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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노총에 ‘혼쭐’난 황우여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16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지도부와의 상견례 자리에서부터 혼쭐이 났다. 오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인사말에서부터 “3년 동안 한나라당과 15번의 대화를 했는데 아무런 결론도 없고 ‘적극 검토하겠다’면서 돌아가면 끝이었다.”며 “합의를 해도 합의서는 바로 휴지조각이 됐다.”고 쓴소리를 했다. 앞서 황 원내대표가 “우리가 오랜 우정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했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건넨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황 원내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를 주도했었다. 당시에도 한국노총 쪽 파트너였던 이용득 위원장과 다시 자리를 함께한 것에 대한 반가움을 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정책연대를 하기로 해놓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그냥 만나는 선에서만 (연대가) 이뤄졌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2월 한국노총이 정책연대를 파기하자 당 정책위 차원에서 조직한 노동 태스크포스(TF)팀에 대해서도 “한두 번 만나서 립서비스만 하고 끝났고, 진정성 없이 청와대의 조정을 받는 TF였다.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당초 상견례 차원에서 만들어진 간담회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노동현안에 대한 정책간담회로 진행됐다. 한국노총은 노조법 재개정에 대한 요구사항을 설명하며 당론으로 채택해줄 것과 6월 임시국회에서 노·사·정과 국회가 한자리에서 노조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황 원내대표는 안홍준 노동분야 정책위 부의장과 한국노총 출신의 김성태 의원에게 실무적 해결을 하도록 위임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부고]

    ●박수철(전 현대자동차 전무)명철(카이스트 경영과학과 교수)종철(전자부품연구원 수석연구원)씨 모친상 윤인수(사업)씨 장모상 16일 울산 동강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52)241-1442 ●권오준(전 대우정밀 사장)씨 별세 16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31)787-1503 ●안홍국(전 충북대 법학대학장)씨 별세 상철(전 경희대 교수)민철(LG생활건강 부장)씨 부친상 김타열(영남대 교수)씨 장인상 16일 대전성모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30분 (042)220-9972 ●권기중(사업)봉중(신일초경 대표이사)씨 모친상 이상섭(경북도립대 행정학과 교수)김영건(퓨렉스 대표이사)씨 장모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30분 (02)3010-2230 ●이정석(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씨 별세 1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2227-7587 ●방준혁(인디스앤 대표·전 CJ인터넷 사장)씨 모친상 1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5시 (02)2258-5979 ●김기영(동양종합금융증권 FICC 세일즈팀장)씨 부친상 15일 경북 문경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11시 (054)556-4401 ●김재목(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전 민주당 안산상록을 지역위원장)씨 별세 재춘(전 해동저축은행 이사)재복(사업)씨 동생상 재옥(교보문고 인천점장)씨 형님상 1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2258-5953 ●김창규(전 공군참모총장·전 대림산업 부회장)씨 부인상 진희(서울예고 전임교원)씨 모친상 박희천(인하대 교수)씨 장모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010-2237 ●백문규(전 주나이지리아 참사관)씨 별세 종관(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종화(캐나다 거주)씨 부친상 최병두(캐나다 거주)씨 장인상 16일 삼육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2210-3411
  • ‘전관예우’ 기업들 실태 들여다 보니

    산업계 역시 전관예우가 만연하고 있다. 기업과 각종 협회·단체를 망라한다. 특히 정부 규제가 집중되는 내수 산업인 통신, 정유업계 등에서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재계에서 전관예우가 관례로 굳어진 것은 고위관료 출신 인사를 통해 정치권과 부처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각종 인·허가뿐 아니라 굵직한 규제 완화나 신설 등은 기업과 업종 자체에 지각변동까지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업의 방패막이가 되기도 한다. 부처가 집행하는 수주 계약 등을 따는 데도 이들의 효용 가치는 상당하다. 전관예우 논란이 가장 많은 업종은 통신업계다. KT는 지난해 12월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을 그룹콘텐츠전략담당 전무로 영입했다. SK텔레콤은 2005년 남영찬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원(부장판사)를 윤리경영센터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어 하성호 방송통신위원회 정책협력실 서기관을 CR 전략실장(상무)으로 채용했다. LG유플러스는 류필계 전 정보통신부 정책홍보관리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정유업계 역시 이에 못지않다. 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석유협회장은 정치권이나 관료 출신이 독차지해 왔다. 오강현 현 협회장은 산업자원부 차관보와 특허청장 등을 지냈다. 차기 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종웅 전 한나라당 의원이 내정돼 있는 상태다. LPG협회는 환경부 ‘몫’이다. 고윤화 현 협회장은 환경부 대기보전국장과 국립환경과학원장 등을 지냈다. 부처 기준으로는 지식경제부(전 산업자원부) 출신 관료들의 재계 진출이 가장 활발하다. 산업 전반을 컨트롤하는 데다 공직 시절부터 기업들과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덕분이다. 산하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과 협회, 단체 등 ‘문어발식 낙하산’을 자랑한다. 김용근 전 산자부 차관보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으로 옮겼고, 정경원 전 우정사업본부장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양준철 전 서울체신청장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김호 전 지경부 국장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이병호 전 산자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STX그룹 무역·사업부문 사장), 이정식 전 통상산업부 무역위원회 과장(LG유플러스 홈솔루션사업본부 본부장) 등은 기업으로 진출했다. 국토해양부 출신 관료들은 관련 협회와 단체를 장악하고 있다. ▲박상규 전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송용찬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차장→건설공제조합 이사장 등이 대표적인 인사다. 이두걸기자·산업부 종합 douzirl@seoul.co.kr
  • [인사]

    ■문화체육관광부 ◇과장급 전보 △홍보지원국 홍보지원정책과장 류정영△문화콘텐츠산업실 저작권정책관실 저작권보호과장 송병호△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도서관정책과장 황두연△홍보지원국 홍보콘텐츠기획관실 홍보콘텐츠과장 조기철△대한민국예술원 예술원사무국 관리과장 허정석△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 총무과장 문정석△해외문화홍보원 기획운영과장 김정표△〃 외신홍보팀장 하현봉△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장 손진호 ■지식경제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전보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 도규상◇과장급 전보△대통령실 파견 박덕렬 ■한국장애인개발원 ◇승진 △전략기획부장 오남주△편의증진〃 김인순△직업재활종합센터장 윤용구 ■한국석유관리원 ◇1급 승진 △경영관리처장 정환조◇2급 승진△대구경북지사장 김완식△경영지원팀장 권혁승△정책총괄〃 주동수△녹색기술연구소 청정연료〃 임의순 ■한겨레신문사 △연구기획조정실장 이병△연구기획조정실 부실장(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설립추진팀장 겸임) 이창곤△한겨레말글연구소장(논설위원 〃) 박창식 ■이데일리 △편집국장 상무 손동영△이데일리TV 제작부장 이상명 ■상지대 △입학홍보처장 박장재△국제교류센터장 정의철
  • 나는 영국 시골에서 귀족처럼 쉰다

