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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당의 ‘정치실험’

    민주노동당 단병호 당선자는 지난 22일 오후 17대 국회의원 당선증을 받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평소대로 추레한 점퍼 차림의 단 당선자를 본관 정문앞의 의경들이 막아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국회의원 당선증 받으려고 왔습니다.” 예의를 갖춘,그러나 고압적인 의경의 물음과 단 당선자의 생뚱한 답변은 그간 국회앞 ‘일반인과 의경’ 사이에 흔한 대화였다.한참을 갸우뚱거리다 얼굴을 알아본 한 의경 때문에 단 당선자는 국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선자전원 ‘머리띠 투쟁’ 경험 노동자·농민 운동 출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17대 국회에서 종종 겪을 에피소드다.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일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정치’를 표방하며 의정활동에 노동자·농민·평화개혁투쟁 현장활동을 접목시키려는 민주노동당의 헌정사상 초유의 실험과 연관돼 있다.단 당선자의 점퍼 차림이나 농민 출신 강기갑 당선자의 긴 수염과 생활한복 차림은 ‘튀는 행동’이 아니라 노동자·농민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 발은 운동권,한 발은 제도권을 딛고 있는 민주노동당 정치실험의 성공 여부를 많은 이들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23일 민주노동당 당선자 전원은 일제히 쌀개방 반대집회와 대우종합기계 해외매각 규탄집회 등 각종 투쟁 현장에 참석,제도권 바깥의 현장 활동에 주력했다. 천영세 부대표와 강기갑·현애자 당선자는 ‘전농 창립 14주년 기념식 및 쌀개방 반대와 식량주권수호 결의대회’에 참석해 “올해 쌀개방 반대와 식량자급률 목표치 법제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또한 ‘전노협 쟁의국장 아가씨’ 심상정 당선자 역시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선거 이전과 다름없이 대우중공업 해외매각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단병호 당선자는 일본의 반전평화단체인 ‘PARC’ 관계자들을 만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의 이같은 ‘각개 약진’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데모가 일상화된 국회의원’ 10명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원내외 병행전략은 당연” 하지만 현실적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원내와 원외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시간상 불일치에 대한 우려다.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도권과 마찰만 일으키거나,반대로 운동권으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의 ‘진보실험’은 다시 후퇴할 수 있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민주노총과 전농이라는 튼튼한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원내외 병행전략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원내에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즉각 반영되지 않을 경우 갈등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당 당선자 진보·보수 ‘백중’

    17대 국회 과반수를 점하게 된 열린우리당 의원들 개개인의 이념성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152명의 의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나라의 근간을 좌우할 법안들을 열린우리당 혼자 힘으로 없애거나 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18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이념성향을 본인이 아닌 당내 제3자의 평가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진보에서 보수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났다.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신인이 상당수 진입하긴 했지만,전체적으로 보면 보수성향 당선자 규모가 진보성향 당선자 수에 밀리지 않았다. 이는 ‘왼쪽(진보)’이든 ‘오른쪽(보수)’이든 너무 급진적인 법안이나 의정활동은 당내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좌절될 확률이 높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설사 관철되더라도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신문이 익명을 요구한 열린우리당 핵심및 중간 당직자 5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정리한 평가를 종합한 결과,이념을 분석하기 힘든 24명을 제외한 128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69명이 중도보수 또는 보수적 이념을 갖고 있는 인물인 것으로 분류됐다. 경제관료와 지방자치단체 행정관료 출신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또 재계와 과학기술 전문가 그룹도 대부분 보수성향으로 평가됐다.한 당직자는 “사실 중도보수를 넘어 보수성향이 뚜렷한 인물들도 상당수 있지만,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에 참여한 것 자체를 감안하면 전부 중도보수에 포함시켜도 무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진보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128명 가운데 59명에 달했다.이중 28명은 보다 선명한 ‘진보’로,나머지 31명은 비교적 온건한 ‘중도진보’로 분류됐다. 진보에는 이라크 추가파병에 반대해 단식농성을 벌였던 임종석 의원을 비롯,전대협 등 학생운동권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다.중도진보에는 재야운동권 출신이면서도 상당기간 현실정치 역정을 거친 인물들이 대부분을 구성했다.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같은 성향 분류는 당선자들의 인생 궤적과 겉으로 드러난 활동을 토대로 추론한 것일 뿐,실제 이들이 의정단상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는 미지수다.또 이념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무(無)이념’에 가까운 당선자도 없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막상 민감한 법안 처리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대세가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은 진보성향 쪽에 있다.아무래도 이라크파병 반대나,국가보안법 개정·폐지 문제 등 각종 현안에서 응집력 있는 목소리를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이들이 강력한 추동력을 무기로 여론몰이에 나설 경우 중도 위치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다수의 힘이 한쪽으로 확 쏠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라는 점이 섣부른 예측을 불허하는 요인이다.실제 지난번 이라크 추가파병 표결 때 김근태 원내대표와 장영달 국방위원장 등 상당수 의원들이 개인소신(반대)에도 불구하고,찬성표를 던졌다.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때도 마찬가지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모 의원은 이날 “만일 초선의원들이 천방지축 개인 목소리를 낸다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군기를 잡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과반수 1당이 됐다고 야당과 여론을 설득하지 않고 막무가내식으로 한다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보수성향으로 분류된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에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이념적으로 다양하고 온건하다.”면서 “만일 당이 어느 한쪽으로 쏠린다면 내가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4·15 한국의 선택] 신인 대거 입성‘개혁 국회’ 예고

    ■총선 물갈이 폭풍 “어? 추미애가…,홍사덕도…,조순형도…,이부영까지?” 15일 밤 총선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여야의 일부 ‘거물’들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자,“설마했는데….”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민주당에서는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에 출마한 조순형 대표를 비롯,유용태 원내총무와 추미애 선대위원장 등 지도부가 줄줄이 낙선했다.‘폭락세’의 민주당은 이밖에도 7선(選)에 도전했던 김상현 의원을 비롯,박상천·김옥두·정균환·이협 의원 등 쟁쟁한 호남중진들이 죄다 떨어졌다. 한나라당은 영남이 지역구인 박근혜 대표와 김형오 사무총장은 여유있게 당선됐지만,수도권에 출마한 홍사덕 전 원내총무는 고배를 들었다.자민련 이인제 의원은 살아남았다. 열린우리당은 현역의원 가운데 공천을 받은 40여명 거의 전원이 탄핵역풍에 힘입어 당선됐으나,당선이 유력시됐던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떨어졌다.다선 중진들이 공천과정과 선거를 거치면서 대거 물갈이된 이번 총선은 정치신인이 가장 많이 당선된 선거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열린우리당만 해도 당선자 100명 이상이 처음 금배지를 달게 된 인물들이다.이들 정치신인의 대부분은 50세 이하로,전후(戰後)세대가 입법부의 주력부대로 진출한 셈이다.사실상 세대교체를 이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그러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각 석권한 영남과 호남엔 상대적으로 현역의원들이 공천을 많이 받았다.특히 열린우리당의 경우 현역의원 출마자들이 대거 당선됐기 때문에,각당 및 국회 지도부는 여전히 재선급 이상의 50∼60대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원내대표,신기남 상임중앙위원 등은 모두 50대로 3선이다.