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우화
    2026-02-14
    검색기록 지우기
  • 계대
    2026-02-14
    검색기록 지우기
  • 탑승
    2026-02-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48
  • [모바일 픽!] “난 개타고 다닌다냥”…개와 고양이의 우정

    잘 알려진 고사성어 중에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이 있다. 개와 원숭이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를 일컫는데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개와 고양이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캐나다 앨버타주에 사는 오스트레일리안 래브라두들종인 제시(3)와 고양이 코다의 우화같은 사연을 전했다. 이제 생후 4개월 된 고양이 코다의 취미는 제시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다. 주인 에밀리 아무브렉트(23)를 따라 대자연 트래킹에 나서면 마치 택시를 타듯 자연스럽게 제시 등에 올라타는 것이 코다의 취미이자 특기. 아무브렉트는 "코다는 새끼 고양이답게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활달한 성격"이라면서 "이에반해 제시는 매우 얌전하고 조용해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며 웃었다. 이어 "대부분의 개와 고양이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지만 제시와 코다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4개월 전 한 농장에서 구조된 코다는 이후 주인 아무브렉트와 제시의 보호 속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특히 고양이의 특성 탓인지 입양 4개월 만에 너무나 당당하게 '주인' 행세를 한다는 것이 아무브렉트의 설명. 아무브렉트는 "코다는 야외활동을 특히 좋아하는데 주위에 물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그 옆에 항상 제시가 있어 등에 태워주는등 보호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연상호 감독 “‘좀비 열차’ 속 불안과 공포, 혐오 일상화 사회와 닮았죠”

    연상호 감독 “‘좀비 열차’ 속 불안과 공포, 혐오 일상화 사회와 닮았죠”

    사회성 짙은 애니메이션 선보여 온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도전… 좁은 KTX 안에 수많은 메타포 담아 “어느 정도 대중성 있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덕분에 다음 작품에선 더욱 새로운 도전을 과감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국형 좀비물 ‘부산행’이 올해 첫 천만 관객을 향해 거침없이 고속 주행 중이다. 개봉 첫 주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됐다. 개봉 첫날 최다 관객(87만 2232명), 일일 최다 관객(128만 940명) 신기록에 이어 닷새 만에 531만 4655명(유료시사 56만명 포함)이 탑승했다. ‘명량’의 기록을 줄줄이 깨고 있다. ‘부산행’으로 처음 실사 영화에 도전한 연상호(38) 감독은 “그간 연출한 장편 애니메이션 두 편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합쳐도 관객 4만명이 되지 않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산행’은 서울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다가 순식간에 좀비 바이러스에 뒤덮인 KTX 내부가 주무대다. 승객들은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좀비는 그동안 한국 영화와 큰 인연이 없었던 소재. 이미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비 2000억원이 넘는 대작을 만들어 관객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마당에 한국에선 블록버스터 수준인 100억원을 들였다고는 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애초 이 작품을 기획했을 때 모티브로 잡았던 영화가 코맥 매카시 원작의 ‘더 로드’와 스티븐 킹 원작의 ‘미스트’예요. 한정된 공간에서 스릴이 넘치는 작품이죠. 좀비와 열차, 그 안에 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콘셉트만으로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처음엔 저예산으로 생각했는데 액션 부분이 강화되며 작품 규모가 커졌죠.” 감독 나름으로는 철저하게 상업 영화로 찍었다고 하지만 사회성 짙은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온 연 감독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다. 좁디좁은 KTX 안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메타포(은유)가 넘쳐난다. 바로 이 지점이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 했냐는 질문에 연 감독은 장면을 하나 꼽았다. “간신히 안전한 15호칸으로 넘어온 주인공 일행이 내쫓기는 장면을 좋아해요. 금방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공포심 때문에 소리를 지르죠. 불안과 공포로 혐오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잘 보여 준 장면인 것 같아요. 영화엔 두 가지 공포가 있어요. 첫째는 좀비고, 두 번째는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믿을 만한 존재도 없이 고립됐다는 공포죠. 수많은 재난을 겪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의 기억, 불신, 공포를 담고 싶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의 실사 영화 작업은 국내에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아이디어를 낸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메가폰을 잡는 게 적절한지 고민했을 뿐 도전 자체가 두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부산행’ 성공의 공을 주변에 돌렸다. “훌륭한 스태프 덕택에 부담감은 별로 없었어요. 연출, 촬영, 미술 등등 모두 제 애니를 좋아하던 분들이 맡았죠. 본인들이 좋아하는 감독이 실사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해야겠다는 마음들이 컸던 것 같아요.”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부산행’의 성공이 애니메이션 쪽으로도 이어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부산행’의 앞 이야기를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다음달 22일 개봉한다. 연 감독이 연출했다. “그런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죠. 별개 산업이니만큼 각 분야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해 봐야죠.” 차기작으로는 재차 실사 영화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행’ 촬영을 끝내고 써 오던 시나리오가 몇 개 있어요. 그중에 하나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사 영화에선 잘 안 하던 시도, 장르적으로도 새로운 것, 기존의 연상호와도 차별되는 것을 해 보려고요. 제 단편 중 ‘사랑은 단백질’이라는 게 있는데 그 작품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좀비열차 속에 한국사회의 불안과 공포 담고 싶었다”

    “좀비열차 속에 한국사회의 불안과 공포 담고 싶었다”

     “어느 정도 대중성 있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덕분에 다음 작품에선 더욱 새로운 도전을 과감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국형 좀비물 ‘부산행’이 올해 첫 천만 관객을 향해 거침없이 고속 주행 중이다. 개봉 첫 주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됐다. 개봉 첫날 최다 관객(87만 2232명), 일일 최다 관객(128만 940명) 신기록에 이어 닷새 만에 531만 4655명이 탑승했다. ‘명량’의 기록을 줄줄이 깨고 있다.  ‘부산행’으로 처음 실사 영화에 도전한 연상호(38) 감독은 “그간 연출한 장편 애니메이션 두 편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합쳐도 관객 4만명이 되지 않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산행’은 서울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다가 순식간에 좀비 바이러스에 뒤덮인 KTX 내부가 주무대다. 승객들은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좀비는 그동안 한국 영화와 큰 인연이 없었던 소재. 이미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비 2000억원이 넘는 대작을 만들어 관객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마당에 한국에선 블록버스터 수준인 100억원을 들였다고는 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애초 이 작품을 기획했을 때 모티브로 잡았던 영화가 코맥 매카시 원작의 ‘더 로드’와 스티븐 킹 원작의 ‘미스트’예요. 한정된 공간에서 스릴이 넘치는 작품이죠. 좀비와 열차, 그 안에 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콘셉트만으로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처음엔 저예산으로 생각했는데 액션 부분이 강화되며 작품 규모가 커졌죠.”  감독 나름으로는 철저하게 상업 영화로 찍었다고 하지만 사회성 짙은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온 연 감독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다. 좁디좁은 KTX 안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메타포(은유)가 넘쳐난다. 바로 이 지점이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 했냐는 질문에 연 감독은 장면을 하나 꼽았다. “간신히 안전한 15호칸으로 넘어온 주인공 일행이 내쫓기는 장면을 좋아해요. 금방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공포심 때문에 소리를 지르죠. 불안과 공포로 혐오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잘 보여 준 장면인 것 같아요. 영화엔 두 가지 공포가 있어요. 첫째는 좀비고, 두 번째는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믿을 만한 존재도 없이 고립됐다는 공포죠. 수많은 재난을 겪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의 기억, 불신, 공포를 담고 싶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의 실사 영화 작업은 국내에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아이디어를 낸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메가폰을 잡는 게 적절한지 고민했을 뿐 도전 자체가 두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부산행’ 성공의 공을 주변에 돌렸다. “훌륭한 스태프 덕택에 부담감은 별로 없었어요. 연출, 촬영, 미술 등등 모두 제 애니를 좋아하던 분들이 맡았죠. 본인들이 좋아하는 감독이 실사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해야겠다는 마음들이 컸던 것 같아요.”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부산행’의 성공이 애니메이션 쪽으로도 이어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부산행’의 앞 이야기를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다음달 22일 개봉한다. 연 감독이 연출했다. “그런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죠. 별개 산업이니만큼 각 분야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해 봐야죠.”  차기작으로는 재차 실사 영화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행’ 촬영을 끝내고 써 오던 시나리오가 몇 개 있어요. 그중에 하나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사 영화에선 잘 안 하던 시도, 장르적으로도 새로운 것, 기존의 연상호와도 차별되는 것을 해 보려고요. 제 단편 중 ‘사랑은 단백질’이라는 게 있는데 그 작품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연극, 밀양에 뿌리내리다

    연극, 밀양에 뿌리내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의 지역 대표 공연 예술제로 선정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오는 27일 개막한다. 16회째를 맞는 올해 축제의 주제는 ‘연극, 지역에 뿌리내리다’다. 국내 50편, 해외 3편(일본·독일·프랑스) 등 53편이 다음달 7일까지 밀양연극촌,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밀양 해천 공연장 등 경남 밀양시 곳곳에서 매일 공연된다. 개막작은 밀양연극촌 상주극단인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의 드라마틱한 삶과 예술을 다룬 작품으로, 1991년 이윤택 연출, 김갑수 주연으로 초연돼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연희단거리패는 ‘오구’, ‘백석우화’, ‘방바닥 긁는 남자’ 등도 무대에 올린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셰익스피어 작품들도 선보인다. 전 세계 11개의 ‘햄릿’에 선정된 연희단거리패의 ‘햄릿’,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 극단 서울공장의 ‘햄릿 아바따’, 극단 가마골의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의 하녀’, 우리극연구소의 ‘하마터면 남자와 남자가 결혼할 뻔했어요’ 등 국내 극단들이 새롭게 조명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삼신할매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험을 담은 ‘삼신할매와 일곱아이들’, 엉뚱하지만 사랑스런 어중씨가 하루 동안 겪는 유쾌하고도 기이한 모험담을 그린 ‘어중씨 이야기’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극도 풍성하다. 연출가 이윤택이 조직위원장을,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오달수가 홍보 대사를 맡았다. 이 위원장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지역의 작은 축제에서 시작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 축제로 발전했다”며 “이번 축제를 통해 지역민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축제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055)355-2308.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인·건축가 모두 감탄한 ‘잘 늙은 절’ 이상의 가치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인·건축가 모두 감탄한 ‘잘 늙은 절’ 이상의 가치

