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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APEC 對테러 비상

    국제우편을 통한 총기류 반입이 급증하고 있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국제행사의 대 테러 준비에 빨간불이 켜졌다. 22일 한나라당 진영 의원과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 2001년 41건에 불과하던 총기류 적발 건수가 지난해 1106건으로 4년 사이 무려 27배가량 증가했다. 또 2001∼2005년 7월까지 적발된 위해(危害) 국제 우편물은 도검류 2244건, 총기류 2052건, 마약류 155건, 기타 6266건이었다. 상당수가 총기류 부속품인 기타 분야를 합치면 총기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13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부산 APEC 정상회의의 테러 대비에 적신호가 켜졌다. 우정본부는 APEC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최근 X선 투시기, 금속탐지기의 보강과 함께 증가 추세인 화학·방사능 물질을 탐지하는 장비 7대를 다음달 보강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비 보강 외에 전문요원 교육 준비는 극히 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우정본부가 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운용 인력의 경우 검색 장비별로 2명씩만 지정해 놓고 있으며 전문요원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통부 한 관계자는 “국제우편물이 들어오는 서울·부산 국제우체국 등에는 자체 우편물 테러 예방 전문요원이 일부 있지만,APEC이 열리는 부산지역 우체국의 준비는 아주 허술하다.”면서 “국가정보원·경찰청 등과의 실질적 공조 체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死則生’ 고이즈미 승승장구

    TEXT |도쿄 이춘규특파원|중반전으로 돌입한 9·11 일본 중의원 총선거의 판세 점검 결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주도권을 장악한 분위기다.2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오르고, 여당인 자민당의 지지율도 강세다. 반면 야당은 야당 특유의 선거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고이즈미 총리에게 끌려다니는 양상이다.우정민영화 반대파들이 잇달아 창당한 신당들도 유권자들은 외면하고 있다. 일단 우정민영화법안 부결 뒤 국회 해산이란 뒤집기를 시도한 고이즈미 총리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후지TV가 수도권 거주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63.6%로 지난해 5월 고이즈미 총리의 재방북 직후 지지율(61.4%)을 뛰어넘었다.우정법안 반대파를 ‘반개혁’으로 몰아세운 그의 선거전략이 중반까지는 유권자들에게 먹혀드는 기류다.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은 지난주 조사(11일)에서도 중의원 해산 전(5일)에 비해 7.8%포인트 상승한 57.2%를 기록했다. 이번 결과는 공천이 거의 완료되고 선거전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지지율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민당 지지율도 지난번 조사 때보다 4%포인트 늘어난 42.6%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율은 6.2%포인트 하락한 15.0%에 그쳤다.초반 선거전에서 ‘고이즈미 자민당 대 우정민영화 반대파’의 대결구도가 부각되며 제 1 야당인 민주당은 매몰된 구도다. 정치권의 세대교체 바람도 거센 형국이다. 공천이 거의 완료된 21일까지 자민당과 민주당은 후보의 세대교체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자민당은 20∼40대 공천후보자가 64명으로 지난번 선거(36명)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공천자에서 차지하는 20∼40대의 비율도 38.9%로 지난번 선거때보다 7.5%포인트 높아졌다. 자민당 후보중 신인후보는 83명이다. 민주당은 신인후보를 지난번 선거 때보다 28명 줄어든 100명을 공천했다. 민주당 공천자 중 20∼40대는 84명으로 전체 후보의 60.7%였다. 그 결과 자민당 후보자의 평균 연령은 52.5세로 지난번보다 1.4세 젊어졌다. 민주당은 46.9세로 자민당의 세대교체 시도에도 불구, 여전히 젊은 정당이다. 민주당은 ‘천운’을 타고 났다는 오카다 가쓰야 대표가 역전을 노리지만 쟁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당내 리더십도 불안한 상태라는 지적이다.연립여당인 공명당 역시 자민당 대승시 존재가치가 상실될 것을 크게 우려, 비상사태다. 우정민영화 반대파들은 국민신당에 이어 신당 ‘일본’도 창당하는 등 다단계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지만 시원찮다는 평가다.다수의 유사신당을 창당, 공식선거전 돌입 직전에 통합하고, 자민당 잔류파를 합류시켜 ‘3단계 바람’을 일으킨다는 구상이지만 여론동향은 미지수다.●내년 9월 임기후 퇴진 시사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22일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에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그는 이날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으로 과반수 의석확보가 가능하면 내년 9월까지 총리와 총재직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자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8) 일본인이 그리는 일본의 미래

