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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예체능’ 이규혁, 차유람 열애에 좌절…이규혁 급소 맞자 차유람이

    ‘우리 동네 예체능’ 이규혁, 차유람 열애에 좌절…이규혁 급소 맞자 차유람이

    ‘우리 동네 예체능’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규혁이 테니스공에 급소를 맞자 열애 사실을 밝힌 ‘단짝’ 당구여신 차유람이 걱정을 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14일 방송된 KBS2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는 대한민국 여자 테니스 국가대표 OB로 구성된 ‘마당회’ 팀과 ‘예체능’ 팀의 테니스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이규혁은 가수 이재훈을 상대로 테니스 경기를 펼쳤고 이재훈이 친 공에 우연찮게 급소를 맞고 말았다. 이에 이규혁은 “나 큰일날 뻔 했다.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당황하자 이재훈은 “진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때마침 이규혁의 파트너인 차유람도 이규혁을 걱정했다. 이에 남자 출연자들은 “차유람 네가 왜 걱정을 하냐. 왜 병 주고 약 주냐”라고 차유람을 놀려 웃음을 자아냈다. 앞서 차유람은 방송 중 이규혁과 ‘썸’ 분위기를 이어나갔지만 최근 다른 남성과 열애를 시작했음을 털어놔 이규혁을 좌절케한 바 있다. 예체능 이규혁, 차유람 열애에 좌절에 네티즌들은 “예체능 이규혁, 차유람 열애에 좌절, 귀엽게 논다”, “예체능 이규혁, 차유람 열애에 좌절, 왜 걱정해” “예체능 이규혁, 차유람 열애에 좌절, 잘 어울렸는데 이젠 어쩔 수 없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항공우주연구원장에 조광래씨·화학연구원장에 이규호씨·전기연구원장에 박경엽씨

    항공우주연구원장에 조광래씨·화학연구원장에 이규호씨·전기연구원장에 박경엽씨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15일 제9차 임시이사회를 열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에 조광래(왼쪽·55) 연구위원을 선임했다. 또 한국화학연구원장에는 이규호(가운데·62) 연구위원을, 한국전기연구원장에는 박경엽(오른쪽·57) 선임연구본부장을 각각 선임했다. 조 원장은 1988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로 입사한 뒤 1989년 설립된 항우연으로 소속을 옮겨 중형로켓개발그룹장, 액체로켓사업단장, 발사체연구본부장, 나로호발사추진단장 등을 지냈다. 이 원장은 1977년 화학연에 입사한 후 분리소재연구실장, 분리막다기능소재연구센터장, 응용화학연구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박 원장은 1981년 전기연에 입사해 신전력기기연구그룹장, 전력시스템·스마트그리드연구본부장, 선임시험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 해외여행 |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해외여행 |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Vietnam Ha Long Bay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내가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하롱베이가 보여 준 어떤 풍경 때문이었다. 바다와 섬, 새벽의 안개와 밤의 별, 쓰다듬 듯 불어와 주는 바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스쳐가며 만들어 준 풍경. 그것들로 인해 이제 나는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롱베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70km에 있는 북부 통킹만 인근의 넓은 바다를 지칭한다. 석회암 지대가 오랜 시간 바닷물과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수천개의 섬들이 잔잔하고 투명한 바다 위로 솟아 있다. 섬과 섬 사이로 유람선을 타고 지나며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 넓고 신비로운 동굴과 기암괴석 등 자연의 신비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하롱’은 용이 내려왔다는 뜻이다. 베트남의 국립공원이며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사실 하롱베이에 뭐가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짐을 꾸렸다. 왜 하롱베이였는지도 기억에 없다. 오래 전의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봤던 바다와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을 뿐. 푸껫, 세부, 보라카이 등의 휴양지를 두고 굳이 하롱베이여야 하는 이유 또한 알지 못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하롱베이로 갔다. 그저 어딘가에서 잠시 쉬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하노이 공항에 내려 하롱베이로 향할 때 보았다. 숙소에서 준비해 준 승합차를 타고, 앉아서 가며 보았다. 천천히 달리는 베트남의 자동차들, 자동차를 추월해 가는 많은 오토바이들. 고속도로의 모든 차가 저속의 협약이라도 맺은 듯 느리게 달렸다. 물론 내가 사는 나라의 기준으로 그랬다. 시속 60km 남짓. 답답해 보였다. 좀 밟아요, 아저씨.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가 아직 베트남의 속도에 익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아직 여행의 속도에 진입하지 못한 것. 여행은 느려야 아름다운 법이니. 나는 천천히 맥주를 한 캔 마셨다. 깨어 보니 하롱베이였다. 호텔의 정문이었다. 파라다이스 호텔이었다. 깨어 보니 ‘파라다이스’,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호텔 직원이 답했다. “Here is your paradise.” 그래서였을까, 정말 파라다이스였다. 맑고 부드러운 남중국해의 바람. 유럽을 옮겨 온 듯한 호텔. 조금만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항구와 떠날 채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유람선들. 멀리서 찾아온 친구처럼, 저기 손 흔드는 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롱베이에 가면 누구나 유람선을 타게 된다. 낮시간 동안 짧게 인근해에 머물다 돌아와도 되고 하룻밤 또는 그 이상 바다에서 묵어도 된다. 크고 작은 배들이 항구에서 여행객을 기다린다. 호텔과 연계된 크루즈 상품을 미리 선택하면 편하다. 호텔 근처 선착장에서 쉽고 가깝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 유람선을 타고 항구를 빠져나가면 쉽게 섬의 바다에 닿는다. 먼 옛날, 외세의 침략에 맞선 용이 적들을 향해 뿜어낸 여의주가 그대로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기억하며 그 풍경 속에 젖어 든다. 그것이 하롱베이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하롱베이에 간다는 것은, 바다 위를 아름답게 떠돌며 수많은 섬들과 직접 만난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려고 나는 하롱베이에 왔다. 짐을 풀고 바다로 나갔다. 크루즈에 올랐을 때 놀랐다. 당신도 놀라게 될 것이다. 호텔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침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의 몸으로 호텔이 떠서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침실과 바다 곁의 발코니. 텔레비전과 커피머신. 따뜻한 물이 끝없이 나오는 샤워룸. 커튼을 닫으면 호텔이고 창문을 열면 크루즈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돛을 펼치고 배가 움직이자 풍경이 다가왔다. 섬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섬들은 나와 가깝고 또 나와 멀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섬들이 내게 다가오고, 내게서 멀어져 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섬이었고 하롱베이의 모든 섬들은 여행자였는지도 모른다. 수천개의 섬이 오히려 나를 여행한 것. 하롱베이에서 크루즈가 움직이자 오후의 바람이 한잔처럼 취하게 불고, 나는 그대로 섬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여행의 속도에, 하롱베이의 속도에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섬이 내게 오는 속도와, 내가 섬을 지나는 속도가, 이 유람선이 바다 위에 안기 듯 나아가는 속도가, 나란히 내 삶의 평속이 된 것이다. 나는 느려졌고 느려지면서 느긋해졌고 더 오래, 길게, 하롱베이에 닿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쯤 나는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당신도 언젠가 하롱베이에 와야 한다. 섬들의 향연 속에서 내가 스스로 섬이 되는 놀라움을 느껴야 한다. 아니, 섬이 나를 마음껏 여행하도록 허용하며 생에 한 번쯤 내가 섬이 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작은 배로 갈아탄 뒤 내려 걷게 되는 신비로운 동굴과 어느 섬에 올라 바라보는 대양의 석양 속에서, 작은 배를 타고 다가와 과일과 음료수를 판매하는 현지인의 웃음 속에서, 붉고 노랗고 파란 현지인의 의상 속에서, 오랜 정박과 섬의 도열과 바람의 회항 속에서, 당신도 이제 하롱베이를 만나야 한다. 그때 당신은 나와 같이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도시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덧붙여 나는 이야기한다. 그 밤, 크루즈에서 바라보던 섬의 어두운 실루엣과 저 멀리 하늘의 수많은 별빛을. 만져질 듯 가까워서 별을 향하여 손을 올렸다가 내린 사실을. 그 손으로 한잔의 술을 마시고 바다와 함께 취한 이야기를. 그 밤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깐 울어 버렸다는 고백을. 잠들지 못한 채 당신께 편지를 썼다는 말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바다의 가득한 안개 속에서 바라본 희미한 섬들은, 전날의 선명함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것은 현실 속에 이미 다가와 있는 추억 같은 것이었음을. 잊어야 할 것은 잊을 수 있고 잊지 못할 것은 더 선명해지는 풍경이었음을. 그리고 그런 풍경들 속에서 나는 이미 하롱베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취재협조 호텔앤에어닷컴 사진제공 Paradise Cruises ▶travel info Airline 하노이까지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베트남항공 등에서 매일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까지 4시간 30분,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리다. 공항에 내려 고속도로를 4시간쯤 달리면 하롱베이에 닿는다. 일반 버스를 이용할 경우 6시간 정도 소요된다. Luxury Cruise 하롱베이에 가면 누구나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신비로운 섬들을 관광하게 된다. 바다에서 하룻밤 이상 묵을 것인지, 짧게 인근의 섬들만 보고 돌아올 것인지를 선택하면 된다. 하루쯤 바다에 머무는 일정을 추천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크루즈 상품을 선택할 경우, 호텔의 시설과 서비스를 크루즈 안에서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크루즈에서 작은 배로 갈아탄 후 근처 섬과 동굴 등을 둘러보거나 카약 등의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하노이로 입국하여 하롱베이를 즐긴 뒤, 근처 앙코르와트 등의 도시를 여행하는 연계 상품도 많다. Hotel 하롱베이에서 즐기는 풍요로움 파라다이스 스위트 호텔 지금까지 하롱베이 여행은 은퇴 후 효도 관광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막상 하롱베이에 가보면 휴양을 즐기러 온 젊은 유럽 여행자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하롱베이는 유럽인들에게처럼 근사하고 럭셔리한 여행지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출발점에 호텔 파라다이스가 있다. 하롱베이 최초의 럭셔리 부티크 호텔 하롱베이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럭셔리 호텔이다. 크루즈 선착장과 가깝고 아늑한 경관으로 최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뚜언처우섬에 있다. 2008년 건설을 시작하여 최근 완공된 유럽형 부티크 호텔이다. 156개 전 객실이 스위트룸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높지 않은 가격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노이, 사이공 등 베트남 주요 도시 이름을 딴 4개의 건물로 구분되며, 옛 도시의 사진을 각층 복도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하롱베이 전통 음식은 물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1층에 있고 그곳에서 밤마다 유명 밴드의 공연이 진행된다. 피트니스센터, 스파, 컨퍼런스룸까지 다양한 부대시설도 갖춰져 있다. 편안한 여행을 즐기려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파라다이스 호텔의 경우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은 물론, 호텔과 연계된 다양한 여행 상품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롱베이 여행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크루즈 상품을 직접 운영하여 서비스와 가격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크루즈 상품의 경우 원하는 여행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등급의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크루즈 내부에 호텔 객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시설도 훌륭하다. 호텔과 같은 침실 및 완벽한 냉난방, 객실별 샤워시설, 다양한 요리의 레스토랑, 선상의 일광욕과 바비큐 등의 서비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작은 배로 잠시 갈아탄 후 승솟동굴, 원숭이섬, 티톱 전망대 등의 연계 관광도 기본으로 제공한다. 프러포즈 등 나만의 특별한 이벤트를 원할 경우 신비로운 동굴 속 만찬도 선택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하롱베이 시티 투어, 골프 등의 연계 상품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Place 베트남 불교의 본산 옌뜨YEN TU 국립공원 하롱베이와 하노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백년 불공을 드려도 옌뜨에 가보지 못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베트남 속담이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유명한 산이다. 외세의 침략에 맞선 3명의 왕이 부처가 되어 산을 지킨다는 전설도 함께한다. 10여 개의 사찰과 수백개의 사리탑이 남아 있다.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수많은 인파가 소원을 빌러 찾아가는 곳이다. 봄마다 불교축제가 열리고 이때 수백만명이 찾는다.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탄 후 조금 더 걸으면 정상까지 오늘 수 있다. 중간 지점에 천년고찰 화옌HOA YEN이 있다. 계단을 걷는 도중 많은 사탑과 유적을 지나게 된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을 걸어야 하므로 무릎이 안 좋을 경우 정상까지의 관람은 힘들 수 있다. 전설이 깊은 승솟SUNG SOT동굴 하롱베이의 섬 속에 있는 동굴이다. 무인도에 원숭이가 살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긴 어부에 의해 1993년 우연히 발견되었다. 유람선에서 작은 목선으로 갈아탄 후 섬에 내려 조금 걸어 오르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스피드보트 등으로 동굴만 관람하는 코스도 있다. 길이가 100m를 넘을 정도로 넓고 긴 석회암 동굴인데 다른 동굴과 달리 석회암이 위로 자란다 하여 솟아오른다는 뜻의 ‘승솟’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랜 시간 석회암이 자라고 변형되며 기묘한 풍경을 이루었다. 가이드가 곳곳에 서서 동굴 벽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닮은 형상을 설명해 준다. 천궁동굴天宮洞窟이라고도 불린다. 신비로운 고립 원숭이섬HANG LUON 병풍처럼 둘러싸인 섬 한쪽에 낮고 좁은 구멍이 있고 그 사이로 작은 배 또는 카약 등을 타고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안쪽에 들어서면 섬 사이로 호수처럼 넓고 둥그런 공간이 나오는데 한쪽에 원숭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준비해 간 사과 조각을 던지면 원숭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먹이를 먹는다. 물결은 잔잔하고 기암절벽과 그 위로 푸른 나무들이 아름답다. 원숭이를 보러 들어가지만, 섬의 중심에 들어가 잔잔한 바다 위로 떠 가는 경험이 더 이채롭다. 중앙쯤에서 박수를 치면 그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바닷물의 수위가 올라가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우주비행사의 이름을 딴 티톱TI TOP섬 러시아의 유명한 우주비행사 티토프Gherman Titov, 1935~2000의 이름을 딴 섬. 그는 호치민이 러시아에 유학생 신분으로 머물 때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베트남에 초대된 티톱이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절경에 반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호치민의 배려로 섬 하나를 그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월남전을 대비하여 소련에 원조 및 비행술을 지원받기 위해 러시아 최고의 비행사 티토프를 초대했다는 말도 있다. 400여 개 계단을 한참 걸어오르면 하롱베이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잔잔한 바다 위로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저 멀리 유람선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섬 아래 인공으로 조성한 작은 해변에서 한가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파라다이스 스위트 호텔(베트남) Tuan Chau Island, Halong City, Quang Ninh Province, Vietnam +84 33 3842 368 www.paradisecruises.vn 호텔앤에어닷컴(국내)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91-1 02-310-2600 www.hoteln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사설] 증가하는 현직교사 성범죄, 아이들 맡기겠나

