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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구르족 지식인의 ‘사하로프 인권상’ 수상이 중국에게 미치는 영향

    위구르족 지식인의 ‘사하로프 인권상’ 수상이 중국에게 미치는 영향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중국의 위구르족 반체제 인사이자 경제학자인 일함 토티가 24일(현지시간) 유럽의회로부터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했다. 사하로프 인권상은 1988년 소비에트의 반체제 인사이자 과학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유럽의회가 수여한다. 수상의 영광은 주로 정치적 반체제 인사나 지식인이게 돌아간다. 첫해 수상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였으며 1990년 수상자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2013년은 말랄라 유사프자이였다. 올해 수상자인 토티가 누구이며, 이번 수상이 중국에 어떤 의미인지, 향후 중국과 유럽연합(EU)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짚어봤다. ●일함 토티는 누구인가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포리시(FP)에 따르면 토티는 2014년 중국 당국에 체포돼 지금까지 복역 중인 인물로 체포 전까지 위구르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위구르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했다. 베이징에서 수학한 경제학자인 토티는 중국중앙민족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위구르족의 자치권 보장과 그들에 대한 차별반대법 도입 등을 위해 활동했다. 위구르족이 대다수를 이루는 중국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자 이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내부에서 공산당의 체재를 비판하는 지역 단위의 운동과 소수민족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허용됐다. 그러나 2009년 7월 신장 우루무치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젊은 위구르족 청년들이 수십 명의 한족 시민들을 살해하며 중국 공안의 탄압이 거세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구르족을 위해 활동하던 토티의 입지는 그 사건을 계기로 더욱 위태로워졌다. 폭동 직후 공안에 체포된 토티는 얼마 뒤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주석 치하에서 표현의 자유가 더욱 위축되며 2014년 결국 토티는 함께 활동하던 동료 학자들과 함께 체포됐다. 위구르족에 있어서는 중국 내에서 자신들을 옹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토티는 위구르족 분리주의와 유언비어 유포, 정부에 대한 비판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심지어 도티가 동투르크스탄 이슬람 운동 같은 테러리스트 그룹과 연관이 있다는 혐의도 제기됐는데 FP는 이러한 시도가 매우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단체는 2000년대 중반 짧게 활동하는 데 그쳤음에도 중국 당국이 매년 이 단체를 체제 선전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티의 체포는 신장 지역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메시지였던 셈이다.●위구르족이 처한 상황은 현재 중국 내 위구르족들은 문화 말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위구르의 언어와 문화 등을 물론 그들의 서적까지 모두 파괴되고 있으며 100만명이 넘는 위구르족 주민들은 중국 정부가 만든 구금 시설에 갇혀 강제적인 세뇌를 당하고 있다. 수십만명의 위구르족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분리돼 정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수용돼 있다. 위구르족의 저명한 학자와 지도자들은 대부분 체포됐다. 위구르족이 처한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각심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번 토티의 수상이 이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사하로프 인권상 홈페이지에는 “위구르족은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최근 몇 년간 유례없는 억압을 받는 민족”이라면서 “2017년 4월 이후 100만명이 넘는 무고한 위구르족 주민들이 수용소에 억류돼 있으며 그곳에서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을 버리고 중국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맹세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묘사됐다. ●상이 달갑지 않은 중국 정부 2008년 유럽의회는 중국 내 반체제 인사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후자(胡佳)에게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여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거의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때라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제한적이나마 개혁과 변화를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있었다. 시 주석의 통치 아래 중국은 외국의 영향과 간섭에 대해 더욱더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에게 화살이 돌아오지 않도록 더욱더 체제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과 정부가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서는 더욱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위구르족의 구금 캠프를 직업 교육 시설에 불과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상이 향후 중국과 EU 간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앞서 노르웨이와도 비슷한 갈등을 겪었었다. 2010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해 비폭력 투쟁을 해온 인권운동가 류사오보(1955~2017)에게 그 해의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면서 이후 6년간 양국의 외교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물론 사하로프 인권상이 노벨상만큼 중국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류샤오보의 수상은 중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반체제 인사라는 기록을 영원히 남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EU는 노르웨이보다 훨씬 더 큰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FP는 최소 몇 개월간은 이번 수상과 관련한 중국 국영 언론들의 비방과 외교관들에 대한 문책 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토티가 바츨라프 하벨 인권상 후보자로 지명되자 국가전복과 테러 지원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점을 들어 지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티는 해당 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올해 1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여성은 약하다? 과학의 가설, 과학이 뒤집다

