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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하지마!” 아내의 다섯 손가락을 자른 남편

    “공부하지마!” 아내의 다섯 손가락을 자른 남편

    대학 공부를 하겠다는 아내에게 불만을 가진 방글라데시의 한 남편이 아내의 오른쪽 다섯 손가락 모두를 절단하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매체 더 데일리 스타 보도에 의하면 2008년에 결혼한 라피쿨 이슬람(30)은 최근 아내 하와 아크타르(21)가 자신의 허락 없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에서 파견 노동자일을 하는 이슬람은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 “누이의 집으로 선물을 보냈으니 거기서 만나자.”고 말했다. 4일 오전 8시경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있는 누이 집에서 아내를 만난 이슬람은 아내에게 “깜짝 선물이 있다.”며 아내의 눈을 스카프로 가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아내의 입을 테이프로 붙이고, 손을 묶고는 오른쪽 손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너의 공부를 끝내 주겠어.” 라고 말을 한 후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잘라냈다. 비명을 듣고 방으로 들어온 그의 누이와 그녀의 남편은 사전에 공모를 한 듯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도 없이 그저 바닥의 피를 닦기만 했다. 이슬람은 잘려진 손가락을 다시 붙일 수 없도록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크타르의 고통 호소에 결국 사건 발생 3시간 만인 11시경 병원으로 데려가던 그들은 심지어 “이 일을 발설하면 차에서 던져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진단 후 절단된 손가락을 찾아오라는 의사의 종용에 쓰레기통에서 4개의 손가락만을 찾아왔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 접합수술이 불가능 했다. 남편을 체포한 방글라데시 경찰은 “8년의 기본 과정만을 마친 남편이 아내가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질투를 느껴 자행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편의 재판정 앞에는 연일 수백 명의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그의 종신형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부모 집에 머물고 있는 아크타르는 “비록 오른쪽 손가락이 없지만 왼손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고학력에 불만을 가진 남편들의 엽기적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다카 대학교에 조교수로 일하는 아내의 한 눈을 파낸 실업자 남편이 검거돼 충격을 던졌다. 사진=The Daily Star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박세일 “총선·대선 불출마”

    박세일 “총선·대선 불출마”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1일 “내년 총선과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대(大)중도신당 창당 추진 배경에 대해 “내년 총선에서 젊고 참신한 분들을 국민 앞에 선보일 것이며 내 역할은 그런 분들에게 장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존의 양당 정치가 선진과 통일을 이뤄내기에 회의적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면서 “그렇다고 양당 정치가 싫다고 계속 시민운동가들이나 시민운동 대표들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서는 “안 원장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같이 일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아직 만나 본 적은 없지만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문화마당] 봄부터 가을까지/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봄부터 가을까지/신동호 시인

