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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고이케 유리코/황성기 논설위원

    5년 전 지한파 미국 외교관으로 유명한 리처드 크리스텐슨이 주일 미 부대사로 있던 시절 그의 집에 초청 받아 간 적이 있다. 열명쯤 초대된 모임에 고이케 유리코 의원도 와 있었다. 흰색 투피스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단발 컷을 하고 있었는데 TV에서 보고 듣던 대로 출중한 미모에 유창한 영어가 인상적이었다.“잘나가고 앞으로도 잘나갈 정치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를 받고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다. 당시 보수당 의원이던 그는 그해 연말 자민당으로 당적을 바꾼다. 당을 옮겨서는 고이즈미 내각에서 승승장구했다. 이력이 정말 화려하다.10대에 카이로에서 대학을 다니며 아랍 세계를 접한 그는 20대에 결혼과 이혼을 동시에 경험한다.30대에 TV 캐스터로서 아라파트 PLO의장,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와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명성을 높이더니 40대에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50대에는 장관직을 3개나 거머쥔다. 이혼한 뒤로는 독신이다.2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결혼 계획을 묻자 “갖은 도전을 하는 게 즐겁다.”고 독신 유지를 밝힌 바 있다. 잘나가는 미모의 독신녀답게 고이즈미 총리와의 결혼설, 자살미수설의 구설에 올랐다. 다채로운 경력, 화려한 외모의 뒤안에는 보수우파의 ‘발톱’도 숨어 있다. 국회 내 ‘역사교과서를 생각하는 모임’과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의원연맹’의 회원이다. 납치, 북핵문제에서 대북 제재와 6자회담 무용론을 주장하는 강경파다.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던지 아베 내각에서는 5명 있는 총리 보좌관 중 수석격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고이케 보좌관은 스스로를 “아베 총리의 분신”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은 자타공인의 아베 최측근이다. 아베 총리가 그를 방위상으로 기용한 포석에서 여러 계산이 읽힌다. 미국 정·관계 인맥을 활용한 미·일동맹 강화, 대북 강경 노선의 유지도 있지만 ‘아베 구하기’의 큰 임무도 부여받은 듯 보인다. 고이즈미의 ‘자객 1호’로 중의원 선거에 출전해 대승을 안겨준 고이케 방위상이 오는 29일 참의원 선거에서 지지율 추락으로 참패설이 나도는 아베 총리를 수렁에서 구해낼지 주목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특별기고] 한국의 20년, 스페인의 30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특별기고] 한국의 20년, 스페인의 30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서울신문이 지난 4월부터 12회에 걸쳐 연재한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즈음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1987년 6월 항쟁을 독일에서 지켜봐야 했던 송 교수는 “일반적으로 지난 일을 수직적으로 고찰하는 글들이 많아 수평적인 비교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며 스페인 민주화 30년을 통해 한국 민주화 20년을 성찰했다. 특히 그는 “6월 항쟁 20주년은 서울 땅을 37년 만에 밟았던 2003년 당시 절박하게 느꼈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를 상기시킨다.”고 역설했다. ●다방(茶房)의 광고문과 오웰의 기록 20년전 6월 민주항쟁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어느 다방에서 “오늘 기쁜 날, 차 값은 무료입니다.”라고 내건 광고를 담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동물농장’,‘1984년’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을 떠올렸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시민전쟁(1936∼1939)에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 목에 관통상까지 입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에 의하여 압살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총을 들었던 ‘인민전선’의 초창기 승리를 추억하며 그가 남긴 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드디어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와 있다. 인간적 존재는 인간적 존재로서, 그래서 더 이상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남아 있지 않으려 했다.” 스페인도 독재의 어두운 길을 벗어나고 내전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마련한 1977년 6월을 지금 기념하고 있다. 올해로 스페인의 민주화가 30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서유럽에서 스페인뿐만 아니라 그리스, 포르투갈에서도 한국처럼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이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기위안도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확립이 얼마나 힘든 과제라는 것도 상기시킨다. 이러한 나라들과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성숙 과정과 조건들은 달랐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의미는 분명하다. ●정책에 기초한 중도통합의 정치 한국 사회의 지난 20년 민주화과정 자체를 아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 현실과 시대가 요구하는 감각을 잃고 ‘유신’의 향수에 완전히 젖어 지난 20년의 시간을 단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해온 역사로 폄하하는 세력도 있다. 이 세력은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시간을 순전히 ‘잃어버린 10년’으로만 평가하려 든다. 2005년 봄 의회의 결정으로 마드리드시내에 있는 7m 높이의 프랑코동상 철거와 함께 프랑코 시절의 흔적들이 공공장소나 공공건물로부터 지워졌으며 정치 무대에서도 프랑코 지지세력(팔랑헤)도 이미 사라진 사실과 비교해 보면 한국사회의 민주화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민주화의 과정이 가져오는 혼란과 충격을 완화하며 중심을 잡는 중정무편(重正無偏)의 개인이나 정치 집단의 역할에 달려있다.1977년 12월에 사망한 프랑코를 추종했던 일부 민병대 대원들이 일으킨 1981년 2월 쿠데타 시도를 단호하게 좌절시켰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역할은 컸다. 또 비록 의회의 과반수에 항상 미달하지만 국민당(PP) 중심의 중도우파와 사회노동당(PSOE) 중심의 중도좌파는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정치사회의 균형을 이루어 왔다. 스페인도 지역주의 또는 지방주의가 강하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록 남북한의 분단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는 심하다. 특히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이나 바스크 지역은 중앙 정부와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바스크 지역의 일부 분리주의자들은 테러를 수단으로까지 삼고 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위에 말한 정권 교체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좌우세력이 중도를 합리적으로 견인해내는 데 있다.2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2005년 3월의 마드리드 테러사건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반(反)테러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곧장 걷잡을 수 없는 정치사회의 불안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는 테러문제가 아니라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문제가 있다. 냉전시대의 색깔론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합리적 정책에 기초한 중도통합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숙제다. 또 과거와는 달리 북의 핵실험에 대해 남쪽 국민이 차분하게 대응했던 것을 예로 들면서 남쪽 사회도 이제는 분단 문제에서 파생된 갈등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다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도 현재의 남남갈등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결국 중도통합의 과제를 지나치게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화 자유무역협정과 사회 양극화로 집약해서 표현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민주화의 구조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를 오히려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계몽적인 주장이 많다. “민주화보다 경제가 중요하다”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여기에 속한다.“민주화가 밥을 먹여주는가.”라면서 개발독재의 향수에 젖어있으면서도 세계화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바로 경제발전을 추동(推動)하였던 스페인의 경우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인구는 남한보다 조금 적지만 지금 국내총생산은 더 큰 스페인은 민주화 과정 속에서 유럽연합의 평균 성장률보다 높은 착실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통합과 세계시장이라는 이중적 세계화의 과제 앞에 선 스페인은 기술개발, 높은 실업률과 이주민 문제를 안고 있다. 영미나 북구와는 달리 사회 성원의 안전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적인 복지체계를 구축해온 스페인도 세계화의 도전을 받고 있다. 또 농업과 관광, 서비스분야 중심의 스페인이 세계화에 대처하는 전략은 자동차·선박·전자산업 위주의 남한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제규모를 지닌 두 나라의 경제사회의 미래를 서로 비추어 볼 수 있다. ●자만과 자조를 넘어 프랑코독재의 잔영(殘影)이 드리웠던 1981년 봄, 국방색 전투복에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민병대가 순시를 했던 바르셀로나시의 중심가 람브라스를 필자는 2001년 봄 꼭 만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1992년 올림픽을 치렀던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는 너무나 부러웠다. 자유스러운 사회의 숨결이 도시의 곳곳에 스며들어 만들어 낸 발랄한 분위기와 화려한 색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필자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서울 땅을 밟았다. 당시 쓰라렸던 경험 속에서 필자가 절박하게 느꼈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를 6월 민주항쟁 20돌이 상기시킨다. “이미 민주화됐다.”라는 자만이나 “엽전이 별수 있나.”라는 자조를 넘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로서 스페인의 지난 30년을 떠올리게 된다.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 佛 총선 여당 과반의석 확보

    佛 총선 여당 과반의석 확보