결국 17대 국회에서는 50대가 이끄는 지도부와 초선들이 중심이 된 30∼40대가 역동적으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강한 개혁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들 30∼40대 당선자 중에는 유신과 5공·6공때 군사정권에 대항한 학생운동권 출신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에서 입법활동 등에서 진보적 색채가 강해질 전망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여의도 ‘여성시대’ 개막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원이 전체 의석의 10%를 넘게 됐다.정치인·기업가 일색이던 직업군도 각계를 대변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이채로워졌다.17대 국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우선 지역구에서 여성 돌풍이 두드러진다.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 한명숙 전 여성부장관,조배숙 의원,이혜훈 연세대 동서연구원 교수,김선미 열린우리당 국민참여운동본부장 등 여성 10명 안팎이 금배지를 달았다.16대 때의 5명,15대 때 2명에 비해 크게 약진한 수치다.지난달 개정된 선거법도 국회의 여성파워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각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공천할 때 50% 이상을 여성으로 해야 한다는 선거법 규정에 따라 홀수 순번에 여성을 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체 56석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성에게 배정될 전망이다. 여성 비례대표로는 장향숙 여성장애인연합대표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이경숙 여성단체연합대표,김현미 전 청와대 정무2비서관,김영주 전국금융노련 부위원장,김애실 외국어대 교수,방송인 박찬숙씨,송영선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소장,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 등이 당선됐다.총선에서 ‘입심’을 과시했던 전여옥·박영선 대변인도 당선증을 받게 됐다. 이로써 전체 299석 가운데 여성이 차지할 몫은 38석 안팎.전체 의석의 12%를 웃도는 수치다.16대 때는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16명이 등원해 전체의 5.9%를 기록했다.15대 때는 모두 9명으로 3%에 그쳤다. 17대 여성 국회의원의 다양한 직업군도 주목할 만하다.15,16대의 여성 국회의원은 대부분 정치인과 기업가,교수 출신이었다.그러나 이번 국회에 등원할 여성들은 사회운동가,변호사,의사,안보전문가,방송인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자랑하고 있다. 박지연기자 anne02@ ■희비 엇갈린 2세 정치인들 ‘권력의 상속인가,정치명문가(家)의 탄생인가.’ 17대 총선에서도 대(代)를 이은 ‘2세 정치인’들이 당당히 원내에 진출,큰 관심을 끌었다. 반면 우리나라 최고의 정치명문가로 꼽히는 조병옥·정일형 가문의 2·3세들은 고배를 마셔 정치가문의 희비도 엇갈렸다. ‘2세 정치인’의 리더격으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탄핵정국에서 총선 지휘봉을 잡아 ‘박근혜 열풍’을 일으켰으며 자신은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서 어렵지 않게 금배지를 달았다.박 대표는 3선(選)이 됐다. 서울의 지역구 중 ‘부동(不動)의 한나라당 텃밭’으로 일컬어지는 강남갑과 서초갑에서는 각각 ‘2세 정치인’이 새로 나왔다.6선인 한나라당 이중재 상임고문의 아들인 이종구 후보는 강남갑에서,고 김태호 의원의 며느리인 이혜훈 후보는 서초갑에서 각각 당선됐다.고 권익현 의원의 사위이자 동서 사이인 임태희 후보와 김태기 후보의 희비는 엇갈렸다.임 후보는 성남 분당을에서 당선되면서 재선이 됐지만,김 후보는 서울 성동갑에서 낙선했다. 고 남평우 의원의 아들인 남경필 후보는 수원 팔달에서 3선(選) 의원이 됐다.정재철 전 의원의 아들인 정문헌(한나라당) 후보는 강원 속초·고성·양양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민주당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이 자신의 텃밭인 목포를 이상열 후보에게 물려주고 비례대표 4번으로,가까스로 ‘가문의 영광’을 이어갔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노웅래 후보가 서울 마포갑에서 당선됐다. 반면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대구 수성갑에서 ‘지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일형 전 의원의 손자이자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대표의 아들인 정호준 후보는 서울 중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박성범 당선자에게 패배했다. 부자가 동시에 출마해 관심을 끌었던 김상현(광주 북갑) 의원과 김 의원의 아들인 김영호(서울 서대문갑) 후보는 모두 민주당 간판으로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광삼기자 hisam@ ■몰락한 무소속·’DJ가신’들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기존 정당의 높은 벽을 절감해야 했다.무소속 후보 가운데 경북 문경·예천의 신국환 후보와 전남 나주·화순에서 출마한 최인기 후보만 당선됐을 뿐이다. 최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눈가에 맺힌 이슬을 훔치면서 지역민들의 선택에 보답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열린우리당의 폭풍 속에서도 지역 ‘인물론’과 ‘발전론’을 내세워 우리당 문두식(56) 후보를 여유있게 눌렀다. 무소속 후보들은 탄핵역풍이니 박풍(朴風)이니 추풍(秋風)이니 하면서 선거가 여·야간의 정쟁으로 치달으면서 선거판에서 설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더구나 합동유세가 사라지고 TV토론 등 ‘미디어선거’로 바뀌면서 무소속 후보는 여론조사 지지율 5% 이상이라는 규정에 걸려 TV토론회조차 참가하지 못하는 설움을 겪였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분신격인 ‘DJ가신’들도 이번 선거에서 크게 재미를 못봤다. 동교동계 주류로 ‘우노갑 좌옥두’로 불리던 민주당 전남 장흥·영암의 김옥두(65) 후보는 우리당 유선호(50)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한때 민주당의 탄탄한 조직력에다 느닷없이 낙하산 공천으로 등장한 유 후보에 대한 거부감의 불씨를 지펴가면서 승리가 점쳐지기도 했으나 ‘탄핵바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영원한 ‘마당발’ ‘DJ맨’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민주당 광주 북갑의 김상현 후보와 DJ의 비서를 했던 같은 당의 광주 광산구 전갑길 후보도 모두 우리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동교동계 비주류로 ‘리틀 DJ’로 불리던 민주당 무안·신안의 한화갑(65) 후보는 개표 전 당선 안정권의 예상을 이어가면서 우리당 김성철(52)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대구 황경근 광주 남기창기자 kkhwang@ ˝
  • [4·15 한국의 선택] 전대협 1~3기의장 모두 ‘금배지’

    80년대말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3기 의장 출신 총선 후보가 17대 국회에 모두 입성했다.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87년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열린우리당)후보는 서울 구로갑에서 당선됐다.2기 의장을 지낸 오영식(열린우리당) 후보는 서울 강북갑 지역구에서 무난히 당선됐고 3기 의장인 임종석 의원(열린우리당·서울 성동을)은 재선 의원이 됐다. 1∼3기 의장 출신 외에도 ‘전대협 세대’로 분류되는 학생운동권 출신 후보 수십명이 이번 총선에 출마해 곳곳에서 당선되거나 다른 후보들과 피말리는 접전을 펼쳤다.88년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백원우(열린우리당·경기 시흥갑) 전 청와대행정관은 접전 끝에 당선됐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1기 부의장을 지낸 우상호(열린우리당) 후보는 서울 서대문갑에서 83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성헌(한나라당) 후보와 2000년 16대 총선에 이어 숨막히는 ‘박빙승부’를 펼쳤다. 명지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동우회장을 지낸 복기왕(열린우리당) 후보는 충남 아산에서 행정부지사 출신인 이명수(자민련) 후보를 접전 끝에 물리치고 금배지를 달았다. 이세영기자 sylee@
  • [총선 D-1] “우리당 내분” 호남되찾기 총공세

    민주당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행보를 ‘쇼’라고 폄하하고 열린우리당 내부 균열을 겨냥한 ‘공세’로 대응했다.정 의장의 선대위원장 사퇴를 열린우리당의 ‘호남 버리기’로 규정하면서 민주당을 ‘큰 집’에 비유,돌아올 것을 주문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13일 광주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영남의 운동권들이 분열을 시작하는 것이며 이들이 호남 민주세력을 들러리 세우고 (이제는)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민주당 이름으로 뽑힌 의원들이 배신했지만 돌아올 수 있도록 (당을)재건해서 민주당의 주춧돌을 되살려 분열세력을 모으는 큰 집이 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이어 “떠났던 사람들이 반성하고 복귀하면 다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추 위원장은 시민 500여명이 모인 광주공원 유세에서 “총선용으로 급조된 1회용 정당의 자멸”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공격하며 “영남표를 얻는 데 호남이 장애물이 된다는 생각에 호남 민주세력을 버리기 시작했다.”면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정 의장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노 대통령 측근 세력들의 압력에 밀려 사실상 ‘낙마’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깔려 있다.박준영 선대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벌써 열린우리당은 내부 권력투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위원장은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3보1배 후 건강을 걱정해 주셨는데 사실 민주당을 걱정한 것”이라며 ‘DJ’와 민주당의 연을 강조하기도 했다.그는 오후 늦게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지역구인 광진을도 챙겼다. 박정경기자 olive@˝
