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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앉고 화장실 갈 권리도 뺏긴 판매직…일반 노동자보다 질병률 최고 67배

    앉고 화장실 갈 권리도 뺏긴 판매직…일반 노동자보다 질병률 최고 67배

    무지외반증·방광염 등 특정 질병 심각 의자 비치, 권고에 그쳐 10년간 ‘제자리’“백화점과 면세점 직원들은 가까운 고객용 화장실을 못 쓰게 하니 방광염을 달고 삽니다. 생리대를 교체할 시간이 없어서 피부질환도 심하고요. 임신을 해도 하루 7시간 이상 서있으니 자궁이 내려가 복대를 차고 일합니다.” (면세점 근무 15년차 최모씨) 백화점과 면세점의 판매직 노동자들이 하지정맥류, 방광염 등 각종 신체질환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는 비율이 질병에 따라 일반인의 2배에서 최대 67배까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장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유산도 많아 49.8%가 동료의 유산을 목격했고, 유산 경험이 있는 사람도 11%였다. 고려대 보건과학대 김승섭 교수팀과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은 이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를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화장품, 시계 등 68개 브랜드 판매직 2806명으로 96.5%가 여성이다. 이들은 같은 연령대 다른 직종 여성에 비해 엄지발가락 등이 크게 변형된 무지외반증 67배, 다리의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하지정맥류 25.5배, 족저근막염 15.8배, 방광염 3.2배, 요통 5.3배, 상반신 통증 2.3배 등 특정 질병 유병률이 매우 높았다. 또 생리대 교체를 제때 못해 17%가 피부질환을 겪었고 유산 문제 등도 심각했다. 판매직 노동자의 질병 경험이 평균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유는 화장실이나 휴게실 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근무 수칙상 직원들은 고객용 화장실을 쓸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7%가 고객 화장실 이용 금지 교육을 받은 적이 있으며, 화장실에 가고 싶었으나 못 갔다는 응답도 59.8%였다. 직원용 화장실은 전체 건물의 1~2개 뿐인데 이마저도 매장에서 멀어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이날 증언에 나온 백화점 근무 13년차 김모씨는 “직원 화장실은 지하에 있는데 매장을 오래 비울 수 없어 물도 잘 못 마신다”고 토로했다.앉을 공간이 없는 것도 하체 질환을 심각하게 하는 원인이다. 10여년 전 대형마트 등 서비스직의 ‘앉을 권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현장에서는 나아진 게 없다고 호소한다. 연구에 따르면 “매장에 의자가 아예 없다”는 응답이 27.5%,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다”는 답이 37%였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르면 의자를 비치하는 것은 사업주의 의무이지만 처벌 규정은 없다. 문제가 계속되자 고용노동부는 실태 점검 중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가 시정권고는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객과 사업장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갑질 고객’으로 인해 정신 건강도 적신호였다. 언어 폭력 경험은 일반 여성의 3.5배, 신체적 폭력 경험은 16.9배에 달했다. 그 결과 우울증과 공황장애 유병률도 일반인보다 각각 3.5배, 12배 높았다. 김승섭 교수는 “진상 고객에 대한 지적뿐 아니라 노동자 보호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황수정의 시시콜콜]‘입시기계‘들의 정신건강

    “남한의 중 2가 무서워서 북한이 남침을 하지 못한다”는 농담을 모르면 대한민국에서 간첩이다. 그런데 ‘중 2병’의 심각성이 그냥 우스개는 아니었다. 실제로 반항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청소년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학생 시기인 13~15세 연령대에서 ‘적대적 반항장애’ 진료 사례가 두드러졌다. 이 장애 질환이 청소년 정신질환 중 가장 많은 비율(5.7%)을 차지했다. 문제의 ‘중 2병’이 현실의 수치로 재확인된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불명예도 근거가 뚜렷했다. 청소년 자살 원인 1위로 지목되는 우울장애 진료 사례는 해마다 늘었다. 2015년 1만 5636건이던 것이 지난해 1만 9922명. 2년새 27%나 증가했다. 특히 고2, 고3에 해당하는 17~18세에 우울장애의 증가세는 가팔랐다. 학습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임은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겠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밝히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이보다 실없는 말이 없다. 원인은 이미 분명하고 예방책도 진작부터 명확하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향해서만 작동되는 ‘입시 기계’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상 어떤 진단도 처방도 무의미한 현실이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 밖으로 뛰쳐나오는 학생들이 해마다 심각해지는 것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며칠 전 공개된 교육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학업중단 숙려제’에 참여하고도 학업을 중단한 사례는 2만 명이 넘었다. 2013년 도입된 숙려제는 자퇴 의사를 밝힌 학생들이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2~3주 숙려기간을 주는 장치. 숙려제에 참여하고서도 결국 자퇴한 고교생은 2015년 16.7%에서 지난해 28.8%로 급상승했다. 세계은행(WB)이 그제 발표한 조사결과에서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인적자본 수준이 세계 2위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청소년들의 우수한 인적자본 수준이 그들 개인의 행복이나 국가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세계 2위의 청소년 인적자본 지수는 어쩌면 입시기계들이 빚어낸 싸늘하고 공허한 숫자놀음일 뿐이므로. 이즈음 대부분 고등학교들에서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카페인 함량이 아찔한 커피나 음료수를 물 마시듯 하며 밤잠을 쫓은 아이들이다. 시험이 끝났다고 한숨 돌릴 시간도 없다. 수행평가에 남아 있는 진을 빼야 한다. 과연 담당교사는 이 주제를 이해했을까 싶은, 요령부득의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수행평가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뿐인가. 학교생활기록부에 한 줄 올리겠다고 아등바등 챙겨야 하는 독서, 자율동아리, 봉사활동…. 엄마들 눈에는 “(아이들이) 정신을 잃지 않고 숨쉬고 사는 게 신기하다” 싶은 ‘노역’들이다. 교육부 장관이 백 번 바뀌어도 희망을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짐이 무거워 무릎이 꺾이는데, 빛깔 좋은 취지만 앞세워 어깨짐을 더 올릴 궁리만 하고 있어서다. 절대평가든 고교학점제든 아이들이 감당할 어깨넓이부터 먼저 봐주길, 제발.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20대 건강 적신호…당뇨·우울증·화병 가파른 상승

    20대 청년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의원(민주평화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대 청년세대의 당뇨병과 우울증, 화병, 공황장애, 통풍질병 환자 증가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아지고 있다. 학업과 취업난, 아르바이트 등으로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청년세대의 고단함이 드러난 결과로 풀이된다. 20대 당뇨병 환자 수는 2013년 1만 7359명에서 2014년 1만 8390명, 2015년 1만 9780명, 2016년 2만 1927명, 지난해 2만 4106명 등으로 5년간 38.9% 늘었다. 전체 연령대 평균 환자 증가율(23.4%)보다 15.5% 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20대 우울증 환자 수도 2013년 4만 7721명, 2014년 4만 7879명, 2015년 5만 2275명, 2016년 6만 3436명, 지난해 7만 5602명 등으로 5년간 58.4% 증가해 전체 연령대의 평균 증가율 16.5%의 3.5배에 이르렀다. 20대 화병 환자 수는 2013년 709명, 2014년 772명, 2015년 843명, 2016년 1225명, 지난해 1449명으로 5년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체적으로 화병 환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유독 20대와 10대의 증가율은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20대 공황장애 환자 수도 2013년 7913명, 2014년 8434명, 2015년 9964명, 2016년 1만 2762명, 지난해 1만 641명 등으로 5년간 2배로 늘었다. 20대 통풍 환자 수는 2013년 1만 3325명, 2014년 1만 4403명, 2015년 1만 5954명, 2016년 1만 8751명, 지난해 2만 1046명 등으로 58% 늘어 연령대별 최고 증가율을 나타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드르렁 푸’ 잠자다 숨멈추는 수면무호흡증, 이젠 약으로 치료한다

    ‘드르렁 푸’ 잠자다 숨멈추는 수면무호흡증, 이젠 약으로 치료한다

    잠을 잘 때 주변 사람의 잠자리를 방해할 정도로 심하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 사람을 더욱 불안케 만드는 것은 심하게 코를 고는 과정에서 중간중간에 숨을 멈추는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중년 이후에 주로 나타나는 이 수면무호흡증은 지켜보는 사람들이 ‘저러다 숨을 멈추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수면무호흡증은 비만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른 사람들에게서도 수면무호흡증이 나타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수면무호흡증이 심해지면 낮시간에 심한 졸음이 오는 것은 물론 우울증, 인지능력 손상, 고혈압, 심장마비, 뇌졸중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로는 양압기를 착용하고 잠을 자는 것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이다. 양압기는 무호흡상태가 되면 압축공기를 불어넣어 기도를 개방해주는 것인데 잠을 잘 때 마스크와 헤드기어를 써야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연구진이 수면무호흡증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연구팀은 지난 15~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호흡기학회 국제컨퍼런스’에서 아토목세틴과 옥시부티닌이라는 약물을 병행사용할 경우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밝혔다. 연구팀은 수면 무호흡증을 앓고 있는 2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성인 ADHD를 치료할 때 사용하는 ‘아토목세틴’과 요실금을 완화시키는데 사용되는 과민성 방광치료제 ‘옥시부티닌’을 병용 투여한 결과 기도폐색 빈도가 시간당 평균 28.5회에서 7.5회로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수면 무호흡증이 심한 환자 15명의 경우는 74% 정도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확인됐으며 전체 환자들에게서는 증상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또 수면 무호흡증 환자는 혈액 내 산소포화도가 줄어드는데 치료제 복용 후 산소포화도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에서 수면무호흡증 증상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이번 연구는 수면무호흡증의 약물 치료 첫 발을 뗀 것으로 아직 임상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만큼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을 비롯한 수면 전문가들은 이번에 개발된 아토목세틴과 옥시부티닌 병용요법은 고혈압과 심장마비 위험이 큰 사람들은 물론 야간 배뇨장애를 겪는 노년층에게서는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살인 비극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는 침묵하지 말고 하루빨리 나서야”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살인 비극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는 침묵하지 말고 하루빨리 나서야”