    [일본을 다시본다] (18) 일본인이 그리는 일본의 미래

    |도쿄 특별취재팀|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일본인들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이대로 가다간 일본은 안된다.”고 하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래에의 비관은 엘리트층일수록 더 심하다. 미국의 케네디스쿨에서 유학 중인 아키(42·전 중소기업 이사)는 “미국에서 보면 영락없이 일본은 미국의 여자친구다.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한다. 이렇게 해도 정말 괜찮은지 걱정이 든다.”고 꼬집는다. 그의 지적은 일본의 종속적인 대미관계를 비판한 것이지만, 외교를 비롯해 일본의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2류국가로의 추락은 시간문제라는 사고를 갖고 있는 일본인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을 맞는 올 가을쯤 싱크탱크를 출범시킨다. 웬만한 대기업, 은행에 하나쯤 있는 게 싱크탱크인데 뭐 대단하냐고 하지만 관료집단에 정책을 의존해 온 일본 정치 풍토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시도이다. 경쟁이라도 하듯 제1야당 민주당도 비슷한 시기에 싱크탱크를 띄운다. 입법이나 정치활동에 자기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이 정당 본래의 임무인데도, 패전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 정치는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관료의존이 심각했다는 진단은 일본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다. 관료의 정보와 정책에 목을 매는 한심한 처지를 호소하는 일본 정치인의 자조인 셈이다. 스즈키 다카히로는 “가스미가세키(霞が關·중앙관청가)가 최대의 적”이라고 말한다. 스즈키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의 특명을 받고 지난해부터 싱크탱크 출범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사카대학 교수 출신의 그는 도쿄재단을 만든 수완을 인정받은 일본의 싱크탱크 1인자이기도 하다. “정치가 행정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는 그는 정당과 싱크탱크, 행정이 합체화되어 있는 미국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행정과 민간,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일본 시스템을 이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그의 소망이다. 차기내각의 재무상으로 꼽히는 시오자키 야스히사 의원도 자민당 싱크탱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일본을 이렇게 진단한다.“자본주의라고 하면서도 관료통제의 사회주의 경제를 해왔다.” 미국 유학파(하버드대학)인 그가 싱크탱크에 거는 기대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10∼20년 뒤의 동아시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큰 그림이 없다면 곤란하다.”면서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든가, 일본 내 미군기지의 재편 같은 문제들은 미래의 밑그림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핵무장에는 동의하진 않지만, 헌법 개정에는 찬성한다.70년대와 같은 고도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돈·물건이 어떤 장애없이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한 유엔에 내는 분담금이 가맹국 중 2위인 일본이 국제정치에서의 영향력은 30위라는 불균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일본의 추락을 걱정하기는 40대의 소장파인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 의원(자민당)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선진국 중 가장 하위로 떨어지고, 중국이나 인도에도 추월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그는 강한 경제의 재구축이라는 기대를 미래 일본에 걸고 있다. 민주당에서 브레인으로 꼽히는 마쓰다 고지 의원(참의원)의 진단은 보다 가혹하다. 그는 “일본이란 나라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재정악화, 소자화(少子化)·고령화, 교육, 역사의 순으로 ‘위기의 일본’이 타개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일본이 떠안고 있는 780조엔의 국채 및 지방채는 경기악화가 지속될 경우, 하이퍼 인플레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외교방식과 역사인식에도 통렬한 일침을 놓는다.“미국에는 3분의2 정도를, 나머지는 한국이나 아세안과 손잡아야 하는데, 고이즈미는 양다리를 모두 미국에만 걸치고 있어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고이즈미는 역사인식 문제만 나오면 이상한 발언을 하는데, 개인적인 신조와 일국의 총리된 입장은 달라야 한다.”고 꼬집는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돼 지난 8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함에 따라 9월11일 치러질 총선은 패전 60년 이후 일본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이다. 색깔이 비슷한 자민·민주당의 정권교체의 가능성보다는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 특히 30∼40대의 주류화 여부는 큰 관심거리다. 청년시절 80년대 거품경제의 단맛과 90년대 장기불황의 쓴맛을 두루 경험한 그들이 일본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는다면 그들 선배가 이룩한 ‘재팬 넘버1’의 신화를 어떻게 재창조하려 들지가 최대 관전포인트이다. ■외무성 출신 하라다 다케오 |도쿄 특별취재팀| 지난 3월 외무성에서 잘 나가던 젊은 관료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1971년생, 도쿄대 법대 출신. 고시출신인 그는 출세가 보장되는 코스인 북한반장을 끝으로 관직을 접는다. 대북 외교의 최일선을 떠나 민간인이 된 그는 ‘북한 외교의 진실’이란 책을 펴내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책의 저자 하라다 다케오는 “동아시아가 ‘세련된 제국주의’의 격전장이 되고 있으나 일본은 그런 데 전혀 눈치조차 못채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련된 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정의는 이렇다.100년 전에는 군대를 보내 상대를 제압해 이익을 취했다면, 지금의 제국주의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세련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북핵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냉전구조가 무너진 뒤 동아시아, 북동아시아가 같은 큰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겉으로는 북핵문제를 떠들고 있으나 미국은 부(富)가 어디에 있는지 눈을 돌려 군사·외교·문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으나 일본만 뒤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련된 제국주의를 인식하고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다른 나라의 기업에 빼앗겨서 일본은 점차 하락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따라서 일본은 새롭게 부(富)를 챙기기 위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리는 그의 책에서 북한의 희소광물에 주목해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는 “북한은 어디까지나 ‘사례연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세련된 제국주의’에 입각한 일본의 한반도 경제침략론으로 읽히는 그의 논리전개는 당돌하고, 우리로선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고도경제성장의 단물을 누린 70년대생인 그는 일본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옛 세대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좋았다. 단독주택에 살고 아이 낳고, 그런 꿈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수한 사람은 해외로 나가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가 안 좋아지고 정치의 수준도 떨어진다.‘내일 뭘 하지.’라는 그런 논의밖에 하지 않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그런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 같은 70년대생들이 일본을 바꿀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다.‘70년대생의 힘’, 그 실체는 있는가.“절대적으로 사람 숫자가 많다. 노동자도 많고, 시장에서 볼 때 소비자도 많다.”일본의 전후를 일궜던 베이붐세대(단카이세대)에 이은 제2의 베이붐 세대가 일본의 재약진을 이루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일본의 향후 10년은 어떤 모습일지를 묻자 그는 또 ‘세련된 제국주의’를 꺼낸다.“뺏을까 뺏길까 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는 뺏는 주체였으나,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발상의 전환, 대담한 정책 즉 외교, 교육문제에 눈을 돌려야 하며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지금 방향전환, 그 분기점에 와 있다.” marry04@seoul.co.kr ■취재 후기 2020년의 세계정세를 전망한 ‘지구의 미래를 그린다’는 지난 1월의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이 일본을 웃돌고 “21세기는 중국·인도가 이끄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중국의 위협을 경고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노화하는 대국’으로 정의,“중국에 대항하느냐, 영합하느냐의 선택에 몰릴 것”이라며 일본의 분발을 우회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3개월 뒤,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는 2030년의 미래상을 담은 ‘일본 21세기 비전’을 발표한다. 소자(少子)·고령화가 진행되어도 구조개혁에 힘쓰면 몇살이 되더라도 일이나 사회에 참가하는 ‘건강수명 80세 시대’의 실현할 수 있다는 낙관적 목표를 설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대조류의 변화에 둔감한 채 있으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태에 이른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미지근한 물이 덥혀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러 비극을 맞게 된다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20년쯤 뒤 일본의 자화상이다. 일본에서 만난 차세대 정치인, 교수, 언론인들, 그들의 상당수는 지금의 일본에 답답해 하는 듯 보였다. 패전 이후 일궈온 제2의 경제대국, 그러나 세계에서 존경받지 못하고 배척받는 나라.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은 이미 사죄했으니 더 거론하지 말라는 신경질적인 반응. 공룡이 되어가는 중국의 압박과 유일한 동맹국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들은 패전 직후 전쟁 포기를 명문화한 헌법을 개정하는데서 질식할 듯한 일본의 상황을 돌파하는 열쇠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법을 지키겠다는 좌파세력이 몰락한 토양에서 이윽고 시동이 걸린 개헌론. 개헌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일본호의 향후 10년간은 우리가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엄중한 압력이 아닐 수 없다. marry04@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marry04@seoul.co.kr
  • 9개 SI업체 하도급위반 7591건 적발

    구매·생산·판매·고객관리 등을 위한 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해주는 소프트웨어산업인 시스템통합(SI) 업계가 하도급업체 등을 대상으로 불공정 거래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계약도 하기 전에 일부터 시키는 예가 빈번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삼성SDS,LG CNS,SK C&C, 오토에버시스템즈, 포스테이타, 한전 KDN, 현대정보기술, 대우정보시스템, 쌍용정보통신 등 9개 대형 SI업체들에 대한 직권실태조사 결과, 모두 7591건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를 적발, 시정명령과 경고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9개 SI업체들은 1841개 중소업체들에 7106건의 하청을 주면서 특별한 이유없이 일을 시작한 뒤 계약서를 줬다. 이 경우 하도급 업체는 구두약속만큼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SI업체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깎거나 아예 주지 않은 사례도 많았다. 하도급업체들이 지급받지 못한 대금과 지연이자는 5억 7160만원, 미지급된 선급금 지연이자는 7218만원, 부당하게 깎은 하도급 대금은 1억 7105만원이나 됐다. 공정위 김범조 조사국장은 “조사대상 업체들이 조사기간 중 대금을 모두 지급한 점을 감안, 경고조치 등을 했다.”고 밝혔다. 삼성SDS의 경우 지난해 5월 하도급업체에 구두로 제조를 위탁한 경우 3개월 뒤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한 사실이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았다. 공정위는 SI업계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정보통신부와 재정경제부에 국가계약법령에 제안서 보상에 대한 근거규정을 마련토록 건의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6)초의·추사 그리고 정약용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6)초의·추사 그리고 정약용

