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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디 전 총리 유세길 폭사따라/인,전국에 비상령… 총선 연기

    ◎국민회의당,간디 미망인을 새 총재로 선출 【뉴델리 외신 종합】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가 총선 유세중인 22일 새벽(한국시간) 인도 남부 타밀 나두주의 스리페룸 부두르읍에서 폭사함에 따라 인도 정국은 전국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 지난 84년 인디라 간디 여사의 피살 이래 가장 긴장된 국면을 맞고 있다. 인도정부는 간디 전 총리가 폭사하자 전국에 걸쳐 보안군에 가장 엄중한 적색경계태세에 들어가도록 조치했으며 라마스와미 벤카타라만 대통령과 찬드라 셰카르 과도정부 총리는 공동으로 국민에게 진정을 호소하는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다. 또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3일과 26일 실시될 예정인 총선을 다음달 12일과 15일로 각각 연기했다. 한편 간디 전 총리가 이끄는 국민회의당(I)은 사고 후 즉각 그의 미망인인 이탈리아 태생의 소니아 간디 여사(44)를 새 당총재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이 선출은 간디 여사에게 통보되기 전에 내려진 것으로 간디 여사의 수락여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회의당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사용된 폭탄이 그에게 증정된 꽃다발 속에 숨겨져 있었다고 말했으나 상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직 이번 사건을 자신의 행위라고 밝힌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현재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 쪽으로 의심이 모아지고 있다. 타밀 반군은 간디 전 총리가 이들의 분리주의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한 인도군과 32개월 동안 싸운 바 있다. 그의 유해는 22일 정오쯤 뉴델리로 운구됐는데 이탈리아 태생인 그의 부인과 두 자녀는 이번 여행에 동행하지 않아 화를 면했다. 프라납 무케르지 국민회의당 대변인은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유해가 오는 24일 하오 4시(한국시간 하오 7시30분) 뉴델리 중심가의 인디라 간디 전 총리 묘소 부근의 힌두화장장에서 화장될 것이라고 22일 말했다. 이번 선거는 인도가 독립한 후 44년간의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 속에 진행되고 있어 이 폭발사건에 앞서 힌두교도와 회교도간의 충돌 등으로 지난 2일 동안 적어도 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도 통신들은 메루트와 바라나시 등 우타 프라데시주의 4개 도시에서 종교폭동이 계속되어 통금이 실시되고 있으며 군대가 출동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 강군 운구차 빼돌려 노제 강행

    ◎학생들이 금남로로 몰고 가… 새벽 망월동으로/광주시민등 5만명 경찰과 대치… 한때 격돌위기 【광주=최치봉 기자】 명지대 강경대군의 유해는 20일 상오 유가족·동료학생·재야인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됐다. 강군의 시신이 묻히자 유가족들은 오열을 터뜨렸으며 학생·「범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강군의 죽음을 민주화로 승화시키자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광주시내 곳곳에서는 밤늦도록 시위가 잇따랐다. 이에 앞서 유가족·학생·시민·「대책회의」 관계자 등 5만여 명은 19일 하오 10시부터 광주 금남로3가 광주은행 앞 네거리에서 「강군 노제」를 치렀다. 강군 운구행렬은 북광주인터체인지에서 전남도청 앞 노제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다 무등경기장→광주역 등을 거쳐 하오 8시30분쯤 이곳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하오 7시30분쯤 명지대생 등 대학생 1천여 명은 경찰과 공방전을 벌이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운구차량을 빼내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몰고 갔다. 경찰은 당시 고속도로를 점거,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작전을 전개하던 중이어서 학생들이 운구차를 빼돌리는 것을 발견치 못했다. 강군 「대책위」는 광주인터체인지 앞에서 경찰과 13시간 남짓 대치하다 하오 3시쯤 노제를 생략키로 하고 망월동 「5·18」묘역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시내에서 몰려든 대학생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운구행렬은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 이날 하오 1시쯤 광주시 북구 동은동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순천경찰서 507기동대장 김명호 경감과 전경 20여 명이 학생들에 의해 1㎞쯤 떨어진 광주 서강전문대에 끌려갔다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금남로 국민대회」가 열린 18일 하오부터 이날까지 계속된 시위과정에서 학생·경찰 등 1백20여 명이 부상했으며 시위진압차량 2대가 화염병에 맞아 불타기도 했다.
  • 한밤까지 도심서 격렬시위/강군장례·국민대회등 전국서 20여만 참여

    ◎「노제공방」 5시간… 곳곳서 충돌/3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파출소등 잇단 피습… 학생·경찰 부상 속출 5월 셋째 주말은 온통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다.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자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군중과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하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한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지역과 광주 금남로 등 도심지 상가는 거의 철시를 했으며 곳곳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강군 장례식◁ 「대책회의」측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세브란스병원에서 강군의 가족을 비롯,백기완씨·문익환 목사 등 재야인사와 이우재 신민당 최고위원 등 1백여 명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를 가졌다. 발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서총련」 소속 대학생 1천5백여 명의 경호를 받으며 상오 11시 영안실을 떠나 낮 12시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뒤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화여대 앞과 아현고가 차도를 거쳐 서울역으로 가려다 경찰이저지하자 하오 5시까지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대책회의」측은 경찰의 설득을 받아들여 결국 이날 하오 6시30분쯤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2시간 동안 「노제」를 지냈다.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용마루∼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국립묘지∼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강군의 모교인 휘문고교에 잠시 들렀다가 하오 10시10분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운구행렬은 3백17㎞의 호남고속도로를 시속 80여 ㎞로 달려 19일 상오 3시쯤 광주시 북구 동운동 서광주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장의차를 앞세운 운구행렬은 이어 이날 전남도청 앞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가지로 진출하려다가 경찰 20여 개 중대 3천여 명이 저지하자 전날 밤 금남로에서 「국민대회」를 마친 학생 1천여 명과 합세,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운구행렬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전남도청 앞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새벽 동광주인터체인지∼광주교도소를 거쳐 망월동 5·18묘역에 도착,강군의 시신을 안장했다. ▷가두시위◁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 등 4만여 명이 회현동 네거리에서 퇴계로2가 및 신세계백화점·남산3호터널 앞 등의 차도와 아현고가도로 등지를 점거하고 경찰과 맞서 화염병 수천개와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시40분쯤 시위학생 20여 명은 신촌로터리 부근인 마포구 노고산동 치안본부 분실에 몰려가 화염병 20여 개를 던져 수위실을 전소시키고 마당에 있던 승용차 2대를 불태웠다. 하오 2시40분쯤부터는 5천여 명의 시위대가 을지로 2·3가 6차선 차도를 점거해 시위를 벌일 것을 비롯,종로 2·3·4가,퇴계로 2가,을지로 6가 등지로 5백∼5천여 명씩 옮겨다니며 경찰과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하오 4시10분쯤 시위대중 1천여 명은 퇴계로 2가 파출소 앞에 세워둔 경찰보급용 트럭을 탈취해 최루탄 4상자 등을 빼앗은 뒤 1시간쯤 끌고다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불태웠다. 이들은 또 하오 8시5분쯤 퇴계로2가 파출소로 몰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현관셔터문을 부순 뒤 화염병을 던져 내부를 불태웠으며 안에 있던직원 6명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촌로터리 일대에 집결해 있던 3만여 명은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에서 운구행렬이 광주를 향해 떠난 뒤부터 장소를 옮겨 퇴계로의 시위대와 함께 합세,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5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으로 집결해 규탄집회를 가진 뒤 대부분 해산했으며 나머지 5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국민대회◁ 강군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하오 4시에 갖기로 했던 서울 시청앞 등 주요도시 도심지에서의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다.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서울·광주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가두시위 등을 벌였다. 이에 앞서 서울대·부산대·전남대·조선대 등 전국 32개 대학생 1만여 명은 이날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심지로 나가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산=장일찬 기자】 부산지역 학생,근로자,재야인사 등 8천여 명은 18일 하오 3시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에서 개최키로 했던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민자당 해체,현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중구 대청동 국제시장과 카톨릭센터 일대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 “건물 파손 말라” 말리는 행인에 뭇매