    봄-주목(朱木)은 고고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그러나 주목의 잎사귀에는 독성이 있다. 잎이 진 자리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유전자적으로 혹은 기괴한 모양으로 인간의 호감을 얻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애초에 공생을 배우지는 못했다. 봄의 꽃들은 가녀리다. 나비와 벌들이 꽃과 꽃 사이를 날며 꽃가루를 뿌릴 때 꽃들은 수줍게 자기들끼리 올망졸망 핀다. 고사떡을 돌리는 이웃들 같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 시인의 시 구절 같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널 도와주진 못해도 망치겐 할 수 있어.”라고. ‘날치기’, ‘결사반대’, ‘두고 보자’, ‘폭행’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판친다.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다만 봄 햇살 같은 따뜻함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위로, 격려, 이타주의 같은 단어가 외면당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단어밖에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혀 버리고 있다. 모두 주목처럼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영생의 명예를 꿈꾼다면 봄꽃은 너무 초라하다. 그동안 우리에게 봄은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 부정의 시대를 견딜 만한 것일까. 여름-일제시대, 농지를 빼앗긴 농부들은 만주로 발길을 옮겼다. 짧은 여름 동안 뙤약볕 아래서 밭갈이를 거듭했다. 쌀에 대한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어서 수많은 수경농사가 시도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 정근과 공근은 총 대신 가래를 잡았다. 꼭 총을 잡아야 독립운동이 아니라는 걸 두 동생이 보여주었다. 북위 50도 흑룡강 찬바람 속에서 벼농사를 이뤄냈으니 그로부터 조선 사람의 이주는 거듭되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 이 농민들을 강물 삼아 독립운동가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쳤다. 불행한 식민지 시대였지만 한편 개척 정신이 충만한 시대이기도 했다. 어찌 한반도 남쪽, 복작거리는 곳에서 땅에 대한 애착만 키우고 거대한 농지를 꿈꾸지 못할까. 지금도 몇몇 선각자들과 기업들이 연해주에서 작물을 키운다. 알로에도 키우고 콩 경작에도 도가 텄다고 한다. 북한도 올해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에 20만㏊의 농지를 ㏊당 50루블, 우리 돈 1800원가량에 임대하기로 했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나라가 들썩인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는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농민들의 꿈을 한반도 남쪽의 공간으로 축소시킨 것에 대해 반성해 보았으면 좋겠다. 러시아 극동의 여름에 남과 북의 농민들이 서울의 4배나 되는 땅을 경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가을-너그럽고 풍요롭다. 마음이 살찌는 소리가 아름답다.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마음속의 공간을 한껏 넓혀보자. 1933년 발표된 이광수의 ‘유정’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바이칼 호수에 몸을 던져 버렸는가. 또는 시베리아의 어느 으슥한 곳에 숨어서 세상을 잊고 있는가. 또 최석의 뒤를 따라간다고 북으로 한정 없이 가버린 남정임도 어찌 되었는지(중략). 나는 이 두 사람의 일을 알아보려고 하르빈, 치치하르, 치타, 이르크트스크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부쳐 탐문도 해보았으나 그 회답은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유정’의 공간은 지금의 우리가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넓다. 스무 살 정임은 만주와 러시아를 떠돈다. 지금 우리는 1933년 정임의 공간에 비해 너무나 쪼그라든 공간을 상상하며 산다. 황석영의 ‘심청’에서 16살 심청은 상하이에서 광저우로, 다시 저 멀리 남중국 싱가포르까지 간다. 그의 귀국길은 타이완과 일본을 거친 바닷길이다. 동남아는 16살 심청이 그야말로, 놀던 공간이다. ‘바리데기’의 탈북 소녀는 영국까지 간다. 공간적 상상력을 넓히라는 황석영의 목멘 픽션이다. 세계화를 꼭 FTA 문제로만 봐야 할까. 아니다, 진정 세계를 상상의 공간으로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들뢰즈의 노마디즘(유목민적인 삶과 사유)이 젊은 지성인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지구 전체를 삶과 사유의 공간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들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물론 가을처럼 넓게, 풍요롭게.
  • 선거철 쏟아지는 신당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당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다.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현재 중앙선관위에 정식 등록된 정당은 모두 21곳이다. 이 중 한국기독당 등 3곳은 올 들어 결성된 신생 정당이다. 중앙선관위에 제출된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도 국민행복당과 녹색사회민주당, 영남신당 등 12곳에 이른다. 국민행복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이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당원 5000여명이 모여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고 활동에 나섰다. 창당준비위원장인 허평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개혁적 보수를 표방한다.”고 말했다. 창당 준비모임 성격의 정치 결사체도 등장했다. 한나라당 전·현직 보좌진 등이 중심이 된 ‘리셋(Reset) 대한민국 4.0’이 여기에 속한다. 2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발기인 모임을 겸한 토론회를 연다. 이들은 향후 방향성에 대해 “기존 정당을 보수하는 방법, 새 집을 짓는 방법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총선을 앞두고 수많은 신당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기성 정치권의 높은 벽만 실감한 채 사라졌다.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등장한 진보정당인 한겨레민주당은 전남 신안군에 출마한 박형오 의원을 배출했지만, 박 의원이 평민당에 입당하면서 원외정당 신세가 됐다.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이 창당돼 14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31명을 당선시키는 파란을 몰고왔다. 그러나 같은 해 정 회장의 대통령선거 패배와 소속 의원들의 탈당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3김 타파’를 내세운 유명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이 통합민주당 간판 아래 출마했으나 대부분 낙선했다. 1997년 당시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 의원이 주도한 국민신당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1석도 얻지 못해 10개월 만에 해체됐다. 2000년 조순·김윤환 의원 등을 중심으로 영남권 기반 신당을 모색했던 민주국민당도 같은 해 16대 총선에서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정몽준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21’은 정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낙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이끈 자유신당(현 자유선진당)이 18석을, ‘박근혜 정당’을 표방한 친박연대(현 미래희망연대)는 14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친박연대는 비례대표 1·2·3번이 당선무효형을 받으며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3석을 확보했던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전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反군부시위 1000여명 사상… 머나먼 ‘이집트의 봄’

