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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 겪은 악어, 모스크바 동물원서 숨져…‘히틀러의 애완악어’ 오명도

    2차대전 겪은 악어, 모스크바 동물원서 숨져…‘히틀러의 애완악어’ 오명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전설적인 악어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뒀다고 러시아투데이(RT)가 24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모스크바 동물원 측은 전날인 23일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통해 우리의 악어 ‘새턴’(Saturn·토성)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새턴은 1936년쯤 태어나 84세 정도 산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들 악어는 야생에서 30~50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상적인 기록이다. 하지만 이 수컷 악어는 자신이 태어난 미국 미시시피 앨리게이터들과 달리 꽤 기억에 남을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다. 미시시피에서 사로잡혀 독일 베를린 동물원으로 보내진 새턴은 당시 악어 쇼의 인기 스타로 자리잡았다. 당시 히틀러는 전쟁 전 이 동물원을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이 악어를 감탄하며 바라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일부 역사학자는 이 악어가 히틀러의 개인 애완동물 중 한 마리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또다른 역사학자들은 히틀러가 단지 동물원의 다른 동물들보다 이 악어를 좋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1943년 11월 베를린이 폭격을 당했을 때 폭격기 중 한 대가 동물원의 수족관에 포탄을 떨어뜨렸다. 이 공격으로 수족관에 있던 앨리게이터 악어와 크로커다일 악어 총 24마리가 죽었지만, 새턴을 포함한 몇몇 악어는 살아남아 도망쳤다. 이후 새턴은 나치 독일이 항복한지 1년 뒤인 1946년 영국군에 의해 발견됐지만, 지난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한 가지 견해는 새턴이 지하실이나 하수 배수구 등에 숨어 살았다는 것이고 또다른 견해는 한 나치 고위층이 우연히 포획해 사육했다는 것이다. 그후 새턴은 동맹국인 구소련에 인계돼 1946년 모스크바로 보내져 74년간 동물원에서 살았다. 이 동물원에서 가장 오래 산 동물이기도 한 새턴은 여러 차례 죽음을 모면했다. 1980년대 수족관에서 새턴은 떨어진 콘크리트 조각에 맞아 하마터면 숨질 뻔했다. 또 이 불쌍한 악어는 한 방문객이 집어던진 돌멩이에 머리를 얻어맞아 몇 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는 새턴이 히틀러의 애완 악어였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동물원 측은 “새턴이 히틀러의 소유였다고 해도 동물은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인간의 죄를 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새턴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먹이를 먹지 않았던 적이 있다. 새로운 수족관이 완공돼 보내졌을 때 4개월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았고 2010년에는 무려 1년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았지만 이후 다시 먹기 시작했다.모스크바 동물원은 이번 부고 소식에서 “새턴은 우리에게 하나의 시대를 상징한다”면서 “우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그의 곁에 있을 기회를 얻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밝혔다. 한편 새턴은 앞으로 박제돼 모스크바에 있는 다윈 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日 여자 레슬러 기무라 하나 스물둘에 극단을 선택한 이유

    日 여자 레슬러 기무라 하나 스물둘에 극단을 선택한 이유

    일본의 여자 프로 레슬러로 넷플릭스의 리얼리티쇼 ‘테라스 하우스’의 최신 시리즈에도 얼굴을 내민 기무라 하나가 스물둘 짧은 삶을 접었다. 고인의 회사 스타덤 레슬링은 23일 성명을 내고 그녀가 사망한 사실을 확인하며 팬들에게 사생활을 존중하고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시간을 좀 달라고 당부했다. 사인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그녀가 일련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자신이 사이버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소연한 점으로 미뤄 극단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날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녀의 마지막 사진은 고양이와 함께 촬영한 것이며 사진설명에 “안녕”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고인은 전날 트위터에는 자해 사진들을 올리며 “더 이상 인간이고 싶지 않다. 난 살면서 사랑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모두 감사 드린다. 사랑한다. 안녕”이라고 밝혀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다. 그녀는 팬들과 비평가들로부터 매일 수백 통의 트위터 글로 공격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과 레슬링계는 사이버 괴롭힘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임팩트 세계 챔피언 테사 블랑차드는 “잔인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마음이 진짜 찢어지는 것 같다. 기무라 하나를 알았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였다. 따스한 영혼과 엄청난 열정, 직업윤리까지 갖춘 대단한 소녀였다”면서 “이 일로 소셜미디어에서의 상호작용이 어떤 이, 누가 됐든지 간에 정신건강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스타덤이 주최한 파이팅 스피릿 상을 수상한 고인은 세 남성과 세 여성이 우연한 계기로 한 집에 모여 사는 얘기를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캐스팅됐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방영이 중단됐다. 어머니 역시 유명 레슬러 기무라 교코다. 유명 레슬러들이 잇따라 추모의 뜻은 전달했다. 영국의 프로 레슬러 제이미 해이터는 “심란하다. 뭐라고 할지 어떤 감정일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미국 레슬러 쑤융은 “널 늘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내 친구, 넌 내 사랑스러운 작은 동생이었다”고 애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여기는 중국] ‘착한 일’ 한 직원에 아파트 선물한 中 대기업

    [여기는 중국] ‘착한 일’ 한 직원에 아파트 선물한 中 대기업

    중국 대기업이 위기에 처한 어린이를 구한 자사 직원에게 60만 위안(약 1억 5000만 원) 상당의 아파트 한 채를 선물했다. 중국 가전제품 생산 기업 하이얼(Haier)은 지난 21일 쓰촨성 쯔궁시 푸순현에 소재한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낙하 위험에 처한 어린이를 구한 후윈촨 씨에게 이 같은 선물을 전달키로 했다고 23일 이 같이 밝혔다. 하이얼 측은 이날 자사가 운영하는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후 씨의 선행을 공개, 자사 직원들의 사회적인 선행을 장려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하이얼의 에어컨 전문 수리사로 재직 중인 후 씨는 지난 21일 6층 베란다 밖으로 낙하 위험에 처한 조 양(6세)을 구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 씨는 사건 당일 5층 에어컨 실외기를 통해 6층 베란다 밖 난간을 위태롭게 잡고 버티고 있었던 조 양에게 접근 안전한 구조에 성공했다. 사건 당시 인근을 지나가던 후 씨가 아파트 밖으로 주민들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 양 구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이웃 주민들에 의해 촬영된 영상 속에는 위태로웠던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다. 공개된 영상 속 조 양은 외출한 엄마를 보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으나, 조 양의 몸보다 넓었던 난간 틈으로 순식간에 몸이 빠지면서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봉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조 양은 후 씨가 구조하기 전까지 줄곧 낙하 공포를 견디며 울음을 터트리는 등의 모습이 영상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후 씨는 “우연히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에 사람들이 몰려서 웅성대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조 양이 베란다 밖에서 난간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버티는 모습을 보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달려가게 됐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에어컨 수리 작업을 하다보면 높은 곳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잦은데 그 때의 경험으로 조 양을 안고 창문 너머로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 양이 무사하게 구출된 직후 그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후 씨에게 큰 절을 하며 큰 감사의 인사를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이얼 본사 측은 이날 후 씨의 선행 사실을 들은 이튿날 오후, 그가 재직 중인 쯔궁시 푸순현 하이얼 판매 대지점을 통해 포상 소식을 전달했다. 해당 포상에는 하이얼 본사에서 매월 자사 근로자를 대상으로 선정하는 ‘명예훈장서’와 60만 위안 상당의 아파트 한 채가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포상 소식을 전달받은 후 씨는 “부동산 한 채를 받는다는 것을 전달받은 직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면서 “평범한 일을 했을 뿐인데 많은 분들에게 큰 칭찬을 받은 것도 모자라 회사에서 큰 상을 준다니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에 알려주신다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했을 뿐인데 큰 선물을 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후 씨는 현재 정상 출근 중이며 향후에도 변함없이 에어컨 전문 수리 기사로 일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사실관계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담하다. 전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저지른 전쟁 범죄에 맞선 30년의 오랜 활동이 기부금의 개인적 횡령, 주먹구구식 회계 비리 등 파렴치범으로 몰리며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국제인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의 빛나는 역사가 허물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뼈아픈 비판도 있고, 모종의 의도에 근거한 억측도 있고, 웬지 주류세력이 된 것 같으니 그냥 비판을 받아라는 식의 몰가치적 비난도 있고, 이참에 기사 조회수 좀 늘려보겠다는 언론 상업주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이죽거리며 내뱉는 썩은 웃음소리들이 있다. 1990년 11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맞서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김학순 할머니로 시작해서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호주 등 전세계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한 수요집회는 1440차에 이르도록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의 추악한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 요구는 높았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도 외면해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제 정대협, 정의기억연대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적반하장의 입장을 낸다. 일본 우익 매체 산케이신문은 지난 19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반일집회를 중단하고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영훈, 이우연 등 극우세력의 이데올로그들은 “강제징용은 없었다. 위안부는 고위험 고수익 시장” 등 기존 의견을 반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힘입어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미래통합당 홍문표 의원은 “(윤미향 전 대표는) 이완용보다 더한 사람”이라는 무시무시한 비유를 했다. 더더욱 참담한 일이다.회계에 부정함이 있고, 활동에 위법함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관성에 빠져 무사안일했다면 시민들의 죽비를 내려맞아야 한다. 하지만, 전쟁 성폭력 이슈를 힘겹게 끌고오며 국제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활동과 성과까지 부정되어선 안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극우세력이 이용할 틈을 줘서도 결코 안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부여당(민주당 계열 옛 야당)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때다. 유교적 문화가 남아 있기에 국민들이 도덕성이라는 가치에 더욱 민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잣대는 하필 이들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력에 유독 엄격하게 들이대진다. 그래서 진보단체 혹은 진보를 지향하는 기자 개인 등에서는 스스로 ‘도덕성 컴플렉스’에 빠진 경우 또한 많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였다가는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세력의 위상 추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덕’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 수단이다. 전통적 측면에서 변화보다는 안정,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를 보수주의자로 지탱시켜줄 수 있는 핵심 무기가 도덕이다. 민족과 국가의 개념 역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반면 진보주의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이라면 기존의 관성과 제도, 질서, 문화에 대한 전복을 꾀하기 마련이다. 어떤 진보의 가치도 그 배경에 도덕을 필수 기초 요소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 속 상황은 달랐다. 한국의 보수 세력의 기초는 ‘도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족 또는 국가의 이익 또한 아니었다. 숱한 보수세력의 정치인, 기업인들은 반공, 반북이라는 이념적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시작해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보수세력의 대통령들이 보여준 부도덕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또한 기업인들 역시 권력에 막대한 돈을 건네며 자신들의 부를 더욱 키우는 데 혈안을 했다. 장삼이사 같은 평범한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 또한 필요하면 기꺼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어 대고, 또 한때는 가스통까지 들고 광장으로 나와 공권력을 위협했다. 배려, 공정, 타인 및 공동체 존중 등 도덕의 가치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기에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도덕’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진보의 가치를 왼손에 들고, 도덕을 오른손에 든 채 ‘도덕적이지 못한 보수’와 맞서는 양상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자승자박이다.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이라 하더라도 사적 욕망이 없을 수 없는 개인들의 모임이다. 공공의 가치의 제도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공동체 발전에 대한 비전 마련 등 전통적 의미의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뒤섞여서 진보세력을 이룰 뿐이다. 필연적으로 언제든 도덕적 일탈의 개인이 나올 수도 있는 구조인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도덕적이지 않은 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의기억연대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조중동이 100년 동안 저지른 과에 비하면 천분의 1, 만분의 1일 것이고, 그 역사적 기여는 조중동의 백배 천배’(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페이스북 인용)라는 항변처럼 억울함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항변 또한 많은 이들에게 ‘겨 묻은 개와 × 묻은 개’ 사이의 싸움처럼 비쳐지기 일쑤다. 이제는 시민이 나설 때다. 일탈하는 진보세력 내 개인은 따끔히 단죄하더라도 그 가치와 방향까지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옥석구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사회의 힘은 시민에 있기 때문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중국 법원, 상간녀에 “부정행위로 받은 모두 돈 갚아라” 명령

