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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만혼/우득정 논설위원

    고교 동기회 총무가 보내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의 대부분은 부음 통보다. 그래서 그는 ‘저승사자’로 불린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결혼 통보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것도 본인 결혼이다.50을 넘긴 신랑도 40대 중반인 신부도 초혼이란다. 30여년 전 대학시절 유난히 키가 작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루탄이 교정을 뒤덮던 날 그는 땀에 흠씬 젖은 채 캠퍼스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20여년 후 운동권 출신 선배는 그 친구가 아직도 노동운동 일선에서 맹활약 중이라고 소식을 전했다. 유신과 5공 초 경찰에 붙잡혔을 때 동료 대신 그 친구의 이름을 댔다며 미안해했다. 언젠가 그 친구가 장기 투숙 중인 여관에서 만났을 때 삶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결혼식에 앞서 미리 만나 축의금을 전했다는 고교 동기의 전언.“그 친구 요즘 몸이 자꾸 아픈가봐. 신부는 한때 현장에서 만났던 동료라나.” 부딪히고 깨어지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에 끊임없이 항거했던 그 친구가 이제라도 자그마한 행복을 맛봤으면 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천署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천署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소개팅 시켜드릴까요?” 권인숙 명지대 교수의 거침없는 활달함에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좋지요. 그런데 남자들이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요.” 막히지 않고 바로 응답이 있기에 다시 물었다.“어떤 타입이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인기를 모은 TV드라마에서 남장 여자로 나왔던 윤은혜 같이 작고 예쁜 남자가 좋다고 했다. 예전에는 홍콩배우 장국영의 팬이었다면서…. ●부천서 사건, 이젠 담담하다 권 교수에게서 이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아픔, 투사적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169㎝의 후리후리한 키와 얼굴 전체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 그리고 학문의 열정이 넘쳤다.TV드라마를 즐기고, 소주보다는 와인이 입에 맞는다는 당당한 이혼녀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릴뤼크는 불행에 맞서는 인간의 치유능력을 분석했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약간 뒤로 물러서 객관적인 연극처럼 대하면 곧 견딜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그의 연구결과. 권 교수의 분위기가 그랬다.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 부천서 사건을 그녀는 타인의 경험인 듯 담담하게 얘기했다.“(과거의 아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학생·노동운동이) 당시에는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했고, 그 사건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해자 문귀동에 대해 용서하고 말고, 그런 차원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다시 학생운동하면 남성과는 안 하겠다 권 교수는 20년 전의 운동권 활동 역시 ‘학자적’으로 객관화시켰다. 그녀의 현재 전공 분야는 여성학. 그녀는 “여성학 공부는 20대 이후 내가 내린 선택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했다.“운동권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남성들과 같이 안 했을 겁니다. 다른 방법으로 했겠지요. 서구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했다가 3∼4년 지난 뒤 반발하거나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90년대 중반 연세대 성(性)정치문화제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타나더군요.” 80년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운동권 토양이 그녀는 영 못마땅한 듯싶었다. 여성을 남성화시키면서도 남성의 보조로 여겼던 풍토. 화장 안 한 맨얼굴, 치마는 안 되고 청바지, 남녀 구분 없는 형 호칭, 욕과 담배·술…. 권 교수는 “그때도 저는 담배는 안 피웠어요.”라며 웃었다. “이기주의보다 개인주의가 나쁘다는 게 당시 운동권의 분위기였습니다.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위계적·서열적 집단문화가 형성되었고, 폭력을 효율적 수단으로 본 것이죠.” 폭력적 수단의 장단점을 따지지 않은 게 80년대 운동권의 실수라고 지적했다.“평화적 수단을 찾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일본은 핵무기에 의해 전쟁에 졌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평화적 수단의 힘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 정치 안 한다 자연스레 화제는 386 남성 정치인들로 넘어갔다.“정치 디테일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아요. 기본호흡이 너무 달라서….” 권 교수는 일단 발을 빼려 했다. 집요한 질문에 “저 사람들이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은 합니다.”고 운을 떼었다.“386들이 잘 해보려고 했는데 상상력과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사회 전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성찰이 있어야 했습니다.” 80년대 운동권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30%. 남성 386들의 활발한 정계진출에 비해 여성 386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존재감이 없다. 권 교수에게 민주화의 공로자로서 명성을 업고 정치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학문의 영역을 넘어 실천의 영역에서 여성 권익 신장에 앞장서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살짝 긁어 보았다. 그러나 “없어요.”라고 짧고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전국구 의원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사양했다고 했다. 그리고 권씨 종친회에서도 국회의원 출마 얘기가 있었지만 한 귀로 흘렸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부담스럽게 살고 싶지 않아요.” 교수로서 가르치고, 책·논문 쓰는 일에만 몰두하겠다고 강조했다.“정치뿐 아니라 다른 사회활동, 시민단체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걸요. 중학생 딸과 집에 있는 게 좋아요.” 권씨는 1998년 이혼했다. 운동권 동료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가부장적이더라고 했다.“전 남편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네요.” 현재 대선주자 가운데는 한명숙 전 총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 1명, 여성 총리 1명보다는 국회의원, 장관, 행정직 안의 비율이 늘어나 여성이 정치세력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적 집단문화 탐색 하겠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가 만연하면서 여성이나 소수자의 인권이 억압되는 과정을 집중 탐구하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집 ‘선택’에 이어 2005년에는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통해 군사주의 타파를 역설했다. 얼마전 펴낸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는 한국출판인회의에 의해 ‘8월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적 문화, 군사주의 문화가 횡행하는 주요 요인으로 징병제를 꼽았다.“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전통과 70,80년대 군인들이 근대화, 현대화를 주도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군대 복무 경험의 영향이 큽니다. 여성이 남성들의 군대 문화에 따라가지 말고, 독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징병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여성 학자로서 목소리를 낼겁니다.” 성차별적인 집단문화와 함께 진정한 남자다움은 무엇인지를 탐색해보겠다고 했다. 이목희 논설위원 사진 도준석기자 mhlee@seoul.co.kr
  •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샐러리맨→대선…신화를 쓰다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샐러리맨→대선…신화를 쓰다

