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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의 달」 30돌에/임영숙 논설위원(서울논단)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30년전 보다 못하다?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 의지는 그때보다 오히려 퇴색했다는 느낌이 든다.물론 그때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과학기술이 발전했고 연구인력과 투자도 늘어 났다.그러나 제3공화국이 지난 67년 4월21일 독립된 행정부서로 과학기술처를 출범시키고 이듬해 이 날을 「과학의 날」로 제정하면서 보여준 「과학입국」의 강력한 의지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다. 「과학의 날」에 관해서는 과학계에서도 이견이 없지 않다.일부 과학사학자들은 지난 34년 4월19일 김용관의 발명학회를 중심으로 시작했다가 일제의 방해로 5년만에 중단한 「과학데이」를 「과학의 날」로 계승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따라서 「과학의 날」은 4월21일이 아닌 4월19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쪽이 되든 4월은 「과학의 달」이다.이 「과학의 달」에 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과학기술이 국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이고 과학기술이 앞선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알고 있다.다가오는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가 될것으로 모두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과학기술 현주소 짚어볼때 그럼에도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는 빈약하다.과학기술 관련 예산이 해마다 늘고 있다지만 지난 95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비는 미국의 14분의 1,일본의 13분의 1,독일의 5분의 1 수준이다. 국민 총생산(GNP) 규모가 다른만큼 이런 총액비교는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런 변명은 과학기술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시킬뿐이다.게다가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우리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비율(2.69%)이 일본(2.96%)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에서는 어떤 위안이나 변명도 찾아낼 수 없다. 더욱이 연구개발비의 정부 부담률이 너무 낮다는 문제점을 우리는 안고 있다.투자액의 18.9%만 정부가 부담하고 80% 이상을 민간기업에서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미국이나 독일 프랑스의 경우 정부 부담률이 36∼45%에 이른다. 정부 부담률이 낮다는 것은 공공부문의 연구개발 투자가 빈약하다는 이야기다.이는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이 낮고 민간투자를 유인하는 정부의 선도적 역할이 부족함을 뜻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기업에 맡길수 없다.당장의 필요를 위해 납땜질 하는 식의 연구로는 기초이론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없이 기술혁명은 불가능하다.기술혁명없이는 국가 경쟁력도 높일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력이 국력보다 낮게 평가 받고 있는 현실에서 오늘의 심각한 경제불황은 사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한국은 GNP규모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지만 과학기술력은 18위 또는 27위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가 지난 90년 연구개발비·연구원수·기술무역액·특허건수 등을 비교분석한 결과가 18위였고 세계 주요 과학기술 분야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수를 기준으로 한 결과는 27위였다. 지난 80년대 사회간접 자본 투자에 소홀했던 결과로 90년대 경제발전에 빨간불이 켜졌듯이 오늘의 과학기술투자 소홀은 21세기의 국가경쟁력 향상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통합조정 능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지난 60년대와 달리 지금은 과학기술처 뿐만 아니라 통상산업부(반도체) 농림부(유전공학) 국방부(무기기술) 등 거의 모든 부처에서 첨단기술 연구개발 사업을 다루고 있다.그러나 통합조정 능력의 부족으로 중복 투자와 행정의 낭비가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과학기술처의 위상이나 행정조직 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가사업 통합조정 강화를 물론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우여곡절끝에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7월부터 발효된다.그러나 이 특별법은 2002년까지만 효력을 갖는 한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또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과학의 날」을 제정한 뜻을 살려 과학기술 발전에 강력한 정책의지를 기울여야 할 때다.〈임영숙 논설위원〉
  • 「내각제 소동」 끝내기/신 정무 여 시국논의 모임 주선 배경