    초·중·고 현직 교원의 성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주일에 한 번 꼴이다. 최근에는 현직 고교 교사가 술 마신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참스승의 본분은 지키지 못할망정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전락한 꼴이니 통탄할 일이다. 검찰에 따르면 구속된 교사 최모(43)씨는 지난 7월 심야에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서 우연히 만난 30대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최씨와 명문 사립대 동문으로 현장에 함께 있었던 중학교 교사 이모(42)씨도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최씨는 수사가 시작되자 학교를 그만 두었지만 이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수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할 정도로 교원 성범죄는 잊힐 만하면 터져 나온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09~2014년 초·중·고 교원 징계 현황’을 보면 이 기간 성범죄로 징계받은 교원은 모두 204명이었다. 2009년 26명에서 2010년 36명, 2011년 38명, 2012년 42명, 2013년 48명으로 계속 늘었고 올 들어 6월까지는 14명이었다. 성범죄와 금품수수, 성적 조작, 학생 폭력 등 교원 4대 비위 가운데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교원이 금품수수 다음으로 많았다. 성범죄 가운데 미성년 학생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교원도 86명이나 됐다. 2009년 4명에서 2013년 28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간 성범죄와 금품수수 등의 비위에 따른 징계 10건 가운데 4건 정도가 소청심사를 통해 경감됐다고 한다. 성범죄 징계가 소청심사에서 경감된 비율은 25.8%로, 금품수수(18.4%)보다 높았다. 성범죄를 비롯한 반교육적 범법 행위가 사회적 공감대나 도덕률과는 달리 제 식구 감싸기식 솜방망이 처벌로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교단은 우리 사회 도덕과 양심의 마지막 버팀목이다.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 성범죄자를 교단에 방치하고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떻게 신뢰와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교육부는 지난달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성범죄형 확정 교사의 영구 퇴출과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교사의 교원자격 박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초안대로 법 개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아울러 교원을 대상으로 한 윤리교육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등 교육 현장의 자정 노력도 강화해야 마땅하다.
  • [김문이 만난사람] 30년째 조선사발을 재현하는 사기장 신한균

