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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화두 ‘경제’에 ‘이념’ 가세

    무소속 이회창 대선 후보 등장으로 대선전 화두가 ‘경제’에서 ‘보수’와 ‘부패’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야권이 ‘보수론’으로 후보 간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면 범여권은 ‘반부패’문제로 신경전이 한창이다. 대선 초반전 화두는 단연 경제였다.‘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도는 한 때 50%를 넘었다. 하지만 정통 보수를 내세운 무소속 이 후보 출마설로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경제 문제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한나라당 이 후보는 8일 오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초청 대선후보 안보 강연회에서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정체성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면서 “나와 한나라당의 이념도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소속 이 후보를 겨냥,“내가 진짜 보수”라고 주장했다는 지적이다. 당초 이 후보는 이날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구상인 ‘엠비(MB) 독트린’과 핵심공약인 ‘비핵·개방 3000구상’을 소개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무소속 이 후보 등장으로 흔들리는 보수진영의 표심을 끌어안기위해 연설문구를 일부 수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도 이날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무소속 이 후보가 보수우파의 대동단합을 위해 출마했다는데 궤변”이라면서 “온 국민은 (무소속 이 후보가) 보수우파를 분열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보수 세력의 대변자임을 자임해온 한나라당에서 선출한 대선후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이 후보에게 보수진영의 표심이 쏠리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앞서 무소속 이 후보는 전날 출마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과 후보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태도는 매우 불분명하다.”며 자신이 정통보수의 대표주자임을 자처한 바 있다.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한나라당 이 후보의 보수층 구애와 관련,“보수층이라는 한나라당 주머니속에 갖고 있던 밑천을 이 전 총재가 출마하면서 털어가 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전 총재가 30% 지지를 확보하면 이 후보로서는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면서 “일반적으로 자기 스스로 보수라고 대답하는 유권자가 30%, 진보가 20% 후반, 나머진 중도라고 응답하는데 이 전 총재가 보수유권자 30%를 다 가져가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또다른 정통 보수주의자인 박근혜 전 대표측이 이 전 총재측을 지원할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범여권에서는 이번 대선전이 보수 후보 간 대결구도로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패 대 반 부패’구도 형성에 진력하고 있다. 대선초반에는 ‘평화’가 이슈였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등 범여권 대선후보들은 ‘경제부패 이명박, 정치부패 이회창’으로 보수후보들을 규정한 뒤 ‘반부패 연대’로 뭉쳐 이번 대선전을 ‘부패 대 반부패’ 구도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정파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데다 유권자들이 범여권 후보들에 대해 시큰둥한 상황이어서다.8일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무소속 이 후보의 대선출마가 보수층 분열을 가져와 범여권이 정권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은 17.8%에 불과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이회창 출마… 대선 3파전

    이회창 출마… 대선 3파전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7일 대선 출마에 관한 입장을 발표한다.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이다. 대구·경북, 대전·충청권 등의 지역 정가는 술렁이고 있다.‘창풍(昌風)’으로 대선 정국이 급변할 조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대선 구도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이 전 총재, 그리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1강 2중’ 양상으로 일단 재편되게 됐다.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 ‘2강 1중’으로 전환될지는 미지수다. 범여권 대선 후보들이 ‘반부패 연대’란 이름으로 제휴할지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이 전 총재측 이흥주 특보는 6일 “내일 오후 2시 사무실에 기자회견장을 마련해 정계 은퇴 뒤 국민 앞에 다시 서는 심정을 정리한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마 선언으로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 “출마·불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얘기 못 하지만 정치 일선에 다시 서시는 큰 결단으로 생각된다.”며 출마를 기정 사실화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선언을 하게 되면 2002년 대선 패배 직후인 12월20일 정계은퇴를 선언한지 5년만의 정계 복귀이자,1997년과 2002년에 이어 세번째 대권 도전이 된다. 이 전 총재는 출마 선언 뒤 국민중심당 등 범 보수세력과의 연대 행보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7일 긴급의총을 열어 이 전 총재 출마를 반대한다는 당론을 모을 예정이다. 이명박 후보는 이날 “한나라당과 함께 정권교체를 할 수 있도록 (이회창 전 총재에게) 끝까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불출마를 촉구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함구했다. 지지 기반의 분열을 우려하는 한나라당은 물론 정치권에서는 이날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대통합민주신당 유은혜 부대변인은 “대한민국을 불법과 부패의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시대착오적인 반공 구호를 앞세운 극우파의 등장”이라고 했다. 민주연대21은 “이씨는 좌파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이씨의 출마 규탄과 철회 촉구를 위해 무기한 단식 농성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후보측은 박 전 대표측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박 전 대표측에서 요구해온 이재오 최고위원 퇴진과 공천 분할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갑 김지훈기자 eagleduo@seoul.co.kr
  • 폴란드 총선, 親EU 야당 승리

    21일 실시된 폴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 야당이 카친스키 형제가 이끄는 보수파 여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99%의 개표를 끝낸 결과 친기업, 친유럽연합(EU)을 내세우는 야당인 시민강령(PO)이 4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집권 법과 정의당은 32.2% 득표에 그쳤다. 시민강령의 연정 파트너로 유력시되고 있는 폴란드 농민당도 8.9%의 지지를 얻어 이 두 정당이 안정적인 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총선에는 도시지역의 젊은 층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1989년 공산정권 붕괴 이후 가장 높은 53.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야당의 승리는 쌍둥이 형제인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의 급격한 우경화와 대외 고립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집권 보수 여당은 낙태금지 규정을 강화하고 유로화 도입을 반대하는 등 줄곧 반 EU 정책을 폈다. 반면 자유주의 성향의 친기업 정당을 표방하는 시민강령은 세금감면과 국유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EU의 통합 정책에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시민강령은 또 집권하면 이라크 주둔 폴란드군(900명)을 철수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시민강령의 도날드 투스크(50) 당수는 이번 승리로 차기 총리에 오르게 된다.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13살 때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는 것을 보고 정치인이 될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같은 날 실시된 스위스 연방의회 의원 총선거에서 극우파인 스위스국민당과 녹색당이 각각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스위스 연방당국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스위스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29%의 득표율을 올려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스위스 국민당은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의 추방을 촉구한다는 취지에서 ‘세 마리의 흰 양이 검은 양을 발로 차 스위스에서 몰아내는’ 선거벽보와 스위스 주요 도시내의 이슬람 첨탑 건립금지 등 인종주의 선거운동으로 국내외에서 비난을 받았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대선후보 공약 검증] 정치노선과 한계

    [대선후보 공약 검증] 정치노선과 한계

    정치노선을 살펴보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실용주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후보는 중도주의, 정동영 후보는 중도개혁주의, 이해찬 후보는 민주개혁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때로는 자신의 노선을 ‘보수’나 ‘중도’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실용주의’를 가장 강조한다. 그의 실용주의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경제우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는 정치가 앞장서고 거기에 모든 것이 따라가는 사회에서는 기업과 경제가 힘을 쓸 수 없다면서, 정치는 경제를 뒷바라지하는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경제를 내세우는 편향적인 경제우선주의는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세 후보들은 얼핏 비슷한 노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융화동진(融和同進)을 주장하는 손학규 후보는 중도를 ‘이념의 취사선택이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의 담을 허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결정의 순간순간마다 국가의 번영과 이익을 위한 길을 찾아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손 후보의 중도는 수구보수세력과 무능한 좌파를 모두 극복해야 하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동영 후보는 “시장만능주의와 신우파 정치로는 통합을 이룰 수 없고 전통적 좌파도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중도개혁주의(혹은 신중도)를 표방한다. 중도개혁주의는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때만 해도 열린우리당과의 차별성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포용과 통합으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의 열매를 따고 국민과 함께 나누는 새로운 통합의 정부를 출범시키겠다.’고 강조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포괄하는 민주세력의 통합이라는 쪽으로 강조점이 옮겨가면서 말을 쉽게 바꾸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찬 후보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민주개혁노선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손-정 후보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후보는 ‘정부를 수립한 60년 중에서 50년 동안은 여러 가지로 인권을 빼앗기고, 민주주의를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기고, 헌법이 유린을 당하고, 기본권을 빼앗긴 50년을 보냈고,10년 동안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고, 인권을 되찾고, 자유를 되찾았다.’고 한다. 민주개혁세력의 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데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역설하는 권영길 후보에게 진보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한 정치와 경제가 되어야 하고, 둘째로 경쟁과 대외개방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진보노선은 국내체제에 있어서는 재분배를 강화하고, 대외적인 개방에 반대하며,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자는 노선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념에 치우쳐 있고, 실현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 8월 15일의 신화/사토 다쿠미 지음

