역시 조선 조정에 서신을 보내 공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귀국의 기마병들이 곳곳에서 노략질과 살육을 일삼기 때문에 촌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수하려고 일어선 것”이라고 응수했다.3월17일 총사령관 아민이 다시 서신을 보내왔다. 그는 ‘서울을 점령하여 팔도를 다 차지할 수 있었고, 조공을 요구할 수도 있었는데 조선을 위해 자제했다.’며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청천강 이북 지역을 반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조선과 후금의 화의는 체결 직후부터 이렇게 삐걱거렸다. 하지만 평안도 지역의 전투는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의병들이 있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의병 정묘호란 시기에도 의병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의병들이 일어난 지역과 활동의 성격이 임진왜란 당시와는 사뭇 달랐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조선 팔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정묘호란 당시 의병 활동의 중심지는 주로 양호(兩湖) 지방과 평안도였다. 인조는 정묘호란이 일어난 직후인 1627년 1월19일, 정경세(鄭經世)와 장현광(張顯光)을 각각 경상좌도 호소사(號召使)와 경상우도 호소사로, 전 호군(護軍) 김장생(金長生)을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로 임명하여 그들에게 의병을 모집하여 근왕하라고 지시했다. 김장생(1548∼1631)은 당시 여든 살의 고령으로 인조정권의 ‘정신적 지주’였다. 서인들 학통(學統)의 정점에 있던 이이(李珥)의 수제자인 데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반정 주체들에게 전체적인 시정의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 김장생이었다. 그는 1월23일 향리 연산에 의병 본부를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일으킬 것을 호소했다. 그의 호소에 호응하여 연산의 이복길(李復吉), 니성의 윤전(尹 ), 회덕의 송국택(宋國澤), 전주의 송흥주(宋興周), 보성의 안방준(安邦俊), 광주의 고종후(高從厚) 등이 병력을 이끌고 모여들었다. 김장생은 호남의 의병들을 전주로 모이도록 한 뒤, 자신도 호서의 의병들을 이끌고 전주로 내려갔다. 당시 전주는 분조(分朝)를 이끌고 남하했던 소현 세자 일행이 머물 곳이기 때문이었다. 김장생 휘하의 의병은 이후 소현 세자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 후금군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분조의 신료들은 소현 세자를 모시고 영남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분조를 옮긴다는 소식에 의병 진영은 동요했다. 그러자 김장생은 분조 신료 가운데 최고위 인물인 이원익을 만나 이동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전주를 굳게 지키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록 후금군과 직접 전투를 치르지는 못했지만 김장생의 의병 활동은 인조정권의 체면을 살려 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경상도에서는 정묘호란 시기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그것은 인조정권을 바라보는 지역 민심과 관련이 있었다. 경상우도 지역이 광해군대 집권세력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것을 고려하면,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린 인조정권을 위해 지역의 사대부들이 궐기하는 것은 정서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김장생이 궐기를 호소했던 충청도 지역의 민심도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김장생의 회고에 따르면, 청주 등지에서는 익명서 등을 통해 사족들에게 “의병 활동에 호응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을 정도였다. ●평안도의 의병 조정으로부터 종용을 받은 양호 지역 의병과는 달리 정묘호란 시기 평안도 의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적의 침입로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데다, 조정이 사실상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포기해 버린 상황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정묘호란 시기 평안도 지역 의병 활동의 중심에 정봉수(鄭鳳壽·1585∼1668)가 있었다. 그는 철산(鐵山) 출신으로 본래 사족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용천 용골산성(龍骨山城) 전투에서의 빛나는 활약 때문이다. 후금군이 의주를 함락시킨 직후 용천부사였던 이희건(李希建)은 휘하 병력 500명과 용천 백성들을 용골산성으로 이주시켜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그가 후금군의 이동을 탐지하여 유격전을 꾀하려 나갔다가 전사되자 그의 부하 장사준(張士俊)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후금군에게 투항해 버렸다. 후금군 지휘부는 그를 용천부사에 임명했고, 그는 용골산성을 나가 백성들을 선동하여 후금군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했다. 바로 그 무렵 정봉수가 용골산성으로 들어왔다. 그는 남은 백성들을 효유하는 한편 인근의 용천, 의주, 철산 출신 피난민들을 불러들여 약 4000명의 병력을 모았다.1월16일 장사준이 후금군 수백 명을 이끌고 와서 항복하라고 협박했다. 정봉수는 성 밖에 미리 매복시켜 둔 의병들을 이끌고 그들을 공격하여 장사준을 참수했다. 장사준을 처단하여 사기가 오른 의병들은 곧이어 벌어진 전투에서도 후금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화의가 이루어진 뒤인 3월17일, 후금군의 대병력이 다시 공격해 왔다. 아침 7시경부터 10시간 이상에 걸쳐 모두 5차례의 큰 전투가 벌어졌다. 정봉수 휘하의 의병들은 활과 조총, 돌 등으로 일제히 공격하여 적 기병 수백 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물러났던 후금군은 4월13일에도 청북 지역의 병력을 끌어 모아 공격을 퍼부었으나 끝내 용골산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의주로 철수했다. 용골산성 싸움은 정묘호란 시기 조선군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조정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고립된 산성에서 처절한 사투 끝에 이뤄낸 승리라는 점에서 더욱 값진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 만개하니…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 만개하니…

