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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갈등 한국언론탓”

    일본 우익 인사로 알려진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63)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22일 “최근의 한·일 갈등은 (독도 등의 문제에 대한) 한국언론의 균형을 잃은 보도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로다 지국장은 이날 오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제주KAL호텔에서 가진 세미나에서 ‘독도 문제를 보는 한·일 언론의 보도태도’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말하며 책임의 화살을 한국언론에 돌렸다. 그는 “한국이 50년 넘게 독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을 일본이 바꾸려면 전쟁밖에 없지만 한·일간 전쟁은 불가능하다.”면서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한국이 불리한 일본에 대해 떠들고 항의하는 것을 보면 수수께끼 같다.”고 말했다. 또 “시마네현 지방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할 당시에는 일본에서 전국적 관심사가 아니었고 언론도 무관심했으나, 한국에서 요란하게 반일 움직임이 일고 한국정부의 대일 강경 외교노선 발표와 대통령의 홈페이지를 통한 대국민 발표문 등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그 전에는 독도에 대해 70%가 몰랐으나, 최근에는 70%가 알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것이 한국 입장에서 볼 때 과연 플러스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MLB] 최희섭, 시즌2번째 2안타 추신수는 데뷔전서 범타

    22일 같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펫코파크와 워싱턴주의 세이피코필드에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코리안 빅리거’ 타자가 동시 출격했다. 어느덧 빅리그 3년차를 맞이한 ‘형님’ 최희섭(26·LA 다저스)은 2안타를 몰아치며 부진 탈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지만 난생 처음 빅리그 타석에 들어선 ‘새내기’ 추신수(23·시애틀 매리너스)는 아쉽게 범타로 물러났다. 최희섭은 22일 펫코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해 통렬한 2루타를 포함, 시즌 두 번째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둘쭉날쭉한 출장으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으면서도 두 차례 모두 완벽한 타이밍으로 배트 중심에 맞힌 깔끔한 안타였다. 전날 대수비로 기용했던 짐 트레이시 감독에게 시위라도 하듯이 4타수 2안타의 불방망이를 휘둘러 시즌 타율도 .167에서 처음으로 2할대(.206)로 뛰어올랐다. 지난 18일 샌디에이고전에서 2루타를 쏘아올린 이후 나흘 만의 장타. 1회 1사에서 첫 타석에 들어선 최희섭은 우완 정통파 애덤 이튼을 맞아 2-3 풀카운트까지 진득하게 공을 골라낸 뒤 7구째를 끌어당겨 우익 선상을 타고 흐르는 2루타를 뽑아냈다. 하지만 후속 JD 드류와 제프 켄트가 범타로 물러나 홈을 밟지 못했다.3회 1사 1루에선 이튼의 3구째를 결대로 밀어쳐 유격수 키를 넘기는 좌중간 안타를 터트렸다. 이번에도 드류와 켄트의 방망이가 침묵을 지켜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5회에는 1루수 땅볼로 7회에는 삼진으로 각각 물러났다. 다저스는 그동안 폭발적인 화력을 과시하던 드류-켄트-밀튼 브래들리 ‘클린업트리오’가 11타수 1안타로 침묵을 지켰고 임시 선발투수인 스콧 에릭슨이 일찌감치 무너져 샌디에이고에 1-6으로 무릎을 꿇었다. 연승행진도 ‘8’에서 마감했다. 한편 한국인 타자로는 두 번째로 빅리그에 입성한 추신수는 세이피코필드에서 열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홈경기에서 1군 승격 하루 만에 깜짝 데뷔전을 치렀다.9회까지 벤치를 지키던 추신수는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의 출격명령을 받아 2사 1루에 대타로 나섰지만 상대투수 옥타비오 도텔의 낮은 공을 건드려 1루수앞 땅볼로 물러났다. 시애틀은 0-3으로 패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일본 역사왜곡 문제가 터지면서 안 그래도 바쁜 몸이 더 바빠진 사람이 있다.‘한국현대사 1호 박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 여기저기서 그를 모시려는 손짓도 늘었다. 연이은 모임과 회의에 지쳤는지 인터뷰 자리에 앉으면서도 “회의부터 줄여야 돼.”라면서 웃는다.‘학자는 연구논문으로 말한다.’는 지론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면서도 역사문제를 거론할 때는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얘기는 마침 20일 출범식을 가진 ‘동북아 바른 역사기획단’에서 풀어 나갔다. 기획단은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민관합동 대응기구다. 먼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등 기존 기관과 단체를 놔두고 또 하나의 단체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슈가 터질 때 취해지는 일종의 ‘오버액션’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 교수도 “고구려연구재단 발기인대회 때부터 그런 주장을 했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연구재단’하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해놔야 중국·일본측 연구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역사문제는 무엇보다 민간 연구자들간 교류가 핵심인데 일이 생길 때마다 국가기구를 만든다면 외국에서 뭐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답을 묻자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동북아 균형자론’ 긍정적 평가 이어서 이게 정말 역사전쟁이냐고 물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모두 껍데기는 ‘역사학’이지만 속 내용은 결국 ‘정치학’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서 교수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답했다. 논리에는 논리로 대응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미 역사학의 문제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옹호했다.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중·일 ‘공동’의 역사인식은 가능할까. 알려진 대로 서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5월 중 한·중·일이 함께 만든 역사교과서 부교재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연세대 백영서 교수는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동아시아사로 통합됐다기보다 서로 분리된 채 한·중·일 3개국의 역사를 모아 놓은 삼국지 같았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런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한·중·일 3개국 국민 모두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서 교수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이는 역사왜곡사태 와중에 얻은 가장 큰 수확물로 한·중·일 시민사회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점을 꼽는다는 데서 잘 드러났다. ●한·중·일 시민사회 수준 한단계 올라서 서 교수는 역사교과서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양심세력들이,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제약받던 민주시민의식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과 한국사람들도 왜 일본 우익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일본에 강하게 대응하면 반중·반한 감정만 생긴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외려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강하게 대응해 일본에 일정 정도 충격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일본 자신을 위해 좋고 한국과 중국에도 좋다.”고 말했다. 얘기를 최근 사학계의 논쟁점 가운데 하나인 대중독재론으로 돌렸다. 일단은 부정적이었다. 서 교수는 “그 논리를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면서도 “어떤 한 사건이나 일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한국사를 들여다 본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정희 향수를 예로 들었다. 서 교수는 60년대 경제개발의 원인으로 ▲한·일수교, 베트남파병 등으로 해외차관 도입이 쉬웠고 ▲50년대 대거 배출된 한글세대로 산업예비군이 풍부했는데다 ▲50년대말부터 미국 유학파들이 귀국하면서 이들이 기술관료로 행정부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를테면 자본+노동력+테크노크라트 3박자가 완비됐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박정희시대 경제개발을 박정희 개인의 지도력 덕분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낮은 수준의 역사인식”이라는 비판이다. ●한국현대사는 功·過 양 측면 모두 봐야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니 뭐니 해서 한국 현대사 서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대신 “한국의 현대사 자체가 공이다, 과다라고 딱 잘라 나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인 시간이었다.”면서 “양 측면을 모두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서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잊지 않았다. 올해 서 교수의 연구초점은 해방공간에서의 좌파·민족주의 그룹인 여운형·김규식·김구 등이다. 조봉암과 이승만에 이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韓·日시각차 민중사관으로 극복”