    소년은 가난했다. 끼니가 걱정이었다. 철도 들기 전, 어머니를 도와 좌판을 벌였다. 풀빵과 뻥튀기를 팔면 입에 풀칠은 했다. 주로 보리를 삶아먹거나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웠다. 상한 음식은 물에 씻어 먹었다.‘굴껍데기처럼’ 들러붙은 가난을 ‘이겨낸’ 그 소년이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됐다. 이명박(李明博). 그는 “신화는 없다.”고 1995년 책까지 썼지만 남들은 그를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한다. 이명박 후보는 1941년 12월19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충우(1981년 작고)씨와 어머니 채태원(1964년 작고)씨 사이에서 4남3녀(귀선, 상은, 상득, 귀애, 명박, 귀분, 상필)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 후보가 네 살 때인 1945년 온 가족이 귀국하는데 배가 침몰했고, 재산이란 건 모두 바다속에 가라앉았다. 고된 삶이 시작된 때다. 가족은 아버지의 고향 포항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곧 6·25전쟁이 일어났고, 이 후보는 눈 앞에서 바로 위 누나와 동생을 잃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가세는 여전했다.‘포항의 수재’라던 둘째 형, 지금의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집안의 희망이었다. 자연스레 집에선 경제적인 이유로 이 후보의 고교 진학을 말렸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한 뒤 야간 동지상고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졸업할 때까지 1등을 지켰다. 상득이 형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온가족이 서울로 향했다. 이 후보도 고교 졸업을 앞둔 1959년 12월, 상경했다. 새 보금자리는 이태원 판자촌. 가족이 노점을 했다. 새벽마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던 그는 문득 ‘고졸’보다 ‘대학 중퇴’가 취직에 도움일 되리라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책을 얻어 공부했다.1961년 고려대 상과대학 합격증을 받았다. 대학생이면서도 이태원 시장에서 쓰레기를 채웠던 그는 단과대 학생회장 신분으로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했다.6개월 옥살이를 한 뒤 졸업했지만 ‘운동권 출신’은 취직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정부가 부당하게 취직을 방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덕에 1965년 ‘중소기업’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지금도 그는 말한다.“종업원이 90명뿐인 중소기업을 16만명의 대기업으로 키우는 데 내가 있었다.”고. ‘현대맨’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불도저가 자꾸 고장나 말썽을 부리자 밤새 해체하고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힌 뒤 텃세를 부리는 기술자에게 본때를 보인 일화가 유명하다. 지독한 ‘일벌레’였다. 1970년 여섯살 연하인 김윤옥 여사와 결혼하던 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는 ‘당연히’ 오전까지 일하고 오후에야 식장으로 갔다. 그러니 입사 5년 만인 스물 아홉에 이사가 됐고,12년만인 1977년엔, 만 서른다섯살 나이로 ‘사장’이 됐다. 젊은 나이에 ‘잘나가니’ 말이 많았다 한다. 서른살도 안 된 김 여사가 딸 셋을 데리고 시장에라도 다녀오면 “현대건설 사장이 ‘세컨드’랑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사모님’은 대개 ‘50∼60대’였던 시절이라 생긴 해프닝이었다. 잘나가던 경영인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1992년 민자당에서 ‘전국구’로 공천을 받으면서다. 정치인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1995년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고,1996년 총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물리치고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당선됐지만 선거비용 초과지출 혐의로 당선 무효판정을 받았다. 선거법 재판을 받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결국 2002년 ‘삼수’끝에 서울시청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제 정치인으로 또 다른 ‘신화’를 쓰기 위해 도전장을 냈다. 이 후보는 목표를 세우면 집요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무서운 추진력에 대해 김윤옥 여사가 설명한 일화다. 어느 정월엔가 온 가족이 유명산을 찾았다. 그런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아주버님’(이 후보의 형)까지 다른 식구들이 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갔다. 그러나 이 후보만 혼자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눈덮인 정상에 올랐다. 김 여사는 “한 번 하면 끝까지 해야지,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다.”며 웃었다.3번 도전해 서울시장이 됐던 그가 이제는 대통령에 도전한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범여권 낙관·비관 교차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뽑히자 범여권에선 낙관과 비관이 교차했다. 겉으로는 “유리해졌다.”는 반응 일변도였지만, 사석에서는 “불리해졌다.”는 분석도 감지됐다. 전략통인 민병두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이 후보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상대”라는 반응을 보였다. 민 의원은 “지금까지 나온 이 후보의 의혹은 참아 주겠지만 더이상 한계를 넘어서는 비리가 드러나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게 일반적인 민심”이라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성수대교 지지율”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규의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도 “지난 2002년의 ‘이회창 대 비(非)이회창’구도처럼 전선이 ‘이명박 대 비 이명박’으로 단순해져 오히려 선거전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민주신당 관계자는 “당내 경선에서 나온 의혹만 갖고도 이 후보가 그토록 휘청거렸는데, 본선에선 어떻겠느냐.”고 자신했다. 특히 범여권의 공식라인은 앞으로 이 후보 의혹의 본격 검증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후보의 당선을)축하한다.”면서도 “이 후보의 모든 의혹은 살아 있다. 도덕성과 비전을 철저하고 당당하게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도곡동 땅,BBK문제 등 제기된 의혹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된 것이 없다.”면서 “한나라당내 검증은 연습에 불과하고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국민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이 후보가 국민의 검증망을 빠져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수도권의 386 운동권 출신 의원은 “이 후보는 수도권과 젊은층, 화이트칼라 등 전통적인 범여권 지지층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대선은 결국 중도표를 누가 더 많이 끌어 오느냐가 승패의 관건인데, 이 후보는 영남·보수층뿐 아니라 중도층에서도 지지를 확보하고 있어 불리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후보의 온갖 의혹에 대한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축하 인사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은 뒤 “경선에서 다른 후보로부터 ‘본선 완주가 불가능한 후보’,‘천추의 한이 될 후보’라는 평가를 받은 이 후보의 마지막 심판은 민노당이 맡겠다.”고 별렀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광장] 다홍치마는 이제 잊자/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홍치마는 이제 잊자/함혜리 논설위원

