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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아가신다. 길을 비켜라‘ 고대이집트 파라오 18명과 왕비 4명 미라로

    ‘나아가신다. 길을 비켜라‘ 고대이집트 파라오 18명과 왕비 4명 미라로

    고대 이집트의 절대 지배자 파라오 18명과 왕비 4명이 행진했다. 수도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있던 파라오 18구와 왕비 4구 등 모두 22구의 미라가 3일(이하 현지시간) 5㎞ 떨어진 국립 문명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일부에서는 3000년 전 잠든 고대 파라오의 미라들을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기는 ‘파라오 골든 퍼레이드’가 파라오의 저주를 초래한다며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부는 일단 옮기는 데 성공했다. 커다란 팡파레 소리와 함께 집권 연대 순으로 17대 왕조의 통치자 세케넨레 타 2세부터 기원전 12세기에 통치했던 람세스 11세까지 행진에 나서 미라가 옮겨졌다. 오는 18일부터 일반 관람객들도 이들 미라를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년 전 코로나19로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낳았지만 최근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줄어 야외 모임이나 관람 등에 대한 제재가 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하지만 최근 대형 재난이 잇따랐다. 전 세계 교역의 핵심 통로인 수에즈 운하에 선박이 좌초해 수십조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 지난달 26일에는 중부 소하그 지역에서 열차 추돌사고로 최소 32명이 사망했고, 그 다음날 카이로에서는 10층짜리 주거용 건물이 붕괴해 18명이 숨지는 등 굵직굵직한 사고를 겪었다. 파라오의 저주란 파라오 미라의 안식을 방해하면 불행 또는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이집트의 오랜 전설이다.미신으로 그칠 법한 파라오의 저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일이 약 100년 전 투탕카멘왕의 무덤을 발굴했던 학자들이 차례로 사망한 일이었다. 1922년 영국인 하워드 카터 등 학자와 조수들은 파라오의 무덤이 모여있는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한 투탕카멘왕의 무덤을 발굴한 뒤 알 수 없는 원인 등으로 숨졌다. 당시 무덤엔 “왕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들에겐 죽음이 빠르게 찾아갈 것”이란 문구가 적혀있던 것으로 알려져 ’투탕카멘의 저주‘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 여성은 페이스북에 “파라오를 원래 있는 자리에 놔두라”며 “파라오의 분노를 알라”고 경고했고, 또 다른 누리꾼도 트위터에 “파라오의 저주는 농담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해시태그(#)를 달아 “미라를그대로둬라”(#KeepTheMummiesWhereTheyAre)고 주장하며 “지난 며칠간 이어진 모든 대참사가 4월 3일 예정된 미라 이전 행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퍼레이드 행사를 지지해왔던 저명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파라오의 저주 얘기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미라들이 운구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81년 미라들은 (중부 도시) 룩소르에서 3일 동안 배를 타고 카이로로 넘어온 적 있다”면서 “또 19세기 말 람세스 2세의 미라를 감싼 천이 벗겨진 적도 있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저주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면서 “그들도 새로운 장소에서 환영받는다는 점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에즈 운하 당국은 이날 컨테이너선 좌초로 촉발된 운하 정체 사태가 해소됐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좌초된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지난달 29일 부양됐을 당시 대기 선박은 422척이었는데 이날 61척이 운하를 마지막으로 통과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수에즈운하관리청(SCA)를 인용해 전했다. 3일 운하를 통과할 배는 모두 85척이었으나 이 가운데 24척은 에버기븐호가 부양된 이후 도착한 것이라고 SCA는 설명했다. 선박 좌초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는 지난달 31일 시작됐다. 라비 청장은 2일 늦게 민영 MBC 마스르 TV에 “조사는 잘 되고 있다. 이틀 정도 더 걸릴 것이고 그때 우리는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집트 미라 22구 옮긴다”…수에즈 운하 좌초, ‘파라오의 저주’ 때문?

    “이집트 미라 22구 옮긴다”…수에즈 운하 좌초, ‘파라오의 저주’ 때문?