    8월 15일의 신화/사토 다쿠미 지음

    ‘일본천황’이 항복조서를 발표한 것은 1945년 8월15일 정오이다. 라디오로 방송된 내용은 8월14일 오후 11시25분부터 궁내성 내정청사 2층 정무실에서 녹음됐다.‘천황’직속의 전쟁 통수기관이었던 대본영(大本營)이 육해군에 전쟁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8월16일, 일본이 미국전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한 날은 9월2일이다. 8월15일이란 그저 ‘천황’이 읽은 항복조서를 라디오로 방송한 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일본인은 8월15일이 명실상부한 ‘종전기념일’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8월15일의 신화’(사토 다쿠미 지음, 원용진·오카모토 마사이 옮김, 궁리 펴냄)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현재 8월15일을 종전일로 하는 나라는 일본과 광복절로 기념하는 한국, 그리고 해방기념일이라고 부르는 북한뿐이라고 한다.‘8월15일 종전’ 논란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은이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서 1960년 태어난 미디어역사학자이다. 현재 교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8월15일의 모습을 담았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사진 몇장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항복방송 다음날인 8월16일 ‘홋카이도신문’은 ‘천황의 조서발표 방송을 듣는 직원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을 실었다. 하지만 이 사진은 항복방송이 아닌 1941년 12월8일 미국과의 전쟁 개시를 알리는 방송을 듣던 시민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홋카이도신문’은 1995년 8월15일자에 ‘종전 특집’으로 ‘죽음으로 보답하지 못한다-천황 목소리에 무릎 꿇는 아이들 무리’라는 제목으로 항복방송에 엎드리거나 서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는 아이들의 사진을 실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당사자들이 “꾸며진 것”이라고 증언했다.“그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의 의미는 몰랐다. 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신문사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종전기념일에 내 사진이 실릴 때마다 도망가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진은 역사책에도 실릴 만큼 8월15일의 역사적 순간을 담은 사진으로 일본에서는 유명세를 떨쳤다. 지은이는 8월만 되면 종전 관련 메뉴로 넘치는 일본 신문의 이른바 ‘8월 저널리즘’이 정착한 시점은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9·2 항복기념일’이 망각된 1955년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일본 언론은 종전 10주년을 기념한 이벤트를 펼치는데 ‘9월2일’은 사라지고 ‘8월15일’만 언급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 이유가 ‘일본인에게 8월15일 종전기념일은 좌우의 이데올로기가 절충할 수 있는 편한 균형점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1955년은 사회당의 좌우파벌이 통합했고, 민주당과 자유당이 통합하여 자민당이 성립되었다. 미소 냉전 시스템을 투영시킨 형태의 양당구도에서 우파는 ‘평화의 날’이 시작되었다며 일본의 원폭 피해를 강조했고, 좌파는 ‘천황’에서 민중으로 정치권력이 넘어온 ‘혁명의 날’로 보고 싶어했다. 이렇게 8월15일에 부여하는 의미는 달랐지만 이 날을 종전일로 보고자하는 데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언론매체가 소재를 발굴하고 재편성하여 국민들의 뇌리 속에 굳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18년이나 지난 1963년 5월14일 에케다 하야토 내각은 ‘전국 전몰자 추도식 실시요항’을 의결하여 8월15일에 종전기념일로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8월15일은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천황’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는 방송을 했다고 항복 시점으로 보았지만 지은이의 기준으로는 타당성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8월15일을 ‘정부수립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8월15일의 신화’는 우리 학계에도 커다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1만 3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특별기고] 한국의 20년, 스페인의 30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특별기고] 한국의 20년, 스페인의 30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서울신문이 지난 4월부터 12회에 걸쳐 연재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즈음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1987년 6월 항쟁을 독일에서 지켜봐야 했던 송 교수는 “일반적으로 지난 일을 수직적으로 고찰하는 글들이 많아 수평적인 비교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며 스페인 민주화 30년을 통해 한국 민주화 20년을 성찰했다. 특히 그는 “6월 항쟁 20주년은 서울 땅을 37년 만에 밟았던 2003년 당시 절박하게 느꼈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를 상기시킨다.”고 역설했다. ●다방(茶房)의 광고문과 오웰의 기록 20년전 6월 민주항쟁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어느 다방에서 “오늘 기쁜 날, 차 값은 무료입니다.”라고 내건 광고를 담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동물농장’,‘1984년’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을 떠올렸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시민전쟁(1936∼1939)에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 목에 관통상까지 입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에 의하여 압살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총을 들었던 ‘인민전선’의 초창기 승리를 추억하며 그가 남긴 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드디어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와 있다. 인간적 존재는 인간적 존재로서, 그래서 더 이상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남아 있지 않으려 했다.” 스페인도 독재의 어두운 길을 벗어나고 내전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마련한 1977년 6월을 지금 기념하고 있다. 올해로 스페인의 민주화가 30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서유럽에서 스페인뿐만 아니라 그리스, 포르투갈에서도 한국처럼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이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기위안도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확립이 얼마나 힘든 과제라는 것도 상기시킨다. 이러한 나라들과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성숙 과정과 조건들은 달랐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의미는 분명하다. ●정책에 기초한 중도통합의 정치 한국 사회의 지난 20년 민주화과정 자체를 아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 현실과 시대가 요구하는 감각을 잃고 ‘유신’의 향수에 완전히 젖어 지난 20년의 시간을 단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해온 역사로 폄하하는 세력도 있다. 이 세력은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시간을 순전히 ‘잃어버린 10년’으로만 평가하려 든다. 2005년 봄 의회의 결정으로 마드리드시내에 있는 7m 높이의 프랑코동상 철거와 함께 프랑코 시절의 흔적들이 공공장소나 공공건물로부터 지워졌으며 정치 무대에서도 프랑코 지지세력(팔랑헤)도 이미 사라진 사실과 비교해 보면 한국사회의 민주화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민주화의 과정이 가져오는 혼란과 충격을 완화하며 중심을 잡는 중정무편(重正無偏)의 개인이나 정치 집단의 역할에 달려있다.1977년 12월에 사망한 프랑코를 추종했던 일부 민병대 대원들이 일으킨 1981년 2월 쿠데타 시도를 단호하게 좌절시켰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역할은 컸다. 또 비록 의회의 과반수에 항상 미달하지만 국민당(PP) 중심의 중도우파와 사회노동당(PSOE) 중심의 중도좌파는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정치사회의 균형을 이루어 왔다. 스페인도 지역주의 또는 지방주의가 강하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록 남북한의 분단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는 심하다. 특히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이나 바스크 지역은 중앙 정부와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바스크 지역의 일부 분리주의자들은 테러를 수단으로까지 삼고 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위에 말한 정권 교체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좌우세력이 중도를 합리적으로 견인해내는 데 있다.2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2005년 3월의 마드리드 테러사건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반(反)테러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곧장 걷잡을 수 없는 정치사회의 불안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는 테러문제가 아니라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문제가 있다. 냉전시대의 색깔론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합리적 정책에 기초한 중도통합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숙제다. 또 과거와는 달리 북의 핵실험에 대해 남쪽 국민이 차분하게 대응했던 것을 예로 들면서 남쪽 사회도 이제는 분단 문제에서 파생된 갈등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다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도 현재의 남남갈등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결국 중도통합의 과제를 지나치게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화 자유무역협정과 사회 양극화로 집약해서 표현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민주화의 구조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를 오히려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계몽적인 주장이 많다. “민주화보다 경제가 중요하다”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여기에 속한다.“민주화가 밥을 먹여주는가.”라면서 개발독재의 향수에 젖어있으면서도 세계화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바로 경제발전을 추동(推動)하였던 스페인의 경우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인구는 남한보다 조금 적지만 지금 국내총생산은 더 큰 스페인은 민주화 과정 속에서 유럽연합의 평균 성장률보다 높은 착실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통합과 세계시장이라는 이중적 세계화의 과제 앞에 선 스페인은 기술개발, 높은 실업률과 이주민 문제를 안고 있다. 영미나 북구와는 달리 사회 성원의 안전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적인 복지체계를 구축해온 스페인도 세계화의 도전을 받고 있다. 또 농업과 관광, 서비스분야 중심의 스페인이 세계화에 대처하는 전략은 자동차·선박·전자산업 위주의 남한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제규모를 지닌 두 나라의 경제사회의 미래를 서로 비추어 볼 수 있다. ●자만과 자조를 넘어 프랑코독재의 잔영(殘影)이 드리웠던 1981년 봄, 국방색 전투복에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민병대가 순시를 했던 바르셀로나시의 중심가 람브라스를 필자는 2001년 봄 꼭 만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1992년 올림픽을 치렀던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는 너무나 부러웠다. 자유스러운 사회의 숨결이 도시의 곳곳에 스며들어 만들어 낸 발랄한 분위기와 화려한 색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필자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서울 땅을 밟았다. 당시 쓰라렸던 경험 속에서 필자가 절박하게 느꼈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를 6월 민주항쟁 20돌이 상기시킨다. “이미 민주화됐다.”라는 자만이나 “엽전이 별수 있나.”라는 자조를 넘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로서 스페인의 지난 30년을 떠올리게 된다.