    사람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체적 매력이 훌륭한 설득의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홍치마 효과다.‘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들은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에게 우선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을 마치 하나의 미덕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위험수위를 한참 넘어섰다. 외모가 개인간의 우열은 물론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름답고, 잘생긴 연예인들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너도, 나도 성형외과 문을 두드린다. 정치권도 외모지상주의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정치인들 입장에서 ‘정치인의 이미지 변신은 무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엉뚱한 데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아서다. 정치인들이 확 바뀐 모습으로 나타나 주목을 끄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쌍꺼풀 수술과 보톡스, 헤어스타일의 변화 등이 단골 메뉴다. 헤어스타일의 예를 들어보자. 한나라당 경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오랫동안 핀으로 고정시킨 올림머리를 고수했다. 박 전 대표는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된 올초 올림머리 대신 전체적인 웨이브를 주면서 늘어뜨리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은 훨씬 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서 탈피하겠다는 과거와의 단절 의지도 엿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박 전 대표는 올림머리로 돌아왔다. 자기 변화를 포기한 것인지, 고려시대 공주 같은 이미지가 그래도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범여권 후보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수염도 한동안 화제였다. 손 후보는 2차 민심대장정을 마친 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을 그대로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운동권이지만 ‘경기고-서울대’출신으로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것이 약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손 후보는 수염을 통해 서민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수염이 여성유권자들에게는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신경이 쓰인 탓인지 지난 9일 대선출정식에는 턱수염을 말끔하게 깎고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웨이브 퍼머로 머리에 힘을 준 상태였다. 젊고 힘있는, 그리고 섹시한 이미지를 겨냥했겠지만 어딘지 어색했다. 정치인들이 이미지 변신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외형적인 변화가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톰머리 대신 머리를 짧게 잘라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하고 결국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했다. 박 전 대표와 손 후보의 경우도 외형적인 변화가 오히려 일관성있는 이미지 구축을 방해했다고 본다. 외형적인 변화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보다 자신의 정책적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외모의 변화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결국 허상일 뿐이다.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결국에 가서 유권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치밀하고, 분석적이며,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정책적 메시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이제 겉만 번지르르한 다홍치마에 현혹되지 않는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親盧 탑승… 민주신당 다자대결로

    개문발차(開門發車)한 대통합민주신당은 손학규·정동영이라는 범여권 상위 주자들이 탑승하고 있다.비노(非盧) 승객들을 태운 이 ‘버스’에는 천정배 의원도 앉아 있다. 민주당의 추미애 전 의원이 곧 합류할 예정이고,7일에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버스에 훌쩍 올라탐으로써 ‘민주신당 버스’는 일단 5명의 주자가 경합하는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다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합류하면 친노(親盧) 주자들의 대분화도 현실화되면서 다자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은 조만간 통합 협상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한명숙·유시민까지 합류설전운(戰雲)은 앞자리에 앉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사이에 자욱하다. 손 전 지사는 정 전 의장의 ‘조직’을 경계하고 , 정 전 의장은 손 전 지사의 ‘인기’에 부심하고 있다. 손 전 지사는 여론조사 지지율의 압도적인 우위를 무기로 ‘대세론’으로 몰아간다는 전략이다. 김부겸 의원 등 9명의 의원이 조직적으로 밑바닥을 훑기 시작했다.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과 동교동계인 설훈 전 의원 등의 합류 소식은 전방위적으로 날아든다.9일로 예정된 그의 대선 출마 선언식은 그동안 구축한 조직의 위용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의장은 여론조사에서 손 전 지사에 한참 뒤져 있지만, 지난 5년간 다져온 조직이 간단치 않다. 지지율이 잠자고 있어도 측근 의원들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은, 당내 경선에서 조직을 기반으로 한 역전극의 희망 때문이다. 민주신당에 합류한 ‘김한길 그룹’과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동영 조직’이 포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선에서 정 전 의장을 위해 몸을 던질 ‘5000 결사대’가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양측은 서로를 견제한다. 정 전 의장측은 “민주신당이 ‘손학규 당’처럼 되고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반면 손 전 지사 쪽에서는 “본선에서 이기려면 경선에서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막판 개혁후보 단일화도 `꿈틀´두 주자가 앞자리에서 운전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사이 천정배 의원과 추미애 전 의원, 김두관 전 장관 등은 호시탐탐 기습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천 의원은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전략으로 막판 대역전극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들 3명의 지지율이 끝내 뜨지 않는다면 막판에 뭔가 ‘특단의 방책’을 모색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이른바 개혁후보 단일화론이다. 범여권 관계자는 “천 의원과 추 전 의원은 지난 2001년 민주당에서 동교동계에 맞서 정풍운동을 주도한 동지들로서 최근 교감을 하고 있다.”면서 “김 전 장관이 뭉쳐지면 좋은 그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셋 중 둘이 포기함으로써 한 명에게 힘을 몰아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김상연 나길회기자 carlos@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송종의와 이철