    미라 22구 옮기는 국가행사 개최 예정‘왕의 안식 방해하면 불행 따른다’ 전설미신론자 “박물관 미라들 그냥 놔둬라”학자들 “전에도 아무 일 없었다” 일축 최근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 선박 좌초 사건을 비롯한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르며 ‘파라오의 저주’가 내렸다는 주장이 나와 이목이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오는 3일(현지시간)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라를 옮긴다고 밝힌 가운데, 공교롭게도 최근 이집트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전 세계 교역의 핵심 통로인 수에즈 운하에 선박이 좌초해 수십조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 지난달 26일에는 중부 소하그 지역에서 열차 추돌사고로 최소 32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날 카이로에서는 10층짜리 주거용 건물이 붕괴해 18명이 숨졌다. 2일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일부 미신론자들은 정부가 오는 3일 카이로 시내에서 3000년 전 잠든 고대 파라오의 미라들을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기는 ‘파라오 골든 퍼레이드’가 저주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왕의 안식을 방해하면 불행 따른다’ 전설 ‘파라오의 저주’란 파라오 미라의 안식을 방해하면 불행 또는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이집트의 오랜 전설이다. 정부는 수도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있던 파라오 18구와 왕비 4구 등 총 22구의 미라를 국립 문명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파라오의 저주가 일각에서 이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약 100년 전 투탕카멘왕의 무덤을 발굴했던 학자들이 차례로 사망한 사건이 한몫했다. 1922년 영국인 하워드 카터 등 학자와 조수들은 파라오의 무덤이 모여있는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한 투탕카멘왕의 무덤을 발굴한 뒤 알 수 없는 원인 등으로 숨졌다. 당시 무덤엔 “왕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들에겐 죽음이 빠르게 찾아갈 것이다”는 문구가 적혀있던 것으로 알려졌다.“파라오 미라 옮기지 말라”는 주장 올라와 한 여성은 페이스북에 “파라오를 원래 있는 자리에 놔두라”며 “파라오의 분노를 알라”고 경고했고, 또 다른 네티즌도 “파라오의 저주는 농담이 아니다”고 적었다. 그러나 퍼레이드 행사를 지지해왔던 저명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파라오의 저주설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미라들이 운구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81년 미라들은 (중부 도시) 룩소르에서 3일 동안 배를 타고 카이로로 넘어온 적 있다”면서 “또 19세기 말 람세스 2세의 미라를 감싼 천이 벗겨진 적도 있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만약 저주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면서 “그들도 새로운 장소에서 환영받는다는 점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도심엔 총소리뿐… 미얀마軍, 집에 있는 여고생까지 쐈다

    도심엔 총소리뿐… 미얀마軍, 집에 있는 여고생까지 쐈다

    미얀마 군부가 대낮에 집에 있는 여고생을 저격해 사망케 하는 등 유혈진압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군부는 지난주 휴대전화용 인터넷을 차단, 외부와의 통신을 제한한 뒤 무자비한 진압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계엄령이 선포된 양곤의 6개구 곳곳에선 연기가 피어 오르고,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리며 참혹함을 짐작게 하고 있다. 군부는 양곤, 만달레이 일부 지역에서 18일 인터넷 전체를 차단, ‘통신 두절 지역’을 만들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군부는 시위대를 향해 거침없이 무력을 행사 중이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17일 CNN에서 “지난달 1일 쿠데타 이후 총 202명이 시위 중 사망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121명이 지난 12일 이후 사망했다. 약 2400명이 구금됐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서의 사상자를 포함하면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우려했다. 지난 15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 지역의 한 마을에선 총성을 피해 친구 집으로 갔던 16세 소녀 마 티다 에가 군 저격수의 총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고 현지매체 이라와디가 이날 전했다. 함께 있던 친구도 손가락 총상을 입었다. 마 티다 에의 아버지 우 윈 차잉은 “마을로부터 300m 떨어진 언덕에서 저격수가 쏜 총탄에 딸이 두 차례나 맞았다”며 울었다. 이어 “딸의 시신을 집으로 운구하면 군이 (사인을 조작하려고) 시신을 탈취할까 봐 병원 근처에 묻었다”고 했다. 실제 미얀마 군경은 지난 5일 만달레이의 한 공동묘지에서 ‘다 잘될 거야’라고 영어로 쓴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섰지만 경찰의 총격에 희생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19세 치알 신을 부검하겠다며 시신을 도굴했다가 매장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날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게 건설업자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또 추가했다. 수치 국가고문은 이미 수출입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이지만,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 혐의를 또 추가한 것이다. 수치 국가고문이 군부 반대시위의 동력이라는 판단에 군부의 압박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악랄해지는 군부의 뒤에 중국이 있다는 의혹으로 미얀마 내 중국계 공장들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자, 일부 중국 기업은 철수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미얀마의 중국 국유기업들이 정부로부터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없지만 개별 기업 차원의 철수 논의는 있다고 전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집에 있는 여고생 조준 사살·시신 도굴까지…막나가는 미얀마 군부

    집에 있는 여고생 조준 사살·시신 도굴까지…막나가는 미얀마 군부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군인이 대낮에 집에 있는 여고생까지 저격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8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15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 지역의 한 마을에서 마 티다 에(16·여)가 친구 집에 있다가 군 저격수의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마 티다 에는 총성이 들리자 친구 집으로 가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앉아 있던 친구도 총격을 받아 손가락에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마을 어귀에서 군인들이 쿠데타 항의 시위 참여자 일부를 체포하자 주민과 충돌했다. 체포된 시위대는 결국 풀려났지만, 군용 트럭 옆을 지나던 한 여성이 군인이 쏜 총에 부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다른 주민들이 지나가는 군용 트럭을 세우고 군인 5명 가운데 2명을 붙잡았다. 나머지 3명이 인근 산으로 달아나 저격용 소총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여고생 아버지 우 윈 차잉이 전했다. 우 윈 차잉은 “딸은 마을로부터 300m가량 떨어진 언덕에서 저격수가 쏜 총탄에 2차례나 맞았다”면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도착하자마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다리에 군인이 배치돼 있어 딸의 시신을 병원 근처에 묻었다”면서 “집으로 운구할 경우 군이 (사인 조작 등을 위해) 시신을 탈취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태권도 사랑하는 치알 신, 시신 도굴해 현장 부검까지… 미얀마 군경은 앞서 지난 5일 만달레이의 한 공동묘지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치알 신(19·여)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도굴한 뒤 현장에서 부검하는 듯한 행각을 벌이고 다시 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태권도와 춤을 사랑하는 치알 신이 ‘다 잘 될 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쿠데타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한 뒤 이 문구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상징으로 떠오르자 벌인 일이다. 이날 군사정부가 운영하는 신문들은 “치알 신이 실탄을 맞았으면 머리가 망가졌을 것”이라며 “경찰의 무기에 의해 부상했을 개연성이 낮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가 반 쿠데타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실탄을 난사하면서 사망자 수가 200명을 넘어섰다. 군부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심각한 부정이 발생했는데도 문민정부가 이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달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서울시, 조문객 1천명 모인 백기완 분향소에 변상금 부과