    중국 법원, 상간녀에 “부정행위로 받은 모두 돈 갚아라” 명령

    결혼 20년 만에 남편의 부정행위를 눈치 챈 아내가 상간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약 6년 동안 계속된 남편의 부정행위 중 상간녀 양 모 씨에게 송금한 금액을 반환하는 소송에서 법원이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현지 유력 언론 왕이신원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로 결혼 20년 째의 아내 리 씨는 남편 천 씨가 약 6년 동안 상간녀 양 씨와 부정한 관계를 이어 온 것을 알게됐다. 지난해 8월 항저우 시에 거주하는 아내 리 씨가 남편 천 씨의 휴대폰을 무심히 확인하던 중 상간녀와 나눈 대화 목록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남편 천 씨는 지난 2013년 우연한 기회에 상간녀 양 씨와 만난 뒤 중년의 나이에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여겼다고 아내 리 씨에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천 씨는 이후 약 6년 동안 상간녀 양 씨와의 부정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시기 천 씨는 양 씨에게 수차례에 걸쳐서 목돈을 송금했으며 양 씨는 천 씨로부터 송금 받은 약 60만 위안(약 1억 400만 원)으로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 작은 상점과 자동차 등을 구매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아내 리 씨는 관할 법원에 남편 천 씨가 상간녀에게 송금한 금액 약 1억 원을 돌려달라는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해당 금액 반환 청구 소송에서 관할 법원 판사는 아내 리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법원은 남편 천 씨가 송금한 금액이 많게는 8888위안(약 154만 원)부터 적게는 1314위안(약 23만 원)까지 수 십 차례에 걸쳐 전송된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해온 아내 리 씨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고려해, 이번 사건은 남편 천 씨가 아내와의 공동 재산을 무단으로 훼손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사건을 최종적으로 판결한 담당 판사는 “부부가 공동 소유한 재산에 대해 평등한 처분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혼인 관계가 존속되는 동안 부부는 반드시 공동으로 향유한 재산에 대해 공동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산에 대한 처분 행위에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이 행위는 무효로 돌아간다”면서 “이번 사건은 사진과 SNS로 주고받은 기록, 계좌이체 등의 증거에 기반해 남편의 부정행위가 인정된다. 60만 위안(약 1억 400만 원)을 송금한 행위는 남편이 배우자 몰래 한 행위로, 이는 일종의 증여행위”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배우자의 동의나 사후 추인이 없다는 점에서 공동 재산을 훼손한 행위라는 것. 특히 법원은 상간녀 양 씨가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행위를 통해 얻은 재산은 무효가 되며, 반드시 해당 재산을 아내 리 씨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상간녀 양 씨는 천 씨로부터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받은 60만 위안, 한화로 1억 여 원을 모두 반환할 처지에 놓인 상태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낡은 배가 있네? 짠! 어린이 놀이터로

    낡은 배가 있네? 짠! 어린이 놀이터로

    폐선 위기 한강 아라리호 리모델링 암벽놀이·볼풀장·냉난방장비 갖춰 파노라마 뷰 활용 낚시놀이도 가능“단순한 실내 공간이 아니라 버려진 배 안의 놀이 공간이라는 데 재미와 상징이 있습니다.”지난 19일 서울 도봉구 창동의 초안산 생태공원. 공원 입구에는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 대형 유람선이 들어서 있었다. 도봉구가 한강에 정박 중이던 노후 유람선 ‘아라리호’를 이랜드크루즈로부터 무상 기증받아 이색적인 어린이 실내놀이터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조성했다”며 “기존에 도봉구가 폐버스를 도서관으로 만든 것처럼 버려진 것을 되살렸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아라리호와 도봉구의 인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청의 한 직원이 평소 알고 지내던 이랜드크루즈 관계자로부터 우연히 아라리호가 건조된 지 20년이 지나 폐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도봉구에 기증하라고 권유했다. 아라리호는 길이 25.3m, 폭 5m, 높이 4m 규모의 선박으로 1992년에 건조됐다. 아라리호 운반은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거대 유람선인 만큼 운반 자체가 어려운 데다 차량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도봉구는 지난해 9월 아라리호를 해체한 뒤 차량 운행이 거의 없는 새벽에 한강에서 초안산 생태공원으로 옮겼다. 이후 4억원을 들여 엔진, 의자 등 내부시설물을 철거하고 어린이 놀이터로 리모델링했다. 초안산 유람선 놀이터는 총면적 130㎡ 규모로 암벽놀이, 볼풀장, 트램펄린, 언덕오르기, 미끄럼틀 등 다양한 놀이시설 외에 공기청정기와 냉난방 장비를 갖췄다. 특히 유람선이라는 점에 착안해 파노라마 뷰를 활용한 낚시, 모래놀이, 복층 형태의 조타실을 활용한 다락방 등 배와 관련된 시설을 마련해 눈길을 끈다. 이 구청장은 “공공 실내놀이터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지킬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어린이들이 미세먼지, 폭염 등 날씨에 상관없이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 이언영(36)씨는 “도봉구에 아이를 위한 실내 놀이공간이 부족한데 집 근처에 구에서 운영하는 훌륭한 실내 놀이 공간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아이들이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깨끗하게 관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람선 놀이터 개관을 미룬 구는 다음달 시범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10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예약제(90분 단위)로 운영된다. 이용료는 무료로 최대 20명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 각자의 작약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 각자의 작약

