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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시대] 향토사학자 박희씨

    “지구가 남아 있는 한 ‘핏줄’은 인간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이명박 시장은 역대 2005대 서울 수장” 최근 이명박 시장이 역대 ‘서울 수장(首長)’으로는 꼭 2005대여서 올 연도와 똑같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던 향토사학자 박희(52)씨는 22일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서울 강동구 길1동 396의10 강동우체국 건너편 한 건물 지하 1층에서 만난 그는 다짜고짜 출입구 쪽에 놓인 캐비닛을 열어 보여줬다. 지난 2003년 10월 당시에 쓰던 공간이 비좁아 새로 마련했다는 35평짜리 연구실은 자료로 가득했다. 사방을 빙 둘러싼 사람 키높이의 책꽂이로도 모자라 의자, 소파 등 발디딜 틈만 빼고는 죄다 논문·잡지 등이 수북이 쌓여 먼지가 펄펄 날릴 듯했다. “석보상절(釋譜詳節·조선 세종 때 수양대군이 왕명으로 편찬한 석가모니의 일대기) 영인본입니다.50권 한정본으로 찍은 것이어서 희귀하지요.” 박씨는 이어 조선시대 규장각본과 해인사 대장경 영인본 등 오래돼 노랗게 탈색한 서적들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 대대로 내려온 서적들 가운데 오·탈자가 하나도 없는 것을 꼽으라면 이 두가지입니다. ●선조들이 해인사 대장경 엮을 때처럼 정성껏 박씨는 해인사 대장경의 경우 선조들이 ‘1자 3배’(목판에 한 글자 쓰거나, 새긴 뒤 세번 절하는 것)로 믿기 힘든 정성을 쏟았으니 호국정신이 얼마나 강했는지 엿보입니다. 그러니 오·탈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한글학회가 발간한 자료집에 이르자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명사전 18권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6·25때 일입니다. 패잔병들이 흩어졌다가 작전지도로 보아 율곡리라는 마을에서 합류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군인들은 율곡리를 찾았지만 마을사람들이 ‘율곡이 아니라 밤실(율곡리의 우리말 지명)’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렸고, 결국 전사자로 처리된 사례가 많았답니다.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이죠. 보다 못한 유엔사령부가 지명사전 발간에 착수했어요.” 박씨가 소장한 서적 중에는 1953년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으로 전국의 한문 작가들이 써 올렸다는 글을 엮어낸 ‘헌수송’(獻壽頌)이라는 책도 있다. ●세태 변해도 문중에 대한 관심은 대단 그는 요즈음 서울의 역대 수장들이 남긴 문학 발자취를 더듬어 자료로 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헌에 나오는 얘기들을 다듬고, 그들의 문중을 찾아가 후손들과 만나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세태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집안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600여년간 1417명인 서울 수장에 얽힌 신문기사가 나가자 전국에서 온갖 성씨(姓氏)들이 ‘우리 조상님도 그 벼슬을 지냈는데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상고를 나와 회사원으로 일하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친 그는 보기 드물게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의 문학세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땄다. 한문소설 종옥전(鍾玉傳) 번역판과 수학·과학 학술용어사전, 고사성어 사전 ‘동양의 향기’ 등의 저서를 펴냈다. 한문학 전문가로 수학·과학 용어사전을 낸 이유를 묻자 “과학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가 한자의 간단한 원리만 알면 깨우치기 쉬운데 학생이나 모두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워서….”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전문가가 추천하는 나만의 여행지 3

    전문가가 추천하는 나만의 여행지 3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숨겨두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직업상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사 대표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오지탐험, 허니문 등 ‘색깔있는’ 테마여행 상품만을 만들어온 국내 중견 여행사 대표들로부터 가슴속에 묻어둔 여행지에 대해 들어봤다. (1) 티베트 남초 호수<석채언(44) 혜초여행사 대표> 산이 좋아 전세계 산을 누비고 다니는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해발 4718m에 위치해 ‘하늘 호수’라고 불리는 남초 호수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자연 호수이자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염류 농도가 높은 호수)다. 길이 70㎞, 너비 30㎞에 이르는 남초 호수는 성호 마나사로바가 성산 카일라스를 남편으로 받들 듯이 탕코라 산을 마주하고 있다. 드넓은 호수의 빛깔은 하늘을 닮아 푸르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 남초 호수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호수로 여겨진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몇 주에 걸쳐 호수 둘레를 돌며 ‘옴마니 반메훔’을 외운다. 라싸에서 190㎞ 떨어져 있는 남초 호수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호수이다. 비포장길을 따라 어깨를 나란히 달려온 6000m급의 히말라야 산맥과 파릇한 목초지가 빚어내는 자연 풍광은 도저히 눈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호수에서 바라보는 탕코라 산의 늠름한 자태는 남초를 든든한 어머니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호숫가 바로 옆에는 오색찬란한 룽다와 탈루초가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순례를 나선 티베트 사람들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호파(湖派)처럼 쉬지 않고 코라를 돈다. 호수 주위를 도는 코라는 마나사로바처럼 일주일가량 걸린다. 대부분의 티베트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바위산을 1시간가량 도는 코라를 즐긴다. 마음까지 깨끗해질 것 같은 남초호수, 꼭꼭 숨겨두고 싶은 곳임에 분명하다. (2) 베트남 나짱(나트랑)<이성훈(46) 가야여행사 대표> 5년전 처음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첫 인상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따뜻한 미소였다. 또 프랑스식 건축양식과 넓은 녹지, 평화로운 새들의 지저귐 속에 바게트빵과 쌀국수의 조화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를 먹으며 베트남의 고요한 아침을 느꼈다. 특히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나짱(나트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월남전 때 한국군 야전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우리와의 인연도 깊다.‘동양의 나폴리’,‘베트남의 지중해’로 불리는 나짱은 약 6㎞에 이르는 해변이 고운 모래로 뒤덮여 있다. 곳곳에 푸르게 우거진 야자나무가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나짱은 1년전 새로운 공항건물이 들어섰으며, 주변에는 새로 조성한 도로와 현대적인 시설들이 들어서 있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나트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변 주위에는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고, 호텔을 비롯한 리조트 시설도 갖춰져 있다. 베트남의 전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형 재래시장과 우체국, 참족의 문화유적인 포나가르 신전 등도 잘 보존돼 있다. 아름다운 해변 나트랑에서는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10여명이 탈 수 있는 배로 인근 무인도를 둘러보면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다를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직접 잡아 올린 생선을 그 자리에서 맛볼 수도 있다. 인근 항구에는 수많은 어선들로 가득하다. 수산자원이 더없이 풍부하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리조트들이 해변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고객을 위한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의 아나만다라리조트는 5년 전 첫 방문했던 나를 지금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아기자기한 독채 빌라 형태의 객실 구조로 그동안 길들여진 빌딩 스타일의 리조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하는 곳이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고향 같은 곳이다. (3) 알래스카 포스테지 빙하공원<김영규(45) 포커스투어 사장> 알래스카는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수려한 경관, 일년내내 흥미와 스릴을 즐길 수 있는 광활하고 순수한 대지,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산을 비롯한 수많은 국립공원들, 지구촌 어느 곳과도 비길 수 없이 완벽한 야생동물 보호지역 등 다양한 모험과 흥미가 가득한 곳이다. 알래스카는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인디언 말. 눈, 오로라, 스키, 개썰매, 에스키모, 연어, 곰, 고래, 빙하가 함께하는 곳이다. 알래스카에서 비행기나 낚시보트를 이용해 여기저기를 이동하며 하는 낚시와 자연과 하나된 낚시캠프, 웅장한 산맥들, 화려한 오로라,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다. 주요 관광지로는 포테이지 빙하공원, 매킨리 비행관광, 프린스윌리엄 사운드, 서프라이즈 빙하관광, 디날리 국립공원 관광 등이 있다. 포테이지 빙하 호수의 나이는 80세에 이른다. 깊이는 200∼300m. 호수에는 고기가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 호수 빙하만을 관광하는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으며 빙벽까지 유람할 수 있다. 약 1시간 걸린다. 타키티나 비행장에서 5∼9인승 비행기를 타고 매킨리산을 관광하는 경험은 색다른 추억을 안겨준다. 한시간 코스와 1시간30분 코스가 있으며 어느 것이나 깎아지른 암벽과 험한 계곡을 누빈다. 야생동물이 뛰노는 디날리공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저공비행으로 관찰할 수 있다. 서프라이즈 빙하관광은 프린스윌리엄 사운드 지역을 4∼5시간 동안 배를 타고 관광하며 바다 표범, 수달, 고래, 바다새 등과 빙하를 관람하는 코스. 알래스카의 크고 작은 빙하는 약 10만개에 달한다. 총면적은 2만 8842평방마일. 서울에서 떠나는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알래스카 여름 성수기인 6월말부터 8월말까지 운항한다. 피서여행으로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
  • [사고] 광주 한마음걷기대회