    이맘때면 생각나는 차가 있다. 바로 ‘눈물차’다.‘눈물차’에 대한 사연은 이렇다.1996년의 일이다. 별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자우홍련사 작은 연못에 둥둥 떠내려오고 달빛은 풀벌레들의 합창에 일그러지던 날이었다. 초의스님이 ‘동다송´에서 말했듯이 깊은 밤 대자연의 품속에 빨려드는 풍광을 벗삼아 한잔의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스님 계십니까” 밤중에 절을 찾는 나그네는 드물다. 아주 친한 도반이나 절 식구만이 늦은 밤 사찰을 찾을 수 있는 법인데 연락도 없이 찾아든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해남의 신문사, 농민회 등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활동가들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이었고 10여명 가까이 되는 대식구였다. ●새로운 茶문화 생산공동체 구성 자우홍련사 툇마루는 때아닌 손님들로 꽉찼다. 한잔의 차를 돌리고 대뜸 찾아온 연유부터 물었다.“스님 저희들이 차 공부를 좀 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뜻은 간단했다. 향후 환경과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농촌지역에 어울리는 새로운 차문화 생산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당돌한 제안이었다.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 차문화공동체 구성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제안에 망설여졌다. 생각해보겠다며 그들을 돌려보냈지만 못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그후로 대여섯차례 방문하며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작명을 했다. 남쪽에서 늦게 차를 시작한다는 뜻을 가진 ‘남천다회’라고 명명했다. 어떤 농사든 어떤 계획이든 서둘러서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시작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한달에 두 번씩 공부를 하기로 했다.‘동다송´‘다신전´, 그리고 행다와 차에 대한 것들도 공부를 했다. 젊은 그들에게는 열정이 있었다.1997년부터 놀고 있던 땅 8000평에 차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우리가 택한 농법은 철저하게 친환경농법이었다. 화학비료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자연의 기운으로만 차밭을 조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10년까지는 수확을 바라지 않을 작정으로 자연에서 나오는 부엽토만 퇴비로 사용했다. 조금 느리지만 인간과 호흡하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경야독이란 말을 그들을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낮에는 차밭을 가꾸고 밤에는 차 공부를 늦게까지 하느라 모두들 열심이었다. 차밭은 4000평,5000평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의 차 생산지와 다창들 그리고 국내외 유명 다원들을 둘러본 그들의 안목은 점차 넓어지고 깊어졌다.7년째 되던 해인 2002년 4만여평의 차밭에서 생엽 200㎏을 채취했다. 그리고 제다한 가공량은 40㎏.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작은 양이었다. 차브랜드는 ‘손덖음 첫물차’로 했다. 기계적인 영농이 아닌 손으로 덖는 첫물차만을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첫차를 제다해 일지암에서 초의스님에게 제사를 지낸 후 모두 모여 차를 마시며 기뻐했다.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사연은 3000평의 차밭을 가꾼 남천다회 부부 이야기다. 차농사를 시작한 지 5년만에 젊은 부부는 고작 4통의 차를 손수 만들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차들을 이불속에 넣고 눈물을 훔치며 밤을 꼬박 샜다고 한다. 참으로 눈물나는 눈물차 이야기인 것이다. 이같은 사연이 담긴 첫물차 이름을 남천다회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눈물차’로 명명한 것이다. 그날도 바로 오늘같은 밤이었다. 그때의 기쁨은 차인으로서 또 하나 기억할 만한 역사로 남아 있다. 이렇듯 ‘인연’은 모든 것을 바꾼다.18세기 최고의 개혁적인 지식인들이었던 초의스님,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의 인연은 당대 조선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이시대까지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산에 유서와 시학 배워 초의스님은 24세 때인 1809년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을 아암 혜장스님을 통해 먼저 만났다. 아암 혜장과 정약용은 혜장이 4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년 동안 교류했다. 정약용이 아암 혜장에 보낸, 차를 청하는 편지인 ‘걸명소(乞茗疏)’는 지금까지도 차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걸명소´에는 “을축년(1805년)겨울 아암선사에게 보냄. 나그네는 요즘 차만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약으로도 마십니다. 글 중의 묘함은 육우의 ‘다경´삼편이요, 병든 몸은 누에인 양 노동의 칠완다를 들이킨다오” ‘소’의 형식을 빌린 다산의 ‘걸명소´는 노동의 시와 육우의 다경 등에서 보여지듯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다도에도 깊은 경지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암 혜장이 세상을 떠난후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며 유서(儒書)와 시학(詩學)을 배웠다. 초의스님은 다산을 스승으로 극진하게 모셨다. 초의스님은 1813년 다산의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때 마침 내린 비로 인해 장삼자락이 젖어 다산초당을 방문하지 못했다. 다산에게 가지 못한 초의는 안타까운 마음에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슬프도다. 이 적은 몸 하나 나에게 선인의 경거술이라도 지었더라면 빗속으로 산넘어 날아갔을 텐데.” 초의스님이 정약용을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가 있다.‘탁옹(정약용의 별호)선생에게 드림’이란 시다.“부자는 재물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진이는 말로써 떠나보내네. 지금 선생께 하직하려 하지만, 저는 마땅히 드릴게 없습니다. 먼저 공경하게 누추한 마음 펼쳐 은자의 책상앞에서 말씀드리리라. 하늘이 맹자 어머니같은 이웃을 내려주셨네. 덕성과 학업이 나라의 으뜸이요. 문장과 자질이 함께 빛나시네. 편안히 머물 때도 항시 의로움을 생각하고 실천에 나서면 어짊을 보였네. 이미 넉넉하면서도 모자란 듯 하였고 항시 비우고 남을 포용하였네. 내 이런 도를 구하기 위해 멀리 와서 정성을 드립니다. 이제 또 헤어지는 자리에 종아리를 걷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수레가 떠나갈 때 주신 말씀은 가슴에 깊이 새기고 또 띠에다 써두렵니다.”라며 감사하고 있다. 훗날 초의가 조선의 신진사대부들과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었던 유학적 터전은 정약용에게 받은 것이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많은 교류를 했다.1812년 가을 초의선사와 정약용은 월출산 백운동에서 월출산 외경을 그렸다. 초의스님은 백운도(白雲圖)를 그렸고, 다산은 청산도(靑山圖)를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의 말미에 시를 지어 붙였다.1823년 대둔사지 편찬에도 함께 참여했다. 초의스님은 수룡스님과 함께 편집을 담당했고, 호의와 기어스님이 교정을 보았고, 완호와 아암스님이 감정했으며 정약용이 필사를 했다. 정약용이 해배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교류는 지속되었다. 초의스님은 한양을 방문할 때면 늘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에 머물렀다. 수종사 인근 마현마을에는 그의 평생 스승 정약용과 정학연이 살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관계 떠나 수행자로 다산과 그의 아들은 수종사의 샘물로 늘 차를 달여마셨다. 한양에 온 초의스님은 수종사에 머물며 다산과 교류했던 것이다. 이렇듯 다산은 평생 초의스님의 스승 노릇을 하며 그의 안목을 더욱 깊고 넓게 해주었다. 다산 정약용은 차인으로 차를 직접 제다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제다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차를 만들어 마시며 신의를 지켜나가도록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스승과 제자로서 유학을 배운 것만이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유·불·선에 대한 폭넓은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차에 대한 제배 및 제다 그리고 행다 등 다양한 논의도 함께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자신을 스승으로 모신 초의스님에 대해 다산은 스승과 제자관계를 떠나 한 사람의 존귀한 수행자로 평생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초의스님이 평생의 도반(道伴)인 추사 김정희를 만난 것은 30세인 1815년이다. 초의스님은 그때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가 2년 동안 머물렀다. 정약용의 주선으로 한양으로 올라간 것으로 추측되는 초의스님은 서울 두릉(杜陵)에 사는 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 운포 정학유, 자하 신위, 해거 홍현주 등과 교류했다. 이때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생 산천 김명희, 금미 김상희와도 사귀었다.1786년 같은해에 태어난 초의와 추사는 한눈에 서로 뜻이 통했다. 당대의 석학인 옹방강, 완원 등과 교분을 맺고 청의 금석학 시문 전각등을 깊이 연구해온 젊고 개혁적인 신진사대부였던 추사는 청의 상류사회에서 중국의 고급 차문화를 배워 차에 대해서도 해박했던 것이다. 추사가 가끔씩 초의스님에게 자신이 구한 중국의 고급차를 보낼때 초의스님이 중국차에 대해서 어떤 것은 참으로 진미가 있고 어떤 것은 가짜 느낌이 난다고 했던 것은 그같은 교류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추사는 차에 대해 ‘광적’이었을 정도로 애착이 강했던 것 같다. 승설(勝雪), 고다노인(苦茶老人), 다문(茶門), 일로향실(一爐香室) 등 차에 관한 수많은 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초의스님에게 차를 선물받고 써준 저 유명한 명선(茗禪)을 비롯, 죽로지실(竹爐之室), 다로경권실(茶爐經卷室), 다산초당(茶山艸堂) 등 차에 관한 수많은 글도 남기고 있다. 일지암을 맨처음 방문한 사람은 추사도 그의 동생들도 아닌 아버지 김노경이었다. 완도 고금도에서 4년동안 유배생활을 하다 풀려난 김노경은 그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초의스님을 알고 싶어 일지암을 찾은 것이다. 일지암에서 하룻밤을 머문 김노경은 시·서·화등 다방면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초의스님에게 첫눈에 반했다. 초의스님은 김노경에게 일지암의 유천에 대해 시로 답한다. “내가 사는 산에는 끝도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시방에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들고와 물을 떠가라. 갈때는 달빛 하나씩을 건져가라.” 초의스님의 시에 김노경은 유천의 물맛이 소락의 물맛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한다.“1840년 9월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며 초의스님을 찾아 일지암을 방문한다. 오롯한 가을의 풍광에 휩싸인 일지암에서 초의스님을 만나 추사는 애틋한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 동지부사의 고위직에서 하룻밤 사이에 유배를 떠나는 추사에 대해 초의스님의 위로는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후 초의스님은 자신의 제자이자 추사의 제자였던 허유를 통해 제주도로 차와 서신을 보냈다. 제주도에서 초의스님의 차와 서신을 받아본 추사는 그 고마움에 ‘일로향실’이란 글을 써서 허유편에 보냈다.‘일로향실’은 지금도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 추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초의스님은 1843년 봄 제주도로 건너간다.1년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초의와 추사는 차에 대한 즐거움과 학문적 교류의 폭을 넓혀간다. 추사는 이때 초의스님을 통해 선불교에 대한 혜안을 넓힌다. 초의가 다녀간 다음 해에 추사는 세속의 각박한 인심을 따르지 않고 어려움속에서도 그를 따르던 제자 이상적에게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세상에 선보인다. 소나무와 잦나무 지조는 눈이 내린 후에야 그 절개를 알수 있다는 화제(畵題)를 지닌 ‘세한도’는 세속을 완벽하게 품어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질곡에 대해 울분을 터트려야할 추사로부터 이같은 작품이 유배지에서 나왔다는 것은 초의스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세한도 등 명작들 초의 영향 커 초의스님은 제주도에서 차의 재배를 시도한다.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추사를 위해 차의 재배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같은 인연이어서일까. 지금 제주도에는 국내 굴지의 회사가 운영하는 광대한 차밭이 존재한다. 초의스님은 1851년 추사가 보내온 서간문을 모은 ‘영해타운´(瀛海朶雲)을 책으로 묶어낸다.‘영해타운´은 1840년부터 1848년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추사가 보낸 서신을 차곡 차곡 모았다가 책자로 편서한 것이다. 초의스님이 추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절절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사는 북청유배에서 풀려나 과천에 머물며 초의스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소동파의 생일날 과천 사람이’란 편지는 그러한 추사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큰눈이 내리고 차를 마침 받게 되어 눈을 끓여 차맛을 품평해 보는데 스님과 함께하지 못함이 더욱 한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송나라때 만든 소룡단(小龍團)이라는 차 한 개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 만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번 도모해 보십시오. 너무 추워 길게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초의스님은 추사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차를 보내달라는 추사의 청도 제때 지키지 않았다. 추사는 제때 차를 부쳐주지 않는 초의스님에게 익살섞인 ‘최후의 통첩‘도 보낸다.“지금 지체없이 보내지 않으면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로 경책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초의스님이 차를 보내오면 “과천의 샘물로 차를 달여 시음하니 과연 천하의 제일가는 차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추사가 초의스님과 그의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던 추사가 1856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초의스님은 깊이 슬퍼했다. 슬픔에 못이긴 초의스님은 추사가 세상을 떠난 3년후 ‘완당김공제문’(阮堂金公祭文)을 쓴다.“오호라 그대와 나의 42년 동안의 아름답던 우정이여. 그 우정일랑 다음에 저 세상에서도 오래 오래 이어나가십시다. 나는 그대의 글을 받을 때마다 마치 그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그대와 만났을 때는 진정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대와 나는 손수 뇌협과 설유를 달여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 슬픈 소문이 귀에 닿으면 적삼 옷이 함께 젖기도 했습니다. 슬프다. 그대를 먼저 떠나보내는 나의 애끓는 심사여. 황국이 다시들고 흰눈이 내리는데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늦게 그대의 영전에 당도했을꼬. 원망일세 원망이로세.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해도 오직 그대는 나의 심사를 알것입니다.”라고 애절하고 통절한 마음을 적고 있다. 추사를 보낸 초의스님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떠나버린 그를 잊지 못했다. 초의, 추사, 다산은 이렇게 거대한 변화의 담론이 진행됐던 18세기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들이 엮어낸 인연의 바다는 새로운 세기에 목말랐던 많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눈물차를 만들어낸 남천다회도 마찬가지다. 200여년이란 시공을 뛰어넘어 일지암과 초의스님의 선차(禪茶)의 인연이 오늘 이시대에 생산과 소비, 그리고 문화가 결합된 진정한 차의 세계를 열려는 움직임을 싹틔우고 있는 것이다.‘눈물차’를 만들며 차문화생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남천다회는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 차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지암 암주)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고이즈미 ‘총선 도박’ 성공하나

