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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B] 주말, 코리안 빅리거들이 부활했다

    ‘맏형’ 박찬호(샌디에이고)가 후반기 첫 승 물꼬를 트면서 후배 메이저리거들이 주말 일제히 부활했다. 서재응(탬파베이)은 ‘5전6기’로 이적 첫 승을 올렸고, 김병현(콜로라도)은 한 달여 만에 승리를 보탰다.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추신수는 빅리그 첫 홈런을 신고했다. 서재응은 30일 열린 미국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전에 선발등판,5와3분의2이닝 동안 홈런을 포함해 5실점했지만 타선의 지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탬파베이는 상대 선발 랜디 존슨을 상대로 19점을 뽑아 창단 후 한 경기 최다득점 타이를 세우며 19-6으로 대승했다. 서재응은 지난달 말 LA 다저스에서 탬파베이로 옮긴 뒤 5경기에 나섰지만 5연패했다. 이적 첫 승에 목말랐던 서재응은 6번째 선발 등판에서 시즌 3승(9패)째를 올렸다. 특히 경기전 몸을 풀다가 오른손 검지 손톱이 부러지는 불운까지 당하면서도 참고 던져 첫돌을 맞은 딸에게 귀한 선물을 안겼다. 전날 김병현은 샌디에이고전에 선발등판해 7과3분의2이닝 동안 1실점(비자책) 쾌투, 시즌 6승째를 챙겼다. 지난달 26일 텍사스전에서 5승을 거둔 이후 한달여 만의 승리.8회 2사까지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생애 첫 완봉승을 노렸지만 우익수 브래드 호프의 실책으로 중간에 레이 킹으로 교체돼 아쉬움을 남겼다. 콜로라도가 3-1로 승리. 같은 날 추신수도 친정팀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0-0이던 6회 세번째 타석에서 상대 선발 펠릭스 에르난데스로부터 좌중월 결승 1점포를 뿜어냈다. 시즌 두번째 안타이자 빅리그 15경기 만에 나온 홈런이다. 클리블랜드는 추신수의 홈런으로 1-0으로 이겼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MLB] 박찬호, 슬럼프 아웃!

    ‘형만한 아우없다.’ 박찬호(33·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맏형’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즌 7승과 함께 통산 탈삼진 1500개를 작성했다. 후반기 승리를 챙기지 못해 움츠렸던 후배 빅리거들에게 오랜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박찬호는 26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친정팀 LA 다저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6이닝을 3실점으로 버텨 시즌 7승(6패)째를 따냈다. 박찬호는 4-3으로 앞선 7회 마운드를 내려왔고, 샌디에이고는 이후 3점을 추가해 7-3으로 이겼다. 투구수는 92개, 스트라이크는 55개였다. 방어율은 4.64에서 4.63으로 약간 좋아졌고 볼넷은 없었다. 이날 승리는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였다. 메이저리거 삼총사인 박찬호, 김병현(콜로라도), 서재응(탬파베이)은 후반기 들어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이들은 후반기 레이스에서 박찬호 2패, 서재응 3패, 김병현 1패 등 단 1승도 없이 6연패에 허덕였다.7월 성적도 박찬호가 지난 7일 승리한 이후 이전까지 8연패에 빠졌었다. 때문에 이날 승리는 연패를 끊는 동시에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마음을 새롭게 다잡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박찬호는 이날 3-2로 앞선 6회 1·3루에서 타자로 나와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절묘한 적시타로 결승타점을 기록, 공수에서 활약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문화마당] 거꾸로 가는 일본의 역사시계/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패전이전 일본의 군국주의가 여성용 속옷 브래지어라면, 일본의 우파는 그 속에 든 찌그러뜨려도 원형으로 돌아가는 형상기억 합금이며, 일왕은 호크라고 할 수 있다. 좀 민망하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설명할 때 종종 드는 예화다. 군국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여,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이다.“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일왕이 통치한다.” 대일본제국헌법(1889) 제1조이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이 공통적으로 보장하는 국민주권과 이를 지킬 국민저항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타이완침략, 운요호사건, 청·일전쟁, 의화단 봉기 진압, 러·일전쟁, 제1차 대전시 대독 선전포고, 러시아혁명에 간섭한 시베리아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소련과 충돌한 모몬한 사건, 그리고 태평양전쟁. 당시 이웃나라를 상대로 열 손가락도 모자랄 만큼 쉼 없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다. 그 죗값으로 맞은 원자폭탄 두 발에 군국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침략전쟁의 두 주역 군부와 재벌이 해체되고(1945), 일왕은 살아 있는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앉았으며, 전쟁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이 만들어졌다(1946). 미국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어내려 하였다. 하나 이게 웬일인가? 1947년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주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라 부르는 점령정책의 전환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일본 시민에게 주었다 포장도 뜯기 전에 다시 빼앗아갔다. 역사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다. 1948년 재벌기업의 자회사 폐지계획이 축소되었으며, 극동 군사재판은 침략전쟁의 주역들 대다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1949년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쫓겨 가고 1950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전범자는 죗값도 치르지 않고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들은 1951년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미국의 전략체제 속에 일본을 종속시키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는 대가로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립을 얻어 내었다. 반공의 이름으로 전범세력과 타협한 미국은 군국주의라는 때묻은 브래지어를 다시 일본 시민들에게 채웠다. 일왕이라는 호크와 침략전쟁의 주역인 형상기억 합금은 그대로 남았다.1954년 미·일 상호 방위원조협정에 따라 방위청이 세워지고 자위대라는 미명하에 다시 군대가 들어섰으며, 이듬해에는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건 자민당이 집권하였다. 전후 집권세력의 뿌리는 군국주의 전범세력이다. 이들은 형상기억 합금처럼 미군정에 의해 구부러지기 이전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 했으며,1991년 냉전의 해체는 그 복원력에 탄력을 더해주었다.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왜곡, 전범세력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쟁도 벌일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 일장기 달기와 기미가요(일본국가) 부르기의 의무화나 ‘애국심’ 교육 강화를 통한 전체주의 되살리기, 독도 영유권 주장, 그리고 작금의 북한 선제공격론은 모두 일본 우익이 벌이는 원형찾기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처럼 지배 엘리트가 철저한 역사적 성찰을 하기는커녕 원폭을 핑계로 마치 전쟁의 피해국인 양 침략의 역사에 분칠을 하는 일본의 역사시계는 아직도 뒤로만 가려 한다. 하나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본다.2001년과 2005년 일본 우익이 주도한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때 역사의 기억을 둘러싼 내전에서 승리한 일본 시민사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력으로 가슴을 옥죄는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동아시아와 함께 사는 진정한 평화국가 일본을 이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꺼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NPB] 승엽 30호 ‘쾅’

