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운동가들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대륙간탄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은행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강력범죄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지방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33
  • 독립운동가의 딸들(송화강 5천리:15)

    ◎“반동”낙인 찍혀 은둔… 90년대 양지로/김좌진 장군 외동딸 한때 「가짜」 오해받아/중국인­부친 옛동지 손에서 불우한 어린시절/문혁때 화입을까 유품 모조리 불태워/흑룡강성 승소운 할머니 마지막 꿈은 고국방문 그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은 마지막 부인 김영숙과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다.지금 흑룡강성 목단강시에 살고있는 김산조 할머니가 장군의 딸이다.장군은 1927년 단오를 이틀 앞둔 날 참모들의 간곡한 권유로 당시 19세 처녀를 부인으로 맞았다.그리고 나서 다음해 딸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산조여사의 나이는 올해 69세이다. 산조는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해림(현 목단강시 해림현)에 살던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만나러 산시로 가다 옥수수밭에서 낳았다.어머니는 뒤따라온 일제 끄나풀 손에 죽음을 맞았으나 산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당시 상황으로 어쩔수 없었던 장군은 딸을 중국인 집에 주었다.장군이 세상을 뜨자 측근들이 중국인 한테서 찾아다 영안현 해남촌 산골에서 길렀다.해림 일대에서는 산조가 장군의 딸로 널리 알려져 화를 피해 산골에서 키웠던 것이다. 1949년 연수현에 정착한 산조는 위정규와 결혼하고 1953년 지금 사는 목단강시로 나앉았다.지금은 남편과도 사별하고 30㎡가 될까말까 하는 비좁은 아파트에서 외동딸 위련홍(47)내외와 함께 살고있다.자동차 수리공장에 다니는 딸과 전동기정비공장 공정사로 일하는 사위 김재원(48)에게 얹혀서 산지도 꽤 오래되었다.딸 부부가 한달에 버는 돈은 750원에 지나지 않아 살림살이 밑천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일제 앞잡이에 모친 잃어 그녀가 어렸을때 보살펴 주었던 사람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측근이었던 김기철이었는데 그도 1946년에 세상을 떴다.양부이기도 했던 김기철은 임종 직전 김좌진 장군에 관한 기록을 딸 산조에게 넘겨주었다.한때는 귀중하게 보관했지만 귀신도 무서워 치를 떨었다는 문화대혁명을 맞아 모두 불태워 버렸다.김좌진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죽음을 면치 못할 판국이었거니와 외동딸 위련홍의 장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장군의 유품이라고는 체력단련을 할 때 쓰던 석마돌 하나가 혜림시 산시진 동광촌 마을 빈터에 남아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의 독립운동가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낙인 찍혀 그 후손들의 처지도 말이 아니었다.그 무렵 세상을 살면서 목이 메도록 고마웠던 일이 하나 있다면 딸 위련홍의 결혼이다.산조는 딸의 혼담이 오갈때 신랑집에 『없던 일로 하자』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그 이유로 『출신 성분이 나쁘다』고 했더니 신랑집에서 펄쩍 뛰었다.『출신이 무슨 상관인가,사람을 보고 며느리를 삼자는 것인데…』라고 오히려 신랑집에서 우겨 혼례를 치렀다. 그런 사연으로 해서 김산조 할머니는 1990년에서야 비로소 출생성분을 밝혔다.한때 학계가 「가짜 장군의 딸」이라고 한 것은 사실상 당연했는지도 모른다.갑자기 나타난 김좌진 장군의 딸 김산조.그녀의 정체는 끝내 진실로 드러났다.불을 종이에 쌀 수 없듯이 역사의 진실이 밝혀져 지난 1995년 한국에서 열린 「95세계한민족축전」에 초대되었다.그래서 외동딸과 함께 한국을 다녀왔다. 중국에서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장원급제 쯤으로 여기기 일쑤다.가난한 살림에 부대끼는 그들 모녀가 축전이 끝나자마자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했다.이어 지난해 7월6일 두번째로 한국을 찾았을 때는 대통령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고국이 자랑스럽기는 했지만 한국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또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김산조 할머니는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과 선물 받은 시계를 내보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가난으로 해서리 굶어 죽어도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디요.그러지 않아도 불법체류 조선족이 많은 판에 이 늙은이까지 눌러앉으면 무슨 꼴이 되겠습네까.좋은 사이는 좋은 사이로 지켜야디요』 흑룡강성 수분하시 남2조가 17호에 사는 승소운(78) 할머니도 김산조 할머니와 도토리 키재기를 할 만큼 같은 처지의 독립운동가 후손이다.평북 정주군 신안면 안흥동 태생인 그녀는 15세 때인 1934년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승정균을 잃었다.그녀는 흑룡강성 쌍압산시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8년 퇴직하고 지금은 여관업을 하는 딸 주정숙씨(56)와 함께 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기념사진 그녀의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가였다.경술국치때 요령성 환인으로 건너와 1913년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1917년에는 배달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승진(1890∼1931년)이 바로 그녀의 백부다.1920년에는 편강렬·양기탁 등과 의성단을,1924년에는 정의부를 조직한 승진은 동아일보 길림지국장을 맡기도 했다.그러다 일제 끄나풀 권수정 일파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둘째 백부 승병균(1893∼1920년)은 당시 봉천성 통화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군의 습격을 받아 배달학교 직원들과 함께 순국했다. 한국에서는 이들 형제의 독립운동 공로를 기려 백부에게 건국포장을,둘째 백부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는 것이다.북한을 다녀온 승소운 할머니의 딸 주정숙 여사의 말을 들어보면 고향 정주에서도 이들 형제를 알아주는 모양이다. 『할아버지 형제들이 고향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동안 사용했다는 움집터가 남아있습데다.그리고 큰 할아버지(승진)가 춘원 이광수와 오산학교동기동창이라는 말도 정주에 가서 들었디요.삼형제분이 고향을 떠나면서 마을에 전답을 내놓고 조상 무덤을 보살펴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기래요』 승소운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백부의 힘이 컸다.아버지가 죽음을 맞자 백부가 친분이 두터웠던 중국인 동선교에게 어린 소운을 맡겼다.북경대학 출신의 엘리트였던 동선교는 그녀를 키웠을 뿐아니라 공부도 시켜주었다.그래서 가목사시 화천중학 사범반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백부 승진과 함께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동선교는 광복이후 가목사시 시장,흑룡강성법원장,길림성 정치협상회의 사무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녀의 소원은 한국을 한번 가보는 것이다.그래서 지난 1955년 광복50주년때 고국참관을 희망했는데 초청을 받지 못했다.실망이 너무 큰 나머지 풍을 맞고 쓰러진 그녀는 지금 겨우 몸을 움직일 정도가 되었다.그러나 아직도 한국방문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부친 3형제가 독립운동 『아버지 삼형제께서는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습네까.하늘도 무심하시디….그 세분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만 모질게 살아 남았수다.살대로 다 산 몸입네다만,독립한 고국에 가서 독립기념관을 한번 둘러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디요.그래야디 저승에 가서라도 세분 아버지 형제들께 들려드릴 이야기 꺼리가 생기디…』 김산조와 승소운은 둘이 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다.딸네집에 얹혀산다는 것까지 공통점을 가진 비극속의 여인들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들 여인에게 엇갈리는 명암이 없지도 않았다.그 명암은 그토록 가고 싶은 한국을 방문했다는 것과 방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 노동법과 「이상한 일」들(이동화 칼럼)