    |파리 이종수특파원|‘여당, 압승 아닌 낙승’‘사회당, 예상 밖 선전’ 1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의 결과다. 내무부 최종 개표 결과 투표율은 60.78%로 낮았다. 중도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이 전체 하원 577석 가운데 314석을 얻으며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2002년 총선의 359석보다 45석 적은 것으로 선거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400석 안팎을 많이 밑돈다. ●중도 좌·우파 양강 구도 강화 반면 사회당은 185석을 확보해 약진했다. 좌파 진영 정당도 41석을 확보했다. 사회당은 “UMP가 공언한 푸른색(여당 상징색) 쓰나미(지진해일)는 없었다.”고 반겼다. 공산당은 15석을 거둬 원내교섭단체 구성(20석)에는 실패했다. 녹색당은 4석을 얻었다. 극단적 성향의 좌·우파는 부진했고 중도파도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 전통적 중도 좌·우파의 양당 체제가 공고해진 셈이다. ●알랭 쥐페 수석 장관 낙선… 장관직 사퇴할 듯 최대 이변은 수석장관인 알랭 쥐페 환경장관의 탈락. 쥐페는 선거구 남부 지롱드에서 49%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사회당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는 “18일 사퇴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쥐페는 재정 비리에 연루, 정계에서 은퇴했다가 지난해 보르도 시장에 당선된 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1기 내각에서 화려하게 복귀했었다. ●부가세 인상·우파 견제심리 작용 사회당은 정부의 부가세 5%인상 계획을 물고 늘어지면서 여권을 공격했다. 부가세 인상 반대 여론은 60%를 넘었다. 또 집권 중도 우파가 지나치게 강세로 나타나면서 유권자들의 ‘견제 심리’도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개혁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과반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vielee@seoul.co.kr
  •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이병천 등 엮음

    6·10항쟁 20주년이 지났다.‘민주화 20년’에 대한 재평가가 봇물을 이룬다. 항쟁에 적극 참여했던 이들부터 항쟁의 원인제공자들까지 모두 민주화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한다. 모두가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나, 발화되는 4음절 ‘민·주·주·의’에 담긴 함의와 기대치는 각양각색이다. 진보적 열망과 에너지의 대폭발이었던 6·10항쟁, 그 20주년 시점에 만개한 보수담론은 우리 민주주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는 ‘동상이몽’이다.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참여사회연구소 기획, 이병천 등 엮음, 한울 펴냄.)의 저자들이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필자들이 바라보는 오늘의 한국사회는 일종의 ‘혼돈상태’다.“진보의 낡은 것은 무너졌으나 새로운 것은 세워지지 않았다. 혼돈의 틈새를 비집고 신우파 담론이 똬리를 틀었다.”고 그들은 평가한다. 책은 진보진영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성찰적 반성인 동시에, 분출하는 보수담론에 대한 적극적 응전이다. ‘대한민국’은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인 참여사회연구소가 기획했다.2부로 구성됐고,22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30·끝) 각계인사 방담

    [프렌치 리포트] (30·끝) 각계인사 방담

    지난해 10월20일부터 이어진 장기 기획물 ‘프렌치 리포트’를 통해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을 짚어봤다. 프랑스에 대한 환상과 오해 혹은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프랑스를 올바로 알린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프랑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각계의 인사들을 초대해 방담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프랑스는 민주주의 역사가 길고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한국이 배워야 할 부분이 많지만 프랑스에 대해 무조건적인 환상을 갖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도산공원에서 진행된 이날 방담에는 로레알코리아의 클라우스 파스벤더 사장, 프랑스국제방송(RFI)의 토마 올리비에 기자, 패션컨설턴트 심우찬씨가 참석했다. 파스벤더 사장은 함부르크 출신의 독일인이다. 학업과 업무를 위해 12년간 프랑스에 거주했고,10년전부터 프랑스의 화장품 전문기업 로레알에서 일하고 있다.2004년 4월 로레알 코리아 사장에 취임했다. 올리비에 기자는 파리에서 태어나 자란 정통 파리지앵. 특파원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것은 1년 10개월 전이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심우찬씨는 20년전 파리에 건너가 패션스쿨 에스모드에서 2년간 수학하고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국내외 럭셔리 브랜드의 글로벌마케터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프랑스’하면 명품과 향수, 패션, 와인 등을 떠올린다. 프랑스에 대해서도 대체로 화려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올리비에 기자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 극히 일부분에 국한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오트쿠튀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급 패션산업이지만 이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실제로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이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상류층이나 성공한 연예인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프랑스 사회는 화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회문제들로 고민을 하고 있다. 거주지가 불분명한 사람들(SDF)도 많고, 실업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부분을 잘 알지 못하고 외국인들이 프랑스에 와서 많이들 놀라는데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 어느 나라든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심우찬씨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패션이 너무 평범한 것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패션의 나라’라는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풍경은 낭만적이지만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거리도 생각한 것보다 너무 지저분했다. 일반적으로 낭만적인 영화나 소설에서 프랑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환상을 가졌는데 실제와 너무 달랐다. 관용을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실제 프랑스인들은 매우 자기 중심적이었다.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도 컸던 것 같다. ▶그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여러가지로 힘든 점이 많다. -심씨 관광객들은 잠시 파리를 다녀가면서 파리의 아름다운 외관에 감탄한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을 보면서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실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불편함이 많다. 외국인에 대해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생활해 보면 엄연히 차별은 존재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우파 정권이 집권한 이후 외국인에 대해 더욱 배타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아쉽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인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은 나름대로의 선호도가 있다. 실제와는 얼마나 거리가 있나. -올리비에 기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알랭 들롱과 소피 마르소가 굉장히 인기가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알랭 들롱은 한국의 독자들도 얼마전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씨에게 수상하는 그의 변해버린 모습을 봤겠지만 한물간 늙은 배우이다. 소피 마르소는 ‘훌륭한 배우’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반면 프랑스인들은 지네딘 지단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생각하고 은퇴한 지금도 그를 매우 좋아한다. ▶프랑스가 가진 최대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파스벤더 사장 프랑스의 육아 지원제도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다.3세부터 유아원에 다니는데 이렇게 어려서부터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아주 훌륭한 효과를 가져다 준다. 여럿이 어울려 함께 놀면서 사회성을 키울 수 있고,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다양성에 익숙해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문화도 터득하게 된다. -올리비에 기자 의료보험제 등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자랑하고 싶다. 프랑스에서 있을 때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프랑스의 제도가 굉장히 좋은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수준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치료비가 없거나, 불법 체류자이거나 관계없이 치료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은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절대 아플 수 없다. -심우찬씨 다양성이 최고의 가치라고 본다. 전통을 중시하고, 기본을 존중하면서도 관점과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는 다양성이 있기에 인류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예술과 문화의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마다 국민성이 다르다. 프랑스인들의 대표적인 기질을 꼽는다면. -올리비에 기자 저항정신을 꼽고 싶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강제성을 띤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기질이 있다. 쉬운 예로 길거리에 차가 없으면 빨간 불에도 다들 길을 건넌다. 질서를 해치거나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법이나 사회적 관습을 어기는 것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위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심씨 그런 저항정신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혁명도 저항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현대에 와서도 프랑스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를 중시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파스벤더 사장 독일인들은 규칙을 매우 엄격하게 준수하는 반면 프랑스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인격을 더욱 중시한다. 겉보기에 사회가 무질서해 보이지만 무질서와 질서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프랑스 사회다. 전반적으로 자유분방하지만 조직의 내부에 들어가 보면 질서와 약속을 무척 중시하고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인들의 결점을 꼽는다면. -올리비에 기자 너무 결점이 많다. 그러나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인 의견이 되겠지만 프랑스인들은 불평 불만이 너무 많다. 꼬투리 잡기를 좋아하고 절대 긍정하려 들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새로운 제도가 발표되면 우선 비판부터 한다. 먹고, 마시는 데 지나치게 집착한다. -파스벤더 사장 덕분에 프랑스는 미식가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으니 크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한국과 프랑스는 문화적으로 매우 다르다. 