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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례 ‘6일 國葬’으로

    장례 ‘6일 國葬’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건국 이후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국장(國葬)’으로 엄수된다. 장례 기간은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부터 23일까지 6일간,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결정됐다. 영결식은 23일 오후 2시 국회광장에서 열리고, 안장식은 영결식 직후 거행될 예정이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는다. 정부는 이날 오후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계획안’을 심의, 의결했다.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은 1979년 10월26일 재임 중에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30년 만이다. 퇴임 이후 서거한 최규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정부는 지난 5월에 7일 간 국민장을 치른 노 전 대통령 장례와의 형평성, 향후 서거하는 전직 대통령 장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이유로 고심했으나 유족 측의 입장도 고려해 국장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유족 측도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9일장이 아닌 6일장을 받아들였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입관식은 20일 정오 천주교 의식으로 열린다고 최경환 비서관이 밝혔다. 입관식은 유족만 참석하며 서교동성당의 윤일선 주임신부가 주관할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의 수의는 이희호 여사가 생전에 준비한 것을 쓰기로 했으며, 대통령 상징 문양인 봉황무늬가 새겨진 목관에 안치될 예정이다. 입관식이 끝나면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관은 운구절차에 따라 국회 빈소로 옮겨진다. 강주리 오달란기자 jurik@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프랑스 교도소 자살방지책은 ‘종이잠옷’ ☞익명으로 블로그에 ‘추녀’라고 함부로 썼다간… ☞“얘야 공무원보다 대기업 가라” ☞비위판사는 사표 맘대로 못낸다 ☞“뚜껑 나이트클럽 안된다” ☞장자연사건 유력인사 10명 모두 무혐의 ☞“프라다 나와!”
  • “당신의 도전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영원히 잠들었다. 6일 오전 전남 해남읍 국제장례식장에서 열린 조씨의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주민, 체육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었다. 교회·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발인 예배를 시작으로 묵념, 조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큰아들 성웅씨의 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해군 특수전여단 문석준 중령은 조사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다니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던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큰아들 성웅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장지를 향해 떠날 때 부인 이성란(44)씨가 “나도 따라갈래.”라며 오열하며 발을 동동 굴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조씨가 타계한 4일 오후 그 충격으로 음독까지 시도했던 이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친지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차에 올랐다. 발인을 마친 운구차는 조씨의 고향인 해남군 학동리 생가 주변에 도착해 노제를 지낸 뒤 계곡면 법곡리 자택 주변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했다. 조씨는 생전 그의 유언에 따라 ‘재기’를 위해 지은 자택 옆에 묻혔다. 해남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14좌 완등 꿈 이루지 못한채…고미영씨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서 하산중 실족사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여성 산악인 고미영(42·코오롱스포츠)씨가 악명 높은 히말라야 ‘칼날 능선’에서 조난된 뒤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번 사태는 무리한 등반이 빚은 사고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주 파키스탄 대사관은 12일 밤 “고씨가 이끄는 등반팀과 오늘 위성전화로 통화했다. 등반팀은 고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현지 구조팀이 헬기를 동원해 13일 시신을 운구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등반팀은 대사관 측에 장례절차 및 시신 운구 등 문제를 상의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고씨의 장례 및 시신 이송 등 문제는 고씨 가족들이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이후 협의를 통해 진행될 예정”이라며 “태국을 거쳐 이슬라마바드로 들어오는 비행편이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에 있는 만큼 이르면 내일, 또는 수요일께 협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씨는 10일 오후 5시30분쯤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 정상 정복에 성공한 뒤 캠프4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튿날 캠프3를 거쳐 캠프2로 하산하던 중 11일 오후 7시쯤 ‘칼날 능선’으로 불리는 해발 6200m 지점에서 실족하는 사고를 당했다. 고씨가 조난된 낭가파르바트는 파키스탄 북동부와 인도 접경 지역인 히말라야 산맥 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 탓에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로체(8516m) 남벽과 함께 3대 고난도 루트로 꼽힌다. 지금까지 31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여성 산악인의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앞둔 고씨는 오은선(43·블랙야크)씨와 함께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고씨는 최고봉 14개 가운데 11개를 짧은 기간에 올라 1993년 시작한 선배 오은선씨를 뒤쫓았다. 오씨는 고씨보다 하루 앞선 지난 10일 낭가파르바트에 올라 12좌 등정을 마쳤다. 고산 등반을 시작한 지 만 3년도 안 된 고씨가 본인의 목표대로 2011년 14좌를 완등한다면 최단 기간(8년) 완등 경신이 기대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거리가 멀고 험한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한 시즌에 잇달아 공략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며 줄곧 우려를 표시해 왔다. 여기에 소속 후원사의 마케팅 경쟁과 언론사의 취재 경쟁도 위험 가중에 한몫했다. 코오롱스포츠와 블랙야크(동진레저) 등은 임직원을 현지로 보내 원정대 지원에 나섰고, 언론을 상대로 한 홍보전에 열을 올려 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마이클잭슨 여전히 說·說·說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 끝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의혹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잭슨 시신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지, 생전에 안정제를 복용했는지 등에 대해 외신들은 아직도 추측성 보도를 계속 쏟아 내고 있다. ●시신 행방 여전히 오리무중… 1주뒤 공개? 잭슨의 시신이 안치된 황금색 관이 장례식 당일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센터를 떠난 뒤 사라져 의문이 제기됐지만 잭슨의 가족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심지어 LA타임스는 8일(현지시간) 잭슨의 시신이 화장됐다는 추측이 제기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잭슨의 시신은 가족들의 미공개 장례식이 치러지기 전 이미 매장됐고 스테이플스센터에는 빈 관이 운구됐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 브래튼 LA 경찰청장은 “우리는 일부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LA타임스는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잭슨의 시신은 지난주 LA카운티 검시소에서 부검이 실시된 뒤 유족에게 인계돼 보호 중이며 시신 매장 장소와 시기는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시신의 행방은 최소한 1주일 이상 비밀에 부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신 곳곳에 바늘자국… 마취제 광? 잭슨의 생전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의혹이 끊임없이 나온다. AFP통신은 이날 “잭슨의 몸 곳곳에 바늘 자국이 있어 그가 강력한 성분의 진정제를 복용하다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CNN과 ABC뉴스도 소식통의 말을 인용, “시신을 부검한 결과 여러 군데의 정맥주사 자국과 약해진 정맥들이 발견됐다.”면서 “주사 자국은 디프리반 같은 약물을 정기적으로 주사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디프리반은 강력한 성분의 진정제인 프로포폴 제품으로 마취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잭슨의 주치의 아널드 클라인 박사는 이날 “나는 잭슨에게 약이나 그 어떤 것도 과잉 투여한 의사가 아니다. 디프리반을 어떻게 처방하겠느냐.”고 반박했다. 한편 잭슨의 장례식은 미국 전역 18개의 TV 채널에서 방송돼 총 311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다이애나 전 영국 황태자비의 장례식에 이어 미국에서 중계된 장례식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시청률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NOW포토] 故유현목 감독, 운구행렬 따르는 영화인들