    엊그제 흥분한 목소리의 전화를 한통 받았다.그 내용은 명동성당에 자리한 파업지도부가 「김영삼정권 퇴진」이란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데 대한 문제제기였다.TV뉴스를 보다가 곧바로 전화한다는 그사람은 『노동단체가 노동법에 대한 반대투쟁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무슨 권리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함부로 퇴진하라고 할 수 있느냐』고 열을 올렸다. ○파업 부추기는 「단골손님」 노동운동도,무엇도 아닌 이런 「이상한 일」에 대해 언론들이 왜 아무런 말도 없느냐는 힐문이 뒤따랐다.전화를 끊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이번 노동관계법의 개정에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노동운동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 사실 너무 많았다. 느닷없이 외국인 노동운동가들이 모여들어 온갖 소리를 다하는가 하면 현실참여에 상당한 체중을 두어온 예의 천주교 일부사제들이 이번에도 공개적으로 시국선언을 내놓고 파업을 부추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공권력은 성당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이 있을 때마다 이를아물게하기 보다는 증폭시키는 일이 많았던 재야단체나 일부 지식인들도 여기저기서 파업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우리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그 원인으로 고비용 저효율로 국가경쟁력이 크게 떨어졌음을 적시하고 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할때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조용히 경청하고 있다가 갈등구조가 보이자 정부비판에 나서는 일,이런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는 일이 노동운동이 아니라 정치운동이라고 할지 모른다.그러나 정치운동은 정치인이 맡아야 한다.종교인·법조인·학자 모두 자기가 맡아야 할일,본분이 있다.우선 그런 본분을 다하고 있느냐를 자문해볼 일이다.다만 정치권이 본분을 다하지 못한데서 안나서야 할 사람도 나서고 문제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이는 정치권에 할일을 못하는 「이상한 일」이 있다는 얘기다. ○노동문제의 정치문제화 우선 국회에서 법안통과 과정부터 이상했다.이른아침 여당일방의 기습통과도 정상이 아니지만 이를 유도(?)한 야당의 태도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그동안 야당은 국가경쟁력 제고의 필요성에 대해서 별로 이론이 없었다.그렇기때문에 노동관계법 개정은 대세였으며 야당이 반대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시기였다.내용에는 별 이견없이 법안통과시기만 2개월 정도 늦추자는 주장은 뭔가 대권전략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상했다. 결국 이 문제는 노동문제에서 정치문제로 확대되었다.일부나마 파업이 벌어져 국민불편과 생산감소에 따른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고 민심불안이 뒤따르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해결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음은 비정상적인 일이라기 보다 불행한 일이다.여야당 모두 대권을 바라보는 주자들이 여럿임에도 누구하나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채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유감스런 일이다. 정치권이 이렇게 한계를 보인바에야 이 문제를 다시 노동문제로 초점을 돌려 대화로 해결해 보도록 권고하고 싶다.민노총이 지난 3일부터 단계적 파업을 주도,결국 총파업으로 끌어가려하고 한국노총도 이에 가세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파업양상은 지도부가 바라는 수위로 가지 못하고 있다. ○대화노선으로의 결단을 노동문제는 그 기본이 노사관계임에도 노사관계가 아닌 법제정문제로 파업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을 넘어선 불법이다.불법이 힘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이를 직시한다면 지도부에서는 불법파업을 즉각 중지하고 대화노선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리기를 충고한다. 한마디 더하면 「노동관계법의 철회」는 7개월간에 걸친 노개위 참여와 모순되는 주장이다.「철회」를 철회하고 적극적인 대화로 노동단체가 아닌 근로자를 위해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얼마라도 얻어내는 것이 합리적으로 해야할 일이다.힘으로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주필〉
  • 환경파수꾼/그린피스 탄생 25돌

    ◎71년 가서 허름한 트롤어선 “승선”/핵실험 반대 등 「지구보존」에 앞장/세계 158개국 3백여만 회원 보유 지난주 탄생 25돌을 맞은 그린피스는 세계환경보호운동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71년 9월 15일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허름한 트롤어선에 승선한 일단의 호전적 환경운동가들이 미국의 앰칫카 섬 핵실험에 항의해 돛을 올린지 만 25년이 된 것이다. 그동안 숱한 업적을 쌓은 그린피스는 이제 세계환경경찰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해 이 기구는 사용중지된 석유시추대 브렌트 스파를 북해에 수장시키려는 석유 메이저 셸의 계획을 철회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프랑스의 남태평양 핵실험 재개에 맹렬한 반대운동을 펴 프랑스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으며 환경친화적인 기술개발에 대한 업계의 투자의욕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존층에 피해를 주지 않는 냉장고,연료소비를 줄이는 자동차 등을 생산하도록 업계를 자극했다. 성년을 훨씬 넘긴 그린피스는 보다 실용주의적으로 노선을 바꾸었다.이상주의를 고집하던 초창기의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식의 선정주의 방식을 지양하고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선회했다. 그린피스는 최근 프랑스 비밀공작원들이 오클랜드항 앞바다에서 이 기구의 반핵기함 레인보 워리어호를 폭파하고 이 와중에서 사진사 페르난도 페레이라가 죽어 타격을 입었으나 이 공격은 오히려 그린피스의 반핵투쟁 결의를 강화시켰다. 그린피스는 최근 홍콩에 33번째 해외 사무실을 개설해 개발도상국들의 환경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세계 1백58개국에 약 3백만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그린피스는 95년 수입이 94년 보다 11% 늘은 1억5천2백80만달러였다고 공개했다.기부금의 33%는 독일,20%는 미국,10%는 네덜란드에서 들어오고 있다.
  • 대만독립당 “「공화국」 설립 지향”

    ◎신당 정강정책 발표… 민진당 노선 비난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독립당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대만내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대만공화국」 설립을 주요 내용으로 한 신당의 정강정책을 10일 발표했다. 오는 12월12일 공식 출범할 예정인 대만독립당의 이융치 대변인은 이날 『민진당은 대만독립구상을 실행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만독립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우리의 입장은 별개의 국가인 중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당의 정강정책은 새로운 독립국가인 「대만공화국」 건설을 최우선 목표로 국민과 이후 세대들을 위한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안전하고 공평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만독립당 창당으로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만 최대야당 민민당의 줄리안 쿠오 대변인은 실용적인 방법으로 독립이라는 목표에 접근하고 있을뿐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목표를 배반한 적이 없다면서 『독립은 급진적인 구호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은 지난 49년 본토를 중국에 내준 뒤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 환경오염 살상범죄로 다뤄야/이중한 논설위원(서울논단)

    몇달새 우리는 좀처럼 대안을 찾기 어려운 환경오염사태의 연속상영을 보고 있다.시화호,여천공단만 해도 해법마련은 어렵지만 문제의 윤곽은 알수가 있다.그러나 한탄강 물고기떼죽음을 시작으로 홍수가 휩쓸고 지나가도 끊임없이 떠오르고있는 임진강 죽은 물고기 상황은 지금 전국 모든 강과 담수호로 이어지고 있다.적조도 더 커지고 있다.이 떼죽음은 사실확인과 문제정리조차 하기가 어렵다.그러고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가조차 분별해 볼 지식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언제 환경문제까지 고려할것인가,생산이 급하다에 우리 모두가 그동안 공감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므로 오늘 오염에 대한 자연 자정능력이 더이상 버틸수없는 한계선에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공감대를 새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이 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이것이 바로 환경문제해결에는 무엇보다 의견일치의 장벽이 가장 크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의견일치의 시간적 여유도 없는 채 가혹한 현실이 등장하고 있다.오염이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강물을 식수로 사용할수 없다가 아니라 농어촌 지하수까지 식수로 먹을수 없게 됐다.어민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대도시에서는 물만 먹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숨을 쉬는 것도 건강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그간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이 추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바 아니나 이제는 오히려 제한적이며 협소해 보이기도 한다.오염사태 자체가 더 압도적이기 때문이다.시화호,여천공단,임진강,낙동강의 현안을 해결하는 최소 비용만 해도 개선가능성 여부와 관계없이 1조7천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와 있다.결국 국민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생산이익과 대비해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인지를 따저 보지 않을수 없는 단계가 된것이다. 이 고통속에 환경부가 「환경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환경사범처벌 형량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현행법은 고의범에 1년이상 징역형이 최고형량.이를 징역 7년형에도 처할수 있게 했다.누구도 이의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오염사태가 있을때마다 형량강화를 주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법이 과연 실질적으로 실천되고 상징적으로나마 영향을 줄것인가라는 의문은 상존한다.지난 8월 발표된 서울지법의 「환경범죄의 양형상 문제점 연구보고서」가 바로 이를 증거한다.지난해 1월부터 금년4월까지 처리된 환경범죄사건 85건중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은 단 1건 2명에 불과했다.84%에 해당하는 78건은 아예 약식명령사건으로 처리돼 이중 61건이 2백만원이하 벌금형으로 종결됐다.그런가하면 최신 오염방제시설을 설치한 기업에는 각종 점검을 면제해준다는등의 특혜조항들이 한둘이 아니다.이런 관행이 7년형으로 바뀔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환경오염의 위기의식이 실재하는 것이냐에 있다.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수질오염을 외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실증하는 작업이 더 과학적이어야 한다.오염원이 무엇인지,출처는 어디인지,산성농도·생물학적 산소요구량들이 과연 동식물 번식과 행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자신있게 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세계에서의 환경범죄형벌은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가고 있다.「환경형법」을 만들고 있다.EU(유럽연합)는 더 나아가 초국형법,지역간형법을 만들자는데 당도해 있다.91년부터 시작해 올해 완료키로 한 「환경범죄에 대한 유럽조약」은 환경오염을 명백한 범죄로 인식하고 그 법정형에 있어 살인·상해 및 전통적 범죄와 동렬에 놓자는데 합의를 이루었다.고의와 과실 구별의 불명확성을 극복하는 인식의 공감대를 성립시킨 것이다.이점에서 우리의 단순한 형량확대는 부족한 것일수 있다.이정도로 현실을 이끌어 가는 일이어서도 곤란하다.환경형법제정의 단계로 나가면서 사실인식을 더 강조해야 한다.이 인식은 특히 산업체로부터 시작돼야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 조선총독/이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 고발