    한 줄기에서 태어났지만, 잎은 꽃을 못 보고, 꽃 또한 잎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움에 절여져 핏빛처럼 붉은 꽃, 바로 ‘꽃무릇’입니다. 한 수도승을 향한 사랑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느 여인의 한이 맺혀진 꽃이란 전설이 전해 오지요. 그래선가 봅니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군요. 첫번째 찾았을 때는 꽃대조차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화사한 자태 보겠다고 서울에서 전북 고창으로, 전남 영광으로 그 먼거리를 달려간 방문객을 어찌나 야멸차게 거부하던지요. 공연히 마음만 달떴습니다. 한 번 돌아선 여인의 마음이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게지요. 글 사진 고창·영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꽃무릇 여행 1번지 여름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이맘때면 전북 고창의 선운사 골짜기에는 꽃잔치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가을을 여는 꽃무릇의 향연이다. 대체로 백로무렵 피기 시작해 9월 중순경 절정을 이루지만, 유난히 늦여름 비가 많았던 올해는 개화시기가 늦어져 한가위 무렵부터 절정을 이루기 시작했다.10월 초까지는 아리따운 꽃무릇의 자태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게 선운사 관광안내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두번째 찾은 선운사 들머리에 꽃무릇이 만개해 있다. 늘씬한 미녀의 각선미를 연상케 하는 연초록 꽃대 위로 왕관처럼 붉은 꽃술이 펼쳐져 있는 모습. 반가운 마음 한편으로 도로 양옆의 철제 가드레일 밑에 고개를 꺾고 있는 모양새에서 애처로움도 느껴진다. 아름답고도 꾀까다로운 이 꽃은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은밀한 환경에서 피어 있어야 할 터. 꽃무릇 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식재했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제 있을 곳이 아닌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니, 노류장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관광객들의 눈수발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처량하다. 꽃무릇을 흔히 상사화(想思花)라고도 부른다.9∼10월쯤 잎이 없는 꽃대에서 꽃이 나오고, 꽃과 꽃대가 모두 사라진 11월쯤 땅바닥에서 개난초 비슷하게 생긴 잎이 펴 겨울을 난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상사화로 불리게 된 연유. 하지만 개화시기나 꽃잎의 색깔 등에서 상사화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꽃무릇은 유독 절집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쓰임새가 요긴하기 때문이다.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함유돼 있어서 탱화를 그릴 때나 단청을 할 때 찧어서 바르면 좀처럼 좀이 슬거나 색이 바래지 않는다고 한다. 독기 품은 여인네처럼 비늘줄기에 품은 유독물질을 제거한 다음 얻은 녹말로 한지를 붙이면, 강력한 살균력 때문에 역시 좀이 스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선운사 들머리에서 절집 담벼락까지 약 200m 구간은 평지형 계곡의 꽃무릇 군락이 장관. 계곡물에 투영된 나무와 꽃무릇의 붉은 색감이 가을 분위기를 돋운다. 선운사 맞은편 동운암으로 향하는 산책로 주변 산자락은 마치 불이 붙은 듯하다. 동운암 못 미쳐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뜻밖에 넓은 차밭과 만날 수 있다. 꽃무릇은 물론 물봉선, 들국화 등 들꽃들이 차밭 고랑 사이에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솔제 휴게소 왼쪽길과 진흥굴 지나 소리재와 포갠바위로 향하는 계곡 등의 꽃무릇 무리도 볼 만하다. 길이 넓고 평탄해 가족과 함께하는 트레킹 길로 마춤하다. 선운사 관광안내소 063)560-2712. #불갑사와 용천사도 가볼 만 전남 영광군의 불갑사도 선운사 못지않은 꽃무릇 군락지. 여느 절집과 달리 부처의 옆모습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의 대웅전이 유명한 곳이다. 최고의 감상 포인트는 대웅전 뒤편 저수지 주변. 조석으로 사진작가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저수지와 잇닿은 산비탈을 가득 채운 꽃무릇이 장관을 이룬다. 사찰 토담벽이나 저수지의 잔잔한 물, 혹은 무게감있는 나무들을 배경삼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저수지 주변의 호젓한 오솔길은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그만이다. 함평 용천사는 불갑사에서 차로 15분 거리.100여 종의 야생화와 꽃무릇이 어우러진 꽃무릇공원이 조성돼 있다. 용천사를 휘돌아간 꽃무릇 군락이 이 일대를 별유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사찰 위 푸른 왕대나무 밭 아래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풍경이 압권. 어렵사리 피어나 잠깐만에 지고 마는 꽃무릇이 남도의 가을을 붉게 붉게 물들여 가고 있다. 영광군청 문화관광과 (061)350-5752, 함평군청 문화관광과 320-3364. #가는 길 선운사:서해안고속도로→선운산 나들목→좌회전→22번국도 선운사 방향. 불갑사:서해안고속도로→영광 나들목, 호남고속도로→정읍 나들목→고창→영광→불갑사. 용천사:서해안고속도로 영광나들목→23번 국도 함평방향→백운리 삼거리→좌회전→838번 지방도→5㎞→용천사. #이곳도 가보세요 ▲학원농장-초봄에는 청보리밭이었던 들판이 가을이면 메밀꽃밭으로 변한다. 규모면에서 국내 으뜸.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www.borinara.co.kr,(063)564-9897. ▲광백사 천일염전-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와 염산면 일대에 광활하게 펼쳐진 천일염전지대. 전국의 천일염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에 이어 두 번째 규모.
  • 남해와 만나는 또다른 방법-망운산(望雲山)

    남해와 만나는 또다른 방법-망운산(望雲山)