    서울시, 조문객 1천명 모인 백기완 분향소에 변상금 부과

    서울시는 19일 서울광장 사용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분향소가 차려진 데 대해 변상금을 산정해 부과하기로 했다. 백 소장의 영결식을 주최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8일 광장 사용허가를 받지 않고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으며, 19일 영결식을 치른 뒤 자진 철거한다. 서울시는 서울광장에서 1000여명에 가까운 시민이 참여한 백 소장 영결식이 끝난 뒤 변상금 부과 방침을 밝혔다. 시 관계자는 “시간대별로 변한 점유 면적을 확인해서 계산해야 해 변상금 액수 산정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검토 중”이라며 다음 주쯤 변상금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서울광장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또 서울 등 수도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른 ‘100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시행되고 있다.이에 앞서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은 코로나19 관련 온라인 브리핑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서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서울광장에 임의로 분향소가 설치되고 영결식이 진행되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영결식도 100인 이상 집합금지는 당연히 준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고 박원순 시장 분향소 설치 당시 코로나 일일 확진자 수가 전국 35명, 서울 8명이었던 것과 달리 오늘 신규 확진자 수는 전국 561명, 서울 180명에 이르고 소상공인 생업도 제한되는 등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8시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백 소장의 발인식에는 조문객 수백명이 운집했으며, 운구 행렬은 수십 명의 풍물패를 앞세우고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노제 장소인 대학로 소나무길로 이동했다. 시민들이 뒤따라 걸으면서 500명 넘게 불어난 행렬은 종로 거리를 지나 오전 10시 50분쯤 거리굿 장소인 종로 보신각에 도착했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엄수됐다. 무대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의자가 배치됐으며, 미리 광장에 나와있던 시민들이 더해져 추모객은 1000명 가량으로 늘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포토] 고 백기완 선생 운구행렬

    [포토] 고 백기완 선생 운구행렬

    19일 오전 서울 종로거리 인근에서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서울시청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불쌈꾼’ 백기완 선생 서울대병원서 발인…조문객 수백명 애도

    ‘불쌈꾼’ 백기완 선생 서울대병원서 발인…조문객 수백명 애도

    백기완 선생 오전 8시 서울대병원서 발인제유족, 영정 앞에서 한동안 흐느껴운구행렬 이화사거리→종각역→서울광장오후 2시 경기 마석 모란공원서 하관식 ‘민중의 벗’ 백기완(향년 89세)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발인식이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제를 열었다. 유족은 고인의 영정 앞에서 절을 올리고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흐느꼈다. 상주인 아들 백일씨는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뜻을 잇겠습니다”라며 목 놓아 울었다. 절을 올린 뒤 유족들은 곧바로 영정과 위패를 들고 안치실로 향했고 8시 10분쯤 발인이 마무리됐다. 영정 속 고인은 두루마기를 입고 백발을 날리며 오른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장례식장 밖에선 장송곡이 흘러나왔고 수백 명의 조문객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운구차가 나오길 기다렸다.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일부가 쓰인 백 소장의 흑백 사진을 들고 양옆으로 나란히 서서 백 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운구차가 나오자 조문객들은 백 소장의 생전 모습이 담긴 큰 한지 인형과 그림, 깃발 등 저마다 백 소장을 추모하는 상징물을 들고 대학로에서 이어질 노제 장소로 천천히 이동했다. 운구 행렬은 대학로에서 출발해 이화사거리, 종로 5가, 종각역 사거리,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한다. 종각역 사거리에서는 거리굿이 열린다. 이날 노제에 300명 안팎의 인원이 2개 차로에서 이동한다. 이들이 이동하는 동안 버스전용차로를 제외한 차량 통행은 잠시 중단될 예정이다. 이날 오전 11시쯤 상여가 서울광장에 도착하면 장례위원회는 촛불을 켜는 것을 시작으로 1시간 30분간 영결식을 한다. 이후 운구행렬은 경기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하고 오후 2시쯤 하관식에 이어 평토제가 진행된다. 이날 장례 절차가 끝나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비롯한 국내·외 40여 개 시민분향소는 조문을 멈추고 해산할 예정이다.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 대해서 기존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게 돼 있어 운구행렬은 집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마스크도 안 쓰고 코로나 사망 시신 운구, ‘면역 실험실’된 이스라엘

