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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中 아시아 패권다툼 가열”

    “美-中 아시아 패권다툼 가열”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각각 동맹체제를 구축하면서 치열한 패권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2일 뉴스위크 인터넷판은 9월10일자 최신호에서 양국이 각각 최근의 군사훈련을 통해 아시아에서 벌이고 있는 패권경쟁을 분석했다. 미국을 위시한 인도, 일본, 호주, 싱가포르가 벵갈만에서 오는 9일 실시하는 ‘말라바 07훈련’은 그간 있었던 평시 연합군사훈련 중 최대규모다. 한편 중국은 이미 지난달 시베리아에서 ‘평화임무 07훈련’을 끝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4개국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이 동참했다. 뉴스위크는 두 군사훈련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중 양대 강국과 그 동맹국들의 안보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증거라고 소개했다.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이 지역에서 아직까지 우세하다. 그러나 최근 빠른 경제성장과 군비 증강으로 힘을 얻은 중국이 아시아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진영에는 일본, 호주 등 전통 우방국이 버티고 있고 몽골 등 신흥 우방국, 인도같은 잠재적 우호국도 가세했다. 중국 진영은 러시아,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미얀마, 캄보디아와의 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 각국은 양국 중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분석했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은 양진영 사이의 ‘울타리’에 교묘히 올라서 있는 중립국가로 분류됐다. 부시 1기 행정부의 마이클 그린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은 이런 상황을 ‘해양국가(미국) 대 대륙국가(중국)’의 대결로 규정했다. 다른 전문가는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의 무게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겨루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석유 확보를 위한 에너지 안보 ▲민족주의의 부상 ▲타이완문제, 중국 인권문제 등 역사적인 분쟁이 대결양상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양국 간 대결구도가 신냉전시대를 열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 견해가 적지 않다. 과거와 달리 경제적 상호연관성이 깊어진 것이 한 요인이다. 중국은 냉전시대 옛 소련과는 달리 서구 및 세계경제에 편입돼 있다. 또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무역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전통우방국인 호주는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커지면서 중국의 인권문제, 타이완문제를 비난하기를 꺼리고 있다. 뉴스위크는 이런 경제적 요소 때문에 한국 등 많은 나라들이 미·중 패권경쟁구도에서 중립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돈 요구했을것”

    아프간 현지 신문인 ‘아바디 위클리’의 무하메드 올린(29)기자는 29일 열 세번째 편지를 보내 “현지에서는 한국인 피랍자 석방에 대해 아프간 정부와 모든 언론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단순히 한국의 민관이 아프간을 떠나는 것을 조건으로 탈레반이 인질을 놓아 주었다는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탈레반이 자의에 의해 석방했다기보다는 돈이나 외부 국가의 압력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으리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덧붙였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29일 현지의 언론들도 일제히 한국인 피랍자 19명의 석방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탈레반 대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에 탈레반 죄수들을 풀어 주라고 설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한국인 인질들을 잡아둘 필요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한국 정부에 따르면 탈레반에 올해 내에 군부대를 철수시키겠다는 조건을 제시하자 탈레반이 결국 수용하고 19명의 인질을 풀어 주겠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탈레반의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돈이 오고 간 이면 협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주위 나라의 압력에 의해 탈레반이 억지로 협상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물론 오늘 연락해 본 한국 대사관과 탈레반은 양측 모두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의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지금껏 해왔던 인질 협상의 전례들을 살펴볼 때 분명 돈을 요구했을 것이랍니다.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재정 상황이나 월급을 줄 돈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이에 대해 아프간 정부의 관계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러나 그는 “인질 석방의 대가로 돈을 주었다면 탈레반의 무기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므로 아프간 정부에는 큰 짐이 된다.”면서 “한국은 아프간 정부에 있어 우호국이므로 그런 일은 없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분석가들은 돈보다는 외부 국가의 압력을 이번 협상의 이유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아프간 언론들도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기는 한데 특정 국가의 압력 행사를 전하지는 않습니다.
  • [임영숙칼럼] 중국의 美軍 동상