  • 서울대 또 非운동권 회장 당선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2년 연속 비운동권 출신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서울대가 지난 7∼9일 실시한 총학생회장 투표에서 비운동권인 ‘학교로,다시 쓰는 이야기’측의 후보인 홍상욱(경제학과 4년)씨가 4542표를 얻어 2310표에 그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소속 학생 중심인 ‘회색대학 색깔입히기’의 이상미(역사교육과 4년)씨를 따돌리고 회장으로 뽑혔다.지난 84년 총학생회장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 비운동권이 이 대학 총학생회장이 된 것은 99년과 2002년에 이어 세번째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노동계도 ‘제3의 길’

    투쟁이 아니면 어용으로 몰리는 노동운동 관행에 변화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성노조였다가 합리·실리 노선으로 돌아선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탁학수)가 진원지다. 오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상황도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현중노조는 최근 지난 2월14일 회사 안에서 발생한 사내협력업체 퇴직근로자 박일수씨 분신자살사태와 관련해 상급단체인 금속산업연맹이 제명을 추진하자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큰 틀의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투쟁위주의 노동운동과 선을 그었다. ●현중노조 “분신한 박씨 열사 아니다” 금속산업연맹은 다음달 중 대의원대회를 열어 현중노조 제명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박씨 분신대책위와 현중 노사가 지난 7일 박씨 분신사태를 원만하게 마무리함에 따라 제명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금속산업연맹이 제명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현중노조가 민주노총 울산본부 등이 중심이 된 분신대책위에 참여하지 않고 반대 주장을 펴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현중노조는 분신대책위가 사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정치적 입지강화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짙어 전국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참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회사에 몰래 들어가 자살한 퇴직 근로자를 열사로 규정한 것은,불순한 의도가 있는 분신에 대해서는 절대로 열사로 규정하지 않는 운동권 철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를 비롯한 지역 노동단체가 비정규직 차별철폐 주장이 담긴 유서에 무게를 두어 성급하게 분신대책위를 구성하고 사태를 키워 정치공세에 치중하는 바람에 수습이 늦어졌다는 게 현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현중노조 금속산업연맹에 대립각 노동계는 박씨 분신사태로 표면화된 현중노조와 금속산업연맹의 대립이 ‘노동계 헤쳐 모여’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내다본다. 현중노조가 그동안 견지해 오던 합리·실리 노선을 박씨 분신사건을 계기로 대내외에 분명히 밝힌 점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금속산업연맹이 징계절차를 거두어 들이고 공개사과하지 않으면 독자노선으로 새로운 노동운동의 대안세력이 될 수 있다고 몰아붙인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제명 여부와 상관없이 민주노총·금속산업연맹과 거리를 두고,만약 제명하면 뜻을 같이하는 노동세력과 제3의 새로운 노동단체를 결성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금속산업연맹은 조합원 1만 8000여명에 한해 4억 8300여만원의 연맹비를 내는 현중노조를 제명하자니 세(勢)나 재정에서 타격이 크고,그냥 넘어가자니 계속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 우려돼 이래저래 부담이다. ●현중노조 합리·실리 노선 정착됐다는 평가 현중노조는 1987년 설립 뒤 88∼89년 128일간 파업과 90년 고공투쟁의 효시로 불리는 골리앗 파업 등 전국 노동투쟁을 주도하다 지난 95년 노사협상 무분규 타결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9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기록,노사 안정이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노동전문가들은 분규가 수년간 되풀이되면서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나아지고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현재 44세)이 높아진 것이 노사관계 안정을 가져온 주 원인으로 꼽는다.나이가 들면서 조합원들의 관심이 무모한 투쟁보다는 생활안정 쪽으로 바뀌게 됐다는 설명이다. 비슷한 기류가 최근 들어 인근 현대자동차 사업장에서도 엿보여 주목된다. 현중노조의 행보가 찻잔속 태풍에 그칠지,노동운동의 전환을 가져오는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퇴계선생은 로맨스나 스캔들이 없었나요?” “왜요,단양의 기생 두향(杜香)이 하고 연애한 것은 유명하잖아요.” “낮퇴계,밤퇴계가 달랐다면서요?” “그런 속전이 있지.” “자네 퇴계선생의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걸 들어봤나?” “아뇨.”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고 싶으면 매화에 관한 시를 읽어봐.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하셨고 내내 아무 말 없다가 저녁에 일으켜 앉히니 앉은 채로 서거하셨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저자와 한 퇴계연구가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이다. 혹자들은 100여년전에 ‘서유견문’의 유길준(兪吉濬)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견문’을 쓴 유홍준(兪弘濬·55·명지대 미술사학)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공교롭게도 둘은 이름의 ‘돌림자’도 같은 기계(杞溪)유씨 ‘충목공파’의 문장가 집안 출신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데가 없다.북한까지 다녀왔다.발품으로 일궈낸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권이 이를 입증한다.1,2권만 합쳐 250만부나 팔렸다.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는 생전에 그를 가리켜 ‘문화재급 역마살’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국토 박물관’으로 불려 그는 지난 10년동안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이하 답사기)를 비롯해 ‘완당평전’‘화인열전’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특유의 감각적 글솜씨로 ‘해방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살아 있는 국토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다닐 정도로 평판이 높다. 시인 박노해씨는 옥중에서 ‘답사기’를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제 눈을 맑게 열어준 운명같은 마주침의 책,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내 마음속 가장 은밀한 자리에 꽂아둔 우리 시대 고전같은 책입니다.…유 선생의 ‘답사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속에 갇혀 있던 나 아닌 것들이 벌떼처럼 살아나서 나를 깨뜨립니다.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자식이구나,조상님들이 내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답사기’를 읽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했다.“읽고 깨우친 바 기쁨이 하도 커서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다.기막힌 비경이나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풍기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심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말 명지대 행정관 4층 복도끝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노크했다.한창 집필중인 ‘답사기’ 4,5권의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연구실 문을 열자 ‘고색 창연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왔다. 산골 오지의 어느 노인이 밤새 새끼꼬아 촘촘히 기워만들었음직한 멍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그위에는 낡은 궤짝 하나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또 양쪽 벽에 쭉 늘어진 책꽂이에는 ‘답사의 노정’을 말해주듯 때묻은 고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만권은 훨씬 넘지요.이쪽은 한국미술사,저쪽은 중국미술사,저기 저쪽에는 서양미술사 책자들이지요.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중독처럼 사다놓은 결과물입니다.”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97년 이전에 3년정도 끊었으나 북한을 다녀오면서 다시 피우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네모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냥은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에서 만든것입니다.그런데 자동이래요.이렇게 열었다 놓으면 뚜껑이 저절로 닫히니까.나원 참….”답사도중에 얻어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일,책상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600자원고지와 만년필이 대신해 있었다.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 이쪽저쪽에서 글을 퍼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쓰다가 잘못되면 원고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써야 글이 살아 숨쉰다.”며 특유의 ‘원고지철학’을 늘어놓았다.컴퓨터는 인문적인 것을 쏙 빼버린 기계적인 빠름일 뿐,고뇌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다. 