여성들의 미에 대한 기준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파스벤더 사장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20대만 지나가면 전성기가 지난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로레알의 마케팅팀 조사결과 한국 여성들은 20대 후반부터 피부의 노화방지에 신경을 쓴다. 반면 프랑스 여성들은 40대에 들어서면서 노화방지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여성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로레알의 모델인 제인 폰다는 환갑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프랑스 여성들이 추구하는 것은 제인 폰다처럼 자신있고, 활기차고, 모든 면에서 조화를 이룬 그런 아름다움이다. -심씨 로레알의 캐치프레이즈 ‘나는 소중하니까요(Parce que je le vaux bien!)’가 아마 프랑스 여자들의 미의 관점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인 것 같다. 아무리 세계적인 유행도 정작 파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파리 여자들은 어떤 유행이나 패션 아이템을 받아들일 때 과연 그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나만의 개성을 잘 표출해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한시즌에 수천·수만장씩 만들어 내는 상품을 ‘명품’이라 부르며 누구나 들고 다녀야 하는 가방이나 패션 아이템이 그녀들에게는 없다. 미의 중심은 패션 브랜드가 제시하는 어떤 유행 상품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얘기다. -올리비에 기자 한국 여성들은 아름답고 세련됐다. 그런데 아름답게 가꾸고 치장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값비싼 프랑스제 명품을 많이 드는데 그것도 자신의 취향에 맞아서라기보다 유행하니까, 남들이 드니까, 그리고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드는 것 같다. ▶프랑스 국민은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데 저항이 많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 -심씨 개인적으로 세골렌 루아얄을 지지했기에 실망이 무척 컸다. 그녀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남성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실수들을 사사건건 조롱하고 비판하는 언론과 정적들을 보면서 프랑스에서 여성 대통령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디 선거공약처럼 좌우를 아우르는 공화국 정신에 충실한 덕을 지닌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올리비에 기자 개인적으로는 사르코지가 이끄는 프랑스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그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앞으로 5년동안 진행될 변화들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저항도 많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변화해야 할 것이다. 진행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방담 참석자> 클라우스 파스벤더 <로레알코리아 사장> 토마 올리비에 <佛국제방송 기자> 심우찬 <패션 컨설턴트>
  • [씨줄날줄] 조총련 중앙본부/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도쿄의 지요다구 후지미초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가 들어선 것은 1963년이다. 신주쿠에 있던 조선회관이 60년 우익세력의 방화로 소실되자 조선인 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지었다. 일본과 국교가 없는 북한은 이 곳을 주일 대표부처럼 써왔다.725평의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10층인 이 건물은 언제나 경계가 삼엄하다. 반북 우익테러에 대비해 경찰이 중앙본부 앞에 상주한다. 자체 경비도 엄중해 건물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곧바로 직원이 나와 제지하곤 했다. 건물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 대형 그림이 걸려있다. 점심 시간이면 북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직원들은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일본 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셈이다. 2002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시인 이후 조총련은 시련을 맞는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학생들이 폭행 당하는가 하면 중앙본부 앞은 반북 시위대로 시끄러웠다. 극우파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2003년 외국공관에 준해서 면제해 오던 고정자산세를 중앙본부에 물리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조총련은 최근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를 한 투자회사에 팔았다. 파산한 조총련계 신용조합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일부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건물은 조총련이 그대로 쓴다는 이면계약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수자가 조총련에 우호적인 전직 공안조사청 장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계약 자체가 백지화될 공산이 커졌다. 유형무형의 압력에 거래가 깨지면 중앙본부는 제3자에 넘어갈 수 있다. 일왕이 사는 ‘황거(皇居)’와 이웃한 중앙본부는 야스쿠니 신사 바로 옆에 있으면서 후지산이 보이는 1급지이다. 우파 세력들은 ‘신성한 장소’에 들어선 재일 조선인의 본산이 눈엣가시여서 쫓아내지 못해 안달인 모양이다. 납치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무라야마, 하시모토, 모리 등 전직 총리나 자민당 간부들이 김일성, 김정일 생일과 북한 건국기념일에 초청받아 연회에 참석했던 곳이다.‘미래의 대사관’으로 여겼던 일본이다. 이제는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할 의지가 정말 없는 것인지 요즘 하는 일은 너무 심하다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7) 한국민주주의 운동 토론회-지상중계(상)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7) 한국민주주의 운동 토론회-지상중계(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의미, 평가, 전망’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정해구(성공회대)·김호기(연세대)·김세균(서울대)·조희연(성공회대) 교수 등이 한국 민주화 운동 및 6월 민주항쟁의 의미와 평가, 민주화·세계화 이후 한국 시민운동, 민중운동, 국제연대운동의 전개와 평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으며,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자문위원과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기조 발표했다.5일에는 홀거 하이데 독일 브레멘대 명예교수의 기조발표에 이어 강명세(세종연구소)·김종서(배재대), 박경(목원대)·서이종(서울대) 교수 등이 정치와 제도, 인권의 권리(평화, 인권, 생존), 민주화의 주체와 민주화의 길, 소통과 미래(미디어와 사상) 등 분야별 토론을 진행한다. “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의 비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투쟁 대상이었던 수구 정치세력들의 가슴에 안겨 권력의 단맛을 보았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그들이 실현했다고 하는 그 민주주의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 ‘시대의 징표’를 담지 못하고 있다.”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4일 ‘6월 항쟁, 더 많은 민주주의의 좌절’이라는 발제문에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등장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보수화 자유주의세력 민주주의 걸림돌 이 교수는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얻어낸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는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전향, 자본과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6월 항쟁의 현재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3차례의 집권을 거치면서 보수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라면서 “이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할 때만이 6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6월 항쟁을 지도했다는 국민운동본부조차도 자유주의적 제도권 야당이 직접 참여했고, 그들과 연결된 종교계, 그리고 재야의 ‘비판적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했으며 민중운동세력은 지배적인 위상을 점하지 못한 채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우파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좌파로 분류했다. 우파는 지주 계급에 기반을 둔 야당세력으로 공정선거를 통한 정부와 의회 구성이 목표이며, 좌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소외된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을 또다른 축으로 삼는 세력이다. 좌파는 재야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진보 아니다” 토론자로 나선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6월 항쟁 전후 민주화 세력의 분화가 과연 이념적 분화인지 의문이 든다.”면서 “당시 상황을 면밀히 보면 이념적인 분화는 정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토론자인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이 교수는 과도하게 정치 사회 중심으로만 6월 항쟁을 분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면 보수이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 진보라는 도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한국경제의 개방문제와 신자유주의는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정 교수와 박 교수의 비판은 자유주의에 대한 낡은 정치관에 기반하고 있다.”며 재반박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라면서 “다만 지구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 등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진보가 아니다.”면서 “그들과 한나라당의 갈등은 신자유주의 대연정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일 뿐이며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의견이 수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시민운동과 현실 괴리…민중 삶 개선 못해” 6월 항쟁 기념 토론회에서는 시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발표문 두 편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정치학)는 ‘신자유주의 시대, 변화하지 못한 시민운동의 한계와 과제’라는 발제에서 “시민운동 위기의 핵심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 혹은 ‘정치적 중립성’ 같은 문제가 아니라 시민운동의 운동노선과 현실의 괴리가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롭게, 사회 공공성을 올바로 인식하며, 풀뿌리 운동에 주목하고, 급진적 운동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시민운동의 과제로 꼽았다. 