    [임영숙칼럼] 중국의 美軍 동상

    과문한 탓이었을까. 중국에서 마주친 미국 장군 동상은 낯설었다. 중국이 미군을 영웅으로 대접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앞으로 20년 이상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바란다고는 하지만 이토록인가 싶었다. 후난성 지장의 비호대 기념관(플라잉 타이거스 메모리얼)에서 마주친 동상의 주인공은 클레어 리 체놀트(1890∼1958) 장군이다. 사실 그는 중국이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체놀트 장군은 2차대전 중 퇴역 미 공군 조종사들로 구성된 비호대를 이끌고 전략적 요충지였던 지장에 와서 비행장을 만들고 일본군과 싸웠다. 비호대의 활약으로 일본군의 보급은 끊겼고 서남지역 진공은 막혔다. 결국 중국은 이곳 지장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 냈다. 비호대 기념관은 이런 사실을 알리는 사진 자료와 미군이 쓰던 무전기, 군복, 일상용품들을 전시하는 한편 당시 희생된 비호대원들의 명단을 기념관 벽에 새겨 놓았다. 중국은 이달 초 지장에서 국제평화문화축전과 비호대 기념관 개관 기념식을 갖고 항일전쟁 승리 60주년을 크게 자축했다. 지장 비행장 잔디밭에서 열린 국제평화문화축전에는 비호대를 비롯한 2차대전 연합국 노병들과 중국의 노병들, 일본의 항복을 받아 낸 관련 증인들, 주중 외교사절 등이 초대됐다.2차대전 중 아이젠하워 장군의 미군 상륙작전이 이루어졌던 프랑스 노르망디 시장도 자매도시의 축제에 참가했다. 20여명에 이르는 비호대의 노병들은 당연히 가장 큰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행사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당시 군가를 부르며 감회에 젖었다. 비호대 노병들의 군가 합창이 끝나자 중국의 유명가수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라며 그들을 향해 ‘유아 마이 선샤인’을 열창했다. 이런 정경은 흡사 미국이 중국을 해방시킨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중국과 미국의 협력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낮은 자세로 실리를 추구하는 화평굴기(和平起) 전략은 그토록 철저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미국이 위협을 느낄 만큼 커져 가는 중국의 관계는 미묘하다. 지장 축제 직전에 열린 제5차 한·중 지도자포럼에서 중국의 ‘제2외교부’로 불리기도 하는 외교학회 회원들은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토로했다. 회원들의 대미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루추톈 회장이 나서서 “하나하나 따지면 불만이 많지만 중국은 미국의 동북아 지역에서의 이익을 고려해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미국의 냉전의식을 누그러뜨리고 우호국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정리해야 할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지장으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미국 외교관은 양복 깃에 두 나라의 우호 친선을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있었다. 성조기와 오성홍기가 교차한 모양의 배지였다. 그는 베이징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외교관들이 이 배지를 달고 다닌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국 대사관에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교차한 배지가 있지만 기념품으로 주로 나누어질 뿐 미국 외교관들이 옷에 착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냉전을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단초를 열 것으로 기대되는 이번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채택은 미국과 중국의 협력으로 가능했다. 미·중 관계와 동북아 질서 또한 큰 변화의 흐름을 타게 될 것이다. 역사의 한 흔적으로 잊혀져 가던 맥아더 동상이 새삼 상징성을 부여 받고 극단적인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우리 사회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日 야치차관발언 오해 부를 수도”