    ‘보물섬’ 경남 남해의 산들은 어디를 올라도 파란 남해와 만날 수 있다. 다랑논과 멀리 앵강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설흘산, 다도해의 일출이 더없이 아름다운 금산 등이 그 중 손꼽히는 명산이다. 이제 남해의 명산 목록에 망운산을 추가해야 할 듯하다. 깨끗한 풍모와 드넓은 기상으로 다도해를 보듬으며 우뚝 선 망운산은 최근에 와서야 외지인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발 786m로 남해에선 최고 높이의 산이다. 금산, 설흘산 등이 남해를 찾는 외지 손님들의 산이라면, 망운산은 남해군민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산이다.360도 어느 방향에서든 푸른 다도해와 만날 수 있는 말 그대로 풍경의 ‘보물산’이다. 글 사진 남해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산중에 핀 연꽃 ‘화방사´ 망운산 오르는 길은 남해읍 공설운동장 인근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서상면 예계마을 코스, 고현면 대곡마을 화방사 코스 등 다섯개 가까이 된다. 이번 산행은 망운산 중턱의 절집 화방사(花芳寺)를 들머리 삼았다. 그리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 수월할 뿐 아니라, 산행 내내 다도해는 물론, 닥나무 군락지나 망운암 등 많은 볼거리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소요시간은 왕복 3시간 남짓. 절 아래 약수터에서 맑은 물로 목을 축인 다음, 돌다리와 몇 개의 나무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화방사 일주문과 만난다. 청아한 독경소리가 들려오는 돌계단 저편에 화방사가 연꽃 같은 자태로 앉아 있다. 호구산 용문사, 금산 보리암 등과 함께 남해 3대 사찰이라 일컬어지는 곳.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망운산 남쪽에 연죽사를 건립한 것이 화방사의 시작이라 전해진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된 것을 인조 15년(1637) 서산대사의 제자 계원과 영철 두 선사가 현 위치에 ‘연화형국’이란 뜻의 화방사로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뭍의 대가람과 비교할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대웅전 좌우에 시립한 응진전과 명부전, 강당 역할을 담당하는 채진루 등이 짜임새있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단아한 자태의 절집이 왜 진작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리지 않았을까. 큰 사람 밑에서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어도 큰 나무 아래서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없다던가. 남해의 명찰 금산 보리암의 명성에 가려진 탓일 게다. 깊은 차향 우러나는 다원과 반야교를 차례로 지나면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숲길이 이어진다. 깊은 정적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계곡물 소리가 반갑다. 망운암 못미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닥나무 자생지는 잊지 말고 들러야 할 곳. 철쭉보호지역 아래 약수터에서 길이 양갈래로 나뉘어진다. 약수터 뒤로 난 길보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걷는 편이 다소 수월하다. #일망무제가 동행하는 산길 정상을 향해 임도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바다 건너 멀리 하동 화력발전소와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어떨까. 임도를 버리고 동네 앞산처럼 야트막한 산자락을 타고 올랐다. 평탄한 정상 능선길을 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절경이 펼쳐졌다. 일망무제. 산의 기운을 빨아들인 구름이 하늘로 솟구치는 가운데, 우람한 내륙의 산봉우리들은 바다를 향해 줄달음치고, 점점이 떠 있는 섬들 너머로 사천과 고성, 광양, 여수 등 바다에 기댄 도시들의 자태가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정상표지석에서 KBS송신소 아랫길로 300m쯤 더 가면 망운산 전망대 겸 산불감시초소다. 억새가 거센 바람에 몸을 누이는 전망대 앞 공터에서 하늘 향해 두 팔 뻗고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시라.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향 진교나들목에서 내려 남해대교를 지나야 한다. 국도 19호선을 타고 남해읍으로 향하다 고현면 이어마을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3㎞ 남짓 더 가면 화방사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5분 정도 더 가면 화방사 주차장. 다소 돌아가더라도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사천에서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 국도 3호선을 따라 달리다 창선교와 1024번 도로, 이동면 등을 차례로 지나는 길을 고려하시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해공용터미널(055-864-7101)에서 대곡행 버스(1000원)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화방사로 가기 위해서는 대곡에서 하차한다. #이곳도 가보세요 승용차로 망운산을 찾았다면 해안관광도로를 따라 사촌 해수욕장과 가천 다랭이 마을, 상주 해수욕장을 거쳐 창선·삼천포대교까지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좋다. 미조 상록수림, 물건방조어부림, 원시어업 죽방렴 등 많은 볼거리가 동행하는 코스다. 상동면 지족1리 죽방렴 옆에서는 바다낚시가 잘 된다. 어촌계에서 만든 좌대나 어선 위에서 6시간 낚시를 즐기는데 미끼 포함 2만4000원.010-4842-5511.
  • 고창 수산물축제 오늘 개막

    고창 수산물축제 오늘 개막

    “원시 갯벌과 수산물의 보고인 고창에서 전통 해양문화를 만끽하세요.”‘고창 수산물축제’가 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도립공원과 어촌체험마을에서 펼쳐진다. 지난 1996년 전국 최초로 수산물을 테마로 한 축제를 개최한 지 어느새 12회째를 맞았다. 초기에는 지역 수산물을 홍보하기 위해 주력했으나 최근에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배울거리를 연계해 관광산업발전과 특산물판매촉진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후 접근성이 좋아져 외지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먹거리, 볼거리 다양한 축제 고창군은 예로부터 ‘의’와 ‘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2000년 고창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뒤에는 ‘고인돌의 고장’으로 불린다. 특히 74㎞에 이르는 긴 해안선과 고창만의 넓은 갯벌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해역이어서 ‘원시 해안이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고창군이 수산물축제를 개최하게 된 것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의 맛과 영향이 타지산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주꾸미, 풍천장어, 참바지락, 전어, 김, 새우 등은 풍부한 영양염류의 유입과 밀물, 썰물 작용으로 생긴 깨끗한 갯벌에서 자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올 축제에서는 풍어기원 길놀이, 풍천장어 방류, 갯벌 심포지엄, 수산물 시식회, 갯벌건강달리기, 풍천장어잡기 체험, 바지락까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양식 장어를 일정기간 갯벌에 방류해 자연산처럼 기른 ‘풍천장어’는 이번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창의 특산물이다. 애초 풍천장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수역에서 잡은 장어를 이르는 말이다. 고창군은 갯벌에서 기른 장어를 풍천장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했다. 이번 축제기간 매일 관광객과 함께 하는 풍천장어 시식회가 열린다. 풍천장어와 또 하나의 명산물인 ‘복분자주’를 곁들여 먹는 영양식은 자양강장에 최고로 친다. 상설 운영되는 특산품 장터에서는 ‘집나간 며느리도 냄새 맡고 돌아온다.’는 구수한 전어구이와 타우린이 풍부한 참바지락, 바다의 귀족인 왕새우를 시중보다 훨씬 싼 값에 즐길 수 있다. 담백한 맛의 동죽,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조한 죽염과 김도 고창의 특산품이다. 향토음식 발굴 경진대회와 시식회도 이 지역 특유의 먹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난타공연, 사물놀이와 얼쑤 우리가락 공연, 청소년 어울마당, 산사음악회, 농악판굿, 국악한마당 등 문화행사도 풍성하다. ●웰빙 갯벌체험과의 만남 갯벌생태체험은 소중한 기억을 만들 수 있는 고귀한 자연의 선물이다. 갯냄새 물씬 나는 청정 해안에서 고창 수산물축제만의 향취에 젖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심원면 하전마을과 만돌마을에서는 뭍사람들은 접해 보기 어려운 다양한 어촌체험을 해볼 수 있다. 하전마을은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 가운데 하나다. 청정 해안에서 경운기를 이용한 갯벌택시타기, 바지락캐기, 조개구이 등 다양한 어촌체험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 준다. 가족들과 함께 잡은 바지락과 풍천장어는 현장에서 즉시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집에 가져갈 수 있다. 그물을 이용한 전통 어로체험, 원시섬 탐사, 천일염 생산 체험, 머드 체험, 생태학습 등도 고창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체험거리다. ●가 볼 만한 곳 많아 고창은 수산물축제를 구경하고 주변에 들를 만한 곳도 많아 관광객들의 호응이 좋은 지역이다. 봄이면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공음면 학산농장에는 이 달들어 메밀꽃이 만개했다.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한 메밀꽃밭 30만평이 아련하게 펼쳐져 전국에서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몰려들고 있다.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선운산은 사계가 모두 아름다운 명산이다. 축제기간 선운산 도립공원 내 선운사 뒷산에 오르면 상사화로 불리는 ‘꽃무릇’이 만개한 장관을 볼 수 있다. 붉게 타오르는 꽃무릇은 주로 남부지방 산사 근처 숲에서 자생하는 꽃이다.‘수도중인 스님을 사모한 여인이 그리움만 키우다 꽃이 됐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감리, 봉덕리 등에 걸쳐 있는 2000여개의 고인돌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고창군의 자랑거리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 외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부안면 미당 시문학관과 고수면 문수사 역시 고창에 들르면 한번쯤 둘러보고 가는 명소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Seoul In] 개운산 운동장서 ‘괴물’ 무료상영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17일 오후 8시 개운산 운동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무료로 상영한다. 괴물은 송강호, 배두나, 변희봉이 출연한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영화다.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상영 시간은 119분. 서울시의 ‘좋은 영화 감상회’ 일환으로 진행된다. 문화체육과 920-3048.
  • [종교플러스] 안운산 종도사 ‘천지의 도, 춘생추살’ 출간