    ◎5·18 국민대회·강군 장례 이모저모/CNN 보도진,이 여인 분신 촬영하다 봉변/광주 상인들,“토요일은 장사 잘되는 날” 영업/연대에 박노해씨 명의 「옥중메시지」 나붙어 ○프락치 아니냐 시비 ○…이날 하오 7시40분쯤 노제가 치러지던 공덕동 네거리에서 김 모씨(42·광고업)가 교통초소의 대형 유리창 3장을 깨는 학생들을 나무라다 시위대들로부터 뭇매를 맞아 얼굴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었다. 시위대 40여 명은 이날 김씨가 『공공시설은 파손시키지 말라』고 말하자 『당신 안기부 프락치 아니냐. 신분증을 보자』며 멱살을 잡고 쓰러뜨린 뒤 온몸을 마구 때렸다. 시위대는 또 김씨에게 사건경위를 묻는 H일보 송 모 기자에게도 『당신이 뭔데 자꾸 묻느냐』면서 몸을 밀치고 취재수첩을 빼앗아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를 말리던 한 시민은 『민주사회를 이루자는 사람들이 공공건물을 파손하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프락치」라며 군중심리를 이용,폭행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한마디. ○…강군 치사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부터 학생회관에 사무실을 차려놓은 「대책회의」의 주도로 비롯된 각종 대규모 집회 및 시위로 20여 일 이상 홍역을 치러온 연세대 교직원들은 강군 장례식이 끝난 18일 매우 홀가분해 하는 모습. 학생과의 한 직원은 『그 동안 강군사건과 관련된 외부인들의 집회 등으로 기본 학교업무마저 마비돼 학생증 및 복무단축확인서 발급업무 등 최소한의 민원만 처리해왔을 뿐』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운구 휘문고에 들러 ○…이날 하오 9시15분쯤 강군의 운구행렬이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에 도착하자 재학생 50여 명은 검은 리번을 달고 본관 앞에 임시로 마련된 빈소에서 운구행렬을 맞았다. 이곳에서 약 15분간의 추모식이 끝나자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는 추모시를 읽은 강군의 선배 배노준씨(24)에게 『추모시를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시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받기도 했다. ○“정권과의 전쟁” 규정 ○…이날 연세대 백양로 게시판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사노맹」 중앙위원 박기평씨(필명 박노해) 명의로 된 「박노해의 옥중메시지」라는 제목의 대자보 7장이 나붙었다. 박씨는 이 대자보에서 현시국을 「노 정권과 민중과의 전쟁상황」으로 규정하면서 『노 내각을 퇴진시키는 것이나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 정권을 쓰러뜨려 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곳곳에 화염병 파편 ○…이날 하오 10시쯤부터 전남도청 앞으로 진출하려는 시민·학생 등 1만여 명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려는 경찰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내 금남로·중앙로 등 도심 곳곳이 화염병 파편과 최루탄,국민대회에서 뿌려진 3만여 장의 유인물 등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이날 국민대회가 열린 금남로·충장로 일대의 상가에는 「5월단체 회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오늘은 시민 모두가 그날의 뜻을 기리는 경건한 날이므로 일찍 철시하라』는 요청의 전화가 쇄도하기도. 충장로1가 K의류상 주인 김 모씨(59)는 이날 상오부터 이같은 내용의 전화를 두 차례나 받았으나 토요일은 장사가 잘되는 날이므로 철시하지 않는 등 대부분의 상인들은 11주년을 맞는 5·18정신 계승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하는 모습. ○분신자,여대생 오인 ○…이날 상오 11시50분쯤 이정순씨(39)가 투신한 현장에서 이 학교 영문과 2년 신 모양(20)의 가방이 발견되어 「대책회의」측과 학교측은 투신자를 신양으로 보고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한동안 법석. ○“쇠파이프 맞아 입원” ○…미국 CNN­TV 소속 카메라맨과 녹음기술자 등 2명이 이날 연세대 앞에서 한 여자의 분신장면을 촬영하려다 시위학생들로부터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폭행당해 입원했다고 CNN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CNN의 통역인 조주희씨는 『한 여자가 분신 후 고가철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던 카메라맨 김효성씨와 녹음담당 조남백씨 등 CNN 보도진이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에게 붙잡혀 폭행당했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시위 참여 ○…이날 「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서울연맹」 소속 고등학생 5백여 명은 퇴계로2가 일대를 점거한 시위대 틈에 끼여 스크럼을 짜고 현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 학생들은 『전진하는 고등학교』 『새 나라의 고등학교』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퇴계로2·3가를 왕복하며 2시간쯤 가두행진을 벌이다 시위양상이 점차 격렬해지자 하오 7시쯤 모두 해산. ○고교생 분신 초긴장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지난 16일 강진 고교생들의 교외시위에 이어 이날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시위·분신의 불길이 고교생까지 확산될까 초긴장. 광주시교육청은 이미 고교생들의 추모집회 참가를 학교장 재량으로 허요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5·18추모집회를 용인했으나 이들이 과격시위나 분신 등 극렬행동에 참여할 것인가를 두고 예의주시. 한편 이날 전남도교육청 관내에서는 강진고교를 비롯,5개 고교가 5·18 추모행사를 교내에서 가졌다. ○민자 전북당사 피습 ○…이날 하오 8시20분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1가 민자당 전북도지부 당사에 시위대 학생 1백여 명이 몰려와 50여 개의 화염병을 던졌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 시위로 얼룩진 「5·18」/44개 시군서 장례… 추모… 파업