    한·일 양국 외교라인간 설전이 험악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25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야치 차관이 지난 11일 일본을 방문한 유재건 의원 등 일부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미국이 한국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고 있어 일본도 한국과의 정보공유·협력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5일 브리핑 석상에서 야치 차관의 발언에 대해 “우호국의 고위관리가 한·미간 공조관계에 대해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한·미간에는 정보공유면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일본이 무슨 정보를 갖고 있고 미국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체로 안다.”면서 “야치 차관의 말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서술하지 않았다.”고 쏘아붙였다. 앞서 24일 이규형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는 야치 차관의 발언을 보고받은 직후 일본측에 한·미관계에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패한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 베트남 북쪽에서는 총성이 멈췄다. 호찌민은 즉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모든 정책과 사업은 현장에서 결정됐다. 호찌민 노선이 대중의 감정과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자신이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찌민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까오방 사람들은 호찌민이 주석이 된 다음 다시 찾아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까오방의 당 서기장은 성대한 음식으로 호찌민을 대접했다. 그러나 호찌민은 화를 내며 “당신이 다 먹으라.”고 자기 앞의 음식 접시를 모두 당서기장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지금 까오방성의 인민들이 어떻게 먹고 있느냐.” 밖에서는 기근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뒤 호찌민은 지방시찰 때마다 도시락을 싸갔다. 예정된 코스를 불쑥불쑥 벗어나서 방문에 대비한 어떤 준비도 헛수고로 만들어버렸다. 가뭄이 든 남딘성 이옌마을을 예고없이 찾은 호찌민은 갈라터진 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몇 바가지의 물이라도 대려고 바닥이 보이는 개울을 바가지로 긁고 있는 아낙네를 비키게 한 호찌민은 직접 물을 펐다. 그러나 갈라진 논의 틈새조차 채울 수 없었다. 이 때 호찌민은 관개수로사업을 구상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에 걸친 ‘박흥하이 관개수로사업’이 시작된 것. 삽과 들것, 수레에 의존한 이 건설운동은 디엔비엔푸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공사과정에서 수동식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수많은 운반도구들이 발명됐다. 호찌민은 전쟁에서 발휘되었던 베트남인의 창의성과 애국심을 생산운동으로 이끌어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을 가뭄에서 해방시킨 이 공사과정이 담긴 기록영화 ‘박흥하이에 물이 들다’에 1959년 모스크바영화제는 다큐부문 최고상을 안겼다. 이 영화의 감독 부이딘학은 현장을 방문한 호찌민을 네 차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까 호 아저씨가 오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돌려서 아저씨를 찍으려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어요. 일하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알아보고 마구 몰려드는 거예요. 곡괭이, 삽을 든 채로 말입니다. 당황한 경호원들이 놀라서, 연장을 들고 달려들면 아저씨는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오는데, 가까이 올수록 더 빨라지는 거예요.” 하노이의 한국식당 춘하추동에서 만난 부이딘학은 마치 어제 일처럼 말했다. “이때 호 아저씨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소리쳤어요. 호 아저씨 여기 있다. 다들 봤지. 봤으면 이제 자기 자리로 가서 일하자.” 그러나 호찌민의 인민생활 향상정책은 10년이 지난 1964년이 되면서 중대한 도전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국민들조차 등을 돌린 사이공정권의 응오딘지엠을 제거한 뒤 직접 베트남에 개입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불러올 ‘재앙’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호찌민은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1964년 8월, 통킹만을 항해하던 미국항모가 공격당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북폭을 감행했다. 이 때 국제정세도 좋지 않았다.‘수정주의’ 논쟁으로 등을 돌린 소련과 중국은 베트남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호찌민은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며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당시 반소파였던 서기장 레주언을 비롯한 당의 실세 그룹은 의견이 달랐다. 호찌민의 오른팔 보응우옌잡은 대중적 지지와 호찌민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무사했지만 그외 측근들은 레주언 그룹에 밀렸다. 그의 뜻과 달랐음에도 ‘항미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민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호찌민의 몫이었다. 호찌민이 처음 유서를 쓴 것은 1965년 5월19일,75회 생일 때였다. 자신의 건강이 미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견뎌낼 수 없다고 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 민족 해방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많은 역경과 희생이 따른다 해도 우리가 승리할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의 동지들, 전사들과 함께 남쪽에서 북쪽까지 순회하며 노인들과 젊은 청년들을 만나려던 참이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우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우리를 지지해준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할 작정이었다.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올해 나는 일흔다섯이다. 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자고로 드문’ 사람에 속한다. 마음은 아직도 거뜬하지만 육체는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그 누가 혁명을 위해 더 오래 살라고 내게 말할 수 있겠는가.” 호찌민은 죽음을 예감한 뒤 남부지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국과 전쟁이 한창이던 남부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부전선 방문은 제지당했다. 그러자 1968년 레주언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레주언 동지! 동지들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나를 멀리 보내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어 바닷바람을 마시고 투쟁하는 인민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오히려 내 건강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10일간 준비해 6일 동안 해로를 통해 남부에 닿은 다음 육로로 3일을 가면 남부전선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언제쯤 출발할 수 있는지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B(Bac/아저씨)로부터- 호찌민이 레주언에게 애걸에 가까운 편지를 쓰면서까지 남부에 가려 했던 이유는 남부 민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물러가면서 제네바협정이 체결되자 남부혁명가들은 호찌민이 있는 북을 선택했다. 사이공 정권은 남부에 남은 이들의 가족을 줄줄이 처형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터진 뒤 북부 청년들은 그 유명한 ‘호찌민 루트’를 타고 남부전선으로 내달렸다. 수많은 북부청년들은 호찌민루트에서, 남부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가 ‘호찌민’이라는 이름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때에 일흔이 넘은 나이를 이유로 후방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호찌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레주언은 끝내 호찌민의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9년 호찌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79회 생일을 며칠 앞둔 5월10일, 호찌민은 해마다 손을 보아온 유서를 다시 꺼내 마지막으로 가필했다. 그 내용은 세금감면을 비롯한, 전쟁이 끝났을 때 농민·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민생대책들이었다. 전선에서 싸운 전사들에 대한 예우도 매우 구체적으로 썼다.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자신이 그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찌민의 유서 최종본에는 2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견디고 있는 인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인민들은 수십년 동안 프랑스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와 미국 폭격기의 굉음, 이웃과 친척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인민들은 단 하루도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항전을 이끌어온 호찌민은, 미안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한 항전은 참으로 위대했으나 위대함을 감당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베트남 인민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것이었다. 그 희생은 베트남 인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희생해서 싸우자고 호소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찌민이었다. 그해 8월12일 호찌민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당과 정부, 군대의 핵심부는 이미 호찌민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남부의 전선사령부가 파견한 대표단은 호찌민루트를 타고 하노이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8월18일 호찌민은 비서 부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주석관저,10평짜리 목조주택의 계단을 올라갔다. 마지막 걸음이었다.8월24일, 호찌민의 방은 병실로 변했다. 당의 정치위원들과 군사지도자들이 병문안을 왔다.5평도 채 안 되는 호찌민의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장 무더운 8월이었고 에어컨은 없었다. 비서 부끼는 호찌민의 머리맡에 앉아 계속 부채질을 했다. 호찌민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먹고 마시려 했다. 간호사 오안이 시중드는 것도 사양했다. 대신 다른 것을 부탁했다. “노래나 하나 불러줘.” 호찌민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단 한 점의 혈육도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호찌민은 라디오를 계속 켜두라고 했다. 최후의 순간은 다가오고, 호찌민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호찌민이 겨우 잠깐 잠이 든 것을 보고 비서 부끼는 라디오를 끈 다음 그도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힘겹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끼 어이.(부끼야)” 놀라 몸을 돌렸을 때 호찌민은 라디오를 다시 켜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왜요? 오랜만에 눈을 붙이시기에 쉬시라고 껐는데요.” 호찌민은 손을 저었다. “그래도 사람소리가 들려야지…….” 9월2일 오전 9시45분, 호찌민은 숨을 거뒀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비서 부끼와 보응우옌잡 장군이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호찌민은 이미 임종과정을 찍지 말고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몰래 호찌민의 최후를 찍고 있었던 군대영화사 팜꾸옥빈의 촬영팀은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에야 방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소령으로 예편한 팜꾸옥빈은 호찌민이 자리에 누운 순간부터 임종하는 때까지 전 과정을 비밀리에 촬영했다는 사실을 집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밝혔다. 호찌민의 시신은 영구 보존처리되었고 그 장면도 모두 기록됐다. 장례절차까지 담은 이 필름은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편집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공개된 부분도 있지만 원본 가운데 20분 분량도 채 안 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의 당과 정부는 호찌민 서거일도 9월2일에서 하루 늦춘 3일이라 발표하고, 이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왔다. 팜꾸옥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9월2일은 1945년 호 아저씨가 베트남독립정부를 수립한 날이었어요. 호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만도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인데 거기다 날짜가 9월2일이라고 하면 9월2일에 호 아저씨가 세운 나라도 뒤따라 망한다는 적의 심리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 베트남에는 사흘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베트남 전역에서 울음소리와 눈물이 이어졌다. 남부 정권의 수도 사이공에서도 모든 상가가 철시했다. 장례기간 동안 베트남 전역에서 절도사건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남부의 대통령 우옌반티우조차 정중한 조의를 표해야 했다. 그토록 호찌민을 헐뜯었던 미국 언론들도 애도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호찌민을 표지인물로 세우고 장문의 조사를 내보냈다.‘지금 살아있는 민족주의자 가운데 그만큼 불굴의 정신으로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고. 그런 호찌민이 죽어서 남긴 것은 10평 남짓한 목조주택 한 채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다가 무엇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사설] 日, 국제고립 자초 현실 직시해야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따른 중국내 반일 시위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지난 토요일 반일의 불길은 수도인 베이징에까지 번져 톈안먼 사태후 최대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 수만명 중 일부는 일본대사관과 대사관저, 일본음식점 등지에 돌을 던져 기물이 파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요일에도 광저우 등지에서 투석이 발생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계속됐다. 국내에서도 주말과 휴일 일본의 독도 침탈 기도와 교과서 왜곡을 비판하는 집회·시위가 간단없이 이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숙원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도 한동안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그동안 일본 진출을 지지해온 미국이 역사왜곡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상임이사국 진출 계획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단정짓기에는 이르지만 일본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점차 고립돼 가는 게 아닌가 하고 판단하게 된다. 아울러 다시 한번 일본 극우세력의 맹성을 촉구하게 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되돌아보면 두말할 나위 없이 일본정부 스스로가 불러들인 것이다. 주변국들을 침탈한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근거 없는 영유권 주장, 갈수록 심각해지는 교과서 왜곡을 통해 이웃나라들을 자극해 왔다. 그 결과 우선 한·중 양국 국민이 연일 반일 시위를 벌이는데도 극우세력은 그 참뜻을 외면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어제 TV에 출연해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정부 주장을 교과서에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둥, 중국에 대해서는 ‘빈부 차이에서 생긴 분노의 배출’이라는 둥 궤변을 늘어놓는 실정이다. 우리는 비록 일본이 자초하는 것일지라도 이웃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원치 않는다. 한·일 양국은 우호·협력의 토대 위에서 공생·공영해야 할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비판을 직시해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동북아의 선린우호국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기고] 전략물자 수출 철저히 통제해야/송영완 외교통상부 군축심의관