    [NPB] 승엽 30호 ‘쾅’

    올스타브레이크가 끝나고 후반기 레이스가 시작된 첫날,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이 열린 도쿄돔은 4번타자 이승엽(30·요미우리)을 외치는 함성으로 메아리쳤다. 중반까지 0-2로 끌려가는 지리멸렬한 흐름을 확 뒤집어달라는 간절한 바람일 것. 6회 2아웃에 들어선 이승엽은 히로시마의 선발 우완투수 오다케 간과 피말리는 수싸움을 펼치며 볼카운트 1-3로 몰고 갔다. 무실점 호투를 펼치던 오다케 역시 코너워크를 하며 어렵게 승부를 걸어왔다. 하지만 5구째 144㎞짜리 직구가 바깥쪽에 꽂히려는 순간, 이승엽의 방망이는 매섭게 돌아갔다. 밀어친 타구는 쭉쭉 뻗어나갔고, 좌중월 펜스를 훌쩍 넘겨 125m짜리 솔로홈런이 됐다. 이승엽이 90번째 경기에서 올시즌 일본야구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30홈런 고지에 우뚝 섰다. 정확하게 3경기마다 1개꼴로 홈런을 양산한 셈.30홈런 가운데 안방인 도쿄돔에서만 17개의 대포를 터뜨려 홈팬의 심장박동을 더욱 긴박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56경기를 남겨두고 있어 올시즌 홈런왕 석권과 50홈런 달성에 대한 희망을 부풀렸다. 이승엽은 2-3으로 뒤진 8회말 4번째 타석에선 바뀐 투수 다카하시 켄의 7구째 직구를 노려쳤다. 베이스를 맞고 튀어오른 타구는 1루수를 넘겨 우익선상으로 흘렀고, 이승엽은 전력질주 뒤 과감한 헤드퍼스트슬라이딩으로 2루타를 만들었다. 하지만 후속타자 아리아스의 삼진으로 득점에 실패했다. ‘라이언킹’ 이승엽이 후반기 첫 경기에서 솔로홈런과 2루타 등 2안타 1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시즌 30호로 센트럴리그 홈런부문 2위 무라타 슈이치(요코하마)와 격차를 8개로 벌리며 독주체제를 굳건히 했다. 또한 한·일 개인통산 400홈런에 2개차로 접근했다. 타율은 .320에서 .326(3위)까지 치솟았고,65타점(4위)을 챙겨 ‘흑곰’ 타이론 우즈(69점·주니치)를 바짝 쫓았다. 이승엽은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 들어서도 고군분투를 거듭했지만, 요미우리 타선의 무기력증도 여전했다.6안타의 빈타 끝에 센트럴리그 4위 히로시마에 2-4로 무릎꿇은 것. 요미우리는 꼴찌 요코하마가 3위 야쿠르트에 1-10으로 대패한 덕분에 간신히 5위를 유지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이 겪은 정치적 격랑은 100년 역사의 신문이 쌓아온 문화적 의미마저 짓눌러왔다.‘총독부 기관지’‘군사정권 선전도구’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가려 서울신문이 한 세기 역사속에 남긴 문화사적 족적마저 축소되고 폄하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초 대한매일신보 시절은 물론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 광복 후 서울신문으로 신문의 맥을 이어오면서 한국 근현대문화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신춘문예 효시가 된 소설 현상공모를 처음 도입했는가 하면 춘원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 김주영의 ‘객주’ 등 연재소설들은 한국문학사의 자양분이 되었다. 또 한글판 서울신문 발간과 한글전용 단행, 최초의 시사종합 월간지인 ‘신천지’와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 등을 창간하며 한국 언론역사에 다양성을 부여했다.1904년 창간 이후 격동의 한 세기를 넘기며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 서울신문이 우리 근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과 의미를 살펴본다. 매일신보는 광복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란 굴레를 벗고 민족의 공기(公器) 서울신문으로 거듭태어나게 된다. 한국 전쟁 발발전까지 특히 눈에 띄는 행보는 ‘신천지’와 ‘주간서울’ 창간이다. 훗날 한국 잡지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게 되는 신천지는 서울신문과 짝을 이루는 월간 종합시사지로 1946년 2월 창간됐다. 신천지는 창간이래 좌우익 논쟁과 정부수립을 전후한 혼란기에서 6·25 및 휴전 이후에 이르기까지 만 9년동안 통권 68호를 기록했다. 광복 후 6개월동안 100여종의 잡지가 쏟아져나왔으나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거나 기껏해야 5호를 넘기기 어려웠던 당시에 신천지는 ‘잡지 전장(戰場)의 유일한 생존자’로 불렸다. 신천지가 선택한 국판 크기는 뒷날 우리나라 월간지의 대표적 판형이 되며,200여쪽에 이르는 분량도 100쪽 안팎의 다른 잡지를 압도했다. 1948년 10월엔 국내 최초의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을 창간했다. 빈약한 타블로이드 판형의 지면에 정치 기사 일변도였던 일간지들이 일반 독자의 수요를 고루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관심거리를 다루었던 주간서울은 창간 즉시 큰 인기를 모았다. 악화일로를 걷던 식량사정을 파헤친 ‘국민의 식생활은 안도되는가’, 반민특위 재판으로 서리를 맞은 육당과 춘원의 저서 회수 소동, 국내 음악계 동향과 각종 취미오락 등 각계 각층의 독자 취향을 염두에 두었다. 서울신문은 이후에도 연예주간지 시대를 연 ‘선데이서울’ 창간, 고급 지성지 ‘서울평론 창간’, 최초의 TV연예주간지 ‘TV가이드’, 계간 예술비평 전문지 ‘예술과 비평’ 등 대중과 고급을 아우르며 잡지 트렌드 메이커로서 역할을 해냈다. 잡지 발간과 함께 단행본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광복과 전쟁의 혼란기 전단지 수준의 정치선전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서울신문 출판물은 단연 돋보였다. 신채호의 ‘단재저작집’과 ‘조선사’,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상하)와 ‘오천년간 조선의 얼’, 홍기문의 ‘훈민정음 발달사’와 ‘조선문법연구’ 등이 대표적이며, 박은식의 역사서도 여러권 출판했다. 연재소설의 맥은 서울신문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1940년대의 암울한 생활고를 그린 주요섭의 ‘대학교수와 모리배’, 무능한 지식인 남편과 자유분방한 아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그린 최상덕의 ‘새벽’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54년 1월1일부터 8월6일까지 연재됐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전무후무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완고한 학자 남편과 가정에 권태를 느껴 뭇남성들과 다방, 댄스홀을 드나드는 여주인공의 대담한 행태는 장안의 화제로 번져갔고,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곧 바람난 주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회적 파장도 컸다. 