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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들은 살면서 종종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 가족과 연인이 떠나가기도 하고, 추억을 빼앗기거나 꿈이 좌절되기도 한다. 지난 22일부터 공연되고 있는 연극 ‘더 로스트’는 저마다 다른 ‘상실’의 경험과 의미를 이야기한다. 극작가 8명이 ‘상실’이라는 주제를 놓고 각기 쓴 단편 연극을 한데 묶은 옴니버스 연극이다. 8편의 이야기는 ‘상실’이라는 주제를 공유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공통분모 아래 완결된 구성을 담는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간 12월 26일, 떠들썩하던 축제가 끝난 뒤 느끼는 허망함이 그것이다.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이야기 4편이 ‘그때를 잃어버렸습니다’라는 제목의 파트 1로, 7년 전 크리스마스 다음날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4편이 파트 2 ‘당신을 잃어버렸습니다’로 묶였다. 공연 회차마다 파트 1 또는 파트 2의 4편이 무대에 오른다. ‘그때를 잃어버렸습니다’의 배경인 에덴아파트에는 막 이사 온 30대 부부,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 등이 있다. 김현우 연출이 “4편 중 파트 1의 구심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꼽은 에피소드 ‘방문자’에서는 교통사고로 11년간 잠든 채 살았던 여성이 잃어버린 시간과 아이를 되찾기 위해 에덴아파트 1002호의 초인종을 누른다. 인물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대립하지만 결국 상실의 아픔만 다시 확인한다. ‘당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속 인물들은 부모 또는 아이, 연인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산다. 그중 ‘하이웨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는 아들을 잃은 동화작가와 아들의 친구였던 소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를 보듬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김 연출은 “이 연극의 주제를 가장 함축해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설명했다. ‘더 로스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젊은 극작가 9명이 결성한 ‘창작집단 독’이 지난해 10월 두산아트센터에서 리딩 공연으로 처음 선보였던 작품이다. 극작가, 카피라이터 등 저마다 다른 글을 쓰면서 2005년부터 창작모임을 이어 온 이들은 ‘터미널’(2013) 등 네 편의 공동 창작물을 발표했다. 이들의 행보는 작가 각자의 개성을 살리며 구조적 완결성도 갖추는 신선한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전석 3만원. 02)766-6506.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행방묘연…여고 인근 건물에서 등장 “CCTV 담긴 모습은?”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행방묘연…여고 인근 건물에서 등장 “CCTV 담긴 모습은?”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여고 인근 건물에서 등장 “CCTV 담긴 모습은?”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행방묘연…여고 인근 건물에서 등장 “CCTV 담긴 모습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22일 음란행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그가 CCTV에 찍힌 영상에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고서야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2일 오후 6시쯤 업무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함께 제주지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관사로 돌아왔다. 그는 오후 7시 40분 쯤 관사를 나와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음식점으로 40∼50분가량 걸어서 이동해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8시 50분 쯤 음식값을 내고 나온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은 1시간가량 묘연해진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0시쯤 홀연 사건 현장인 제주시 중앙로(옛 제주시 이도2동) 모 음식점 길 건너편 남쪽으로 약 100여m 떨어진 모 여자고등학교 인근 건물에 설치된 CCTV에 등장한다. 초록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2분 뒤 맞은편 오토바이 가게 옆을 뛰어가 한라산 방향으로 70여m 떨어진 상가 1층 실내 CCTV에도 오후 10시 10분쯤 김 전 지검장이 나온다. 10시 11분쯤 그는 1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뒤따라 들어선다. 영상에는 여성들이 복도 끝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자 김 전 지검장은 이들을 스쳐 지나서 반대편 다른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 동안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 봤다. 다시 1시간여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이 묘연해지지만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1시 32분쯤 최초 목격된 음식점 맞은편 건물의 CCTV에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20분간 7차선 대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음식점 앞에서 2차례, 맞은편 건물에서 3차례 등 2곳에서 모두 5차례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고등학교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도로변을 향해 또는 도로를 등지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대도로변이어서 그런지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이 과정을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 A(18)양이 우연히 목격하게 됐고 오후 11시 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 13일 0시 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아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13일 오전 0시 45분쯤이었다. 김 지검장은 당시 초록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풀려났다. 김 전 지검장은 22일 경찰의 발표가 있고 나서 4시간여 만에 법률 대리인인 문성윤 변호사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봐 병적인 증상이 있음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검찰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전 지검장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감찰1과장을 지냈고, 특임검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를 직접 수사하기도 해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방 묘연 1시간 어디서 뭘했나 보니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방 묘연 1시간 어디서 뭘했나 보니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김수창 운전기사’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22일 음란행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그가 CCTV에 찍힌 영상에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고서야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2일 오후 6시쯤 업무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함께 제주지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관사로 돌아왔다. 그는 오후 7시 40분 쯤 관사를 나와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음식점으로 40∼50분가량 걸어서 이동해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8시 50분쯤 음식값을 내고 나온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은 1시간가량 묘연해진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0시께 홀연 사건 현장인 제주시 중앙로(옛 제주시 이도2동) 모 음식점 길 건너편 남쪽으로 약 100여m 떨어진 모 여자고등학교 인근 건물에 설치된 CCTV에 등장한다. 초록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2분 뒤 맞은편 오토바이 가게 옆을 뛰어가 한라산 방향으로 70여m 떨어진 상가 1층 실내 CCTV에도 오후 10시 10분께 김 전 지검장이 나온다. 10시 11분께 그는 1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뒤따라 들어선다. 영상에는 여성들이 복도 끝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자 김 전 지검장은 이들을 스쳐 지나서 반대편 다른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 동안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 봤다. 다시 1시간여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이 묘연해지지만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1시 32분쯤 최초 목격된 음식점 맞은편 건물의 CCTV에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20분간 7차선 대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음식점 앞에서 2차례, 맞은편 건물에서 3차례 등 2곳에서 모두 5차례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고등학교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도로변을 향해 또는 도로를 등지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대도로변이어서 그런지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이 과정을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 A(18)양이 우연히 목격하게 됐고 오후 11시 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 13일 0시 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아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13일 오전 0시 45분쯤이었다. 김 지검장은 당시 초록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풀려났다. 김 전 지검장은 22일 경찰의 발표가 있고 나서 4시간여 만에 법률 대리인인 문성윤 변호사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봐 병적인 증상이 있음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검찰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전 지검장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감찰1과장을 지냈고, 특임검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를 직접 수사하기도 해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운전기사와 헤어진 뒤 행적은?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운전기사와 헤어진 뒤 행적은? ‘충격’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김수창 운전기사’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운전기사와 헤어진 뒤 행적은?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22일 음란행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그가 CCTV에 찍힌 영상에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고서야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2일 오후 6시쯤 업무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함께 제주지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관사로 돌아왔다. 그는 오후 7시 40분 쯤 관사를 나와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음식점으로 40∼50분가량 걸어서 이동해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8시 50분쯤 음식값을 내고 나온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은 1시간가량 묘연해진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0시께 홀연 사건 현장인 제주시 중앙로(옛 제주시 이도2동) 모 음식점 길 건너편 남쪽으로 약 100여m 떨어진 모 여자고등학교 인근 건물에 설치된 CCTV에 등장한다. 초록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2분 뒤 맞은편 오토바이 가게 옆을 뛰어가 한라산 방향으로 70여m 떨어진 상가 1층 실내 CCTV에도 오후 10시 10분께 김 전 지검장이 나온다. 10시 11분께 그는 1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뒤따라 들어선다. 영상에는 여성들이 복도 끝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자 김 전 지검장은 이들을 스쳐 지나서 반대편 다른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 동안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 봤다. 다시 1시간여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이 묘연해지지만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1시 32분쯤 최초 목격된 음식점 맞은편 건물의 CCTV에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20분간 7차선 대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음식점 앞에서 2차례, 맞은편 건물에서 3차례 등 2곳에서 모두 5차례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고등학교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도로변을 향해 또는 도로를 등지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대도로변이어서 그런지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이 과정을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 A(18)양이 우연히 목격하게 됐고 오후 11시 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 13일 0시 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아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13일 오전 0시 45분쯤이었다. 김 지검장은 당시 초록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풀려났다. 김 전 지검장은 22일 경찰의 발표가 있고 나서 4시간여 만에 법률 대리인인 문성윤 변호사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봐 병적인 증상이 있음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검찰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전 지검장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감찰1과장을 지냈고, 특임검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를 직접 수사하기도 해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절대적 군사권력의 시대 지고… 은밀한 경제권력이 일상 통제