    식물세밀화를 그리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식물 기록을 필요로 하는 식물 연구자부터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의 디자이너와 연구원, 요리사 혹은 한의사처럼 식물을 활용하는 분야의 사람들까지. 식물을 관찰하느라 숲에서 늘 고요히 있으면 나도 아주 가끔은 사람이 고플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일로 만난 이들과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꽤 즐긴다.우리는 식물을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다. 한의사에게 식물은 약재이며 요리사에게는 식재료, 화장품회사 연구원에게는 원료, 아로마세러피스트에게는 오일이다. 내게 식물은 언제나 ‘그릴 대상’ 혹은 ‘숙제’였던 것 같다.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내가 일하던 수목원 표본관에는 식물분류학자와 생태학자, 원예학자 등이 있었다. 멀리에서는 다 같은 식물학자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사실 전혀 다른 각도로 식물을 바라보고 연구한다. 화단에 핀 장미 사진을 찍더라도 식물분류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꽃자루의 길이나 꽃받침의 털처럼 분류 키에 집중한 클로즈업 사진을 찍는 반면, 원예학자와 원예가는 관상의 주요 부위인 꽃을 위에서 찍는다. 조경가와 조경 디자이너는 식물이 식재된 정원과의 조화를 중심으로 프레임을 넓게 잡는다. 난 이런 다양성에 늘 감동했다. 모두가 같은 시선에서 같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한 것. 그래야 비로소 이상적인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다. 오히려 식물을 향한 시선이 더 세밀하게 쪼개지고 깊숙해지기를 바랐다.얼마 전 강의하러 간 학교 화단에서 어떤 품종인지 모를 진분홍의 작약을 보면서 이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꽃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크고 아름다워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화훼식물인 작약. 학부 동기의 결혼식 날, 플로리스트 친구들은 테이블 장식의 흰색 작약을 가리키며 작약이야말로 결혼식에 빼놓을 수 없는 절화라고 했다. 그야말로 행복한 결혼을 상징하는 꽃이라며. 어디에서든 장식의 메인이 되고, 대개 수입되는 것이 많아 다른 절화보다 비싼 편이라고 한다. 작약은 주로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에서 재배되는데 최근 우리나라의 작약 재배 농가도 늘고 있다. 작약은 백화점과 면세점에도 있다. 고대부터 향료로 이용돼 왔기 때문에 웬만한 향수 브랜드에는 ‘피오니’란 영명의 작약 향수가 있다. ‘피오니’는 그리스신화 속 치유의 신인 ‘파이온’(Paeon)에서 유래하고, 작약의 속명 또한 ‘파이오니아’(Paeonia)다. 작약의 향기는 대개 우아하면서도 달콤하다. 물론 정원에도 작약은 피어 있다. 지난해 한 약용식물원에서 식물을 관찰하다가 정원에 핀 참작약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봤다. 약학대학의 학생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작약 앞에서 유난히 오래도록 감탄하며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작약은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약재로 꼽힌다. 동의보감에 작약은 몸이 저리고 아픈 것을 낫게 한다고 기록돼 있으며, 실제로 뿌리를 말려 달여 먹으면 신경통, 근육통을 완화하는 데 좋다고 알려졌다. 학생들은 약초도감에서나 봤던 작약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위인 뿌리는 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이 정원을 담당한 원예가는 행여 학생들의 애정에 막 개화한 작약이 훼손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표정과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정원에 핀 작약을 보면서 원예가는 어떻게 하면 작약이 죽지 않고 잘 생장할까를 떠올리고, 약사는 보이지 않는 작약의 뿌리를 상상한다. 분류학자와 생태학자는 이들의 자생지에 갔던 기억을 회상하거나 외국 품종보다는 우리나라 자생 참작약이나 백작약을 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작약이 기특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에게 작약은 기한 없는 숙제와 같다. 아직 그리지 못한 식물을 볼 때면 늘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작약 중 멸종위기종인 산작약을 언젠가는 그리겠다는 다짐을 매해 되풀이한다. 이렇게 정원에 핀 작약을 보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할지언정 막상 우리가 작약을 만난 순간만큼은 하나같이 기뻐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식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이것을 계속 실감하는 것이 식물을 매개로 살아가는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산과 들, 꽃집과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난 작약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아직은 아름답다는 감상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면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식물을 더 많이,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나의 세계는 더 넓어질 것이다.
  • 할머니와 포옹 원했던 10살 손녀, 코로나 예방 ‘비닐 커버’ 제작

    할머니와 포옹 원했던 10살 손녀, 코로나 예방 ‘비닐 커버’ 제작

    미국에 사는 10살 소녀 페이지 오크레이는 사랑하는 조부모와 어떻게든 포옹하고 싶었다. 비닐 커버를 활용해 포옹하는 어느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우연히 본 소녀는 자신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19 감염 위험 없이 포옹할 수 있는 특별한 비닐 커튼을 직접 만든 소녀의 사연을 폭스뉴스 등 현지매체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사는 페이지는 집 현관에 자신이 손수 만든 포옹 커튼을 달고 조부모와 따뜻한 포옹을 나눌 수 있었다.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페이지는 “이제 포옹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귀여운 손녀가 만든 포옹 커튼을 이용해 포옹하며 서로 온기를 나눴다. 페이지의 어머니 린지는 현지 간호사로 포옹 커튼을 만드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준비물을 마련하는 것을 도와주긴 했으나 제작은 딸이 100% 혼자 몇 시간 동안 했다고 밝혔다. 이날 페이지는 오전부터 샤워커튼과 비닐팩, 일회용 종이접시 그리고 글루건 등의 재료를 사용해 포옹 커튼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미국 여러 지역에서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막으면서 포옹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차례차례 등장하고 있다.페이지가 본 영상은 아칸소주 콘웨이에 사는 폴 아유브가 촬영해 틱톡에 공유한 것인데 이들 가족 역시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비닐을 사용해 가족끼리 포옹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는 그의 아내가 처음 떠올린 것으로, 할머니와 손녀가 포옹하는 모습을 담은 해당 영상은 화제가 돼 많은 사람을 웃는 얼굴로 만들었다.일리노이주에 사는 85세 할머니 로즈 가뇽 역시 외손녀 칼리 마리나로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과 포옹을 즐겼다. 고령으로 지난 두 달간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는 이 할머니는 손녀 집에 초대됐을 때 마당에 설치된 허그 머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덕분에 이 할아버지는 손녀는 물론 증손주들과 포옹하는 기쁨을 누렸고 그 모습은 유튜브 등에 공유돼 화제를 모았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하루 시작은 늘 새벽 3시… 24년간 원고 지각 없었죠”

    “하루 시작은 늘 새벽 3시… 24년간 원고 지각 없었죠”

