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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하오 光州” 중국이 온다

    “니하오 光州” 중국이 온다

    ‘중국 대륙의 악성(樂聖) 정율성(鄭律成·1914∼1976)이 고향 광주를 살릴 것인가.’중국인들이 광주로 찾아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장관에서 교수, 문화원장, 학생 등이 대륙의 ‘우상’으로 떠받드는 악성이 태어난 생가를 보기 위해서다. 그가 16년 동안 살았던 생가는 광주 남구 양림동 79번지다. ●‘팔로군행진곡’ 작곡… 중국인들의 우상 중국인들이 국가 다음으로 즐겨 부르는 ‘팔로군행진곡’은 정씨가 작곡한 것으로 중국 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됐다. 중국의 아리랑이라는 ‘옌안(延安)송’도 마찬가지. 때마침 광주는 아시아 문화수도로 잰걸음 중이고 핵심 문화 콘텐츠로 정씨만한 자산이 없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또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 추진 중인 전남도의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 건설사업(J-프로젝트)에도 연결고리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무한한 관광자원 정씨의 생가에 온 중국인들은 녹음기에서 ‘팔로군행진곡’이 흘러나오자 합창했다. 지린성 옌지(延吉) 제3중학 진주위안(金洙元·47) 부교장은 “정 선생은 중국 내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선족의 영웅이다. 조선족 학교에는 그의 초상화가 안 걸린 곳이 없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광주 남구는 정씨와 연고가 있는 저장(浙江)성과 베이징, 옌안(산시성) 등과 자매결연하려 한다. 생가 방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전략이다. 또 생가 정비는 물론 기념관을 건립하고 생가 부근에 중국 영사관을 유치해 관광 거점지로 만든다는 것. 관광업계에서는 “생가와 기념관 등을 묶는다면 중국 관광객을 끌어오는 좋은 테마(주제)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평화교류의 장 중국의 민족 운동과 문화발전에 공헌을 한 정율성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아우르는 문화 교류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정씨는 현재 중국 3대 작곡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중국 국가(의용군행진곡)를 작곡한 니에( 耳·사망)는 “베토벤이 천재적인 작곡가라면 정뤼청(정율성)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악성”이라고 적었다. 중국사회과학경제연구소 잔샤오훙(占小洪))은 “중국 13억 가운데 80%(10억명)는 그가 작곡한 노래를 1곡 이상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중국문화원 주잉제(朱英杰) 원장은 생가를 찾아 “정율성은 한·중 양국 문화교류의 핵심 콘텐츠”라고 치켜세웠다. 또 중국 웨이하이(威海)시 마스허(馬世和) 상임부시장은 “정 선생의 생가를 한·중 젊은이들의 우호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며 중국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황일봉 광주 남구청장은 “한·중을 아우르는 정율성의 우호예술 활동은 아시아 문화수도사업 추진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조명 작업 1914년 10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정씨는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에 나선다. 평생을 민중을 감싸는 순수 음악인으로 살았다. 2002년 중국에서는 정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주향태양(走向太陽)’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광주 국제영화제에서도 특별 상영됐다. 또 저장성 방송국이 정율성 다큐멘터리를 한·중 공동으로 찍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 8월 처음으로 정부가 정율성 추모음악회를 열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몽골, 서울에서 사진으로 보세요