    민족종교 증산도의 최고 지도자인 안운산 종도사가 ‘천지(天地)의 도(道), 춘생추살(春生秋殺)’(대원출판)을 펴냈다. 우주의 변화 주기에 얽힌 음양변화의 법칙을 ‘생과 살’‘춘생과 추살’로 압축하고 우주의 가을철에 해당하는 ‘추살’의 시점에서 인류가 살아가야 할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신명의 역사’로 풀이되는 영혼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역사의 동력으로 승화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여 전형적 산악 지역인 경남 함양의 삼봉산(1186.7m)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통한다. 함양읍과 마천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솟은 삼봉산과 그 아래 백운산(902.7m)∼금대산(847m) 능선은 엄천강 물줄기에 의해 지리산과 나뉘었지만, 삼봉산 기운은 서쪽 투구봉(1068m)에서 팔령을 지나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를 가르며 연비산(842.8m)∼안산(641m)∼아홉새드리를 거쳐 천왕봉을 출발한 백두대간과 맞닿는다. 이 혈맥이 육십령∼덕유산으로 이어지니, 남녘의 큰 산줄기 지리산과 덕유산의 양대 기운을 모두 품은 산이라 할 수 있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삼봉산은 급경사가 많아 대체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반면 남원 산내 쪽으로 신라 고찰 실상사와 백장사, 마천 쪽으로는 금대암 등 좋은 절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실상사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을 비롯해 석등, 철제여래좌상 등의 보물이 여러 점 있고, 백장사에는 국보 제10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금대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수령 500년의 전나무가 자라고 있는 등 문화재와 볼거리도 다양하다. 삼봉산 산행 들머리는 크게 네 군데로 나뉜다.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상의 팔령에서 투구봉으로 오르는 길이 약 4.75㎞, 상죽림을 거치는 길은 2.6㎞, 동쪽 오도재에서는 3.9㎞쯤 된다. 서쪽의 남원 산내면 백장사에서도 오를 수 있다. 네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정상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리산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백운산, 금대산을 거쳐 내려오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삼봉산∼백운산 구간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지만 금대산과 가까워지면서 자주 시야가 트이며 겹겹이 두른 지리산 봉우리들이 잘 보인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의 등구재는 산내와 마천, 즉 전남과 경남을 잇는 고갯마루다.‘등구’라는 지명은 ‘거북이 기어 올라가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고 곶감이 달기로 유명한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바로 등구 마천이다. 오도재를 출발해 삼봉산, 백운산, 금대산을 차례로 거쳐 금대암으로 내려서는 데 약 5시간이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들이 손짓하듯 서 있는 오도재 임도. 거기서 10분쯤 올라가면 잠시 쉬어가기 좋은 정자 관음정이 나오고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삼봉산 정상에 닿게 된다. 지리산 전망대답게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엔 하봉∼웅석봉을 주축으로 한 동부능선이, 서쪽으론 반야봉∼만복대로 이어진 서북릉이 주르륵 펼쳐진다. 등구재 안부를 통과하면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되고, 무성한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면 곧 백운산. 삼봉산에서 30분 남짓 걸린다. 반쪽짜리 무덤 때문에 백운산 정상 표지석이 구석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 수풀이 무성할 땐 잘 보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석∼무덤과 일직선 나무 사이에 지리산 천왕봉이 가깝다. 백운산에서 금대산도 지척이다. 바위가 많은 금대산에 다가설수록 등산로는 삼봉산 구간과 달리 시야가 탁 트이며 조망이 시원하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서면 마천 일대와 걸어온 오도재∼삼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외로운 고사목 하나가 바위틈에 뿌리를 두고 앙상한 뼈처럼 꽂힌 곳도 있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위에 올라서니 멀리서 보던 산불감시초소 건물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산이다. 하산은 금대암 쪽으로 하며 정상에서 금대암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금대암 사찰 뜰에는 눈앞의 지리산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게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글 정수정 사진 황소영(월간 MOUNTAIN 기자)
  • [07일 TV 하이라이트]