    절대적 군사권력의 시대 지고… 은밀한 경제권력이 일상 통제

    사라진 권력 살아날 권력/마이클 만·존 홀 지음/김희숙 옮김/생각의길/264쪽/1만 5000원 프리랜서 사진 기자인 미국인 제임스 라이트 폴리(40)의 죽음은 최근 재개된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가속을 붙였다. 2년 전 시리아에서 실종된 폴리의 공개 처형 모습이 이라크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유튜브에 공개되자마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IS라는 ‘암’이 확산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같은 날 미군은 이라크 북부 모술댐 인근 IS의 군사장비를 초토화시켰다. ‘우리 세대의 막스 베버’로 불리는 마이클 만 미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사회학부 교수는 그간 유난히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주목해 왔다. ‘최후의 제국’ ‘분별 없는 제국’으로 낮춰 부르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특징을 낱낱이 파고들었다. 때론 제국주의를 자처하는 현대 미국에 대해 노골적인 반론까지 폈다. 그리고 미국이 (통치자 주변의) ‘잘못된 조언들’ 탓에 결국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런 마이클 만의 연구는 역사적 기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1972년의 첫 시도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이 원대한 시도를 그저 목차가 짧은 책 한 권에 거뜬히 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역설적으로 그의 실패는 세계의 사회과학도들에게 축복이 됐다. ‘사회 권력의 원천들1’은 4권의 연작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남다른 시각이 세상에 드러났다. 마이클 만은 그간의 저서를 망라해 저널리스트인 존 홀 캐나다 맥길대 사회학부 교수와 ‘21세기의 권력’을 주제로 2010년부터 대담을 이어 왔다. 이를 정리해 낸 책이 ‘사라진 권력 살아날 권력’이다. 책에선 과거 권력의 원천을 이념, 경제, 군사, 정치로 구분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복잡했던 권력의 흐름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권력을 만든 요인을 살펴보고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어떻게 세계적 권력을 손에 넣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절대권력이 생겨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보다 은밀하고 지능적인 형태로 권력은 여전히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큰 전쟁이 일어나 세상을 초토화시키건 그렇지 않건 간에 어느 쪽이든 군사 권력의 관계 때문에 중요한 도전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세상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중요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기는 더 어려워졌지만 적어도 기존 권력 엘리트들을 몰아내는 것도 어려워진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세계화된 생산·무역 네트워크가 점점 더 광범위한 경제적 권력관계를 만들면 생산관계는 우리 일상생활을 집약적으로 통제한다. 둘의 조합을 통해 경제적 권력은 전 지구적으로 가장 은밀하면서도 끈질기게 일상에 뿌리내리고 지속적으로 전개된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만은 이를 통해 권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이 만든 인과관계를 통해 부여되고 변해 왔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류 최대의 위기에 대해 신랄하게 경고한다. “문명의 힘이 최고조에 달했고 경제 성장이 전 세계로 확산되려는 이 시기에 밑바닥이 드러나고 있다”며 “산업화가 가져온 기후변화가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끔찍한 모순”이라고 꼬집는다. 비단 국제사회라는 큰 틀뿐만 아니라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에선 여전히 누군가 정치·경제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두르고 있으나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22일 음란행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그가 CCTV에 찍힌 영상에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고서야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2일 오후 6시께 업무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함께 제주지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관사로 돌아왔다. 그는 오후 7시 40분 쯤 관사를 나와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음식점으로 40∼50분가량 걸어서 이동해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8시 50분 쯤 음식값을 내고 나온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은 1시간가량 묘연해진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0시께 홀연 사건 현장인 제주시 중앙로(옛 제주시 이도2동) 모 음식점 길 건너편 남쪽으로 약 100여m 떨어진 모 여자고등학교 인근 건물에 설치된 CCTV에 등장한다. 초록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2분 뒤 맞은편 오토바이 가게 옆을 뛰어가 한라산 방향으로 70여m 떨어진 상가 1층 실내 CCTV에도 오후 10시 10분께 김 전 지검장이 나온다. 10시 11분께 그는 1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뒤따라 들어선다. 영상에는 여성들이 복도 끝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자 김 전 지검장은 이들을 스쳐 지나서 반대편 다른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 동안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 봤다. 다시 1시간여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이 묘연해지지만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1시 32분쯤 최초 목격된 음식점 맞은편 건물의 CCTV에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20분간 7차선 대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음식점 앞에서 2차례, 맞은편 건물에서 3차례 등 2곳에서 모두 5차례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고등학교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도로변을 향해 또는 도로를 등지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대도로변이어서 그런지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이 과정을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 A(18)양이 우연히 목격하게 됐고 오후 11시 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 13일 0시 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아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13일 오전 0시 45분쯤이었다. 김 지검장은 당시 초록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풀려났다. 김 전 지검장은 22일 경찰의 발표가 있고 나서 4시간여 만에 법률 대리인인 문성윤 변호사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봐 병적인 증상이 있음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검찰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전 지검장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감찰1과장을 지냈고, 특임검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를 직접 수사하기도 해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22일 음란행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그가 CCTV에 찍힌 영상에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고서야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2일 오후 6시쯤 업무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함께 제주지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관사로 돌아왔다. 그는 오후 7시 40분 쯤 관사를 나와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음식점으로 40∼50분가량 걸어서 이동해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8시 50분 쯤 음식값을 내고 나온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은 1시간가량 묘연해진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0시께 홀연 사건 현장인 제주시 중앙로(옛 제주시 이도2동) 모 음식점 길 건너편 남쪽으로 약 100여m 떨어진 모 여자고등학교 인근 건물에 설치된 CCTV에 등장한다. 초록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2분 뒤 맞은편 오토바이 가게 옆을 뛰어가 한라산 방향으로 70여m 떨어진 상가 1층 실내 CCTV에도 오후 10시 10분께 김 전 지검장이 나온다. 10시 11분께 그는 1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뒤따라 들어선다. 영상에는 여성들이 복도 끝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자 김 전 지검장은 이들을 스쳐 지나서 반대편 다른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 동안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 봤다. 다시 1시간여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이 묘연해지지만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1시 32분쯤 최초 목격된 음식점 맞은편 건물의 CCTV에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20분간 7차선 대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음식점 앞에서 2차례, 맞은편 건물에서 3차례 등 2곳에서 모두 5차례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고등학교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도로변을 향해 또는 도로를 등지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대도로변이어서 그런지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이 과정을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 A(18)양이 우연히 목격하게 됐고 오후 11시 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 13일 0시 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아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13일 오전 0시 45분쯤이었다. 김 지검장은 당시 초록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풀려났다. 김 전 지검장은 22일 경찰의 발표가 있고 나서 4시간여 만에 법률 대리인인 문성윤 변호사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봐 병적인 증상이 있음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검찰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전 지검장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감찰1과장을 지냈고, 특임검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를 직접 수사하기도 해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음식점 나와 ‘1시간 행적’ 확인해보니 ‘충격’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음식점 나와 ‘1시간 행적’ 확인해보니 ‘충격’