    ‘아랍의 봄’ 이후 10개월 만에 이집트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 군부와 시위대 간 유혈 충돌이 발생해 시민 2명이 사망하고, 진압 경찰 40여명을 포함해 적어도 1000명이 부상했다고 AP, AFP 등 외신들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이로 도심에서는 사흘째 시위가 이어져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무슬림 단체와 청년 운동가들이 이끄는 5만여명의 시위대는 이달 초 군부가 제시한 신 헌법 기본 원칙에 반발해 전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군에 대한 국회의 관리·감독을 피할 수 있게 한 헌법 시안은 총선 이후에도 군이 그대로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며 군의 신속한 권력이양을 요구했다. 유혈 충돌은 경찰이 19일 200여명의 시위대가 밤샘 농성을 위해 설치한 텐트를 강제 철거하면서 발생했다. 경찰은 고무 탄환과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의 해산에 나섰고, 시위대는 돌을 던지고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이집트 정부는 광장 시위가 개혁을 저해하는 행위라며 해산을 요구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경찰의 과잉진압 상황이 전파되면서 시위대 참가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23세의 시위대 1명이 가슴에 고무탄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내무부 건물 밖에서 시위를 하던 25세의 청년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무 탄환에 맞아 한쪽 눈을 다친 시위 참가자 말렉 모스타파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상관이 부하들에게 시위대의 머리를 조준해 고무 탄환를 쏘라고 명령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타흐리르 광장은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끝낸 시위의 거점이다. 무슬림 형제단의 자유정의당은 경찰이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려 한 것은 무바라크 전 정권의 내무부가 벌이던 일과 같은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 사임 이후 정권을 잡은 최고군사위원회(SCAF)는 헌법과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집트 의회 선거는 오는 28일 시작돼 내년 3월 끝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종서러움…조국을 되찾자” 1세기만에…조국서 해방가

     95년만에 발굴된 신흥무관학교 ‘학우단가’(學友團歌)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가사에는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선열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외 항일문화 국내 영향”  1절 ‘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충용한 무리아 그 은혜 끄까지 이즈랴’라는 부분에서는 나라를 잃은 설움과 함께 조국을 기억하려는 독립투사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2절의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이천만 생령의 인생길 인도할이 뉘뇨’라는 노랫말에서는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던 동포들의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사명감이 느껴진다. 3절 ‘우리의 마음을 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억만년 새기초 공고케 세우세’는 해방 조국에의 희망과 의지가 담겼다.  노동은 교수는 “가사를 음미해보면 당시 어려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선각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특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뜻이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당시 항일운동이 국외에서는 항일무장투쟁, 국내에서는 계몽운동으로 구분돼 있었다는 기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 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핍박받던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키우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당시 만주에서 불리던 많은 항일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민족사학을 중심으로 교육됐다.”면서 “해외 독립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국내에 영향을 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우단가의 발굴이 항일음악은 물론 우리 음악사 연구에도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노래는 단순한 유흥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문맹률이 높아 주로 교육·선전의 도구로 사용됐었다. 실제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라는 미명하에 민족문화 말살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가요를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해 황국신민화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국민들 사이에서 불려지게 됐다. ●항일음악·친일음악 연구 전환점  그러나 자료가 대부분 망실돼 항일음악과 친일음악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학우단가의 곡이 실린 ‘광성중학교 최신창가집(1914년)’도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항일운동 중에서도 무장투쟁과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다. 특히 신흥무관학교는 국군의 뿌리인 만큼 육·해·공군사관학교부터 이런 정신들을 발굴·계승하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신흥학우단가 가사와 해설  1절  祖上(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忠勇(충용)한 무리아 그 恩惠(은혜) 끄까지 이즈랴  四千春光(사천춘광) 빗나소든 배달 내나라  自由(자유)의 樂園(낙원)을 지을자 우리가 안인가    조상이 세우신 옛 나라는 어디냐  충성스럽고 용감한 무리야 그 은혜를 끝까지 잊으랴  4000년 역사의 빛나는 배달 내 나라  자유의 낙원을 만들 자 우리가 아닌가    2절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二千萬(이천만) 生靈(생령)의 人生(인생)길 引導(인도)할이 뉘뇨  굳은 마음 참된 精誠(정성) 힘을 다하야  썩어진 民族(민족)의 새 榮光(영광) 나타내이여라    종의 서러움을 받으며 이 목숨을 이어가는  이천만 생명의 인생길을 인도할 사람이 누군가  굳은 마음 참된 정성 힘을 다해  썩어진 민족의 새 영광이 나타나게 해라    3절  우리의 마음을 鍊鍛(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億萬年(억만년) 새基礎(기초) 鞏固(공고)케 세우세  大千世界(대천세계) 덥고 남은 긔운 다하라  普天下優勝(보천하우승)의 冕旒冠(면류관) 길히 빗나도다    우리의 마음을 단련해 큰 힘을 길러  옛 나라 억만년의 새 기초를 공고하게 세우자  큰 세상을 다 덮고 남은 기운을 다해라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면류관 길이길이 빛나라
  • 50년만에… 안중근의사 혈족 ‘무죄’