    전북 완주의 화암사가 오늘날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시인 안도현의 역할이 작지 않다. 1997년 펴낸 ‘그리운 여우’라는 시집에 담긴 ‘구름에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라는 구절이 바로 화암사를 가리킨다. 이후 산간의 절집을 두고 곱게 늙었다느니 하는 표현이 흔해진 것은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이 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대둔산 자락의 불명산 화암사를 찾아가려면 금산과 전주를 잇는 17번 국도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농로와 다름없는 작은 샛길을 한참 달리면 절골 주차장이 나타난다. 화암사까지는 다시 20분 남짓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라는 시 구절처럼 절은 모습을 드러낸다. 화암사를 두고 한 건축가는 ‘환상적인 입지와 드라마틱한 진입로, 그리고 잘 짜여진 전체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건축’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시인에 이어 건축가까지 다투어 감탄하는 절이라면 무언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화루 왼쪽의 쪽문으로 들어서 절 마당에 서면 허세를 부릴 일도 없지만, 체모도 잃을 수는 없다는 듯 품격있는 절집의 면모가 눈에 들어온다. ●화암사 극락전, 우리나라 유일 ‘하앙식 구조’ 화암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주관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요소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국 건축의 전형인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갖고 있다. 처마를 길게 빼내고자 할 때 쓰는 이런 구조는 7세기 초반의 나라 호류지(法隆寺)를 비롯해 일본 건축에는 흔하다. 화암사 극락전이 없었다면 ‘일본 건축은 중국에서 곧바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일본 학계 일부의 주장도 반박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암사 극락전이 하앙식 구조를 썼다고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남아 있는 절집 가운데 하앙식 구조가 드문 것은 우리 조상들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조화로운 처마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극락전 현판이었다. 극(極)·락()·전(殿) 세 글자를 각각 한 글자씩 새겨 걸어 놓았다. 물론 이렇게 만든 것도 지붕 부재를 바깥으로 길게 내밀도록 하는 하앙식 구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적 아름다움이나 건축적 가치가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불경의 필사(筆寫) 및 판각(板刻)의 중심지로 화암사는 매우 중요하다. 극락전에서 보아 왼쪽에는 한 칸짜리 작은 사당이 보인다. 조선 초기의 무신 성달생(1376~1444)의 위패를 모신 철영재(?英齋)다. 당대 명필로 이름을 떨친 그는 태종 5년(1405)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화암사에 머물며 법화경을 필사했다. 성달생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할아버지이다. 세종은 태종의 후궁 신녕궁주 신씨가 ‘법화경’을 금() 글자로 필사하는데 정서하는 역할을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불교에 조예가 매우 깊었던 그는 당시 왕실의 불사(佛事) 대부분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성달생은 당시 많이 읽히고 있던 불경을 필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세종 6년(1424)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날 ‘육경합부’(六經合部)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불서(佛書)로 ‘금강경’, ‘화엄경’, ‘능엄경’, ‘아미타경’, ‘법화경’, ‘관세음보살예문’의 주요 대목이 한 권에 담겨 있다. 화암사에서 멀지 않은 안심사에서 처음 간행된 이후 폭발적인 수요로 오늘날까지 전하는 판본만 50종 남짓에 이른다. 모두 성달생의 원본을 판각한 것이니 조선시대 불경은 그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조선 불경 간행의 중심지… 은중경·장수경 판각 성달생은 이런 인연으로 화암사에 막대한 시주도 약속하는데, 중창 불사는 세종 22년(1440) 무렵 마무리 짓게 된다. 화암사는 기념이라도 하듯 이듬해부터 ‘은중경’과 ‘장수경’을 판각했고, 세종 25년(1443)에는 성달생이 직접 필사한 ‘능엄경’과 ‘법화경’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니 화암사는 안심사와 함께 조선시대 불경 간행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절이다. 철영재 현판 글씨는 자하 신위(1769~1845)가 썼다. 성달생과는 수백 년의 시차가 있는 조선 후기 문인이다. 추사 김정희와 비교되는 시(詩)·서(書)·화(畵) 이 삼절(三絶)로 평가받는 자하는 ‘금강경’을 직접 쓰고 감상을 적은 ‘서금강경후’(書鋼經後)를 남겼을 만큼 불교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성달생이 필사한 경전을 탐독하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 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자하가 철영재 현판을 쓴 직접적 이유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철영재와 자하가 남긴 현판의 존재는 화암사가 과거에는 결코 산중에 숨어 있는 작은 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깨진 용광로 사회/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깨진 용광로 사회/구본영 논설고문

    며칠 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도심. 백인 경찰의 흑인 총격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 저격범들이 경찰관 12명을 조준 사격해 5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현장 부근에서 벌어진 흑백 간 증오범죄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흑인 인권 보호를 위한 민권법도 본래 케네디가 제안했지 않나. 미국 사회에서 경찰과 범죄 용의자 간 총격전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하지만 경찰이 살의를 품은 저격수로부터 배후에서 조준 사격을 당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범인과 저격을 당한 경찰관의 피부색이 흑백으로 갈렸다는 사실이 미 조야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오죽했으면 폴란드를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찰스턴 흑인교회 저격범이 백인을 대표하지 않듯 댈러스에서 공격을 자행한 미치광이가 흑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흑백 갈등의 확산을 우려했겠는가. 미국은 건국 이래 이주자들을 받아들여 활력을 키워 온 나라다. ‘멜팅 포트’(용광로)란 말처럼 다양한 인종들의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로 녹여내어 온 사회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그 용광로의 균열 조짐이 확연하게 드러난 셈이다. 백인 경관들이 흑인 범죄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경시하면서 촉발된 불상사이지만, 그 이면엔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면 그렇다. 용광로의 파열음은 요란하지만, 미 정치권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는 “백인들이 흑인들과 마음으로 공감해 달라”고 호소했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미국인이 집과 거리에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법질서 회복을 강조했다. 하지만 모두 근본 해법 없이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흑백 갈등이 ‘총기 소지의 자유’라는 전통과 맞물려 엄청난 비극을 낳고 있는데도…. 최근 미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백인의 고령화가 두드러졌다. 백인은 55세 인구가 가장 많았고 아시아계는 33세, 흑인은 24세, 히스패닉은 8세가 많았다. 히스패닉 인구의 급증세로 몇십 년 내에 비(非)백인이 백인 인구를 앞지를 전망이라고 한다. 하긴 어차피 흑백인 모두 미국의 원주민은 아니다. 다음은 신대륙의 흑백 이주민들끼리 피차 텃세 부리지 말고 화합해야 함을 일깨우는 현대판 우화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 전 우주인들이 서부 사막에서 훈련 중일 때다. 한 원주민 노인이 다가와 “우리 부족은 달에 신성한 정령들이 산다고 믿는다”며 그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불러 줬다. 나중에 통역에게 물어보니 이런 뜻이었다. “이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마세요.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라고.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 나오는 실화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글로벌 시대] 꽃과 벌, 전갈과 개구리/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글로벌 시대] 꽃과 벌, 전갈과 개구리/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꽃과 벌은 윈윈의 대명사다. 꽃은 벌을 부르고 벌은 꽃을 찾는다. 서로 끌리는 관계다. 벌은 꿀을 얻고 꽃은 씨를 맺는다. 꽃은 지구를 뒤덮었고 벌은 개체 수를 늘렸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공생 덕분이다. 지난 30년 미국과 중국이 그랬다. 우선 경제관계. 중국은 미국이 필요한 제품을 만들었다. 미국은 싼값에 사갔다. 중국은 돈을 벌었고 미국은 물가 걱정을 덜었다. 중국은 번 돈을 쓰지 않고 미국 국채를 사 모았다. 미국은 그 덕에 장기 저금리를 유지했다. 꽃과 벌의 관계와 판박이다. 다음은 국제관계. 중국은 미국이 짜 놓은 국제질서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미국은 개입주의 외교정책과 ‘워싱턴 컨센서스’로 유일 패권 국가를 자처했다. 양국은 충돌은커녕 갈등에 빠질 일도 거의 없었다. 역시 꽃과 벌의 관계다. 세상은 나뉜 지 오래면 합치고, 합친 지 오래면 나뉘는 법이라고 했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제국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을 그려 낸 삼국지의 첫 구절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양국의 경제적 동거를 도마에 올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서 빌린 돈으로 집을 사고팔다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졌다”며 ‘위험한 동거’를 꼬집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빚잔치 문화와 중국의 자린고비 정신이 만들어 낸 비정상적 합작품인 셈이다. 참고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외교정책의 덕목으로 삼던 중국은 이제 “내 몫을 달라”고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표현처럼 “500㎏이나 되는 판다가 계속 자는 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는 아시아에서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국을 수영장에 불쑥 나타난 코끼리에 비유했다. 그 수영장에는 또 다른 거대 코끼리(미국)가 이미 앉아 있어 충돌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더이상 꽃과 벌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당장 극한 대립과 충돌을 감수하지는 않으려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일방적으로 고립시키기 어렵다. 중국은 미국에 정면 대응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상호 의존도도 높다. 양국은 이미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관계가 됐다. 그럼에도 우려가 되는 것은 프랑스 작가 장 드 라 퐁텐의 우화 ‘전갈과 개구리’ 때문이다. “개구리가 강을 건너려는데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전갈이 나타나 등에 좀 태워 달란다.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으로 자기 등을 찌를 수 있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전갈은 그러면 둘 다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갈이 개구리 등에 올라타는데 강 중간에서 물살이 거세지자 전갈이 갑자기 개구리를 찌르고 만다. 개구리가 왜 찔렀느냐고 소리치자 전갈의 대답이 이랬다. “미안해. 상황이 급하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본성을 어쩔 수 없었어.” 개구리는 몸에 독이 퍼져 죽었고 개구리가 죽으면서 전갈도 물에 빠져 죽었다. 의도적 충돌보다는 본능적 우발성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다. “강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며 약자는 자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고통받는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말이다. 약자가 되지 않으려면 미국, 중국과 계속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의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를 고려한 복수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
  • “후후후~ 살아 있길 잘했어”… 짧은 글, 긴 위로