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 [사설] 통합민주당 정책지향점 뭔가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이 어제 합당을 통한 중도통합민주당(약칭 통합민주당) 창당을 선언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 탈당세력이 최근에 만든 정당이었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으나 2003년 말 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빠져나가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잔류한 인사들이 유지해온 정당이었다. 유권자의 뜻과 무관하게 정치적 필요에 의해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것 자체가 우선 잘못이다. 대선을 겨냥해 급히 이합집산하다 보니 정체성 또한 실종된 상태다. 범여권에는 크게 두갈래 기류가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비(非)한나라당 세력을 모두 포괄한 대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과 비전은 뒷전으로 돌린, 한심한 발상이다. 통합민주당 창당으로 나타난 소통합 역시 책임정치 측면에서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참여정부의 인기가 없으므로 포장을 바꾸려는 고육책에 불과하다. 지난 일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호남에서의 지지세 확산을 노리는 지역주의마저 어른거린다. 더구나 소속 의원이 34명인데 최고위원은 12명, 중앙위원은 150명에 이른다.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이 합치면서 지분과 자리 다툼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지 못하면 연말 대선이나 내년 총선에 임박해서 또다시 통폐합될, 포말정당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통합민주당은 합당선언문과 기본정책합의서에서 이념좌표를 중도개혁주의로 잡았다. 양극단을 배제한다고 하지만 보수쪽은 한나라당이 있는 만큼 중도를 넘어 진보쪽으로 영역확대를 꾀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정강·정책에서는 실용주의로서 중도우파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최종적인 정책지향점이 뭔지 벌써 혼란스럽다. 박상천 대표의 ‘특정인사 배제론’까지 엉키면서 대선판을 어지럽게 만들 것이 우려된다. 정책지향점만이라도 분명히 해서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말기 바란다.
  • [프렌치 리포트] (27) 나폴레옹·드골 그리고 사르코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나폴레옹과 드골이다. 프랑스 어디를 가나 이들 두 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피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나폴레옹과 드골은 프랑스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기에 두 인물의 지도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대혁명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제도 전반에서 근대국가로서 프랑스의 기틀을 다졌다. 샤를르 드골(1890∼1970)은 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일으키고 프랑스를 독일과 맞먹는 공업대국으로 만들었으며 유럽통합의 주역이 됐다. 지나치게 강한 자아(自我),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탓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강력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됐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1840년 12월15일 아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유해가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와 콩코드 광장을 거쳐 앵발리드(상이군인병원이라는 뜻) 앞 마당에 도착했다.10만명의 파리 시민들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지 19년 만에 파리에 돌아온 영웅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센강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앵발리드 지하에 안치됐다.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뛰어난 재략과 강력한 의지로 정상에 오른 전쟁영웅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 몬 침략자이자 독재군주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그는 52년의 짧은 생애 동안 프랑스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200년 전 나폴레옹이 만든 많은 제도들이 아직까지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현(縣)이라고 불리는 98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었다.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이 행정단위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으며 행정능률을 배가시켰다. 그는 또 수백년간 이어져온 방대하고 모순된 구법전과 법률을 재정비해 간결명료한 최초의 근대적 민법인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했다. 세습 귀족제의 폐지, 상속권의 평등, 인종차별 철폐, 결혼과 이혼의 자유 등을 규정한 이 법전은 나폴레옹 원정군에 의해 전 유럽에 퍼져 근대 유럽국가들의 법전편찬에 본보기가 됐다. 그는 국립 프랑스 은행을 설치하고, 전국에 세무소를 설치해 국가 재정을 확보했다.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만든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그만큼 프랑스를 변화시킨 인물은 없었다. 파리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그는 파리를 통치의 중심지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범 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거리, 웅장한 건물, 분수대 등을 짓도록 했다. 그 중 하나가 파리의 상징물이 된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4년 위대한 프랑스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명령을 내려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외관의 마들렌 성당도 프랑스군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콩코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 뒤편의 방돔광장에 있는 청동제 원기둥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노획한 1200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루브르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갖춘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및 이집트 원정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파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나폴레옹 없이 프랑스 근대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의 마지막 거인’ 드골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프랑스는 자유를 되찾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전쟁 중 영국에서 반(反)나치 항전을 지휘한 드골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귀국해 임시정부의 수반이 됐다.1946년 제 4공화국이 들어서고 전후 산업화가 시작됐으나 정쟁(政爭)이 그치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자신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골은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제 4공화국이 붕괴되기 직전 드골은 ‘조국의 구원자’로서 당당하게 복귀했다. 강력한 대통령제에 입각한 제 5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1958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은 알제리를 비롯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평화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식민지 문제를 해결했다. 프랑스의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 않는 프랑스는 일찍이 한번도 참된 프랑스였던 적이 없다.”며 국민들에게 ‘앞으로!’를 외쳤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효과적인 경제·사회 모델, 독자적인 외교정책이 어우러지면서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는 급속하게 안정됐다. 드골은 아데나워 독일 수상과 함께 독·불협력 시대를 정착시키고, 반미 자주외교를 펼치면서 핵무기 개발과 군수산업 개발에 전력했다.“우리의 운명은 기계가 결정한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첨단 항공우주기술, 초고속열차(TGV), 컴퓨터산업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1967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대 산업국이 됐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자들이 합세해 일으킨 68혁명 여파로 1969년 4월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1970년 11월 드골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제 5공화국 헌법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시라크를 비롯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파출신들이 집권층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능력이 있는 직업공무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드골이 설립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엘리트들이 국정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 파리 중심가의 샤를 드골 에트왈 광장, 핵잠수함 샤를드골 호 등 그의 이름을 붙여 ‘마지막 거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최근 프랑스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중도우파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5공화국 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세계화, 유럽연합의 확장, 이민 2·3세들의 통합문제 등으로 프랑스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르코지가 과연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불법이민 처벌강화등 ‘총체적 개혁’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52)는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정책 추진력이 돋보인다. 자크 시라크 정권에서 내무장관을 두 차례 역임하면서 강경한 치안정책, 카리스마 넘치는 언행으로 화제를 모으며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선두를 유지했다. 헝가리 이민자 2세로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10대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집권 중도 우파 정당 당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1983년 파리 교외의 뇌이쉬르센 시장으로 당선된 뒤 1990년대 초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에서 예산장관 등에 중용되면서 정치적으로 급성장했다. 처음에는 시라크 계파였지만 1995년 대선에서 발라뒤르 전 총리를 지지해 갈등을 빚었다. 이후 시라크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 시라크와 계파 정치인으로부터 지속적인 견제를 받았다. 사르코지가 내세운 공약의 특징은 불법 이민 처벌을 강화하고 이슬람계를 주류사회로 통합하기 위한 쿼터제를 도입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긍정적 차별’이다. ‘함께하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총체적 개혁으로 프랑스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경제분야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 ▲감세정책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 및 근로시간 연장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 적극 도입 등을 내놓았다.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올리고,‘2년 안에 모든 노숙자에 거처 공급’ 등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또 강력한 법질서를 확립해 치안을 유지하고,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으면서 양질의 노동력은 적극 받아들이는 이민자 통제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외 정책 분야에서는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반대 등 전반적으로 EU 확대를 반대한다.vielee@seoul.co.kr
  • 민주·신당모임 통합 주도권 신경전