    몽골, 서울에서 사진으로 보세요

    몽골과 한민족은 이란성 쌍둥이 같다. 언어도 둘 다 알타이어족에 해당한다. 몽골은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뿌리’를 같이한 ‘형제’를 찾을 수 있는 행사가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맞춰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4일까지 개최되는 ‘울란바토르의 날’ 행사가 그 현장이다. 몽골·울란바토르의 사진과 그림전시회, 투자설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4일까지 울란바토르의 날 행사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다.1995년 10월 6일 서울과 자매 결연을 체결한 이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우호협력과 신뢰를 이어왔다. 이번 울란바토르의 날 행사는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열린다. 올해는 ‘귀한 손님’까지 왔다. 앵흐벌드 울란바토르 시장을 비롯, 울란바토르 시의회 부의장 등 모두 94명으로 구성된 교류단이 4일까지 서울을 방문한다. 이들은 지난 30일 서울시청을 방문해 서울과 울란바토르 양 도시의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도 발표했다. 눈길을 끄는 행사는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몽골·울란바토르 그림전시회. 몽골 대평원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유목민족의 전통과 역사,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담은 사진과 함께 몽골 유명화가들의 그림 150여점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된다. 평소 접하기 어렵던 광활한 몽골 대평원의 모습과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시장등 교류단 방한, 투자설명회도 경제 교류를 위한 설명회도 열렸다. 지난 2일 오전 10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울란바토르 투자설명회가 개최돼 양 도시 기업인간의 경제 협력의 기회가 마련됐다. 또 가죽 등 원단과 의류, 보석류, 캐시미어, 식료품 등 다양한 기업제품 설명회도 열렸다. 화려한 몽골의 문화도 선보였다.1일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서울광장 야외무대에서 1시간 동안 전통 춤과 노래, 악기 공연 등을 가졌다. 또 지난달 30일과 1일 이틀 동안 ‘만드항우의 일대기’,‘진지마’ 등의 역사영화도 선보였다. ●몽골과 울란바토르는? 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한 내륙국가다. 남쪽은 중국과, 북쪽은 러시아와 접해 있다.247만여명이 한반도의 7배가 넘는 150만여㎢ 영토에서 살고 있다. 국민의 80%가 몽골족이며 라마불교를 주로 믿는다.13세기 몽고제국으로 세계를 호령한 뒤 오랫동안 청의 지배를 받다가 1924년 몽골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9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몽골 산업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몽골의 정치·산업 중심지이다. 자매결연과 함께 96년에는 울란바토르 나트사그도르지의 거리 1㎞를 서울의 거리로 지정할 만큼 서울과 친숙한 도시다. 시장은 시의회 의원 가운데 선출하며, 총리가 임명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인천 ‘한·중 문화관’엔 한국이 없다?

    인천시 중구가 최근 대중국 교류거점을 위해 설립한 한·중문화관에 중국은 있으나 한국은 없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구는 지난달 16일 89억을 들여 인천시 중구 선린동에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876평 규모의 한·중문화관을 개관했다. 문화관에는 중구와 우호협약을 맺은 중국 산둥·저장·랴오닝성 등 3개 성 8개 도시로부터 기증받은 도자기와 유리공예품, 비단, 유물 등 648점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다양한 물품을 전시한 중국관과는 달리 한국관에는 도자기비엔날레에서 구입한 50여점의 도자기와 서너개의 홍보물이 전부여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 홍보물은 2층 문화전시관에 중국 사회·경제·문화 등에 걸친 홍보물과 음식·의류 모형물을 설치했으며 중국 전역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등 화려하다. 또 우호도시 홍보관인 3층도 신석기 홍산문화 유물 등 중국 선사시대를 비롯해 한북위시대, 전국시대, 상주시대, 진시황대의 유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한국 문화 전시관 2층에는 인천과 연관성도 크지 않는 ‘해상왕 장보고’,‘북학파의 개혁운동’ 등이 전시돼 있을 뿐이다. 조모(43·인천시 남구 관교동)씨는 “중국의 화려한 문화재와는 달리 우리나라 물품은 초라하기 그지없다.”면서 “한·중문화관이면 동일하게 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중국만을 홍보하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구 관계자는 “한국문화를 담는 데 한계가 있어 인천을 중심으로 한국관을 꾸미게 됐다.”면서 “앞으로 물품을 계속 바꿔가면서 전시할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변화를 주겠다.”고 해명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분노의 30년…위령비 찾는 한국인 이젠 친구”

