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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랍日人 피살 확인…고이즈미 “파병 유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발견된 아시아인의 시신이 일본인 인질 고다 쇼세이(24)의 시체라고 31일 확인, 발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날 고다의 참수에도 불구,“단호한 태도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바그다드에서 발견된 시체의 지문 등 신체적인 특징을 도쿄로 전송해 경찰청 전문가들이 감식한 결과 고다 쇼세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마치무라 외상은 “테러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단호한 자세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도 자위대의 이라크 재건 지원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고다 쇼세이의 유해는 쿠웨이트를 거쳐 일본으로 운구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다의 유해가 일본으로 옮겨지면 그의 주소지인 후쿠오카현 경찰당국이 부검, 사인을 가리기로 했다. 고다의 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심려를 끼쳐서 미안하다.”며 정부측의 구출 노력에 감사를 표시하고 “이라크인들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고다의 시신은 이라크 경찰관들에 의해 30일 오후 9시쯤 바그다드 하이파 거리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발견 당시 시체는 두 팔이 뒤로 묶여 있었으며, 머리는 참수된 채 등쪽에 놓여 있었다. 이로써 지난해 3월 이라크전쟁 이래 이라크에서 숨진 일본인 희생자는 모두 5명으로 늘었다. 일본인 인질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범행단체의 자위대 철수 요구를 즉각 거부했던 고이즈미 총리도 정치적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2월14일 만료되는 자위대 이라크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고다 참수 사실 확인 과정에서 보인 일본 정부의 허술한 정보관리가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가 30일 새벽 미군으로부터 “피랍된 일본인과 신체적 특징이 일치하는 시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확인중”이라는 단서를 붙여 언론에 발표하고, 가족들에게도 이를 알렸지만 결국 고다로 추정된다고 발표된 이 시체는 이라크인으로 최종 발표되는 소동이 있었다. taein@seoul.co.kr
  • [부고]

    ●한국권투 심판위원장 정대은씨 한국 프로복싱을 이끌어온 정대은(58) 한국권투위원회(KBC) 심판위원장 겸 세계권투협회(WBC) 국제심판이 일본에서 돌연사했다. 이세춘 KBC 사무총장은 “18일 오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미들급 동양타이틀전에서 주심을 봤던 정대은 심판위원장이 경기 후 저녁식사를 하다 갑자기 쓰러져 밤 11시5분쯤 숨졌다.”고 19일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정확한 사인은 시신이 국내에 운구된 뒤에 알 수 있겠지만 과로사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영등포고와 경희대를 거쳐 70년대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던 정 심판위원장은 80년대부터 심판계에 입문,94년 WBC 최우수심판상을 받았고 2000년부터 KBC 심판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정 심판위원장은 아시아 프로복싱 국제심판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로 무려 100여차례의 세계타이틀매치에 심판으로 지명받아 세계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WBC에서는 역대 최고 주심으로 꼽힌다. ●金福圭(전 의성군수)씨 상배 建鎬(인천신공항에너지 과장)鉉鎬(데코미 팀장)씨 모친상 蔡禧昌(세계일보 사회부 차장)씨 빙모상 19일 경북 의성군 공생병원, 발인 21일 오전 11시 (054)834-9906 ●白定基(롯데칠성음료 전무)漢基(의사)匡基(한림대 교수)씨 모친상 金圭欽(자영업)孔濟九(교사)씨 빙모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3410-6917 ●朴孝洙(피부과 원장)志洙(자영업)씨 부친상 李成太(한국은행 부총재)李永斗(부산 동주대학 교수)金尙圭(자영업)씨 빙부상 18일 천주교 부산남천성당, 발인 21일 오전 11시 (051)628-0141 ●尹蒼普·承普(사업)씨 부친상 車永煥(클리너지판매 대표)金琮河(전 대한화재 상무)金吉根(공군 중령)씨 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40 ●李商天(대한당구연맹회장)씨 별세 19일 오후 2시 국립암센터, 발인 21일 오전 8시 (031)920-0310 ●金吉泰(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1담당관)씨 모친상 18일 광양장례식장, 발인 20일 오전 11시 (061)761-7309
  • 뉴타운 개발 주민 반발로 ‘삐걱’

    뉴타운 개발 주민 반발로 ‘삐걱’