    민주당과 통합신당모임이 5월 초 창당을 선언, 범여권 통합 움직임의 선두에 선 가운데 내부에서는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이들은 지난 13일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협의회(중추협) 1차 회의를 열고 협의체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합의했지만 기본정책합의서 채택과 창당방식 문제는 2차 회의로 미뤘다. 공식적으로는 “특별한 이견은 없었다.”라고 밝혔지만 신당의 이념·정체성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민주당은 중도우파에 가까운 노선을 주장하고 있지만 통합신당모임은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개혁 노선을 내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이념 문제에 있어서 차이는 신당 창당에 동참할 세력 범위와 직결된다. 우선 민주당 주장대로라면 당초 중추협의 추가 참여 세력 1순위로 꼽혔던 민생정치준비모임과 색깔 차이가 난다. 민주당은 민생모임이 ‘진보노선’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다. 반면 통합신당 모임은 ‘합리적 진보’를 끌어안아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당장 민생모임 소속의 우윤근 의원이 통합교섭단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으나 민주당은 “중추협에서 최종 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뜻을 내비쳤다.반면 신당모임 양형일 대변인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합리적 진보세력을 배제해선 안되고, 시민전문가 집단도 신당논의에 동등한 비율로 참여해야 한다.”면서 “중추협이 울타리를 치고 심사하듯 사람을 받아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신당창당 방식에서도 의견차가 크다. 민주당은 ‘당해체 불가’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만 신당모임은 ‘도로 민주당’을 우려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통합신당모임과 민주당은 이 같은 쟁점사항을 각각 15일 저녁 전원회의,16일 당내 중도개혁세력통합추진위를 열어 전략을 마련한 뒤 오는 17일 2차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FTA 대선지도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FTA 대선지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올 대선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현재의 대선 판도를 바꿀 만한 폭발력은 갖고 있을까. 양론이 있다. 우선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주장이다.FTA 타결로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이 상당 부분 만회된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노 대통령 지지율은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여세를 몰아 노 대통령이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해 ‘막판 몰아치기’를 할 경우 반미(反美) 세력이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다시 뭉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범여권도 지금의 지리멸렬한 상태를 벗어나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고, 결과적으로 대선 정국에선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가 복원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일방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범 우파 진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이석연 공동대표가 이런 주장을 편다. 이 대표는 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뉴스의 한복판에서 국민적 관심을 끌 것으로 내다봤다. 노 대통령이 대형 이슈를 선점하는 탓에 대선주자들이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노 대통령이 대선정국의 핵심 변수란 얘기다. ‘트로이의 목마’를 거론하는 이도 있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다. 노 대통령이 FTA 타결로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남북정상회담으로 진보층의 지지까지 얻어 자기가 지원하는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을 말한다. 그 경우 보수진영, 다시 말해 한나라당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반면 노 대통령의 추동력이 대선 막판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세력은 지금의 지지율 상승도 ‘반짝 반등’으로 치부한다. 무엇보다 범여권의 유력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분오열돼 있는 범여권의 상황도 덧붙인다. 여러 갈래의 세력들은 주도권 경쟁과 각개 약진으로 이미 한 식구가 되기는 힘든 형국이다. 유일한 방안은 대선을 목전에 두고 후보단일화를 이뤄내는 것인데, 지금 분위기로는 이것 역시 쉽지 않다. FTA에 대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도 걸림돌이다. 친노 진영의 유력 대선 주자인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김근태·천정배 의원을 겨냥해 용도폐기된 낡은 대원군표 안경을 쓰고 있다고 강력 비난한 데서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FTA 타결로 통합신당은 오히려 실현 불가능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대선 정국의 영향력을 배가하려 할 경우 또다시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노 대통령이 대선주자가 아닌 까닭에 FTA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도 비슷한 생각이다.FTA 반대론이 폭발력을 가지려면 감성적 투표를 유도해야 하는데, 이번 협상이 미국 주도의 일방적 행태로 이뤄지지 않아 2002년의 반미·민족 코드를 다시 이끌어 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미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한·미 FTA가 아직 발효되지 않은 탓에 기대심리가 주류를 이루고 역효과 등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회적 효과보다는 경제적 효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결국 올 정기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의 처리 여부가 주요 포인트다.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FTA 영향력은 급격히 사라질 수 있다.FTA가 대선 지도에 어떤 궤적을 그릴지 지켜볼 일이다. jthan@seoul.co.kr
  • [서울광장] 중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들/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중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들/ 함혜리 논설위원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거리는 정확하게 8967㎞. 공간적 거리감 못지않게 두 나라 사이에는 문화적·역사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이같은 간극에도 불구하고 요즘 두 나라를 들끓게 하는 공통의 화두가 있다. 중도(中道)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치권에서는 요즘 중도가 대유행이다. 열린우리당은 막판뒤집기를 위한 이념카드로 중도세력 통합론을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의 박상천 전 대표는 애매한 대통합보다는 확고한 중도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영남지역에 바탕을 둔 보수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공공연하게 중도세력 포용을 강조한다. 모두들 ‘중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 가뜩이나 정체성이 모호한 우리 정당들이 저마다 중도를 외치니 정치판은 온통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형국이어서 피아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대선이 한달여 남아 있는 프랑스에서는 중도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주류정당인 좌, 우파 진영이 큰 혼란에 빠졌다. 유권자 4명 중 1명이 중도정당인 프랑스민주동맹(UDF)의 대선후보 프랑수아 바이루 당수를 지지하고 있다.‘다크호스’ 바이루 후보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와 사회당(PS)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1∼2%의 오차범위 안에서 바짝 추격하고 있다.11일 발표된 Ifop 여론조사에서는 23%로 루아얄과 동률을 기록했다. 중도통합이나 포용을 외치고 있는 우리의 정치인들은 바이루 돌풍을 지켜보면서 “역시 중도만이 살길”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도 정당을 외치는 것만으로 표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치이념에서 좌우의 개념을 만들어 낸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의회에서 왕권의 지속과 유지를 주장하던 정치인들은 국회의장의 오른쪽에, 왕권 축소와 공화국 수립을 주장했던 정치인들은 의장의 왼쪽에 각각 자리잡았던 데서 비롯됐다. 이후 175년동안 프랑스에서 좌·우는 있어도 중도는 없었다.1963∼1965년 공화대중운동(MRP)의 당수를 맡았던 장 르카르네가 중도정당의 필요성을 외칠 때까지.UDF당은 MRP를 모태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1978년 만든 중도정당이다. 좌·우의 양강구도에서 지지층이 분명치 않고, 언론으로부터도 외면당했지만 지난 40년간 올곧게 자신의 위치를 지켜온 중도파가 2007년 대선에서 전례없는 돌풍을 일으키는 것은 흥미롭다.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받는 루아얄, 지나치게 권위적이란 지적을 듣는 사르코지에게서 이탈한 표들이 바이루에게 몰리는 것이라고 정치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바이루 후보와 중도정당이 고질적인 좌·우 정파대립을 종식시킬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주류정당에 대한 반대표가 중도정당에 대한 기대표로 바뀐 셈이다. 유권자의 표심은 이렇게 흐른다. 프랑스 중도파의 갑작스러운 부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이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안으로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때 유권자들은 중도정당에 모여든다. 단지 부동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중도’라는 색깔의 옷을 차려입는 것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끌 수 없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급조된 위장중도는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19) 세계최고 ‘문화대국’

    [프렌치 리포트] (19) 세계최고 ‘문화대국’