배 교수는 최근 시민운동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홍보적 시민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일부 환경단체와 몇몇 유명 단체는 홍보 효과를 통한 기업 후원 기금을 마련해 자체 사옥을 확보하고 재단을 만드는 등 사실상 시민사회에서 귀족단체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 영역에서 재벌 개혁과 투명성 강화, 소액주주 운동을 했지만 이는 재벌의 자산을 초국적 자본의 먹잇감으로 돌려놓았다.”면서 “17대 총선에서는 양극화나 이라크 파병이 아니라 부패 청산과 탄핵 찬성을 기준으로 낙선운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발제자인 김정훈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시민운동은 여전히 민주화의 동력인가.’라는 주제에서 정책대응 능력을 높일 것을 시민운동 진영에 주문했다. 그는 “한국 사회운동세력은 정책역량을 너무나 무시해왔다.”면서 “정책을 무시한 결과 진보학계는 거의 세대 단절 상태에 이르렀고 사회 전반은 보수화됐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가 보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론 전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물적 토대를 갖춰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함께 “사회운동이 분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운동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통합민주당 정책지향점 뭔가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이 어제 합당을 통한 중도통합민주당(약칭 통합민주당) 창당을 선언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 탈당세력이 최근에 만든 정당이었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으나 2003년 말 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빠져나가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잔류한 인사들이 유지해온 정당이었다. 유권자의 뜻과 무관하게 정치적 필요에 의해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것 자체가 우선 잘못이다. 대선을 겨냥해 급히 이합집산하다 보니 정체성 또한 실종된 상태다. 범여권에는 크게 두갈래 기류가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비(非)한나라당 세력을 모두 포괄한 대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과 비전은 뒷전으로 돌린, 한심한 발상이다. 통합민주당 창당으로 나타난 소통합 역시 책임정치 측면에서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참여정부의 인기가 없으므로 포장을 바꾸려는 고육책에 불과하다. 지난 일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호남에서의 지지세 확산을 노리는 지역주의마저 어른거린다. 더구나 소속 의원이 34명인데 최고위원은 12명, 중앙위원은 150명에 이른다.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이 합치면서 지분과 자리 다툼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지 못하면 연말 대선이나 내년 총선에 임박해서 또다시 통폐합될, 포말정당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통합민주당은 합당선언문과 기본정책합의서에서 이념좌표를 중도개혁주의로 잡았다. 양극단을 배제한다고 하지만 보수쪽은 한나라당이 있는 만큼 중도를 넘어 진보쪽으로 영역확대를 꾀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정강·정책에서는 실용주의로서 중도우파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최종적인 정책지향점이 뭔지 벌써 혼란스럽다. 박상천 대표의 ‘특정인사 배제론’까지 엉키면서 대선판을 어지럽게 만들 것이 우려된다. 정책지향점만이라도 분명히 해서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말기 바란다.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그 이후] (6) 빛바랜 평등, 팍팍한 일상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그 이후] (6) 빛바랜 평등, 팍팍한 일상

    서울 천호동에서 조그만 고깃집을 경영하는 박진형(42·가명)씨. 아랫배 두둑하고 인상 좋은, 영락없는 ‘아저씨’다. 그러나 대학 3학년이던 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그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로와 명동 거리가 그의 강의실이었다. 더구나 민족해방(NL)계보다 급진적이었던 제헌의회(CA) 출신이었다. 구소련이 무너지던 91년.TV를 통해 철거되는 레닌 동상의 모습을 보면서 그 역시 가슴속 이념의 지향을 지웠다. 졸업 뒤 그가 안착한 곳은 시중 은행. 그러나 또 한번의 ‘격동’을 맞았다.97년 외환위기 이후 그의 직장은 공중 분해됐다. 재취업의 길도 없었다. 다시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일.27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1억원을 밑천 삼아 음식점을 차렸다. 특유의 성실함에 운도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시간표는 ‘오전 10시 출근, 자정 퇴근’이다. 실직의 공포는 뼛속 깊숙이 새겨졌다.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어김없이 추락할 것 같은 위기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6월 항쟁 이전보다 빈부격차도, 경쟁도 훨씬 심해진 것 같아요. 혁명 같은 단어는 지운 지 오래죠.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살겠다고 민주주의를 외쳤나 싶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정상적인 거 아닌가요?” ●저소득 통한 고성장 6월 항쟁 ‘불씨’ ‘압축성장’이라는 단어는 한국 경제의 특성을 잘 말해 준다. 지난 1953년 국내총생산(GDP)은 13억달러,1인당 국민소득(GNI)은 67달러에 불과했다. 필리핀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세 배나 많은 ‘부자나라’였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총생산은 8883억달러,1인당 국민소득은 1만 8372달러에 이르렀다.44년 만에 각각 683.3배,274.2배가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는 악명 높은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성과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은 1980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1.5% 빠졌지만 실질임금은 무려 25.3%나 떨어졌다. 이후에도 10%를 오르내리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률은 그에 턱없이 못 미쳤다. 주가는 1년에 70∼100% 뛰었다. 기업이 호황의 과실을 고스란히 독차지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80년대 초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소득 1분위(하위 10%)와 10분위(상위 10%)의 소득배율은 80년 7.97배에서 85년 8.46배로 늘었다.6월 항쟁을 단순한 민주화운동으로 국한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진전된 국민 삶 외환위기로 파탄 6월 항쟁 이후 한동안 경제적 민주화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88∼97년 실질임금 인상률은 한 해 평균 7.24%를 기록했다. 실질성장률 역시 평균 7.73%로 건실한 상승세를 계속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연소득을 나눈 상하위 20% 소득배율 역시 85년 5.13배에서 ▲90년 4.63배 ▲95년 4.42배 ▲97년 4.49배 등으로 꾸준히 떨어졌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한국 경제에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95년 실질 성장률이 9.2%에 달했는데도 주가지수는 14.08% 하락했다. 기업의 해외자금 차입 증가에 따른 과잉투자와 재무건전성 하락이 경상수지 악화와 해외채무자들의 자금회수 우려 증가로 이어진 탓이다. 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한국 경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98년 -6.9%에서 99년 9.5%,2000년 8.5%로 급반등했다. 그러나 이때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중산층 붕괴, 양극화 심화라는 경제적 불평등 확산의 결과를 낳았다. 2005년 상하위 20% 소득배율은 5.43배.97년 4.49배보다 1배 가까이 벌어졌다. 소득 불평등 수치인 지니계수는 96년 0.291에서 99년 0.3을 넘은 뒤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지니계수는 낮을수록 소득 분배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은 부자에게는 자상하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괴물’의 얼굴을 한 사회로 변모했다. ●성장 과실 분배통로 막혀 ‘20대80’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는 ‘강남공화국’이다. 특히 아파트 가격은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과 ‘비강남’으로 우리 사회를 양분화시켰다. 86년 당시 강북과 강남 아파트가격, 소비자물가 지수를 100으로 잡았을 때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지수는 180.8,204.4,187.5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뛴 것은 2001년 이후. 강북·강남 아파트가격 지수는 ▲2002년 234.6,352.8 ▲2003년 242.8,403.2 등에 이어 2005년 8월 현재는 247.1,448.4로 두배 가까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강남에서 ‘평당 1억원 시대’라는 말까지 돌 정도다. 수출 호조의 과실이 개인 대신 기업에 쏠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90년부터 96년까지 개인과 기업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각각 7.0%,6.5%로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7.6%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기업과 개인에 골고루 재화가 분배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2000∼2003년에 개인 소득은 겨우 2.4% 늘었지만 기업은 18.9%나 급증했다. 소득에서 세금을 뺀 순소득인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각각 0.3%,62.6%에 달한다.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도 2001년 8월 26.8%에서 올해 3월 36.7%로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개인 소득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는 뜻. 이는 소비와 내수 침체로 이어진다. 올해 1·4분기 1∼5분위 중 1분위 소비성향은 156.5%,2분위는 101.5%이지만 4분위는 79.6%,5분위는 64.8%에 불과하다. 서민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로 지출하지만 고소득층은 투자에 상당 부분의 돈을 쓴다. 전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재벌 중심주의 경제체제의 변화 없이 경제적 민주화는 물론 추가적인 한국 경제의 성장도 요원하다고 말하고 있다. 경원대 경제학과 홍종학 교수는 “6월 항쟁의 최대 수혜자는 일반 국민이 아닌 재벌 등 경제적 상위 계층”이라면서 “정치 권력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경제 권력의 통제를 위해 일반 시민 권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진보 진영 새 사회발전모델은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경제성장률이 5% 안쪽에서 머물자 잠재성장률 역시 4% 초반대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다. 좌우 할 것 없이 현재 한국 경제가 문제 있고, 성장률을 높여야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의 성장 전략은 규제 완화에 따른 투자 활성화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 더욱 급속도로 적용돼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눈에 띄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양극화의 영향이 좌파 진영에 의해 과장됐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진보진영 발전 전략의 공통점은 노동의 기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쉽게 말해 경제발전의 세 요소인 자본과 노동, 기술 가운데 현재 가장 기여도가 낮은 노동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도 강조된다.