    마스크도 안 쓰고 코로나 사망 시신 운구, ‘면역 실험실’된 이스라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99세에 사망한 초정통파 유대교(하레딤) 랍비 메슐람 도비드 솔로베이치의 장례식에 31일 정말 많은 인파가 몰렸다. 현재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코로나19 사망자의 장례를 이처럼 성대하게 치르지 않을 것 같다. 대다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에 안치하지도 않은 시신을 운구했다. 3차 봉쇄 조치가 이날 밤 12시까지 시행됐지만 경찰은 장례 인파를 해산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인구 930만명 가운데 초정통파 유대교도 비율은 15% 정도지만, 최근 보고되는 확진자 가운데 이들의 비중은 무려 35%에 이른다. 학생 감염자의 경우 절반가량이 초정통파 유대교도다.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진행해 많은 나라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이스라엘 정부와 방역당국은 집단면역 효과 발생 시점을 당초보다 늦춰 잡았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이달 중순 인구의 24%가량이 접종을 마치면 경제활동 본격 재개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날 오전까지 집계된 1차 접종자는 300만 5000명, 2차 접종까지 마친 인원은 172만여명이다. 1차 접종 목표는 일단 충족한 상태다. 그런데 요아브 키시 이스라엘 보건부 차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종 목표는 (2차 접종자) 550만명이다. 300만∼400만명을 넘어서면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총리가 예고했던 상황이 몇 주 안에 벌어질 것”이라며 “당초 예상 시기보다 몇 주 늦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염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와 방역 수칙을 거부하는 종교 단체의 활동 등이 백신 접종의 효과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초정통파 유대교도들은 마스크 착용과 집회 금지 등 방역 수칙을 따르지 않거나, 당국의 단속에 반발해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적인 양상도 보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강력한 봉쇄 조치와 더불어 국경까지 폐쇄하며 외국발 변이 바이러스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유입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면서 아직 확실한 면역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주일 전과 비교해 감염 속도가 상당히 둔화하긴 했지만 지난달 30일에도 신규 확진자가 2500명을 넘겼다. 최근 2년 동안 세 차례 총선을 치르고도 정부 구성을 하지 못한 네타냐후 총리가 3월로 예정된 네 번째 조기 총선에서 초정통파 유대교 관련 정당의 지지를 의식해 이들의 단속에 소극적인 것이란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숙적인 베니 간츠 전 부총리는 트위터에 “몇백만명의 가족과 어린이들이 집에 갇혀 지내는데 하레딤 교도 수천명이 장례에 운집했는데 심지어 대다수가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불공평한 법 집행의 증거”라고 개탄했다. 이어 “우리는 효과도 없고 가짜인 봉쇄를 지속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봉쇄되든지, 모두가 재개하든지 해야 한다. 방종의 세월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날 밤 12시까지로 예정된 3차 봉쇄의 연장 여부를 이날 중 결정할 예정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남편 관에 올라타 섹시댄스”…장례식서 무슨 일이?

    “남편 관에 올라타 섹시댄스”…장례식서 무슨 일이?

    콜롬비아의 한 여성이 운구 중인 남편의 관에 올라타고 신나게 춤을 춰 논란이 됐다. 콜롬비아의 지방도시 ‘만타’라는 곳에 사는 마를론 메로(38)는 가게에 든 권총 강도의 총격에 큰 부상을 당했다. 무려 6발을 총을 맞은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시간 만에 결국 숨을 거뒀다. 남편을 잃은 충격에 너무 슬픈 나머지 이성을 잃은 것일까? 운구 행렬이 이동하는데 2개로 나뉘어 있는 관의 뚜껑 중 상체 부분의 뚜껑을 연 채로 부인이 갑자기 남편의 관에 올라탔다. 갑자기 음악이 크게 울려 퍼졌고, 부인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관 주변에서 운구에 참여하고 있지만 부인을 말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부인을 쳐다볼 뿐이었다. 영상을 보면 부인이 (앞부분 관 뚜껑이 열려 노출돼 있는)죽은 남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논란은 슬픔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분석으로 이어졌다. 부인이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지만 진짜 슬퍼하고 있다며 비난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 접한 네티즌은 “남편이 죽었는데 춤을 추고 싶을까?”, “생전에 남편이 좋아하던 춤인가”, “관 위에서 섹시 댄스”, “무슨 장면을 본거지?”, “충격이다”, “애틋하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누군가 이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화제를 모았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추모 자제… 김기덕, 쓸쓸히 떠나다

    추모 자제… 김기덕, 쓸쓸히 떠나다

    지난 11일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라트비아에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 영화계에선 조용히 개별적인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이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건 분명하지만 문제적 연출과 성폭력 사건 등에 연루된 탓에 추모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1996년 영화 ‘악어’로 데뷔한 고인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한국 감독이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감독상), 같은 해 ‘빈집’으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아리랑’으로는 2011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했다. 2012년엔 ‘피에타’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2017년 ‘뫼비우스’(2013) 촬영에서 연기 지도 명목으로 뺨을 때렸고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베드신을 강요당했다고 여배우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MBC PD수첩이 2018년 김 감독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배우들의 증언을 방송해 사회적으로도 논란을 불렀다. 김 감독은 MBC와 배우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하고 지난달 항소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김 감독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당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참 외롭게 가시네요. …인사동 막걸리가 마지막이었네요, 기덕이 형 잘가요”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현승 감독 역시 “어찌 됐든 가슴이 아프다. 사는 내내 파란만장했던 친구, 끝도 파란만장하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기생충’ 영어 자막을 번역한 평론가 달시 파켓은 지난 12일 SNS에 “누군가 실생활에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밝혔다. 영화평론가 박우성도 SNS에서 “사과는커녕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피해자를 이중으로 괴롭힌 가해자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는 없다. 명복을 빌지 않는 것이 윤리”라고 꼬집었다. 고인의 장례 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한국대사관에 장례를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은 유족이 원하면 라트비아 현지에서 화장한 뒤 이달 중 유골을 국내로 운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잡습니다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 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7년 8월 3일 ‘김기덕 감독, 여배우에 ‘갑질’로 피소…뺨 때리고 베드신 강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해, 약 20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고 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위 여배우가 주장한 김기덕 감독이 남자배우의 특정 신체를 만지도록 한 강요는 메이킹필름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확인됐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했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고,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한 사실과 관련해서는 메이킹 필름이 제작된 사실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고,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 伊 축구스타 파올로 로시 장례 도중 자택에 도둑, 시계 등 털어