    강단 있고 일처리가 야무져 검찰 안팎의 신망이 아직도 두터운 송종의씨에게 아킬레스건은 있다. 민청학련 사건을 다룬 검찰관 경력이다. 1993년 대검 차장에 임명될 때 이철·유인태·장영달·제정구씨 등 민청학련 관련 의원들이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송씨가 직접 다룬 민청학련 피의자는 이철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 이 사장은 자서전에서 “송 검사가 수갑을 풀어주고, 담배를 권하기도 하고 빵을 사다주기도 했다.”고 적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서 원하는 거짓 진술을 받기 위함이라고 분석했지만 그렇게 적의(敵意)가 묻어나는 회고는 아니었다. 송씨는 담담하게 당시를 애기했다.“이 사장도 이제는 나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당시 이 사장은 집안이 괜찮았고, 논리보다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운동권을 리드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유인태 의원이 정교하게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송씨는 또 민청학련 사건 수사과정에서 받은 자극 때문에 역사 공부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피의자들이 “당신이 역사를 아느냐.”고 들이대는데 자존심이 상하더라고 했다. 그 직후 법무연수원에 파견가 있는 동안 각종 역사책을 통독했다. 한겨울 추운 사무실, 슬리핑백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읽은 역사책이 나중 인생살이에 도움을 주었다면서 “지내고 보니 참….”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사설] 금도 잃은 정치판 줄세우기와 줄대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모양새가 꼴사납기 그지없다. 어떡하든 세만 불리려는 각 후보진영과 보험 잘 들어 한자리 얻어보려는 군상들이 줄세우기, 줄대기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누가 인정해준 것도 아닌데, 지식인·민주화 운동권 대표를 자처하면서 선거 캠프로 몰려가는 양상에 일반국민들은 아연할 뿐이다.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줄서기는 한나라당에 이어 범여권에서도 극심하다. 스스로 소속당을 헷갈려 하는 이가 나올 정도로 정당정치는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 그제는 전·현직 대학총장을 포함한 1000여명이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를 선언했다. 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른 행동을 ‘지식인 지지선언’이란 타이틀을 붙인 게 우습다. 떼를 지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 무슨 대단한 시국선언인 양 포장하는 것이 맞다고 보나. 여론조사기관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합류한 것은 여론조사의 신빙성과 관련, 삼가는 것이 옳았다. 같은 당 박근혜 전 대표측 역시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전 시장측의 세몰이에 맞서 학생운동권 출신 150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숫자만 많으면 일단 상대를 제압한다고 생각하는가. 범여권에서도 후보진영으로 국회의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줄서기 눈치를 보느라 양다리가 흔하다. 보좌진들을 여기저기 캠프에 보내놓고 줄을 대면서 세가 모이는 쪽으로 언제라도 옮겨갈 준비를 하는 의원들이 꽤 있다. 특히 손학규 전 경기지사측은 설훈 전 의원을 영입했다. 설 전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측에 대한 허위폭로로 유죄판결을 받은 정치인이다. 손 전 지사는 설 전 의원 합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강력한 비판을 받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는 후보를 찾기가 왜 이리 힘든지, 안타깝다.
  • 홍준표·원희룡의 ‘경선흥행 말 말 말’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홍준표·원희룡 두 군소 후보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선거인단의 관심은 이명박·박근혜 ‘빅2’에게 집중되지만 홍·원 콤비가 정곡을 찌르고 감동을 남기는 연설로 잔잔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 ‘흥행사’라는 평을 받는 홍 후보는 27일 울산 연설회에서 ‘라이프 스토리’를 부각시켜 눈길을 끌었다. ‘빅2’를 향한 쓴소리는 잠시 거뒀지만 “이 후보는 일 잘하는 후보고 박 후보는 흠이 없다고 해 둘다 좋다.”면서도 “일도 잘하고 흠도 없으며 말까지 잘하는 홍준표를 놔두고 왜 고민하냐.”고 지지를 호소해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후보의 부동산 의혹을 지적해온 박 후보측을 겨냥해서는 “정계 입문 후 행적을 봐서 대통령감이냐 아니냐를 판단해야지 모든 것을 판단하면 대통령 될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운동권 출신인 원 후보는 호소력 있는 연설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원 후보는 울산에서 “미국은 위기 때마다 케네디·클린턴 등 젊은 지도자를 선택했다.”면서 “변화시대에는 위기를 정면 돌파할 젊은 피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박 두 후보끼리 벌이는 공방전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원 후보는 전날 부산에서 “두 후보들 정말 왜 이러냐.”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하는데 이렇게 싸워서는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 잘 나가는 후보, 덩치 큰 후보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 승리할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명박 초본’ 朴측 인사에 넘어가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사무소에서 부정하게 발급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후보 가족의 주민등록초본이 박근혜 후보 캠프측 핵심 인물에게 넘어간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이 초본들을 넘겨받은 박 캠프측 인물의 소재를 파악하는 대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가 ㈜홍은프레닝을 인수해 뉴타운 개발지역 인근에 주상복합건물 사업을 벌인 이유를 캐기 위해 다스 전문경영인과 홍은프레닝의 재건축 인·허가에 관여한 공무원 4∼5명을 소환, 인·허가 과정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달 7일 신용정보업체를 통해 신공덕동사무소에서 발급된 이 후보의 맏형 상은씨와 부인 김윤옥씨, 처남 김재정씨의 주민등록초본이 법무사 사무실 직원 채모씨와 채씨 아버지를 거쳐 전직 경찰공무원 권모(64)씨에게 넘겨졌고, 또다시 박 후보 측근 홍윤식(55)씨에게 넘어갔다는 진술을 15일 확보하고, 홍씨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홍씨는 1970년대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으로, 지난달 14일 박 후보 캠프의 ‘전문가 네크워크위원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유재광 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권씨측은 “평소 알고 지내던 홍씨의 부탁을 받아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아들을 둔 채씨에게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 달라고 했고, 넘겨받은 초본을 다시 홍씨에게 넘겨줬다.”고 주장했다. 권씨 변호를 맡은 강대건 변호사는 “권씨는 당시 홍씨로부터 남자 2명, 여자 1명의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아 채씨에게 부탁했고 되받은 초본을 봉투에 담겨진 채로 넘겨 이상은씨 등이 이 후보 가족이라는 것을 몰랐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반면 홍씨는 한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권씨가 자발적으로 들고 왔을 뿐 내가 먼저 부탁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이날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 수감됐다. 검찰은 이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 폭로’ 근거가 됐을 수도 있는 이 초본이 흘러간 경로가 보다 구체화됨에 따라 홍씨를 불러 부정 발급에 금품이 오갔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최재경 특수1부장은 “홍씨와 연락을 시도하고 있으며, 금명간 홍씨를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면서 “권씨와 홍씨를 조사해 누구의 부탁으로 왜 발급받았는지, 어디에 줬는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초본이 발급된 경위를 추적하는 동시에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시했던 초본의 발급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관계자들을 불러 유입 경위를 역추적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지난 13일 소환조사한 김씨가 낸 도곡동 땅 등 부동산 매입자금 조달 자료와 양도세·취득세·재산세 영수증 외에 보완 제출을 요구한 자료까지 분석한 뒤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재소환할 계획이다. 검찰은 또 국가정보원에서 이 후보 검증을 위한 TF팀이 가동돼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국정원 감찰이 끝나는 대로 자료를 넘겨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홍성규 이경원기자 cool@seoul.co.kr
  • [서울광장] 손학규의 고해를 듣고 싶다/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손학규의 고해를 듣고 싶다/이목희 논설위원