    영국만큼 과거를 부둥켜안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옛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며, 그 자부심으로 오늘을 사는 영국인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는 것은 왕정 체제와 각국에서 강탈해 온 대영박물관의 유적들만은 아니다. 영국만큼 과거를 부둥켜안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옛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며, 그 자부심으로 오늘을 사는 영국인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는 것은 왕정 체제와 각국에서 강탈해 온 대영박물관의 유적들은 아니다. 글 사진 = 최승표 기자 / tktt@traveltimes.co.kr 영국의 중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에서는 사람과 자연과 낡은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어울림의 멋을 간직한 풍경은 여행자에게 안식을 준다 나는 영국 시골에서 귀족처럼 쉰다 영국만큼 과거를 부둥켜안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옛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살며, 그 자부심으로 오늘을 사는 영국인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려는 것은 왕정 체제와 각국에서 강탈해 온 대영박물관의 유적들만은 아니다. 시골 지역이야말로‘옛 영국’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자부심이다. 런던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보석 같은 마을을 찾아 떠났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가진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에 들러 동화같은 마을을 산책했고, 도자기마을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에서는 중세 귀족들처럼 고급스러운 찻잔에 애프터눈티를 즐겼다. 21세기로 돌아오기 싫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영국관광청 www.visitbritain.co.kr 1 코츠월드는 영국 중부와 남부에 걸친 구릉지대이다. 푸른 초지 위에서 풀을 뜯는 양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 3 버튼온더워터는‘영국의 작은 베니스’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물과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자랑한다. 코츠월드의 수많은 마을 중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이다 전원에 안겨 누리는 보편적 쉼 COTSWOLDS ‘영국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국 고유의 문화들이란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는 지방의 마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국식 정원, 영국식 휴가 문화, 영국식 아침식사, 심지어 영국식 영어발음까지. 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런던을 비껴 북서쪽에 위치한 코츠월드(Cotswolds) 지방으로 향했다. 초록의 풍경 속을 거닐며 심신의 안식을 누렸고, 중세시대의 귀족처럼 500년 묵은 호텔에서 잘 먹고, 잘 쉬었다. 해리 포터를 탄생시킨 동화마을 런던을 출발해 옥스퍼드(Oxford)로 가는 기찻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어딘가 익숙하다. 완만한 구릉의 초지에는 소 떼, 양 떼가 뒹굴고 있고, 오래된 주택들에서는 장작을 때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유럽의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허나 옥스퍼드역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해 가자 진한 벌꿀색의 낡은 주택들이 나타나면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코츠월드의 동쪽 관문 위트니(Witney)에 접어든 것이다. 영국 중서부와 남부, 6개 주에 걸쳐 있는 구릉지대인 코츠월드는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을 품고 있다. 미국의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은 코츠월드를 여행하고 “영국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진 전원 풍경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분통이 터지도록 그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의 지적은 조금 잘못됐다. 코츠월드는 중세시대 양모 산업의 중심지로 부유층이 몰려든 후로 지금까지 부호들의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런던에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코츠월드에 별채를 소유하고, 주말마다 휴식을 취하는 게 로망이라고 한다. 브라이슨은 코츠월드의 상징인 석회석 돌담벽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분통이 터진다고 한 것이리라. 군데군데 남아 있는 야트막한 돌담벽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은 제주도와 어딘가 닮아 있다. 돌담과 가옥의 구성물이 현무암이라는 사실만이 눈에 띄게 다를 뿐이다. 그래서일까? 영국 국립 걷기 코스의 일부인 ‘코츠월드웨이(Cotswolds Way)’는 지난해 제주올레와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다. 코츠월드웨이는 남쪽의 배스(Bath)에서 북쪽의 치핑 캠든(Chipping Campden)에 이르는 160km의 도보여행 코스로 험난한 오르막길은 없고, 느릿느릿 걸으며 풍광을 즐기고 예쁜 마을들에서 농촌 사람들의 일상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올레길과 흡사하다. 코츠월드라는 지명보다 그 풍경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숱한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까닭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코츠월드 지방의 예이트(Yate)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며, 영화 장면 중 일부를 코츠월드에서 촬영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섀도우랜드> 등도 코츠월드를 배경으로 했다. 코츠월드와 인연이 깊은 유명인들도 많다. 영화배우 케이트 윈슬렛은 촬영이 없을 때 북부 코츠월드에 있는 자신의 집에 머문다고 한다. 찰스 왕세자도 어릴 적 이곳에서 자랐고, 폴로를 배웠다고 한다. 차를 타고 목초지가 펼쳐진 길을 달리는데 왕가의 후손처럼 보이는 소년들이 폴로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6개 주에 걸쳐 있는 코츠월드에는 약 200개의 마을이 있다. 각각의 마을들은 가옥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 고유한 매력을 가졌으니 머무를 마을을 결정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숙제가 아니다. 돌담과 가옥을 구성하는 석회석은 북쪽 지역은 진한 노란색을 띠고, 남쪽으로 갈수록 검은 빛깔이 강해진다. 코츠월드의 마을 중에서 바이버리(Bibury)는 영국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손꼽힌다. 콜른(Coln) 강이 잔잔히 흐르고 송어가 평화로이 헤엄을 치고 있다. 동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집들은 코츠월드의 어느 마을보다 동화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바이버리는 아트 & 크래프트 운동을 주도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가장 사랑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예술마저 대량생산되던 산업혁명의 시대에 반기를 들고 수공예를 활성화시킨 예술가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 마을이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코츠월드에서 가장 대중적인 마을로는 버튼온더워터(Burton on the Water)가 꼽힌다. ‘영국의 작은 베니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마을에는 청계천보다 얕은 냇물을 사이에 두고 아기자기한 앤티크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마을 곳곳에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모터 뮤지엄에는 구식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이 전시되어 있고, 버튼온더워터 마을을 9분의 1 크기로 축소시켜 놓은 모델빌리지도 흥미롭다. Gardens & Gardeners 영국식 정원은 ‘상상력’이다 코츠월드의 예쁜 마을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각 마을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신비한 정원을 곳곳에 품고 있다. 몸체 속에 작은 인형을 겹겹이 품고 있는 러시아 인형처럼 정원 속에는 작은 텃밭이 감춰져 있고 텃밭에 뿌리내린 각각의 식물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영국은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나라 전체에 숱한 정원을 갖고 있다. 런던에 있는 하이드파크(Hyde Park)도 정원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영국 시골 정원의 주인은 중세시대 지주들이었고, 런던 정원의 주인은 왕이었기에 권력의 크기만큼 정원의 크기가 차이가 날 뿐이다. 영국을 벗어나도 영국인들이 스쳐간 곳에는 어김없이 근사한 정원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과 영연방 제국에는 어김없이 보태닉 가든, 영국식 정원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영국인들은 왜 이렇게 정원에 열광할까? 지금의 ‘영국식 정원’은 18세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확대됐다고 한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절대 권력과 엄격한 이념에 대항해 자유로운 정신을 정원에 표현해냈다. 그러니까 영국식 정원이란 자연의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속박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상상력의 표출 창구였던 것이다. 영국식 정원들은 정형화된 정원의 패턴을 과감히 거스른다. 독특한 형태의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진한 풀꽃향기를 맡으면 꿈에서나 보았던 ‘비밀의 화원’에 온 듯한 착각이 절로 든다. 코츠월드에는 영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정원들이 많다. 영국 HHA(Historic Houses Association)에서는 매년 ‘올해의 정원’을 선정하고 있는데 코츠월드 지방에 있는 정원들이 단골로 이 상을 거머쥔다. 버튼온더힐(Burton on the Hill) 마을에 있는 버튼하우스가든을 찾았다. 3월의 정원은 초록의 단색만이 그득했다. 나무를 손질 중이던 백발의 정원사는 “4월에 접어들면 거짓말처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필 것입니다”라고 소년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2006년에 ‘올해의 정원상’을 받은 이 정원은 18세기 영주가 살았던 곳으로 코츠월드의 정원은 단지 풀과 꽃을 구경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자선행사가 열리며, 사진전, 미술전도 열리고, 예식장으로도 사용된다. 다음으로 1988년 ‘올해의 정원’으로 선정된 반슬리하우스에 들렀다. 시런세스터(Cirencester)에 위치한 반슬리하우스도 화려한 정원을 가진 17세기 영주의 주택이었으나 2001년 럭셔리한 호텔로 재탄생했다. 수백년 된 건물의 내부를 모던한 분위기로 180도 변화시켰으며, 호화로운 스파까지 갖췄다. 24개 객실은 모두 다른 디자인으로 설계했으며, 독립된 별채는 동남아 풀빌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랑한다. 투숙객들로 하여금 중세 귀족이 된 듯한 환상에 빠지도록 완벽하게 연출된 공간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2 영국인들은 정원 속에 그들의 상상력을 담는다. 중세 말, 유럽의 정세가 격변할 때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던 영국인들의 자유분방한 의식이‘영국식 정원’의 출발지점이다 3 중세 귀족들의 주택은 20세기를 거치면서 근사한 호텔로 변모했다. 반슬리하우스는 동남아 풀빌라를 무색케 하는 화려함을 갖췄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모던한 실내는 영국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조화다 1 코츠월드는 시간마저 17세기에 멈춘 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2 테트버리(Tetbury)에는 7세기에 지어진 성모마리아 교회가 있다. 이 교회 또한 코츠월드산 석회석으로 지어져 벌꿀색을 띈다 3 코츠월드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굳이 촬영을 위한 세팅이 필요 없어 보인다. 오래된 호텔에는 낡은 책들이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다 4‘ 비교적’번화한 테트버리 중심가에는 앤티크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5 봄을 기다리는 정원은 정원사들의 세심한 손길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6 코츠월드에는 작은 호수가 많고 호수에는 어김없이 백조가 있다. 