    ◎한밤 광주로 운구… 망월동 안장/「노제」 충돌 끝에 공덕동서 치러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며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은 온통 군중집회와 격렬한 시위로 얼룩졌다. 이날 강군의 장례행사는 무사히 치렀으나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밤늦게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곳곳에서 경찰관서 등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또 상·하오에 걸쳐 전남·광주 등지에서 남녀 3명이 또 분신,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강군의 「노제」는 「대책회의」측이 경찰의 설득으로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거행됐으며 이어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 앞∼국립묘지 앞∼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휘문고교에서 잠시 들른 뒤 하오 10시10분쯤 고속도로로 진입,광주로 향했다. 19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곧바로 5·18묘역으로 가 시신을 안장했다. 「대책회의」측은 이날 집회와 시위에 서울에서 7만여 명을 비롯,광주·부산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8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또 「전노협」은 이날 9만여 명이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노동부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9개 도시의 32개 노조 1만2천5백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부터 서울에서는 「대책회의」측 장례행렬이 이화여대 입구에서 서울역 쪽으로 향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장시간 공방전을 벌였다. 광주에서는 상오 10시 망월동 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열린 것을 비롯,하오 금남로에서 「5·18정신」의 계승 등을 주장하는 「국민대회」와 종교단체·근로자·학생들의 추모집회가 잇따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이밖에 부산 전주 인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고 군청소재지에서는 이른바 「농민대회」 등이 열렸다. 이들은 곳곳에서 도심진출을 기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하자 주요간선도로 등을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막다 서울에서 53명을 비롯,전국적으로 73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가운데 91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강군 운구행렬 도심진입 불허/광주시장 강조

    【광주=임정용 기자】 이효계 광주시장은 17일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장지가 망월동 5·18 묘역으로 결정돼 강군의 운구행렬이 18일 광주에 도착할 것으로 보이나 운구행렬의 광주도심 진입만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이날 상오 11시 관내 4개 구청장과 98개 동장·출장소장을 긴급 소집,5·18 11주기에 따른 지역안정대책을 제시하는 자리에서 외지인이 광주에 와서 시위를 하는,소위 광주시위 장터화의 의도를 지역안정과 질서유지 차원에서 단호히 배격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강군의 운구행렬이 광주에 도착해 도심진입을 시도할 경우 시민의 이름으로 이를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 오늘 「5·18」… 전국 시위비상

    ◎81개 시·군서 「광주」·강군 추모집회/“노제 시청앞 포기,서울역서”/대책회의/“교통혼잡은 마찬가지… 봉쇄”/경찰/전노협·전교조선 파업·토론회 계획 18일로 예정된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문제를 놓고 장례절차를 주관하고 있는 재야 쪽 「범국민대책회의」와 경찰당국이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의도광장이나 공덕동로터리에서 노제를 가진다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16일의 경찰측 협상안을 거절했던 「대책회의」측은 17일 『서울시청 앞에서의 노제가 끝내 안된다면 서울역 광장에서 노제를 갖겠다』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경찰은 「서울역앞도 시청앞과 마찬가지로 도심교통의 요충」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노제」를 둘러싼 장례행렬과 경찰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경찰은 특히 「대책회의」측이 강군의 「노제」만을 시청에 인접한 서울옆 앞에서 옮길 뿐 이날 하오 4시의 이른바 「국민대회」를 그대로 시청앞으로 갖기로 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대규모 군중에 의한 격렬시위를 우려하고 있다. 경찰은 따라서 「대책회의」측의 수정안이 경찰이 내어놓은 대안을 거부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온 것일 뿐 평화적 시위분위기가 보장되지 않는 한 도시에서의 대규모 군중집회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책회의」는 이날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당초 시청앞에서 치르려고 했던 노제를 서울역 광장으로 장소를 바꿨다』면서 『이는 강군의 시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일부의 시각을 불식시키고 학생과 전경의 충돌에 따른 희생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종국 치안본부장은 『서울역에서 노제를 치르게 되면 도심지의 교통체증이 몇 시간이나 빚어져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면서 『서울역앞에서의 노제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또 『일부 불순세력들이 강군의 장례를 빌미로 대규모 폭력시위를 선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책회의」측은 18일 하오 4시 강군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서울시청앞 광장을 비롯한 전국 22개시 및 59개 군 등 81개 지역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계승과 현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는 「제2차 국민대회」를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어 대규모 가두집회 및 시위가 예상되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이번 「제2차 국민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전대협」 「전노협」 「전민련」 등 55개 재야단체의 조직원들을 모두 동원,1백만명의 군중을 모아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전노협」도 18일에 산하 4백50개 노조 21만여 명과 업종회의 7백개 노조 18만여 명 등 모두 1천1백50개 노조 39만여 명이 시한부 파업에 들어가고 점심시간에 규탄집회를 가진 뒤 「국민대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교조」 또한 이날 조합원 4만여 명이 조례시간에 광주 민주화운동의 뜻과 현시국에 대한 훈화를 하고 점심 때에는 시국토론회를 연뒤 이 집회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책회의가 마련한 강군의 장례는 18일 상오 10시30분 연세대에서 발인예배를 가지면서 시작되어 상오 11시 운구행렬이 학교를 떠나 신촌로터리∼이화여대입구∼아현 고가차도를 거쳐 하오 1시30분쯤 서울역 광장에서 「노제」를 갖도록 되어있다. 운구행렬은 이어 용산∼한강대교∼동작동 국립묘지∼반포고속버스터미털∼영동네거리를 지나 강군의 모교인 서울 휘문고에 잠시 들렀다가 남부순환도로와 양재동 인터체인지를 경유해 광주 「5·18묘역」에서 안장식을 가질 예정이다.
  • “18일 강군운구 도착해도 광주에선 추모제 어렵다”/광주 대책회의