    김수창, 운전기사 헤어진 뒤 음식점 나와 ‘1시간 행적’ 확인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수사결과, 행적 자세히 살펴보니 ‘충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22일 음란행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그가 CCTV에 찍힌 영상에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고서야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 전 지검장은 지난 12일 오후 6시쯤 업무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함께 제주지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00m 떨어진 관사로 돌아왔다. 그는 오후 7시 40분 쯤 관사를 나와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음식점으로 40∼50분가량 걸어서 이동해 저녁식사를 했다. 오후 8시 50분 쯤 음식값을 내고 나온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은 1시간가량 묘연해진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0시께 홀연 사건 현장인 제주시 중앙로(옛 제주시 이도2동) 모 음식점 길 건너편 남쪽으로 약 100여m 떨어진 모 여자고등학교 인근 건물에 설치된 CCTV에 등장한다. 초록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김 전 지검장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1∼2분 뒤 맞은편 오토바이 가게 옆을 뛰어가 한라산 방향으로 70여m 떨어진 상가 1층 실내 CCTV에도 오후 10시 10분께 김 전 지검장이 나온다. 10시 11분께 그는 1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뒤따라 들어선다. 영상에는 여성들이 복도 끝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자 김 전 지검장은 이들을 스쳐 지나서 반대편 다른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4초 동안 여성들이 있는 건물 안쪽을 뒤돌아 봤다. 다시 1시간여 김 전 지검장의 행적이 묘연해지지만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김 전 지검장은 오후 11시 32분쯤 최초 목격된 음식점 맞은편 건물의 CCTV에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낸 채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20분간 7차선 대도로변을 무단횡단하며 음식점 앞에서 2차례, 맞은편 건물에서 3차례 등 2곳에서 모두 5차례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고등학교와 상가 인근에서 승용차와 버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도로변을 향해 또는 도로를 등지고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대도로변이어서 그런지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이 과정을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 A(18)양이 우연히 목격하게 됐고 오후 11시 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 13일 0시 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남성을 붙잡아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13일 오전 0시 45분쯤이었다. 김 지검장은 당시 초록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며,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풀려났다. 김 전 지검장은 22일 경찰의 발표가 있고 나서 4시간여 만에 법률 대리인인 문성윤 변호사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봐 병적인 증상이 있음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검찰 조직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전 지검장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감찰1과장을 지냈고, 특임검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를 직접 수사하기도 해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예부터 무병장수·이상향·사랑의 상징

    복숭아는 예로부터 불로장생, 이상향, 사랑의 상징 등으로 알려져 왔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 신화에도 등장하는 복숭아는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소재로 활용되는 등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 전한시대의 문인인 동방삭과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신화에서 불사(不死)의 여신으로 나오는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먹고 장수했다고 전해진다. 복숭아에는 무병장수의 의미가 있어서 동양에서는 복숭아가 그려진 그림, 도자기나 종이로 접은 복숭아꽃을 선물해 장수를 비는 풍습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왕모가 한무제(漢武帝)에게 복숭아를 선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한무고사(漢武古事)에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를 보면 수많은 복숭아 과실과 꽃을 준비한 것이 기록돼 있다. 복숭아가 그려진 신선도, 십장생도, 복숭아 모양의 연적 등은 고려시대부터 장수를 기원하는 효행이나 존경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혈액 순환·어혈 제거 탁월’ 기록 실제로 복숭아의 의학적인 효과는 고문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초강목’(本草綱目), ‘동의보감’(東醫寶鑑) 등에 복숭아 속씨인 도인(桃仁)은 혈액 순환과 어혈 제거에 탁월하고 그 꽃은 부종 제거에 효과가 있으며 나무의 진은 신장과 간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선약이라고 기록돼 있다. 복숭아의 효능은 최근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데 씨 추출물은 치매 증상을 일으키는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아제의 활동을 장시간에 걸쳐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복숭아는 이상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양의 대표적인 이상향은 중국 진(晉)나라 시대의 시인 도연명이 그린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할 수 있다. 무릉도원은 진나라 때 무릉에 살던 어부가 배를 저어 우연히 가 봤던 복숭아꽃 아름답게 핀 평화로운 마을을 말하는데 어부가 다시 찾아가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그곳은 동양의 영원한 이상향이 됐다. 현재 중국 남서부 지역 양숴(陽朔)의 세외도원(世外桃源)은 도화원기의 무릉도원을 현실화한 곳으로, 중국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의 음료로 나와 복숭아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상징으로도 쓰였다. 중국 최초 시가집인 시경(詩經)에서는 시집가는 아가씨를 복숭아에 비유했고, 남녀 간 사랑의 선물로 복숭아가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복숭아는 피부 건조 예방, 피부 미백, 혈액순환 촉진 기능이 있어 최근에는 복숭아 추출물로 만든 다양한 화장품과 향수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복숭아는 소설, 그림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고 천지에 제를 올리는 도원결의 장면이 유명하다. 19세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꽃 핀 복숭아나무’는 색채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이중섭 화백이 막역한 친구였던 구상의 병문안을 갈 때 과일 대신 가져간 천도 그림이 유명한데 친구가 눈으로라도 복숭아를 먹어 병이 낫기를 바란 깊은 우정이 담겨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이 영생과 젊음을 얻기 위해 즐겨 마시던 음료로 알려진 넥타가 나온다. 다양한 복숭아 넥타라는 음료에서 알 수 있듯이 넥타는 현재 과일즙, 과실음료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처럼 복숭아는 서양에서 생과일뿐 아니라 주스, 통조림, 와인 등의 형태로 가공돼 왔다. 농촌진흥청 과수과 농업연구사 권정현 문의 esjang@seoul.co.kr
  • 근육 만드는 중? 턱걸이 하는 달팽이 포착