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가 아니라 자본, 노동 등과 함께 경제발전을 이끄는 주체다. 최근 가장 활발히 논의가 진행된 자리는 지난해 11,12월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한국 경제의 대안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토론회다. 진보정치연구소, 대안연대 등 10개 단체가 참여했다. 먼저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연대국가론’의 골자는 ‘똑똑한 지식노동자의 적극적 역할과 미래산업의 발굴·투자’다. 핵심 전략은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주도와 경영 참가 ▲교육복지 강화 미래의 성장잠재력 육성 ▲국가의 산업정책 복원으로 재생가능에너지·환경산업 육성 ▲부유세 사회복지세 등 사회연대적 조세 신설 등이다. 곧 노동의 참여와 복지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노동주도형 경제모델’ 역시 말 그대로 노동의 역할을 끌어올린다. 안정적인 노동정책은 국민적 노동창의성 보장의 필수 요건인 만큼 국가 경쟁력 향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기초로 노동자 재계약과 산업간 재배치를 국가가 책임 지고, 공공금융기관의 지원 아래 산업자본을 강화한다. 국가는 비전 제시자다. 새사연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노동창의성 중심 성장전략은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대체할 보편성·시대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피터 드러커의 지적처럼 인적 자원이 풍부한 한국에서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참여혁신 수석비서관 출신인 박주현 변호사가 만든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역시 ‘한국형 신성장동력 사회투자모형’이라는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기본 구조는 학습복지(Learnfare), 일자리복지(Jobfare), 사회적 안전망(Welfare) 등 ‘3 fare’다. 노동자의 평생학습 시스템을 갖춰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면 경제성장과 복지를 함께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신정완 교수도 사회구성원의 학습능력과 취업·혁신능력을 증진시킨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주창했다. 다만 논의들의 현실화에는 아직까지 의문 부호가 찍힌다.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지식경쟁’ 사회로 세계 경제가 변모하고 있는 만큼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려는 진보 진영의 논의 방향은 맞다.”면서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교육 개혁 등이 동반돼야 하는 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9) 공화국 정신으로 뭉친다

    프랑스는 참 종잡을 수 없는 나라다. 대혁명의 나라답게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앞선 민주주의 국가인데, 국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것을 보면 전제 군주시대의 색채가 보인다. 개인주의가 무척 발달했지만 사회적 연대와 공공의 이익을 중시한다. 평등교육을 실시하면서도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해 정치, 문화,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를 이끌도록 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보듯이 어제까지 대결하던 좌·우파가 극우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한데 뭉치기도 한다. 헝가리 이민 2세인 니콜라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시장경제를 하면서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고수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이런 이율배반과 변화무쌍함 때문에 프랑스는 외부인들에게 언제나 이해하기 힘든 나라로 남는다. 모든 의문점들을 푸는 열쇠가 바로 ‘공화국 정신’이다. 공화국 정신은 프랑스 사회를 결집시키고 지탱해 주는 힘의 원천이다. 도덕성의 기준이기도 하며 국가관이기도 하다. ●중앙집권 경향 강한 것은 ‘공화정신´ 때문 프랑스의 정식명칭은 프랑스 공화국(Republique Francaise)이다. 프랑스의 각급 학교 정문을 비롯해 모든 공공건물에는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RF’가 쓰여 있고 그 위에는 자유·평등·박애의 혁명 이념을 상징하는 3색기가 펄럭인다. 공화국이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들이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공화국이 어떤 것이며, 그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공화국의 어원은 라틴어의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인데 이는 ‘공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그 출발점은 공공성과 공익성인 셈이다. 프랑스는 어느 나라보다도 공화국의 어원에 맞는 정치를 구사하며, 공화국 정신에 충실하게 국가를 운영해 가는 나라다. 프랑스인들에게 국가(Etat)는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화국은 그들에게 반(反)왕권과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일관되게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국가는 강력해야 하며 잘 훈련받은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모든 국가의 업무를 중앙에 결집시키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고, 엘리트 교육을 인정하는 배경이다. 프랑스는 미국이나 독일, 스위스와 달리 중앙정부의 힘이 막강하다. 프랑스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책임진다. 국방, 산업, 의료, 교육 등 모든 일을 국가가 맡아서 한다. 국가는 절대적이다. 이 절대적인 힘을 움직이는 손발은 600만명이나 되는 공무원들이다. 프랑스가 서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인 나라라는 것은 정치체제 외에 인구분포와 도시화 측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구 5800만명 중 1000만명이 파리와 수도권에 살고 있다.20여개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수많은 국도 등 모든 길은 파리로 통한다. 파리는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의 ‘강한 프랑스’는 역사의 산물 프랑스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통은 사실 전제군주 시절부터 뿌리내려 온 것이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왕권시대에 강력한 중앙관료체제를 발전시킨 나라다. 왕이 임명하는 관료들이 지방에 파견돼 세금을 거둬들이고 행정을 담당했다. 그 전통은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지금도 중앙정부 파견 도지사(prefet)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중앙집권적 경향은 혁명세력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 왕권에 동조하는 반혁명 세력을 뿌리뽑고 민주적 전통을 뿌리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대혁명을 통해 확립한 ‘통일된 불가분의 공화국(La Republique une et indivisible)’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국가가 필요했다.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내세운 ‘강한 프랑스’는 갑자기 튀어나온 슬로건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수백년 역사의 산물이며, 드골 대통령에 의해 실현됐던 것이다. 사르코지는 강한 프랑스의 재현을 외치며 제5공화국의 6대 대통령이 됐다. 1958년 9월28일 국민투표에서 채택돼 오늘날까지 유효한 프랑스의 제5공화국 헌법은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180년 동안 수많은 희생과 시행 착오를 거친 뒤 얻어낸 결과물이 전제 군주시대의 군주처럼 대통령에게 힘을 집중시켰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프랑스다. 현대판 제왕이라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데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공화국 정신을 수호하려면 강한 대통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포원, 원포올!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동화(同化), 공공의 이익, 평등 등 세 가지 원칙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기계에 비유한다면 이 원칙들은 기계가 잘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것이다. 프랑스에 사는 모든 사람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언어적으로 프랑스의 것에 동화돼야 한다는 것이 우선이다. 프랑스 국민을 하나로 묶고, 지금까지 국가를 이끌어온 원칙이다. 두 번째는 ‘공공의 이익’인데 장자크 루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공공의 이익 앞에서 양보돼야 한다. 프랑스 같은 자유주의·개인주의 사회가 안정되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이 철칙이 지켜지는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관료들은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의회의 의원도 마찬가지다.500여명의 지역구 의원이 하원에 있지만 이들이 지역구의 사업이나 현안을 챙기는 일은 없다. 공개적으로 지역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은 없다. 프랑스 정치인들이나 관료집단이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등을 얘기해 보자. 프랑스에서 평등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철칙이다.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프랑스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의료와 복지를 국가가 책임진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평등은 어떻게 적용될까. 국가의 입장에서도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출신에 상관없이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프랑스인으로서 권리와 혜택을 누리지만 동시에 국민으로서 책임을 요구한다. 공화국 정신이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삼총사가 칼을 맞대고 외쳤던 슬로건을 떠올려 보자.‘올포원, 원포올!’ 국가를 위해 모두가 뭉치고, 국가는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日 자살파문… 아베 설상가상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 아침 내각회의에서 마쓰오카 도시가쓰 농림수산상의 자살에 대해 ‘통한’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애도한 뒤 “앞으로도 결속해 국정에 힘써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며 파문의 확산을 경계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위기는 한층 심화될 것 같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아베 총리가 6개월 전부터 불거진 마쓰오카 농수상의 정치자금 의혹을 자신과 우파 단체에서 10년 이상 함께 일해온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감싸 오다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며 파상공세를 펼 태세다.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당과 내각에 심한 바람이 일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게다가 마쓰오카 농수상의 정치자금 의혹에 연루된 농수성 관할 공공법인 ‘미도리시겐기구’의 전신인 삼림개발공단의 야마자키 신이치(76) 전 이사가 이날 오전 5시15분쯤 자신의 아파트 6층에서 투신자살, 아베 정권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야마자키는 미도리시겐의 담합사건에서 문제가 된 발주 시스템의 작성과 정치권의 창구로 지목돼 도쿄지검 특수부의 조사를 받아 왔다. 야마자키는 26일 자택 압수수색을 받은 데다 28일에 이어 이날도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미도리시겐기구’로부터 담합을 통해 사업을 낙찰받은 구마모토현의 40개 업자들에게 2005년부터 3년 동안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마쓰오카 농수상에 이은 야마자키의 자살은 농수상의 의혹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마쓰오카 농수상의 자살로 촉발된 고질적인 ‘정치와 돈’의 문제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피할 수 없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마쓰오카 농수상을 두둔한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부담마저 안고 있다. 마쓰오카 농수상은 아베 총리·농수산성 사무차관 등 공직자 6명에게 유서를, 국민과 후원회 측에 편지 2통을 남겼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유서에는 농수상의 가족과 농업정책 이외에 정치,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며 유서 내용을 공개했다.hkpark@seoul.co.kr