    여성은 약하다? 과학의 가설, 과학이 뒤집다

    남성우월주의자 찰스 다윈 지목하며 성차별 답습한 과학계 왜곡·횡포 비판 뇌 무게, 성별 지적능력 가릴 기준 못돼 같은 병 걸려도 男보다 女 더 살아남아 “진정한 성평등, 과학적 접근 충실해야”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 ‘여성은 약하다.’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성별의 차이다. 그리고 과학은 그 통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정말 여성은 인류의 ‘열등한 절반’일까.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앤절라 사이니가 쓴 ‘열등한 성’은 각종 연구와 실험 결과를 통해 그 오랜 통념을 보란듯이 뒤집어 눈길을 끈다. 탄생에서부터 직장 생활, 육아, 폐경, 노년으로 이어지는 여성의 인생 단계를 훑어 ‘열등한 여성’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왜곡을 조목조목 짚어 낸다. 우선 뇌의 성별 차이로 인한 ‘여성 열등’설을 보자. ‘여성의 뇌 무게는 남성에 비해 28g 적다’는 사실은 지적 능력 차의 단초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선 뇌의 성별 차는 하잘것없는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공간 시각화, 수학적 능력, 언어 유창성에서 남자와 여자아이 간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매우 작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2016년 뇌과학 학회지 뉴로이미지에 실린 논문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논문은 여성의 뇌에서 더 크다고 알려진 영역인 해마의 크기가 양쪽 성 모두에서 동일함을 밝혔다. 시카고 로절린드 프랭클린대 연구팀은 6000명의 건강한 사람을 연구한 76개 논문을 분석해 ‘여성이 언어 기억력과 사회적 기술이 더 뛰어나고 감정을 더 잘 표현한다’는 가설을 뒤집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단순히 뇌가 무거워 지능이 높다면 고래나 코끼리가 인간보다 훨씬 똑똑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저자는 또 ‘남성이 여성보다 더 튼튼하고 강하다’는 가설도 허물면서 “단순하게 생존이라는 점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하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유아 사망률을 보면 남아가 여아보다 첫 달에 사망할 위험이 10%가량 높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도 많다는 통념이 굳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같은 질병에 걸려도 여성은 살아남고 남성은 그렇지 못해서 아픈 남성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남성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날카로운 지성과 훌륭한 신체를 갖게 됐고 여성은 남성보다 진화가 덜 됐다’는 가설을 놓고도 이중 잣대로 가득 찬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고릴라는 신체가 너무 크고 강해서 고등한 사회적 동물이 될 수 없다면서 인간에 관해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가 크기 때문에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한쪽에 기운 남성 우월의 통념을 갖게 됐을까. 저자는 과학계의 횡포에 메스를 들이대면서 “과학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란 말은 허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원조 격으로 진화론자 찰스 다윈을 지목해 흥미롭다. 다윈은 말년에 한 여성운동가에게 보낸 답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전의 법칙에 따라 여성이 남성과 지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은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결국 다윈은 여성을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낮게 봤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과학에 그대로 연결한 남성우월주의자였고, 후대의 과학은 그 왜곡과 편견을 답습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과학계에서 여성 배제와 홀대의 사례는 흔하다. 케임브리지대는 1947년이 돼서야 남성과 동일한 기준으로 여성에게 학위를 수여했고, 하버드 의과대학은 1945년까지 여성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마리 퀴리는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과학자이지만 1911년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20세기 미국 생물학자 네티 마리아 스티븐스는 성별을 결정하는 염색체를 발견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지만 그녀의 과학적 기여는 역사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많은 이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페미니즘 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 성별의 우위를 따지고 밝히자는 게 아니라 과학계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라는 강변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폐경 연구에 천착해 온 유타대 인류학자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말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진지하게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이런 것들의 토대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생물학이 답이에요. 과학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시에 기대다(정우영 지음, 문학들 펴냄) 등단 30년을 맞은 중견 시인의 시평 에세이집. 박승민, 송태웅, 장철문, 박형권 등 독자적인 성취를 이뤘으나 세간의 관심에서는 다소 비켜난 시인들의 작품에 애정 어린 평을 더했다. 시인은 요즘 시의 조류를 일컬어 당대의 사회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언어적 감수성과 실험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융합적 리얼리즘’으로 설명한다. 448쪽. 2만원.이 순간 사랑(송정림 지음, yeondoo 펴냄) 33편의 오페라를 소재로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한 에세이. ‘슬플 때 사랑한다’ 등 많은 드라마를 쓴 작가 송정림은 ‘막장 드라마’의 시초는 다름 아닌 오페라라고 말한다. 권선징악, 출생의 비밀 등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원조는 오페라이며 우리는 오페라를 통해 다채로운 사랑의 감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208쪽. 1만 4000원잘못 든 길도 길이다(김여옥 지음, 책만드는집 펴냄) 1991년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하고 ‘월간문학’ 편집국장을 지낸 시인의 신작 시집. 삶의 과정에서 응어리진 마음을 어르고 달래 신명 나게 풀어내는 시들이 담겼다. 그의 시는 특히 돌발적인 상황 속 죽음에 대한 자의식을 통해 강렬한 존재성을 드러낸다. 164쪽. 1만원.감국대신 위안스카이(이양자 지음, 한울엠플러스 펴냄) 임오군란에서 청일전쟁까지 10여년 동안 이뤄진 중국 청나라의 군사·정치·경제 침탈의 선봉에 있던 위안스카이. 당대는 제국주의 격랑 속 조선이 자주 개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위안스카이의 당시 행적과 조선의 대응을 통해 이 천금 같은 기회가 어떻게 유실됐는지 분석한다. 240쪽. 2만 8000원.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알렉스 비어드 지음, 신동숙 옮김, 글담출판사 펴냄) 교육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혁명을 이끌고 있는 교사·학생·교육학자·혁신운동가들을 만나 21세기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혁신에 대한 관심이 들끓는 실리콘밸리, 생각하는 기계를 이용해 스스로 학습하는 미국의 로켓십 페르자 초등학교,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학습 능력이 뒤떨어지는 아이들을 최상위 성적으로 끌어올린 런던 킹 솔로몬 아카데미 등에서 비법을 찾는다. 560쪽. 1만 7800원.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박유희 지음, 책과함께 펴냄)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눈가에 흉터가 깊게 팬 북한군 장교, 남성 마초처럼 괄괄한 여성 검사, 북과 나팔을 불며 쥐 떼처럼 몰려드는 중공군처럼 표상화된 이미지는 한국영화에서 어떻게 재현됐으며 우리의 상상을 어떻게 구성해 왔는지 연원을 짚어 본다. 584쪽. 3만 3000원.
  • 기후변화 대응, 성장 포기 아닌 새로운 성장 찾는 과정이다