    ■ 가족잃은 피해자들의 용서 “36년 전 총질을 해대던 그들에게 난 이미 죽었어. 하지만 정말로 눈 감기 전에 당신들이 날 찾아와 줬구먼. 우리 손자가 살아 있다면 딱 당신들 또래일 텐데….” 김현아(38·여)씨는 베트남 할머니 응웬티니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2003년 8월 어느날, 베트남 쾅남성의 시골마을 투이보촌. 마을 어귀에서 위태롭게 지팡이를 짚고 서 있던 응웬티니 할머니는 그의 손을 꼭 감싸쥐었다. 반밖에 남지 않은 턱을 힘겹게 움직여 짓는 희미한 미소. 한국군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증오와 절망의 세월을 지내온 할머니는 그렇게 원수의 나라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85세로 세상을 떴다. 김씨를 비롯한 시민단체 ‘나와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우연히 베트남의 항구 도시 다낭에 갔다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전해듣고 현장을 찾았다. 응웬티니 할머니를 통해 들은 67년 12월21일의 이야기는 참혹했다. 한국군 1개 소대가 닥치는 대로 총을 쏘며 마을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땅굴로 숨은 주민들을 밖으로 끌어내 무차별로 총질을 했다.145명이 죽었다. 응웬티니 할머니는 아들과 딸, 사위를 잃었고 3살배기 손자는 품안에서 두개골이 산산조각났다. 자신도 왼쪽 턱과 혀 반쪽이 날아갔다. 쾅아이성 푹빈촌에서 만난 응웬리(75) 할아버지는 “66년 9월 한국군을 피해 사탕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와 형제, 조카 등 9명이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면서 내내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으며 울부짖었다. 같은 마을 레티티엣(64) 할머니는 “갓난 아들을 보여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아들은 뇌손상을 입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끔찍한 기억을 가진 베트남 사람들과 그 말을 믿기 어려웠던 한국인의 첫 만남은 서로에게 당혹스러웠다. 마을 어귀부터 서럽게 울면서 따라다니는 할머니도 있었고, 간간이 노려보거나 원망을 토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매월 할머니·할아버지 10명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피해 지역 묘지 조성과 위령비 건립, 베트남 평화 기행, 한-베트남 평화 캠프 등을 통해 ‘속죄’를 구하면서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66년 10월 112명이 죽은 쾅아이성 지엔니엔촌 사건의 생존자 팜티메오(85) 할머니도 그랬다. 가족 11명이 죽었고 자신도 가슴에 커다란 총상이 남아 있다. 나직이 말을 이어가다 울음을 터뜨린 할머니는 “내가 우니까 부담스럽지 않으냐.”며 오히려 마주앉은 한국 사람들을 걱정했다. “한국인인 제가 밉지 않으세요.” “그때의 한국 군인들은 증오하지. 하지만 당신들은 그때 겨우 태어난 사람들인걸. 그동안 아무도 묻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정말 고마워.” 69년 10월 쾅남 빈영사 사건에서 일가족 8명을 잃은 판반카(72) 할아버지는 “30년간 한국 사람들에게 치를 떨었지만 2002년부터 꾸준히 찾아와 위령탑에 진심으로 참배하는 한국인들을 이제는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벌인 전쟁에 군대를 보내야 했던 한국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 그래선지 한 할머니는 2003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소식에 또다시 같은 일을 한다며 걱정해 주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가 먼저 화해니 용서니 하는 것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해지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작으나마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전쟁 피해자인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도 동참하고 있다. 평화 박물관 사업은 200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당시 83세)·김옥주(당시 77세) 할머니가 “더 이상 우리 같은 전쟁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낸 성금 7000만원을 종자돈으로 해서 추진됐다. 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이옥선(79) 할머니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나와 우리’ 김정우 사무국장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한국군의 행위를 무조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그래야만 우리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과거사 감추기에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아직도 베트남전을 반공성전이나 국위선양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인접국 ‘진출’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베트남전을 진실되게 조명하는 노력이 진정한 한·베트남 관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포용의 戰前세대’ 딩반득 교수 “이제는 과거를 닫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 2월부터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딩반득(62) 교수. 그는 “죽는 순간까지 베트남 전쟁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한국이나 미국에 대해 크게 나쁜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 복구위해 평화 택한것 “한국인이 미안하다고 얘기할 때면 저는 늘 괜찮다고 말합니다. 물론 전쟁 직후에는 한국이 싫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평화를 원했고 썩은 시체와 말라버린 초목만 남은 나라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싶었기에 베트남은 증오를 버리고 평화를 선택했다고 딩 교수는 전했다. 그는 전쟁 당시 하노이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4년간 학생들과 산에서 숨어 지냈지만 도시에 떨어지는 폭탄, 곳곳에서 들려오는 총성 등 전쟁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 썩어가는 시체들조차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잠을 설치게 만드는 전쟁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게 그에게는 커다란 괴로움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그는 “사과는 감정적인 문제”라면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과거에 대한 사과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한국의 베트남 투자, 영화, 한류(韓流)로 대표되는 문화적 교류로 양국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엽제 피해 대물림… 꼭 해결돼야 그는 양국의 우정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딩 교수는 “고엽제로 인한 고통은 전후 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면서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베트남의 동반자로 인정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냉정한 戰後세대’ 원지통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의료·교육 등 어떤 식으로든 베트남에 한국은 보상을해야 합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베트남 학생 원지통(26)은 한국에 대해 전쟁 세대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 얘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그는 한국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전쟁에서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했죠. 한국·베트남 우호 관계를 말할 때 흔히 투자를 얘기하지만 그건 한국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베트남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것은 아니지요.” ●“한국 투자가 우리를 위한 선행인가” 원지통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좋아하고 눈물나게 매운 불닭을 즐기며 세련된 차림의 한국사람들에 호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과거 문제는 별개다. 그는 “윗세대들은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린다.”면서 “증오심을 꺼내 보이면 과거 악몽이 떠올라 자신이 더 괴로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우리는 동반자’라는 미명 아래 모든 문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법원이 고엽제 소송을 기각한 데 대해 “고엽제 문제는 누가 누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는가의 차원이 아니다.”라면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가족이 고통받고 있는 만큼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나쁜감정은 없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잔혹한 이미지까지 바꿀 수는 없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베트남 사람들이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독도 분쟁과 비슷한 문제로 중국에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평택시·미군부대 상설협의체 구성

