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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형칼럼] 黨權, 大權 지름길인가

    [이경형칼럼] 黨權, 大權 지름길인가

    열린우리당의 2·18전당대회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정동영,김근태 후보의 2강 구도로 펼쳐지고 있는 당권 경쟁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것은 당의장을 차지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그렇지 않을 수가 있다.이번 전당대회 투표 결과에 따라,최고 득표자는 당의장이 되고 나머지 4명은 득표 순위대로 선출직 최고위원(여성 몫 1명 포함)이 되며,당의장은 2명의 최고위원을 지명하게 된다.그러나 당의장이 된다고 해도 집단지도체제로 당을 운영해야 하므로 5·31지방선거의 공천권 행사 등도 만만하지가 않을 것이다. 당의장이 되면 사실상 대권 후보가 된다고 가정하는 데는 함정이 너무 많다.왜냐 하면 첫째,새로 선출되는 당의장의 1차적 과제는 5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하는 것이 될 텐데,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자칫 당이 선거책임론에 휩싸여 홍역을 치를 수 있다.당 역량을 총동원하여 지방 순회 토론회 개최 등 전국적인 정치 흥행으로 힘들게 ‘인물’을 만들어 놓고도 다시 인책론으로 무위에 그치게 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그런데도 이를 방지하는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당의장이 사실상의 대권후보로 조기에 가시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역대 여당 대권 후보가 그랬듯이,열린우리당 대권 후보도 필연적으로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 과정에서 정국 운영의 무게가 후보 쪽으로 쏠리면 자연히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되고,국정 수행에도 많은 차질이 생긴다. 이런 문제들을 감안하여 다음 몇 가지를 고려하는 것은 어떨까.우선 당권과 대권 후보를 실질적으로 분리하거나,아니면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 중 누가 뭘 맡든지 간에 당의장,대권 후보 등으로 역할 분담을 꾀하는 것이다.이번에 당권을 맡는 사람은 대권 후보 경선에 빠지는 등의 정치적 합의도 가능할 것이다.이렇게 되면,차기 대권 경쟁 구도가 권력구조 변경 등 개헌과 연계될 경우,지금보다 훨씬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예상 대권주자들의 지지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야권의 이명박,고건,박근혜씨에 비해 여당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뒤진다.따라서 8일 고건,김근태 양자의 전격 회동 및 양심세력대연합 모색 등과 같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세력 규합이 요구될 수 있다.이럴 때도 당권,대권 후보 분리가 상황 대처에 훨씬 용이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전당대회를 인물 선택보다는 정책노선 대결로 전환하여 향후 대권 경쟁에 임할 당의 정책 방향을 재정리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사실 세계 곳곳을 둘러봐도 민주화 이후 선거의 승패는 경제문제에 달려있다.국민들은 좌파든 우파든 무엇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따라 표를 찍을 것이다.그래서 정동영,김근태 양자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이들은 대권 후보감으로 일단 뒤에 물러나 있고,김혁규,김두관 후보 또는 단일화된 40대 후보를 내세워 과연 당이 어떤 정책 노선을 취하는 것이 국민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지를 전당대회 과정에서 공론화하여 검증해보는 것이다. 어떤 이는 복잡하게 정치적인 계산을 하지 말고,여당의 대권 예비 주자끼리 피 터지도록 싸우게 하는 것이 인물을 키우는 방법이라고도 말한다.그러나 그것은 예비 주자들이 지지도에서 적어도 공동 3위 정도는 될 때 해당하는 말이다.내부에서 싸우다가 초반에 진을 빼고,쪽박까지 깨는 일은 피해야 한다. khlee@seoul.co.kr
  • 중·남미 좌파돌풍 북상 美 FTA 南下전략 흔들

    중·남미 좌파돌풍 북상 美 FTA 南下전략 흔들

    남미의 좌파 바람이 무서운 기세로 북상하고 있다. 우파 후보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지던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CAFTA) 체결에 비판적인 중도좌파 후보가 막판 돌풍을 일으켜 재검표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코스타리카 선거재판소는 6일(현지시간) 250만 유권자 가운데 65%가 투표에 참여한 대선 개표 결과 1위를 차지한 민족해방당의 오스카 아리아스 후보와 2위 시민행동당의 오톤 솔리스 후보의 표차가 너무 적어 재검표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개표가 88%까지 마무리된 시점에 아리아스 후보는 유효투표의 40.5%를, 솔리스 후보는 40.2%를 차지했다. 표차는 불과 3250표. 오스카 폰세카 선거재판소장은 “시간이 갈수록 표차가 좁혀지고 있어 재검표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재검표 결과는 열흘 뒤 나올 것으로 보인다. BBC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25%의 지지도로 아리아스에 크게 뒤졌던 솔리스가 남미 전역에 일고 있는 좌파 바람을 업고 선전을 펼쳤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솔리스 돌풍을 ‘CAFTA 효과’로 설명한다. 솔리스는 CAFTA가 경제 활성화와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아리아스측의 주장에 맞서 협정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소농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재협상을 주장해왔다. AP통신은 “국민들을 외국 기업보다 우대하겠다.”는 솔리스의 호소가 CAFTA에 반대하는 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끌어냈다고 분석했다. 솔리스의 선전은 최악의 경우 미국의 ‘FTA 남하’전략이 이 지역에서 중단되는 상황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다.1994년 캐나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북미시장을 단일화한 미국은 중미국가와의 CAFTA에 이어 남미와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을 체결, 북미와 중남미를 거대 단일시장으로 재편하려는 구상을 실행에 옮겨왔다. 현재 코스타리카 북쪽에 있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는 협정 비준을 마친 상태다. 하지만 남쪽의 파나마가 최근 협상에서 농산품 검역 기준을 두고 심각한 마찰을 빚는 등 미국의 FTA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솔리스는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아리아스 대통령 재임 시절 기획부 장관을 지냈다. 반면 부유한 커피 농장주의 아들인 아리아스는 1986∼90년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내전 종식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재검표 결과 40%를 넘는 득표자가 없으면 4월 결선투표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코스타리카 대선 발표 지연 중도우파 아리아스 당선 유력