    기후변화 대응, 성장 포기 아닌 새로운 성장 찾는 과정이다

    지난 9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어린 얼굴의 학생이 연단에 올랐다. 스웨덴 출신의 16세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였다. 툰베리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 세계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로서 느끼는 두려움, 기성세대의 무책임에 대한 솔직한 분노와 강한 질타는 새삼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018년 8월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이라는 푯말을 들고 스웨덴 의회 건물 앞에 혼자 앉아서 시작한 툰베리의 1인시위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대응촉구 집회로 확산됐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 시위로 발전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몇백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으로 기상이변 속출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그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막대한 에너지와 힘을 가져다주었다.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는 수억년의 세월 동안 형성된 시간의 결과물이며, 이를 연소시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돼 온 에너지를 일시에 방출시키는 것이었다. 화석연료에 포함된 탄소들은 연소 과정을 거치면서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로 변화하고, 대기 중에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100~300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무른다. 이산화탄소는 태양에서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복사에너지를 흡수해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영하 18℃까지 낮아지기 때문에 온실가스는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농도가 인간에 의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는 1800년대에 280 수준이었으나 1958년 315, 2000년에는 367으로 증가하고 있으며(그림 1), 2018년을 기준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은 1850~1900년에 비해 약 1℃ 증가했다. 이러한 온도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극지방 빙하의 축소를 가져와 전 세계적인 해수면 상승과 더불어 바닷물 온도의 상승으로 인해 더 강력하며 잦은 태풍, 허리케인이 발생하도록 하고 있으며, 많은 지역에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상이변을 초래하고 있다. 온실가스 농도의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우리의 문명과 삶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들어서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을 통한 과학적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필요성이 제기됐다. 냉전 종식으로 인한 국제협력 강화 흐름 속에서 국제사회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체결했다.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매년 개최되는 당사국총회(COP)를 통해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를 비롯해 발리행동계획, 코펜하겐합의, 그리고 2015년 파리협정에 이르는 일련의 합의를 통해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감축에 나섰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은 쉽지 않았으며,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으로 대표되는 개도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온실가스 배출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왔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이 점차 가시화됨에 따라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 필요성이 개도국과 빈곤국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됐지만 여기에 필요한 재원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개도국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더불어 더 많은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데 비해 선진국은 개도국 역시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한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앞으로 지구 평균온도가 1.5℃ 이상 상승한다면 파멸적인 결과가 찾아올 것이라는 IPCC의 경고에 따라 전 세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어도 45% 이상 감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20년까지는 각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들이 나와야 하지만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느리기만 하다. 이 와중에 기후변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이 툰베리를 통해 터져 나왔고,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모두가 인류의 미래 문제가 달려 있다고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왜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특정 국가 향해 ‘온실가스 악당’ 지목? 온실가스는 다른 오염물질과 달리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고, 발생 과정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중국 등 개도국에 대해 절대배출량 증가를 들어 감축에 동참하라고 압박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들어 반박하고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적 배출량으로 따져 보면 선진국의 책임이 더 크다는 논리를 제기하고 있다. 국가 간의 이러한 다툼은 국가라는 단위로 온실가스 배출을 산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으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제조된 철근을 수입해 건물을 짓는다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철근의 운반 과정 및 건물 건축 과정으로 국한되지만 과연 이것이 정확한 계산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2를 포함한 많은 선진국가들은 해외 개도국에서 제조된 물건을 수입해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선진국은 적게, 제품을 생산한 개도국은 과도하게 산정되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최종 소비지로 환산해 다시 계산하게 되면 변화하게 되는데, 영국의 경우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40%가 증가하게 되며, 유럽연합(EU) 전체적으로는 19%가 증가한다.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는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GCP)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약 10% 수준에서의 상승이 나타나는 반면 중국의 경우 15% 이상 배출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한 국가를 악당으로 간주해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다.(그림 2) ●한국, 2016년 온실가스 배출량 전 세계 11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11위(그림 3),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는 6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09.100만tCO2eq로 1990년 대비 142.7% 증가했다.(그림 4) 1990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간 동안 미국은 1.9%, 일본은 2.8% 증가에 그쳤으며, 독일의 경우 27.2% 감소 추세를 보인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137% 증가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인구를 기준으로 볼 때도 1인당 13.8tCO2eq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0년 대비 103%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지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국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10억원당 배출량의 경우 2017년 456tCO2eq/10억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0년 대비 35% 감소한 것이다.(그림 5)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던 시기였으며, 그 결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위생산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 역시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효율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기후변화 악당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에너지 분야로 전체 배출량의 86.8%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는 발전을 포함해 제조·건설 및 수송 등을 포괄하는 분야로서 에너지 분야 내부적으로는 발전(44%), 제조·건설업(30.3%), 수송(16%) 등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문제는 전력 생산방식과 산업 및 도시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은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감소시켜야 하지만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됐다. 재생에너지 생산설비를 설치할 지역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화재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원자력발전은 탈원전이라는 흐름 속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역시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탈피해 저에너지 산업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 왔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조건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고용을 비롯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경우 내연기관에서 탈피해 배터리전기차(EV)나 수소연료전지차(FCEV)로의 이행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기에 사용되는 전기와 수소의 생산방식을 고려해 보면 이것이 진정한 대책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한국, 배출권거래제 등 거의 모든 제도 운영 대한민국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배출권거래제를 비롯한 거의 모든 대책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법률을 비롯한 다양한 제도를 완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기후변화를 그 자체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국제적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대응’의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생산방식과 사회의 근본적인 개선과 변화를 고려하지는 않았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생산공정을 효율적으로 바꾸고, 전기차 보급을 늘리며, 석탄화력발전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했던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비용의 증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라는 문제에 맞서는 것은 성장을 포기하고 축소 지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문제는 개별적인 요소의 해결로 극복할 수 없으며 사회의 근본적인 해결, 그리고 전지구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인류가 경험해 온 어떠한 문제보다도 해결이 어렵다. 그렇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당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는 눈앞의 문제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미래세대에게 어떠한 미래를 물려줄 것인지를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 툰베리를 비롯한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일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창립 7주년 맞은 ‘마리몬드’…캠페인 제품 한정 출시 등 행사