    미군기지 이전대상 지역인 경기도 평택 지역 주둔 미군과 지역사회간에 현안을 논의하는 상설 협의체가 구성된다. 경기도 평택시는 27일 평택시 팽성읍 지역에 미군 K-6(캠프 험프리) 부대가 주둔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평택시장과 K-6 부대장 등 양측 관계자들로 이뤄진 한·미협력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시는 28일 시청 종합상황실에서 송명호 시장과 K-6사령관 마이클 J 탈리엔토 대령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평택 한ㆍ미 협력협의회(KAPC,Korean-American Partnership Council) 구성을 공식 발표한다. 시와 미군측은 그동안 협의를 통해 ▲협의회 회의는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되 ▲현안이 발생하면 수시로 열며 ▲세부사항 논의를 위해 실무급 회의를 구성키로 하는 등의 한·미협력협의회 운영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4일 평택시 송탄출장소가 신장동과 서탄면 일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 K-55(오산베이스)측과 ‘송탄·오산 미공군 지역운영위원회(OSCAC)’를 구성하고 실무협의회를 운영중이다. 시 관계자는 “미군기지 평택 이전을 앞두고 주한미군과 지역사회간 분쟁 해결은 물론 우호증진을 위한 협의체가 마련돼 양국간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한국·양저우 2500년 교류역사 꽃필것”

    “잘 보존된 생태 환경과 특색있는 문화가 어우러진 품격 높은 첨단 국제 도시가 양저우(揚州)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3000년 고도 양저우의 현대적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왕옌원(王燕文)시장은 25일 “양저우가 ‘대 상하이권’의 주요 배후 도시로서 전기를 맞고 있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한·중 여성지도자 포럼 참가를 위해 지난 20일 서울에 온 왕 시장은 중국 전역에서 7명뿐인 여성 시장중 한 명. 그 가운데서 가장 젊은 45세로 인구 470만명의 고도 양저우의 변신을 이끌고 있다.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초청으로 전·현직 장·차관급 중국 여성 지도자 9명과 함께 방문한 왕 시장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차세대 지도자. 중국 남부 거점 난징(南京)에서 대변인격인 선전부장, 공청단 서기 등 요직을 거쳤다.100만명이나 되는 난징지역 청소년 및 청년 공산당원의 조직 관리를 이례적으로 여성 서기가 맡은 점이 중앙정부의 시설을 끌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수수한 옷차림, 앳된 용모로 “시장 비서냐.”는 오해도 종종 받았지만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군중 사이에 파고드는 행정과 지도력을 평가받고 있다. “다음달 양저우∼전장(鎭江)을 잇는 룬양대교가 완성되면 상하이가 2시간 거리내로 들어오고, 상하이∼난징∼양저우로 이어지는 공업벨트 구축이 가속화된다.”면서 “양저우는 상하이 경제권의 주요 도시로서 화동 경제권의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자재와 기술, 지방 정부의 전폭적인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결합,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는 자랑이다. “양저우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고향이다. 지금도 여러 통로로 장 전 주석이 지역 발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남다른 고향 사랑과 자부심으로 알려진 장쩌민은 1991년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을,2000년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을 직접 수행해 양저우에 가기도 했다. “양저우는 중국 경제의 중심이던 2500년 전부터 한국과 활발한 교류 관계를 이어왔다. 당나라 과거에 급제, 도지사 등을 지낸 대문장가 최치원이나 장보고, 청나라때 대상인 안치 등 적잖은 한국인들이 양저우에서 활약했다. 최치원 기념관도 있다.” 아시아에선 한국과의 교류를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여긴다는 왕 시장의 소개처럼 양저우는 여수, 제주, 대구 등 3개 도시와 우호도시 협정을, 용인과 자매도시 협정을 각각 맺고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왕 시장은 오는 6월 양저우시 투자유치단을 이끌고 다시 한국에 온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中·日 정상회담 후진타오 勝?