    |도쿄 이춘규특파원|“중의원 총선거(9·11)에서 승리하면 임기(내년 9월까지 고이즈미 자민당 총재)를 1년 연장, 스스로 새로운 자민당을 만들 시간을 주어야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임기연장론이 공식 제기됐다. 고이즈미 총리가 속한 모리파의 회장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앞장섰다.21일자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선거전이 한창인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연장론이 제기되면서 ‘포스트 고이즈미’를 노렸던 자민당 내 인사들의 동요는 물론 “선거심리전”이라는 야당의 반발도 예상된다. 모리 전 총리는 선거후 조기레임덕 가능성을 들어 임기연장론을 제기한 것 같다고 신문은 전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자민당총재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게 되면 포스트 고이즈미를 둘러싼 움직임이 가속화, 정국혼란이 초래될 것을 경계했다는 해석이다.모리 전 총리는 “총리가 (국회) 해산을 한번에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식으로 했다면 무책임하다.”고 말해, 총리가 스스로 자민당 재생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는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17∼19일 전국 유권자 32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내각 지지율은 53.2%로 나타났다. 중의원 해산 직후인 8∼9일 조사때보다 5.5%포인트 높은 것이다. 자민당 지지율도 10%포인트 정도 높아졌고, 민주당은 하락했다. 그러나 우정법안에 반대한 의원의 지역구에 대항후보,‘자객후보’를 공천한 총리의 표적공천에 대해서는 ‘좋지 않다.’는 응답이 48%로 ‘잘했다.’는 대답 38%보다 10%포인트 높았다.taein@seoul.co.kr
  • 호리에 ‘고이즈미의 자객’ 자청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신흥 인터넷기업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32) 사장이 우정민영화 반대세력 신당인 국민신당의 가메이 시즈카 전 의원의 저격수를 자청, 중의원 히로시마6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호리에는 이날 오후 자민당 중앙당을 방문, 총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회담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 자민당은 히로시마6구에 당 공천후보를 내지 않기로 해 호리에를 실질적인 당후보처럼 지원할 전망이다. 호리에가 자민당 공천을 피한 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니혼방송 인수전 때 자민당이 호리에를 맹비난했던 적이 있는데 공천하는 건 무원칙하다.”는 비난여론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됐다.자민당 내 ‘반호리에 기류’도 반영한 것 같다.taein@seoul.co.kr
  • [열린세상] 다가오는 일본의 9·11/윤민호 일본금융정보센터 특별연구원

