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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열려고 ‘싹 다’ 학살…2030년 개최국, 믿기지 않는 상황

    월드컵 열려고 ‘싹 다’ 학살…2030년 개최국, 믿기지 않는 상황

    2030년 스페인·포르투갈과 함께 월드컵을 개최하는 모로코가 월드컵 기간에 맞춰 유기견을 소탕하기 위해 거리 등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16일(현지시간) 영국 더선에 따르면 국제동물복지보호연합(IAWPC)은 “모로코에서 유기견 300만 마리가 학대당하고 있다”며 최근 모로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모습을 공개했다. IAWPC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개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총상을 입은 개들은 피 흘리는 상태로 그대로 거리에 방치된다. 무장한 사람들은 독극물이 묻은 막대로 개를 찌르거나, 독이 든 미끼를 개들에게 직접 먹이기도 한다. 이렇게 죽임당한 개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동물 보호소는 더 이상 개들을 돕지 않는 곳이 됐다. 관리자들은 길거리에서 잡아 온 개들을 가둬놓고 먹이나 물을 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주는 먹이는 독이 든 미끼다. 보호소가 사실상 ‘개를 죽이는 시설’이 됐다는 게 IAWPC 측 주장이다. IAWPC의 레스 워드 회장은 “수백마리의 개들이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자신의 배설물 속에서 살고 있다”며 “질병으로 죽거나 굶주려 죽는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개들은 결국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학살 대상은 유기견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냥꾼들은 주인이 있는 개들도 마구잡이로 잡아가 주인에게 뇌물을 받고 풀어준다. IAWPC는 모로코 정부가 월드컵을 위해 대량 도살을 눈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운동가들은 FIFA(국제축구연맹)가 모로코의 월드컵 개최국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FIFA는 입찰 평가 보고서를 통해 “모로코 정부가 동물 권리 보호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고, 지난해 8월부터 동물 도살이 금지됐다”고 판단했지만, 현실은 이와 상반된다는 이유에서다. IAWPC의 ‘모로코 개 학살 종식 캠페인’에 참여한 제인 구달 박사는 “FIFA가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감독하에 벌어진 끔찍한 야만적 행위에 동참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축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잔인한 행위라는 점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더선에 따르면 모로코에서는 2019년부터 도살이 불법으로 규정됐음에도 매년 30만 마리의 유기견이 학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퇴진하라” 불빛시위에 ‘음파대포’ 발사 의혹…고막 찢기는 고통에 세르비아 아수라장 (영상) [포착]

    “퇴진하라” 불빛시위에 ‘음파대포’ 발사 의혹…고막 찢기는 고통에 세르비아 아수라장 (영상) [포착]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세르비아에서 진압대가 시위대를 향해 음파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6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민영방송 ‘N1’과 ‘발칸 EU’ 등은 세르비아 군경이 전날 평화 시위대를 향해 군용 ‘음향대포’를 발사했다는 주장이 나와 물리력 남용 비판이 일었다고 보도했다. 15일 동유럽 발칸반도 국가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내무부 추산 1만 7000명, 민간 단체 추산 27만 5000~32만 5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N1은 학생 운동가들 주도로 이뤄진 이날 시위가 세르비아 현대사 최대 규모였다고 짚었다. 일부에서는 시위대 규모가 세르비아 총인구(약 673만명)의 6분의 1 수준인 100만명에 달했으며, 이는 미국 국민 570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위는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시위대는 “너희는 끝났다”라며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과 밀로스 부세비치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면서도, 폭죽을 터뜨리고 부부젤라를 불며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다. 베오그라드 주민들은 시위대와 야외 난로와 음식을 제공했다. 시민들은 작년 11월 기차역 콘크리트 캐노피 붕괴 사고로 숨진 15명의 넋을 기리며 15분간 묵념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휴대전화 불빛을 들고 숨죽인 채 묵념하던 그때, 한편에서 정체 모를 소음과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일었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혼비백산했고 시위대는 일순간에 와해했다. 군사용 개발 ‘음향대포’…비살상 무기지만 심하면 청력 손상 현지언론은 이날 세르비아 군경 진압대가 시민들을 향해 음향장치(LRAD, Long Range Acoustic Device), 일명 음향대포를 발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음향대포는 귀청이 찢어질 듯한 초강력 소음으로 표적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다. 2000년 10월 예멘 아덴항에서 미국 구축함 USS 콜호를 상대로 한 소형보트의 자살테러 공격 이후, 2003년 아메리칸 테크놀로지사가 군사적 해상 경고용으로 개발했다. 음향대포는 빛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레이저처럼, 극한의 음파를 직선으로 쏜다. 제트기 이륙 소음 수준인 120~150㏈을 발생시키며, 유효사거리는 270m 정도다. 비살상 무기(Non-Lethal Weapon)이지만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몸 균형을 잃고 청각이 마비되거나 영원히 청력을 상실할 수 있다. 심장질환과 심각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음향대포는 주로 불법 어로 단속, 비상 알림 등의 용도로 쓰인다. 하지만 일부 국가는 시위 군중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며 인권 단체와 대립하고 있다. 한국 경찰도 2010년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두고 시위 진압용 음향대포를 도입하려다 거센 반발로 포기한 바 있다. 인권 침해 비판 봇물…세르비아 군경 “사실무근” 부인 세르비아 내무부 및 국방부는 음향대포 사용 의혹을 부인했으나, 시위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은 “엄청나게 위협적인 소리가 순식간에 덮쳤다”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인권센터 법률 전문가인 블라디카 일리치는 “청력 상실과 호흡 곤란, 혈압 상승 같은 증상에 관한 제보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현지 안보전문가 알렉산다르 라디크도 “LRAD 배치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세르비아군의 경우 2022년 음향대포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의혹에 현지 인권단체는 “평화적 시위대를 상대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야당은 부치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음파 무기를 사용했다고 비난하며 형사고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는 시위대가 경찰관을 공격하며 공무수행을 방해하고 더 큰 불안을 일으키려 했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이번 시위는 진압대의 음향대포 사용과 인근 공원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후 일시 중단된 상태다. 부패정부 지속에 국민 불만 폭발…대통령은 사퇴 거부 세르비아에서는 작년 11월 제2 도시 노비사드의 기차역에서 중국 국영기업 컨소시엄이 보수한 콘크리트 건축물이 무너져 시민 15명이 숨지는 사고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부정부패와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불만이 폭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4개월 넘게 계속된 시위는 최근에는 부치치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농촌 지역으로까지 확산하며 세를 불려왔다. 이날 베오그라드 시위에는 환경 보호 현수막을 흔드는 이들부터 코소보의 반환을 요구하는 이들까지 좌우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한데 모였다고 AFP는 전했다. 그러나 2014∼2017년 총리를 지낸데 이어 2017년 대선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으로 집권 중인 부치치 대통령은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전날 방송 연설에서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나는 세르비아의 대통령이고, 거리의 목소리가 나라를 지배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를 앞두고는 축구 훌리건이나 사설 폭력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의회와 대통령궁 주변에서 야영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부치치 대통령은 폭력 사태를 유도하기 위해 이들을 동원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 [씨줄날줄] ‘칼잠’ 자는 교도소