    伊 축구스타 파올로 로시 장례 도중 자택에 도둑, 시계 등 털어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축구 스타 파올로 로시의 장례식이 12일 거행됐는데 그 동안 자택에 도둑이 들어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고인의 미망인 페데리카 카펠레티가 북동부 비센차에서 거행된 장례식을 마친 뒤 토스카나의 자택에 돌아오니 도둑이 침입한 흔적이 있고 고인이 차던 시계와 현금 등을 털어 달아난 뒤였다고 이탈리아 ANSA 통신에 털어놓았다. 고인은 생전에 유기농 회사를 운영하던 피렌체 남동쪽 발담브라 지역을 굽어 보는 휴양지 포지오 센니나의 농가에 아내, 딸들과 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전국적으로 추모 열기가 번졌는데 도둑들은 절도에 좋은 기회를 맞았다고 생각한 셈이었다. 로시는 스페인월드컵 6골을 포함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48경기에 출전해 20골을 기록했으면 비센차와 유벤투스 등의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장례식은 프로축구 세리에A 비센차의 연고지에서 열려 수천명의 추모객들이 존경하던 레전드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르코 타르델리, 장카를로 안토뇨니, 안토니오 카브리니, 풀비오 콜로바티 등 스페인월드컵 우승 당시 동료들이 그의 관을 산타마리아 안눈시아타 성당까지 운구했다. 카브리니는 장례식 도중 “팀 동료를 잃었을 뿐아니라 친구이자 형제를 잃었다”면서 “함께 싸웠고 이겼으며 때로는 졌다. 절망을 앞두고도 스스로를 늘 추스렸다. 우리는 그룹의 일원이었으며 그 그룹은 우리 그룹이었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일찍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관은 비센차의 홈 구장인 스타디오 로미오 멘티에 잠깐 들러 팬들이 꽃을 바치고 추모의 예를 갖출 수 있었다. 이날 이탈리아 전역의 축구 경기에는 선수들이 팔에 검은 휘장을 두르고 출전했고 킥오프 전 1분 동안 묵념을 올렸다. 전광판에는 “영웅은 절대 죽지 않는다”와 “안녕 파올로” 문구가 떠올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란 핵 과학자 시신 운구

    이란 핵 과학자 시신 운구

    이란 수도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영묘에서 29일(현지시간) 군인들이 테러 공격에 숨진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30일 열리는 그의 장례식에는 군 고위 지휘관들과 가족들이 참석한다. 테헤란 로이터 연합뉴스
  • 마라도나 관 뚜껑 열어놓고 엄지 척, 법적 조치 예고에 살해 위협

    마라도나 관 뚜껑 열어놓고 엄지 척, 법적 조치 예고에 살해 위협

    “그가 이 잔인한 행동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 가만있지 않겠다.”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관을 운구하던 남성들이 법정에 서게 될 전망이다. 고인의 관 옆에서 찍은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면서 엄청난 비난이 일고,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 마라도나의 관이 대통령궁 로사 카사다에 안치됐을 때 공개된 두 장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는데 사진 속의 세 남성은 관 옆에 서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뚜껑이 열린 관에 시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남성들은 엄지를 치켜 세우거나 옅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도를 넘은 인증샷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분노를 자아냈다. 마라도나의 변호인인 마티아스 모를라는 트위터에 사진 속 남성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공유하면서 “그가 이 잔인한 행동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 가만있지 않겠다”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48)와 그의 아들, 다른 남성으로 이들은 곧바로 장례업체에 의해 해고됐다. 페르난데스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사진을 찍을 계획도 없었고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될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용서를 빈다”고 고개를 숙인 그는 “운구를 준비하던 중에 누군가 나를 불러서 고개를 들었고 내 아들은 젊은 애들이 그러듯이 엄지를 들었는데 사진이 찍힌 것”이라며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얼굴과 이름이 모두 공개된 페르난데스는 마라도나의 팬들로부터 살해 위협, 손목을 부러뜨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테르날 지구에서 영업을 하는 세펠리오스 피니에르 장례업체 대표 마티아스 피촌은 “오랫동안 마라도나 집안과 거래를 해온 우리로서도 아주 황망하다”면서 “우리를 믿고 장례를 맡긴 것인데 75세 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 우리는 절망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망인이 된 클라우디아 빌라파네에게도 이 일을 얘기했으며 당연히 “그녀도 매우 화를 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마라도나 유족이 이 일을 법적으로 문제 삼을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어서 이들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도나는 이달 초 뇌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2주 만인 지난 25일 티그레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으며, 대통령궁에 관이 안치돼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다음날 저녁 공원묘지의 부모 묘 옆에 안장됐다. 장례를 서두르는 바람에 조문 일정을 단축했고 이를 모른 채 긴 시간 줄을 서 기다렸던 이들이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포토]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공동묘지로 운구된 마라도나의 관