    2005년 9월11일은 일본의 중의원 선거일이다. 우연이지만 뉴욕 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한 2001년 9월11일과 같은 날이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세계가 주목하고, 또한 역사적인 9·11 선거 결과가 올해로 창당 50주년을 맞은 자민당의 생존과 일본 정치의 앞날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헌법은 국회를 국가 권력의 최고기관으로, 총리를 국가 권력의 행사자로 삼고 있고,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하도록 돼 있다. 또한 국회는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선거로 선출된 의원으로 중의원(임기 4년)과 참의원(임기 6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번 9·11선거는 임기 도중에 해산이 가능한 중의원 선거이다. 자민당 총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한 이유는 물론 알려진 대로 자신의 총선 공약이자 현 정부 개혁정책의 상징인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된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결단과 지도력에 대해 국민들의 신임을 묻고 나선 것이다.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후 지난 50년간 여당으로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전국 47개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통해 그 지역과 집단을 대변하는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해산된 중의원의 자민당 의원 249명의 출신성분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세습정치가(조부에서 부친, 형, 백부, 장인 등을 계승)가 34%, 시·군·현 등의 지역의원 출신이 26%, 관료 출신이 16%, 의원비서 출신이 14%, 의사와 학자, 신문기자, 변호사 출신이 각각 2%, 기타 출신이 2%이다. 세습정치가, 지역의원, 의원비서, 관료 출신이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중의원은 지역에 도움이 되고 중앙정부에 연결이 되는 사람만 선택된다는 실증이다. 이번 우정민영화에 반대한 37명의 의원들도 그 대변자들이었다. 이들 중 34명이 관료, 세습정치가, 지역의원과 비서출신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민당의 공천에서 탈락되었다. 총 48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 과연 중의원 해산 전의 249명에서 탈락시킨 37명의 자리를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와 과반수의 확보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만약 과반수의 의석 확보가 안 되면 중의원 해산 이전과 같이 공명당과의 연립정권으로 정권의 유지를 꾀하여야 한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의석을 확보하느냐도 관건이나, 이미 분배와 안정에 익숙한 국민의 현실 감각이 미래를 향한 이번 선거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될지 궁금하다. 2001년 4월에 집권한 고이즈미 총리는 1990년 이후 집권한 9명의 재상 중에서 최장수를 기록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권한 직후부터 정적이나 매스컴으로부터 괴짜니 비상식적이라니 하는 혹평을 받아온 가운데서도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일부의 이익 대변자들을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행동이 일본국민에게는 신선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또한 이전의 일본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익을 대변하는 모임인 파벌의 보스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과연 9월11일이 그 개혁의 시작의 날이 될지 아니면 정치 테러라는 오명으로 끝나는 날이 될지 일본 국민의 선택이 궁금하다. 국민성과 선거제도가 우리와 사뭇 다른 일본의 정치를 지켜보면서 새삼 우리 정치를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누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 우리의 권력 행사자는 지금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가. 윤민호 일본금융정보센터 특별연구원
  • 토니 자와 함께한 ‘옹박2’ 10문 10답