    [김문이 만난사람] 30년째 조선사발을 재현하는 사기장 신한균

    때론 ‘무미평범’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민예 연구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大德寺)에 소장돼 있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본 후 이렇게 읊었다. “어디를 찾아도 이보다 더 평이한 기물은 없다. 한 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 심상한 것이 없다. 그것은 조선의 밥사발이다. 가난뱅이가 보통 쓰던 사발이다. 전형적인 잡기다. 가장 값이 싼 물건이다. 그것은 평범, 더할 수 없는 범기(凡器)다. 흙은 뒷산에서 파 온 것이다….” 조선의 백자는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 이상의 하이테크 첨단기술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런 백자를 국부(國富)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반면에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에서 얻은 백자기술을 활용, 도자기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특히 ‘막사발’은 일본에서 ‘이도다완’으로 불리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한 다이묘들이 다도에서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16세기 중반부터 일본인들은 상거래와 약탈로 조선의 막사발을 호시탐탐 노렸고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일으켜 우리 도공들을 강제로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의 상류층과 무사들의 밥그릇과 찻그릇을 만들게 했다. 이들이 만든 그릇 중에는 현재 국보급도 여럿 있다. 사기장 신한균(54)씨는 2008년 ‘신의 그릇’이라는 두 권짜리 소설책을 출간해 주목을 끌었다. 그릇 빚는 사기장이 장편 역사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우선 그랬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신의 그릇’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뤘다. 그릇을 빚기 위한 사기장들의 처절한 분투와 절망을 심도 있게 표현해 냈다. 황도사발(이도다완)에 얽힌 비밀도 소설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씨는 ‘신의 그릇’을 일본에서 출판했다. 이보다 3년 앞서 국내에서 펴낸 ‘우리 사발 이야기’를 ‘이도다완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때 “책을 쓰지 않고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병을 견딜 수 없었다. 우리 사발의 기구한 운명과 아직도 일본식 미학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 무관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조선사발은 잡기 아닌 무위적 아름다움 표현한 창조물” 2009년에는 우리 사발에 대한 객관적 시선으로 일본 노무라미술관 관장이자 일본다도문화학회 회장인 타니 아키라와 함께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를 공저로 출간했다. 우리나라 각 부문에는 장인(匠人)이 많다. 그러나 신씨처럼 많은 책을 펴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의 열정과 도예를 향한 시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학론으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가 사발 등에 무작위, 우연이란 말을 쓰는 데 대해 반박을 한다. 전형적인 잡기(雜技)가 아닌, 또 우연이 아닌 장인의 철저한 정신에 따라 흙을 골라 만든 무위적 아름다움과 자연미를 표현한 창조성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처럼 일본 학자들이 왜곡시킨 우리 도자기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일본인 차인들에게 틈틈이 강연도 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활동 또한 활발하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초대전을 열고 있으며 지금까지 일본 언론에 100회 이상 소개됐다. 그렇게 조선사발의 진정한 혼을 알리고 재현한 지 30년이 됐다. 지난 9일 경남 양산에서 잠시 서울에 온 신씨를 만났다. “도자기는 그릇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그릇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지요. 특히 차인들이 애용하는 사발은 그 시대 사기장의 정성과 우리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습니다. 그런 사발들이 임진왜란을 전후해 일본으로 들어가 일본 이름을 가지고 찻사발의 황제로 대접받다가 일본의 국보와 보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씨는 이런 상황을 떠올리며 일본인들이 우리 사발을 국보와 보물로 지정한 까닭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의 시각이 아닌 한국적 미학으로 그 진면목을 연구해 나갔다. 이도다완의 원류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각 지방의 사발을 서로 비교하고 옛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도자기가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과 다시 빛을 보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동시에 작용했다. 그러는 동안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의 미가 이도다완에 깊이 녹아 있음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잠시 그의 도력(陶歷)을 살펴보자. 1960년 그는 우리나라 도예계의 거장이자 전통 조선사발 재현의 선구자인 고 신정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정희 선생은 조선시대 이후 명맥이 끊긴 황도사발을 1968년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서울 인사동 골동품 상인들이 신정희 선생이 내놓은 작품을 조선시대의 진품이라고 감정하며 어디에서 훔쳤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외가이자 고향인 사천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 강단에 잠시 서기도 했으나 도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에 감동을 받아 ‘모태신앙’처럼 자연스럽게 도예 후계자가 돼 현재 양산에 있는 ‘신정희요’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흙을 만지작거렸고 15세에 물레질을 했던 터라 그 뒤를 이어 조선사발을 재현해 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것은 28세 무렵이었다. 또한 그의 작품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89년 도큐백화점 미술화랑에서였다. 이후 후쿠오카 이와타야백화점 미술화랑 초대전(1990년), 미쓰코시백화점 미술화랑 초대전(1991년), 도쿄 마쓰야백화점 미술화랑 초대전(1992년), 일본 NHK TV 초대전(1994년), 니혼 TV초대전(1995년) 등을 잇달아 열면서 일본에서 이름을 알린다. 특히 그는 1996년 함경도 회령지방의 도자기를 최초로 재현해 냈는데, 그 과정이 NHK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영됐고 KBS TV ‘한국의 미’ 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도 ‘신한균 사기장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회령도자기 재현 과정과 관련해 그는 일본 후쿠오카 당진소(唐津燒)전시회에서 오고려(奧高麗)라는 이름의 도자기를 보면서 회령지방의 도자기를 수년간 연구하게 된다. 일본에서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을 샅샅이 뒤지다가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발견한다. 임진왜란 훨씬 전에 지금의 북한 땅 회령에서 왜구에게 납치된 사기장들이 ‘오고려, 조선당진’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오고려의 오(奧)자는 오지를 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989년쯤 일본의 한 미술관에서 개최한 일본 고유의 옛 도자기를 관람할 때였습니다. 그 전시회장에는 아주 특별한 기법의 도자기가 있었고 분류명으로는 ‘오고려(奧高麗·오크코리아), 조선 당진(唐津·가라쓰)’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사발을 고려다완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오고려’란 조선의 오지에서 온 도자기를 뜻합니다. 조선 가라쓰 역시 조선에서 온 사기장이 빚은 도자기를 말합니다.” 임진왜란 전까지 일본은 섭씨 1600도 이상의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 기술이 없었으며, 조선에서 끌려간 도예가가 일본에 그 기술을 전수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이지유신 이후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도자기를 해외에 팔아 국부를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우리한테 가져간 도자기 기술이 조선을 향한 칼날로 되돌아왔다”고 개탄했다. 신씨는 또 “세월이 지난 지금 일본 국보 기자에몽 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있는 일본 중요문화재 쓰쓰이쓰쓰 이도 등의 원산지가 모두 한국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도는 그저 막사발로 불리며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이도다완을 황도사발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 고유의 진정한 이름을 찾기 위한 문제 제기 차원에서다. 혼자서 분류명을 짓는 것은 무리이며 도자사학자들과 공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달 22일~새달 10일 서울서 달항아리·사발 등 80여점 전시 그는 사발을 만들면서 조선의 달항아리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백화점 개점 35주년 기념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백자 달항아리, 분청 달항아리, 회령 달항아리, 그리고 사발과 도판 등 8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 여인의 치마곡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좋은 사발, 좋은 달항아리를 만들고 특히 한국인이 만든 ‘도예백과사전’을 펴내겠다”고 답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신한균은 1960년 경남 사천에서 조선사발을 최초로 재현한 고 신정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4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 미술화랑에서의 첫 전시 이후 거의 매년 초대전을 열고 있다. 후쿠오카 이와타야백화점 미술화랑(1990년), 미쓰코시백화점 미술화랑(1991년), 도쿄 마쓰야백화점 미술화랑(1992년), 일본 NHK TV초대전(한큐백화점 본점 미술화랑, 1994년), 니혼 TV초대전(메이데쓰백화점 미술화랑, 1995년), 부산 신세계갤러리(2013년) 등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함경도 회령도자기 국내 최초 재현(1997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도자기 자문위원(2004년), 청와대 귀빈 증정용으로 다기와 항아리 납품(2004~2007년), 차와 도자기 국제세미나 한국 측 대표로 강연(교토 국제교류회관, 2006년), 일본 노무라미술관 초청강연(2007년) 등을 했다. 저서로는 ‘신의 그릇1, 2’, ‘고려 다완’, ‘우리 사발 이야기’, ‘이도다완의 수수께끼’ 등이 있다.
  •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실크로드. 동양과 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용광로 같던 그곳. 건조한 바람만이 퍽퍽하게 불어대는 길을 낙타에 비단을 싣고 한 걸음씩 나아갔을 대상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실크로드’는 1877년 독일의 리히트호펜이라는 지리학자가 비단이 오갔던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길을 통해 오간 것은 비단뿐만이 아니다. 각종 물품과 보석, 불교와 이슬람교가 그 길을 통해 흘러가고 흘러들어왔다. 기원전 한무제 때 장건이 사신으로 서역에 다녀온 후 길이 트이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름다움만큼 약탈 경쟁으로 인한 아픔을 품고 있는 실크로드. 굽이굽이 내려오고 있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며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 보자. ●황허의 도시,란저우에서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으로 황토색이 지배하는 간쑤성의 성도 중국 지도를 펼쳐 보면 한가운데에 ‘란저우蘭州’라는 지명이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출발점은 란저우. 1,4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란저우는 실크로드 문화유산이 풍부한 간쑤성의 성도로 교통과 문화, 역사, 경제의 중심지다.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허가 처음 만나는 대도시로 중국인들이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황허가 도시 가운데를 유유히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란저우에 가면 어디에서든 황토색이 눈에 들어온다. 란저우 시민들과 여행자들은 시내에 있는 물레방아 공원에서 유유히 산책을 하며 황허를 만난다. 란저우를 황토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황허뿐만이 아니다. 희토류를 비롯한 35종류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누런 산들이 란저우를 둘러싸고 있다. 황토색 물에 황토색 산, 란저우에 가면 세상이 온통 황토색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다.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이 가득 모여 있는 간쑤성 박물관과 함께 란저우에서 손꼽히는 것 중 하나는 란저우 라멘이다. 