    서울신문 광주지사,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광주지역협의회, 광주시생활체육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청소년선도 및 학교폭력 추방실천 한마음 걷기대회’가 오는 25일 열립니다. 한마음 걷기대회는 학부모·학생·시민 모두가 학교폭력 근절에 동참, 건전한 사회분위기 및 교육풍토 조성을 위해 마련됐습니다. 참가자 2000명에게는 선착순으로 기념T셔츠를 제공하며, 물과 가전제품 등을 비롯해 푸짐한 경품도 준비됐습니다. 걷기 코스는 광주월드컵경기장 남쪽주차장∼신암마을 사거리∼풍암저수지∼마재우체국∼서구문화센터∼송촌파인힐스 아파트∼월드컵경기장 주차장 등으로 모두 4.2㎞ 구간입니다. 광주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모이는 때·곳 25일 오전 8시, 서구 염주동 월드컵경기장 남쪽 주차장. ●후원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교육청, 광주지방검찰청,KBS광주방송총국, 스포츠서울, 굿모닝서울. ●주관 광주광역시워킹협회. ●문의 서울신문 광주지사 (062)222-4090∼1
  • 광주 충장로 지붕 씌운다

    광주의 대표적 번화가인 충장로의 하늘이 투명 덮개로 덮인다. 17일 광주시와 동구에 따르면 오는 2008년까지 모두 248억원을 들여 충장로1∼5가 전체 거리에 지붕을 씌우는 아케이드(투명덮개)를 설치키로 했다. 동구는 1차로 내년까지 72억원을 투입, 충장로1∼3가(길이 450m·폭 8m)에 햇빛과 비를 막아 연중 관광 및 쇼핑이 가능한 아케이드 공간을 만든다. 이후 2008년까지 충장로4∼5가(길이 600m·폭 8m)와 충장로 연결도로 (500m·폭 8m) 구간을 단장한다. 연결도로는 삼복서점∼광주우체국∼콜박스 사거리, 우리은행∼런던약국 사거리 구간 등이다. 이들 도로에도 본 통로와 똑같이 아케이드를 설치, 충장로 전체를 전천후 도심으로 바꾼다. 특히 아케이드로 덮인 충장로를 지역의 명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실내에 자연 채광이 가능토록 설계한다. 또 도로는 석재·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세련된 도시감각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거리 군데군데에는 화단과 벤치·수족관 등을 확보해 휴식과 쇼핑이 공존하는 현대적 쇼핑타운으로 변신시킨다. 동구는 또 아케이드와 기존의 낡은 상가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충장로 전 상가들이 리모델링에 참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건물주들과 협의해 건물의 외형 및 디자인 등도 결정키로 했다. 유태명 동구청장은 “이곳을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으로 이어지는 도심 문화벨트로 조성, 충장로의 옛 명성을 되찾고 도심공동화 현상도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웰빙 시대, 청정 산나물 하나로 부자를 꿈꿉니다.” 인구 2만 1890여명.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강원도 양구군이 산채 재배에 승부수를 던졌다. 해발 1300m 안팎의 대암산과 가칠봉을 병풍처럼 두른 DMZ 인근 청정 자원을 활용해 벽오지의 가난을 벗어 보겠다는 몸부림이다. 곰취, 더덕, 고사리, 도라지, 두릅, 느타리버섯 등을 해발 600∼800m의 산중턱에서 대량 재배해 고소득을 올린다는 복안이다. 우선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오염과는 거리가 먼 것이 큰 장점이다. 이곳 지형이 분지(일명 펀치볼지역)인 까닭에 일교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산나물의 향과 맛이 최고라는 것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더구나 웰빙 바람이 불면서 곰취 등 산나물이 항암효과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과 섬유질,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잇따라 알려져 인기 식품으로 뜨고 있는 것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같은 효능을 활용해 양구군은 ‘산채 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전국 최고의 산채 중심지를 만들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 전국 최우수 신활력 사업으로 선정, 국비가 포함돼 추진되는 만큼 사업비만 124억원에 달하는 야심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첫해인 올해는 곰취, 더덕 등 산채 재배 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마을별 작목반을 모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생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암산 산채작목반원 35명을 중심으로 250농가까지 늘려 생산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양구군 전체 농업인구(2074가구)의 4분의1을 산채 재배에 종사하게 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산채군(郡)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작목반이 모아지면 강원도 산채시험장과 대관령 고령지 시험연구소, 강원대, 한림대 등에서 산채 재배기술을 배우게 한다는 방침이다. 제대로 기술을 배워 생산기반을 탄탄하게 갖춘다는 것이 1차 목표다. 해안면 제4땅굴 인근에 통일농장을 세워 산채종자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묘포장까지 갖출 계획이다. 국비, 지방비 등 60억원이 투입돼 조성되면 역시 전국 최고의 산채 연구단지가 될 전망이다. 생산되는 산채종자는 양구군은 물론 전국 산채 재배지로 팔려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산채전문시장과 가공산업, 유통사업단 설립까지 추진한다. 재래시장인 양구중앙시장을 산채만을 전문으로 사고 파는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지금은 서울 경동시장과 대구 약령시장 등에 산채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양구중앙시장을 산채전문시장으로 리모델링해 놓으면 생산지는 물론 연구단지, 도·소매 판매장이 어우러져 산채전문시장으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산채를 이용한 ‘먹을거리 촌’도 구상 중이다. 국토 정중앙 지점으로 알려진 남면 도촌마을에 산채를 재료로 만든 각종 음식 판매점을 만들어 도시인들이 찾아오게 하겠다는 취지다. 곰취국수, 뽕잎국수 등 양구에서 생산되는 산채로 만드는 음식은 모두 포함시킨다는 전략이다. 산채가공식품도 연구되고 있다. 곰취찐빵과 더덕무침, 각종 산채 장아찌, 마른 고사리·취나물, 깐 도라지, 더덕 등도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으로 판매된다. 여기에 곰취, 더덕 등을 가루로 만들어 차(茶)와 음료수 등 건강보조식품으로 생산하는 방안도 적극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7년쯤이면 현재의 건강보조식품 생산라인을 활용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 유통을 위해 유통사업단도 별도로 구성되고 전자상거래를 접목한 유통망도 갖추게 된다. 산채를 테마로 클러스터 구축이 차근차근 추진되면 양구군이 휴전선 오지마을에서 웰빙마을로 각광을 받을 날도 머지않았다. 현지인들도 벌써부터 꿈에 부풀어 있다. 결국 ‘양구군=청정 산채마을’로 브랜드화해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꿈꾸고 있다. 서울∼춘천∼양구로 이어지는 도로망(국도 46·31번) 확포장과 2008년 개통되는 동서고속도로 등이 완공되면 서울∼양구간 거리가 1시간 10분대로 대폭 줄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근의 박수근미술관과 선사박물관, 제4땅굴 등 볼거리와 연계해 산채마을은 양구군의 또 다른 이미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경순 양구군수는 “양구 팔랑리의 흑돼지 고기를 자연산 곰취와 함께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면서 “‘볕의 마을’ 양구를 산채를 중심으로 새롭게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하우스 곰취’ 두달새 4000만원 매출 “깊은 산속에 심어 놓은 곰취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면 마치 잘 키운 자식들 같습니다.” 14년 전부터 곰취를 재배해오고 있는 최관수(55·대암산 산채작목반장). 정재심(54)씨 부부는 ‘곰취 아빠 엄마’로 통한다. 사람들이 자연산 곰취만을 알고 있던 시절 곰취재배를 궁리해 냈고 산채작목반까지 이끌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목반 식구가 35명으로 늘었지만 초창기 곰취 재배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산속을 헤매며 곰취를 뿌리째 캐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일이 한포기 한 포기 캐내 하우스에 옮겨 심어 놓으면 온도와 습도, 차광이 맞지 않아 번번이 시들고 죽어갔다. 어렵게 살려 어느 정도 활착에 성공했다고 한시름 놓고 나자 이번에는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또다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소비자들이 산에서 자생하는 곰취가 시장에 널려 있는데 굳이 하우스 재배 곰취를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곰취 재배로 큰 돈을 벌자고 뜻을 함께했던 초창기 5명 가운데 3명은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전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그러나 최씨 부부는 냉동차를 구입,1996년부터 서울 가락동시장을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에는 농협과 우체국택배, 인터넷 판매망(한글 주소창:양구 대암산곰취)까지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하우스재배 면적만도 3000여평으로 늘었고 5년 전부터는 대암산 중턱 해발 600∼700m에 800평 정도의 노지재배단지까지 개간해 놓았다. 올 4월부터 지금까지 수확한 곰취가 4000박스, 매출액만 4000만원을 웃돈다. 꽃을 피우는 7월말까지 계속 출하가 이어지기 때문에 올해 매출액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씨는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곰취는 향과 맛이 뛰어나 서울 대형 백화점 등에서 최상품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랑한다.“생산량이 달려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라는 귀띔도 한다. 노지재배단지도 아까시나무와 뽕나무가 울창한 곳에 만들어 차광 효과가 뛰어나다. 단지 옆 골짜기에 흐르는 샘물도 가재가 우글거릴 만큼 1급수다. 당연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최상급이다. 올해에는 노지재배 면적을 2000여평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곳에는 곰취 외에 두릅과 참나물 등을 심어 산채류 재배 종류도 늘려볼 계획이다. 최씨는 “올해처럼 가뭄이 찾아오면 노지재배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노지재배단지에도 물을 뿌려줄 수 있는 시설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의전화 (033)481-5944, 011-791-5944.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웰빙 시대, 청정 산나물 하나로 부자를 꿈꿉니다.” 인구 2만 1890여명.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강원도 양구군이 산채 재배에 승부수를 던졌다. 해발 1300m 안팎의 대암산과 가칠봉을 병풍처럼 두른 DMZ 인근 청정 자원을 활용해 벽오지의 가난을 벗어 보겠다는 몸부림이다. 곰취, 더덕, 고사리, 도라지, 두릅, 느타리버섯 등을 해발 600∼800m의 산중턱에서 대량 재배해 고소득을 올린다는 복안이다. 우선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오염과는 거리가 먼 것이 큰 장점이다. 이곳 지형이 분지(일명 펀치볼지역)인 까닭에 일교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산나물의 향과 맛이 최고라는 것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더구나 웰빙 바람이 불면서 곰취 등 산나물이 항암효과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과 섬유질,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잇따라 알려져 인기 식품으로 뜨고 있는 것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같은 효능을 활용해 양구군은 ‘산채 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전국 최고의 산채 중심지를 만들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 전국 최우수 신활력 사업으로 선정, 국비가 포함돼 추진되는 만큼 사업비만 124억원에 달하는 야심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첫해인 올해는 곰취, 더덕 등 산채 재배 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마을별 작목반을 모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생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암산 산채작목반원 35명을 중심으로 250농가까지 늘려 생산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양구군 전체 농업인구(2074가구)의 4분의1을 산채 재배에 종사하게 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산채군(郡)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작목반이 모아지면 강원도 산채시험장과 대관령 고령지 시험연구소, 강원대, 한림대 등에서 산채 재배기술을 배우게 한다는 방침이다. 제대로 기술을 배워 생산기반을 탄탄하게 갖춘다는 것이 1차 목표다. 해안면 제4땅굴 인근에 통일농장을 세워 산채종자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묘포장까지 갖출 계획이다. 국비, 지방비 등 60억원이 투입돼 조성되면 역시 전국 최고의 산채 연구단지가 될 전망이다. 생산되는 산채종자는 양구군은 물론 전국 산채 재배지로 팔려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산채전문시장과 가공산업, 유통사업단 설립까지 추진한다. 재래시장인 양구중앙시장을 산채만을 전문으로 사고 파는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지금은 서울 경동시장과 대구 약령시장 등에 산채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양구중앙시장을 산채전문시장으로 리모델링해 놓으면 생산지는 물론 연구단지, 도·소매 판매장이 어우러져 산채전문시장으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산채를 이용한 ‘먹을거리 촌’도 구상 중이다. 국토 정중앙 지점으로 알려진 남면 도촌마을에 산채를 재료로 만든 각종 음식 판매점을 만들어 도시인들이 찾아오게 하겠다는 취지다. 곰취국수, 뽕잎국수 등 양구에서 생산되는 산채로 만드는 음식은 모두 포함시킨다는 전략이다. 산채가공식품도 연구되고 있다. 곰취찐빵과 더덕무침, 각종 산채 장아찌, 마른 고사리·취나물, 깐 도라지, 더덕 등도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으로 판매된다. 여기에 곰취, 더덕 등을 가루로 만들어 차(茶)와 음료수 등 건강보조식품으로 생산하는 방안도 적극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7년쯤이면 현재의 건강보조식품 생산라인을 활용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 유통을 위해 유통사업단도 별도로 구성되고 전자상거래를 접목한 유통망도 갖추게 된다. 산채를 테마로 클러스터 구축이 차근차근 추진되면 양구군이 휴전선 오지마을에서 웰빙마을로 각광을 받을 날도 머지않았다. 현지인들도 벌써부터 꿈에 부풀어 있다. 결국 ‘양구군=청정 산채마을’로 브랜드화해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꿈꾸고 있다. 서울∼춘천∼양구로 이어지는 도로망(국도 46·31번) 확포장과 2008년 개통되는 동서고속도로 등이 완공되면 서울∼양구간 거리가 1시간 10분대로 대폭 줄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근의 박수근미술관과 선사박물관, 제4땅굴 등 볼거리와 연계해 산채마을은 양구군의 또 다른 이미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경순 양구군수는 “양구 팔랑리의 흑돼지 고기를 자연산 곰취와 함께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면서 “‘볕의 마을’ 양구를 산채를 중심으로 새롭게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하우스 곰취’ 3000평… 年 수천만원 수익 “깊은 산속에 심어 놓은 곰취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면 마치 잘 키운 자식들 같습니다.” 14년 전부터 곰취를 재배해오고 있는 최관수(55·대암산 산채작목반장). 정재심(54)씨 부부는 ‘곰취 아빠 엄마’로 통한다. 사람들이 자연산 곰취만을 알고 있던 시절 곰취재배를 궁리해 냈고 산채작목반까지 이끌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목반 식구가 35명으로 늘었지만 초창기 곰취 재배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산속을 헤매며 곰취를 뿌리째 캐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일이 한포기 한 포기 캐내 하우스에 옮겨 심어 놓으면 온도와 습도, 차광이 맞지 않아 번번이 시들고 죽어갔다. 어렵게 살려 어느 정도 활착에 성공했다고 한시름 놓고 나자 이번에는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또다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소비자들이 산에서 자생하는 곰취가 시장에 널려 있는데 굳이 하우스 재배 곰취를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곰취 재배로 큰 돈을 벌자고 뜻을 함께했던 초창기 5명 가운데 3명은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전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그러나 최씨 부부는 냉동차를 구입,1996년부터 서울 가락동시장을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에는 농협과 우체국택배, 인터넷 판매망(한글 주소창:양구 대암산곰취)까지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하우스재배 면적만도 3000여평으로 늘었고 5년 전부터는 대암산 중턱 해발 600∼700m에 800평 정도의 노지재배단지까지 개간해 놓았다. 올 4월부터 지금까지 수확한 곰취가 4000박스, 매출액만 4000만원을 웃돈다. 꽃을 피우는 7월말까지 계속 출하가 이어지기 때문에 올해 매출액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씨는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곰취는 향과 맛이 뛰어나 서울 대형 백화점 등에서 최상품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랑한다.“생산량이 달려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라는 귀띔도 한다. 노지재배단지도 아까시나무와 뽕나무가 울창한 곳에 만들어 차광 효과가 뛰어나다. 단지 옆 골짜기에 흐르는 샘물도 가재가 우글거릴 만큼 1급수다. 당연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최상급이다. 올해에는 노지재배 면적을 2000여평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곳에는 곰취 외에 두릅과 참나물 등을 심어 산채류 재배 종류도 늘려볼 계획이다. 최씨는 “올해처럼 가뭄이 찾아오면 노지재배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노지재배단지에도 물을 뿌려줄 수 있는 시설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의전화 (033)481-5944, 011-791-5944.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현대증권, 독도수호기금 전달