    창립 7주년 맞은 ‘마리몬드’…캠페인 제품 한정 출시 등 행사

    인권을 위해 행동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리몬드(대표 홍리나)가 창립 7주년을 맞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행사를 선보인다. 먼저, 홈페이지에서는 고객들의 가장 많은 요청이 있었던 인기 패턴의 폰 케이스를 기존에 출시하지 못한 다양한 기종으로 주문 제작 판매한다. 품절된 시즌의 패턴을 아쉬워했던 고객들에게 이번 이벤트가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 이벤트는 주문 제작 형식으로 진행되며 제작기간은 12일(영업일 기준)이 소요될 예정이다. 또 소녀상 목걸이, 팔찌, 배지 등 꾸준히 고객의 요청이 있었던 캠페인 제품도 기간 내 한정 출시된다. 이번에 출시될 캠페인 제품은 가장 인기가 좋았던 버전으로 300개의 수량으로 한정 출시되며 수익금 전액은 인권 운동가 ‘김복동 센터’ 건립을 위한 나비기금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오는 26일부터 목걸이, 팔찌, 배지의 순으로 매일 한가지 아이템이 오픈될 예정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캠페인 제품이 있다면 당일 마리몬드 홈페이지에 방문해 구매할 수 있다. 이외에도 7년간 소개했던 꽃할머니 패턴을 모두 모아볼 수 있는 온라인 패턴 展과 25일 하루 동안 무료배송 이벤트 등 고객의 요청에 의한 다양한 이벤트로 7일간 꾸릴 예정이다. 더불어 25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성수동에 위치한 ‘마리몬드 라운지’에서는 ‘기억상자 展’이 열리는데 마리몬드의 7년간의 기록과 고객들의 기억 속에 함께 한 기록 등이 사진으로 전시된다. 해당기간 ‘미니 택배 상자’와 ‘행운 상자’ 이벤트 등 마리몬드의 택배 상자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홈페이지 회원 가입하면 초대권을 받고 무료로 방문이 가능하며 초대권 소지 고객 대상으로 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죽음에 무관심한 사회… 반복되는 아픔에 연대”

    “죽음에 무관심한 사회… 반복되는 아픔에 연대”

    아들을 먼저 보내고 10개월을 쉼 없이 싸웠다. 하지만 세상은 금방 바뀌지 않았다. 지난달에도, 이달에도 노동자들은 계속 죽었다. 한두 줄로 끝나는 사망사건 기사가 이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전부일 뿐이었다.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미숙(51)씨가 오는 26일 출범하는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의 초대 대표를 맡은 이유다.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 뒤이어 ‘첫발’ 그는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당시 24세)씨의 엄마다. 시민들의 기부금을 종잣돈 삼아 만들어진 이 재단은 산업재해를 막고, 비정규직 철폐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노회찬 인권과 평등상’을 수상한 김씨가 전액 기부한 상금 1500만원이 이 재단의 주춧돌이 됐다. 김씨는 23일 서울 영등포구 재단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용균이가 죽은 이후 정작 중요한 것들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씨와 시민사회단체의 분투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다.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안 지킨 도급인의 처벌 수위는 애초 정부가 내놨던 안보다 낮아졌고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도 축소됐다. 이후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개정 법률보다 훨씬 후퇴했다. ●“정부·국회 누구도 국민 위해 일하지 않아” 김씨는 “10개월 동안 깨달은 건 정부, 수사기관, 국회 그 어느 곳도 국민을 위해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끊임 없이 촉구하고, 행동하고, 지켜봐야만 미세한 변화라도 이룰 수 있다. 평범한 노동자이자 엄마였던 김씨가 투쟁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유다. 김씨는 “죽음에 무관심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매년 산재 사망자는 2000여명. 김씨는 “한 노동자의 목숨은 본인이나 가족들에게는 세상의 전부인데, 어떤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 정도로 치부한다”면서 “여전히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더이상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다”고 다짐했다. 잔인한 세상과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것만이 아들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었다. 그는 “또 다른 죽음을 막고 반복되는 아픔에 연대하는 일을 하며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연대’와 ‘협력’이라는 두 가치를 기둥 삼아 재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아들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할 때 곁에 있었던 세월호 유족, 특성화고 산재 사망자 가족, 사회활동가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2월 한화 공장 폭발사고 당시 9명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 유가족이 힘겨워할 때 우리가 함께 연대했다”면서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합의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김용균재단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누더기가 된 산안법을 제대로 고치는 것은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그리고 인권이 있는 일터가 당연시되는 세상을 만들기까지 갈 길이 멀다. 김씨는 “용균이의 이름을 한 줄기 빛으로 만들어 다른 죽음을 막는 것이 내가 할 몫”이라 했다. “이 몫을 다하지 못하면 편히 죽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용균재단은 오는 26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세부 조직을 구성한다. 같은 날 열리는 출범대회는 모든 노동자와 시민에게 열려 있다.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 불법 대신 권리로 채워진 일터, 제2·제3의 김용균이 없는 세상을 향한 ‘시민운동가 김미숙’의 묵직한 첫걸음은 이제 시작됐다. 49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어머니 이소선 여사(1929~2011)의 헌신으로 헛되지 않았듯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김용균씨도 김미숙씨의 눈물과 투쟁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홍콩의 대규모 시위 촉발 ‘임신한 여친 살인범‘ 찬퉁카이 풀려나

    홍콩의 대규모 시위 촉발 ‘임신한 여친 살인범‘ 찬퉁카이 풀려나

    “홍콩 사회와 홍콩인에게도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홍콩인들이 속죄할 기회를 주기 바란다.” 지난 6월 초부터 다섯 달째 홍콩을 뒤흔들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살인범이 홍콩과 대만 정부가 신병 처리를 놓고 다투는 사이에 결국 풀려났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주한 찬퉁카이(陳同佳·20)가 23일 오전 홍콩 픽욱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찬퉁카이는 교도소 앞에 몰려든 많은 취재진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사죄의 뜻을 나타낸 후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으며, 대만으로 가서 죗값을 치르고 싶다”고 말한 뒤 홍콩인과 홍콩 사회를 향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홍콩 정부가 지난 4월부터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하게 된 것은 지난해 2월 그가 대만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찬퉁카이는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대만의 한 지하철역 부근에 유기한 후 홍콩으로 도망쳐왔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영외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 결국 찬퉁카이에게 적용된 것은 여자친구의 돈을 훔쳤다는 절도와 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뿐이었고, 재판에서 29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홍콩 정부는 찬퉁카이를 대만으로 인도하길 원했지만,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러자 홍콩 정부는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범죄인 인도 법안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행하려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과 친중파 의원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왔다. 29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찬퉁카이는 모범수로 감형돼 18개월만 복역한 후 이날 출소했다. 최근 그는 심경 변화를 일으켜 홍콩 정부에 서한을 보내 살인죄에 대한 자수 후 대만에서 복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도 홍콩과 대만 정부는 신병 처리를 놓고 실랑이를 이어가고 있다. 홍콩 정부는 대만이 찬퉁카이의 신병을 인수할 것을 요청했지만, 대만 당국은 ‘정치적 조작’이라며 그의 인수를 거부했다. 공식 사법 협조가 없는 상태에서 신병을 인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매튜 청 홍콩 정무사장(총리 격)은 전날 기자회견 등을 통해 상대방이 정치적으로 사건을 악용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대만 정부가 “우리 경찰을 홍콩으로 보내 찬퉁카이를 데려가겠다”고 밝혔지만, 홍콩 정부는 “홍콩의 사법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홍콩은 찬퉁카이가 자수할 명백한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대만이 찬퉁카이에 대한 입경 금지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만 당국은 그가 개인 자격으로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나의 국가임을 주장하면서 사법권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대만 정부와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홍콩 정부의 시각이 충돌한 결과란 분석도 나온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한국 최초의 여성 경무관 독립운동가 황현숙 선생