    5일(현지시간) 실시된 중미의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야당 국가자유당 후보인 오스카르 아리아스(65)가 근소한 표차로 앞선 가운데 개표 결과에 대한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아리아스 후보가 40.6%를 얻어 40.2%를 얻은 중도좌파 후보 오톤 솔리스를 조금 앞질렀다고 전했다.그러나 솔리스측이 개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어 아리아스측도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며 “승리 축하를 24시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리아스 후보는 1986∼1990년 대통령을 지냈으며 1987년엔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평화를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미 자유무역지대 참여를 주창하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우파적 사관 대변 논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한국 현대사를 표방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란 역사책이 출간도 되기 전에 ‘뉴라이트’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 한국현대사의 주류적 역사해석을 제공해 왔다고 평가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1979년 제1권 출간)을 공격 대상으로 설정한 것으로 총 700쪽가량 되는 2권에 논문 28편이 수록될 예정이다. 편집위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와 같은 대학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 성균관대 정치학과 김일영 교수, 연세대 국문학과 김철 교수로 구성돼 있다.●“반대증거 제시가 우파적이라 할 수 있나”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1일자 기사에서 이 책이 8일쯤 도서출판 책세상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전하면서 진보와 좌파적 역사관을 대변하는 ‘해전사’에 견주어 이번 책은 우파적이며 탈(脫) 민족주의적이고,‘뉴라이트’적인 관점에 서 있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실물(책)은 아직 선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시장(독자와 평론가)의 반응이 있을 수도 없는 상품이 뉴라이트라든가 우파적인 사관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책의 한 필자는 “‘해전사’가 제시한 역사해석이나 사실에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한다고 어떻게 우파적이라거나 뉴라이트적인 관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이영훈 교수나 김일영 교수처럼 국내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필진에 포함돼 있다고 그들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해석이 ‘뉴라이트’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잘못된 역사 사실 바로잡겠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의 한 편집위원은 “우리가 이번 책을 기획한 가장 큰 의도 중 하나가 무엇보다도 ‘해전사’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에서 잘못 제시된 역사사실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편집위원 중 이영훈, 박지향, 김철 교수는 그동안 ‘해전사’로 대표되는 주류적인 한국현대사 해석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은 물론 이런 왜곡된 사실을 토대로 파시즘적 민족주의를 주창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표방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서두에 실리게 될 이영훈 교수의 ‘백두산 신화의 탄생’에 대한 논문에서 집약될 전망된다. 여기서 이 교수는 백두산이 20세기 초두에 갑자기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대두하게 된 과정과 거기에 민족주의 담론이 어떻게 ‘억압적’으로 작동했는지를 탐구하게 된다.연합뉴스
  • [기고] 한류와 문화수출정책/최현주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상임이사

    한류가 아시아의 대표문화로 살아 남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부분 몇백만명의 관객이 극장에 왔다는 식의 한류의 상품성과 그 가치에 매달려있으며, 최근 들어 콘텐츠의 중요성을 다소 인식한 정도다. 그러나 아시아가 공동으로 수긍할 수 있는, 콘텐츠를 뛰어넘는 한류의 대표적 정신계를 파악하는 길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20세기 이데올로기의 실체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의 서양화 이후, 마르크스의 존재감은 우리에게서 지워졌다. 즉 좌파라는 이데올로기의 실체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분단 조국이라는 현실이 우리가 갖고 있는 특수 현상이기는 하지만 국제 관계라는 커다란 지도를 펴놓고 볼 때,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거의 습관적 정신계에 집착하며 좌파·우파를 거론하는지도 모른다. 즉 마르크스의 실체보다는 사라진 마르크스의 그림자에 시달리며, 집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이데올로기의 부재감 속에서 문화가 대중의 정신계를 지배하며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실제적으로 우리보다 약 60년 전 문화 수출에 성공한 미국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실례가 잘 나타나 있다.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선언되자, 미국은 1950년대말과 60년대초, 문화 수출을 통해서 타국에 자신들의 정신계를 심는 전략을 쓰게 된다. 그들은 문화의 본질이 정신계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자유’라는 미국의 대표정신계를 정립시켰다. 그리고 이 정신계를 동부 유럽과 제3세계의 대중들에게 심기 위한 통로로 할리우드와 로큰롤 같은 대중문화를 창출해냈다. 이 과정에서 미정부는 대중문화를 통해 ‘자유사상’을 전파함으로써 공산화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유럽에 맞바람을 일으켰고, 자유사상을 20세기의 새로운 문화정신으로 수출하였다. 또한 뉴욕에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유럽의 예술가들을 뉴욕으로 이주 정착하게 만들었다. 세계예술의 중심지가 파리로부터 뉴욕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순수예술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에는 자본의 힘이라는 결론으로 치닫게 하였다. 즉 ‘자유’와 ‘자본주의’라는 미국의 정신계를 세계에 심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문화 수출 전략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유에는 그들만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즉 첫째, 유서 깊은 유럽문화와 비교할 때 그들이 갖고있는 문화적 자격지심을 극복한다. 둘째, 미국민의 정신적, 문화적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정치적 위상을 부각시킨다. 셋째, 미국 문화의 세계화에 따른 시장을 확장한다. 넷째, 자유사상을 유럽의 대중에게 이식함으로써 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20세기 문화수출 전략의 중심에는 1960년대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이 제3세계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도전하기 시작한 ‘후기식민지 문화 연구’가 있다. 이들은 자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와 그 구성원들의 ‘정신계’를 파악하면서 그에 따른 문화적 전략을 모색해왔다. 이와 같이 문화 수출 전략이란 정신계의 장악을 노리는 헤게모니 전쟁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21세기,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계를 바탕으로 탄탄한 문화전략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문화는 내용과 형식이 함께하는 진정한 문화 수출 사례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강력한 문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현주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상임이사
  • [서울광장] 손학규와 김근태, 그리고 대중성/한종태 논설위원