중국 다른 지방에 가도 ‘란저우 라멘’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음식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고기를 곁들인 란저우 라멘의 맛은 매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입맛에도 잘 맞는다. 란저우에서 나와 허시후이랑河西走廊을 따라 달린다. ‘허’는 황허를 뜻하는 단어로 허시후이랑은 황허강 서쪽의 긴 복도라는 뜻이다. 한쪽에는 평균 해발 4,000m의 치렌산맥이, 또 다른 한쪽에는 황무지 같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900km 길이에 폭은 40~100km. 실크로드 상인들은 이 좁고 긴 평지를 따라 비단을 나르고 전쟁을 하고 오아시스를 찾았을 것이다. 일직선으로 뻗은 허시후이랑에는 허시사군으로 불리는 우웨이, 장예, 주취안, 둔황 같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먼지를 풀풀 내며 달리고 또 달려도 창밖의 풍경은 변하지 않고 사막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버스를 타고 있는데도 온몸이 사막으로 변해 가는데, 그 옛날 대상隊商들은 어떠했을까. 이곳을 말과 낙타를 타고 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자연이 그린 수채화 허시후이랑을 따라가다가 장예를 만난다. 장예는 란저우에서 510km 떨어진 도시로 마르코폴로가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장예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인 치차이산七彩山. 어떻게 흙에서 저런 색이 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여 오묘한 빛을 내는 산들이 펼쳐져 있다. 정식명칭은 ‘장예단하국가지질공원’으로 ‘단하’는 붉은 노을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퇴적작용으로 만들어진 치차이산은 계곡을 따라 510km나 이어져 있다. 전체 공원은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구역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 준다. 희게 보이는 곳은 소금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넓은 곳이 과거에 바다였다는 설도 있다. 치차이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산에서 뿜어내는 색을 가지고 주름치마를 만들어 입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자연의 색이다. 비가 오면 색이 진해져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장예를 찾은 날은 구름만 가득했다. 곽거병의 술샘 치차이산의 감동을 안고 서쪽으로 가다 보니 유인 우주선 발사기지가 있는 주취안酒泉에 닿는다. 주취안이라는 지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무제가 전쟁에 승리한 곽거병 장군에게 승리의 선물로 술을 한 병 내렸는데 곽거병 장군은 이 술을 혼자 마실 수 없다며 앞에 있는 샘에 술을 부어 부하들과 함께 마셨다는 것. 이 정도의 리더십은 있어야 실크로드에서 장군이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곽거병 장군이 술을 부은 샘이 있는 곳이라 도시 이름이 주취안이 되었고 주취안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꼭 들르는 곳이 그 샘이다. 둔황을 향해 허시후이랑을 따라 부지런히 또 달린다. 이번에 나타난 곳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이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자위관은 서역의 침입에 대비해서 1372년 명나라 때 만든 것으로 높이 10m, 둘레 733m의 거대한 성이다. 자위관의 크기만으로 서역의 군사들이 겁을 먹지 않았을까. 자위관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3개의 망루가 있으며 박물관에서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실크로드의 꽃,둔황 세계 불교 미술의 보고 둔황의 백미는 모가오쿠다.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는 이들은 거친 땅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적들의 침략 속에서 항상 불안했다. 그들은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세웠다. 그리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1,000년 동안 무려 1.7k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에 735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석굴 하나는 절 하나와 마찬가지. 735개의 사찰이 아파트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 석굴에 들어가 벽화를 보았을 때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흘렀다. 모가오쿠가 처음 생긴 것은 16국 시대인 366년. 낙준이라는 승려가 석산 위에 나타난 부처의 상을 보고 만든 것이 시작이다. 이후 14세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가 석굴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석굴 안의 불상과 벽화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놀랍게도 건조한 기후와 빛이 들어가지 않은 굴 속에 자리해 1,000년 전 신비로운 색이 남아 있다. 까맣게 변한 것도 있고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오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옥색이나 자주색, 노란색 등 여러 색이 석굴 안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수많은 석굴 중 가장 중요한 석굴은 17호 굴. 16호 굴에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에 난 문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 굴이다. 고대의 불교경전이 쌓여 있던 굴로 장경동이라고도 불린다. 17호 굴이 발견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 초 석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이라는 노인이 모래를 치우다 우연히 작은 굴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책이 가득했던 것.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이다. 둔황에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날아들었다.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 러시아의 올덴부르그, 미국의 워너가 수만 점의 보물들을 각자의 나라로 빼돌렸다. 문서와 유물을 가져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벽화를 뜯어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모가오쿠에 가면 1,000년 전 벽화의 아름다움에 한번 놀라고 약탈 현장의 처참함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둔황이 아니라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호 굴을 보고 난 후에는 61호 굴을 챙겨 봐야 한다. 61호 굴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실사 지도로 꼽히는 오대산지도라는 벽화가 있는 굴로 지도에서 신라 고승의 사리탑으로 추정되는 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220호 굴과 335호 굴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조우관은 고구려시대에 흔하게 발견되던 모자다. 우리 선조들도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니 실크로드의 이야기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모가오쿠 남아있는 석굴은 수백 개에 이르지만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석굴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미리 예약을 해서 가이드와 함께 1시간 동안 10여 개 정도 석굴을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특별히 보고 싶은 석굴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미리 요청을 해 놓는 것이 좋다. 모래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 모가오쿠를 본 후에 사막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둔황 시내에서 남쪽으로 5km 위치에 바람이 불면 모래가 노래를 한다는 밍샤산鳴沙山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에 입구에서부터 입이 떠억 벌어진다. 높이 1,600m에 동서로 40km, 남북으로 20km나 이어져 있는 모래산.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사막을 가르는 낙타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에는 과거 대상들 대신 여행자들이 낙타 위에 앉아 있다. 초승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인 웨야취안月牙泉을 보기 위해 사막을 오른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진다. 땀이 흐르지만 건조한 날씨에 금세 증발한다.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모래산에 올라 뒤돌아보니 신비로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0여 년 전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웨야취안은 오랜 시간 동안 사막의 나그네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해 주었다. 모래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천년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비롭기만 하다. 연간강수량 39mm에 증발량이 2,800mm라니 더욱 놀랍다. 밍샤산에 오르면 웨야취안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멀리 둔황이라는 또 다른 오아시스가 보인다. 모래산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 모래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사람들, 곱디 고운 모래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 그윽한 눈으로 멀리 둔황시내를 바라보는 사람들. 같은 밍샤산에 올랐지만 이곳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모두 달랐다. 끝과 시작이 있는 곳 시안西安을 시작으로 란저우와 장예, 자위관을 거쳐 둔황에 도착한 상인들은 이곳에서 서역으로 갈 채비를 한다. 실크로드는 둔황에서 북로와 남로로 갈라진다. 북로로 가려면 옥문관을 통해, 남로로 가려면 양관을 통해서 길을 떠나게 된다. 둔황 시내에서 80~100km 떨어져 있는 옥문관과 양관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비단을 낙타에 실은 상인들에게 익숙한 곳의 끝, 새로운 서역의 시작을 의미한다. ‘옥’이 오갔다고 해서 이름 붙은 옥문관은 거대한 문 하나만 달랑 남아 있고, 서역 남로 입구인 양관은 높이 4.7m의 봉화대만 남아 있다. 옥문관을 넘어 바라보는 길도 아름답지만 양관의 봉화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더 없이 황홀하다. 높은 곳에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고비사막을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이 안겨 주는 막막함과 그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비장함이 함께 느껴진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양관에서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 벗이 있겠는가’라고 읊기도 했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는 두려움. 얼마나 위험한 일이 펼쳐질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그 마음. 실크로드 여행을 마무리하는 양관에서 수천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 나간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travel info Airline 동방항공이 인천-란저우 노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3시간이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는 인천에서 우루무치까지 약 5시간 소요된다. 두 항공편 모두 10월 초까지 주 2회 운영한다. TIP 시차 베이징과 동일하게 서울보다 1시간이 늦지만 서쪽에 위치해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주의사항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잘 챙겨 마셔야 하며 수분크림과 미스트를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된다.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 activity 둔황 야시장도 놓치지 마세요 둔황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것은 둔황 야시장. 과일과 견과류,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가 넘친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밤을 즐기기 좋은 곳. 여러 먹거리가 있지만 양꼬치가 특히 인기다. 원하는 부위를 고르면 즉석에서 구워 준다. 꼭 맛봐야 할 것이 하미과. 멜론처럼 생겼는데 겉은 노랗다. 둔황에서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메론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기념품으로 많이 찾는 제품은 밤에도 보인다는 술잔과 실크로드의 아이콘인 낙타인형이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파 낸 목판 장식품이 있다. 야시장에서는 낙타의 모습이 담긴 각종 기념품들이 인기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리버풀 레전드 캐러거 ‘스털링 논쟁, 오언을 생각해보라’