    그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모두가 한창 잠들어 있을 시간 커피 한 잔과 빵 하나를 집어 컴퓨터 앞에 앉은 송정연 작가의 손끝에서 SBS 최장수 라디오 ‘이숙영의 러브FM’의 원고가 탄생한다. 1996년부터 24년간 매일 아침 7~9시 방송을 책임진 그는 “학창 시절 개근상은 못 타 봤지만 원고는 지각해 본 일이 없다”며 “새벽의 고독과 매일의 일상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 작가의 카카오톡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이숙영의 러브FM’ 소개 이미지였다. 눈 뜬 순간부터 잘 때까지 청취자 문자 수신 번호 ‘#1035’를 읊조린다는 그에게 프로그램은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일 만도 하다. 그에게 글은 운명이었고, 일은 우연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스스로 ‘교지학과’를 나왔다고 말할 정도로 학내 교지에 열정을 쏟다가 취업할 때가 돼 한 잡지사에 서류를 냈다. “학과 공부는 뒷전이다 보니 불안한 마음에 그동안 썼던 글을 다 모아 잡지사에 들고 갔어요. 처음에는 이상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셨는데, 나중에 신입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표님이 ‘글 쓴 것을 보고 애초부터 합격 낙점을 해 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잡지 기자로 일하던 중 송 작가는 인터뷰차 만난 방송사 PD에게 라디오 작가 제의를 받았다. “기사가 마음에 드는데, 원고를 써 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글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집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에 덥석 들어간 프로그램은 오전 5시부터 30분간 하는 ‘새벽을 열며’였다. 그때가 1985년, 라디오 작가 일을 시작했고, 여기서 이숙영 아나운서를 처음 만났다. 그러나 잡지사에 몸담은 채 ‘투잡’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어요. 취재할 시간도 없는데, 덜 쓴 원고로 녹음을 해야 할까봐 불안감에 시달렸죠.” 아예 라디오 작가로 전업한 그는 ‘유열의 음악앨범’ 등에서 쏙쏙 들어오는 오프닝 멘트와 감성 어린 글로 청취자의 귀를 사로잡았다. “방송, 사랑, 그리고 비행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출발할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든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음악앨범’의 진행을 맡은 새로운 DJ 유열입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2019)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날 때 흐르는 DJ 유열의 오프닝 멘트도 그의 작품이다. KBS FM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 아나운서가 1996년 SBS로 터를 옮기면서 송 작가에게 “같이 방송하자”고 제안해 두 사람은 재회했다. 그렇게 다시 호흡을 맞춰 온 햇수를 모두 합치면 올해로 30년.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매일 뉴스와 날씨를 전하고, 그때그때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던 것 같아요.” 매일 새벽 3시에 눈을 떠 6시면 집을 나서는 탓에 30년 가까이 아들에게 아침밥을 차려 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서른 살이 된 아들은 자립심이 매우 강하다”는 게 그의 유쾌한 해석이다. ●“새벽 출근으로 아들 아침밥 해준 적 없어” 이숙영 DJ가 콕 집어 송 작가에게 함께하자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터. 스태프들이 송 작가에게 쓴 생일 메시지에는 “스튜디오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 기분이 급 좋아지는 매직 걸”, “이숙영의 러브FM의 긍정파워 해피 매직”이라는 칭찬이 빼곡하다. 송 작가는 쑥쓰러운 듯 말했다. “(이숙영) 언니가 굉장히 문학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장난기도 많아요. 말장난 같은 ‘하급’ 유머부터 아주 고급스러운 원고까지 다양한 것을 모두 소화해 내요. 그래서 쓰는 맛이 나는 진행자예요.” 30년간 한번도 이숙영 DJ가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다는 송 작가는 오랜 시간 동행의 비결에 대해 ‘적당한 거리 두기’를 꼽았다. “사적으로는 자주 만나지 않아요. 하지만 일에 대해서는 회의도, 대화도 많이 하죠.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된 듯해요. 마음은 크리스마스나 생일 카드로 전달돼요.” PD가 20명 이상 바뀌는 동안 송 작가가 롱런한 또 다른 비결은 20대 청년들을 최대한 자주 만나는 것이다. 그는 대학이나 작가협회 강의를 통해 연을 맺은 1990년대생들과 꾸준히 교류한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자 선배로서 실무적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86세대에서도 고참급 나이지만 그는 ‘꼰대 마인드’를 버리자고 항상 다짐한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가르치려는 마음보다는 그들의 인생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선배로서 작가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서는 최대한 알려 주되 훈계는 금물이에요. 강의실을 나오면 맛있는 밥 한 끼 함께 먹으며 이 친구들의 생각을 최대한 들어 보자 마음 먹어요.”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방송한 뒤 후회하지 않는 성격도 강점이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면 지나간 방송은 뒤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내일만 바라본다. 송 작가는 “매일 방송을 하는 사람은 과거를 생각하면 안 된다”며 “진흙이 묻은 장화를 털고 앞으로 나가듯이 다음날 방송을 위해서는 ‘후회는 없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쓰고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다만 방송을 위한 준비는 자신만의 온라인 도서관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해 둔다. 기억과 저장이 늘 습관이 돼 영화, 책, 스포츠, 정치, 계절 등 그때그때 보고 느낀 것들을 소재별로 적어 두고 필요할 때 원고에 활용한다. ●책 12권 펴낸 실력파… “여동생도 작가” 새벽 글쓰기도 몸에 뱄기 때문에 송 작가는 생방송이 없는 주말에도 같은 시각 눈을 뜬다. 평일은 청취자와 소통을 위한 글을 쓴다면 주말은 오롯이 자신만의 글을 쓰는 시간으로 비워 둔다. 덕분에 그사이 소설 4권을 포함해 총 12권의 저서가 쌓였다. 영화로도 제작돼 23만권이 팔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열일곱살의 쿠데타’를 비롯해 드라마를 쓰는 동생 송정림 작가와 함께 낸 에세이들도 잔잔한 매력으로 사랑받았다. 송 작가는 두 사람을 전업 작가로 키운 것은 부모님의 교육 방식 덕분이라고 돌이켰다. 그는 “제주도 시골에서 여섯 남매가 자라면서 다들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며 “집에는 책이 곳곳에 널려 있었고, 그 속에 파묻혀 세계명작과 고전, 만화책까지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고 떠올렸다. 읽을 책이 떨어지면 남매들은 같이 이야기를 만들고 역할극을 하며 놀았다. 성적이 나쁘다거나, 책을 정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나 본 적도 없다. 송 작가는 “엄마는 과수원에서 일하다 집에 와도 흙 묻은 신발을 벗자마자 책을 잡았다”며 “엄마가 보내 주신 편지들은 하나 하나가 시적이고, 그런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제주도판 ‘작은 아씨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글에 빠진 두 작가는 평생 좋은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됐다. 송 작가는 동생을 ‘천재’라고 치켜세웠다. “정림이의 원고지에는 꽃송이와 눈송이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글이 아름다워요. 최근 동생이 2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썼다고 책 ‘엄마와 나의 모든 봄날들’을 건넸는데, 읽다 보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송 작가에게 라디오는 딱 맞는 매체다. 끝이 없다는 듯 라디오의 매력을 열거한 그는 “매일 현재에 집중하며 감성을 채워 넣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라디오는 ‘물기’예요. 특유의 촉촉함을 갖고 있어서 감성을 메마르지 않게 해 줘요. 바람과 꽃잎 하나도 소재가 되고, 일상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청취자와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라디오만의 생생함이죠.”현재 ‘이숙영의 러브 FM’ 청취자로 구성된 온라인 모임에는 1만 1000명이 넘는 고정팬이 가입해 가족처럼 안부를 주고받는다. 모두들 마음의 온도가 높은 사람들이어서 이들과 교류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송 작가는 이러한 친밀함에서 라디오의 미래를 본다. 각종 플랫폼과 숏폼 등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도 소수 정예의 청취자를 중심으로 진화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더 강해질 거예요. 그러다 보면 300명, 500명의 정예 청취자를 위한 라디오로 분화되지 않을까요. 시각보다 청각이 아련함을 자아내기도 하고 그래서 중독성이 있거든요. 방송작가를 은퇴하게 되더라도 형태가 변형된 또 다른 라디오를 기획하고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눈 깜짝할 사이 60만원…진화하는 카톡 피싱 [김채현의 EN톡]

    눈 깜짝할 사이 60만원…진화하는 카톡 피싱 [김채현의 EN톡]

    “엄마, 나 핸드폰 액정 나가서 수리 맡겼어”, “전화 안 되니까 톡 줘”, “티켓번호 문자로 가면 알려줘” 대구에 사는 A씨(58)가 실제로 아들 B씨(29)이름으로 받은 카카오톡(카톡) 내용이다. 메신저에 뜬 아들 이름이 똑같고, 친구들과 공연 보려고 문화상품권을 구매해달라고 하기에 아무 의심 없이 돈을 송금했다. 평소에도 핸드폰을 자주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기 때문에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평소에도 아들이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가고, 아들 이름으로 연락이 와서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며 “돈을 더 보내 달라는 요구가 이상해 확인해 보니 피싱 사기범이었다”고 말했다. 방송인 오정연도 최근 본인을 사칭한 신종 보이스피싱을 경험했다. 오정연은 지난 15일 인스타그램에 ‘신종 보이스피싱, 카톡피싱 경험담 공유’라는 제목으로 카카오톡 대화방을 캡처한 사진을 게재했다. 오정연은 “오늘 저를 사칭한 범인이 엄마께 카톡을 보내왔다. 요지는 600만원을 빨리 송금해달라는 것이었다”며 “다행히 범인이 계좌번호를 잘못 썼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300만원 바로 날린 셈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더욱 다행인 것은 범인이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제가 마침 엄마와 같은 집안(다른 방)에 있었다. 제가 우연히 딱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엄마는 제게 대면 확인 없이 600만원을 이체하려 하셨었다네요”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아들’이나 ‘딸’ 등으로 접근해 가족에게 문화상품권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새로운 형식의 피싱 범죄로 떠오르고 있다. 카톡 피싱은 주소록을 털어 가족·친척 및 친구 전화번호를 빼내 카카오톡 등록 후 핸드폰이 고장 났다며 문화상품권 등의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을 빌린 뒤 소액결제 기능으로 문화상품권을 구입해 이를 가로채는 식이다.문화상품권, 현금처럼 익명성 강해 ‘음성 화폐’로 악용 문화상품권은 애초 도서, 영화, 공연, 게임 등 다양한 문화상품 이용을 촉진하는 결제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금처럼 익명성이 강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는 범죄자들이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추적이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등 금융범죄뿐만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된 ‘n번방’, ‘박사방’ 등 여성들의 성 착취물 유통 과정에 ‘음성 화폐’로 악용된다. 거래 수단으로 문화상품권을 언급하는 성 착취물, 마약 판매 글은 꾸준히 발견된다. 아직도 트위터 등 SNS에는 “무조건 문상(문화상품권) 거래만 한다”. “영상 15개에 1만원”, “문상 거래해야 입장 가능하다”는 글을 찾을 수 있다. 범죄에 악용하는 일이 많다 보니 성 착취물 등과 관련된 검거 사례에도 문화상품권은 빈번히 등장한다. ‘친구로 등록되지 ○○○ 사용자입니다’ 한 번 더 확인 카카오톡 ‘문화상품권 피싱 사기’ 예방법은 없을까. 먼저 지인 이름이라도 새로운 창이 열리면 카카오톡 맨 위 대화창에 ‘친구로 등록되지 ○○○ 사용자입니다. 금전 요구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뜬다. 사전에 친구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카카오톡 보이스 피싱일 경우가 농후하다. 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금전을 요구한다면 꼭 전화로 확인한다. 특히 해외지역에서 포털사이트 로그인이 시도된다는 메시지가 오면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고 2단계 로그인 서비스를 이용하여 보안을 강화해야 하며, 카카오톡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을 주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카카오톡 피싱 당해 돈을 계좌이체 한 경우 빨리 해당 은행고객센터 또는 국번 없이 112신고하여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문화상품권을 결제를 한 경우는 해당 소셜커머스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결제취소를 해야 한다. 만약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면, 먼저 카드사에 전화해 결제승인번호를 알아낸 뒤, 승인번호를 해당 고객센터에 말하면 취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화상품권 피싱은 소셜커머스에서 충전 후 바로 화폐로 교환하는 등 세탁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다. 전문가들은 문화상품권을 지불수단으로 이용한 범죄도 추적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악용을 막으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대포통장 구하기가 까다로워지면서 ‘검은돈’ 세탁에 문화상품권이 쓰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은행·증권 거래를 금융감독원이 감시하듯 상품권도 발행·유통·사용에 이르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피싱 피해자들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디에 홀린 것 같았다”고 말한다. “누가 요즘 보이스피싱을 당하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날로 진화하는 범죄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 김채현 기자의 EN톡 : 독자들이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마이클 조던의 서명 들어간 ‘짝짝이 농구화’가 무려 7억원