    토니 자와 함께한 ‘옹박2’ 10문 10답

    “리샤오룽(李小龍)은 죽었다, 청룽(成龍)은 늙었다, 리롄제(李連杰)는 약하다.”얼핏 가당찮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와이어나 컴퓨터그래픽에 의존하지 않은 이 차세대 무술 스타의 고난도 실제 액션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결코 치기어린 허풍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토니 자(29). 지난해 영화 ‘옹박’ 한편으로 당대 최고의 무술 스타들의 계보를 잇는 세계적 액션 스타로 발돋움한 태국의 기린아. 이번엔 신작 ‘옹박-두번째 미션’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으로 무장하고 돌아왔다. 영화 개봉을 사흘 앞둔 15일 영화 홍보차 방한한 그를 숙소인 서울 노보텔 앰배서더호텔 강남에서 만났다. 직접 마주한 토니 자는 선한 눈빛과 숫기 없는 말투 등 영화속 단단하고 강렬한 이미지와 달리 그저 순박한 동남아 청년이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이번에도 역시 노 와이어(No Wire)액션이 압권이다. 다친 곳은 없나. -4층 건물 계단을 오르며 4분여 동안 끊기지 않고 펼치는 ‘롱테이크’ 액션신이 가장 힘들었다. 준비기간만 한달 걸렸고, 촬영만 5일을 했다. 큰 부상은 없었다. ▶ 가장 맘에 드는 장면과 아쉬운 장면은. -모든 장면이 다 맘에 들지만, 특히 코끼리와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 맘에 든다. 어릴적 코끼리를 길렀는데, 당시 행복했던 순간 등 집생각이 나 눈물을 흘렸다. 아쉬운 장면은 하나도 없다. ▶ 세계적 스타로 우뚝 서려면 기존 무술 스타 리샤오룽, 청룽, 리롄제와의 차별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에타이를 하니 그들과 원천적으로 다르지 않나. 하하. 차별성보다는 그들의 장점만을 빼내 나만의 새로운 액션으로 창조해 내려하고 있다. 리샤오룽의 ‘빠름’과 청룽·리롄제의 ‘화려함’ 둘 다를 겸비한 게 내 액션의 개성이다. ▶ 영화속에서는 70대1로 싸워도 이기는데, 실제 무술 실력이 궁금하다. 특히 한국팬들에게는 토니 자보다는 ‘K-1’스타인 카오클라이 카엔노리싱이 무에타이 스타로 더 알려져 있다. -하하. 카오클라이는 잘 모르지만, 쁘아까오는 잘 안다. 그리고 격투 시합 경험은 다섯번 있는데, 이긴 적도 있고 진 적도 있다. 난 실전 경험보다는 영화속 무에타이가 더 좋다. ▶ 액션 연기 연출은 직접 하나. -무술 선생님과 무술 감독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액션을 만들어서 영화속에 반영할 때도 많다. ▶ 한국과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 영화 출연 제의가 온다면 당장 오케이할 것이다. 태권도도 3년간이나 배운 경험이 있다. 전지현이 매력적으로 나온 ‘엽기적인 그녀’와 태국 영화 ‘Letter’와 내용이 비슷한 영화 ‘편지’를 감명깊게 봤다. ▶ 할리우드 진출 계획이나 욕심은. -할리우드 측에서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난 아직은 태국 영화에 전념하며 태국 영화를 세계에 더 알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 진출은 그 다음이다. ▶ 원래 액션연기자가 되고 싶었나. -8살때부터 꿈꿨다. 리샤오룽은 나의 우상이었다. 그의 무술에 미쳐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데뷔작 ‘옹박’ 출연까지는 8년을 준비했다. ▶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대된다. -다음에는 ‘무기를 쓰는 토니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에타이 기술의 하나인 ‘봉술’을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속편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다. ▶ 여성팬들도 많은데. 여자친구는 있나. -아직 없는데, 꼭 만나고 싶다.(쑥스러운 표정으로)참, 한국 여성도 좋아한다. 표현이 진실되고, 무척 사랑스럽다. 한국 여성이 프러포즈하면 기꺼이 오케이다. ■ 오늘 개봉 ‘옹박-두 번째 미션’ “차고∼비틀고∼꺾어라∼” 18일 개봉하는 프라차 핀캐우 감독의 영화 ‘옹박-두번째 미션’은 캄(토니 자)이 도둑맞은 코끼리를 되찾기 위해 호주 시드니의 조직폭력 본부에 뛰어드는 내용. 전편에 비해 10배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해 토니 자의 화려한 액션 못지않은 방대한 스케일의 다양한 액션신이 돋보인다. 특히 영화 007을 연상케 하는 강위의 보트 추격신은 압권. 평범한 태국 청년 캄은 가족과도 같은 코끼리 두 마리가 도난당하자 이들을 찾아 호주 시드니로 건너간다. 코끼리들을 훔쳐간 범죄조직이 마피아임을 알게 된 캄은 마담 로즈가 이끄는 일당과 맞붙는다. 캄은 부족 대대로 내려오는 무에타이 실력을 발휘해 악당들을 한 명씩 물리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4층건물 격투신에서 캄이 70여명의 악당들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비틀어 꺾는 액션은 리샤오룽, 청룽, 리롄제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명장면.15세 관람가.
  • 우정민영화 반대파 ‘국민신당’ 창당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우정민영화법 반대파가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17일 공식 선언했다. 신당에는 민주당 다무라 히데아키(참의원) 의원도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돼 창당 참여세력은 일단 10명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파의 대표자격인 와다누키 다미스케 전 중의원 의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창당 방침을 밝힌 뒤 신당 대표에 취임했다. 당 명칭은 ‘국민 신당’으로 정했다. 일본에서는 창당하려면 국회의원(중의원 해산 후 전직을 포함) 5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극> ■ 오스카와 장미할머니 9월11일까지 김동수플레이하우스. ‘우동 한그릇’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던 극단 김동수컴퍼니의 신작으로, 백혈병을 앓는 소년 오스카와 장밋빛 가운을 입은 할머니의 감동적인 우정을 그렸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작·김동수 연출, 백수련 왕지연 김현정 출연.(02)764-6979. ■ 머더 18일∼9월4일 인아소극장. 가족붕괴의 참상을 섬뜩하게 그려낸 공포극. 정세혁 작·연출, 이규성 김훈 출연.(02)912-9169. ■ 셜리 발렌타인 9월11일까지 우림청담시어터. 중년여성의 자아찾기 여정을 그린 배우 손숙의 모노드라마.(02)569-0696. <뮤지컬> ■ 돈키호테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세르반테스의 명작을 뮤지컬로 본다. 삽입곡 ‘더 임파서블 드림’으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김성기 류정한 강효성 출연.(02)501-7888. ■ 뱃보이 무기한 신시뮤지컬극장. 박쥐소년의 인간세상 적응기를 그린 컬트뮤지컬. 샘 비브리토 연출, 김수용 슈 출연.1544-1555. ■ 밑바닥에서 21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물. 막심 고리키의 원작을 세미 뮤지컬로 각색. 왕용범 연출·박용전 작곡, 황태광 이창욱 출연.(02)745-2124. ■ 루나틱 21일까지 시어터일. 정신병원을 무대로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그린 코믹뮤지컬. 김태웅 연출, 주원성 김선경 출연.(02)3674-1010. <미술> ■ 여름예찬 백자풍경전 ‘마치 달을 연상시킨다.’하여 붙여진 백자 달항아리를 비롯, 옛 선비들과 오랜 풍상을 견뎌온 사문필통·연적 등 문방용품, 제사때 쓰인 제기 등 조선시대 백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김익영, 권대섭, 이영호, 정연택 등 4명의 도예가들의 현대백자도 함께 전시돼 과거와 현재의 백자를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에서 18∼29일까지.(02)399-1151. ■ 김유정 프레스코전 이동이 가능한 포터블 형태의 대형 회벽면과 다수의 도자위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회화를 제작한 평면과 입체 작품 15점이 전시.31일까지. 갤러리인데코(02)511-0032 ■ 한·중 현대 수묵전 수묵화의 전통을 어떻게 하면 현대의 문화에 맞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해 온 한·중 두 나라 현대 수묵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전시회. 등샤오밍 리화성 통중다오 등 중국 작가들의 작품 70여점, 서세옥 유근택 송수련 등 한국 작가 50여점이 선보인다. 다음달 18일까지. (02)2124-8800. ■ 하늘천 따지전 조선시대 500년의 역사, 문화,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 조선 최고의 서예가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의 작고 400주년 기념으로 마련됐다. 다음달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02)580-1300. <클래식> ■ 장한나&베를린 필하모닉 신포니에타 1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젊은 거장으로 성숙한 첼리스트 장한나와 세계 정상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베를린 필하모닉 신포니에타의 콘서트. 하이든과 차이코프스키, 파가니니 등의 첼로 협연과 함께 하이든 심포니, 모차르트 심포니 등 수준높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02)751-9606. ■ 일본 지바현 유스 오케스트라 한국투어 20일 고양어울림누리 대극장,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751-9606. ■ 예술의전당 여름 실내악 19일까지(02)580-1300. ■ 한일 청소년음악회 18일 충무아트홀(02)2230-6624. ■ 김성려 바이올린 독주회 24일 금호아트홀(02)497-1973. ■ 허현 바이올린 독주회 21일 금호아트홀(02)583-6295. <어린이> ■ 똥벼락 21일까지 연우소극장. 농촌체험과 연극놀이를 결합한 극단 민들레의 전통연희극.(02)3663-6652. ■ 마법전사 미르가온 21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 마법세계를 구하러 떠나는 어린 전사들의 모험담.(02)764-8760.
  • 자민당 파벌 ‘지각변동’ 고이즈미파 주류 부상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집권 자민당의 파벌이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30년 이상 자민당의 주류였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후예들이 이끈 파벌이 급격히 퇴조하고 있어서다. 반면 다나카파와 맞선 후쿠다파의 후예들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모리파가 9월11일 총선거를 계기로 급격히 세를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내 주류 재편인 셈이다. 16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다나카파의 후신으로 현재 자민당내 최대 파벌인 옛 하시모토파(85명)는 회장 부재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두번째 파벌인 모리파(75명)는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지만, 세번째 파벌인 호리우치파(49명)와 네번째 파벌인 가메이파(46명)는 퇴조 기미가 완연하다. 옛 하시모토파는 1년 전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1억엔의 정치자금 수사에 휘말리면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데다, 이번 총선에서 하시모토 전 총리가 정계은퇴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어 사실상 와해되는 분위기다. 반면 고이즈미 총리의 모리파는 연속 집권을 한데다 이번 총선을 통해 급격한 세 확산이 예상된다. 우정민영화 반대파를 공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른바 ‘자객’을 포함한 반대파 저격수 대부분을 ‘고이즈미 사람들’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옛 후쿠다 파벌 후예들인 모리파가 30년의 한을 풀고 드디어 집권 자민당의 주류로 부상하게 된다.물론 소선거구제 도입으로 총선 후보 조정에서 파벌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데다 자금동원 능력이 약해진 것도 파벌 쇠퇴의 원인으로 꼽힌다.taein@seoul.co.kr
  • 美, 中·러 군사훈련 ‘견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군사훈련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18일부터 두 나라의 사상 첫 합동 군사훈련이 시작되는 데다 지원 병력을 제외한 직접 참가 대상만 8000명에 이르는 등 규모가 예상외로 커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특히 한반도 서해 지역과 수역을 맞대고 있는 산둥(山東)반도 및 황해가 훈련 지역이어서 긴장을 더하고 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 합동훈련의 부정적인 영향을 경계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공유하는 역내 안정이라는 공동 목적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되길 기대한다.”며 “그들이 하는 어떤 일도 이 지역의 현재 상황을 해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경계했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도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패권에 맞서는 중·러의 공동 전선이 형성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각으로 이번 합동훈련을 분석했다. 중국이 첨단무기로 무장된 러시아군 3000여명을 자국 영토에 끌어들여 합동훈련을 벌이고 있는 것이 군사동맹 차원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미국을 더욱 자극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주둔 미군 문제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지난달 초 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중앙아시아 주둔 미군의 철수시한 제시를 요구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합동 군사훈련에선 두나라 육·해·공군의 첨단 무기가 입체작전을 펼친다. 러시아측에선 공중급유기, 조기경보통제기, 수호이-27SM 전투기 외에 태평양함대 소속 해군함정 등이 참여한다. 또 TU-95МС,TU-22М3 등 폭격기,76공수부대, 해병대·태평양함대가 참여한다. 앞서 신화통신 등은 ‘우정(러시아명 소드루제스트보)-2005’란 코드명으로 18일부터 25일까지 3단계로 나눠 실시된다고 전했다. 또 미사일 훈련에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과 차오강촨(曺剛川) 중국 국방부장이 직접 참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지금 부산에선] 韓流 원조 ‘조선통신사’ 200년만의 행차