    [씨줄날줄] ‘칼잠’ 자는 교도소

    오랫동안 ‘콩밥’이 교도소의 상징어였다면 요즘은 뭘까. ‘칼잠’과 ‘새우잠’이다. 칼잠은 옆으로 누워 자는 잠이고 새우잠은 몸을 쪼그리고 자는 잠이다. 최근 인천구치소에선 5평(약 16.19㎡) 남짓한 감방에 13명이 수용돼 한 사람당 55㎝ 너비만 배정됐다. 당국이 특정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 교도소 인구밀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시기 조폭의 밀도가 높아졌듯 요즘엔 ‘마약과의 전쟁’으로 교도소가 붐빈다. 전국 교정시설의 마약 사범은 2019년 3574명에서 지난해 6628명으로 늘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에는 좁은 감옥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돼 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서는 1평당 3.12명이 수용됐다. 동시대 대만(1.37명)이나 일본(1.19명)보다 훨씬 더 열악해 독립운동가들이 더위와 욕창으로 고통받았다. 교정시설 과밀화 문제에는 이런 집단기억의 트라우마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이런 동정심은 ‘내집 옆 교도소’에는 냉소로 바뀐다. 법무부는 현재 5만 250명인 수용 정원을 2028년까지 5만 9265명으로 늘릴 계획인데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범죄자가 두 다리 뻗고 잘 자격이 있냐’고 반대한다. 지금까지는 재판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통한 수감자들의 개선 노력이 효과적이었다. 2013년 구치소 1인당 수용면적은 0.3평(약 1㎡)에 불과했다. 이는 기본권 침해라며 관련 법규정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이어졌다. 2022년 대법원은 1인당 2㎡ 미만 수용에 대해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례를 남겼다. 해외에서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교도소 공간 확보에 나선다. 덴마크는 코소보에, 벨기에와 노르웨이는 네덜란드에 해외 감옥을 임대했다. 크로아티아는 컨테이너로 임시 감옥을 만들었다. 우리도 팔짱만 끼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단죄를 넘어 교정까지 염두에 둔다면 수감자들의 기본권을 지킬 창의적 방법을 더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 정윤경 경기도의회 부의장, 광복 80주년 기념 안중근 의사 기획전시회에 참석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 기려

    정윤경 경기도의회 부의장, 광복 80주년 기념 안중근 의사 기획전시회에 참석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 기려

    경기도의회 부의장 정윤경 도의원(더불어민주당, 군포1)은 3월 6일(목) 경기도청 북부청사 본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안중근 의사 기획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의회가 주최하고, 경기도의회 교섭단체 더불어민주당이 주관하여, 항일 독립선열들의 ‘독립’과 ‘평화’ 정신을 경기도민과 함께 기억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훈을 계승하고자 마련됐다. 특히, 이번 기획전은 지난달 20일부터 3월 3일까지 경기도청 남부청사에서 열린 전시에 이어, 3월 6일부터 3월 14일까지 북부청사에서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며, 정윤경 부의장은 두 번의 개막식에 모두 참석해 행사에 대한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열의를 보였다. 이날 축사에서 정윤경 부의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와 함께 뜻깊은 전시를 개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전시가 안중근 의사의 독립 정신과 평화 사상을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정윤경 부의장은 “1909년,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단지동맹을 맺고 행동에 나섰던 안중근 의사는 차디찬 옥중에서도 굳은 신념을 잃지 않으셨다. 그분이 남긴 유묵 한 점 한 점에는 조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강조하며, “이번 전시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오늘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윤경 부의장은 “경기도의회 부의장으로서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기리는 다양한 정책 개발과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개막식에는 정윤경 부의장을 비롯한 경기도의원들이 태극기 퍼포먼스를 펼치며, 묶여있는 매듭을 풀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상황처럼 답답한 현 시국을 조속히 해결하고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 ‘광복 80주년 기념 안중근 의사 기획전시회’는 3월 6일부터 3월 14일까지 경기도청 북부청사 본관 1층 로비에서 진행되며, 도민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 신동원 서울시의원, 이북도민청년연합회 제106주년 3.1절 기념식 참석...공약삼장 낭독

    신동원 서울시의원, 이북도민청년연합회 제106주년 3.1절 기념식 참석...공약삼장 낭독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신동원 의원(노원1, 국민의힘)은 지난 1일 장충동 소재 3.1운동기념탑에서 열린 이북도민청년연합회 ‘제106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 독립운동 공약삼장을 낭독했다. 신 의원은 이날 공약삼장을 낭독하기에 앞서 “기후 온난화로 오늘은 봄 날씨를 맞은 듯 화창하지만, 1919년 3월 1일 당시에는 한강·대동강이 탱탱 얼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저항운동을 했다“라며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그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신 의원은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조국의 독립을 외친 역사적인 날”이라며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 의원은 제27대 이북도민청년연합회 대표의장으로 봉사해왔으며, 현재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 통일경모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시민과 실향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
  • [이은경의 과학산책] “나는 ‘과학’으로 계몽되었다”

    [이은경의 과학산책] “나는 ‘과학’으로 계몽되었다”