    현대증권이 남다른 독도사랑으로 재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지난 13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독도사진전을 갖고 있는 현대증권은 14일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에 300만원의 기금을 전달했다.전시 중인 사진과 자료는 그동안 독도수호대가 촬영하고 수집해둔 희귀 작품 50점이다. 현대증권 김지완 사장은 “현대증권은 오래 전부터 나라사랑의 일환으로 독도에 관심을 가졌으며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성원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현대증권은 지난 2002년 9월 일찌감치 ‘유퍼스트(You First) 사이버독도지점’을 개설, 이 지점을 통해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신규고객 1인당 1000원씩을 기금으로 적립해오고 있다. 사이버독도지점은 현대증권의 지점 외에 국민, 우리, 씨티, 대구, 조흥, 하나, 제일은행과 우체국 등 9개 제휴은행을 통해 계좌를 개설한 고객들을 위한 지점이다. 사이버독도지점의 고객이 인터넷 홈페이지(youfirst.co.kr)에 신청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독도 사진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독도수호대는 2000년 3월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독도수호를 위한 국토대장정, 독도 수중탐사, 독도학술탐사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 최근에는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해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우체국·농협등 판매 ‘유사보험’ 가입 주의

    우체국·농협등 판매 ‘유사보험’ 가입 주의

    울산에 사는 김모씨는 지난 1990년 신용협동조합에서 판매한 순수보장성 보험에 가입했다. 만 65세 이전에 사망하면 보험금 2000만원이 나오는 상품이다. 김씨는 보험료를 자동이체로 11년째 불입하다 2002년 간경화로 사망했다. 당시 부인은 가출했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보험가입 사실을 몰라 누구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보험료는 2003년까지 14회 더 자동으로 빠져나갔다. 가출한 부인이 올 1월 돌아와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금청구 소멸시효인 ‘사망후 2년6개월’이 지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다. ●농협공제 판매액 업계 4위 7일 보험소비자연맹에 따르면 만약 김씨가 일반 보험사의 보장보험에 가입했다면 보험금 청구 기한이 지났어도 그동안의 납입 실적 등을 감안해 유족들이 보험금의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우체국,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에서 판매하는 ‘공제 상품’이 보험으로 잘못 알고 있는 소비자들을 울리고 있다. 공제 상품은 보험과 똑같은 기능을 하지만 엄밀히 보면 합법적인 유사보험일 뿐이다. 지난해 34개 보험사들의 수입보험료는 81조 7561억원으로 전년보다 1.73% 줄었다. 반면 5대 유사보험 사업자의 판매액은 13조 3283억원으로 0.86% 감소한 데 그쳤다. 농협공제는 보험업계 4위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유사보험이 그만큼 장사를 잘 한 이유는 보험료가 덤핑에 가깝게 싸기 때문이다. 농협공제는 행정자치부, 서울시, 경찰청 등 7개 정부기관의 단체 보험을 독차지했다. 설계사 운영비, 상품개발비 등이 들지 않기 때문에 보험료가 30% 정도 싸다. ●가입 전 약관 잘 살펴야 하지만 일반 보험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상품개발에서 판매까지 정기·수시 검사를 받는 데 반해 유사보험은 이같은 제어장치도 전혀 없다. 따라서 보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도 안된다. 외국에서도 공제사업이 보험판매를 직접 하지 못하도록 했고, 자회사를 통한 판매도 대상을 조합원으로 제한했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유사보험은 분쟁이 발생하기 쉽지만 해결 방법이 법적 소송밖에 없다.”면서 “가입 전에 보험금 지급규정 등 약관을 잘 살피고 분쟁이 생기면 해당 기관의 민원 창구를 통해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분실휴대전화 이렇게 찾아라