호텔 이름 중‘스완(Swan)’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7 마을마다 자리한 교회의 한 켠에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비석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묘지의 분위기는 스산하기보다 정겹다 Accomodation 영국 시골 여행을 위한 최선의 선택 영국 시골 여행의 정수는 호텔에서 누릴 수 있다. 코츠월드에서 ‘호텔=잠자는 곳’이라는 등식은 절대 성립되지 않는다. 근사한 정원을 갖추고 있으며,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중세 귀족들이 누린 호사로운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호텔 안에 정원이 있다는 느낌보다는 정원 속에 호텔이 있다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창을 열면 비밀의 화원에서 하룻밤을 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코츠월드의 호텔들이 가진 미덕이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호텔이 20개 전후의 객실만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4개뿐인 곳도 있다. 체인 호텔이란 찾아보기 어렵고 , 어느 호텔을 막론하고 주변의 경관을 해치는 튀는 디자인도 없다. 가격은 런던의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니 오래 머물기에도 좋다. 코츠월드의 호텔들은 한결같이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7세기풍’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실제 17세기부터 시작된 호텔의 역사를 의미한다. 오래된 외관은 우리의 고택을 연상시킨다. 차이점이 있다면 뛰어난 보존정신과 현대 디자인의 요소를 적절히 수용했다는 데 있다. 위트니에 있는 올드스완(Old Swan) 호텔은 15세기 여관이 스파까지 갖춘 고급 호텔로 재탄생한 곳이다. 16개 객실은 최소한의 레노베이션으로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며, 46개 객실은 외관은 그대로 두고, 실내만 모던한 분위기로 변화를 꾀했다. 낚시와 승마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고, 최근에는 스파 시설도 선보였다. 올드 스완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영문학자 C.S 루이스가 애용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이버리에 있는 스완 호텔은 콜른 강을 앞에 두고 너른 정원을 간직하고 있어 코츠월드 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다. 객실은 단 22개뿐이다. 코츠월드에는 호텔뿐 아니라 B&B(Bed & Breakfast),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가이드에게 “미국에서는 B&B란 통상 저렴한 숙소를 일컫는데 코츠월드 같은 부호들의 휴양지에 있다는 게 어색하다”고 말하자, 콧방귀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코츠월드의 B&B는 비싼 호텔을 가지 못한 여행객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영국 농촌에서의 휴가를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숙소 형태”라고 설명했다. 세대를 거듭하며, 정원을 다듬고, 몇 되지 않는 객실을 애정을 갖고 보존해 온 주인들의 시골 사람 인심을 체험하고 싶다면 호텔보다 B&B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호텔이든 B&B든, 예약은 서둘러야 한다는 것. 야생화가 만발하는 봄철에 코츠월드를 방문하려면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안전하다. 코츠월드관광청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다양한 숙소 정보와 유용한 여행 팁도 얻을 수 있다. www.cotswolds.com 1, 4 위트니에 위치한 올드스완 호텔은 6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레노베이션을 최소화한 객실에 머물면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 영국 시골 여행의 미덕은 영국인들이 애써 지켜온 그들의 휴가문화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17세기 영주들의 주택을 개조한 고급 호텔들은 실내를 모던한 디자인으로 꾸몄다. 햇볕 드는 밝은 객실은 아늑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food 미식가, 대식가를 만족시킨 영국의 맛 영국에 대한 가장 ‘억울한’ 편견 중 하나는 음식에 관한 것이다. ‘피쉬 앤 칩스를 제외하고는 먹을 게 없다’거나 ‘양은 많고 짜기만 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3~4시간씩 수다를 떨며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비상식적인 사람들(프랑스)과 지중해의 축복으로 연중 식재료가 풍부한 아랫동네 허풍쟁이들(이탈리아) 때문에 저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영국인들은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시골에서는 이 편견이 여지없이 깨지기 마련. 지방에서 재배한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충분히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켜 준다. 코츠월드에서의 아침식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는 고유명사를 낳았을 정도로 영국의 아침 밥상은 특별하다. 풀 브렉퍼스트라고도 불리는 영국 조식은 이름처럼 양이 많다. 호텔에 따라 뷔페식으로 알아서 가져다 먹는 방식이 있지만 주문형으로 큼직한 접시에 음식을 꽉 채워서 정성스레 가져다 주는 경우는 양이 정말 많다. 소시지, 베이컨, 블랙푸딩(순대와 비슷한), 스크램블 에그, 칠리 콩, 구운 토마토, 삶은 버섯, 감자 튀김이 기본이다. 식성에 따라 보기만 해도 질릴 수 있다. 각종 빵과 과일, 시리얼까지 곁들여지면 위장이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기자의 식성 탓일까? 어느 나라에서의 조식보다 영국식은 만족스러웠다. 단지 배만 부른 것이 아니었다. 어느 음식 하나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이에 비하면 시리얼과 빵 조각, 커피로 아침을 떼우는 콘티넨탈 조식은 요기만 면하는 수준이다. 영국에서 먹는 문화의 대표격은 ‘애프터눈 티’라 할 수 있다. 영국은 어디를 가나 호텔이나 찻집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지만 한 폭의 그림 같은 코츠월드의 절경과 함께하는 맛은 비교할 수 없다. 따뜻하게 구워낸 스콘과 함께하는 홍차 한잔은 오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특히 영국의 홍차 맛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차 때문에 전쟁까지 불사한 나라가 아니던가. 영국에서는 최근 음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맛없는 음식의 나라’라는 불명예를 떨치기 위해 국가적으로 스타 요리사를 집중 육성시켜 음식관광의 활성화를 노리고 있을 정도다. 이와 별도로 10년 전 구제역으로 나라 전체가 홍역을 앓은 뒤, ‘믿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가닉푸드(Organic Food)가 대두됐다. 코츠월드에는 유기농 을 ‘라이프 스타일’로 확장시킨 데일스포드(Daylesford)가 유명하다. 최근 한국 백화점에도 진출해 우리에게 익숙한 데일스포드는 직접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과 기른 가축을 판매하는 상점과 식당, 유기농 화장품으로 즐기는 스파 시설까지 갖추고 있으며, 영국인들은 물론 코츠월드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www.daylesfordorganic.com 5 영국은 오가닉 푸드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유기농을 직접 생산해 다양한 제품으로 판매하는 데일스포드는 코츠월드에서도 명소로 꼽힌다 6 영국에서의 세 끼니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햇살 드는 창가에 앉아 조식을 먹을 때다. 잉글리시 풀 브렉퍼스트의 진수를 코츠월드의 호텔에서 누려볼 수 있다 7 홍차 한잔과 달콤한 스낵을 즐기는 오후의 여유는 영국 여행의 백미라 할 만하다. 근사한 애프터눈 티를 위해서라면 점심과 저녁을 희생할 만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서울광장] 교사 오토다케/박홍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교사 오토다케/박홍기 논설위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신체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팔다리가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계기는 자서전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을 통해서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도쿄 특파원으로 갓 근무를 시작한 2007년 4월 5일이다. 5학년과 2학년인 아이들이 전학한 스기나미(杉並) 제4초등학교의 개학식에서다. 그 역시 교사, 선생님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날이다. 휠체어를 탄 그는 운동장 단상에 올라 첫인사를 했다. “저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지내면서 ‘이런 땐 곤란하겠구나’라고 생각될 땐 꼭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세요.”라고.  오토다케는 첫해 5학년 사회를 가르쳤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보조교사 오노가 항상 곁에 있었다. 아들은 일본어가 서툴렀다. 할 줄 몰랐다. 때문에 그는 다른 교사들의 수업내용까지도 아들 옆에서 영어로 설명해 주거나 메모해 줬다. 하루는 아들이 편지를 가져왔다. ‘박군, 5학년 한반이 된 지 한달이 지났죠. 일본어를 잘할 줄 모르는데도 정말 열심히 뛰고 있다고 생각해요. 박군이 말할 상대가 없어서 쓸쓸해 보이는 얼굴을 짓지만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선생님도, 에치젠 담임 선생님도 박군 편이에요. 뭔가 곤란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편지를 써 보세요. 5월 11일 오토다케.’ 그의 솔직함에, 따뜻한 배려에, 한 획 한 획 정성을 담아 예쁜 한글로 쓴 편지에 놀랐다. 이후 운동회날 만나 물었더니 한글을 배우는 아내가 번역해 써준 것이라고 했다.  오토다케는 2008~2009년 연거푸 3학년과 4학년 담임을 맡았다. 지난해 3월 학교를 떠날 때까지 학생들에겐 선생님 이전에 친구이자 멘토였다. 보통 때엔 휠체어를 탄 채 수업을 진행했지만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는 휠체어에서 내려 학생들과 함께 뛰었다. 축구를 하고, 농구를 했다. 전동 휠체어엔 늘 학생들이 매달려 있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던 것은 주위사람들이었다. ‘장애인=특별한 사람’이라는 상식을 깼다. 장애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여겼다. 교사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괜찮아 3반’을 통해 교육 철학인 “넘버 원(No.1)이 아니어도 좋아, 온리원(Only one)을 목표로 삼자.”를 다시 강조했다. 또 “모두 다르니까 모두가 좋아, 사람은 저마다 개성이 있고 장점을 드러내는 분야가 있어.”라며 격려하고 용기도 줬다.  4년 전 오토다케의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15일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스승의 날은 제자들이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하지만 세태 탓인지 마음으로 감사하는 학생들이, 성심으로 감사를 받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학생들은 똘똘하지만 친구끼리 우정을 다지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학교엔 그다지 감동이 없다. 입시에 얽매인 중·고교는 차치하더라도 초등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온통 나만을 위한 경쟁교육에 내몰린 탓이다. 오죽하면 초·중·고교생의 행복지수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를 기록했을까. 불행한 일이다.  선생님들이 좀 더 제 몫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우수한 집단이다. 교육 강국인 싱가포르·핀란드보다 훨씬 월등한 ‘상위 5%’ 인재들이지 않은가. 학생들의 행복을 되찾아 주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넘버 원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장점을 키워 온리 원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학생들 자신이 사랑받고 소중하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갖도록,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손을 내밀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학생들을 진심으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교사 오토다케처럼 “너희들을 가르칠 수 있어 진정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hkpark@seoul.co.kr
  • 16년 동안 단짝친구, 알고보니 ‘배다른 자매’