    근육 만드는 중? 턱걸이 하는 달팽이 포착

    혹시 근육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나뭇가지를 철봉삼아 턱걸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달팽이의 재밌는 모습이 포착돼 네티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러시아 출신 확대사진 전문작가 안토일리 예브기니(48)가 촬영한 턱걸이 중인 달팽이의 모습을 21일(현지시각) 소개했다. 친구로 보이는 두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가던 중, 우연히 나뭇가지로 만든 철봉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 경계심을 갖지만 특유의 감각적 본능으로 ‘잡고, 오르는 구조물’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는 겁이 나기 마련이다. 망설이던 두 달팽이 중 조금 더 용감했던 한명이 육상 연체동물 특유의 유연성으로 가볍게 철봉을 잡고 오르기 시작한다. 친구의 응원을 받으며 오르기에 성공한 이 달팽이는 한 동안 체조선수처럼 철봉 위에 머물며 자신의 남 다른 근력을 자랑한다. 이 보기 드문 자연 생태계의 순간은 사진작가 예브기니의 치밀한 사전준비 끝에 얻어진 결정체다. 평소 철봉을 이용한 턱걸이를 자주하던 예브기니는 운동 중 이 장면을 애완용 달팽이에게 적용하면 흥미로울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즉시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위치한 본인 사진 스튜디오에 나뭇가지 철봉과 세트를 구축한 예브기니는 애완 달팽이를 올려놓고 수 시간을 기다린 끝에 멋진 장면을 얻어낼 수 있었다. 예브기니는 “달팽이는 변덕과 경계심이 심하기 때문에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철봉을 만들 때 달팽이의 시각에 잘 노출되도록 정성을 다했다”며 “달팽이들은 물체의 상이 망막 앞쪽에 맺히는 근시안이기에 철봉을 최대한 가깝게 배치했다. 오랜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브기니에 따르면, 해당 턱걸이 모습은 총 50여 차례의 촬영 컷 중 얻어진 것으로 온라인상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우주 플랑크톤은 인류가 외계인이라는 증거” 英교수 주장 논란

    “우주 플랑크톤은 인류가 외계인이라는 증거” 英교수 주장 논란

    지난 19일, 러시아 우주인 올렉 아르테미예프와 알렉산드르 스크보르초프가 국제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ISS) 모듈 표면 유리창에서 해양 플랑크톤으로 추정되는 미생물체를 발견해 화제가 됐다. 당초 이 플랑크톤은 지구 바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기가 우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국제우주정거장에까지 전해졌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곧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플랑크톤은 지구의 것이 아닌 우주 고유의 미생물체로 인류 역시 플랑크톤처럼 외계에서 지구로 전해진 생명체라는 것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이그재미너닷컴(Examiner.com)은 영국 버킹엄대학교 우주 생물학 센터 찬드라 위크라마싱 교수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발견된 미지의 플랑크톤은 인류의 기원이 우주라는 것을 알려주는 주요 증거”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당초 이 정체불명의 미세 플랑크톤 입자는 러시아 우주인 2명이 지구로부터 250㎞ 높이에 위치한 국제우주정거장 밖에서 5시간 10분간의 조사임무를 진행하던 중 유리창 부분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국제우주정거장 러시아 수석 담당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에 따르면, 이 플랑크톤이 지구 바다에서 서식하는 종류로 추정될 뿐 어떤 방식으로 우주까지 전해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바닷물이 증발해 대기에 흡수되고 해당 입자 속에 섞여있던 플랑크톤이 대기권을 벗어나 다시 국제우주정거장에까지 도달한 것 같다는 추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즉, 플랑크톤의 출처가 지구인지 아니면 다른 미지의 공간인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버킹엄 대학 위크라마싱 교수의 생각은 플랑크톤의 출처가 우주라는 것이다. 지난 2012년 12월 29일, 스리랑카 폴로나루와에 추락한 운석 잔해에서 발견된 규조류가 지구가 아닌 외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내용의 ‘신 탄소질운석 내 규조화석’(Fossil Diatoms In A New Carbonaceous Meteorite)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위크라마싱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이 플랑크톤 역시 외계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위크라마싱 교수는 지난 2010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우주생물학 국제저널에 “인류는 38억년 전 지구에 추락한 운석 속 미생물에서 유래됐다”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이론은 19세기에 처음 등장했던 ‘판스페르미아(panspermia)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본래 인류를 비롯한 모든 지구 생명체는 무기물에서 진화된 것이 아닌 외계우주 공간에서 전해진 특정 박테리아 포자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이론으로 박테리아 포자가 운석이나 혜성에 심어져있다 지구에 충돌되면서 자연스럽게 퍼졌다는 것이 위크라마싱 교수의 주장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인류 또한 ‘외계인’이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스미소니언 매거진 주최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The Future is Here Festival’에서 NASA(미 항공 우주국) 공학자 아담 셀츠너는“인간 유전정보가 담긴 DNA 유전체를 우주선에 실어 머나먼 우주 공간에 보내면 또 하나의 인류문명이 외계 행성에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역시 ‘판스페르미아(panspermia)설’에 기반을 둔 주장이다. 하지만 우주 플랑크톤의 최초 발생지가 지구인지, 우주인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NASA(미 항공 우주국)는 지금껏 우주 플랑크톤과 같은 물질이 발견된 적이 없었던 만큼 치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위험 무릅쓰고...죽은 친구 곁 굳게 지키는 유기견 화제

    위험 무릅쓰고...죽은 친구 곁 굳게 지키는 유기견 화제

    동물 간에도 우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 죽은 친구를 떠나지 못하고 지키는 개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화제다. 영상은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서 촬영된 것으로 주인공은 젖소처럼 얼룩덜룩한 한 마리의 유기견이다. 동영상엔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마리의 개가 보인다. 주인공 유기견은 그런 친구 곁을 떠나지 않고 보초를 서듯 지키고 있다.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죽은 친구의 몸을 덮고 자동차가 오는 쪽을 노려보고 있다. 자동차에 치여 쓰러진 친구가 다시 자동차에 밟히는 걸 막기 위해서다. 얼룩개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길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 한때 친구를 갓길로 끌어낸다. 화제의 동영상은 우연히 사고현장을 지나던 한 사진작가가 핸드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사람보다 더 진한 우정” “몸을 사리지 않고 친구의 곁을 지키는 용기가 감동을 주네.”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동영상 캡처 손영식 해외 통신원 voniss@naver.com
  • 미모의 ‘무슬림 女 복서’ 화제…편견 이겨낸 챔피언

    미모의 ‘무슬림 女 복서’ 화제…편견 이겨낸 챔피언

    “섹시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영국에서 최초로 ‘무슬림 여성 복서’가 탄생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21일 보도했다. 긴 머리에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암브린 사이크(20)는 여성에 대한 구속이 강한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15살 때 우연히 접한 복싱에 매료돼 프로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 여성의 복싱 도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가족들마저도 그녀를 응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사디크의 가장 큰 장애물은 상대 선수가 아닌 ‘사람들의 편견’이 됐고, 끊임없이 이와 싸워야만 했다. 그녀는 “어릴 때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차별을 받은 뒤 복싱을 시작했다. 복싱은 내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은 파키스탄 무슬림이었고, 권투를 하는 나는 그들의 문화를 더럽히고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만약 남자아이가 권투를 선택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시안 무슬림 소녀였고, 일부 가족들은 내가 경기 중에 입는 복장까지 지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사디크는 편견과 전통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섹시해 보이기 위해 이런 옷(경기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니폼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해명해야 했고, 심지어 복싱 연맹에 옷 디자인을 수정해 줄 것을 간청하기도 했다. 다양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결국 영국에서 열리는 각종 경기에서 챔피언 자리를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처럼 편견과 싸워야 하는 다른 여자 복싱선수들을 위한 강연 또는 공연에 참여하면서 꿈과 희망의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데일리메일과 한 인터뷰에서 “더 많은 소녀들이 나의 성공을 접한 뒤 권투를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루시 뤽 베송 “캐스팅 거절했으면 죽였을 것” 격한 반응에 최민식의 대답은?