    [포토]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공동묘지로 운구된 마라도나의 관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베야 비스타 공동묘지에서 전날 별세한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관을 고인의 유족과 친구들이 운구하고 있다. 마라도나는 심장마비로 60세를 일기로 사망했으며 부모가 안장된 이곳에서 영면한다. AFP 연합뉴스
  • 독립유공자 조종희·나성돈 지사 유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독립유공자 조종희·나성돈 지사 유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해외 독립유공자 고 조종희·나성돈 지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13일 “조종희·나성돈 지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오는 유해 봉영식을 오는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두 지사는 항일 독립운동과 광복군 활동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1990년에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받았다. 그동안 미국에 거주하다 올해 작고했다. 조 지사는 평안남도 순천 선소국민학교에 부설된 청년훈련소에서 일본인 교련지도원이 한국인 청년의 훈련을 빙자해 비인도적 구타 및 폭행을 자행하자 독립운동에 투진했다. 1943년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순국회’를 결성하고, 청년훈련소 징병 2기 훈련생 중 40여명을 포섭해 조직을 강화했다. 1944년 일제에 의해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나 지사는 1944년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중국 화중 지구에서 지하공작대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국내진입작전 수행을 위해 ‘입황특수훈련반’에 편입돼 훈련 도중 광복을 맞이했다. 정부는 공적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조 지사와 나 지사는 지사는 광복 이후 미국으로 이민해 각각 지난 4월과 지난 6월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봉영식은 ‘당신이 꿈꾼 독립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초청 인원을 축소하여 유족, 정부 주요인사 등 50여 명이 참석한다. 행사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참석해 유해 운구, 국민의례, 헌화와 분향, 건국훈장 헌정, 봉영사, 추모 공연, 유해 봉송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어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봉송해 오는 17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6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93년 오슬로 협정 이끈 사에브 에레카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93년 오슬로 협정 이끈 사에브 에레카트

    30년 넘게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이끈 사에브 에레카트가 코로나19에 스러졌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이었으며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고문인 에레카트가 10일(이하 현지시간) 예루살렘의 하다사 병원에서 65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그의 시신은 몇 시간 뒤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한 병원으로 운구됐다. 앞으로 사흘 동안 애도 기간이 선포돼 고인이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에 기울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지난달 8일 코로라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열하루 뒤 예리코에 있는 자택에서 상태가 악화돼 이스라엘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다. 의료진은 그가 3년 전에 폐 이식 수술을 받아 면역력이 약하고 박테리아 감염, 나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의학적으로 유도된 혼수 상태(코마)에 있었다. 고인은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탄생시키고 이스라엘의 1967년 점령 이후 처음으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자치할 수 있는 길을 연 오슬로 협정을 타결하는 데 주축적인 역할을 했다. 아바스 수반은 “우리가 존경하는 형제이자 친구이며 위대한 전사인 사에브 에레카트 박사를 잃게 돼 팔레스타인과 우리 인민의 커다란 상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국가가 병존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했으며 최근 팔레스타인의 의사를 듣지 않고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관계를 정상화한 데 커다란 목소리로 비판해왔다. 지난 8월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에 합의하자 “두 국가 해법을 말살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미국이 “문제의 일부이며 점점 더 중동에서 부적절해진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서안,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점령에 대해 국제 제재와 점령지에서 이스라엘 기업 운영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그는 마드리드, 오슬로, 워싱턴, 캠프 데이비드, 예루살렘 등에서 30년 넘게 협상에 나섰는데 늘 돋보이는 얼굴이었다. 영어가 유창해 이따금 라말라 사무실이나 예리코 자택으로 외교관들과 취재진을 불러 브리핑을 하곤 했다. 일생의 목표였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목표가 암울해지는 시점에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스라엘 병원에서 숨졌다는 사실을 아프게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과의 오랜 협력을 중단해 팔레스타인 환자의 동예루살렘 이송과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 받는 일을 중단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고인은 195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예리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 입학, 국제관계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을 땄다. 서안으로 돌아와 나블루스에 있는 알나야 대학에서 가르친 뒤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브래드포드 대학에서 분쟁 해결 및 평화를 전공해 1983년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신문 알쿠드스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학문의 대화를 촉구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이스라엘 학생들을 알나야 대학 자신의 강좌에 초대하곤 해 상당한 논란이 벌어지게 했다. 2004년 세상을 떠난 야세르 아라파트가 1991년 그에게 평화협상을 해보라고 제안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참여한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팔레스타인 부대표로 참가한 것이 첫발이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오슬로 협정을 성사시키면서 협상 대표로 올라서 2000년 아라파트 수반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이끌어 이듬해 타바 협상을 완결했으며 2007년 애나폴리스 국제회의에서는 아바스 수반과 함께 협상을 이끌었다.이 모든 만남은 국경이나 예루살렘, 난민 문제 등 “최종 지위”에 관한 이슈들을 합의하지 않고 나중에 논의할 문제로 미뤄뒀다는 비판도 있다. 고인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지방정부 장관으로 일했으며 입법위원회에서 예리코를 대표하기도 했다. 2009년 PLO의 최고 정책을 수립하는 집행위원회 와 아바스의 파타 운동 중앙위원회에 선출됐다. 6년 뒤에는 PLO 사무총장에 올랐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다. 2012년 심장마비를 겪었고 2017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병원에서 폐를 이식받았다. 슬하에 2남 2녀를 남겼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유엔 중동특사는 “에레카트의 가족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며 “당신(에레카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결코 협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애도했다.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그(에레카트)의 죽음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중동 평화 협상에 커다란 손실”이라며 슬퍼했다. 압둘라 요르단 국왕도 이날 아바스 수반과 전화 통화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멋쟁이 희극인 기억할게”…박지선 애도 속 발인 엄수