    ●사랑해도 괜찮아(KBS2 오전 9시) 석훈과 식사를 하다 마루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은 지인은 찾아 나선다. 마루치가 없어졌단 사실에 지인은 정신을 못 차린다. 모든 식구가 마루치를 찾아 헤메는데 석훈이 마루치를 놀이터에서 발견한다. 철웅과 지인·마루치를 보는 석훈은 더 이상 다가설 수 없을 것 같다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1967년 런던에서 발매된 비틀스의 8번째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는 현대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앨범이었다.20세기 최고의 음반이란 평가를 받았던 앨범은 음악계에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이 앨범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5주 동안 1위를 지키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다큐 人(EBS 오후 9시20분) 가수들의 숨은 장점을 찾아 진짜 목소리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사람이 ‘보컬 트레이너’다.‘귀로’와 ‘소중한 너’를 부른 가수라는 이력보다, 이제는 보컬 트레이너로 더 유명해진 박선주씨. 가수지망생에게 목소리의 매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는 목소리 마술사 박선주씨를 만나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50분) 충남 대천 앞바다에서 50분 동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호도에 사는 싸움꾼 물기대장 강운산.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평화로운 섬마을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고치는 운산이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는데…. 과연 물기대장 운산이가 의젓한 사내대장부로 거듭날 수 있을까.   ●커피프린스 1호점(MBC 오후 9시55분) 맘 아프고 화가 난 한결은 은찬에게 당장 나가라고 말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홍사장은 뭐가 힘들어 이 난리를 피우느냐며 여자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한다. 한성은 한결에게 전화해 은찬과 첫 만남부터 지나온 날들을 얘기한다. 맘이 복잡한 한결은 구구절절한 얘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되느냐고 한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지난해 10월, 꿈 많은 22세의 의대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괴롭혀 온 아토피 피부염이 원인이었다. 가벼운 피부 질환으로 지나치기에 아토피는 몸과 마음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남긴다. 원인과 치료방법조차 명확하지 않은 현대판 난치병 아토피를 다스리는 비법을 공개한다.
  • [기고] 아이 키우기 쉬운 좋은 사회를 만들자/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고령화 사회는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노령 인구의 비율이 전체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노령인구가 7%를 넘어섰고,2020년쯤에는 노령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노령화는 인구 증가율을 저하시켜 국가 전체인구의 감소,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노인부양 등 사회복지 비용의 급증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각 자치단체에서 노인복지문제는 물론 출산 장려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서울시의 신용카드 기능을 추가한 다둥이 행복카드, 중구의 다자녀 가구 무료건강검진, 성동구의 셋째 이상 20만원 지원 등 출산 장려를 위한 묘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성북구도 예외는 아니다. 구는 8월1일부터 서울에서 처음으로 18세 미만 3자녀 가구에 구에서 운영하는 성북레포츠타운, 개운산스포츠센터, 구민체육관, 정릉북악체육시설 등 공공시설 이용료 50%를,65세 이상 어르신에게는 20%를 각각 감면해 준다. 성북구는 지난 3월 다자녀 가구(18세 미만 3자녀 이상 가구) 지원을 위한 주택분 재산세 50% 감면 방안도 추진했다. 이 세제 감면 방안은 현재 지방세법을 관장하고 있는 행정자치부에서 장기적 검토 과제로 연구 중이다. 출산 장려는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제일의 과제로 내놓을 정도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풀어나가기 쉽지 않은 과제다. 사교육비, 높은 생활욕구, 각종 세금 등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맞벌이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하지만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 해서 저출산 현상이 계속 심화된다면 부양인구의 감소로 인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해결책 없이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는가. 근본적으로 사회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 아이 낳기를 주저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출산 장려 분위기를 조성하고, 출산 가정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성북구는 이 점을 고려해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혜택 등 지역사회의 출산 장려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시책을 펼치고 있다. 성북구는 다자녀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다자녀 가정을 우대하고 동 통폐합으로 남는 시설을 보육시설로 활용하는 등 지역사회 차원에서 다양한 제도와 시설을 마련해 젊은 부부들의 출산 및 육아문제를 지원하고자 한다. 내년에는 출산장려금제도도 도입한다. 출산과 보육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은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급속한 고령화 사회는 막을 수 없는 대세이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 인프라 구축에 주안점을 둘 생각이다. 노령 인구에 대한 건강관리 지원프로그램 개발 보급, 여가 활용과 자기계발을 위해 기존의 경로당 개념에서 벗어난 실버복지센터의 연차적 확충, 각종 할인 혜택제 도입, 일자리 마련 등 삶의 질을 높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지역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최종 목표는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노인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막연한 꿈처럼 보이지만 하나씩 현실을 개선하고 계획을 실천해 나가다 보면 우리 생활의 일부처럼 당연한 현실이 된다. 성북구는 앞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제도 마련과 복지시설 확충으로 출산 장려 분위기를 조성해 저출산, 고령화 사회 대책에 앞장설 것이다.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 해외명품 몰려온다

    해외명품 몰려온다

    국내 명품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의류·시계·자동차 등 해외 호화 브랜드들이 앞다퉈 들어오고 있다. 1000만원대 정장,3억원대 시계,5억원대 자동차 등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만져보기 힘든 명품들이다. 이런 물건들이 지금까지 국내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입업자를 통해 일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수입상을 통해 제한적으로 파는 게 아니라 본사 차원에서 전문딜러와 계약해 직접 한국내 매장을 차리고 있다. ●한국, 아시아 테스트마켓으로 부상 그만큼 한국시장에서의 전망을 밝게 보는 것이다. 중국 등지로 진출하기 위한 아시아의 테스트마켓으로 한국을 활용하는 목적도 있다. 이탈리아 최고급 정장브랜드 ‘키톤´은 다음달 코너스톤씨아이지를 통해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 아케이드에 입점한다. 코너스톤씨아이지는 우선 여성복으로 시작해 한달 뒤쯤 백화점 명품관에 남성복 매장도 낼 계획이다.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키톤 한 벌은 남성복은 800만∼1200만원대, 여성복은 400만∼1200만원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통하는 ‘블랑팡´과 ‘오드마 피게´는 올가을 롯데 에비뉴엘에 입점한다. 블랑팡 매장 공사는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어갔다. 이로써 기존에 들어와 있는 ‘바셰론 콘스탄틴´,‘파텍 필립´,‘브레게´와 더불어 국내에 세계 5대 명품시계가 모두 직접 들어오는 셈이다. 블랑팡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가 브랜드로 고급형의 경우 100만달러(약 9억 3000만원)에 이른다. 오드마 피게도 30만달러짜리까지 있다. ●‘페라리´ 등 최고급 수입차 진출 잇따라 명품 자동차들의 직접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람보르기니´가 올가을 참존임포트를 통해 정식으로 수입된다. 참존임포트는 영국의 최고급 세단 ‘벤틀리´의 딜러로 3억원대의 가야르도 쿠페, 가야르도 스파이더, 가야르도 슈퍼레제라 등과 4억원대의 무르시엘라고 등 5개 모델을 들여올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페라리´도 국내 운산그룹을 통해 하반기에 612스카글리에티,599GTB피오라노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로터스 역시 LK모터스를 통해 엘리제, 엑시즈S, 유로파S 등을 판매한다. 의류에서도 ‘중가명품´인 ‘갭´ ‘바나나리퍼블릭´ ‘55DSL´ ‘루츠캐나다´ ‘DKNY진´ ‘자라´ 등이 국내 백화점 등에 정식으로 입점한다. 올 3월 명품가방 ‘투미(TUMI)´를 처음으로 신세계 본점에 입점시킨 본사 로렌스 프랭클린 대표는 26일 “한국은 떠오르는 글로벌 명품시장 중 하나로 소비자들의 수준이 세계 일류급”이라고 한국시장 진출배경을 설명했다. 투미는 앞으로 5년 내에 백화점 매장 15개, 면세점 8개 등을 열 계획이다. ●백화점 명품매출 작년보다 15.3% 늘어 국내 명품소비가 늘고 있는 추세는 최근 유통업체들의 매출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달 전체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0.1%가 줄었지만 명품 매출은 오히려 15.3%가 늘었다. 특히 명품 매출의 전년동월 대비 증가율은 지난해 11월 이후 줄곧 두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Ⅲ