    김민환 교수는 요즘 고려대 교수의회 의장을 맡아 심심찮게 언론을 탄다. 교육부와의 내신갈등 과정에서 보수파인 듯 비치지만 소싯적에 운동권 핵심에 이름을 올렸던 이다. 김 교수가 얼마전 서울신문 칼럼을 통해 깜짝 고백을 했다.1970년대 초 군 보안기구에 끌려가 매질과 회유를 당했다. 견디다 못해 불러주는 대로 몇 명을 적었는데 첫번째가 김근태였다. 며칠 뒤 김근태가 그곳에 끌려가 많이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운동권에는 나름의 등급이 있다.“잡혀갔을 때 동료를 얼마나 보호했느냐.”가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다. 김근태 의원은 심한 고문에도 동료를 배반하지 않은 ‘전설의 운동권 투사’로 평가받는다. 김 의원에 버금가는 운동권 경력을 가진 손학규 전 경기지사. 그가 비슷한 처지에서 어땠는지, 전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범여권내 손 전 지사 견제세력과 재야 일각에서는 5·18,6·10 당시를 거론한다. 이들은 “민주화 동지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마다 영국 유학을 떠난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던진다. 필자 개인이 듣고 싶은 ‘손학규의 고해’는 민자당 입당과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탈당에 대한 변이다. 서강대 교수로 정치입문 직전의 손학규씨를 기자 몇 명과 함께 만났었다.“운동권 출신으로 왜 민자당에 가느냐.”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탈당과 관련해서는 공·사석에서 “나는 그런 정치 안해.”라는 손 전 지사의 외침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때문에 “손 전지사가 쉽게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변에 얘기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망신(?)스럽다. 곁에서 본 손 전 지사는 과거가 비교적 깨끗하고, 성품이 원만하고, 나름대로 추진력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큰 정치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종찬·이인제씨가 걸어간 굴곡의 이력이 겹치면서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잠시 잊은 것은 필자의 불찰이었다. 이제 손 전 지사는 외길 수순으로 들어섰다. 범여권의 적자(嫡子) 자리를 어떡하든 따내야 한다. 방법은 두가지. 스스로 지지율을 올려 지리멸렬한 범여권을 꿰차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구도에 의존하는 방안이다. 손 전 지사는 포트폴리오에 들어갔다. 이미지 제고를 위해 2차 민심대장정에 나섰다. 햇볕정책을 옹호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환심을 사고, 또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호남과 진보 표심 변화를 겨냥한 투자다. 이중 중도통합, 서민탐방을 내세워 자력으로 지지율을 올리려는 투자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 기대할 만한 투자는 범여권의 자식으로 빨리 인정받는 쪽이다. 그런데 입적 방법이 또 논란거리다.“DJ는 손 전 지사가 괜찮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노 대통령인데, 한나라당 후보 결정 후 손 전 지사를 비토 않도록 압박을 가하면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하는 대통합론자들이 있다. 이런 말만 믿고 DJ와 노 대통령 사이에서 눈치나 보며 낙점을 기다릴 건가. 얼굴에 탄가루 묻히는, 소극적 이벤트로는 범여권내 어정쩡한 위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에게 시급한 것은 화끈한 고해와 변신이다. 민자당 입당, 한나라당 탈당 모두 잘못한 일이다. 한번 더 변신하는 것을 진솔하게 사과하고 범여권 주자로서 정체성, 참여정부와의 관계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런 뒤 범여권 유권자가 변신을 수용할지 기다리는 게 그래도 낫다고 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Seoul Law] 인권·노동 전문포럼 김선수변호사가 주도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결정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의 변호를 맡긴 법무법인 ‘시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시민’의 대표는 김남준·이영직 변호사가 맡고 있으며, 모두 10명으로 구성된 미니 로펌이다. 고영구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선수 전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도 소속 변호사다. 2004년 탄핵심판 당시에는 이용훈(현 대법원장)·한승헌(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조대현(헌재 재판관)·문재인(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종왕(삼성 법무실장) 등 호화 멤버로 변호인단이 짜여진 데 비하면 대조적이다.‘시민’은 인권·노동 전문 로펌이다. ‘시민’은 1984년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고 조영래 변호사가 설립한 시민합동법률사무소로 출범했다. 천정배 의원과 박주현 전 청와대 참여혁신수석도 시민을 거쳤다. 변호사들은 대부분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권 출신. 노동 사건 전문인 시민이 노 대통령의 헌법소원 청구를 대리한 까닭은 노 대통령과 김선수 변호사의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선수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요청이 왔다. 시민을 택한 이유는 그 쪽에 물어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김남준 대표변호사는 “김선수 변호사가 청와대에서 근무해 노 대통령과 잘 알고, 실력이 뛰어난 점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고영구 전 원장은 건강 때문에 변호사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변호는 주로 김선수 변호사가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심판 당시 노 대통령을 대리했던 법무법인 화우의 임승순 파트너 변호사는 화우가 아닌 시민에 맡겨진 데 대해 “탄핵 때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사건은 맡지 말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화우의 강보현 대표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동기다. 강금실(현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 고문) 변호사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전 대표변호사를 맡았던 법무법인 지평 측에서는 “현 정부와 친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민은 안양에 주사무소를, 서울과 일산에 각각 분사무소를 두고 있다. 시민은 포스코·기아자동차·한미은행 등의 노동조합 법률 고문을 맡고 있다. 지난달에 금융노조의 생리휴가 유급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내 관심을 모았다. 시민은 최근 다른 분야로 영역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금속산업노조연맹과 민주노총이 산하에 별도의 법률원을 설치하면서 노동 사건 수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익의 공평한 분배를 강조하기 위해 월급제로 운영되고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길섶에서] 조카의 결혼/황성기 논설위원