    서울신문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연재를 시작한 건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가족 간 살인과 자살이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 중 상당수는 ‘노노(老老) 간병’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노인 인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지난해 고령 사회(65세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만성 질환자도 늘었다. 보건복지부의 ‘2017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만성 질환을 앓는 65세 이상 노인이 89.5%에 달했다. 노인 인구는 앞으로도 급속도로 증가해 2026년이면 초고령 사회(65세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노-노 간병 외에도 장애를 지녔거나 병에 걸린 환자의 가족들이 간병의 굴레 속에 고통받고 있다. 서울신문은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전문가 5명을 본사로 초청, 해법을 모색해 봤다. 차흥봉(76)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형선(58)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신영석(5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효영(41) 성북미르사랑데이케어센터장, 이성희(59) ‘마을살림 가족지원협회’ 대표가 참석했다.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이 좌담을 진행했다.→‘간병살인’이나 ‘간병자살’이 일어나는 원인은. -차흥봉 전 장관(이하 차 전 장관) 거시적으로 보면 ‘인구학적 변화’와 ‘가족 부양 체계의 변화’ 때문이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1980년 전체 인구의 3.9%에 불과했던 노인(65세 이상)은 지난해 14%로 급증했다. 당연히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도 늘었다. 또 1980년에는 약 85%의 노인이 자식과 함께 살았는데, 지금은 따로 사는 등 가족 부양 체계가 급변했다. 이런 이유로 노노 간병이 증가하고, 간병 고통에 시달리는 노인도 늘었다. -정형선 교수(이하 정 교수) 노인 인구 비중이 28%에 이르는 일본은 지역별로 고령 환자에 대한 간병 계획을 짜고,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등 아픈 환자와 가족간병인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반면 우리는 간병 부담을 대부분 환자 가족들에게만 떠넘긴다. 가족들의 고통이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신영석 연구위원(이하 신 연구위원) 최근 정부가 치매 의료비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들고 나오는 등 간병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기 전 세밀한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서울신문 탐사보도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간병 실태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성희 대표(이하 이 대표) 현장에서 가족간병인을 만나면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매우 많다. 사회가 이들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할 때다. 미국은 만성 질환자들을 관찰하다 힘겨운 간병으로 보호자가 먼저 사망하는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가족간병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서울신문 보도를 계기로 우리도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서울신문 설문조사 결과 가족간병인의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었다. 이유는. -차 전 장관 서울신문의 분석처럼 간병 기간과 하루 간병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감이 상승한다. 치매 등 만성 질환자를 종일 돌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돌봄은 끝이 없지만 환자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여기서 오는 절망감도 우울증의 한 원인이 된다. -신 연구위원 가족이 환자들을 종일 돌본다는 건 경제적 능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일 간병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간병인을 고용했을 것이다. 결국 경제력이 낮을수록 간병 시간이 길어지고 우울감도 높아진다. -이 대표 경제력과 별개로 꼭 가족이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도 간병인에게 족쇄가 된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주간보호시설로 모시는 게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무리해서 종일 환자를 돌보다 우울증을 앓는다. 이런 가족들을 설득해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도록 하면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환자들은 시설에서 전문적인 케어를 받고, 가족들은 그 시간만큼 간병 부담이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지역사회의 돌봄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좋다. -박효영 센터장(이하 박 센터장) 간병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도 위험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치매를 부끄러운 질병으로 여기고 환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울감이 증폭된다. 일본이나 네덜란드에는 ‘치매안심마을’이 있다. 치매를 노화의 한 과정으로 여기고 간병인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정 교수 결국은 간병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사회에서 적절하게 풀어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간병 시간을 줄여 주는 요양시설과 요양보호사 등 간병 인력이 상당히 부족하다.→‘간병살인’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정 교수 일본은 가족을 돌보다 폭행할 경우, 케어매니저(돌봄 전문가)가 곧바로 둘을 분리시킨다. 매뉴얼에 따라 환자를 쇼트스테이(단기보호시설)에 보내거나, 심각한 경우 보호자에게 요양시설 입소 등을 제안한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간병 스트레스가 극단적으로 분출되는 걸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이 대표 결국 폭력이 불행의 시작이다. 폭력이 습관화되고 극단적 사태로 치닫기 전 ‘고리’를 끊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케어매니저 시스템도 사실 지역사회에서 환자가 있는 가정을 살피고 돌봄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잘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차 전 장관 간병인에게 휴식을 주는 ‘레스핏 케어’가 필요하다. 레스핏 케어는 간병인들이 돌봄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 환자를 전문시설에 보내거나 간병인을 투입하는 제도다. 영국 등에 잘 구축돼 있다. 신체적·정서적으로 한계에 몰린 간병인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점점 단기 또는 주야간 보호시설이 늘고 있다. 이런 시설을 활용하면 충분히 제도 운용이 가능하다. -박 센터장 간병인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도 늘어나야 한다. 간병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다른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간병을 해 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소소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지 프로그램이나 자조모임을 진행하면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지원과 홍보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대표 남성간병인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남성간병인의 수치를 집계하는 데 우리나라는 없다. 그만큼 간병은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드러내서 말하길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간병의 어려움, 갈등을 털어놓는다거나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여성보다 적다. 실제 서울신문이 분석한 판결문을 보면 남성이 간병살인의 가해자인 경우가 약 74%다. 남성을 위한 간병교육 프로그램과 자조모임 등이 필요하다. -정 교수 나아가 우리 사회가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서울신문이 분석한 간병살인, 간병자살 사건의 상당수가 노노 간병에서 발생했다.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간병인마저 병에 걸렸을 때 간병살인 비극이 다수 발생했다. 환자들에게 괴로운 삶을 강요하기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어쩌면 죽음에 다다른 개인의 선택을 사회가 막으면서도 대안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에게 선택의 출구를 열어 주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경제적 어려움이 간병살인의 기폭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과 해결책은. -정 교수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원을 활용해 저소득층 간병 비용을 줄여 주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국가 재정상 한계가 있다. 치매 환자가 있는 경우 가족의 경제활동에 제동이 걸려 생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부도 ‘치매국가책임제’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치매안심센터 설치 등 인프라 구축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치매환자 1인당 연간 2000만원 정도의 돌봄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전국 치매환자가 70만명에 달하니 14조원이 필요하단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한 해 편성되는 치매환자 관련 정부 예산은 모두 합쳐도 3000억원 정도다. -차 전 장관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극단에 몰려 자살이나 범죄 위험군에 있는 환자의 가정만 지원 대상으로 하면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다만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갑작스럽게 생계 곤란이나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생계·의료·주거지원 등을 해 주는 긴급복지지원제도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제도로 위태로운 환자의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이 대표 저소득층의 경우 특히 경제적·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복합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간병하는 것만도 벅차 복지 서비스를 직접 찾아 나서기에 어려움이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 이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가 중요하다. 지역 단위의 사회복지사 등이 방문을 통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도심권50+센터’는 건강 코디네이터 60여명을 생활고를 겪는 치매 가정에 파견하고 있다. 치매 가정의 다양한 어려움을 돌보고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인지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신 연구위원 이른바 ‘간병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평소에 아픈 사람을 돌봐 마일리지를 쌓고, 훗날 본인이 병들면 그만큼 간병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경제적 부담 없이 간병을 받을 수 있고, 가족도 간병 부담을 덜 수 있다. 마일리지가 남는다면 현금으로 돌려받으면 된다. -정 교수 현재 경로당 등에서 제한적으로 ‘노노 케어 마일리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를 신 연구위원의 말처럼 더 많은 사람에게 적용하면 좋겠다. 저소득층에게 특히 도움 될 것이다.→주요 선진국들은 가족간병 해법으로 ‘커뮤니티 케어’를 거론한다.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집과 지역사회가 환자를 돌보는 개념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 대표 앞서 이야기 한 해외 제도 대부분이 커뮤니티 케어에 기반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직접 찾아 복지 시스템과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 가능하다. 결국 해답은 커뮤니티 케어가 가능한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차 전 장관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05년부터 시·군·구에 주민을 위한 약 4300개의 ‘지역포괄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이 센터의 케어매니저들은 도움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단기보호시설이나 간병인, 요양원 등 환자 상태에 맞는 돌봄 제도를 지원한다. -정 교수 환자들이 집이나 지역사회에 머물면서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려면 주간보호, 단기보호, 방문요양·간호 서비스 등 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런 지원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게 필수 조건이다. -차 전 장관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민간단체가 운영한다. 우리도 전국에 많은 복지기관과 시설, 인력이 있지만 제각각이라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처럼 제도를 통일하고 산재한 민간단체에 가족간병 지원 역할을 맡겨야 한다. 또 일본과 마찬가지로 일정 경력을 갖춘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등을 국가자격시험을 통해 케어매니저로 흡수해야 한다. 체계적인 요양서비스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케어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환자들에게 효율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박 센터장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 환자와 가족이 완전히 분리돼 지내는 건 환자의 증상 개선에도 좋지 않다. 주간보호센터에 치매 환자를 보내면서 돌봄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보호자들이 있다. 이렇게 가족이 관심을 두면 환자의 심리 상태가 안정되고 증세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족과 사회 모두 돌봄에 참여하는 커뮤니티 케어가 환자들에게도 이상적이다. -신 연구위원 하지만 현재 정부가 하겠다는 커뮤니티 케어의 목적이 불분명해 보인다. 유럽이 커뮤니티 케어를 시작한 건 의료서비스를 지역사회로 일부 옮겨 재정 부담을 덜려는 목적이었다. 반면 일본은 환자를 보살피는 복지적인 측면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방향과 발전상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요양보호시설과 요양보호사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정 교수 요양원 등 요양시설의 경우 의사가 상근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의 서비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요양시설 서비스가 엉망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그곳에 있기를 거부하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괴롭다. 그래서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는 만성 질환자가 2~3배의 비용을 더 지불하고 요양병원에 장기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 대표 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요양시설은 2016년 기준 3137개로 전년 대비 202개 늘어나는 등 증가 추세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가족들이 믿고 맡길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간병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시설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 교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중간시스템인 개호노인보건시설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 시설엔 입원 환자 100명당 의사 1명, 간호사 2명을 둔다. 만성 질환자임에도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머물렀거나 요양원에서 질 낮은 서비스를 받던 환자들을 개호노인보건시설이 흡수한다. 치매나 뇌졸중 등으로 치료가 필요하면서도 집에서 돌보기 어려워 요양이 필요한 환자들이 의료·복지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받을 수 있다. -신 연구위원 우리나라도 개노인보건시설과 유사한 시설로 보훈시설이 있다. 전국 5개의 보훈병원 인근에 보훈시설이 있다.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가 끝나면 시설로 이동시켜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요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모델을 확대해봄 직하다. -이 대표 요양보호사도 질은 낮고 숫자는 부족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150만명이 넘지만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30만~35만명 수준이다. 만성 질환자들을 돌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게다가 활동한 지 1년 된 요양보호사나 10년 된 사람이나 제공하는 서비스 질이 큰 차이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 처우 개선과 함께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직무교육만 받으면 손쉽게 취득할 수 있다. 진입 장벽을 높여 전문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환자 보호자들도 전문성이 없는 요양보호사에게 가족을 맡기는 것을 불안해한다. -차 전 장관 교육과 함께 시험을 치르도록 자격증 제도를 손질하면 좋겠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등에서 1만명의 간병 인력을 데려오겠다고 하지만, 그러면 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 있다. 우리는 현행 제도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고민하는 것이 좋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관절염·요통 등 만성통증으로 인한 美자살률 증가 (연구)