    [NOW포토] 故유현목 감독, 운구행렬 따르는 영화인들

    2일 오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진행된 故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에서 배우 박신양이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운구행렬에는 김기덕 정진우 정인엽 등 후배감독들과 최지희 강수연 등 많은 영화인이 함께 했다 .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故 유현목 감독, 마지막 가는 길

    [NOW포토] 故 유현목 감독, 마지막 가는 길

    2일 오전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서 진행된 故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에 운구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故유현목 감독 영정든 박신양

    [NOW포토] 故유현목 감독 영정든 박신양

    배우 박신양이 2일 오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진행된 故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에 고인의 영정을 들고 운구행렬을 따르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신양, 故 유현목 감독 영정 모셔

    박신양, 故 유현목 감독 영정 모셔

    배우 박신양이 고(故)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을 들 예정이다. 1일 고 유현목 감독의 영화인장례위원회는 “2일 오전 9시에 서울 성모병원에서 진행되는 영결식에서 박신양이 고인의 영정을 모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박신양은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영화 리얼리즘 지평을 연 고 유현목 감독에 대한 존경과 예우로 영정을 들기로 했다. 한편 대한민국 영화인장으로 진행되는 고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은 안성기가 사회를 맡으며 추도사는 장례위원장인 김수용 감독이 맡는다. 고인의 약력소개는 김호선 감독, 조사는 이덕화와 채시라가 담당한다. 운구는 양윤호 유하 권형진 등 영화감독들과 정재형 김종완 박종호 등 후배 교수들이 맡기로 했다. 김기덕 정진우 정인엽 등 후배감독들과 최지희 강수연 등 많은 영화인들이 운구행렬에 함께 할 예정이다. 영결식 후 노제는 고 유현목 감독이 일생을 바쳤던 충무로를 거쳐 후배들을 양성했던 동국대학교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이후 고인은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인사]