    “韓·日시각차 민중사관으로 극복”

    한국 교사들과 공동으로 역사교재를 펴낸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사무실에 총알이 날아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후소샤 교과서 비판과 관련, 협박전화가 잇따르는 등 일본 우익의 폭력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은 19일 오후 한·일공통역사교재인 ‘조선통신사’ 출간(서울신문 4월16일자 보도)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교육문화부장 고바야 가와켄씨는 “지난 2003년 히로시마 시내의 한 건물 3층에 있는 조합 사무실로 두 발의 총탄이 날아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총격이 역사 교재 편찬과 관련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며 “당시 발생했던 히로시마의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과 관련, 우익측이 조합 소속 교사들의 괴롭힘 때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총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 초 히로시마현 교육위원회가 팩스통신을 통해 시·군·구 교육위에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유도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러나 교직원조합측에서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이는 특정 회사, 즉 후소샤에만 특혜를 주는 불공정행위라고 비판하자, 이후 조합 사무실로 협박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통신사’ 한·일 동시 출간과 관련, 대구와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은 ‘공동기자회견에 즈음해서’란 성명을 통해 “객관적으로, 민중의 입장에 선 역사를 기술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역사는 한 가지라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자국 주장만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역사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할 것이 역사교과서에는 요구되고 있다.”며 “한·일공통역사교재가 과거의 아픈 역사와 상호 불신을 극복하는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선통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과, 이후 두 나라 우호를 다진 조선통신사 왕래 등을 민중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당초 한·일 고대사로부터 근·현대사까지 방대한 범위를 다루려고 했으나, 양측의 의견 차이와 연구의 어려움 등으로 범위가 상당히 좁혀졌다. 이에 대해 박신호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근·현대사와 고대사는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수업을 병행해야 하는 연구의 어려움 때문에 뒤로 미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경우 오는 5∼6월 집필자들을 선정하고,8월에 연구내용을 발표하는 등 집필작업에 곧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근·현대사 집필 이후엔 고대사도 순차적으로 다루는 등 2007년까지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자리를 주선한 정봉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와 교육부 차원에서 일선 학교가 한·일공통역사교재를 부교재로 채택, 활용하도록 적극 권고하겠다. 앞으로 근·현대사와 고대사 연구, 책 집필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회플러스] ‘대통령 저격’ 패러디 수사 착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주 한 우익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이른바 ‘대통령 저격’ 패러디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대통령 저격’ 패러디를 올린 네티즌과 작성 의도, 경위 등을 수사할 방침”이라면서 “사법처리를 할지는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패러디는 지난 16일 우익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에 한 네티즌이 독자 투고 형식으로 올린 것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마를 저격수가 정조준하고 있는 내용이다.
  • “4·19는 광복정신 계승한 민족독립혁명”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18일 4·19혁명 45주년을 맞아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4·19는 광복 당시 혁명정신을 계승한 미완의 민족독립혁명”이라고 밝혔다. 진보적 사학자로 광복 60주년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우리 현대사 위의 4·19’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해방 당시 좌·우익을 막론하고 친일파 청산과 대토지·대기업의 국유화를 목표로 했지만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등장으로 이루지 못했던 민족의 혁명과제를 4·19가 계승했다.”면서 “민족독립운동의 연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4·19로 무너진 이승만 정권에 대해 “친일파 청산은 상층부를 숙청하고 하층부를 재교육해 투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미 군정이나 이승만 정권 모두 이를 원치 않았다.”면서 “이 과제를 이루기 위해 4·19는 진정한 혁명이 돼야 했지만, 주도세력이 학생이었기 때문에 결국 혁명 주체가 되지 못하고 보수 야당인 장면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가 일제시대 관료 출신인 장면 정권 역시 친일 숙청이라는 과업을 이루지 못해 4·19는 ‘미완’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4·19 정신은 이후 평화통일운동으로 전환됐지만, 친일파와 군부, 미국이 이를 불안하게 여겨 5·16 쿠데타로 반전되고 말았다.”면서 “그러나 4·19는 나라를 되찾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겠다는 독립운동의 혁명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베트남 이해 젊은작가 모임’ 방현석교수