    |도쿄 이춘규특파원·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대규모 ‘반일시위’로 악화된 양국의 관계개선을 시도했다. 하지만 회담에서는 양국의 관계개선과 대화의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는 ‘수사적 표현’ 외에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데다 일본 내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양국 관계회복은 여전히 험난하다는 평이다. ●후진타오 “반성 행동으로 보여라” 지난해 11월 칠레 이후 5개월여 만에 만난 양국 정상은 55분간 회담을 가졌다. 회담 후 후진타오 주석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이 중국인의 감정을 상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중·일 공동성명과 중·일 평화우호조약에 의거한 21세기 중·일 우호협력 강화 ▲역사적 검증을 통한 미래 협력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한 타이완 문제 해결 ▲양국관계 문제의 평화적 해결 ▲광범위한 교류·협력 강화 등 5개항을 제시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고이즈미 “신사참배 적절히” 확답 피해 고이즈미 총리도 기자회견을 갖고 “아시아 전체와 국제사회에 있어 양국 우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회담이었다.”며 “알맹이 있는 우호관계를 중시하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밝히면서 참배 여부에 대해서는 “적절히 판단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확답을 비켜갔다. 양국관계의 앞날에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식 등 적지 않은 뇌관이 산적해 있다는 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냈다. 서로가 경제적, 외교적인 타격을 우려해 겉으로는 우호를 강조하긴 했지만, 실타래를 풀기 위한 어떠한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양국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후 주석은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직격탄을 날렸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올해 참배 여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자민당 총재 당선 당시 공약대로 올해 다시 이 신사를 참배할 경우 양국관계는 다시 한번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여전한 불씨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껄끄러운 사안인 이 문제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중국이 생산을 개시하겠다고 예고한 8월 이전에 이 문제를 놓고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관측된다. ●日언론들 저자세 외교 비판 일본 언론들의 평도 냉혹하다. 마이니치신문과 도쿄신문 등은 중국인의 폭력 반일시위에 대해 후 주석이 사과하지 않고 배상도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저자세 외교’를 비판했다. 후 주석의 페이스에 일방적으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taein@seoul.co.kr
  • “고이즈미, 아시아 경시 외교실패”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일 중국 지도부가 대규모 ‘반일시위’의 원인을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에 둔 것과 관련,“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와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5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으로는 가장 수긍할 만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여야 대표토론에서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의 지적에 이같이 답하고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국제사회와 우호관계를 유지·발전시켜 나간다는 방침을 실천에 옮겨온 것이 전후 60년간 일본의 자세였다.”며 “이 방침대로 외교를 발전시켜 가겠다.”고 밝혔다. 오카다 대표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한국과 중국이 반발한 것에 대해 “일본외교의 실패”라면서 “일본이 원인을 만든 만큼 반성이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총리는 아시아를 너무 경시하는 외교를 해왔다.”고 지적했다 taein@seoul.co.kr
  • [사설] 친미·반미논쟁 그만두자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 파장이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제 해명에 나선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했다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섞인 대응으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논란의 발단이 ‘동북아균형자’든 ‘친미주의자’든 분명히 노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됐는데, 이를 일부 언론과 학계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친미·반미를 둘러싼 치졸하기 그지없는 논쟁은 국익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게 없으며, 국민을 짜증스럽게 만들고 있다.60년간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해 온 우리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미국의 영향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특정개인의 경우에도 때로는 친미적 성향을, 때로는 반미적 성향을 드러내는데 하물며 국가적으로 논쟁을 벌여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논란거리가 뻔한 의제를 불쑥 던져놓고 논쟁이 격화되자 뒤늦게 “협상력 약화” 운운하면서 논쟁 참여자들을 탓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가 취할 도리는 아니다. 논쟁이 확산될수록 국민의 시름은 더 깊어짐을 왜 모르는가. 더구나 최근 들어 주한미군 참모장이 방위비분담금 불만으로 한국인 근로자 1000명을 줄이겠다고 하고, 미7함대 사령관의 독자적 군사행동 발언 등 미국 쪽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견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마찰음이며, 한·미 우호에는 변함 없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 “반미면 어떠냐?”라고 한 말 때문에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국민은 일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미국에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당당하게 요구하되, 조용하고 ‘외교적’으로 처리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일이 되는 것이다. 국민뿐 아니라 주변국들도 지켜보고 있다. 소모적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해주는 게 양질의 정치다.