    마이클 조던의 서명 들어간 ‘짝짝이 농구화’가 무려 7억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의 서명이 들어 있는 트레이너 운동화가 56만 달러(약 6억 8900만원)에 팔려 농구화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조던이 1985년 미국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에서 루키 시즌을 보내며 신던 나이키 에어 조던 1 브랜드로 소더비가 실시한 17일(현지시간) 온라인 경매에서 새로운 기록을 썼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종전 기록은 나이키의 1972년 문 슈즈로 43만 7500 달러(약 5억 4000만원)였다.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오리건주에서 열린 시범경기에 미국 대표 선수들이 처음 신어 본 모델로, 단 12켤레만 제작됐는데 그 중 하나가 지난해 7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새 주인을 맞았다. 조던의 트레이너는 당초 경매를 앞두고는 10만~15만 달러에 팔릴 것으로 예상됐는데 사곘다는 사람이 10명이 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져 네 배 가까이 올랐다고 미국 CNN은 전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농구화 박물관을 운영하는 조던 겔러가 사들였다. 재미있는 것은 ‘짝짝이’였다는 것이다. 조던은 원래 두 발 사이즈가 달랐다. 왼쪽 사이즈가 13, 오른쪽은 13.5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넷플릭스에서 불스의 1997~98시즌, 구단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할 때의 뒷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가 공개된 시점에 경매가 진행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침몰 3년 지나도 원인 몰라… 외교부, 수색 정보공개 시간끌기”

    “침몰 3년 지나도 원인 몰라… 외교부, 수색 정보공개 시간끌기”

    2017년 3월 31일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가던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 우루과이 해역에서 침몰했다. 이 배에 타고 있던 한국인 선원은 8명. 3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선원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리고 배가 왜 침몰했는지 밝혀진 게 없다. 지난해 2월 정부가 심해 수색을 통해 사람 뼈로 보이는 유해 일부를 발견했지만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수색업체와 계약을 할 때 유해 수습 문제는 빠져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심해 수색을 한다고 발표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한 차례로 끝났다. 실종자 가족은 주무부처인 외교부를 상대로 심해수색용역 계약서 등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외교부는 거부했고 결국 법원으로 갔다. 1심은 지난달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외교부가 다시 항소했다. 실종자 허재용(침몰 당시 33세) 2등 항해사의 친누나들이자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영주(오른쪽·43)·경주(왼쪽·41)씨는 지난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교부가 시간 끌기를 한다”며 “침몰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나선 지난 3년간 살아남은 가족들의 시계도 멈췄다”고 말했다.-시간 끌기라고 보는 이유는. “1심은 대법원 정보공개법 판례에 충실했다. 유해는 점점 부식되고 사라지는데 외교부는 3심까지 갈 모양이다. 그사이 인사발령이 나서 담당자는 바뀔 것이고, 가족들 힘빼기로 가는 것 같다.” 지난달 1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성용)는 허씨 측이 외교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허씨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만일 공공기관이 계약 상대방과의 비공개 합의만으로 해당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를 회피할 목적으로 계약 내용에 비공개 합의를 넣어 정보공개법 규정을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유해 수습이 시급한데. “확인된 게 없으니 사망신고를 못 하고 있다. 그러니 동생은 법적으로 자연인이다. 주민세도 내고 운전면허증도 갱신하라고 해서 어머니가 직접 다녀왔다.” -2차 수색은 진척이 없나. “예산이 없다고 한다. 선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해도 외교부는 ‘세월호도 못했는데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하더라. 그런데 지난 1월 세월호 참사 관련 구상권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승소했다.”-정부 입장이 달라졌나. “우리도 궁금하다. 문제는 그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외교부 담당자를 못 만났다.”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인데 정부의 해결 의지가 안 보인다. “초반에는 주무부처를 인정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김영춘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외교부가 주무부처라고 해서 외교부에 찾아갔더니 ‘여기 와서 왜 이러느냐’고 하더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는 해외 재난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외교부 장관이라고 명시돼 있다. ‘해외 재난이 발생하면 외교부에 수습본부를 둔다’는 조항이 2012년 ‘외교부 장관이 중앙대책본부장 권한을 행사한다’는 규정으로 개정됐다. 외교부 장관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2017년 8월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이태규 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과 관련해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는 것을 질타하기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해외 재난이 발생할 경우 중앙안전대책본부장이 (외교부) 장관님이신 것은 알고 계시지요?” 취임 후 두 달 지난 강 장관은 “죄송하다. 이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됐다”고 답했다. -정부가 법을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침몰 이후 5개월 동안 실무자들이 어떻게 보고했길래 장관이 모른다고 했을까 싶다. 그 무렵 우리끼리 머리(대통령)가 바뀌어도 수족(관료)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서명운동이라도 다시 해야 하나. “2017년 8월부터 10만명 서명운동을 해서 2018년 1월 2일 청와대에 박스째로 들고 가 직접 냈다. 2019년 3월 2주기 때도 2차 서명운동지를 냈고, 올해 3월에도 3차 서명운동지를 제출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지금까지 서명운동 받은 인원만 20만명이 넘는다.” -서명운동이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이 광화문광장에서 일일이 시민들한테 설명해서 받아냈다. 더운 여름 10분도 쉬지 않고 생수를 머리에 쏟아부으면서 그렇게 다니셨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욕하고 때리고, 100원짜리 동전을 던지면서 ‘이거 먹고 떨어지라’고 해도 버티셨다.” -그 덕분에 1차 수색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 심해 수색에서 블랙박스(1개)를 수거하고 유해가 발견됐다고 했을 때는 ‘이제 수색 결과를 분석하고 복원하면 끝이겠구나’ 생각했다. 더이상 광화문에서 팻말 안 들고 서명 받으려고 사람들한테 매달리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블랙박스 분석 결과는. “영국 전문기관에 맡겼는데 데이터칩 두 개 중 하나는 깨져 있고 멀쩡해 보였던 나머지 하나도 7%밖에 복원이 안 됐다. 복원 내용도 유의미한 게 없었다. 더 깊은 바다에서 발견된 블랙박스도 복원이 됐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든다.” -침몰 원인을 밝혀내야 할 텐데. “스텔라데이지호는 일본에서 만든 유조선으로 2010년 폐선돼야 할 운명이었다. 한국 선사가 헐값에 사들여 중국에서 화물선으로 개조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 배를 운항할 수 있게 승인해 줬다.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예견된 인재(人災)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개조 화물선을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브라질 최대 철광석 회사인 발레사가 최근 개조 화물선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했을 때 이 회사 철광석을 운반 중이었다. 외국 기업이 이렇게 나선 건 스텔라데이지호뿐 아니라 개조한 유조선 전체가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선사는 책임을 졌나. “선사 회장이 선박안전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다만 침몰 전 상황을 가지고 판결이 난 것이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선사는 어떤 입장인가. “침몰 직후 회장은 회사가 부도 날 거라면서 그전에 빨리 합의하자고 하더라. 합의금 좀더 챙겨줄 수 있을 때 하자는 식이었다. 심지어 해양수산부 국장도 2주 만에 처음 나타나서 ‘회사가 배·보상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선사 직원이 ‘허씨 자매가 회사에 합의금 50억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무근이라는 점은 이미 사법부 판단을 받았다. 동생이 다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인을 규명한다고 해서 죽은 애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저희도 그게 너무 슬프다. 그래도 원인을 규명하려는 건 문제점을 밝혀 해상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동료들이 악플을 다는 건 너무 상처가 된다.” -이 직원은 명예훼손·모욕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일반인이었다면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 직원은 이 회사 공무감독이다. 누구보다 선원들과 많은 교류를 해 왔던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충격이 컸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6월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4단독 김동욱 판사는 “피고인이 작성한 글은 거짓된 사실에 기초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저급한 표현을 사용해 모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확정됐다. -진상 규명도 쉽지 않은데 싸워야 할 대상이 많다.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졌다고 한다. 저희는 이 힘든 시간을 3년 넘게 견뎌내고 있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노숙 농성을 하다 이명 현상이 심해져 왼쪽 귀가 잘 안 들린다. 약을 복용하시라고 해도 ‘내 몸 편하면 죄인’이라면서 참으신다.” -얼마 전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유가족들을 만나러 갔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재난을 직접 겪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24시간 곁에서 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글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무게 280㎏, 말레이서 초대형 민물가오리 낚여…2시간 사투