    “부동산 업자만 배불려주는 꼴의 개발사업을 누가 반기겠습니까?” 최근 서울시내 한 자치구가 마련한 뉴타운 관련 주민설명회에서 ‘반대파’ 쪽 시민들이 한 말이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대중교통체계 개편과 아울러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뉴타운 개발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삐걱거리고 있다. 시 고위간부들조차 “현재 기본구상안이 나왔을 뿐인 데도 집단반발로 일을 못할 지경”이라면서 “막상 착공단계 등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갈 경우,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뉴타운 건설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집단민원 현장과 서울시 실무진의 구상을 취재,지역균형발전이라는 뉴타운 본래의 취지도 살리고 주민들에게도 불이익이 없도록 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알아봤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일부주민 극렬반대 … 추가지정 연기 서울시 관계자는 23일 “2012년까지 모두 마무리할 예정인 시내 뉴타운 개발사업을 몇년 정도는 미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기본구상안 단계에서 주민들의 만만찮은 반발에 부딪히자 주민 재정착 문제를 더 심도있게 검토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시 “계획 변동 없다” 앞서 시는 당초 이달 말로 예정했던 3차 뉴타운 신청시기를 연말로 연기하고,내년 3∼4월 최종 10곳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홍선 뉴타운 총괄반장은 “2차 뉴타운지구 선정시 제출한 자치구의 현장조사 결과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 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 지구 재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혼란을 빚고 있다.”면서 “신청 시기를 3개월 이상 연기해 기초조사 및 주민여론 등을 충분히 검토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서대문구 아현뉴타운의 경우 뉴타운 신청지 서쪽 인접 지역인 대흥동 일부(4만㎡)를 뉴타운 지구로 추가 편입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중랑구 또한 중화뉴타운 부지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중화2·3동과 묵2동 일대 15만평 정도를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 반장은 또 “2차 뉴타운지구 개발기본구상안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3차 뉴타운 신청을 받으면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수도 있다.”면서 “내년 상반기에 3차 대상지역 10곳을 선정해도 2012년까지 총 25곳을 개발하겠다는 당초 계획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현재 영등포·금천구 등 10여개 자치구가 3차 뉴타운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뉴타운 개발기본계획이 확정된 길음·은평·왕십리 시범지역 3곳 외에 중화·보광동 등 2차 대상지역 12곳에 대한 개발계획을 올해 안에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2차 뉴타운사업 대상지로 발표됐던 자치구 곳곳에서 반대하는 주민들의 집회 등으로 설명회가 연기되는 등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20일 중랑구 ‘중화·묵동 뉴타운 반대추진위원회’ 20여명은 부지내 3400여가구 가운데 1020여가구로부터 반대 서명을 받아내 지정 취소가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이명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역풍도 만만찮다 시는 이미 지난 20일 중화뉴타운에 대한 기본구상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무기한 연기했다.다음 자치구의 뉴타운 구상안 발표는 날짜도 잡지 못했다.겉으로는 주민 재정착 방안을 면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길음·은평·왕십리뉴타운 등 시범지역에서는 비교적 잠잠해졌지만 이처럼 일부 주민들이 극렬히 반대하기는 대부분의 대상지에서 마찬가지다. 동대문구의 경우 중화뉴타운에 앞서 지난달 말 기본구상안 발표를 마쳤으나 반대파들이 주민설명회 장소를 점거하는 바람에 보름 뒤로 연기했다. 주로 건물주,세입자로 이뤄진 반대파들이 시에서 보상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가 주민 설득이 난제라는 점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처럼 극렬하게 나올지 몰랐던 터여서 ‘중화뉴타운 악몽’을 떨치지 못한 시는 뒤늦게야 보완책을 세우느라 분주해진 분위기다. 또 청사진은 시에서 전담하다시피 해놓고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절차는 모두 자치구에 떠맡긴 데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책임론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몇년은 늦출 수 있다.”는 고위관계자의 말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게 됐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기 때문에 착공이 줄줄이 늦어진다면 다음 달 우선 사업시행구역 선정으로 개발에 착수,2012년 완성한다는 밑그림은 실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최창식 도시관리정책보좌관 “눈앞에 보이는 갈등을 풀어가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도,있어서도 안될 말입니다.” 서울시 최창식 도시관리정책보좌관은 23일 뉴타운사업이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의 극렬 반대로 기본구상안 발표마저 무기한 연기된 중화뉴타운 사태를 맞아 실태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적극 설득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인사에서 뉴타운추진본부장을 겸하게 된 최 보좌관은 “중화뉴타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는 말로 총체적 재점검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는 앞으로 뉴타운구역 현장조사에 온힘을 기울일 방침이다.세입자나 건물주들이 주로 반발하는 계층이라는 점을 감안해 거주실태 특성을 파악해 분류하는 작업부터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새로 할 각오를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권리침해의 여지가 있거나 손실이 생긴다면 최대한 구제,또는 보상할 생각입니다.” 그는 예컨대 다가구·다세대주택 입주자에게서 세를 받아 생활하는 많은 주민들이 뉴타운 개발로 빼줄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갑자기 근거지를 잃는 경우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주민들과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치구가 시에 후보지역을 신청해 대상지로 결정된 만큼 해당 자치구들이 주민들을 끊임없이 만나 설득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그러나 주민들이 희망하면 언제든 나설 태세다. 중화뉴타운의 경우 일반주택이 많고 상가는 13%이기 때문에 10% 정도가 적극 반대하는 주민이라는 점에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문제점을 최소화하지 않고는 착수하지 않을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소극적 반대도 20%에 이르는 것으로 최 보좌관은 보고 있다. “주민들이나 서울시 입장에서 뉴타운은 ‘계획’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에 부작용을 코앞에 두고 서둘러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죠.” 다만,주민들에게 당부할 말은 있다.아직 기본구상 단계이지 실제로 착수에 들어가려면 소지역 단위로 개발할 것인지 여부를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절차가 따르기 때문에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널리 이해해달라고 했다. 또 한꺼번에 확 ‘밀어내기’식으로 개발하는 게 아닌 데다 이주대책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계획도 당연히 갖고 있다고 했다. 현장 재점검 방침에 따라 일단 기한없이 연기된 기본구상안 발표는 당분간 늦어질 것 같다고 그는 귀띔했다. 그러나 현장 재점검 작업도 속도를 최대한 빨리 해 늦어도 올해를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보좌관은 1978년부터 88년까지 8년 이상을 신도시·강남권 재개발 등 지역개발을 담당하는 구획정리과에서 실무 계장으로 근무한 경험을 뉴타운사업의 성공에 쏟아붓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찬반양론 민관대립서 주민간 갈등 뉴타운 사업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민관 대립에서 주민간 갈등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는 일부 주민들은 반대위를 구성,반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신주거환경을 원하는 측은 신속한 사업추진을 주장하며 자치구를 압박하고 있다. 주민들의 대표격인 구의원들도 찬·반양론으로 갈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상황이다. ●반대측 ‘뉴타운 득될 게 없다.’ 시민단체 출신인 도봉구의회 김낙준(방학3동) 의원은 “창2·3동은 뉴타운 대상지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도시기반시설이 전혀 안돼 있는 지역의 토지이용도를 높인다는 것이 뉴타운의 목적인 만큼 빌라가 밀집한 창2·3동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창2·3동 지역이 뉴타운으로 지정,개발될 경우 주민들의 입주율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며 “이는 주민이 쫓겨나는 형태로 귀착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도 주민들 사이에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재래주택 소유자들은 찬성하고 재산권 상실을 우려한 상가건물주들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를 의식, 도봉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인접 중랑구의 김진희 중화뉴타운 추가편입 반대위원회 위원장은 “추가지정예정지는 우량 주택이 77%나 된다.”며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에게 충분히 고지가 안됐으며 수해용이라는 구의 주장은 미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보상가를 결정하고 사업추진여부를 결정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하지만 뉴타운 개발구상안조차 확정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보상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자치구의 설명이다.용적률과 공원 및 도로면적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계획이 나와야 개략적인 보상가 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보상가를 내놓으라고 자치구를 압박하는 것은 뉴타운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구측은 설명한다. ●찬성측 ‘기회는 두번다시 오지 않는다.’ 중화뉴타운 건립추진위원회 김영하 위원장은 “후손들에게 보다 좋은 주거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지하철 1·6·7호선이 닿는 등 교통은 두말할 것 없이 좋지만 주거환경은 ‘최악’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중랑구에는 백화점 하나 없어 인접 노원구나 경기도 구리시로 나갈 정도”라고 말했다.또 중화뉴타운 대상지(2차지정된 15만 4000평) 안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을 만큼 교육환경이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에는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며 “현재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중랑구의회 오종관 의원은 “구청 설명조차 들어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이번 기회를 잃으면 두번 다시 기회가 안 올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중랑구 황선일 도시정비과장은 같은 생활권에다 동일한 여건인 만큼 할 때 같이해야 한다고 밝혔다.일부만 개발하면 제외된 지역의 슬럼화는 불문가지라는 것이다. 이미 개발구상안까지 발표한 마포 아현뉴타운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반대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주민설문조사에 들어갔다. 현재 전체 주민의 찬반의사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이 ‘개발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80%이상 찬성땐 사업 강행” 문병권 중랑구청장 지난 19일로 예정된 중화뉴타운 개발구상안 발표가 서울시의 제동으로 무기한 연기되자,중랑구는 말문을 닫았다. 중화뉴타운의 위기는 중랑구가 올 초 중화뉴타운 추가지정을 밝히면서 잉태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상습침수지역인 중화3동 등 15만 4000여평을 중화뉴타운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중랑구는 묵2·중화2동 일부 18만여평을 추가지정하기로 하고 개발구상안을 가다듬었다. 이에 대해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동일 생활권을 남겨 놓으면 나중에 개발이 어렵다.”며 강한 추진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묵2동 일부 주민들(주로 상가건물주)은 ‘추가지정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추가지정반대위원회를 구성,구청장 접견실을 점거하는가 하면 구청에서 마련한 주민설명회를 2차례나 실력행사로 무산시켰다. 결국 문 구청장은 묵2동을 추가지정에서 제외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발표가 무산된 구상안에도 묵2동 지역 10만 7000여평은 제외됐다.중화2동 8만여평만 포함시켰다.당초의 취지와 다른 반쪽짜리 구상안이란 평가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 구상안을 마련한 중랑구는 D-day(구상안 발표일)를 지난 19일로 잡았다. 그러나 서울시는 발표 하루전인 18일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분명치 않은 이유로 구상안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서울시의 이같은 결정에 중랑구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뉴타운사업을 총괄하는 전 김병일 뉴타운사업본부장은 최근 “주민들이 반대하면 못하는 것 아니냐.”는 뜻을 밝힌 바 있어 시의 입장을 짐작하게 한다. 이에 대해 문 구청장은 “모든 사업에 100% 찬성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80% 이상의 주민들이 찬성하면 사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설문조사 통해 추동력 확보” 박홍섭 마포구청장 2차 뉴타운 대상 지역중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현뉴타운’이 주목받고 있다.얼마전 뉴타운 지역내 구역경계 조정을 두고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주민 5300여명 전체에게 설문조사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마포구의 ‘뉴타운 갈등해소 해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느냐에 따라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박홍섭 구청장으로부터 ‘아현뉴타운’에 대해 들어본다. 아현뉴타운 진척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 5월 2차 뉴타운 대상지 중 가장 먼저 기본구상안을 발표하고 현재 안을 확정하기 위한 바로 앞 단계까지 와 있다. 마포구의 뉴타운 추진이 빠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 지역은 뉴타운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이미 재개발·재건축 대상지였다.따라서 개발 자체에 대한 반대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한 고비를 넘은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봐도 된다. 뉴타운 해당지역 주민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 -아현뉴타운은 5개 구역으로 나눠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그런데 일부 구역의 경계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구역보다는 이웃 구역으로 편입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이번 설문은 주민들이 어느 구역으로 편입되기를 원하는 가를 알아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설문조사를 실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주민들은 자신의 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크다.그만큼 구가 추진하는 개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하지만 구가 마냥 여론만 청취하고 있을 순 없다.설문을 통해 의견을 하나로 취합한 뒤 이것을 근거로 뉴타운 추진에 속력을 내고자 하는 것이다. 설문조사 후에도 이의제기가 있다면. -일단 조사가 끝난 뒤에는 어떠한 이의제기도 받지 않을 방침이다.설문에 대해서는 이미 각종 홍보수단을 통해 알렸으며 설문 해당자들도 자신의 재산권 행사와 관계된 일인만큼 적극적으로 설문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는 다수결로 갈 수밖에 없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토막소식]