    “후후후~ 살아 있길 잘했어”… 짧은 글, 긴 위로

    ‘이따금은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자. 두려울 때 슬플 때 겁이 날 때 긴장될 때 그리고 외롭다고 느낄 때. 몸에 힘을 빼고 후후후.’(103쪽) 후후후, 편히 들숨과 날숨을 쉴 곳이 당신에겐 있는가. 의외로 생활 반경 안에 그럴 곳이 없다는 각성이 든다면 ‘후후후의 숲’으로 향해 보자. 실직자와 퇴직자, 휴학생, 취업준비생, 참사로 자식을 잃은 아주머니 등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이 작은 숲은 언제나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조경란(47) 작가가 위로의 공간, 안전한 땅이 필요한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후후후의 숲’ 같은 이야기 숲을 펼쳐냈다. 새 소설집 ‘후후후의 숲’(스윙밴드) 얘기다. 지난 1월 말부터 지난 6월 초까지 작가는 매일 두 시간씩 책상 앞을 지켰다. 책에 묶인 엽편소설 31편은 그 성실한 시간에 빚진 결과물이다. 한 편당 원고지 10매 안팎에 불과한 손바닥 소설들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장편의 작심이나 욕심과는 거리가 멀다. 현기증 날 정도로 현란한 서사나 허세 부린 문장 대신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작법과 문장으로 엮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비루한 일상과 고독한 마음 안쪽을 향해 “살아 있기를 잘했다!”고 다독여 준다.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 이후 3년 만에 전작 작품집을 낸 작가는 이번 책에 대해 “작가이자 독자로서 이야기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담은 책”이라고 했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한 말이 있어요.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 시를 쓰지만 나는 손바닥 소설을 썼다’고요. 오래도록 그 말이 남아 있던 터에 요즘 독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까를 고민하다 짧은 이야기를 썼죠. 짧지만 재미든 감동이든 의미도 있고 여운도 길고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쓰려니 더 힘들더라구요. 제대로 ‘훈련’했죠.”(웃음) ‘후후후의 숲’ 속 이야기에는 열패의식, 결핍, 외로움 등에 휩싸인 ‘나’ 같은 주인공들이 있다. 주목받지도 못할 글을 쓰고 결혼도 못하고 친구도 없지만 스스로를 ‘맥주의 여왕’이라 일컬으며 짐짓 웃어보는 ‘내’가 있고, 방금 해고 통고를 받고 ‘고객와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스마일 라인에 서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정화씨’가 있다. 회한과 좌절에 잠겨 있을 법도 하지만 툭툭, 털고 엷은 미소를 띠는 순간들이 대부분이다. 은퇴한 배트맨과 시강강사인 나, 어머니가 뭉쳐 혼자 지내는 어린이와 노인들을 돌보며 ‘긍정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시작이다’, 카프카의 단편 ‘변신’을 변형해 토끼로 변한 아버지와 그를 보는 딸이 관계의 벽을 허무는 ‘변신’ 등의 이야기는 경계 없는 상상을 천연덕스럽게 펼치면서 웃음과 따스한 기운을 더한다.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등 기존의 우화나 동화를 비튼 작품들은 이 시대의 우화라 이름 붙여도 좋겠다. “세월호 참사에, 세계 곳곳의 테러에 ‘안전한 땅’이 없는 요즘이죠. 하지만 한가지는 변함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 독자들이 이 책을 펼친 순간만큼은 ‘후후후의 숲’으로 들어온 순간처럼 ‘살아 있기를 다행이다’ 하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현대과학은 오랜 ‘불멸의 꿈’을 이뤄줄까?

    [송혜민의 월드why] 현대과학은 오랜 ‘불멸의 꿈’을 이뤄줄까?

    인간은 오래 전부터 불로장생, 즉 불멸을 꿈꿔왔다. 불로장생과 불멸은 오래 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육체의 영존 혹은 정신의 영생을 의미하며, 인간은 이를 이루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부터 극악무도한 방법까지 가리지 않고 찾아 헤맸다. 인간의 근원적 소망과도 같았던 불멸의 꿈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육체의 불멸과 정신의 불멸이 그것이다. 신화와 종교에서 시작된 불멸의 꿈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학을 도구로, 이제는 의학을 포함한 과학을 도구로 현실화되는 과정에 있다. ◆늙지 않고 무병장수하는 ‘육체적 불멸’ 그리스 신화와 중국의 도교 등 고대 종교나 철학에서는 대부분 육체의 불멸을 꿈꿨다. 육체가 존재해야 비로소 정신도 존재한다는 것이 불멸의 전제였던 것이다. 국가별로 불멸과 관련된 주요 역사를 보유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 및 미라와 ‘불로장생의 화신’으로도 여겨지는 중국 진시황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이란 곧 잠시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것으로 여겼다. 사후세계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영생을 누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미라를 만들었다. 파라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육신이 썩지 않도록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 자연의 섭리인 ‘부패’를 막기 위한 노력이 깃들여졌다. 피라미드 역시 파라오의 영생을 위한 ‘집’으로 활용되어야 했기에, 내부에는 파라오가 사후세계 여행 후에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생활도구 및 그의 몸종들이 함께 매장됐다. 중국 진시황(BC 259~BC 210)은 자신이 세운 제국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영원불멸할 것을 믿고 희망했다. 연나라 출신의 노생에게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해오게 하는 한편, 어린 아이들 수천 명을 이끌고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그의 신하가 불로초를 얻기 위해 들른 곳 중 한 곳이 제주도라는 전설과도 같은 얘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진시황과 함께 도교가 불로장생의 꿈을 강조한 대표적 종교로 꼽힌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에서 생겨난 도교는 민간신앙과 신선설, 점성 등의 법술과 무술적 신앙이 복합적으로 합쳐졌고, 도교가 꿈꾸는 이상향에는 불로장생이나 우화등선(羽化登仙ㆍ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름) 등이 포함돼 있다. 도교에서는 묘약을 얻거나 양생법 등의 수련을 통해 신선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무병장수를 통한 불멸의 꿈을, 종교적 이론 뿐만아니라 문화로서도 발전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러시아 출신의 메치니코프(1845~1916) 박사가 ‘생명연장의 꿈’이라고도 불리는 유산균 및 면역학의 기초를 세우면서 육체적‧의학적 측면의 불로(不老)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러한 미신과 신화, 종교에서 출발한 불로장생의 열망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그리고 탈 육체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정신의 불멸을 꿈꾸는 현대 과학 육체의 불로불사를 꿈꿨던 과거와 달리,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육체가 버릴 수밖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노화는 평균 26세부터 시작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세포분열이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생명이 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과학자들은 대체로 이 시기를 120세로 보고 있다. 이에 인간은 현대과학을 이용해 더욱 구체적인 ‘불멸의 현실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것은 고대와 유사하게 인간의 신체 일부 또는 전체를 미라보다 훨씬 과학적인 방법으로 보존하는 한편,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생을 위한 기술 개발 등을 포함한다. 예컨대 미국 애리조나 주의 앨코 생명재단은 법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이들의 시신을 액체질소를 활용해 냉동 보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이곳에는 시신 또는 뇌 147개가 냉동 보존돼 있으며, 이들은 먼 훗날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부패가 발생하지 않은 시신에 생명을 불어 넣어 ‘회생’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불멸 혹은 회생의 열망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역시 뇌다. 냉동 보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뇌의 신경망을 고스란히 보존한 뒤 이를 컴퓨터에 옮기면 죽어도 죽지 않은 삶의 영위가 가능하다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평행우주론을 창시한 세계적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인간에게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이미 개발됐다면서 “MRI를 이용한 뇌신경 도식화 기술이 성장하면 기억을 컴퓨터에 업로드하고 신경을 재현함으로써 영화 속 아바타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 인간의 인격과 기억은 가상현실과 아바타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으며 이것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오래도록 소통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심지어 인간이 사망한 뒤에도 이것은 가능하며, 곧 불멸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멸의 꿈’이 직면한 윤리적 문제 정신을 통한 불멸의 현실화는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케 한다. 생각이 몸의 주인인지, 몸이 생각의 주인인지가 혼란스럽다. 특히 가상현실을 통한 회생 또는 불멸은 가상현실과 그 안의 인물을 ‘실존’한다고 인정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둔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과학의 발전으로 미신이나 신화가 아닌 이전보다 더욱 냉철한 이성적 사고가 가능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스스로 불멸의 꿈에서 깨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살아보고자 하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인간의 오래된 꿈이 이뤄질 날,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Sergey Nivens / 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新국토기행] 섬 265개 모인 전남 완도