    관절염·요통 등 만성통증으로 인한 美자살률 증가 (연구)

    지난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된 가운데, 미국에서는 관절염이나 요통과 같은 만성통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만성통증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으로, 급성통증과 달리 정신심리학적 인자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즉 통증이 인체 조직의 장애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환자가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불면과 식욕저하,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이하 CDC) 연구진에 따르면 2003~2014년, 미국 18개주(州)에서 자살한 12만 3181명 중 9%에 달하는 1만 789명이 암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한 관절염이나 허리통증 등의 만성 통증을 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해가 거듭될수록 만성통증과 연관된 자살률은 상승세를 보였다. 만성 통증을 앓았던 자살자 수가 2003년에는 전체 자살자의 7.4%였지만 2014년에는 10.2%까지 늘어났다. 미국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권총인데, 권총을 이용해 자살한 사람 중 53.6%는 만성통증을 앓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약물과다복용으로 자살한 사람은 전체 자살자 중 16.2%를 차지했다. 이번 연구는 만성통증을 앓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증이나 우울증이 매우 만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진통제 복용량도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포함돼 있다. 미시간대학의 정신의학과 마크 일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만성통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서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통증 완화를 위해 진통제 접근은 불가피한데, 진통제는 적절하게 사용하고 대신 물리요법이나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 2016년 기준 자살자 수가 1만 3092명으로 하루 평균 36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6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은 25.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리투아니아 다음으로 높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미국 내과 전문 의학 학술지인 애널즈 오브 인터널 메디슨(Annals of Internal Medicine) 최신호에 실렸다. 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하다 건강 해치고 생활고… 숨 좀 돌릴 여유 있었으면,제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하다 건강 해치고 생활고… 숨 좀 돌릴 여유 있었으면,제발

    “밥은 꼭 갈아서 먹여야 하는데 자칫 기도로 넘어갈까 봐 늘 불안해요. 대변은 천천히 배를 밀어서 빼줘야 하고요. 요즘은 애 아빠가 갈비뼈를 다쳐 일을 하기 힘듭니다. 가장이 일을 못 하면 모든 게 멈춥니다.”(중증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52세 여성) “뇌졸중 환자는 24시간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매달 병원비와 사설간병비로 수백만원씩 지급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원을 받는) 요양보호사를 쓰려 해도 간병하기 힘든 환자라며 아예 돌보려 하질 않아요.”(뇌졸중 부친을 간병하는 40세 여성)서울신문은 지난 7~8월 가족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9월 4일자 7면>를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객관식 설문만 진행하면 이들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A4 용지 16장 분량의 글이 모였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족간병인의 목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담기 위해 ‘한국어 글분석 프로그램’(K-LIWC)을 이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이 쓴 글에서 형태소(의미가 있는 언어의 최소 단위)로 단어를 뽑아낸 뒤, 어떤 감정이나 생각 등이 자주 언급됐는지 분석하는 도구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1만 5000여개의 단어를 언어학적 분석에 따라 72개의 함축적 의미가 담긴 단어로 보여 준다. 학계에서 신뢰도가 높은 방식으로 서종한,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가 분석에 도움을 줬다. 가족간병인이 적은 글은 총 7729개의 단어로 구성됐다. 일상생활(자기영역)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건 ‘직장·일’(169회), ‘학교’(155회)였다. 가족간병으로 직장이나 학업 등 사회활동에 제한을 받는다고 호소한 사람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여가활동’(134회)에 대한 언급도 높았다. 끝 모를 사막 속에 갇힌 듯한 간병 터널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휴식’뿐이다. “몇 분이라도 저만의 자유시간을 느끼고 싶어요.” “저도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발 숨을 돌릴 여유를 좀 주세요.” 보통 사람에겐 너무 소박해 보이지만 가족간병인은 이런 생각조차 사치다. ‘몸 상태와 증상’(127회), ‘돈·재정적 이슈’(111회)와 관련한 단어도 많이 나왔다. 간병을 하다 본인 건강까지 해치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다고 호소한 것이다. 서 교수는 “가족간병인이 종일 간병에만 매달리다 보니 휴식이나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생활비나 간병비 등 경제적 지원을 호소하게 된다”고 분석했다.서울신문은 설문 응답자 외에도 현재 아픈 가족을 간병 중인 30여명을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들었다. 경기 일산에 사는 임순달(57·여)씨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86)를 6년째 돌보고 있다. ‘잘’ 모시고 싶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증세가 심하지 않아 오전 3~4시간 정도 홀로 지낼 수 있다. 이 시간 임씨는 옆 동네 치매 노부부 집으로 가 ‘제2의’ 간병(방문요양서비스)을 한다. 시어머니까지 임씨 혼자 3명의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임씨는 이들 노부부도 성심껏 간병해 가족 못지않게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런 임씨도 정부가 가족간병을 ‘그림자 노동’(대가를 받지 않고 당연히 하는 것으로 포장된 노동) 취급하는 것엔 분통을 터뜨린다. 임씨처럼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사람을 가족요양보호사라고 한다. 돌보는 이가 가족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요양보호사가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급여를 지급한다.하지만 임씨가 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시간, 시급 1만 5000원 남짓이다. 게다가 한 달에 20일(20시간)까지만 청구할 수 있다. 임씨는 “오후에는 종일 시어머니를 모셔 실제 간병 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면서 “1시간만 인정해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이어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시어머니를 타인 요양보호사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가정으로 방문요양서비스를 나가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임씨가 다른 치매 환자를 돌보면 시간제한 없이 시간당 1만원가량 받을 수 있다. 장상훈(50·가명)씨는 8년 전부터 만성 폐질환인 어머니(71)를 여동생(40)과 함께 모시고 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어머니는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하다. 어머니 집을 고쳐 2층짜리 주택으로 만들고 모두 합가했다. 자신 가족은 1층, 어머니와 여동생은 2층에서 생활한다. 여동생은 미혼이다. 낮에는 직장을 그만둔 여동생이 간병하고, 저녁에는 일을 마치고 퇴근한 장씨가 돌본다. “사실 환자의 육체적 병에 대한 지원 제도는 어느 정도 마련돼 있어요. 하지만 ‘마음’도 돌볼 필요가 있다는 건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정말 예민해졌어요. 예를 들면 실내 온도가 정확히 25도, 습도는 45%가 유지되지 않으면 신경질을 부려요. 몸이 아프니 마음도 병든 거죠. 그게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해요. 환자 정신건강에 대한 치료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김미지(51·여)씨는 벌써 10년째 파킨슨병을 앓는 남편(57)을 돌본다. 파킨슨병은 노인성 질환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모시고 있던 시어머니한테마저 치매가 왔다. 두 사람을 동시에 간병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요양시설로 모셨다. 김씨는 남편이 아프고 나서도 2년가량 회사를 더 다녔지만 결국 그만뒀다. 남편이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면서 낮에도 곁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논술 과외를 하면서 버텼지만, 줄어만 가는 통장 잔고에 한숨만 늘었다. 남편의 우울감이 커지고 생활도 어려워지면서 한창 청소년기에 있던 아이들과의 충돌도 잦아졌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어려웠어요. 애들이 있어 참았지만 이렇게 사느니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암흑같은 터널에서 다행히 한 줄기 빛이 비쳤다. 파킨슨병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남편 증세가 호전된 것이다. 남편은 기적적으로 회복해 직장을 구했다. “가장인 남편이 쓰러졌을 때는 정말 막막했어요. 아직 젊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죠. 특히나 저희 집처럼 부모가 아픈 경우에는 아이들 먹는 것을 비롯해 교육을 책임져 줄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족간병인들은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정말 크게 느낍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檢 ‘단원 성추행’ 이윤택 징역 7년 구형…“왕처럼 군림했다”