    [지금 부산에선] 韓流 원조 ‘조선통신사’ 200년만의 행차

    17∼18세기 200여년간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첨병역할을 한 조선통신사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부활한다. 특히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 남편을 따라 관부연락선을 타고 한국으로 온 일본인 처들의 모임인 부용회 회원들이 행사에 동참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통신사 학회의 출범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조선통신사’는 생소한 단어로 느껴졌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연구를 해오던 학자와 대학교수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단지 조선시대 일본에 문물을 전파했다는 단편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을 뿐 정확히 조선통신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 등 학계 및 관계 전문가 19명이 지난 2002년 3월 조선통신사 행렬재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이후 매년 일본과 국내 도시들을 순방하며 17세기 조선통신사 활동과 한국 전통공연 등을 소개해 왔다. 이후 행렬재현위원회는 조선통신사문화사업추진위원회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지난 3월 문화관광부로부터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올해는 문화부와 부산시로부터 각각 5억원씩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행사 규모가 확대되고, 재현행렬 행사를 갖고 학술행사도 개최한다. 특히 지난달에는 조선통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조선통신사학회가 창립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학회는 그동안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통신사의 복원작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교류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하게 된다. 강 위원장은 “최근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학회는 의견을 같이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행사 올해는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부산 , 의성, 밀양, 서울과 일본의 쓰시마(對馬島),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라는 문화기행 행사는 지난 4일부터 국내와 일본 현지 등에서 8일까지 개최됐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조선시대 200여년간 한·일 문화 교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당시 조선통신사의 주요 행렬을 예술기행단이 답사하게 된다. 예술기행단은 조선통신사학회 소속 학자와 시인, 수필가, 극작가, 사진작가, 미술가, 국악인 등 예술가와 대학생, 일본의 언론인 및 미술가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국내와 일본 등지의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를 탐방해 사진촬영, 문예작품 창작, 현장 학술토론 등을 벌이게 되며 기행을 마친 뒤 기행문과 그림, 사진 등을 모아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특히 오는 19∼22일에 열리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가는 뱃길’ 행사와 9월8∼11일에 열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오는 뱃길’ 행사인 ‘교류의 뱃길 100년’ 이벤트는 행사의 백미로 꼽힌다. 이 행사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의 뱃길이 열린 100주년을 짚어보는 이벤트로 가는 뱃길에는 일본인 부인들인 부용회 소속 할머니들이 동행한다. 오는 뱃길에는 시모노세키 민단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20∼21일 양일간 시모노세키 일원에서 열리는 ‘바칸마쓰리’ 행사에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과 조선통신사 복식 패션쇼 등이 열린다. 이에 앞서 8∼9일에는 일본 쓰시마에서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마쓰리’와 한·일 공연단의 예술공연이 이어져 현지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에는 1711년 조선통신사 정사였던 조태억의 9대 후손 조동호씨가 정사를 맡아 더욱 눈길을 끌었다. 조선통신사학회는 오는 9월6일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 조선통신사 연구자인 일본 교토예술단기대학 나카오 히로시 명예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해 강연과 통신사와 문학, 회화, 음악 등에 대해 폭넓은 내용을 살펴볼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과 일본/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지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모색해 볼 시점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가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우정민영화법과 유엔상임이사국 진출이 모두 무산될 결과를 맞았다. 우정법 통과 실패에 따라 고이즈미 총리는 예고한 대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저지를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목표를 이룰 듯이 보인다. 이러한 외교 행태로 과연 향후 한국이 아쉬워할 때 일본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될 수 있을 것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로 구성된 G4는 안보리 결의안이 총회를 통과하기 위한 191개 회원국의 3분의2인 128개국의 찬성을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아프리카연합(53개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하여 서로 다른 안을 상정하게 되었다. 한국과 이탈리아 등 ‘합의를 위한 단결’(United for Consensus)그룹의 12개 회원국은 독자적인 안보리 개편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이들 UFC는 커피를 마시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임이라고 해서 ‘커피클럽’이라고도 불린다.UFC 국가들은 상임이사국 확대를 반대하고 연임 가능한 비상임이사국만 10개국 늘려 다양한 국가들이 안보리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부권을 가진 미국과 중국이 G4국가의 안보리 확대시도 저지에 공동보조를 취하고 나섰다. 한국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일본에 비쳐지지 않았어도 사실상 일본은 그들의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한국이 일본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면, 향후 일본도 한국에 결정적인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하며 한국은 한·미동맹을 축으로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겪을 때 한국이 이를 중재하면서 할 말은 하겠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 중국과의 공동보조로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 이를 시정토록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을 위해 중국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동안에는 미국·일본에 동참해 왔지만 앞으로 중국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도로 의심받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국의 공동보조 요구에 순응하여 일본을 규탄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독자적인 판단으로 국익을 내세우며 수위를 조절한다.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 모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에 필수적 이익이라고 간주되는 사항에 대해 중국과 같은 편이 되어 일본을 공격한다면 일본과의 신뢰는 형성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에 일본의 입장에서 이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야 일본과의 믿음이 쌓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필수적 이익이라고 간주되는 사항에 대해 일본과 같은 편이 되어 중국을 공격한다면, 중국과의 신뢰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일본을 설득시키는 공동의 노력을 하는 것으로 비쳐져야 양국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 들은, 박쥐가 동물도 아니고 새도 아니라서 모두에게 따돌림받았다는 이야기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편을 만들어 돌아가며 짝을 짓겠다면 모두에게서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서로에게 언제라도 어려울 때, 필요할 때 나의 친구가 되어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강대국들을 이웃으로 둔 한반도의 숙명을 고려한 고도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때로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친구를 배려하는 사려깊은 처세술이 필요하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 랑 前 뉴질랜드 총리 사망