    ◎중진들 「임기내 개헌불가」 내부정리/“권력구조 논의때 아니다” 입모을듯/정국변화따라 재부상 가능성 잠재 이회창 대표체제 출범이후 권력구조개편논쟁 등으로 흔들리던 신한국당의 중진들이 29일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신경식 정무1장관이 제안한 이 모임은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15명의 당 중진들이 계파를 초월해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이홍구·이한동 고문의 권력구조개편논의에 이은 내각제 문서파동과 신경식 정무장관의 「내각제 밀사설」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김대통령이 26일 거듭 천명한 「임기내 내각제개헌불가」방침을 중진들 스스로 다짐하는 자리의 성격이 짙다.그래서 이대표를 비롯,경선 예비후보들은 초청대상에서 빠졌다. 권력구조개편론은 지난 26일 이회창 대표의 청와대 주례보고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개헌불가」를 재천명함으로써 가까스로 진화되는가 싶더니 정무장관실의 실무진이 참고용으로 작성한 내각제문서로 불씨를 살리는 듯 보였다. 또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신장관을 통해 여권에 내각제를 타진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도 잇따랐다.신장관은 28일 『지난해 연말 노동법이 통과된 뒤 인사차 청구동을 찾아갔을때 김총재는 「6월까지 법을 고치면 내각제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내각제 의사를 타진하는 여권의 밀사는 말도 안된다는 해명이다. 이 모두 당 총재의 의중과는 상관없는 해프닝으로 확인됐지만 경제난으로 나라가 흔들리는 마당에 정권을 책임지는 신한국당이 한가하게 권력구조개편론에 시달릴 수 없다는 당 안팎의 절박감이 모임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없다.따라서 29일의 모임은 불필요한 권력구조 논의에 쐐기를 박고 당내 초·재선 의원들의 동요를 다독거려 이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뭉쳐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을 더해주자는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내각제를 포함한 권력구조개편논의는 여전히 여운이 남는다.이런 관점에서 조용기 순복음교회 당회장과 김장환 수원침례교회 담임목사(극동방송 사장)가 26일 김대통령을 면담한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조당회장 등은 이 자리에서 국정운영에 관련한 고언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면담 이틀전 조당회장,김목사와 김종필 총재가 골프회동을 가진것으로 알려져 김대통령에 전달한 고언 가운데 내각제도 포함돼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김총재 측근에 따르면 골프회동에서 『현재의 혼란한 시국은 대통령중심제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의견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일련의 흐름에 대해 신한국당의 대체적인 반응은 시큰둥하다.한 대선 예비주자의 측근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제는 의미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김영삼 총재의 개헌불가 방침을 확고하게 천명한 만큼 「해프닝」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개편논의는 우여곡절끝에 일단 잠수했음에도 불구,국민회의,자민련 등 야당의 전당대회의 향배와 맞물려 5,6월안에 정치권 전면에 다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내각제 관련 일지 ▲2월1일=신경식 정무장관 자민련 김종필 총재(JP) 자택 방문(JP 『6·29때도 했으니 6월까지만 결심하면 된다』고 내각제 개헌 요구) ▲2월24일=JP·김수한 국회의장·정석모 자민련부총재 오찬(JP 내각제개헌론 제기) ▲3월초=김의장·정부총재 2차례 회동(내각제 관련 협의) ▲3월18일=이동복 JP비서실장·박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접촉(JP측 김영삼 대통령 근황 타진) ▲3월23일=김의장·이정무 자민련총무 골프회동(내각제 문제,한보특위 등 논의) ▲3월24일=김의장 청와대서 YS독대(내각제 건의).신한국당 이한동고문 『내각제 장기적 추진과제』,이홍구 고문 『현 헙법의 내각제적 요소 최대한 활용한 권력분산론』 제기.JP·조용기·김장환 목사와 골프회동(JP 내각제 필요성 언급) ▲3월25일=이한동 고문 『내각제 심각하게 고려해야』 발언에 이회창대표 반박 ▲3월26일=조용기·김장환 목사 청와대서 대통령과 오찬회동(내각제와 JP입장 전달).이회창 대표 자민련 당사 신임인사차 방문(JP 내각제 필요성 언급) ▲3월27일=신경식 정무장관실에서 작성한 내각제 문건 유출 파문 ▲3월28일=강인섭 정무수석 자민련 당사 방문(JP 강수석에게 『잘 생각해(내각제 개헌에) 기여해달라』고 발언)
  • 이 대표 당운영 방향 제시/“화합·당내 민주화·정책정당화 주력”

    ◎첫 확대당직자회의서 밑그림 밝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은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입문했을때 나름대로 실험적인 「새정치」의 밑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년여만에 집권 여당의 대표를 맡은 당에 대한 구상을 대략 세가지 정도로 구체화하고 있다. 24일 체제개편 이후 첫번째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이대표는 당의 화합과 당내 민주화,정책정당화를 집권당이 가야할 방향으로 제시했다. 당내 화합은 향후 이대표체제가 순항할지를 판가름짓는 지렛대로 인식돼 왔다.스스로도 이를 의식한 듯 참석자들에게 『신한국당이라는 배를 함께 이끌고 갈 운명공동체로서 집약된 힘으로 당의 안정을 다지자』고 강조했다.공동책임론도 폈다. 이어 이대표는 당의 현대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내 민주화의 실현을 역설했다.당론 형성과정에서 다양한 비판과 대립적 의견을 쏟아부어야만 어려운 시기에 당의 활력을 북돋아 주는 정책이 나올수 있다는 것이다.당내 신인과 중진을 망라한 다각도의 여론을 가감없이 수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대표는 또 집권당으로서 정책정당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단순히 그때 그때 국면전환용 사탕발림이 아니라 정국과 나라의 앞날을 내다보는 정책의 지원,공급,육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이대표가 염두에 둔 21세기 새로운 정당의 모습이 제대로 그려질 지는 불투명하다.『아마추어의 객기』에 그칠수도 있고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특히 정국 전체의 흐름뿐만 아니라 당내 기류조차도 수많은 돌출변수를 안고 있어 불투명성은 더욱 높다.