    무게 280㎏, 말레이서 초대형 민물가오리 낚여…2시간 사투

    말레이시아에서 초대형 민물가오리가 잡혔다. 말레이시아 ‘아스트로 아와니’는 14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 어부들이 거대 민물가오리를 낚았다고 전했다. 가오리는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그물에 우연히 걸려 있는 것을 현지 어부가 발견했다. 280㎏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성인 남성 4명이 달라붙어 2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겨우 끌어올렸다. 어부는 “아침 일찍 강에 뿌린 그물을 걷으러 갔다가 가오리를 봤다. 예전에도 가오리를 잡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큰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기네스북에 공식기록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민물고기는 2005년 태국 메콩강에서 잡은 무게 300㎏ 메콩자이언트메기다. 그러나 학자들은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이보다 더 큰 종일 것으로 여긴다. 특히 태국 프라야강과 메콩강에 서식하는 자이언트민물가오리는 무게 500~600㎏에 길이 4.6m, 폭 1.9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네바다대학교 어류생물학자 젭 호건은 과거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아마도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지구상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중 가장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거대 민물가오리 목격담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월 태국 차오프라야강에서는 폭 1.5m, 길이 3m의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목격됐다. 문제는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기도 전에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자이언트민물가오리는 강바닥에 숨어 사는 탓에 연구가 쉽지 않다. 음식 재료로도 부적합해 일부러 잡으려는 어부도 없어 우연히 어망에 걸려야 한 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개체 수는 지난 40년간 90% 가까이 급감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등재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수질 오염을 주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좋은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 이상한 선생님

    좋은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 이상한 선생님

    영화 속 선생님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도 있지만, 때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월정액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는 스승의 날을 맞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선생님이 등장하는 작품 6편을 소개했다. 영화 속에서 좋은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 이상한 선생님을 만나보자. ●스승의 은혜는 하늘…좋은 선생님 30년이나 지났지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는 참 스승의 모습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 분)은 자신이 졸업한 미국 입시 명문 웰튼 아카데미 고교의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수업 방식으로 입시에 집착하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전한다. 존 키팅의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학생들의 “오, 캡틴! 마이 캡틴!” 등 감동적인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유명하다.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의 명연기 외에도 로버트 숀 레오나드, 이선 호크의 앳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메디컬과 블랙코미디 장르가 공존하는 ‘낭만닥터 김사부’(2016)는 진짜 의사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극 중 김사부(한석규 분)는 올곧고 뚜렷한 철학을 바탕으로 의술을 펼치며,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춘들이 진짜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된다. 김사부 역을 맡은 배우 한석규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열연으로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눈 부라리고 때리고…무서운 선생님영화 ‘위플래쉬’(2014)는 최고의 드럼연주자를 꿈꾸는 학생과 최고의 실력자인 폭군 교수의 광기 어린 사제관계를 담았다. 음악대학 신입생인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는 우연한 기회에 악명 높은 플렛처(J.K. 시몬스) 교수가 이끄는 밴드에 합류한다. 플렛처 교수는 폭언과 학대를 통해 학생을 거칠게 몰아붙이기로 유명하다. 앤드류는 플랫처를 두려워하면서도 점점 실력을 쌓는다. 극 중 눈을 부라리며 앤드류를 몰아치던 플렛처 교수를 연기한 J.K. 시몬스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정지우 감독 영화 ‘4등’(2016)에는 대회에서 늘 4등만 하는 초등학교 수영선수 준호(유재상 분)와 그의 새 코치 광수(박해준 분)의 이야기다. 광수는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한 국가대표 출신이었지만, 코치의 체벌에 분노해 수영을 관둔 인물이다. 광수는 “도망가고 싶을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라면서 준호를 몰아친다. 여기에는 1등 하길 바라는 엄마의 비뚤어진 욕망이 있다. 최근 JTBC ‘부부의 세계’에서 호평 받은 박해준의 또 다른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선생 맞아?…이상한 선생님‘괴짜 선생님’하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 바로 ‘스쿨 오브 락’(2014)이다. 주인공 듀이 핀(잭 블랙 분)은 록 밴드에서 쫓겨나 생활고에 시달리자 초등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는 친구를 사칭해 학교에 취직한다. 시간 때울 궁리만 하던 그는 밴드 경연 대회에 참가하고자 아이들에게 록을 가르친다. 처음엔 장난 같았지만, 점차 아이들의 잠재성을 이끌어낸다. 듀이 핀 역할에 잭 블랙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의 열연이 돋보인다. 2013년 미국 개봉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큰 흥행을 거뒀다.학생들을 인질로 삼은 담임교사도 있다. 지난해 방송된 일본 드라마 ‘3학년 A반-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질입니다-’는 유서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학생의 진상을 마주하기 위해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인질로 잡는 상황으로 눈길을 끈다. 주인공 이부키(스다 마사키 분)는 2년 전 부임한 미술교사로, 졸업을 열흘 앞두고 학생들에게 10일간 인질이 되어 달라고 요구한다. 독특한 상황 설정과 땀을 쥐는 연기로 제100회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의 5관왕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5.18 살아남은 자의 아픔’, 40년 만에 작품으로 고백한 김근태 화백

    ‘5.18 살아남은 자의 아픔’, 40년 만에 작품으로 고백한 김근태 화백

    오롯이 40년이 걸렸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 미술학도의 신분으로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야만 했던 김근태(63)화백. 눈앞에 쓰러져있던 많은 시체들과 쌓여진 총들, 저항에 참여해 달라는 주위의 외침을 뒤로한 채, 도청을 떠난 순간부터 시작된 정신적 충격과 기억의 쓰라린 아픔은 40년의 긴 시간을 그와 함께 했다. “전일빌딩 옆에 제가 있었어요. 헬리콥터 나는 소리도 들었고 총소리도 들었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은 머리 쪽에 총을 맞은 거 같았어요. 피가 온전히 다 흘려서 하얗게 변해 있는 모습이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죠.” 기억을 도려내기 위해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4번의 극단적 선택, 학생들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죄책감으로 교단에서 떠나야만 했다. 방황하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지적장애인들이었고 그들의 모습과 영혼을 30년간 화폭에 담아왔다. 이달 13일부터 내달 21일까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5관에서 5·18 민주화운동 이후 40년간 그가 직접 경험한 트라우마를 담은 작품을 화폭에 담아 선보인다. ‘오월, 별이 된 들꽃‘이란 이름으로. “40년 만에 여기 와서 보니 5월의 생생했던 모습이 떠올라요. 전두환이 지시를 내려서 죽은 영혼들을 태워 흔적을 없애려 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토우 천 개와 한지 천 개를 만들어서 광주의 아픔을 담았고, 한(恨)의 노래도 들을 수 있어요. 이곳에 마음껏 오셔서 그날의 현장을 느끼면서 아픔을 넘어 치유가 되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8일 전남 무안 옛 죽산분교 작업실에서 김근태 화백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Q) 장애인만을 그린 지 30여 년, 왜 지적장애인만을 그리는지4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 학교도 가지 못했고 늘 외롭게 지냈다. 누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한참 뛰어놀 나이에 다른 아이들과 달리 왜 죽는지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꼬마 철학자가 됐다. (Q) 장애인들을 그릴 때 5.18 민주화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화백님께 5.18이란대학교 2학년 때 당시 23살 청년이었다. 총을 들고 마지막까지 옛 전남도청 정문을 지키는 사태수습 시민군이었다. 길거리에 아줌마의 배에서 터져 나온 피와 창자, 많은 시체들, 쌓여진 총들. 저항에 참여해 달라는 외침 등이 기억난다. 도청이 계엄군에 장악됐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애원에 도청 담을 넘었다. 죽음이란 최후의 시간을 앞두고 시시각각 조여 오는 극한의 긴장과 두려움, 그 터질 듯한 공포로부터의 본능적인 탈출이었다. 이후 나만 살아남았다는 자괴감은 모든 걸 마비시켰다. 무시로 일어나는 일탈로 교단에서 퇴직하게 됐고 신혼 중에 4번의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다. 아내조차도 오랫동안 그 아픔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오월로부터 살아남은 내 젊은 날의 일그러진 초상이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또한 내 인생의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지적장애인을 만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Q) 가장 낮은 자를 예술작품으로 담는 일이 5.18 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단지 나 자신만을 생각했고 위했다면 5.18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돈을 생각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가장 낮은 자의 모델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인간의 본질로 살려고 했던 그런 정신 상태에서 기초했던 거 같다. (Q) 어떻게 눈과 청력을 잃게 됐는지이후 한국을 떠나 프랑스, 인도 등에서 방랑자처럼 살았다. 옥죄어 오는 맨 정신의 고통을 털어보려고 술에 의존한 채 살았다. 결국 음주운전을 하다 담벽을 덮쳐 한쪽 눈의 망막이 크게 다쳤고 눈의 시신경과 연결된 청력이 손상된 거 같다. (Q) 폐인처럼 지내던 삶 속에 지적장애인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는데광부가 금맥을 찾은 느낌이었다. 목포 앞바다 작은 섬 고하도 목포공생재활원에서 누워 대소변을 타인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손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들을 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뒤틀린 자세로 모여 있는 그들의 모습은 오월 기억 속 주검들과 다를 바 없었고 내적 고통으로 헝클어진 내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됐다. 우연찮게 접하게 된 강렬했던 그 모습들은 나 자신의 피폐해진 현재의 삶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자각하게 만들면서 트라우마의 구덩이로부터 벗어나 자아회복과 치유로 나아가는 전환의 계기가 됐다.(Q) UN본부에 전시됐던 100미터짜리 ‘들꽃처럼, 별들처럼’의 의미는지적장애인을 그린 작품들로 2012년 7월부터 3년여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 붙였다.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적장애인이 오히려 인간의 순수 본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점과 그곳에 전시돼 있던 그림 속의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떠나는 소풍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 외에도 베를린 장벽전시회, 리우패럴림픽 기념 전시회 등 많은 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모든 과정들 또한 광주의 아픔에 대한 보이지 않는 치유과정 아니었나 생각한다. (Q) 장애인들의 사실적인 모습에서 점차 상징성이 담긴 그림으로 변화되었는데상징과 암시가 더해지다면서 형상이 점차 생략되더니 최근에는 아예 비정형의 추상 화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주제나 주인공들은 그대로다. 외적 형상 위주에서 차츰 내면세계와 본질로 향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조형적 변화일 수 있지만, 시력과 청력의 감각장애에 따른 불가피한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양쪽 청력을 잃은 데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이게도 나머지 한쪽 눈마저 시력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하지만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세상의 언어로는 한계가 있는 지적장애아들과의 소통에서 현상 너머 그들 영혼과 우주자연의 존재들과의 영적 교감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40년 만에 작품으로 다시 찾게 된 옛 전남도청,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이곳에서 전시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18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픔이 치유된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지 70장을 샀다. 한지에 붉은 채색으로 그려 오월정신을 핏빛으로 담고 싶었다.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담은 한 작품 ‘오월빛’을 그렸다. 다시 옛 생각이 살아나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고 나서 더 이상 화폭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5.18의 아픔을 그리는 대신 영혼을 위로하고 회복되는 예술작품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토우 1천 인, 1천 인의 한지조형 작품, 지적장애인을 그린 4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기쁨으로 돌아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 전시는 내 역사에서 영원히 남을 거 같다. 눈과 귀가 안 좋아지면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에 더 의지한 거 같다. 그로 인해 작품에 몰입하는 정신력은 더 강해졌고 지적장애인들의 마음을 더 공감할 수 있었다.(Q) 토우 1천 인은 어떤 분들인가5.18 민주화운동 참여자, 사상사, 행불자, 살아남는 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토우 제작 과정 중 떨어지고 상한 토우와 완성된 토우들이 아픔과 상처의 벽을 넘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군상은 슬픔을 넘어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한지로 만든 1천 인도 물론 5.18의 아픔을 담아낸 작품이다.(Q) 내면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가장 큰 원동력은 종교의 힘이었다. 새벽기도를 통해 큰 믿음을 얻게 됐다.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될 수 있었고 지혜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을 그리면서 순수한 에너지를 받았고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전시를 하면서 도와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 칭찬 또한 큰 힘이 되었다.(Q) 지난해 장애어린이들의 화가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김근태미술상 공모전을 제정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지난해 장애어린이들의 화가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김근태미술상 공모전을 제정했다. 자칫 김근태를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있다. 발달장애 작가들 그림과 글을 엮어주는 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올해 처음 제1호 책이 나왔다. 또한 그림에만 머물지 않고 뮤지컬, 영화로 가치미학을 더 확장하고 싶다. 더 큰 꿈은 세계 발달장애 작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가칭 ‘미술페럴림픽’같은 국제 대회가 설립돼 발달장애 작가들의 꿈과 열정이 표현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소망한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sungho@seoul.co.kr 임승범(인턴)
  • “만취 상태로 운전”...해안도로 20km 도주 운전자 검거