    ‘베트남 이해 젊은작가 모임’ 방현석교수

    참 간사한 게 기억이다. 제가 저지른 것보다 당한 것만 담아두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이 한 예다. 동아시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과거가 아니라 핵폭탄이 투하된 과거만 기억하려 든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과거를 공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이 피 흘렸고 베트남 양민들이 눈물 흘렸던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올해가 을사조약 100주년, 한·일수교 40주년이란 것만 알았지 베트남에는 종전 30주년이자 해방 60주년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10여년째 주도하면서 베트남과의 교류에 힘쓰고 있는 소설가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만났다. ●베트남과 참전군인 모두 피해자 베트남전에 대한 사과·배상은 일본 우익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너희는 안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시비냐.’는 반론인 셈이다. 방 교수는 두 문제가 “차원을 달리한다.”고 설명했다.“대동아·태평양전쟁은 일본 스스로가 주체였고 지금도 군국주의 부활을 통해 꿈꾸고 있는 미래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미국이 주체였는 데다 우리 스스로 미화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유감의 뜻을 표시했었다. 또 한국군이 주둔한 베트남 중부 지역에 병원과 학교도 지어주는 등 “부족하지만”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이게 일본 우익과의 차별성이다. 방 교수는 그러나 더 적극적인 액션을 주문했다. 베트남과 참전군인들에게 국가가 정식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트남전의 궁극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었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한마디로 일본 우익들과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방 교수는 참전군인 역시 강제적으로 전쟁터에 내몰린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그들 역시 까닭 모를 전쟁터에 내몰린 피해자들입니다.‘골수’ 베트남 게릴라의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 것 같던 참전군인들조차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며 전화를 해왔습니다. 피해자로서의 공감이었습니다.” ●일본 우경화, 동아시아로 막아야 방 교수가 이런 제안을 내놓은 것은 역사교과서와 독도문제로 표면화된 일본 우경화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이라 믿기 때문이다.“일본 우경화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항마’로서 일본을 키우겠다는 미국의 전략, 더이상 미국의 그늘에서 안주할 수 없다는 일본의 판단이 그 배경입니다. 결국 동아시아권의 연대로 이를 막아야 합니다.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함으로써 아시아의 모범국가로 다시 태어난 한국이 이것을 주도해야 합니다.”객관적인 국력 차이가 분명한 만큼 ‘평화와 공존’이라는 도덕적인 명분과 논리를 선점해야 일본 우경화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이 상황을 잘 다뤄나가면 한국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우리나라는 대문을 열고 살아야 합니다. 개방성과 포용성을 과시해야 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패권국가의 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베트남은 우리와 동질감 느껴 다행히 베트남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한국군의 잔혹행위를 목격했다는 사람조차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미국에 이용당했으니 오히려 더 불쌍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프랑스·미국 등 강대국들을 잇따라 물리쳤다는 자부심과 지금은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한다는 현실이 배경에 깔려 있다. 또 실제 베트남전 참상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폭격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방 교수는 “베트남은 한국과 베트남을 ‘아시아로 통하는 두개의 문’이라고 표현합니다. 동북아에 한국이 있다면 동남아에는 베트남이 있다는 말이지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열강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왔던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뜻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그래서인지 지난해 베트남 작가 겸 기자 15명을 한국에 초대했는데 이들이 되돌아가서는 한국에 관한 호의적인 기사들을 대거 쏟아냈다. 북한쪽에서 “섭섭하다.”고 불평할 정도였다고 한다.“미국이나 일본이 아무리 돈을 뿌려대도 얻을 수 없는” 공감대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심포지엄·문학작품 번역 모색” “베트남이 전쟁기념관을 크게 짓는데 일본이 돈을 대고 있어요. 말하자면 일본도 베트남처럼 ‘미제국주의자들’에게서 피해를 입었다는, 그런 의미겠지요. 그런데 한국은 어떤지 아세요? 한류 한류하지만 그 쪽 한국학 전공자가 보는 책이라곤 ‘월간 무역동향’이 전부입니다.” 방현석 교수는 동북아균형자론과 아시아속 한국의 지위에 대해 묻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이 때문에 최근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외연을 넓혀 ‘아시아문화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사장, 연극배우 김지숙씨 등도 끌어들였다. 목표는 문화교류를 통한 동아시아 국가간 공감이다. 올해 6월 일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4개국을 돌며 심포지엄을 연다. 한국 문학 서적도 기증하고 한국문학 특강도 진행한다. 가을쯤에는 ‘아시아작가포럼’을 열어 아시아 8개국 작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풍물 등 전통문화를 직접 배우게 하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그 나라 노동자와 함께 직접 자국의 시나 소설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하는 작업도 시도해볼 예정이다. 이게 바로 ‘동아시아의 연대’에 다가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쪽에서 주최하는 행사와 비교해보면 항상 빈 주머니가 걱정이다.“한류를 민족의 자부심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보면 몇년 못 갑니다. 그보다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게 내다보는 투자가 아쉽습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 中 가장 주시해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는 “미국 정보 당국이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중국”이라고 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12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과 그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충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은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또 정보 수집을 강화해야 할 분야로 북한 및 이란의 핵 개발 능력과 이라크의 반미 활동을 지목했다. 그는 이라크 침공 전에 정보기관이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과장했다는 지적과 관련,“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정치적 목적으로 변형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새로 창설된 국가정보국의 단기적 과제들로 ▲대량살상무기의 근절 ▲대 테러전 지원 ▲미 정보망의 개혁 등을 꼽았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중앙정보국(CIA)의 포터 고스 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것이며,CIA가 수행하는 비밀 작전을 의회에 사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CIA와 군 정보기관, 법무부간의 정보를 둘러싼 벽을 허무는 등 정보체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미 상·하원이 합동으로 구성한 9·11위원회의 요청으로 신설된 국가정보국장은 미국 15개 정보기관의 인사와 예산을 관장한다. 또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인준되면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보고를 하게 된다. 네그로폰테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어 이번 주말로 예정된 찬반투표에서 인준이 거의 확실하다.5개국어에 능통한 네그로폰테는 그동안 대사직 5차례를 포함해 상원 인준을 7차례나 통과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인준 청문회에 맞춰 지난 1983년 네그로폰테가 온두라스 주재 미국대사였을 당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인접국 니카라과의 반군을 고무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정부 활동을 적극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네그로폰테는 당시 미국 하원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를 전복하려던 우익 반군인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모두 중단하려 하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CIA 국장에게 콘트라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며 강하게 버틸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네그로폰테가 콘트라 반군 비밀무장을 지지했으며, 이를 당시 중미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려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전략의 요체라고 생각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네그로폰테는 청문회에서 “당시 수행한 모든 일은 법의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NPB] 이승엽 결승포… 시즌 3호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29·롯데 마린스)이 1주일만에 홈런포를 재가동하며 본격적으로 일본 열도 정복에 나섰다. 이승엽은 13일 지바 마린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홈경기에서 3-3으로 맞선 8회말 짜릿한 결승 솔로홈런을 터뜨리는 등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지난 6일 세이부전 이후 1주일만에 짜릿한 결승포로 시즌 3호 홈런을 터뜨린 이승엽은 최근 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이며 시즌 타율도 .387로 대폭 끌어올렸다.8경기째 나선 시즌 중간 성적은 홈런 3방을 포함,31타수 9안타 7타점 8득점. 개막전부터 2군에서 출발, 자존심에 멍이 들었던 이승엽은 이날 올시즌 최고 성적을 보이며 팀 중심타자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했다.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이승엽은 초반부터 방망이에 불을 붙였다.2회말 첫 타석에서 오릭스 선발 다나카 유키의 초구 커브를 강타해 우전안타를 만들어낸 이승엽은 후속타자의 볼넷과 폭투로 3루까지 진루한 뒤 7번 이마에 도시아키의 외야플라이때 홈을 밟아 선취 득점을 올렸다. 4회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숨을 고른 이승엽은 6회 다시 빨랫줄 같은 우월 2루타를 터뜨리며 기세를 몰아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진가를 확연하게 드러낸 것은 8회말. 두 팀이 3-3으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던 8회 2사 뒤에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은 오릭스 6번째 투수 기쿠치 하라쓰요시의 3구째 가운데 높은 직구를 통타,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결승홈런으로 팽팽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승엽의 맹타에 힘입어 4-3으로 승리한 롯데는 거침없는 6연승을 내달리며 11승4패를 기록, 퍼시픽리그 단독선두를 굳게 지켰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日제품 ‘왜곡 후폭풍’