    檢 ‘단원 성추행’ 이윤택 징역 7년 구형…“왕처럼 군림했다”

    이윤택(66)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신상정보 고지와 보호관찰도 명령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전 감독에 대한 1심 선고는 오는 19일 이뤄진다.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극단 내 왕처럼 군림하면서 수십 차례 성추행하고도 반성의 기미가 없으며, 피해자들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구형에 앞서 “피고인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추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서 “특히 일반적인 안마방법이라고 얘기하는데, 대체 사타구니를 안마시키는 것이 어디서 통용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 측에서 기습 추행이냐 아니냐를 쟁점으로 삼으려 하는데, 손을 잡아당겨 만지게 하는 것 자체가 폭행”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인 단원 측 변호인도 “피해자들은 열정을 모두 바친 연희단거리패의 수장인 피고인으로부터 평생 지우지 못할 엄청난 피해를 당했고 지금도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며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음에도 범죄를 눈감을 수 없었던 피해자들은 늦었지만 피고인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 전 감독 측 변호인은 검찰이 지적한 ‘안마’ 행위에 대해서 “배우들의 동의하에 이뤄진 것”이라며 “피고인이 하는 연기지도 방법이 일반인의 상식이나 다른 연극단에서 하지 않는다고 추행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감독은 2010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여성 단원 8명에게 안마를 핑계로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게 하는 등 23차례에 걸쳐 상습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기지도를 빙자해 단원들의 신체를 만져 단원들에게 적응장애 및 우울증 등 상해를 입힌 혐의도 있다. 이 전 감독 측은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거나 잘못된 게 없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오랜 합숙훈련 중에 상당히 피곤해 안마를 한 것이고, 폭행이나 협박으로 인해 갑자기 손을 끌어당겼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단원들의 민감한 부위에 손을 댄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도 “이 전 감독이 갖고 있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독특한 지도 방법의 하나”라며 “피해자의 음부에 손을 댄 건 연극에서 마이크 없이 발성하기 위해 복식호흡을 해서 음을 제대로 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할멈이 삶을 내려놓자, 영감은 이성을 놓았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할멈이 삶을 내려놓자, 영감은 이성을 놓았다

    “할마이가 덩치가 이래 크단 말야. 영감이 돌보면서 억수로 힘들어했어. 그래서 니캉 내캉 죽자 이래뿐 거라. 순간적으로 해뿌린 거제. 그리고 지도 자살할라꼬 칼로 찔라뿟지. 1㎝만 더 들어가도 죽었을 긴데….”경북 포항에 사는 김금자(81·여·가명)씨는 12년 전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50년 넘게 같은 마을에 살던 이상용(당시 74세·가명)씨가 2006년 8월 아내(71)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씨는 집에서 망치(#①)로 아내를 10여 차례나 내려쳤다. 이어 과도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장기가 밖으로 나올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이웃들이 급히 병원으로 옮겨 살아났다. 이씨는 뇌졸중으로 왼쪽 팔다리가 마비된 아내를 홀로 15년간(#②) 간병했다. 오랜 간병으로 자신도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사건 5년 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했고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③) 아내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영감 제발 나 좀 죽여도”(#④)라며 울부짖었다. 이 사건은 서울신문이 취재한 ‘간병살인’ 중 애틋함과 잔혹함이 동시에 나타난 사연이다. 당시 이씨의 심리 상태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씨를 직접 만나는 게 최선이지만, 이미 7년 전 지병으로 작고했다. 당시 수사 기록과 판결문, 지인들을 취재한 녹취록을 전문가에게 보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권일용(전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객원교수, 강덕지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장 등 3명이 도움을 줬다. 망치 #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범행도구에 주목했다. 강 전 과장은 “이씨 정신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결코 이런 둔기를 쓰지 않는다. 식사를 끊거나 독극물을 쓰는 등 (피를 안 보는) 다른 방법도 많다. 정신이 붕괴해 이런 판단 자체를 못 했고, 순간적으로 눈에 보이는 걸 집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오랜 기간 지속된 애정과 분노, 즉 ‘양가감정’(서로 대립되거나 모순된 감정)이 순간적인 자극(트리거)으로 인해 과도한 폭력을 동반한 공격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때 이씨 심리는 공황 상태나 다름없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씨는 경찰에서 아내를 어떻게 내려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권 교수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이씨는 과거 폭력 전과가 전혀 없다. 15년 #② 장기간 지속된 간병도 이씨 심리를 추론하는 단서다. 이 교수는 “‘간병 고통’은 참고 견딘다고 희망이 보이는 게 아니다. 간병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점점 인내심을 잃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 전 과장은 “사람은 행복해지려는 욕망보다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가 훨씬 강하다. 하지만 간병 고통은 벗어날 수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15년간 간병한다는 건 본인이 아닌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6~7개월 전 간병 고통은 극에 달했다. 아내는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이씨가 1시간마다 대소변을 받았다. 자녀들도 생활고 등으로 이씨 내외를 돕지 못했다. 며느리들이 가끔 와 반찬을 건네 주고 가는 게 전부였다. 교통사고 #③ 이 교수는 “간병으로 본인 건강을 챙기지 못한 이씨가 여러 가지 병을 앓으면서 인지장애가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자기조절력’(몸과 마음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약해졌고, 충동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씨는 당시 이미 건강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며 “본인도 삶의 의욕이 떨어지면서 ‘너 죽고 나 죽자’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적장애를 앓는 경우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감정은 무력감을 발생시키고, 이 무력감이 애정과 분노의 ‘양가감정’ 속에서 지속됐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죽여줘 #④ 아내의 ‘촉탁’은 이씨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 과장은 “사실 이씨도 아내의 상태가 악화되자 ‘인제 그만 갔으면…’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아내의 울부짖음은 노인들이 흔히 하는 ‘오래 살면 죽어야 해’ 같은 우스갯소리가 아닌 진심을 담은 말”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아내의 이런 말이 임계점에 도달해 끓는 물처럼 이씨의 이성을 붕괴시켰다”고 덧붙였다.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 이씨는 잠시 담배를 피우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아내가 혼자 소변을 보려고 발버둥을 치다 넘어져 울고 있었다고 한다. 아내가 “영감 나 좀 죽여서 편하게 해도.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다른 방으로 달려가 망치를 들었다. 이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황에서 살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아내가 먼저 포기하니 이씨의 조절 능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설명했다. 이씨 변호인은 재판에서 촉탁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촉탁살인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요구로 그를 살해하는 걸 말한다. 일반 살인보다 형량이 가볍다. 그러나 법원은 “아내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흥분해 일시적으로 격정된 상태에서 한 말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영감이 벌컥 우리 집 문을 여는 기라. ‘감빵에서 어찌 이리 빨리 나왔능교’ 물으니 ‘당신들 덕에 풀려났다’ 하더라카이.” 이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다. 그간 아내를 열심히 간병했고, 이웃들이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집단으로 낸 게 정상참작됐다. 이후 이씨는 이웃들과 자주 왕래하는 등 나름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일명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불리는 이들 세 전문가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냉철한 판단을 내린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접하고서는 모두 한마디씩 덧붙였다. “마누라 죽이고 자기만 살았다고 비난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문제를 가진 노부부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사회적 보장제도가 있더라도 이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가가 직접 이들을 찾아내 보살필 필요가 있다.”(이 교수) “이씨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붙이는 건 사건을 이해하는 올바른 시선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으면서 그에게 책임만 물어선 안 된다.”(강 전 과장) “경찰 시절 수없이 많은 사건을 분석했지만, 이런 사건은 참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권 교수) 포항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포항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발달장애인 자녀 둔 부모 4명 중 1명, 한 달에 한 번도 여가 생활 못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발달장애인 자녀 둔 부모 4명 중 1명, 한 달에 한 번도 여가 생활 못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4명 중 1명(24%)은 자녀를 돌보느라 한 달에 한 번도 여가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 고립감을 심화시키고 우울증을 키울 수 있어 장애인 가족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도 필요한 실정이다.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경일대 대학원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이 지난 6월 발표한 논문 ‘발달장애인 부모의 돌봄스트레스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507명 가운데 121명(23.9%)은 월 1회조차 여가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여가 활동 횟수는 월 1~2회가 49.1%(249명), 3~4회가 18.1%(92명)였다. 월 5회 이상 여가 활동을 한다는 응답자는 8.9%(45명)에 불과했다. 김 부회장은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행동을 억제하기가 더 어렵고 시설 등에 맡기기도 힘들어 부모들이 매일 상당 시간을 돌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아 사회적으로 고립된 부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6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는 하루 평균 평일에는 8.8시간, 주말에는 14.9시간을 자녀를 돌보는 데 쓰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자신이 자녀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에 평생을 시달린다. 실제로 같은 조사에서 부모들은 ‘돌봄으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6.3%) 보다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46.5%)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며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족 휴식 프로그램’(25.1%), ‘장애 자녀 양육 상담’(23.4%), ‘부모 자조 모임 또는 결연 프로그램’(13.3%)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 부회장은 “자녀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간병 스트레스, 외부와의 단절은 고립감을 심화시키고 자칫 극단적인 선택을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 “고립 예방을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참여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발달장애인 자녀 둔 부모 4명 중 1명, 한 달에 한 번도 여가 생활 못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발달장애인 자녀 둔 부모 4명 중 1명, 한 달에 한 번도 여가 생활 못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4명 중 1명(24%)은 자녀를 돌보느라 한 달에 한 번도 여가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 고립감을 심화시키고 우울증을 키울 수 있어 장애인 가족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도 필요한 실정이다.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경일대 대학원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이 지난 6월 발표한 논문 ‘발달장애인 부모의 돌봄스트레스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507명 가운데 121명(23.9%)은 월 1회조차 여가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여가 활동 횟수는 월 1~2회가 49.1%(249명), 3~4회가 18.1%(92명)였다. 월 5회 이상 여가 활동을 한다는 응답자는 8.9%(45명)에 불과했다. 김 부회장은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행동을 억제하기가 더 어렵고 시설 등에 맡기기도 힘들어 부모들이 매일 상당 시간을 돌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아 사회적으로 고립된 부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6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는 하루 평균 평일에는 8.8시간, 주말에는 14.9시간을 자녀를 돌보는 데 쓰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자신이 자녀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에 평생을 시달린다. 실제로 같은 조사에서 부모들은 ‘돌봄으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6.3%) 보다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46.5%)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며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족 휴식 프로그램’(25.1%), ‘장애 자녀 양육 상담’(23.4%), ‘부모 자조 모임 또는 결연 프로그램’(13.3%)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 부회장은 “자녀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간병 스트레스, 외부와의 단절은 고립감을 심화시키고 자칫 극단적인 선택을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 “고립 예방을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참여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발달장애 아들 둔 허강원씨의 삶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발달장애 자식에게 둔기 든 애끊는 父情 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 5년… 쌓인 분노, 10배의 우울증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 5년… 쌓인 분노, 10배의 우울증