    ◎「5·18」 기념행사 겹쳐 곤란 【광주=최치봉 기자】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규탄 및 박승희 학생 분신 광주전남대책회의」는 16일 강군의 장례일과 관련,『5·18 11주기를 맞아 추모제와 각종 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19일 강군의 시신이 광주에 도착하더라도 추모행사를 실질적으로 갖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이날 『강군의 장례일이 5·18행사와 겹쳐 혼란이 우려되므로 장례일정 조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범대위」측에 대표 2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 분신 윤용하씨 안장/운구도중 한때 경찰과 충돌

    【광주=최치봉 기자】 지난 10일 전남대에서 분신자살한 윤형하씨(22)의 영결식이 16일 상오 11시30분 광주시 동구 학동 전남대병원 영안실앞 도로에서 유족과 재야인사 노동자 학생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박승희 학생 분신 광주전남대책회의」가 주관하는 「민주노동자장」으로 2시간 동안 치러졌다. 영결식을 마친 학생 시민들은 대형 태극기와 선도차를 앞세우고 50여 개의 만장·영정·상여순으로 약 1㎞의 운구행렬을 이루며 전남도처앞 광장으로 진출하려다가 광주시 동구 서석동 광주공고 앞길에서 멈춘 채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7시간 동안 심한 몸싸움과 연좌농성을 벌였다. 장례행렬은 이어 하오 9시30분쯤 전남도청에서 1백여 m 떨어진 광주지방노동청 네거리에서 노제를 지낸 뒤 밤늦게 윤씨의 유해를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했다.
  • 시청앞 「노제공방」 왜 계속되나/대책회의·정부 줄다리기 안팎

    ◎“정치색 짙은 과격시위 우려” 불허/정부/「민주열사」 부각시키려 계속 고집/대책회의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다시 오는 18일로 잡혀짐에 따라 지난 14일 영결식까지 마치고도 「노제」문제로 운구행렬을 되돌려 실랑이를 벌여오던 강군 장례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장례를 주관하고 있는 재야 쪽 「대책회의」가 18일을 장례일로 정한 데는 대략 두어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첫째는 유족측이 15일 『장례를 조속한 시일내에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에 밝힌 것이 「대책회의」측으로 하여금 다른 대안을 취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대책회의」는 강군 사망 이후 줄곧 『유족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기 때문이다. 유족측에서 조속한 장례를 희망하는 이상 특별한 이유없이 장례를 더 늦춘다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 일임은 물론이다. 두 번째로는 장례를 미룰수록 국민들의 여론이 「대책회의」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시신을 볼모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장례를 조속히 치르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4일 운구행렬이 이대입구에서 경찰의 봉쇄에 막혀 연세대로 되돌아 올 때부터 「대책회의」측에선 여론의 지탄을 우려했었다. 당시 여론은 시청앞에서 가지려던 「노제」를 원천봉쇄한 정부측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도 일부 있었으나 시청앞에서 「노제」를 못하더라도 영결식까지 마친 마당에 운구행렬은 신촌로터리에서의 노제로 대신하고 장지로 내려갔어야 했다는 쪽이 훨씬 우세했기 때문이다. 「대책회의」측이 세운 18일의 장례절차 또한 「시청앞 노제」를 강행할 방침이어서 또 한차례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도심 한복판에서 장시간 대규모 군중이 참가하는 집회를 허용하게 되면 엄청난 교통혼잡을 유발하므로 일반시민에게 큰 불편을 주기 때문에 시청앞 노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조금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대책회의」측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노제」를 치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시청앞 광장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이 시청앞 광장을 놓고 벌이는 공방의 이면에는 이곳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이 개재돼 있음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시청앞 광장은 바로 수도 서울의 중심이자 정부의 앞마당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강경진압에서 빚어진 우발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 정부로서는 시청앞 집회를 허용하는 것은 바로 『정부의 공안통치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대책회의」 쪽 주장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이 16일 「대책회의」 인사들에게 노제의 장소를 여의도광장으로 해달라고 권유한 것도 이러한 속사정을 내비춘 것으로 유추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책회의」측은 서울 시청이라는 정부의 대표적 상징적 청사 앞에서 행사를 치름으로써 강군의 죽음이 정부의 책임임을 만천하에 「공식확인」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대책회의」측과 유족으로서는 「시청앞 노제」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안장하게 되면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른바 「민주열사」로서의 자리매김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18일의 두 번째 장례행사마저 안장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국민들로부터 「시투」를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8일에도 경찰이 시청 앞으로의 진출을 다시 봉쇄할 경우 「여의도 노제」로 바꾸어질 가능성이 높다할 것이다.
  • 먼저 죽음을 안식시키라(사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시신을 떠메고 거리를 헤매며 죽음을 수모스럽게 하는 이런 짓을 해도 괜찮은 일인가. 죽음에 당면하면 우리는 애도를 한다. 흉한 죽음에서 성스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숙한 애도일 뿐이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최대의 예의다. 「장례」의 본 뜻도 그런 것이다. 상여는 뒷걸음을 치지 않는다. 그래서 장의차도 뒷걸음치기를 않는다. 그런데 강군의 주검을 담은 운구행렬은 되돌아가 이미 출발했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런 비례를 한 이유를 「장례위원장」이라는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힘을 마지막 싸움에 쏟아 붓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결정적인 싸움」이란 어떤 싸움이고 왜 「마지막 싸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들의 싸움을 위해 예의 갖추어 장사지내져야 할 주검이 이렇게 이승에 붙잡혀 구천을 헤매는 고혼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민망하고 어처구니 없는 것은 「정의」와 「양심」같은 가장 좋은 낱말을 빌려 입고 장례를 싸움의 무기로활용할 궁리에 차있는 장례위원회의 나이든 세대들을 보는 일이다. 거기 가세하여 정치적 장외투쟁의 판을 벌이는 세력도 딱하고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젊은이의 한스런 죽음에 끼어들어 정치적 이득을 챙겨보려 했던 정치인의 모습을 사람들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권자이기도 할 것이다. 병원의 영안실은 주검이 머무는 곳이다. 산사람과 구분하는 정도의 기능을 할 뿐만이 아니라 주검의 조건에 따른 과학적 처리와 관리를 하는 특수한 장치를 가진 공간이다. 이 공간을 출발한 시신은 설사 「노제」를 못 지냈다 하더라도 유택을 향해 정해진 도정을 밟지 않을 수 없는 물리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불가피하고 거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강군의 유해는 「학생회관」으로 되돌아왔다. 영안실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까지 「싸움의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무슨 싸움인가. 정말 이것이 「민주화」를 위한 싸움인가. 과연 이런 방식의 「싸움」을,그들이 칭하기 좋아하는 「국민」이 원한다고 생각하는가.마침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망자」가 남긴 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어도 산자의 욕심가득한 구호소리가 가로막는 이 방해전파투성이의 장의를 통해서는 들을 수가 없다. 나이 많은 세대의 지혜는 사려깊음에 있다. 그런 지혜로 한번쯤 되돌아 생각해 보라. 만약에,시인처럼 여리고 교육자처럼 깊은 아량을 발휘하여 부모다운 용기로 『가엾은 강군을 우리 고이 보내자. 그 죽음을 안식하게 하고 남은 우리 힘으로 그의 죽음이 남긴 억울한 원혼의 설움을 풀어주자. 젊은이의 생명이 우리의 투쟁보다 더 귀하다』고 말을 하는 어른들이었다면,진실로 많은 「국민」은 그 현자같은 태도에 머리숙여 그들이 펴려는 뜻에 공감할 것이다. 시신을 뻗쳐놓고 무슨 일인가를 도모하는 행동을 가장 파렴치하고 비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다. 장례를 예사로 「무기연기」하는 발상을 지닌 한줌의 기성세대가 열에 떠 냉철한 사고력을 잃은 젊은이들을 유도하고 있는 일에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젊은세대는 앞으로도 계속 성숙하므로 이성을 찾고많은 사람이 떨어져나갈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분노를 심어주고 그것으로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싸움」을 계속할 만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폐일언하고 죽은이를 안식시키라. 우리 모두가 애도할 수 있도록 엄숙하고 조용하고 품위있게 보내드려라. 그러지 않는다면 어떤 섭리의 노여움을 사게 될지도 모를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
  • 강군 「노제공방」 며칠 끌듯/경찰의 「여의도」제시 대책회의서 거부