    최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커짐에 따라 개성공단에 보내질 전략물자의 이전허가 문제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전략물자의 수출통제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요관심사이며 대외의존도가 높아 수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우리나라의 경우,특히 잘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통제는 비우호국이 수출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군사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방지하거나,특정한 외교정책 수행 또는 유엔이 결정한 금수조치 등 국제적 의무이행을 목적으로,또는 국내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한 물자가 과다하게 대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냉전시대의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는 전략물자가 공산권으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으나,냉전이 붕괴된 후에는 소위 ‘문제국가’ 또는 테러집단이 전략물자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략물자 수출통제는 개도국의 입장에서 보면 선진국이 자기들의 전략적 및 교역상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담합일 수 있지만,수출통제체제 참여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략물자가 대량파괴무기 생산에 이용되는 것을 막는 매우 효과적인 억제수단인 것이다.다행히 우리나라는 그간 수출통제 문제에 적극 대처해온 결과,다자간 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하였고,특히 지난 1년간은 핵공급국그룹 의장국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금년 10월부터 1년간은 미사일기술 통제체제 의장국을,그리고 내년 12월부터는 재래식무기 및 이중용도물자를 통제하는 바세나르체제 의장국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다자간 수출통제체제는 통제품목별로 구분되어 5개(핵공급국 그룹,쟁거위원회,미사일기술 통제체제,호주그룹,바세나르체제)가 있으며,체제별로 각각 30∼40국의 회원국을 갖고 있다.우리나라와 같이 5대 수출통제 체제에 모두 가입한 나라는 현재 28개국이다.수출통제 체제에 가입한 나라들은 비가입국들에 대하여 전략물자와 민감한 기술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지만,가입국간 교역에는 관대하여 많은 나라들이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에 가입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가입국들이 이러한 유리한 지위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따르게 마련이다.즉,가입국들은 자국이 수출하는 전략물자가 대량파괴무기 생산에 사용되지 않도록 감시할 의무가 있다.이와 같은 감시활동을 소홀히 할 경우 초래될 국가 이미지에 대한 손상과 해당 기업이 받을 불이익은 엄청난 것일 수 있다.실례로 1980년대 말 일본의 한 기업은 전략물자를 잘못 수출하여 미국과 큰 마찰을 빚었으며,그 결과 미국은 해당 일본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였다.결국 해당기업의 회장 퇴진과 기업 도산,일본 통산장관의 사임과 총리의 사과성명 발표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고,그 이후 일본은 강력한 수출통제 체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는 개성공단사업은 남북한간의 교류와 협력증진을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그런데 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에 반입되는 물자가 당초 계획된 것 이외의 용도로 오용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의식이 높은 상황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전략물자 이전문제를 소홀히 다룰 경우,우리의 안보에 대한 위협문제는 차치하고라도,수출통제 체제 참여국들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이럴 경우,개성공단사업 자체에 대한 차질은 물론 반도체,통신,기계,화학제품 등 우리의 주력 상품 수출에 엄청난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전례를 보자면,독일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대한 전략물자 이전을 철저히 통제한 바 있음을 참고할 만하다. 송영완 외교통상부 군축심의관
  • [국제플러스] 北, 중국인 평양관광 일시중단

    |도쿄 이춘규특파원|북한 당국이 중국인 관광객의 평양방문을 20일부터 일시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국가관광총국은 최근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에 이같은 내용의 팩스를 보내왔으며 이유는 ‘국내사정’이라고만 밝혔다.신문은 북한이 이처럼 일방적으로 우호국인 중국 관광객의 입국중단 조치를 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달말부터 다음달에 걸쳐 평양에서 중요한 정치적 행사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사설]왜 反美인가(1)-변한 한국과 변하지 않은 미국