    루시 뤽 베송 “캐스팅 거절했으면 죽였을 것” 격한 반응에 최민식의 대답은?

    ‘루시 뤽 베송’ 영화 ‘루시’의 뤽 베송 감독이 배우 최민식에 대한 애정을 격하게 드러냈다.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CGV용산에서는 최민식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영화 ‘루시’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최민식을 비롯해 감독 뤽베송이 참석했다. 루시 뤽 베송 감독은 최민식의 캐스팅과 관련해 “만약 거절했다면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민식을 선정한 것은 재능 때문이다. 국적은 상관없다”고 전하며 ”최민식을 옛날부터 존경했다. 정말 작업해보고 싶었다”며 최민식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뤽 베송은 “(만약 최민식이 거절했다면) 다른 배우를 선택했을 것이다. 꼭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중국인, 일본인도 가능했다. 동양배우를 원했다”고 밝히며 “그렇게해서 금발 서양인 루시와 대조적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덧붙였다. 루시 뤽 베송 감독의 격한 애정 발언에 최민식은 “이 작품을 살기 위해 했다”고 말해 주위를 폭소케 했다. 루시 뤽 베송의 격한 발언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루시 뤽 베송, 최민식 아낄 만하지!”, “루시 뤽 베송, 역시 스타는 스타를 알아보는군”, “루시 뤽 베송, 서로가 서로에게 영광이네”, “루시 뤽 베송, 나같아도 최민식 무조건 캐스팅했을 듯”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영화 ‘루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가 어느 날 미스터 장(최민식 분)에게 납치돼 이용당하다가 우연히 모든 감각이 깨어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개봉은 다음달 4일 예정이다. 김민지 인턴기자 mingk@seoul.co.kr
  • 돌고래도 입양한다…‘다른종 새끼’ 양육 포착

    돌고래도 입양한다…‘다른종 새끼’ 양육 포착

    야생에서 큰돌고래가 전혀 다른 종인 참돌고래 새끼를 입양하는 사례가 보고돼 학계는 물론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뉴질랜드 지역언론 노던 애드버킷을 인용해 20일 자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키위’라는 이름의 암컷 큰돌고래가 최근 버려진 참돌고래 새끼를 입양했다. 입양된 새끼 참돌고래에는 작다는 뜻을 지닌 ‘피위’(Pee-Wee)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관련 해양학자들은 밝혔다. 두 돌고래는 지난 1월부터 뉴질랜드 오뉴헤로만(灣) 해역에서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됐고, 최근에서야 해양관측선 탕가로아호(號)의 승무원인 로렌스 해밀턴이 그 두 고래의 명확한 모습을 포착해냈다. 돌고래 전문가인 조 핼리데이는 최근 키위가 피위에 젖을 먹이는 모습이 목격됐다면서 다른 종의 새끼를 입양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고 설명했다. 키위는 5년 전 새끼와 함께 오뉴헤로만 인근 케리케리 후미까지 들어왔다가 홀로 모래톱에 갇혔다가 사람들에 의해 구조됐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물에 있던 새끼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스쿼트’라고 이름 붙인 당시 새끼가 범고래떼에 의해 쫓기다가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후엔 새끼를 낳지 않은 것으로 보고된 키위가 피위와 함께 다니며 젖을 물리고 있다는 것에 놀란 전문가들은 키위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피위를 입양했으며 키위와 같은 돌고래는 필요에 따라 젖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큰돌고래는 참돌고래와 서로 마주치지 않아 지금까지 교잡으로 태어난 보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큰돌고래가 참돌고래를 공격해 살해했다는 보고도 있으므로 이번 사례는 학자들은 물론 사람들에게도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5년전 자식 잃은 돌고래, 다른 종 새끼 ‘입양’

    5년전 자식 잃은 돌고래, 다른 종 새끼 ‘입양’

    야생에서 큰돌고래가 전혀 다른 종인 참돌고래 새끼를 입양하는 사례가 보고돼 학계는 물론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뉴질랜드 지역언론 노던 애드버킷을 인용해 20일 자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키위’라는 이름의 암컷 큰돌고래가 최근 버려진 참돌고래 새끼를 입양했다. 입양된 새끼 참돌고래에는 작다는 뜻을 지닌 ‘피위’(Pee-Wee)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관련 해양학자들은 밝혔다. 두 돌고래는 지난 1월부터 뉴질랜드 오뉴헤로만(灣) 해역에서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됐고, 최근에서야 해양관측선 탕가로아호(號)의 승무원인 로렌스 해밀턴이 그 두 고래의 명확한 모습을 포착해냈다. 돌고래 전문가인 조 핼리데이는 최근 키위가 피위에 젖을 먹이는 모습이 목격됐다면서 다른 종의 새끼를 입양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고 설명했다. 키위는 5년 전 새끼와 함께 오뉴헤로만 인근 케리케리 후미까지 들어왔다가 홀로 모래톱에 갇혔다가 사람들에 의해 구조됐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물에 있던 새끼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스쿼트’라고 이름 붙인 당시 새끼가 범고래떼에 의해 쫓기다가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후엔 새끼를 낳지 않은 것으로 보고된 키위가 피위와 함께 다니며 젖을 물리고 있다는 것에 놀란 전문가들은 키위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피위를 입양했으며 키위와 같은 돌고래는 필요에 따라 젖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큰돌고래는 참돌고래와 서로 마주치지 않아 지금까지 교잡으로 태어난 보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큰돌고래가 참돌고래를 공격해 살해했다는 보고도 있으므로 이번 사례는 학자들은 물론 사람들에게도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 수천년 숨결을 품었네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 수천년 숨결을 품었네