  • 과학 선진국 도약 발판 「과기혁신 특별법」 7월 발효

    ◎과기장관회의 정책 종합조정/대학에 연구전담 교수제 도입/기초과학 연구비 18%로 확대/중소기업 지원확대 기준마련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21세기 초 과학기술 선진국 도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집중적인 투자와 역량 동원이 이뤄질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은 지난 96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적인 요소인 과학기술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특단의 지원 장치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정부입법 형태로 제안됐다.법률안 성안 과정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 목표치를 2002년까지 총예산의 5% 수준으로 못박았다 후퇴하기도 하고 지난해 12월 정기국회때는 22명의 의원 발의안이 별도 제출돼 통과 직전 유보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결국 2개 법안의 통합안이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의 대안으로 마련돼 통과됨으로써 「특별법」은 결과적으로 더욱 폭넓은 지원세력을 갖게 됐다고 할수 있다. 「특별법」은 오는 7월1일 발효돼 2002년 6월30일까지 효력을갖는 한시법으로 향후 5년간 국가 과학기술 혁신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규정하고 있다.법률에는 숫자를 넣지 못했지만 정부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목표치를 「과학기술5개년 계획」에 명시,매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토록 함으로써 과학기술 투자의 획기적 확대를 바라볼수 있게 됐으며 재경원장관이 의장이 되는 과학기술장관회의를 운영,각부처의 과학관련 주요 정책과 예산 편성·집행을 실질적으로 종합조정할수 있도록 했다.또한 대학에 연구전담 교수제도를 도입하고 국가 총 연구개발비중 기초과학 부문을 현재의 12.5% 수준에서 2001년까지 18%로 확대하는 등 기초과학 연구를 활성화하도록 하는 한편 국공립 연구기관의 기술료 수입을 연구직 공무원에게도 지급토록 하는 등 과학기술자 우대 조항도 마련했다.이밖에도 특별법은 기술담보 대출제 도입,정부연구비 무상지원,이공계 대학생의 중소기업 실습학점제도 등 중소기업 기술 지원도 집중적으로 실시토록 했으며 과학기술문화기금 신설과 이에 대한 출연시 조세면제 혜택 부여와 같은 과학기술문화 확산 조항도 마련,사회 전반적으로 과학기술을 숭상하는 분위기 제고를 꾀하고 있다. 과학기술처는 오는 6월말까지 시행령을 확정,후속 조치를 끝내고 7월부터는 「5개년계획」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을 갖고 있다.그러나 제도는 그 자체보다 운영 내용에 따라 실효성이 달린 만큼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요구되는 것은 지금부터라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지적이다.
  • 진 노동의 사표 제출이유/우득정 사회부 차장(오늘의 눈)

    진념 노동부장관은 자신의 사퇴서가 반려된 19일 하오 『명예롭게 퇴진하려고 했는데…』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장관은 『공직자는 들 때와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면서 『장관이 국정에 대해 책임지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모습을 후배 공직자들에게 교훈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사표제출 결행배경을 설명했다.원인과 과정이야 어찌됐든 노동법 파동으로 2조원의 경제손실이 야기되고 통치권 누수의 단초를 제공한 이상 당연히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진장관의 논리다. 진장관은 이같은 이유로 올들어 1월20일쯤과 2월10일쯤 이수성 당시 총리에게 두차례 사의를 표명한데 이어 지난 18일 고건총리에게 세번째 사표를 제출했다.지난해 노동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수성 총리와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가 서로 책임을 자임하고 나섰지만,그는 주무장관인 자신이 노동법 사태의 「몸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장관은 지난 10일 노동법 여야합의안에 대해 박세일 청와대 사회복지수석이 품평을 했다가 신한국당 의원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자 『정책에 대한 책임은 청와대 수석에게 있는게 아니라 주무장관에게 있다』며 사퇴결행을 위해 청와대로 직접 「쳐들어」 가기도 했다. 진장관은 평소 후배 공무원들을 만나면 『사표를 쓸 각오를 하고 덤비면 못할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또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와 경제는 영원하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초에 여권 핵심부와 경제부처의 반대로 노동법 개정이 무산될 위기에 몰렸을때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진장관은 『노사관계 개혁의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반대론자들과 맞부딪쳤다.진장관은 우여곡절 끝에 노동법 연내처리 방침이 확정되자 『사표 한 장으로 끝내려 했으나 물러서기에는 공직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주위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제출을 결행했던 진장관이 각종 변수가 산재한 올해의 임·단협 과정에서 어떻게 「몸을 던질지」두고볼 일이다.
  • “내각 책임지고 실질적 통할”/고건 총리 일문일답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주력” 약속 고건 총리는 6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새 내각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만큼 사심없이 일할수 있다』면서 『나라와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온몸을 던져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한 당부가 있었나. ▲내각을 책임지고 각 부처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라고 했다.대통령께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통일과 외교에 할애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경제부총리는 금융실명제를 보완하겠다고 했는데. ▲경제정책은 경제팀에게 맡기고 나는 일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노력할 것이다.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왜곡되지 않도록 하겠다.다만 장바구니물가는 관심을 가지겠다.금융실명제는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한 대통령선거 관리방안은.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깨끗하게 선거를 관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내무부장관으로 있던 87년6·29선언 직전 명동성당의 공권력 투입을 막았다는데.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방향을 이미 정해 놓았다.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적 여론이 악화될 우려가 있고,행여 교황청에서 문제를 삼으면 수출에도 지장이 있는데다,인명피해 등 불상사에 대한 우려 등 「3불가론」을 들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방침을 바꾸게 한 적이 있다.