    ●충남 ‘서대산 추모의 집’ 개관 서울시는 납골시설인 ‘서대산 추모의 집’을 건립,운영에 들어갔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 서대리에 위치한 추모의 집은 납골 가능 수량이 1만기이며,화장일 기준으로 사망자가 서울시민이면 이용할 수 있다.다만 12세 이하와 개장 유골의 경우 이용이 불가능하다. 신청은 화장 후 3일 이내에 장묘사업소에서 화장증명서와 납골시설 사용허가증을 교부받은 뒤 추모의 집으로 운구를 안치하면 된다.안치 사용료는 무료이며,관리비는 15년간 12만원이다.최장 30년까지 안치 가능.(041)754-6108,5108. ●1회용품 사용업소 지도·점검 서울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는 이달 말까지 일회용품 사용규제 대상업소에 대한 지도·점검을 실시한다. 이번 점검은 관내 모든 식품접객업소를 대상으로 하며,특히 ▲음식 배달시 합성수지로 만든 도시락용기 사용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1회용 봉투 및 쇼핑백 무상제공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에서 1회용품 사용 ▲목욕탕과 숙박업소의 1회용 칫솔·면도기 무상제공 등의 행위를 집중 점검한다.(02)330-1375. ●고액체납 특별징수반 운영 서울 영등포구(구청장 김형수)는 ‘고액체납 특별징수 출동반’을 설치,운영에 들어갔다.출동반은 정당한 사유없이 연 3회·200만원 이상 체납한 1539명(체납액 86억 1700만원)에 대해 우선 납부를 요구한 뒤 미 납부자에 대해서는 이달 말쯤 형사고발할 방침이다.특히 5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483명(체납액 53억 2100만원)에 대해서는 압류와 부동산 공매 등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02)2670-3224.
  • [토막소식]

    ●충남 ‘서대산 추모의 집’ 개관 서울시는 납골시설인 ‘서대산 추모의 집’을 건립,운영에 들어갔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 서대리에 위치한 추모의 집은 납골 가능 수량이 1만기이며,화장일 기준으로 사망자가 서울시민이면 이용할 수 있다.다만 12세 이하와 개장 유골의 경우 이용이 불가능하다. 신청은 화장 후 3일 이내에 장묘사업소에서 화장증명서와 납골시설 사용허가증을 교부받은 뒤 추모의 집으로 운구를 안치하면 된다.안치 사용료는 무료이며,관리비는 15년간 12만원이다.최장 30년까지 안치 가능.(041)754-6108,5108. ●1회용품 사용업소 지도·점검 서울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는 이달 말까지 일회용품 사용규제 대상업소에 대한 지도·점검을 실시한다. 이번 점검은 관내 모든 식품접객업소를 대상으로 하며,특히 ▲음식 배달시 합성수지로 만든 도시락용기 사용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1회용 봉투 및 쇼핑백 무상제공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에서 1회용품 사용 ▲목욕탕과 숙박업소의 1회용 칫솔·면도기 무상제공 등의 행위를 집중 점검한다.(02)330-1375. ●고액체납 특별징수반 운영 서울 영등포구(구청장 김형수)는 ‘고액체납 특별징수 출동반’을 설치,운영에 들어갔다.출동반은 정당한 사유없이 연 3회·200만원 이상 체납한 1539명(체납액 86억 1700만원)에 대해 우선 납부를 요구한 뒤 미 납부자에 대해서는 이달 말쯤 형사고발할 방침이다.특히 5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483명(체납액 53억 2100만원)에 대해서는 압류와 부동산 공매 등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02)2670-3224.
  • [길섶에서] 운칠복삼(運七福三)/곽태헌 경제부 차장