    ◎가람기획,광복51주년 맞아 「조선총독 10인」 펴내/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죄목 낱낱이 밝혀/김삼웅·정운현씨 등 친일문제연구가 7인 공동집필 지난 6월 일본 문부성은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국가간 전후 보상문제는 완전 해결됐다』고 기술토록 저자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위안부 문제 등은 그 후에 나온 개인적인 요구』라는 것이다.끝없는 침략전쟁 미화 발언·독도망언 등 일본의 이같은 역사몰각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그 후안무치함의 뿌리는 일단 그들의 극도로 이기적이고 편협한 애국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본적 애국심(충성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들의 죄상을 낱낱이 들춰낸 연구서 「조선총독 10인」(가람기획)이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총독 10인」은 일제하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의 행적을 연구·조사,그 실태를 공개해온 친일문제연구회(회장 김삼웅)가 「일제잔재 19가지」「친일변절자 33인」「반민특위」「일제침략사 65장면」에 이어 펴낸 역사자료집.특히이 책은 광복 51주년을 맞은 오늘의 시점에서 광복의 의미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철하게 짚어보고,일본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총독은 일제강점기 일왕의 대리권자로서 조선의 제반 통치행정을 책임졌던 장본인이자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처단 제1호」의 대상이었다.이들은 마치 식민지 이전의 조선국왕과 같은 지위를 누리며 행정·입법·사법·군사통수권까지 장악한채 조선을 포괄적으로 통치했다. 친일문제연구가 김삼웅·정운현,국사학자 조명철씨 등 7명이 공동 집필한 이 연구서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에서부터 마지막(9대)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에 이르기까지 일제 조선통치의 최고책임자 10인의 행적을 더듬는다. 1905년 초대 조선통감에 부임해 1909년까지 4년여동안 통치한 이토는 제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며 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그는 경운궁의 호칭을 덕수궁으로 고쳐 이곳에 고종을 유폐하고,순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창덕궁에 안치시켰다.또 고종이 귀여워한 왕자 은을 인질로 일본에 끌어가기도 했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만행 또한 이토에 못지않다.데라우치는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는 데 중추세력을 이뤘던 조슈 번(장주번) 군벌을 계승한 대표적인 무사였다.1910년 10월 초대총독이 된 데라우치는 무사출신답게 헌병경찰제도와 조선주차군을 도구삼아 무단정치를 강행,조선인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었다.그는 통감부시대의 각종 악법위에 다시 조선민사령,조선형사령,조선보안법,조선태형령,범죄즉결례 등을 제정해 조선인의 민족운동을 압살했다. 1916년 조선에 온 제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의병운동과 3·1운동을 무차별 탄압해 결국 1919년 총독직에서 물러났으며,이어 제3대 총독에 오른 사이토 마코토는 이른바 「문화정치」로 포장된 강압통치로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민족을 분열시켰다.이와 관련,김익한씨(배재대 강사)는 『사이토 총독이야말로 일본사회의 「혼네」(속마음)·「다테마에」(겉으로 나타내는 표현방식)구조를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라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현상적 「다테마에」의 측면보다는 「혼네」의 측면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이 책은 황민화정책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해 광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태평양전쟁 개전이후 조선을 「결전체제」로 끌어올려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한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 등의 만행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힌다. 일제시대사 특히 일제침략사는 조선총독에 대한 연구를 빼놓고는 첫 장을 써나갈 수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는 거의 「백지상태」인 형편이다.이같은 반성에서부터 비롯된 「조선총독 10인」은 독립운동사연구에만 매달릴 뿐,정작 침략원흉에 대한 인물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에 보내는 하나의 경종이 될 만하다.
  • 해외행보 나선 DJ부자… 번지점프 참관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김홍일 의원 부자가 해외 행보에 열심이다.내년 대선을 앞둔 김총재는 말할 것도 없고,김의원도 부친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DJ(김총재)는 지난 8일부터 6박7일동안 남태평양 괌에 휴가중이다.귀국해도 19일까지 당무를 조세형 부총재에게 맡기고 모처럼 휴식을 취한다.15일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빼고는 홀가분하게 하한정국 구상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DJ는 이달 31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호주 순방길에 오른다.시드니대학에서 명예법학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의 모색」을 주제로 강연을 가질 예정이다. 체류 기간동안 호주 상·하원의장,대법원장,외무장관,환경부 장관,캔버러주지사,예비내각의 외무장관,인권 운동가들과 면담할 계획도 갖고 있다. 아들 김의원은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중이다.한달전 당 외곽 청년조직인 「연청」관리역을 정세균의원에게 넘긴 뒤 조용한 행보를 해온 터여서 눈길을 끈다. 김의원은 중국 산동성 연태대학으로부터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그의 측근은 『중국의 명예박사 제도는 매우 까다로워 중국 정부가 직접 관장하고 있다』고 그 의미를 한껏 치켜세웠다. 지역구의 전남 목포대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이 대학으로부터 지난 1월 명예교수직을 받은 김의원은 「목포권과 중국 산동성의 교역전망 및 과제」라는 특별강연도 했다.그는 이 자리에서 『공동협력 프로젝트 연구와 산동성에 한국기업지원센터를 설립,현지 진출기업의 법률 세무경영 자문과 시장조사 등 지원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독립유공자 초청 보은행사/독립기념관,보훈의 달 맞아

    ◎전국 1백93명 모여 「험난한 시절」 회고/목천·병천초등학생과 통일염원 타종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에 생존해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은행사가 12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에서 열렸다. 전국의 독립유공자 3백86명가운데 1백93명이 배우자와 함께 1박2일간 한자리에 초청돼 기념행사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에서 통일로!」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이강훈·안춘생·박영준·서상교·이규창·김승곤·조인제·권쾌복선생 등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원로유공자,지부영·신순호여사 등 여성독립운동가 10여명과 황창평 보훈처장,이경문 문체부차관,이수빈 삼성사회봉사단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은의 뜻과 함께 독립세대와 통일세대가 한 자리에서 만나 독립의 의의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인근 목천초등학교와 병천초등학교의 어린이 1백40여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하오 1시부터 참석자들은 독립기념관 추모의 자리에서 육군본부 의장대의 도열과 진혼곡속에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산화한 동지들과 순국선열 영령들에게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이어 겨레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식을 가진뒤 이강훈 선생(93)으로부터 독립운동당시의 회고담을 들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험난한 시절의 얘기를 손주에게 옛날얘기 들려주듯 자상하게 일러준 이옹은 『나라가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는다』며 『여러분이 훌륭히 자라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루고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선생의 발표가 끝나자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어린이들이 기다렸다는듯 갖가지 궁금증을 쏟아놓았다.『일본인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어떤 고문을 했나요』『독립운동할때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그 당시 독립군가를 불러주세요』 정진영양(13·병천초등6)은 『우리나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싸우신 할아버지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더욱더 나라를 사랑할 것을 다짐했다. 열띤 대화의 시간뒤에 이들은 한마음으로 통일염원의 종을 타종하고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배어있는 전시관을 함께 관람하며 제2의 광복인민족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삼성그룹과 공동으로 이 행사를 주관한 박유철 독립기념관장은 『생존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고 육성녹취를 통해 미흡했던 독립운동사의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천안=이순여 기자〉
  • 외국남성들 인도처녀 “신부감 1위”