    ◎장례 「5·18」 전­후 놓고 부심/대책회의/경찰,오늘 노제장소 다시 협의키로/대책회의,「국민운동본부」로 개편 14일 치르려던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강군의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시국의 긴장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경찰과 재야·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측은 14일 하오 신촌로터리에서 「6인 합동추모제」를 지낸 뒤 강군의 운구행렬을 시청 쪽으로 돌리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연세대로 되돌아가 철야농성을 한 뒤 15일 상오 『시청 앞 노제가 허용될 때까지 강군의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혀 경찰과의 정면대립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날 상오 이상연 내무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강군의 장례행렬이 과격시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청 앞 「노제」는 계속 불허한다』는 강경방침을 재확인,별도의 타개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계속적인 충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 「대책회의」측과는 별도로 「전대협」과 「전노협」도 18일을기해 동맹휴학과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집회 및 시위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긴장분위기는 「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인 18일을 전후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여지며 이에 따라 경찰은 진압대책을,재야 쪽에서는 가두시위계획을 각각 세워놓고 있다. 한편 강군의 사망 이후 줄곧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를 주도해온 「대책회의」측은 이달 안에 이 기구를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확대하고 18일의 전국적인 집회뿐만 아니라 6월까지 차원높은 투쟁을 벌여 정권퇴진운동을 확산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 시위시국은 점점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대책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 발족되는 국민운동본부는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갖춰 지금까지의 사복체포조 해체 등 부분적 투쟁에서 정권퇴진운동으로 확대시켜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임금인상을 위한 전국노동조합투쟁본부」는 18일 하룻동안 4백60개 노조의 40만명을 동원,총파업을 벌인 뒤 「2차 국민대회」에 참가하기로하는 등 「대책회의」측의 집회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러나 9일 이전에 쟁의발생신고를 한 40여 개의 노조 말고는 일방적으로 파업을 단행할 경우 주동자들을 모두 의법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전대협」은 15일부터 18일까지 4일 동안을 「1백만 청년학도 결사투쟁기간」으로 선포하고 총학생회 간부 등이 대학별로 시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15일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7일쯤 강군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밝혔다. 강씨는 이날 『아들의 장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오해를 씻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면서 『시청 앞에서 노제가 거행된다면 그 날짜는 18일 이전이라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범국민대책회의는 유족의 뜻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기본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아 18일 이전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장지인 광주에서도 5·18행사 준비문제로 장례를 그 이전에 치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책회의는 이에 앞서 이날 하오 10시부터 상임대표자회의를 열어 장례문제를 포함한 향후의 일정을 논의했으나 16일 상오 2시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수호 집행위원장은 16일 0시 유족들의 의사를 타진키 위해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강군 빈소를 찾았으나 마침 강씨가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다. 한편 15일 하오 8시30분쯤 이택천 서대문경찰서장이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만나 노제 장소로 여의도광장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책회의측으로부터 거절당했으며 16일중으로 경찰 고위간부가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노제 장소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광주·창원서도 추모·시위/부산선 김정수의원 사무실 전소

    ▷지방◁ 강경대군 운구행렬이 서울에서 경찰의 저지로 연세대로 철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시 망월동 5·18묘역에서 강군이 안치될 묘지를 조성하던 5월 관련단체회원 남총련소속 대학생 등 30여 명은 전남대병원에 설치된 「대책회의」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사후대책을 논의했다. 또 시내 금남로 동구 계림동 한미쇼핑앞 4거리 등 도심 곳곳에서 하오 늦게까지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던 학생·시민 3천여 명도 자진 해산했다. 이날 부산지역의 1만명을 비롯,마산 창원지역 1만1천명,진주지역 3천명,대구지역 3천명,전주지역 7천여 명도 강군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도심으로 진출,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부산의 서면로터리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3천여 명 가운데 50여 명은 이날 하오 10시45분쯤 민자당 부산진갑지구당(위원장 김정수 보사부 장관)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잠겨진 출입문을 쇠파이프로 부수고 사무실로 진입,유리창 20여 장과 복사기 타자기 등 집기류를마구 부순 뒤 화염병 10여 개를 던져 39평 크기의 사무실을 전소시켰다. 또 울산지역 근로자·학생 등 5천여 명이 노동부 울산지방 사무소에 화염병을 던져 직원의 승용차 2대가 전소됐다. 또 시위군중들이 던진 돌로 시청 1∼4층 대형 유리창 90여 장과 울산세무서 유리창 30여 장이 깨졌으며 시청직원의 승용차 30여 대가 크게 부서졌다. 이에 앞서 시위군중들은 하오 8시쯤 중구 성남동 주리원백화점 앞에서 강군 추모집회를 가진 뒤 4㎞쯤 떨어진 울산시청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 「강군 추모집회」 이후의 정가기류