    [新국토기행] 섬 265개 모인 전남 완도

    전남의 서남단 끝자락에 자리한 완도군은 26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육지보다 12배가 넘는 바다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 큰 완도 체도를 비롯해 고금도, 약산도, 평일도(금일읍), 신지도, 노화도, 보길도, 청산도 등 55개의 유인도와 210개의 무인도가 있다. 푸른 남해 위에 마치 구슬을 뿌린 듯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완도군은 북서쪽에 있는 해남반도가 차디찬 북서풍을 막아주고 난류가 흘러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이 때문에 아열대 식물이 잘 자라 주도의 상록수림과 보길도 예송리의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또 완도읍 정도리 해변은 모래 대신 둥글게 잘 닳아진 갯돌이 펼쳐져 있어 보길도 예송리의 자갈밭 해안과 더불어 독특한 해변으로 유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언제나 티 없이 푸른 청산도와 항일운동의 성지 소안도, 사계절 휴양지로 각광받는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 충무공의 혼이 깃든 고금도, 신비한 약초가 자생하는 약산도, 우리나라 최대의 전복 산지인 노화도, 고산 윤선도의 숨결이 서린 보길도 등 군 전체가 보석같이 빛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구성돼 있다. 완도는 신석기시대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주는 조개무덤과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등이 산재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해 당과 일본은 물론 멀리 페르시아만까지 해상 항로를 열어 무역하는 등 해상 왕국의 시대를 개척했다. [볼거리] ●보길도 윤선도 원림… 조선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 선생이 병자호란으로 인해 제주로 향하다 보길도 절경에 매료돼 머물며 조성했다. ‘어부사시사’ 등 주옥 같은 문학작품이 이곳에서 창작됐다. 고산은 낙서재 앞 미산(薇山)의 이름을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서, 미산 옆의 산봉우리 혁희대(赫羲臺)는 굴원의 옛 고사로부터 가져와 명명했다. 그는 부용동에서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신선으로 승화시켜 중국의 선인인 희황에 자신을 비유하기도 했으며, 승룡대에 올라앉아 우화등선(사람이 신선이 돼 하늘로 올라감)하는 기분으로 시가를 읊기도 했다. 낙서재 입구에는 정자 세연정을 지었는데 고정원을 축조한 고산의 기발한 조경가적 수법을 볼 수 있다. 개울에 구들 모양의 판석으로 보를 막아 못을 만드는 특별한 방법으로 조성했다. 자연형의 계담과 사각의 방지가 세연정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다. 이곳에서 고산은 바다를 바라보며 ‘어부사시사’를 지었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가야금을 타며 계담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기도 했다. 세연지에서 1㎞쯤 올라가면 낙서재 터 건너편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있다. 해발 100m 정도에 있는 석실에는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대 및 희황교 유적이 있다. 동천석실은 부용동 원림의 중심 건물인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앞산의 우거진 숲 사이에 자리한 바위 위의 조그마한 단칸 정자가 날 듯이 올라앉아 있는 동천석실의 모습은 신비스러운 느낌을 갖는다. 또한 이곳은 정자에 올라 부용동 전경을 내려다보는 전망 위치로도 으뜸이다. ●완도수목원… 국내 유일 난대수목원 완도수목원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국내 유일의 난대수목원’이다. 규모는 2050만㎡에 달하고, 3830종의 수목유전자원을 갖고 있다. 인간의 삶과 산림의 효능에 관한 모델 제시로 질 높은 산림·문화·휴양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됐다. 주요 난대수종으로 완도호랑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감탕나무, 녹나무, 이나무 등이 있다. 183과 3801종이 있다. 난대성 목·초본 등 희귀식물 750여종이 자생한다. 아열대·온대 교차지에 다양한 식물이 분포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수목원이다. 종합 산림전시·교육·연구·관광자원지이다. 수목원에 들어서면 좌측에 있는 넓은 대문리저수지와 수변 데크가 방문객들을 아름다운 경치 속으로 안내한다. 주요 시설물로 교육관리동, 산림박물관, 아열대 온실, 산림환경교육관, 전망대 등이 있다. 방향식물원, 수생식물원, 녹나무과원, 참나무과원, 외래소원 등 총 21개의 주제원으로 구성됐다. 계곡 쉼터를 마주 보며 위치한 산림박물관은 4개의 전시공간과 휴게실을 비롯해 기획전시실이 구비된 난대림 전문박물관이다. 열대·아열대식물원에는 야자류, 관엽식물류, 열대·아열대 과일류, 허브, 초화류 등 200여종에 달하는 식물자원이 있다. 금호나 펜타금과 같은 선인장류와 알로에, 용설란과 같은 다육식물 등을 보유한 다육식물원에는 300여종의 식물자원이 있고 온실 안에도 총 506종의 식물자원이 전시 및 보존·관리되고 있다. ●청해포구 촬영장… ‘명량’ 사극 촬영 명소로 각광 최인호의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한 특별기획 드라마 ‘해신’과 ‘추노’, ‘대조영’, ‘주몽’, ‘태왕사신기’, ‘근초고왕’, ‘정도전’, 영화 ‘명량’ 등 50여편의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영화 등이 촬영되는 등 영상종합문화센터로서 지속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청해포구 세트장은 5만㎡의 규모로 청해진 본영을 비롯해 객사, 저잣거리, 양주, 청해포구, 양주일각, 해적 본거지인 진월도 등 본영 17동을 비롯한 59동의 건물이 있다. 촬영장 곳곳에는 교육과 체험에 필요한 자료들이 있다. 1만여년 전에 화석으로 변한 규화목, 수십 종의 각종 수목과 분재, 석상, 사진자료 등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는 교육과 체험의 공간이다. 촬영장 내에 예스러운 초가지붕 저잣거리와 토끼, 꿩, 앵무새, 칠면조, 공작새, 물고기와 각종 조류, 가축 등이 있어 먹이를 주며 동물들과 친해질 수 있다. 이곳에선 과거의 생활유물인 탈곡기·풍금 등과 선조들이 놀이한 투호·널뛰기 등 전통 민속놀이, 각종 농기구, 절구, 맷돌, 탈곡기, 다듬이 등 농경 및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입장한 관광객은 드라마전시관, 곤장 체험, 굴렁쇠 굴리기, 다듬이질, 물지게 체험, 손바닥 씨름, 윷놀이, 절구 체험, 제기차기, 지게 체험, 작두펌프 등을 무료로 체험하고 관람할 수 있다. 조각공원 포토존에서 행복한 추억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정도리 구계등… 통일신라 황실 녹원지로 지정 통일신라시대 황실의 녹원지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구계등은 크고 작은 돌이 모여 아홉 계단을 이루고 여기에 파도가 밀려와 아름다운 해조음을 온종일 관광객들에게 들려준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와 숲의 신록이, 겨울에는 일출과 일몰이 일품이다. 후사면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참나무·후박·팽나무 등 40여종의 상록활엽수가 자라고 있으며 숲속 탐방로가 잘 갖춰져 있어 자녀들과 함께 쉽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다도해 일출공원과 완도타워… 저녁엔 환상적인 레이저쇼 365일 일출과 일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다도해의 중심에 우뚝 솟아 ‘관광 완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완도타워는 첨탑까지 76m로 지상 2층과 전망층으로 돼 있다. 1층은 특산품 전시장, 크로마키 포토존(영상 합성사진), 휴게공간, 휴게 음식점 겸 매점, 영상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영상시설은 ‘건강의 섬’, ‘슬로시티’, ‘완도의 소리’를 주제로 완도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영상과 소리로 관람객들에게 완도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2층은 이미지 벤치, 포토존, 완도의 인물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전망 데크에는 완도의 인물인 최경주 선수와 장보고 대사를 모형으로 제작해 관람객들에게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전망층에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한 영상 모니터와 전망 쌍안경이 있다. 완도타워는 야간에 경관 조명이 켜지고, 환상적인 레이저 쇼를 연출한다. ●청산도 슬로길…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인증 청산도는 이름 그대로 푸른 섬이다. 맑고 푸른 다도해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신선들이 산다는 ‘선산’ 또는 ‘선원’이라고도 불렸다. 2007년 12월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청산도 슬로길은 주민들의 마을 간 이동으로 이용되던 길로서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서 슬로길이라 이름 붙여졌다. 전체 11코스 17개 길, 총 42.195㎞에 이르며 길에 얽힌 이야기와 어우러져 걸을 수 있다. 청산도 슬로길은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세계 슬로길 제1호’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2013년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애환이 담긴 청산 ‘구들장 논’이 과학적인 영농기법으로 인정돼 국가 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됐으며 2014년 3월 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군은 슬로시티 인증을 계기로 청산도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슬로시티로 가꾸고 있다. 세계적 브랜드 창출과 관광상품으로 연계해 나가는 등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완도에 전복만 있다라면 섭하당께 ●완도 대표상품 전복… 전국 생산량의 81% 차지 완도는 전국 전복 생산량의 81%를 차지한다. 완도 전복의 맛과 영양은 깨끗한 바다와 다시마, 미역 등 건강한 먹이에서 나온다. 겨울에는 7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에는 28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맑은 바닷물 수온이 전복의 맛을 좌우한다. 전복은 약리작용도 탁월해 궁중요리에 빠뜨릴 수 없는 진상품이었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분류된다. 전복은 회, 구이, 찜, 죽 등 다양한 형태의 보양식으로 먹는다. ●천연 약초 먹고 자란 약산 흑염소… 궁중 진상품으로 알려져 약산 흑염소는 천연의 약초를 먹고 자란 야생의 보약이다. 약산 흑염소가 유명한 이유는 삼지구엽초를 비롯해 갖가지 약초를 뜯어먹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130여종의 천연약초가 자생하는 섬 약산면 조약도의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키우기 때문에 궁중 진상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염소 떼는 방목 형태로 키워져 온 산을 헤매며 약초를 먹고 자란다. ●의사 못잖은 웰빙 먹거리 ‘비파’… 기관지염 예방에 특효 완도 비파는 맛과 향이 뛰어나고 항산화, 피로회복 등의 효능을 갖춰 웰빙 먹거리로 각광을 받는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비파는 생명력이 강해 예로부터 ‘집 마당에 비파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집안에 의사가 2명이다’는 말이 전해진다. 비파 열매는 기침, 천식, 가래, 기관지염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갈증 해소에도 탁월하다. 비파 잎을 달여 차로 마시면 신경증을 완화하고 기억력 개선이나 면역력 향상, 비만·당뇨·고혈압 개선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생제 안 쓰는 친환경 광어 양식… 전국 생산량의 30% 광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을 비롯해 쿠릴열도, 사할린, 일본 및 중국 연안에 분포하나 국내에서는 양식산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완도 광어는 바닥이 맥반석과 지반초석으로 이뤄진 청정바다에서 키운다. 수분 단백질, 지질 함량이 높아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는 친환경적으로 양식, 소비자 신뢰를 얻었다. 완도지역 광어 양식 규모는 연간 1300여t, 1700억원대로 전국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완도 광어는 비린내가 적고 쫄깃한 육질과 단맛으로 유명하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그리 너른 숲은 아닙니다. 작정하고 찾을 만큼 빼어나지도 않습니다. 외려 볼품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경북 의성의 법계도림 이야기입니다. 신라시대의 고승 의상이 남긴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미로 숲입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미로가 말하려는 건 세상을 사는 이치입니다. 늘 되뇌면서도 번번이 실천하지 못했던 그런 이치들 말입니다. 미로 숲 위는 고운사입니다. 시대와 반목했던 ‘비운의 천재’ 최치원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는 절집입니다. 와가들이 밀집한 사촌마을도 예서 멀지 않지요. 의성엔 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기웃댈 만한 풍경들이 꽤 많습니다. 법계도림은 의상(625~702)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일승법계도(華巖一乘法界圖, 이하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숲이다. 화엄사상의 요체를 210개의 글자를 이용해 간결한 시로 축약한 뒤 이를 54개 굽이(角)의 사각형 미로로 만들었다. 쉽게 말해 국내 화엄종의 개조(開祖)로 추앙받는 의상의 화엄세계를 현실 속에 구현한 숲이 바로 법계도림이다. ●의상이 설계한 법계도… 여래의 一音 나타내 법계도는 ‘법’(法) 자에서 시작해 ‘불’(佛) 자에서 끝난다. 한데 의상은 왜 이 같은 미로 형태의 그림시를 그렸을까. 그는 자신이 남긴 몇 가지 책을 통해 자문자답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글이 하나의 길을 이룬 건 여래의 일음(一音)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굴곡진 까닭은 가르침을 받을 중생의 능력과 욕망이 같지 않기 때문이고, 시작과 끝이 있는 건 수행에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면사각의 형태를 띤 것은 자비를 발현하고 불도(佛道)에 드는 방법을 사섭사무량(四攝四無量)으로 표현한 것이다. 법계도림을 설계한 이는 고운사 주지인 호성 스님이다. 그는 법계도림을 활용해 살아 있는 목탑을 만들려 했다. 법계도림의 중심부에 큰 은행나무를 하나 세우고 주변에 키 작은 단풍나무들을 심어 놓으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레 탑 형태의 숲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법계도림에 들어서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이 잦다. 단풍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찾는 이 드문 탓에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 일도 흔하다. 이처럼 걷기에 불편하다 보니 개선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무는 죄다 뽑고 내년쯤 다른 나무를 심을 예정이란다. 향나무처럼 위로 곧추 자라 길을 쉽게 낼 수 있는 수종이 대체재로 꼽힌다. 한데 불현듯 딴생각이 든다. 이처럼 좁고 불편한 길은 절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잘 정돈된 미로는 놀이공원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길이 다소 불편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이를 하심(下心)을 종용하는 심모원려라 볼 수는 없을까. 작은 티끌 안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좁고 불편한 길을 성찰의 자세로 돌아보는 게 외려 법계도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계획대로라면 붉고 푸른 단풍나무가 노란 민들레꽃과 어우러진 소박한 길은 내년 이후엔 볼 수 없다. ●신라 문장가 최치원의 흔적 남은 ‘고운사’ 법계도림 위는 고운사다. 신라의 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의 호를 딴 절집이다. 60여 말사를 거느린 큰 절집이지만 여느 곳과 달리 주차료나 입장료 한 푼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진입로가 인상적이다. 금강송과 굴참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길이 1㎞쯤 이어진다. 이를 ‘천년숲길’이라 부른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족할 길은 그러나 심연으로 들어가는 소로처럼 깊다. 늙은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엔 천년간 봉인된 고운의 체취가 서린 듯하다. 천년숲길을 나와 일주문, 사천왕문 등을 거푸 지나면 가운루(駕雲樓)에 닿는다. 최치원이 건축에 힘을 보탰다는 건축물로, 고운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화재 중 하나다. 최치원이 원래 지었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다. 멍에를 쓰듯, 평생 불성(虛)을 짊어지고(駕) 가라는 뜻이란다. 이를 현재의 현판으로 바꿔 쓴 이는 고려 공민왕이다. 사랑하던 노국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진 공민왕이 전국을 유람하다 고운사에 들러 어필을 남겼다고 한다. 고운사에는 유교와 도교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다. 우화루 뒤편의 ‘만세문’은 솟을대문 모양이다. 절집 건물치고는 독특한 형태다. 만세문 뒤는 연수전이다. 조선 왕실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던 건물이다. 안내판은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떠받들던 시대에 사찰 안에 이렇듯 왕실과 관련되는 건물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이채롭다’고 적고 있다. 식당 건물엔 호랑이 벽화가 보관돼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호랑이 눈과 마주하게 된다는 벽화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가르침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팔승일경’… 빙계계곡의 웅숭깊은 풍경 고운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 있다. 1390년께 기와집들이 숲을 이루던 사촌마을 주변에 조성된 비보림(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기가 약한 곳에 조성한 숲)이다. 현지 주민들은 흔히 ‘가리쑤’라 부른다. 바람을 가리는 ‘쑤’(숲)란 뜻이다. 한실천 제방을 따라 800m 정도 이어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밀집돼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가로숲 안쪽의 사촌마을에선 1582년 지은 만취당(보물 1825호) 등의 고택과 만날 수 있다. 의성 남쪽의 빙계계곡은 오래전부터 의성에서 가장 빼어난 경승지로 꼽혔던 곳이다. 계곡에 들면 ‘경북팔승일경’(慶北八勝一景)이라는 표지판을 흔히 본다. 경북의 여덟 가지 빼어난 경치 가운데 첫째가는 곳이란 뜻이다. 자신감과 도도함이 글자 곳곳에서 느껴진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이런 도저한 표현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거무튀튀한 절벽이 2㎞가량 돌아가며 만든 풍경만큼은 제법 웅숭깊다. 빙계계곡의 자랑거리는 대략 세 가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온다는 얼음 구멍 빙혈(氷穴, 천연기념물 제527호)과 풍혈(風穴), 그리고 빙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이다. 셋 모두 계곡 왼쪽 마을에 몰려 있다. 얼음동굴에 들면 서늘한 기운이 뒷목을 스친다. 실제로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열린다고 한다. 빙혈 바로 위의 풍혈에서도 에어컨 같은 바람이 나온다.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따뜻한 김이 솟는다’더니, 그리 과장 섞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는데, 빙계계곡 등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자태가 한결 돋보인다. 인근의 금성산 고분군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조문국(召文國)의 경덕왕릉 등 고분 몇 기가 남아 있다. 조문국은 신라보다 앞선 기원전 1세기 무렵, 지금의 금성면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고대 부족국가다. 왕릉 주변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고분군 끝자락의 조문국 박물관에서 조문국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초여름의 명물로 꼽히는 금성산 고분군 앞 작약꽃밭은 5월 말~6월께 만개한다. 글 사진 의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고운사는 안동과 경계인 의성 동북쪽에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의성 방면 5번 국도로 갈아탄 뒤 망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점곡 방면 7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8㎞쯤 가면 된다. 사촌마을과 사촌가로숲, 의성 소계당 등 볼만한 풍경들이 지척에 널렸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길 권한다. 빙계계곡은 의성의 동남쪽 끝에 있다. 조문국의 흔적이 남은 금성산 고분군, 조문국 박물관, 산수유 마을 등을 묶어 돌아보는 게 좋다. 여느 여행지와 달리 고운사, 조문국 박물관 등 관광지들이 죄다 무료다. 입장료 걱정 없이 다녀도 좋겠다. →맛집:의성 하면 마늘 먹인 소가 대표 먹거리다. 군청 인근 의성마늘목장(830-6283)과 안계면의 마늘목장한우타운(862-8592) 등이 이름났다. 탑산약수온천이 있는 봉양면에도 의성마늘소먹거리타운이 조성돼 있다. 의성마늘이야기(834-8843)는 마늘로 맛을 낸 백반, 묵은지찜 등을 내는 집이다. 의성읍내에 있다. →잘 곳:군청에서 운영하는 금봉산 자연휴양림(833-0123)이 깨끗하다. 금성면 산운마을의 운초당, 의성소우당, 점곡면 사촌마을의 초해고택, 후산정사, 안동김씨 종택 등에서 한옥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군청 문화관광과 830-6549.
  • [씨줄날줄] ‘열정페이’에 대한 우화/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열정페이’에 대한 우화/임창용 논설위원