    [서울광장] 손학규와 김근태, 그리고 대중성/한종태 논설위원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 두 사람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1947년생으로 동갑이다.. 경기도가 고향인 것도 같고 출신학교 역시 경기고와 서울대 동기동창이다. 학과만 정치학과(손학규), 경제학과(김근태)로 다를 뿐이다. 서울대생 시절에는 유명한 운동권으로 ‘학생운동 3인방’으로 통했다. 이후 손 지사는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김 의원은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두 사람이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한 것도 공교롭다. 또 시기는 다르지만 둘 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재임시절 ‘힘 센’ 복지부장관이란 평가를 들은 것도 비슷하다. 진지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성격도 같다. 그래선지 서로 상대방을 스스럼 없는 친구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차이점도 있다. 김 의원은 30년가량 재야인사로서 한길 인생을 살아온 ‘일관성’이 돋보인다. 까닭에 그를 빼놓고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언급하기는 어렵다. 그에게는 ‘김근태와 친구들’로 통칭되는 마니아 집단이 있다. 물론 그런 탓에 폭이 좁다는 얘기도 듣는다. 반면 손 지사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좌우 경험이 모두 있어서다. 이념적으로 자유분방한 당내 소장파들이 그의 우군이다. 통합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도 듣는다. 그러나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차기 대권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지지도가 영 말이 아니다. 대중성에서 취약한 탓이다. 당분간 이런 트렌드는 바뀔 것 같지 않다. 대권 후보군으로서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꽤 괜찮은 상품성에도 왜 그럴까.‘저평가 우량주’를 몰라보는 대중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자신들의 문제점은 없을까. 몇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매사에 진지하고 사색적이어서 표현이 ‘서술형’일 때가 많다. 두 사람은 연설할 때나 대화할 때나 ‘기승전결’ 방식이 항상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자연히 복문과 중문이 많고 구어체보다는 문어체를 즐겨 사용한다. 말이 어렵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물론 그들의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60,70년대 학생운동권은 소수정예의 지하 이념서클 중심이었던 탓에 논리 무장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은 단답형과 두괄식을 좋아한다. 에둘러서 표현하는 것에는 지겨워한다. 직설적 화법을 더 선호한다. 우리 정치사에서 표현의 ‘단순화’에 능한 정치인은 아마도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아닐까 싶다. 눌변이기는 하지만 표현을 단순화하는 YS 방식을 두 사람이 벤치마킹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자신만의 논리가 너무 강하다 보니 ‘사고의 경직성’이 눈에 띄기도 한다. 고집이 세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게다. 이럴 때면 참모들의 건의는 한낱 흘러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기 PR에도 둔한 편이다. 콘텐츠가 앞서니까 문제없다는 식이다. 상대적으로 미디어에 덜 친화적인 것도 지적할 수 있다. 같은 당의 다른 경쟁후보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전반적으로 이벤트에 약한 것도 두 사람의 단점으로 꼽힌다. 감성적인 이벤트를 잘할수록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로고스보다는 파토스가 흡인력에선 앞선다. 콘텐츠라고 하는 정책과 노선, 그리고 비전에서 나무랄 데 없는 두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지지도와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김 의원과 손 지사가 이제부터는 소프트웨어에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포르투갈 32년만에 우파 집권

    |파리 함혜리특파원|경제 침체속의 포르투갈 국민들은 중도 우파의 시장경제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지난 1974년 군부 독재정권 붕괴 이후 32년 만에 첫 ‘비좌파 진영’ 대통령의 등장이다.23일 당선이 확정된 아니발 카바코 실바(66)는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 출신. 지난 85년부터 10년 동안 총리직을 연임하면서 연평균 5%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그의 호소가 5년 동안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포르투갈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개혁주의자의 당선으로 경제개혁의 모멘텀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급속한 개혁에 반대하는 좌파 진영과 노동계의 반발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과제다. 당선 연설에서 그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좌파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지난해 2월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당의 주제 소크라테스 총리 정부가 이끌고 있다. 소크라테스 총리도 정치 안정을 위해 신임 대통령과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화답했다. 포르투갈은 대통령 중심제를 가미한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어 대통령은 행정집행권은 없지만 의회 해산과 법률안 거부권 등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카바코 실바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3월9일 취임한다. 한편 이날 개표 결과 카바코 실바 후보는 50.6%의 득표율을 기록해 20.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친 좌파 후보 마누엘 알레그레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투표율은 62.6%였다.lotus@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고뇌하는 중국/왕후이·친후이 등 지음

    90년대 이후 중국을 바라보는 창은 경제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개혁과 개방정책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중국은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자 기회의 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도성장이란 외형 이면에 중국은 적지 않은 본질적·현실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들은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고뇌하는 중국’(왕후이·친후이 등 지음, 장영석·안치영 옮김, 길 펴냄)은 9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되어 현대 중국 지식인계를 이끌고 있는 좌, 우파 지식인들이 중국 현실문제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칭화대, 상하이대, 베이징대, 하버드대 등의 교수로 있는 학자 16명이 필진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 시기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중국사회의 허리를 맡고 있는 40∼50대의 이른바 ‘라오산제’(老三屈) 세대다. 거의 예외 없이 중국인들의 입장에 서서 정부를 비판하는 자유주의파 및 신좌파 지식인들이다. 현재 중국의 자유주의파 지식인들중 절대 다수는 중국공산당의 독재를 반대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현정권과 양립할 수 없다. 반면 이들은 시장의 확대를 무척 환영하는데, 이는 현 정권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비판과 항의는 시장의 사회 침투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부패와 시장의 왜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신좌파 사상가들은 ‘시장’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담론을 토대로 중국 현실문제에 대한 발언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고도성장 뒤에 가려진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문제, 공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 상업문화의 범람 등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가운데 중국이 처한 위기의 실상을 포착해 낸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처럼 보이지만,IMF와 같은 사태가 중국에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이같은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노동자·농촌문제 등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있다. 또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교육산업화’ 정책에서 중국의 보통교육과 고등교육 시스템 안에서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 문제, 그리고 여성과 청년 문제에 대해 심각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와 함께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드러난 사회와 문화의 모순을 분석하고, 향후 중국의 정치 전망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현대 중국문제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통해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된 ‘중국학총서’의 첫 권. 패권국가 중국을 전망한 ‘중국의 강대국화’, 중국 지식인들의 세계문제에 대한 시각을 담은 ‘천하체계’ 등도 잇달아 나올 예정이다.2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이경형칼럼] ‘탈당’징후 어떻게 봐야 하나