    가족 간병인 292명 우울증 자가진단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6명은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사람보다 10배 이상 높은 비율이다. 특히 간병 기간이 5년을 넘거나, 월 소득이 300만원 이하일 때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서울신문이 한국치매협회,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뇌질환환우모임’ 등과 함께 가족간병 중인 29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자가 진단을 한 결과다. 가족간병인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간병살인이나 동반 자살 등 극단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175명 ●10명 중 6명 중등도 이상 서울신문은 진단 도구로 ‘PHQ(Patient Health Questionnaire)-9’를 사용했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간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우울장애 여부를 측정하는 도구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총 9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에 따라 0~27점으로 채점된다. ▲우울증 아님(0~4점) ▲경증(5~9점) ▲중등도(10~14점) ▲중증(15~19점) ▲심함(20~27점) 등 5가지로 구분된다. 중등도 이상이 나오면 우울증이 심하다고 판단해 상담치료나 약물치료를 권고한다. 진단 결과 가족을 간병 중인 사람의 59.9% (175명)가 중등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15.1%·44명)과 심함(16.8%·49명)까지 포함해서다. ‘우울증 아님’과 ‘경증’은 각각 12.7%, 27.4%에 그쳤다. 이는 일반인과 비교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복지부가 2016년 일반인 57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진단에선 5.6%만이 중등도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가족간병인의 경우 일반인보다 중등도 이상 비율이 무려 10배 이상 높은 셈이다. 가족이 아프면 다른 가족 역시 큰 심적 고통을 겪고, 간병에 따른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5년 ●중등도 우울증 60%대로 높아져 특히 간병 기간이 5년을 넘으면 우울증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간병 기간 ‘1~3년’과 ‘3~5년’에서 ‘중등도’ 이상의 비율은 각각 48.1%와 51.3%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59.9%)을 밑돈다. 하지만 간병 기간 ‘5~7년’은 이 비율이 61.9%로 10% 포인트 이상 올라갔다. ‘7~10년’(65.0%)과 ‘10년 이상’(68.8%)은 더 높은 비율을 보였다. 간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년 이하’(62.8%)도 높았는데, 아직 간병에 익숙하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가족이 아프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가족간병은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극심한 피로를 일으키고,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끼쳐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이 가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치매에 걸린 남편(75)을 흉기로 찌른 이연순(74·여·가명)씨는 간병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다. 남편은 2012년부터 치매를 앓아 이씨가 5년 넘게 돌봤다. “요양병원 갈라케도 안 간다 카제. 그래 정 가기 싫으믄 내가 델꼬 있자 했지. 거울에 자기 얼굴 비치면 ‘이 새끼’ 하며 주먹으로 깨버리는기라. 집에 있는 거울을 싹 다 치었제. 내한테 욕하고 때리고…. 원래는 안 그랬다. 색시처럼 얌전했는데…. 다른 할마이들이 남편 치매 걸렸다고 할 때는 그런갑다 지. 내가 안 겪을 때는 몰랐는데, 직접 간병해보이 정말 환장하겠더라. 못난 꼴만 봐야 하고.” 남편은 아침만 되면 밖으로 나가자고 보챘다. 여행 갈 형편이 안 되는 이씨가 할 수 있는 건 남편과 함께 지하철을 타는 것뿐이었다. 5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8시간 이상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당뇨병과 우울증, 불면증을 앓는 이씨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구에 지하철이 3호선까지 있는데, 안 가본 역이 없다. 둘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남들 보기에는 ‘나이 들어서도 정이 좋다’고 생각했겠지….” 그날은 눈이 뒤집혔다. 수면제를 먹고 자는 남편을 찌르고서 자신의 배를 찔러 목숨을 끊으려 했다. 다행히 함께 사는 딸에게 발견돼 둘 다 목숨을 건졌다. 이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른바 ‘독박간병’인 경우 우울감은 한층 심해진다. 우울증 자가 진단에서 아픈 가족을 홀로 돌보는 사람은 64.7%가 ‘중등도’ 이상으로 나타났다. 반면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사설간병인을 쓰는 경우는 56.6%에 머물렀다. 환자를 하루 몇 시간 돌보느냐도 가족간병인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10시간 이상’(65.9%)과 ‘8~10시간’(65.2%)의 경우 셋 중 둘이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2~4시간’은 41.7%에 그쳤다.68.4% ●월소득 200만원 이하 우울증 간병의 고통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진 경우는 우울증 위험이 훨씬 커진다. 월 소득 200만원 이하에선 68.4%가 ‘중등도’ 이상이었고, 특히 ‘심함’이 25.3%에 달했다. ‘심함’으로 판정된 사람은 즉시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우려가 있다. 월 200만~300만원 역시 ‘중등도’ 이상이 64.4%로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반면 월 300만~400만원(51.0%)과 400만~500만원(57.1%), 500만원 이상(36.7%) 등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장애(자폐, 뇌병변 포함)’ 환자를 돌보는 이의 정신건강이 가장 좋지 않았다. ‘중등도’ 이상의 비율이 무려 76.8%에 달했다. ‘암’(65.5%), ‘뇌혈관질환’(57.3%), ‘치매’ (52.7%), ‘사고 후유증’(52.6%) 등 다른 질환보다 월등히 높다. 환자의 질환을 ‘장애’라고 답한 사람은 대부분 자녀를 돌보는 이들이다. 자녀가 아프면 부모의 정신건강 역시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이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10개월간… 아내는 죽음을 부탁했습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10개월간… 아내는 죽음을 부탁했습니다”