    “만취 상태로 운전”...해안도로 20km 도주 운전자 검거

    만취 상태에서 경찰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무려 20㎞를 달아난 음주 운전자가 시민들의 활약으로 검거됐다. 14일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0시 39분쯤 광안대교 상판에서 “차선을 지그재그로 오가는 음주 운전 의심 차량이 있다”는 112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차량 이동 방향으로 순찰차를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신고 3분 만에 남구의 한 도로를 지나는 음주운전 의심 폭스바겐 차량을 발견하고 뒤쫓기 시작했다. 해당 차량을 향해 경찰은 수차레 정지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운전자는 이를 무시하고 남항대교 방면으로 계속 도주했다. 한밤 추격전이 10분 넘게 이어지던 중 우연히 이를 목격한 시민의 도움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당시 서구 천마터널 인근에서 차량을 운행하던 시민 조모씨가 도주 차량을 추월해 차량을 세우면서 도주로를 차단해 버린 것. 후진으로 도망가려던 폭스바겐 차량 운전자는 뒤쫓아 오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폭스바겐 운전자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한 결과, 면허 취소수준(0.08%)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A씨가 도주한 거리는 무려 약 20㎞였다. 경찰은 “음주운전을 신고한 시민과 추격전을 목격하고 용감하게 도주 차량 앞을 막아준 시민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검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시민 A씨는 “우연히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안구에서 털 자라는 개…새 가족 찾아 안락사 면한 사연

    [반려독 반려캣] 안구에서 털 자라는 개…새 가족 찾아 안락사 면한 사연

    최근 영국에서 안구에 털이 나 있는 개를 기르는 한 여성의 사연이 전해져 화제다. 9일(현지시간) 메트로와 미러닷컴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켄트주 턴브리지웰스에 사는 트레이시 스미스(43)는 잭러셀 테리어와 파피용이 섞인 수컷 프랭키를 키우고 있는데 이 개는 여느 개와 달리 안구에 송곳처럼 뾰족한 털들이 나 있다.그녀가 처음으로 프랭키와 만난 시기는 7년 전이다. 자동차 정비사인 그녀는 한 농장으로 부품을 배달하러 갔다가 우연히 작은 강아지를 발견하고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한 농장 직원이 강아지를 데려와 가까이서 보여줬는데 양쪽 안구 일부분에 송곳처럼 뾰족한 털들이 나 있었다. 그 직원은 그녀에게 “이 강아지는 눈이 멀어서 내다 팔 수도, 농장에서 키울 수도 없다. 머지않아 안락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말을 도저히 듣고 넘어갈 수 없었던 그녀는 “안락사할 것이라면 내가 데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데려온 강아지가 지금의 프랭키다.그녀는 곧바로 프랭키를 한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프랭키를 진료한 수의사는 강아지의 안구에 자라 있는 털들을 보고 적잖히 당황했고 원인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외에는 건강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프랭키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 수의사는 눈이 먼 프랭키에게 가급적 눈을 떼지 말고 바닥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한 광장에서 프랭키가 느슨한 리드 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 개가 완전히 시력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그녀는 다시 프랭키를 수의사에게 진찰받게 했고 그 결과, 이 개는 시력이 조금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의사는 프랭키의 두 안구 뒤쪽에 각각 낭종이 있어 털이 자란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행히 통증이 없으므로 털을 자를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그런 프랭키에게 한결같이 애정을 쏟아온 그녀는 “처음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프랭키를 보여줬을 때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지금은 모두 프랭키를 사랑한다”면서 “프랭키는 항상 누군가가 돌봐줘야 해서 낮에는 집에서 일하는 내 파트너가 함께 있다”고 말했다. 또 “프랭키는 항상 창가에서 내가 집에 오길 기다리며 집에서는 늘 내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안락사되기 전의 프랭키를 구한 것은 정말 다행”이라면서 “프랭키는 사랑이 넘치는 개이므로 안락사될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안구에 털이 자라는 증상은 과거 사람에게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난 2013년 당시 19세였던 이란 남성은 오른쪽 안구 안에 매우 희소한 포낭이 형성돼 거기서 체모가 자라는 증상을 겪어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윤부 유피낭종((limbal dermoid)이라 부르는 증상으로, 눈동자 아래 피부 조직에서는 이 남성처럼 털이나 연골이 자랄 수 있으며 심지어는 땀샘이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례가 프랭키의 경우와 정확히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진=영국 메트로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임창용 칼럼] 대통령이 선결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임창용 칼럼] 대통령이 선결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인 중에 온 가족이 기부를 실천하는 이가 있다. 지인 부부는 매월 각자 2만원씩, 두 아이는 1만원씩 십수년간 후원 중이다. TV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후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먼저 용돈을 쪼개 돕고 싶다고 해 부모까지 동참했다.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내면서도 몰랐는데, 우연히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후원단체가 보낸 우편물을 보고서 알게 됐다. 그 지인이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문제로 고민 중이다. 이제 다 큰 자녀들이 기부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이유는 단 하나,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단다. 지원금을 주기도 전에 기부 독려 ‘이벤트’를 쏟아내는 분위기가 마뜩지 않은 듯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대변인을 통해 기부 의사를 공개했다. 여당 지도부는 기부 서약 내용을 담은 대형 패널을 들고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기부 사실을 페이스북에 알렸다. 지인은 아이들이 어릴 적 기부를 시작할 때부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철칙을 지키며 나름 자부심을 느껴 왔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지도층의 이런 이벤트들이 위선과 보이지 않는 강요로 비치는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경제부총리까지 떠들썩하게 기부를 약속했으니 청와대 직원들과 여당 의원들도 기부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나머지 부처 장·차관이 나설 테고 100만 공무원들은 고민에 빠질 게 뻔하다. 농협은 5000여명의 임직원이 자발적 기부에 동참한다고 발표했다. 직원들의 의사도 묻지 않았다고 한다. 모 민간금융그룹은 임직원 2700여명이 동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의서는 받지 않았지만, 그 정도 참여할 것이란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기부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과 같다. 해체 담론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이 선물이기 위해선 준 사실을 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대가를 바라는 거래로 변질돼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즘 정부와 여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부서약’ 이벤트는 기부가 아닌 뇌물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통령이, 장관이, 회장이, 간부들이 온 동네에 소문내며 기부를 하는데 그 수하들이 내키지 않는다고 딴청 피우기가 쉬울까. 밉보여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조직에서 따돌림당하지는 않을까, 주변에서 인색하다는 평판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등등 고민할 게 뻔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 기부행위는 기부가 아닌 거래나 뇌물로 변질된다. 밉보이지 않는 것, 따돌림당하지 않는 것, 인색하다는 평판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기부자가 바라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재난지원금 기부가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처럼 전 국민적 캠페인으로 번져 나가길 기대하는 듯싶다. 한데 재난지원금 기부는 금모으기와 내용과 형식이 많이 다르다. 금모으기 운동에는 나라에 달러가 바닥난 절박한 위기를 넘겨 보자고 남녀노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재난지원금 기부는 애초에 하위 70%였던 지원금 수혜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서 상위 30%를 겨냥했다. 처음엔 여권에서 기부를 조건으로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정부가 아무리 자발적 기부를 외쳐도 ‘관제’ 냄새가 가시지 않는 이유다. 또 하나 금모으기 운동은 기부가 아닌 소비운동이었다. 당시 국민은 금을 기부한 게 아니다. 갖고 있던 금반지와 목걸이를 제값을 받고 팔았다. 그렇게 모인 금은 바닥난 외환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줬다. 국민은 금을 팔아 목돈이 생겼으니 소비 촉진에도 꽤 도움이 됐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한국 경제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 절실한 것은 극도로 위축된 소비를 살리는 것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의 취지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소비를 진작하는 데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지금의 기부운동은 “지원금을 도로 토해 놓으라”는 메시지로 비친다. 정부와 정치권이 섣불리 나서면서 기부의 참뜻은 이미 훼손됐다. 이제라도 지원금 캠페인 방향을 소비촉진으로 돌리길 바란다. “지원금까지 받았으니 그 두 배, 세 배 소비에 나서라”고 말이다. 그게 지원금 취지에도 맞고 효율성도 높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허름한 식당에서 긴급지원금으로 ‘선결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냄새 혹은 느낌의 인간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냄새 혹은 느낌의 인간