    ■방송통신위원회 △운영지원과장 이동형△조사기획총괄〃 이정구△융합정책〃 강도현△공보팀장 이상훈 ■농림수산식품부 ◇고위공무원 승진 △원양협력관 이철우 ■법제처 ◇전보 △사회문화법제국 법제심의관 임송학◇파견△헌법재판소 이강섭◇부이사관 전보△경제법제국 법제관 김대희◇과장급 전보△행정법제국 법제관 고낙훈△기획조정관실 국민불편법령개폐팀장 이상희△〃 기획재정담당관 김창범△대변인 홍승진△사회문화법제국 법제관 윤재웅△법령해석정보국 수요자법령기획과장 양미향△경제법제국 법제관 배지숙 ■중소기업청 ◇국장급 승진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장 윤도근◇과장급 전보△감사담당관 유지필 ■게임물등급위원회 △사무국장 이장협 ■도로교통공단 △교육사업본부장 김상렬 ■대한지적공사 ◇본부장 승진 △충북 이두형◇본부장 전보△대전·충남 이정룡◇1급 전보△경영지원처장 신철순△지적정보사업단장 최종만△지적연구원 국토정보팀장 송철순 ■SH공사 <도시재생본부> △본부장 배경동△도시재생사업처장 김경하△세운사업단장 오준엽△뉴타운사업처장 직무대행 이동건[팀장]△도시재생기획 이영철△사업관리 김광석△총괄사업관리 김소겸△주택정비 김동일△계획설계 이광윤△건축1 진선호△토목 조래섭△조경 박진옥△기계 황준연△건축2 김창율△건술관리 강홍극△전기통신 박상철△도시정비 최칠문△임대리모델링 조대원△이주보상 한명학<기술본부>△본부장 정현규△설계처장 직무대행 강석준△환경에너지사업단장 〃 이준규△개발계획처장 〃 이달윤[팀장]△개발계획1 윤종한△건축설계2 여운구△조경설계 신규환△단지토목설계 김영태△전기통신설계 권일혁△설계기준 이우필△택지설계 박광기△건축설계1 박희준△기계기술TF 장병문△기계설계 정인국△환경에너지TF 이청용△사업기획 김영배△개발계획2 박영일△도시디자인 김병석△견적발주 오석렬△전기기술TF 박기호<기획조정실>△실장 강성열[팀장]△경영관리 박선호△기획 문영수△경영전략 고장열△자금관리 김주영△원가관리 민경배△재정예산 황상하<경영지원실>△실장 곽인[팀장]△인사 이종언△회계 박태봉△홈페이지TF 김순일△총무 홍동환△계약 김해철△전산정보 김영해<도시연구소>△소장 이용덕△창의혁신팀장 심윤수<고객지원본부>△주거복지처장 한재천△고객지원총괄팀장 이은호△강남권역통합관리센터장 박홍선△강서권역〃 문경훈△분양1팀장 이건희△성북권역통합관리센터장 이병우△시설관리팀장 최윤식△분양2〃 이성남△임대〃 이상현△동대문권역통합관리센터장 권태원△노원권역〃 조명수△고객문화팀장 박완수△마포권역통합관리센터장 신명섭△주택관리팀장 박인<가든파이브사업단>△가블럭 대표이사요원 박병옥△나블럭 〃 전동호△다블럭 관리이사요원 김관호△가블럭 시설이사요원 김이환<사업1본부> [팀장]△토목1 이상모△전기통신 신석하△건축1 장달수△토목3 한기열△토목2 황성덕△건축3 정갑수<사업2본부>△마곡사업단장 이영덕[팀장]△공급관리TF 김남주△개발행정 민광찬△사업관리TF 이재익△기계 이태관△토목 성용운△도시지원시설 이국한△건축 최수근△건축사업 김길상△시설지원TF 김혁재△택지개발사업 김익성△수남관리TF 엄조영△워터프론트 조범주△건축조경 문명렬<우면산>△시설이사요원 이부영△영업이사요원 이송재<보상본부> [팀장]△보상지적2 진홍기△보상지적1 주홍석△보상지적4 랑영표◇처장△홍보처장 문완식◇팀장△기술감사팀장 김영수 ■CBS △춘천방송본부 보도제작국장 구병수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경영지원그룹 인사본부 강정훈△기업영업그룹 기업금융상품본부 유명순△개인금융그룹 개인영업본부 정성헌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임홍빈
  • [사설] 한국인 피랍·피살 언제까지 봐야 하나