  • 미 4자회담 설명회 이모저모

    ◎“남북 21개월만에 대좌… 신뢰 초석”/북 기피로 설명회결과 공동발표 무산/회담 한시간 전부터 내외신기자 북적 ○…한·미 양국 정상이 지난해 4월16일 4자회담을 제의한 이래 우여곡절 끝에 거의 1년만에 처음으로 남북한과 미국이 참석하는 공동설명회가 5일 상오9시(한국시간 하오11시)열린 뉴욕 시내 힐튼호텔 2층 머레이힐 스위트 A룸 주변에는 회담이 열리기 1시간 전부터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이번 설명회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이날 설명회에는 우리측에서 미국통인 송영식 외무부1차관보,미국측에서는 한국통이자 한국어 구사가 수준급인 찰스 카트만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대행,북한측에서는 75년 유엔대표부 근무 이후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과 함께 제네바 핵협상등 대미협상을 담당해온 미국통인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했으며 5명으로 구성된 각국 대표단 외에 실무진 3∼4명이 배석. 또 한국대표단엔 유명환 외무부 미주국장과 권종락 청와대 외교비서관,이봉조통일원1정책관이 합류했으며 북한측에서는 이근 외교부 미주국 부국장,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박명국 외교부 미주국 과장,김명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과 최선희(통역) 등이 참석. 설명회는 각국 대표단들이 회의실에 들어가면서 내외신 보도진을 위한 사진촬영시간을 3∼4분간 허용한 후 비공개로 진행됐다. ○…상오 설명회는 10시30분쯤 커피 타임을 10여분간 가진 후 다시 속개 낮 12시쯤 일단 끝났다. 한국은 당초 남북한과 미국 대표단이 점심자리를 같이하려 했으나 북한측이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한미대표단만이 오찬회동을 갖고 오전설명회를 평가하고 하오2시에 속개되는 설명회의 대책을 협의했다. 한미 양국은 당초 설명회가 끝난 후 북한이 양해할 경우 언론 공동 발표문을 통해 설명회에 관해 브리핑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이 한사코 이를 기피함으로써 각국 대표단이 설명회 결과를 적절하게 발표하기로 했다고 한국대표단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우리측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4자회담 참여전망과 관련,아직 속단할 수없다고 전제하고 다만 그들이 설명회에 참석키로 한 배경에 대해 ▲긍정적 차원에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탐색 ▲북­미 고위급 회담을 위한 단순한 통과의례 ▲한­미 이간 책동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 이 관계자는 세번째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북한의 입장은 첫번째와 두번째 중간쯤으로 생각된다고 전언. □4자회담 추진 일지 ▲96.4.16=한·미정상회담,4자회담 제의.일,4자회담 지지 표명.중,4자회담 관련 중국의 적극적 역할 표명. ▲4.18=북한,진정한 평화협정을 맺으려는 것인지 다른 목적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검토중이라고 언급. ▲5.7=북한,미국에 4자회담 목적·취지 설명 요구. ▲5.14=한·미·일,①북한이 4자회담에 호응하면 식량문제도 토의 가능 ②한미 공동으로 4자회담 설명회 개최를 북한에 제의키로. ▲6.29=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4자회담 지지 의장성명 발표. ▲7.24=번스 미국무대변인,4자회담 관련,미북 실무접촉 사실 확인. ▲7.31=김영삼대통령,북한 4자회담 수용시 대북경제지원 협력 표명. ▲8.15=김대통령,4자회담 실천방향 제시.(평화체제 구축문제,군사적 신뢰문제,남북경제협력문제 논의 가능) ▲9.2=북한,미군철수문제 논의 않으면 4자회담 쓸모없다고 주장. ▲9.18=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발생. ▲10.24∼30=이형철 북한미주국장 미국방문 및 미북 1차 실무협상. ▲11.24=마닐라 한미정상회담,잠수함사건과는 별도로 4자회담 계속 추진키로 합의. ▲12.9∼29=미·북,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한 사과 합의. ▲12.29=북한,잠수함 침투사건 사과. ▲12.30=북한,4자회담 공동설명회 참가 의사 첫 공식 표명. ▲97.1.10=미·북,4자회담 설명회 시기·장소·대표단구성 논의. ▲1.13=미·북,4자회담설명회 29일 뉴욕개최 합의.(1·2차연기) ▲3.5=4자회담 설명회 개최.
  • 서현섭 파푸아뉴기니대사 「일본인과 천황」

    ◎허구가 허구를 낳는 천황제의 허울/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켜 만든 ‘125대의 가계’/거울·칼·구슬 3개의 신기에 담긴 「현인신」 실상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천조대신)의 자손이 기원전 660년에 나라를 세우고 천황에 즉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일본인들은 이를 근거로 이 인물이 바로 제1대 진무천황이며,따라서 천황가는 지금의 아키히토(명인)천황에 이르기까지 125대에 걸쳐 만세일계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한다.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켜 허구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본인.그들에게 천황은 이미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완고한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최근 출간된 「일본인과 천황」(고려원)은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제를 통해 본 또하나의 일본론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지은이는 「일본은 있다」「일본인과 에로스」 등 일본관련서를 펴내 널리 알려진 서현섭씨(53·파푸아뉴기니대사). 그는 이 책에서 천황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46개의 함축적인 소제목으로 나눠 소개한다.「허구가허구를 낳는」 천황제의 허울을 벗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인들은 천황은 현인신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거울·칼·구슬 등 3종의 신기와 천황가의 만세일계 신화를 고안해냈다.일본인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기는 과연 천년의 풍상과 천황가 내분의 소용돌이를 견뎌온 진품일까.이에 대해서는 일본학자들조차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애매한 답변을 한다.만세일계 신화도 허구로 가득차 있다.만세일계 신화는 일본의 천황가가 혈통의 카리스마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음을 반증한다.황실전범이 황위계승자를 장남,장손 등 남자로 국한하고 있으며 양자입양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천황가의 혈통숭배 때문이다.지은이는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만세일계의 허상을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폭로한다.일본은 14세기 초부터 약 60년간 천황가가 남북조로 양분돼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항쟁을 벌였다.일본 정치에서 말하는 이른바 남북조시대다.결국 남조가 북조에 의해 흡수되었지만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 남조가 정통성을 회복함으로써 당시의 북조 천황 5명은 천황 대수에서 빠져버리는 「실수」가 생겼다.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이 북조계에 속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남조의 혈통만을 더듬어 올라가면 더 많은 천황을 계보에서 누락시켜야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세일계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치장하는데 몰두하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이 책은 또 일본인들이 제1대 진무천황부터 제33대 스이코(추고)천황까지의 간격이 천년이상 벌어진 사실을 눈가림하기 위해 고대 천황들의 나이를 억지로 짜맞추었음을 밝힌다.일본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경전으로 꼽히는 「고사기」에 의하면 초대 진무천황은 137세,10대 스진(숭신)천황은 168세까지 장수했다는 것.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은 930세,노아는 950세까지 살았던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논거」다. 「현인신의 굴욕」에 대한 기술도 눈길을 끄는 대목.특히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일본에서 5년7개월간에 걸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히로히토(유인)천황은 열한번이나 그를 찾아갔지만 맥아더는 단 한번도 답방을 하지 않았던 일,히로히토 천황이 인간선언문을 통해 「절대천황」의 허물을 벗고 「상징천황」으로 탈바꿈하는 역사적 순간 등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일본역사를 훑어보면 천황제가 영원히 사라질 뻔한 때도 있었다.에도(강호)시대에는 천황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할 수도 있는 실력을 갖춘 막강한 바쿠후(막부)가 존재했다.그러나 바쿠후의 쇼군(장군)은 천황제가 권력통일에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천황제를 존속시켰다.천황제가 숱한 우여곡절속에서도 여전히 일본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지은이는 그 비결을 『천황가가 권위와 권력을 분리시킨 지혜』에서 찾는다.일본인들에게는 영원한 정신의 고향이지만 국외자의 눈에는 「바벨탑의 우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천황제.이 책은 바로 그 천황제의 허와 실을 직시해 일본을 이길 것을 권한다.