문득 독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취미는 여행이다.여행이라는 매체를 넣고 글을 썼다.마침 독자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학자인지 문필가인지 나도 몰라” “가끔 내 자신이 학자인지,문필가인지,평론가인지를 물어보곤 합니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문사(文士)가 없어요.고행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사말입니다.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문사일 수 없으며 지조있는 선비정신이 내재돼야 합니다.‘답사기’를 3권까지 썼지만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절반쯤 진행중인 4,5권 집필도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제주도를 답사했더니 4·3사건을 안 다룰 수가 없고,경상도를 갔더니 거창학살사건을 다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이런 과정을 거쳐 ‘답사기’의 완결편 2권을 올 상반기중 마무리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일생의 또다른 역작,즉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다짐이다.그것은 온국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일이다.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와 곧바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술사는 문화사의 꽃입니다.학식과 학덕을 쌓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관을 잘 반영했을 때 더욱 향기나는 꽃이 되겠지요.또 복잡한 현상을 단박에 단도질할 수 있는 깊이와 연구업적이 뒤따라야 합니다.영어로 쓰여진 한국미술사는 물론 번역할 수 있는 마땅한 텍스트도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 강해 이곳저곳 강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은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반면에 열등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결국 ‘짬뽕’식이 되다보니 단군 이래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적이 한번도 없이 중심부가 아닌,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적인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동아시아문화의 ‘주주’로서 다른 나라에 문화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필연이 도래했다고 역설했다.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이란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주도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네들만 살려고 해서 실패했습니다.더이상 도덕적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기는 틀렸습니다.중국사람들은 우리보다 5,6년 뒤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한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십시오.대중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미국의 문화가 오기전에 마를린 먼로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왔지 않습니까.이제는 세계에서 1등이 나와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도 동아시아물류중심국가를 외쳤는데 이는 반쪽에 불과합니다.물류와 문화가 합쳐진 그런 정책이어야 하지요.” 나이 40이 넘어가면 과거의 이력이 얼굴에 하나둘 새겨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파란과 곡절도 많았다.93년 이전까지는 정말 별볼 일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14년반만의 대학졸업,교수직 박탈,8년동안의 백수상태,운동권 이론가라는 제도권 교수의 따돌림 등만 떠올려도 그렇단다. ●고3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미대 진학 청운초·중학을 나온 그는 경복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중동고로 방향을 튼 그는 1967년 고3때 국문학과를 택하려고 했으나 담임선생의 권유로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그러나 ‘예술학개론’‘예술비평’ 등의 딱딱한 강의가 많아 연극회에 가입해 유치진의 ‘토막’,천승세의 ‘만선’ 등 민족극 공연에 적극 참가했다.공부는 뒷전이었다.연출은 주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대학시절 그의 서울 종로구 창성동 집에는 소위 ‘의식있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보안 경찰관에게 데모꾼 소굴로 인식됐다.결국 69년 4월 ‘3선개헌 풍자극’의 대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해 7월 무기정학을 받았다.시련을 호되게 겪은 그는 서둘러 군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한국미술사 연구에 필생을 걸고 뜻을 세우지만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상수배중이던 이철(전 국회의원)에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75년 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방황하던 그는 7개월 뒤 군복무중 미술관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원래는 장준하 선생이 주례를 맡기로 했으나 의문의 실족사로 리영희 교수로 바뀌었다.결혼 후에는 금성출판사,공간사 등에 다녔다. 80년 10월,입학한 지 14년 반만에 겨우 졸업장을 받고 이듬해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에 들어갔다.대학원을 마친 그는 건국대 교수로 채용됐으나 미복권 상태임이 밝혀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이때 그는 ‘미술속에서 현실을 찾자’는 구상 아래 그 유명한 슬라이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어 떠돌이 생활로 대중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답사기’라는 역마살도 이때 시작됐다. “인세요? 한 15억원정도? 세금 한 4억 냈을테고….집사람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줘요.장관이라도 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란가?(웃음)” ‘답사의 달인’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전문화의 진수는 경주,건축의 아름다움은 병산서원·부석사라고 했다.또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려면 제주가 으뜸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유홍준 교수는 ▲1967년 중동고 졸.80년 서울대 미학과 졸.83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98년 찰학박사(성균관대). ▲77년 공간 편집부.78년∼83년 중앙일보 계간 미술부 근무.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91년∼2002년 영남대 회화과 조교수.2002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2003년 문화재위원. ▲저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비평에서,정직한 관객,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3,나의 북한유산 답사기,완당평전,화인열전 등. ˝
  • 정치의식 성숙 ? 탄핵 반짝열기 ?

    4·15총선을 앞두고 대학가의 부재자 투표신청이 급증했다.탄핵정국이 대학생의 정치참여 의식을 높인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하지만 ‘탄핵 신드롬’에 의한 ‘반짝 열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만만찮다.대학생 상대 설문조사에서도 실제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을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해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0명이상 신청 대학 11곳이나 제17대 총선 대학부재자투표운동본부는 지난 29일 부재자 투표신청을 마감한 결과 전국 70개 대학에서 6만 5000여명이 접수했다고 밝혔다.이는 2002년 대선 당시의 39개 대학,3만 9000여명의 1.7배에 이르는 수치다.특히 투표소 설립 요건인 ‘신청인 2000명 이상’을 총족시킨 대학도 지난 대선 당시 3곳에서 11곳으로 늘었다. 이는 지난 대선을 전후해 젊은층의 정치참여 논의가 활발해진 데다 탄핵정국이 이들의 참여의식을 더욱 촉발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엄경식(26·강원대대학원 정치외교학 1년)씨는 “탄핵정국에 환멸을 느껴 부재자 투표를 신청했다.”면서 “지역구에 비리 연루 정치인이 출마한다니 한표를 제대로 행사해야겠다.”고 말했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젊은층이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정치를 마냥 내버려두기만 해서는 결국 본인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탄핵정국으로 부각된 부패정치 청산 문제가 젊은층이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 좀더 분명한 이유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선 ‘반짝 관심’우려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대학가 열기가 감정적인 ‘반짝 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실제 일부 부재자투표 신청자는 지역구의 출마예정자나 공약은 물론 투표일조차 모르고 있었다.