    日제품 ‘왜곡 후폭풍’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던 ‘반일감정’이 산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정을 앞세워 일본제품이라는 이유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왜곡에 ‘가담’한 기업들을 겨냥한 것이어서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디카, 자동차 이어 전자사전까지 이번에는 전자사전이 ‘뭇매’를 맞았다. 카시오사의 전자사전에 내장된 일일(日日)사전에서 다케시마를 검색하면 ‘일본해의 북서쪽에 있는 섬으로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됐고 대한민국이 독립 후 영토권을 주장해서 분쟁 중’이라는 설명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흥분한 네티즌들이 카시오 사전 불매운동을 시작하자 카시오의 국내 유통 담당사는 “일본내에서 권위있는 일본어 사전인 ‘고지엔’의 내용을 그대로 탑재하면서 일어난 일”이라면서 “문제가 된 ‘EW-D3700’과 ‘EW-K3500’ 모델에 대해 유통 중인 제품은 전량 회수하고 판매된 제품은 리콜을 실시, 내용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한국 수출용을 고친다 해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제품에는 여전히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내용을 담을 것 아니냐.”며 비난하고 있다. 일본 샤프와 이기철 사장의 50대50 합작사인 샤프전자의 일부 전자사전은 다케시마를 ‘우리나라 독도의 일본 이름’이라고 표기해 ‘화살’을 피해 갔다. 국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1위를 달리던 올림푸스는 홈쇼핑 판매가 중단되고 네티즌들의 ‘공격’으로 온라인 판매가 차질을 빚으면서 삼성테크윈, 소니에 밀려났다. 올림푸스측은 경쟁사들이 1,2월에 신제품을 쏟아내고 재고품의 가격을 내린 반면 자사의 신제품은 4월부터 출시된 탓이 크지만 3월 판매는 ‘독도 쇼크’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올림푸스한국은 “올림푸스는 역사교과서 왜곡 단체에 어떠한 후원도 한 적이 없다.”고 밝힌 뒤에도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방일석 사장이 직접 나서 “전직 회장이 우익단체를 후원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회사를 떠난 뒤 일이기 때문에 올림푸스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주영 회장이 현대를 떠난 뒤 개인자격으로 특정단체를 후원했다면 현대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냐?”는 쪽에 가깝다. 일부 보도에서 ‘새역모’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캐논도 홈쇼핑 방영이 중단되는 등 후폭풍을 맞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판매금액·판매량에서 1위로 치고 올라왔지만 올들어 올림푸스와 함께 공동 4위로 내려앉았다. 캐논은 지난해에도 자사가 후원한 유럽지역의 대형 지도에 다케시마, 일본해라고 표기돼 구설수에 올랐지만 판매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새역모’와는 연관이 없는 도요타·혼다자동차의 국내 판매가 줄어든 것도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운전자를 ‘상징’하는 제품인지라 일제차를 사려던 소비자들이 일단 민감한 시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냄비여론’이냐,‘뚝배기여론’이냐 일본 업체들의 타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림푸스는 온라인에서는 영향을 받았지만 오프라인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림푸스한국 권명석 이사는 “신제품 5종이 쏟아진 이달부터 다시 1위 자리로 올라선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노트북 업체인 후지쓰는 명예회장이, 도시바는 계열사의 전 고문이 ‘새역모’ 후원자로 알려졌지만 아직 이들에 대한 ‘안티’ 움직임은 본격적으로 일지 않았다. 도시바코리아 관계자는 “최근 시장점유율이 줄긴 했지만 이는 국내 경쟁사의 약진 때문으로 반일감정과는 상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 회장이 새역모 후원자인 아사히맥주의 경우 중국내에서는 ‘불매운동’이 격화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세이도,DHC 등 일본 화장품의 인기도 여전하다. 14,15일 한·일경제인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한·일경제협회 김정호 차장은 “독도와 교과서 문제가 한·일간 경제 교류협력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공동성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中·日 관계악화’ 국제사회 촉각