    분실휴대전화 이렇게 찾아라

    직장인 정모(44)씨는 지난 달 ‘핸드폰찾기콜센터’로부터 잊어버렸던 휴대전화 단말기를 보관하고 있다며, 주소지로 보내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1년전 택시에 놓고 내린 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차에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이 습득자가 타인이 이 단말기를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불법 유통업자에게 팔아도 몇만원밖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진 신고를 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 40만원대 신제품을 구입,2개월정도 사용하다가 잃었다. 물론 곧바로 분실신고도 했다. ●주운 휴대전화 쓰기 힘들다 휴대전화가 ‘손안의 필수품’이 되면서 분실 건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해까지는 전년도보다 100만대정도가 늘어난 458만대가 분실됐고,2명 중 1명은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분실폰은 불법복제 등으로 범죄에 악용돼 예기치못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크다. 지금까지는 대략 5만원을 받고 암거래상 등에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불법복제에 대한 강력한 단속의지를 밝히고, 분실자들도 신고를 해두면 단말기 일련번호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 분실폰을 사용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단말기를 주웠다, 그다음 어떻게 하지? “최고의 선물로 치는 새 단말기를 주운 사람은 십중팔구 소유 욕심이 생겨 신고를 머뭇거리게 된답니다.” 부산 해운대우체국의 한 직원은 신고가 늦은 이유를 물어보면 ‘일단 신고할까 말까 머뭇거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신고 방법을 잘 모르고 번거로워 신고를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휴대전화를 습득하면 우선 가까운 우체국·경찰서(파출소)나 지하철 등 유실물센터, 철도청, 핸드폰찾기콜센터에 접수를 하면 된다. 이후 콜센터는 단말기 고유번호를 활용, 이동통신사에다 분실폰 가입자 여부를 조회한 뒤 택배로 무료로 전달해 주거나 분실자가 우체국에서 직접 찾아간다. 습득자가 직접 휴대전화를 갖고 가 신고해야 돼 우체함에 넣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습득자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주운 뒤에 무심코 배터리를 빼놓거나, 자신이 쓸 요량으로 기기변경을 하면 고의성이 인정돼 범법자로 몰릴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해 11월 찜질방에서 단말기를 주운 뒤 옷장에 넣어둔 습득자에게 카운터에 맡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정보통신산업협회는 휴대전화 습득자가 신고하면 5000∼2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준다. ●분실자가 챙겨야 할 것도 있다 단말기를 잃어버린 뒤 전화를 하지만 안받는 경우가 많다. 분실 당사자도 지쳐 새 단말기를 구입해 버린다. 하지만 ‘발품, 손품’을 팔아야만 분실휴대전화를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분실신고는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어 이동통신사를 통해 ‘발신정지’만 하고 수신을 살려둘 필요가 있다. 당사자가 해외전화 등으로 장시간 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전화로 계속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위치추적 서비스에 가입했다면 이를 시도해 봄직하다. 친구찾기 등 분실폰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서비스는 업체마다 있다. 이 외에 분실폰에 입력한 전화번호들이 아깝다면 신분증을 갖고 이동통신회사의 서비스센터로 가서 ‘통화내역조회’를 조회하면 복구시킬 수 있다. 이동통신 3사의 대여폰 무상대여 등을 이용해도 도움이 된다. 대여폰은 찾을 때까지 쓸 수 있지만 유료폰과 무료폰으로 나눠져 있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유로 대여폰은 최신형이 많아 폰을 찾지 못하면 그냥 기기변경을 하는 경향이어서 유료 대여폰을 권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KTF는 ‘굿타임 방문 서비스’를 통해 대여폰을 배달해 준다.‘분실폰 위치확인’ 무료서비스도 있다. 신고를 하면 분실폰에 위치가 추적됨을 알리는 문자메시지와 연락처가 전송된다. ‘매직엔→(6)친구찾기→분실폰 위치확인’ 또는, 유선 매직엔(www.magicn.com)을 이용하면 된다. SK텔레콤은 ‘분실휴대폰 찾기’를 운영한다. 네이트(NATE)에서 ‘친구찾기’에 가입해야 한다. 조회 건당 50원의 이용료가 부과된다. LG텔레콤도 ‘엔젤 서비스’에서 단말기 분실때 연락(무선 019-1004·유선 019-1144)하면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찾아가 대여폰을 준다.7일 동안은 무료다. 인터넷사이트(mylgt.co.kr)에 접속해 ‘내폰 찾기’에 들어가면 지도와 함께 위치이동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핸드폰찾기콜센터는 ‘핸드폰 메아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이 서비스는 사전에 콜센터에다 이메일을 등록해 두면 분실폰이 접수됐을때 즉시 이메일로 통보해 준다. 가입은 무료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대민부서 민원서비스는 계속