    안중근 의사의 혈족이자 독립운동가들이 5·16혁명 혁명재판소에서 북한을 찬양했다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50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는 27일 1962년 혁명재판소에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안 의사의 사촌동생 안경근, 친조카 안민생, 혈족 안잠 선생 등 3명의 후손들이 낸 재심 청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지만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의 행위가 당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더라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 범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안경근 선생 등은 1961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린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에서 “통일만이 살 길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했다. 이후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북한의 통일론을 왜곡해 국민을 선전·선동했다며 기소돼 이듬해 혁명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독립민주축제’ 장으로

    서대문형무소 ‘독립민주축제’ 장으로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잘 살도록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소. 내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는 없는 것이오. 다만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로는 내가 마지막이 되길 바랄 뿐이오.’(조봉암 선생이 1959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되며 남긴 최후진술) 독립·민주운동가들의 수난처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주민들이 소통하는 축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서대문구는 28~29일 역사관과 독립공원에서 서대문 독립민주페스티벌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사성을 바로 세우려는 취지로 열리는 축제에는 김근태 전 의원,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 독립·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소통·평화·상생을 향한 ‘평화물결’ 토크쇼를 펼쳐 의미를 되새긴다. 특히 독립·민주인사의 풋프린팅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활동을 하다 수감됐던 김영진(84) 선생, 문동환(90) 목사, 한국노동운동의 대모 조화순(77) 목사, 고은(78)·이란(86)·이문영(84) 선생이 참여한다. 28일 전야제에선 구립어린이집 합창단·장애인 합창단 공연, 서라벌극단의 건곤감리 뮤지컬 공연, 고고스타 등 인디밴드 공연으로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야외광장에선 다이내믹 한국 현대사 전시회가 열린다. 이튿날에는 역사관 개관 13주년을 기념해 서대문형무소를 주제로 심포지엄도 이어진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한국 근현대사 수난의 장소다. 1945년 광복 때까지는 독립운동가들이, 이후 서울구치소로 바뀌어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수감됐다. 1998년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탈바꿈한 뒤 연간 외국인 7만여명을 포함해 6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문석진 구청장은 “고난처를 희망의 마당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유해 폐기물 수출금지’ 美 벽 넘을까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유엔 차원의 조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주말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17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유엔환경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유해 폐기물의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가속화하는 데 합의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23일 보도했다. 선진국이 유해 화학물질인 전자·전기 폐기물 등을 개발도상국에 반출하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를 “인류의 건강과 환경 보호를 위한 중대한 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엔은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5000만t 규모의 전기·전자 제품이 폐기되고, 재생에 쓰이는 10% 정도를 뺀 상당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개도국의 쓰레기 처리장에 보내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예로 2001~2005년 필리핀에는 최대 120만대의 중고 TV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이 반입됐으며 이 가운데 60~70%는 일본에서 반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전자 폐기물은 대부분 중국으로 보내지고, 일부는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으로 향한다. 마닐라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그 가족들은 전기·전자제품의 중금속이나 화학 물질이 연소하면서 발생한 유해물질로 집단적·만성적 폐결핵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암을 일으키는 유해가스”라고 지적했다. 이는 유산과 납 중독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서 유해 폐기물 감축과 불법적 거래 방지 등을 담은 바젤협정이 1989년 체결됐지만 자금 부족과 부패, 미국의 불참 등으로 협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주민 수백만명이 선진국에서 버린 중금속과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돼 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호랑이·사자 등 맹수 ‘집단탈출’ 美공포

    SF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연상케 하는 소란이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벌어졌다. 유인원은 아니지만 동물농장에 보호 중이던 호랑이와 사자, 곰 등 맹수들이 집단으로 탈출해 지역 주민들이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이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9일 새벽(현지시간) 제인스빌에 있는 한 동물농장에서 보호 중이던 300kg짜리 벵갈호랑이를 포함한 동물 50여 마리가 열린 문을 통해서 외부로 빠져나왔다. 농장주인인 테리 톰슨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일부러 문을 열어놨던 것으로 보이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호랑이, 사자, 늑대, 원숭이, 곰 등 치명적인 공격성을 가진 동물들이 농장을 뛰쳐나오자 경찰은 대대적인 사살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호랑이 18마리. 사자 17마리 등 48마리가 경찰의 총에 죽었으나 도시 어딘가에 동물들이 더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보호운동가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았으나 경찰은 주민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사살작전이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이 지역에는 현재 모든 주민들과 애완동물은 집 안에 머물라는 대피령이 떨어졌으며, 경찰은 운전자들에게 고속도로에서 차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홍보하고 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이동진 도봉구청장 “민주화 운동 얼 살려야 ‘씨알 기념관’ 건립 추진”