    중·일 관계 악화가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관계 악화의 불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대한 우려와 관심 때문이다. 경제 영역에서부터 안보 및 전략적인 차원까지 이해당사국들은 관계 악화의 파급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이해 득실 따지기에 분주하다. 1차적으론 동북아의 두 거인인 중·일 관계가 더 악화될 경우 역내 경제 성장 및 무역량 증가세의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 뉴스는 11일 “두 지역 강대국의 긴장으로 아시아의 경제발전과 무역 성장이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자본·기술과 중국의 노동력 및 시장 결합으로 지역 및 세계경제의 동력을 제공해오던 동북아 경제의 활력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동북아지역의 불안정이 더욱 부각되면서 외국인 투자의 위축과 역내 교류 저하 등의 현상도 우려된다. 안보적 측면에선 북핵 문제의 해결,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기구 신설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협력문제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중재자이자 주최국이고 일본은 참가국 중 하나다. 일본을 아시아지역의 협력 축으로 삼고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은 예상을 뛰어넘는 중국의 격렬한 반일시위에 놀라는 모습이다. 자칫 중·일간의 신냉전으로 동북아지역의 안정적 관리가 어렵게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는 하지만 고립시켜 호전적으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미국 보수우익 성향의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AWSJ)은 11일 사설에서 “중국이 60여년 전 일본의 야만적 행위를 떠드는 것은 정부 실책에 대한 분노를 피하기 위한 정책”이라며 “국민 불만을 키워 ‘피해자 병리학’을 조장하고 문제를 만드는 동시에 장차 더 큰 문제를 축적하는 것”이라고 중국 때리기를 노골화했다. 반면 뉴욕 타임스는 11일 “일본은 최근 들어 더욱 자기 주장이 강한 외교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관계도 역시 악화돼 왔다.”면서 “따라서 중국과의 분쟁으로 인해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일간 디 벨트도 이날 “일본의 많은 역사 교과서들은 전쟁범죄를 언급하지 않고 엉터리로 역사를 묘사한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독도 관련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비판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김일성 빨치산도 독립운동” 강만길 발언 논란

    강만길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11일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강 위원장은 이날 임시정부 수립 86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어디까지나 독립운동”이라며 “그의 항일 빨치산 활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주석이 항일운동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독립운동은 독립운동 자체로 봐야 하고, 사회주의 등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강 위원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학계와 네티즌 사이에서는 “정부 산하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비난과 “강 위원장의 발언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상식이 된 내용”이라는 옹호론이 맞서며 논란을 빚고 있다. 네티즌 ‘지월’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강 위원장의 논리대로라면) 6·25전쟁은 통일을 위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며 강 위원장을 비난했다. 반면 네티즌 ‘이정훈’은 “역사는 역사일 뿐”이라며 “이념의 잣대로 역사를 해석해선 안된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강 위원장은 이날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보는 것은 역사학계의 상식으로, 해방 전 독립운동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독립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면서 “좌익계열 독립유공자를 정부가 포상하는 상황에서 왜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다만 “이같은 견해는 역사학자로서의 사견으로, 기념사업추진위원장 자격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독도, 알아야 지킨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명시한 교과서들이 최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는 그동안 ‘망언’으로 치부해 왔던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 그들은 자국 청소년들에게 독도 영유권 귀속의 논리를 가르칠 것이고, 사전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왜 우리땅인지, 일본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인지 체계적 논리적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침 최근 독도 영유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독도 역사와 독도 관련 분쟁의 역사를 다룬 것부터 목숨을 걸고 독도 지키기에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 지도로 본 독도 영유권 논쟁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것들이다. ●CD로 듣는 독도 이야기(문철영 지음, 경세원 펴냄) 이 책은 단국대 역사학과 문철영 교수가 KBS 라디오 사회교육방송의 ‘역사이야기’란 코너에서 나누었던 대담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대화하듯 쉽게 풀어낸 내용이어서 독도 영유권 문제의 윤곽을 더듬고 맥을 짚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책에 따르면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까지 크게 세번이다. 울릉도·독도는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 우리의 영토로 지속되다가 1693년 첫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 극심했던 왜구의 피해 예방차원에서 조선 조정이 공도(空島)정책을 취한 틈을 타 일본 어선들이 울릉도에 출몰하면서 조선 어선들과 큰 충돌이 벌어진 것. 그러나 이때 어민 대표인 안영복의 활약으로 도쿠가와 막부는 1699년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최종 확인해주게 된다. 두번째 논쟁은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을 표방한 메이지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일본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쳐 울릉도·독도 문제를 재조사했으나, 역시 조선 영토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에게 보고했다. 태정관도 이를 바탕으로 1877년 최종 지령문을 내무성에 내렸고, 내무성은 이를 시마네현에 통보했다. 책은 1905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도를 주권이 미치지 않는 ‘무주지’로 규정,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고,2차대전에서 패전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의 애매성을 구실로 지금까지도 억지주장을 펴는 과정을 소상히 살핀다. 대담 내용을 담은 CD도 있다.1만원.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호사카 유지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지은이는 일본인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그는 독도가 한국 땅임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주장만을 들으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믿어버릴 만큼 논리와 자료를 정교하게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로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을 논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다. 일본은 1693년 한·일 어민들간의 충돌때 도쿠카와 막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은 울릉도일 뿐 독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837년 에도막부로부터 독도까지 간다는 도해 허가증을 받고 울릉도까지 넘어간 상인이 사형에 처해진 일을 내세우며, 이는 자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항해를 일본이 허용했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에도막부가 도해허가증을 내줄 때는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였으므로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해 허가증을 발행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3자까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자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도다. 책에선 우선 ‘대일본국군여지전도’와 ‘개정대일본도’,‘교정대일본여지전도’ 등 에도시대에 작성된 상당수의 지도에 독도가 빠져 있는 점을 주목한다. 독도에서 일본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오키섬은 그려져 있으나 독도는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바로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증거라는 것이다. 또 ‘대일본전도’‘관판 실측전도’ 등 메이지시대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총 17장의 일본 고지도를 통해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밝히고 있다.1만 3500원.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양태진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아, 독도수비대(김교식 지음, 제이제이북스 펴냄)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는 독도의 지세와 생태는 물론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의 독도 관리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지도와 지명,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측의 주장, 독도문제의 본질, 독도 수호인 안영복과 홍순칠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포진한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 시마네현 의회에서 거론돼온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1만 5000원. ‘아, 독도수비대’는 1950년대 조직된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약을 뼈대로 한 실화소설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 한국 어부들을 방해하고 테러를 가하는 등 침탈행위를 일삼자 젊은이들이 수비대를 조직해 방어에 나서는 이야기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들을 쫓아내고,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 암벽의 ‘한국령’이라는 표식도 이들이 새긴 것이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기고] 일본우익의 ‘선물’/하종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2001년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은 0.039%의 채택이라는 참패에도 굴하지 않고 4년 후의 ‘복수’를 공언했다. 이후 고이즈미 내각의 각료를 비롯한 우파 정치가는 노골적으로 새역모 편들기에 나섰다. 게다가 소위 납치 사건 이후 일본 사회에 몰아친 ‘북한 때리기’ 광풍은 새역모와 일본의 우익들에게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절호의 찬스로 비쳤다. 우리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동안 새역모의 복수극 준비는 빈틈없이 진행되었다. 4월5일 새역모가 펴낸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재차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4년 전에 137군데의 수정을 거친 누더기 교과서로도 검정에 합격했듯이, 이번에도 120여 군데의 오류가 지적된 함량미달의 교과서였다. 마치 월드컵처럼 4년 뒤에도 우리는 또 후소샤 교과서 등장이라는 뉴스를 봐야 할 것인가? 4년 전의 상황과 비교해 보자. 먼저 한국 정부의 경우,2001년에는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과거사는 청산되었다.’고 밝힌 것이 결정적으로 정부의 발목을 붙잡았다. 들끓는 국민감정에 떼밀리듯이 주일대사의 소환이나 재수정의 요구 같은 강공책을 뒤늦게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그다지 없었다. 성급한 미봉책으로 탄생한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역사화해에 기여한 바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올해는 조금 다른 듯하다. 검정 발표 이전에 독도 문제로 양국 관계는 경색 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대일 신 독트린이나 대통령의 담화에서 나와 있듯이, 인류보편적인 원칙이 한·일관계의 새로운 틀로서 천명된 바 있다. 그 구체적 실천의 장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역사교과서 문제이다. 따라서 분리 대응이라는 원칙이 결코 역사교과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의지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문부과학성의 생색내기 검정을 통해 2001년도 수준에 턱걸이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일본호의 우향우가 너무 심각하다. 문제가 되는 기술내용에 대한 재수정 요구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일본 정부의 명확한 대처방안을 따지고 촉구할 일이다. 독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역사교과서 문제는 ‘역사 주권’을 위협하는 도발이라는 확고한 인식과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대응도 짚어야 한다. 독도 문제는 뒤틀린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우리의 정당한 ‘공분’의 표출이 결코 다케시마를 노리는 일본의 우익과 같을 수는 없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내셔널리즘을 선동하는 일군의 한국인들은 작년 내내 친일청산 반대를 부르짖는 대열에 서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2001년은 국경과 민족으로 갈라진 한·일 양국의 ‘좋은 타자’를 발견하는 기회였으며, 그 결과 새역모의 참패를 이루어냈다. 바람직한 한·일관계와 동아시아의 미래를 걸고 벌어질 올해의 싸움은 ‘한국’이라는 틀에 시선을 가하고 그 외연을 넓히는 일과 결부되어야 한다. 지난 시절의 군사독재가 일본 보수정권과의 야합에서 자양분을 얻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현해탄을 사이에 둔 좋은 일본인과의 연대는 우리 내부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은 패자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모한 갈등과 대립으로 내몰려야 했던 보통 사람들의 해원이기 때문이다.4년 만에 새역모는 또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 [韓·日 교과서 전쟁] (2) ‘日우경화’ 대응 전략