    한국 최초의 여성 경무관 독립운동가 황현숙 선생

    독립유공자 황현숙(1902~1964)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경무관이라는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황현숙 선생이 1948년 경무관으로 특채돼 당시 치안국 여자경찰과 과장에 임명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그동안 최초의 여성 경무관은 2004년 승진한 김인옥 전 제주지방경찰청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경찰은 1946년 7월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를 설치하면서 여성 경찰 제도를 도입했다. 1947년 수도경찰청에 여자경찰서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같은 해 7월 부산, 대구, 인천에도 여자경찰서가 세워졌다. 당시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인 안맥결 총경, 유관순 열사의 올케인 노마리아 경감 등이 여성 경찰로 활동했다. 황 선생은 1919년 3월 20일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충남 천안 입장면에서 만세운동을 이끌다 공주형무소에 갇혔고, 이때 유관순 열사와 함께 복역한 독립운동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동맹휴학의 배후로 지목돼 투옥됐다. 정부 수립 후 초대 내무장관 윤치영의 권유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1950년 퇴임 이후 ‘조선여자국민당’을 창당했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 김구 선생 등과 함께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여성 5명을 포함한 55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을 발굴해 참된 경찰 정신의 표상으로 기리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유은혜 “기후 위기 결석시위는 ‘학습’… 징계 부당”

    유은혜 “기후 위기 결석시위는 ‘학습’… 징계 부당”

    최근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일부 학교에서 징계 압박을 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과 관련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부 학교에서 결석 시위에 나가기만 해도 징계하겠다고 압박한다고 하는데 이는 부당하다”고 지적하자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신을 펼치는 행위도 체험이나 학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학습권이 보장되도록 시도교육청과 적극적으로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결석 시위 참여를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보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를 위한 파업 시위’를 촉발한 이후 각국의 청소년과 환경운동가들이 정부와 기성세대의 대책을 요구하는 결석 시위를 잇따라 열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해 총 세 차례 시위가 열렸다. 지난달 27일에는 서울에서 청소년 5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고 전국 각지에서도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왔다. 당시 청소년들은 부모님의 동의하에 체험학습으로 결석을 허락받거나, 견학 등 다른 사유로 조퇴를 한 뒤 어렵게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모양은 “선생님께서 결석 시위라고 정직하게 적으면 조퇴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셔서 견학으로 적었다”면서 “집회 참여로는 조퇴가 어려워 우회해서 나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모양도 체험학습 신청서를 학교에 냈으나, 이후 집회 참여가 알려지며 징계위원회에 넘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유 부총리의 약속으로 시위 참여가 보장되면 전국의 학생들이 결석 시위에 더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각 학교 단위에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가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오는 11월 29일 네 번째 결석 시위를 열 예정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한국의 툰베리들 “어른들이 내팽개친 기후위기, 우리에겐 현실”

    한국의 툰베리들 “어른들이 내팽개친 기후위기, 우리에겐 현실”