이모(25·여·고려대 3년)씨는 “부재자투표를 신청하긴 했지만,공약은 잘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사이에서도 총선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한총련·학생연대21 등 운동권과 비운동권 251개 총학생회·학생단체가 망라된 ‘2004 총선전국대학생연대’가 지난 22일 전국 18개 대학 재학생 14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총선에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63.7%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체 예상 투표율 높지 않아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대학생 투표율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주 높을 것(투표율 70% 이상)’과 ‘높을 것(60∼70%)’이 각각 5.4%,20.6%에 그친 반면 ‘조금 낮을 것(30∼40%)’이 28.9%,‘거의 참여하지 않을 것(30% 미만)’이 10.7%로 조사돼 부정적인 응답이 39.6%로 많았다.같은날 경상대신문사가 재학생 3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62.6%가 ‘총선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지만,64.7%는 대학생 투표율이 50%를 밑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의 투표참여 의지와 예상 투표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상지대 정대화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그것이 종전처럼 젊은층의 무관심으로 표현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라면서 “젊은층은 총선에 참여해야 정치권이 깨끗해진다는 확신을 갖고 교육비 재정 확충,청년실업 해결 등 피부에 와닿는 이슈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인터넷 등 정보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층이 일상생활에서도 공론의 장을 활발히 마련해 정치참여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사형선고’ 혁명가 변호사 됐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의 ‘주역’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는 백태웅(42·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법학과 조교수)씨가 최근 국내 로펌 ‘정평’에 영입돼 외국법 자문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백 교수는 23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정평에서 국제인권법과 미국법 관련 사안에 관해 자문을 해달라는 요청이 와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시 ‘대자보 문화’를 착근시킨 운동권의 이론가이던 백 교수는 사노맹 사건으로 7년을 복역했으며,지난 99년 2월 사면 복권되자 6월에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가 노틀담대에서 국제인권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뉴욕에 있는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인턴 연구원과 컨설턴트로 경력을 쌓았다. 백 교수는 하버드 법대에서 1년간 초빙교수를 지낸 뒤 지난해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조교수로 임용돼 국제인권법과 한국법을 강의하고 있다. 그가 진보적인 성향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정평에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서울법대 동기인 정평의 김제완 변호사가 브리티시컬럼비아 대에 초빙교수로 온 것이 계기가 됐다.백 교수의 경력을 눈여겨 본 김 변호사가 정평 대표인 박연철 변호사와 논의한 끝에 국제인권법·미국법 분야의 자문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는 중”이라고 근황을 전한 백 교수는 “한국에 돌아간 뒤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갈지는 잘 모르지만 지난 시기의 삶을 긍정적으로 감싸안으면서도 새 조건에 걸맞은 방식으로 사회를 위해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또 국내의 ‘탄핵 사태’와 관련해서는 “밤늦게까지 태평양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국의 오늘과 내일을 반추한다.”면서 “이러한 진통이 훗날 해피엔딩으로 가는 연극의 일막으로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각당 전략통에 듣는다] 민노당 노회찬 선대본부장

    요즘 민주노동당 노회찬 선대본부장은 참으로 바쁘다.각종 전략회의와 지역 순회 등 17대 총선 막바지 준비에 정신이 없다.게다가 탄핵정국까지 겹쳐 대책회의도 연일 계속된다. “이번 일로 야당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17대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정책중심의 진보적 야당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지역 7∼8곳,비례대표 7∼8석으로 15석 이상을 얻어 원내 진출은 물론 교섭단체 구성까지 넘보던 상황에서 탄핵 정국은 악재로도 비쳐지지만 노 본부장은 당당하다. 노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심판이나 지지가 아니라 보수정당의 민심 위배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의 장이 될 것”이라고 총선의 성격을 규정지었다.그의 당당함은 이번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이 아니라 정책정당이자 현실가능한 대안정당이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시킬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하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총선에 임하는 정당 중 가장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창출 ▲부유세 도입 ▲남·북·미 평화협정 체결 ▲지문날인제 폐지를 비롯한 공약을 발표했다.그렇다고 ‘날림’이거나 ‘비현실적 주장’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초 각계 전문가 150여명이 참여해 ‘17대총선 공약개발단’을 꾸린 뒤 경제,노동,교육,복지,환경 등 20개 분야에서 200여개에 이르는 당의 정책과 공약을 개발했다.이를 정책조정협의회에서 우선 실현 공약,재원 마련 방법,상호 충돌 방지 등 논의를 거치며 38가지의 핵심 공약으로 걸러낸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정치문화의 혁명적 변화다.노 본부장은 “의원과 보좌진은 모든 세비를 당에 귀속시킨 뒤 노동자 평균 임금만을 받고 의원 면책특권도 포기할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보면서 ‘저런 정치도 가능하구나.’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4)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上)

    류계춘(柳繼春,1830∼1862).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권 노래이자 혁명가(革命歌) 노랫말을 순 한글로 짓고 곡을 붙여 널리 퍼뜨렸으며,농사꾼이 사는 동네라면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사금파리 뾰족뾰족 박힌 골목길을 내달으면서 불렀고,그보다 조금 더 큰 조무래기들은 마을 타작마당이나 마을 앞 빈 논바닥에서 뛰놀며 이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희미한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사랑방에서 새끼줄을 꼬는 머슴들이나,긴긴 겨울밤 무명실 잣는 물레질로 길쌈하는 아낙들도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를 부를수록 마음 속에 시퍼렇게 응어리진 일들이 새삼스레 아파오기도 하고,끝 소절에 잔뜩 힘을 넣어 큰소리로 부르면 그 혹독하고 두려운 것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도 같았다. 한번 입에 올린 뒤엔 좀체로 떠나지 않는 이 노래를 두고 사람들은 이상한 노래라거나 귀신이 든 노래라고도 했다.이 노래를 만든 류계춘은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수백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일약 인기 작곡가에다 돈방석에 올라 앉는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1862년 민란주도 ‘참수형’ … 족보에서도 삭제돼 한국 농민의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아보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그의 이름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또한 한국 농민사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물어도 그를 불러 보인다.그는 경상도 진주사람이었다.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 진주(晋州) 망건(網巾) 또 망건 짝발이 휘양건(揮項巾) 도래 줌치 장두(狀頭) 칼 머구밭에 덕서리 칠팔 월에 무서리 동지 섣달 대서리.”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또는 ‘언가(諺歌)’라고 부르는 이 노래를 류계춘이 지었다고 단정지은 것은 그가 계획하고 주도한,1862년 ‘진주농민항쟁(일명 임술 진주민란)’에 관한 당시 조선 정부 수사 기록을 통해서였다. 이 노래의 특징은 노랫말이 지닌 고도의 은유와 상징에 있다.이 노랫말 속에는 진주농민항쟁의 원인과 역사가 밀도 높게 응축되어 있다. 빼어난 노랫말 속에는 풍부한 시적 감성과 치열한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는데,이 노래의 두 박자 리듬에서 우러나는 근원적인 힘과 조화를 이루면서 역동적인 행진곡으로서의 맛까지 곁들이고 있다. 지난 5일 경칩날 류계춘 선생의 묘소가 있는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당리를 찾아 갔다.선생의 증손자인 류일렬(柳一烈)씨가 동행해주었다. 마을 노인들에게 선생의 묘소를 묻자 대뜸 “아,그 풋심 떼던 묏등”이라고 대답한다.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농촌 사람들은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풋심’이라는 병을 앓곤 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높은 열이 나는 특징을 지닌 병으로서 3일열 또는 4일열 등으로 구분하는데, 심하면 빈혈이 생기고 황달을 일으키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학질(말라리아)이라고 부르는 이 질병을 농촌 사람들은 흔히 풋심이라 했다. 뚜렷한 처방약이 없어서 한 번 걸리면 한달 이상은 예사로 고생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사흘이나 나흘 간격으로 재발하기 때문에 몇 차례 재발한 고열로 고생한 사람들은 귀신이 든 것이라고 여기면서 푸닥거리를 하는 등 안타까운 시달림을 겪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섬뜩한 처방전이 흘러나왔다.