    ‘반미(反美)’,반미,반미.지구촌의 반미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국내에서도 여중생 사망사건의 미군 무죄평결로 계층 구분 없이 확산되고 있다.과거 일부의 이데올로기 운동 차원을 넘어 점차 대중화 징후를 보이고 있다.정치권과 정부에서도 갈등을 빚으면서 확산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는 수준이지만,상황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로까지 발전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미국 의회 및 여론지도층 일각의 ‘반한(反韓)’감정도 표출되는 등 매우 조심스러운 국면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한국의 반미는 국내외적으로 탈냉전 및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에선미국이 그 정권의 정통성을 안보 논리로 보완해주며 한국의 주요 현안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통제했고,이는 결과적으로 한국민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촛불시위 참가자들이 미국의 오만함을 거론하며 줏대세우기를 주창하는 것도 자존심 회복의 뜻이 있는 것이다. 미국은 국내 인권상황,윤금이양 살인사건,노근리·매향리 사건,미군시설의환경오염 문제 등을 부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한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특히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 IMF체제,한국 차세대 전투기구매사업 등은 미국을다른 시각으로 보게 했다.이 모든 것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최근 한국사회의 반미에 대중성을 띠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386세대 및 네티즌 젊은층이 몇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음에도 한·미관계가 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인식하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이들은 미국을 ‘외세’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이는 한·미 동맹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양국 정부가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반미는 전반적으로 감성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우리는 이 점에서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반미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고 확신한다.한국민들이 지금 촛불시위에서 외치는 반미는 무조건적,배타적 반미가 아니라 대미 평등,즉 등미(等美)라는 데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의 반미는 향후 주변 4강의 역학구조,무엇보다 남북,북·미 관계의 기복에 따라서도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6·15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해 왔다.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전의 가속 페달을 밟을가능성이 많다.이런 분위기속에서,상당수 국민들은 미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대다수 한국민이 바라고 있는 남북 화해와 교류 증진에 걸림돌이된다고 믿는 듯하다.우리가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을 강경 대응보다는 평화적 해결방안을 거듭 촉구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반미가 전세계적 현상이 된 데는 미국이 9·11테러를 기화로 반(反)테러 우산속에서 추구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패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미국의 세계적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RC)가 일전에 발표한 각국의 ‘대미(對美) 태도 보고서’는 전통적 우호국인 나토동맹국 터키에서조차 대미 호감도가 2년 전보다 22%포인트가 떨어졌음을 보여 준다.탈냉전 후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의 오만함·자만심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해석된다.우리나라가 조사대상 아시아 7개국중 가장 비판적이라는 사실은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촌의 반미 확산·심화는 일차적으로 미국의 독선적 외교·안보정책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본다.국내의 반미 기류도 이와 유사하며,특히미국의 우월적 주둔군지위 정책이 한국의 민족정서와 상충한 결과라고 보는것이다.미국은 동맹국에서까지 반미 기류가 확산되는 것을 기존의 정책노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우리는 미국이 문제 해결에 있어 자신의 잣대만을 앞세우지 말고 상대국의 입장도 헤아리는 도량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미국은 지구촌의 모든 국가가 상호 평등적 동반자라는 명제에서 반미 해법의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사설]세계인들 ‘미국이 싫다’

    ‘반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의 길을 걷고 있다.세계적 여론조사기관인미국 퓨리서치센터(PRC)의 5일 ‘대미(對美) 태도 보고서’는 반미 감정이 각국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강도도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미국의 오랜 우호국이었던 일부 국가에서는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됐다.나토 동맹국인 터키에서는 호감도가 2년 전에 비해 22%포인트,아프가니스탄전을 도왔던 파키스탄에서는 13%포인트가 각각 떨어졌다.미국의 일방주의,빈부격차 확대,국제현안에 대한 소극적 태도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반미가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비판적 서구 지식인들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대중화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우리는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며 대 테러 전선을팽창시킨 것도 원인의 하나일 것으로 감히 판단한다.탈냉전 이후 초강국의지위를 이용해 추구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으로도보여진다.특히 동맹국에서조차 반미 감정이 심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외정책 노선을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한국은 조사대상에 포함된 아시아 7개국 중 미국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었다.18세 이상 719명을 조사한 결과,미국의 외교정책이 일방적이라는 응답이 73%에 달했고,응답자의 72%가 미 주도의 대 테러전에 반대했다.반미에 대한 해법 제시와 함께 한·미동맹의 새 미래 좌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한국민의 목소리인 것이다. 지구촌에서 식지 않는 반미 현상은 잘못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라할 수 있다.국내의 거세지는 반미도 미국의 일방적이고 우월적인 SOFA 정책의 반작용이 아닌가 한다.미국은 전세계적인 반미 감정이 반미주의로 발전해 이념으로 변하기 전에 스스로 원인 제공한 것은 없는지 자성해야 할 것이다.
  • 주식회사 ‘중화민국’ 집중조명, 방송3사 한·중수교 10년 특집