    리버풀 레전드 캐러거 ‘스털링 논쟁, 오언을 생각해보라’

    "1998년, 마이클 오언은 '40세가 되면 쉬겠다'고 말하며 클럽과 국가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뛰고 싶어했다. 그가 1999년 4월에 심각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게 과연 우연이었을까?" 리버풀과 잉글랜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라힘 스털링이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감독에게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고, 그에 따라 호지슨 감독이 스털링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것이 잉글랜드 팬들 사이에 계속 논쟁이 되고 있다. 과연 이제 19세인 선수가 '너무 피곤하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선발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것이 주요 골자이며 이에 대해 영국 방송 스카이스포츠에서는 온라인투표까지 실시했을 정도다. 해당 투표의 결과는 '옳지 않은 행동이다'가 51%, '문제 없는 행동이다'가 49%로 팽팽했다. 이런 가운데 리버풀의 옛 스타인 마이클 오언과 새로운 스타 라힘 스털링을 모두 한 팀에서 지켜본 리버풀의 레전드 수비수 제이미 캐러거가 스털링의 상황과 오언의 상황을 비교하고 나섰다. 캐러거는 "나라면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그게 올바른 행동이었을까? 아니다"라고 스털링의 행동이 아주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스털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큰 그림을 못 보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오언의 경우를 설명하면서 "1997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U-20 월드컵에서 오언과 나는 함께 뛰었다. 그는 대회가 종료된 직후 리버풀 1군에 합류해 뛰고 싶어했다"며 "당시 맨유 소속 선수들은 대회 직후 한달의 휴가 기간을 가졌지만, 오언은 당시 분명한 상승곡선에 있었기 때문에 한 경기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1998년 월드컵에 출전한 뒤에도 오언은 클럽, 국가대표에서 모든 경기에 뛰고 싶어했다"며 "그는 당시 리버풀에서 UEFA 컵 한 경기에 그에게 휴식을 부여하자 '40세가 되면 쉬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서 "당시 그의 말을 들은 팬들은 환호했지만 과연 그가 옳았을까? 아니다"라며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많이 뛰었다. 과연 그가 1999년 4월에 심각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게 우연이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캐러거의 말처럼, 한 때 '원더보이'라고 불렸던 마이클 오언은 이후 계속되는 부상에 시달리며 자신이 처음 데뷔했을 때의 기량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캐러거의 말은 요약하자면 '큰 그림을 보고 스털링이 오언처럼 일찍 소진되지 않도록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번 캐러거의 발언은 그가 바로 옆에서 오언과 스털링을 모두 지켜본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욱 일리가 있다. 마이클 오언이 어린 나이에 리버풀, 잉글랜드의 스타로 거듭난 것과 마찬가지로 스털링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캐러거의 말처럼, 그가 어린 나이에 반짝하거나 부상에 시달리며 기량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축구팬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사진= 리버풀 데뷔 초기의 마이클 오언( ⓒ AFPBBNews=News1) 이성모 객원기자 London_2015@naver.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inlondon2015트위터 https://twitter.com/inlondon2015
  • [TV 하이라이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엄마와 단둘이 사는 세 살 준서는 국내에 오직 3명밖에 없는 희귀병 ‘알란헌든더들리 증후군’을 앓고 있다. 질병코드도 없고 아이를 위한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는 하루에 수십 번씩 오는 경련에 발달장애와 구토증세까지 보이는 준서를 홀로 간호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자의 따뜻한 일상을 담는다. ■덱스터 7(FOX 밤 12시) 연쇄살인범을 쫓는 연쇄살인범 덱스터의 이야기. 우연히 교회에서 오빠 덱스터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 데브라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그렇게 동생 데브라는 덱스터가 저지른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범죄에 개입하게 된다. 한편 동생 데브라가 자신을 의심하며 압박을 가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덱스터는 자신을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인 살인을 결심한다. ■아르센 루팡(더 무비 낮 12시 40분) 어린 시절 아르센 루팡은 아버지에게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도둑으로 몰리게 되고 어머니는 욕심 많은 이모에게서 쫓겨나게 된다. 이에 루팡은 아버지를 위해 여왕의 목걸이를 훔치지만 얼마 후 아버지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16년 뒤 능청맞은 도둑이 된 루팡은 어릴 때 사촌 클라리스를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 베컴, 에볼라 확산 방지 위한 캠페인 나선다

    베컴, 에볼라 확산 방지 위한 캠페인 나선다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캠페인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베컴은 이미 에볼라 확산 금지를 위한 광고 영상 촬영을 마친 상태이며, 조만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아프리카 에볼라 확산을 막는데 앞장서기로 한 베컴은 이번 캠페인 영상에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기니 등지에서 4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청결상태를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에라리온 축구 협회의 한 관계자는 “베컴이 이번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그에게 매우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베컴이 이번 에볼라 확산 금지 캠페인에 참여한 것은 단순히 우연은 아니다. 2005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해 온 그는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의 최대 피해국가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을 방문해 어린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밖에도 서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를 오가며 에이즈 예방 및 구호 활동을 펼쳐왔으며, 특히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에 직접 나서 축구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지난 10일 세계보건가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순이며, 세네갈과 스페인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12일 현지시간 두번째 에볼라 환자 확진 판정이 나오면서 사망자 1명, 감염자 2명으로 집계된 상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넥슨] 6000만원 창업… 매출 1조 6000억원 세계 3위 게임업체 ‘우뚝’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넥슨] 6000만원 창업… 매출 1조 6000억원 세계 3위 게임업체 ‘우뚝’

    우리나라에서 자산이 1조원을 넘는 부자는 35명 정도다. 하지만 부모를 잘 만난 덕을 본 재벌 2~3세를 제외하고 스스로 자산을 일군 이는 10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자수성가형 부자의 대표 주자는 온라인 게임회사인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46·넥슨 지주사 NXC 대표)씨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김 대표의 개인 자산은 1조 4720억원. 신흥 벤처 부호 중 1위다. 그가 20년 전 자본금 6000만원의 작은 회사 넥슨을 세계 3위 온라인 게임회사로 키워 냈다. “김정주, 너는 학자로는 힘드니까 일찌감치 생각을 고쳐먹고 공부를 그만둬.” 1993년 초 당시 25세였던 김 대표는 국내 인터넷 대부라고 불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길남 교수로부터 박사과정을 그만두라는 최후통첩을 받는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제자에게 던진 스승의 매서운 지적이었다. 마음으로 존경하는 스승이었기에 가슴이 아팠지만 결국 중퇴를 결심한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세계 3위의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을 앞당기는 도화선이 된다. 중학교 시절 김 대표는 우연히 길에서 접하게 된 컴퓨터에 쏙 빠져들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구형 컴퓨터였지만 소년의 마음을 빼앗기엔 충분했다. 그가 1986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원하던 과에 진학했지만 김 대표는 애초부터 취직엔 관심이 없었다. KAIST에서 학업을 이어 가며 창업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박사과정 6개월 만에 중도 하차한 김 대표는 각각 과 동기와 선배인 송재경(XL게임즈 대표)씨와 김택진(엔씨소프트 대표)씨를 찾아가 함께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했다. 송씨는 당시 게임 분야에선 경쟁자가 없을 정도인 천재 프로그래머였고, 김씨 역시 그래픽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두 사람만 있다면 못 만들 게임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제안을 수락한 것은 송씨뿐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1994년 넥슨이라는 게임회사를 세우게 된다. 아버지에게 떼를 써서 받아 낸 6000만원으로 마련한 오피스텔과 KAIST 시절 송씨와 함께 개발한 ‘바람의 나라’ 초기 버전이 가진 전부였다. 게임회사는 돈이 안 됐다. 1996년 초 바람의 나라를 선보였지만 연매출은 월 90만원에 그쳤다.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것이 시스템통합(SI) 개발 용역회사인 웹에이전시다. 지금은 너무 흔한 사업이 됐지만 넥슨이 만든 용역회사는 대한민국 웹에이전시 1호 업체다. 현대자동차와 한국IBM, SK텔레콤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홈페이지를 잇달아 제작해 돈을 모았고 이 돈을 게임사업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바람의 나라는 세계 최초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온라인에 연결된 다수 접속자가 게임 속 등장인물이 돼 게임을 즐긴다는 점에서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지만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빠른 인터넷 속도가 필요했다. 대박의 조짐은 1998년 시작됐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전국 곳곳에 PC방이 들어서면서 동시접속자가 무려 12만명까지 늘어난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숫자에 김 대표 자신도 놀랐다. 넥슨은 이듬해인 1999년 매출 100억원대를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넥슨은 2000년 정식 출시한 ‘퀴즈퀴즈’가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세계 최초로 선보인 ‘게임 내 부분 유료화 모델’이 매출을 올리는 일등 공신이었다. 게임은 무료로 제공하면서 게임아이템으로 돈을 버는 이 방법은 현재 전 세계 게임업계의 모범 답안이 됐다. 이후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서든어택, 피파(FIFA) 온라인3 등 수많은 히트작을 쏟아 내며 성공신화를 이어 갔다. 올해로 서비스 10주년을 맞은 카트라이더는 전 국민의 절반인 2400만명이 회원이다. 서든어택의 국내외 회원 수를 합치면 무려 3000만명에 달한다. 넥슨은 2008년 매출 4509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게임업계 1위에 올랐고, 급기야 2011년에는 게임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1999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은 33.5%, 지난해 매출은 1조 6386억원에 달한다. 넥슨의 성공은 차별화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전국 PC방에는 미국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열풍이 거셌다. 대부분의 게임회사가 성인용 대형 게임 개발에 매달렸지만 넥슨은 아이부터 여성까지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을 선택해 틈새시장을 노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넥슨의 급성장 뒤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 자리 잡고 있다. 넥슨 대표작이 된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등은 모두 M&A의 산물이다. 2008년 네오플을 인수하면서 확보한 게임 던전앤파이터는 현재 전 세계 약 4억명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대형 M&A의 중심에는 김 대표가 있었다. 그는 2001년 일선 업무에서 은퇴한 뒤 글로벌시장을 돌며 M&A사업 등을 전담한다. 1년 중 8개월은 해외에서 체류할 정도다. M&A의 결정판은 2012년 6월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지분 14.7%(321만 8091주)를 인수한 것이었다. 극비리에 추진된 빅딜에 김 대표는 8045억원을 베팅했다. 이로써 넥슨은 경쟁사인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 자리에 오르며 대한민국 게임시장을 평정했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해외시장 개척에 매달린 것도 김 대표의 남다른 점이다. 넥슨은 초기부터 해외시장 발굴에 나섰다. 1997년 바람의 나라를 수출하기 위해 미국에 법인을 세웠지만 흥행은 참패였다. 하지만 넥슨은 2002년 일본, 2005년 미국, 2007년 유럽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시장 개척을 이어 갔다. 이런 노력으로 넥슨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150여종의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전체 사용자(계정 기준)는 14억명에 달한다. 2006년 35%였던 넥슨의 해외 매출 비중은 지난해 72%까지 증가했다. 이는 2012년 국내 게임산업 전체 수출액의 약 36%에 해당한다. 특히 2011년 12월 넥슨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일은 국내 게임사에 기록된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덕분에 넥슨은 블리자드와 징가에 이은 세계 3위의 온라인 게임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오늘의 눈] 자유 없는 ‘창조 경제’ 누굴 탓하나/이두걸 경제부 기자