    |웰링턴(뉴질랜드) 연합|데이비드 랑(63) 뉴질랜드 전 총리가 13일 북부 도시 오클랜드의 한 병원에서 신장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가족들이 발표했다.41살에 총리가 돼 1984∼1989년 노동당 내각을 이끈 그는 농업 및 수출 보조금을 폐지하고 철도와 우정·통신을 민영화하는 등 뉴질랜드 사상 가장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 [씨줄날줄] 황태자의 회고록/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5월25일 저녁 강남의 중식당.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예정시간(오후 7시)보다 3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의례적인 얘기 끝에 지난 1년여 동안 회고록을 집필했으며,6월말이면 출판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것은 7월초). 그는 평양 방문 4차례를 포함한 42차례에 걸친 남북 비밀접촉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핵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밀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태우정권 말기 남북접촉 내용을 별도의 비망록으로 작성해 안기부에 전달했으나 다음 정권(문민정부)에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되뇌었다. 회고록 집필과정에서 당시 상황을 기록했던 일지와 수첩을 뒤져보니 정치인들에게 전달한 수표번호까지 모두 기록돼 있었다며 기록이 남은 부분은 모두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받자마자 바로 전달하느라 수표번호를 기재하지 못한 돈은 소송 가능성에 대비해 뺐단다.‘3당 합당을 전후해 YS(김영삼)에게 전달한 돈이 40억원+α’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연유였던 것 같다. 지난 1990년 4월 초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내 말 한마디면 YS의 정치생명은 끝난다.”고 공언한 것도 정치자금 수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새로운 내용이라며 86년 11월 전두환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 포기한 사실도 털어놨다. DJ(김대중)는 애초부터 다음 정권을 영남권 인사에게 넘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 유력한 후보가 자신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6대 국회 진출에 실패하고 대구시장 출마권유를 뿌리치면서 DJ와의 관계도 소원하게 됐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 말에는 자신의 대타로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됐으며 그때 ‘올인’했더라면 운명이 달라졌으리라는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임을 자처하는 박 전 장관은 보안 유지를 위해 끝까지 직접 집필했다고 한다.6공의 황태자로 ‘뜻’을 함께하는 중앙부처 국장 이상 고위관료가 200여명이나 되고 돈줄과 정보를 장악했다지만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해 그는 결국 좌초했다. 스스로 ‘권력의 핵심’이라고 했던 박 전 장관의 회고록은 청산돼야 할 권위주의 시절의 또 다른 ‘X파일’인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씨줄날줄] 배수진과 지지율/진경호 논설위원

    1위 없음,2위 토니 블레어,3위 고이즈미 준이치로,4위 조지 W 부시,5위 고르바초프.2003년 말 정치부 기자들이 한 주간지 설문조사에서 꼽은,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해외 지도자 순서다. 무엇이 닮았을까. 여러 요소를 축약하면 대략 개혁성과 힘, 즉 추진력이 꼽힌다. 이 글의 주인공이자, 세계에서 노 대통령과 두번째로 많이 닮았다는 고이즈미 총리. 센세이셔널리즘과 비타협적 리더십, 파격, 말솜씨, 솔직함 등이 비슷하다는 그가 정치생명을 건 한판 승부를 시작했다. 우정민영화법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공언한 대로 중의원을 해산했고, 정치판을 총선 정국으로 바꿔버렸다. 상대는 일본의 오랜 파벌정치다. 총선 정국을 맞아 40%를 밑돌던 그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우리나라의 탄핵정국을 보는 듯하다. 왜 두 지도자는 탄핵과 중의원 해산의 위기국면을 맞았고, 이런 위기에서 지지율이 오르는 까닭은 또 뭘까. 무엇보다 기존 정치세력과의 타협보다 민심을 직접 상대하는 리더십을 지닌 점이 눈에 띈다. 도쿄신문의 야마모토 서울지국장은 고이즈미의 지지율 상승 이유를 국민들의 개혁의지에서 찾았다.“고이즈미는 ‘대통령식 총리’로 불릴 정도로, 파벌간 타협을 거부하고 제 뜻을 관철하려 든다.”며 “이 때문에 자민당내에서는 반발이 많지만 국민들은 그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전문가인 김재호 연세대 교수도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도가 낮았던 것도 파벌정치에 발목이 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동의했다. 한마디로 개혁추진의 대안부재론이 선거 국면에서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링컨과 드골, 처칠 등 근·현대사에서 기존질서를 깨는데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결국 집권에 성공한 지도자는 무수하다. 지난달만 해도 11년간 재임하며 유럽 최장수를 기록 중인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가 ‘퇴진’이라는 카드로 유럽연합(EU)헌법안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끌었다. 역사에서 배수진은 절체절명의 위기 때 등장한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승부수가 잦다는 건 그만큼 나라가 불안하고, 국민들은 그만큼 피곤하다는 얘기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13일 오전4시~15일 자정 세종로·숭례문 일대 통제

    광복절인 15일 광복절 기념행사 기간 서울도심을 통과하는 시내버스가 우회 운행된다. 정부 주최로 경북궁 앞에서 열리는 경축식 및 ‘차 없는 거리 축제’와 관련, 세종로 광화문 입구(경복궁 앞)∼이순신장군 동상(광화문사거리) 구간이 13일 오전 4시∼15일 자정까지 통제됨에 따라 35개 노선 버스 756대가 의주로, 신문로, 우정국로로 돌아간다.또 숭례문광장에서 열리는 국민축제 행사와 관련, 이 일대를 지나는 36개 노선 버스 1352대가 15일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서소문로, 의주로, 퇴계로 등으로 우회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회와 관련해서는 행사장인 서울광장을 지나 을지로 입구로 운행하는 3개 노선 버스 71대가 15일 오후 7∼10시 을지로 입구에서 남대문로로 우회한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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