    우리 사회에 잘 쓰이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자주 쓰다 보니 심지어 ‘고스톱에서도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기서 운은 말그대로 재수를,기는 능력이나 실력을 뜻한다.돈 버는 데에도 이 말은 적용되지만,보통 공직이나 일반기업에서 승진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경향이 짙다.실력자나 기관장과 고향이 비슷하거나 출신학교가 같다고 해서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물론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가끔이지만 있기는 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기업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요즘에는 ‘운칠기삼’이라는 말 대신에 ‘운칠복삼(運七福三)’이라고 한다.”고 말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웃지 않을 수 없었다.복은 운과 차이가 없다.‘운칠복삼’은 실력은 관계없이 모든 게 운과 복으로 결정된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어떤 지인은 “이제는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그만큼 과거에도 그렇고,지금도 그렇고 인사가 능력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언제쯤이면 우리 사회에 이런 말이 사라질까. 곽태헌 경제부 차장 tiger@seoul.co.kr˝
  • “이라크를 용서합니다” 故 김선일씨 영결식

    “이라크를 용서합니다.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고 김선일씨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10시 부산 동래구 사직동 사직실내체육관에서 3000여명의 가족·친지·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유족대표로 나선 김씨의 형 진국(38)씨는 영어와 아랍어로 통역되는 가운데 “한국이 이라크를 사랑하는 것,세계가 이라크를 사랑하는 것,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것 안에 선일이가 꽃피우고자 했던 꿈이 있었다.”고 ‘이라크를 향하여 전 세계로’라는 용서의 메시지를 전 세계를 향하여 읽어내려갔다.영결식장은 오전 9시50분쯤 경찰의장대의 호위를 받는 운구행렬이 경찰악대의 장송행진곡에 맞추어 들어서면서 한꺼번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유가족들은 울음을 참으며 말없이 운구형렬을 뒤따랐으나,자리에 앉자마자 아버지 김종규씨가 끝내 비통한 표정으로 고객를 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고,어머니 신영자씨도 조용히 “선일아,선일아.”를 부르며 울먹였다. ‘고 김선일 형제 기독연합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최홍준 목사의 사회로 임보혜(24·여)씨의 추모시,허남식 부산시장과 기독교 대표 길자연 목사 등의 추모사,이동수 목사의 약력 소개,유족대표의 추모사,헌화 등의 순으로 3시간동안 진행됐다. 고인이 이메일편지에서 ‘보혜가 해주는 음식을 마음껏 싶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던 임씨는 “당신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해야만했던 우리는 할말이 없다.”고 추모했다.임씨는 특히 고인이 테러범들 앞에 무릎꿇고 외쳤던 “나는 죽고싶지 않다.나는 살고 싶다.(I don’t want to die.I want to live)”를 다시 절규하여 영결식장의 분위기를 더욱 숙연케했다.영결식장의 단상 가운데는 김씨의 대형영정과 한국어·영어·아랍어로 ‘나는 이라크를 사랑합니다’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2개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고인이 이라크 테러단체에 납체된 직후로 추정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소개되면서 ‘그의 피가 이라크를 새롭게 하기를 기도한다.’는 메시지가 자막으로 전해졌다. 가수 윤형주씨는 이 자리에서 고인이 이라크에서 사용하다 유해와 함께 돌아온 손때 묻은 기타로 ‘순례자의 노래’를 불렀다.장로인 윤씨는 “고인이 순례자처럼 이 세상을 떠돌다 고향인 하늘나라로 가라는 뜻으로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골랐다.”고 밝혔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구덕체육관을 출발,거제교회∼양정로터리∼시청앞∼연산로터리∼온천장∼금정문화회관∼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오후 1시쯤 장지인 영락공원에 도착했다.이어 오후 2시 영락공원 제7묘원 39블록에서 박의영 목사의 하관예배로 안장됐다.고인이 묻힌 묘역은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의 무덤에서 10m 정도 떨어져 있다. 한편 이날 서울·부산·울산 등 전국 26곳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추모의 촛불을 밝혔다.또 국내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이라크 민정 이양을 규탄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공연리뷰] 미샤 마이스키 내한 연주회

    미샤 마이스키의 이번 내한 연주회는 무척 드라마틱했다.지난 26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마이스키는 독일 음악사를 관통하는 전통 클래식 첼로 레퍼토리들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요요마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보여준 방대한 음악적 넓이와는 달리 레퍼토리를 세세히 좁히고 한정지은 프로그램이었다. 공연은 마이스키의 인기를 입증하듯 거의 전석 매진에 가까웠다.그동안 마이스키가 많은 내한 공연을 통해 함께 했던 다리아 오보라 대신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백혜선을 반주자로 택한 것도 음악적으로 신선했다.베토벤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과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 작품 99’를 연주한 1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마이스키의 잦은 음정 불안이 깊이 있는 브람스 곡의 감상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부는 달랐다.한층 안정된 운궁을 들려준 마이스키의 슈만 환상곡에서는 그의 연륜과 낭만성이 표출되기 시작했고,그의 첼로는 위대한 성악가의 노래처럼 청중의 귀를 파고 들었다.베베른이 16살에 작곡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개의 작품과,새로운 음악적 방향성을 설정한 후에 작곡한 세개의 작품에서는 하모닉스를 비롯해 자신의 탁월한 기예를 과시해주었다.프로그램 끝곡이었던 드뷔시 첼로 소나타는 마이스키와,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원숙미를 들려주고 있는 백혜선의 낭만성과 열정 그리고 정확성이 함께 빛을 발한 곡이었다. 마이스키는 여세를 몰아 앙코르를 들려주었다.그런데 앙코르를 연주하러 나온 마이스키의 표정은 비장했고,의상은 검은 블라우스로 바뀌어져 있었다.“오늘은 한국인들에게 몹시 슬픈 토요일”이라며 김선일씨의 운구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을 슬퍼한 마이스키는 “이 세상의 모든 테러에 반대한다.”면서 파블로 카잘스가 카탈루냐 민요를 주제로 작곡한 ’새의 노래‘를 들려주었다.객석은 숙연해졌고 처연한 슬픔에 잠겼다.소련에서 공권력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2년간이나 갇혀 있었던 자신의 뼈저린 경험이 녹아 있는 연주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새의 노래’보다 구슬펐다. 마이스키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스’를 짙은 비브라토의 음영이 담긴 탄식으로 노래했다.조금은 불완전하게 시작되었지만 안정과 낭만,열정의 시간을 거쳐 영탄과 탄식의 시간까지 들려준 그의 음악회는 드라마틱한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고베 대지진 추모음악회에 이어 다시 한번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으로서,평화의 사도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마이스키에게 청중은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장일범(음악평론가)˝
  • [백문일 특파원의 워싱턴 엿보기] ‘레이건 신드롬’