    이동진 도봉구청장 “민주화 운동 얼 살려야 ‘씨알 기념관’ 건립 추진”

    도봉구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지사나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가들의 흔적들을 되살리는 방안으로 ‘씨알의 소리’ 발행인이자 1960~70년대 민권운동가인 함석헌(1901~1989) 선생이 별세했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투사 집터, 산업화 과정에 없어져”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12일 “일제 때 독립·민주화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도봉구 내 집터들이 산업화과정에서 다 사라졌다. 보존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 채 헐어버리기도 하고, 돈이 필요해 팔아버리기도 했고, 무감각하게 부숴버리고 아파트를 올려 흔적을 찾을 길이 없어서 안타깝다.”며 “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함석헌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아들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용산구에 기념사업회가 있지만 도봉구민들도 선생의 삶과 철학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안을 그들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선생이 오래 살았던 용산구 원효로 집은 기념사업회 발족을 즈음해 기증했다. 이후 선생은 마포에서 온실을 가꾸며 살다가 말년이던 1983년 도봉구 쌍문동 81-78 아들 집으로 건너갔다. 며느리 양영호(74)씨가 정의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사들인 집이다. ●거주 중인 며느리 양영호씨 “건립 희망” 이곳에 선생이 마포에서 살 때 보살피던 화초들을 모두 옮겨 왔다. 현관 옆에는 2006년 10월 독립운동가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전 썼던 산소의 묘비도 모셨다. 묘비엔 함석헌의 시 ‘나는 빈 들에 외치는 소리’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이 구청장의 방문으로 ‘기념관’에 대한 뜻을 알게 된 며느리 양씨는 “기념사업회가 원효로의 옛집을 팔아 더 큰 건물을 사는 통에 그 집이 흔적조차 사라져 아쉽다.”면서 “초라하고 조그마한 12평짜리지만 남아 있었더라면….”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양씨는 “불어닥친 개발 바람에 후손들이 선조의 가치를 지키지 못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국문학자 최남선(1890~1957) 선생이 살았던 집을 보존하자는 여론도 일었지만 그 집은 후손들이 헐어버렸다. 함석헌과 원효로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박목월(1916~1978)의 집도 당시 용산구에서 보존계획을 잡았지만,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밀려났다가 결국 후손들이 팔아넘기면서 자취를 잃고 말았다. ●區 “자료수집 중… 장기적 관점서 접근” 이 구청장은 “함석헌 선생이 원래 살던 집은 아니지만 마지막 주소지이자 가족들이 선생을 임종한 곳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구청장이나 양씨 모두 기념사업회가 있고, 현재 쌍문동 집에 후손들이 살고 있어 기념관을 급속도로 만들 수는 없다는 점을 안다. 양씨는 “외국에서는 많은 게 기록으로 남아 부럽다. 기념관 건립을 가족들이 소망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도봉구는 함석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가족들과 기념관을 만든다는 최소한의 원칙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집트 유혈충돌 26명 사망… 중동 ‘핏빛 가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9일 밤(현지시간) 콥트교도 시위대와 이를 막던 정부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최소 26명이 사망하고 320명이 부상당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축출 이후 최대 규모의 유혈 사태다. 특히 이슬람교도가 충돌에 가담하면서 다음 달 28일 무바라크 퇴진 후 첫 총선을 앞두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콥트교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독교 분파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계기로 여타 기독교회와 분리되었다. 이집트 전체 인구 8210만명 가운데 약 10%를 차지한다. 이날 충돌은 카이로 도심 국영TV 방송국 주변에서 콥트교인 수천명이 최근 남부 아스완 지역의 교회가 공격당한 것을 두고 아스완 주지사의 경질과 교회 재건축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발생했다. 이들 사이에선 극우 이슬람교도의 반기독교적인 공격에 정부가 너무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잇삼 샤라프 이집트 총리는 10일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 충돌이 아니라 혼돈과 반대를 일으키려는 시도”라면서 양측에 자제를 당부했다. 이집트 내각도 비상 각의를 소집한 뒤 성명을 통해 어떤 세력도 이집트의 단합을 해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한편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야권이 창설한 ‘국가위원회’를 인정하는 모든 국가에겐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9일 밝혔다. 시리아 야권 운동가들은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국가위원회를 창설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10일 전국에 걸쳐 정부군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31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나경원-박원순 실현가능한 정책 경쟁하라