    “우주의 웅장한 구조를 찾는 그의 과학적 탐구는 고대의 가설을 뒤엎었다.” 1999년 타임지는 17세기 대표 인물로 아이작 뉴턴을 선정하고 이렇게 평가했다. 뉴턴 과학의 세계관과 방법론은 근대과학의 특징이다. 그는 별개로 인식되던 천체의 운동과 지구 위 물체 운동을 하나의 법칙으로 통합하고 수학으로 이를 나타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맞춘 이전의 설명방식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적 추론에 따라 정량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설명해 낸 것이다. 과학자로서 뉴턴은 당대에 인정받았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는 태양 중심 우주와 타원 궤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과학은 천문학 중심이었다. 갈릴레오는 사고실험으로 물체의 낙하운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지만 수학적이지는 못했다. 뉴턴은 보편 중력의 개념을 도입하고 미적분학이라는 수학 언어를 창안해 활용했다. 그가 1687년에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는 고전역학을 완성한 근대과학의 명저다. 핼리혜성의 발견자, 에드먼드 핼리는 뉴턴역학을 활용해 이전 혜성 관측 기록의 타원궤도와 주기를 계산하고, 다음 혜성을 예측할 수 있었다. 뉴턴은 국회의원, 조폐국장, 왕립학회 회장 등 다양한 사회 활동도 했다. 뉴턴은 여러 분야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평민 출신이었지만 기사 작위를 받고 ‘뉴턴경’이 됐다. 1727년 3월 31일 런던에서 뉴턴의 성대한 장례식이 있었다. 그는 영광스럽게도 왕족, 성직자, 나라를 구한 군인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과학자로서는 처음이었다. 이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 중에는 프랑스 작가이자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도 있었다. 볼테르는 일찍부터 문학가, 자유사상가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24세에 쓴 ‘오이디푸스’로 촉망받는 작가가 됐다. 프랑스의 전제정치와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국의 입헌군주정과 성공회 교회에 공감하게 됐다. 볼테르에게는 뉴턴의 장례식이 프랑스와 대비되는 영국의 상징 같은 사건이었다. 그는 이 차이의 밑바탕에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뉴턴 과학의 정신이 깔려 있다고 믿었다. 볼테르가 1733년에 출간한 ‘철학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볼테르의 영향을 받은 샤틀레 후작부인은 라틴어로 쓰인 ‘프린키피아’를 불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프랑스 지식인들이 뉴턴과학을 접할 수 있게 도왔다. 이 번역은 20세기까지도 ‘프린키피아’에 대한 훌륭한 번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절대왕정의 억압과 종교적 미신을 벗어나 이성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와 발전을 추구하는 계몽운동이 있었다. 볼테르처럼 계몽운동가들에게 뉴턴 과학의 특징인 이성, 합리적 사고, 보편성, 실험과 데이터는 사람들이 어둠에서 벗어나 ‘계몽’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빛이었다. 그런 뜻에서 “볼테르는 과학으로 계몽되었다”.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 [기고] 우리 국민에게 잊힌 외국인 독립운동가

    [기고] 우리 국민에게 잊힌 외국인 독립운동가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최근 출간된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라는 책을 쓰기 전까진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2023년 공직으로 옮기기 전 서울신문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했지만, 서울신문의 뿌리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이 외국인 독립운동가로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사실조차 몰랐다. 마자르, 매클래치, 장보링, 이소가야 스에지…. 책을 집필하며 처음 접한 이름들이었다. 자신의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나섰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나 자신의 무식과 무관심이 낯뜨거웠다. 나만 무심했을까? 주변을 둘러봤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아니 나처럼 관심 자체가 없었다. 정부도 ‘나 몰라라’ 하기는 오십보백보였다. 언론 보도를 찾아보니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을 기리는 합동 추모식은 1995년 광복 50년 만에 처음 열렸다. 내용도 형식도 빈약했다. 언론도 무관심했다. 초라하게 치러진 이 행사조차 그 뒤로는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역사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80주년을 맞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광복 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고사는 데 바빠 잊고 지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1995년 첫 합동 추모식 이후 외환 위기가 덮쳐 그들을 기릴 겨를이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오르내리고,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체 없이 국격을 바로 세워야 한다. 100여년 전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민을 위해 자유와 정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실천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우리 의식 속에 되살려야 한다. 그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숨은 영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그 후손들의 삶을 살펴야 한다. 정부는 1950년 처음으로 외국인 독립유공자 12명을 포상했다. 이후 지금까지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받은 외국인은 76명이다. 독립운동 연구 학자들에 따르면 서훈을 받기에 충분한 외국인은 그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나거나 활약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호주, 중국, 일본 등을 잇는 ‘대한외국인 실크로드’를 조성했으면 한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생가나 그들이 성장하고 활동했던 지역을 하나로 연결해 우리 국민이 그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는 역사 기행 길에 올랐으면 한다. 국가 차원에서 세계 각국 정부ㆍ지자체와 협의해 그들의 생가를 복원하거나 기념관을 짓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대한외국인’ 간판도 세웠으면 한다. 외국인 독립운동가 기념관도 건립했으면 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우리가 가장 힘들었을 때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기념관조차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는 올해 8·15를 즈음해 광복 8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합동 추모식을 성대하게 치렀으면 한다. 조국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 독립에 온몸을 던진 푸른 눈의 이방인, 고국 사람들에게 배신자 낙인이 찍히면서도 한국인 편에 서서 일제 폭거에 맞서 싸운 일본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중국인을 국민 마음속에 오롯이 되살려 내 기억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김승훈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정책소통기획관
  • [열린세상] 2025년의 3·1 정신은 무엇일까

    [열린세상] 2025년의 3·1 정신은 무엇일까

    이번 삼일절은 근래에 들어서 가장 정치적인 삼일절이었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정국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계속 격화되면서, 탄핵 반대 시위와 탄핵 찬성 시위가 삼일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치적 삼일절은 실제 역사 속 3·1 정신의 왜곡일까. 확실히 3·1운동을 독립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위한 비폭력 평화 시위로 한정한다면 2020년대에 정치적인 이유로 3·1 정신을 동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치적 동원이 실제 3·1운동의 역사와 부합하는 것임을 인식해 볼 필요도 있다. 우선 3·1운동은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폭발한 국민운동이었다. 그리고 3·1운동으로 등장한 한국인의 ‘일치단결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이후 한국 현대사를 수놓을 무수한 갈등과 분열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족 의지의 폭발로서 3·1운동은 한국 공화 정치의 시작이었다. 대한제국 황실이 일본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않고 국권을 넘겨준 이전 경술국치와는 달랐다. 왕조와 국가의 구분이 희미하던 당시에는 왕가의 항복으로 독립 정신도 타격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왕조의 소멸은 동시에 정치적 상상력이 만개하게 도왔다. 독립을 꿈꾸고, 독립한 나라를 개명되고 발전된 나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타올랐고, 국민 한 명 한 명이 그 과업에 참여하겠다며 태극기를 흔든 것이다. 민족 의지의 폭발은 당연히 민족 지식인과 후대 지도자들에게도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한국인은 나라를 허무하게 넘겨주는 무기력한 민족이 아니라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단합력과 의지를 지닌 민족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하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독립을 해야 하고, 독립 후에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독립운동가들은 분열을 거듭했다. 이 노선 투쟁에서 이기는 자가, 3·1이 보여 준 국민 단결의 에너지를 독점해 새로운 나라를 그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단결을 향한 염원이 다원성의 부재와 동의어였음은 해방 정국에서도 드러났다. 국내외 민족 운동가들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자신의 뜻을 따르게 ‘단결’시키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그 논쟁은 해방 정국의 혼란, 나아가 분단과 참혹한 전쟁으로 확대됐다. 물론 3·1에서 발현된 일치단결의 정신은 대한민국이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국인들이 보인 일치단결의 에너지가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수준이라는 생생한 증거로서 3·1 정신을 잇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그에 버금가는 합의가 등장하지 못하자 문제가 생겼다. 단결할 목표가 없어진 상태에서 오직 단결만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 결과 6공화국의 민주정치는 파행에 이르렀고, 끝내는 2020년대에도 서로 다른 두 세력이 3·1 정신의 계승을 주장하며 대립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3·1 정신을 내려놓아야만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단결하고자 하는 충동은 한국인의 강력한 심리적 경향이다. 한 번 단결하기까지는 힘들지만, 일단 정해지면 놀라운 속도의 집단적 동기화가 이루어져 예상도 못 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는 단결의 강조로 빚어지는 다양성의 부재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단결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합의의 부재일 수도 있다. 지정학, 인공지능(AI), 미디어 등 모든 면에서 앞으로 벌어질 이 대격변의 시기를 통과해 새로운 한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굴하는 것, 아마 그것이 3·1의 정신을 높은 차원에서 회복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갈등으로 얼룩진 2025년의 삼일절에, 우리에게 여전히 에너지는 남아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찾아보고 싶다. 임명묵 작가
  • ‘능구렁이’ 된 AI… 법원 폭동 사태 극우 주장 되묻자 ‘위험한 답변’ [비하人드 AI]