    미국이 온통 로널드 레이건의 추모에 빠졌다.대선 정국의 핫 이슈로 떠오른 이라크 사태나 당장 무슨일이 터질 듯한 테러 위협은 완전히 뒷전이다.기름값이 너무 올랐다고 호들갑을 떨던 언론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다.TV를 켜면 20년을 거슬러 1980년대 초로 되돌아간 착각이 들 정도다.‘레이건 신드롬’이 미 전역을 강타한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장례식이 열리는 11일을 사실상 공휴일로 정했다.국가안보와 관련된 부처를 빼고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라고 했다.증권거래소와 채권시장도 이날 문을 닫는다. 일반인의 조문을 위해 고인의 시신을 잠시 안치한 캘리포니아 시미밸리 ‘레이건 도서관’에는 5시간 동안 1만여명이 다녀갔다.1시간에 2000명이 조문했다는 것은 기록적이다.그의 운구가 지나간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시미밸리까지의 도로는 그를 마지막 배웅하는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백악관을 떠날 때 역사가들로부터 “연기하듯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혹평을 받은 그였지만 죽어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최고의 미 대통령으로 재조명됐다.업무수행 능력에서는 최고로 평가받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국장을 치르지 않고 캘리포니아에 쓸쓸히 묻힌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이유는 무엇일까. ‘영웅주의’를 좋아하는 미국의 한 단면이다.엘리트 가문 출신이 휘어잡는 미 정가에서 3류 배우 출신이 백악관 주인이 됐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낸시 여사와의 50년 사랑은 한 편의 영화처럼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그는 암울한 시대에 미국민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준 지도자였다.베트남전쟁의 아픔과 대통령이 중도하차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호’가 흔들릴 때 그는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등장해 거침없이 ‘말’을 몰았다.9·11테러로 강력한 지도력이 요구될 때마다 정치평론가들은 그를 거론했다.11일 워싱턴 대성당에서 열리는 장례식은 9·11 이후 두번째 ‘조문외교’로 이어질 전망이다. mip@seoul.co.kr
  • 儒林(98)-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8)-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두루마기 바깥으로 흰색 버선을 신은 조광조의 두발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그 발을 보자 나는 문득 갖바치가 직접 만들어 보냈던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태사혜의 신발이 떠올랐다.전해 내려오는 야사에 의하면 조광조는 죽기 직전 양팽손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 신발을 신겨 달라고 유언하였으며,양팽손은 이를 지켜 그대로 시행하였다고 한다. 저 흰색 버선발 위에 신겨졌던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짝짝이의 비단신.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조광조가 죽어 이미 500년이 흘렀음에도 갖바치가 마지막으로 쓴 참위의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영정 앞에는 붉은 색 제단이 놓여 있었고,제단 위에는 나무로 만든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나는 그 물건을 감싸고 있는 뚜껑을 밀어 올려 내용을 확인하여 보았다.그 나무 조각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贈領議政文正公靜菴趙先生神位” 이것인가. 나는 그 초라한 신위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조광조의 신위인가.신위라면 죽은 조광조의 영혼이 의지하여 머물러 있는 자리.이 한갓 초라한 나무막대기 위에 조광조의 영령이 머물러 있단 말인가. 사당 안 동쪽으로 또 하나의 제단이 만들어져 있었다.그곳에는 영정도 보이지 않고 다만 붉은 색으로 칠하여진 또 하나의 신위가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나는 다시 그 나무상자의 겉면을 벗겨 보았다.그 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진 또 하나의 신위가 놓여 있었다.“學圃梁先生神位” 학포 양팽손은 조광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인연을 맺고 있었다.조광조의 시신을 고향 앞 골짜기에 가매장하여 들짐승의 밥이 되지 않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이듬해 봄 조광조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은인이었다.두 사람이 최초로 인연을 맺은 것은 1506년 중종원년 양팽손의 나이 19세가 되던 해였다. 그 무렵 조광조는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고 있었는데,도가 지나쳐 ‘사람들은 선생이 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미치광이라 칭하고 어떤 사람은 재앙의 근원이라 칭하여 친구들이 간간이 끊어지기도 했으나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친구들마저 찾아오지 않을 정도로 미친 사람처럼 학문에 열중하던 조광조에게 그러나 여섯 살이나 어린 양팽손은 소문을 듣고 조광조를 찾아간다.이때의 기록이 양팽손의 연보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선생이 개연(慨然)히 도를 구할 뜻이 있어 의리를 연구하고 경제(經濟)에 마음을 두었으나 지식을 개척해 나가지 못함을 허물로 여겨 드디어 정암 선생을 찾아가 더불어 경지(經旨)를 강구하고,사물을 토론하니,정암도 그 깊이 있는 학식과 재능을 인정하여 세상에 필요한 큰 그릇이라 하였다.” 이처럼 양팽손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던 조광조를 불원천리하고 능성에서 용인으로 찾아간 붕우였으며,마침내 조광조가 진사시험에 방수(榜首)되고,양팽손이 생원시험에 1등으로 합격한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 강론하고 질의하여 빠진 날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의 기록이 연보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정암이 일찍이 ‘내가 양팽손과 더불어 이야기함에 마치 지초(芝草)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게서 풍기는 것 같다.’하였고,또 그 기상을 일컬어 ‘비갠 뒤의 가을하늘이요,구름이 막 걷힌 직후의 밝은 달이다.인욕이 깨끗이 다 없어졌다.’ 하였다.”
  • 儒林(98)-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두루마기 바깥으로 흰색 버선을 신은 조광조의 두발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그 발을 보자 나는 문득 갖바치가 직접 만들어 보냈던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태사혜의 신발이 떠올랐다.전해 내려오는 야사에 의하면 조광조는 죽기 직전 양팽손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 신발을 신겨 달라고 유언하였으며,양팽손은 이를 지켜 그대로 시행하였다고 한다. 저 흰색 버선발 위에 신겨졌던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짝짝이의 비단신.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조광조가 죽어 이미 500년이 흘렀음에도 갖바치가 마지막으로 쓴 참위의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영정 앞에는 붉은 색 제단이 놓여 있었고,제단 위에는 나무로 만든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나는 그 물건을 감싸고 있는 뚜껑을 밀어 올려 내용을 확인하여 보았다.그 나무 조각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贈領議政文正公靜菴趙先生神位” 이것인가. 나는 그 초라한 신위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조광조의 신위인가.신위라면 죽은 조광조의 영혼이 의지하여 머물러 있는 자리.이 한갓 초라한 나무막대기 위에 조광조의 영령이 머물러 있단 말인가. 사당 안 동쪽으로 또 하나의 제단이 만들어져 있었다.그곳에는 영정도 보이지 않고 다만 붉은 색으로 칠하여진 또 하나의 신위가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나는 다시 그 나무상자의 겉면을 벗겨 보았다.그 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진 또 하나의 신위가 놓여 있었다.“學圃梁先生神位” 학포 양팽손은 조광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인연을 맺고 있었다.조광조의 시신을 고향 앞 골짜기에 가매장하여 들짐승의 밥이 되지 않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이듬해 봄 조광조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은인이었다.두 사람이 최초로 인연을 맺은 것은 1506년 중종원년 양팽손의 나이 19세가 되던 해였다. 그 무렵 조광조는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고 있었는데,도가 지나쳐 ‘사람들은 선생이 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미치광이라 칭하고 어떤 사람은 재앙의 근원이라 칭하여 친구들이 간간이 끊어지기도 했으나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친구들마저 찾아오지 않을 정도로 미친 사람처럼 학문에 열중하던 조광조에게 그러나 여섯 살이나 어린 양팽손은 소문을 듣고 조광조를 찾아간다.이때의 기록이 양팽손의 연보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선생이 개연(慨然)히 도를 구할 뜻이 있어 의리를 연구하고 경제(經濟)에 마음을 두었으나 지식을 개척해 나가지 못함을 허물로 여겨 드디어 정암 선생을 찾아가 더불어 경지(經旨)를 강구하고,사물을 토론하니,정암도 그 깊이 있는 학식과 재능을 인정하여 세상에 필요한 큰 그릇이라 하였다.” 이처럼 양팽손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던 조광조를 불원천리하고 능성에서 용인으로 찾아간 붕우였으며,마침내 조광조가 진사시험에 방수(榜首)되고,양팽손이 생원시험에 1등으로 합격한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 강론하고 질의하여 빠진 날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의 기록이 연보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정암이 일찍이 ‘내가 양팽손과 더불어 이야기함에 마치 지초(芝草)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게서 풍기는 것 같다.’하였고,또 그 기상을 일컬어 ‘비갠 뒤의 가을하늘이요,구름이 막 걷힌 직후의 밝은 달이다.인욕이 깨끗이 다 없어졌다.’ 하였다.”˝
  •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심곡서원(深谷書院). 심곡서원은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선조 38년(1605년) 서원을 세우고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데에서 비롯된다. 선조는 특히 조광조를 존경하여 조광조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는데,‘문정공(文正公)’이라 하였다.이는 ‘도덕이 있고 학식이 넓으며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으로 선조의 이러한 배려에도 재력이 부족하여 서원이 세워지지 못하다가 시호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서원을 세울 수 있었는데,서원의 이름을 ‘심곡(深谷)’이라 하였던 것은 원래 이곳이 조광조의 선영이 있었던 ‘심곡리’란 곳으로 조광조가 19세 되던 해 아버지 조원강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를 하면서 이곳에 초당과 연못을 만들어 놓고 학문에 정진하던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서원이 세워졌어도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지는 못하였다.임금으로부터 서원에 이름을 지어 그것이 새겨진 편액(扁額)을 받지 못하면 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데,그 후 인조 9년(1631년),유문서(柳文瑞) 등이 상소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심곡’이란 사액을 받은 것은 효종 원년인 1650년이었다.서원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을 보면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후 130년이 흘러가도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 후 200년이 지난 고종 2년(1865년),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서원철폐령이 내려 전국의 서원 417개 중 27개소만 살아남을 때 조광조를 배향하고 있는 심곡서원이 존치(存置)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답사함으로써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심곡서원을 찾아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은 지 500년. 지금까지의 추적은 조광조의 생애와 살아있을 때의 그의 정치적 행적이었다면 심곡서원과 그의 무덤을 찾아감으로써 사후 500년이 흘러가는 동안 조광조가 역사에서 어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숙종(肅宗)은 조광조를 매우 깊이 존경하여 ‘정암집’을 읽고 나서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이란 어제(御製)를 내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每思臨死言 涕淚自交 今讀先生書 益知道德晟 朝紳咸仰成 野亦尊敬 餘事游於藝 佳哉筆勢勁)” 조광조에 대한 숙종대왕의 어제는 지금도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내걸려 있다 한다. 차는 어느덧 신도시에서도 외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웃렛들이 갑자기 나타났다.지금까지 비교적 한적하였던 도로는 먼 곳에서 싼값에 고급 상품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의 행렬로 시장거리처럼 붐비고 있었다.˝
  •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심곡서원(深谷書院). 심곡서원은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선조 38년(1605년) 서원을 세우고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데에서 비롯된다. 선조는 특히 조광조를 존경하여 조광조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는데,‘문정공(文正公)’이라 하였다.이는 ‘도덕이 있고 학식이 넓으며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으로 선조의 이러한 배려에도 재력이 부족하여 서원이 세워지지 못하다가 시호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서원을 세울 수 있었는데,서원의 이름을 ‘심곡(深谷)’이라 하였던 것은 원래 이곳이 조광조의 선영이 있었던 ‘심곡리’란 곳으로 조광조가 19세 되던 해 아버지 조원강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를 하면서 이곳에 초당과 연못을 만들어 놓고 학문에 정진하던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서원이 세워졌어도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지는 못하였다.임금으로부터 서원에 이름을 지어 그것이 새겨진 편액(扁額)을 받지 못하면 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데,그 후 인조 9년(1631년),유문서(柳文瑞) 등이 상소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심곡’이란 사액을 받은 것은 효종 원년인 1650년이었다.서원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을 보면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후 130년이 흘러가도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 후 200년이 지난 고종 2년(1865년),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서원철폐령이 내려 전국의 서원 417개 중 27개소만 살아남을 때 조광조를 배향하고 있는 심곡서원이 존치(存置)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답사함으로써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심곡서원을 찾아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은 지 500년. 지금까지의 추적은 조광조의 생애와 살아있을 때의 그의 정치적 행적이었다면 심곡서원과 그의 무덤을 찾아감으로써 사후 500년이 흘러가는 동안 조광조가 역사에서 어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숙종(肅宗)은 조광조를 매우 깊이 존경하여 ‘정암집’을 읽고 나서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이란 어제(御製)를 내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每思臨死言 涕淚自交 今讀先生書 益知道德晟 朝紳咸仰成 野亦尊敬 餘事游於藝 佳哉筆勢勁)” 조광조에 대한 숙종대왕의 어제는 지금도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내걸려 있다 한다. 차는 어느덧 신도시에서도 외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웃렛들이 갑자기 나타났다.지금까지 비교적 한적하였던 도로는 먼 곳에서 싼값에 고급 상품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의 행렬로 시장거리처럼 붐비고 있었다.
  • 최대표, 안시장 영결식 눈물의 조사