    문화를 얘기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라가 프랑스다. 살다 보면 왜 프랑스를 문화대국이라고 하는지 금방 이해하게 된다. 눈길 가는 곳, 발길이 닫는 곳마다 수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가득하고 전국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공연장에서는 사시사철 다양한 장르에 수준높은 문화 프로그램들이 이어진다.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초여름까지 계속되는 시즌 내내 음악회와 오페라, 연극, 무용 등 각종 공연물이 쏟아진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부럽다는 말 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문화대국 프랑스의 힘은 내부 문화의 다양성과 외부 문화에 대한 포용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이국적 문화요소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프랑스 문화로 통합함으로써 프랑스 문화를 다양화하고 경쟁력을 높였다. 이같은 문화경쟁력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할 줄 아는 국민들, 그리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모든 장르의 예술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치밀하고 세심하게 정책을 펴나가는 국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프랑스인들은 문화생활을 무척 즐긴다.2005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지난 12개월 동안 평균 독서 58권, 영화 47편, 박물관이나 전시장 39회, 연극 16편, 음악회나 콘서트 관람 31회의 문화생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인들이 문화와 예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연주회장과 전시회장을 가보면 알 수 있다. 파리의 몽테뉴가에 있는 샹젤리제극장에서는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와 라디오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번갈아 열린다. 쿠르트 마주어와 정명훈씨가 각각 지휘봉을 잡은 두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는 수준이 뛰어나고 레퍼토리 선정도 훌륭해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최고로 인기다. 가끔 가보면 어느 연주회든 객석은 항상 만원이다. 관객들은 대부분 정기 회원으로 가입해서 그 시즌의 프로그램 중 원하는 것을 모두 예약한 뒤 여유있게 문화생활을 즐긴다. 센 강변에 있는 그랑팔레에서는 고갱 전시회와 모네와 터너의 인상파그림 전시회 등 좋은 전시회가 일년에 서너차례 열린다. 길게 늘어선 줄에 기가 질려 그냥 포기하고 돌아온 적이 많은데 프랑스인들은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줄을 섰다가 전시회를 관람한다. 독서를 하며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이틈을 이용해 클래식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사한다. 프랑스인들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것은 미적 감각이 발달하고 예술적 기질이 풍부하며 자유분방한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전통적으로 배금주의적 경향이 강한 탓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문화적 소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본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돈이 많더라도 문화적 소양이 없으면 교양인이나 인격자로 평가하지 않는다. ●문화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음악축제, 문화유산의 날, 박물관의 밤 등 문화부가 주관하는 문화 이벤트들은 프랑스가 얼마나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음악축제는 하지(夏至) 날을 맞아 매년 6월21일 열리는 행사다. 이날이면 대도시부터 시골 마을까지 프랑스 전역이 들썩인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음악회가 열린다. 전문 연주인은 물론이고 아마추어 음악가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악기를 들고 나와 솜씨를 뽐낸다. 클래식부터 재즈, 하드록, 레게 등 다양하다. 루브르 박물관 앞 뜰에서는 국립오케스트라의 무료 공연도 펼쳐진다.1982년 시작된 음악축제는 1995년 유럽 음악의 해를 맞아 유럽 각국에 알려지게 됐고 지금은 전 세계 100여개 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음악축제가 여름 축제를 여는 행사라면 9월 중순의 주말에 진행되는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가을의 문화 시즌을 여는 행사다. 전국의 모든 박물관과 문화재로 지정된 옛 건물, 고궁들이 무료로 개방된다.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는 엘리제 궁이나 상·하원 건물, 외무부 건물 등 평소 일반인이 출입하기 어려운 관공서 건물들 중 문화재로 등록된 건물들도 이날 시민들에게 문을 활짝 연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유럽 문화의 날’ 로 지정됐다. 프랑스 문화부는 2005년부터 5월20일에 한밤중까지 박물관을 개방하는 ‘박물관의 밤’행사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국립박물관 1700곳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밤 늦게까지 관람객들을 맞는다. 이런 행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국민 모두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런 ‘문화의 민주화’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노력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는 문화정책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수립해 실천에 옮긴 나라다. 반세기가 넘게 일관성을 갖고 추진돼 온 갖가지 문화정책은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프랑스만의 경쟁력이다. 프랑스의 역대 지도자들은 문화예술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것이 국부(國富)의 원천이 된다는 믿음을 가졌다. 드골 대통령 시절인 1959년 최초의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앙드레 말로는 한발 더 나아가 ‘문화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존재조건이자 실천조건이며 동시에 사회적 단결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으며 재정이 열악한 연극 등 공연예술이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철학에서였다. 말로가 쌓아 놓은 문화정책의 토대는 미테랑 대통령 시절 더욱 강화됐으며 중도우파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좌파와 우파 사이의 역할 교대가 있었지만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전통은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힘이 되고 있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만델라 건강이상설 확산

    넬슨 만델라(89)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의 건강이상설이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 현지통신 사파(SAPA)는 만델라가 뇌졸중을 앓고 있으며, 그가 사망하면 흑인들이 백인들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만델라 전 대통령의 대변인인 젤다 르 그랑제는 20일(이하 현지시간) “만델라 전 대통령은 건강하며 현재 모잠비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랑제 대변인은 “우리는 거의 매일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그는 활기에 차 있다.”고 밝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지낸 만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 13일 요하네스버그를 방문한 모나코 캐롤라인 공주를 면담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과시한 바 있다. 남아공 경찰은 인종 갈등을 부추기는 괴소문의 배후에 백인 극우파 집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4년 민주화 이래 흑·백 화합을 내세워 국가 통합의 상징역할을 해온 만델라가 사망할 경우 인종 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요하네스버그 연합뉴스
  • 진보진영 학자들의 ‘참여정부 진단’

    현재의 백가쟁명식 진보 담론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전제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잘못된 정책 추진으로 사회·경제적 측면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오히려 과거 정부보다 퇴보했다는 주장들이다. 다분히 현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심화된 양극화와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등을 염두에 둔 비판으로 보인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미국식 기업국가’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동원하고 있다. 21일 민주노동당 주최로 열린 토론회 주제도 ‘위기의 진보진영, 대반전 가능한가’였다.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가 진보진영의 위기를 몰고 왔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 스펙트럼은 사뭇 다양하다. ●실정에는 공감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의 실정 진단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진보진영 학자들은 요지부동이다. 진보 담론을 촉발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참여정부 정책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양극화의 심화, 대중생활의 파괴 등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가져 왔다.”면서 “이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입증하는 중요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의 진단을 반박하며 어느 정도 참여정부를 옹호하는 듯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조차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포함한 최 교수의 현상 지적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다.”고 언급할 정도다. 안병진 창원대 교수는 “현 정부는 재벌체제, 부동산문제 등 사실상 천민자본주의의 개혁에 불철저한 태도를 취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특히 “현 정부는 ‘놀랍게도’ 현 단계 민심의 방향을 시종일관 철저하게 무시하며 공허한 주장을 남발해 왔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미래’에만 집착하는 ‘토플러주의 리더십’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수는 “무능력 등 참여정부 주체세력의 문제점, 보수세력의 저항과 비판, 참여정부 개혁의 파괴적 결과로서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화 등 세가지 측면에서 참여정부 주체세력들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21일 토론회에서도 “집권세력이 국가권력의 담지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사회경제적 정책을 취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현 집권세력이 군사독재 시절보다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더 악화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분명한 정책의 실패”라고 단언하고 있다. ●원인 분석과 대안은 백가쟁명 최장집 교수는 참여정부 실패의 원인을 ‘운동정치의 과잉’으로 돌렸다. 사회적 갈등이 제도정치로 수렴되지 못하고, 여전히 ‘거리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제도정치 안착을 위해 실패를 인정하고 정권교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진보진영 전체가 참여정부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 집권세력이 ▲정체성에 집착하느라 헤게모니의 정치를 고민하지 못했고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를 보다 급진적으로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그 책임은 진보진영 전체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제도정치로 갈등을 수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비(非)제도정치적 힘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손 교수도 “민주주의의 위기, 참여정부의 실패는 오히려 운동정치의 부족에서 비롯됐다.”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대안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적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집권 여당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과거 운동진영의 일부 세력은 강박관념처럼 집착해온 정치개혁 어젠다나 판짜기에만 정통했다.”면서 “민의의 정확한 해석없이 어젠다를 추구하는 것은 위로부터의 주관적인 기획에 불과하기 때문에 애당초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대안으로 ‘좌우이동론’을 제시하고 있다. 경제이슈에서는 심각한 양극화를 고려해 좀더 ‘왼쪽’으로 이동하고, 사회적 가치 이슈에서는 유권자의 중도성향을 고려해 좀더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국대 홍윤기 교수도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좌파의 급진적 진정성이나 우파의 경직된 정체성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통합적 해결력을 보이는 강한 중도”라고 주장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잡탕정당,정책으로 개편하라/강지원 변호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요즘 정치판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질적 병폐가 또다시 재발하고 있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정당마다 이합집산과 정체성 논란이 한창이다. 먼저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보자. 이 정당은 이미 폐기처분될 정당으로 기정사실화되는 듯하다. 당 사수파라는 사람들까지도 리모델링에는 찬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운명을 다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할까. 직접적인 계기는 지지율이 폭삭한 데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처음부터 ‘잡탕’정당이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최근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김근태 의장에게 ‘좌파적’이라고 공격했고, 김의장측은 ‘그러면 당신은 한나라당으로 가라.’고 공격했다. 정당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그야말로 코미디같은 일이다. 도대체 김 의장이 좌파적이라는 지적에 발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강 의장이 우파를 자처한다면 한나라당과 다른 구석은 무엇인가. 최근에도 정권이 진보적 개혁에 실패했다며 탈당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좌파로는 안 된다며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그렇다면 맨처음 창당할 때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인가. 다음으로 한나라당을 보자. 대체로 보수적인 노선을 가진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 밖에서 손학규 전 지사에게 한나라당에 있을 사람이 아니니 탈당하고 나오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명박·박근혜와는 노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학규의 노선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나라당에도, 누가 보더라도 아닐 듯싶은 이들이 그 안에 있다. 그들 사이에 지금은 조용한데 언제 갈등이 불거질지 모를 일이다. 이나라 정치사에서 이런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있었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논의, 그 전 선거에서 있었던 DJP연합 등 그런 사례는 늘 있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런 야합은 반드시 깨진다는 사실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잇속을 챙기기 위해 일시적 연대를 하지만 그 본색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동자들은 득표에 보탬이 된다면 우선 급한 대로 노선과 관계없이 명성이나 득표력, 지연·학연 등 연줄에 기대 사람들을 긁어모은다. 또 당사자들은 자신과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리 욕심에 혈안이 되어 뛰어든다. 이런 저질적 행동들은 결국 정당정치의 기본을 파괴하고 우리 정치를 패거리 작당 정치로 전락시켜 왔다. 본래 정당이란 정치적 견해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그리고 국민은 그 정당의 정강정책을 보고 투표를 한다. 그런데 도무지 이 나라의 양대 정당이라는 정당은 죄다 ‘잡탕’이다. 그러니 국민은 혼미스럽고, 또 툭하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움질을 하게 된다. 그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는 독재로부터 해방되고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이 참정권을 행사해 정책을 통해 정당을 선택하고 정당이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해나가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산적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매니페스토 운동은 먼저 정당에 대해 정책정당이 될 것을 요구한다. 정당이 문서화된 정책을 내놓고 국민은 그것을 보고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 정당도 늦었지만 정책정당으로 대변신을 해야 한다. 인물 따라, 지역 따라 몰려다니는 패거리 작당 정당이 아니라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 우파면 우파, 좌파면 좌파, 정책에 따라 헤쳐모여가 시급히 전개되어야 한다. 국민은 요구한다. 정치인들은 제 정치적 신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라. 그리고 그 번지수에 맞는 정당을 찾아가라. 더이상 ‘위장취업’은 안 된다. 또 ‘한지붕 여러가족’도 안 된다. 정당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에 나서기 전에 제 정체성부터 분명히 하라. 강지원 변호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 [세계적 석학이 말하는 지구촌 전망] “태평양시대 아시아 경제공동체 필수적”