  • [서울광장] 사르코지와 셰이크 무하마드/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르코지와 셰이크 무하마드/ 함혜리 논설위원

    최근 국내 언론이 가장 관심 깊게 다룬 외국 지도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지도자 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부통령이자 총리이다. 오는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예정하고 있는터라 지난 6일 끝난 프랑스 대선 결과는 우리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방한했던 셰이크 무하마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리더십으로 세계적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분모가 있다. 실용주의자라는 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을 실용주의자로 부르는 것을 의아해할 수 있다. 이는 순전히 프랑스 대선 결과에 대한 국내 언론의 자의적 해석 탓이다. 사르코지 후보가 승리하자 국내 언론들은 다양한 해설기사들을 쏟아냈는데 한국적 시각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프랑스가 영미식 시장경제주의와 친미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분배를 포기하고 성장을 택한 것, 사회가 우경화되는 것, 좌파의 위기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우선 프랑스가 우경화하고 있다는 것은 프랑스의 역사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에서 다수는 언제나 우파였다. 프랑스가 분배를 포기한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프랑스는 복지에 있어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중시하며 이는 우파든, 좌파든 한결같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선거유세 기간동안 단 한번도 복지제도를 줄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가 성장을 선택한 것은 분배할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다. 시라크가 이끌었던 지난 12년간 우파 정권이 지지부진했음에도 우파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사르코지가 제시한 비전이 현재 프랑스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고 국민들이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일하고, 더 벌자.”는 단순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각론으로는 감세와 주 35시간 근로제 재조정, 노동시장 유연화를 들었다. 반발을 불러일으킬 부분도 있겠지만 국민들은 그의 추진력에 신뢰를 보냈다. 미국에 대한 입장에서도 사르코지의 실용주의를 볼 수 있다.“미국은 이제 우정을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고 그를 친미파로 봐서는 안 된다. 그는 미국의 힘을 인정할 뿐 친미는 아니다. 철저히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 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는 유럽연합(EU)의 강화를 통해 ‘강한 프랑스’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UAE의 경제수도 두바이로 가보자. 두바이는 산유국이긴 하지만 국민총생산(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1인당 소득은 3만달러가 넘고 연평균 성장률이 8%를 넘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두바이의 성공신화가 ▲정치 리더십과 개방외교 ▲중계무역 및 지식산업 거점 ▲대형개발프로젝트 ▲관광 및 이벤트 ▲공항 및 항만 등 5개 축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두바이의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셰이크 무하마드의 신조는 ‘마차(정치)가 말(경제)을 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실용정신은 미국과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서구 자본을 유치하는 개방외교에서 잘 드러난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르코지와 셰이크 무하마드의 실용주의 리더십이 왜 이 시대에 각광받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친미와 반미,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은 유행이 지나간 지 오래다. 세계 각국은 지금 실용주의에 주목하고 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광풍 中증시에 ‘8’風

    미신과 광신에 가까운 ‘숫자’에 대한 믿음이 판치는 중국 증시에서 가장 인기있는 행운의 숫자로 ‘8’이 뜨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이 24일 소개했다. 개인투자자 옌 차이젠. 그는 지난해 한 시멘트 기업 주식을 3만주나 사들였다. 이유는 회사의 고유 종목코드가 ‘600881’로 그가 행운으로 여기는 ‘8’이라는 숫자가 2개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 매입 이유로는 황당하지만 그는 실제로 5만달러나 벌어들였다. 중국 사회에서 ‘8’은 전통적으로 부와 행운을 상징한다. 베이징 올림픽이 2008년 8월8일 오전 8시에 개막하는 것도 중국인들의 숫자 ‘8’에 대한 굳은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중국에서 ‘8’은 발음이 ‘파(發)’와 같아 길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8’이 5개나 겹치면 ‘우파’로 읽혀 ‘번영하지 않는다.’는 뜻이 돼 피한다.8이 6개나 겹치면 대성공의 뜻으로 읽힌다. 또 숫자 ‘6’의 발음은 ‘류(流)’로 뜻은 ‘순조롭다.’,‘잘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 증시에서는 숫자 이외에도 다양한 미신이 있다. 영어로 증시 강세를 뜻하는 ‘황소(Bull)’를 위해 소고기를 먹으라는 말부터 붉은 옷을 입으면 활황이 지속된다는 말도 있다. 현재 중국 증시의 과열 양상도 그럴듯한 믿음만 있으면 신용카드나 대출을 받아서라도 주식을 사들이는 중국인의 투자 양상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중국 증시가 ‘국가 도박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佛 새총리에 ‘개혁파’ 피용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신임 대통령은 17일 개혁 성향의 우파 정치인 프랑수아 피용(53)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소속 상원의원인 피용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선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연금제도와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 등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피용은 사르코지 측근 가운데 좌파로부터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자신의 노동개혁과 복지법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유화적인 인물을 총리에 기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피용은 한때 기자가 되려고 AFP통신사에서 견습생활을 했다. 하지만 곧 정계로 진로를 바꿔 중서부 사르트에서 하원 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2년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 밑에서 사회문제 장관을 맡으며 경제 분야 개혁 정책을 폈고,2004년 교육장관 때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개혁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다.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이 부결된 뒤 총리의 퇴진과 함께 경질되자 사르코지 캠프에 합류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부인 페넬로프 카트린 피용(51)과의 사이에 다섯 남매를 두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총리 임명에 이어 18일 새 내각 구성을 발표할 예정이다.15개 각료직 중 7∼8개 자리를 여성 인사로 채우고 주요 자리에 야당 인사를 과감하게 기용할 것으로 예상된다.vielee@seoul.co.kr
  • [특파원 칼럼] 佛 대선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가지/이종수 파리 특파원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아직 후유증이 가시지는 않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선자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3번째 대선에 패배한 사회당은 내분 조짐마저 보인다. 이번 대선은 내부 경선 기간을 포함하면 6개월 장정이었다. 참신한 이미지의 세골렌 루아얄의 부상, 사르코지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갈등,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의 돌풍…. 이처럼 극적 반전이 많아 볼 만한 드라마였다. 기자는 그 과정에서 권력의지의 ‘닮음’도 확인했지만 한국 대선 시스템과의 ‘차이’도 목도했다. 그래서 한국 맥락에서는 이해 안되는, 오해를 할 수 있는 점을 짚어보고 싶어졌다. 먼저, 사르코지 승리의 함의. 사르코지가 이겼다고 프랑스 사회가 우경화됐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혹은 프랑스 사회가 미국·영국식으로 빠르게 변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기자가 보기에 사르코지는 철저한 실용주의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실용은 ‘표’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사회를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거나 표나게 친미를 외칠 수 있을까. 자신의 정책이 좌파의 반대에 부딪치면 그가 개혁하려는 좌파적이며, ‘프랑스적인 것’의 하나인 광범위한 공공 서비스도 유지될 지 모른다. 국익에 어긋날 때는 미국과 각을 세울 수도 있다. 게다가 비록 패배했지만 사회당 루아얄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47%를 무시하지 못한다. 실제 그의 승리는 철저한 표 계산에 힘입었다.‘함께 살자’는 공동체적 정신만으로는 세계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불안해하는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변화’를 내세웠다. 그리고 공약 하나하나에 ‘구체적 리더십’을 실었다. 