    올해는 한ㆍ중 수교 10주년을 맞는 해.한국은 지난 92년 10월 오랜 우호국가이던 타이완과의 수교를 단절하면서까지 중국과의 교류를 텄다.그렇다면 10년동안 얻은 것은 무엇이고,잃은 것을 무엇일까? 중국 수교 10주년을 맞아 안방극장에 중국 관련 프로그램들이 풍성하게 소개될 예정이다.지상파 방송 3사는 중국을 현지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마련하거나,수교 이후 변화된 중국의 사회를 집중 분석하는 특집들을 잇달아 방송한다. MBC가 오는 25일 오후 11시25분 방영할 다큐멘터리 ‘중국의 여인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시각이 강했던 중국사회속 여성의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집.중국은 청나라 말기까기 여자 아이가 5세쯤 되면 전족을 시작했다.발가락 부분을 아래쪽으로 구부린 다음,천으로 친친 감아 고정시키면 극한고통 속에서 발육이 멈추게 된다.이렇게 3년쯤 지나면 발 모양은 공처럼 둥글게 되고 길이는 10㎝ 내외가 된다.겨우 뒤뚱뒤뚱 걸을 수 있게 되는 여성은 철저하게 남자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게 된다. 제작진은 이같은 전족을 포함해달라진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중국의 여성을 조명한다.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중국 헌법에 힘입어,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요즘 여성들의 모습이 소개된다. SBS가 20∼22일 밤 12시55분 내보낼 3부작 ‘2002 중국 13억의 질주’는 지금 중국의 경제력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광둥성ㆍ저장성ㆍ안후이성을포함해 9개성을 지난 3년간 밀착 취재해 중국 경제의 심장부를 파헤친다. 20일 방송될 제1편 ‘주식회사 중화민국’은 자본주의보다 더 ‘돈’이 최고의 가치로 통하는 중국의 사회주의를 들여다보며,제2편 ‘인류 최대 공사,중국 지도가 바뀐다!’에서는 중국 정부가 중국 대륙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예산 70%를 쏟아부으며 진행중인 인류 사상 최대의 공사 ‘서부대개발’을소개한다.제3편 ‘중국인이 먹고 사는 법’에서는 외동으로 크는 ‘소황제’들에게 쏟는 중국 부모들의 교육열을 다룬다. KBS1도 중국 바로 알기에 초점을 맞춘 5부작 다큐멘터리 ‘新중국대장정’(토·일 오후 8시)을 17일부터 새달 1일까지 연속 3주간 방송한다.3개월에 걸쳐 마오쩌둥의 홍군(紅軍)이 거쳐갔던 2만 5000리의 대장정을 따라가며 오늘날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새달 1일에는 중국전문 CA채널 하오TV가 개국,24시간 방송을 통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중국 관련 정보를 내보낼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송하기자 songha@
  • [사설] ‘길수 가족’ 구출에 총력대응을

    지난 8일 중국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들어가 신병보호를 요청한 탈북 주민 2명이 그 자리에서 중국 공안에게연행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국제협약상명백히 치외법권 지역인 총영사관 안에까지 들어와 탈북주민들을 끌고간 중국 공안의 무리한 행동도 문제지만,그러한 무리수가 총영사관 측의 협조 또는 묵인이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현장을 지켜본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으로는,김광철씨 형제가 총영사관 안으로 들어간 뒤 직원들이 중국 공안들과 총영사관 입구에서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직후 공안들이 들어가 김씨 형제를 끌고 나왔다고 한다.김씨 형제는 총영사관내 비자신청 대기실에 있었으므로 직원들이 그들을 보호할 생각만 있었으면 중국 공안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탈북 주민들이 독일·스페인·미국 등의 외교공관에 들어가면 충분히 보호 받는데일본 공관에서는 도로 끌려나오는 사태가 일어나니,이러고도 일본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으며 한국의 선린우호국이라고 자처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일본정부가 이번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밝히고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현재 일본이 중국 당국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김씨 형제가 구내에서 연행된 과정이 밝혀지지 않는다면항의하는 자체가 한낱 외교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우리는 중국 당국에도 당부한다.이번에 총영사관에 들어가려 한 5명은 어머니와 아들 형제,며느리,손녀로 이루어진 일가족 3대로 3년전 국내로 들어온‘길수네’의 가까운 외척이다.그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면 어떻게 될지 중국 당국이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들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 중국이 인권을 중시하는국가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기를 기대한다.아울러 우리 정부도 이 일가를 무사히 구출해 내도록 외교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 정부 ‘중국인 사형 판결’ 中에 안알려 재판통보 주체 일원화 시급

    지난 9월 한국 법원이 강도살인죄를 저지른 중국인에게 사형확정판결을 내린 뒤 한국 정부가 이 사실을 중국측에 통보해 주지 않은 사실(대한매일 11월 8일자 20판 1면)이 알려지면서 통보관련 규정 미비로 인한 한-중간의 외교적 마찰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영사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외국인의 ‘체포·구금’이나 ‘사망’을 통보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건에 대한 재판 과정이나 결과를 중국측에 통보하지 않은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측은 최근 논란이 된 한국인 마약사범 신모씨(42)의 사형 집행에 앞서 1심 재판 결과와 사형집행 사실을 우리 영사사무소에 통보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빈 협약 관련 사항을 해당 영사관에 통보하는 것은 법무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법무부는 “빈 협약이 외국인 사형 판결까지 영사관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체포·구금 단계이든,사형판결이든 해당국 영사관에 관련 사실만 전달하면 될 뿐통보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고 밝혀 혼선을 빚고 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중국 당국의 신씨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통보가 전혀 없었던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것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통보 주체와 내용 등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 마련과 함께 관련 부처간의 협의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호국과는 사법 처리 과정에 대한 정보교류 관행이 어느 정도 정착돼 있지만 수교 역사가 10여년에 불과한 중국과는 아직 교류가 없다”면서 “서로간의 신뢰를 쌓을수 있도록 사법공조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조셉 바이든 美상원외교위원장 기고 요지