    [세계적 석학이 말하는 지구촌 전망] “태평양시대 아시아 경제공동체 필수적”

    |파리 이종수특파원|자크 아탈리(64)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빡빡한 일정 탓인지 날짜를 확정한 뒤에도 시간대를 4차례나 조정해야 했다. 파리 기온이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진 23일(현지시간) 오후. 샹젤리제 거리 뒷골목에 있는 그의 사무실 옆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틀에 매이기 싫었던 듯 미리 보낸 질문지를 읽지 않았다고 했다. 자연히 ‘준비된 질문’과 ‘날 것의 대답’이 오갔다. 먼저 오는 31일 한국에서 강연할 주제를 물어봤다.“역사를 통해 한 국가가 어떻게 강국이 되며, 영향력을 유지하는지를 총체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이어 한국의 강점을 활용할 최선책과 약점을 극복할 방안을 다룰 예정이다.” 30년 전 그가 예측했다는 ‘태평양 시대’에 대한 조감도가 궁금했다.“세계의 중심이 되려면 미래 테크놀로지, 즉 정보기술(IT)·나노·에너지 기술 등을 확보하고 항구를 갖춰야 한다. 태평양 지역에는 이 조건을 갖춘 나라가 많아 일찍이 주목했다. 한국은 다방면에 잠재력이 있고 일본도 여전히 건재하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런 성장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아시아 지역의 공동시장 등 경제공동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공동경제구역 구축을 가능케 하는 모든 것, 특히 유로화와 같은 단일통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현실화되려면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 단계로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 佛대선 전망 그의 ‘자상한 안내’에 힘입어 화제는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통령선거로 넘어갔다. 가장 큰 관심은 중도우파인 집권당 대중운동연합의 수성이냐, 아니면 13년만에 사회당의 정권 탈환이냐였다. 진단은 신중했다.“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독립적 입장에서 관찰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집권당 후보가 늘 패배했기 때문에 우파 진영이 패배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그러나 달라진 두 가지 정치 풍토가 변수라고 내다봤다.“이번 대선은 매우 특이하다. 유력 후보 2명 모두 처음 출마했다. 전례가 없다. 지금까지는 주요 후보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은 대선에 출마했던 사람이었고, 출마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곤 했다.” 사회당 루아얄 후보가 내세운 ‘참여 민주주의’는 그가 주창한 것이다. 그 인과관계를 묻자 “그녀와 7년 동안 일하며 잘 알게 됐다. 아주 친한 친구지만 우리 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웃음)고 말했다. 대신 ‘루아얄이즘’, 혹은 ‘루아얄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에 대해 “그녀는 참신하면서도 경험있는 인물이라는 두 가지 절묘한 측면이 어우러진 후보”라고 했다. #신음하는 EU 진단 동구의 노동인력 유입과 유럽헌법 부활 등 여러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전망에 대한 ‘석학’의 진단은 어떠할까.“EU는 기이한 공동체이다.27개 회원국으로 확대됐고 단일통화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크게 성공한 공동체다. 그러나 회원국 모두 정치적으로 통합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연합 내의 연합’이라는 독특한 전망을 제시했다.“프랑스·이탈리아·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몇몇 국가들이 EU 내에서 제한적 소규모 그룹을 형성하여, 공동 군사력을 갖추고 공동의 외교정책을 수립할 것이다. 이 형태가 내가 희망하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EU헌법도 27개 회원국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는 불가능하고 7∼8개국만의 공동헌법이 제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로운 노마디즘 화제는 지구촌 공통의 문제로 넓혀졌다. 그는 온난화, 물 부족 등 환경 재앙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한 뒤 ‘새로운 노마디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곧 지구촌 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기후도 한 이유가 된다. 아프리카를 떠나 더욱 살기 좋은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중국에서 러시아로 옮겨가는 인구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자원이 풍부하고 환경 보전이 잘된 시베리아가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러시아 국경은 인구 이동과 천연자원 확보를 위한 갈등으로 21세기의 거대한 분쟁 지역이 될 것이다.” #문명의 충돌 역설 중동과 유럽을 감싸는 이슬람과 서방의 긴장에 대해서는 낙관론을 폈다.“이슬람 인구는 10억에 이르고, 서방도 10억가량의 인구가 있다. 극소수의 광분한 이슬람그룹이 있지만 주된 흐름은 현대화·민주화로 간다. 이슬람교의 성향 자체가 민주주의와 대치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그래서인지 새뮤얼 헌팅턴이 진단한 ‘문명의 충돌’에 단호하게 반대했다.“그가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할 때 문명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 이슬람 문명, 아랍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슬람 문화·문명은 획일적이지 않다. 이것이 이슬람의 힘이다. 이슬람은 보편적인 종교이며 문명을 초월해 있다. 그것은 이슬람이 극도로 추상적인 종교이기 때문인데 이 점에서 이슬람은 특정 문명에 의해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인류 미래 예측 다양한 각론을 거쳐 마침내 ‘인류의 미래’에 도착했다.“자본주의는 앞으로 3단계의 보편화 과정을 거칠 것이다.▲향후 20∼25년은 미국 주도 ▲한국 등 11개국 주도의 다극체제 ▲시장논리만 통하는 거대제국(Hyperempire)이 그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거대제국 단계에서 국가·민족·도덕은 의미가 없다.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의 지배로 온갖 갈등이 분출하는 ‘대충돌(Hyperconflit)’시대가 온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미래는 밝다. 인간은 늘 자유를 제약하는 모든 억압에 대항했듯이, 국제적 비정부기구(NGO) 등이 중심이 돼서 합리적 돌파구를 찾는 ‘초국적민주주의(Hyperdemocratie)’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vielee@seoul.co.kr ■ 자크 아탈리의 노마디즘 인생 |파리 이종수특파원| 경제학자·정치인·관료·저술가·사회운동가·소설가·언론인…. 자크 아탈리의 지적 여정이다. 읽기에도 숨가쁜 전방위 활동은 자신이 만든 말 ‘디지털 노마드(유목)’를 빼닮았다. 1943년 알제리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그는 한 곳에만 들어가도 수재로 통하는 프랑스의 그랑제콜 4곳을 졸업했다. 에콜폴리테크니크(공학), 에콜데민(토목), 정치대학원(정치학)을 거쳐 프랑스 최고지도자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까지 졸업한 뒤 소르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수학을 시작으로 역사·법학·경제학·철학·음악 등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지적 탐험은 끝이 없는 듯 “중요하다고 여긴 모든 것은 소화한 뒤 독서·만남·지적 자유를 통해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공계와 인문사회학을 넘나드는 학문 탐험에 힘입어 활동도 전방위에 걸쳐 있다.1975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는 경제 고문으로 인연을 맺은 뒤 1981년부터 엘리제궁에서 대통령 특보로 10여년간 활동했다. 그래서 ‘미테랑의 쌍둥이’란 별명이 붙어 다닌다. 숱한 ‘양지’에서 일하면서도 시민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1979년 비정부기구 ‘빈곤퇴치 행동’을 세웠고, 1989년 방글라데시에 ‘국제 수재 방지 행동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또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의 ‘소액금융’운동에 공감,1998년 프랑스에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고 있다. 폴리테크니크·도핀대 등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40여권의 저서와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호모 노마드’ ‘인간적인 길’ 등이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vielee@seoul.co.kr ■ ‘비전 2030 글로벌 포럼’은 미국·일본의 비전·미래 전략을 검토하면서 한국의 ‘비전 2030’의 보편적 의미를 점검하는 행사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이종오)가 주관하는 포럼은 오는 31일 기조 연설 및 환영행사,2월1일 한국·미국·일본의 미래비전 정책에 대한 집중 토론으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미래를 위한 세계의 준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 ‘미래의 성장 동력 육성방안’ 등의 주제를 놓고 한국의 ‘비전 2030’에 해당하는 미국의 ‘해밀턴프로젝트’와 일본의 ‘21세기 비전’을 입안한 전문가들이 주제 발표와 토론에 참석한다. 아탈리는 “장기적 안목으로 자국의 미래에 대해 성찰하고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을 숙고하는 나라는 매우 드문데 한국이 이런 행사를 마련한 것은 흥미롭다.”고 말했다.
  • 김혁규, 대권이냐 총리냐