    ‘열정페이’가 불거질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10여년 전 개봉된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다.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는 의료기기 행상으로 생계를 잇는 가장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지만 닥치는 상황은 암담 그 자체다. 물건 팔기가 어려워지면서 집과 아내까지 잃고 노숙자로 전락한다. 어린 아들과 길거리에 내몰린 크리스는 하나 남은 의료기기를 팔러 다니다 우연히 주식 중개인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주식 중개인이 되기 위한 인턴 과정에 응모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60명의 인턴에 포함된다. 그중 1명만 정식 중개인이 되는 조건. 그나마 인턴 과정은 무급이다. 아이와 노숙자보호소에서 지내며 인턴 과정을 무사히 마친 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주식 중개인이 된다. 크리스는 인턴 과정에서 남다른 노력과 재능에 힘입어 회사에 큰 수익을 안긴다. 나머지 인턴 59명도 종일 전화에 매달려 투자자들과 씨름한다. 하지만 한 푼의 보수도 받지 못한다. 요즘 화두가 된 열정페이의 전형이다. 열정페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불명확하다. 인터넷엔 2012년 1월 프리랜서 작가 이하늬가 한 전문지에 기고한 ‘열정페이에 대한 우화’란 제목의 글이 맨 위에 뜬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데 직원처럼 일하면서 월급은 아르바이트생만큼 받는 청년들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이들을 ‘학교탈출역을 떠나 일자리입구역을 향해 달리는 특급열차의 맨 마지막 칸에 탄 사람들’로 그렸다. 한 번 시승시켜 주고 언제든 ‘학교탈출역’으로 되돌려 보낼 사람들이 탄 객실이다. 언론에 본격적으로 이 단어가 오르내린 것은 2014년 이상봉 디자인실 논란 이후다. 소셜미디어에 ‘한 유명 디자이너의 직원 월급 내역’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다. 견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직원 110만원의 월급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열정페이 파문이 커지자 이상봉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했다. 이후에도 쥬얼리의 전 멤버 조민아가 운영하는 ‘조민아 베이커리’가 시급 5500원의 구인 공고를 냈다가 논란이 됐다.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프는 직원 채용을 빌미로 수습직원에게 정직원 수준의 영업을 시킨 뒤 전원 해고해 공분을 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청년 열정페이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열정페이를 받는 청년들이 사상 최대인 63만명이라고 한다. 청년 노동자 6명 중 1명꼴이다. 열정페이는 어떤 형태이든 고용주의 전형적인 ‘갑질’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준다고, 교육을 시켜 준다는 미명 아래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을’ 처지인 청년들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하늬의 ‘일자리입구역’에 도착할 때까지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우화가 갈수록 너무 생생하니 탈이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2) 증강현실, 가상현실 너머의 세계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2) 증강현실, 가상현실 너머의 세계