    “여러분은 헛된 말들로 내 꿈을 빼앗아 갔다” 스웨덴의 16세 ‘기후 투사’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달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던진 일갈에 세계의 청소년들이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을 촉구했던 툰베리의 1인 시위는 ‘기후 변화를 위한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100여개국의 시민 수백만명을 거리로 불러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이 나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세 차례나 벌였다.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기성세대와 달리 청소년들은 우리가 현재 겪는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지금 10~20대들은 탄소 배출을 가장 적게 하고도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무겁게 짊어져야 하는 세대입니다. 이보다 더 절박한 당사자들이 있을까요?”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인 고등학생 김유진(17)양은 자신이 기후 변화를 위해 행동에 나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7세 때부터 생태학자의 꿈을 키워 온 김양은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를 목격하며 꿈의 좌절은 물론 생존의 위기감을 느꼈다. “저희에게는 이것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에요. 저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저희가 배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양은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처음으로 열린 유엔 청년기후행동회의에도 참석해 세계의 청소년들과 만났다. 김양은 “직접 가보니 기후 변화에 관심이 높은 10대들이 매우 많았다”며 “유엔이 젊은 세대를 위한 행사를 열었다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결석 시위] 지난달 27일 김양과 같은 생각을 가진 청소년 500여명은 학교를 조퇴하고 광장으로 나왔다. ‘청소년 기후행동’이 주최한 ‘기후변화를 위한 결석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 파업의 한국판이다. 조퇴 사유에 ‘집회 참석’이라고 쓸 수 없었던 학생들은 서울 견학, 체험 학습 등 다른 ‘핑계’를 적고 나왔다. 학생들은 종이 상자에 색연필로 직접 그린 피켓을 손에 들고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은 0점”이라며 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이들은 12월 2일부터 칠레에서 열리는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에 맞춰 오는 11월 말~12월 초 대규모 결석시위를 한 차례 더 한다.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소송도 준비 중이다. 청소년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절실함 때문이다. 문제를 미뤄 온 정책결정권자들이 나서길 기다리기보다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채연(17)양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하실까 궁금했는데, 모든 관심이 한미 정상회담에만 쏠려 있어 실망했다”며 “앞 세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기후 위기가 우리의 과제가 된 것처럼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 참여] 세계적으로도 기후 변화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담은 파리협정이 2015년 통과됐지만 미국이 탈퇴하는 등 협정 자체가 무력해진 지 오래다. 특히 한국은 기후 변화 대책에 사실상 손을 놓았다는 게 환경 운동가들의 비판이다. 2016년 국제 기후변화 대응행동 연구기관들로부터 ‘기후 4대 악당’에 꼽혔고, 2018년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석탄 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유일하게 증가하는 등 소비 관리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가 팔짱만 낀 동안, 청소년들은 인터넷으로 현재 상태가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라는 사실을 공부했다. 툰베리의 유엔 연설 영상을 찾아보고, 해외 청소년 환경단체의 활동과 기후 위기 타파를 위한 행동 강령도 참고한다. 교과서에는 없는 사실들을 찾기 위해 외국 문헌도 뒤졌다. 김보림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협의체(IPCC) 보고서, 해양 보고서 등을 주기적으로 찾아보고 외국 비정부기구(NGO)의 원자료를 확인해 기후변화를 위한 행동의 객관적 근거를 마련한다”…고 했다. 함께 행동할 친구들을 모으고 활동을 홍보할 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한다. 김유진 양은 “SNS는 지금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무기”라며 “다양한 플랫폼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빠른 속도로 전국의 동료들을 모으는 도구”라고 말했다. [일상 변화]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일상을 바꾸고 이를 공유하는 청소년도 많다. 이채연양은 지난 9월 27일 결석시위 참여 이후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해 채식을 시작했다. SNS 프로필도 시위 참여 사진으로 바꿨다. 강원 횡성에서 결석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 온 윤정준(18)군도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후 즉석조리 식품과 페트병 생수를 끊었다. 쓰레기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3학년인 윤군은 “툰베리처럼 어린 친구도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데, 하루 더 공부하는 것보다 기후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게 나의 삶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더 많은 친구들에게 알리려고 시위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고 했다. 윤군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올여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환경 운동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윤군은 “기특하다는 칭찬도 감사하지만, 앞으로는 어른들이 진지하게 기후변화에 대한 제도적 실천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에서 에너지 문제까지 관심을 갖게 된 김민서(23)씨는 진로를 신재생 에너지 연구로 정했다. 스프링 제본 노트의 스프링 하나까지 재활용한다는 김씨는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장래 희망으로 이어져 신소재 공학을 전공했다”면서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부진한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기여하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 신재생 에너지 기자단으로 중고생들에게 관련 강의를 하는 등 이 분야의 인식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기성세대를 자극하고 있다. 지구 온도 1도 낮추기 캠페인 ‘괜찮아 지구야’에서 활동하는 강민하(9)양의 어머니 김상분씨는 “아이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텀블러를 늘 챙기고 분리수거도 더 철저하게 한다”면서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의 행동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14년째 중학교에서 환경 과목을 가르치는 신경준 교사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한 학생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곧잘 환경에 대한 감성과 지식을 전달한다”면서 “전기 플러그를 빼는 작은 실천부터 부모님에게 먼저 알리고 실천하게 유도한다”고 전했다. [미래 교육]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과거 청년운동은 민주주의, 노사갈등, 일자리 등 물질적 가치 중심이었다면 최근 청소년 운동에서는 미래지향적이고 탈물질적인 흐름이 보인다”면서 “특히 기후 변화처럼 당파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전환이 필요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구는 위기에 처했는데 학교는 미래교육을 하지 못하니 학생들이 ‘공부해서 점수 따라’는 요구를 의미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성장주의·출세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기후, 이주, 인종 등 미래 이슈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사는 “기후 위기 시대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이에 대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주 1회라도 지구 시민 교육을 목표로 하는 환경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씨줄날줄] 탈(脫)항공여행/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탈(脫)항공여행/이순녀 논설위원

    사용 금액에 비례해 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신용카드를 오래전부터 애용하고 있다. 1000원당 1마일씩 1000만원을 결제하면 1만 마일이 쌓여 국내선 일반석 왕복 항공권(비성수기)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다. 1~2년마다 공짜 비행기표가 생기니 연회비가 비싸도 만족한다. 마일리지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만족감은 배가된다. 마일리지를 가장 빨리 모으는 방법은 당연하게도 비행기를 많이 타는 것이다. 잦은 항공여행이 마일리지를 불리고, 그렇게 쌓인 마일리지를 활용해 또 항공여행을 떠나는 사이클이 형성된다. 최근 영국 정부 자문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가 항공기 단골 승객의 마일리지 제도를 금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유는 지구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비행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운송 수단으로 꼽힌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를 이동할 때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285g이다. 버스(68g)보다 4배, 기차(14g)보다 무려 20배나 많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항공여행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추세다. 항공 마일리지 금지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에게 보너스 항공권과 좌석 승급 등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꼭 필요하지 않을 때도 비행기 이용을 부추긴다는 판단에서다. 유럽 내 ‘탈항공여행’ 운동의 진원지는 스웨덴이다.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나라인 스웨덴에는 비행기 여행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플뤼그스캄’(flygscam), 즉 영어로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 현상이 널리 퍼져 있다. 툰베리가 지난달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참석차 뉴욕에 갈 때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넌 이유도 그래서다. 2017년 플뤼그스캄이 시작된 이후 스웨덴 국민의 23%가 항공여행을 줄였다는 통계도 있다. 스웨덴의 이동통신업체 텔리아는 직원들에게 500㎞ 이하의 이동 거리는 기차를 이용하도록 요구하는 등 기업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공사들도 탄소 배출 대응을 더는 늦출 수 없게 됐다. 영국 브리티시항공, 스페인 이베리아항공 등을 경영하는 국제항공그룹(IAG)은 2050년까지 자사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 배출을 상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러 항공사와 벤처기업들은 친환경 전기 비행기 개발에도 속속 나서고 있다. 유럽인들과 달리 지리적 여건상 해외로 가려면 필수적으로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전기 비행기가 하루빨리 등장하길 기대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항공 마일리지 카드를 어떻게 해야 할까. coral@seoul.co.kr
  • 만델라 장녀, 주한 남아공대사로 이달 초 부임