특히 교수사회가 발끈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는 대학신문에 ‘작가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우자 작가는 서울신문을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황 교수 또한 서울신문 기고를 통해 재반박했다. 서울신문은 논쟁의 당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황 교수의 재반박 기고를 실어 독자들과 문화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홍순엽 변호사의 ‘자유부인 작가를 변호함’이란 글, 문학평론가 백철의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자유부인 논의와 관련하여’란 평론이 나오는 등 ‘자유부인’발 문화적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연재한 김주영의 ‘객주’는 서울신문 최장기 연재소설로 ‘자유부인’이래 가장 많은 독자를 모았다. 이 소설은 신문소설사뿐 아니라 한국 문단에 있어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후기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보부상을 비롯한 백정·기생·천민의 사랑과 애환이 장강처럼 굽이쳐 흐르는 소설이다. 문학 분야와 함께 서울신문이 특히 높은 비중을 두었던 게 한글문화 보급이었다.1956년 10월18일 나온 ‘한글판 서울신문’은 언론사 및 국어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기존의 서울신문과 병행, 석간으로 선보인 한글 전용 지면은 외솔 최현배를 중심으로 한 한글학계는 물론 독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한글신문 탄생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글판 신문을 별도로 발행했던 서울신문은 1968년 11월22일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국내 일간지로는 유일한 한글 전용이었다. 이후 1970년 1월1일 ‘온국민이 모든 분야에서 한글만 쓰도록 하라’는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었고, 국한문 혼용체와 문어체를 고수하던 각 신문사도 한글 전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신문협회도 한글 전용을 위한 연구기구를 설치,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신문은 신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한글문화 보급과 정착에 촉매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문화마당] 바다와 나비/고운기 연세대 국문학 연구교수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김기림은 그의 대표작 ‘바다와 나비’ 첫 연에 그렇게 썼다.1939년의 일이다. 일제 말기의 단말마적 비명이 횡행하는 거리에서, 이 여린 모더니즘 시인은 수심을 모르는 바다 같은 시대에 한 마리 흰 나비처럼 살았다. 도무지 무섭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용감해서가 아니라 무지의 겁 없음에 대한 탄식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더욱 난감했던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40년대 말 남북분단 초기의 시절이었다. 1949년 여름 어느 날, 한때 함북 종성의 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가르친 제자 한 사람이 서울 혜화동의 집으로 그를 찾아온다. 이 제자는 해방 후 평양에서 김일성대학을 다니다, 그 체제가 싫어서, 아니 스승인 김기림을 꼭 만나보고 싶어서 단신 월남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서울에 몸을 부린 이 딱한 제자에게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평양에서 그냥 살지, 여기는 무엇 하러 왔니. 서울에는 아무도 없다. 정지용도 젊은 축들한테 비판을 받는 형편이다.” 젊은 축들이란 보수 우익적인 색채를 띠고 해방 후 남쪽 문단을 차지한 일군의 문인들을 일컫는다. 해방 전 우리 문단의 중심축을 이루었고, 모더니즘 성향의 시를 쓰던 김기림과 정지용은, 어쩐 일인지, 해방 후에 좌익적인 문인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정작 좌익인 사람들은 대거 평양으로 몰려간 다음, 김기림과 정지용은 서울에 남아 후배들에게 내몰리며 곤고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처지였지만, 알음알음으로 스승은 딱한 제자를 위해 직장을 마련해 준다. 중학교 선생 자리였다. 이 제자가 첫 월급을 타서 닭 한 마리를 사들고 혜화동 언저리 김기림의 집을 찾았을 때가 1950년 5월, 전쟁이 터지기 한 달 전이었던가 보다. 선생 몸 보신이라도 하시라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다음, 제자는 스승의 안부가 걱정되어 다시 혜화동 집을 찾았는데, 이미 스승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없고, 부인만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몸 보신 하시라 사다 드린 닭은 마당 한쪽 우리에 그냥 놀고 있었다. 알이라도 받아서 긴한 용처에 쓰려 했다는 부인의 말에 제자는 목이 메었을 뿐이고. 해방 후 우리 역사는 그렇게 갈리고 찢긴 세월의 퍼즐이다. 문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도리어 문인은 해방 후 분단의 역사를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집단이다. 나비는 바다를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바다와 나비’ 2연)라고 쓰는 이들이다. 바다가 청무 밭으로 보이는 문인들에게 현실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그렇게 나뉘었던 남북의 문인이 한 자리에 모여보자고, 지난해 여름 남쪽의 문인들이 평양을 방문했다. 참여한 문인 각자가 300만원씩의 경비를 댔다. 그들이 결코 돈이 많아서는 아니었다.1년 원고료 수입을 합쳐보아야 300만원도 안 되는 이들이 그들 가운데는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그 돈을 내고 평양을 갔다. 모임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어 남북 문인이 함께하는 단체를 만들자고 약속한 시점이 그때로부터 1년 후, 바로 이즈음이다. 이제 그 실무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남쪽 실무자들이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북쪽이 예정대로 응해줄지, 아니 그보다도, 나빠진 남쪽의 여론을 감안하면, 이대로 단체를 만들자고 협상을 벌이는 일이 눈 밖에 나지는 않을지. 남북을 잇는 문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시절 모르는 철없는 짓으로 보이지나 않을지.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삼월에 무슨 꽃이 피겠는가. 초생달에 비친 허리가 시린 것이 어디 나비뿐이겠는가. 고운기 연세대 국문학 연구교수
  • [MLB] 추신수 빅리그 첫 2루타