    예멘 사다에서 국제의료봉사단체 ‘월드와이드 서비스’의 독일·영국 봉사단원 8명과 함께 실종된 우리 여교사가 사흘만에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같은 지역서 자살폭탄 테러로 우리 관광객 4명이 목숨을 잃은 지 석달만의 일이다. 무고한 자원봉사자들, 그것도 어린이 3명까지 공격한 테러단체의 만행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정부 당국은 동반희생된 봉사자들의 나라들과 공조해 테러 주체와 목적, 경위를 철저히 밝혀 단호하게 조처해야 한다. 희생자의 시신운구며 장례, 현지에 남은 교민들의 안전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다.이번 예멘 피살사건은 종전 위험지역에서의 정치적 목적이나 몸값을 노린 테러, 인질사태의 양상과 구별돼 주목하게 된다. 2004년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의해 피살된 김선일씨나 2007년 아프가니스탄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살해된 분당샘물교회 배형규 목사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예멘 정부와 부족장들은 반군 시아파 무장단체와 알카에다를 배후로 지목하지만 희생자 실종부터 시신발견 때까지도 범행 단체며 목적이 베일에 가려 있다. 석달전 예멘 테러로 희생된 유족들이 현지에서 2차테러를 당한 데서 한국인을 노린 테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슬람권을 비롯한 분쟁·위험지역에서 우리 국민을 겨냥한 테러·폭행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5년전 알카에다가 한국을 미국·영국에 이은 제3의 테러목표국으로 선언한 것이나 이라크·아프간 파병 이후 한국인을 향한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테러위협이 잇따랐음에 유의해야 한다. 위험지역 여행과 종교·봉사활동에 있어서 우리 국민들의 안전장치와 자제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정부는 사고에 대비해 위험지역의 부족장, 종교지도자들과 접촉을 강화하는 등 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29일 오전 10시48분쯤. 서울 경복궁 동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에 도열한 의장대가 ‘받들어 총’ 자세로 운구 행렬을 맞았다. 뒤이어 영구차와 유족들이 나타나자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군악대의 조악 연주에 맞춰 창백한 얼굴의 권양숙 여사가 아들 건호씨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건호씨의 아내 배정민씨와 딸 정연씨도 뒤를 따랐다. 역대 대통령 중 5번째 영결식이었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가 낭독됐다. 4개 종단의 추모의식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5시쯤 김해 봉하마을에서 차를 타고 상경한 유족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권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어린 두 손녀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화면속 “바보 정신으로 정치…” 오전 11시50분쯤. 제단 옆 대형 스크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화면 속 노 전 대통령은 “별명 중에서 (바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바보하는 게, 그게 그냥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던 유족과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의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일주일 동안 표정 한번 변하지 않았던 이해찬 전 총리도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 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격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원우 의원 “MB는 사죄하라” 이어서 유가족과 주요 인사들의 헌화가 시작됐다. 권 여사를 비롯, 유족들이 줄지어 흰 국화를 제단에 바쳤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려는 순간, 앞줄에 앉아 있던 민주당의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해.”라며 소리를 질렀다. 경호원이 입을 틀어막으며 제지했지만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백 의원이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간 뒤에야 이 대통령 내외는 헌화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향소 앞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 뒤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놓기 위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화한 뒤 뒤돌아서 권 여사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간 김 전 대통령은 권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다 슬픔이 북받치는지 큰 소리로 통곡했다. 영결식은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삼군(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25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추모사를 낭독한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의 주지 명진 스님은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즉 해가 서산에서 지면 달은 동녘에서 뜬다. 지는 해처럼 당신은 떠나가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빛날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이별을 애도했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노 前대통령 봉하마을에 영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7일 만인 29일 국민의 애도속에 고향인 봉하마을에 영면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경복궁 앞뜰에서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문희상 국회 부의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國民葬)으로 엄숙하게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를 실은 운구 차량은 오전 5시쯤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뒤 고속도로로 상경했다. 이날 전국의 관공서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가 게양됐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는 조사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이룩한 업적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으며,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끌어달라.”며 추모했다. 조사에 이어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차례로 진행됐으며, 고인 생전의 영상이 제단 양옆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4분여간 방영됐다. 서울광장 일대 등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십만명(경찰 추산 18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40분가량 노제를 치른 뒤 서울역을 거쳐 경기 수원의 연화장에서 화장돼 30일 새벽 봉하마을 인근의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7월10일 49재때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된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소시 태연, 라디오 라이브로 노 前 대통령 추모