필요할 경우 중도파나 극우파 유권자를 향한 공약도 제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비전 제시다. 결선투표 직전 열린 루아얄과의 TV토론을 보자. 그녀는 주도권을 잡으려 톤을 높였지만 추상적이었다. 반면 사르코지는 강경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수세적 모습을 보이되 구체적 수치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결과는 뻔했다. 구체성이 결여된 루아얄의 이미지 정치는 졌다. 둘째, 극우파와 노동자의 친화력. 극우파 후보 장-마리 르펜은 1차투표에서 10.44%의 득표율로 2002년 대선에 비해 추락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지지는 높았다. 그의 득표 가운데 28%가 노동자다. 다른 후보에 견줘 높다. 루아얄 지지층의 21%, 사르코지 20%, 프랑수아 바이루 17%가 노동자의 표였다. 르펜은 1차투표 직전 TV에 출연,“20년전부터 공산당은 노동자와 유리됐다.”며 “이제 내가 그들의 대변자”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역시 노동자들의 표심을 읽었다. 그의 표적은 이민 와서 정착한 노동자이거나 백인 노동자다. 대부분이 유럽 확대로 외국인 노동자가 새로 들어와 일자리가 줄어들까 두려워한다. 르펜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1995년,2002년 대선에서도 르펜에게 가장 환호한 계층이 노동자들이다. 마지막으로 결선투표의 함의. 한국과 달리 프랑스 대선은 절대 과반 득표자를 뽑는다.1차투표에서 한 후보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선투표를 치른다. 다음달의 총선방식도 같다. 샤를 드골은 1965년 첫 직선제 대선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권위는 의회의 다수파에 대칭하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개념”이라며 ‘대통령의 다수 개념’을 제안한다. 물론 결선투표 비용은 적지 않다. 그러나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대통령은 ‘정당성’과 ‘권위’를 지닌다. 뒤집어 보면 이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당신들 절반 이상이 인정했으니 믿고 따라오라는…. 덧붙여 질문 하나. 프랑스 대선의 함의가 한국 대선 국면에 어떻게 비칠까. 예를 들어 결선투표를 도입하면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결선투표 기권율이 높아질까.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임기말 더 세진 ‘靑 전투력’

    청와대의 시계는 여전히 2003년 임기 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연일 왕성한 전투력으로 ‘왜곡’과 ‘오해’를 도마에 올리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직성이 풀리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도 “지금이 임기 초가 아닌지 헷갈릴 정도”라고 자평한다. 11일에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보수언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론자, 일본의 역사인식을 겨냥했다.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김 전 의장이 지난 8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화로 원포인트 개헌 주장을 비판했다.”며 사과를 요구한 것과 관련,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당시 김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본인 선거를 치르지 않으니까 민심에서 멀어지고 선거에 무관심해진다. 그래서 4년연임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얘기하자, 노 대통령이 당 의장으로서 대통령을 선거결과와 연관지어 부적절하게 평가한 부분을 비판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천 대변인은 “김 전 의장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개헌을 비판한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의도적 왜곡은 아닐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정책조정비서관은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보수언론이 참여정부를 매도하기 위해 지난 6일 프랑스 대선결과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김 비서관은 일부 보수언론이 우파인 사르코지가 당선된 대선 결과를 들어 ‘프랑스조차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데, 참여정부는 큰 정부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사례를 거론하며,“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모두 ‘빨갱이’로 매도한 것처럼 답답하고 두렵다.”고 밝혔다.‘저성장, 고실업, 고복지’ 체제의 문제점을 가진 프랑스와 복지지출이나 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김 비서관은 “프랑스 사람이 날씨가 더워 옷을 벗는다고, 아직 한기가 가득한 우리 국민에게 반팔을 입으라고 강요해서는 곤란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한편 윤승용 홍보수석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공동체 구축을 위한 제언’이라는 글을 청와대브리핑에 올려 “일본해 표기 주장은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와 침략주의의 유산”이라며 일본 정부가 ‘최소한 동해 병기’라는 한국의 제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역사 교과서 왜곡과 일본군 위안부의 공식적인 책임 부인, 야스쿠니 신사와 독도 문제 등에서 일본 지도자와 보수세력이 보이고 있는 퇴행적 역사인식도 꼬집었다. 이수훈 동북아시대위원장도 청와대브리핑에 글을 게재,“한·미 FTA로 동북아시대 구상이 끝났다는 비판은 기우”라면서 “한·미 FTA 타결 이후 일본과 중국이 한국과 FTA에 더 적극적인 점에서 보듯, 한·미 FTA가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한국이 동북아 질서를 구축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7) 나폴레옹·드골 그리고 사르코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나폴레옹과 드골이다. 프랑스 어디를 가나 이들 두 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피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나폴레옹과 드골은 프랑스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기에 두 인물의 지도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대혁명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제도 전반에서 근대국가로서 프랑스의 기틀을 다졌다. 샤를르 드골(1890∼1970)은 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일으키고 프랑스를 독일과 맞먹는 공업대국으로 만들었으며 유럽통합의 주역이 됐다. 지나치게 강한 자아(自我),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탓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강력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됐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1840년 12월15일 아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유해가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와 콩코드 광장을 거쳐 앵발리드(상이군인병원이라는 뜻) 앞 마당에 도착했다.10만명의 파리 시민들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지 19년 만에 파리에 돌아온 영웅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센강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앵발리드 지하에 안치됐다.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뛰어난 재략과 강력한 의지로 정상에 오른 전쟁영웅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 몬 침략자이자 독재군주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그는 52년의 짧은 생애 동안 프랑스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200년 전 나폴레옹이 만든 많은 제도들이 아직까지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현(縣)이라고 불리는 98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었다.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이 행정단위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으며 행정능률을 배가시켰다. 그는 또 수백년간 이어져온 방대하고 모순된 구법전과 법률을 재정비해 간결명료한 최초의 근대적 민법인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했다. 세습 귀족제의 폐지, 상속권의 평등, 인종차별 철폐, 결혼과 이혼의 자유 등을 규정한 이 법전은 나폴레옹 원정군에 의해 전 유럽에 퍼져 근대 유럽국가들의 법전편찬에 본보기가 됐다. 그는 국립 프랑스 은행을 설치하고, 전국에 세무소를 설치해 국가 재정을 확보했다.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만든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그만큼 프랑스를 변화시킨 인물은 없었다. 파리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그는 파리를 통치의 중심지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범 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거리, 웅장한 건물, 분수대 등을 짓도록 했다. 그 중 하나가 파리의 상징물이 된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4년 위대한 프랑스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명령을 내려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외관의 마들렌 성당도 프랑스군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콩코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 뒤편의 방돔광장에 있는 청동제 원기둥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노획한 1200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루브르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갖춘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및 이집트 원정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파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나폴레옹 없이 프랑스 근대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의 마지막 거인’ 드골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프랑스는 자유를 되찾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전쟁 중 영국에서 반(反)나치 항전을 지휘한 드골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귀국해 임시정부의 수반이 됐다.1946년 제 4공화국이 들어서고 전후 산업화가 시작됐으나 정쟁(政爭)이 그치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자신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골은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제 4공화국이 붕괴되기 직전 드골은 ‘조국의 구원자’로서 당당하게 복귀했다. 강력한 대통령제에 입각한 제 5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1958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은 알제리를 비롯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평화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식민지 문제를 해결했다. 프랑스의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 않는 프랑스는 일찍이 한번도 참된 프랑스였던 적이 없다.”며 국민들에게 ‘앞으로!’