어떤 잘못으로 인하여 형장에서 참수된 자의 무덤을 찾아내어 마지막 치유 방법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즉, 풋심을 앓는 환자가 캄캄한 한밤중을 이용하여 참수된 자가 묻혀 있는 무덤으로 가는 것이다.이때 등불을 켜서는 안된다. 무덤의 왼쪽이나 오른쪽 어떤 쪽이든 한쪽에 가서 시체가 누워 있는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세 번 구르는 것이다. 그때 환자는 ‘내 풋심 떼어가거라!’를 세 번 외치면서 거꾸로 구른 뒤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는데,아무리 무서워도 뒤돌아보면 안된다.만약 뒤를 돌아보면 떨어졌던 풋심이 되붙어서 다시는 안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과연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으스스한 그 처방전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류계춘 선생의 삶은 그의 주검이 매장된 묘소와 함께 이 지역 농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매우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고 있었다. 선생은 진주농민들을 선동하여 민란을 주도한 책임으로 다른 아홉명의 동지들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졌다. ●80년대 ‘진주농민항쟁’ 으로 정정… 명예회복 선생의 증손자 류일렬씨는 진주 변두리에서 작은 꽃집을 경영하며 산다고 했다.일렬씨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집안 사람들은 반역자의 후손으로 찍혀서 세상 한가운데 드러난채 살 수 없었다고 한다.그래도 일렬씨 아버지는 류계춘 선생의 뜨겁고 적극적이었던 삶을 죄인으로 몰아붙인 조선후기 양반들의 태도가 더 나빴다는 신념을 꺾지 않았었다. 열린 세상이 오면 류계춘의 삶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그 희망이 실현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자식들에게 비겁한 삶을 살지 않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진주민란이라는 말이 진주농민항쟁으로 바뀌게 되는 날이 왔다. 민란을 주도한 반역자 류계춘을 농민항쟁을 이끈 농민혁명가로 고쳐 부르자는 민주화의 추세로 마침내 문화류씨(文化柳氏) 좌상공파(左相公派)의 족보에 류계춘 선생의 이름이 오르면서 업적을 기리는 기록이 새롭게 추가되기도 했다. 류일렬씨는 증조부 산소를 참배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무덤 앞에 섰다.그의 표정이 흔들렸다.그 흔한 비석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초라한 무덤을 누가 저 격렬했던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농민혁명가의 무덤으로 보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작은 돌 하나도 깎아 세우지 못할 만큼 일렬씨 집안이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비석을 만들어 세우자는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때마다 일렬씨 아버지의 태도는 강직했다.그 따위 돌 하나 깎아 세워달라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아니셨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잔혹한 농민 탄압,가련한 농민의 살점과 피를 짓밟고 올라서서 누린 양반관료들의 교만과 위선으로 꽉찬 모순을 온몸으로 질타하면서 농민도 인간임을 절규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이 과연 후손들에게 뭘 바라시겠느냐고 되물었다.빛나는 비석에다 화려한 문장으로 죽은 시대의 허위의식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단청 입힌 사당이며 으리으리한 기념관을 세워 살아남은 자들의 비겁과 죄악을 은폐시키려 하기보다는,역사 앞에서 한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싶어하지 않겠느냐고 했단다.일렬씨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옳다고 믿고 있었다. ●흔한 비석 하나 없는 쓸쓸한 혁명가의 무덤 그날 류계춘 선생 묘소 앞에서 그가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지은 것은 묘소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가진자들의 별장이 언젠가는 선생의 무덤을 딛고 올라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뒤에.일렬씨는 이 시대 농촌,농업,농민의 삶이 시장논리와 자본의 논리에 밀린 채 무시되어 짓밟히는 것과 류계춘 선생 동지들의 농민항쟁 정신이 왜곡,무시되는 점이 닮아보인다며 한숨지었다. 류계춘 선생과 혁명동지들을 진주형장에서 참수하여 그 목을 진주 남강 건너는 나루터와 장터에 높이 매달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에 반역하면 누구든 저렇게 되고만다는 것을 보여준 그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였던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 농민과 농업의 위기,농촌문화의 황폐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진주농민항쟁같은 역사의 몸부림이 필요한 것일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4)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4)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上)

    류계춘(柳繼春,1830∼1862).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권 노래이자 혁명가(革命歌) 노랫말을 순 한글로 짓고 곡을 붙여 널리 퍼뜨렸으며,농사꾼이 사는 동네라면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사금파리 뾰족뾰족 박힌 골목길을 내달으면서 불렀고,그보다 조금 더 큰 조무래기들은 마을 타작마당이나 마을 앞 빈 논바닥에서 뛰놀며 이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희미한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사랑방에서 새끼줄을 꼬는 머슴들이나,긴긴 겨울밤 무명실 잣는 물레질로 길쌈하는 아낙들도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를 부를수록 마음 속에 시퍼렇게 응어리진 일들이 새삼스레 아파오기도 하고,끝 소절에 잔뜩 힘을 넣어 큰소리로 부르면 그 혹독하고 두려운 것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도 같았다. 한번 입에 올린 뒤엔 좀체로 떠나지 않는 이 노래를 두고 사람들은 이상한 노래라거나 귀신이 든 노래라고도 했다.이 노래를 만든 류계춘은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수백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일약 인기 작곡가에다 돈방석에 올라 앉는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1862년 민란주도 ‘참수형’ … 족보에서도 삭제돼 한국 농민의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아보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그의 이름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또한 한국 농민사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물어도 그를 불러 보인다.그는 경상도 진주사람이었다.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 진주(晋州) 망건(網巾) 또 망건 짝발이 휘양건(揮項巾) 도래 줌치 장두(狀頭) 칼 머구밭에 덕서리 칠팔 월에 무서리 동지 섣달 대서리.”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또는 ‘언가(諺歌)’라고 부르는 이 노래를 류계춘이 지었다고 단정지은 것은 그가 계획하고 주도한,1862년 ‘진주농민항쟁(일명 임술 진주민란)’에 관한 당시 조선 정부 수사 기록을 통해서였다. 이 노래의 특징은 노랫말이 지닌 고도의 은유와 상징에 있다.이 노랫말 속에는 진주농민항쟁의 원인과 역사가 밀도 높게 응축되어 있다. 빼어난 노랫말 속에는 풍부한 시적 감성과 치열한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는데,이 노래의 두 박자 리듬에서 우러나는 근원적인 힘과 조화를 이루면서 역동적인 행진곡으로서의 맛까지 곁들이고 있다. 지난 5일 경칩날 류계춘 선생의 묘소가 있는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당리를 찾아 갔다.선생의 증손자인 류일렬(柳一烈)씨가 동행해주었다. 마을 노인들에게 선생의 묘소를 묻자 대뜸 “아,그 풋심 떼던 묏등”이라고 대답한다.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농촌 사람들은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풋심’이라는 병을 앓곤 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높은 열이 나는 특징을 지닌 병으로서 3일열 또는 4일열 등으로 구분하는데, 심하면 빈혈이 생기고 황달을 일으키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학질(말라리아)이라고 부르는 이 질병을 농촌 사람들은 흔히 풋심이라 했다. 뚜렷한 처방약이 없어서 한 번 걸리면 한달 이상은 예사로 고생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사흘이나 나흘 간격으로 재발하기 때문에 몇 차례 재발한 고열로 고생한 사람들은 귀신이 든 것이라고 여기면서 푸닥거리를 하는 등 안타까운 시달림을 겪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섬뜩한 처방전이 흘러나왔다.어떤 잘못으로 인하여 형장에서 참수된 자의 무덤을 찾아내어 마지막 치유 방법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즉, 풋심을 앓는 환자가 캄캄한 한밤중을 이용하여 참수된 자가 묻혀 있는 무덤으로 가는 것이다.이때 등불을 켜서는 안된다. 무덤의 왼쪽이나 오른쪽 어떤 쪽이든 한쪽에 가서 시체가 누워 있는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세 번 구르는 것이다. 그때 환자는 ‘내 풋심 떼어가거라!’를 세 번 외치면서 거꾸로 구른 뒤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는데,아무리 무서워도 뒤돌아보면 안된다.만약 뒤를 돌아보면 떨어졌던 풋심이 되붙어서 다시는 안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과연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으스스한 그 처방전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류계춘 선생의 삶은 그의 주검이 매장된 묘소와 함께 이 지역 농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매우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고 있었다. 