    미국은 동아시아의 군비확산을 촉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미사일방위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셉 바이든 미국 상원외교위원장이 최근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강조했다.바이든위원장의 글을 요약한다.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군비확산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미국이 미사일 방위와 관련,잘못된 선택을 하면 동아시아는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미국은 미사일방위 구상을 추진할 때 동아시아의 군비확산을 촉발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이 북한문제를 비롯,여러가지를 고려하지 않고 미사일방위 구상을 추진하면 한반도의 안전은 크게 위협받는다.또대량파괴무기가 확산되고 중국·인도·파키스탄과 환태평양지역에 있는 미국의 우방국까지 군비확산 경쟁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일본·한국·타이완에는 탄도미사일의 위험이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그러나 대처 방법은 각국이 다를 것이다.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미국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우방국과 동맹국의 안전도 위협받지 않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다.동아시아에서 많은 미국동맹국들은 미사일방위 구상을인정하기는 하지만 조건부 지지를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축에 그다지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서울의 대부분이 북한의 포격사정거리안에 있는 절박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미국과 일본은 전역미사일방위(TMD)를 위한 공동 기술연구를 하고 있지만 일본은 TMD를 배치할 것인가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위에 대해서도 지지를 유보하고 있다. 중국은 미사일방위와 관련, 부시 정권의 의도에 불신감을갖고 있다.중국은 미국까지 도달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20기도 갖고 있지 않은데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사일방위 구상을추진하면 중국이 탄도미사일을 증강하여 동아시아와 세계의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미국의 정보기관이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미사일방위 계획이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고려한 후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첫째,북한이 군비를 증강하지 않고 장거리 미사일과 그 관련기술의제조 및 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평양측과 교섭을 서둘러야 한다.둘째,러시아의 무기확산 억제 노력을 도와주고 각국의 테러방지 프로그램 강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셋째,중국의 핵억지력을 위협하지 않는 미국의 미사일방위구축이 가능한지 중국과 진솔한 대화를 가져야 한다. 중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축 결정에 관계없이 전략적 무기의현대화를 추구할 것은 확실하다.그러나 미국이 어떻게 하든결과가 같다고는 할 수 없다.중국이 미국의 자극을 받아 핵탄두를 18개에서 180개로 증강하고 다목표탄두(MIRV)개발을위해 핵실험을 재개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을 자극하고 일본까지 핵보유를 재고하게 할 수도 있다.그런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넷째,ABM제한조약,핵확산방지조약,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등 글로벌한 군비관리 틀이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그러한 조약은 핵개발을 억제하여 동아시아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온다. 이러한 원칙들이 충실히 지켜지면 미국 국민들뿐만이 아니라 동맹국이나 우호국들도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축이 집단적 안전보장을 강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美·中 이번엔 서남亞 외교전

    군용기 충돌사건으로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과 미국이 서남아시아를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전통적 우호국인 파키스탄을 방문,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다지는 동안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인도에 접근, 미사일방어(MD)체제의 추진에대해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중·미 양국이 ‘앙숙 관계’인파키스탄과 인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쓰고 있다. 4일간의 일정으로 파키스탄을 방문중인 주룽지 중국 총리가 12일 파키스탄 군정 지도자 베르베즈 무샤라프 육군 참모총장을 만나 “미국의 MD체제는 국제사회에 새로운 핵미사일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무샤라프 참모총장은 “우리도 중국과 같은 입장에 있다”며 중국 입장을지지했다.이에 앞서 주 총리는 1998년 인도와 경쟁적인 핵실험으로 경제제재 조치를 받고 있는 파키스탄 군사정부와전투기의 공동개발 등 군사협력과 석유 송유관 및 항만건설·광산개발·연안고속도로 건설공사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경제협력도 약속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국제 고아’인 파키스탄은 지난해 3월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재구축을 위해 ‘추파’를 던졌다.그러나 미국은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 정권을 지원한다고 파키스탄을 맹비난하며 인도 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중국과 파키스탄간 관계 강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미국은 정보기술(IT)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데다 거대한 시장을 지닌 ‘인도 끌어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있다.주 총리가 파키스탄에 도착한 11일 인도에 급파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를 만나미국의 MD체제 추진의 정당성을 설명한 뒤 인도에 대한 경제제재조치 해제를 강력히 시사했다.이에 대해 바지파이 총리는 “핵전력의 대폭 삭감과 공격 핵기술의 개발 억제를목표로 한 미국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클린턴 “베트남은 적 아닌 우호국”