    만델라 장녀, 주한 남아공대사로 이달 초 부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초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녀 제나니 노시츠웨 들라미니(60)가 주한 남아공대사로 지명돼 이달 초 부임한 것이 17일 알려졌다. 들라미니 대사는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를 찾아 의전장에게 신임장 사본을 제출했고, 당국자들과 면담을 했다. 들라미니 대사는 조만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들라미니 대사는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에서 근무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우리는 한국과 훌륭한 양자 관계를 갖고 있으며, 나는 이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들라미니 대사는 한국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고향에 온 기분”이라며 “1995년 아버지(만델라 전 대통령)와 함께 한국을 찾은 이후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만델라 전 대통령과 관련된 질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들라미니 대사는 지난 7월 남아공 정부로부터 주한 대사로 지명됐으며,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2일 한국에 부임했고, 이날 신임장을 외교부에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나섰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오늘의 홍콩은 39년 전의 ‘광주’… 한국인, 홍콩 손잡고 함께 가달라”

    “오늘의 홍콩은 39년 전의 ‘광주’… 한국인, 홍콩 손잡고 함께 가달라”

    홍콩 시민운동 주역 조슈아 웡이 “먼저 걸어온 ‘민주화의 길’을 홍콩 시민들과 함께 손잡고 가 달라”면서 한국에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다섯 달째 이어가고 있는 ‘홍콩인’이 내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홍콩인’ 내년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중화권 민주화 운동가들로 구성된 싱크탱크 ‘다이얼로그 차이나’ 한국 대표부는 웡과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 주역인 왕단 등이 한국에 홍콩 시위 지지를 요청했다고 17일 밝혔다. 웡은 입장문에서 “홍콩 시민들은 한국의 촛불집회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영화 ‘1987’의 배경이 됐던 6월 항쟁 등을 통해 한국인이 민주와 인권을 위해 용기 내 싸운 역사에 많은 감동을 했다”며 “한국인들이 먼저 걸어온 ‘민주화의 길’을 홍콩 시민들과 함께 손잡고 가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웡은 앞서 한국 촛불시위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범죄인인도법안 반대 시위를 주도해 온 민간인권전선 지도부 역시 한국의 과거 민주화 시위를 자주 언급하며 관심을 표했다. 왕단은 “오늘의 홍콩은 39년 전 ‘광주’가 됐다”며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과 지지를 표한 것처럼, 이제는 한국도 홍콩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열망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표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노르웨이 자유당 소속 구리 멜비 의원은 전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목숨을 걸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홍콩인들을 2020년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민간인권전선 샴 대표 쇠망치 피격 중상 전날 홍콩에선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 대표가 괴한들에게 쇠망치 등으로 공격받아 중상을 입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몽콕 지역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하러 가던 중 4명에게 둘러싸여 해머, 스패너 등으로 마구 구타를 당했다. 괴한들은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학교법인 덕성학원, 안병우 이사장 취임식 개최

    학교법인 덕성학원, 안병우 이사장 취임식 개최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17일 덕성여자대학교 종로캠퍼스에서 제14대 안병우 이사장의 취임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취임식에는 이만열 학교법인 상지학원 이사장, 고철환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과 덕성학원 전·현직 임직원, 산하 교육기관 주요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안 신임 이사장은 취임식에서 “민족의 독립과 여성의 자각을 목표로 시작한 덕성이 내년인 2020년 창학 100주년을 맞는다. 유서 깊은 덕성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며 “여러 이사님, 감사님들과 지혜를 모으고 교직원들과 협력해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앞서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안 이사장은 교육기관으로서의 본질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는 평화로운 세계, 생태와 환경 그리고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지켜가는 사회, 끝까지 진리를 추구하는 정의가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만열 상지학원 이사장과 강수경 덕성여대 총장의 축사도 이어졌다. 이만열 이사장은 “안병우 이사장은 자신의 학문적 토대 위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고자 부단하게 노력해온 분”이라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올곧은 학자적 양심으로 오늘날 덕성학원이 당면한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도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안 이사장은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한국기록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신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안 이사장의 임기는 2019년 9월 14일부터 2021년 8월 29일까지다. 덕성학원은 여성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선생이 3·1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1920년 설립한 ‘조선여자교육회’를 뿌리로 하는 ‘근화학원’에서 시작됐다. 1938년 현재의 ‘덕성학원’으로 개명했으며 덕성여대를 비롯해 덕성여고, 덕성여중, 운현초등학교, 운현유치원 등의 산하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학림다방·동양서림엔 그 시절 그 청년들 흔적 켜켜이

    [미래유산 톡톡] 학림다방·동양서림엔 그 시절 그 청년들 흔적 켜켜이

    대학로는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에 이르는 젊음과 문화예술의 거리다. 대학로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66년 서울시에서 제정한 가로명에서 시작했다. 1920년대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경성제대를 성균관이 있는 숭교방 동쪽(동숭동)에 세웠다. 교수와 학생들이 대학 근처에 모여들어 살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촌이 형성됐다.이곳은 반촌의 일부였다. 반촌은 조선의 유일한 대학인 성균관을 뒷바라지하는 노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들은 공자와 안향을 비롯한 성현들을 모시고 유학 교육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반촌은 특수지역으로 인정해 허가 없이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고, 개경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들만의 호탕한 문화도 있었다. 하지만 반촌 사람들 중에는 병자호란 중 양반들이 버리고 가버린 성균관 성현들의 위패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켜낸 노비들도 있었다. 성균관 유생과 몰래 천주교를 학습하다 죽음을 맞이한 김석태도 있었다. 그와 함께 불온한 학문을 공부했던 성균관 유생은 바로 정약용과 이승훈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때 대학로에서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과 학림다방을 떠올리게 한다. 1956년에 생긴 이후 수많은 문인과 운동가들이 다녀갔다. 사람들은 추억을 찾아서, 또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장소를 찾아서 끊임없이 찾고 있다.대학로에는 학림다방 외에도 60년 이상 영업을 계속 해오고 있는 곳들이 또 있다. 문화이용원의 지덕용 이발사는 1956년 배운 이발 기술 그대로 한 장소에서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근처에는 ‘Since 1953’이라는 글자를 자랑스럽게 내건 동양서림이 있다. 이 오래된 이용원과 서점에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대학로의 학생들과 주민들이 다녀갔으며 얼마나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쌓였을까? 그리고 그전에 살았던 수많은 성균관 유생들과 반촌 노비들의 이야기들도 희미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임정화 성균관지킴이·‘표석을 따라 걷다’ 공저자
  • 프로파일러 이수정, BBC 선정 ‘100인의 여성’ 韓 유일 포함