선생은 진주농민들을 선동하여 민란을 주도한 책임으로 다른 아홉명의 동지들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졌다. ●80년대 ‘진주농민항쟁’ 으로 정정… 명예회복 선생의 증손자 류일렬씨는 진주 변두리에서 작은 꽃집을 경영하며 산다고 했다.일렬씨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집안 사람들은 반역자의 후손으로 찍혀서 세상 한가운데 드러난채 살 수 없었다고 한다.그래도 일렬씨 아버지는 류계춘 선생의 뜨겁고 적극적이었던 삶을 죄인으로 몰아붙인 조선후기 양반들의 태도가 더 나빴다는 신념을 꺾지 않았었다. 열린 세상이 오면 류계춘의 삶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그 희망이 실현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자식들에게 비겁한 삶을 살지 않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진주민란이라는 말이 진주농민항쟁으로 바뀌게 되는 날이 왔다. 민란을 주도한 반역자 류계춘을 농민항쟁을 이끈 농민혁명가로 고쳐 부르자는 민주화의 추세로 마침내 문화류씨(文化柳氏) 좌상공파(左相公派)의 족보에 류계춘 선생의 이름이 오르면서 업적을 기리는 기록이 새롭게 추가되기도 했다. 류일렬씨는 증조부 산소를 참배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무덤 앞에 섰다.그의 표정이 흔들렸다.그 흔한 비석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초라한 무덤을 누가 저 격렬했던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농민혁명가의 무덤으로 보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작은 돌 하나도 깎아 세우지 못할 만큼 일렬씨 집안이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비석을 만들어 세우자는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때마다 일렬씨 아버지의 태도는 강직했다.그 따위 돌 하나 깎아 세워달라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아니셨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잔혹한 농민 탄압,가련한 농민의 살점과 피를 짓밟고 올라서서 누린 양반관료들의 교만과 위선으로 꽉찬 모순을 온몸으로 질타하면서 농민도 인간임을 절규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이 과연 후손들에게 뭘 바라시겠느냐고 되물었다.빛나는 비석에다 화려한 문장으로 죽은 시대의 허위의식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단청 입힌 사당이며 으리으리한 기념관을 세워 살아남은 자들의 비겁과 죄악을 은폐시키려 하기보다는,역사 앞에서 한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싶어하지 않겠느냐고 했단다.일렬씨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옳다고 믿고 있었다. ●흔한 비석 하나 없는 쓸쓸한 혁명가의 무덤 그날 류계춘 선생 묘소 앞에서 그가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지은 것은 묘소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가진자들의 별장이 언젠가는 선생의 무덤을 딛고 올라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뒤에.일렬씨는 이 시대 농촌,농업,농민의 삶이 시장논리와 자본의 논리에 밀린 채 무시되어 짓밟히는 것과 류계춘 선생 동지들의 농민항쟁 정신이 왜곡,무시되는 점이 닮아보인다며 한숨지었다. 류계춘 선생과 혁명동지들을 진주형장에서 참수하여 그 목을 진주 남강 건너는 나루터와 장터에 높이 매달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에 반역하면 누구든 저렇게 되고만다는 것을 보여준 그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였던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 농민과 농업의 위기,농촌문화의 황폐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진주농민항쟁같은 역사의 몸부림이 필요한 것일까?
  • ‘학생연대 21’ 이상현 차기의장-재벌 외손자 비운동권 학생연합 이끈다

    대학가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연합체인 ‘학생연대 21’ 차기 의장에 LG그룹 창업주 일가의 외손자인 이상현(27)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선출됐다. 이씨는 21일 경남 마산 경남대에서 열린 ‘학생연대 21’의 제2기 의장 선거에 단독 출마,21개 참가 대학 투표인단으로부터 전원 찬성표를 얻어 의장으로 공식 선출됐다. 이씨는 오는 8월 말까지 임기 6개월의 2기 의장을 맡는다. LG그룹 창업주 일가인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외손자로 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씨는 지난해 ‘학생복지 증진’을 기치로 이 대학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학생연대 21’에는 경남대·광주대·숙명여대·전남대·한양대 등 21개 대학 총학생회와 ‘외인시대’(한국외대) ‘청년봉사단’(울산대) 등 20여 대학 비운동권 단체 등 40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한총련 “25일 탄핵반대 동맹휴업”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19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다.”면서 앞으로 동맹휴업과 거리 선전전 등을 통해 ‘탄핵반대 대학생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백종호 한총련 의장은 “대통령 탄핵은 보수세력의 ‘정권 찬탈’이며 ‘민의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촛불 시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득권 세력의 정권찬탈 음모를 분쇄하는데 대학생이 일조하겠다.”고 강조했다.한총련은 오는 25일과 다음달 2일 두 차례에 걸쳐 전국적인 ‘동맹휴업’을 선포하는 한편 20일 ‘탄핵무효 100만인 촛불집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한총련은 또 ‘4·15총선 심판을 위한 전국 대학생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비 운동권 학생조직인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과 연대할 예정이다. 유영규기자 whoami@˝
  • 한총련 의장도 ‘탄핵 격랑’

    “중대한 사안에 전체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으니 탄핵사유가 충분하다.”,“정당한 대의체제를 가동했는데 탄핵은 너무 극단적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또 하나의 ‘탄핵정국’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17일 오후 한국외국어대 학생회관에서는 이 대학 총학생회장인 제12기 한총련 백종호 의장측과 백 의장의 탄핵서명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비상대책위측이 공개토론회를 갖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이 대학 비운동권 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비대위측은 백씨가 한총련 의장으로 출마하는 과정에서 “학내 여론을 수렴하지 않았다.”며 강력 반발해 왔다. 이날 3시간 남짓 진행된 토론회는 비대위측이 ‘탄핵국회’를 거론하며 백 의장측을 비판하는 등 과열양상을 보였다.일반 학생들까지 참여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등 100여명이 토론회에 참여했다.비대위측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은 다수당의 횡포이고 민의에 반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백 의장의 의장 출마과정이 그것과 뭐가 다르냐.”고 주장했다.그러자 백 의장측은 “부패한 국회의원들과 비교하다니 학생운동에 참여한 투사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맞받았다.이어 백 의장측이 “지금과 같은 탄핵정국에서 젊은이들이 조직적으로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총련의 역할론을 제시하자 비대위측은 “대통령의 탄핵문제를 본인의 탄핵문제로 끌어들이는 것이 정치권의 ‘물타기’ 행태와 똑같다.”고 비판했다. 비대위측은 한총련 의장으로 출마하려면 먼저 총투표 등을 통해 본인을 총학생회장으로 선출한 한국외국어대 전체 학생들의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총련의 위상이 종전과 다른 데다 학내 문제와 노선에 대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시각 차이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백 의장측은 지금까지 다른 대학 의장 출마자의 관례대로 단과대·과 학생회로 이루어진 대의체제의 의결을 거쳤다고 밝혔다.한국외국어대에서 한총련 의장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논쟁은 더욱 뜨거웠다. 이날 토론회는 비대위측이 의장 및 총학생회장 사퇴,한총련 업무의 분리,전 학생 대상 설문조사,총학생회 집행부의 4·15 총선활동 금지 등을 요구한데 대해 백 의장측이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비대위측은 백 의장측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탄핵 발의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했다. 앞서 백 의장은 지난 1월 한총련 의장에 당선됐으며 비대위측은 이를 탄핵사유로 규정,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재적인원수 7300여명 가운데 1500여명의 불신임 서명을 받았다.학생회칙에 따르면 재적인원의 10% 이상이 불신임하면 탄핵을 발의할 수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盧탄핵안 가결-탄핵심판절차] 盧·주선회 ‘악연’