     수상한 회사, 매직리프  체육관 바닥에서 고래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육중한 몸이 천정까지 솟구쳤다. 고래가 파도 속으로 몸을 날리자 체육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술과 같은 장면에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래는 사라지고 마른 바닥이 드러났다. 한동안 IT 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증강현실(AR, Augment Reality) 스타트업 매직리프(Magic Leap)의 소개 영상 내용이다. 증강현실은 실제 세계에 가상의 이미지를 겹쳐서 보여주는 기술이다. 2015년 판매가 중단된 구글 글래스는 대표적인 AR 기기였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도 홀로렌즈(Hololens)라는 AR 헤드셋을 공개하였다. 가상현실은 오큘러스 리프트나 삼성 기어 VR과 같이 헤드셋을 쓰면 바깥을 볼 수가 없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증강현실과 다른 점이다. 최근에는 360도를 촬영하는 카메라로 만든 영상도 가상현실이라고 불러 가상과 증강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매직리프의 동영상을 보면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공개된 몇 개의 홍보 영상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어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3D선샤인사의 창업자인 스티븐 박사는 허핑턴포스트를 통해 매직리프가 미래의 내러티브(이야기)를 팔아먹는다며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에 빗대어 꼬집었다. 뉴스위크지도 이 회사가 아무런 기술도 없이 허풍을 떤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도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가상현실 시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는 수상한 회사 매직리프의 진실은 무엇일까.  마이애미 해변에 있는 신생 벤처 기업인 매직리프의 투자자들을 살펴보면 더욱 궁금증이 커진다. 2014년 구글은 본사가 나서 이 회사의 투자를 주도하였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도 칩 메이커 퀄컴, 세계적 투자사 안데르센 호로비츠, 미국 대표 사모펀드 KKR 등 쟁쟁하다. 그 해 10월, 매직리프는 5억 4200만 달러의 기록적인 펀딩을 성사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 당시 수석 부사장이 이사회에 참여하고 퀄컴의 폴 제이콥스 회장도 옵저버로 이름을 올렸다. 무명의 매직리프는 12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한순간에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등극하였다. 2016년 2월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워너브라더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막강한 투자사들이 참여한 펀딩에서 8억 달러에 이르는 신규 투자를 받았다. 올해 1, 2월 두 달간 가상현실 업계 전체 투자액 11억 달러의 70%가 넘는 금액이다. 이번 투자로 매직리프의 기업가치는 45억 달러가 되어 몇 개월 사이에 4배 가까이 뛰었다.  베일에 싸인 스텔스 기업이라고 불리는 이 회사를 조사하던 중 몇 가지 단서가 포착되었다. 첫째로, 2015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테크놀로지 리뷰는 올해의 ‘10대 혁신기술’(10 Breakthrough Technologies)로 매직리프를 선정하였다. 심사단들이 본 내용의 일부가 알려지면서 윤곽이 드러났다. 두 번째로는 최근 공개된 매직리프의 특허를 통해 기술이 알려졌다. 350페이지의 방대한 내용으로 특허 항목만도 703개에 이른다. 세 번째는 중국 텐센츠의 QQ에 올라온 “매직리프, 어쩔 수 없이 밝힌 비밀”이라는 구글 연구원과 뉴욕대 교수의 강좌 내용이다. 이 세 가지 단서를 간단히 요약하였다.  매직리프의 비밀  매직리프의 CEO 로니 애보비츠(Rony Abovitz)는 우주복을 입고 TED 강연을 하고 록그룹에서 기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신문에 만화를 기고하고 집안에 온갖 동물을 키우는 등 자유분방하고 기발한 인물로 유명하다. 2004년에는 수술로봇 회사 마코서지칼을 설립하였다. 이 회사의 수술로봇 리오에는 국내 기업 큐렉스의 특허가 적용되어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촉감을 전달하는 로봇 팔을 개발하던 중 환자의 뼈를 보면서 수술을 할 수 있는 가상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존의 가상현실 기기들로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 실망스러웠다. 마침내 애보비츠는 새로운 기술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워싱턴 대학의 에릭 세이벨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의 만남은 애보비츠를 증강현실의 세계로 이끌었다  세이벨 교수는 혈관 속을 볼 수 있는 초소형 내시경을 연구하던 중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시경은 몸속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카메라이다. 그는 거꾸로 내시경으로 빛을 쏘아 빔프로젝터처럼 영상을 만드는 증강현실 기기를 생각했다. 2010년 세이벨 교수가 발표한 내시경 프로브는 직경이 1mm에 불과했다. 이 가느다란 관에서 나오는 빛을 렌즈를 통해 직접 망막에 쏘아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세계에서 들어오는 빛과 컴퓨터가 만든 가상의 빛이 뒤섞여 사람의 눈은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체육관에서 튀어나온 고래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영상의 데모 버전이다. 세이벨 교수의 시제품을 본 애보비츠는 2011년 매직리프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증강현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2013년에는 마코서지칼을 16억 5천만 달러에 매각하고 매직리프에 올인 하였다.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애보비츠가 공개를 망설이는 것은 신비주의 전략이라기보다는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 가지 짐작을 해 보았다. 우선 냉장고만한 시스템의 크기를 몸에 착용할 만큼 작게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실내에서 시연을 하였지만 그보다 수백, 수천 배 이상 밝은 태양빛 아래에서 제대로 영상이 보일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레이저를 눈에 직접 쏘는 것이 걱정스럽다. 신체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 약한 레이저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된 결과는 없다. 그 밖에도 좁은 시야각, 선명도, 응답 속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 VR을 인수할 때 후원했던 스파크 캐피탈은 “매직리프의 증강현실은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애보비츠는 “디지털과 물리적 현실 세계를 융합해 새롭고 놀라운 세상을 만들겠다”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구글, 퀄컴, 알라바바는 그 미래를 확신하고 매직리프에 수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현실 속의 증강현실  증강현실의 대명사로 불리던 구글 글래스는 현재 판매가 중단되었지만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리고 있다. 구글에 인수된 네스트의 창업자 토니 파델이 구글 글래스를 맡으면서 산업용을 겨냥한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매직리프에 투자한 이후 “구글 글래스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재천명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의 예약 판매를 시작하였다. 전문가들은 가상현실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보다 한 수 위의 제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홀로렌즈를 쓰면 게임 속의 인물이 튀어나오고 벽면에는 가상의 TV가 나타난다. 테이블 위에서 미식축구를 관람하고 마인크레프트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증강현실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가까이 와있다. 그래픽 화면 앞에서 진행하는 일기 예보나 선거 중계방송도 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자동차의 앞 유리에 교통 정보를 보여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중요한 증강현실 기기이다. 아이언맨이 쓴 헬멧의 눈앞에 나타나는 화면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허공의 스크린을 손으로 조작하는 것과 같이 SF 영화의 단골 소품으로도 등장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증강현실 서비스도 재미있는 것이 많다. 이케아의 AR 앱과 카탈로그를 이용하면 미리 가구를 배치해 볼 수 있다. 어떤 색상과 디자인이 우리 집에 어울릴지 고민하는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서비스이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길거리의 안내판이나 식당의 메뉴를 읽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구글이 인수한 퀘스트비주얼에서 개발한 ‘워드 렌즈’라는 앱은 이런 걱정을 덜어준다. 스마트폰으로 외국어 글자를 비추면 자동으로 번역을 해주는 AR 기능 덕분이다. 그 외에도 교육, 국방, 의료, 공공 서비스 분야로 증강현실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게임과 같이 단절된 가상공간에서 사용하는 가상현실에 비해 응용 분야가 넓어 시장 전망도 밝다. 전문 컨설팅 업체 디지 캐피털에 따르면 2020년 증강현실 시장은 1200억 달러로 300억 달러인 가상현실의 4배에 달한다. 이 거대 시장을 향해 선두 기업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겠다.   김지연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新전원일기] 서우석 산머루 농원 대표