    ◎“장외공세”·“정면대응”… 치닫는 대결정국/시국수습책 곧 제시,분위기 반전 모색/민자/재야와 제한연대… 내각퇴진 계속 요구/신민 신민·민주당 등 제도권 야당이 강경대군 장례일인 14일 정부규탄 및 강군 추모집회에 참여,대여 총공세를 시작함으로써 정국긴장이 가열되고 있다. 민자당은 「5·18」을 고비로 긴장국면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후의 민심수습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야권은 장외집회를 계속 개최할 계획이어서 정치복원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민자당은 강군 장례식을 계기로 재야운동권과 야당의 연대투쟁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으나 난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청와대측의 의지가 워낙 강력하자 일단 「5·18」 기념행사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자세. 민자당이 이같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재야·운동권의 잇단 시위양태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여론이 반시위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으며 그때쯤 적절한 시국대책을 발표,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 때문. 민자당은 특히 신민당 등 야당측이 재야·운동권집회에 참석,과격시위를 부추기는 것은 그 어느 쪽에도 이롭지 않다는 논리를 전개. 14일 실무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박희태 대변인은 『엄숙하고 경건하게 치러져야 할 장례식이 정치색으로 물든 데 대해 유감이다』면서 『장례식을 빌미로 사회불안이나 혼란을 조성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야권에 경고. 한 당직자는 『야당이 과격시위에 동참할 경우 정치는 더욱 실종위기에 처할 것이며 공권력과 시위대간의 대결상만 부각될 것』이라면서 야당측이 「5·18」집회 참여를 자제해줄 것을 기대. 민자당내의 현재 기류는 「노태우 대통령을 도와 여권이 일치단결,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것과 「여권이 빨리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중적인 것으로 관측. 김영삼 대표의 민주계와 이종찬 의원 등 민정계 상당수가 난국타개를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하며 그 상징적 조치가 내각개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레 거론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를 강력 주장할경우 자칫 대권 내부 분열로 비춰 국민의 대정부 불신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 또 최근의 시위양상이 「민주화 시위라기보다는 체제전복 기도에 가깝다」는 정부측 시각에 동조하는 민자당내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수습조치를 취하더라도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는 데 대한 공감대도 넓게 형성된 상태. 이와 관련,김윤환 사무총장이 『지금은 대권을 염두에 둔 야당공세에 당내가 한 목소리로 대응·반격해야 한다』면서 『그후 민심수습안이 강구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민자당측의 사태해결 수순을 시사. 즉 「5·18」까지는 당의 독자적 목소리를 자제,정부측이 과격시위를 적절히 제어토록 도와줌으로써 공권력의 위신을 살려준 뒤 이후의 수습방안 마련에는 당이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 민자당은 이와 함께 물가문제 등 국민들의 불안해소를 위한 정책대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해 시국불안의 근본소지를 줄여나갈 계획. ○…신민당은 이날 김대중 총재를 비롯,대다수 소속의원과 당직자들이 명지대에서 열린 강군 장례식에 참석한 데 이어 연희동 입구까지의 가두행렬에도 가담. 상오 9시쯤 영결식장에 도착한 김 총재는 조금 늦게 온 이기택 민주당 총재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었을 뿐 별다른 말도 없이 시종 굳은 표정. 김 총재는 조사를 통해 『노 정권이 내각제를 하기 위해 3당통합을 했으나 여의치 않자 공안내각을 출범시켜 장기집권음모를 꾀하고 있다』면서 『노 총리 내각 총사퇴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으나 그 이상의 강경발언은 자제. 김 총재는 당초 『정치인들이 학생의 숭고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다』면서 조사낭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 민주당 총재가 조사를 하겠다고 고집하고 장례식을 주최한 범국민대책위측이 『김 총재가 하지 않겠다면 야3당 대표의 조사낭독을 취소시키겠다』고 하자 입장을 번복.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학생들이 『살인만행 공동주범 신민당과 김 총재는 자폭하라』 『민자당과 밀실야합한 신민당은 자폭하라』는 등의 과격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으나 김 총재와 신민당 관계자들은 예상했다는 것처럼 무반응. 영결식이 끝난 뒤 김 총재 일행은 운구행렬의 중간쯤에 끼어 1㎞쯤을 행진하다 연희동 근처 홍남교 입구에서 경찰이 제지하자 선두로 나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기도 했는데 김 총재는 곧 동교동 자택으로 귀가. 김 총재는 이날 자택에 돌아온 뒤 기자들에게 신민당의 향후 시국대처방안에 대해 『자주적으로 하겠다』면서 「선별적인 제한투쟁」의 기존입장을 재차 확인. 김 총재는 이날 광주에서 열린 별도의 강군 추모행사에 추모사를 보낸 것처럼 「5·18」 행사에도 직접 참석지 않고 추모사만 보내겠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 신민당의 투쟁강도를 상징적으로 시사. ○…민주당은 이날 「거당적 장례참여」 방침에 따라 이기택 총재 등 총재단과 전 지구당위원장 등 2백여 명이 영결식에 참석한 후 운구행렬과 함께 가두행진. 이 총재는 이날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아직도 얼마나 많은 고귀한 삶이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할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애도를 표시. 이 총재는 이날 영결식장에 도착해 먼저 단상에 앉아 있던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와 악수를 나누고 순서에 따라 조사를 했는데 김 신민총재가 입장할 때와 조사를 할 때 참석학생들이 『보수야당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친 반면 이 총재에게는 조사 후 박수까지 보내 민주당 당직자들은 『민자당의 선명노선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다소 고무된 모습. 이 총재와 당직자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운구행렬을 따라 신촌로터리 쪽으로 행진했으나 연희동 4거리에서 경찰의 저지로 행렬이 지체되자 학생·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시위. 한편 민중당도 이날 이재오 사무총장 등 전 당직자들이 영결식과 운구행렬 시위에 참가.
  • 한밤까지 곳곳서 산발 공방/어제 강군 영결식