    “이 시대의 처세술을 어찌 너만 모르느냐.진정 목을 매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정치다.3류 정치가 자네를 죽게 만들었다….” 9일 고(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영결식에서 부산고 재학 때 만나 50여년 우정을 이어온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당 대표가 아닌 우인대표 자격으로 조사를 낭독했다. 그는 “지난 설때 자네가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대통령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구치소 앞에서 데모를 해서라도 자네를 병보석시키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놈의 정치 한답시고 무엇을 했는가.사람 잡는 정치를 했을 뿐….젖은 종잇장처럼 무기력한 나 자신이 너무 밉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고인의 중학교 동창인 박관용 국회의장도 조사를 통해 “지금보다 몇천배 힘들었던 때도 무쇠처럼 뛰었던 당신,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당신을 누가 무엇 때문에 허물어지게 했나.”라면서 “죄인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지만 정말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고 흐느꼈다. 이날 오전 10시 부산시청 후정 옥외공연장에서 열린 영결식은 박관용 국회의장,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민주당 조순형 대표,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안상수 인천시장 등 정·관계 인사와 공무원,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영결식은 국민의례,고인에 대한 묵념,창혼(스님이 요령을 흔들며 혼이 극락 세계에 가서 고이 잠들라고 달래는 의식),약력보고와 영결사,조사,고인유지 낭독,육성녹음 근청,헌화 및 분향,유족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오거돈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영결사를 통해 “오늘 기어이 당신을 떠나 보내려니 가슴이 미어질 뿐”이라며 “1만 5000여 부산시 공무원들은 당신의 뜻을 이어받는 데 보다 각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행렬은 남구 남천동 부산시장공관 입구에서 노제를 갖고 광안대로와 동백섬을 거쳐 분향소가 설치됐던 금정구 두구동 영락공원으로 되돌아가 화장한 뒤 오후 4시30분쯤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에 봉안됐다. 고인은 관선과 민선을 포함해 8년 2개월 동안 부산시장으로 재직하면서 특유의 리더십과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부산을 동북아 해양수도로 발전시키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새하얀 눈꽃 속 극락왕생”서옹스님 다비식 거행