를 외쳤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효과적인 경제·사회 모델, 독자적인 외교정책이 어우러지면서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는 급속하게 안정됐다. 드골은 아데나워 독일 수상과 함께 독·불협력 시대를 정착시키고, 반미 자주외교를 펼치면서 핵무기 개발과 군수산업 개발에 전력했다.“우리의 운명은 기계가 결정한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첨단 항공우주기술, 초고속열차(TGV), 컴퓨터산업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1967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대 산업국이 됐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자들이 합세해 일으킨 68혁명 여파로 1969년 4월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1970년 11월 드골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제 5공화국 헌법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시라크를 비롯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파출신들이 집권층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능력이 있는 직업공무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드골이 설립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엘리트들이 국정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 파리 중심가의 샤를 드골 에트왈 광장, 핵잠수함 샤를드골 호 등 그의 이름을 붙여 ‘마지막 거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최근 프랑스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중도우파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5공화국 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세계화, 유럽연합의 확장, 이민 2·3세들의 통합문제 등으로 프랑스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르코지가 과연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박남춘 인사수석 “인력 재배치 제때 못한것 반성”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이 감사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2시간짜리 강연을 했다.9일 감사원 혁신토론회에서 ‘참여정부 이렇게 걸어왔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했다. 그는 먼저 “공무원 5만여명 늘어났다고 큰 정부, 작은 정부 운운하는데 참여정부는 책임정부”라면서 “그러나 인원을 늘리면서 불필요한 인력들을 재빨리 (다른 쪽으로 )전환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이어 “참여정부를 좌파라고 하는데 프랑스 우파만큼도 복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프랑스의 대선 결과를 놓고 분배 아닌 성장을 택했다고 쓴 것을 보면서 어떻게 국민들이 중지를 모아나갈까 걱정”이라고 언론에 불만을 표시했다. 참여정부의 ‘회전문 인사’ 논란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문화일보가 악의적으로 처음 만들어낸 용어로 노무현 대통령은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을 쓰다 보니 청와대에서 일하던 사람을 (내각으로)내보내는 것”이라면서 “역시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본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보은 인사’와 관련해서는 “인재의 지역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서 “총·보선에서의 300여명 낙선자 중 10명밖에 등용 안 됐다.”고 주장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변화 선택한 프랑스] (중) 바뀌는 정치 지형도

    [변화 선택한 프랑스] (중) 바뀌는 정치 지형도

    |파리 이종수특파원|사회당의 대선 3연패(連敗), 중도정당 후보 약진, 극좌·우파 정당의 쇠락…. 2007년 프랑스 대선의 두드러진 현상이다.6일(현지시간) 대선은 끝났지만 이 현상은 프랑스 정치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향후 정치기상도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 무대는 다음달 10일 치러지는 총선. 프랑스는 2002년 개헌으로 대선과 총선을 5년마다 함께 치른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선에서 약진한 중도파의 정치세력화 여부다. 중도 정당 프랑스민주연합(UDF)의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는 1차투표에서 18.57%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중도파 돌풍’을 몰고 왔다. 그러나 이 돌풍을 현실화하려면 그만큼의 원내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그가 이끄는 UDF 소속 의원 29명 가운데 21명이 사르코지를 지지했다. 당은 거의 와해 직전이다. 그러나 바이루는 “중도 성향의 ‘민주운동당’을 창당해서 577개 지역구 모두 후보를 내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어 “대선에서 나타난 중도파에 대한 염원을 총선에서 재현해 우파와 좌파가 의석을 양분하는 양당 구조를 타파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선 결선투표 과정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며 고립 양상을 보인 그의 지지율이 총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결선투표 직전 그가 “사르코지를 찍지 않겠다.”고 밝혔음에도 1차투표에서 그를 지지한 유권자 절반 가량이 사르코지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경우 ‘대선 3연패’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패배 책임을 놓고 당 중진들이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총선 전략을 놓고서도 지도부가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세골렌 루아얄은 “우리의 유일한 힘은 단결”이라며 대선 이후에도 당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중진들은 회의적 반응이다. 루아얄과 경선에서 패배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재무장관은 “총선을 지휘할 지도자를 요구한 적은 없다.”며 비판했다. 다른 중진인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도 “집단지도체제로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루아얄의 동거 파트너인 프랑수아 올랑드 제1서기는 “당 혁신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총선 뒤에 감행해야 한다.”며 “좌파를 결집하고 당을 쇄신해 총선에 총력전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2002년 대선 패배 뒤 당을 추스르며 2004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그의 지도력이 이번에도 재현될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극좌·극우파의 약세가 총선에 미칠 영향도 관심이다. 특히 2002년 대선때보다 지지율이 급락한 공산당의 경우 마리-조르지 뷔페 당수의 지도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극우파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FN)도 크게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vielee@seoul.co.kr
  • [열린세상] 十·中·卍의 공통점은?/강지원 변호사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열린세상] 十·中·卍의 공통점은?/강지원 변호사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한자인 十(십)자,中(중)자,卍(만)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퀴즈 같은 이야기지만 어쩌면 이리도 깊이가 있을까 감탄하는 때가 많다. 이 한자들은 모두 종교적 상징이 되어 있다.十자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자손들아, 너희는 죄인이니라. 내가 너희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고 하셨다. 사람이 양팔을 주욱 뻗어 벌리고 허리를 곧추 세워 바로 서면 열십자 모습이 된다. 그래서 십자가 형상에서 사람 본래의 모습을 찾으라는 가르침이라고 해석하는 이가 있다. 中자는 유교의 대표적 사상이다.中은 불편불기(不偏不倚) 즉 편벽되지 아니하고 치우치지 아니하며, 무과불급(無過不及) 즉 지나침과 부족함이 없음을 말한다. 공자님께서는, 군자는 중용을 하라 하셨다(君子中庸). 또 군자가 중용을 함은 때에 맞게 함을 말한다고 하셨다(君子而時中). 그리고 중화를 지극히 하면(致中和), 천지가 제 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라고 하셨다. 卍자는 불교의 표상이다. 석가모니님의 깨달음을 상징한다.卍자는 사방이 머리를 숙인 형상이라고도 한다. 머리를 떳떳이 들 수 없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을 닦아 참된 자신을 깨달으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세가지 한자에서 상형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다름아닌 ‘-’와 ‘|’의 만남이다.十자는 곧이 곧대로 ‘-’과 ‘|’이 결합한 형태이고,中자는 ‘’과 ‘’의 결합이다. 그런데 이때의 ‘’은 ‘-’의 두툼한 형태에 다름아니다. 어떤 이는,‘’은 제사상에 배치된 예기와 예물의 모습이고 이때의 ‘|’은 좌우로 알맞게 꽂아 놓은 깃발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卍자는 ‘’와 ‘-’의 결합에다 각 획의 끝에 날개 모양으로 한 획씩을 덧붙인 형상이다. 이런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 것은 15년도 더 된 일이다. 지극히 우연히 이 종교들의 상징에 ‘-’표시와 ‘|’표시가 공통적으로 포함된 사실을 발견하고 저으기 놀랐다. 그렇다면 ‘-’은 무엇이고 ‘|’은 무엇일까. 나는 우선 생긴 모습에 따라 ‘|’은 수직으로,‘-’은 수평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는 그 두가지 결합을 수직과 수평의 조화라고 개념화하였다. 이때부터 수직과 수평은 나의 세상보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그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수직문명과 수평문명, 수직사회와 수평사회, 수직가정과 수평가정, 수직적 리더십과 수평적 리더십 등 온갖 세상사에 이런 틀을 들이댔다. 여기저기 글도 쓰고 강연도 했다. 그 덕일까. 느닷없이 우리사회에서 종전에 별로 쓰지 않던 수직적이니, 수평적이니 하는 용어가 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민주화세대·인터넷문화가 사회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수평사회, 수평적 리더십은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수직·수평이란 개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수직사회를 대체하는 수평사회를 구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인류가 수직사회의 폐단을 타파하고자 수평사회를 추구하지만, 그러나 과거 수직사회가 그러한 것처럼 수평사회 또한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도 포함하고 있다. 수직사회나 수평사회나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수직사회와 수평사회의 장점을 모아 그 조화의 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연의 이치요, 인간 본래의 모습이요, 가야 할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분법은 그것이 악(惡)이 아닌 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음양이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조화(造化)를 낳는 것과 같다. 지금 이 나라를 쪼개 놓은 좌파와 우파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반드시 조화를 추구해야 살아 남을 것이다. 강지원 변호사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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