    ‘검사와 피의자’에서 ‘재판관과 피소추인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노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은 헌법재판소 주선회 재판관의 ‘인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16년 전 주 재판관이 검사일 때 노무현 당시 변호사가 시국사건으로 구속됐던 것이다. 당시 노 변호사는 지난 81년 부산의 운동권 학생 30여명이 좌경학습을 했다는 이유로 빚어진 부림사건 등 80년대 시국사건의 변론을 도맡아 ‘시국사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노 변호사는 지난 87년 9월 시위과정에서 숨진 대우조선 이석규씨의 보상문제와 시체 부검에 관여했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었다. 노 당시 변호사는 바로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노 변호사가 구속됐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당시 노 변호사의 구속영장 청구를 지휘했던 부산지검 공안부장이 바로 주 재판관이다. 노 변호사는 대우조선 사건 이전에 부산지검이 3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정도로 검찰의 ‘눈엣가시’였다.3차례 청구된 영장은 모두 기각돼 검찰을 곤혹스럽게 했었다. 실제 검찰은 노 변호사의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부장판사의 집을 찾아가 영장 발부를 요청하는 ‘편법’을 쓰다 거절당하자 손을 들었던 상황이었다.따라서 노 변호사의 구속에는 주 재판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출신에 진영이 고향이고,주 재판관은 진영 부근인 함안 출생에 마산상고를 졸업했다.나이는 노 대통령이 두살 위다.이런 저런 이유로 노 대통령과 주 재판관의 ‘인연’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이날 주 재판관은 “주심은 여러가지 보고를 담당하는 등 절차적 의미를 가질 뿐이며 특별한 의미는 없다.”면서 “향후 절차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심판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동성결혼’ 美대선 변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동성결혼 문제가 미 대선정국의 핫 이슈로 등장했다.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최근 뉴멕시코에서도 동성커플에 결혼증명서를 발급하려 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5일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개정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민주당은 병역 의혹 등을 동성결혼 문제로 무마시켜 정국을 전환시키려는 대선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결합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일개 주나 시의 일부 운동권 판사와 지방 관리들이 결혼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는 미 전역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결정적이고 민주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앞서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4일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권고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의회가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결혼으로 정의하는 헌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킨 뒤 각주에 보내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부시 대통령은 남성과 여성의 결혼이 문명의 가장 기본적 제도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만이 결혼의 의미를 영원히 바꾸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부시 대통령은 각 주의 의회가 결혼 이외의 다른 제도를 정의할 수 있도록 선택할 여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결혼은 아니지만 버몬트주에서 허용하는 ‘시민적 결합’을 묵인할 수 있다는 일종의 정치적 배려다. ●보수세 결집을 위한 대선용 카드인가? 부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은 즉각 환영했다.워싱턴에 있는 보수적 법률사무소 ‘법과 정의를 위한 미국 센터’의 제이 세쿨로 대표는 “결혼을 남녀간 제도로 국한하려는 사람들을 결집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텍사스에 기반을 둔 가족옹호그룹 ‘자유시장재단’의 켈리 색켈포드 회장도 “결혼 제도를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없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24일 열린 공화당 주지사 모임에서 “케리 후보는 각종 이슈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이 직접 비난한 다음날 나왔다.이 때문에 이라크 정보왜곡,실업문제,병역 의혹 등의 현안에 물타기하면서 케리 후보가 동성결혼 등 각종 이슈에 분명한 선을 긋지 않는다는 점을 공략하기 위한 일종의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공화·민주 양당의 현 의석분포에선 헌법개정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헌법에 차별적인 요소를 담을 수 없다” 민주당의 하원 지도자 낸시 펠로시는 “과거 어느 헌법 개정도 특정 그룹을 차별화하는 데 사용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테리 매컬리프 위원장도 “게이나 레즈비언 가족에 대한 공격을 선거전략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헌법개정에 반대할 뜻을 밝혔다.케리 후보는 “정치적 어려움에 빠진 대통령이 대선정국에 들어가면서 먼저 헌법을 개정하려는 데 미국민은 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케리 후보도 동성결혼에는 반대한다. 동성커플에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우익을 개입시키려는 발표라며 반발했으며 각종 게이 단체들 역시 대대적인 반대운동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mip@˝
  • 송두율교수, 국보법 위헌심판 신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24일 ‘(반국가단체에서)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보법 제3조1항2호가 위헌이라며 위헌법률 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이대경) 심리로 열린 이날 속행 공판에서 송 교수 변호인단은 “이 조항은 ‘간부’의 범위와 ‘지도적 임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의 핵심인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변호인단은 또 “통일부가 발간한 ‘2004 북한개요’에 따르면 북한주민은 2237만명,조선노동당원은 322만명,하부조직은 21만개에 이른다.”면서 “이 조항에 따라 이들을 모두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면 헌법상 보장된 평화통일 원칙에 정면 배치될 뿐 아니라 한민족인 북한주민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불가피해진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송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이 80년대후반 학생 운동권과 북한바로알기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기 위해 정세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을 다음달 9일 공판의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盧대통령 취임 1년]靑참모진 힘의공백 ‘선점경쟁’

    청와대에 ‘힘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주요 참모진간 ‘견제와 균형’ 구도는 지난 ‘2·13 청와대 개편’으로 깨졌다는 분석이다. 문희상 전 비서실장은 재임 시절 기자들에게 ‘시스템이 2인자’라며 “나와 유인태 정무수석,문재인 민정수석,정찬용 인사수석이 물고 물리는 관계로 한치도 봐주지 않고 서로 견제한다.”고 언급했다.모두 운동권 출신들로 시민단체 등에서 일했던 ‘강골’이라 주장들이 강했다는 풀이였다. 그러나 정 인사수석을 빼고는 모두 바뀌었다.김우식 신임 비서실장은 대학 총장 출신으로 권력 내 정치력은 확인되지 않았다.박정규 민정수석은 검찰 출신으로 정치적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정무수석은 공석이다.외교보좌관도 공석으로 한 달을 넘겼다.비서관급은 9개월째 공석인 제1부속실장을 비롯,정무기획·공직기강·사정 등 주요 자리가 공석이다. ●김 실장·박 민정 정치력 관건 청와대 내 창업공신들의 권력공백을 ‘공략’하고 있는 인물로 이병완 홍보수석이 지목되고 있다.이 수석은 지난해 8월 홍보수석에 임명된 이후 청와대 내 ‘부(副)비서실장’이라고 불렸다.최근 이 수석은 정무수석실을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맡아 ‘왕(王)수석’ 반열에 들었다는 평가다. 최근 홍보수석실 단독기획인 취임 1주년 기념 언론들과의 연쇄 인터뷰 일정에 대해 청와대 안팎에서 잡음이 있지만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도 이 수석의 입지 강화와 연관되어 있다. 청와대 내에서 이 수석의 ‘독주’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그러나 견제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김 비서실장이나 박 민정수석이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총선을 앞둔 어수선한 시기에 ‘인화’가 강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또 핵심 ‘창업공신’이었던 ‘386’들은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떴거나,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의 사퇴로 구심점을 잃은 채 자체 업무에 매달리면서 ‘때’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정찬용 인사수석의 힘이 세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총선 전까지 호남민심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 배려가 불가피하고,그렇다면 정 수석이 ‘힘센 수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86’ 중심추 이호철·윤태영 가능성 ‘386’의 맏형격인 이호철 민정비서관과 ‘청와대의 입’인 윤태영 대변인이 나서야 한다는 청와대 직원들도 적지 않다.한 관계자는 “이 비서관이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 하여금 검찰과의 관계를 참여정부의 원칙에 맞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중심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마찬가지 논리로 이 수석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윤 대변인이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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