    ② ‘끝없는 굴레’ 다중간병 아픈 가족 3명 혼자 돌보던 정현우씨다음주면 죽은 아내의 기일이다. 정현우(54·가명)씨는 오늘도 악몽 같았던 그날로 시곗바늘을 돌려본다. 3년 전 그날(2015년 9월 11일) 아내는 하루종일 죽여 달라고 매달렸고, 정씨는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도왔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자신 없다.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간병의 굴레’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유방암에 걸린 아내,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선천성 뇌병변에 걸린 딸. 정씨는 혼자 아픈 가족 3명을 돌봐야 하는 ‘다중 간병인’이었다. 막내딸은 중학교 2학년이지만 키 130㎝에 몸무게가 30㎏이 채 되지 않는다. 셋째인 막내는 2003년 태어난 날부터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유독 힘들었던 분만 과정을 이겨내고 첫 울음을 터뜨렸지만 아이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몸과 마음 모두 발달이 더뎠고, 복합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정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다. “이게 수술을 해서 펴진 거예요. 한 3년 됐죠. 그전에는 이렇게 굽어 있었고, 걷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보조기를 풀고 힘들지만 조금씩은 걸을 수 있어요.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 사 먹자’고 꾀면서 걷기 연습을 시키죠.” 음악치료부터 물리치료, 재활치료까지 지난 14년간 안 해 본 게 없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등·하굣길 아이를 업고 다녔다. 다행히 다리 수술이 성공하고서는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돼 재활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엔 매일같이 딸의 다리 근력을 길러 주기 위해 수영장에 데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온다. 어머니가 쓰러진 건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수심에 빠졌던 2014년 4월이었다. 뇌졸중이 당시 일흔여덟이었던 어머니를 덮쳤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요양시설에 보내자 어머니가 눈물로 매달렸다. “현우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제발 집에만 데려다 주라.” “어머니는 따뜻한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젊은 시절 술과 노름으로 가정을 내팽개쳤죠. 집까지 떠났는데 병이 들어서야 돌아왔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기꺼이 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3년간 성심껏 간병했어요. 막내딸 간병만으로도 벅찼지만, 제게 유일한 버팀목이자 쉼터인 어머니를 외면할 수도 없었어요.” 정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집인 전북 부안으로 내려갔다. 막내딸은 아내에게 맡겼다. 수시로 가래를 뽑아내고,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한 달 만에 수술비와 치료비 등으로 450만원을 썼다. 어머니가 모아 놓은 돈이 있었지만 곧 바닥을 드러냈다.아내에게 연락이 온 건 정씨가 어머니 간병으로 한창 힘들었던 2014년 11월 어느 새벽이었다. “할 말 있어. 빨리 와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사실 12년 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기에 법적인 부부는 아니다. 하지만 둘 다 재혼하지 않았고, 따로 살면서도 자녀들을 돌보며 관계를 유지했다. 정씨가 서둘러 경기도 집으로 돌아온 날, 아내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자존심도 독립심도 강한 여자였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자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공부에 매달렸고, 결국 친정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했죠. 한때 잘나가던 증권맨이었던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자 두말 않고 직접 돈을 벌었어요. 학원강사부터 농사일까지 이리저리 일거리를 찾아다닐 땐 스스로 가장 역할을 도맡아 주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아내도 암 앞에선 나약해졌어요.” 아내는 치료를 거부하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함께 찾아온 우울증이 더 문제였다. 남편의 설득 끝에 수술을 받았지만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도 소용없었다. “번개탄이랑 삼발이, 쟁반, 햇빛 가리개를 준비해 줘. 제발….” 마음의 병이 깊어진 아내는 “아프지 않게 죽을 수만 있게 도와 달라”고 떼를 썼다. 설득하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죽을 자리를 찾겠다며 정씨에게 종일 운전을 시켰다. 이런 일이 10개월 넘게 반복됐다.그날은 지옥 같았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낮 1시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내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빙빙 돌며 입씨름을 시작했다. 매번 똑같았다. “죽겠다”는 아내를 정씨가 “안 된다”고 말렸다. 아내를 달래려고 강원도까지 차를 몰았다. 하지만 이날은 정씨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요양시설에 있는 어머니는 고열이 났다.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독촉했다. 오랜 시간 집에 혼자 놔 둔 막내딸이 걱정됐다. 9시간 동안 운전하며 아내를 설득하던 정씨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밤 10시 인적이 드문 시골길에 차를 멈춘 정씨는 햇빛 가리개로 앞유리를 가렸다. 독한 양주와 함께 수면제를 먹은 아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수십번을 망설이다 결국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모질게 마음먹고 차 밖으로 나왔다. 손이 떨리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가 나올 수 있게 차 문을 열어뒀다. 도망치듯 길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고통스럽진 않을까. 문을 열어뒀으니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퍼붓던 비처럼 술을 들이켜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딸이 엄마를 찾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없이 차 속에 있을 아내를 향해 내달렸다. 아내는 숨져 있었다. 정씨는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내와 집을 나 설 때까지만 해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날 따라 비도 내리고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날씨가 맑았더라면 달라졌을까요?” 탈상 그렇게 3년이다. 가족은 조금씩 아픔을 치유 중이다. 약은 없다. 망각에 의지할 뿐이다. 정씨는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간 정씨가 아내를 열심히 보살폈고, 자녀들이 선처를 호소한 게 정상참작됐다. ‘내 죽음은 내가 선택한 거다. 죽더라도 남편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고 적힌 아내의 쪽지 글도 마지막 배려가 됐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자녀들이 엄마의 휴대전화를 정리하다 유언이 녹음된 파일을 발견했다. “엄마는 먼저 간다.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 돈은 똑같이 각자 통장에 나눠 넣었다. 너희에겐 너희 인생이 있으니 즐겨라.” 가족은 다시 통곡했다. 정씨와 취재진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달 29일이다. 아들은 군대 가고, 큰딸은 학교로 떠나 막내딸만 집에 있었다. 그는 이제 딸만 보살피면 된다. 어머니도 올해 2월 작고했다. 그를 짓누르던 다중 간병의 짐은 벗었다. 사랑했던 두 여자를 떠나보낸 덕이다. “이제 막내딸 하나만 돌보면 되지만 사실 지금도 힘들어요. ‘너 막노동할래? 집에서 간병할래?’ 물으면 나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요. 아이가 나아지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해요.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눈이 잘 안 보여요. 하지만 제가 좌절하고 주저앉으면 누가 막내딸을 돌보겠어요. 그래서 웃기로 했어요. 아이도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요. 그게 하늘에 있는 아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할 테니….” 글 사진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독박 간병, 살인 충동마저 부르는 악몽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독박 간병, 살인 충동마저 부르는 악몽