    추신수(24·시애틀 매리너스)가 시즌 처음 빅리그로 전격 승격한 뒤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신고했다. 추신수는 4일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LA 에인절스와 홈 경기에서 중견수 겸 8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시애틀이 0-1로 뒤진 3회 1사후 첫 타석에서 상대 우완 선발 제레미 위버의 2구째 가운데 직구를 통타, 우익선상 2루타를 빼냈다. 메이저리그 2호째 안타. 추신수는 지난해 빅리그에 잠시 머물며 10경기에 출전,18타수 1안타(타율 .056),1득점 1타점으로 부진했다.5회에는 2사에서 바깥쪽 낮은 공을 밀어쳐 우측 담장 깊숙한 타구를 날렸으나 좌익수의 호수비에 막혔고,7회 3번째 타석에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추신수는 시애틀의 주전 중견수 제레미 리드가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라 이날 빅리그로 승격했다. 리드는 전날 콜로라도와의 인터리그 경기도중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해 올시즌을 접을 전망이다. 따라서 추신수의 빅리그 출장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좌타자 추신수는 플래툰시스템에 따라 우완이 선발로 기용될 경우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 하그로브 시애틀 감독은 이날 구단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뜻을 밝혔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이승엽 4경기만에 홈런…시즌 26호·日통산 70호

    요미우리 이승엽(30)이 시즌 26호이자 일본진출 통산 70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승엽은 2일 4경기 만에 26호 홈런을 터뜨리며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홈런 선두를 굳게 지켰다.2위 요코하마 무라타 슈이치와의 격차도 5개로 늘렸다. 이 홈런으로 2004년 14홈런,2005년 30홈런(이상 지바 롯데)을 더해 일본진출 3년째 70홈런 고지를 밟았다. 타점과 득점도 하나씩 보태 56타점,62득점이 됐다. 이승엽은 이날 도쿄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경기에서 2회 좌완 에이스 이가와 게이의 7구째 바깥쪽 꽉찬 직구(143㎞)를 그대로 받아쳐 좌측 펜스를 넘기는 선제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또 1-0이던 7회 무사 1루에서 이가와의 몸쪽 낮은 투구를 때려 우익수쪽 라인 드라이브 안타를 뽑아냈다.1루 주자 니오카는 한신 야수들이 중계 도중 공이 빠지자 홈을 파고들어 2점째를 올렸다. 이승엽은 이날 요미우리가 올린 2득점에 모두 기여한 셈이다. 요미우리는 이승엽의 맹타와 선발 우쓰미 데쓰야의 완봉역투에 힘입어 2-0 승리를 거두고 10연패 뒤 2연승을 달려 1위 주니치와 승차도 8경기로 줄였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손민한 있기에” 거인 안방 10연승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롯데)이 홈 10연승을 이끌었다. 손민한은 2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KIA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8과 3분의2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볼넷 없이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2-0 승리를 이끌었다. 완봉승에 아웃카운트 단 1개만 남겨둔 쾌투. 직구 최고구속 145㎞와 슬라이더, 커브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를 섞어가며 지난 4일 SK전 이후 4경기 만에 시즌 6승째를 올렸다. 롯데는 손민한의 고순도 호투에 힘입어 지난 3일 SK전 이후 홈경기 10연승의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또 최근 3연승으로 7위 SK와의 간격도 2게임 차로 좁혔다. 반면 KIA는 롯데에 주중 3연전을 모두 헌납, 최근 6연패와 원정 7연패를 당해 ‘종이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 롯데는 1회초 KIA 공격 때 우익수 손인호가 이용규의 펜스 가까이 날아가는 타구를 뜬공 처리한 뒤 포수 강민호,1루수 이대호의 호수비로 승리를 예감했다. 공수 교대 후 톱타자 정수근이 빠른 발로 1루에 안착한 뒤 박현승의 희생번트와 마이로우의 몸 맞는 공, 상대 투수의 폭투로 1사 1,3루를 만든 롯데는 좌중간을 가르는 이대호의 2타점 적시타로 순식간에 2-0을 만들었다. 손민한은 9회초 2사 후 마운드를 내려왔고, 주형광은 송산을 삼진으로 돌려 세워 행운의 세이브를 챙겼다. 두산-삼성(잠실)전과 SK-한화(인천 문학)전은 비로 노게임이 선언됐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데스크시각] 눈여겨볼 일본 개헌/황성기 문화부장