    ◎“순수하며 순종적” 배필 찾아 인도방문 줄이어/“지참금 부담 없다” 인도여성도 국제결혼 선호 인도여성들이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를 찾는 극동,구미 등지의 외국남성들에게 최고의 신부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들 신랑감이 자기 나라의 문화적·도덕적 타락현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순수하면서도 순종적인 인도여성들에게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인도남성들의 경우 세습적 계급제도인 카스트를 비롯,피부색·종교·가족배경·궁합 등을 따지는데 반해 이들 외국남성들이 이런 것들을 전혀 문제삼지 않고 주로 상대의 심성을 보려하는 점도 인도여성들의 국제적 인기를 높이는 요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 뉴델리에만 5백여개를 포함,전국적으로 수천개에 달하는 인도의 결혼상담소들은 이제 외국 남성과 인도 처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상마저 생겨났다. 다케시 도시히코란 일본청년도 작년에 인도인 색시감을 찾기위해 뉴델리를 방문,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결혼상담소로 직행했다. 도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올해 25세의 다케시는 뉴델리시 서부의 레가르푸라에 있는 이 결혼상담소의 소장 다람 찬드 아로라(65)씨와 면담한뒤 신랑감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렸고 한달만에 마음에 드는 인도여성을 찾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아로라씨는 인도 전역의 건물벽에 시커먼 페인트로 광고를 써놓아 가장 많이 알려진 자신의 사무실에만 지금까지 다케시와 같은 목적을 가진 외국인이 수백명이나 찾아들었다고 자랑했다. 벨기에의 이혼남인 비즈니스맨 조젭 귀스타프 다니엘(38)씨도 『서방에서 이혼율이 놀라울 정도로 치솟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전통문화상 결혼이 평생의 약속으로 간주되고 있어 전반적으로 이혼율이 낮다』며 인도여성들이 썩 좋은 신부감임을 강조했다. 인도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인도남성들이 요구하고 있는 엄청난 지참금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는데다 결국 가족들로 하여금 인도를 떠나게해줄 수도 있기 때문에 국제결혼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인도 여권신장운동가들은 외국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진부한 인도여성상에 대해 분노하면서 이런 국제중매의 배후에 모종의 동기가 깔려있지 않나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김규환 기자〉
  • 제3자개입/“분규 선동 우려” 재계 반대(신노사관계:6)

    ◎「노조대표의 타사 접근」 독일 등도 불허/노동계선 “전문·연대성제고” 허용 촉구 통신분야에서 세계 최대기업인 미국의 AT&T사는 80년대초 연방정부에 의해 분할명령을 받은 뒤 14만명의 근로자가 정리되면서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독점적인 지위도 잃게 된다. 그러나 AT&T는 경쟁력 핵심요소가 인력관리라고 보고 종업원을 경영혁신과 기업발전의 동반자로 삼는 경영으로 정상화에 성공하게 된다.노사간 자율에 의해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신뢰관계를 쌓아올려 회사를 재기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92년 경영철학에서부터 합의를 이룬 노사간의 「공동약정서」를 채택했고 노사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정한 협정인 「미래의 작업장」도 체결했다. 정부가 추구하는 신노사관계도 바로 이러한 참여적이고 협력적 노사관계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우리의 노사관계는 아직도 「파이키우기」보다 「얼마되지 않는 파이를 서로 더 차지하려는」 대립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전문가들은 노동법개정에서 제3자 개입금지 문제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가 팽팽히 맞서 있는 것도 대립적·적대적 노사관계의 단적인 예라는 시각이다.그래서 문제해결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3자 개입문제는 적대적 관계 아래에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노동3권의 운용을 좀 엄격하게 보는 관점에서 제3자 개입은 조종·선동·방해와 같이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반면 노동3권의 실제적 구현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제3자 개입이 전문성 제고와 연대성 강화로 이어지고 근로조건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재계와 노동계의 제3자 개입금지에 대한 논리와 시각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재계와 노동계가 참여적이고 협조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이라는 대명제하에서 이 조항의 존폐여부를 따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90년 1월15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제3자 개입을 금지한 노동쟁의조정법 13조 2항과 벌칙조항인 제45조 2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재판부는 당시 결정문에서 『이 조항들은 조종·선동·방해 행위만을 규제하고 있을 뿐 변호사나공인노무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나 산업별 연합단체의 도움을 받을 길은 열어두고 있으므로 근로3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었다. 결정 과정에서 9명의 재판관중 김문희 주심 등 5명은 제3자 개입은 무조건 금지돼야 한다는 합헌론을 폈다.김양균 재판관 등 3명은 『노동운동 목적에서 벗어난 제3자의 부당한 개입행위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정적 합헌론을 주장하는 등 8명이 합헌이라고 밝혔다. 우리의 경우 과격한 일부 노동운동가들이 온건노조에 침투,산업현장을 악성분규의 소용돌이로 만드는데서 특히 제3자 개입의 문제점이 증폭돼왔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독일의 경우 72년에 만들어진 기업조직법은 기업내부에서 대표성를 갖는 노조에게만 사업장에 접근할 권리를 갖게 하고 있다.또 81년 독일연방 헌법재판소가 기업 외부의 노조대표에게 기업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던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김병헌 기자〉
  • 기미년 「서울역 만세시위」 주도/이달의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

    ◎서울신문·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3·1운동 전국확산 계기… 일에 쫓겨 망명/임정 수립·만주 「대일전선동맹」 결성 주역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은 2일 해공 신익희 선생(1894∼1956)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과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지내면서 항일독립투쟁을 펼치고 광복후에는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1894년 6월9일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수학한 뒤 13살때인 1908년 상경,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일제로부터 국권을 되찾고 민족적 수모를 설욕하는 방법은 서구의 진보한 문명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영어과를 택했다. 선생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1910년 졸업했다.극일의 심정으로 일본유학을 단행,191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수학하고 귀국,중동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윌슨 미국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한 1918년 림규·송진우·최남선 등과 독립운동을 밀의한다.3·1운동을 지켜본 선생은 3월5일 서울역 앞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한다.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면서 일경에 쫓기는 몸이 돼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선생은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을 추진하고 같은 해 4월13일 임정수립을 대내외에 공포하는 한편 대한민국을 민주공화제로 하는 10개항의 임시헌장도 선포한다. 임정의 조각이 이루어지자 선생은 초대 내무차장 겸 내무총장대리로 선임되어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대리로 부임한 안창호를 도와 임정의 국내 행정조직인 「연통제」를 창안,실시하게 된다. 임정 법무총장·외교부장을 두루 역임한 선생은 한국청년 5백명을 모집,군사행동을 위한 유격대성격의 「분용대」도 편성하는 등 한·중 합작에 의한 대일항전을 역설했다.한국혁명당을 창당한 선생은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을 도발하며 중국침략을 노골화한 일본에 맞서 모든 독립운동단체와 정당이 결속할 것을 주장,「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그러나 가맹단체간 협의기관인 이 동맹은 결속력과 통제력에 한계를 드러내 1935년 남경 금릉대학에서 민족통일전선의 원칙아래 신한독립당·의열단·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 등 5당 통합을 이뤄낸다. 선생은 조선의용대 병력이 모여 있는 낙양으로 가서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연합,무장투쟁노선의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의 결성을 주도했으며 1941년에는 한·중합작으로 한·중문화협회를 조직한 뒤 다시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된다. 1943년 4월 임정 선전부의 선전위원회에서 조소앙·유림 등과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의 선전계획수립과 실행에 이바지했다.1944년 5월 임정의 연립내각성립 때 내무부장에 선임되어 활약하다가 중경에서 광복을 맞는다. 광복이후 선생은 1945년 12월2일 임정요인의 2차환국 때 자주적 민족국가건설의 희망을 안고 귀국하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이 결의되자 김구주석을 도와 반탁운동을 선도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생은 1946년 국민대학을 설립,민족국가건설의 동량을 육성하는 한편 「자유신문」을 발행,민족 자주성을 길러나가는 데 일조했다. 1948년 5월 제헌의원선거때 경기 광주에서 출마,당선됐고 이승만의 후임으로 국회의장에 선출되어 활약하면서 대한민국건국에 크게 공헌하게 된다.1956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으나 5월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황성기 기자〉
  • “영·아일랜드에 연중무휴 공장”/정몽헌 회장이 말하는 투자계획