    큰누나의 아들이 결혼한다. 누나는 딸을 시집 보낸 지 1년도 안 돼 아들까지 치운다. 작년에 시집간 조카가 곧 아이까지 낳는다고 하니 어느새 할아버지다. 한 다리 건넜다지만 사위에 며느리에 손자까지 보는 것이니 세월 가는 거 아무리 모른 척해도 달라지는 호칭은 피할 길 없다. 새 식구될 조카며느리가 얼마전 가족 모임에 왔다. 가정을 꾸릴 젊은 예비 부부를 보니 자리가 새롭다. 언제나 어머니를 중심으로 5남매 부부가 모이던 중년, 장년의 자리에 20대 커플이 오니 분위기도 신선하다. 이래서 세대교체란 필요한가 보다. 장가가는 조카의 기억은 각별하다. 어릴적 집에 놀러오면 운동권 노래를 가르치곤 했다. 그때는 무슨 노랜지 모르고 열심히 배우고 부르던 조카들이다. 나중에서야 왜 그런 노래 가르치냐고 누나에게 혼났지만 조카들이 “그때 즐거웠다.”고 기억해준다. 이 조카, 분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꾀었는지 조카며느리도 시집살이에 동의했단다. 약간은 곤혹스러워하는 누나 얼굴이 재밌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식구 하나 늘어나니….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열린세상] 김근태의 長征/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 김근태의 長征/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1970년대 초 학생운동 조직은 궤멸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약화되었다.60년대 중반 각 대학이 연대를 강화해 학생운동 조직이 제법 탄탄하게 구축되었지만,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른바 유신을 선포하고 저항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토벌을 자행하자 운동권 조직은 허망하게 바닥을 드러냈다.1선이 무너지고,2선도 3선도 무너졌는데 독재정권은 꺼진 불씨라도 찾아내겠다는 듯이 사찰의 눈을 번득였다. 이런 참담하고도 엄혹한 상황에서 청년 운동권 조직을 재건한 사람이 이번에 대권 포기를 선언한 김근태 의원이다. 사실은 재건이라는 말보다 창건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이전까지만 해도 운동권은 대학생이 주력이었으나 그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층을 광범하게 끌어모았다. 그가 조직한 민주화를 위한 청년연합(민청련)은 민주화운동의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 김근태에게 나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러 지금까지 부담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삼선개헌 반대운동을 하다 정학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 나는 은사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운동권과는 거리를 두고 나름대로 학업에 전념했다. 그런 나를 어느 날 군(軍)의 보안기구에서 붙잡아갔다. 영장도 뭐도 없이 차에 태워 데려가더니 ‘타도’라는 지하신문을 발행하는 데 간여하고 있지 않으냐고 다그쳤다. 터무니없는 혐의였다. 매를 맞았지만 완강하게 부인하자 그들은 덮어씌우기를 포기하고 방향을 돌려 누가 지하신문을 내는지 대라고 윽박질렀다. 전혀 모른다고 잡아떼자 마지막에는 그런 지하신문을 낼 만한 사람 100명의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러면 내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명단 첫 번째에 내가 쓴 이름이 김근태였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 이름은 뺐지만 군 관계자가 그래도 수긍할 만한 사람을 적다 보니 그렇게 됐다. 며칠 뒤에 김근태가 군 보안기구에 끌려가서 많이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좍 돌았다. 그가 억울하게 매를 맞게 한 것도 미안한 일이고, 내가 그 빌미를 제공한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부담을 크게 느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는 그가 그 무렵에 별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청년조직을 새로 짜는 데 진력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만은 빼야 할 상황에서 그의 이름을 댄 것은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간과할 수 없는 실수였다. 나는 빚을 갚을 생각을 해왔고, 이제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난데없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산업화세력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그 세력에 맞서 민주화세력을 대표할 사람으로 그만한 사람이 없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름이 나돌지만 그만큼 여러 가지를 갖춘 사람도 드물다. 이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그가 싸워보지도 않고 깃발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김근태의 후퇴가 이른바 민주진영의 재통합을 위한 대장정의 시작임을 간파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오히려 희망을 걸어야 한다.1선은 물론 3선까지도 무너진 상황에서 전에 없던 강고한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특기다. 우리 상황에 맞는 진보주의의 틀을 다시 만들고 그 틀을 바탕으로 진용을 새로 짜는 일을 그는 너끈하게 해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한국 정치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길 것이다. 네거티브니 뭐니 구질구질한 짓과 그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품격 있는 숙의 민주주의(熟議 民主主義)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그를 갖고 있는 것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외롭지 않다. 많은 사람이 그의 장정을 지켜볼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교수
  • 87년생들 ‘87년 6월항쟁’ 만나다