    북한발 위협은 일본이 스스로는 풀기 어려운 빗장을 대신 따주는 역할을 해 왔다.19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북한에서는 광명성1호라고 주장)이 그랬고,2004년의 북핵사태도 마찬가지다.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갖추자고 하더니 선제공격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대북 제재법안도 정비했다. 지금의 2차 미사일 위기도 일본의 군사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이 보통국가의 전제조건으로 꼽는 군대를 왜 가져야 하는지를 설득할 살아있는 교과서로서 ‘북풍’은 일본 우파들에게는 돈으로 사기 힘든 최적의 재료로 활용됐다. 보통국가가 되려면 필수적인 헌법 개정만 해도 그렇다. 미사일 발사나 일본인 납치 시인 같은 북한의 위협이 피부로 느껴지면서 헌법을 고치는 데 완강하던 일본인들이 2004년 아사히신문 여론조사를 고비로 개헌지지가 호헌지지를 앞선다. 잠시 관심을 월드컵에 쏟았지만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 민주당이 이달 초 헌법개정의 절차를 담은 국민투표법안 심의에 들어간 것은 이제라도 눈여겨볼 일이다. 개헌에 필요한 절차가 국회에서 다루어지기는 처음이다. 양당은 이미 헌법 개정초안을 내놓았다. 개헌의 초점은 9조이다. 미 군정이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는다는 헌법초안을 일본측에 넘긴 것은 1946년 2월이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패전국에 강요한 헌법 9조는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 고통을 겪은 일본인 70%가 찬성할 만큼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정치가들에게 수치스럽게 여겨진 9조가 지난 60년간 일본을 평화의 나라로 지켜준 것은 역설적이다. 일본의 우익이나 보수주의자들은 ‘헤이와보케(평화불감증)’라고 9조를 지닌 스스로를 비웃는다. 그렇지만 일본에 유린당한 경험을 갖는 아시아 국가들에 9조의 존재 의미는 크다. ‘평화헌법’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된 일본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헌법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전쟁기억이 있는 세대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개헌이 국가적 의제로 부상하기는 어려웠다. 조용히 개헌 작업을 해온 자민당이 신 헌법초안을 내놓은 것은 창당 50주년인 지난해이다. 한편으로는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할 정도에 이르기까지 야금야금 헌법의 해석을 넓히는 ‘해석개헌’을 통해 9조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개헌론자들은 현실과 헌법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민당의 신 헌법초안 중 9조를 보면 자위대는 군대와 같은 자위군으로 승격된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방어를 위한 방어개념인 ‘전수방위’원칙을 폐기하고 동맹국의 전쟁에도 가담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도 가능하다. 일본 내부로부터의 개헌 욕구는 미국이라는 외부로부터의 개헌 압력을 등에 업고 탄력을 받고 있다.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일체화를 추진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은 일본과 해외에서 함께 전투하지 못하도록 막는 9조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9조를 강요했던 미국의 변신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해가 일치한 부시 미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굳게 손을 잡았다. 9조의 개정이 당장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지역의 역학구도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다.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미국과 함께 개입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이 지역의 긴장을 높이는 요인이다. 일본의 개헌이 3∼4년 안에 힘들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낙관은 쏘아붙여주고 싶다. 아시아를 무시하는 일본, 미국에만 매달리는 일본이 미국의 세계전략과 자국의 동북아전략의 융합에 따라선 한세기 전처럼 폭주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역사적 사건을 명확히 인식하는 데는 대략 60년쯤 걸린다고 한다.‘전후 60년’을 인식한 결과가 9조의 재확인이 아닌 개정으로 모아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은 그래서 걱정스럽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의 퇴장과 더불어 군대가 돌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황성기 문화부장 marry04@seoul.co.kr
  • [서울 자치구 새얼굴] 정송학 광진구청장 당선자

    [서울 자치구 새얼굴] 정송학 광진구청장 당선자

    민선 4기 출범을 앞두고 광진구청장 당선자인 CEO출신 정송학 당선자와 만났다. 정 당선자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경영 현장을 떠나 공직자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에게 출발하는 소회를 물었다. 정 당선자는 “죽어도 한이 없다. 평생 공직자가 못 되면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공직의 길을 접다 정 당선자는 자신감으로 넘쳤다. 그러나 그의 청년 시절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대입 때 서울대 정치학과에 응시해 2차례, 사법시험에 2차례, 행정고시에 1차례 낙방했다. 결국 공직의 길을 접었다. “당시 사법시험 합격자는 50∼60명에 불과,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아버지가 안 계서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으로 고민이 많았죠.” 그는 공직의 길을 접은 이유를 담담하게 밝혔다.6·25참전 유공자인 아버지는 일제 때 강제징용된 뒤 돌아와 우익단체 대한청년단에 몸을 담았다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 뒤 군인으로 활동하다 1961년 전기감전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9살. 그 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정 당선자는 코리아제록스㈜에 취직,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당시 속이 상해 많이 울기도 했단다. ●1등 사원의 사표 그가 외국계회사에 취직한 것은 정시 출퇴근이 가능해서였다. 고시 준비를 하면서 직장을 다닐 심산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안 돼 몇 차례 사표를 냈다. 그때마다 사장이 만류했다. 그는 매년 실시하는 전국 사원 교육 행사에서 3년 동안 1등을 한 유망한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입사 뒤 4년 만에 과장이 됐고 이사급인 수도권총괄사업부장과 메이저담당중역, 특명담당상무이사 등 주요 보직을 거쳐 올해 초 후지제록스호남㈜ 대표이사가 됐다. 성공 비결을 묻자,“청년 시절 실패는 오히려 날 강하게 했다.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 더욱 도전했다.”고 답해 젊은 시절 실패가 오히려 인생에 보약이 됐음을 내비쳤다. ●공직 도전 위해 1만명 인맥 키워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정 당선자는 1996년 선배와 등산 차 오른 산 속 절에서 한 스님과 만났다.“쯧쯧…. 당신은 공직자 관상이야.”란 말을 들었다. 그는 “평소 점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 말씀은 잊고 싶지 않았다.”면서 당시 심정을 피력했다. 그 뒤 정 당선자는 10년 동안 선출직 공직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회 단체에서 활동하며 인맥을 넓혔다. 한국청소년운동연합 부총재 등 현재 그가 속한 단체만도 30여개에 이른다. 그는 이날 1만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종이 뭉치를 내 보였다.“연봉의 60%는 인맥 투자에 쓰고 40%는 집에 줬습니다. 친분 관계를 맺은 사람이 1만명 정도는 되고, 넓은 인맥을 쌓았더니 공천 받을 때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산 신고액은 4억 1085만원. 보통 수십억대 이상 재산가인 일반 CEO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정영섭 구청장보다 잘 할 수 있다.” 희망이 가득한 그에게 “26년 동안 구청장만 9차례 역임한 정영섭 구청장의 후임인 점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전임 구청장보다 경제 활성화는 자신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의·자양지구에 행정복합타운을 조성, 국내 매출순위 1000대 기업 가운데 다수의 기업을 유치할 것이고 광진구의 균형발전을 위해 낙후 지역에 건설사와 접촉,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면서 “기업 유치와 접촉은 관료 출신보다 CEO출신이 적합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출신:전남 함평(52) ▲학력:조선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경력:후지제록스호남 대표이사, 한국 청소년운동연합 부총재(현), 한·중문화협회 중앙회 부총재(현), 법무부 서울동부지역협의회 범죄예방위원(현), 한국NGO연합 한국범죄예방연합 광진구지회장(현), 광진균형발전연구소 대표(현) ▲가족관계:정남님씨와 1남 2녀 ▲종교:천주교 ▲애창곡:비내리는 고모령 ▲취미:낚시, 등산 ▲기호음식:된장찌개 ▲존경하는 인물:이순신, 칭기즈칸 ▲좌우명:진인사대천명(내가 할 일을 다하고 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 [NPB] 이승엽 12경기 연속 안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30)이 12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이승엽은 25일 나고야돔에서 벌어진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기록하는 등 3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이승엽은 3회초 2사1루서 상대 선발 좌완 마르티네스의 몸쪽 낮은 직구를 받아쳐 우익선상에 2루타를 만들었다. 이승엽의 올 시즌 13번째 2루타로 후속 타자 조 딜론의 중전안타 때 홈을 밟아 시즌 59득점째도 기록했다.1회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이승엽은 6회초 3번째 타석에서는 1루 땅볼에 그쳤다. 요미우리가 4-5까지 쫓아간 7회초 2사1루서는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동점 찬스를 놓쳤다. 이로써 이승엽의 타율은 그대로 .335에 머물렀다.요미우리는 4-7로 패해 주니치와 3연전을 모두 내주며 6연패에 빠졌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김영남씨 가족 日과 사실상 관계단절