    [이경형칼럼] ‘탈당’징후 어떻게 봐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 관련 발언으로 야기된 탈당 문제는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언제 다시 활화산으로 변할지 모른다. 현 권력구조의 1987년 헌법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차기 대선 일정에 임박해서 탈당했다. 그것도 여당 대권 후보의 압박으로, 혹은 자식들의 비리로 정치적 궁지에 몰려 당을 떠났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역발상’의 정치로 숱한 역정을 헤쳐왔다고 한다. 그래서 탈당도 과거 대통령들과 같은 모양으로는 결행하지 않을 것 같다. 6공화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대선 3개월 전인 1992년 9월 민자당을 탈당했다. 당시 김영삼 후보는 SK 이동통신허가 반대, 중립내각 구성 요구 등으로 노 대통령을 세차게 밀어붙였다. 그런 YS도 대선 한달전인 1997년 11월 자신을 상징하는 ‘03마스코트’가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등의 수모를 당하면서 신한국당을 떠났다. 김대중 대통령도 각종 게이트와 아들의 비리 연루로 2002년 5월 대선 7개월을 남겨두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이처럼 당 대선 후보에게 백기를 드는 형국으로 당을 떠났지만, 노 대통령은 분명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탈당을 방어용이 아니라,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카드화하거나 정치 지형을 새롭게 변경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11일 당 지도부와 가진 만찬 석상에서 노 대통령은 탈당을 그저 ‘고부간 갈등 치유법’으로 에둘러 얘기하면서도 서명파고 뭐고 할 것 없이 일제히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를 연발토록 만들었다. 짐짓 탈당을 카드화하려는 속내를 보인 것이다. 그동안 거듭된 노 대통령의 탈당 관련 발언이 현실화되는 시기는 임기를 1년 반 이상 남겨둔 올 하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5월말 지방선거 후 개헌 논의가 산발적으로 시작되고, 어느 정도 가속력이 붙으면 새로운 권력구조의 ‘2007 헌법체제’수립을 촉진하는 지렛대로 탈당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의 탈당은 여·야당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정파들이 권력의 프리미엄이 없는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어떤 이는 지금 열린우리당의 지지도에 견줘볼 때,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불 보듯하므로 그 수습책의 하나로 탈당이 이뤄질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정치적 성정에 비춰 결코 수세적인 탈당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역으로 공격적인, 그것도 ‘큰 고기’를 잡는 카드로 탈당을 결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하는 ‘87체제’는 6·10항쟁의 산물로, 민주·반민주 대결 구도에서 반독재를 최고 지향가치로 삼고 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민주화는 거의 완성 단계이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양극화 등 정치·사회적 긴장구조는 주로 진보-보수, 또는 좌파­우파라는 문제 해결의 접근, 방법론의 대립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헌정 시스템이 정치·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더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를 올 하반기부터는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내년 12월 대선과 내후년 4월 총선은 현행 헌법 아래서 가장 근접한 4개월 차이로 실시된다. 국회의원 임기 단축을 최소화하면서 대통령 5년, 의원 4년 임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기회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년에 다가오는 것이다. 임기 불일치로 금년부터 내리 3년간 해마다 큰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니, 개헌을 한다면 내년이 적기다. khlee@seoul.co.kr
  • [도서관은 주민의 서재다] 소장품 4300만점… 외국인도 무료 열람

    뉴욕의 대표도서관인 ‘인문사회과학도서관’은 지식을 대물림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3층 목록실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등장하는 서가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검색(CATNYP·뉴욕공공도서관의 검색 시스템)하는 체계로 바뀌었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곳에는 쿠텐베르크의 성경, 조지 워싱턴의 연설문, 토머스 제퍼슨의 독립선언문 등이 소장돼 있다. 모두 4곳의 연구도서관에는 3000종류의 언어로 된 4300만점의 소장품이 있어 이를 연결하면 200㎞에 이를 정도다. 목록실에서 나오는 통로 바닥에는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에 나오는 ‘좋은 책은 영혼에 피와 살이 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공공도서관이 1960년대 매카시즘이 몰아칠 때도 좌·우파측이 모두 자료를 수집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고풍스러운 ‘로즈 열람실’ 서가에는 고고학·역사학·문학·철학·사회학·여성학 등 15개 분야의 책 350만권이 꽂혀 있다. 이곳에서는 전산망에 누구나 이름·주소만 입력하고 현장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면 곧 대출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뉴욕 시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도 열람실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는 희망 도서목록을 적어낸 뒤 대출창구에 자신의 번호가 뜨면 열람실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도 이곳에서 예약할 수 있다.뉴욕 김유영특파원 carilips@seoul.co.kr
  • 칠레 첫 女대통령 탄생… 중남미 ‘좌파전선’ 확대

    올해 유난히 많은 선거가 예정돼 있는 중남미 대륙에 ‘좌파집권 도미노’가 현실화되고 있다.지난달 최빈국 볼리비아에서 좌파 에보 모랄레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데 이어 남미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자랑하는 칠레에서도 중도좌파 연합이 집권에 성공했다. 1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개표 결과, 여당인 중도좌파 연합의 미첼 바첼렛(54) 후보가 53.5%를 득표, 중도우파 연합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후보를 따돌리고 4기 집권의 꿈을 이뤘다. 대선을 각각 3개월과 6개월 앞둔 페루와 멕시코에서도 좌파의 우세가 예상돼 대륙의 좌향좌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8월만 해도 5% 지지율에 머물렀던 페루의 좌파 대선후보 오얀타 우말라는 이웃 국가들의 좌파 집권 바람에 편승, 지지율이 28%까지 상승해 우파연합 후보를 3%포인트차로 앞지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좌·우파가 총과 대포로 대결하던 1960년대와 달리, 투표용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1990년대 이후 공고화된 중남미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치·사회적 기회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은 덕분이다. 멕시코 남부 정글에서 무장투쟁을 벌여온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도 최근 평화적인 정치참여를 선언했다. 그러나 중남미 좌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시장주의적 세계화에 적대적인 ‘차베스형’과 보다 실용주의적인 ‘룰라형’으로 남미의 좌파를 나눈다.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자가 ‘차베스형’에 속한다면 바첼렛이 이끌 칠레 좌파는 국영 부문 축소와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한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룰라형’ 중에서도 가장 시장친화적으로 평가된다.좌파의 연쇄집권이 이른바 안정적인 ‘대륙차원의 연대’로 이어질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들의 집권은 뚜렷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결과라기보다 1990년대 우파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또 하나의 변수는 국제유가의 움직임이다. 중남미 좌파의 끈끈한 공조는 베네수엘라의 막강한 ‘오일 파워’ 덕이라 풀이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아르헨티나가 불황에서 빠져나온 것도, 쿠바가 15년 지속된 경제봉쇄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도 베네수엘라의 원유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들 좌파 정권이 원유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원자재 수출을 집권의 물적 기반으로 삼은 20세기 중반 포퓰리즘(대중 영합) 정권과 비슷한 모습이다.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국제유가가 급락한다면 좌파연대의 존립 기반도 덩달아 허물어질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세계정치 ‘女風시대’