    광해군이 명의 파병 요구를 거부하려 했던 것은, 폐모논의와 궁궐 건설 문제 등 내정(內政)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명의 압력과 내부의 채근에 밀려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1619년(광해군 11) 2월,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들어갔다.1만 5000 가까운 병력이었다. 광해군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했던 심하 전역(深河戰役)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사에서는 이 전역을 보통 사르후(薩爾滸) 전투라고 부른다. 명군과 후금군 주력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戰場)이 사르후 지역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투에서 명군은 거의 궤멸될 정도로 참패했고 두 나라의 향후 운명도 확연히 갈렸다. 사르후 전투는 명청교체(明淸交替)의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광해군, 강홍립을 발탁하다 광해군은 심하 전역의 향방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명군이 동북(東北)의 오지인 허투알라(赫圖阿拉)까지 장거리 원정에 나서는 것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실제로 명군 가운데는 내륙 지역인 쓰촨(四川)에서 출발하여 산하이관(山海關)을 통과하고, 랴오양(遼陽)과 선양(瀋陽)을 거쳐 허투알라에 이르는 수천㎞의 거리를 행군해야 하는 병력도 있었다. 장거리 행군에 지친 명군이, 가만히 앉아 대비할 수 있는 후금군을 상대하기란 버거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은 또한 명군 지휘부가 조선군을 몹시 닦달할 것이란 사실도 예측했다. 그가 조선 원정군의 도원수(都元帥)로 문관 출신의 강홍립(姜弘立)을 임명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홍립은 어전통사(御前通事:왕의 직속 통역관)를 역임할 정도로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명의 강요에 밀려 ‘내키지 않는’ 출병을 단행한 이상,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적어도 명군 지휘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작전권을 틀어쥔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광해군은, 출정하기 직전 강홍립에게 지침을 주었다.‘그대는 조선군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있으니 명군 지휘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말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패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이 평안도에 머물 때부터 닦달을 시작했다. 총사령관이었던 경략(經略) 양호(楊鎬)는 강홍립에게 조선군 화포수(火砲手)부터 속히 도강(渡江)시키라고 요구했다. 조선군 부대 가운데 명군 지휘부가 가장 크게 탐냈던 병력이 바로 화기수였기 때문이다. 강홍립은 양호의 명령대로 화기수 5000명을 미리 들여보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명군의 우익남로군(右翼南路軍) 사령관인 유정(劉綎)의 휘하에 배속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광해군은 강홍립을 질책했다. 명군 지휘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말라는 자신의 지침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광해군의 질책은 당연했다.3월4일, 유정 휘하의 명군이 후금군으로부터 기습을 받아 궤멸될 때 배속된 조선군도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행군, 또 행군 평안도 창성(昌城)을 출발한 조선군 본진은 1619년 2월23일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군은 좌영(左營), 우영(右營), 중영(中營) 등 3개 진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군 가운데는 항왜(降倭)들도 참전했다. 항왜는 임진왜란 당시 투항했던 일본군 출신의 병사들을 말한다. 그들은 조총을 잘 다루고, 검술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용맹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정예 병력이었다. 압록강을 건넌 후 허투알라에 이르는 조선군의 행군로에는 산악과 강이 널려 있었다. 날씨 또한 좋지 않았다. 양마전(亮馬佃)이란 곳에 도착했던 25일에는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불어 날씨가 몹시 추웠다. 병졸 가운데 얼어죽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무엇보다 문제는 군량 운반을 맡은 수송 부대가 본진을 제 때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었다. 2월26일, 진자두(榛子頭)라는 곳에 이르러 강홍립은 유정을 만났다. 강홍립은 유정에게, 군량 운반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사정을 설명하고, 조선군의 행군을 잠시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유정은 거부했다.‘약속한 시간은 정해져 있고 군율은 지엄한 것이기에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군은 할 수 없이 계속 걸었다. 2월27일, 진자두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배동갈령(拜東葛嶺) 부근에 도착했을 때 조선군 3영의 장졸들은 모두 휴대했던 군량이 떨어졌다. 보병들 가운데는 행군에 지쳐 정강이와 발 뒤꿈치에 유혈이 낭자한 병사들이 많았다. 계속 행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명군 ‘고문관’ 우승은(于承恩)이 달려왔다. 그는 강홍립에게 칼을 빼서 휘두르며 ‘조선군이 뒤처지면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고 소리쳤다. 당시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이 군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망하려 하기 때문에 일부러 천천히 걷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유격 교일기(喬一琦)와 우승은을 고문관 겸 감시자로 붙여 강홍립을 계속 몰아붙였다. 3월2일, 허기와 명군 지휘부의 채근에 시달린 끝에 조선군은 심하에 도착했다. 허투알라까지는 6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조선군과 명군은 약 600명의 후금군 기병과 조우한다. 적병은 높은 산 쪽에서 화살을 쏘아댔지만 조선군이 조총으로 응사하여 물리쳤다. 서울 포수 이성룡(李成龍)은 적장을 쏘아 맞혔고, 병사 한명생(韓明生)은 그의 목을 베어왔다. 조명연합군이 최초로 거둔 작은 승리였다.‘만주실록’에 보면 ‘토부(托保)와 에르나(額爾納)가 이끄는 병력이 유정에게 패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성룡이 사살한 장수는 둘 가운데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강홍립의 투항 작은 승리의 기쁨도 잠시 뿐,3월3일 조선군은 다시 ‘굶주림과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강홍립은 병사들을 풀어 주변의 후금인 부락을 뒤져 숨겨진 양곡을 찾아냈다. 그것을 돌로 빻아 죽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먹게 했다. 3월4일 아침, 조선군은 계속 행군하여 부차(富車)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세 발의 대포 소리를 듣는다. 이윽고 교일기 등이 강홍립에게 달려와 유정이 이끄는 명군 본진이 궤멸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난 밤, 무리하게 행군을 감행하다가 귀영가(貴盈哥)와 홍타이지, 아민(阿敏)이 이끄는 3만 후금군의 매복, 습격에 휘말린 것이었다. 명군의 궤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선군도 후금군의 공격에 휘말렸다. 좌영과 우영이 먼저 후금군 철기(鐵騎)의 공격을 받았다. 조선군은 조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두 번 째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철기는 두 영을 유린했다. 선천(宣川) 군수 김응하(金應河), 운산(雲山) 군수 이계종(李繼宗), 영유(永柔) 현령 이유길(李有吉) 등이 전사하고 두 영은 무너졌다. 이민환(李民 )의 ‘책중일록(柵中日錄)’은 ‘강홍립이 거느리던 중영은 좌우영과 불과 1000보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달려가 구원할 겨를도 없이 두 영이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후금군 철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후금군의 포위 속에서 중영의 조선군 지휘부에서는 ‘마지막 결전을 치르자.’는 논의가 나왔지만 병사들 가운데는 아무도 움직이려는 자가 없었다. 눈앞에서 두 영이 무너지는 참상을 목도한 데다,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이미 전의를 잃었던 것이다. 싸울 의지가 없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포위를 뚫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강홍립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투항한다. 그런데 투항 상황에 대한 기록들은 서로 상당히 다르다.‘광해군일기’와 ‘책중일록’은, 강홍립이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후금군이 먼저 통사를 보내와 항복을 종용했다고 적었다.‘만주실록’은, 후금군이 조선군 진영을 공격하려 할 때, 강홍립이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을 제의했다고 적었다. 양자의 기록에는 분명 각각의 주관적 서술과 윤색이 가해졌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적었는지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강홍립이 남은 생령(生靈)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을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3월5일 허투알라로 들어가 누르하치에게 항복했다. 곧 이어 항복 소식이 서울로 날아들었다. 조야를 막론하고 사대부들은 ‘매국노’ 강홍립의 가족들을 수금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광해군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홍립의 항복과 함께 그의 정치적 운명도 조락(凋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새달 15일부터 고창 ‘복분자축제’