    ‘능구렁이’ 된 AI… 법원 폭동 사태 극우 주장 되묻자 ‘위험한 답변’ [비하人드 AI]

    ‘네이버에게 물어봐’는 이제 옛말이 됐다. 포털사이트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무엇이든 물어보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생성형 AI는 궁금한 것은 물론 고민과 연애 상담까지 해 준다. 그렇다면 이 ‘척척박사’를 믿어도 될까. 지난 한 달여간 생성형 AI 7개 모델에 상식과 윤리, 정치적 견해 등 가치판단이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개발 국가와 성능을 고려해 챗GPT, 제미나이, 그록(이상 미국), 딥시크, 큐원(이상 중국), 프랑스의 르챗, 한국의 클로바X를 골랐다. 거침없는 AI의 미래 예측50년 내 남북통일 가능성 ‘제각각’챗GPT 최대 70%… 클로바X 30%AI는 전문가들이 쉽사리 결론 내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에도 몇 초 만에 답변을 내놨다. 남한과 북한이 50년 내에 통일될 확률을 물었더니 챗GPT는 60~70%라고 답했다. 북한 체제가 시간이 갈수록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근거로 제시했다. 클로바X는 가장 낮은 30%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치·경제·문화적 차이를 줄이기엔 50년이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각국의 승리 가능성을 물어보니 ‘미국 40%, 중국 30%, 다극체계 30%’(제미나이)처럼 각자 그럴듯한 수치를 들이댔다. 각각의 AI 서비스 화면에 적힌 ‘AI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해 보였다. 자신만만하던 AI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직면하자 어물쩍 넘어가는 능구렁이가 됐다. 국내외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물으면 “양면성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기 일쑤였다. 중국의 딥시크가 특히 민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독재자냐’고 묻자 딥시크는 시 주석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쭉 써 내려가다가 갑자기 “죄송합니다. 나의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다른 얘기 하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어로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을 때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천명의 시민이 정부에 의해 사망하거나 다쳤다”고 하더니 같은 질문을 중국어와 영어로 하자 말문을 닫았다.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자치구를 탄압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중국은 모든 지역에서 법에 따라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외교부가 늘 내놓는 이른바 ‘모범 답안’이다. 그런데 역시 중국에서 개발된 알리바바의 큐원은 딥시크처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AI 전문가는 “딥시크가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사용자가 늘자 자동검열 알고리즘과 인간의 실시간 검열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 같다”고 예측했다. 딥시크가 몸을 사리는 게 문제라면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개발한 그록3는 너무 솔직한 게 탈이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2026년 화성 탐사 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을 묻자 그록3는 50%의 비교적 높은 가능성을 제시한 뒤 “머스크의 실행력이 가능성을 높인다”는 다소 편파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머스크는 그록3를 ‘선 넘는 답변’도 마다하지 않는 AI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치, 윤리적 문제에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 논쟁적인 토론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 CivAI 공동 창립인 루커스 핸슨은 “그록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형성되는 인식이 정치적 분열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명백한 오류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클로바X는 ‘한국의 독립에 공이 큰 인물을 꼽아 달라’고 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AI가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자 범죄자를 옹호하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예컨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을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보낸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하거나 “25년이 넘는 수감 기간의 변화를 보면 조건부 석방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옹호하는 식이다.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에 대해 “명백한 불법”이라던 AI들은 폭동 주동자와 극우 유튜버의 주장을 덧붙여 묻자 말을 바꿨다. 폭동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행과 정책 대립 때문”이라고 하거나 “억울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법원이 감형해 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극단주의가 개혁이나 혁명의 원동력이 됐다”는 위험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AI를 가치관, 역사관 정립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콘텐츠만 노출시켜 편향성을 심화시키는 알고리즘의 폐해가 AI로 인해 더욱 심각해지고,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잘해 주는 AI만 맹신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과 함께 편향성을 생성형 AI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인공지능 법률사무소 인텔리콘 대표 임영익 변호사는 “AI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독립적인 감사를 통해 편향을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열하거나, 솔직하거나 딥시크, 中 불리한 질문하자 ‘침묵’ 그록3 ‘머스크 호평’ 편파적 설명네덜란드는 2019년 AI 오류에서 비롯된 보육료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네덜란드 정부는 보육료 부정수급을 해결하겠다며 적발 시스템에 AI를 탑재했다. 그런데 AI는 보육료 수급 현황을 검토하면서 특정 국적, 소득 등을 부정수급자 의심의 판단 근거로 삼는 오류를 저질렀다. 수급자와 동일한 국적을 가진 사람 중 범죄자 비율이 높으면 평범한 수급자도 무조건 의심자로 분류했다. AI는 의심자가 서류 작성에서 사소한 오류를 범해도 지체 없이 부정수급자로 낙인찍고 그동안 받은 모든 보육료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네덜란드 의회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 ‘전례 없는 불의’에 따르면 피해 가구가 2만 6000가구에 이르렀다. 10만 유로(약 1억 5000만원)가 넘는 보육료 반환이 청구돼 파산한 가구도 있었다. 이 스캔들로 총리와 내각이 총사퇴했다. 아마존은 2018년 AI 기반 채용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AI는 남성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성차별’을 저질렀다. 2015년 출시한 구글 포토앱은 AI로 사진을 인식해 태그를 붙이며 흑인을 고릴라라고 판단하는 ‘인종차별’의 오류를 범했다. 국내에서도 AI로 인한 차별 문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2020년엔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채용 과정에서 탈락한 지원자에게 AI 면접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적인 AI 분야 권위자이자 2018년 튜링상 수상자인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안전을 무시하고 나아가고 있다”며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현명한 개발 방식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장진복 김중래 명종원 이성진 기자
  • 성북구, 문화공간 이육사에서 일일 독립운동가 체험