    [오늘의 눈] 자유 없는 ‘창조 경제’ 누굴 탓하나/이두걸 경제부 기자

    시간은 곧잘 기억의 상당 부분을 망각의 동굴에 가두곤 한다. 하지만 2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야심 차게 내걸었던 구호가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창조경제였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은 아직 상당하다. 경제민주화의 구호는 메아리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창조경제는 정부 부처의 이름이나 각종 대책의 문건 구석에서나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창조는 ‘기존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인류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창조의 힘 덕분이었다. 인류가 창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명을 꽃피운 것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거친 뒤로부터다. 산업혁명은 시민혁명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시민혁명이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이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가 보장된 뒤에야 누구나 신분이나 절대 왕권 등에 구애받지 않고 창조를 바탕으로 한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창조의 힘은 최근 들어 더욱 중시되고 있다. 통섭이나 융합, 선도형 등 우리 경제의 대안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들은 모두 자유에 빚지고 있다. 특히 경제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영역에서 일종의 ‘공기’ 역할을 하는 인터넷은 자유가 극대화된 영역이다.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접근성이라는 인터넷의 특징은 정보 생산자나 소비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예 성립될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터넷에 기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기실 창조경제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인터넷에서 발언의 자유를 끊임없이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를 강화하고 카카오톡 메신저의 압수 수색까지 벌였다. 다음카카오 측은 올 상반기까지 정부에 147건의 감청 요청을 집행했다. 구호만 앞서던 창조경제가 갈팡질팡하는 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시장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이 부족한 한 사람에 의해 사회가 휘둘리는 것은 지금의 가장 큰 비극이다. 전근대적 ‘개인’과 근대적 사회의 충돌에 따른 피해는 우리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탓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개헌론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다음카카오 측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뒤늦게 고객 정보 보호책을 내놨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정부를 겨냥해 소송을 걸거나 ‘정부가 계속 실수하고 있다’고 일갈하는 미국 기업들의 ‘상식’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 텔레그램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았다. 요즘 카카오톡 대신 많은 이들이 ‘사이버 망명’의 대안으로 선택하는 외국 모바일 메신저다. 친구 목록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기업인들은 물론 중앙부처 관료들도 눈에 띈다. ‘국산 카톡 대신 외국산 텔레그램을 쓰는 건 국익에 반하는 일’(새누리당 대변인)이라 한다. 그러면 텔레그램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이들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douzirl@seoul.co.kr
  • 초원에서 선채 새끼 낳는 어미 기린 포착

    초원에서 선채 새끼 낳는 어미 기린 포착

    기린의 출산 순간이 포착된 사진이 화제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방문한 여행업자 안드레아스 크나우센베르거(32)가 우연히 어미 기린이 비틀거리며 출산을 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냈다고 전했다. 안드레아스가 촬영한 사진에는 가느다란 다리를 비틀거리며 새끼를 낳는 어미 기린의 모습과 출산 후 어미와 새끼가 마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사진은 새끼를 낳고 힘을 다한 어미 기린이 그 와중에서도 새끼 기린의 몸을 혀로 핥아 깨끗하게 씻기는 모습이다. 그리고 새끼 기린은 바깥세상으로 나온 지 30분이 지나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안드레아스는 “기린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검은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고 출산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린이 출산하는 동안 하이에나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다른 두 마리 기린이 출산하는 기린을 지키고 서 있는 흥미로운 광경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린의 수명은 약 26년으로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임신 기간(포란 기간)은 15개월로 알려져 있다. 사진=Andreas Knausenberger/Caters News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주말 영화]

    ■노트북(씨네프 토요일 오후 4시 50분) 17세 노아는 카니발에서 천진난만한 앨리의 웃음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들고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한다. 그러나 신분 차이를 이유로 집안의 반대가 거세 두 사람은 이별을 하게 되고,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서로를 잊어 갈 때쯤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가 어린 날 자신과 함께 꿈꿔 왔던 전원주택을 판다는 소식을 접한 앨리는 그를 찾아나선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하지만 서로가 처한 현실에 더 가슴 아프다. 앨리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으니, 막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육신의 기능을 거의 다 상실한 노년의 노아가 한평생 사랑해온 앨리에게 남긴 사랑의 기록이다. ■바보들의 행진(EBS 일요일 밤 11시)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윤문섭)는 미팅에서 영자(이영옥)라는 불문과 여대생을 만나 사귀게 된다. 얼마 후 영자는 병태가 돈도 없고 전망도 없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한다. 부잣집 외아들인 병태의 친구 영철(하재영)은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생활을 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술만 마시면 동해로 고래사냥을 가고 싶다고 말하던 영철은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동해로 떠나 자살을 하고 만다. 그 충격에 병태는 군대를 선택하고,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영자가 열차 창문에 매달려 병태에게 입맞춤을 하는데….
  • ‘홍길동전 저자’ 이상의 사상가 허균

    ‘홍길동전 저자’ 이상의 사상가 허균

    허균생각/이이화 지음/교유서가/324쪽/1만 5000원 허균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쯤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허균은 일반의 인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사상가요 문장가였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일관되게 고발정신과 개혁의지를 지켰던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했다. ‘허균 생각’은 일반의 인식과는 동떨어지게 가려졌던 그 허균의 진면모를 촘촘하게 들여다본 신간이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 월간 ‘뿌리 깊은 나무’가 강제 폐간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 금서로 지정됐던 책. 수정·보완을 통해 당대 정치, 학문, 문학에서 도드라졌던 ‘허균의 생각’을 다시 건져냈다. 허균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역모죄에 얽혀 능지처참됐다. 부친 허엽은 부제학과 경상 관찰사를 지낸 청백리였고 맏형 허성 역시 빼어난 문장가이자 성리학자였다. 누이 난설헌은 해동에서 첫째가는 규수 시인으로 유명했다. 사대부의 자제로 유복하게 살 수 있었던 그는 왜 그리 험한 길을 갔을까. 순탄치 않은 가정사는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 둘째 형 허봉은 아버지 뒤를 이어 동인의 우두머리가 됐지만 탄핵·유배됐고 누이 난설헌도 애환 많은 삶을 살다가 스물일곱에 요절했다. 서류라는 이유로 벼슬길이 막혀 방탕한 세월을 보낸 손곡 이달의 문하에 든 것도 주목할 이력이다. 그런 가정사 속에서 허균이 정치의 바탕을 민본에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늘은 인재를 내리면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유재론’과 백성을 근본에 둔 ‘호민론’은 그 대표적인 글들이다. ‘호민’이란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무리를 뜻한다. 빈민을 구제하고, 썩은 관료계급을 척결해 착취와 억압이 없는 이상국가인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홍길동전’은 바로 그 호민정신의 결집이다. 산림에 묻히는 선비를 썩은 무리로 보고 현실의 잘못에 적극 개입해 고치려는 자를 참선비로 보았던 허균은 반유교적인 행동과 학문태도로 일관했다. 유교 교학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문장을 반대하고 시는 진솔한 감정과 정서를 담아내야 한다는 그의 문학적 성향 역시 애조와 현실에 대한 저항이 주를 이룬다. 올해 방한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양국 간 우호를 상징하는 말로 ‘간과 쓸개를 늘 서로 꺼내 보이니 깨끗한 얼음 담은 병에 차가운 달이 비치는 듯하다’는 허균의 문장을 인용한 바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패거리들이 판치고 궤변을 늘어놓는 가짜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허균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4만년 전의 손/문소영 논설위원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교수가 2011년에 펴낸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한국판이 2013년에 소개됐을 때 일부 독자는 다소 짜증을 냈다. 제목은 물론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라는 부제 역시 19세기 중엽부터 본격화한 서유럽과 미국 등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유럽 중심적 역사관이 상당히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영국에 패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경제의 규모가 서유럽보다 앞서 왔다는 ‘리오리엔트’의 저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 노스이스턴대 교수와 다른 시각이다. 프랑크 교수는 우연한 사건의 결과가 서양 패권을 가져왔다는 ‘단기 우연설’을 지지한다. 주류는 모리스 교수와 같은 시각으로,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장기 고착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로, 서양은 인류 발생 시점부터 변경 불가능한 결정적 요소들 덕분에 동양보다 앞서 왔다고 설명한다. 모리스나 다이아몬드는 특히 신석기가 시작된 1만 4000여년 전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동식물 분포가 풍요로웠고 전파도 극동의 중국보다는 서유럽에 유리하게 진행됐다며 ‘지리적 특혜’를 패권의 원인으로 손꼽는다. 또한 인류 발생지인 아프리카와 가까운 덕분에 네안데르탈인이나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 등의 진화과정에서도 서유럽이 지리적으로 더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4만 880년 된 스페인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가 발견되고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암각화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 등의 사례를 들어 선사시대의 예술은 유럽에서 시작됐고, 인류의 추상적 사고도 유럽인의 특징으로 강조했다. 이는 17~18세기 계몽주의나 과학혁명, 산업혁명의 선도 등은 유럽인만의 이런 추상적 사유에 기반을 둔다는 주장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 인도네시아 동남부 술라웨시 섬의 마로스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벽화를 연구한 논문이 실렸다. 이번에 발견된 동굴벽화는 3만 99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단다. 동굴의 종유석을 분석한 결과다. 손을 벽에 대고 붉은 물감을 뿌린 기법으로 흔적을 남긴 벽화로는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가늘고 긴 팔뚝을 가진 완벽한 다섯 손가락 벽화는 여러 방향에서 벽에 손을 올려놓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해 변화를 주었고 리듬감도 있다. 선사시대부터 유럽 거주자에게만 인간의 창조적 능력과 예술감각이 있었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깬 ‘4만년 전의 손’ 벽화가 반갑기만 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초원에서 비틀거리며 선 채 새끼 낳는 어미 기린 포착