    ‘싱글 마더’가 대통령이 됐다. 더욱이 남미에서도 가톨릭 전통이 가장 강하고 지난해에야 이혼이 합법화될 정도로 보수적인 칠레에서다. 미첼 바첼렛(54) 대통령 당선자의 개인 이력은 선거 내내 도마에 올랐다. 그녀는 두 남성과의 사이에서 난 세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으며 한 남성과는 사실혼 관계, 이혼한 전 남편은 게릴라 조직원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상대 후보인 억만장자 사업가는 네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부인과 함께 선거 캠페인을 펼쳤다. 그러나 바첼렛은 칠레에서 불법인 이들 두 이슈에 말려들지 않고 현실 문제로 승부했다.실업난 해소를 들고 나와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외친 우파 후보보다 더 유권자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바첼렛 당선자는 좌파 투사 출신이다.1970년 칠레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뒤 사회당에 입당해 ‘청년 사회주의자’ 비밀 조직원으로 활동했고,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투옥되기도 했다. 공군 장성이었던 부친은 당시 고문으로 숨졌고 바첼렛은 어머니와 함께 호주, 독일로 망명을 다녔다. 소아과 전문의가 돼서 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정치의 꿈을 접지 않고 다시 칠레와 미국에서 군사학을 공부했다.2000년 보건장관과 2002년 ‘금남’의 영역이던 국방장관직을 성공리에 수행한 발판이 됐다. 여성 대통령은 남미에선 다섯번째이지만 직선으론 세번째다. 특히 정치인 남편의 후광 없이 당선된 경우는 처음이다. 여성 정치인 돌풍은 새해에도 이어질 모양이다.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타르야 할로넨(62)도 재선이 확실시된다.15일(현지시간) 치러진 투표에서 과반에 못 미치는 46%를 얻어 29일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됐지만 24%를 득표한 2위 사울리 니니스토(24%) 후보를 여유있게 앞서고 있다. 지난해 3선에 성공한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 이어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도 16일 취임식을 갖고 집무를 시작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녹색공간] 짜장면이든 자장면이든…/우석훈 녹색정치연대 정책실장

    표준어로는 ‘자장면’이라고 표현하게 되어 있는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르지 않는 국민은 아마 우리나라에는 TV 아나운서와 그 언저리의 몇 사람 외에는 없을 것 같다. 표준어를 결정하는 선정위원회에서 한표 차이로 자장면이 되었다는 얘기나, 경음 발음을 하지 못하는 지역의 위원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까지 그야말로 ‘짜장면’이라고 속 시원하게 이 이름을 부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국수류의 음식과 비슷한 음식을 고르라면 짬뽕이 있겠지만 진짜로 자매식품은 쫄면이다. 태어난 고향이 인천인 이 두 음식은 소위 ‘짠돌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인천식 발음대로 짜장면과 쫄면이 맞지 않을까. 경제학에서는 짜장면은 면과 아마포에 해당하는 단어이다.18세기에서 19세기에 나온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사람들에게 상품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면과 아마포를 사례로 가격과 교환을 설명하는데, 아마 우리나라에서 동일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짜장면이나 짬뽕 그리고 쫄면이나 설렁탕 정도가 여기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광복 직후 짜장면(당시에는 어쨌든 짜장면이라고 불렀다)과 설렁탕의 가격이 같았는데, 지금은 2배 차이가 나게 되었다. 똑같이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라서 강력한 가격 정책과 보조정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차이가 나게 된 과정을 화교들에 대한 재산소유 제한과 같은 인종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민중들의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한 박정희 개발정책 시대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바게트와 크라상의 관계를 설명한다. 원가는 바게트가 몇 배 높지만 대개는 비슷한 가격에서 판매된다. 바게트는 우리나라의 쌀과 비슷한 것이라서 정부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100집 걸러 하나씩 중국집이 있다.’는 표현을 보면 우리나라의 서민경제와 문화풍습 같은 것들을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부자이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먹는 기본적인 음식 정도는 안전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유통기한이 명기되지 않은 수입 밀가루의 중간관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튀김용 돼지기름의 선도도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도 얼마나 많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밀가루 반죽할 때 조미료 한 움큼씩 넣는 일이 허다하다. 국제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심각했으면 ‘중국음식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최근 일본에서는 화학조미료 소비량과 아토피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거의 인과관계에 있다는 주장도 있고, 무엇보다 산모와 태아 사이에 화학물질이 전이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막을 통과한다는 의료계 일부의 지적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온 국민의 기호식이 온전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선호하고 자주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가격과 상관없이 기본적인 관리정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우리나라의 식품행정은 적발과 사후관리 위주여서 식중독을 막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속 시원히 부르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이렇게 서민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 안전하지 않다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정부에 안전한 자장면을 위해 화학조미료 적정사용량 같은 걸 권장하고, 우리밀가루를 사용하고도 지금처럼 저렴한 자장면을 먹을 수 있도록 국가정책을 조율하는 ‘짜장면 담당관’ 한 명 정도는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면류’의 하나가 아니라 ‘짜장면’이라도 안전하게 해주는 것이 서민정책의 출발이고, 행복한 국가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장면 하나 안전하게 먹게 해주는데 좌파정부와 우파정부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지금 같아서는 다음 대선에는 ‘안전하고 값싼 짜장면!’을 구호로 들고 나오는 후보에게 한 표를 기꺼이 주고 싶다. 우석훈 녹색정치연대 정책실장
  • 네덜란드 ‘마약 자유화’ 그늘