    성북구, 문화공간 이육사에서 일일 독립운동가 체험

    서울 성북구 ‘문화공간 이육사’가 광복 80주년의 3·1절을 맞아 일일 독립운동가 체험 프로그램 ‘비밀결사단’을 진행했다고 3일 밝혔다. 문화공간 이육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 선생을 기념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종암동은 이육사가 1939년부터 거주했던 곳이자 대표작 ‘청포도’를 발표한 곳이다. 광복 80주년의 특별한 3·1절을 맞아 문화공간 이육사에서는 일일 독립운동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세 가지 임무로 구성했다. 첫 번째 임무인 독립선언서 필사 체험은 1층에서 진행되고 암호 퀴즈와 태극기 포토존이 각각 2층과 3층에서 진행됐다. 일일 독립운동가 체험에 참가한 한 어린이는 “우리 동네에 이렇게 의미 있는 공간이 있는지 몰랐다”라며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본받겠다”라고 말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독립선언서 필사를 직접 체험해 보며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일일 독립운동가 체험을 하고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눈 이 구청장은 “우리 구민 여러분들이 이렇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라며 “앞으로도 성북구는역사적인 시설들을 운영, 관리해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 션, 올해도 독립유공자 후손에 2억 2400만원 기부

    션, 올해도 독립유공자 후손에 2억 2400만원 기부

    가수 션이 3·1절 기념 기부 마라톤을 통해 모금한 약 2억 24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션과 한국해비타트가 다섯 번째로 개최한 ‘2025 3.1런’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이 안락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행동하는 기부 마라톤이다. 지난 1일 션은 서울 상암월드컵공원에서 배우 진선규, 이재윤, 임세미를 비롯한 31명이 달린 31㎞ 마지막 주자로 합류해 3.1㎞ 코스를 달린 데 이어 1000여명의 개인 참가자들과 추가로 3.1㎞를 달렸다. 이날 개인 참가자 3100명의 참가비 전액과 기업 후원금 등은 한국해비타트에 기부됐다. 기부금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 ‘미스터 션샤인’ 유진처럼… 대한독립 위해 싸운 외국인들

    ‘미스터 션샤인’ 유진처럼… 대한독립 위해 싸운 외국인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중근, 유관순, 김구,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투쟁을 했다. 그렇지만 이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외국인도 적지 않았다.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제 주머니 챙기기 위해 나라와 동포를 외면할 때 한국을 사랑해 한국을 위해 몸 바친 외국인이 그렇게 많았다는 점은 놀라움을 준다.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부키)는 ‘대한외국인’ 독립투사의 희생정신과 그들이 실천한 인류애를 조명하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나 ‘밀정’, ‘박열’처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속에는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항일 투쟁을 함께 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하곤 한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흥미와 극적 효과를 노린 허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모두 실존 모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게 된다. 이 책에서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서훈조차 받지 못하고 잊혀 버리거나 서훈은 받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대한외국인 독립 영웅 25인의 삶과 업적을 생생하게 알려 준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에서 김산(장지락)은 “대략 40세쯤 되었는데, 움푹 파인 눈에 눈썹이 짙었으며, 키가 크고 강인했고 태도가 방만하였지만, 조선인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 외국인을 묘사한다. ‘마자르’라는 가명으로만 남은 헝가리인 의열단원이다. 의열단의 무장투쟁을 위한 폭탄을 제조하고 젊은 독립투사들에게 폭탄 제조법을 알려 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원 연계순과 부부로 위장해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작전에 참여하는 루비크라는 유럽 출신 남성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대한독립을 위해 제 한몸 바친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함께 구속됐던 조선인 동료 중에서도 전향서를 쓰거나 변절하는 사람이 나오는 가운데 끝까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전향하지 않아 일제강점기 유일한 일본인 비전향장기수로 남은 이소가야 스에지, 도쿄제국대를 졸업하고 20대에 경성제국대 교수가 된 엘리트로 사회적 명성, 지위, 재산을 뒤로하고 식민지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돕다가 감옥에 간 엘리트 사상범 미야케 시카노스케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준다. 책을 읽고 나면 왜 이방인 독립투사들에 대해 안중근 의사와 백범 김구 선생이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손과 동포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 사모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 뛰면서 ‘2억 2천’ 기부, 배우들도 ‘활짝’…션의 꾸준한 선행

    뛰면서 ‘2억 2천’ 기부, 배우들도 ‘활짝’…션의 꾸준한 선행

    꾸준히 선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수 션이 3·1절 기념 마라톤을 개최해 약 2억 2000만원을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해 기부했다. 2일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션은 전날 서울 상암월드컵공원에서 개최한 ‘2025 3.1런’에서 배우 진선규, 이재윤, 임세미 등 31명이 달린 31㎞ 코스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3.1㎞를 뛴 다음 1000여명의 개인 참가자와 추가로 3.1㎞를 달렸다. 이번 행사에서 개인 참가자 3100명의 참가비 전액과 기업 후원금을 합해 약 2억 2400만원이 모였으며, 이 돈은 한국해비타트에 기부됐다. 기부금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편안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2025 3.1런’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 후손이 편안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기부 달리기다. 션이 3·1절 기념 마라톤을 한 것은 올해가 5년째다. 올해는 개인 참가자 3100명이 한 달 만에 모집되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다. 션은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뛰는 ‘3.1런’이 매년 더 많은 분의 참여로 성장하고 있어 기쁘다”며 “독립유공자 후손 분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수 있어 뜻깊다”고 전했다. 션은 2020년부터 ‘8.15런’, 2021년부터 ‘3.1런’으로 3·1절과 광복절에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환경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간 모인 후원금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17가구에 새 보금자리를 헌정했고, 현재는 18~19번째 집을 짓고 있다. 션은 ‘착한 러닝’으로 다양한 기부 문화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 개선을 비롯해 화보 수익금 기부, 국내외 어린이 후원, 연탄배달 봉사활동 등 선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션이 지금까지 쾌척한 누적 기부액은 총 60억여원에 이른다.
  • 고창군, 3.1절 앞두고 고창출신 독립유공자 6명 서훈 확정