    열린우리당내 ‘영남 잠룡’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김혁규 의원이 조만간 대권도전을 선언할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김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CEO 이미지와 시장으로서 보여준 실력 때문에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안다. 나도 이 전 시장 못지않은 경력과 실적을 갖고 있다.”며 포부를 비친 바 있다. 평소 정치적 의사표현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던 김 의원으로서는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김 의원측은 최근 서울 여의도 모처에 사무실을 내고 캠프 운영을 위해 진용을 정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이달 말을 전후해 개소식과 함께 대권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늦어진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총리설’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권주자로서 김 의원은 ‘영남후보’ 범주에 포함된다. 그는 최근 김근태·정동영 등 전·현직 당의장과 원내대표 긴급회동에 의장이나 원내대표도 아니면서 유일하게 참석, 당내 정치적 위상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올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안 제안에 대해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는 등 분주한 대외행보를 하고 있다. 경제 리더십에 풍부한 행정경험이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평가다. 김 의원이 영남잠룡으로 부각되려면 친노세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의원은 중도우파적 성향이어서 친노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여권 사정에 밝은 한 정치전문가는 “김 의원이 영남후보의 대표주자가 되면 친노의 개혁 명분이 약해질 수도 있다.”면서 “오히려 범여권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도 “영남 잠룡이라는 말은 이제 여권에서 의미가 없다. 영·호남 통합의 큰틀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기 총리 기용설이 나도는 가운데 김 의원이 입각하면 노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개헌정국에서 중립내각을 구성할 경우, 여당 의원을 총리로 내정하는 무리수를 둘 것 같지는 않다는 관측이어서 실제 대권도전 선언 여부가 주목된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월드 이슈-세계의 大選 (상)] 시동 건 ‘2008 美 대선’ 주자와 관전 포인트는