    [韓·日 교과서 전쟁] (2) ‘日우경화’ 대응 전략

    2001년 동북아시아를 대립과 분열로 몰아넣었던 후소샤의 역사 및 공민 교과서가 ‘복수’(당시 관계자의 말)를 다짐한 지 4년 만에 훨씬 더 ‘개악’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올해는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연이은 공민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맞물려 2001년까지의 교과서 왜곡 문제와는 다른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 일본의 우경화 프로젝트의 중간과정의 하나라면 문제는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등 일본 우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과서 왜곡 등의 우경화 프로젝트가 ‘정의 대 부정의’,‘전쟁 찬미 대 평화 애호 세력’ 간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이에 따라 국가의 벽을 뛰어넘는 한·중·일 연대의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마 2001년의 ‘역사적 참패’에서 그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선 모든 대결을 국가간의 대치국면으로 이끌어 일본 시민을 일본 국가라는 틀로 재집결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교과서문제를 영토문제와 한 다발로 묶어 국가간 대결로 가져가려는 올해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주효한 감이 있다. 다소 때늦은 감이 있지만, 외교부가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하기로 한 것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분리대응 방식이 교과서문제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면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역사 인식 문제에서는 한·중·일 시민연대의 틀을 만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독도 문제에서는 연대의 틀은 사실 불가능하다. 특히 일본의 시민단체 중에는 영토 문제를 민족주의간의 충돌로 이해하는 단체가 적지 않고, 또 일본 공산당도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인식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 내에 한국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줄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면의 대응방식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정·삭제 요구와 함께 개악된 교과서의 채택률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공립 중학교 교과서 채택은 전국에 약 570개 있는 채택지구별로 이루어지는데 지구내의 모든 공립 중학교는 교육위원 결정에 따라 동일한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다. 교육위원은 지방자치단체 수장이 임명하고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위원의 정치적 성향이 교과서 채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육위원은 실제로는 선정과정에서 교사 등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성향이 교과서 선정을 좌우하듯 보이지만, 현장 교사의 소리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는 통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새역모’가 지방의회를 동원해 현장의견 수렴을 금지하는 청원을 내도록 하는 것은 이와 같은 ‘현장의 소리’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자매관계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의 교사·학생·학부형에게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의견 개진은 공격이나 비난이 아닌, 설득이 되어야 할 것이고, 자매관계 파기와 같은 방식은 현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독도 문제를 공격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전술적으로 무의미하다. 후소샤 역사교과서와 공민 교과서는 한 묶음이다. 역사 교과서 채택률을 낮추는 것은 동시에 공민 교과서 채택률을 낮추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견 개진은 역사교과서 채택을 낮추는 것에 모아져야 하며, 이는 어디까지나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것일 뿐, 한국과 일본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교과서 문제와는 달리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이상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지속적인 노력에는 많은 품이 드는 법이다. 최근 주유엔 한국 대표부 대사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중견국가들’과 힘을 합쳐 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교적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필자가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같은 발언이 최근의 일본 우경화 프로젝트에 대한 보복 조치의 하나로 나온 것이라면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조치가 과연 유효한 대응방식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대응에는 정당성과 함께 그 실효성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게다가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성공할 경우까지를 상정한 대응방식인가에 대해 혼란스럽다. 일본이 전범 국가일 뿐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엔 외교 속에서 펼치고 국제 사회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는 한국이 반전과 반침략을 국시로 하는 ‘평화의 나라’라는 것을 외국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양이었던 많은 제3세계 국가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이 해방 후 걸어온 길이 과연 그러한가. 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경험하면서도 이를 반침략과 반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반일과 반공이라는 ‘특정집단에 대한 증오’로 왜소화시켜버린 것은 아닌가. 결국 일본의 우경화 파동은 우리에게 한국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독도문제는 한국 사회가 ‘평화의 나라’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길고도 험난한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동시에 한국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동반하는 것이다.
  • [MLB] ‘밤비노의 저주’ 부활?