  • [열린세상]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과 미국/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의 중장기 대외정책 비전으로 제시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 안보구도와 관련국들의 동북아 전략 및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변화는 바로 한국의 안보전략을 제약하는 여건으로 환류될 것이므로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먼저 중국과 북한은 한·미동맹과 한·일 협력관계의 이완으로 이를 반기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우호협력자로 여기다가,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우경화 추진과 재무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보게 되었다. 이는 정부가 이미 예상했던 바일 것이다. 문제는, 동북아 지역 밖에 있지만 사실상 동북아의 안정자 및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온 미국의 반응에 있다. 참여정부의 기본 취지는 일본의 우경·재무장을 견제하고 중·일 대립을 적극 중재한다는 것이지만, 현재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권장하여 중국의 팽창을 공동 봉쇄한다는 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균형자론이 자칫 반미노선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 유지를 병행한다고 하지만 미국 측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 억제와 중국 견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순수한 한·일 갈등에서는 중립을 취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일본을 견제하고자 중국과 연합할 경우 한·미동맹을 고려해 중립을 지키기보다는 일본 편을 들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현재 한국과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 등 주요 안보 현안에서 유사한 전략을 갖고 있지만 통일문제에 대한 이해는 상이하며, 중국은 한국을 보호할 의지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동북아 안보를 주도해 온 미국이 우방이므로 우리가 원하는 한 계속 동맹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 낙관한다면 오산이다. 미국은 상수가 아니라 주요 독립변수이고, 미국의 외교적 수사와 실제 정책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에도 한·미동맹이 유용하므로 일정 한도에서는 관망하겠지만 한국이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 수호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차원의 전략적 공세를 가해올 수 있다. 미국은 우리가 1997년 IMF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미 동맹국 보호보다는 자국 이익 극대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북핵문제를 보아도 물론 북한이 정권유지 전략과 모험주의로 한민족 전체를 위험에 내몬 책임이 크지만, 미국 역시 국익을 위해 동북아 평화를 경시하여 왔다. 부시 행정부는 남북경협 활성화와 고이즈미 방북으로 동북아에 화해 질서가 무르익어 가는 상황에서 으뜸패로 북핵문제를 들고 나와 동북아에 대한 통제력을 재구축했다. 또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고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여 북한의 핵보유를 자초하고도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적대정책의 포기만 선언해주면 북한을 협상의 틀 속에서 압박할 수 있고, 조건부 체제보장을 해준 뒤 약속 불이행시 당당히 제재할 수도 있는데,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도 공개하지 않은 채 북한만 나무란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대화를 통한 화해와 통합보다는 미사일 방어계획 추진의 명분을 얻기 위한 긴장 유지나 군사적 우위에 입각한 자국의 패권 유지를 우선시함을 보여준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그릇된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군사 공격하였고 그 결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전략을 구상하며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다양하고 강력한 정책 수단을 전개해 왔다. 특히 미국은 매년 1조달러의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난국 돌파를 위해 특단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형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미국에 대한 심리적 의존은 탈피하되 미국을 무서운 국가로 간주하여 신중히 대해야 한다. 지혜와 끈기로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한 국가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균형자론이 미·중 대립이 아니라 중·일 갈등의 중재를 겨냥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동북아 어느 국가도 오해하지 않도록 명분을 보다 명확히 내세워야 한다. ‘균형자’라는 용어보다는 ‘평화 중재자’등 매력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정부의 대미 설득 역량에 새로운 국가전략의 성패가 달려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韓·日 악화로 韓·中 밀착 가능성”