    프로파일러 이수정, BBC 선정 ‘100인의 여성’ 韓 유일 포함

    우리나라 1세대 프로파일러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영국 BBC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BBC는 16일(현지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해 발표했다. 한국의 수많은 살인사건을 분석하고 스토커 규제법 소개에 힘쓴 범죄심리학과 교수로 소개된 이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 교수는 BBC가 여성 100인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여성이 이끄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범죄심리학과 교수로서 내 자녀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길 바란다”라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이 밖에도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하이힐 반대 운동을 펼친 일본 유미 이시카, 미 항공우주국 화성 프로젝트 매니저 미미 아웅 등이 BBC 선정 2019 올해의 여성 100인에 꼽혀 눈길을 끌었다. 말레이시아의 트렌스젠더 권리 운동가 니샤 아유브도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성전환을 한 아유브는 남자 교도소에 수감됐던 경험을 토대로 트랜스젠더 권리 운동에 나서 2016년 ‘국제 용기있는 여성상’(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월드피플+] 장애 청소년에 ‘의족 바비인형’ 선물한 보철다리 소녀의 사연

    [월드피플+] 장애 청소년에 ‘의족 바비인형’ 선물한 보철다리 소녀의 사연

    “아름다움의 상징인 바비인형조차 의족을 찰 수 있다는 걸 보고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보철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의 한 어린이병원에 ‘의족 바비’를 선물한 10대 소녀의 말이다. 뉴욕에 사는 클로이 뉴먼(18)은 평생 의족을 차고 살았다. 한 살 때 카자흐스탄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클로이는 14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한 어린이병원에 일명 ‘의족 바비인형’ 400여 개를 기증했다. 클로이는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이 병원에서 평생 다리 보철물을 관리했다”라면서 “1년 전 의족 바비가 나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바비 인형 제조사 마텔은 올해 초 휠체어를 탄 바비 인형과 함께 의족을 찬 바비 인형(바비 패셔니스타 #121)를 출시했다. 클로이는 “드디어 우리를 대표하는 인형이 나왔다고 생각했고, 나와 비슷한 소녀들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소녀는 마텔 측에 의족 인형 100여 개를 주문할 수 있는지 요청하는 한편, 지난달 어머니 신디 뉴먼과 함께 기부 운동을 시작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후원이 쇄도했고, 14일 클로이는 자신이 치료받던 스프링필드 소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에 자신이 구입한 인형과 후원받은 인형을 더해 선물했다. 클로이는 특별히 슈라이너스 병원을 선택해 기부한 이유에 대해 ‘의족 인형’의 원조가 바로 이 병원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클로이를 돌봐온 브록 맥콘키 박사가 그 주인공.맥콘키 박사는 수년 전부터 직접 ‘의족 인형’을 만들어 소녀들을 위로했으며, 클로이 역시 그 인형을 통해 많은 용기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클로이는 “박사님의 의족 인형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평생 내 다리를 만들어준 사람에게서 받은 위로를 소녀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소녀들이 자신처럼 인형을 보며 보철물에 대한 부끄러움을 떨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마텔은 의족 인형 제작 당시 “영구적 신체장애가 있는 바비를 통해 다양한 관점의 아름다움과 패션을 보여주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마텔이 선보인 새로운 바비 2019 패셔니스타즈 라인은 장애인 권리 운동가들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미국 장애인단체 리스펙트어빌리티는 “전 세계 인구의 10억 명 이상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라면서 의족 바비 출시를 환영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314㎏ 상어 낚아 세계신 세운 8세 소년에게 비난 쏟아진 이유

    314㎏ 상어 낚아 세계신 세운 8세 소년에게 비난 쏟아진 이유

    동물애호가들이 자기 몸무게의 8배나 되는 뱀상어를 낚으며 세계 신기록을 세운 8세 소년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호주 데일리메일은 13일(현지시간) 일부 동물애호가들이 낚시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소년과 그 부모에게 야유를 퍼붓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이든 밀라우(8)는 지난 5일 아버지와 함께 시드니에서 160km 남쪽에 위치한 브라운스마운틴 해안으로 바다 낚시를 나갔다가 314㎏짜리 뱀상어를 잡았다. ‘11세 이하 어린이가 잡은 가장 무거운 물고기’ 부분 세계 신기록이 경신되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의 최고 기록은 1997년 당시 312㎏짜리 뱀상어를 낚은 이안 히시가 보유하고 있었다.그러나 반응은 엇갈렸다. 데일리메일은 제이든이 동물애호가들의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한 남성 환경운동가는 “또 한 명의 환경파괴자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과시하기 위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살해했다”라고 비난했다. 또 “낚시 동호회가 불필요한 도살을 축하하는 꼴이 수치스럽다”라면서 “이 일이 평생토록 너(제이든)를 괴롭히길 바란다”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비난의 화살은 제이든의 부모에게도 돌아갔다. 현지언론은 제이든의 부모가 살생 스포츠를 하도록 방치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제이든이 속한 낚시 동호회가 올린 축하 게시글에는 절반가량이 부정적 답변을 달아 두었다. 한 네티즌은 “우리가 왜 이 어린이가 상어를 죽인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누가 설명해줄 수 있느냐”라고 비꼬았으며, “살인범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다”라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일부에서는 잡은 상어를 방생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두 살 무렵부터 낚시를 시작한 제이든은 상어를 낚기 위해 오랜 시간 사투를 벌였으며, 그동안 아버지 조나단은 아들이 바다로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뒤에서 낚시 벨트를 붙잡아 준 것으로 전해진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폰다, 美의회 앞 기후변화 시위 중 체포

    폰다, 美의회 앞 기후변화 시위 중 체포

    미국 할리우드 원로 영화배우 제인 폰다(81)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의회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폰다 등 시위 참가자 16명은 이날 의사당 앞에서 국제환경단체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 등이 주최한 ‘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스’ 집회에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요구하다가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집회 참가자들은 폰다와 다른 운동가들이 경찰에 연행된 뒤에도 시위를 이어 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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