    다음달 1일부터 공무원 토요휴무제가 전면 시행돼도 국·공립 병원, 경찰 지구대 등 대민부서는 토요일에 민원업무를 한다. 행정자치부는 1일 “7월1일부터 행정기관 주 40시간 근무제를 전면 시행하지만 국민생활과 밀접한 행정서비스는 토요일에도 계속 제공할 방침”이라며 “토요민원서비스 유지 방안과 탄력근무제 운영 방안을 마련, 국무회의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체국, 국·공립병원, 의료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각급 민원실 등 대민서비스기관과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고궁, 극장, 공원, 현충원, 휴양림 등 국민생활이용기관, 경찰 지구대, 소방서, 교도소, 세관, 검역소, 항공관제, 경비함정, 기상대 등 상시근무체제 유지기관 등은 토요민원상황실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행자부는 또 민원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화착신전환시스템을 이용해 일반부서에 걸려온 전화도 토요민원상황실로 즉시 연결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하는 무인민원발급기를 확대 설치하고 통합전자민원창구(www.egov.go.kr) 이용도 적극 권장할 방침이다.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하면 주민등록 등·초본 등 38가지 민원서류 발급이 가능하고, 통합전자민원창구에서는 400여종의 민원서류 발급을 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7월부터는 발급대상 민원서류가 종전의 8가지에서 13가지로 늘어난다. 행자부는 토요일에 근무한 공무원에게는 평일 대체 휴무를 주고 대체휴무가 곤란한 기관에서는 다른 보상방안을 마련토록 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진해는 일본인들이 붙인 지명이다. 원래 웅천읍성이 자리했던 곳으로, 그 웅천 바닷가에는 ‘세스페데스 방한 400주년(1553~1993)기념’이란 설명문이 붙은 조각상이 서 있다.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 톨레도의 니야누에다 데알카르데테 시민들이 우정의 정표로 기증한 것이다. 그는 1593년 12월27일에 웅천포에 도착해 1년여를 이곳 왜성에서 묵었다. 그 34년 뒤인 인조 6년(1628)에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부산 근처에 표착했고, 그로부터 59년 뒤인 1653년에는 하멜이 표류해 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표류가 아닌, 자의로 이 땅에 온 최초의 서양인이다. 그가 머물렀던 웅천 남산왜성을 올랐다. 돌들이 웅장하다. 틀림없는 왜성인데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축성했고 정유재란때 재침해 수축한 것이다. 경상도에는 유난히도 왜성이 많다. 웅천 안골포 양산 영등포 마산 고성 사천 남해왜성 등등 아예 장기 주둔을 염두에 두고 진을 쳤던 흔적들이다. 진해에는 웅천왜성 바로 건너편 안골포에도 왜성이 있다. 사면이 두루 보여 그만한 요새가 없다. 세스페데스가 웅천까지 온 이유를 알자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하다. 임진왜란때 평양성을 공격했던 고니시 고니시는 포르투갈 예수회에 의탁한 천주교도였다. 고니시의 딸 마리아는 당시 19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토시(宗義智)의 아내였는데, 소오는 임란 직전까지 대마도 병마사로 조선의 녹봉을 받았다. 그 역시 천주교 신자였다. 소오는 조선의 지리를 꿰뚫고 조선말에도 능통해 왜군의 앞잡이로 선봉에 섰다. 세스페데스는 이때 일종의 종군 신부로 온 것이다. 그의 수기에 의하면 조선의 훌륭한 문화재는 모두 고니시와 소오가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들은 문화재 약탈뿐 아니라 사람들도 엄청 붙잡아 갔다. 오죽했으면 강항이 ‘간양록’에서 ‘배 600∼700척이 몇 리에 걸쳐 바다를 메우고 있는데, 배마다 조선 남녀의 통곡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시킬 정도’라고 기록했을까. 고니시도 평양성 전투에서 6살 난 전쟁고아 소녀를 데려가 ‘오타’란 이름을 지어주고 길러 ‘줄리아’라는 세례명까지 얻게 했다. 도요토미가 죽은 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벌인 대격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니시는 패하여 처형된다. 줄리아도 이때 외딴 섬으로 귀양가 신앙을 지키며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하나의 ‘신화’가 됐다. 한편 고니시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오는 마리아와 이혼하고 도쿠가와의 가신으로 들어간다. 세스페데스는 1597년 3월에 다시 내한했다가 도쿠가와의 선교사 추방령으로 수박골에 피신해 있다 두달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다. 임진왜란이라는 한·일간의 유쾌하지 못한 전쟁통에 묻어 오기는 했지만 서양인의 첫 방문은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왜성이 위치한 안골포는 임란 전승지로 유명한 곳.1952년 7월 왜 수군의 주력부대가 한산도에서 참패를 당하자 그를 따르던 가토 기요마사의 42척 제2 주력부대가 당황한 나머지 안골포에 옮겨 정박한 것을 이순신이 추격, 격파한다. 한산도해전과 더불어 안골포해전은 왜 수군 주력부대를 격멸한 큰 전공지였다. 이듬해인 1593년 2월부터 한달동안 이순신 함대는 웅포에 무려 7차례나 출격해 해전을 치렀는데, 이때 웅포 남산왜성의 왜 육군이 엄호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세스페데스는 그 해 겨울 웅천으로 들어왔다. 안골포에는 굴강(掘江)이 남아 있다. 방파제와 선착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남 여천에 선소(船所)와 굴강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진 지금 이곳의 해양문화사적 의미는 크다. 이순신의 대격전지에 이같은 해양 유적이 전해지고 있어 감회가 새로운데 머잖아 간척될 계획이라 운명이 풍전등화다. 매립하여 공원을 조성하고 바닷물을 끌어들여도 굴강만은 살릴 계획이라지만 이 희귀한 문화유산이 전해지는 임진왜란 대첩지를 매립해 땅을 얻어 써야겠다는 문화적 반달리즘을 두고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진해는 대마도를 거쳐서 규슈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마산에서 여몽연합군이 후쿠오카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듯 최단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본디 최초의 왜관이 자리잡은 곳도 또한 이곳 웅천이다. 왜관은 모두 세 군데에 있었으나 삼포왜란 이후에 변란을 걱정해 웅천왜성은 폐지되어 부산의 초량 왜관으로 통합됐다. 이같이 일본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진해에 다시 왜인들이 나타난다. 근 300여년 만에 이번에는 왜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로 변신해 나타났으니, 그들은 지형·정서적으로 가장 잘 아는 곳부터 점령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진해만을 동양 제일의 대군항으로 키우기 위해 한반도 최초로 조직적·계획적 도시계획을 입안한다. 진해라는 말부터가 일인에 의해 처음 쓰여졌고, 옛 웅천읍성과 무관하게 신도시로 재탄생했으니 식민지 항구도시 건설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당시 비동 현동 좌천 등 여러 마을을 합해 진해라 부르고 진해만 군항지를 편의상 진해만이라 칭한 것이다. 군항지 경영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돈인 800만원을 퍼부어 10개년 사업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바닷가 염습지와 황무지를 매립하여 땅을 얻고 농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했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12일에는 해군 함정을 거제도 송진포 연안에 대놓고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도 했다. 송진포에 ‘일본제국 해군 가근거지 방비대’를 설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의 여세를 몰아 웅천지역의 토지를 강탈하기에 이른다. 당시 시가지는 12만평이었으며, 계획도시답게 모범적 시가를 만들기 위해 도로는 방사형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오늘날 진해의 중원로터리 등을 보면 사방팔통으로 도로가 교체하는데, 여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미관을 엄격히 고려하고 토지를 1∼3등으로 3분하여 건축을 제한했다. 건물은 2∼3층을 원칙으로 하고 4층 이상은 허가를 받아 짓도록 했다. 이곳 토지를 불하받은 일인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도쿄 사세보 사가 조슈 나가사키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에 오래 전에 나와있던 용산, 마산, 부산 등지의 일본인들도 이곳으로 몰려 왔다. 이로써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의 신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조선인도 참여할 수 없었으며, 목포나 군산처럼 본래의 조선인촌과 병존하게 하지도 않은 식민도시였다. 그리하여 일제 해군본부가 들어서고, 한국뿐 아니라 극동의 군항으로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한국 해군의 본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진해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풍경을 읽는다.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로터리 모퉁이에 고색창연한 진해우체국이 서있어 식민지 시대를 전하고 있다. 도로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일장기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충무공 동상으로는 전국 최초인 1951년에 창원 통영 고성 김해 마산 등에서 갹출해 북원광장에 조성한 것이다. 일장기형 도로와 이순신의 동상이 주는 이중창이 묘한 갈등으로 다가온다. 자고로 벚꽃이 유명하여 4월 초순에는 군항제가 열린다. 충무공의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벚꽃도 즐기는 최대의 행사인데,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 속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의 이미지는 왠지 좀 거북한 느낌이었다. 제황산정에는 웅장하게 솟은 탑이 있다. 일인들이 세운 러일전쟁 기념탑을 광복 후 철거하고 1967년 해군의 기함사령탑을 상징하는 이 탑으로 교체했다. 시내 로터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했을 때 남긴 기념휘호를 각인한 비석이 있는데 가장자리가 깨져 있다.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을 땜질해 붙여놓았다. 로터리 중심의 나무에 가려져 있어 외부인은 그런 비석이 있는 줄도 모른다. 반면에 진해 바닷가에는 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과 전용 낚시터, 장제스를 만났다는 육각정 등이 잘 보존돼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디 일본군 통신대가 쓰던 건물이다. 진해 사람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해군기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보니 도시의 주요 토지들은 모두 군용으로 묶여 발전이 없다. 군사도시인 탓에 규제가 심해 발족 당시의 인구에서 별반 늘어난 게 없다. 게다가 부산시와의 갈등도 내연 상태다. 신항만 건설부지의 80%를 내놓았지만 명칭이 부산신항만으로 결정되는 분위기여서 폭발 일보 직전이다. 부산신항인지, 부산·진해신항인지를 놓고 대격돌을 벌이는 중이라 이래저래 군사도시의 고충이 깊은 요즘이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군항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게다가 이웃 거대도시 부산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진해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가장 쾌적하고 맞춤한 인구, 공장이 적은 대신 맑은 숲과 바다를 지닌 천혜의 미항 진해이건만 미래가 투명하게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벚꽃 펄펄 날리는 조건에서도 소작쟁의는 물론 동양제사 노동자들의 대투쟁, 그리고 각종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주기철 목사같이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진정한 종교인을 배출한 곳이 진해 아닌가(황정덕의 ‘진해 항일독립운동사’ 참조). 진해예술촌장을 맡아 군사도시 속에서 문화를 가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박차생 진해문화원장이 망산도로 안내하면서 간절하게 전한 말은 이랬다.“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아유타국 허왕옥 공주가 처음 내린 망산도도 진해지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국제 항구도시였으니 부산·진해신항으로 결정돼 사람들 시름 좀 덜었으면 합니다.”
  • 경기 광주장, 무농약농산물 인기 짱