    질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유라는 것은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유의 주체가 사유의 대상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이런저런 판단과 기준을 적용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와 반대로 사유는 오히려 굉장히 우연적인 순간에 우연히 대상과 주체가 마주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유는 느닷없이 대상과 마주쳐 시작되는 것인데, 물리적인 실제의 냄새든, 정신적인 냄새 즉 느낌이든, ‘냄새’는 역시 마주침으로 촉발되는 사유의 순간적 매개물이 틀림없다. 그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방귀 냄새도 좋다는 말이 있다. 변혁운동, 사회운동, 혁명운동(혁명이라는 말은 이제 좀 우습다), 노동운동, 정당활동 등 모름지기 모든 무슨 무슨 운동이나 활동도 그 사람이 좋아져야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고 본다. 운동은 기어코 사람에 대한 사랑일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사람 냄새가 나는 운동, ‘사람 좋은 사람’의 느낌이 나는 운동. 모든 사회적 운동은 앞으로 몇 천 년 동안도 그러할 것이다. 최루탄이 비오듯 쏟아지던 1991년 문익환 목사는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 조용히 앉아 자신의 손바닥에 수지침만 놓고 계셨는데 ‘공안통치종식과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라는 반정부 저항 단체를 온통 이끌어 가셨다. 스물 몇 어린 내가 보기에 참 멋진 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신자살을 할 때였다. 나는 문익환 의장과 단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았지만, 아니 감히 못했지만, 그가 뜻하는 바를 읽고 분신자살한 분들의 추도문을 썼다. 하루가 멀다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을 때마다 쓰는 추도문은 추도문이 아니라 환장할 것 같은 몸부림이었다. 무서웠다.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나는 문익환 목사를 힐끔거렸는데 그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문익환 목사는 단상에 올라 크고 우렁찬 짐승 같은 소리로 죽은 이들을 불러냈다. 강경대 열사아~ 박승희 열사아~ 김영균 열사아~ 천세용 열사아~ 박창수 열사아~ 이정순 열사아~ 김기설 열사아~ 김철수 열사아~ 정상순 열사아~ 윤용하 열사아~ 김귀정 열사아~ 한 사람 두 사람, 죽은 자들을 부를 때마다 나는 조용히 울먹였다. 무서웠다. 문익환이라는 한 짐승의 뜨거운 심장이 폭발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 입에서 터져나오는 지독한 사람의 냄새를 사랑하고 있었다. 약하지만 강한, 강하고도 서러운 인간의 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무서운 날들이 끝나고, 도망쳐,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개야도로 들어갈 때, 비릿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돌아오지 말자고 다짐할 때, 김 양식장에서 미친 놈처럼 실실 웃으며 일을 할 때, 사람이 좋으면 어디 가서도 살아낼 수 있겠지 하며 울 때 문익환 목사의 지독한 고요와 느닷없는 포효의 냄새를 떠올렸다. 사람 좋은 사람의, 인간의 냄새. 혁명이 뭔지 몰라도 인간의 냄새가 지독하게 터져나올 때 시작되는 것이 혁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혁명은 함부로 떠들 것 없이 조용히 뜨겁게 천천히 퍼지는 인간의 냄새, 사람 좋은 냄새라 여기며 젊은 날을 보냈다. 지난 시절 앞뒤 없는 내게 이런 시가 있었다. ‘냄새’ 미치도록 그리워하면 몸에서 그리운 것들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술집 주인 여자가 “그래서 고양이한테서는 생선 냄새가 나는군요”라고 대꾸했다. 유추적 사고가 발달한 똑똑한 여자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옆 테이블 사내가 끼어들더니 자기 여자에게서는 바다 냄새가 난다고 했다. 바다를 무척 그리워하는 여자임이 틀림없으니 가까운 서해라도 함께 다녀오라고 말했다. 사내는 씩씩 웃으며 술을 두 손으로 따라 주고 갔다. 슬며시 내 손에 코를 대 보았다. 돈 냄새가 났다.
  •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입원 권하는 사회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입원 권하는 사회

    나는 현대인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건강에 크게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다. 질병은 개인이 아무리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더라도 유전이나 우연의 결과로 찾아올 수 있는 것임을 안다. 진료 현장에서 의사들은 과잉 진료와 과도한 의료 이용을 부추기는 실손의료보험의 역기능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난맥상에 나까지 엮이고 싶지는 않아서다. 물론 실손의료보험의 대다수 가입자에게는 죄가 없다. 그들은 경제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의 치료를 받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필요한 치료비를 충분히 보장받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편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건강보험으로 지원되지 않는 (비급여) 고가의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치료가 그 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많이 넓어졌지만 새로운 약은 계속 나오고, 그 비싼 비용을 건강보험으로 모두 감당할 수도 없는 일이다. 비용 효과가 떨어져 건강보험 급여는 되지 않더라도 환자 당사자에게는 절실한 비급여 약제는 늘 있게 마련이다. 실손보험이 있으면 이런 약들도 마음놓고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손보험에서 보장하는 외래 약제비는 많아야 하루 5만~10만원이기 때문에 대부분 외래 주사실에서 투여되는 항암제의 비용은 충분히 보전받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입원을 시켜 달라고 호소한다. 실손보험은 입원치료비를 더 폭넓게 보장하기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약값도 대부분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의사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응급실에 입원 대기 중인 중환자가 넘쳐난다면 누구를 먼저 입원시켜야 하는가. 나는 지난 수개월간 비급여 항암제 치료 목적의 입원을 중단시켰다. 말기암 상태에서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앗는 악역을 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격리 병상을 확보해 입원 치료가 필수인 중환자들부터 입원시켜야 했다. 평소라면 그래도 입원시켜 달라고 사정했을 환자들이 코로나19 중환자들에게는 체념하고 병상을 양보했다.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입원 병상이라는 제한된 자원이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이나 돼야 그나마 의학적 필요로 분배될 수 있는 현실이 뭔가 많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 코로나19 사태의 도화선이 된 31번 환자는 교통사고로 한방병원에 입원해서도 결혼식과 교회 예배에 참석한 소위 ‘나이롱 입원’으로 문제가 됐다. 물론 이런 입원과 암환자의 비급여 치료 목적의 입원은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하지는 않아도 될 사회적 입원이며, 입원을 유인하는 결과를 낳는 민간보험제도의 맹점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민간보험 이외에도 입원을 더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많다. 불안정한 고용과 장시간의 노동은 가족을 위한 간병휴가나 휴직을 어렵게 한다. 가정에서 간병할 이가 없으니 입원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들을 위해 방문간호와 왕진, 가정간병이 필요하지만 아직 제도적으로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다. 가부장제 역시 입원을 권한다. 남성들은 ‘집에 있으면 밥해 줄 사람이 없다’, 여성들은 반대로 ‘집에 있으면 아파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입원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근대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때문에 사회가 자신에게 술을 권한다고 한탄한다. 불안정한 노동과 취약한 복지, 그로 인해 각자도생의 수단으로 등장한 민간보험이 환자들에게 입원을 권한다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런 식으로 늘어난 입원이 언제든지 감염병 대유행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명확히 알게 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 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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