    가끔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됐던 한 영국 여성의 곁에서 힘이 돼줬던 16년 친구가 유전자 검사 결과 피를 나눈 언니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브리스틀에 사는 앨리슨 슬래빈(41)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와 형제의 얼굴도 모른 채 성장해 가정을 꾸린 그녀는 최근에서야 혈육이 궁금해졌다. 슬래빈이 부모를 찾는 데 가장 힘이 돼줬던 건 한 동네에 사는 친구 샘 데이비스(43). 지난 2월 천신만고 끝에 친 어머니를 찾은 슬래빈은 자신이 19세였던 어머니와 테리 콕스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바로 입양 보내진 사실을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테리 콕스’는 데이비스의 아버지의 이름과 같았다. 평소 데이비스와 “친자매처럼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슬래빈은 호기심에 데이비스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두 사람이 같은 아버지를 둔 배 다른 자매란 사실이 밝혀졌다. 슬래빈은 “언니와 나는 입맛과 성격, 직업 등 모든 것이 거의 똑같았다. 우연히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날도 있어서 놀란 적이 많았다.”면서도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우리가 친 자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서 놀라워했다. 1993년 친구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결혼식 들러리를 서줄 정도로 각별한 우정을 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주일에 이틀 꼴로 노래방을 같이 갈 정도로 친하다는 두 사람은 “친 자매로 밝혀졌어도 우리의 관계는 달라질 게 없다.”면서 “이전부터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자매였다.”고 기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기업(企業)이야 말로 종합예술(綜合藝術)입니다 ” 영감(靈感)으로 시(詩)를 쓰듯 일한다는 만년(萬年) 문학(文學)소년  KAL 하나만으로도 지난 해 2백50억원의 현찰을 벌어들인「매머드」기업 한진(韓進). 그 한진(韓進)의 창업주이자 총수(總帥)인 조중훈(趙重勳·53·서울 서대문구 부암동 164)씨는 자신을 장사꾼이라기보다는 차라리「만년 문학소년」으로 보고 있다.『인생이 곧 예술』이며『기업이야말로 종합예술』이라는 조(趙)씨는 그래서『시인이 영감으로 시를 쓰듯』자신은 기업인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간다고 했다.  한진(韓進)「그룹」의 모체인 한진(韓進)상사는 1945년에 세워졌지만 한진이 우리나라 재계에 제1인자에 떠오른 것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69년부터 였다. 69년 3월 적자에 허덕이던 KAL을 한진(韓進)이 인수하면서부터『현찰 동원능력 국내 1위』의 한진은 명실공히 한국 제1위의 재벌이 된 것. 45년 창업에서 69년「랭킹」제 1위에 오르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짧다면 너무 짧고 길다면 인생의 절반이다.  조(趙)씨 자신은『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란 서정주(徐廷柱)씨의 시를 인용, 이 24년을 표현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 서리가 내리고 모진 비바람이 불었듯, 오늘의 한진(韓進)을 있게 하기 위한 24년이었죠. 예를 하나 들까요? 』  조(趙)씨는 6·25동란 후 군납업을 하던 시절을 이야기 했다.  지금 살고있는 서울 세검정(종로구 부암·홍지·신영·평창동을 일컬음)의 집은 당시 조(趙)씨의 별장. 조(趙)씨는 한국에 와 있던 미군 수송관들이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꼭 세검정 별장에 초대, 송별「파티」를 열어 주곤 했다. 조(趙)씨의 부인은 손수 마련한 선물을 선사했다.  몇년 뒤 월남전(越南戰)이 터졌다. 군납과 용역을 위해 한진(韓進)이 월남(越南)에 달려갔을때 상대해야 했던 미군 수송관들은 거의가 몇년 전 한국에 있었던, 그래서 조(趙)씨의 세검정 별장에 초대되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흔히들 한진(韓進)을「월남전(越南戰) 재벌」이 되기까지엔 이런 정성들이 밑거름이 되어 준 것.  『월남전을 내다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단순한 우정과 고마움의 표시였죠. 그리고 또 한사람에 대한 일종의 투자였고. 미 국방성이 아무리 방대하다지만 수송장교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제 어디서건 다시 만나게 마련이죠』  이「언제 어디서」가 조(趙)씨에겐 월남전(越南戰)으로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것이다.  현재 한진(韓進)「그룹」에 들어있는 산하 업체는 모두 7개. 이 중 인하(仁荷)대학을 제외한 6개 업체가 모두 육(陸)·해(海)·공(空)의 운수사업체 뿐이다. 조(趙)씨가 즐겨부르듯 한진(韓進)은「수송백화점」인 셈.  고속「버스」관광·육상수송을 도맡고 있는 한진(韓進)상사를 비롯, 내년 5월부턴「점보」화 할 KAL, 한국(韓國)공항, 한일(韓逸)개발과, 바다를 누비는 대진(大進)해운과 동양(東洋)화재해상보험 등이 수송백화점 한진(韓進)을 떠받치고 있는 6개의 큰 기둥이다.  『남이 창안한 기업은 절대 좇아가지 않는다는 게 제「모토」입니다. 결국 망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내가 아는 사업만 한다는 게 나의 사업철학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잘 아는 수송사업에 전심전력 달라붙는 거죠』  한국 제일의 재벌이 된 조중훈(趙重勳)씨지만 젋은 시절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바이론」에 미치고 「괴테」와 함께 고뇌하고 사색했단다.「아꾸다가와」의 소설도 젊은 날의 조(趙)씨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 중의 하나.  『20대엔 여인에, 30대엔 일에 미쳐야 하고,40대엔 보람을 찾아 국가·민족 등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하는 조(趙)씨의 말 속엔 아직도 문학청년의 체취가 남아 있다. 이 때문인지 조(趙)씨의 경영철학도『사업이야 말로 종합예술』이란 것.  『기업도 훌륭한 예술작품과 같이 균형과 조화, 개성과 창의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이 창의력을 밀고 나가는 끈기죠.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시인이 영감으로 시를 쓰듯 기업인에게도 기업인의 육감이 있습니다. 이 육감을 놓치지 안기 위해선 모든 일을 바로 보고 맑은 정신을 지키고 있어야죠』  시인과 같은 영감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일단 시작하면 끈기있게 달라 붙는다는 경영철학을 조(趙)씨는 기회있을 때마다 남들에게 들려준다. 여기에「플러스·알파」는「타이밍」. 말하자면 시운(時運)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긴데 조(趙)씨는『시운(時運)이 뒤따를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시운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가 필요하다』는 것.  조(趙)씨는 자신을 가리켜『인생에 3번 있다는 기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았기에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진(韓進) 산하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종업원수는 모두 6천여명.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조(趙)씨 자신이 반드시 이력서를 들추어 보고 면접을 한다.  이따금 새벽이면 인천(仁川)부두나 김포(金浦)공항 등 일선 사업장을 느닷없이 기습, 종업원들을 독려하는 등 조(趙)사장의 인사관리는 사뭇 철저하다.『사람이 곧 재산입니다. 최고경영자는 자기 식구들의 인화(人和)를 도모할 능력이 있어야죠.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쓰느냐가 그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죠. 자기 기업에 맞는 사람을 골라 내고 조직체에 맞추는 작업이 바로 최고경영자의 할 일이죠 』  『사장학의 첫발은 자기 종업원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일단 약점이 보이면 그 경영자는 파멸입니다. 약점 있는 사람이 약점 없는 부하를 요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조(趙)씨는『경영의 밑바탕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며 지식 』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지난 71년을 『한진(韓進) 지식투자의 해』로 삼아 여러가지 사원 자질 향상을 위한「세미나」, 일선 실무자의 해외파견 교육 등을 실시했다.  「인화(人和)」를 앞세우는 조(趙)씨의 인사관리 원칙은 우선 한진(韓進) 경영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조(趙)씨 4형제의 인화(人和)로부터 시작된다.「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재산이 조금만 모이면 재산싸움을 벌이는 것이 상례. 하지만 조(趙)씨 4형제는 아직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맏형이자 한일(韓逸)개발의 사장인 조중렬(趙重烈)씨는 KAL「빌딩」안에서 젊은 사원들에게 흔히 『인자한 아버지』로 존경받는다. 업무를 캐고 따지기 보다는『수고하는군』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던지기 일쑤다.  둘째이자 한진(韓進)「그룹」의 회장인 중훈(重勳)씨는 KAL 사장을 겸임, 대한항공의 육성에 거의 전력을 쏟고 있다. 대외적인 업무는 중훈(重勳)씨가 전담.  세째(셋째)인 중건(重建)씨는 한국공항의 사장이자 KAL의 부사장. 실질적으로 한진(韓進)의 안살림을 도맡고 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둘째 형과는 달리 미국(美國) 유학까지 마친「인텔리」라 「컴퓨터」가 무색할 정도로 냉철하고 판단력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막내인 중식(重植)씨 역시 미국(美國)서 건축학을 전공한「엔지니어」. KAL「빌딩」건설의 공사 총감독이었으며 현재 한일개발의 상무로 아직은「견습 경영자」의 위치에 있다.  『무뚝뚝하면서도 인간미가 있다』는 평을 듣는 중훈(重勳)씨는 자수성가한 사람답게『무지하게 부지런한』사람.  『나이가 들어 그런지 새벽녘까지 철학서적이나 문학서적을 읽죠. 이상하게도 이런 책을 읽으면 사업「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8시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이죠. 대신 밤 10시면 꼭 자리에 듭니다』  13년 전부터 술은 아예 끊어버렸단다. 그 대신 단 5초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쉬질 못하는 성미다. 1주일에 한번쯤「골프」를 치는 게 유일한「레크리에이션」.  요즘은 몸이 77kg으로 불어나 목하「다이어트」중. 기름진 음식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식후에는 과일을 꼭 먹는다. 시인과 같은 영감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철저하도록 치밀하다는 것이 조(趙)씨를 아는 주위사람들의 말이다. 조(趙)씨의 이「친밀함」은 평소에도 자주 드러나는데 가령 비서실이나 응접실 문지방이나 유리창에 먼지가 조금만 끼어 있어도 당장 발견해 낸다.  또 지저분한 것을 싫어해 책상 위의 서루도 언제나 깔끔히 정리되어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철저하게 결백한 성품.  또 맏형 중열(重烈)씨가 모시고 있는 노모(老母)님에겐 여행 떠나기 전이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꼭 문안드리기를 잊지 않는 효자이기도.  부인 김정일(金貞一·50) 여사와의 사이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오늘의 한진(韓進)이 있기까지 내조를 아끼지 않은 김(金)여사는 한마디로 현모양처(賢母良妻)형. 지금은 가정부를 한 사람 두고 있지만 70년까지는 단 한 사람의 고용원도 두지 않고 손수 식사를 마련하고 집안청소를 도맡아 해왔다.  지금도 반찬만은 손수 마련한다는 게 김(金)여사의 신조.  이따금(가능한 한 손님을 집으로 오게 하지 않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지금도 차를 내오고 과일을 깎아 내는 일만은 가정부를 시키지 않고 직접 한다.  『창의력이 없는 젋음은 무능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잠들기 전에 그날 하루를 반성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 제1의 재벌 조중훈(趙重勳)씨가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소박한 격려이다. <昌>    @조중훈(趙重勳)씨 약력  ▲1920년 2월11일=경기도 인천(仁川)시 항(港)동 4가 3에서 탄생  ▲67년 9월=고대(高大) 경영대학원 졸업  ▲45년 11월=한진상사 설립  ▲61년 1월=한국(韓國)공항 창립  ▲61년 6월=한진(韓進)관광 설립  ▲62년 1월=경기도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조합 이사장  ▲65년 1월=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  ▲65년 10월=서울와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67년 2월=한국LPG공업협회 이사장  ▲67년 6월=대진해운 대표이사  ▲67년 9월=동양화재해상보험 이사회장  ▲68년 2월=한국공항주식회사 대표이사  ▲68년 5월=한(韓)-월(越) 재단이사  ▲68년 8월=인하(仁荷)학원 이사장  ▲68년 9월=한일개발주식회사 대표이사  ▲68년 12월=한국원면창고 대표이사  ▲69년 3월=대한항공 인수, 대표이사  ▲70년 7월=「말라가시」공화국 명예총영사  -----------------------------------------  ▲67년 11월=은탑산업훈장(73호)  ▲68년 11월=금탑산업훈장(33호), 대통령 표창창  ▲69년 11월=댜통령표창 우승기(외화획득 최고)  ▲70년 11월=대통령표창 우승기(군납부문 최고) [선데이서울 73년 1월1일 제6권 1호 통권 제22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동네 칼국수 먹을 때면…눈에 선한 나의 벗아”