  • 김 전 장관·황 의원 수뢰 순순히 시인/소환3인 수사 뒷얘기

    ◎권 의원 조사실 이탈… 긴급체포 소동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신한국당 황병태 의원과 검찰의 「기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3명 가운데 혐의사실을 먼저 인정한 인사는 가장 늦은 시간인 12일 하오 3시40분쯤 대검 청사에 도착한 김전 장관.그는 자신이 소환될 것임을 예상이라도 한 듯 건설부 장관 시절 당진제철소 연결도로 건설과 관련,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으로부터 현금 2억원을 받지 않았느냐고 추궁하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시인했다.황의원 역시 이미 소환 조사를 받은 전·현직 산업은행장의 진술과 증빙자료를 들이밀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혐의사실을 털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은 수사 검사의 태도를 문제삼아 수사를 거부,검사가 교체되는가 하면 긴급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권의원은 소환 된지 24시간만인 13일 하오 1시40분쯤 변호인들과 함께,하오3시에 열리는 전 뉴질랜드대사관 행정관 최승진씨의 외교문서 변조사건 공판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두해야 한다며 1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긴급체포됐다.권의원은 결국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에 앞서 5시30분쯤 재판을 받았다. 권의원은 12일 자정쯤 구속된 정재철 의원이 수사관과 함께 조사실에 들어서자 악수를 청하다 검사에게 제지당했다.
  • 신임 에콰도르대통령 알라르콘/군부·의회의 지원받는 뛰어난 협상가

    우여곡절끝에 에콰도르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파비안 알라르콘(50)의회의장은 의회의 지지와 군부의 지원을 받고있으며 정치적 협상에 능한 인물.앞으로 큰 정치적 변수가 돌출되지 않는한 전임대통령의 잔여임기인 98년 8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된다.비교적 합리적이며 의회의 탄핵을 받아 물러난 부카람 전대통령과는 크게 대비되는 인물로 통한다.정계진출전 법률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불과 이틀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아르테아가측의 반발,예측불허의 세력인 군부와의 관계,전임대통령때부터 누적돼온 경제난등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헤쳐 나갈지는 미지수이다.70년 23세의 나이로 고향인 핀치차주 키토시에서 대중애국당 후보로 출마,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 84년 핀치차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4년뒤 의회에 진출,본격적으로 중앙정치무대에 진출 하면서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 이홍구 대표 기자간담 일문일답

    ◎보선 잘 치르라는 김 대통령 당부있었다/시월회 등 당내 소모임 건의 청와대 보고 ­당정개편은. ▲어제(5일) 주례보고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당이 오는 3월5일 인천 서구와 수원 장안 보궐선거를 잘 치르도록 하라는 당부가 있었다.그러나 중앙당이 나서긴 어렵고 인천시지부와 경기도지부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야당총재들도 나설테니 나도 필요하다면 지원유세를 할 생각이다. ­시월회 등 당내 소모임의 건의에 대해서도 보고했는지. ▲이러저러한 당내 논의가 있었다고 보고했다.특별한 언급은 없었다.당내 민주화는 넓은 의미에서 볼때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그 틀 속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보사태에 대해서는.홍인길 의원에 대한 얘기가 있었나. ▲홍의원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그러나 한보와 관련,당내에서 수렴된 얘기를 모두 보고했다.강력한 영도력을 발휘해서 철저한 조사와 공정한 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게 요지다.김대통령도 잘 알고 있었다.결연한 의지표명이 있었다. ­임시국회는. ▲정치는 참 우여곡절이 많다.그러나 국민적 압력이 제일 우선이다.야당이 10일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니 지켜보자.