    경기 광주장, 무농약농산물 인기 짱

    경기도 광주·양평지역은 청정지역에 속한다.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젖줄인 한강의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있는 덕택이다. 자연히 농약이나 비료를 적게 사용하는 만큼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전국 어느 지역 제품보다 ‘완전한’ 무농약 제품에 가깝다. 그래서 광주 5일장은 ‘무농약 농산물 전시장’으로 통한다. 무농약으로 재배된 토마토·버섯·상추 등 청정 농산물들이 대거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후 3시쯤 광주시 경안동 우체국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버스정류장 옆 토마토 노점.10여명의 시민들이 너도나도 토마토를 사기 위해 흥정하는 등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쪽에는 한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흥정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토마토를 맛보며 왁자지껄한다. 주인은 돈을 세랴, 토마토를 봉지에 집어넣으랴 무슨 일을 먼저 해야할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친구들과 함께 토마토를 구입하던 신길례(46·여·경기도 광주시 역동)씨는 “노점에서 파는 토마토지만 다른 어느 가게보다 찰지고 맛있어 장이 설 때마다 사 간다.”며 “이렇게 말해야 주인 아저씨가 하나라도 더 줄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떤다. 토마토는 광주장의 ‘얼굴’이다. 웰빙 시대를 맞아 신선도가 높고 영양분이 풍부해 ‘인기 짱’이다. 공기가 맑고 자연 풍광도 아름다운 데다, 한강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해 찰기가 있고 당도도 높다. 이곳의 토마토는 벌을 이용해 수정하다 보니 천적을 동원해 진딧물·입굴파리 등 각종 해충을 제거하므로 ‘완전’ 무농약으로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한 바구니(1∼1.2㎏)에 2000원에 판매된다. 이강범 농협 광주시지부장은 “광주는 서울과 가장 가까운 청정지역인 데다, 과거 서울지역 채소 소비량의 60% 이상을 담당했을 정도로 기름진 땅과 각종 채소의 재배에 대한 노하우가 온축돼 있는 지역”이라며 “판매기간을 늘리기 위해 덜 익은 토마토를 수확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 토마토는 완전히 익은 완숙된 제품만으로 판매하고 있어 싱싱하고 영양가가 높다.”고 설명한다. ‘무농약 농산물 전시장’인 광주장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유서깊은 장터. 광주시 경안동에 자리잡고 있는 광주장은 2000여평 규모에 도부꾼 200여명을 포함해 350여명의 상인들이 옹기종기 한데 모여 생업을 꾸려가는 곳이다. 장날은 3일과 8일이다. 광주·용인·성남 모란장을 보는 이호영(전국 민속 5일장 연합회장)씨는 “광주장은 과거 서울과 가장 가까운 경기도의 중심지역이어서, 현재 서울로 편입된 송파장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형 마트 붐이 이는 등 산업화의 거센 바람에 밀려 토마토·버섯 등 시설 채소와 산나물 등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버섯도 토마토에 버금가는 광주장의 인기 품목이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재래식 균상재배에서 탈피해 5년 전부터 연중 고르게 수확 가능한 병재배 기술을 도입, 첫 수확한 버섯만 상품화하고 있다. 버섯의 맛과 향을 높이기 위해서는 버섯 재배에 쓰이는 배지(培地)로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잡목이나 포플러 톱밥 대신, 비싼 미루나무 톱밥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12도 정도의 낮은 온도로 재배하기 때문에 버섯 생장기간이 길어 향이 진하고 버섯의 육질도 쫄깃쫄깃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20억원을 들여 버섯배지 분양센터를 설립했다. 주로 판매되는 버섯은 느타리버섯·새송이버섯·표고버섯 등. 가격은 한 근에 2000원 균일가.10년 이상 버섯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동길(65)씨는 “데쳐 먹거나 부침개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등 용도가 다양한 느타리버섯이 가장 많이 팔린다.”며 “이곳의 버섯은 그날그날 산지에서 나오는 덕분에 싱싱하고 맛과 향이 진해 인기가 있다.”고 강조한다. 붉은 상추도 빼놓을 수 없는 무농약 제품이다. 한약재를 발효시킨 액체비료(액비)를 이용해 재배하므로 사실상 농약을 쓰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난 채소 중간상인인 한모(58·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씨는 “광주지역에서 나는 붉은 상추는 조직이 거칠지 않고 아주 연하다.”며 “다른 지역의 제품보다 쓴맛이 적은 데다, 쌉싸래한 맛이 나고 싱싱해 서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광주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교통편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안IC(광주)를 빠져나와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울 강변역에서 직행버스인 1117-1,1113,1113-1 등을 타면 된다. 소요시간은 40분∼1시간 정도. ■ 새달 24~26일 토마토 축제 “수려한 자연의 풍광도 즐기고, 팔당호 청정지역의 맛있고 차진 토마토도 맛보고” 광주장의 대표주자격인 토마토 축제가 오는 6월24∼26일 광주시 퇴촌면 장지리에서 열린다. 올해로 3회째. 퇴촌면이 주최하고 농협이 후원하는 이 행사에는 토마토 주스 시음회·방울 토마토 받아먹기 대회·토마토 높이 쌓기·맛있는 토마토 고르기 등의 토마토 관련 행사를 비롯, 제기차기 대회·투호대회·동춘 서커스 등의 민속놀이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할인 판매·수확 체험 등 토마토 행사는 기간내내 상설화된다. ■ 할인판매·수확체험등 다양 특히 환경사랑 글짓기 백일장, 생태탐방로 걷기대회 등 여러가지 문화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다음달 25일 오전 10시 시작되는 환경사랑 글짓기 백일장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열리고, 생태탐방로 걷기대회는 팔당호반을 따라 자연경관을 즐기며 걷는 행사로 토마토 시식 행사도 곁들인다. 신평철 농협 광주시지부 차장은 “토마토는 골다공증과 노화방지에 효과적이고 토마토 생즙의 경우 피를 맑게 해 동맥경화 등에 좋은 웰빙식품”이라면서 “청정 토마토의 본고장인 퇴촌 토마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광주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Zoom in 서울] ‘고무바퀴 전철’ 다닌다

    [Zoom in 서울] ‘고무바퀴 전철’ 다닌다

    서울의 대표적인 교통정체지역인 관악구 난곡지역에 ‘노면전차’가 등장한다. 노면전차는 버스를 여러개 연결한 차량이 전력을 공급받아 자기궤도를 달리는 것으로 1968년 자취를 감춘 전차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형태다. 서울시는 23일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교통난이 예상되는 관악구 난곡지역(신림 3·4·7·8·12·13동)에 신교통수단인 GRT(Guided Rapid Transit)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8㎞구간에 6개 정거장 GRT는 버스와 같은 고무바퀴가 달린 차량이 지하철처럼 전기를 공급받아 일반차로와 분리된 전용차로(중앙차로)를 달리게 된다. 버스와 전철을 혼합한 개념이다. 중앙차로에는 자석이 깔린 ‘자기궤도’가 설치돼 있어 GRT에 달린 운행유도장치가 운행방향을 읽어낸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시, 프랑스 루앙시 등 유럽을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다. 무인으로 운전되지만 승무원을 1명 탑승시킬 방침이다. 서울시 정연찬 교통계획과장은 “난곡지역은 지하에 대형하수관이 있기 때문에 터널을 뚫기 어려운 데다 어차피 도로를 넓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기 때문에 노면전차 형태의 교통수단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난곡지역의 경우 왕복 2∼4차로인 난곡길을 왕복 6차로로 넓혀서 중앙 2차로에 GRT전용차로를 만들 방침이다. 이번에 설치되는 GRT는 난향초등학교를 출발해 우림시장∼난곡주유소∼난곡우체국∼난곡사거리∼2호선 신대방역의 2.8㎞구간을 달린다. 정거장은 500m 간격으로 6곳이 설치되며 신대방역에서 곧바로 지하철 2호선을 갈아탈 수 있다. 버스 2량을 연결해 운행(수용인원 150명)하며, 하루 수송인원은 3만 8000명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3분, 평소에는 7분간격으로 시속 30㎞로 운행된다. 김희철 관악구청장은 “난곡지역은 2008년 재개발 사업이 끝나면 1만 6700명의 인구가 추가로 유입돼 교통난이 예상됐던 곳”이라면서 “GRT운행으로 출퇴근 시간대에 난향초등학교에서 신대방역까지 20∼30분 걸리던 것이 7∼8분 이내로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전농~면목동도 도입 추진 서울시는 내년 5월까지 설계를 끝내고 6월에 착공해 2008년 7월에 개통할 예정이다. 총 사업비는 난곡길 확장을 위한 보상비 1600억원을 포함해 2000억원가량이 투입된다. 한편 시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이 활발한 동대문구 전농동∼중랑구 면목동 지역의 4.6㎞ 구간에도 신교통수단을 도입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과 7호선 사가정역을 연결하는 세부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인사]

    ■ 중소기업청 ◇서기관 승진△창업벤처정책과 李玄祚△기술정책과 李浚僖 ◇서기관 임용△홍보담당관실 朴致瑩 ■ 우정사업본부 (서기관)△경영기획실 기획총괄과장 朴鍾石△〃 경영지원과장 鄭鎭鏞△〃 경영정보과장 金慶銖△우편사업단 우편물류과장 田成茂△금융사업단 예금과장 金泰毅△서울노원우체국장 姜永哲△서울국제우체국장 金正雄△성남분당우체국장 都炳均△부천우체국장 尹基台 ■ 재외동포재단 △경제사업부장 吳泳勳△교육사업부장 韓侊洙 ■ 한국증권금융 ◇승진 (1급)△여신관리부문장 박기태△부산지점장 명동주 (2급)△IT부문팀장 이석영△기획〃 이동규△총무〃 김근업△신탁〃 곽성민△영업지원〃 류재열△중개업무실장 박전규 ■ 제일화재 △법인영업본부장 河元道 ■ 동부화재 (지점장)△중앙 金泰元△광화문 李奎熙
  • 토종은행들 中企잡기 ‘올인’

    ‘중소기업 시장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은행 전쟁’의 싸움터가 중소기업 시장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개인 예·적금 경쟁은 ‘승자의 재앙’이 예고되고, 주택담보대출 경쟁도 금융감독원에 의해 급제동이 걸리고 있어 각 은행은 결국 기업금융 쪽에서 생사여부가 결판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대기업은 더이상 은행권에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 직접금융이 활발해져 중소기업이 은행돈의 최대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토종은행, 살 길은 중기시장뿐” 특히 선진 금융기법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해오는 외국계 은행에 맞서는 토종은행들의 입장이 더욱 급하게 됐다. 부자 고객을 상대하는 프라이빗뱅킹(PB)이나 수천억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챙기는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외국계에 밀릴 수밖에 없는 토종은행들로서는 중소기업 시장이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나 다름없다. 우리은행 중소기업전략팀 관계자는 16일 “PB나 IB는 외국계 은행들이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교한 모델을 앞세워 국내시장 공략에 성공하고 있으나 중소기업 금융까지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2∼3년 내에 외국계 은행이 중기 시장에도 손을 뻗칠 전망이어서 토종은행들의 몸부림은 더욱 치열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희 은행으로 오세요.” 은행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중소기업 대출 상품이나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행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최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CEO커뮤니티 합동모임’을 갖고 “은행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기업고객 유치를 위해 일선 영업점장들이 본부 승인 없이도 금리를 깎아줄 수 있게 했다.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도 17일 우수중소기업 CEO 65명을 초청해 이들의 건의사항을 전달받고 취영루, 새롬아이티 등 중소기업체를 방문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중소기업컨설팅팀을 운영해온 우리은행은 기술력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무담보 대출과 무료 경영컨설팅 서비스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대형 시중은행들의 행보가 빨라지자 기업은행도 적극적인 ‘수성’에 나서고 있다. 최근 우체국예금 1조원을 예탁받은 기업은행은 별도의 담보 없이 일반 중소기업대출금리보다 1∼2%포인트 낮은 연 5%대의 금리로 대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또 중소기업의 우수인재 확보 지원을 위해 거래 중소기업과 공동채용설명회를 실시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의 가장 큰 문제는 리크스(위험)”라면서 “앞으로 은행들은 리크스 심사기법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담보물보다는 기술력을 보고 적극적인 대출경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우체국 수신자금 1조 우수 중소기업에 지원