    ◎신촌·이대 앞서 화염병·최루탄 대결/운구행렬 반나절 노상대치/경찰 4만5천명,도심진입 차단/대책회의,장례 연기… 1천명 연대서 철야농성 명지대생 강경대군 장례식날인 14일 「대책회의」측의 서울시청앞 「노제」 강행과 경찰의 봉쇄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명지대에서의 영결식과 신촌로터리에서의 추모집회를 마친 강군의 운구행렬은 시청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연세대로 가 농성에 들어갔으며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의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가두시위에 나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 시민들은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영결식과 추모제가 열린 신촌·연희동 주변 상가는 아침부터 미리 철시했으며 이 일대는 물론 도심 곳곳에서 교통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영결식◁ 강군의 유족과 「대책회의」 관계자 조문객 등 80여 명은 이날 상오 9시 명지대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가졌으며 하오 9시45분쯤 대운동장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장례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는 조사에서 『오늘은 강군을 땅에 묻는 날이 아니라 71년 6월7일 시작됐던 생의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출발하는 날이니 강 열사의 장도를 비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강군의 어머니 이덕순씨(43)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으며 명지대 총학생 부회장 김홍석군은 조사를 읽다가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할께요』라는 대목에 이르자 오열하기도 했다. 또 이날 참석한 김대중 총재는 조사를 읽다가 학생들로부터 『보수야당 물러가라』는 야유를 받았으며 낮 12시15분쯤 연희동 교차로 근처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많이 마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상오 10시30분쯤에는 이상연 내무부 장관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강군의 명복을 비는 조화를 보내왔으나 모두 접수를 거절당했다. 영결식에서는 「서울노동자 문화예술단체」 회원등 5백여 명이 부활굿·조가합창·풍물놀이 등 문화행사가 펼쳐졌고 『경대는 살아 돌아온다』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깃발 등 3백여 개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대학생 2천여 명이 영구차와 운구행렬을 경호했다. ▷합동추모제◁ 당초 낮 12시30분에 신촌로터리에서 가질 예정이던 합동추모제는 영결식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 운구행렬이 명지대를 나와 신촌로터리 쪽으로 가던 길에 남가좌동 홍남교 네거리에서 경찰과 2시간 동안 대치하면서 돌과 최루탄으로 공방전을 벌이느라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시50분쯤에야 치러졌다. 신촌로터리 주변에는 이날 상오부터 시위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하오에는 모두 7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제공방◁ 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은 하오 6시35분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청앞 쪽으로 가다가 이화여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기중이던 경찰이 최루탄으로 저지하자 이에 맞서 화염병·돌멩이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선봉대」 3천여 명이 이대입구 부근에서 경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유가족과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에서 신촌쪽 6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3시간여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하오 9시30분쯤 대책회의측은 장례를 연기,연세대에 들어가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강군의 사체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다시 안치하려 했으나 병원측으로부터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학생회관 1층 로비에 옮겨놓고 밤을 보냈다. 하오 8시쯤 시위대는 이대입구에서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페퍼포그차량 3대에 화염병을 던져 모두 불태우기도 했다. 「전대협」 2천여 명은 하오 8시30분쯤 종로2가와 3가로 진출해 경찰에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했으며 하오 6시에서 9시 사이 종로 퇴계로 명동성당 신세계백화점 앞 등에서 1만5천여 명의 시위대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또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도심으로 빠져나온 시위대 중 4천5백여 명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경비◁ 경찰은 신촌에서의 합동추모제까지는 허용하되 시청앞 노제는 불허한다는 방침 아래 신촌에서 이화여대 앞까지 50개 중대,공덕동로터리 일대에 40개 중대 1만여 명으로 저지선을 치고 대로변 골목 입구마다 철제바리케이드나 경찰버스 등으로 도로를 봉쇄,도심 진입을 막았다.
  • 「강군장례」 주요도시서 시위/경찰 봉쇄로 시청앞 노제 무산

    ◎운구행렬 연대로 되돌아가/야 총재도 참석/전국서 10만명 추모집회·시위 전경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숨진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는 서울 시청앞 노제를 둘러싸고 당국과 강군사건 대책회의측이 끝까지 대립,또다시 서울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이 밤새 계속됐다. 강군의 장례식은 14일 상오 8시30분 명지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시작으로 영결식을 마치고 하오 5시50분쯤 서울 신촌 로터리에서 추모제를 가진 뒤 서울 시청앞에서의 「노제」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측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에 대책회의측은 『시청 앞에서 노제를 반드시 치르겠다』는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 등 유가족의 의사 등을 받아들여 하오 9시30분쯤 운구행렬과 함께 일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가 농성에 들어갔다. 대책회의측은 이어 『현 정권이 평화로운 장례행렬을 폭력으로 가로막고 있는 이상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서 강경대군 장례식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6인 열사의 장례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현재의 대책회의를 확대,「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명칭을 바꿔 투쟁수위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해 강군사건으로 빚어진 시국의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날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의 7만여 명(경찰추산 3만5천여 명)을 비롯,전국의 주요도시에서는 모두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강군을 추모하는 집회와 시위에 참가,도심진출을 시도하며 경찰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영결식에는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소속의원 및 당직자 4백여 명과 함께 참석,본격적인 장외투쟁을 시작했으며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도 소속의원 등 2백여 명과 영결식에 참석한 뒤 한 동안 운구행렬을 뒤따랐다. 이에 앞서 전국 1백여 개 대학 학생 4만2천여 명은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도심지 시위에 합세했다. 경찰은 이날 지방의 전경까지 차출해 신촌로터리에 1만여 명을 비롯,서울에 2만4천여 명 등 전국적으로 4만5천명을 배치했으며 파출소 민자당사 등 피습가능성이 큰 공공건물의 경비도 강화했다. 한편 경찰은 신촌로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과격한 시위를 벌인 유민우군(연대 행정학과 3년) 등 17명을 연행했다. 서울시경은 이날 서울에서 경찰 27명이 시위진압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 「강군 노제」 대규모 충돌 우려/오늘 장례