    김영남씨 가족 日과 사실상 관계단절

    1978년 납북된 김영남(45)씨의 가족들이 오는 28일 김씨와의 금강산 상봉을 앞두고 일본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는 등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일본측 인사들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김영남씨가 납북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북한측은 사망했다고 주장)의 남편으로 알려진 이후 한·일 양측간에 공동으로 이뤄져 온 상봉·송환 노력은 일단 중단됐다. 김영남씨의 누나 김영자(48)씨는 2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측 ‘납북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 협의회’(구조회)와 메구미 가족 모두 우리와 다른 목적으로 동생을 이용하려는 것 같다.”면서 “금강산 상봉장에서 일본 언론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영남씨의 가족과 ‘납북자 가족모임’(대표 최성용)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납북자 지원단체인 ‘구조회’와 더 이상 연대하지 않겠다.”며 결별선언을 한 바 있다. 양측의 갈등이 심화된 직접적인 계기는 김영남씨의 어머니 최계월(82)씨와 영자씨, 최성용 대표 등이 지난달 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통역 왜곡사건’에서 비롯됐다. 영자씨와 최 대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일본 니가타현 이즈미다 히로히코 지사와의 오찬 자리에서 영자씨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동생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일본측 통역은 “메구미 부모와 상의해 결정하겠다.”라고 허위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영자씨가 즉각 항의하자 일본측 통역은 “구조회에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고 실토했고 이에 김씨 가족은 바로 오찬자리를 떠났다. 이즈미다 지사가 영자씨 일행에게 두 번이나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모두 거절했다. 특히 영자씨는 “구조회와 메구미 가족이 ‘영남이를 만나러 평양에 가서는 안 된다.’고 종용했다.”면서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것은 천륜인데 왜 만나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구조회와 메구미 부모는 가족상봉을 통해 김영남씨가 메구미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를 만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측 관계자는 “메구미의 사망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면 구조회 등 일본 우익계열이 이를 더 이상 정치문제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들이 모자 상봉을 극구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증거로 메구미의 유골을 보냈지만 그동안 일본은 유골이 가짜라면서 사망사실을 부인해 왔다. 일본 우익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구조회는 김영남-메구미 문제를 북한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관측이 있어 왔다. 실제로 구조회의 부회장인 니시오카 쓰토무는 역사왜곡 교과서를 주도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요 인사로 활동 중이다. 최근 일본의 일부 언론이 김영자씨와 최 대표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를 한 것도 감정적으로 양측을 더욱 벌어지게 했다. 일본의 한 언론은 최근 보도에서 김영자씨를 비난하는 한편 최성용 대표에 대해서도 가족과 언론들 사이를 지시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일본측 태도 서운… 영남이 만날 준비 바빠” 김영남씨의 누나 김영자(48)씨는 동생과의 28년 만의 만남을 앞두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 한편으로 착잡한 마음도 크다고 했다. 영자씨는 “동생 문제가 일본 언론과 단체의 노력 덕분에 크게 이슈화된 게 사실이고, 이를 고맙게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서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남이와 만나기로 결정된 이후 (김영남씨와 북한에서 결혼한)요코타 메구미 가족으로부터 ‘축하한다.’ 등 전화 한 통 없었다. 서운하지만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을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오는 28일 금강산 상봉장에는 영자씨와 어머니 최계월(82)씨가 함께 간다. 북측에서는 영남씨 혼자 나오기로 돼 있지만 요코타 메구미와 사이에 낳은 딸 혜경양이 나올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버리지 않고 있다. 최씨 모녀는 며칠 전부터 영남씨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몇번이나 쇼핑을 하는 등 갖은 정성을 들여왔다.“영남이를 위해 옷가지와 영양제, 가족사진을 준비했어요. 또 북한에서는 메구미가 사망했다고 하지만 생존해 있을 수도 있어 여자들이 좋아할 화장품과 의류, 가방 등도 샀지요. 물론 혜경이를 위한 선물도 마련했지요.”하지만 일본측의 정치적 움직임 때문에 사돈측(메구미의 가족)과 함께 금강산에 가겠다던 당초의 희망이 물거품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도 힘들게 된 것이 못내 속상한 듯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구례 ‘여·순사건 위령탑’ 제막