    미국프로야구의 ‘앙숙’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맞대결이 벌어진 6일 양키스타디움. 보스턴이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초, 제이슨 베리텍이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통렬한 솔로홈런을 쏘아올려 승부를 원점으로 몰고갔다. 기세가 오른 보스턴은 연장 역전의 분위기에 한껏 들떠 있었다.8회 3타자를 깔끔하게 막아낸 보스턴의 철벽 마무리 키스 풀크가 9회말에도 어김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타석엔 양키스의 ‘클럽하우스 리더’ 데릭 지터가 들어섰다. 지터는 인내심을 가지고 공을 지켜봤고, 어느새 2-3 풀카운트로 꽉 찼다. 운명의 7구째. 지터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고, 보스턴의 우익수 매니 라미레스는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공을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양키스가 지터의 짜릿한 끝내기포에 힘입어 숙적 보스턴을 4-3으로 따돌리고 개막 2연승을 달렸다. 이로써 양키스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에 3연승 뒤 4연패한 치욕을 되갚았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4년간 400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리며 양키스로 옮긴 선발 칼 파바노는 6과 3분의1이닝 동안 8안타를 내줬지만 삼진 7개를 솎아내며 2실점으로 버텼고,‘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는 2경기 연속 투런홈런을 폭발시키는 등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타선의 선봉에 섰다. 한편 ‘빅초이’ 최희섭(26·LA 다저스)은 이날 SBC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승엽 부활 홈런포

    ‘라이언 킹’ 이승엽(29·롯데마린스)이 6개월여만에 홈런포를 가동하며 3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이어갔고, 메이저리그의 구대성(36·뉴욕 메츠)은 개막전에서 완벽한 환상투를 선보였다. 이승엽은 5일 세이부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언스와의 원정경기에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4-0으로 앞선 3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선발로 나선 신인 와쿠이 히데아키의 공을 받아쳐 오른쪽 펜스를 빨랫줄같이 넘어가는 1점 홈런을 터뜨렸다. 지난해 9월21일 같은 세이부전 이후 무려 6개월 14일 만에 터진 올 시즌 1호 대포. 이승엽은 시범경기 때 타율 .050(20타수 1안타)의 극심한 빈타로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고 지난 3일 1군에 복귀한 뒤 이날 홈런 한방으로 부진 우려를 말끔히 털어냈다.3경기 연속 안타행진도 이어갔다. 1-0으로 앞선 1회초 2사 2루에서 우완 와쿠이를 상대로 원바운드로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전안타를 터뜨려 타점을 올린 이승엽은 3회 다시 만난 와쿠이와 끈질긴 승부 끝에 7구째 구속 140㎞ 직구를 공략, 시원한 아치를 그렸다. 이승엽은 5회에는 우익수플라이,6회에는 삼진으로 물러나 이날 4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고 1득점도 올렸다. 타율도 .333(12타수 4안타)으로 끌어올렸다. 롯데는 이승엽의 활약을 앞세워 12-4의 대승을 거뒀다. 한편 구대성은 5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개막전에서 6-4로 쫓긴 8회말 ‘깜짝등판’했다. 빅리그 첫 상대인 엔젤로 히메네스를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힘겹게 삼진으로 돌려세운 구대성의 다음 상대는 통산 501홈런을 기록한 최고의 왼손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 구대성은 특유의 변칙폼으로 123㎞짜리 커브를 던졌고, 공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하게 걸쳤다. 허를 찔린 그리피는 2구째를 노리고 덤벼들었지만 몸쪽으로 높게 붙인 138㎞짜리 직구에 헛스윙을 했다. 하나쯤 유인구를 던질 타이밍. 하지만 구대성은 140㎞짜리 직구를 몸쪽으로 과감하게 찔렀고 그리피는 멍하니 서서 ‘3구 삼진’을 당했다. 구대성의 빅리그 데뷔는 그렇게 시작됐다. 구대성은 이날 신시내티와의 경기에서 8회말 세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3번 타자를 맞아 탈삼진 2개를 곁들이며 무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데뷔전에서 첫 홀드를 기록했다. 투구수 15개(스트라이크 11개)에 최고구속 142㎞. 특히 톱클래스 왼손타자인 그리피와 숀 케이시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완벽하게 틀어막아 ‘왼손 스페셜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기고] 개악보다 더 무서운 개선/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처장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독도문제와 함께 우리 국민 모두를 흥분시키고 있다. 이제 일본의 우익 교과서출판사 후소샤를 모르는 국민이 없고,‘新しい 歷史敎科書’(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낯설어 하는 국민이 없다. 일본 왜곡교과서의 상징이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는 최종 검정과정에서 약간 개선되었다는 ‘다행스러운’ 보도가 있었다. 이제 같은 출판사의 공민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서술하고 독도사진을 실은 것이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이고, 개선된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다른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도 보도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개악된 교과서보다 개선된 교과서가 더 무섭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개악되어 누구나 보아도 문제투성이인 저질 왜곡 교과서가 아니다. 그런 교과서는 일본 내에서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2001년에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하여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는 우리 정부와 국민의 항의나 반대여론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일본 시민단체의 불채택 운동, 일본 지식인들의 비판, 평범한 일본 교사나 시민들의 건전하고 상식적인 판단으로 채택률이 0.039%에 그쳤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번에 후소샤의 역사교과서가 개선되었다는 것이 더욱 염려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단어 몇 개, 문장 몇 부분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교과서의 기본 사관은 그대로 살아 있다. 고대로부터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정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하였다는 시각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이다. 표현이 일부 순화되고 거부감이 느껴지던 용어가 일부 삭제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보아서는 개선이지만 일본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쉬워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후소샤출판사의 전략이 옳게 먹혀들어가고 있다고 본다. 굳이 반감을 살 수준의 표현으로 채택률을 떨어뜨리기보다는 거부감을 주는 표현들을 순화시킴으로써 채택률을 높이자는 전략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개악이 되어 건전한 일본인들이 물리쳐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제 일본 내에서의 반후소샤 운동이 잠잠해지면 이 교과서가 다른 교과서들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나 시민단체의 대응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악된 부분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는 것은 필요할지는 몰라도 별 의미가 없다. 그 정도는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도 할 수준이다. 문제는 표현은 개선되었으나 변함없는 일본의 역사인식 자체이다. 내가 또한 두려워하는 것은 후소샤교과서에 가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출판사 간행 역사, 세계사, 공민교과서들이다. 일본의 여타 교과서들에서도 한국사에 대한 왜곡은 분명히 드러난다. 최대의 교과서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도쿄서적을 비롯하여 오사카서적, 교이쿠출판, 데이코쿠서원, 니혼서적, 시미즈서원, 니혼분교출판 등에서 간행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들은 예외 없이 우리 역사의 기원인 고조선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중국 한나라의 지배영역을 과장하여 마치 고대로부터 한국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은 없지만 고대 한반도 남부 지방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기정사실화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도 공통적이다. 임진왜란의 책임을 조선 측에 전가하는 듯한 내용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서술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채택률 최하인 후소샤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일본 지도층 사이에 면면히 흘러온 뿌리 깊은 아시아멸시론, 일본식 화이(華夷)의식에 바탕을 둔 삐뚤어진 역사관 자체에 대한 체계적이고, 학술적이며, 근본적인 대책이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단어 몇 자, 문장 한두 줄에 의해 일본의 한국사 인식 태도가 바뀌지는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드러나는 말이나 문장 표현이 아니라 숨겨진 그들의 역사의식이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처장
  • [사설] 日 교과서 왜곡 국제연대로 맞서야