  • 노총­잇단 연속회의… 총파업 결의 다져/노동계 지도부 표정

    ◎민노총/공권력 투입 대비 제2지도부 구성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지도부는 13일 공공부문도 가세하는 총파업을 앞두고 산하 조직을 점검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노총은 이날 상오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산별노조대표자회의와 지도부 연석회의를 잇따라 열고 총파업 결의를 다지는 등 야전사령부를 방불케 했다. 노총의 강경 선회는 새해 들어 총파업 주도권이 민주노총으로 넘어간 뒤 파업열기가 의외로 강하게 지속되면서 노총 산하 하부조직의 이탈과 불만이 잇따른 것도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 그러나 이날 대표자회의에서는 한국노총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서울 도시철도공사(서울 지하철 5·7·8호선 운행) 노조가 처음에는 파업불참을 선언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동참키로 하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금까지의 총파업투쟁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15일의 총파업 및 지도부가 농성 중인 서울 명동성당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대책마련에 분주.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총파업이확산되면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국가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노동법 재개정 약속을 천명하기를 기대. 민주노총은 15일부터 서울지하철과 한국통신 등 공공부문이 가세하는 총파업의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14일을 「대국민 홍보의 날」로 지정,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대적인 가두홍보에 나설 계획. 민주노총은 공권력 투입에 따른 지도부의 검거에 대비,제 2지도부를 구성하는 한편 향후 투쟁계획은 15일의 파업 참여강도에 따라 결정할 예정.
  • 서울신물 박정현 특파원 파리 OECD 본부를 가다

    ◎연구팀만 200여개 “세계경제 산실”/26개 분야별 소위서 국제경기흐름 조율/모든회의 비공개… 서류마다 「비」자 일색/지하커피숍엔 각국외교관 등 「정보사냥꾼」 북적 파리시내 서쪽 앙드레 파스칼거리 2번지.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색창연한 본부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샤토 뮈에트(뮈에트성)이라고 불리는 구관과 비교적 신식인 별관건물이 맞이한다. 구관 건물부터 찾아들었다.방문객 접수창구에서 신분증을 내고 임시방문증을 받는다.OECD 대표부 직원이 아니면 회의에 참석하는 정부대표단도 매번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그만큼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한 OECD의 문턱은 높게 느껴진다. 건물입구에는 OECD라는 간판도 금방 눈에 띄지 않는다.주변에 주차된 외교관 번호판의 승용차들이 OECD 건물임을 말해준다.신분증을 받아 구관을 들어서면 넓은 뜰이 나오고 건물 입구를 쳐다보니 가로 1.5m,세로 1m 크기의 태극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본부입구 태극기 펄럭 지난달 12일 이시영 주프랑스한국대사가 프랑스 외무성에가입서를 기탁하자마자 게양된 태극기다.한국이 OECD 회원국임을 대외에 알리는 가장 큰 상징이다.나머지 28개 회원국의 국기가 태극기와 함께 나부낀다.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실감케 했다. 샤토 뮈에트는 왕과 귀족들이 가까운 불로뉴숲에서 사냥을 하다 쉬던 「휴식처」.우여곡절을 겪은뒤 1차대전 직후 유태인 출신의 작가 로드 차일드가 인수한다.현관과 회의실 등에 진열된 그림 등 소장품들은 그가 진열한 거의 그대로이다. 차일드는 2차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 성을 프랑스 정부에 헌납했다고 한다.전쟁이 끝나고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프랑스 정부는 지난 49년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설립되면서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OEEC에 이 성을 넘겨줬다. OEEC의 손에 들어간뒤 61년 명의가 OECD로 개편되었으며 그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건물 1층에 있는 회의실은 4개.A∼D까지의 회의실이 있고 이 가운데 C회의실이 바로 매년 5월 각료들이 모여 각료이사회가 열리는 유명한 곳이다. 입구 왼쪽의 계단을따라 올라가자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의 집무실과 사무국 직원들의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구관을 나와 다시 앙드레 파스칼 거리를 건너 신관에 들어섰다.신관의 지하1층에 위치한 회의실은 9개.나머지는 모두 사무국의 사무실이다. ○사무국 직원 1천900명 구관의 회의실을 합해 모두 11개 회의실이 있지만 매일 열리는 7∼8개의 회의때문에 항상 북적댄다.지하의 커피숍은 회의 막간을 이용해 외교관이나 정부대표단이 정보를 교환하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다른 선진국 경제정책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각국 외교관과 정부관리들의 눈초리는 커피숍에서도 느껴진다. OECD는 부자들의 모임이라고들 한다.하지만 실제로 OECD를 방문해보면 OECD가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회의실이 부족해 파리시내 프랑스정부 소유의 건물로 자리를 옮겨 「더부살이」 회의를 여는 경우도 많다. OECD는 본부를 이전한다는 방침아래 대상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영등포구 정도의 크기에다 건물 증개축이 엄격한 파리시내에서 넓은 부지에 번듯한 사무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지난해 여름 한국이 가입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OECD 사무국 직원들은 한국이 하루라도 빨리 회원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한국이 가입하면 예산이 늘어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OECD예산은 약 2억6천만달러.이 가운데 1천900여명의 사무국직원들 인건비가 85%를 차지하고 있어 예산은 턱없이 모자란다.때문에 지난해 존스턴체제 출범이후 사무국 기구 축소와 기능정비 검토에 들어갔다.