    소시 태연, 라디오 라이브로 노 前 대통령 추모

    여성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태연은 29일 자신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태연의 친한친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날 방송이 시작되자 태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한 길을 골라 가는데 가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며 “오늘 당신은 앞장섰고 많은 이들이 뒤를 따랐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상했다. 태연은 이어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다. 운구 차량이 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나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니 어느새 또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면서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 분은 늘 새로운 길로만 걸어가시나 보다.”라며 울먹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청취자의 사연을 읽고 눈물을 참지 못한 태연은 “내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사랑한다면 100번의 말보다 천 번의 인사보다 밝고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보답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며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라이브로 선사했다. 태연의 눈물에 ‘태연의 친한친구’의 청취자들은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고 울먹이던 태연에게는 응원의 메시지로 힘을 더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9일 오전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갖고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후 경기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됐다. 이후 오늘(30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초재를 지내며 안치식을 마친 후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화해와 통합의 길 찾아나설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면했다. 7일간의 국민장을 마치고 노무현 이름 석자를 역사에 새긴 어제 온 나라는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영결식이 치러진 경복궁에서 노제가 펼쳐진 서울광장까지 I㎞ 남짓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서울 도심은 노란 물결로 넘쳐났고, 세종로와 태평로 그 넓은 도로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담아내기에 너무나도 비좁았다. 적어도 고인이 가는 그 길 위에서만은 너와 내가 따로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실로 많은 것을 우리 사회에 안겨주었다. 어두운 곳, 낮은 곳을 한 번 더 돌아보는 눈을 주었다. 대통령은 권좌가 아니라 늘 우리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고통을 나누는 옆집 아저씨여야 한다는 믿음을 주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했다. 지난 반세기 남북 분단과 고속성장의 그늘 밑으로 우리가 얼마나 계층, 이념, 지역으로 갈려 있는지도 목도하게 했다. 영·호남과 좌·우, 가진 자와 없는 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화해와 소통, 이해만이 나라를 번영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음을 거듭 절감하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나고 난 자리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명하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온전히 똘똘 뭉쳐 하나가 돼도 반쪽에 불과한 것이 남북 분단의 우리가 아닌가. 입을 닫고 귀를 열자. 정치권 등 사회 온 부문에서 저마다 상대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에게 당부한다. 한때 고인을 사이에 놓고 둘로 갈라졌던 아픈 기억을 그와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 그를 기준으로 네편 내편을 갈랐던 이념의 분단선을 이젠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를 새겨 넣어야 한다. 정의를 바로 세우고 반칙과 특권을 거부하는 사회를 함께 일궈야 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표출된 민심을 직시하기 바란다. 그를 많은 국민들이 그리워하는 데는 현 집권세력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응축돼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열린 국정자세로 민심에 온기가 감돌게 해야 한다. 민주당 등 야당은 민심에 따라 고인을 삼키고 뱉었던 행태부터 버려야 한다. 현 정부 책임론을 내세워 국민을 편 갈라 거기에 기대려 들지 말고, 책임있는 대안으로 국민을 불러모으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권력을 부패로부터 차단할 제도적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분열의 시대로 퇴행할 것인가, 통합의 시대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유언대로 ‘한조각 자연’으로 돌아갔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44분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예상보다 3시간 늦어져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6분.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영구차가 연화장에 도착한 뒤 삼군 의장대 10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옮기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연화장에 모인 8000여명의 추모객들은 ‘노무현’을 연호했고, 일부 추모객들은 흐느꼈다. 권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특별히 승화원 건물 밖에 마련된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렸다. 태극기에 덮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이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장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권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울기만 했다. 딸 정연씨가 “엄마, 아빠 봐야지.”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후 6시31분쯤 송기인 신부가 기도를 한 뒤 대형유리의 커튼이 닫혔다. 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30여분간 화장됐다. ●고별 제례 올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장의위원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별 제례’를 올렸다.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이때 보통의 유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이라고 추모객들은 입을 모았다. ●오후 8시50분 봉화마을 장지로 유골은 18분 정도 냉각과정을 거쳐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곱게 빻는 분골 과정을 거쳐 향나무 유골함에 담겼다. 운구차는 오후 8시50분쯤 고인의 영원한 안식처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장지로 향했다. 운구차 이동경로인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 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는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연화장은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다. 연화장측은 조례에서 정한 자치단체장 재량권 규정에 따라 화장료를 면제했다. 수원 김병철 남인우 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의식 거행내내 ‘삶과 죽음 한조각’ 독송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오후 늦게 수원 연화장에 도착하자 추모객(경찰 추산 8000여명)들은 “노무현”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추모객들은 700여m나 떨어진 임시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연화장 승화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추모객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고 떠들거나 불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연화장 입구에서 삼군 의장대와 군악대가 운구를 맡으며 엄숙함을 더했다. 