    함박눈이 내린 19일 오후 1시20분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스님의 법구는 좌탈입망(坐脫立亡·앉은 채로 열반)한 모습 그대로 스님과 불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불총림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다비식(茶毘式)장 연화대에 올랐다. 20분 뒤 “노스님,집에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염불이 경내에 울려퍼지면서 불붙은 솜뭉치로 거화(불을 부침)하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백양사 경내 다비장을 가득 메운 2500여명의 스님과 신도 등 3만여명은 서옹 스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합장했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 불자들은 전날 밤부터 퍼부은 함박눈으로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된 백양사 안팎을 둘러보며 “덕이 높은 스님이 가시는 날 하늘도 감동했다.”고 추모했다. 수백여명이 백양사 경내 수백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배경으로 추모객들의 움직임을 앵글에 담기 위해 운구 행렬 곳곳에서 장사진을 쳐 이를 정리하는 스님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또 폭설 때문에 전국에서 온 차량이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백양사 입구 곳곳에는 ‘진실 여여한 진리의 세계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라.’라는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수십개가 나붙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전 11시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은 조계종 전 교육원장 일면스님의 사회로 봉행됐다.영결법요와 고인의 행장소개,육성법문이 영상화면으로 상영되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사,조계종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의 추도사가 이어졌다.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조사를 했다.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민주당 조순형 대표,열린 우리당 이태일 공동의장,오지철 문화관광부차관이 참석해 헌화했다. 장성 백양사 남기창기자 kcnam@
  • 故전재규씨 유해 국내 운구/유가족 “국립묘지 안장을“… 정부, 석류장

    지난 7일 남극 세종기지에서 실종된 동료대원을 구조하려다 보트 전복사고로 숨진 전재규(27·한국해양연구원 연구원)씨의 유해가 12일 오후 5시50분쯤 미국 LA발 대한항공 KE018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전씨의 유해는 간단한 검역과정을 거친 뒤 6시30분쯤 유가족의 품에 안겼다.영정과 전씨의 운구가 화물터미널청사로 옮겨지자 청사 밖에서 기다리던 전씨의 아버지와 사촌동생 등 유가족과 한국해양연구원 동료 50여명은 전씨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전씨의 유해는 곧바로 서울 구로구 고려대 안산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밤새 추모행렬이 이어졌다.전씨의 아버지 익찬(55)씨는 “청와대 행정비서관에게 아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요구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면서 “국립묘지 안장 결정이 나면 장례는 빨리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씨의 희생정신과 연구활동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국민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13일 오전 유가족에게 전달키로 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故전재규씨 시신 12일 서울로

    지난 6일(현지시간) 남극 세종과학기지로 귀환하다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실종됐던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월동대원 3명이 실종 52시간만에 칠레 구조대에 의해 구조됐다.이로써 지난 6일과 7일 악천후로 잇따라 실종됐던 제 17차 남극월동대원 8명 중 사망한 전재규 연구원을 제외한 7명이 무사했다. 정부는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최경수 국무조정실 사회수석조정관 주재로 ‘세종과학기지 조난사고 대책반’ 1차회의를 열어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고 전 연구원에게 정부훈장 추서를 검토키로 하는 등 사고수습과 재발방지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칠레 헬기구조대가 현지시간으로 8일 오후 8시20분(한국시간 9일 오전 8시20분)쯤 고무보트 ‘세종2호’에 탑승했다가 실종된 강천윤(38) 부대장 겸 연구반장과 김정한(27) 연구원,최남열(37) 대원 등 3명을 구조,칠레기지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밝혔다.칠레 대사관은 이날 박환선 영사를 아레나스 시에 급파,시신이 운구되는 대로 장의 절차를 거쳐시신을 민간 항공기편으로 서울로 운구할 계획이다.전 연구원의 시신은 이르면 12일쯤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조현석기자 hyun68@
  • 희생자 유해 어제 인천도착

    지난달 30일 이라크 티크리트 인근 고속도로에서 총격으로 숨진 오무전기 근로자 곽경해(60)·김만수(45)씨의 유해가 8일 오후 5시30분쯤 두바이발 대한항공 KE952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이들의 유해는 간단한 검역과정을 거쳐 6시20분쯤 가족의 품에 안겼다.영정 뒤로 곽씨와 김씨의 시신을 담은 운구가 모습을 나타내자 유족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오열했다. 화물터미널 앞에서 치르진 노제에서 숨진 김씨의 딸 영은(18)양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빠 왜 당당하게 걸어오지 못하고 왜 이렇게 와야만 해.이젠 우리가 모시고 갈게요.”라고 말하자 주위는 눈물바다로 변했다.쌍둥이 딸 영진(18)양은 “대통령 할아버지가 ‘끝까지 챙기겠다.’는 약속대로 범인을 꼭 색출해 달라.”고 말한 뒤 “책임에 대한 언급 없이 단지 유감만 표명하는 미국이 우리의 우방이 맞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노제가 끝난 뒤 두 사람의 유해는 곧바로 대전 평화원 장례예식장으로 옮겨졌다.노제에는 이날 오전 대전에서 상경한 유가족과 오무전기 관계자,반전단체 회원 등 80여명이 참가했다. 노제를 마친 뒤 김씨의 부인 김태연(43)씨는 “정부가 남편의 장래를 ‘산업장례장’으로 해달라.”면서 “시신을 두고 보상문제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회사 등으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을 땅에 묻을 수 없다.”고 눈물을 쏟았다. 한편 밤늦게 대전 장례식장에 유해가 도착하자 대전지역 시민사회 단체 회원 10여명이 촛불을 켜고 고인을 추모했다.또 오갑렬 재외국민 심의관 등 외교통상부 직원 2명은 조문을 한 뒤 유가족들에게 고인들의 사망확인서를 전달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이라크 피격상황 재구성/ 저항세력 차로 추격해오며 난사