    “동네 칼국수 먹을 때면…눈에 선한 나의 벗아”

    누군가는 그를 노동시인, 민중시인이라고 불렀다. ‘노동 서시’ 등 대표적인 시편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먹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시를 틀어쥔 채 노동자들 틈바구니로 들어갔던 그이기에 붙여진 이름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생래적 서정시인’이라고 했다. 시인 백무산은 ‘자신이 가야 할 미래는 민중이라고 하면서도 극렬한 저항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라고 평했다. 시인 박영근(1958~2006)이다. 안치환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이다. 2006년 5월 11일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뒤 꼬박 5년이 흘렀다. 그를 추모하는 ‘제5주기 박영근 시인 추모제-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7일 한국작가회의·리얼리스트100 등의 주최로 열린다. 장소는 서울 홍익대 앞 ‘두리반’. 공간적 상징성이 크다. ‘제2의 용산’으로 불리는 두리반은 강제 철거에 맞서 1년 반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건설 자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자들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 여기에서 절묘하게 박영근의 삶과 시가 겹쳐 투영된다. 박영근의 고향은 전북 부안이다. 박영근은 1997년 어느 봄날 서울 종로에서 동료 시인들과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다 말고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서울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탄다. 그리고 고향 부안까지 내처 달린다. 어미 품처럼 따뜻한 마을, 소년의 시정(詩情)을 늘 출렁이게 한 수평선을 보고 싶었지만 푸르스름한 새벽녘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괴물처럼 자리 잡은 방조제뿐이었다. 바닷물을 막아선 새만금의 건설자본 앞에 무기력해진 고향 모습에 절망한 박영근은 ‘…/ 수평선 자락에서부터 눈 시리게 출렁이던 물이랑을 지우고/ 물길을 끊어버린 방조제 공사장을 나는 바라본다/ 뻘길은 평지가 되고 한 도시가 들어서겠지/ 보상금에 조생이 자루를 놓아버린 조개미 아짐은 또 취했나 보다/’(‘해창에서2’ 중)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노래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박영근이건만 그의 시는 여전히 회자되고, 박영근에 대한 그리움 또한 여러 시인들에 의해 여전히 노래되고 있다. 시인 박라연은 새만금 방조제를 찾은 뒤 ‘…/ 평등한 밥을 위해/ 평생을 바쳤을/ 시인 박영근, 그의 영정 사진 속/ 해맑은 웃음이 새만금까지 흘러넘쳐/ 철썩이는 것 보았지만/…/ 너무 공평 평등해서 심심한, 곳으로/ 가는 그를 붙잡고 싶지만’(‘우연히 들른’)이라고 썼다. 시인 박철은 ‘동네 분식집에서 혼자 김치칼국수를 먹는데/ 갑자기 붉은 국물 위로 박영근 시인 생각이 나는 거라/ 그는 지금쯤 어딜 가고 있을까/’(‘박영근 생각’)라고 20년 우정을 나눴던 벗과의 한때를 시로 추억했다. 7일 추모 행사에서는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추모사를 낭독한다. 두리반에서 재개발 반대 농성을 벌이는 소설가 유채림씨와 시인 서홍관씨 등이 고인을 추모하는 영상을 상영하고 추모시를 헌정한다. 시인 김일영, 박일환, 황규관의 시 낭송도 예정돼 있다. 박영근은 1981년 ‘반시’(反詩) 제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취업공고판 앞에서’ ‘대열’ 등 여섯 권의 시집과 산문집 ‘공장 옥상에 올라’ 등을 남겼다. 신동엽창작기금(1994)과 백석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그가 떠난 뒤 돌이켜보니 그의 시야말로 가장 민중적인 것이 가장 서정적임을, 혹은 그 반대 명제가 성립될 수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인사]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교섭국장 이윤영 ■교육과학기술부 △글로벌협력담당관 박진선△원자력안전과장 유국희△글로벌정책담당관 방연호△과기인재기반과장 한성환△방사선안전〃 백민△교육과학기술부 임승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김석기 ■경북과학대 △교무학생처장 박태석△기획조정〃 이종춘△입학홍보〃 김찬곤△학술정보센터소장 제경성△취업지원센터〃 김이학△박물관장 이영진△숭덕〃(학생생활연구소장 겸임) 송창훈△국제교육원장 이용진△행정지원처장 성태명 ■금강대 △대학원장 조성환△금강어학원장 정미애 ■MBC ◇기구개편 △외주제작국장 정호식△외주제작국 부국장 서정호△서울경인지사 인천총국장 김주태△보도제작국 보도제작1부장 오정환△드라마운영부장 김광민<예능본부>△본부장 안우정△부국장 김엽△예능1부장 원만식△예능2〃 이응주△예능3〃 사화경△예능4〃 이민호◇기구개편 보직△용인드라미아개발단장 윤영무△용인드라미아개발단 부단장 윤병철△외주제작국 외주제작1부장 전배균△〃 외주제작2부장 김학영△예능본부 예능운영부장 이재원◇보직△기획조정본부 전략기획부장 김동효△신사옥건설국 사옥관리〃 피용선△크리에이티브센터 콘텐츠개발1〃 이흥우◇지사장 <글로벌사업본부 해외사업부>△중동아프리카지사장(순회특파원 겸무) 장형원△중남미지사장(〃) 정길화◇전보△보도국 기획취재부장 정연국
  • 코난·케로로… 어린이 친구 몰려온다