    네덜란드가 전세계 마리화나 관광객들이 붐벼 골치를 앓고 있으나 대책을 놓고 ‘정반대의’ 처방이 나오는 등 논란이 분분하다고 영국의 BBC 인터넷판이 10일 보도했다. 마리화나와 메스칼린 등 이른바 중독성이 없는 ‘소프트 드럭’의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네덜란드에는 해마다 수백만명의 유럽인 마약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독일·벨기에와 인접한 도시 마스트리히트가 마약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문제는 마약공급선인 국제 조직폭력배들도 이들과 함께 국경을 넘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의회의 우파 정치인들은 ‘마약 자유화’의 전성시대가 끝났다면서 커피숍의 마약 면허를 회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기독교민주당의 시스카 욜더스마 의원은 “커피숍 대부분을 없애고 ‘네덜란드 마약 사용자’ 신분증을 따로 발급해 외국인의 커피숍 출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스트리히트 시민들은 조폭들이 판치는 음성적인 마약 시장을 뿌리 뽑으려면 마리화나 판매를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본다. 현재 커피숍들은 고객 1인당 5g의 마리화나만 팔 수 있다.커피숍 주인 얍 루웨리에는 “주말이면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관광객들로 북새통이지만 가게에는 500g만 비치할 수 있어 늘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뒷문으로 더 팔다 적발되기도 했다.3번 걸리면 면허가 취소된다.커피숍 주변에선 뒷거래가 끊이지 않아 지하실과 다락에서 인공조명을 비춰가며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실정이다.네덜란드 영세농도 불법 재배에 손대다 보니 독성이 강한 마리화나가 무분별하게 팔리기도 한다. 헤르트 레르스 마스트리히트 시장은 “커피숍에 마리화나 재배권을 줘서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이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국민의 마약중독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낮은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도약 2006-우리는 이렇게 뛴다](3)LG전자 박문화 사장

    [도약 2006-우리는 이렇게 뛴다](3)LG전자 박문화 사장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소비자 감성을 강조하는 트렌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LG전자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게 ‘세계 최초의 기능’으로 기술을 선도하며,‘감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에도 무게를 둔 첨단 휴대전화를 내놓아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거듭날 것입니다.” 지난해 고유가와 환율 파고에 휩쓸리며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던 박문화 LG전자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사업본부 사장. 병술년 새해엔 제2, 제3의 ‘초콜릿폰’을 잇따라 출시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LG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또 유럽과 중국 등에서 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개선도 올해 이뤄야 할 중요한 목표다. 박 사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달 미국을 시작으로 2월엔 스페인,3월·6월 독일,10월 인도·우크라이나,12월엔 홍콩을 돌며 LG의 세계시장 공략을 진두지휘한다. ●휴대전화 7000만대 판매 돌파 LG전자 MC사업본부의 지난해 ‘성적표’는 휴대전화 공급량 5500만대로 세계 4위, 세계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휴대전화 시장 1위로 전망된다. 올해는 7000만대 이상의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등 해마다 30%씩 성장,2007년에는 ‘글로벌 휴대전화 톱3’에 진입할 계획이다. 박 사장은 올해 3G(3세대) 휴대전화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대, 유럽시장의 점유율 확대, 핵심역량 강화를 주요 전략과제로 설정했다. 제품 전략면에서도 다품종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폰’을 개발해 대량 공급할 계획이다. 지난해 연말 발표한 ‘블랙라벨’급의 ‘초콜릿폰’이 그 첫번째 작품.LG전자는 이를 기본 플랫폼으로 삼아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전방위 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다. 특히 프랑스 파리와 미국 샌디에이고, 중국 베이징, 인도 방갈로,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타우파테 등 해외 6개 전략거점 지역에 휴대전화 연구개발(R&D)센터를 운영, 현지밀착형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박 사장은 또 “인도와 우크라이나 등 고성장이 예상되는 신흥시장에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10월 인도에서 열리는 ‘모바일 엑스포 인디아’와 우크라이나 ‘인포콤’ 전시회에 참가해 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 박 사장은 “올해는 LG전자가 휴대전화의 디지털 융복합기술을 선도하고, 고성장이 예상되는 신흥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는 이기는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은 “올해는 환경 변화를 극복하고, 시장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가는 ‘이기는 LG전자’를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하자.”면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영원한 1등은 없다.’는 말을 항상 되새기며 경쟁자들보다 몇배 이상 앞서 나갈 때, 절대 자만하지 않고 겸손할 때,2010년 전자·정보통신분야 ‘글로벌 톱3’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단한 혁신과 도전을 주문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발언대] 지혜롭고 생산적인 통일교육을/ 이경희 서울 영림초교 교장·통일부 통일교육중앙운영위원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찬반에 따라 ‘통일교육’에 대한 평가는 다르게 표출되고 있다. 좌파 성향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지나친 우파 성향에 대한 반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향이 진보와 보수라는 또 다른 평가 잣대와 어우러져 통일교육을 폄하하기도 하고, 필요성을 강변하기도 한다. 동일한 주제에 대하여 통일교육만치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사안은 드물 것이다. 그만치 논란의 핵심이 될 수 있으면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밖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통일교육이다. 우리 민족의 가까운 미래에 있어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 ‘통일’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아니지만, 미래의 충격에 대비하는 지혜로움이 바로 통일교육인 것이다. 통일교육은 좌·우파 성향의 문제가 아니며, 눈앞의 손익을 따지는 퍼주기 논란의 대상도 될 수 없는 지혜롭고 생산적인 활동이다. 오늘날의 통일교육이 지혜롭고 생산적인 통일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분리 지향적이 아닌 합일 지향적인 생산적인 자세와 행동이 요구된다. 나와 너를, 좌파와 우파를, 진보와 보수를, 영남과 호남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분리하기보다는 합일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바로 지혜롭고 생산적 통일교육이 추구하는 목표이자 과제인 것이다.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통일교육 사례를 살펴볼 때, 통일교육이 다른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교육과 어우러져 혼합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 자체가 갖고 있는 딱딱함과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기 어려운 특성으로 인해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 형태, 또는 봉사활동과 연계하여 통일교육을 실시하는 등, 다른 교육적 차원에서의 성과를 동시에 거두기 위한 활발한 활동이 많은 통일교육 관계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통일교육도 열린 교육을 지향해야 하며,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이버 학습에 의한 e-러닝을 활성화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 등 다양한 교육방식의 혼합형태인 블렌디드-러닝에 의한 통일교육도 새롭게 시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경희 서울 영림초교 교장·통일부 통일교육중앙운영위원
  • [이경형칼럼] 도라산역·임진각에서