    꼬박 1858년 전 일이다. 서기 156년, 신라 왕 아달라가 계립령(鷄立嶺, 525m)을 연다. 현재의 충북 충주와 경북 상주를 잇는 고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이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니 기록으로만 따지자면 계립령은 우리나라 제1호 고개인 셈이다. 계립령은 요즘 하늘재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름처럼 하늘에 닿을 만큼 높지는 않다. 몇 군데 된비알도 있는데 숨찰 정도는 아니다. 선선해진 초가을에 설렁설렁 걷기에 딱 좋다. 길 곳곳엔 연륜만큼의 역사도 서렸다. 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즐겨찾기’ 해 둘 일이다. 계립령이 잇고 있는 두 마을의 이름이 독특하다. 충주 쪽은 미륵리, 문경 쪽은 관음리다. 현세의 고통을 구제하는 관음의 대자대비와, 내세의 염원이 담긴 미륵의 용화세상을 계립령 양쪽 기슭에서 동시에 만나는 셈이다. 우연치고는 묘하다. 이를 두고 일부 주민들은 “계립령은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이라며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보통 하늘재로 알려져… 6㎞ 떨어진 새재보다 1000년 빨라 계립령은 문헌상 제1호 고갯길이다. 저 유명한 단양 죽령도 이보다 2년 늦고 북쪽으로 6㎞ 떨어진 조령(새재)은 무려 1000년 뒤에야 열렸다. 계립령을 개척했다는 건 단순히 길 하나를 새로 낸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백두대간을 넘은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교류하게 됐고 이후 한강을 넘어 삼국통일까지 이뤘기 때문이다. 계립령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포암산(962m)과 탄항산(857m) 사이를 여우목처럼 지나간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주요 교통로로 쓰이던 계립령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결정타는 조선 태종(1414) 때 열린 조령이 날렸다. 계립령보다 무려 천살이나 어린 조령이 영남과 한양을 잇는 ‘신작로’ 자리를 단박에 꿰찬 것이다. 이후 계립령은 세곡 운반과 군사 관문으로서의 지위를 조령에 내주고 시나브로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한데 역설적으로 이런 망각 덕에 계립령이 2008년 국가 명승 제49호에 지정될 수 있었다. 수천년 저쪽의 숨결을 비교적 온전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 명칭은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다. 계립령은 충주와 문경에서 각각 오를 수 있다. 한데 충주 쪽 길은 산자락을 에둘러 가는 흙길인데 견줘 문경 쪽은 아스콘 포장도로다. 걷는 맛으로 치자면 문경 쪽 도로는 충주 쪽에 댈 게 못 된다. 충주에서 들머리 노릇을 하는 곳은 미륵대원지다. ‘미륵대원’이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다. 고려시대 계립령 일대엔 절집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계립령 북쪽의 미륵대원이다. 미륵대원지는 흥미로운 절터다. ‘한국 지형 산책’이란 책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미륵대원처럼 이름 뒤에 ‘원’자가 붙은 곳은 대개 여행자가 숙식을 해결하던 곳, 즉 역원의 역할을 담당하던 절집이다. 조선시대엔 국가가 역원을 운영했지만 고려 때는 절에서 담당했다. ●특이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미륵대원지의 미륵불 이런 절집엔 대개 ‘기골이 장대한’ 불상이 서 있기 마련인데, 미륵대원지에도 10.6m에 달하는 미륵불(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이 조성돼 있다. 한데 불상이 바라보는 방위가 특이하다. 나라 안 불상의 대부분이 남쪽을 바라보는 것에 견줘 이 미륵불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학계에선 이를 옛 고구려 땅을 회복하려는 고려의 북진사상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스토리텔링이 얹힌 옛이야기도 전해진다. 신라가 망한 뒤 마의태자가 누이 덕주공주와 금강산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충주에 이르렀을 즈음 덕주공주가 월악산 자락에 덕주사를 창건했다. 그러자 마의태자도 덕주사가 잘 보이는 미륵리에 불상을 세워 북쪽의 덕주사를 바라보게 했다는 것이다. 미륵불상은 외모가 빼어나다. 키도 늘씬하고 비율도 9등신은 족히 돼 보인다. 특히 얼굴은 시쳇말로 ‘간지난’다. 수없는 시간의 흔적이 쌓였을 법한데도 여전히 뽀얗다. 그 원인에 대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밝혀진 건 없다. 절터 초입의 거북 모양 귀부(비석 받침돌)도 꼼꼼하게 살피자. 미륵불상의 애완동물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데, 귀부 가운데 국내 최대라고 한다. 미륵대원지에서 위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하늘재 표지석과 만난다. 여기서부터가 실질적인 들머리다. 예서 고갯마루까지는 2㎞가 채 못 된다. 두어 시간이면 원점 회귀할 수 있다. 험상궂게 생긴 장승의 마중을 뒤로하고 오르면 구름다리 앞에서 또 한번 길이 갈라진다. 왼쪽 구름다리 너머는 생태관찰로, 오른쪽은 등산로다. 두 길은 얼마 뒤 합쳐진다. 길은 유순하다. 숲 한편으로 어린아이 오줌발 만한 계류가 흐르고 공기는 청량하다. 사람 발걸음이 적은 만큼 새소리는 한결 다양하고 또렷하다. 길 여기저기엔 옛 화전민의 흔적들도 남아 있다. 폭은 좁지만 길이 품은 역사는 넓고 깊다. 삼국시대에는 정치·군사적 요충지였고 민초들의 삶의 통로이자 불교문화의 전승로였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한, 그리고 계립령을 손에 넣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고구려 장수 온달의 기백도 길 곳곳에 서렸다. 후삼국 시대 궁예는 상주를 치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고,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 행렬도 이 땅을 밟았다. ●야트막한 오름의 흙길 따라 ‘친구나무·연아 소나무’ 볼거리 야트막한 오름의 흙길은 아름다운 숲길의 정수다. 길을 따라 볼거리도 몇 개 있다. 표지판이 작아 지나치기 십상이니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친구나무가 먼저 나온다. 단풍나무 두 그루가 ‘X’ 자로 교차하며 자란 연리목이다. 분위기가 고즈넉해 사진 찍기 좋다. 정상 못미처엔 ‘연아 소나무’도 있다. ‘피겨 여제’ 김연아를 빼닮았다는 나무다. 머리 뒤로 한쪽 다리를 잡은 뒤 몸으로 방울 모양을 만들며 도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예서 정상까지는 다소 된비알이다. 밭은 숨 몇 번 내쉬고 나면 곧 정상이다. 왼쪽은 포암산, 오른쪽엔 탄항산이 우뚝하다. 멀리 백두대간의 산자락들도 마루금을 바짝 좁히고 있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 미륵대원지 아래는 저 유명한 월악산 송계계곡이다. 물 맑은 계곡에 들러 산행으로 쌓인 먼지와 땀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충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나들목으로 나와 597번 지방도 월악산국립공원 방향으로 가다 수안보온천 지나 미륵리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곧장 들어가면 미륵대원지 주차장에 닿는다. 수안보 관광안내소 845-7829. →맛집:원조중앙탑막국수는 막국수와 만두로 이름난 집이다. 메밀로 만든 면 위에 아삭한 메밀 새싹을 얹어 낸다. 원래 가금면의 중앙탑 인근에서 영업하던 식당인데 단월동으로 옮겨서도 손님몰이를 하고 있다. 메밀만두도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편이다. 848-5508. 중앙탑오리집은 담백하고 연한 오리탕을 2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는 집이다. 가금면 중앙탑 주변에 있다. 857-5292. →잘 곳:온천을 겸해 수안보에서 묵는 것도 좋겠다. 지금은 명성이 다소 퇴색했지만 수안보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주 찾았다는 등의 여러 기록들이 전해져 와 한때 ‘왕의 온천’으로 불렸던 곳이다. 가족 단위로 묵기 좋은 한화리조트(846-8211)를 비롯해 수안보상록호텔 등 다양한 등급의 숙박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아울러 살미면의 문강유황온천은 유황천, 앙성면의 앙성탄산온천은 저온 탄산천으로 널리 알려졌다. 미륵대원지 인근의 닷돈재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풀 옵션’ 캠핑장이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제주의 흙으로 ‘오름’ 빚어내기 25년 도예가 송충효