    우체국예금 1조원이 다음달 1일부터 우수 중소기업에 저리로 지원된다. 황중연 우정사업본부장은 12일 기업은행과 ‘중소기업 우수제품 상품화 지원협약’을 체결,6월부터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권석 은행장과 이날 협약을 맺었다.3300여업체가 혜택을 받는다. 우체국예금은 여신기능이 없어 36조원의 자산 중 8조 8000억원가량을 공적자금관리기금에 맡기고 있고 나머지는 국공채 등에 운용하고 있다. 지원 조건은 중소기업의 일반대출 평균금리보다 1∼2% 정도 낮은 우대금리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이 대출 보증을 하며 IT 관련 기업을 우대한다. 황 청장은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이 있지만 담보력이 없어 상품화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데스크시각] 조용필로 본 서울/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조용필이 누구인가.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 아닌가. 그런 그가 길거리 공연을 한다니. 지난달 30일 서울시청앞 잔디광장. 저녁 7시30분쯤 시작한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갔다. 늦게 가는 만큼 잔디광장 끝에서만은 볼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광장은 사람들로 빽빽이 차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생각이 나서 인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으로 갔다. 거기에도 눈치 빠른 사람들이 미리 창가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차에 시청광장 건너편 덕수궁쪽 인도가 한산한 것이 눈에 띄었다. 프레스센터를 빠져나와 덕수궁쪽 차도 옆 인도에 터를 잡았다. 이곳도 금세 많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곧 막이 오르고 ‘단발머리’가 흘러나왔다. 무대와 멀리 떨어진데다 잔디광장의 인파와 차도를 지나는 차량들의 행렬로 조용필씨를 볼 수 없었지만 무대 옆에 설치된 대형 TV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야외공연인 탓인지 분위기 있는 노래보다는 템포 빠른 노래가 이어졌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차도로는 버스, 택시 등 많은 차량들이 부산하게 오갔다. 교통신호에 걸린 시내버스가 시야를 가리면 인도의 관객들이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기도 했다. 일부 택시기사나 승용차에 탄 사람들은 차가 잠시 멈춰 서 있는 순간 창밖으로 몸을 빼내 서울광장을 바라보기도 해 조용필의 식지 않은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청앞 서울광장은 서울시민들의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 잔디광장을 쉼터나 산책로로 이용하고 학생들도 분수대를 뛰어다니며 더위를 피한다. 차도에는 버스전용중앙차로 등을 골자로 하는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효과도 나타났다. 간혹 처우개선을 해주지 않으면 파업에 나서겠다는 안내문을 붙인 버스가 다니긴 했지만 버스기사들도 한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수많은 차량이 오갔지만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버스도 없었다. 친환경연료를 사용하는 버스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조용필씨의 인기도 여전했다. 길거리 관람객은 40대 이상이 많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의 모습도 보였고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도 많이 보였다. 물론 중·고교생으로 보이는 오빠부대들도 보였다. 관람분위기는 랩가수들처럼 열정적이지는 않았다. 간혹 아줌마, 아저씨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주책을 부려보지만 열기가 달아오르지는 않았다.10대 오빠부대들도 괴성을 질렀지만 기대만큼 주위의 호응이 없자 머쓱해졌다. 청계천복원을 기념하는 신곡 ‘청계천’이 첫선을 보이고 ‘서울 서울 서울’이 울려퍼지면서 공연은 정점에 올랐다. 얼핏 이번 행사는 이명박시장이 자신의 전리품 앞에서 승전고를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 막바지에 조용필씨가 이명박시장을 소개했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오른 이명박시장이 “여러분 반갑습니다.”라고 하자 주위의 10대는 “하나도 안 반가운데, 에이 노래나 계속하지.”하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청계천, 서울광장 등 자신의 치적을 이야기하자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재적 대권후보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시장의 인사가 끝나고 조용필씨가 노래를 몇곡 더 부른 뒤 공연은 끝났다. 시청광장에서 이어지는 빛의 공연과 폭죽쇼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인도 옆에는 벌써부터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문을 열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2시간 가까이 길가에 서서 노래를 들어서인지 목이 칼칼했다. 시장했지만 노점상 음식에도 별로 눈길이 가지 않았다. 순간 청계천을 복원하고 서울광장을 만드는 등 화려하고 가시적인 큰 토목공사도 좋지만 작은 공원을 만들고 산길을 정비하는 생활토목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서울시장이 대권을 위한 징검다리, 정당들의 세과시를 위한 자리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서울시장은 서울의, 서울에 의한, 서울을 위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마음씨 좋은 우체국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시청에서 시민들에게 넉넉한 웃음을 던지는 시장을 기대해본다. 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stslim@seoul.co.kr
  • [빌딩 X파일] 송파 여성문화관