    고창군, 3.1절 앞두고 고창출신 독립유공자 6명 서훈 확정

    ‘106주년 3.1절’을 앞두고 고창출신 독립유공자 6명의 서훈이 확정됐다. 고창군은 지난 27일 국가보훈부가 고창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이던 윤욱하 선생 등 6명을 ‘106주년 3.1절 계기 독립유공자 서훈대상자’로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로써 고창군 전체의 국가유공자는 기존 102명에서 108명으로 늘었다. 윤욱하 선생은 1929년 6월경 전북 고창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조선인 교사 유임을 요구하는 동맹휴학에 참여하다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체포됐다. 이듬해 1월에는 고창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학우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됐다. 그의 활동으로 1930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교내에 만연했던 조선인 차별 현상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고, 조선인 교사를 지키고자 동맹휴학을 일으켜 식민지 교육정책에 저항한 학생운동의 전면을 조망할 수 있었다. 윤 선생과 함께 1929~1930년 고창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및 독립 만세운동을 한 박재우, 양회영, 윤선호, 이영규, 조순옥 선생 역시 이번 계기 대통령 표창에 서훈됐다. 이번 독립유공자 서훈은 심덕섭 고창군수가 ‘기억과 존중의 보훈문화 확산 기반마련’을 최우선 공약사업으로 정하고 지역 내 독립유공자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한 결과다. 고창군은 순수 군비로 용역을 진행했고, 각종 자료를 토대로 211명의 명단을 확인했다. 이후 국가보훈부 심사기준에 따라 103명의 서훈신청서를 작성하고, 심덕섭 군수가 직접 국가보훈부에 찾아가 신청서를 전달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를 재조명하고, 숨은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찾아내 예우를 다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리더의 덕목을 실천한 위대한 법조인, 김병로 [한ZOOM]

    리더의 덕목을 실천한 위대한 법조인, 김병로 [한ZOOM]

    챗GPT에 ‘위대한 리더의 덕목’이라는 질문을 해봤다. 결과는 예상과 썩 다르지 않았다. 챗GPT는 비전, 소통, 결단력, 책임감, 도덕성, 공감, 혁신, 열정 등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덕목은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바로 철학(哲學)이다. 철학이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부터 현대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수많은 철학의 계파가 떠올라 머리가 아파진다. 역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폐단이다. 철학은 딱딱하고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기준과 태도를 의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질서를 흐트러뜨리는데도 수많은 미국인이 지지하는 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정치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독재자 타이틀이 붙지만 한국의 발전과 성장을 지향한 경제 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리더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증명한 인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을 꼽겠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대한민국의 법치를 세운 주인공이다. 김병로 선생은 1887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이 되어 일제와 싸웠고, 일제 탄압으로 의병 활동이 좌절되자 일본으로 넘어가 법학을 공부했다.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조선 최초의 인권변호사가 되어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는 데 앞장섰다. 변호사 수입 대부분을 들여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의 남은 가족 생계를 도왔다. 이념보다 신념, 인권 앞세운 법조인1948년 김병로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 됐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원하지 않았지만 국무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지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임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병로 선생은 대법원장직과 함께 친일파 행태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을 겸임하면서 친일 역사 청산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비호 아래 득세한 친일파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했고, 결국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그의 의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김병로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은 자주 부딪쳤다. 사법부 독립을 추구했던 김병로 선생은 사법부를 장악하려했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불만을 표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받아쳤다는 일화도 있다. 김병로 선생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공산주의가 법치주의를 위협한다고 인식했지만 이념보다 인권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탄압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공산주의자를 변호하기도 했으며, 좌파와도 적극 소통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 공격에 부인이 희생됐지만 그의 신념은 복수심에 훼손되지 않았다. 오히려 1958년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반대했다. 당시 이런 태도가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인권주의자인 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우선이었다. 철학을 가진 리더를 기억하는 곳순창에는 김병로 선생의 생가와 유년시절 공부했던 낙덕정이 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는 일제 때 13년 동안 지낸 집터가 남아있다.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하고 일본식 이름을 강요한 창씨개명을 거부하기 위해 경기도 양주로 가 농사를 짓고 은둔생활을 했는데, 당시 양주가 현재 창동이다. 2015년 도봉구청은 옛 집터 인근 도로에 ‘가인 김병로 길’이라는 명예도로명주소를 부여했다. 가인(街人)은 김병로의 호이다. 해석하면 ‘거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나라를 잃고 설움을 받는 동포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 주변에 그의 호를 딴 가인초등학교가 있다. 김병로 선생은 독립운동과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고,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기틀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과 인권보호에 앞장섰던 위대한 리더였다. 그에게는 위대한 리더의 덕목인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어떠한 외압과 외풍에도 변질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것이었다.
  • “2030 남성, 북한보다 중국이 더 두려워” 영국 BBC가 주목한 ‘탄핵 반대 청년’

    “2030 남성, 북한보다 중국이 더 두려워” 영국 BBC가 주목한 ‘탄핵 반대 청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탄핵 촉구 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곳곳에서 충돌하는 가운데, 영국 BBC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탄핵 반대 집회를 조명했다. BBC는 집회에 2030세대들도 참여하고 있다면서, 중국과 북한이 남한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는 음모론이 중장년 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2세 약대생…직장 뛰쳐나온 40대BBC는 20일(현지시간) “우리는 김정은과 손잡게 될 것 - 음모론이 한국을 사로잡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지난달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보도했다. BBC는 “6·25 전쟁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노년층은 북한을 두려워하고 경멸한다”면서 “윤 대통령의 쿠데타가 실패한 지 2개월여가 지난 지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반공 열풍’이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22세 여성과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는 이 여성은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우리나라는 북한 김정은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BC는 “윤 대통령의 가장 광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남한 공산화’ 이론”이라고 부연했다. BBC는 이날 시위에 나선 청년층의 인터뷰를 전했다. 헌재 앞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직장에서 뛰쳐나왔다는 40대 직장인은 “이것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전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30대 남성은 “윤 대통령을 빨리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북한 간첩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2030男, ‘혐중 정서’ 빠져”BBC는 “북한이나 공산주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일부 사람들조차도 이제 민주주의 체제가 좌파 독재로 바뀔 위기에 처해 있으며, 윤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고 이들은 확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1960~70년대 남파 간첩,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덧씌워진 ‘종북’ 프레임 등 중장년층 사이에 뿌리깊은 ‘반공’ 사상이 자리잡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현재 북한의 체제 위협은 사실상 사라졌는데도, 윤 대통령은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 “종북 세력이 국회를 장악했다” 등의 주장으로 체제 위협이라는 이같은 국민들의 두려움을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음모론은 일부 극단적인 보수 단체들이 주장한 것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윤 대통령이 이를 주장하면서 지지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BBC는 전했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한 57세 남성은 “처음엔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비상계엄이 눈을 뜨게 했다”고 BBC에 말했다. 한 40대 여성은 “이전에는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에 의구심이 있었지만, 계엄령 이후 사실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특히 2030세대에게 ‘중국의 선거 개입’으로 촉발된 혐중 정서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 BBC는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위협을 경험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 중국은 더 믿을 만한 위협”이라고 분석했다. 그간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나간다고 생각해왔지만, 최근 중국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취업과 내집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2030세대가 중국에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BBC에 “공산주의가 두려움과 증오를 불러들이는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면서 “특히 극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다”고 짚었다.
  • ‘김구 증손’ 野김용만 “김문수 망언에 독립운동가들 통곡”