    |도쿄 이춘규특파원|영토와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ㆍ일관계 악화로 인해 한·중관계가 밀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유럽연합(EU)의 중국 관련 보고서를 인용,20일 보도했다. 중국의 군사, 경제, 외교, 인권 등 각 분야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지난주 열린 EU 비공식 외무장관회의에 제출됐다. 신문에 따르면 보고서는 교과서와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대립을 소개한 뒤 영토문제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가 “한·중우호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중국이 “15년 후에는 일본과 같은 규모의 경제력을 가질 것”이며 2050년 1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중국이 앞으로도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동시에 군사력 증강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하고,10∼15년 앞을 내다 보고 대(對)중국 외교전략을 마련하라고 회원국들에 촉구했다. taein@seoul.co.kr
  • “韓·日시각차 민중사관으로 극복”

    “韓·日시각차 민중사관으로 극복”

    한국 교사들과 공동으로 역사교재를 펴낸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사무실에 총알이 날아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후소샤 교과서 비판과 관련, 협박전화가 잇따르는 등 일본 우익의 폭력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은 19일 오후 한·일공통역사교재인 ‘조선통신사’ 출간(서울신문 4월16일자 보도)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교육문화부장 고바야 가와켄씨는 “지난 2003년 히로시마 시내의 한 건물 3층에 있는 조합 사무실로 두 발의 총탄이 날아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총격이 역사 교재 편찬과 관련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며 “당시 발생했던 히로시마의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과 관련, 우익측이 조합 소속 교사들의 괴롭힘 때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총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 초 히로시마현 교육위원회가 팩스통신을 통해 시·군·구 교육위에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유도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러나 교직원조합측에서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이는 특정 회사, 즉 후소샤에만 특혜를 주는 불공정행위라고 비판하자, 이후 조합 사무실로 협박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통신사’ 한·일 동시 출간과 관련, 대구와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은 ‘공동기자회견에 즈음해서’란 성명을 통해 “객관적으로, 민중의 입장에 선 역사를 기술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역사는 한 가지라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자국 주장만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역사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할 것이 역사교과서에는 요구되고 있다.”며 “한·일공통역사교재가 과거의 아픈 역사와 상호 불신을 극복하는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선통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과, 이후 두 나라 우호를 다진 조선통신사 왕래 등을 민중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당초 한·일 고대사로부터 근·현대사까지 방대한 범위를 다루려고 했으나, 양측의 의견 차이와 연구의 어려움 등으로 범위가 상당히 좁혀졌다. 이에 대해 박신호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근·현대사와 고대사는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수업을 병행해야 하는 연구의 어려움 때문에 뒤로 미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경우 오는 5∼6월 집필자들을 선정하고,8월에 연구내용을 발표하는 등 집필작업에 곧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근·현대사 집필 이후엔 고대사도 순차적으로 다루는 등 2007년까지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자리를 주선한 정봉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와 교육부 차원에서 일선 학교가 한·일공통역사교재를 부교재로 채택, 활용하도록 적극 권고하겠다. 앞으로 근·현대사와 고대사 연구, 책 집필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회플러스] ‘대통령 저격’ 패러디 수사 착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주 한 우익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이른바 ‘대통령 저격’ 패러디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대통령 저격’ 패러디를 올린 네티즌과 작성 의도, 경위 등을 수사할 방침”이라면서 “사법처리를 할지는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패러디는 지난 16일 우익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에 한 네티즌이 독자 투고 형식으로 올린 것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마를 저격수가 정조준하고 있는 내용이다.
  • 盧대통령 독일·터키 방문 마치고 귀국

    노무현 대통령은 8박9일 동안의 독일·터키 방문을 마치고 18일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영국·프랑스·폴란드 방문에 이어 유럽연합(EU) 주요국가들과 정상외교 활동을 일단락지었다. 노 대통령은 독일 방문에서 교역 및 투자 기반 확대의 계기를 마련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 등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독일 정부의 협조와 지지를 재확인했다. 노 대통령은 1957년 수교 후 48년만에 우리나라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터키를 방문해 터키의 6·25 전쟁 참전으로 맺어진 전통적 우호관계를 돈독히 했으며 이라크 인접지대에 파병된 국군 자이툰 부대의 활동에 관한 터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확약받았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都·農 교류협력 모델될 것”