여느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인력감축바람이 서서히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 비좁아 이전 모색 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유럽국가들이 22개국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이는 OECD자체가 2차대전후 잿더미의 유럽의 재건을 위한 기구라는 뿌리에서 비롯된다.미국은 마셜플랜이라는 대규모 유럽원조를 했고 유럽 16개국이 원조자금의 배분 등을 논의했던 기구가 OEEC이다. OEEC는 유럽의 경제복구가 어느정도 달성되자 지난 61년 미국과 캐나다 등을 포함한 OECD로 확대 개편됐다.이제는 선진7개국(G7)정상회담의 사무국 역할과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막후조정을 할 정도로 국제경제질서를 주무르는 최고의 국제경제기구로 떠올랐다.이런 기구에 가입해 회의에 참석한 우리 정부 관리들은 OECD가입이 백번 잘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본부가 파리에 소재하고 있어서인지,회원국이 유럽지역에 편중돼 있는 탓인지 유럽 텃세가 심하기로도 유명하다.한국의 가입협상때 아시아국가들은 지원사격을 많이 해준데 비해 유럽국가들은 꼬치꼬치 트집을 잡기도 했다.때문에 백인 기독교사회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회원국이 되려는 한국을 골탕먹이려 한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최고기구 각료이사회 OECD의 회의 특징은 회원국간 비밀을 중시하고 웬만한 서류에는 「컨피덴셜(비밀)」이라고 찍혀 있다.지난 연말 투자보장협정(MAI)회의에 참석중 OECD건물에서 만난 한국의 한 외교관은 『한국이 정식 회원국이 아닐때 한 위원회의 회의에서 하루에 3번씩이나 쫓겨나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며 『회원국의 가장 큰 장점은 쫓겨나는 설움이 없이비밀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점』이라고 전했다.그만큼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라는 얘기다.회의의 또다른 특징은 「동료간 압력(Peer Pressure)」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회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의 말을 빌려 종합해보면 이렇다.A국의 경제정책이 잘못돼 B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치자.B국의 대표는 어느날 회의에서 『A국의 정책은 국제경제규범에 어긋난다』고 간접적으로 지적하면서 수정을 요구한다.그러고 나면 회원국들은 A국과 함께 토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정책 조화를 도출해 나가는 점잖은 진행방식이다.이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최신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 OECD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는 이런 각료이사회와 함께 상주대표들이 참석하는 일반이사회가 있다.사무총장을 의장으로 하는 일반이사회가 열리는 매달 두번째및 네번째 목요일은 OECD가 붐비는 날이다.그리고 특별사안이 있으면 한차례 이사회가 더 열려 한달에 2∼3번씩 열리는 셈이 된다.이 자리에서 신규 회원국 가입문제와 위원회별 심사및 검토결과에 대한 최종 승인이 내려진다. 이사회 산하에는 26개의 분야별 위원회가 있고 200여개의 작업반이 구성돼 있다.이들 작업반에서는 문제점으로 지적된 경제정책에 대한 해결방안 등에 대한 연구가 모색된다.이외에 국제에너지기구(IEA),원자력기구(NEA),교육연구혁신기구(CERI) 및 개발센터(DC) 등의 반독립적 부속기관들이 설치돼 있다.
  • 새해 정치 캘린더와 각당의 정국 기상도

    ◎여/4∼5월 후보경선 채비 본격화/신한국당/1월­김 대통령 7∼8월쯤 연두회견 또는 담화/2월­당직 물갈이설… 예비주자 합종연횡 가속/7∼8월 당헌·당규따라 2∼3명 최종 후보경선 예상 새해에는 통일한국의 21세기 새장을 열 15대 대통령선거가 12월에 예정되어 있다.이번 대선은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여야 모두 정치적 기치로 「개혁의 완성」을 내걸고 있다.신한국당은 『정치권의 세대교체야말로 개혁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야권은 야권대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장 큰 개혁』이라며 맞서고 있다. ○현체제유지 여부 관심 1월은 바로 이같은 「대권경주」의 출발점이다.신한국당에서 가장 큰 관심은 누가 최종 후보경선에 나서고 그 시기가 언제냐이다. 일단 벽두부터 최근 자민련에서 입당한 의원들의 지구당개편대회와 함께 청년조직과 직능조직을 대폭 강화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당 기간조직을 대선체제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정국흐름의 본류는 아니다. 역시 큰 가닥은 1월7,8일쯤 이뤄질 김대통령의연두 기자회견 또는 담화이다.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정현안에 대한 구상과 아울러 당내 후보경선 원칙 등을 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그러나 당내 후보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는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당의 한 고위당직자도 『당 총재로서 자유로운 경선원칙 정도를 피력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통령의 기자회견 또는 담화발표 직후 정국은 원하건,원치않건 요동을 칠 것이다.당내 예비주자들의 행보도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일부인사 거취 표명도 그렇다고 당내 예비주자들의 경선출마 선언과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까지는 나아갈 것 같지않다.아직 정국이 노동관계법개정안 후유증과 더불어 남북문제 등으로 예측불허의 상황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김대통령의 의중을 감안한 한계속에서의 움직임일 뿐이다. 이어 여권은 김대통령의 취임 4주년인 2월25일을 맞게 된다.현재로는 이를 전후해 대대적인 당직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게 중론이다.1월 김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전후라는 관측도 있으나아직은 소수론이다.여권의 한 핵심인사도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않았기 때문에 늦어도 이 때는 당을 대선관리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개편이 이뤄진다면 이홍구 현대표체제의 지속여부와 이수성 국무총리와 강삼재 사무총장이 유임될지가 이때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에 맞춰 예비주자간 합종연횡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다.