    6월만 되면 어디선가 피끓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부르짖던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방송가는 다양한 ‘6·10항쟁 특집’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KBS가 가장 다채롭고 풍성하다. 주말인 9∼10일 오후 8시에는 ‘KBS스페셜’로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가른 스무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1987년 6월10일부터 29일까지 과연 무엇이 수십만명의 시민을 매일같이 바리케이드 앞에 서게 했던 것일까. 또 그 열망들은 20년이 지난 오늘 얼마나 성숙하게 자리잡았을까. ‘미디어 포커스’도 9일과 16일 오후 10시30분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데 동원된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을 되돌아보는 ‘제1편: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 와 ‘제2편:하늘이 내린 대통령’을 차례로 방송한다. 또 9일 밤 10시50분 ‘특집 콘서트 7080’과 10일 오후 5시50분 ‘특집 열린 음악회’도 1980년대를 기억하는 문화인들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밖에 10일 오후 11시10분 ‘6월 항쟁 20주년 대토론’에서는 함세웅, 신영복, 최장집, 조희연, 김호기 등 당시 항거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학자들로부터 의미와 과제 등을 들어본다.SBS는 10일 오전 6시50분부터 ‘6·10민주항쟁 20주년특집-나의 6월 이야기’를 1,2부에 걸쳐서 방송한다. EBS는 기성세대의 중심이 된 386세대와 갓 성년이 된 1987년생들로부터 민주항쟁의 의미를 들어보고, 그들의 인식 차이를 엿보는 시간을 마련했다.‘시사, 세상에 말 걸다’는 8일 오후 10시50분에 6월 항쟁 당시 역사의 현장에서 선봉 노래패 역할을 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 대한민국 민주화와 동갑내기이지만 ‘운동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노찾사’ 노래에 공감하지 못하는 1987년생 대학생들도 만난다. 케이블 히스토리채널의 ‘역사 특강, 숨은 그림 찾기’는 9일 오후 6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에서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 이후 민주화 열망이 본격적으로 타오르는 과정을 들여다본다.MBC ‘100분 토론’은 7일 오후 11시5분 서울광장에서 ‘1987년 6월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로 특집 생방송을 진행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그들만의 무분별시위 감동은 없고 짜증만…”

    “그들만의 무분별시위 감동은 없고 짜증만…”

    “집회·시위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주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현직 시민운동가가 시민·사회단체들의 무분별한 집회·시위문화에 대해 애정어린 쓴소리를 했다. 24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6개월 단위로 발간하는 ‘시민과 세계’에 따르면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이 오는 31일 발간되는 시민과 세계 11호에 ‘소통과 연대의 집회를 위하여’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을 통해 “집회·시위는 허가 대상이 아닌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헌법적 권리”라고 전제한 뒤 현재 집회·시위 문화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시민들은 교통체증, 행사장을 뒤덮은 깃발, 경찰과 벌어지는 충돌, 소음, 화형식 등에 큰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시민·사회단체 스스로 집회·시위문화에 성찰할 점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먼저 “집회 시간이 너무 길고 발언 내용도 비슷한데다 연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내빈 소개도 많고 연설은 너무 거칠고 운동권 은어를 남발한다. 구호는 늘 ‘촉구한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회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틈이 없다.”면서 “지나가는 시민뿐 아니라 집회를 막으러 온 경찰마저도 감동시키려 했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집회장에 수십∼수백개나 되는 깃발은 국민들에게는 늘 조직된 사람들만 집회하는 걸로 비치기 때문에 ‘매번 하던 사람들이 또 데모한다.’는 핀잔과 조롱을 듣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집회 소음에 대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엄청나게 큰 음향으로 집회를 하고 노래나 녹음된 육성을 틀어놓는데 이는 지지가 아니라 반감의 대상이 되고 만다.”고 밝혔다.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체증 문제에 대해서는 “길이 막힌 당사자나 국민들의 짜증이 민주사회에서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까지 이르렀다면 깊이 반성해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한국 젊은세대 진보·보수 대립구도 떠났다”

    “한국 젊은세대 진보·보수 대립구도 떠났다”

    “NL(민족해방)은 농경적 신체,PD(민중민주)는 기계적 신체의 이데올로기이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민주화 20년’ 진단은 상당히 독특하다. 진 교수는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을 특집으로 다룬 계간 ‘사회비평’ 여름호에서 ‘신체의 지질학’이라는 글을 통해 20년간의 구조변동을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변화로 분석해냈다. 진 교수는 “급격한 지각의 변동이 지질학적 지층에 고스란히 기록되듯이, 급격한 사회의 변동 역시 한국인의 사회적 신체 안에 고스란히 충적되어 있다.”고 전제한 뒤 “온갖 디지털기기와 결합되어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화한 신체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농경적신체(NL)는 민족주의 우선 그는 “NL,PD 등 운동권의 두 기둥은 한국사회가 거쳐온 두개의 발전단계, 그 과정에서 형성된 두개의 신체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NL은 산업화 과정에서 몰락한 농민들의 좌절감, 농촌지역의 소외감, 농민계급의 위기감 등을 ‘미제(美帝)’에 대항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킨 ‘농경적 신체’의 이데올로기이다.80년대 운동권에서 NL이 주류로 떠오른 것은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도 여전히 한국인들 신체가 농경문화에 젖어있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산업적신체(PD)는 논리·원칙 중시 다른 한쪽 기둥인 PD는 70∼8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기계적 신체’의 이데올로기이다. 진 교수는 “NL이 인간을 믿는다면,PD는 텍스트(문자)를 믿는다.”면서 “PD에게는 품성보다는 논리가 중요하고, 의리보다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해석했다. NL과 PD의 대립을 두개의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닌, 두개의 다른 신체의 대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진 교수는 87년의 정치적 체험공간은 농경적 신체를 지닌 NL과 산업적 신체를 지닌 PD가 공동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례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보화신체는 노동이 오락화 그럼 2007년 우리의 신체는? 진 교수는 “IT분야에서 선두권에 속하는 한국은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을 완료했다.”면서 “정보가 재화가 되고, 소비가 기호화하고, 생산이 정신화하고, 노동이 오락화하는 사회는 당연히 이전까지와는 다른 신체를 요구하게 된다.”며 ‘정보적 신체’의 등장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보적 신체를 가진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집단의 미래가 아니라, 자기 개인의 발 앞에 닥친 현실”이라면서 “텍스트 세대의 눈에는 ‘보수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는 이미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 구조를 떠났다.”고 진단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