    코난·케로로… 어린이 친구 몰려온다

    어린이날이다. 10일까지 징검다리 연휴도 이어진다. 나들이를 가기에는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일터를 떠날 수 없는 부모들도 있다. 인파에 밀려다니는 놀이공원이 최상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케이블방송에서는 5~10일 연휴에 ‘방콕’할 수밖에 없는 꼬마 시청자를 겨냥한 특집 프로그램을 가득 마련했다. 애니메이션채널 투니버스는 인기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5~9일 오전 9시에 편성한 ‘미니 방학’ 특집을 마련했다. 5일에는 지난해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명탐정코난 극장판:천공의 난파선’이 방송된다. 명쾌한 추리와 액션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코난이 살인 박테리아를 앞세운 테러조직 ‘붉은 샴고양이’, 영원한 라이벌인 ‘괴도 키드’와 삼각대결을 펼친다. 6일에는 프랑스 개봉 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족영화 ‘꼬마 니꼴라’가 찾아온다. 50년간 전 세계 180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7일에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힘을 키워가는 ‘아쿠아쿠’와 맞서는 케로로와 소대원들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을 그린 ‘케로로 극장판: 기적의 사차원섬’이, 8일에는 어린 시절 엄마를 여읜 하루카가 엄마의 유품을 찾기 위해 펼치는 모험담을 담은 ‘잃어버린 마법의 섬’이 방송된다. 9일에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마음이’가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과 순수한 우정을 나누는 영화 ‘마음이’가 전파를 탄다.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애니맥스는 5일 ‘포켓몬스터DP 극장판 시리즈’ 중 ‘신들의 싸움 시리즈’로 불리는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 등 세 편을 모두 방송한다. 시간을 지배하는 디아루가와 공간을 지배하는 펄기아의 화려한 전투 장면이 일품인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는 오전 8시에 방송된다. 지난해 12월 극장에서 개봉된 ’포켓몬스터DP 시리즈’의 최신작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는 오전 9시 30분에 방영된다. 풍요로운 마을 미케나에 전해 오는 아르세우스에 관한 전설을 중심으로 신들의 전투를 잠재울 비밀이 그려진다. 밤 11시에 방영되는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는 스토리 전개상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와 이어진다. 디아루가와 기라티나의 다툼 속에서 현실세계와 반전세계 모두를 구하기 위해 지우와 비밀의 포켓몬 쉐이미가 함께하는 모험이 펼쳐진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명콤비 김무성·박지원 차기 당대표에 오르나

    명콤비 김무성·박지원 차기 당대표에 오르나

    한나라당 김무성(왼쪽)·민주당 박지원(오른쪽) 원내대표 체제가 저물고 있다. 두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독 ‘최선’과 ‘차선’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지난해 6월 세종시 수정안 처리와 집시법 개정안 처리 과정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주당은 세종시 수정안의 본회의 부의를 반대했던 방침을 철회하는 대신 스폰서 검사 특검을 얻어냈다. 한나라당은 집시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 방침을 접었고 청와대의 세종시 수정안 처리 주문을 소화했다. 하지만 연말 예산안 정국과 영수회담 국면에선 정치적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두 원내대표는 각각 상도동과 동교동계의 뿌리를 잇는 정치인이다.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어렵사리 ‘친정’으로 돌아온 동병상련의 처지다. 법사위, 운영위, 정보위 등 3개 상임위에서 함께 활동했다. 두 원내대표의 다음 여정도 비슷하다. 각각 차기 당 대표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한때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으로 불렸고,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당 내홍과 당청 갈등을 다독이려면 김 원내대표가 가진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재·보선 참패에 따른 책임론, 소홀해진 친박계와의 관계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박 원내대표는 탁월한 정치력으로 제1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대여 협상력을 발휘하는 데 박 원내대표의 몫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관리형’ 당 대표가 요구되는 시기에 ‘개성 강한 정치색과 특정 지역(호남) 출신’이라는 점은 그리 유리한 기반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오는 6일, 민주당은 13일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구혜영·홍성규기자 koohy@seoul.co.kr
  •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1991년 11월 25일. 남북의 여성이 분단 46년 만에 서울에서 얼굴을 맞댔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판문점을 넘어와 남북통일과 평화를 노래한 것. 이를 성사시킨 사람은 남한의 여성도 북한의 여성도 아니었다. 4년 넘게 남북한의 메신저 역할을 한 시미즈 스미코 전 일본 사민당 의원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남북 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주장하는 시미즈 의원으로부터 남북 여성 교류를 성사시키기까지의 뒷얘기와 현 남북관계에 대한 소회를 들어 봤다. →4·15 김일성 생일을 맞아 북한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요즘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년(2012년)을 앞두고 축하 분위기였다. 작년에 북한에 갔을 때와 달리 주택이 잘 정비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살구꽃과 개나리꽃이 아주 예쁘게 폈고, 분위기가 휴일에 축제가 더해져 즐거워 보였다. →외부에서는 북한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내년에 강성대국을 앞두고 국민 경제 강화를 최우선하는 한편 굉장히 자신감에 차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늦었지만 그런 가운데서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몇 번째 방북인가. -24번째다. 1972년에 간 게 처음이었다. →어떤 계기로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됐나. -1972년 북한의 초청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조선반도가 인식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북한에서 박물관, 역사전시관 등을 보고,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른바 여성운동, 평화운동을 하는 내가 일본의 이런 야만적인 행동을 모르고 있었다니 엄청 충격을 받았다. →남북이 분단된 데에 일본의 책임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한반도가 짓밟힌 뒤, 해방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합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지 않았나.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로 보고 희생자가 된 것이다. 식민지배가 원인이 돼 분단이라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1년 남북한 여성 교류에 어떤 계기로 참가하게 됐나. -1987년 8월 이우정 당시 여성단체연대 공동대표가 ‘원자폭단 금지 세계대회’ 참석차 일본에 왔다. 감시를 피해 밤에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가 한국의 민주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이 대표가 북한 동포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동족인데도 사십년 넘게 못 만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일본에서 북한 여성을 만날 수 없겠느냐.”면서 남북한 여성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일본이 북한과 국교가 맺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로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대표의 열정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무려’ 여연구 당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몽양 여운형의 딸)을 말하는 게 아닌가(웃음). 그 이후 4년간 인편을 통해 북한에 편지를 보낸 끝에 일본 대회 개최가 결정됐다. 아마도 김일성 주석에게 편지가 전달됐던 것 같다. →굉장히 긴 노력 끝에 이뤄 낸 결실이었다. -이 대표는 남북이 만난다고 하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 테니 ‘아시아 평화의 여성의 역할’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행사 준비도 문서로는 일절 남기지 않고, 구두로만 전달해 몰래 준비했다. 정체가 드러날까 봐 참가자도 모호하게 했다. 미키 무쓰코(고 미키 다케오 전 총리의 부인), 오타카 요시코 자민당 참의원 등을 초청했다. 나중에 정부으로부터 “자민당 행사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대성공이었다(웃음). 일본에서 열린 첫 대회에 1000명 이상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집회에서 남북한이 뜻을 모았나.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남북한 여성의 교류를 확대하고, 위안부 문제도 함께 해결하자고 뜻을 모았다. 정치의 벽을 부수는 것은 역시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같은 해 11월에 서울에서 제2차 대회가 열렸다. -한국 여성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 통일원을 움직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이 집회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결국 여연구가 아버지 여운형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약속한 일정엔 없었던 일이라고 정부에서 문제를 삼아 도중에 북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깨진 건 참 유감이었지만, 집회 당시 마치 남북이 통일된 것처럼 흥분하고 감격했다. 남북한 여성들이 껴안고 울고 웃는 모습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로 분단의 책임을 느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남북 교류가 굉장히 활발했던 것 같다. -민중들의 교류, 대화가 없으면 화해와 통일로 갈 수 없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을 때 드디어 밝은 시대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군사적 관점으로만 상대를 보면 미움과 분노밖에 생기지 않는다. 작년에 여러 군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긴장을 없앨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북통일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일본이 (남북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동북 아시아 지배의 역사뿐 아니라 앞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상황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시대는 100년도 더 갈 것이다.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나라가 되기 어렵다. 그걸 이룩하는 게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다. 남북 간의 대립이 있더라도 지원 의지가 없으면 대화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인간은 한번 지원을 해 준 나라는 잊지 않는다. 일본인은 전쟁 후 미군의 건빵·탈지분유 등을 받으면서 점령군에 대한 적대감이 없어졌다. 역시 음식이라는 건 인간에게 일상생활에서 없으면 가장 괴로운 것 아니냐. 북한도 여러 지원에 대해 한국 동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좋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어떤 형태가 가장 좋을까. -다른 나라가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건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같은 민족끼리 스스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양측의 좋은 점을 취하고 통일을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군사적 대립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현될 것라고 생각한다. 조선 민족은 긴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항일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에서 조선의 민족성에 크게 놀랐다.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경제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지혜를 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지혜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불행의 씨앗?” 360억 복권에 남매 ‘법정싸움’