    [이경형칼럼] 도라산역·임진각에서

    북한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가. 임진각 평화의 종각에서 울리는 새해 첫 종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같이 자문해 본다.‘2006 경기도 평화와 희망의 축제’가 열린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의 화려한 무대는 레이저 빔이 밤하늘을 가르고, 가수들의 빠른 리듬을 따라 불꽃들이 분수처럼 피어오른다. 파주 등 분단의 경계 지역에서 사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평화의 소망을 기원한다. 남한은 과연 북한에 어떤 존재인가. 임진각역 출발, 평양행 임시 열차는 새해를 2시간여 앞둔 밤 9시24분 실향민 등 300여명을 싣고 달렸다. 분명 이정표에는 평양행으로 씌어 있지만 열차는 7분쯤 달리다 말고 도라산역에 섰다. 분단 55년 만인 지난해 경의선은 이어졌지만 아직은 이 철도의 최북단역인 민통선내 도라산역 플랫폼에 서서 새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질문을 던져본다. 북한은 우리에게 분명 귀찮고 성가신 존재다. 핵 카드로 미국과 도박에 가까운 외교 게임을 벌이는 북한은 하루빨리 선진국으로 가야 하는 우리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고 내팽개칠 수도 없다. 저들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무슨 난리를 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래고 설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북 포용정책이고 남북평화공존정책이다. 북한은 또 우리 사회 이념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진보-보수, 좌파-우파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가 북한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나 북한 ‘퍼주기’ 논란 등에서 보듯, 북한의 존재는 남남 대결을 야기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북한의 처지에서 남한을 보면, 겨우 쌀 됫박이나 도와주면서 온갖 잔소리, 이웃의 입노릇까지 다하는 ‘남보다 못한 형’쯤으로 볼까. 아니면 줏대도 없이 미국 자본주의에 빌붙어 돈푼깨나 벌었다고 나대는 졸부로 볼까. 아무튼 미국을 제치고 ‘우리끼리’ 잘 해보자는 데 필요한 남쪽의 동반자, 아니 ‘돈 있는 협력자’로 여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흔히들 북한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북한 주민과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일 권력체제를 함께 지칭한다. 그래서 북한은 우리가 마음대로 멸하거나 무너뜨릴 대상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한민족공동체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분단된 남북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민족사적 과제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더욱이 21세기 들어 세계화의 급물살이 지구촌을 휩쓰는 가운데 민족의 의미는 크게 퇴색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북한도 외국의 하나로 보고, 문제를 풀자는 주장이 적지 않다. 실제로 남북한간에, 또는 한반도 주변 4강과 얽힌 현안들 가운데 민족공동체라는 ‘족보’를 가지고 풀 수 있는 일들은 열 손가락 꼽기도 힘들 것이다. 올해는 남북한 당사자간 대화의 활성화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북·미간 위폐 문제로 북핵 6자 회담의 진전은 불투명하다. 워싱턴에서는 ‘9·19 베이징 공동성명’을 이뤄낸 대북 협상파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며, 북한도 체제 보장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깊은 불신을 보이며 대결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북한에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그들의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된다. 신뢰만 형성되면, 우리가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인권 문제, 북·미간 상호 불신 제거에 관한 충고를 하더라도 경청할 것이다. 거의 매일 출근 길에 임진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우리 모두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북한에 다가갔으면 한다. 본사고문 khlee@seoul.co.kr
  • 딸 낳을때마다 부모 좌경화?

    딸 낳을때마다 부모 좌경화?

    딸을 낳을수록 부모들은 좌파성향의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딸이 많을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영국 대학의 연구자들이 밝혔다. 지난 31일 캐나다 일간 내셔널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투표기록을 포함한 인구조사 형태의 자료를 분석, 이같은 경향을 찾아냈으며 아들만 가진 부모들은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워윅대 경제학과 아널드 오스왈드 교수는 “서구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행동과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이번 연구결과는 그러한 사고 습관을 뒤집었다.”며 “아이들이 부모의 견해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런던대 경제학과 닉 포더비 교수와 함께 수행한 이번 연구는 “평균적으로 딸 아이 한명이 부모들이 좌파에 투표할 가능성을 2%포인트씩 증가시킨다.”는 흥미로운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영국정부가 지난 91년부터 매년 수행하는 1만명의 대표적인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정기조사를 분석했다. 이 조사는 같은 표본집단에 대해 매년 반복적으로 실시된다. 두 교수는 14년 전 보수당에 투표한 3110명, 노동당 지지자 2707명, 자유민주당 698명, 녹색당 등 100명의 투표성향을 자녀 성별을 기준으로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1300명이 그동안 자신들의 지지정당을 바꿨는데 딸 자녀가 증가할수록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보수당은 우파로,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좌파로 분류했다. 토론토 연합뉴스
  • 되돌아본 정치권 2005 말… 말… 말…