    “멋쟁이 희극인 기억할게”…박지선 애도 속 발인 엄수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이 36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 영면에 들어갔다.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5일 오전 9시에 치러진 박지선과 모친의 발인식에는 유족과 동료 개그맨 등이 참석했다. 발인식은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2시간 앞당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운구 차량은 영결식장 밖을 빠져나와 고인이 몸담았던 KBS 건물 등을 거쳐 인천가족공원으로 향했다. 신봉선, 박성광, 허경환, 박미선 등 동료들이 발인에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2일부터 4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빈소에는 동료 연예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송은이, 유재석, 오나미, 김민경 등 개그맨 선·후배 외에도 배우 박정민, 박보영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추모 물결은 계속됐다. 고인의 동기로 ‘개그콘서트’에서 남다른 호흡을 보여줬던 박성광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처럼 환한 웃음을 가진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을 기억하겠다”면서 “나중에 만나서 같이 또 개그 하자”고 추모했다. 절친한 사이였던 배우 이윤지도 박지선에게 쓰는 편지를 올리며 “답장 줄거지? 꿈에서라도 부탁해”라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2007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박지선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을 진행하지 않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화성 반도체 25분 머물러… “李회장처럼 ‘승어부’로 효도하길”

    화성 반도체 25분 머물러… “李회장처럼 ‘승어부’로 효도하길”

    ‘한국 경제의 거인’이 반도체의 미래를 바라보며 영원한 잠에 들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사업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이날 오전 11시 고인을 태운 운구차가 화성사업장 정문에 나타나자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 1000여명이 사업장 내 길가에 모여들었다. 운구차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하나둘씩 나와 3000여 송이의 국화를 나눠 든 직원들은 운구차가 지나가자 고개 숙여 ‘회장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애도의 발걸음들이 늘어나면서 2㎞에 이르는 화성사업장 내 도로 양쪽에 직원들이 4~5줄로 겹겹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 차량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영상에서 생전 화성사업장을 찾은 이 회장의 모습이 등장하자 일부 직원들은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화성사업장이 마지막 출근지가 된 것은 이 회장이 ‘세계의 삼성’을 일구게 한 핵심 생산기지이자 삼성 반도체의 미래를 심은 곳이기 때문이다.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는, 당시로선 ‘무모한 결단’을 내린 고인은 이곳에서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신화를 써 내려갔다. 1983년 직접 해당 사업장 부지를 정하고 착공식, 준공식 등의 행사를 챙길 정도로 애정과 공을 들였다. 이날 운구 행렬은 이전 행선지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한남동 자택, 집무실이 있는 이태원동 승지원 등은 정차하지 않고 지나간 반면 화성사업장에서는 25분간이나 머무르며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화성사업장은 또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라는 미래를 키워 가는 중심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메모리반도체는 독보적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133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부회장, 부인 홍라희씨 등 유가족들은 고인이 2010년 기공식, 2011년 준공식에 직접 참여해 환하게 웃으며 직원들을 격려했던 16라인 앞에서 모두 하차했다. 그리고 배웅 나온 임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은 이 회장이 첫 삽을 떴던 16라인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나와 고인을 기렸다. 앞서 주요 그룹 총수 중 가장 먼저 고인의 빈소를 찾았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영결식에도 참석해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이날 이 회장의 종착지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의 가족 선영이었다.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묻힌 곳으로 장지로 결정된 데는 부인 홍씨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된 영결식에서는 ‘무한탐구를 즐긴 소년 이건희’부터 ‘아버지를 뛰어넘은 기업인 이건희’까지 고인의 면면이 조망됐다. 고인의 50년지기 서울사대부고 동창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추모사에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 회장보다 ‘승어부’(勝於父)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 승어부는 아비를 이긴다기보다 아비를 능가하는 효의 첫걸음”이라며 “부친 어깨너머로 배운 이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듯 이 부회장이 새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의 사람들’로 꼽히는 이수빈 삼성 상근고문(전 삼성생명 회장)은 약력 보고를 하면서 “고인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회고하던 중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2014년 5월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하다 지난 25일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반도체로 ‘마지막 출근’… 한국경제 거인, 영원히 잠들다