    ◎인프라 등 충족… 반도체 수요 여전 정몽헌 현대전자회장은 29일 미국에서 1백7억달러에 이르는 향후 5년간의 해외투자계획을 발표했다.다음은 정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추가로 건설될 반도체 공장의 구체적인 입지는. ▲유진에 당초 8인치 웨이퍼공장 2개가 예정됐었다.유럽은 인프라가 갖춰져있고 24시간 3백65일 일할 수 있는 나라로 영국과 아일랜드 등을 생각하고 있다.동남아는 구체적인 입지를 검토하지 않았으나 2000년 이전에 1개를 지을 계획이다. ­유진시 공장을 환경운동가들이 반대하고 있다는데 차질은 없는가.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현지 지방정부 등이 모두 협조적이다. ­1백7억달러의 투자가 무리한 것은 아닌가. ▲달성가능성이 낮거나 무리하다고 보지 않는다. ­재원조달은. ▲1백억달러를 투자해 연 1백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면 상당한 수익이 보장된다.이 수익으로 충당이 가능하다고 본다.반도체산업은 지금까지 어느 분야보다 고성장을 이룩해왔다. ­반도체 경기논쟁이 계속되는데. ▲투자금액의 1.15∼1.2배 매출을 올려온 게 지난 3년간 반도체산업이다.비정상적인 것이다.더욱이 전문가들은 최근의 가격하락이 과잉수요에 따른 과잉재고의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 “체첸사태 무력으론 해결못한다”/파벨 펠겐하우어 주장(해외논단)

    ◎체첸인 결사적… 국제 테러 확산을 초래/옐친 평화안 못찾으면 국가위기 봉착 체첸사태는 무력만으로는 종식시킬수 없으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여야한다고 러시아 시보드냐지의 국방안보담당편집장 파벨 펠겐하우어씨가 최근 그의 칼럼에서 주장했다.그 칼럼을 요약한다. 체첸사태와 관련하여 95년 6월 정전협정이후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시기는 끝이 났다.평화적인 과정은 끝장났고 러시아와 체첸간에 극도의 갈등의 골만 남았다. 체첸사람들은 이제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떠나는 것뿐만아니라 코카서스 전지역에서의 철군을 요구하고 있다.분리주의자 지도자중의 한 사람인 조하르 두다예프는 회견에서 러시아군의 철수없이 전쟁은 결코 끝날 수 없다고 선언해놓고 있다.옐친대통령도 그들이 무조건 무기를 버리고 백기를 들지않으면 「초토화」작전을 계속 수행할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아마 당분간은 조용할지 모른다.체첸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기는 하다.하지만 무력만으로 체첸사태를 종식시킬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해 6월 부됴노프스크에 대한 체첸반군의 공격이 「평화과정」을 낳긴 했지만 이번 키즐랴르 인질사건은 유례없는 무차별 진압,엄청난 인명손실만을 남겼다.전자는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전사들이 참가,체첸에 별다른 피해없이 「승리」를 안겨주었다.후자의 사건에는 체첸의 엘리트 테러리스트들이 참가,목숨까지 잃으며 무차별 진압됐다. 부됴노프스크와 키즐랴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잘하기만 했으면)「피의 전쟁」에 전환점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하지만 양측 모두 이러한 기회를 잃었고 모두 물거품이 됐다.95년 3월과 4월 러시아군이 체첸반군의 진지들을 하나씩 접수하며 성공적으로 공격을 이끌었을때 사회일각에서는 평화협정을 빨리 맺어야 한다는 욕구가 팽배해졌다.언론인과 인권운동가들 뿐만아니라 정부 관리들도,심지어 잘 알려진 군장성들도 평화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었다.95년 5월 아나톨리 쿨리코프 내무장관(당시 내무보안군사령관)은 『진지마다 그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는 『규모있는 체첸의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체첸인들과의 협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많은 러시아관리들도 95년 중반 체첸인들이 군사적 패배를 감수하고 적당한 선에서 독립할 준비가 돼 있다고 믿었다.당시 「매파」들은 크렘린내에서 소수였다.그래서 부됴노프스크대치는 평화협상을 준비할 수 있는 전례로 판단됐다.반군측도 상처만 깊어가는 오랜 적대관계의 청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양측 모두 결코 적대관계를 영원히 청산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러시아군의 무차별진압이 있긴 했지만 반군 역시 그동안의 휴전상태를 비인간적인 테러를 감행하는 준비기간으로 이용했다.지난해 12월 체첸인들은 체첸공화국 제2의 도시인 구데르메스를 포위공격하다 러시아군에게 패퇴했다.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었다. 체첸반군들은 지난해처럼 강력한 군사적 행동을 이끌 처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테러리즘으로 전환했고 터기에서의 유람선인질사건처럼 국제테러리즘의 경향을 추구하고 있다.러시아 당국은 오랫동안 체첸에서 외국의용병들이 두다예프 특수군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해왔다.현재 연방보안국(KGB후신)측은 페르보마이스카야에서 전투하는 동안 외국군인들이 포로로 잡혔다고 주장하고 있다.혹시 사실일지라도 외국군이 체첸테러리즘을 지원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지난 15일 반군측은 트라브존에서 러시아인들이 탄 유람선을 납치했다.이 사건은 터키가 체첸 테러리스트들의 거점이 되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다.터키는 세계적인 경찰력과 엄격한 반테러법이 확립돼 있는 나라다.몇명의 무장테러리스트들이 수백명이 탄 유람선을 납치하도록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적어도 지방관리들이 흘려주는 정보없이는 말이다. 체첸군은 주변 회교국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무모한 사건을 벌일 가능성도 높다.러시아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국가적인 위기가 아닐수 없다.옐친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을 계속할수 있는 기회가 있다.단 테러리즘의 확산에 대처하고 체첸사태를 어디까지나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한다.이에 앞서 선행될 것이 있다.얼마나 많은 인질들이 체첸반군에 잡혀있었나.러시아군은 정확히 몇명의 인질을 석방시켰나.이번 내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쳤는가.러시아군의 손실은? 얼마나 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누구였나.러시아와 체첸반군은 각각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많은 러시아 국민들은 이러한 질문에 정부당국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 영원한 의병장 의암 유인석(압록강 2천리:20)