    [新전원일기] 서우석 산머루 농원 대표

    산머루는 그를 만나 명품 와인이 되었다 2010년 여름, 한 스쿠버다이버가 발틱해에서 오래전 침몰한 난파선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 난파선 안에는 수천병의 와인이 들어 있었고 난파선의 제작 연대를 확인한 결과 배에 보관되었던 와인은 무려 19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게 밝혀졌다. 여러 걱정과는 달리 발틱해의 와인은 전문가들로부터 ‘신의 물방울’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게다가 병당 8000만원이라는 고가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수년 전에 읽은 기사의 한 토막을 떠올리며 임진강과 연한 37번 국도 위를 달렸다. 파주 감악산 중턱에 와이너리를 갖춰 놓고 머루와인을 생산한다는 서우석(69)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토종 산머루로 와인을 만들었고 ‘명주 장인’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곡절이 궁금했다. # 사람도 숙성되는가 머루밭에서 올라온 서 대표는 바랜 청색 점퍼에 앞부리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이 뚫린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악수를 위해 내민 그의 손은 거칠었다. 늘 흙과 사는 그의 삶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를 쫓아 농원 구경에 나섰다. 마침 대만 관광객 20여명이 와이너리 체험을 위해 도착한 상황이었다. 흔한 일이 아니다 싶어 그에게 물었다. “지난해에만 외국 관광객 6만명이 다녀갔지요.” ‘6만명이라니….’ 그는 오래전부터 관광과 연계된 농사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고 한다. 농원을 찾은 6만명이 일일이 머루즙을 만들어 보고 머루와인 시음도 하고, 숙성통에서 와인을 직접 받아 가는 체험도 경험했다고 한다. 그의 안내를 받아 귀농교육을 하는 강당에까지 가게 되었다. “머루에 대해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하는데 고등학생부터 귀농을 결심한 분들까지 교육받고 있어요. 1년 내내 정신없이 바빠요. 그래도 귀농교육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관광농원화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죠. 곧 캠핑장도 재오픈을 하는데 그럼 더 바빠질 겁니다.” 산머루 농원 전체가 그의 철학이 담긴 현장이었다. 1979년 파주 객현리에 들어와 흑염소를 키우며 건너편 산에서 발견한 산머루가 와인의 시작이었다. 여러 차례 산머루를 생산하는 데 실패를 거듭하다 한 농부로부터 묘목 1500그루를 분양받아 자신의 밭에 심게 되었다. 그마저도 2년 사이에 질소 과다와 동해(凍害) 등으로 모두 죽고 살아남은 묘목은 단 다섯 그루였다. 살아남은 0.3%에 희망을 걸고 밭에 심었다. 산머루 농사를 짓겠다고 각오한 뒤 햇수로 4년 만에 처음으로 묘목에서 산머루가 달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농부란 그렇게 시간과 곡절에 순응하며 사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음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 곳은 와이너리였다. 산머루 농원의 와이너리는 70m 길이였다. 프랑스에 포도농가 연수를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조성한 와이너리였다고 한다. 프랑스엔 지선까지 모두 합해 26㎞에 이르는 숙성터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의 숙성터널은 한국에서 최초로 뚫은 와인터널이었다. 프랑스 와이너리와 비교하면 규모에서 좀 뒤떨어지지만 프랑스 론 지방에서 장인 정신으로 와인을 빚어내는 소규모 와인 동굴과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느낀 서늘함 속에서 숙성되는 와인들의 숨소리 같은 걸 들었고 그의 노력에 감탄했다. “이 감악산은 3개 지자체를 품고 있어요. 감악산을 중심으로 각 지자체에서 2㎞씩만 뚫으면 모두 6㎞가 되는데 그럼 프랑스의 숙성터널 못지않은 훌륭한 숙성터널이 만들어질 겁니다. 1979년부터 산머루랑 살았으니 산머루 인생 40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젠 프랑스 숙성터널 못지않은 터널을 뚫어도 될 만큼 우리 와인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와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그는 그런 구상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렇게 창의적이었다. “물론 오크통으로도 와인을 숙성시키지만 우린 주로 항아리를 이용하죠. 옹기가 숨을 쉬니까요. 2004년 고려대 생명과학연구소에 연구 의뢰를 했는데 오크통보다 우리 옹기에서 생산한 와인이 맛이나 향기에서 더 훌륭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 신과 비밀 사이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좀 색다른 곳이었다. 공개하는 와이너리의 규모에 비하면 5분의1 크기의 저장고였다. 그만의 비밀 와이너리였다. 저장고 안쪽 깊은 곳에 묵은 때가 두껍게 앉은 와인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게 20년이 넘었죠. 이 와인 저장고는 정이랑 망치만으로 혼자 수백일 걸려 만들었죠. 지금은 보기 좋지만 내가 여기 들어왔을 땐 그야말로 돌밭이었어요. 농장이 만평쯤 되는데 전부 돌밭이었으니까. 돌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아주 지긋지긋했죠. 돌도 작기나 해요. 땅 좀 파다 보면 바위가 나와요. 집채만 한 바위가 박힌 땅이었던 겁니다. 이 밭을 사들이고 농사를 짓겠다니까 다들 미친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돌산인 채 내버려뒀다는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굴착기도 뚫기 힘들다는 돌밭을 상대로 망치와 정 하나 달랑 들고 밭에 달라붙어 개간을 시작했던 것이다. 무수히 나오는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집채만 한 바위가 나오면 몇날 며칠을 깨 부숴 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돌산이 언젠가는 비옥한 옥토가 될 것이라 믿으며 망치질을 했고 실제로 산머루와 나무들이 우거진 옥토가 됐다. 그는 중국 고대 우화의 보고집으로 알려진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愚公)이었다. 왜 그토록 열정적이었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잠깐 도시 생활도 해 봤지만 천성이 농사꾼이에요. 그리고 어느 일보다 정직하고. 지금 귀농교육도 열심히 하는 건, 농부들도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게 가장 큰 이유죠. 나 혼자가 아니라 농부의 꿈을 가진 모든 분들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경쟁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의 거친 손을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흰 도자기에 담긴 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이 술이 내가 가장 처음 와인답게 만든 농원 최초의 머루 와인입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올해로 20년이 되었네요.” 20년 된 와인. 머루로 만든 와인이니 지구상에 머루로 만든 와인 중에는 아마 가장 오래된 와인이지 않을까. 머루즙을 만들다 즙 생산공장을 구상하고 시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공무원이 ‘즙’이 아니라 ‘주’로 바꾼 한 글자 때문에 머루와인 생산 공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20년 전의 일이었다. 운명적 우연과 오랜 기다림과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명품 와인이 생산된다는 걸 실감했다. 우공 못지않은 그의 노력에 ‘디오니소스’(그리스 술의 신)도 탄복했을 터. 디오니소스가 건넨 신의 물방울은 신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의 와인은 고려대 생명연구소에서 실험을 통해 포도 와인보다 안토시아닌 등 암을 억제하는 영양분이 5배쯤 높은 와인이라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세월을 기다릴 줄 알아야 빚어낼 수 있는 와인을 그는 완성했다. 그가 만든 머루 관련 상품들은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중국에서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그의 제안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농산품들과 함께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터라 머잖아 중국 백화점에서도 한국의 머루와인이 진열될 날이 올 것이다. 요즘은 1년에 400t 규모의 머루와인과 머루즙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매출액도 15억원으로 높은 편이었다. 직원은 15명 정도다. “한번은 대형 매장에 대기업 머루제품이 깔렸다길래 더럭 겁이 나서 달려가 봤죠. 우린 100% 머루 제품인데 대기업 제품은 원액 5%쯤 넣은 거였어요. 그때 정직하게 하면 대기업에도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과 마음을 다해 농사를 지은 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그의 농사 철학이나 느려도 곧게 나가야 한다는 삶의 철학이 빚은 ‘옹기의 와인’. 그를 만난 시간은 새로운 술의 세계에 대해 문을 열어준 시간이었다. 또한 옹기에 담은 그의 머루와인이 머잖아 세계적인 제품이 될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다수
  • 공부 비결은 웃음?…“웃으면 효과 더 커”

    공부 비결은 웃음?…“웃으면 효과 더 커”

    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그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요? 혹시 잔뜩 진지한 얼굴을 한 채 두꺼운 책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요?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학창 시절에 우울했던 경험과 힘겹게 공부해왔던 기억을 투영시키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기억 탓에 공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월간 경제 매거진 INC닷컴은 여러 연구논문과 전문가의 조언을 인용해 새로운 것을 빨리 습득하려면 공부에 집중하느라 찡그린 얼굴이 되는 것보다 웃으면서 즐겁게 배우는 것이 효율이 더 크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학습에 웃음을 도입하면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 나이와 상관없이 즐기면서 배우면 학습 속도가 빨라진다 웃음을 집어넣은 학습의 효과는 어렸을 때부터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행동 과학자이자 유명 작가인 수잔 바인셍크 박사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밝혔습니다. 수잔 바인셍크 박사는 해당 게시글에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공개하고 있는데 대부분 부모가 공감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생후 18개월 된 딸에게 태블릿 PC로 학습용 게임을 하게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서너 개의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을 내려받아 아이에게 어느 것을 하게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음악을 사용해 숫자와 문자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꽤 진지한 앱이 좋을까? 아니면 유치한 동물이 끊임없이 등장해 화면 속을 돌아다니며 아이를 웃게 하는 앱이 좋을까? 많은 사람이 더 진지한 앱을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그와 반대로 아이를 최대한 웃게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는 바인셍크 박사가 걸음마를 배우는 시기에 있는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학습시킨 결과를 비교한 한 연구논문을 인용하면서 밝힌 내용입니다. 이 연구에서 한 그룹은 학습 동안 웃는 요소가 있어 웃으며 배웠고 나머지 그룹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학습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바인셍크 박사는 “웃으면서 학습한 아이들은 웃음 없이 학습한 이들보다 더 많은 학습 목표를 달성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실제로 아이에게 TV나 태블릿 화면으로 무엇을 보여줘야 좋을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아이가 아니더라도 즐기면서 공부하면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에 많은 연구논문은 “그렇다”라고 답합니다. 한 연구논문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수업에 농담과 유머 요소를 넣으면 학습 효과가 오르는 것을 입증했으며, 학술지 ‘컬리지 티칭’(College Teaching)에 발표된 한 연구는 수강자를 웃게 하는 강의야말로 학습 효과가 높인다고 주장합니다. 이외에도 웃음은 성인의 기억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현실을 그대로 전하는 뉴스보다 재미있고 우화에 가까운 뉴스를 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사라 헨더슨은 교육정보 사이트 에듀토피아(Edutopia)에서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 데일리 쇼’(The Daily Show)나 ‘더 콜버트 리포트’(The Colbert Report)와 같이 유머러스한 뉴스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 쪽이 신문이나 CNN, 폭스 뉴스 등 네트워크 방송사 등에서 뉴스를 읽거나 본 사람보다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지적합니다. ■ 과학이 보여주는 유머를 이용한 학습 효과 그렇다면 웃음이 정보의 이해와 기억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듀토피아에서 블로그를 운영 중인 헨더슨 교사는 “유머는 뇌의 도파민 보상체계를 체계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신경과학 연구로 밝혀지고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또 “도파민은 목표지향적인 동기와 장기 기억 모두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지 연구를 비롯해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모든 학습자의 기억력을 향상하게 하려면 학습에 유머를 적절하게 개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교육 연구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다음에 무언가를 학습할 때는 필기구와 노트만 챙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잠시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어 단어를 기억하기 쉽게 짤막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효과는 더 커질 것입니다. 사진=ⓒ포토리아(맨위부터 순서대로), 트위터, 에듀토피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모던 보이 백석과 가키사키 바다

    [최동호 새벽을 열며] 모던 보이 백석과 가키사키 바다

    시집 ‘사슴’이 1936년 1월 출간됐을 때 김기림은 “백석 시집 ‘사슴’을 가슴에 안고”라는 서평에서 ‘한대(寒帶)의 바다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검은 머리의 웨이브를 휘날리면서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의 풍채는 나로 하여금 때때로 그 주위를 몽파르나스로 환각시킨다. … 백석의 시집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다’고 했다. 백석은 1930년대 중반 이처럼 모더니즘적 풍모를 띠고 문단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그러나 서울 문단에 정착하지 못한 그는 1940년 이후 만주 등지를 방랑하며 살았고 광복 이후에는 북의 고향에 남았다. 그로 인해 백석의 시는 지난 40여년 가까이 문학사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의 문학적 복권은 2012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그는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하나로 높이 평가돼 남의 서정주, 북의 백석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북한에서 백석의 문단적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북한 아동문학의 고루한 교조주의를 비판한 글로 인해 1959년 평양 문단에서 산간 오지로 추방당한 그는 작품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머지 반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인생의 전반에 천재 시인으로 각광받던 그가 인생의 후반을 산간 오지의 양치기로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집 ‘사슴’의 출간 80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백석 시의 출발점인 이즈반도를 찾았다. 백석은 이즈반도와 관련된 시 두 편과 산문 한 편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 시 ‘가키사키 바다’는 시집 ‘사슴’에도 수록돼 있다. 백석이 1933년 겨울 이즈반도를 찾은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나는 당시 일본의 대표적 문인들, 예를 들면 나쓰메 소세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이 자주 찾던 문학의 고향이 이즈반도이며, 다른 하나는 1926년 발표된 가와바타의 단편소설 ‘이즈의 무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33년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던 장소가 이즈였다는 점이다. 백석의 영화 관람 여부는 불명이지만 문학 지망생이자 독서가였던 그는 분명히 가와바타의 소설을 읽었을 것이다. 도쿄에서 온 고등학생과 유랑하는 무희 가오루의 짧은 첫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호소력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다. 백석은 ‘가키사키의 바다’에서 ‘아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 아 아즈내인데 병인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고 썼다. 여기서 처녀와 병인은 동일한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병인을 화자 자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백석 자신일 수도 있다. 바로 앞 행에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고 서술했으므로 가슴 앓는 사람과 병인은 동일 인물일 것이다. ‘해쓱한 처녀’를 유랑하는 무희와 겹쳐 본다면 여기서 백석이 자기도 모르게 직감한 것은 운명의 문제다. 산문 ‘해빈수첩’에서 생각하고 그는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라는 문장을 반복하면서 ‘바다에 놀래지 않는 그들’이 결국 ‘지렁이같이 밭 가는 역사’를 살 것이라 말하고 있다. 가키사키 바닷가의 아이들은 바다와 사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1940년 백석은 토머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를 번역 출간했다. 테스 또한 가혹한 운명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여주인공이다. 운명에 대한 백석의 자의식은 병처럼 깊어져 만주를 방랑하다가 귀국한 다음 마침내 평양 문단에서도 추방돼 유배지와 같은 삼수갑산 관평리 오지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1954년 미국의 강압에 의해 일본이 최초로 개항한 시모다항이 있는 가키사키 바다에서 우리는 어디에서도 청년 백석의 발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혹한의 겨울바람이 몰아쳐 일행의 발걸음을 동동거리게 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조동식이 열연한 연극 ‘백석 우화’와 더불어 절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우울하고 침중한 목소리가 칼바람을 타고 날아와 한 천재 시인의 비극적 운명에 새삼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 [씨줄날줄] ‘악마의 배설물’의 경고/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악마의 배설물’의 경고/구본영 논설고문