    20일 전남 구례군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졌다. 올 4월 순천에 이어 두번째다. 이날 구례군과 유족회에 따르면 군비 6800만원으로 구례읍 서시천 둔치공원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유족회원과 기관단체장 등 200여명이 참석해 분향하고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위로했다. 여·순사건 유족회 구례군지부 박찬근(71) 지부장은 “사료 등에 따르면 당시 구례에서만 1000여명의 양민이 희생됐다.”며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중이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일부 병사들이 제주도 4·3사건 진압작전에 반발, 우익계 장교들을 사살하고 여수·순천·구례 등을 점령하는 바람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무고한 양민이 희생됐었다.구례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NPB] 승엽 19호 ‘쾅’

    [NPB] 승엽 19호 ‘쾅’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 이승엽(30)이 ‘홈런 무효’ 파문을 딛고 시즌 19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인터리그와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사정권에 두게 됐다. 이승엽은 14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인터리그 5차전에서 1-2로 뒤진 4회 선두 타자로 나와 상대 우완 선발 요시이 마사토의 바깥쪽 역회전공을 밀어쳐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올시즌 퍼시픽리그 전 구단을 상대로 홈런을 터뜨리며 시즌 44타점도 올렸다. 지난 11일 지바 롯데전에서 홈런을 쏘아올리고도 심판의 오심 탓에 홈런 1개를 도둑 맞았던 이승엽은 사흘 만에 홈런을 때려내며 이 부문 센트럴리그 단독 2위로 뛰어 올랐다.1위 무라타 쇼이치(요코하마·20개)와는 불과 1개차로 따라붙었다. 올 인터리그에서만 12개를 터뜨려 교류전 홈런 1위 애덤 릭스(야쿠르트·13개)와도 1개차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교류전 홈런왕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요미우리는 오는 18일까지 교류전 4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이승엽은 1회에는 포물선을 그리며 좌측 펜스 윗부분을 직접 맞히는 2루타를 때렸고 6회와 8회에는 각각 1루 땅볼과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이승엽은 4타수 2안타로 3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가며 시즌 타율을 .317에서 .321로 올렸다. 요미우리는 2-4로 패해 8연패 늪에 빠졌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MLB] 찬호 통산 110승 시즌 4승

    14일 LA다저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110승 및 시즌 4승을 달성한 ‘코리안특급’ 박찬호(33·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에게 클럽하우스 라커룸에 걸어놓은 한국 월드컵대표팀 유니폼을 보여주며 “오늘은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다.자신의 승리는 물론 한국 축구대표팀의 토고전 승리가 미국 서부시간을 기준으로 같은 날에 이뤄졌기 때문이다.지난 1994년부터 8년간 친정팀이었던 LA다저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라 거북했을 만도 하지만 내셔널리그 16개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달성해 표정이 밝았다.그는 아메리칸리그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서만 승리하면 메이저리그 30개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된다. 박찬호는 이날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6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을 각각 3개씩 내줬지만 삼진 5개를 솎아내며 1실점으로 호투, 팀의 9-1 승리를 이끌었다. 팀의 연패 사슬을 끊으며 시즌 방어율도 4.15로 좋아졌다. 또 이날도 2타수 1안타로 고타율(.375)을 유지했다. 3회까지 다저스 타선을 퍼펙트로 막은 박찬호는 5-0으로 앞선 5회 1사 후 제프 켄트에게 우익 선상에 떨어지는 빗맞은 2루타를 내줬다. 이후 계속된 2사 1·3루에서 러셀 마틴에게 우전 안타를 맞고 이날 유일한 실점을 허용했다. 샌디에이고는 1회 상대 유격수 라파엘 퍼칼의 두 차례 실책과 비니 카스티야의 3타점 중월 2루타를 묶어 4-0으로 크게 앞서나가며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마이크 카메론은 단타가 모자란 ‘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4타수 3안타 3득점 3타점으로 박찬호의 특급도우미로 활약했다. 반면 다저스의 서재응(27)은 5회 중간계투로 등판, 박찬호와 잠깐 동안 한국인 투수 맞대결을 벌였으나 카메론에게 좌월 3점홈런을 허용해 고개를 떨궜다. 서재응은 6회에도 등판했다가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해 조 바이멜로 바뀌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일본, 전쟁공포 잊어선 안돼” 아키히토 日王 경고 기자회견

    |도쿄 이춘규특파원|아키히토 일왕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잊어가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교도통신이 7일 영국 더 타임스를 인용해 보도했다.통신은 일왕의 발언이 “1930년대에 일본을 지배했던 우익의 폭력과 군국주의자의 압정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라고 풀이했다. 더 타임스는 일왕이 6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세계 속의 왕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매우 솔직한 논평”이라고 평가했다. 일왕은 이 회견에서 “지난 전쟁에서 일본인을 포함,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면서 “역사를 잊어버리는 일 없이, 각 국민이 협력해 전쟁이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인)1930년부터 36년까지 요인 습격이 잇따라 전·현직 총리 4명이 숨지는 사태가 있었다.”면서 “당시 국민과 국회의원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기는 매우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일왕은 “이런 시대가 있었음을 많은 일본인이 마음에 새겨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학교에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내용의 교육기본법 개정 움직임이 과거 전전(戰前)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면서 “평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하기 위해서도 교육은 중요하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만들기’ 상생의 카니발이어야/이덕연 연세대 교수