    가족 간병인 325명 설문조사아픈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 10명 중 3명이 간병의 어려움 때문에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간병 기간이 7년 이상 길어지거나 간병 시간이 하루 평균 8시간을 넘어갈 때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끼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심화됐다. 서울신문이 지난 7~8월 한국치매협회, 뇌질환환우모임 등과 공동으로 가족 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간병의 어려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5.7%가 “간병으로 신체와 정신 모두 한계에 몰리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자주 그렇다 59.4%, 가끔 그렇다 36.3%)고 답했다. 살인 내지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도 29.2%에 이르렀다. 이들은 ‘간병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한계’(60.2%·복수 응답), ‘경제적 어려움의 심화’(50.6%), ‘미래에 대한 불안감’(45.8%) 등이 몰려올 때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매우 자주 5.4%, 종종 23.8%)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간병을 하는 가족 중 상당수가 간병 살인 또는 간병 자살의 위험에 놓여 있다는 신호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임을 보여 준다. [7년차] ●간병인 45% 극단적 생각 우선 전체 응답자 가운데 1년 이상 간병으로 환자를 돌본 응답자는 67.4%에 이르렀으며, 10년 이상 간병 중인 사람들도 20.6%나 됐다. 치매나 뇌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이나 자폐증, 발달장애의 특성상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서 간병이 몇 년씩 장기화할 때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간병 기간별로 살펴보면, 간병을 시작한 지 1년 이하의 응답자들에서는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중이 21.1%로 나타났다. 하지만 간병 기간이 7년 이상 된 응답자들에서는 극단적인 생각을 해 본 비율이 45%로 두 배 이상 훌쩍 뛰었다. 간병 시간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간병에 매달린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44.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간병 시간이 8시간을 넘어가면 살인 및 자살 충동도 급격히 증가했다. 환자를 돌보는 시간이 하루 8시간 미만인 응답자들에게선 살인 및 자살 충동이 평균 20.4%로 나타난 데 반해 하루 8~10시간 간병을 하는 응답자들에게선 46.3%, 10시간 이상 간병을 하는 응답자들에게선 35.6%로 나타났다. 특히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60.9%는 본인 외에는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는 이른바 ‘독박 간병’을 하고 있었다. 간병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악몽 같은 현실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간병 가족의 어려움을 5가지 항목으로 나눠 각각 힘든 정도를 1~5점(낮음→높음)까지 나타내도록 했다. 그 결과 환자 가족들은 ‘간병은 끝이 없다’(평균 4.3점)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어 ‘비싼 약값, 치료비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진다’(3.7점), ‘하루 대부분 시간을 간병에 할애한다’(3.7점),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3.6점), ‘간병 방법을 잘 모르겠다’(3.0점) 순이었다. 종일 환자의 손발 노릇을 하다 보니 간병인들의 수면 부족도 심각했다. 76.9%는 불면증이나 수면 부족을 호소했다. 또 10명 가운데 7명 이상(71%)이 간병 이후 자신의 건강도 나빠졌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체력 저하(60.5%·복수 응답)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57.0%)이 많았다.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계치매학회에서 치매 환자의 보호자가 우울증이나 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면서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고령 환자뿐만 아니라 이를 간병하는 가족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도 중요하지만 간병하는 가족을 위한 상담이나 교육, 지원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82%] ●간병인 10명 중 8명이 여성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여성(82.8%)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2017년)에 따르면 주 수발자의 71.7%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 또는 시부모를 간병하는 비중이 절반(49.2%)에 달했다. 가족 간병인의 마음을 치료하는 PTC(Powerful Tools for Caregivers)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이성희 마음살림 가족지원협회 대표는 “한국 정서상 부모를 어떻게든 직접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커 주로 장남이나 그 며느리가 간병을 떠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과정에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가족 갈등이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면서 “집안에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모인 가운데 가족 회의를 통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성이 직접 간병을 맡는 경우 평소 집안일 등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현실을 부정하기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설문 응답자들은 우선적으로 ‘환자 가족 휴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꼽았다(48.2%·복수 응답). 환자 가족 휴가 제도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일정 기간은 간병의 굴레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이 기간 간병인이나 도우미를 파견하거나 단기보호시설에서 환자를 돌보는 제도다. 이어 취업, 현금 지원 등 경제적 도움(46.4%), 전문요양시설 확대(42.3%), 환자 가족의 정신적, 정서적 지지와 상담(32.7%), 요양보호사 지원 확대(27.4%), 유급 간병휴직(22.6%) 순으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재 정부는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차원에서 1년에 최대 6일간 치매환자에 한해 가족휴가지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장기요양 1~2등급 환자의 경우 24시간 방문요양 서비스를, 1~2등급을 제외한 치매환자들은 단기보호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용자 수는 115명에 불과하다. 휴가지원 대상이 치매에 한정돼 있고, 휴가를 신청해도 환자를 맡아줄 시설을 찾기 힘들다(전국 204곳)는 것이 보호자들의 불만이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중증 장애인 전문 돌봄 제도를 비롯해 가족 간병 수가제 도입, 반찬 배달 지원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가족요양보호사 제도처럼 가족 간병인에게 허용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가족 간병을 하는 경우 하루 1시간씩 월 20일간 노동을 인정하고 급여를 지급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신체활동이나 가사 및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일부 도서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족이 활동지원사 역할을 하고 급여를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24시] ●하루종일 붙어서 돌봐야 뇌질환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자녀를 둔 오모(52·여)씨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모가 아니면 어디가 불편한지 알아차릴 수 없는 최중증 장애인이다 보니 24시간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부부가 생계도 아이가 잠든 시간에 교대로 나가 잠깐 일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가 있지만 장애가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직접 돌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를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1일부터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휴게시간(8시간 근로 중 1시간)을 보장하기로 하면서 휴게시간에 한해 가족이 활동지원사를 대체하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향후 모니터링을 통해 가족 허용 여부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아비는 너희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아비는 너희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80대 노모, 정신질환 앓던 40대 딸을 끈으로 묶은 채 한강 투신’, ‘70대 노부부 차 안에서 손 꼭 잡은 채 자살···암 투병 아내와 함께 떠나’.피의자가 사망한 탓에 통상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는 ‘간병자살’은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지 않는다. 변사사건처리부 한 장에 간단명료하게 자살 등으로 분류되고 마는 죽음이다. 법적으로 유무죄를 따질 이유도 방법도 없는 까닭에 한 인간이 죽음을 결심한 이유 따윈 기록이 아닌 기억 속으로 묻힌다. 그나마 2006년 이후 현재까지 10여년간 언론이 기록한 간병자살 60건을 찾았다. 총 사망자 수는 111명. 이 중 17명은 동반자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사실상 살인 피해자다. 89명은 함께 목숨을 끊었다. 5명은 환자를 남겨둔 채 돌보는 이들만 세상을 등진 경우다. 동반자살에 실패한 이들도 16명이다. 간병인이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봤던 경우도 적지 않다. 간병자살은 주로 ‘부부 간병’(31건, 51.7%)에서 발생했다. 부부 평균 연령은 69.1세였다. 대부분 ‘노노(老老) 간병’ 과정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이어 ‘자식을 돌보던 부모’(15건, 25%), ‘부모를 돌보던 자식’ (8건, 13.3%), ‘형제·자매’ (4건, 6.7%) 순이었다.“너희 엄마가 처음 병이 났을 땐 삶을 마감하는 게 좀 너무 이르다 싶어 몇 달 정도 지켜보다 결국 오늘까지 왔다. 너무 아파하고 나도 아파 같이 죽기로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구나. 미안하다.” 2013년 11월 23일 전남 목포시에서 80대 노부부가 남긴 유서다. 디스크 수술로 거동이 어려운 아내를 돌보던 남편은 본인마저 뇌졸중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되자, 식탁 위에 유서 한 장과 영정사진을 올려놓고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이처럼 간병 중 간병인도 병에 걸려 몸이 아픈 사례도 16건(26.7%)에 달했다. 특히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의 절절한 마음이 유서에 담긴 경우도 많았다. 간병하던 부모가 자식과 삶을 정리한 경우 지적·발달 장애 등 선천적 장애를 지닌 자녀를 간호한 경우가 대다수다. 부모 평균 나이는 48.2세, 자식 평균 나이는 17.2세였다. 2015년 7월 6일. 경기 의왕시 한 아파트 18층에서 30대 여성이 뇌병변장애를 앓던 7세 아들을 끌어안고 투신했다. 여성은 아들 치료를 위해 매일 대형병원을 돌고 또 돌았다. 차도가 없자 좌절했고, 자신이 떠나면 혼자 중증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아들을 걱정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4년 3월 13일엔 30대 부부가 5살짜리 자폐증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부부 역시 발달장애 아이를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봤지만, 나아지는 게 없자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간병의 고통으로 인한 우울증이 자살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간병인이 경제적 어려움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21건(35%)에 이른다. 2013년 4월 24일 대구에서 쌍둥이 두 아들(7)과 연탄불을 피워 사망한 김모(43)는 사망 직전까지 뇌졸중인 아내를 돌봤다. 하지만 실직인 상태로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아내의 병원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를 병원에 홀로 남겨둔 채 두 아들과 생을 마감했다. 간병인이 우울증에 걸린 경우도 12건(20%)에 달했다. 2014년 3월 2일 경기 동두천시 상패동 한 아파트에서 주부 윤모(37)씨가 성장장애를 앓던 아들(4)과 함께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윤씨는 더디게 성장하는 아들을 돌보며 주변에 우울감을 호소했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15㎡ 남짓 원룸에서 재혼한 남편과 아들을 낳았고,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주머니에선 “미안하다”고 적힌 밀린 세금 고지서가 나왔다. 오랜 기간 홀로 간병을 담당해야 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간병인이 홀로 환자를 돌본 경우는 41건(68.3%)에 이르렀고, 평균 간병 기간은 7년 8개월이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간병은 전쟁이다, 죽어야 끝나는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간병은 전쟁이다, 죽어야 끝나는