    복권 당첨은 행운일까 불행의 씨앗일까. 캐나다에서 3200만 달러(359억 7000만원)의 대박복권 당첨을 두고 친남매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치열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캐나다 지역신문 오타와 시티즌(The Ottawa Citizen)에 따르면 오타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레일라 나하스는 2008년 6월 복권에 당첨된 친오빠 샘 해더드(57)가 “약속 대로 당첨금을 나눠주지 않는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나하스에 따르면 해더드가 그녀의 편의점에서 복권을 구입할 당시 “복권에 당첨되면 돈을 나눠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나하스는 이를 믿고 복권번호를 쪽지에 적어 지갑에 넣고 다녔지만 당첨되자 오빠가 입을 싹 닦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사실 이 복권은 해더드가 유일한 당첨자가 아니다. 구입당시 해더드는 함께 복권을 산 30년 넘는 단골 이발사 마이크 디토레(70)와 복권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가져 우정을 지켰다. 하지만 3년 만에 동생이 소유권을 주장, 돈을 처음부터 다시 나눠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해더드는 “동생이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부정하며 나하스를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남매는 변호인을 앞세운 치열한 법정 공방으로 남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셈이다. 해더드는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는데 동생이 돈에 눈이 멀었다.”며 소송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특별기고)정부는 명성황후 능욕 사건을 조사하라

    일본 의회도서관 헌정자료실 이토오 백작 문고에 가면 에조 보고서라는 게 있다. 1895년 경복궁 내의 건청궁 옥호루에 일본낭인 수십 명이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의 전모를 기록한 이 보고서는 사건의 예비에서부터 실행까지 소상하게 기록한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이 보고서는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이던 이시즈카 에조가 작성해 일본에 있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스에마쓰 가네즈미 우정국 장관에게 보낸 것으로 사건의 지휘자가 미우라 공사임을 직시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존재 가치는 무엇보다도 당시 명성황후 살해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데 있다. 명성황후 시해 다큐멘터리 <민비암살>을 보면 저자인 쓰노다 후사코는 ‘당시 현장에 있던 일본인 중에는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옮길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어...’라고 써 명성황후 시해의 현장에는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베 겐타로는 저서 <일한병합소사>에서 ‘명성황후는 살해당한 후 낭인들에게 능욕 당했다’라고 쓰고 있는데 두 사람의 이런 기술의 원천이 바로 에조 보고서이다. 특히 보고서는 미우라 공사 몰래 작성되어 비밀리에 스에마쓰에게 전해졌으므로 명성황후 살해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토오 히로부미나 무쓰 무네미쓰의 손길을 벗어나 진실이 보전되고 있다. ‘미우라 공사에게는 배신의 극치이지만...’이라고 시작되는 이 보고서의 서두는 시해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문을 열고 왕비를 끌어내 칼로 몇 군데 상처를 낸 후(刃傷) 발가벗기고(裸體)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했다. 참으로 우습고 노할 일이다(可笑可怒). 그 후에는 기름을 부어 소실했다. 궁내부 대신은 칼로 베어 죽였다’. 야마베는 이 놀라운 구절에 대해 사망 후 능욕이라는 해석을 했지만 이 보고서의 어디에도 그런 추정을 할 근거는 없다. 이 보고서를 자구 그대로 읽으면 명성황후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능욕을 당했다고 해석되지만 일본인인 야마베는 차마 이 엄청난 진실을 그대로 옮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우리 정부는 명성황후 능욕 사건에 대해 한 번도 조사한 적이 없다. 이것이 만약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했거나 너무도 치욕스런 일이라 조사를 포기한 것이라면 두 가지 점에서 큰 잘못이다. 하나는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란 편의적으로 묻어버리거나 파내서는 안 된다. 일단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놓고 그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또 하나는 이런 사실을 묻어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정부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전혀 모른다. 한국이든 아시아든 유엔이든 바깥 세계에서는 정신대를 그렇게 떠들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이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다. 정부가 정신대를 돈을 벌기 위해 일본 군대를 따라다닌 몸 파는 여자로, 징용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자진해서 온 노동자로 호도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논리를 강변하던 한 일본인에게 명성황후의 최후를 알려줬더니 그는 의회로 달려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며 사죄해왔다. 이 사람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는 일본인 스스로 기록한 이 명성황후 시해의 참혹한 진상을 하루 속히 조사해 일본 국민들이 과거의 만행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때라야 비로소 일본 시민 사회에서 왜곡된 역사교육과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의심과 우려가 점화될 것이다. 정부는 지금 울릉도에 군함을 정박시키는 등의 독도 수호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그 전에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명성황후 참살의 진상을 확고하게 알려주어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것이 우선이다. 일본 문부성이 그토록 강요한 후쇼샤의 왜곡된 교과서를 거부한 주체가 바로 일본의 양심적 시민세력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소설가 김진명
  • [씨줄날줄] 쇼생크 탈출/이춘규 논설위원

    영화 빠삐용. 프랑스령 기아나로 향하던 죄수 수송선에서 스티브 매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열연한 빠삐용과 드가가 만난다. 빠삐용은 살인 누명, 드가는 지폐위조 혐의다. 빠삐용은 자신을 범인으로 몬 검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드가는 아내에게 당한 배신 때문에 탈주하기로 한다. 둘은 우정을 나눈다. 연이은 탈주 탓에 둘 다 악마의 섬에 갇힌다. 끝까지 자유를 꿈꾼 빠삐용은 마침내 혼자서 까마득한 벼랑에서 뛰어내려 탈주에 성공한다. 1994년 개봉된 영화 쇼생크 탈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종신형을 선고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 남자에게 죄수들의 세계는 끔찍하다. 비리와 악행을 일삼는 교도관에게도 시달린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탈출 계획을 세운 뒤 탈옥에 성공한다. 자유와 희망, 제도 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사실감이 넘쳐 실화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실화는 아니다. 원작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각색했다. 신창원. 1997년 1월 20일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부산교도소 감방에서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출한다. 2년 반 동안 신출귀몰하며 화제를 뿌린다. 홍길동으로 미화되기도 했지만 전국을 누비며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강간 1건 등 총 142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도피 중 꼼꼼하게 쓴 일기엔 교도행정의 문제점 등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검거될 때 입었던 화려한 쫄쫄이티셔츠는 모조품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일본에도 전설적인 탈옥사건이 있다. 시라토리 요시에. 28세이던 1936년 살인혐의로 수감 중 처음 탈옥해 3일 만에 붙잡힌다. 6년 후. 탈옥수라는 이유로 독방에서 혹독한 대우를 받은 데 앙심을 품고 2차 탈옥해 3개월 만에 자수한다. 2년 뒤에는 매일 쇠창살에 된장을 발라 부식시킨 뒤 제거하고 탈주. 2년여 만에 붙잡힌 뒤 다시 감방 바닥을 파고 탈주하는 등 모두 4차례 탈옥해 ‘탈옥왕’으로 불렸다. 재판에서 사형을 면하게 되자 모범수로 1961년 가출소, 막노동을 하다 71세에 사망한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교도소에 수감된 탈레반 조직원 500여명이 외부에서 5개월간 파고 들어간 320m의 땅굴을 통해 탈출했다. 아프간판 쇼생크 탈출. 2008년 6월에도 탈레반 공격을 받아 탈레반 조직원 등 1000여명이 탈옥했던 교도소다. 오는 7월 주둔군 단계적 철군을 앞둔 시점에 발생한 대규모 탈옥 사건으로 미군과 나토군의 전략에 차질이 예상된다. 탈옥사건은 항상 후폭풍이 거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나인브리지 베스트 코스 3연패