    영화배우 황정민의 영화제 수상소감이 참 진솔하고 겸손하다. 스태프들이 밥상을 맛나게 차려 놓았고, 맛있게 먹기만 하니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더라! 이전(泥田)격투기인지 이종격투기인지, 좌우의 도식으로 간명하게 구별되는 보수와 진보세력간의 갈등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격렬한 역사논쟁이 한창이다. 광복과 분단, 건국과 6·25전쟁, 과거청산 등의 역사 현안들을 둘러싼 상반된 관점들의 대립이 대한민국의 개념과 역사에 대한 이념적 갈등으로 증폭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익보수성향의 일부 시민단체와 교사모임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사실과 평가”를 위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의 깃발을 들고 나섰고, 이른바 ‘해방전후사인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핵심취지는 국가와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좌파의 공세로부터 역사를 지키고,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파가 승리하여 탄생한 나라이기 때문에 정체성이 우파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명시”하여 젊은이들이 우리의 현대사에 대하여 보다 ‘관대한 시각’을 갖도록 하는 개방적이고 현실적인 교과서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승리로 ‘역사의 종말’이 선언된 세계사의 흐름을 떠나서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과 대비되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시대착오적인 좌파 이데올로기의 집착과 체제전복의 불순한 의도 외에 ‘불행한 역사’ 만들기에 나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한다. 극도의 답답함과 분노가 뒤섞인 결연한 글들을 보면 나름대로의 절박한 상황인식과 대응에 과장과 가식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순정함과 격렬함이 선뜻 말을 걸기 어렵게 만든다. 국가와 체제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역사관과, 그에 따라 선택되고 강요되는 사실(史實)과 평가들은 맛있게 먹기에는 지나치게 격하고 거칠다.E 홉스봄 교수의 말대로 역사가들은 정치적 격정에서 한발 비켜서 있어야 한다.‘역사 만들기’는 상잔의 살육전이 아니라 상생의 카니발이어야 한다. 역사가 자유의 공간 속에서 내려졌던 선택의 과정이고 결과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판정은 오로지 역사의 몫이고, 역사의 주체는 모든 시민이다. 역사의 풍경과 지형을 바라보는 것 자체도 하나의 선택이고, 결단의 행위이다. 성공보다 불행한 실패의 역사의 측면을 주목하는 것은 다른 대안의 선택이 가능했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강조하는 관점의 선택일 뿐이다. 역사는 타자와의 공존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역사가는 역사에 대한 ‘위대한 겸손’을 잊지 아니한다. 성공에 대한 행복한 기억과 자랑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한 역사와 그 속의 아픈 상처에 대한 반성과 과거청산의 과제에 대하여 눈가리개를 씌우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관중이 외면하는 저급한 샅바싸움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 나물에 그 밥만 가지고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역사의 상이 차려질 수 없다. 대한민국은 국민주권과 정의의 이념을 공유한 ‘우리 대한국민’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제헌헌법 전문중 일부)하면서 창설하여 지켜왔고 또한 함께 가꾸어 갈 나라다. 대한민국의 개념과 역사는 완제품이 아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창조적인 상상력과, 적극적인 반성과 관용의 용기와 슬기가 없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헌법과제이다. 이 결의와 과제를 잊지 않고, 함께 풀어 나가는 행복한 역사를 만들어서 후대로부터 주연상을 받는 멋진 꿈을 가져보자. 따로 수상소감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도 없다. 스태프들이 잘 차려준 밥상에 앉아서 그냥 맛있게 먹기만 했다! 이덕연 연세대 교수
  • [프로야구2006] 승환 역대 최소경기 20S ‘-1’

    오승환(24)이 역대 최소경기 20세이브 기록 경신을 눈앞에 뒀다. 오승환은 2일 대구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KIA전에서 팀이 3-1로 앞선 9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등판, 홍세완을 우익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고 19세이브째를 올렸다. 시즌 23경기에서 1승1패19세이브를 기록한 오승환은 이로써 앞으로 2경기에서 세이브 1개를 추가하면 역대 최소경기 20세이브 기록의 새 주인공이 된다. 최고 기록은 1994년 태평양의 정명원(현대 코치)이 올린 26경기. KIA는 3회 김경언의 내야 안타에 이은 장성호의 우전 적시타로 1-0으로 앞섰다. 그러나 삼성은 6회 양준혁의 중전 적시타로 동점을 만든 뒤 8회 1사 후 볼넷과 안타로 만든 1,2루 찬스에서 박한이 양준혁의 연속안타로 2점을 보태 승부를 갈랐다. 권오준은 8회 등판,1과3분의1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6승째를 챙겼다. 권오준의 6승은 모두 구원승이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NPB] 승엽 시즌14호 ‘꽝’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 이승엽(30)이 시즌 14홈런을 터뜨리며 다시 리그 홈런 공동 2위에 올라섰다. 이승엽은 1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인터리그에서 0-0으로 맞선 2회 초 선두 타자로 나와 상대 좌완 야기 도모야의 135㎞짜리 초구를 힘껏 잡아당겨 우측 펜스를 넘기는 선제 솔로 홈런을 때려 냈다.이승엽은 이날 홈런으로 7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고 시즌 37타점째를 기록했다.5타수 3안타로 전날에 이어 3안타를 기록한 데 힘입어 타율을 .305로 끌어올렸다. 이승엽은 8회 초 1사 1루에서 니혼햄의 바뀐 투수 오카지마를 상대로 우전안타를 터뜨렸다. 오제키의 우전안타 때 홈을 밟았다. 니오카의 2점 홈런으로 8-8 극적인 동점을 이룬 9회 5번째 타석에 들어서 상대 용병 좌완 토마스를 상대로 2-0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깨끗한 좌전안타를 뽑아냈다.12회에는 무사 1루에 등장,2루수 앞 땅볼을 쳤지만 선행주자 니오카만 2루에서 아웃됐다. 이어 나온 고쿠보의 2점 홈런으로 결승 득점을 추가해 시즌 41득점을 올렸다. 이승엽은 4회 초 무사 1루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5회 초에는 홈런성에 가까운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요미우리는 이승엽의 선제홈런 등으로 경기 초반 4-0으로 앞서나가다 불펜진의 난조로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9회 초 니오카의 2점 홈런으로 다시 8-8 동점을 만든 뒤 12회 연장에서 고쿠보의 역전 2점 홈런으로 10-8 재역전에 성공했다. 한신과 반 게임차 2위를 그대로 유지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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