    제3회 고창 복분자축제가 다음달 15∼17일 복분자산업특구로 지정된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도립공원 일대에서 열린다.축제기간에 복분자 재배지에서 생과 수확 체험을 비롯해 복분자 요리·가공식품 전시, 군민씨름대회, 고창농악굿 경연, 복분자 농가 기네스도전, 불꽃 쇼 등 다양한 체험전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복분자와 관련한 설화 단막극 상연을 비롯해 복분자와 풍천장어의 절묘한 조합을 맛보는 무료시식회, 복분자 도전골든벨 등 고창 복분자와 관련한 프로그램도 선보인다.심원면 생산지에서만 열렸던 복분자 수확체험이 특구로 지정된 아산·심원·부안면 등 3개면까지 확대된다.
  • 성북구 7일부터 ‘아리랑축제’

    성북구 7일부터 ‘아리랑축제’

    ‘아리랑 축제 2007’이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서울 성북구 개운산 근린공원과 성신여대 앞, 하나로 거리 등에서 펼쳐진다.1일 성북구에 따르면 전통과 미래가 하나된다는 의미로 축제 주제를 ‘올드 앤드 뉴 아리랑 하모니(Old&New Arirang Harmony)’로 정했다. 축제 첫째날인 7일 선잠제를 시작으로 왕비 환궁 행렬, 영화 테마 퍼레이드 등이 펼쳐진다. 선잠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양잠의 풍요를 기원하며 왕실이 지냈던 전통 제례의식. 또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찬교 성북구청장이 참석하는 개막축하행사와 ‘아리랑 대학 가요제’도 이어진다. 노브레인, 강산에 등이 초청가수로 나온다. 둘째날(8일)에는 ‘효 아리랑 한마당´ ‘아리랑 실버 패션쇼´ 및 가수 김종환, 남궁옥분 등이 출연하는 ‘7080 페스티벌’‘아리랑 유스 페스티벌’ 등이 열린다. 마지막날(9일)에는 송해, 남진, 은방울 자매 등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제18회 남인수 가요제’와 ‘주민 노래자랑 경연대회’가 개최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괴산댐 ‘50세’ 맞았다

    괴산댐 ‘50세’ 맞았다

    국내 순수기술로 건설한 충북 괴산댐이 준공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수력원자력 괴산수력발전소는 27일 괴산군 칠성면 괴산댐에서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이 댐은 길이 171m, 높이 28m의 크기로 한전의 전신인 조선전업에서 1957년 4월28일 완공했다. 1952년 11월 착공했으나 자금난으로 수차례 공사가 중단되다 5년만에 마무리해 운영을 시작했다. 국내 기술진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수력발전소로 유명하다. 국내 첫 수력발전소는 1905년 만들어진 북한의 운산수력, 남한의 첫 수력은 1937년 건설된 전남 보성강수력발전소이지만 일본기술로 건설됐다. 1500만㎥의 물을 수용하는 괴산댐은 시간당 2600㎾의 전기를 생산해 괴산군 일대에 공급하고 있다. 괴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가야산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가야산