분향실 앞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라는 문구가 표시됐다. 권양숙 여사와 건호·정연씨 남매, 건평씨 등 유족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뒤를 따랐다. 절도 있는 의장대의 발걸음과 달리 유족들은 한 걸음을 내딛기도 벅차 보였다. 권 여사는 딸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유족들이 야외분향소에서 제례를 마치고, 권 여사가 부축을 받으며 승화원으로 들어갈 때 추모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힘 내세요.”를 외쳤다. 8개 분향실 가운데 7번까지는 노사모 회원들과 종교인, 장의위원들이 자리했고, 8번 분향소에서는 권 여사 등 유족들이 고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화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되는 동안 승화원 밖에서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마지막 제례의식이 진행됐다. 한쪽에서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노 전 대통령 유서의 한 구절이 독송(讀誦)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관계자 100여명은 화장이 시작되기 4시간 전부터 불교의 다비의식(화장의식)과 독송 준비를 했다. 제2교구 관계자는 “오늘 독송한 ‘무상게(無常偈)’는 자연과 삶은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의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독송이 서글프게 울려퍼지자 북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한 추모객들이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오열했다. 수원 남인우 오달란기자 niw7263@seoul.co.kr
  • “가지마세요”…떠나는 서울광장엔 노란 물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운집,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아쉬워 했다.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낮 12시10분쯤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경복궁 앞 동십자각을 거쳐 광화문으로 이동했다.경찰 사이드 카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영결식 참석자들도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운구차 뒤를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광장 주변에 설치된 대형 화면 등을 통해 영결식과 장례 행렬이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운구차를 따라 이동하면서 “미안합니다” “가지마세요” 라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유해가 이동하는 동안 서울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로 가수들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가수 안치환씨는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애잔한 추모곡을 부르자 많은 추도객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가수 양희은씨는 ‘상록수’를 불렀다.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곡.자리한 추도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이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록밴드 YB는 추모곡으로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YB의 윤도현씨는 공연 중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제목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그분은 떠났지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추모 공연은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광화문 연가’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의 추모사로 행사 종료를 알렸다.김제동씨는 추모사 도중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우리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남은 큰 짐은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그분은 우리 가슴 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선 뒤 공식적으로 진행됐다.노제에서는 노제의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혼을 부르는 초혼 순서가 진행된 뒤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인 안도현씨와 김진경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이어 시인 도종환씨의 사회로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가 이어져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노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는 끝났다.운구 행렬은 이어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가량 도보로 이동하며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가지마세요”…떠나는 서울광장엔 노란 물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운집,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아쉬워 했다.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낮 12시10분쯤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경복궁 앞 동십자각을 거쳐 광화문으로 이동했다.경찰 사이드 카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영결식 참석자들도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운구차 뒤를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광장 주변에 설치된 대형 화면 등을 통해 영결식과 장례 행렬이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운구차를 따라 이동하면서 “미안합니다” “가지마세요” 라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유해가 이동하는 동안 서울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로 가수들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가수 안치환씨는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애잔한 추모곡을 부르자 많은 추도객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가수 양희은씨는 ‘상록수’를 불렀다.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곡.자리한 추도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이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록밴드 YB는 추모곡으로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YB의 윤도현씨는 공연 중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제목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그분은 떠났지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추모 공연은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광화문 연가’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의 추모사로 행사 종료를 알렸다.김제동씨는 추모사 도중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우리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남은 큰 짐은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그분은 우리 가슴 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선 뒤 공식적으로 진행됐다.노제에서는 노제의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혼을 부르는 초혼 순서가 진행된 뒤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인 안도현씨와 김진경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이어 시인 도종환씨의 사회로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가 이어져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노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는 끝났다.운구 행렬은 이어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가량 도보로 이동하며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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