    어제 공개된 일본 정부의 역사 및 공민교과서 검정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역사교과서에서 일부 개선조치를 취하는 듯하면서 더많은 부분을 개악했다. 더구나 우익 후소샤교과서뿐 아니라 채택률이 높은 도쿄서적과 오사카서적이 펴낸 공민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한국에 대한 도발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후소샤교과서 등은 일제 강점이 조선근대화를 도왔다는 억지주장을 늘어놓고, 군위안부 관련 내용 삭제를 비롯해 과거 침략행위를 감추려는 왜곡을 자행했다. 특히 후소샤 신청본에서 독도를 분쟁영토로 기술했는데, 검정통과본에서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개악시켰다. 독도분쟁을 부풀림으로써 자국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일본측의 치졸한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독도와 역사 문제에 분리대응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독도는 영토사안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쐐기를 박고, 왜곡교과서는 일본내 민간 양심세력과 연대해 시정 및 채택저지 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정부 방침이 합리적이긴 하지만, 독도 논란과 역사왜곡을 섞어 판을 흐리려는 일본측의 속셈을 분쇄하려면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단순히 자존심 회복 차원이 아니다. 팽창주의, 군국주의의 길을 다시 가려는 노골적 움직임이다. 독도 등 영토야욕도 그 연장선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국·북한 등 아시아 피해국과 먼저 공유하고, 세계로 확산시켜야 한다. 중국 견제에만 신경쓰다가 일본의 군사력을 잘못 키우면 동북아평화가 깨짐으로써 낭패를 볼 수 있음을 미국측이 인식하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미국 LA에 기반을 둔 단체가 벌인 ‘일본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서명에 벌써 3000만명 이상이 동참한 것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치의 생체실험·강제노역 피해자 보상에 착수한 독일을 일본이 제발 본받길 바란다.
  • [日 역사 ‘날조’] 시민단체·전문가 반응

    일본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 한국의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동아시아 평화를 해치는 개악 교과서”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시민단체와 연계해 공동 캠페인과 심포지엄 개최 등 다방면으로 채택 저지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학계·시민사회·정부 공동 대응으로 역사왜곡을 막아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중·일 “위험한 교과서” 공동성명 역사문제연구소, 교육개혁시민연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9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 우호를 파괴하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교과서의 검정 통과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중·일 공동 성명을 통해 “새역모의 교과서는 ‘두번 다시 침략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국제공약에 명백히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이 ‘위험한 교과서’가 아이들 손에 전해지지 않도록 채택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침략 미화와 만행 은폐로 그릇되고 편파적인 지식을 전하는 기만적 교과서는 일본인의 양심을 유린하고 선린관례를 해치는 암적 존재”라고 비판했다. 역사교육연대는 또 “일제의 만행에 대한 기술이 삭제·축소된 것은 일본 정부와 문부성ㆍ자민당 의원들이 새역모가 만든 교과서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 정부와 새역모의 결탁 의혹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채택 저지 총력전 선언 시민단체는 이미 검정이 통과된 만큼 오는 8월까지 문제의 교과서 채택 저지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역사왜곡 캠페인 사이트’를 개설, 새역모의 역사왜곡 실태와 채택 현황을 실시간 중계하기로 했다. 이달 말 민간·학계 공동으로 수정요구안을 제출하는 한편,5월에는 한·중·일 3국 공동 역사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를 출간한다.6월에는 공동 대응을 위한 한·중·일 전략회의와 공동 심포지엄을 열고,6∼8월에는 일본을 순회하며 양국 시민단체가 대대적인 불채택 캠페인을 벌인다. 지방자치단체를 통한 직접 불채택 운동에도 나선다. 채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파악해 우리나라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100여곳의 지자체를 직접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양미강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2001년에도 입증됐듯 자매도시가 구체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서초구-스기나미구, 평택시-마쓰야마시 등의 모범적인 연계모델을 바탕으로 지자체와 지역 시민단체가 함께 지역 교육위원회에 불채택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왜곡은 일본 우익의 위기 방증”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연구실장은 “역사교과서 왜곡은 역설적으로 일본 우익 세력의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냉정하게 대처하되 우리 내부에서는 먼저 스스로 과거를 청산해서 일본의 시민단체들에 ‘한국도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반성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대 인문학부 김기봉 교수는 “역사의 해석에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기 때문에 일본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왜 그렇게 나오는지 먼저 이해하고 한·일 양국이 동의할 수 있는 역사의 객관화 작업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효용 이재훈기자 utilit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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