    [김문이 만난사람] 제주의 흙으로 ‘오름’ 빚어내기 25년 도예가 송충효

    작은 산, ‘오름’이다. 대체로 둥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태고적부터 켜켜이 쌓인 흙이 비바람에 묵묵히 견디었기에 그랬다. 제주에는 오름이 360여개나 있다. 이 오름들은 1만 8000여개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서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간다. 민초들의 얼과 혼이 서려 있으며 항쟁과 여러 사건을 고스란히 묻어둔 곳이기도 하다. 하여 둥그런 모습의 오름은 온갖 아픔을 품은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이기도 하며 잉태와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 도예가 고우(古牛) 송충효(70)씨는 25년 동안 이러한 오름을 오롯이 그릇에 담아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오름을 오르고 또 올랐다. 아름답게 뻗어나간 곡선, 세월의 아픔을 쓸어안은 분화구 등은 예나 지금이나 늘 활화산처럼 생명력 있게 다가온다. 오름의 분화구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다. ‘낮의 오름’과 달리 ‘밤의 오름’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흙에 버무리고 또 버무려서 그릇을 만들어냈다. 주로 사발그릇이다. ‘도자기’ 하면 대부분 이천, 여주, 강진 등 소문난 육지의 흙으로 빚어내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의 그릇은 제주의 흙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 가지 더 있다. 그는 22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어느 날 그만두고 도예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그렇다. 지난 8일 제주시 오남동 ‘속리산방’(俗離山房)에서 그를 만났다. 속리산방은 비록 세상 한가운데 있지만 세속과 멀리한다는 뜻으로 서예의 대가 현중화 선생이 생전에 지어준 이름이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얼핏 범상치 않은 스님처럼 느껴진다. 우선 머리를 빡빡 깎았으며 가끔 욕지거리를 섞어 내뱉는 말투가 그랬다. 하지만 웃을 때는 영락없는 어린 동승의 모습이다. 파안대소,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그에게 왜 오름인지 먼저 물었다. “제주 오름을 사랑합니다. 평소부터 오름을 작품에 담고 싶었어요. 제주에 있는 대부분의 오름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지요. 그림에는 재주가 없어서 흙으로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몇 년 하다 보면 오름 하나는 만들겠지 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흙덩이들을 어지간하게 고생시켰습니다. 오름의 선은 파도가 뒤집어지는 접시모양인데 그런 것이 잘 안 나와 초벌구이 전체를 모두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흙장난이나 하고 있지요 뭐.” ‘흙장난’이라는 말은 아무렇게 만들어도 원하는 작품이 나온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실 오름의 분화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발모양을 하고 있다. 또 해안가에서 바라보는 오름은 아름다운 자연의 선(線)을 간직하고 있다. 분화구에서 들여다 보고 오름과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서 오름을 바라다보면서 작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오름의 생명력과 신비함이 담겨진 선과 색이 살아났던 것이다. 이후 오름뿐만 아니라 범위를 넓혀 제주 자연이 주는 선물, 즉 지형과 바람, 바다 물결이 남긴 선 등도 사발그릇에 담았다. 그렇다면 제주의 흙으로 그릇을 빚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이에 대해 그는 “제주의 흙은 철분이 많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좋은 흙을 고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가 주로 쓰는 흙은 오름 도처에서 캐오는 것들이다. 그가 이러한 작업을 할 때 2005년 작고한 사진작가 김영갑씨와 막역한 인연을 맺는다. 성산읍 신풍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당시 김씨가 지내는 곳과 멀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김씨 역시 오름 등 제주의 자연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던 터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 작품 얘기를 하고 또 작품 소재를 위해 여러 차례 함께 제주를 돌아다녔다. 송씨가 잠시 회고한다. “만난 지 20년은 더 됐지요. 김씨가 처음 제주에서 작업을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어요. 무엇보다 텃세가 힘들었는데, 저는 마을사람들에게 ‘제주에는 훌륭한 문화인들이 많이 와야 한다’며 그러지 못하도록 자주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씨와 친해졌지요. 한쪽 눈을 감고 사진을 찍지 말고 양쪽 눈으로 찍으면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등의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움직이는 오름을 찍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민둥오름에 억새 흔들리는 모습, 그리고 쥐불놀이 때 용이 상처 나서 꿈틀거리는 모양의 오름 등을 얘기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김씨는 생전에 “제주도만이 간직한 맛과 멋을 느끼고 표현하려고 애쓰는 나로서는 송충효님의 작품을 되돌아보며 나의 사진작업을 되돌아보곤 했다. 그의 작업은 억겁의 세월이 남긴 바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는 글로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송씨는 2003년 9월 김영갑갤러리 개관 때 작품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전시는 무슨 전시냐며 야외 전시장 빈 공간에 작품 몇 점을 던지듯 뿌려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그가 불혹의 나이에 교직을 그만두고 경기도 곤지암의 보원요(寶元窯)에서 3년 동안 청소, 농사, 장작패기 등 허드렛일을 하고 지낼 때였다. 하루는 법정 스님이 찾아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마에 무너진 돌담을 열심히 옮겼다. 그러던 차에 도예 스승 김기철과 법정 스님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됐다. 스승이 법정에게 “(그를 가리켜)새로 들어왔는데 저렇게 일을 잘하고 있다”고 했고 법정은 “고생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송씨는 안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던 터에 화가 나서 한마디 욕을 뱉었다. 나중에 둘은 깊은 인연으로 이어졌다. 법정은 제주에 올 때마다 송씨와 만나 도자기 형태, 도자기 디자인 등에 대해 자주 의견을 나눌 정도로 송씨의 그릇 마니아가 됐다. 제주살빛과도 닮은 은은한 찻잔인 이른바 ‘법정스님 찻잔’은 법정과의 인연에서 탄생된 것이다. 또 송씨는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틈틈이 법정의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속리산방에는 법정이 직접 사인하고 보내준 책만 10여권이 된다. 그가 도예의 길로 들어선 까닭은 어릴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제주 표선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고 지체없이 도공이 되겠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도공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하지만 제주에는 가마가 없을뿐더러 도예를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1969년 제주사범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22년이 지난 어느 날 교직을 그만두고 도예공부를 하려고 서울로 왔다. 얼마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아동문학가 정채봉의 소개로 보원요에서 도예를 배우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기철 선생은 “안정된 교직을 박차고 나와 도자기를 해보겠노라고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솔직히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뜻을 굽히지 않고 많은 역경을 이겨냈으며 타고난 예술성에 고맙고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단국대 박종훈 교수한테 도예를 더 배운 뒤 제주 신풍리에 작업장을 만들면서 불가의 선수행처럼 도선일계(陶禪一界)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여러 분야의 인사들과 만난다. 정종섭(현 안전행정부 장관) 서울대 교수, 동양화가 박대성·김행복· 최환채, 서양화가 김만수, 문인화가 구지회 등을 비롯해 수안 스님, 일장 스님, 대안 스님, 서예가 김종원, 유학자 오문복, 옻칠공예가 이가현 등도 함께 작업에 동참한다. 그릇의 형태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면 함께 만나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며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일이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현돈 제주대 교수는 “그는 꾸밈을 극도로 자제한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비정제·무정형의 파격이다. 애써 예쁘게 꾸미지 않고 타고난 자연의 결을 살려나가는 도가(道家)의 예술성에 맞닿아 있다”면서 “그릇 전체에서 풍기는 미적 정조는 질박하고 영혼을 정화하는 청정무구의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그는 “어느 날 때가 되면 그동안 만들어온 그릇을 모두 오름에 내던질 것이다.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알아서 가지고 가고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 깨버리게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도예가 송충효는 1944년 제주 표선에서 태어났다. 1969년 제주사범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2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불혹의 나이에 교직을 그만두고 경기도 곤지암 보원요에서 김기철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예를 배웠다. 이후 단국대 박종훈 교수에게서 도예를 더 배운 뒤 제주 신풍리에 작업실을 만들고 본격적인 도예의 길을 걸었다. 제주 오름을 비롯해 해안, 바람, 바다물결 등 제주의 모습을 그릇에 담았다. 도예를 하면서 많은 인사들과 인연을 맺는다. 정종섭(현 안전행정부 장관) 서울대 교수, 동양화가 박대성·김행복·최환채, 서양화가 김만수, 문인화가 구지회 등을 비롯해 법정 스님, 수안 스님, 일장 스님 등과 교류하면서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현재 제주시 오남동 ‘속리산방’ 방장이다.
  • [열린세상] 프란치스코 정신과 중간광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프란치스코 정신과 중간광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면담하고 난 직후여서 그랬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각보다 늙고 힘들어 보였다. 지난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는 그를 제대 앞 지척에서 뵈었을 때 순간 너무나 힘들고 지친 인간적인 모습에 놀랐다. 미사에 참석한 나를 포함한 5만여 가톨릭 신자는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고, 언론들도 그의 방한을 대서특필하며 환영과 기대를 표시하고 있었지만 정작 교황은 초라하기까지한 소탈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날도 그는 입버릇처럼 하시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다. 이후 생방송되고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했듯이 그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한 그는 4박5일간의 방한 기간 동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근본적 메시지와 성자적 실천을 전파해 사람들을 놀라서 깨어나게 했다. 한 신문의 기고문에서 신달자 시인은 교황의 한국방문 “100시간이 갖는 의미는 100년을 느끼고 재생하는 그리스도의 기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되새길 100년의 가르침을 주고 가셨다는 것이다. 짧은 방한기간 동안 교황이 주신 말씀과 실천은 최소한의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나름대로 공감과 울림, 성찰적 반성과 감동적 치유, 가난한 마음과 실천적 의지 등으로 새겨졌을 터다. 100년의 가르침에 해당된다는 교황의 방대하고도 깊이 있는 메시지들을 요약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게다. 다만 ‘사랑하는 한국땅, 한국사람’들에게 남긴 그의 소중한 메시지들을 그것의 영향력과 파급력의 크기, 교황의 인기, 심지어 경제적 효과나 정치적 이해관계 등 속물적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진정 되새길 것은 ‘프란치스코 효과’가 아니라 가난한 성자이신 교황이 남기고 간 ‘프란치스코 정신’이다. 그는 성직자들이 부와 명예, 권력 등 속세의 욕망에 어느새 사로잡힐 수 있음을 경계하며 “목자에게는 양 냄새가 나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최고위 가톨릭 성직자가 아니라, 초라하고 가난한 양치기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셔서 100시간 동안 머물다 가셨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향수냄새가 아니라 불편할 수도 있는 소박한 인간 교황의 양 냄새에 울고 웃고 치유도 받을 수 있었다. 스스로 낮추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챙김으로써 영육 간에 건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음을 새삼 되새기게 됐다. 프란치스코 정신이 특히 가진 자와 있는 자에 깃들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을’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먼저 돌보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교황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사랑으로 품어 세월호 문제를 속 시원하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참혹한 세월호 참사에서도 체험한 바 있지만, 프란치스코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 사회가 물질보다 생명, 정신, 영혼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거듭날 수는 없는 것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교황 방한 중이던 지난 17일 문화방송(MBC)이 한 탐사프로그램에서 자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방송을 하는 ‘중간광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논란이 됐다. 방송통신위가 지난 8월 초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검토를 발표하면서 MBC 등 지상파 방송사들은 종합편성채널 등 케이블채널과 같이 중간광고 허용을 주장해 왔고, 일부 학자들도 지상파업계의 편을 들고 있다. 명분은 시청자 복지 향상, 한류콘텐츠 제작비 마련 등인데 진실은 종편 채널처럼 프로그램 도중에 광고를 넣어 돈을 더 벌자는 것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강제로 광고를 봐야 하게 생겼는데 무슨 시청자 복지란 말인가. 중간광고는 프로그램 중간에 살짝 끼워 넣는, 그저 그런 광고가 아니다. 중간광고는 시민이 자유롭게 향유해야 할 방송문화의 파괴자이고 국민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매국노다. 미국 지상파 등도 중간광고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대한 황무지’(vast wasteland)로 전락했다는 미국 상업방송이 우리의 모델이 돼선 안 된다. 진짜 문화 선진국인 유럽의 공영방송은 광고를 아예 금지한다. 지상파 방송 지원책도 좋지만 죄 없는 시청자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는 중간광고 허용은 ‘정신 나간’ 정책이다.
  • 온화한 미소?…거꾸로 생긴 무지개 포착