    한나라당 나경원, 무소속 박원순 후보 간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거전이 본격화됐다. 그제 범야권의 국민참여 경선에서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변호사가 제1야당 후보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누르고 단일후보로 선출되면서다. ‘안철수 돌풍’에 이은 박 후보의 예선전 승리는 역설적으로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의 농도를 말해준다. 나·박 두 후보진영이 여태까지의 온갖 구태에서 벗어나 팩트(사실) 위주의 검증과 실현가능한 정책 제시 등 책임 있는 자세로 선거전에 임해야 할 이유다. 여야는 이번에 유례 없이 짜여진 서울시장 선거구도의 의미부터 곱씹어 봐야 한다. 박 후보의 민주당 입당 가능성이 열려 있긴 하지만,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좌우할 선거전에서 여야 대결 구도가 깨졌다는 사실이다. 후보를 못낸 책임을 지고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는 야당의 굴욕이기에 앞서 정당정치의 위기를 웅변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근저엔 무한 정쟁과 ‘안 되면 말고’식 공약경쟁 등 여야의 무책임한 정치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짙은 불만이 배어 있음은 불문가지다. 까닭에 서울시장 보선에 나서는 각 정당과 후보는 실현가능한 비전을 제시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우선 박 후보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쇄신 열망을 타고 예선을 통과했지만, 인기영합주의에 찌든 구태를 답습하는 순간 유권자의 지지도 물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변 몇몇 운동가들의 입김에 휘둘려 한강 수중보 철거 약속을 불쑥 입에 올렸다가 슬그머니 주워담는 식의 행보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나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제 비(非)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연한 완화 등을 약속했지만, 구체적 재원 마련 대책도 함께 제시해서 표를 의식한 졸속 공약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박 후보에 대해 청문회 수준의 검증을 벼르면서 여야 간 정책대결보다 더 거센 네거티브 공방이 점쳐지고 있다. 구태 재연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박 후보가 더 이상 비판자로만 머물 위치가 아닌 만큼 대기업 기부금, 배우자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의혹을 진솔하게 석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야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흠집내기나 무차별 폭로전은 정치불신을 낳을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 [사설] 시민단체의 후원금은 시민으로부터 나와야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원순 변호사가 몸담았던 ‘아름다운재단’이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박 변호사가 사무처장이던 참여연대 부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우선 감시대상으로 선정한 기업들이 대부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에서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다뤘던 강 의원은 “2001년부터 10년 동안 11개 기업이 아름다운재단에 총 150억여원을 기부했다.”면서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이 설립한 재단에 기업들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행위는 순수한 의도로만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측은 “아름다운재단과 재정적, 사업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회에서도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최규엽 새세상연구소장은 아름다운재단이 재벌과 론스타로부터 받은 후원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그 돈으로 단전·단수 가구와 싱글맘들을 지원했다.”면서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을 공격해 서운하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은 오는 26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의 후원금은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기부 문화가 척박한 한국에서 시민단체를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의 후원으로만 운영할 수 있는 시민단체는 거의 없다고 시민운동가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을 기부 받아 운영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관행화된다면 장기적으로 그 순수성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 선거에 드는 비용 수십억원을 단 며칠 만에 시민들이 모아준 펀드로 충당하게 됐다. ‘박원순 펀드’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자발적인 돈이기 때문에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시민단체들은 회계 처리의 투명성 외에 모금 방식의 도덕성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 사우디 “참정권은 줘도 운전은 안돼!”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는 2015년부터 여성의 선거 참여를 허용한 지 하루 만인 26일(현지시간) 한 여성에게 운전을 한 혐의로 태형을 선고했다. 사우디에서 여성의 인권 신장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날 사우디 제다의 한 법원은 지난 7월 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된 30대 여성 이마 자스타니아에게 태형 10대의 선고를 내렸다고 현지 인권운동가가 전했다. 전 세계에서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하며, 이는 법률이 아닌 보수적 전통에 따른 제약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에서는 운전을 하다 적발된 여성에게 다시는 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고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이번처럼 법적인 처벌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사례는 운전 금지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여행을 할 수 없고, 공공장소나 쇼핑몰 등에서 경찰 단속의 표적이 되는 등 일상적인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때문에 현지 여성 운동가들은 여성의 선거참여 허용이 중동권의 민주화 시위 바람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인 조치일 뿐, 진정한 여권 신장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여성 참정권/곽태헌 논설위원