    [빌딩 X파일] 송파 여성문화관

    송파구는 서울에서 양호한 주거지로 손꼽히는 자치구다. 비교적 높은 녹지율과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복지·문화 수준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은 풍부한 복지·문화 프로그램으로 널리 사랑을 받는 ‘송파 사랑방’이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은 송파대로변 석촌역사거리 동쪽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송파동 송파장터길 5이다. 지하철 8호선 석촌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일 정도로 접근성도 좋다. 대지 800여평에 연면적 4000여평, 지하 2층 지상 6층의 아담한 규모다. 1998년 6월 착공,220억여원의 공사비를 들여 송파구가 지난 2001년 5월 개관했다. 어학실습실 등 15개의 각종 문화강좌 교실과 골프연습장 등 6개의 건강·레저시설을 갖추고 있다. 송파구 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먼저 1층에는 동사무소와 구청 여권과, 우체국 등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2층에는 내과, 안과, 치과 등 의료시설과 유아교육시설인 ‘하바놀이학교’가 입주해 있다. 3층과 4층은 각종 문화강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교실에 해당한다. 어학실과 도서관, 상담실 등 부대 시설도 4층에 있다.5층은 패밀리 레스토랑,6층은 대강당과 함께 결혼식장이 들어서 있는 등 전 층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의 건립 취지는 다양한 교양·전통문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수준 높은 여성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이를 위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현재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는 모두 140여과목의 강좌가 진행중이다. 컴퓨터, 어학, 요리 등 실용강좌는 기본 사양. 전통문화, 음악·미술, 공예 등의 문화 강좌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눈에 띄는 강좌는 주말에 열리는 가족사랑 강좌.3개월 일정으로 ‘아빠는 요리사’,‘엄마랑 도자기 만들기’ 등 가족이 주말에 함께 요리를 하거나 도자기를 빚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강좌료도 10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다. 1∼7세 사이의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엄마랑 아가랑’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고 있다.‘엄마랑 아가랑 느낌미술’, 세계적인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뮤직가튼’,‘엄마랑 아가랑 동화놀이’ 등 10여개의 강좌가 연령별로 준비돼 있다. 임산부를 위한 태교도예, 펠트공예 강좌도 있다. 이밖에 직장인들도 저녁 시간에 영·중·일어 등 외국어와 재즈댄스, 단전호흡, 대금 등을 수강할 수 있다. 지난 5일에는 ‘엄마, 아빠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세요’라는 주제의 아동 심리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등 다양한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중국을 겨냥하여 ‘서해안 시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천은 서해안의 대중국 창구이자 교두보였다. 강화 고인돌과 단군의 유향(遺香)이 전해지고,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미추홀과 비류백제로 상징되는 해양세력의 거점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인천시의 남동갯벌, 도장리에서 승학천을 따라 이어지는 저지대는 바닷물이 들어오거나 습지였기에 문학산과 승학산이야말로 지리·환경적으로 초기국가 단계의 도읍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백제시대에는 대외 창구로 기능하여 오늘날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의 능허대를 거점으로 해 중국과 넘나들었다. 한강 하류인 인천을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산둥반도 등주에 이르는 등주항로야말로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칠때 이용한 바로 그 항로이다. 오늘날 능허대는 아파트촌에 뒤덮이고 말았으나 조선 후기 읍지에 ‘백제조천시발선처(百濟朝天時發船處)라 하였듯 역사의 현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인천이 한반도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뜬’ 것은 역시나 조선시대가 아닐까. 수도 한양에 이르는 입구, 이른바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온갖 역사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서해 뱃사람들에게 ‘행주참을 댄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수, 즉 밀물이 몰려들면 바닷물은 강물 위로 뜨고 바다로 내려가는 강물은 밑으로 깔리는 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인천쪽에서 한강을 거슬러 행주나루를 거쳐 마포까지 직행하는 뱃길 노정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그 뱃길을 따라서 열강들이 빈번하게 침범을 강행했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포대가 이를 웅변해준다. 대개의 개항장이 시련을 겪으며 탄생했지만 인천만큼 열강들의 침략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 뻗친 곳이 또 있으랴.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는 바로 이런 개항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에 진출하려는 열강들은 인천 해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그것으로, 선조들은 이들의 도래를 온몸으로 싸워 막았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조선 진출의 기선을 제압하고자 운요호(雲揚號)사건(1875)을 감행했고, 끝내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1876)으로 문을 열게 되었음은 교과서적 상식이다. 구미 열강과도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니 은둔국 조선은 갑자기 봇물 터진 외압을 직접 받게 된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제물포는 하룻밤 새 개항장으로 둔갑하여 1883년에 인천해관과 감리서가 설치되고, 각국 영사관과 외국인 조계들이 설치되기에 이른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일본의 전쟁을 위하여 조선땅을 내준 꼴이 됐으니, 이후 일본군의 군화발이 인천항을 자기 땅처럼 짓밟았다. 1892년,‘일본 밖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완벽한 일본책’으로 자평하는 ‘인천사정’이란 책자는 당시 ‘일본 영사관이 일장기를 아주 높게 휘날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서 장엄하고 수려하게 인천항을 삼킬 듯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정말 그들은 인천항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삼켜버렸다. 그 후 우체국, 경찰서, 일본거류지의회, 인천상법회의소, 무역상조합, 잡화상조합, 영어소학교, 공립소학교, 교토의 본원사(本願寺), 공립병원와 강제병원, 정미소, 제물구락부, 조선신보, 활자소, 그리고 제일국립은행, 제18국립은행, 제58국립은행, 일한무역상사, 우선주식회사의 일본지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대불호텔과 이태호텔, 수월루 등의 여관도 들어섰다.‘근래 불경기라는 소리가 인천항의 온 시가를 뒤덮는 데도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花紅柳綠) 흥청대기 이를 데 없으니 술집에는 어린 소녀들도 많았다.’고 한 기록도 있다. 이로써 유곽이 번창하여 도심까지 집창촌이 뻗어 나가 항구를 드나드는 뭇사내들을 유혹하였다. 교회도 빠질 수 없었으니 영국 성공회를 필두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등이 속속 들어섰다. 수출입세를 관장한 해관(海關)만큼은 조선정부 관할이었다. 물론 해관 운영에 ‘왕초보’였기에 대대로 영국, 독일, 일본인 등이 도맡아 했고 그들은 그야말로 ‘엿장사 마음대로’ 개항장을 농락하였다. 일본인들이 잘못된 협약서를 근거로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축적했던 수탈 과정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당시 수입된 면직물은 대부분 영국제로 일본인이 수출을 독점했는데 영국도 저렴한 세금을 관철시켰다. 제국주의 경제침탈의 전형적인 모습이 인천항에서 관철되었다. 개항 당시 서울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천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적었고, 총인구 2649명 중 쓰시마, 나가사키 사람들, 그리고 시모노세키가 위치한 야마구치(山口), 규슈의 오이타(大分)사람들이 주류였다. 일제침략기를 통해 대개 한반도에서 가까운 규슈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건너왔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쪽 방언들이 즐겨 쓰였으며, 도쿄, 오사카, 쓰시마 등 여러 곳의 언어가 섞인 것을 ‘인천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는 관리 세관원 은행원 회사원 무역상 중개인 운수업 하역업 여관 요리점 목욕탕 음식점 양주집 일본주점 약국 의사 사진사 이발업 재봉업 활판인쇄업 세탁소 양조장 대장간 오락실 과자점 창고업 고용직과 잡상 목수 석공 농업 등 온갖 직종 종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장차 식민지가 될 조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러일전쟁·청일전쟁 등이 터졌을때는 자발적으로 전선구호와 간호 등에 힘을 보탰으며 스스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즉, 개항장에 나와 있던 일본거류민들을 순수한 의미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일본의 관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식민지 개척의 첨병으로 움직였다.‘생돈’이 생기는 만큼 화려한 의복과 음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웅장한 반양반일(半洋半日) 가옥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개항장은 일본거류지, 각국거류지, 중국거류지로 삼분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확연하다. 은행건물 등이 남아있는 일본인 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중국인 거리가 그것이다. 각국 거류지라고는 해도 19세기말에는 영국인 7명, 독일인 13명, 미국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인 1명 등이 거주했을 뿐이고 대개 일본·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각국거류지 회의는 인구비례가 아니라 국적별로 참여하도록 했으며, 서양인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게다가 회의조차 영어로 진행하니 일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간척을 통해 땅을 확보, 도심을 불려나갔다. 오늘날 인천항 주변이 대부분 간척지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의 대응은 전무하였던가. 인천 출신의 역사학자 임학성(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인천객주협회를 모체로 1897년에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는 민족 상인의 상권을 옹호·신장하였다.”고 지적한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에서 역주한 ‘인천개항25년사’(1907)를 보면, 조선인들은 오늘로 치면 송월·전·복성·인현·경·신포·답·신생·사·유·신흥·선화·도원동 등에 몰려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항 초기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상권 경쟁이 치열했다. 중국인들은 특유의 근면과 상업적 재기를 토대로 일본에 맞섰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결국 중국 상권도 몰락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중국인들은 다시금 성실하게 상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천시가 중국인거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집이나 운영하고 살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들은 옥양목 같은 옷감장사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상권을 장악해 ‘비단장사 왕서방’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조선의 쌀을 싸게 사들여 일본에 되팔아 엄청난 돈을 거머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경인철도가 부설되자 서울을 오가는 보따리장사는 물론이고 석유장사 등으로 일본인들 역시 큰 돈을 벌어들였다. 군인들이 자주 부르는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도 당시 이후 첨단 공장인 성냥공장이 인천에 많았음을 방증하며, 그만큼 선진적 공장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의 하나였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인천은 일본인 대신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이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거니와 산둥반도 등지를 오가는 페리에서 사람과 짐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인 거리에 가면 대하소설 삼국지를 연작 벽화로 그려놓아 길거리를 걸으면서 책읽기를 끝낼 수 있게 해놨다. 게다가 원조자장면집을 아예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박물관만큼은 ‘대박’이 예감된다. 하고많은 박물관 중에 자장면 박물관은 특이성도 돋보이지만 인천에 딱 어울리는 까닭이다. 김춘선 인천해양수산청장은 “거대한 대중국 서해시대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대북 통일시대의 거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포, 해주 등지를 오가는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북핵문제 등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있지만 바닷길만큼은 항상 열려 있어 민족화합에도 이바지하는 셈이다. 인천항의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파나마식운하의 물을 가두었다 풀어 놓는 갑문이 낙후해 머잖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 형편이다. 갑문으로 가보니 5만t,10만t급의 거대한 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인천항도 이제는 외항시대로 접어들었다.“인천항도 북항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의 인천은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 고베와 나가사키 쓰시마 부산 원산 톈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잇는 정기연락선이 오고갔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바다를 통한 국제간 교역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가 근자에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바다를 통한 교류는 무려 반세기나 묶여 있다가 재개된 셈이다. 당시 인천은 ‘완연한 한국의 요코하마’로 불렸다. 국제 첨단 신도시로 개발되는 송도신도시가 완공되면 인근 인천공항과 더불어 인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니 돌고 도는 역사의 변화가 다시 온 몸으로 느껴진다.
  • 274만명 종소세신고 월말까지

    274만명 종소세신고 월말까지

    작년 한해 동안 주택임대소득을 올린 19만 6151명을 포함해 사업소득, 이자·배당소득 등이 있는 274만여명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인 이달 말까지 이들 소득을 모두 합해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산출세액의 20%에 해당하는 신고불성실가산세 등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국세청은 5일 “올해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은 지난해의 265만여명보다 3.4%,9만여명이 증가했다.”면서 “특히 주택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성실신고 여부를 정밀 검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택 임대소득 올해부터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과세 기준이 ‘기준시가 6억원 이상 고가주택 및 주택 3채 이상 보유자’로 바뀌었다. 따라서 2채 이하 보유자는 고가주택이 아니라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주택이 도시나 농어촌 또는 국민주택 규모 여부와 상관없이 2채 이하이면 비과세된다. 고가주택은 변함이 없으나 지난해까지는 비과세 대상은 3채 이하 소유자였다.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한 주택이 3채 이상이면서 월세를 받고 있다면 세금을 내야 한다. 고가주택의 월세소득은 주택 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세금을 내야 한다. 월세가 아닌 전세금 및 보증금은 과세 대상이 아니다. ●금융소득 작년에 벌어들인 이자·배당소득이 4000만원을 넘어선 사람들이 대상이다. 시중금리를 5%선으로 가정할 때 8억원대를 금융회사에 예치한 개인들이 해당된다는 얘기다. ●기타소득 강연료, 공익법인이 주무관청의 승인을 얻어 시상하는 상금과 부상, 지역권·지상권의 설정 및 대여료, 라디오·텔레비전 및 연기심사 수당 등 방송사례금, 원고료, 저작권 사용료인 인세, 미술·음악에 속하는 창작품에 대해 받는 대가 등을 말한다. 기타소득은 원칙적으로 종합과세되지만, 연간 합계 금액이 300만원 이하이면 납세자가 분리과세나 종합과세를 선택할 수 있다. ●신고절차 세무서에 갈 필요없이 오는 31일까지 우편으로 보내면 편리하다.31일자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으면 된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홈택스서비스(www.hometax.go.kr)를 이용해 전자신고를 하면 2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오승호기자 os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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