    골프다이제스트가 106명의 패널이 전국의 골프장을 돌며 평가한 항목을 토대로 ‘대한민국 베스트 코스’를 26일 발표했다. 나인브리지는 샷 가치, 코스 난도, 디자인 다양성, 심미성, 기억성, 코스 관리 상태, 서비스, 기여도 8개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2년마다 발표되는 베스트코스에서 3회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켰다. 2위는 천안의 우정힐스, 3위는 안양 베네스트, 4위는 제주 핀크스, 5위는 춘천 제이드 팰리스 골프장이 차지했다.
  • [프로농구] 바야흐로 하승진 시대

    [프로농구] 바야흐로 하승진 시대

     종료 버저가 울리자 ‘괴물센터’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펄쩍 뛰어올랐다. 땀이 묻은 유니폼을 벗어 관중석으로 던지더니 이내 강은식 세 글자가 박힌 유니폼을 챙겨 입었다. 시즌 내내 든든히 뒤를 받쳐 줬지만 지금은 부상으로 병원에 있는 ‘형님’을 향한 진한 우정이었다. 우승 티셔츠와 모자를 쓴 하승진(KCC)은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누구보다 크게 포효했다.  바야흐로 ‘하승진 시대’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김주성이라는 산(山)을 뛰어넘겠다.”던 하승진(26)은 ‘연봉킹’ 김주성(동부)에게 절망을 안기고 자신의 시대를 선포했다. 기자단 유효표 75표 중 66표를 얻어 생애 첫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토종 빅맨’의 패러다임이 김주성에서 하승진으로 바뀐 셈.  단연 돋보인 활약이었다. 하승진은 이번 포스트시즌 13경기에서 평균 16.5점 10리바운드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6강에서 만난 삼성도, 4강에서 상대한 전자랜드도, 결승에서 대결한 동부도 하승진이 버티는 KCC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기록지에 쓸 수 없는 쏠쏠한 활약도 하승진 몫이었다. 코트에 화끈하게 기름을 부었다. 덩크를 찍고 환호하는 건 기본이고, 박수를 유도하는 오버액션도 잊을 만하면 했다. 트래시 토크도, 손가락질도 불사하며 기싸움의 선봉에 섰다.  사실 하승진은 ‘키(221㎝)로 농구한다.’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별명도 가만히 서 있는 허수아비를 빗댄 ‘하수아비’. 루키였던 2008~09시즌 챔피언에 올랐지만, 추승균·마이카 브랜드·신명호·강병현 등의 지원 사격이 워낙 좋았다. 지난해 챔프전 때는 종아리 부상으로 단 두 경기(총 8분 53초 출전)에 나선 게 전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프로 세 시즌째, 한층 원숙해졌다.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메워 주던 백업센터 강은식이 챔프전 중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하승진은 호흡을 고르기 힘들 만큼 헉헉대면서도 ‘부상 병동’의 중심축을 자처했다. 골밑슛과 피딩 능력, 외곽으로 빼주는 살아 있는 패스 등 ‘신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일취월장했다. 약점인 자유투도 승부처에서는 어김없이 림을 갈랐다.  하승진은 “내가 받을 상이 아니다. 많이 버벅대고 실수했는데도 동료들이 믿어 주고 찬스를 만들어 줬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기뻐했다. 이어 “챔프전은 ‘전쟁’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강한 마음을 갖고 코트에 섰다. 보기 불쾌할 정도의 제스처와 트래시 토크를 했는데 새 시즌엔 성숙한 경기력으로 말하겠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허재 KCC 감독은 “강은식이 없어서 힘들었을 텐데 승진이가 참 잘 버텼다. 체력과 포스트 피벗 능력이 많이 늘었다. 앞으로 발전할 일만 남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년 전 “(하)승진이는 아직 상 받을 일이 많다.”며 추승균을 챔프전 MVP로 추천했던 허 감독은 대들보로 훌쩍 커버린 ‘괴물센터’의 모습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나주 혁신도시 조성 순항

    나주혁신도시에 들어설 공공기관들의 청사 건립공사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우정사업정보센터가 지난 25일 기공식을 가진 데 이어 나머지 14개 이전 대상 기관들도 착공을 앞두고 있다. 나주혁신도시는 내년 말까지 나주시 금천·산포면 일대 732만 7000㎡에 1조 5000억원 규모의 기반조성 사업비가 투입돼 2만 가구, 5만여명이 상주하는 자족형 독립신도시로 조성된다. 광주·전남지역 이전대상 기관은 총 16곳이지만 이 중 해양경찰학교는 전남 여수로 이전해 모두 15곳이 된다.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해 오는 공공기관을 위한 다양한 교육, 문화 지원사업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전남지역의 자족형 교육거점으로 구축하기 위해 교육타운 기능을 갖추고 자율형 공·사립고 유치와 특수목적고 설립 등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732만㎡ 규모의 골프장과 100가구 규모의 골프빌리지도 갖춰 레저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나주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씨줄날줄] 취사병/이춘규 논설위원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두 친구’에는 취사병(炊事兵)이 나온다. 작품은 모파상 자신이 1870년 20세의 나이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썼다. “총살된 (낚시광)두 사람의 시체가 강물 속에 가라앉자 발사명령을 내렸던 장교는 어망 속 물고기를 보고 미소지으며 취사병을 부른다. 살아 있을 때 튀겨야 맛이 좋을 거라며 태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운다.”라며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인간의 위선을 그렸다. 취사병. 병사용 음식 조리를 담당하는 사병이다. 고대 이후 전쟁이 있는 곳에는 취사병이 있었다. 역할에 비해 평가는 인색한 편이었다. 사병은 물론 부사관·장교들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병과지만 애환이 적지 않다. 일반 병사들이 쉬는 휴일에도 소임인 밥을 짓느라 쉴 수가 없다. 계절에 상관없이 다른 병사들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한다. 연합·독립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격 등 기초군사훈련도 받아야 한다. 박성진은 경험담을 토대로 ‘취사병 X파일’이란 책을 출간해 취사병의 애환을 소개했다. 혹한기 훈련은 모든 병사들에게 쉽지 않다. 혹한 속에 치러야 하는 전투 대비 훈련으로 준비과정부터 훈련, 취침 등 모두가 힘들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밥을 짓는 취사병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성진은 취사병 생활을 밝고 긍정적으로 그렸다. 끈끈한 우정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 등 추억과 향수로 채색했다. 취사병의 처지와 인식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었다. 1960~70년대 배고팠던 시절 취사병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병들에게는 최고의 보직이었다. 3년 동안이나마 마음껏 배 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어떤 부대는 유난히 굶주림에 민감한 사병을 취사병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절대빈곤이 사라지고 의식주 문제가 뒷순위로 밀리자 한동안 취사병은 기피 보직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요리사 지망생이 늘면서 군복무 중 특기를 살리려는 취사병이 인기 보직으로 떠올랐다. 육군이 그제 병영식탁에 올릴 표준요리 조리법 책자를 펴냈다. 신출내기 취사병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단다. 고된 훈련 후 피로에 입맛이 텁텁해진 병사들의 식욕을 돋워주는 소스의 비결 등이 담겨 있다. 오이지·숙주·장아찌류 등 11가지 식재료가 식단에서 사라진 대신 새로 급식 중인 굴·소갈비·낙지 등 15가지 재료를 소개해 ‘병영 식단’의 변화상도 알 수 있게 했다. 취사병의 애환이 좀 더 줄어들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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