    되돌아본 정치권 2005 말… 말… 말…

    임종 직전에라도 마이크만 들이대면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한다는 정치인의 속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권은 2005년 한해에도 풍성한 말잔치를 벌였다. 한마디 ‘말씀’은 정국 흐름을 확 바꾸기도 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실소를 사기도, 거침없는 독설로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혀’를 잘못 놀렸다가 도리어 화를 입는 ‘설화(舌禍)’도 허다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의 달인’답게 ‘후끈한’ 발언으로 뉴스를 주도했다.“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며 시작한 ‘연정(聯政·연립정부)’ 관련 발언이 그랬다. 그 강도는 갈수록 거세져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도 있다.(7월 6일)”“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2선 후퇴나 임기단축을 시작할 수 있다.(8월30일)”며 점차 진화해 나갔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스토커”라고 반박했고, 당사자로 거론된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대표가 펄쩍 뛰며 제안을 거부했다. 여당에서도 문학진 의원 등이 “대통령이 신(神)이냐.”“예스맨은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대한민국 걱정 두 가지는 태풍과 대통령” 대통령의 직선 화법도 여전했다.9월초 외국 순방 길에서는 “대한민국에 두 가지 걱정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태풍이고 하나는 대통령”이라면서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라고 ‘자해’했다. 유전의혹 등 측근 비리가 불거졌을 때는 “밥을 먹어도 힘이 안 난다.”고 고백했다. 부인 명의로 된 대부도 땅 문제로 집중 포화를 맞은 이해찬 국무총리는 5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손학규 경기지사는 정치적으로 나보다 한참 하수”라고 말해 구설에 휘말렸다.10월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과 2004년에 이어 ‘2라운드’로 맞붙어 “쓰나미 피해 지원을 했던 다른 나라 국회의원이 (방청석에)와서 보고 계신데 (그런)질문에 답변드리는 게 창피스럽다.”고 냉소했다. 다음날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에겐 “의원들이 품위있고 사리에 맞게 질문해야지, 답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김영삼 정부의 불법도청팀 ‘미림팀´과 ‘X파일´ 논란도 정국 흐름을 좌우했다. 국민의 정부 때도 일부 불법 도·감청이 있었다는 국정원의 ‘양심고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병원신세를 졌고,‘병상정치’라는 말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는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고, 별일이 다 있다.”고 토로했다.‘삼성 킬러’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불법으로 도굴돼도 문화재는 문화재”라며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은 두 차례 재보선에서 완패해 무력감을 드러냈다. 당에서는 ‘27대 빵’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5월말 당 워크숍에서 “대중에게 비쳐진 여당 이미지는 ‘무능 태만 혼란’”이라고 일침을 놨다. 여당 의원들도 이에 공감했지만,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해 20%대로 곤두박칠쳤다.“태풍이 올 때는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다. 까불다가는 쓰나미에 다 휩쓸려간다.”고 몸을 사렸던 문희상 의장은 10월 재보선이 끝난 직후 ‘유구무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폭탄주 안 마셨지만 맥주잔 속 양주 마셨다” 한나라당은 연거푸 터져나온 술자리, 욕설 추태로 곤혹을 치렀다. 곽성문 의원은 골프장에서 맥주병을 던졌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감 기간에 피감기관과 술을 마신 데다 술집 여사장에게 성희롱이 담긴 욕설을 퍼부었다고 논란이 일었던 주성영 의원은 “폭탄주는 마시지 않았지만 맥주잔 속에 든 양주잔을 빼내 마신 사실은 있다.”고 해명하는 촌극을 빚었다. 박계동 의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송파구지역협의회 출범식에서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게 축사기회를 안 준다며 맥주를 끼얹어 국회 윤리위에 제소당했다. 최근에는 임인배 의원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의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여직원에게 “싸가지 없는 X” 등 욕설을 퍼부었다. 열린우리당은 “역시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돈 많은 정당”이라고 비아냥거렸고, 한나라당에서는 “미꾸라지 몇 마리가 연못 물 다 흐린다.”고 탄식했다. 비뚤어진 음주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만든 ‘폭소클럽(폭탄주 소탕 클럽)’은 이후 회원들이 한두 잔씩 폭탄주를 다시 먹는 바람에 회원이 자연 감소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도 취임 직후 “신고식 하느라 폭탄주를 다섯 잔이나 먹어 박진 회장에게 죄송하다.”고 고해성사했다. 와중에 ‘조용히 폭탄주 마시는 모임’인 ‘조폭클럽’도 생겨났다. 국회 행자위원회 의원들이 국감을 끝내고 저녁을 먹다가 발족했다. 엉터리 자료로 망신을 산 의원도 있다.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은 충청북도 국감에 앞서 ‘이원종 충북지사가 안기부 도청 X파일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질의자료를 배포했다가 부랴부랴 자료를 회수했다. 이 지사를 김영삼 대통령 때의 이원종 정무수석과 혼동한 해프닝을 벌인 홍 의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제발 잊어달라.”고 읍소했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10월초 ‘이해찬 국무총리가 1가구 2주택자’라고 밝혔지만, 이 총리는 이미 한 채 팔아버린 뒤였다. 총리는 발끈했고, 이 의원은 “집계상 실수였다.”고 사과해야 했다. 단식도 유독 많았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원내대표실에서 단식에 들어가 13일을 굶었다. 뒤늦게 심재철 의원이 5일 동안 단식했고, 안상수 의원은 “의원이 돌아가며 1일씩 단식하자.”며 숟가락을 얹었다. 쌀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를 앞두고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무려 29일 동안 44㎏이나 살이 빠지면서도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농촌을 살리자.”며 눈물을 보였다. 행정중심도시법에 대한 위헌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해지자, 해당 지역구인 무소속 정진석 의원은 “합헌 결정이 나기 전에는 햇볕을 볼 수 없다.”며 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앉아 열흘간 곡기를 끊었다. 여당의 선병렬·양승조 의원도 9일 동안 회관 1층 로비에서 ‘노숙’하며 단식했다.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세운 전여옥 의원은 “차기 대통령은 대졸자여야 한다.”고 말했다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열린우리당의 전병헌 대변인은 취재진에 e메일을 보내 “(헷갈릴 수 있으니)‘전 대변인’ 약칭 대신 양쪽 대변인 이름을 모두 표기해달라.”고 잽싸게 요청했다. 차기 대권후보군의 말도 화제를 모았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을 접한 뒤 미니홈피에 추모글을 올려 “호스피스의 홍보대사였던 그가 막상 자신의 스트레스와 좌절감, 외로움을 들어줄 친구를 찾지 못했나보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모친을 여읜 직후 어버이날을 맞아 미니홈피에 애절한 사모곡을 올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공주’라는 별칭을 붙인 것을 가리켜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 본 적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동안 박 대표를 ‘수첩공주’라고 말해온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봤다. 일본에는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가 있다.”고 응수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솔직히 노무현과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느냐 하면 노무현”이라고 말했다가 발끈한 ‘창(昌)’에게 공개 사과했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경포대’라는 신조어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가, 강원도의 거센 반발과 함께 열린우리당으로부터 “경기도가 포기한 대통령 후보”라는 핀잔을 들었다. ●“국회의장 모가지 뽑아놓든지…” 발언 면박당해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부 언론인과 학자가 친미파”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아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국회의장 모가지를 잡아 뽑아놓든지….”라고 했다가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달라.”고 면박당했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한마디 말로 단연 스타가 됐다. 쌀 협상 비준안을 처리할 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몸으로 막자,“제 자신이 닭보다 더 험한 발을 가진 농부의 아들”이라며 마이크도 없이 찬성토론을 벌여 비준안 처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당 ‘구원투수’ 정세균 의장은 최근 당·정·청 워크숍에서 “수구 우파가 다음에 집권한다면 역사의 후퇴이며 재앙”이라고 말했다가 한나라당의 역공을 맞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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