    온화한 미소?…거꾸로 생긴 무지개 포착

    마치 수염 난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처럼 구름 속에 거꾸로 생긴 무지개가 포착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최근 영국 블랙풀에 사는 한 남성이 자택 뒤뜰에서 하늘에 거꾸로 생긴 무지개를 카메라에 담아 공개했다. 웹디자이너인 이안 브룩스(43)는 지난달 우연히 하늘 위에 걸린 무지개를 목격했다. 이때 그는 이 무지개가 평소 볼 수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즉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사진으로 담았다. 이 무지개는 발견 이후 약 5분간만 보였다고 한다. 그가 찍은 무지개는 흔히 ‘거꾸로 생긴 무지개’ 혹은 ‘하늘의 미소’로 불리는 희귀 현상으로 기상학에서는 천정호(天頂弧, circumzenithal arc)라고 불린다. 이는 빗방울이 햇빛에 반사돼 생기는 보통의 무지개와 달리, 7~8km 상공의 옅은 권운 속에 있는 납작하고 소금 결정보다 작은 육면체 얼음 결정에 반사돼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운은 상층운에 속하며 털구름, 새털구름, 견운 등으로도 불린다. 따라서 천정호는 일반적으로 북극이나 남극과 같은 추운 지방 근처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천정호는 무지개와 반대로 빨강부터 보라까지의 스펙트럼이 밑에서부터 위로 진행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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