    이라크 내 한국인 피격사건의 경위 파악과 부상자 수송을 위해 발라드 미군기지(바그다드 북부 100㎞)에 도착한 손세주 이라크 대사대리는 3일 정부에 피격 당시 상황을 보고해왔다. 한국 근로자들은 송전탑 건설구간 내 선로 점검을 하던 중이었으며,시속 70∼80㎞로 달리는 차 안에서 총탄 공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부상자 임재석(32)씨는 저항세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탄 차가 뒤에서 따라붙은 뒤 집중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피격 지점에서 6㎞ 떨어진 사마라시에선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간 치열한 교전이 치러지던 상황이었다.피격현장에는 이종득 중령이 미군과 함께 다녀왔다. ●美·이라크 6㎞ 밖서 교전중 미국 워싱턴인터내셔널그룹(WGI)의 송전탑 건설사업을 하청받은 필리핀 실로사 및 한국의 오무전기 직원,계약 근로자 68명이 바그다드에 모두 도착한 것은 지난달 28일.이 가운데 10여명이 사고가 난 30일 공사를 위해 현장에 나가 있었다. 곽경해(60)씨 등 4명이 이라크인이 운전하는 일제 미쓰비시 지프를 타고 바그다드를 출발한 것은 오전 10시.사마라∼티크리트 고속도로변 송전탑 점검을 몇 차례 한 뒤 추가작업을 위해 다시 70∼80㎞ 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사마라시 북서쪽 6㎞ 지점,전날 일본인 외교관 2명이 피격당한 고속도로 선상이었다.주변은 총격자들이 매복할 만한 숲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지대였다. 낮 12시50분,달리던 차량에 총격이 가해졌고 뒷좌석에 있던 임씨는 양쪽 다리에 두 발의 총알이 관통했다.이상원(41)씨의 대퇴부에도 세 발의 총알이 박혔다.두 사람이 정신을 차린 뒤 보니 곽씨와 김만수(45)씨,이라크인 운전자는 처참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한국 차량 겨냥했나 뒷좌석에 타고 있던 이씨는 총격을 받는 순간 상체를 엎드렸다고 했다.임씨는 저항세력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뒤에서 옆으로 와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으나,이씨는 옆쪽에 다른 차량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일단,길가 매복이 아니라 차량을 이용한 공격으로 풀이되는 부분이다. 타들어가는 고통과 공포 속에 기다린지 10분.지나가던 미군 차량에 구조를 요청,20분 뒤 미군 앰뷸런스가 도착했다.시신 수습과 응급처치에 걸린 시간은 30여분.역시 선로점검 작업에 나섰던 최우선씨 등 3명의 동료들이 이를 목격하고 호송에 합류했다. 이광재 외교부 아중동 국장은 “부상자의 진술이 엇갈려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면서 이 진술만으로 한국을 타깃으로 했는지는 명확지 않다고 말했다.“다만,차량 등에 한국을 표시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밝혔다.아직 총알이나 탄흔을 기초로 한 세밀한 사건 경위는 나오지 않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도 밝혔다. ●시신 쿠웨이트로 외교부는 손 대사대리가 사마라 주둔 미군 부대에 안치된 고 김만수씨와 곽경해씨의 시신을 40㎞ 떨어진 발라드 미군 병원으로 옮겨 신원 확인을 마쳤으며 이날 중 바그다드-쿠웨이트를 거치거나,아니면 직접 쿠웨이트 미군기지로 옮긴 뒤 민항기편으로 서울로 운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원씨와 임재석씨는 이날 오후 바그다드 공항을 경유,독일 람스타인 소재 란드스툴 미군 병원으로 후송됐다.임씨는 탄환을 모두 제거해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이며,이씨는 아직 대퇴부에 두 발의 탄알이 박혀 있고 가끔 통증을 느끼지만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태다. 김수정기자 crystal@ 피격당시 시간대별 상황 ●10:00 17명의 근로자,송전탑 설치 위해 사마라로 이동.김만수씨 등 근로자 4명과 이라크인 운전자 1명.사마라∼티크리트 고속도로 변 송전탑구간 선로 점검 공사 진행. ●12:00 사마라 일대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 교전 시작. ●12:50 김만수씨 등 시속 70∼80㎞로 주행 중 총격.김만수·곽해경씨 사망. ●13:00 이상원씨 등 부상자 2명 지나가던 미군 차량에 구조 요청. ●13:20 미군 앰뷸런스 도착.시체 수습 및 응급 조치. ●13:50 최운선 씨 등 다른 선로 점검팀 3명 현장 지나다 부상자 호송 합류. ●14:00 미군 대규모 교전 종료. ●14:43 로이터 통신 첫 보도(한국 시간 오후 8시43분)
  • “이라크 파병원칙 불변”

    정부는 이라크에서 한국인이 피격됐지만,이라크 파병 원칙은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또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따라 강력히 대처하기로 했다.전투병 파병 비율을 당초 계획보다 늘리는 등 추가조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1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NSC 오찬회의를 잇따라 갖고 이같은 방안들을 검토했다. ▶관련기사 2·3·4·8·9·22면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3000명 추가파병’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강해지고 있어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그동안 테러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해 왔고,용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면서 “특히 이번 사건은 군대가 아닌 민간인을 상대로 한 것으로,민간인 테러는 더더욱 용납해서는 안 되는 비인도적 행위”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정부는 부상자 치료와 사망자 시신운구에 각별히 협조하고,교민보호에 한치의 빈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했다.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라크 파병문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파병한다는 기존 방침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윤 장관은 “정치상황이 불투명하지만 내부지침에 따라 예정대로 파병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상사 주재원과 선교사 등은 가급적 철수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재건업무와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민간업체의 철수 여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위로서한을 보내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윤영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희생자들에 대한 심심한 애도의 뜻을 보냈다. 한편 이라크에서 테러로 부상한 이상원(41)씨와 임재석(32)씨 등 오무전기 소속 직원 2명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신봉길 외교부 대변인은 “당초 부상자들을 독일 남서부 란트스툴 소재 미군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으나 상태가 호전돼 이라크 자마라 소재 미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씨는 다리 관통상을 입었고,임씨는 머리에 충격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전했다.테러로 현장에서 사망한 김만수(45)씨와 곽경해(60)씨 등 2명의 시신도 이 병원에 안치돼 있다. 외교부는 3일 정용칠 아중동국 심의관과 재외국민 영사국 직원을 바그다드로 추가 파견할 예정이다. 곽태헌 김수정기자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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