    서울시와 전남도가 자매결연을 맺었다. 서울시와 전남도는 18일 전남도청에서 지난해 체결한 ‘서울-전남 우호교류협정’을 확대해 ‘서울-전남 시·군·구 합동 자매결연식’을 가졌다. 이번 자매결연식에는 지난번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서울의 12개 자치구가 추가돼 앞으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와 전남지역 22개 시·군이 모두 교류관계를 갖게 된다. 이날 결연식에는 이명박 시장을 비롯해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청장, 박준영 전남지사와 22개 전남지역 시장·군수(이상 기초단체장은 대리 참석자 포함) 등이 참석했다. 이 시장은 “자매결연을 두고 대권행보를 염두에 둔 정치적인 행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많이 있는데 만약 단기적인 행사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 2∼3년 지켜보면 오늘의 의혹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면서 “전남도와의 교류는 도·농 교류협력의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지사는 “전남도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산물을 먹은 남성의 경우 생식능력이 증가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도 서울과 전남의 교류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윈윈을 강조했다. 이날 자매결연을 한 자치단체는 나주-종로, 영광-광진, 해남-중랑, 무안-도봉, 완도-노원, 진도-은평, 목포-서대문, 신안-마포, 화순-양천, 여수-강서, 구례-구로, 고흥-금천, 광양-송파 등이다. 또 서울시 양천구와 강동구, 전남도 나주시, 담양군, 해남군, 완도군, 신안군은 각각 기초자치단체 2곳과 인연을 맺었다. 이번 결연으로 장성군-중구, 함평군-성동구는 매월 또는 분기별로 아파트단지 등에서 농수산물 장터를 개설하며 나비축제와 명동축제 등에 주민 상호방문, 문화·체육인 초청 행사 등를 갖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농 교환 체험과 청소년 홈스테이, 수학여행 지원, 동아리 초청공연 등 다양한 교류와 친선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 남기창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고이즈미, 中비판 자제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조만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일·중 정상회담을 가질 경우 최근의 반일시위와 관련, 중국측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을 뜻임을 밝혀 양국관계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오후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담은 조정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외무장관 회담과 정상간 회담은 다르다. 회담을 하면 비난으로 응수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사과와 배상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장래의 우호를 생각하면서 우호관계를 어떻게 증진해 나갈까라는 적극적인 회담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전체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양국 우호를 대국적으로 생각해 준다면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중국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하지만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은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 요구를 일축한 데 대해 “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허용될 수 없다.”며 “(일본의)기본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정상회담에서도 사과와 배상을 재차 요구할 방침임을 밝혔었다. 이에 대해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반일시위와 관련,“원인은 역사문제에 있는 만큼 일본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우 부부장은 “중ㆍ일관계는 현재 국교정상화 후 가장 심각한 곤란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 부부장은 또 22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ㆍ아프리카회의 50주년 기념 정상회의 때 중ㆍ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냐는 질문에 “일본측에서 제안이 있었기 때문에 검토 중”이라고만 말했다. 한편 18일 오전 6시55분쯤 도쿄 시내의 ‘일·중 우호회관’ 별관에 있는 중국어 교습소 일·중학원 1층의 현관 대형 유리창이 공기총탄 등으로 보이는 금속탄에 맞아 구멍이 여러개 생겼다. 경찰은 중국 내 반일시위에 대한 반발행위로 보고 있다. tae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50년앙숙 印·파키스탄 ‘훈풍’

    50여년 동안 앙숙관계였던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다. 사흘 동안의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 중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과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17일 델리의 페로제샤 코트라 경기장에서 양국간 크리켓 대항전을 관람한 뒤 2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먼저 양국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첨예한 분쟁지역인 ‘시아첸 빙하’ 지역의 병력 감축 문제와 두 나라의 무역 증진 방안을 논의할 합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또 인도 라자스탄-파키스탄 신드주(州)를 잇는 기차를 운행하고, 인도령-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통과하는 트럭을 운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카슈미르에 수력발전용 댐을 건설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회담 뒤 무샤라프 대통령은 “많은 현안을 풀어나가는 데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으며, 회담 직후 싱 총리의 대변인도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싱 총리는 답방형식으로 조만간 파키스탄을 방문하기로 했다. 최근 카슈미르를 횡단하는 버스 운행이 시작됐고, 양국이 국경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투옥했던 상대국 시민들을 석방하는 등 지난해 초부터 진행돼온 평화회담이 결실을 맺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韓·中 우호협회회장 뤄하오차이

    중·한우호협회는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제2기 이사회를 열어 뤄하오차이(羅豪才) 전국정협 부주석을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6일 보도했다.
  • “독도는 일본땅” 명시 日외교청서 각의 통과

    |도쿄 이춘규특파원|‘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명시된 일본 정부의 외교청서가 15일 각료회의에서 승인됐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은 이날 지난해 1년간의 외교활동을 총괄한 ‘2005년판 외교청서’를 각의에 보고, 승인받았다. 외교청서는 외교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려고 발행하는 백서이다. 청서는 독도문제와 관련,“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상으로 명백히 일본 고유영토”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입장 차이가 국민 사이의 감정적 대립으로 발전, 우호협력 관계를 손상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만큼 어디까지나 우호적인 대화로 문제해결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기술했다. 대(對)중국 관계에서는 “개별 문제가 양국관계 전체의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해와 신뢰를 깊게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동중국해의 가스전 개발과 중국 원자력잠수함의 영해침범 사건은 각각 “중국의 정보제공이 불충분하다.”,“재발방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향후 외교과제로 ‘국제공헌’을 들면서 정부개발원조(ODA)의 제공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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