    ◎을미항일투쟁 실패 후 보달원에 은거/제천서 궐기… 한때 원주·단양일대 석권/청·러시아 방해로 의병활동 재기 좌절/한족들이 기념비·허묘세워 충절의 넋기려 요령성 관전현일대에는 19세기말부터 조산팔도의 의병들이 몰려들었다.이른바 서간도로 불리는 이 압록강유역은 일찍 항일의병은 동의 요람을 이루었다.그 지도자는 의암 유인석(1842∼1915)이었는데,1896년에는 압록강을 건너 관전현 땅을 밟았다.1895년의 을미의병운동이 국내에서 실패하자 부득이 서간도로 들어온 것이다. ○작년 정부서 건립 그가 오래도록 살았다는 관전현 보달원은 이름그대로 가는 길이 멀었다.관전현 현성에서 80㎞나 되었으니,걸어가자면 먼 길이었을 것이다.지금도 승용차로 4시간이 걸린다.막상 보달원에 도착하고 나서 그가 숙영지로 삼았다는 고령지를 찾아가는 길은 더욱 멀었다.자동차로 고개를 넘어 혼하를 건넌 뒤 환인현 사첨자향으로 들어가 또 강을 따라 올라갔다.그리고나서 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천신만고 끝에 고령지에 도착했다.유인석선생이 인솔한 의병들이 처음 자리를 붙이고 가솔들을 데려와 살았다는 고려구 골짜기가 동쪽 먼 발치로 보였다.의암 유인석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마을사람들을 따라 좁은 골짜기를 한참 올라갔을때 평평한 산언덕이 나왔다.거기서 천연의 바위를 기석으로 삼아 세운 의암기념비를 만났다.지난해 95년 5월 관전현 현정부에서 세운 이 비석은 너비 1m,높이 70㎝로 그리 크지는 않았다. 유인석선생은 본래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18 95년 학맥을 따라 충북 제천 장담으로 거처를 옮겨 활약한 조선의 거유다.18 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그해 을미년 12월24일 제천에서 3천의병을 일으킨 그는 한때 제천·충주·원주·단양지역을 석권했다.그러나 관군에 밀려 서북지방인 황해도·평안도로 이동했다.서북지방에서 재기활동도 결국 실패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숨어든 곳이 만주땅 서간도에 해당하는 요녕성 관전현 보달원이었다. 유인석선생과 보달원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그의 의병부대가 환인현 현재 서본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한 이후 오랜 유랑과망명생활을 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 부달현이었기 때문이다.의병운동이 청국정부와 러시아정부의 방해로 좌절되자 보달원 방취동에 물러앉아 있었던 것이다.의병활동의 기회를 눈여겨보면서 저술활동에 전념한 그는 방취동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춘천 태생 조선의 묘비 그가 말년을 살았던 방취동은 비석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서쪽으로 2∼3㎞정도 떨어졌다.지금은 인가가 없고 인적도 끊겼는데,그가 「우주문답」을 저술했다는 산굴과 집터만이 남아있었다.그리고 보달원 사람들이 아직도 유인석묘소로 고집하는 무덤 하나가 자리잡았다.19 30년대 유인석선생의 증손이 유해를 고향땅 강원도 춘천으로 이장했는데 무덤이라니….당시 후손이나 독립운동가들이 여기 살아 잘못 옮겨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보달원의 한족들이 유인석선생의 허묘를 실제의 묘소로 우기는 까닭을 늦게야 터득했다.허묘를 모를까 만은 그를 오래 우러러 추모하기 위한 고집이라는 것을….평안도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도의 아내 최씨가 일본 영사관원에 능욕을 당하고 자결했을 때 그가 글을 지어서 써 준 묘비까지 문물(문화재)로 지정할 정도였다.그 묘비 「조선열부해주최씨표적비」는 지금 환인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29일 관전현 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는 유인석학술사상연구소를 세웠다.평북 벽동군 태생인 최신화(67)선생을 소장으로 한 이 연구소에는 13명의 연구원을 두었다.그리고 유인석선생의 사촌형 유홍석선생 증손이자,현재 한국광복회 강원도지부장인 유연익씨가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이밖에 관전현 역사지명지판공실 상진생주임과 같은 한족 학자들도 연구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인석사상학술연구소는 중국 당대 역사상 첫 한국인 대상의 연구기관이다.연구소는 관전현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유역에 남아있을 유인석선생 반일활동사료를 발굴하고 있다.그러나 연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그의 문집을 아직 입수하지 못했다.그래서 연구소장 최신화선생은 그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유인석선생의 필적과 주석하셨던 고장은 국가 문물이 되었습니다.그런데 문집은 우리가 못 구했디요.선생께서 별세하신 뒤 문하생들이 문집을 정리해서 상해임시정부에 보냈다고 기래요.어떤 경로를 통해 그리 갔는지 몰라도 그 문집을 지금은 절강성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습네다.「의암문집」은 54권 29책이나 되디요.절강성도서관에 연락했더니 복사나 해가라고 기래요.부끄러운 말입네다만,복사비 5천불을 마련할 길이 없습네다』 지난해 5월 세번째 중국을 찾아온 광복회 강원도지부장 유연익선생이 기념사업에 써 달라고 노자에서 1천2백달러를 내놓았다.그도 1934년 요령성 무순시에서 태어나 무척이나 많은 고생을 한 사람이다.사촌동생 유인석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와 항일운동에 참가한 유홍석의 증손인지라 그럴 수 밖에 없었다.증조부로부터 부모까지를 일제의 손에 잃었다.기구한 운명을 산 독립운동가 후손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한국인 대상 첫 연구소 그는 지난 1994년 중국 방문길에 부친 유돈상의 묘소를 찾아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독립군으로 싸우다 일제에 체포되어 무순감옥에서 숨진 부친의 시신을 할머니 윤희순이 거두어 묻었다는 무순시 용봉 남산이 도시로 변해있었기 때문이었다.다행히 할머니 윤희순의 묘소는 당시 장례에 참석했다는 한족 영덕수(87)노인의 도움으로 찾아냈다.그리하여 남편과 자식을 중국땅에서 다 잃은 할머니의 골회는 고향 춘천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어떻든 강원도 춘천 가정리 유씨 일가들은 항일독립운동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었다.그런 가운데도 유인석선생은 충절을 지키면서 학덕을 쌓았다.오늘날 중국에서 그를 기리는 것을 보면 유인석선생이야말로 죽어서도 살아있는 불멸의 인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신한국당 「신개혁 세력」 대거 발탁 방침 배경

    ◎총선후보 주개혁·종보수 두 축으로/30∼40대 신진인사들 수도권 전면 배치/이회창·이홍구·박찬종 「빅3」 영입 박차 신한국당은 4월 총선에서 「신개혁 세력」으로 승부를 건다. 새로 물갈이될 총선군단은 「주개혁」「종보수」를 두 축으로 한다.30∼40대 신진그룹,학자·변호사·기업간부등 전문가집단,야권 및 재야운동가들이 전면 포진된다. 신개혁그룹의 최선봉은 30∼40대 신진인사들이다.주로 승부의 최대 관건인 수도권에 전면 배치된다.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심재철 MBC기자(39)와 여성 율사인 김영선변호사(36)는 부대변인을 맡아 한몫하게 된다.심씨는 경기 안양동안갑에 내정됐으며 김씨는 서울지역에 출마가 예상된다. 또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이성헌청와대비서관(38)은 서대문갑,이신범부대변인(45)은 강서을에 내정됐다.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 고문으로 최형우의원의 비서실장인 박홍석씨(45)는 관악을에,당 부설 사회개발연구소의 박종선실장(41)은 노원 을에 출마한다. 이미 지구당을 맡은 신진들 가운데 서울에선 정태윤전 경실련정책실장(42·강북갑),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영춘씨(35·광진을)가 표밭을 다지고 있다.경기지역은 이사철변호사(44·경기 부천을)와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44·부천 소사),이원복(39·인천 남동을),홍문종씨(41·경기 의정부)가 뛰고 있다. 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 출신으로는 안상수변호사가 영입이 확정적으로 서울 강남지역에 출마한다.최연희춘천지검 차장검사는 강원 동해에 내정됐으며 박용일변호사는 역시 강원지역에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국회 법사위 심의위원을 지낸 정종복검사는 경주공천이 검토된다. 인하대 교수출신의 이영희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서울지역에,이달곤서울대교수는 경남 창원갑에 영입을 검토중이다.한샘학원 이사장인 서한샘씨는 인천 연수에 내정됐다. 기업 간부등 테크노크라트 출신으로는 주진우사조그룹회장이 경북 성주·고령에 공천될 전망이다.「탱크주의」로 유명한 배순훈대우자동차회장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도권 지역 영입설이 나돌고 있으며 도재영기아서비스사장은 경북 군위·칠곡에 거론된다. 이신행기산사장은 서울 구로을 공천이 점쳐지며 문병대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단지」인 수원 팔달,이윤호LG경제연구원대표는 대전 동을에 각각 거명된다. 재야 출신가운데는 이우재 전 민중당공동대표(금천구),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씨(경기 부천소사)가 이미 지역구를 다지고 있다.이태복노동자신문발행인은 수도권 공천이 확실시되며,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저자인 이철용 전 의원은 강북을에 내정됐다. 「보수그룹」을 상징할 구 여권 인사 중에서는 이회창·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박찬종의원 등 「빅3」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검증받은 공직자 출신으로 이상희 전 과기처장관이 부산진갑에,김용래 전 서울시장과 김한곤 전 충남지사는 충청지역에 거론되고 있다.또 군출신으로 박세환 전 2군사령관이 경북 영주에 영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유권자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TV앵커나 방송인,영화배우들의 대거 진입도 이뤄지고 있다.맹형규SBS,이윤성KBS 전 앵커는 서울 송파을과 인천 남동갑 지구당을 이미 맡았다.탤런트 이덕화씨는 경기 광명갑을 선점했으며 서유석씨는 경기 고양을,김한길씨는 경기 분당에 영입을 추진중이다.
  • 체첸사 1년… 「제2아프간」 우려(특파원 코너)