    #피해자 평균 나이 64.2세, #간병기간 6년 5개월, #부부간 살해, #다툼에 따른 우발적 범행, #10명 중 6명 독박간병, #10명 중 4명 목조름.지난 10여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간병살인’ 사건의 핵심 키워드다. 피해자 대부분이 노인이었고, 가해자와는 한때 100년 해로를 약속한 사이였다. 병마와 싸우기를 6년 5개월, 자식들의 도움 없이 서로에게 의지하다 한순간 절망과 분노를 견디지 못해 남편은 아내의 목을 졸랐다.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노노(老老)간병’으로 귀결된다. 서울신문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간병살인 사건 판결문 108건을 입수해 심층분석했다. 악순환을 막기 위해 개별 사건의 특수성보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죽음의 순간은 사건 피해자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통분모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언론 보도 내용을 분석하거나, 일부 판결문을 분석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대규모 심층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74% ●아들과 남편의 범행 압도적 간병살인에도 힘의 논리는 또렷하게 나타났다. 가해자는 가족 중 남성인 경우가 80건(74.1%)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들(38건, 35.2%)인 비중이 가장 높았고, 남편(25건, 23.1%)이 뒤를 이었다. 아내와 딸은 각각 14.8%, 2.8%에 그쳤다. 피해자 역시 힘이 약한 순이었다. 아내가 25건(23.1%), 어머니가 22건(20.4%), 아버지가 19건(17.6%), 남편이 16건(14.8%)이었다. 가해자 평균 나이는 56.9세인 반면, 피해자 평균 나이는 64.2세로 더 고령이었다. 피해자들이 앓은 질병 가운데 노인성 질환의 비중은 높았다. 치매가 58건(53.7%), 뇌혈관 질환이 16건(14.8%)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7건(6.5%), 지체장애가 6건(5.6%)이었다. 피해자의 일상생활 가능 여부를 알아봤더니,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대소변 못 가림)가 46.3%나 됐고, 전적인 보호가 필요한 경우(식물인간 수준)가 14.8%였다.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건은 38.%였다. 가해자 35.2%도 우울증 외에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다. 뇌혈관 질환이 7명(17.9%), 치매가 5건(11.5%), 노환이 5건(12.8%)이었다. 특히 가족 내에 혼자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독박간병’은 64건(59.3%)이나 됐다. 33% ●‘3년 미만’ 간병인 범행 최다 범행에 이르는 데 걸린 평균 간병기간은 6년 5개월이다. 비중만 보면 3년 미만이 36건(33.3%)으로 가장 높았다. 간병기간이 짧다고 환자를 돌보기 수월하거나 간병의 스트레스가 가벼운 것은 아닌 셈이다. 환자를 간호한 지 한 달 만에 환자를 살해하는 때도 6건(5.6%) 있었다. 오롯이 간병 문제라기보다는 평소 다양한 이유로 불만이 쌓여 오다가 간병 스트레스가 뇌관이 돼 폭발한 경우가 많았다. 범행 수법으로는 목조름 방식이 41건(38.0%)으로 가장 많았다. 문모(55·여)씨는 2012년 6월 24일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다 다음달 10일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배경엔 남편의 무책임이 있었다.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약 20년 전 집을 나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치매까지 걸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자 결국 남편을 살해하고야 말았다. 물론 간병기간이 길어졌을 때 간병살인 가능성이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가해자의 범행 결심 배경에 ‘장기간 간병에 따른 낙담’이 41건(38.0%)이나 됐다.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간병살인 52건(48.1%)에서 가해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선 변호인을 선임한 사례도 61건(56.5%)이나 됐다. 통상 형사사건의 경우 국선 변호인 선임 비율은 30% 남짓이다. 이에 비하면 국선 변호인 선임 비율이 20% 포인트 정도 높은 셈이다. 우리 법원은 피고인이 구속되거나 70세 이상이면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선정하고 있다. 또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을 땐 피고인의 청구에 의해 국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범행 결심 사유 중 ‘다툼에 따른 순간적 분노’가 42건(38.9%)으로 가장 많았다는 것도 눈에 띈다. 돌봄이 필요한 환자와 다툴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치부하는 건 간병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의 편견이다. 식사와 약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대소변을 벽에 묻혔다는 이유로, 섭섭한 말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간병 현장은 매일 전쟁터다. 가해자만 피해자를 폭행(26건, 24.1%)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폭행(36건, 33.3%)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특히 치매에 걸리면 평상시 없던 폭력성이 나타난다. 범행 결심의 주요 이유 중 폭력, 가출 등 다양한 치매 증상에 지쳐서(35건, 32.4%)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폭언을 퍼붓는 건 예사고, 의처증과 의부증 증세도 발현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공격하기도 한다. 치매 환자가 사는 집에선 거울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박모(53)씨는 2013년 2월 어머니(87)의 머리 부위를 마구 폭행해 살해했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천엽을 사왔으니 함께 먹자”며 걸레를 들이댄 것이다. 누차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간의 스트레스가 일순간에 터져 나왔고, 혼자서 어머니를 돌보며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폭발했다. 박씨는 지난 1년간 성실히 어머니를 부양했지만, 결국 사소한 실랑이 때문에 천륜을 저버린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 이 밖에 범행 배경으로 ‘처지 비관’이 26건(24.1%), ‘자살하기에 앞서 환자부터 살해’와 ‘다른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가 각각 22건(20.4%)으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 환자를 돌보다 자포자기를 한 경우다. 판결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은 곳곳에 있다. 피고인이 우울감을 호소(41.7%)하거나 수면부족을 호소(15.7%)하기도 했다. 치매환자를 돌보다 보면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 56년간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한 한모(82)씨는 2013년 8월 서울 강서구 자신의 집에서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10여년 전부터 치매와 고혈압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홀로 돌봤던 그다. 범행 2~3년 전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아내를 살해하고 수면제를 먹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5.5년 ●살인죄 평균 형량의 절반 가족을 살해한 죄로 받는 평균 형량은 5년 5개월(집행유예 제외)로 집계됐다. 2009년 7월 양형기준이 시행된 이후 살인죄의 평균 형량이 약 12.1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가량 낮은 형량이다. ‘5년 이상’이 35.2%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가 34.3%, ‘3년 이상 5년 미만’이 24.1%, 3년 미만이 6.5%에 그쳤다. 존속살인 등에는 가중치가 적용되지만 법원에서 가해자의 상황을 참작했기 때문이다. 감경 요소를 보면 ‘피해자 유족의 처벌불원’이 49건(45.4%)이었고, 자수가 12건(11.1%), 심신미약 9건(8.3%), 미필적 고의 7건(6.5%), 피해자 유발이 6건(5.6%)이었다. 감경 요소가 적용되지 않은 사건은 45건(41.7%)이었다. 물론 가중 요소도 있었다.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33건(30.6%), 존속인 피해자 32건(29.6%), 잔혹한 범행수법이 5건(4.6%)이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도봉구, ‘자살예방 주간맞이’ 주민 마음건강 돌본다

    도봉구, ‘자살예방 주간맞이’ 주민 마음건강 돌본다

    서울 도봉구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다음달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자살예방 주간 행사’를 마련한다고 24일 밝혔다. 우선 1일 플랫폼창동61 일대에서 열리는 ‘도봉구 사회복지박람회’에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부스를 마련한다. 생애주기별 마음건강 평가, 아동 청소년 우울증 및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테스트, 산후·노인 우울증 선별검사 등을 부스에서 실시할 예정이다.홍보부스에서는 주민들에게 아직은 낯선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성을 알린다. 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해시태그달기, 마음건강퀴즈 등을 통해 정신건강 관련 사업을 주민들에게 알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10일 도봉구청 대강당에서는 서울북부교육지원청의 초중고 127개교의 교사 260여명을 대상으로 자살예방지킴이(Gate-Keeper) 양성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자살예방지킴이는 주변의 자살위험신호를 빠르게 인지해 전문가에게 연계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이들이다. 구는 이번 교사 교육을 통해 학교 내 학생들은 물론, 지역사회의 자살위험자를 신속하게 발굴하고자 한다. 같은날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서는 뮤지컬 ‘플라이하이’ 공연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캠페인’도 진행된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지역 내에서 생명존중 분위기가 곳곳으로 확산돼 정신과 마음이 건강한 도봉구, 따뜻한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봉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암이라고 행복하지 말란 법 있나요?” 中 특별한 ‘암환자 모임’

    “암이라고 행복하지 말란 법 있나요?” 中 특별한 ‘암환자 모임’

    중국 샤먼(厦门)에는 매우 특별하고 뜻깊은 ‘암 환자 모임’이 있다. 최근 텐센트뉴스에서 운영하는 '중국인의 하루'(中国人的一天) 프로그램은 각종 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책을 읽으며,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있는 현장을 소개했다. 이들은 훈훈한 온정을 품은 이 ‘제2의 가정’에서 삶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이곳은 10여 년 전 샤먼 쓰밍구(思明区) 사회복지센터 암케어 부서에서 설립했다. 지금까지 1200여 명의 암환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암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 항암 치료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암 환자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생명이 언제 꺼지질 모른다’는 불안감과 사회적 고립감을 안은 채 이곳에 들어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잃었던 식욕도 찾고, 수면장애도 사라지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디에서도 쉽게 마음속 고통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들이 이곳에서만은 마음을 열고, 서로를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가 이들이 암 환자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유방암으로 2차례 수술과 4차례의 화학요법을 받으며 우울증에 빠졌던 황먀오센(黄妙璇)은 이곳에서 가무(歌舞)팀 팀장을 맡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지난 2006년 이곳에 온 이후 여기는 나의 제2의 가정이 되었다”고 말했다. 가무팀은 수차례 외부로부터 사회 공연 요청을 받기도 했다. 이곳의 모든 활동은 무료로 제공되고, 비즈니스적인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받질 않는다. 마자팡(马家芳, 73)씨는 암으로 고통받는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는다. 그는 여기서 화려한 발레 의상을 입고 ‘미운 오리 새끼’ 공연을 준비 중이다. 그는 “내가 미운 오리 새끼 역을 맡았다”면서 “아내와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얼마든지 춤을 출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이곳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는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면서 “항암이란 게, 사실 마음속 흑암을 물리치는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사진='중국인의 하루'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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