    반도체로 ‘마지막 출근’… 한국경제 거인, 영원히 잠들다

    ‘한국 경제의 거인’이 반도체의 미래를 바라보며 영원한 잠에 들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사업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이날 오전 11시 고인을 태운 운구차가 화성사업장 정문에 나타나자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 1000여명이 사업장 내 길가에 모여들었다. 운구차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하나둘씩 나와 3000여 송이의 국화를 나눠 든 직원들은 운구차가 지나가자 고개 숙여 ‘회장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애도의 발걸음들이 늘어나면서 2㎞에 이르는 화성사업장 내 도로 양쪽에 직원들이 4~5줄로 겹겹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 차량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영상에서 생전 화성사업장을 찾은 이 회장의 모습이 등장하자 일부 직원들은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화성사업장이 마지막 출근지가 된 것은 이 회장이 ‘세계의 삼성’을 일구게 한 핵심 생산기지이자 삼성 반도체의 미래를 심은 곳이기 때문이다.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는, 당시로선 ‘무모한 결단’을 내린 고인은 이곳에서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신화를 써 내려갔다. 1983년 직접 해당 사업장 부지를 정하고 착공식, 준공식 등의 행사를 챙길 정도로 애정과 공을 들였다. 이날 운구 행렬은 이전 행선지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한남동 자택, 집무실이 있는 이태원동 승지원 등은 정차하지 않고 지나간 반면 화성사업장에서는 25분간이나 머무르며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화성사업장은 또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라는 미래를 키워 가는 중심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메모리반도체는 독보적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133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부회장, 부인 홍라희씨 등 유가족들은 고인이 2010년 기공식, 2011년 준공식에 직접 참여해 환하게 웃으며 직원들을 격려했던 16라인 앞에서 모두 하차했다. 그리고 배웅 나온 임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은 이 회장이 첫 삽을 떴던 16라인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나와 고인을 기렸다.이날 이 회장의 종착지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의 가족 선영이었다.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묻힌 곳으로 장지로 결정된 데는 부인 홍씨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된 영결식에서는 ‘무한탐구를 즐긴 소년 이건희’부터 ‘아버지를 뛰어넘은 기업인 이건희’까지 고인의 면면이 조망됐다. 고인의 50년지기 서울사대부고 동창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추모사에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 회장보다 ‘승어부’(勝於父)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 승어부는 아비를 이긴다기보다 아비를 능가하는 효의 첫걸음”이라며 “부친 어깨너머로 배운 이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듯 이 부회장이 새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전 삼성생명 회장)은 약력 보고를 하면서 “고인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회고하던 중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앞서 주요 그룹 총수 중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영결식에도 참석해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고인은 2014년 5월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하다 지난 25일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거인 이건희, 반도체 미래 조망하며 잠들다

    거인 이건희, 반도체 미래 조망하며 잠들다

    ‘한국경제의 거인’이 반도체의 미래를 바라보며 영원한 잠에 들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 사업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이날 오전 11시 고인을 태운 운구차가 화성 사업장 정문에 나타나자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 1000여명이 사업장 내 길가에 모여들었다. 운구차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하나둘씩 나와 3000여 송이의 국화를 나눠 든 직원들은 운구차가 지나가자 고개 숙여 ‘회장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애도의 발걸음들이 늘어나면서 2㎞에 이르는 화성 사업장 내 도로 양쪽에 직원들이 4~5줄로 겹겹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 차량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영상에서 생전 화성사업장을 찾은 이 회장의 모습이 등장하자 일부 직원들은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화성 사업장이 마지막 출근지가 된 것은 이 회장이 ‘세계의 삼성’을 일구게 한 핵심 생산기지이자 삼성 반도체의 미래를 심은 곳이기 때문이다.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는, 당시로선 ‘무모한 결단’을 내린 고인은 이 곳에서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신화를 써내려갔다. 1983년 직접 해당 사업장 부지를 정하고 착공식, 준공식 등의 행사를 챙길 정도로 고인이 애정과 공을 들였다. 그런 까닭인지 이날 운구 행렬은 이전 행선지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한남동 자택, 집무실이 있는 이태원동 승지원 등은 정차하지 않고 지나간 반면 화성 사업장에서는 25분간이나 머무르며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이 곳은 또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의 미래를 키워가는 중심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이 부회장은 이 곳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독보적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133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부회장, 홍라희 여사 등 유족들은 고인이 지난 2010년 기공식, 2011년 준공식에 직접 참여해 환하게 웃으며 직원들을 격려했던 16라인 앞에 모두 하차했다. 그리고 배웅나온 임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이 회장이 첫 삽을 떴던 16라인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나와 고인을 기렸다.이날 이 회장의 종착지는 수원 장안구 이목동의 가족 선영이었다.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묻힌 곳으로 장지로 결정된 데는 홍 여사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7시반부터 1시간가량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된 영결식에서는 ‘무한탐구를 즐긴 소년 이건희’부터 ‘아버지를 뛰어넘은 기업인 이건희’까지 고인의 면면이 조망됐다. 고인의 50년지기 서울사대부고 동창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추모사에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 회장보다 ‘승어부’(勝於父)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 승어부는 아비를 능가하는 효의 첫걸음”이라며 “부친 어깨 너머로 배운 이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듯 이 부회장이 새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영결식에는 이 회장 비서실 출신인 이학수 전 부회장, 최지성 전 부회장,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 등 ‘이건희 사람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약력보고를 하면서 “고인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회고하던 중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지난 2014년 5월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하다 지난 25일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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