    근대 의회민주주의 발상지라는 영국에서도 여성 참정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영국에서도 초기의 참정권은 일정한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낼 수 있는 재산가 남성들의 ‘특권’이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는 투쟁은 길고도 험난했다. 영국에서는 1860년대부터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꾸준히 주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영국 여성운동의 상징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했다. 세 딸과 함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다. 1908년에는 수감되기도 했다. 1913년에는 10여 차례나 단식투쟁을 통해 정부의 부당함을 폭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투쟁도 과격해졌다. 여성들은 일부 공공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경찰서에 여성 시위자들이 넘쳐나던 때도 있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정부는 전쟁기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한 여성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어 국민대표법을 만들어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했다. 하지만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허용된 불완전한 정치 참여였다. 남성과 똑같은 21세 이상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10년 뒤의 일이다. 흑인노예제도가 있었던 미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인간해방운동과 함께 진행됐다. 1848년 첫 여권(女權)대회가 뉴욕에서 개최됐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의회에 ‘여성 참정권법안’을 제출하는 등 체계적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 21세 이상의 여성은 남성과 같은 참정권을 인정받았다. 여성의 참정권이 최초로 인정된 나라는 뉴질랜드(1893년)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에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보장됐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고,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첫 여성 민선 서울시장을 노릴 정도로 여성들의 힘은 커졌다. 여성 인권에 관한 한 세계 최하 수준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오는 2015년부터 허용될 것이라고 한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그제 “여성들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의 차량 운전을 금지할 정도로 여권이 미약한 나라다. 어떤 독재자나 절대 군주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도봉의 얼 기릴 역사 탐방로 만들것”

    “도봉의 얼 기릴 역사 탐방로 만들것”

    “도봉에는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또 1960~80년대 산업화 시기에 민주화를 위해 애쓴 역사적 인물이 많아, 그분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최근 ‘도봉구 근·현대사 인물 탐방로’를 기획하고, 현장을 확인한 소감을 19일 이렇게 밝혔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던 가인 김병로, 벽초 홍명희, 고하 송진우, 위당 정인보 등이고, 민주화 운동가로서는 씨알의 소리의 함석헌·계훈제 선생, 노동운동가 전태일, 시인 김수영 등이다. 이 구청장은 “도봉에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각별한 저항 정신이 살아 있는데, 그 시작은 16세기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도봉서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가을을 시샘하듯 인디언서머가 찾아와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긴 가운데 그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2시간 남짓 땡볕을 견디며 걸었다. 가장 먼저 중종 때 개혁적 선비로 이름을 날린 조광조(1482~1519)를 떠올렸다. 사림의 대표로 기존 정치세력과 맞서지만 실패하고 1519년 그의 동료 70명과 함께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았다. 개혁에 실패하고 역적으로 몰린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즉위한 1568년 기대승의 청원을 들어 조광조의 신원을 회복시켰고, 5년 뒤 경기도 양주목사는 그를 기리는 ‘도봉서원’을 지을 수 있었다.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던 도봉은 1963년에 서울시 성북구로 편입됐고, 1973년 다시 도봉구로 갈라져 나왔다. 이 구청장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등 독립운동가들이 도봉에 많이 살았던 이유를 이렇게 해석했다. “1910년 8월 한일병탄이 일어나고서 이듬해 10월 15일 창동역을 개통했어요.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은 일본 관원의 눈초리를 피하면서 서울과 접근성이 좋고 집값 또한 싼 곳을 찾았을 텐데, 창동역 개통에 때맞춰 이쪽으로 이주하신 거죠. 당시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었습니다. 가인 선생이 맨 먼저, 홍명희·김진우·송진우 선생 등이 들어온 거죠. 도산 안창호 선생도 김병로 선생에게 놀러 왔다가 오고 싶다고 해서 가인 선생이 방학동 쪽에 집 계약을 대신했는데, 검거돼 옥사하시는 바람에 이주를 못하셨다고 기록에 나옵니다.”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살았던 집으로는 함석헌과 김수영의 본가가 비교적 온전한 편이고 대부분은 사라졌다. 작은 초가였던 홍명희의 집은 창5동 신도브래뉴아파트 출입구로, 송진우의 집은 한신휴아파트 주차장으로, 김병로의 집은 안경점으로, 정인보의 집은 노래방으로, 계훈제의 집은 공영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전태일이 살던 쌍문동 6평 무허가 집도 삼익세라믹아파트로 바뀌었다. 이 구청장은 “표석을 세운다든지 해서 이분들을 알리고, 특히 1930~40년대 ‘창동의 3사자’로 불렸던 김병로, 김진우, 정인보 선생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하고 싶은데, 현재 창5동 공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中 인권사각지대를 말하다] ‘인권’ 변호 이유로 60일 감금