    [월드 이슈-세계의 大選 (상)] 시동 건 ‘2008 美 대선’ 주자와 관전 포인트는

    2007년 세기의 대선(大選)레이스가 펼쳐진다. 오는 4월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를 두고 ‘혁명 선거’의 기운마저 일고 있는 프랑스, 연말 대선을 치를 한국과 인도·베트남·아르헨티나 등 모두 24개국에서 무한 경쟁 시대를 헤쳐갈 지도자를 뽑는다.2008년 11월 치러질 미국의 대선도 유력 대선 주자들의 탐사위원회 출범이 잇따르면서 본격 점화됐다. 국제사회 정치·외교 지형의 방향을 가를 미국의 대선 동향과 ‘21세기 혁명’을 앞둔 프랑스 대선, 그리고 각국 대선 관전포인트를 상·하로 나눠 소개한다. 16일 미 정계의 검은 핵(核) 배럭 오바마(46·일리노이주·민주당)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위한 탐사위원회 구성을 공식 발표하면서 2008년 11월 제 44대 미 대통령 선출을 위한 전쟁에 불이 붙었다. 같은 민주당의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60·뉴욕주) 상원의원의 출마 선언도 이어질 전망이다.2008년 미 대선의 화두는 ‘미 국민의 상처난 자존심 회복’. 이라크전 실패 등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으로 추락한 미국의 이미지를 복원할 지도자가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넘쳐 나는 ‘최초’의 가능성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흑인인 오바마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 217년간 지속돼온 와습(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출신 대통령 전통이 깨질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또 40대의 오바마와 70대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앨라바마)간 세대간 대결 가능성도 화제의 중심에 있다. 또 1928년 이후 처음으로 현직 정·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은 채 치러진다. 공화당 후보들의 군웅할거가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빌 클린턴 42대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41·43대 조지 부시 가문의 부자 대통령에 이어,42·44대 대통령을 클린턴 가문의 부부가 맡게 된다. ●공화·민주 4강 후보로 압축 지난해 중간 선거 이후 여론 조사 결과로는 민주당의 힐러리와 오바마 의원,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의원,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으로 압축됐다. 민주당내 최대 강자는 지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백악관 안주인 역할을 한 힐러리다. 퇴임후에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원은 큰 자산. 민주당 지지자들은 “힐러리의 당선은 빌의 3선이며, 한표로 두 대통령을 가질 수 있다.”고 호소한다. 힐러리의 장점은 많은 경력과 언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금 동원 능력이다. 오바마는 그가 가진 신선함 덕분에 날로 힘을 얻고 있다.4년 전 그는 이라크전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반복하는 연설은 유명하다. 흑백 통합 이미지로 돌풍을 몰고 있는 오바마는 백인 어머니와 미국에 유학온 케냐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두살때 케냐로 돌아간 뒤 하와이, 인도네시아를 전전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버드 법대학원 졸업 뒤 시카고로 돌아가 빈민 지역민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주 상원의원으로 7년간 일한 뒤 2004년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힐러리에 비해, 경험 부족이 최대 약점이다. 힐러리 대통령, 오바마 부통령 연대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최대 강력 주자는 존 매케인 의원과 루돌프 줄리아니(63) 전 뉴욕시장이다. 고희를 맞는 4선 의원 매케인은 베트남전에 참전,5년여 포로 생활을 했다. 가족 대대로 군대에 복무했고, 본인도 23년간 군대생활을 했다. 이라크전에는 부시 정책과 입장을 같이 한다. 이민개혁법안 등에서 좌파적 입장을 취하고, 우파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막말을 하는 언행으로 골수 보수파의 불신을 얻기도 하지만 초당파적 드라이브로 힘을 결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미국의 시장’이란 명성을 얻은 줄리아니 전 시장은 동성결혼, 낙태 등에서 공화당 주류와 다른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세차례의 결혼과, 도나 하노버와의 결별시 불거진 혼외정사 등 사생활 문제로 정통 보수표 확보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 사이에서 미트 롬니(59)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정동 보수의 이미지로 도전장을 냈지만, 모르몬교도란 점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美역대 대통령의 주요 외교정책 2008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 세계의 정치·외교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기 때문이다. 냉전부터 베트남 전쟁, 소련 붕괴, 중동 사태와 북한 핵문제까지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의 중심엔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있었고, 미 국익 극대화를 중심에 둔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지구촌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왔다. 집권 초기인 2001년 일어난 9·11 테러를 계기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對)테러전 수행을 위한 ‘선제공격론’과 ‘일방주의’로 집중됐다.‘네오콘(신보수주의 강경파)’의 노선은 베트남 패전 후 미 외교의 주류가 된 ‘현실주의 외교’에 대한 반발이 그 뿌리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는 ‘도덕적 낙인’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그는 외교에선 탁월한 전략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핑퐁외교’ 등 실용 노선을 견지했다. 닉슨은 미·소 군축을 통한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경제 분야의 낙제점으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권 외교’를 주창했지만 대외 정책에서 큰 성공은 맛보지 못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강력한 미국 재건’을 내세우며 강경일변도의 대외 정책을 구사했다. 그는 소련과의 대결 구도로 신냉전을 열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제3세계 분쟁에 적극 개입했던 그의 외교정책은 집권 후반기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 소련의 개방 정책을 이끌어 낸다.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노선은 현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대통령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외교의 주축으로 삼았다. 전임자인 레이건의 정책을 견지했다.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협력체제 구축이 주요 외교전략이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가 벌인 이라크전의 전초전인 걸프전쟁(1990-1991)을 감행한 주역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깊이 관여한 행정부가 됐다.1994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일련의 핵 위기가 난제가 됐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체결했지만, 핵은 제거하지 않은 채 북한 요구에 굴복, 당근(중유와 경수로 제공)만 줬다는 공화당의 비판에 시달렸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은 “클린턴 때 한 것 빼고는 다 한다.”는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에서 출발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美대통령 어떻게 뽑나 유권자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간접선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을 선거인으로 뽑아 선거인단 숫자로 대통령을 결정한다. 때문에 미국 대선은 각 당이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와 유권자가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본선거 등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민주, 공화 양당이 대선 후보를 가리는 예비선거는 1월 아이오와주, 뉴햄프셔주를 시작으로 6월까지 각 주에서 전당대회에 참가할 대의원들을 뽑는다. 대의원을 선출하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당직자회의를 통한 당대회(코커스)와 유권자 투표로 결정하는 예선대회(프라이머리)로 구분된다. 이어 각 당은 8·9월중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공식후보를 지명한다. 11월초 대통령 선거일에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각 당이 내세운 선거인단에 투표한다. 여기서 뽑힌 선거인단이 12월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을 선출한다. 선거인 538명중 과반수를 얻는 후보가 대통령에 최종 당선된다. 선거인단은 미리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사실상 승패는 선거인단 투표일에 결정난다. 미 대선 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승자독식제도. 한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이 때문에 전체 유권자 득표율이 높아도 선거인단 수 확보에서 밀려 패배하는 경우가 생긴다.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조지 W 부시에 비해 전체 유권자로부터 53만여표나 더 얻고도 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11) 경쟁 싫어… 개혁도 싫어

    [프렌치 리포트] (11) 경쟁 싫어… 개혁도 싫어

    프랑스인들은 불안하다. 지금까지는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아등바등 살아도 편안한 삶을 보장받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인들은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을 좀 더 많이 벌고, 좀 더 잘 살기 위해 악착같이 사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금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골치 아픈 정치와 경제는 엘리트들에게 맡기고, 국민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하면서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복지·교육의 혜택을 받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인생도 이제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 과잉복지로 인한 재정부담이 날로 가중되는데다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본질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분배와 사회적 평등을 우선시하는 프랑스식 사회주의 경제 모델은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속에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곳곳에서 경쟁을 강요받는다. 프랑스인들의 개혁 거부 증세도 심각해지고 있다. ●변화에 대한 강한 거부 2005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최대의 이슈는 유럽연합(EU) 헌법 비준을 묻는 국민투표였다. 그해 5월29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프랑스 국민의 55%가 유럽연합 헌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유럽헌법은 25개 회원국 모두 찬성해야 공식발효되기 때문에 유럽헌법은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경제적으로 통합된 유럽을 정치적으로도 통합해 미합중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럽 합중국을 이룩한다는 원대한 계획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프랑스는 유럽헌법을 발의한 나라이며 유럽통합을 선도해온 나라다. 프랑스가 유럽헌법을 부결시킨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반대표를 던진 데 대해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은 ‘민심의 표출’이라고 평가했다. 시라크 정권에 대한 불만과 유럽통합 작업에 대한 반대여론이 합쳐진 결과라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EU가 중·동부 유럽으로 확대되면서 동유럽의 근로자들이 몰려와 이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실업률이 10% 가까이 되는데도 동유럽의 저가 노동력에 서비스 시장을 열어주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마음에 들 리 없다. 노동자들은 특히 유럽헌법의 도입으로 프랑스가 신(新)자유주의의 국제질서에 편입된다는 데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프랑스의 좌파들은 유럽헌법이 EU 내에 자유시장 경제를 급속히 파급시켜 지금까지 쌓아온 전통적 사회보장망을 파괴할 것이라고 예단했다. 프랑스인들이 갖고 있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자극한 셈이다. ●한계에 달한 프랑스식 사회경제 모델 유럽헌법 국민투표를 계기로 유럽에서는 앞으로 어떤 사회로 갈 것인지에 대한 토론에 불이 붙었다. 같은 해 10월27일 EU 정상들은 런던에서 비공식회담을 열어 유럽의 미래를 논의했다. 당시 순번제 의장국이었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 자리에서 회원국 정상들에게 유럽 발전을 위해서는 앵글로색슨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앵글로색슨 모델은 개방과 경쟁만 유도할 뿐 평등과 분배를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 이렇게 강변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사회보장 비용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와 경기침체에 따른 높은 실업률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경제시스템을 개혁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분배와 사회적 평등을 우선시하는 ‘라인란트 모델’의 양축을 이뤄왔다.2차 대전 이후 도입된 라인란트 모델은 지속 성장만 담보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세계화의 소용돌이속에서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 복지비용 부담에 따른 프랑스의 공공부채 규모는 2006년 국내총생산(GDP)의 65%나 된다.2006년 재정적자는 380억∼390억유로에 이를 전망이다. 의료·연금·가족 보험 등 사회보장 비용은 2004년 119억유로,2005년 116억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부가 복지와 분배에 우선을 둔 경제정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번번이 실패한 개혁시도 드 빌팽 정부는 경제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고용창출을 위한 국가 재정운용, 소규모 기업의 고용확대, 실업자의 노동시장 복귀를 위한 인센티브제 도입을 정책과제로 제시하고는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최초고용계약(CPE)’제 도입이었다. 고용주가 26세 미만의 직원을 채용할 경우 처음 2년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기업주에게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고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 선택이었다. 프랑스의 청년 실업률은 23%에 달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드 빌팽 총리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쑥 내민 이 제도에 대학생들과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정년을 보장받고 편히 살아온 프랑스인들에게 이 제도는 라인란트 모델의 포기를 의미했으며, 또한 무한경쟁을 의미했다. 소르본대학의 점거농성으로 시작된 반대시위는 2006년 봄 프랑스 전역을 강타했고 결국 정부는 이 제도의 도입을 백지화했다. 정치평론가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에 따르면 사회당 정권에서도 저성장, 높은 실업률, 이민자 문제, 주택난이 심각했다. 그래서 80년대부터 여러번 개혁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 때문에 포기했다.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1995년 집권한 중도우파 정부는 수차례 개혁을 시도했으나 2003년의 연금제도 개혁 외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르 몽드는 “프랑스인은 65%가 실업을 걱정하고 영국과 덴마크의 높은 성장을 부러워한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복지모델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라고 꼬집었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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