    미국과 베트남이 적대국으로 맞섰던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세기에 새로운 우호국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다짐했다. 역사적인 베트남 방문 이틀째를 맞는 빌 클린턴 대통령은 17일 공식환영행사에 이은 천득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간의 긴밀한우호관계 정립을 선언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과 베트남은 이제 적이 아니라 우호국”이라고 전제하고 “새 세기에는 양국이 힘을 합쳐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자”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통령궁에서 있은 공식 환영식으로 베트남에서의 3박4일 일정을 시작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하노이 국립대학에서 있은 시민과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양국은 과거 아픈 역사를 갖고 있으며 지금도 워싱턴 DC에는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5만8,000여명의 묘지가 있다”면서 “과거는 항상 교훈이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를 거울삼아미국과 베트남이 새로운 세기에는 힘을 합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노이 연합
  • 후세인, 유엔제재 흔들기 “클린턴 레임덕 때는 왔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10년간 지속돼온 유엔 제재 흔들기에 나섰다. 임기 마지막해를 맞은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레임덕 시기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장기제재로 인한 경제난을 타개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후세인은 6일 전국으로 생중계된 이라크 창군 79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유엔안보리, 특히 주도세력인 미국, 영국 등을 ‘악마의 세력’이라 지칭하며 지난해 12월 새로운 유엔 결의안에 대한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으로는 우방국들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이라크의 전통적 우호국인 러시아,중국,말레이시아와 프랑스 등이 최근 후세인의 집중관리 대상이 됐다.3일 푸틴 러시아대통령 직무대행에게 친서를 보내 우호관계 유지를 강력히 희망한데 이어 6일 타리크 아지즈 부총리를 중국,말레이시아로 차례로 파견,선린관계 다지기에 나섰다. 최근 몇몇 국제 인권단체들이 장기제재로 인한 이라크 국민들의 경제난을거론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동정여론이일기 시작한 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손정숙기자 jssohn@
  • 김운용KOC위원장 오늘 출국

    김운용 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장이 3∼5일 미수교국인 시리아와 우호국인 레바논을 잇따라 방문하고 본격적인 체육교류를 논의하기 위해 2일 출국한다. 이번 방문은 최근 세계 스포츠계에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동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국내 스포츠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미수교국과 정치·외교 교류에 앞서 민간외교 차원에서 관계 개선을 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운용 위원장은 3일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예방한 뒤 무달랄 NOC위원장과 스포츠교류 협정서에 서명을 한다. 5일에는 레바논으로 건너가 라호드 대통령을 비롯해 바이돈 교육문화체육장관,쿠오리 NOC위원장과 접촉하고 중동지역의 태권도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외교관 추방 러에 항의/외교통상부

    ◎조 참사관 연행·억류 해명요구 정부는 6일 주러시아 한국대사관 趙成禹 참사관의 본국 송환을 요청한 러시아정부의 행위를 일방적 조치로 규정하는 한편,외교관을 연행·억류한 것은 국제협약 위반이라며 강력한 항의의사를 러시아측에 전달했다. 宣晙英 외교통상부차관은 이날 상오 발레리 수히닌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정무공사)를 세종로 청사로 불러 이번 사건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宣차관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지난 3일 趙참사관을 연행·억류한 것은 외교관 신체불가침을 규정한 빈 협악 위반이라고 항의한 뒤 러측의 해명을 요구했다.또 李仁浩 주러시아대사가 러시아 외무부에 초치되는 장면을 러 언론에 의도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수히닌 대사대리는 “우호국간에 이같은 사건이 일어나 유감이며 우호관계가 손상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7일 趙참사관이 귀국하는 대로 진상조사에 들어가 이번주 중 러측에 대한 외교적 대응을 구체화할 방침이다.정부는 러시아 외교관의맞추방과 공식 항의전달 등 몇가지 방안을 검토중이다.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은 이와 관련,간부회의에서 “따질 것은 따지되,한·러관계 발전에 저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국익을 고려해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 유감스런 외교관 추방(사설)

    러시아가 한국 외교관을 ‘간첩혐의’로 추방한 것은 한·러 우호관계나 외교관례로 보아 이례적인 조치로 대단히 놀랍고 유감스러운 일이다.한·러수교 이후 처음 겪는 중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자칫 이 일로 두나라 관계가 냉각되고 금이 갈까 걱정스럽다. 우리가 이번 사건에 유감과 함께 의아심을 갖지않을 수 없는 것은 추방 자체가 우호국간에는 좀처럼 취하지않는 외교상의 최강경조치인데다 추방 과정에서 러시아당국이 보여준 몇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때문이다. 추방조치된 한국 대사관 趙成禹 참사관의 문제가 된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앞으로 정확히 밝혀지겠지만 주재국의 외무부간부를 만나고있는 외교관을 수사기관이 연행·구금한 채 두시간 동안 조사한 것은 외교관의 신체불가침성을 규정한 빈협약의 명백한 위반이다. 더구나 趙참사관이 러시아관리를 만나는 장면을 찍은 필름을 언론에 흘려 마치 어마어마한 간첩행위를 하고있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우리 외교관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라 할것이다. 외교관이 주재국관련 관리를 만나협의하는 것은 외교관의 일상업무라 할 수 있으며 주고받은 정보가 중요한 국가기밀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기까지는 공개적으로 간첩이니 추방이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趙참사관의 행위가 러시아측 주장대로라고 하더라도 우호국간의 외교관 추방결정은 사전에 상대국과 협의하는 것이 관례로 돼있으나 러시아측은 간첩혐의가 입증되기도 전에 추방결정을 하고 우리 대사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대사에게 통보하는 사실을 사전에 언론에 알린 것도 외교관례상 드문 일이다. 러시아측의 이같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때문에 이번 사건이 러시아의 외무부와 연방보안국간의 알력때문이라느니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의 표시라는 등의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이후 순조로운 우호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4자 회담에 러시아가 소외된 것과 뜻하지않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두나라간의 경제협력이 다소 주춤해진 것이 러시아의 불만일 수 있다.그러나 러시아는 한반도문제에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주변 4대 강국의 하나로 우리 입장을 지지해주는 주요 우호국이며 여전히 우리의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이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두나라 관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양국정부가 진상을 정확히 파악, 적절히 사태를 풀어나가되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두나라 관계를 경색시키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혹시 오해나 불만이 있었다면 대화와 협력으로 해소해야할 것이다.두나라 모두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 불편한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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