    ‘김구 증손’ 野김용만 “김문수 망언에 독립운동가들 통곡”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발언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를 향해 법적 조치를 언급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도 김 장관의 역사관을 문제 삼으며 “국무위원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장관은 대한민국 장관은커녕 국민 자격조차 없다”며 발언 근거를 가져오거나 사죄하라고 했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제시대 김구 선생의 국적이 뭐냐’는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부분은 국사학자들이 다 연구해 놓은 게 있다”고 답변하면서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대체 누가 어떤 내용으로 그런 연구를 했는지 어디 가져와 보십시오”라며 “할아버지께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역대급 망언”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당신이 서 있는 이 대한민국, 당신의 장관직, 그 모든 것이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세워졌다”며 “당신의 발언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불법임을 선언하고, 임시정부가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천명했던 선열들의 노력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반민족적 그리고 비상식적인 무지의 망언”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의 역사관이 논쟁 대상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일제강점기 시기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대한민국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대한민국 국무위원이라는 사람이 애국열사,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고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라며 “김 장관은 선조들과 애국열사, 순국선열께 더는 죄를 짓지 말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 설 자리 잃은 재야·시민사회… 한국 정치는 거대 여야만 남았다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설 자리 잃은 재야·시민사회… 한국 정치는 거대 여야만 남았다 [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재야 원로를 비롯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권이 제도화되면서 이제는 여야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의사결정이 정당과 의회 중심으로 이뤄지며 역설적으로 재야·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다. 시민사회의 관심 분야가 민주화에서 기후, 인권, 이주민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된 만큼 정치권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야권과도 이념적 차이 민주화 후 기후·인권 등 영역 세분화2000년대 낙선운동 등 영향력 발휘이부영 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은 1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때는 독재정권에 시달리다가 이제 막 민주화로 가는 과정의 시민운동 초창기였다”며 “군사독재 쪽하고는 선을 긋고 민주 진영에서 같이 활동했던 야권 사람들과 함께했지만 지금은 시민운동 쪽에서도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함께 ‘재야 3인방’으로 불린 이 고문은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지난해 9월 별세한 장 원장은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한 인사로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도 얻었다. 장 원장의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졌다. 재야 시민사회 원로들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는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은 “군부독재 시절에는 정권의 탄압을 받으며 비제도권에서 저항했던 재야 인사, 재야 시민사회가 있었다”면서 “한국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에 진입하려던 경찰의 시위대 연행 시도를 단호히 막아 내며 성당을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만들었다. 당시 김 추기경은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라며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야권이 협력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고, 2000년에는 부적격 후보자들의 낙천과 낙선을 위한 운동을 펼쳐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원로들이 하나둘씩 별세하면서 독립적인 시민사회 리더십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장 원장의 장례식에서 호상을 맡았던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통화에서 “앞에 나섰던 재야 원로들도 이젠 많이 돌아가셨다”며 “장 원장이 계셨다면 현 시국에 대해 많이 얘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정치의 독점적 구조는 시민사회나 재야 원로들이 개입할 여지를 더욱 줄여 갔다. 정당들이 정책과 정치적 담론을 독점하게 됐고, 특히 양당 구조가 강화되면서 정당 외부의 의견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한국청년연합(KYC)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후 4선 중진이 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분명 과거에 비해 제도 정치의 비중이 더 커졌다”며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민사회의 의제나 방식은 훨씬 더 다양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정치의 제도화나 시민운동의 성숙과 연결되면서 재야 시민운동가들이 정당과 연관된 사람들로 바뀌는 시대 현상”이라고 짚었다. 시민사회 내부의 입장 차도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했다.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도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갖게 돼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민주화운동 당시와 달리 시민들이 정치보다는 경제적 안정과 개인적인 삶을 더 중시하는 경제·사회적 환경 변화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의 대중 동원력이 감소하고 정치권에 대한 압박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정당들의 정책·담론 독점적 구조 민주화운동 주도했던 원로들 별세정책 결정 과정 의견 반영 어려워져제 원장은 “시민사회는 ‘반민주 투쟁’의 단일대오에서 기후환경, 장애인 인권, 경제개혁, 이주민 보호 등으로 다양한 관심사를 대변하게 됐다”며 “정치권의 과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관심과 요구가 정치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 등을 이루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거대 양당 체제 공고화와 정치권의 폐쇄성 강화, 시민사회의 변화 등과 맞물려 재야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가운데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극한 갈등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이 오히려 국민 여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9일 재야 시민사회 원로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고 ‘범국민 항쟁기구’ 결성을 제안했다. 이 고문은 “아무리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정당들이 민주 헌정 체제를 지키자는 쪽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직도 선명한 5·16의 기억… 정치적 문제는 계엄으로 풀 수 없어” [월요인터뷰]

    “아직도 선명한 5·16의 기억… 정치적 문제는 계엄으로 풀 수 없어” [월요인터뷰]