    ◎“시청앞 강행”에 경찰선 “절대불가”/1만 동원,운구행렬 막기로/경찰/봉쇄땐 장례 무기연기 방침/대책회의 14일의 강경대군 장례식 절차 등을 둘러싸고 경찰과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측이 정면대립,지난 4일과 9일에 이어 또 한차례의 공방전이 예상돼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경찰은 강군의 장례식 행렬이 신촌로터리에서 가질 6인 추모식까지는 허용하되 시청 앞으로 진출해 「노제」를 지내는 것은 절대 불허할 방침이나 「대책회의」측은 시청앞 「노제」를 그대로 강행하고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면 연세대나 시내 모처로 되돌아가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할 방침으로 맞서있다. 「대책회의」측은 이와 함께 이날 행사의 열기를 계속 확산시켜「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과 6월 민주화투쟁 기간까지 지속시킨다는 계획 이어서 집회 및 시위는 장기화될 전망마저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이종국 치안본부장은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시청 앞에서의 노제는 절대불허 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노제는 고인의 연고지에서 치르면 되는 것이지 교통이 매우 혼잡한 서울 시청 앞을 골라 지낸다는 것은 고인의 죽음을 불순하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14일 하오 신촌로터리에서 추모식을 가진 뒤 운구행렬이 서울시청 쪽으로 가려하면 이를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를 위해 신촌로터리에서 시청에 이르는 차도 주변에 경찰 1만2천여 명을 집중배치,운구행렬이 시청쪽을 피해가도록 유도하고 불응할 경우에는 강제 해산시킬 방침이다. 「대책회의」 또한 이같은 경찰의 방침에 맞서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14일 상오 9시 강군의 모교인 명지대대 운동장에서 영결식을 갖고 이어 낮 12시30분쯤 신촌로터리로 옮겨 분신자살 학생 등의 합동추모식을 치른 뒤 하오 3시 시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올리고 장지인 광주 5·18묘역으로 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대책회의」는 또 『강군의 장례가 끝난 뒤에는 임시상설기구의 성격이 짙은 대책회의를 재야와 학생·노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연대기구로 확대,개편하고 본부도 곧 옮길 계획』이라고 밝혀 그 동안 흐트러졌던 재야세력을 한데 결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강군의 유해는 사건발생 18일 만인 13일 낮 12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간단한 예배와 함께 입관식을 마친 뒤 하오 2시 연세대 정문을 떠나 모교인 명지대로 옮겨졌다.
  • 분신 김기설씨 어제 장례/운구때 5천여명 집결… 충돌 없어

    지난 8일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장례식이 12일 낮 12시 서강대 본관 앞 광장에서 유가족 재야인사 학생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날 김씨의 「민주국민장」은 상오 11시쯤 김씨의 시신이 안치돼 있던 연세대 세르란스병원 영안실에서 발인한 뒤 낮 1시쯤 서강대에서 장례위원장 문익환 목사의 장례사로 시작된 영결식과 신촌로터리에서의 노제로 이어졌다. 김씨의 유해는 하오 2시쯤 신촌로터리로 옮겨져 1시간 동안 노제를 가진 뒤 차량행렬이 광화문 종로5가 「전민련」 사무실을 거쳐 하오 5시쯤 장지인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이날 신촌로터리에서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애도인파는 5천여 명까지 불어났으며 경찰이 운구차를 제외한 추모행렬이 뒤따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자 차량 10여 대를 제외한 나머지 행렬은 대부분 해산했으나 3백여 명은 신촌역 앞을 거쳐 연세대로 들어가 규탄집회를 가졌다.
  • “열사로 부르지 말아다오”/김동진 제2사회부기자(현장)

    ◎안동대 김군 아버지의 오열 『영균이를 죽게 한 노 정권을 타도하자』 『민주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가족장을 막는 것은 독재가 아니냐』 안동대생 김영균군(20·민속학과 2년)의 장례식이 치러진 4일 상오 8시30분쯤 경북대병원 영안실 입구에서는 가족장을 저지하려는 학생 2백여 명과 재야인사 50여 명이 「노 정권 타도」를 소리높여 외쳐대고 또 한편에서는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4·서울시 지적관리계장) 등 유족들이 이들에 둘러싸여 가족장을 한사코 고집하고 있었다. 이날의 장례식은 결국 유족들의 뜻대로 가족장으로 치러지기는 했으나 이 과정에서 아버지 김씨가 「민주국민장」을 요구하는 범시민대책회의 학생들에게 멱살을 잡혀 한때 실신,응급실로 옮겨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 김씨는 이동용 침대에 누워 링겔을 3개나 꽂은 상태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장례식은 어머니 박옥숙씨(46)와 고모 등 유족 30여 명 만이 참석한 가운데 불과 20여 분 만에 끝났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에도 학생 등 재야인사들은 「타도 노 정권」을 외치고 노래들을 불러댔다. 이처럼 쫓기듯 장례를 마친 김군의 유해는 하오 1시50분쯤 영안실에서 영구차로 옮겨져 동구 신천동 청구고등학교 앞에서 학생들 주관으로 간단한 노제를 가진 후 수성구 고모동 시립장의관리소로 운구돼 화장됐다. 김군의 유해가 영안실에서 영구차로 운구될 때에도 김군의 아버지는 이동용 침대에 누워 「마지막 가는 아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이렇게 되뇌었다. 『내 자식은 죽었지만 더 이상 나와 같은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결코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구차 주변의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뜻을 수용하지 못해 미안하다. 영균이를 열사라 부르거나 영웅시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며 『다만 내 아들이 먼 훗날 의롭게 살다가 죽어간 한 젊은이로 남기를 바랄 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통을 참아내려고 입술을 깨무는 그의 부정에서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을 되새기게 했다.
  • 안동대생 어제 가족장/학생들 한때 운구방해,아버지 실신

    【대구=김동진 기자】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지난 2일 경북대병원에서 숨진 안동대학교 김영균군(20·민속학과 2년)의 장례가 4일 상오 8시30분쯤 경북대병원 영안실에서 30여 명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유족들은 장례식을 마친 후 상오 9시쯤 김군의 유해를 화장장으로 옮기기 위해 영구차를 영안실앞에 대기시켰으나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영안실 입구를 가로막아 운구를 못하고 있다가 이날 하오 1시50분쯤 학생들과의 합의로 시신을 영구차로 옮겨 대구시립화장장으로 떠났다. 학생들이 영안실 입구를 막으면서 유족과 학생들이 대치하자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4)가 졸도,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링게르를 꽂고 아들의 운구를 지켜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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