    ‘나비효과’가 이런 건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며칠 전 60일간의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소비국 중국의 경기 둔화로 가뜩이나 떨어진 국제 유가가 곤두박질칠 기미를 보이면서 지구 반대편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경제 파탄 위기에 내몰렸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재정 수입의 90%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한다. 유가 하락세가 길게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연 140%가 넘는 인플레이션으로 신음 중이다. ‘개도 안 물어 간다’는 말이 있지만, 베네수엘라 화폐가 그 짝이란다.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의 한 시민을 납치한 무장 괴한들이 그의 은행 계좌의 막대한 볼리바르화(貨)엔 손도 안 대고 몇 푼 안 되는 달러만 노렸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의 살인적 인플레이션 강도를 말해 주는 삽화다. 이로 인해 요즘 베네수엘라 보통 시민들의 생활고가 말이 아닌 모양이다. 5인 가구 기준 식료품비가 최저임금의 6배를 넘어선 지 오래란다. 이쯤 되면 펑펑 쏟아지는 오일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던 나라의 시민들이 이제 기본 생필품조차 제때에 구입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 이는 전임 우고 차베스 정권이 극단적 국가사회주의 노선을 택했을 때부터 싹튼, 예고된 비극일 수도 있다. 1999년 권좌에 올라 2013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오일 달러를 공짜로 나눠 주는 인기 영합 정책으로 일관했다. 까닭에 재정에 의존하는 정부 부문은 비대해졌지만, 경쟁 원리가 작동하는 민간 부문은 시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국민을 여름 한철 흥청망청 살다가 추운 겨울을 맞는, 우화 속 베짱이로 만든 결과가 경제 비상사태라면 말이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이런 위기를 내다본 선각자는 있었다. 1960년대 석유장관을 지낸 페레스 알폰소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73년 1차 오일 쇼크로 베네수엘라의 재정 수입이 급등했을 때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라는 인상적 어록을 남겼다. “앞으로 석유 때문에 우리 국민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걸 볼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고유가 시절 넘치는 달러를 대중의 비위를 맞추느라 낭비했던 생전의 차베스가 이를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그 반만이라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투자했더라면 작금의 ‘석유의 저주’는 없었을 게다. 성남시가 올해부터 만 24세 청년 거주자들에게 연간 50만원을 주는 청년배당과 무상 교복, 산후 조리 등 3대 무상복지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인기 영합적 지출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큰 후유증을 남기게 마련이라 적잖이 걱정이 앞선다. ‘자원 부국’인 베네수엘라 국민들조차도 오랜 ‘공짜 점심’을 즐긴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동안 시장경제가 복수를 준비한다는 경구를 이번 총선 출마자들이 꼭 유념했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이솝우화로 널리 알려진 이솝은 BC 6세기 그리스의 노예였다. 어느 날 주인이 목욕을 하려고 그에게 공중 목욕탕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목욕탕으로 간 이솝은 그 앞에 박혀 있는 돌부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걸려 넘어질 뻔하는 것을 보게 됐다. 넘어지고 발을 다쳐 욕을 퍼부으면서도 누구 하나 돌부리를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돌부리를 단숨에 뽑아 내고는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솝은 사람 수를 헤아려 보지도 않고 집에 돌아와 주인에게 목욕탕에는 한 사람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목욕하러 간 주인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이솝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책망했다. 그러나 이솝은 돌부리를 치운 그 한 사람만이 자기 눈에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보였다고 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제헌 헌법 이래 한결같이 지켜 온 ‘민주공화국’은 국가 형태에 관한 우리 헌법의 근본 정신이다. 2005년 헌법재판관으로 부임한 다음 왜 우리 국민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 형태를 채택했을까, 더욱이 영어로는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라고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민주국가에 관해 배우고 익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국가 의사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한 국가라는 평판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화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닥치게 된다. 단순히 군주국가가 아니라는 의미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그런 의미라면 국민주권이 확립된 오늘날 민주국가라고만 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정부 수립 이후 우리 국민은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국가의 강제와 간섭을 거부한다는 개념으로서만 자유와 권리를 파악하게 됐다. 그 결과 공동체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유를 인식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 계층적으로 부자와 빈자 또는 자본가와 노동자, 지역적으로 서울과 지방 그리고 각 지역으로 나뉘어 국가의 공적인 과제뿐만 아니라 사적인 사안을 두고도 대립과 갈등을 빚으면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화국이란 공공의 것이라는 라틴어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개인이 공동체 이전에 존재한다는 자유주의와 달리 공화주의에서는 개인이 공동체와 함께 존재하므로 처음부터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와 권리는 조화,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한반도에서 삶을 이루어 가는 목적은 국민 개개인의 삶을 보장하면서도 국민이 만든 공동체의 존속과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태어나 삶을 이루어 가는 국민 개개인에게는 공동선을 지향하고 시민적 덕성을 갖추는 게 요청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총선의 해에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국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실망감 때문에 정치적 무관심 속에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공화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공동체 의식과 공동선은 구성원의 참여와 토론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성원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참여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리고 공동선과 시민적 덕성은 행정부 등 국가기관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도록 제도와 절차를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할 것이다. 9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엊그제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재해예방 대책은 한 가닥 빛이 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모든 국민이 공동체의 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시민적 덕성을 갖추어 이솝의 눈에 사람다운 사람으로 비춰지는 그 한 사람이 되고, 이 땅에 공화국이 이루어지는 꿈을 꾸어 본다.
  • 반갑다! 문학 거장의 기묘함

    반갑다! 문학 거장의 기묘함

    독특한 서술 방식을 구사하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나란히 나왔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조제 사라마구(1922~2010)의 장편소설 ‘카인’(해냄)과 ‘작은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안데르센상 작가상을 받은 우에하시 나호코(54)의 장편소설 ‘사슴의 왕’(전 2권·문학사상)이다. ‘카인’은 우화적 수법과 환상적 요소 등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2009년 포르투갈어로 출간된 이후 27개국에 번역 소개됐다. 인간의 죄와 회개를 촉구하는 데 거론되는 ‘죄지은 자’ 카인의 눈을 통해 신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세상을 되돌아본다. 카인은 구약성서 창세기 4장에 나온다.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에 의해 이마에 낙인찍힌 뒤 놋 땅으로 쫓겨났다. 소설은 카인이 10여년 동안 떠돌면서 창세기 속 사건을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카인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너그럽지도, 자애롭지도 않다. 아들을 희생양으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는 아브라함의 모습, 하늘에 닿고자 거대한 탑을 쌓는 사람들을 향해 여호와가 허리케인으로 한 일, 아이들의 머리 위로 불과 유황을 내리는 광경, 시나이라고 불리는 산기슭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그 죄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 등을 겪으면서 카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되묻는다. ‘사슴의 왕’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를 연상하게 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가 타인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파고들었다. 소설은 ‘반’과 ‘유나’, ‘사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반과 유나는 죽음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살아남은 동지 관계이고, 반과 사에는 쫓고 쫓기는 관계다. 작가는 소설 속 모든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도록 서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 공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작품 속 숲, 마을, 인물들, 사건 장면들이 이미지로 그려진다. 출판사 측은 “세밀한 묘사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구성,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유머가 마지막 책장까지 확인하게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2016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심사평] 동화가 콘텍스트임을 보여주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

    [2016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심사평] 동화가 콘텍스트임을 보여주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

    동화는 텍스트인가, 콘텍스트인가? 흔히들 동화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기에, 동심을 그린 것이기에, 텍스트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애초에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방정환 선생의 의도는 다분히 콘텍스트적인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던 그 시절 어린이들을 미래의 독립투사로 여기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며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행위야말로 콘텍스트적인 것이다. 이번 응모작들을 보면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여전히 문학이 텍스트라 여기는 작품들을 걸러냈다. 어설픈 우화, 문제의식 없는 옛이야기식의 동화, 아니면 너무 흔한 개나 고양이의 이야기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콘텍스트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나 수십 편씩 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응모작으로서 혹은 콘텍스트로서 가치를 잃은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시대를 담고 있으면서 동화로서의 미덕들을 담은 작품 몇 편을 골랐다. 그리고 면밀히 읽은 결과, ‘잠자는 도시의 아빠’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를 봤다. 이 작품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시의성을 품고 있으며, 발랄한 상상력에 반전까지 선사한다. 가히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을 만난 느낌이다. 동화가 콘텍스트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곰아저씨의 겨울’은 상상력과 의미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잡아당겼으나 구멍과 곰의 굴은 다르지 않으냐는 반론이 있었고, ‘나는 드론’이나 ‘유령의 길에서 자라는 돌’의 경우도 시의성을 잘 담고는 있지만 주제가 미약하며 너무 쉽게 갈등이 해결되는 단점이 있었다. 당선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탈락자들은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 영광을 차지하길 기원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