    [中 인권사각지대를 말하다] ‘인권’ 변호 이유로 60일 감금

    “너는 인간이 아니야.” 중국에서 ‘재스민 시위’ 시도가 이어지던 지난 2월 공안에 끌려가 구금됐다가 두 달 만에 가까스로 풀려난 인권변호사 장톈융(江天勇·40)이 당시의 끔찍했던 악몽에 대해 입을 뗐다. 장 변호사는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풀려난 뒤 처음으로 당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협박, 욕설과 위협, 세뇌 공작 등을 낱낱이 폭로했다. 그는 에이즈 관련 인권운동가나 파룬궁 수련자 등의 변호를 맡으며 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아 왔다.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19일이었다. 이튿날에는 중국의 첫 번째 재스민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우선 이틀 동안 극심한 구타가 이어졌다. “모른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졌다. 참다 못한 그가 둘째날 밤 “당신들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왜 이런 비인간적인 짓을 하느냐.”라고 울부짖자 “너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요된 반성과 세뇌 공작은 물리적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한 뒤 ‘보고하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교육을 받겠습니다.’라는 문장과 애국가요 3곡의 가사를 암송해야 했다. 한 구절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담당 요원들은 가족을 볼모로 한 협박, 생매장 위협 등으로 장 변호사를 황폐화시켰다. 끊임없는 반성문 제출이 이어졌다. 당초 의도한 대로 ‘세뇌됐다’고 생각한 당국은 60일 만에야 그를 석방했다. 물론 조건이 따라붙었다. 장 변호사는 앞으로 인권 관련 사건을 맡지 않고,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8개 항목을 담은 서약서에 서명한 뒤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올 초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에도 여파가 닥칠 기미를 보이자 장톈융 등 인권운동가 수십명을 구금하는 등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선 바 있다. 장 변호사는 “그들은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길 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고 싶지 않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해군기지 공사 방해 혐의’ 시민활동가 3명 긴급체포

    경찰이 1일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온 시민운동가들을 잇달아 체포하는 등 반대 세력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그러나 3일 강정천 잔디구장 조성지에서 열리는 대규모 평화문화제는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주도의회와 천주교계 등은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하거나 이와 관련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서귀포경찰서는 오후 평화와 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국장 김종일(52)씨 등 3명을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거나 해군기지 건설현장 입구에서 건설 차량과 기계가 들어갈 수 없도록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호준 서귀포경찰서장은 강정마을회에 보낸 ‘당부의 말씀’이라는 공문을 통해 “현재까지 집회신고가 없는 만큼 순수 문화행사로 받아들여 그에 걸맞은 관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서장은 또 “평화문화제에 전국에서 많은 인원의 참여가 예상돼 일대 교통 혼잡과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계획 중인 문화행사가 미신고 불법집회로 변질되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 대책위원장은 “경찰에서 평화문화제의 모든 행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우리도 평화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며 “정치적 구호나 현수막을 앞세우지 않겠다. 최대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구럼비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3일 강정마을 일대에서 올레 걷기, 구럼비 순례선언, 평화콘서트 등으로 구성된 ‘놀자 놀자 강정 놀자’ 행사를 열 예정이다. 행사에는 전세기인 ‘평화비행기’가 뜨고, 도내 곳곳에서 ‘평화버스’가 출발하는 등 전국에서 대규모 인원(주최측 추산 1500명·경찰 추산 700명)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제주도의회는 “공권력이 투입된다면 파국적인 상황만 가져올 뿐”이라며 “중앙 정부가 직접 해결의 주체로 나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라.”고 촉구했다.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도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서 ‘생명·평화 기원 미사’를 집전하고 “제주가 아닌 대한민국 어디에도 해군기지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귀포시는 이날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 단체에 대해 강정마을 안에 걸어 놓은 현수막 등 옥외 광고물을 8일까지 자진 철거해 주도록 요청했다. 시는 기한 내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의 절차에 의해 강제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강정마을 사태’ 서귀포서장 경질

    경찰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 현장의 업무방해 행위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관할 경찰서장을 전격 경질했다. 경찰청은 25일 서귀포경찰서 송양화 서장을 제주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보내고, 제주청 청문감사관 강호준 총경을 서귀포서장으로 발령냈다. 이는 조현오 경찰청장이 이날 오전 간부회의에서 전날 발생한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운동가들의 업무 방해 사건과 관련, “서귀포경찰서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서귀포서장을 교체하라.”고 감찰 라인에 지시한 지 반나절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행위자를 연행하는 경찰 차량이 잠깐도 아니고 7시간 이상 시위대에 억류됐다는 점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서장은 제주 출신으로 2006년 서귀포서장으로 재직한 후 제주지방청과 부산지방청 수사과장을 거쳐 지난달 인사에서 서귀포서장으로 복귀했다. 한편 서귀포경찰서는 이날 해군기지 건설사업 현장에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강정마을회 강동윤(54) 회장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24일 해군 측이 공사현장에서 대형크레인의 캐터필러를 연결하는 등 가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해군 업무와 경찰 공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강 회장 등 5명을 현장에서 연행했으며, 이 가운데 시민운동가 이모(52)씨 등 2명은 석방했지만 강 회장 등 3명은 이날 동부경찰서로 이송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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