    초원에서 비틀거리며 선 채 새끼 낳는 어미 기린 포착

    기린의 출산 순간이 포착된 사진이 화제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방문한 여행업자 안드레아스 크나우센베르거(32)가 우연히 어미 기린이 비틀거리며 출산을 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냈다고 전했다. 안드레아스가 촬영한 사진에는 가느다란 다리를 비틀거리며 새끼를 낳는 어미 기린의 모습과 출산 후 어미와 새끼가 마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사진은 새끼를 낳고 힘을 다한 어미 기린이 그 와중에서도 새끼 기린의 몸을 혀로 핥아 깨끗하게 씻기는 모습이다. 그리고 새끼 기린은 바깥세상으로 나온 지 30분이 지나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안드레아스는 “기린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검은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고 출산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린이 출산하는 동안 하이에나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다른 두 마리 기린이 출산하는 기린을 지키고 서 있는 흥미로운 광경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린의 수명은 약 26년으로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임신 기간(포란 기간)은 15개월로 알려져 있다. 사진=Andreas Knausenberger/Caters News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암컷 뱀 놓고 벌이는 수컷 뱀들의 짝짓기 싸움

    암컷 뱀 놓고 벌이는 수컷 뱀들의 짝짓기 싸움

    암컷 뱀과의 짝짓기를 두고 수컷 뱀 두 마리가 대결을 벌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화제라고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영상을 보면, 수컷 뱀 두 마리가 마치 새끼줄을 꼬듯 서로의 몸을 비벼대며 상체를 일으킨다. 언뜻 보면 꽈배기 같은 모양새로 몸을 한껏 일으키던 뱀들은 이내 곧 쓰러진다. 뱀들은 그렇게 서로의 몸을 휘감은 채 머리를 들었다가 쓰러지는 동작을 반복한다. 해당 영상은 호주 퀸즐랜드 주(州) 브리즈번의 한 남성이 뱀들이 싸우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해 촬영한 것이다. 뱀 전문가는 이러한 뱀의 특이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암수뱀의 짝짓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근에 있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짝짓기 경쟁이다”라면서 “머리를 더 높이 치켜든 뱀이 암컷을 차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실제로 당시 대결을 벌이던 두 마리의 수컷 뱀 이외에도 지붕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암컷 뱀 한 마리가 추가적으로 발견됐다고 언론은 전했다. 사진·영상=Grant Browne/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다음카카오] 혼맥 아닌 꿈으로 일군 ‘IT 새 세상’… 벤처 1세대 인맥 ‘화려’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다음카카오] 혼맥 아닌 꿈으로 일군 ‘IT 새 세상’… 벤처 1세대 인맥 ‘화려’

    “꿈으로 끝내지 말고, 꿈을 끝내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을 찾고, 가는 길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김범수(48) 다음카카오 의장의 단골 멘트다. 꿈은 김 의장의 삶을 관통한다. 좌우명도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다. 한게임, 네이버, 카카오를 거쳐 매머드급 정보기술(IT) 기업인 다음카카오의 최대 주주가 된 김 의장은 가(家)맥, 혼(婚)맥의 덕을 톡톡히 보는 재벌 기업인들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의장은 할머니 손에 자랐다. 본적은 전남 담양이다. 김 의장은 어린 시절을 ‘가난과 모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정의한다. 김 의장의 모친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고 지방에서 식당일을 하며 2남 3녀를 키웠다. 담양에서 서울로 갓 상경한 부친 김진용(76)씨는 중졸로 막노동과 목공일을 번갈아 했다. 부친 김씨는 2003년 아내와 사별한 뒤 한상분(67)씨와 재혼했다. 대학을 나온 것도 김 의장뿐이었다. 단칸방에서 재수를 하면서 흐트러질 때마다 혈서를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김 의장은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1991년 봄, 같은 대학 석사 논문 준비 중에 우연히 들른 후배 자취방에서 당시에는 생소했던 전자게시판(BBS)을 보고 본격적인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1992년 석사 졸업 후 대학 동기들이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에 지원할 때 삼성SDS에 특례 보충역으로 들어가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팠다. 그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다. 문태식 마음골프 대표,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문 대표는 한게임 창업을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끈끈한 ‘절친’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연세대 전산과학과 89학번이다. 그는 한게임을 시작으로 NHN게임스 대표, 미국 법인 대표를 지내며 네이버의 미국 진출 기반을 닦았다. 2007년에는 사내 게임제작센터를 분리해 엔플루토를 설립했다. 김 의장은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 넘버원’ 을 부업으로 열었다. 그는 한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6개월 만에 5000만원을 벌었고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차려 본격적으로 사업의 닻을 올린다. 이 시절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함께 꿈을 키워 갔던 이상곤 전 미디어웹 대표이사와의 진한 우정도 눈에 띈다. 한게임을 공동 창업한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이자 전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삼성SDS 후배다. 그는 김 의장의 공동 창업 제안으로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네이버에서 김 의장과 오랜 인연을 맺는다. 서강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그는 2009년 CJ인터넷 대표이사를 지냈다. 박성찬 다날 창업자도 김 의장과 가까운 사이다. 1990년대 말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에 뛰어든 박 창업자가 한게임에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 제안을 하기 위해 김 의장과 만나면서 인연이 싹텄다. 박 창업자는 고려대 건축공학과 82학번이다. 김 의장과 평생의 라이벌로 맞붙게 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의 인연도 특별하다. 대학 동기이자 직장도 같은 두 사람은 2000년 각각 한게임과 네이버컴을 합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뒤 NHN 공동대표가 됐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선 김 의장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부친이 삼성생명 대표를 지낼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 의장은 이를 잘 다듬는 성격이었다. 성격과 성장 배경이 사뭇 달랐지만 두 사람은 훌륭한 파트너십을 주고받았다. 김 의장의 인맥은 굵직굵직한 서울대 벤처 1세대 인물들과 관련이 있다. 이 의장을 비롯해 김정주 NXC 넥슨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김 의장과 서울대 동문이다. 김 의장은 김정주 대표, 이해진 의장과 산업공학과 86학번 동기이고 김택진 대표는 전자공학과 85학번으로 1년 선배다. 서울대 경영학과 90학번인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와도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대학 이전부터 직장까지 이어진 인맥으로는 천양현 코코네 대표이사가 있다. 둘은 NHN 한게임의 창립 멤버인 데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물론 건대사대부고 3회 졸업생이다. 두 사람의 영문 이니셜을 따 공동 입주한 건물도 있다. 서울 역삼동 소재 8층짜리 빌딩인 ‘씨앤케이타워’가 그곳이다. 두 사람은 모교인 건대사대부고에 장학금을 함께 전달하기도 한다. 김 의장은 화를 잘 내지 않고 인화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스스로도 최고경영자(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을 ‘유비 정신’이라고 짚을 정도로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소신을 가졌다. 김 의장은 카카오 경영 전반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업계 인사들과 골프장을 찾을 정도로 인맥 형성에 적극적이었다. 반면 ‘균형 있는 삶’을 기치로 가족을 살뜰히 잘 챙기는 아버지이도 하다. 그는 1993년 2월 부인 형미선(46)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일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가 180도 바뀌게 된 건 10년 전 첫째 아들 상빈(23)씨가 자신을 외면한다는 느낌을 받고 충격에 빠진 이후부터다. 그는 그때부터 상빈씨, 딸 예빈(21)씨와 함께 매일 오락 게임을 1시간씩 할 정도로 자상한 아빠로 변했다. 김 의장은 2004년 NHN 단독 대표이사를 거쳐 2006년 NHN 해외사업담당 공동 대표이사, 2006년 NHN 미국 법인 대표이사 사장을 1년간 거친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꿈을 꾸는 김 의장은 2007년 따뜻한 보금자리인 NHN을 떠났다. 그는 아이위랩에 이어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체류하던 2008년 3월과 6월에 소셜북마킹 서비스 ‘부루’와 ‘위지아’를 내놨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비전과 꿈은 꺾이지 않았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은 그 정도의 시련은 감내할 수 있었다. 김 의장은 PC웹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가정 아래 모바일 공략에 나섰다. 2009년 10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는 것을 보며 모바일 시대가 올 것을 확신했다. 2010년 3월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카카오톡’을 시장에 내놨다. 모바일 시대를 선점한 셈이다. 카카오를 창업하면서 네이버 때부터 인연을 이어 온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 및 이제범 대표와의 인연이 깊어진다. 미국 변호사 출신인 이석우 대표는 김 의장의 제안으로 2004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이후 김 의장을 따라 2011년 카카오에 부사장으로 입사, 공동대표직을 수락해 카카오 대외업무를 도맡았다. 카카오톡 기술 개발은 서울대 과 후배인 이제범 대표가 책임졌다. 이제범 대표는 97학번이다. 김 의장의 가족과 친척들은 다음카카오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처남인 형인우(42)씨는 다음카카오 통합법인의 2.8%를, 형씨의 부인 염혜윤(35)씨는 1.2%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김 의장의 부인 형미선씨는 김 의장의 개인투자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의 사내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김 의장의 막내 동생 화영(44)씨는 한때 케이큐브홀딩스 대표를 맡기도 했고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구 카카오사옥에서 ‘카페톡’을 운영했다. 여동생으로는 행자, 명희, 은정씨가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비대위원 전대 나오려면 연내 물러나야… 김현 안행위 사임해야”