    충남 예산과 서산에 걸쳐 있는 가야산(677.6m)은 경남 합천 가야산(1430m)에 비해 높이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 열 고을을 거느리며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 개심사·일락사·보원사지 등의 문화유산, 그리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로 불리는 명당 남연군묘를 품고 있어 합천 가야산에 비해 무엇 하나 꿀릴 게 없는 명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친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은 큰 바다요, 북쪽은 큰 만이고, 동쪽은 큰 평야, 남쪽을 그 지맥이 이어지는 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하면서 비옥한 평야 중심에 가야산이 놓여 있다고 적고 있다. 내포란 지금의 예산·서산·홍성·당진 지방과 태안·아산 일부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내포 지방이 배출한 인물에 주목했다.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충무공 이순신, 추사 김정희, 의병장 최익현,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개화당 김옥균, 남로당 박헌영, 만해 한용운…, 걸출한 이 모든 인물들이 놀랍게도 내포 출신이다. 저자는 그들이 충청도 특유의 느리고 온화한 성품이 아니라 소위 ‘깡’이 센 사람들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가야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바다가 가까워 일단 능선에 붙으면 내륙의 1000m 넘는 산이 부럽지 않고, 석문봉에서 바라보는 서산 간척지 너머 서해안 일몰이 특별한 장관을 이룬다. 봄철이면 진달래가 지천이고,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도 아름답다. 산행 후에는 덕산면의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가야산 들머리는 크게 예산 덕산면과 서산 운산면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덕산 상가리를 들머리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가리∼옥양봉∼석문봉∼상가리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 가야산의 최고봉인 가사봉 정상은 각종 중계기지가 들어차 출입금지 지역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꾼들은 가야산의 실질적인 주봉인 석문봉에 올랐다가 가사봉에 들르지 않고 하산한다. 서산 운산면 용현계곡을 들머리로 하면 마애삼존불∼수정봉∼옥양봉∼석문봉∼상가리 혹은 보원사∼일락산∼석문봉∼상가리 종주산행을 즐길 수 있다. 상가리 가야산 주차장은 국립공원만큼 넓지만 주차비를 받지 않아 좋다. 이곳에 차를 세우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주말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주차장이 가득 찬다. 예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야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등산객은 중·장년층이 많은데, 산행이 어렵지 않고 산행 후에는 뜨끈한 온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가리∼옥양봉∼석문봉∼상가리에 이르는 약 7.5㎞ 코스는 3시간 30분이 걸리는 원점회귀 코스다. 가야산은 등산 시작 지점과 끝이 꼭 일치해 자가용을 이용해 접근할 경우 편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석문봉은 가사봉에 비해 24.6m 낮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야산의 주봉 대접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남연군묘가 가사봉이 아닌 석문봉을 주봉으로 삼고 있었고, 지금은 가사봉이 출입통제 구역이라 역시 석문봉이 주봉이 되었다. 이영준 월간 MOUNTAIN기자 # 여행정보 운산면 용현계곡은 문화유산의 보고다. 국보 서산마애삼존불, 사적 보원사지 등이 대표적인데 예전에는 계곡 일대가 전부 보원사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당간지주,5층 석탑, 법인국사보승탑과 비가 남아 예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상가리 쪽에는 남연군묘를 빼놓을 수 없고, 주차장에서 오른쪽 길로 10분 걸리는 보덕사도 들러볼 만하다. 본래 남연군묘는 가야사의 자리였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 질러 스님들을 내쫓고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만들었다. 훗날 이 사건에 마음이 불편했던 대원군은 보덕사를 지어주었다. 비구니 사찰로 소담한 분위기가 좋다.
  •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포천 광덕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포천 광덕산

    그동안 포천 광덕산은 근처 백운계곡으로 유명한 백운산에 가려 있고,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들어가 있어 그다지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두대간에 이어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이 늘어나면서 알려지기 시작해 최근에는 중·장년층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 이유는 수도권에서 당일 산행이 가능하고, 광덕동 등산 시작 지점이 630m로 높기 때문에 산행 시간이 길지 않고, 기상관측소까지 임도가 닦여 길이 순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행 후에 포천 이동면에서 이동갈비와 일동면에서 온천으로 피로를 푸는 코스가 산꾼을 유혹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광덕산은 겨울 설경이 아름다운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몇 년 전부터 복수초, 앉은부채, 너도바람꽃 등 야생화들이 알려지면서 봄철 꽃산행 대상지로 각광받고 있다. 꽃이 많은 곳은 광덕동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회목현 입구까지의 계곡에 몰려 있다. 등산로 들머리는 철원 서면 자등리 원아사 입구와 포천에서 화천으로 넘어가는 316번 지방도 광덕고개 아래 광덕동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등산객은 교통이 편리하고 원점회귀가 가능한 광덕동을 찾는다. 광덕동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회목현∼상해봉∼기상관측소∼광덕산∼남동릉∼광덕동 원점회귀 코스가 좋다. 광덕동은 광덕고개 정상에서 화천 방향으로 100m 내려가면 나온다. 눈에 잘 띄는 ‘광덕산가든’을 이정표 삼으면 된다. 가든 왼쪽 길로 접어들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길을 지나 300m 오르면 번암교가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왼쪽을 자세히 보면 등산로가 보인다. 이곳이 하산 지점이다. 다시 200m 오르면 ‘해발 700m’라고 쓰여진 목판이 서 있는 산속가든이 나오고 이어 감투바위 펜션을 알리는 바위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식수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물 구하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식수를 준비하지 못했으면 산속가든에서 구할 수 있다. 길은 임도다. 급경사에는 부분적으로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이전에도 군사 작전도로 관계로 깔린 임도에 2003년 12월 ‘광덕산 레이더 기상 관측소’가 생기면서 확장된 것이다.200m 임도 비탈을 올라 회목현 직전까지 길섶 참나무숲 아래에는 봄의 전령인 복수초가 아주 많다. 복수초는 3월 중순, 혹은 하순에 절정을 이루고 4월 초순까지 볼 수 있다. 상해봉(上海峰)은 육산인 광덕산에서 돋보이는 암봉으로 먼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헬기장에서 보면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보여 그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상해봉 정상은 가팔라 고정로프를 잡고 제법 힘을 써야 한다. 상해봉은 광덕산 최고의 전망대로 한북정맥 능선과 경기도의 주요 봉우리들의 첩첩 산그리메가 장관이다. 북동쪽으로 커다란 축구공을 머리에 올려놓은 것 같은 기상관측소가 보이고, 남서쪽으로 회목봉과 그 너머 복주산이 웅장하다. 남쪽으로 경기 최고봉 화악산, 백운산, 국망봉이 잡힌다. 광덕산은 전망이 없기 때문에 상해봉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이영준 월간 MOUNTAIN 기자 ●여행정보 자가용은 북부간선도로 신내나들목, 태릉, 구리, 퇴계원 등에서 47번 국도를 탄다. 이 국도를 타면 진접, 베어스타운 입구, 온천이 많은 일동, 이동갈비가 즐비한 이동면 시내를 지나고 316번 지방도가 갈라진다. 지방도로 갈아타면 백운계곡이 나오고 광덕고개로 오르는 지그재그 길이 시작된다. 광덕고개 정상에서 100m 화천 방향으로 가면 왼쪽으로 광덕동이 보인다. 포천 이동면의 이동갈비는 맛과 풍부한 양으로 유명하다. 백운계곡 입구에는 송씨네(031-535-4872)가 유명하다. 일동면에 새로 생긴 명지원(031-536-9919)은 넓은 한옥집으로 아늑하고 넉넉하다.1인분 8대 2만 4000원. 일동면에서 온천이 많아 산행 피로를 풀 수 있다. 일동사이판(031-536-2000), 일동하와이(031-536-5000), 용암천(031-53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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