    제약 많던 대통령 아들의 삶격동의 현대사 보며 정치 관심 안 둬독립심 키워주려 한 父 덕에 美 유학귀국 후 집안 배경 없이 일하려 창업남다르게 느껴진 계엄 사태상식에서 벗어난 일 일어나 큰 충격응원봉 들고 집회 나온 젊은 청년들자유 침해당한 사실에 항의하는 것로타리안으로 새 인생 시작사람들과 봉사하는 즐거움 알게 돼中 고비사막 방품림 조성 등 이끌어봉사 통해 선한 영향력 확대됐으면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에는 ‘윤보선 고택’이라는 한옥이 있다. 사적 제438호이기도 한 이 고택은 한때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었다. 이상재·한규설·유근 등 91명이 독립과 근대교육을 꿈꾸며 설립한 ‘조선교육협회’가 발족한 곳이자 함석헌·박형규 목사 등 재야·민주 인사들의 회합 장소였다. 군사정권 시절엔 인권 운동가들의 도피처였고, 1980년 ‘서울의 봄’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불러 단일화를 중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격동의 현대사를 품은 이곳의 주인은 윤 전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76) 국제로타리 차차기(2026~2027년) 세계회장이다. 윤 회장과 그의 아내는 지금도 이 고택에서 산다. 윤 회장의 부친인 윤 전 대통령은 4·19 혁명 이후 대한민국 4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헌정사상 유일한 의원내각제 정부의 대통령을 지냈다.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내각이 사실상 무력화된 이후 1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하다 1962년 하야했다. 윤 회장은 “5·16 때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며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부친이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인 1966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윤 회장은 미국으로 떠났다. 부친이 정계를 은퇴한 이후인 1982년에야 귀국한 그는 전공(건축학)을 살려 건축자재 수입업체를 차린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는 서울 북촌의 문화와 환경을 보존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북촌문화포럼’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의 대표적인 클래식 축제로 자리잡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봉사활동과 우리 문화 알리기에 평생을 보낸 윤 회장도 지난해 비상계엄에 대해선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계엄으로 풀 수는 없다”고 했다. 해외에 자주 오가기에 만나기 어려웠던 윤 회장을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윤보선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이 헌법재판소 근처라 최근에는 집회 등으로 굉장히 시끄러울 것 같다. “그렇긴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던 2016~2017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젊은 친구들이 응원봉을 들고 계엄 반대·탄핵 촉구 집회에 나왔다는 점이 그때와는 다른 것 같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이념과는 무관하게 계엄으로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것에 항의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조금 시끄러워도 참을 만하다.” -부친은 대통령까지 지낸 유력 야당 정치인이다. 정치를 시작하기 좋은 요건을 갖춘 ‘금수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동안 많은 ‘러브콜’이 있지 않았나. “사실 이렇다 할 만한 요청은 없었다. 무엇보다 제가 정치에 재능이 전혀 없다. 아무나 정치를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 저는 결기도 없었고 소질도 없었다. 부모님도 살아생전에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하면 ‘그런 걸(정치를) 할 애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5·16 군사정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고 하셨는데. “5·16 때 박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가족이 있던 청와대로 들어왔다. 제 머리를 쓰다듬고 난 이후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뒷모습이 생생하다. 그게 어떤 의미였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격동의 현대사를 가까이서 보신 만큼 12·3 비상계엄 선포를 보면서 느낀 점이 남달랐을 것 같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국제로타리 회의 참석차 인도로 출장을 가고 있었다. 인도 공항에 내렸더니 저를 데리러 나온 인도 로타리안(국제로타리 회원)이 ‘서울에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하더라. 당연히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걸 확인하고는 충격이 컸다. 다음날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부탄에서 온 로타리안들과 모임이 있었다. 그분들이 ‘대한민국 같은 민주주의국가에서 어떻게 계엄령이 선포될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부끄럽고 창피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대단한 위치에 있지도 않아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대한민국에서 2024년에 비상계엄 선포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정치인은 여러 문제들이 있어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게 정치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부친은 5대와 6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박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아깝게 졌다. 이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1980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부친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나. “자식들에게 굉장히 엄격하셨다. 또 검소하셨다. 말 그대로 여름옷 한 벌과 겨울옷 한 벌 정도로 평생을 사셨다. 아버지는 야당 정치인으로 계속 사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 저는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그런 제약이 힘들지는 않았나. “힘들긴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야당 정치인의 아들로 고생한 것보다는 도움을 받았던 일이 더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았다.” -모친인 공덕귀 여사도 기생관광 반대운동과 원폭 피해자를 돕는 사회운동을 했다. 1980년 이후에는 구속자가족협의회 의장, 양심범가족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어머니는 기독교인으로서 인권과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실제 활동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라고 본다.” -정치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관심이 없나. “어린 시절(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 저희 집에서는 매일같이 당시 야당 지도부들의 회의가 열렸다. 그런 모습을 매일 보면서도 한 번도 정치에 관심을 둔 적이 없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분은 아주 젊어서 국회의원이 됐다. 원내총무 역할을 많이 했는데, 굉장히 부지런하게 뛰어다녔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이 전 의장이 기자였던 시절이었는데, 저희 집 대문 밖에 항상 서 있었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간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부모님이 저에게)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좀더 자유롭게 살아 보라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또 아버지는 당시 자식들에게 ‘독립심을 키워 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홀로 떠난 미국 생활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나. “그리움이 컸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입대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뒤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되니 더욱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1980년 이후 한국의 정치 상황도 많이 바뀌었고 귀국을 결심했다.” -부친이 유력 정치인이었던 만큼 귀국할 때 기업 등에서도 여러 제안이 있지 않았나. “건축학을 전공하다 보니 여러 건설 회사들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었다. 그때만 해도 제 실력을 보고 그런 제안을 한다기보다는 집안 배경을 보고 제안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이후 국제로타리 활동도 시작했나. “1982년 귀국해 1986년 회사를 설립했다. 사람을 사귀려고 국제로타리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영향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봉사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국제로타리에선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하나만 꼽아 달라. “제일 기억에 남는 건 2004년 국제로타리 100주년 총재를 맡았던 때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업을 해 보자고 논의했다. 매년 봄 발생하는 황사를 해결하고자 중국 고비사막에 가서 방풍림을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업을 하다 회원 중 1명이 크게 교통사고가 났고, 저는 더이상 국제로타리에서 활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병상에서도 ‘꼭 사업을 성공시켜 달라’고 하더라. 결국 고비사막에 35만 그루 이상의 방풍림을 조성했다. 그렇게 지금 자리까지 맡게 됐다.” -200여개국 120만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국제로타리에서 한국인이 세계회장을 맡은 건 2008~2009년 이동건 회장 이후 두 번째다. 어떤 사람이 로타리안이 될 수 있나. “가입 자격은 봉사하려는 의지 하나다. 시간을 내 봉사해도 되고 재능이나 물질로 봉사해도 된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국제로타리는 소아마비를 포함한 질병 퇴치, 평화 증진, 질병 퇴치, 교육 지원, 환경 보존 등 다양한 방향성을 갖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927년 경성 로타리클럽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한국 로타리는 2027년이 되면 100주년을 맞는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봉사에 좀더 참여해 선한 영향력이 늘어나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외국인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토론회 열려

    외국인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토론회 열려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을 위해 힘썼던 외국인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고 이들을 위한 서훈 확대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김포을)은 ‘외국인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토론회’를 23일 개최했다고 밝혔다. 한종수 코리안헤리티지연구소 이사, 김주용 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전병무 강릉원주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가 각각 미국과 중국, 일본 출신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했다. 김 교수는 ‘중국지역 독립운동가 재조명 및 발굴’에서 두쥔훼이, 왕계현 등 중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이들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중국을 비롯한 식민지배를 받았던 동북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문화적 교류를 확대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일본인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를 소개하며 “이들은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어떤 면에선 가장 어려운 활동을 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네코는 사형 판결을 받은 뒤 감옥에서 의문스런 죽음을 맞았고, 후세는 하나뿐인 아들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사하는 등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고 덧붙였다. 한 이사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이바지했던 미국인 발렌타인 맥클래치와 앨버트 테일러를 소개했다. 그는 “맥클래치와 테일러 사례에서 보듯 독립운동가로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데도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온 김은지 전 독립기념관 자료발굴TF팀장은 “신문보도 등을 통해 인명을 추출하고 자료수집과 발굴을 거쳐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 독립운동 활동에 참여한 306명을 새롭게 발굴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천했다”고 소개했다. 류동연 보훈부 학예연구관은 “사료발굴, 언어, 연구 기반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발굴작업부터 포상까지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문화체육관광부 정책소통기획관은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예우가 너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면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기 위한 활동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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