    “비대위원 전대 나오려면 연내 물러나야… 김현 안행위 사임해야”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비상대책위 위원이 (내년 초)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면, 당연히 비대위원에서 물러난 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또 대리기사 폭행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같은 당 김현 의원은 경찰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안전행정위 위원에서 사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 최고위원 등 당직 도전을 위해 비대위원 자리를 내놓아야 할 시점에 대해 “전당대회 날짜가 정해지고 역산해 보면, 언제쯤 사퇴해야 하는지 날짜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내년 1월 말 늦어도 2월 초 이전 전당대회가 실시될 예정으로, 이로부터 후보 등록 시점인 45~50일 이전에 사퇴해야 할 것으로 본다면 연말 전 비대위원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비대위원 중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위원의 전대 출마설이 자천, 타천으로 흘러나온다. 문 위원장은 직전 두 공동대표, 특히 안철수 전 대표가 비대위원으로 비대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당을 살리는 데 참여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원외 인사의 비대위 추가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것은 비대위원 구성 당시 원칙을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30일 세월호특별법 타결과 관련해서는 “유가족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비대위가 계파 수장급으로 구성됐다는 비판과 함께 계파 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데. -비대위원들이 (당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면 비대위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계산이 있었다면 잘못 들어온 것이다. 당을 살리기 위해 동의하는 마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지, 당권을 노린다면 인기 관리나 하고 있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계파 갈등과 같은) 그런 얘기를 하며 당내 분란을 바라는 사람들은 사심이 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왜 세월호특별법을 그렇게 타결하느냐면서 극단론을 펴거나, 당이 죽을 힘을 다해서 투쟁하고 있을 때 옆에서 한가한 소리를 하는 이들이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문(문희상-문재인) 담합설’이 나오고, 분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면 내가 당직을 모두 친노(친노무현)로 바꿨어야 되는 게 아닌가. 안철수 전 대표 비서실장이었던 문병호 의원을 전략홍보본부장에 임명한 것을 봐라.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임명한 당직자들도 그대로 뒀다. 잘못된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사람이 잘못이다. 노란 안경을 쓰고 노랗다고 한다면 이것은 편견이다. 무조건 친노계 운운하며 특정 계파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또 하나의 계파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 다양성은 야당의 생명이다. 일사불란하게 다 같다면 보스 밑의 졸병 모습밖에 안 된다. 그러나 기율은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만, 진짜 나간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후임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도 다시 친노·비노 계파 갈등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그것은 프레임이다. 프레임으로 자꾸 보지 말라. 나는 계파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한 적 없다. 민주주의라면, 투쟁 정당이면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당에 친노 아닌 사람 있나. 문제는 노무현 정신을 잊어버리고 우리 계파만 꼭 해야 한다는 계파 이기주의, 패권주의가 문제다. 원내대표 선거는 추대 형식이 좋겠지만, 두 사람 이상 후보가 나온다면 최후의 수단은 경선이다. →‘제3세력’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 -얼마든지 좋은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제3세력이 나와야 한다. 제주도 진돗개가 누렁이, 흰둥이가 있는데 둘 다 누리끼리해졌다. 그런데 소멸된 줄 알았던 까만 진돗개가 끼어들어서 달라졌다고 한다. 제3세력이 크는 것은 견제를 전제로 하기에 나쁘지 않다. 다만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무지개처럼 된다면 무너진다. ‘안철수 현상’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양쪽이 못하니 대안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도 소중하지만, 안철수 자신도 중요한 시작점에 서 있다. 안 전 대표의 비대위 참여를 바란다. →전 대표들이 중도·실용을 강화하다가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중도개혁 성향이다. 중산층, 서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우리 당의 변함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강경과 온건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병행 추진해야 한다. 강(强)만 주장하고 나가면 원칙주의, 탈레반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서생적 문제 의식에만 충실한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국회에 오지 말고 시민단체로 가야 한다. 근데 또 협상만 외치면 새누리당 2중대라고 해서 선명성을 상실해 국민에게 신뢰를 잃는다. 그러니 그것을 잘 섞어야 한다. 한편으로 나는 의회주의자이고 장외 투쟁을 반대했지만 김·안 전 대표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 체제에서 밖에 나갈 때 옆에 섰다. 정당의 생명은 뜨거운 동지애에서 나온다. 동지애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이다. 서로 따로따로 가면 투쟁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한곳에 몰아줘야 한다. →국정감사 국면에서 김현 의원의 국회 안전행정위 배치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유가족과 술을 먹으며 위로하는 ‘인간 김현’의 가치가 있지만 ‘국회의원 김현’은 지도자의 격조와 품위를 유지했어야 옳다. 본인이 두 차례 사과했지만, 개인적으로 당도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비대위 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다. 또 공정한 수사를 위해 경찰을 피감기관으로 둔 안행위에서 김 의원이 사임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지난달 30일 세월호특별법 합의 전 유족들을 끝까지 설득했어야 되지 않았나. -합의안에 사인하기 전에 최소한의 양해를 구했다. 박 전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 등이 총력으로 설득했다. 그러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상규명을 언제까지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언할 사람들이 지쳐서 기억을 잊어버린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에 대해 평해 달라. -난 아름답게 떠내보내고 싶었다. 막내 누이동생과 고등학생시절부터 친구이고 지금도 사석에서는 ‘영선아’라고 부른다. 우리 당에서 리더십을 형성하기 힘든데 고비고비마다 잘 넘겨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끌어내리기로 희생당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선 공약할 때의 신념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대 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해서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상 규명이 본질이고, 이를 위해서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나, 외국 가서 수모를 당했다고 하지를 않나. 국회의원을 이렇게 무시한 적이 없었다. 유신 때 박정희 전 대통령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 명분 쌓기였지만 모든 문제를 야당대표와 상의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야당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담 이춘규 선임기자 정리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인류의 획기적 진화 이유는 고대 기후변화 덕분”

    “인류의 획기적 진화 이유는 고대 기후변화 덕분”

    고대 기후변화가 현대 인류문명 구축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미소니언 매거진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 스미소니언 인류기원 연구소,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본머스 대학 등 세계 각국 연구진들이 오래 전 기후변화가 인류를 획기적으로 진화시켜 오늘 날 현대문명에 이르게 한 열쇠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최근 보도했다. 연구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지능 발전이 이뤄진 두 시기가 모두 기후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시기는 고인류학 상 최고원인(最古猿人)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멸종된 300만년 전, 그리고 두번째 시기는 인류 진화과정에서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했던 160만년 전이다. 특히 호모 에렉투스는 현대인과 같은 직립보행을 처음 시작했고 두뇌용량이 커졌으며 주먹도끼와 같은 사냥도구를 만들어 수렵생활을 하는 등 굉장한 지능발전을 보여줬다. 연구진에 따르면, 당시 고대 인류가 두루 거주했던 아프리카 해안에 남아있는 퇴적층 그리고 케냐, 에티오피아, 탄자니아를 잇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지형을 분석해보면 해당 두 가지 시기 동안 아프리카는 점차 오늘날처럼 무더워지면서 나무가 울창했던 지역에서 드넓은 초원과 일부 사막이 생기는 형태로 바뀌었다. 해당 과정에서 인류는 자연히 환경변화에 맞서 생존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보다 기후가 더워지면서 땅이 메마르고 가뭄이 들면서 동·식물 생태계가 변화했고 고대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기존 먹거리와 다른 새로운 음식과 섭취방식을 개발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거주환경도 바꿔야 했고 남편-아내-아이로 이어지는 집단생활의 개념도 정립됐으며 동물 사냥은 한계가 있으니 고기 외에 식물, 곡물을 식량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해당 시기 인류의 두개골 화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연구진들의 화석 치아 성분을 분석한 결과, 특히 해당 시기에 무척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고대 인류가 섭취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생존전략을 계속 구상하면서 두뇌가 발전됐고 이것이 지금의 현대문명 건설을 위한 토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컬럼비아 대학 피터 데모너컬 박사는 “이 인류 진화이론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에 기반하고 있지만 과거 퇴적지형과 고대 인류의 치아구조는 무시할 수 없는 증거를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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