    「체첸사태」가 11일로 1주년을 맞았다.분리독립을 주장하다 러시아군의 전격 무력개입으로 체첸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반군지도자로 전락한 조하르 두다예프는 지난 1년동안 체첸남부를 거점으로 무력저항해 왔다.결과는 양쪽에서 3천15명(공식집계)의 군인·민간인이 희생됐을 뿐 연방정부의 승리도,체첸의 독립도 아닌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언론들은 2만5천명,인권운동가들은 4만명까지 이 전쟁의 희생자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8일 러시아와 체첸 임시정부 사이에 「체첸지위협정」이 맺어졌다.연방정부가 독자적 외교사무소 개설을 허용하는 등 체첸의 전반적 자결권을 인정하는 대신 독립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연방내 공화국들과 「독립은 인정하지 않되 폭넓은 자치를 허용」해주고 있는 마당이다.더욱이 체첸쪽 서명 당사자는 연방정부가 세워놓은 「하수인」 총리인데다 공개적 논의과정없이 서둘러 체결함으로써 문제를 꼬이게 하고 있다.이번 협정은 17일의 총선을 의식한 연방정부의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체첸내 친연방주의자 사이에서도 『공개논의없는 조인은 합법성이 결여된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현지언론들도 연방정부의 이같은 방안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오히려 반군지도자 두다예프를 궁지로 몰면서 「초강수」를 염두에 둔 명분축적용으로 보고 있다.하지만 연방정부가 그를 생포하거나 완전히 제거하는 일도 이제는 어렵게 돼가고 있다. 그를 사살하면 그를 체첸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온 반군세력 나아가 체첸국민들의 감정을 격화시켜 거센 저항이 일 것이란 지적이다.반대로 그를 생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크렘린 주변의 많은 군인사들은 오히려 두다예프가 생포되길 원치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자신들이 그동안 체첸공화국과 내통,무기 등을 밀거래한 사실이 폭로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실제로 지난 9월 체첸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군인사는 『우리는 두다예프가 어디 있는지 잘안다』『그는 러연방군의 검문소에서 불과 1마일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으나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연방정부의 이러한 딜레머 때문에 체첸사태는 「제2의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변모해갈 가능성마저 없지 않은게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
  • “이스라엘 야당 지도자 네탄야휴도 살해 위협”

    ◎리쿠드당 대변인 주장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의 야당인 리쿠드당의 지도자 벤야민 네탄야후가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피살후 살해위협을 받았다고 그의 대변인인 샤이 바자크가 9일 말했다. 바자크 대변인은 『좌익 운동가들이 리쿠드당 본부에 전화를 걸어 「다음 차례는 네탄야후로 그는 자신의 관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협박했으며 당 사무실 몇곳이 파괴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위협의 배후에 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스스로 폭력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의 짓』이라고 단언하고 『그들외에 누가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 잇단 핵실험에 경종 메시지/예상 뒤엎은 노벨평화상 선정 배경

    ◎“핵없는 지구촌 건설” 염원 반영/카터·메이저 등 유력후보 탈락 알프레드 노벨 사망 1백주년인 올해의 노벨평화상은 유력한 후보물망에 올랐던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전혀 뜻밖의 인물과 단체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나 북아일랜드 평화정착의 주역인 존 메이저 영국총리,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 등 유명인사 가운데서 선정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영광의 주인공은 무명에 가까운 반핵운동가 요세프 로트블라트와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퍼그워시 회의」에 돌아갔다.로트블라트도 수상소감을 피력하면서 『내가 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며 뜻밖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로트블라트와 퍼그워시회의의 수상배경에는 무엇보다 프랑스 등의 핵실험에 따른 반핵운동이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시기적 상황이 한몫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수상자 선정배경에 대해 『세계지도자들에게 세계의 핵무기 제거 노력을 강화하도록 고무할것을 바란다』고 밝혔듯이 로트블라트와 퍼그워시회의가 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50주년을 맞아 핵무기를 없애자는 국제사회의 염원에도 불구,최근 중국과 프랑스가 잇따른 핵실험을 실시해 이들 핵보유국들에 대한 항의 및 경고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로트블라트의 수상이 발표되자 국제적 환경단체 그린피스,일본반핵운동가들 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도 일제히 축하의 뜻을 전했다. ◎노벨평화상 업적/로트블라트­반핵운동 헌신한 영국 학자/「퍼그워시」­핵추방 모토의 과학자 그룹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요세프 로트블라트(87·영국)는 반핵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핵물리학자.그와 함께 공동수상한 「과학 및 국제문제에 관한 회의」인 퍼그워시회의는 런던에 본부를 둔 반핵운동 단체다. 퍼그워시 회의는 57년 7월 캐나다의 퍼그워시에서 첫 회의를 열어 퍼그워시 회의로 불린다.88년부터 로트블라트가 회장을 맡은 이 회의는 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데 대한 과학자들의 책임을 통감한 물리학자 11명이 주도해 원폭투하 10년만인 55년 핵절멸을 위한 러셀­아인슈타인 성명이 선언된 지 2년 뒤에 창설됐다.핵무기를 막기 위해서는 전쟁 자체를 없애야 하고,이를 위해 전세계 과학자들이 노력해 국가간 불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퍼그워시회의의 기본입장이다. 로트블라트는 폴란드 태생으로 바르샤바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이주,리버풀대 런던대 물리학교수로 지냈으며 현재는 이 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로트블라트는 원자력,핵무기 증식,군축,핵물리학 등의 분야에서 3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지난 92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을 수상했고 폴란드와 독일로부터는 공로훈장을 받았다.그는 또 세계최초의 핵무기개발계획인 미국의 맨해튼계획에 참여했다가 반발,유일하게 사퇴한 과학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 남태평양 핵실험을 재개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 이념에 밀린 항일 유적(압록강 2천리:7)

    ◎장백진 열사묘역에 항일연군 유해만 안장/일제엔 공동 항거했어도 타계파 푸대접/현지엔 「열사 14명중 12명이 조선인」 수록 길림성 장백현 일대에는 어느 지역 못지않게 항일투쟁의 역사가 어려있다.대한독립광정단,대한독립광복단,대한독립군,동북항일연군이 주로 장백지역에서 활약했다.그러나 다른 항일무장단체들은 동북항일연군에 가려 독립운동의 역사속에서 미미한 존재가 되었다.그도 그럴 것이 항일연군은 중국과 조선이 합작한 무장단체였고 이념도 다른 항일무장단체들과 달랐다. 오늘 날 「장백현지」에 오른 항일열사는 14명이다.이 가운데 12명이 조선족인데,항일전쟁시기 중·조 두나라 인민은 공동의 적 일제를 무찌르기 위해 무수한 생명을 바쳤다고 기록했다.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혁명열사기념비와 묘원이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진 탑산에 있다.이 묘원에 있던 항일열사 이계순(1914 ∼1938년)의 골회는 북한에서 묘셔갔다고 한다. 이계순은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헤사즈거 우밀령병원에서 신병을 치료하던 중에 일군토벌대에게 붙잡혀장백현 감옥에 수감되었다.그는 모진 고문을 받았다.그와 같이 체포된 동지들의 목을 베어 보여주면서 위협했지만 항일연군의 기밀을 불지 않았다.그래서 19 38년1월 총살되었다.그의 골회를 뒤늦게 나마 북한에서 가져갔다.북한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한서 유해 모셔가 오늘 날 북한은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동북항일연군 빨치산 투쟁에서 찾고 있다.그러한 이념에 밀려 다른 항일무장단체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은 유택마저 변변치 못했다.탑선에 있는 혁명열사묘역에서 내려오다 옥수수 밭 가장자리에 자리한 독립운동가 무덤앞에 발목이 잡혔다.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치고도 혁명열사묘역에 들어가지 못한 무덤은 쓸쓸했다.이념을 초월한 민족차원의 항일독립운동사가 하루빨리 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동북항일연군에 얽힌 일화들이 장백현 쪽에 많이 전해오고 있다.장백현 16도구에서 태어나 현재 장백진에 살고있는 조창원(75)노인의 이야기에도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항일연군의 한 소대장이 압록강을 건너다 일본군의 총에 맞아 떠내려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그러나 부대를 찾지 못해 숨어살다 광복을 맞았다.그 후에 평안북도 협동농장에서 돼지를 치며 조용히 살았는데,우연한 기회에 노동당 세포위원장이 그의 신상을 알고 중앙에 보고했다. 그런 어느 날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평양으로 갔다.김일성은 물론 오진우도 만났다.감격의 상봉이 끝나자 김일성과 오진우가 높은 직급을 줄테니 평양으로 오라고 권했으나 그는 끝내 사양하고 돼지를 치며 살았다는 내용이다.조노인의 말이 전적으로 실화인지,아니면 떠돌아다니는 풍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일성 생전에 북한 지도부가 평가한 동북항일연군의 위상일 것이다. 일제시대 만주국의 조선인 관리들 중에는 독립군을 봐주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그 조노인이 입담 있게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마치 현장을 보기라도 한 듯이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장백현청 사법계에 오상수라는 주임이 있었디요.한번은 항일군 두 명이 잡혀왔는데 다가 총살감이었다.이 말입네다.오씨가 출근하면서 마누라 한테 이런저런 일을 준비시켰디요.출근을 한 오씨가 순사를 불러 두 항일군을 자기집에 데려가 장작을 패라고 일렀지 뭡네까.순사는 장작 패는 항일군을 지키고 있다가 지루해서 잠깐 자리를 비웠디요.그때 오씨 마누라가 미리 준비한 만두 보따리를 항일군에게 주고 도망치라는 눈치를 했다고 기래요.순사는 그날 탈직죄로 체포 되었디요』 ○김일성,북 체류 회유 압록강 연안을 답사하면서 장백현이 아닌 요령성 관전현 협피구향에서도 항일연군 이야기를 들었다.좀 전설적인 내용이었다.평북 선천군 농연면 태생의 문학근(73)노인의 구술인데 어디까지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부터 들은 것이라는 토를 달았다. 『데(제)게 먼 촌수로 형뻘이 되는 항일군이 있었는데 이름이 문학빈이었다고 기래요.관전현 포자연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들었디요.일본군이 체포하러 오면 집도 날아넘고 밭고랑은 열두어 이랑을 건너 뛰었다지 뭡네까.문학빈이라는 말만 들어도 덕(적)들이 벌벌 떨었다고 하데요.광복후에는 당(장)개석 국민당군 연대당(장)이 되어서리 환인까지 왔다갔다고도 하고 심양으로해서 남한으로 들어갔다는 말도 있디요』 그로 미루어 보면 동북항일연군이라고 해서 모두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것은 아닌 듯 싶다.오랫동안 이념적 계급투쟁을 선호하면서 객관적 독립운동 연구가 부족했던 탓에 생동적이고 믿음직한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들게 되었다.그런데 장백현에서 조선족 교육사업에 일생을 몰두한 이권수(72)선생에게서 동북항일연군 이외 다른 무장독립운동 단체에 관한 실상을 소상히 전해들었다. ○홍범도 장군도 활약 『장백현 일대의 항일운동은 합방이후 시작됐디요.대한독립광정단과 대한독립광복단,대한독립군이 있었댔습네다.장백현을 근거지로 한 항일독립운동단체들은 압록강을 건너 평북 후창의 주재소나 경찰서까지 습격했댔디요.그중에 홍범도가 영솔한 대한독립군은 17도구 근처에 있었다고 기래요.그래서리 마을 이름도 독립군촌이었디요.독립군들은 낮이면 농사를 짓고 밤이면 훈련을 한 농사꾼 군인였습네다.당시 장백현 조선족들은 너나 없이 살림이 어려웠지만 독립군에게 의무금을 정기적으로 냈디요』 이노인은 「장백 조선족」의 저자인지라 책을 집필하기 위해 독립군의 발자취도 꽤나 추적했다.그래서 의무금 납부액을 정확히 조사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독립군에게 주는 의무금은 빈부에 따라 10∼30원이 부과되었다.당시 밀이 한 섬에 7원50전,하루 품삯이 30전,한 해를 일한 머슴 새경이 30∼50원이었으니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또 돈량이나 있는 사람들은 의무금 말고 별도의 군자금을 냈다.군자금은 공개할 수 없는 돈이라고 해서 「벙어리 돈」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 힐러리와 크리스토(송정숙 칼럼)