    지난해 5월11일 48년의 생을 마감한 ‘노동시인’ 박영근씨의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 펴냄)가 나왔다. ‘노해문’(노동해방문학)의 선구자인 백무산 시인이 ‘우리 시대 최고의 노동시인’이라고 평한 박 시인은 죽을 때까지 ‘주변부’에서 삶의 치열한 현장을 지켰던 인물. 박 시인은 유명한 운동권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인 ‘솔아 푸른 솔아’를 쓴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유고시집에는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2002) 이후 문예지에 발표한 시와 미발표작 ‘절규’ 등 44편이 실려 있다. “제발 80년대니 90년대니, 그런/헛소리로 나를 불러내지 말아요/나는 지금 2000년대의 근사한 헛소리를 씹고 있고/달콤한 똥을 싸고 있다구요”(‘낡은 집’ 가운데) 시인은 유고시집에서 이 세계를 폭력과 살상으로 물들어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임시묘지’라고 명명하면서 그 배경에는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죽음을 예견하고 암시하는 대목도 자주 눈에 띈다. “한번을 살아, 떠나는 일이 저렇게 절박하다”(‘겨울 선두리에서 2’ 가운데) “나 별자리에 누워 환히 흘러가리라”(‘몽골 초원에서 2’ 가운데) 생전의 그는 “민중은 내가 가야 할 미래”라고 하면서도 극렬한 저항시는 쓰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백무산 시인은 “저항해야 할 것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물신화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환 시인은 “살았을 적 박영근의 문학은 간절하고 고달픈 ‘삶의’ 노동문학이었다.”면서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시들을 읽자니 그의 문학은 벌써 ‘죽음 속’ 노동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7000원. 한편 지난 11일에는 ‘박영근 추모를 위한 인천모임’ 주최로 인천 주안 컬처팩토리 극장에서 1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경제성장 신화 이룬 ‘철의 재상’

    |파리 이종수특파원|‘포스트 블레어’로 유력한 고든 브라운(56) 재무장관은 1997년 노동당 집권 후 10년째 영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최장수 재무장관이다. 그는 연 3%대의 경제성장률이라는 영국의 경제성장 신화를 이룩한 주역이다. 열정적으로 일을 챙기는 실무 행정가 타입으로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철의 재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브라운 장관은 블레어 총리보다 더 전통적인 좌파 사회주의 진영으로 노동당에 뿌리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제3의 길을 주창한 블레어 정부의 ‘새로운 노동당’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브라운 장관은 블레어 총리와 초선 의원 시절 사무실을 함께 쓸 정도로 친한 ‘정치적 동지’다. 블레어, 피터 만델슨과 함께 노동당 개혁을 주도,97년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약간 비판적 입장이다. 이라크전에 대해서도 다소 소극적이다. 경제정책에서는 미국식 시장개혁을 지지하고, 유로화 가입을 반대한다. 그의 최대 과제는 블레어와의 차별화이자 동시에 활기있는 영국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정치분석가 앨러스테어 뉴튼은 “그의 최대 과제는 정부뿐 아니라 노동당에 새 에너지와 자극을 주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브라운 장관이 참신한 정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총리 취임 후 젊은 각료들을 대거 기용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브라운 장관은 주류 잉글랜드 출신이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이다.16세에 명문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가에서 좌파 운동권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역사학을 전공한 후 한 때 모교에서 강의도 했었다. 1994년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가 심장마비로 숨지자 40대 개혁파 블레어와 브라운은 이탈리아 음식점 그라니타에서 블레어가 먼저 총리를 맡고, 브라운에게 총리 자리를 넘기는 밀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레어 10년 집권 만에 두 사람의 약속이 지켜지게 됐다.vielee@seoul.co.kr
  • 노대통령=직설형, 김근태=고백형, 정동형=누설형

    “알려지지 않은 얘기하겠다. 지금까지 한번도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명분과 가치가 없는 일이라 망설이다 말씀드린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은 8일 기자간담회 도중 이런 말을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과의 ‘비화’를 폭로했다. 지난해 중반 자신의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 주장에 대해 노 대통령이 전화로 비판해온 얘기다. 김 전 의장의 이런 모습은 2002년 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사건’을 연상시킨다. 당시 경선후보로 나섰지만,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부심하던 김 전 의장은 본격적인 경선 돌입을 앞두고 자신이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 파문을 자초한다. 김 전 의장은 양심고백 차원임을 애써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솔직함과 청렴함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려 했지만, 정국은 발칵 뒤집혔다. 이런 일련의 사례로, 이제 김 전 의장은 정치적 고비에 처하면 ‘은밀한 부분’까지 폭로를 불사하는 정치인 유형으로 남을 것 같다. 정치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평소엔 운동권 스타일로 사고하다 결정적인 순간엔 정치적으로 판단하는데, 김 전 의장은 반대로 결정적인 순간에 운동권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반면 정적(政敵)에 맞서는 정동영 전 의장의 스타일은 김 전 의장에 비해 ‘지능적’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노 대통령을 만나 설전을 벌인 사실을 며칠 뒤 일부 언론에 흘리는 방법으로 ‘정치적 목적’을 추구했다. 방송기자 출신인 정 전 의장은 그전에도 언론을 잘 ‘활용’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직후 김원기 의원과 당권 다툼을 벌일 때 정 전 의장은 일부 언론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흘리는 식으로 결국 김 의원을 ‘넉다운’시켰다. 앞서 정 전 의장은 2000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 면전에서 당시 2인자였던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퇴진’을 주장했고, 이것이 나중에 언론에 알려지면서 ‘정치적 체급’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노 대통령과의 담판 사실을 적극 활용하는 것과 흡사한 면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정인을 공개석상에서 ‘찍어’ 비판하는 정공법을 구사하는 편이다. 지난해 말 자신이 총리로 기용했던 고건씨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했고, 이번에도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을 직접 겨냥해 공격했다. 세 사람의 스타일 차이가 어떻든, 어제의 동지에 안면몰수하고 등을 돌리는 비정함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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