    최근 한 외신란에서 읽은 기사. 「옛 독일제국 의사당을 포장하는 데 썼던 천과 끈의 재활용을 맡은 독일회사는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국대통령 부인으로부터 『기념으로 천 한조각을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공개했다.독일주재 미국대사는 힐러리의 부탁으로 지난 6월말과 7월초에 걸쳐 독일의회 건물을 포장하는 데 썼던 총 10만㎡의 천 가운데 한조각을 기념품으로 떼어달라고 요청했는 데 회사측이 『완벽한 재활용이라는 환경운동가들과의 약속 때문에 거부했다』고 대답했다. 이 기사만으로는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될 것이다.의사당을 「포장」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그 포장천이 무슨 「기념」이 된다고 미국의 대통령부인쯤되는 사람이 싱겁게시리 그걸 달랐는지,또 미국의 대통령부인쯤되는 사람이 그렇게 원하는 데 그 체면이나 우의를 생각해서 한조각쯤 떼 주지 거절한 건 또 무슨 무례함인지. 그러나 실은 독일 국회의사당을 「포장」한 것은 미국의 설치미술가 크리스토가 벌인 예술작업이었다.그는 뭐든지 「뒤집어씌우기」를 예술행위로 한다.언젠가는 일본의 작은 섬을 덮어씌웠고,파리의 퐁뇌프다리를 천으로 뒤집어씌운 적도 있었다.대상이 정해지면 대대적인 역사를 벌여 짐보따리처럼 싸는 독특한 설치미술이다.그 크리스토가 이번에는 베를린에 있는 독일 국회의사당을 「포장」한 것이다.불가리아 출신이기는 하지만 미국예술가인 그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의 포장천을,그가 속한 미국의 대통령부인이 기념삼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도 아닌 포장천의 한조각을 얻고 싶다는 것은 너무 영세한 욕심이며 게다가 거절까지 당한 것은 대통령부인의 체면이 좀 깎인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한토막의 외신이 주는 정보로는 이런 궁굼증이 풀리지 않는다.그런무렵 크리스토의 「뒤집어 씌우는 예술」현장을 다녀온 ㄹ씨의 글(월간 춤 8월호)을 만났다. 10만㎡의 늘어진 은빛 직물과 1만5천6백m의 하늘빛 밧줄 그리고 정면탑과 지붕을 싸는 데에 70군데 맞춤집에서 만든 직물패널을 써서 전문 등산가 90명에 1백20명의 설치가들 그리고1천2백명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이「포장」은 가능했다고 한다.그 포장된 독일 의사당이 어찌나 웅장하고 「굉장한지」는 현장에 가서야 느낄 수 있었고 환경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토가 보인 이런 설치미술은 이미 세계각국에 애호가를 두고 있어서 세계에서 몰려온 관람객들로 온 베를린은 흥분에 싸였었다는 것이다. 보름동안 그 자리에 놓아두었던 이 포장된 의사당에 든 비용은 1천1백50만마르크,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69억원이다.크리스토는 그걸 모든 스폰서를 거절하고 자기그림과 판화 부조조각 포스터등의 판매액으로 충당했다고 한다.그「작품」을 보기 위해 매일 수십만의 관객이 모여든 것이다. 이 글의 필자인 ㄹ씨를 만난 자리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기념으로 포장했던 천 한조각을 얻고자 했다가 거절당한」의문도 풀 수 있었다.ㄹ씨는 득의만면한채 『나는 그천을 한조각 얻었다』고 말문을 열었다.전시중의 어느 한날을 택해 그 포장천을 관람객들에게 한조각씩 나눠주는 것이 그의 설치미술 프로그램이다.마침 「그날」 관람할 수 있었던 ㄹ씨는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들어가 미국대통령 부인도 못얻는 「한조각」을 얻어낸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에게 천조각 한점씩을 나눠주는 것도 「예술행위」에 포함된 셈이다.그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힐러리 클린턴이 천을 기념삼겠다고 한 것은 그의 「예술행위」에 어긋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환경을 위해 완전무결하게 재생한다는 약속』은 포장처리회사와 작가가 맺은 그 또한 예술행위의 연장이므로 당연히 안될 수 밖에. 그런데 힐러리 클린턴이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그런데도 『달랐다가 거절당하는』구차한 일을 왜 했을까.미국 설치미술가의 환경미술 작업에 퍼스트레이디가 관심을 보인 것,그것이 힐러리부인이 노린 것은 아닐까.그렇다면 대통령부인다운 생각이다.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는 각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며 거물정치인,그 직계들,여성운동의 대모들이 많이 몰려왔다.옛날과 다른 것은 이들 누구의 부인이거나 누구의 딸이라는 자격으로 온 여성들까지가 모두 맹렬하게 자기 역할을 해낸 점이라고 한다.분홍색 한복이 아름다워 칭찬을 많이 받은 우리 퍼스트레이디 손명순여사도 연설은 물론 여성으로 문맹퇴치에 공이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이 출연하여 만든 유네스코의 「세종대왕상」을 시상하고 강택민중국 주석과 회담도 가졌다.여성들이 모여 단순히 운동열기를 분출시킨 것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진지하고 폭넓게 확인한 기회였다고 하겠다. 누구라도,기회있는 대로,전폭적으로,자기 역할을 하는 시대.그것이 오늘의 인류가 갖는 소임인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