특히 당내 민주계의 결속과 민정계의 향배가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당내 유력주자들의 자유경선론과 당헌당규 개정 주장이 어우러지면서 「당정분리론」 「민주계 배제론」 등 집권후 지분및 권력분담에 대한 갖가지 가설들이 또다시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윤환·이만섭 상임고문과 김종호 정보위원장의 거취표명도 뒤따를 것으로 여겨진다. 이 와중에 4,5월로 접어들면 각 후보들의 도전선언과 각 진영의 후보추대위가 구성되면서 당은 본격적인 경선채비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이 시기 정국 최대변수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문제이다.여야 모두 대선을 고려,유리한 방향으로 이를 끌고가려할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7,8월에 이르면 당은 막판 「고갯길」을 힘겹게 넘어서는 형국이다.이른바 「경선정국」이다.현 당헌·당규대로라면 여권의 경선은 2∼3명의 후보가 겨루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때 초미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김심」의 향배다.자유경선과 함께 후보 사전 조정문제도 세를 얻으며 활발히 논의될 것이다. ○김심의 향배가 변수로 여야 모두 후보가 정해지면 정국은 사실상 12월18일을 향한 선거정국으로 접어든다.후보의 지역나들이가 분주해질 것이고 김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곧이어 각당은 선거대책본부 구성에 이어 후보등록을 한뒤 11월26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선거운동 기간 중 첫 후보간 TV토론이 예정되어 있어 예전과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18일 자정쯤 대통령당선자 윤곽이 드러나고 이로써 40년 가까이 계속되어온 「3김시대」도 종언을 고한다. ◎국민회의·자민련/DJP공조 지속여부 최대변수/양측 사활 걸려 후보단일화 싸고 진통클듯/「반DJ」 「제3후보」 등 내부 역풍도 만만찮아 「97년 대선」에 임하는 야권의 최대변수로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총재) 공동집권론」을 꼽는데 별 이견이 없는것 같다.두총재가 야권 최대주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집권 카드」는 올 대선판도를 뒤흔들 가능성도 크다는 암묵적 동의이기도 하다. 이러한 「DJP구상」은 무엇보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두총재의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3김청산이라는 세대교체 돌풍에 맞서 「공멸」을 막고 「공생」을 도모하자는 계산이 깔려있다.권력참여의 마지막 기회로 삼는 이들로서 일생일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마지막 승부수 던져 그렇다면 「DJP 공동집권론」의 핵심은 무엇인가.한마디로 내각제의 「권력분점」을 고리로 하는 정권교체로 요약된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텃밭인 호남과 충청권의 고정표를 묶고 여기에 무주공산 TK(대구 경북)의+α를 합쳐 승리를 이끌겠다는 산술적 계산을 근거로 한다.호남,충청,TK를 잇는 「삼각 연합군」을 구성,「PK(부산·경남) 포위작전」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일부에서는 92년 대선에서 「호남대 비호남 대결」로 치러졌던 92년 대선구도를 역으로 이용한 DJ의 신 지역분할전략이라는 비난도 이런 맥락이다. 현재까지 자신의 표현대로 민주정통세력(DJ)」과 「보수원조(JP)」의 접목은 그런대로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는 지적이다.DJ의 경우 4·11 총선 참패후 당내외에서 고개를 들었던 「DJ 불가론」을 잠재웠다.JP도 『여권의 자민련 파괴공작을 효율적으로 방어했다』는 자평을 할 정도다.검경중립화 등 제도개선특위에서의 「전리품」도 「DJP공조」 없이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많다. ○권력배분도 문제로 그러나 무엇보다 대권4수의 부담을 지닌 DJ나 제3당 당수에 불과한 JP 모두의 대권 가능성을 한껏 높인 「카드」로 믿는 분위기다.지난해 12월 최각규 강원지사 등 자민련 집단탈당과 안기부법­노동관계법 공동투쟁 속에서 양당의 위기의식이 결속의 끈을 졸라맸다는 평이다. 그러나 「DJP 공동집권」을 「2인3각의 레이스」로 비유하듯 위태한 고빗길도 많다. 우선 「후보단일화」가 최대 장애물이다.「누가 후보가 되는냐」는 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양측 모두 필사적으다.『고정표가 많은 DJ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국민회의) 『보수화 추세에 따라 JP가 득표력에서 유리하다』(자민련)는 등 「평행선 설전」만이 오가는 실정이다. 공동집권후 권련배분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4(DJ):4(JP):2(TK) 등 각종 배분율이 난무하지만 미결상태라는 것이 정설.단지 DJ측에서 『후보로 밀어준다면 나머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이미 JP진영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화 시기를 놓고도 신경전이다.『내년 6월부터 시작하자』는 DJ에 맞서 JP는 『선거운동 기간(12월)에도 무방하다』며 한껏 뒤로 미루고 있다.국민회의 박지원 기조실장은 『독자적인 세력확대를 꾀하면서 선거 막판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 전략상 유리하다』며 11월 중순경을 D­데이로 제시했다. 최지사 파문에서 보듯 자민련 내부의 「반DJP 세력」도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JP가 DJ의 손을 들어 줄 경우 자민련 당내,특히 TK와 경기출신 의원들의 연쇄탈당도 배제할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연쇄탈당 우려높아 「DJP 구상」에 대한 내부 역풍도 만만치 않다.아직까지 「찻잔속 태풍」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 「메가톤급」으로 바뀔지 모른다.국민회의의 경우 편차가 있지만 김상현 의장과 정대철·김근태 부총재 등 3인 중진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특히 김의장은 『DJ로 내년 대선은 반드시 패배한다』며 「제3후보론」을 야권에 띄워놓고 있다.자민련 한영수 부총재도 『DJ는 정치적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고 화답했다.3김청산을 고리로 「민주대통합론」을 펼치는 이기택 민주당총재와 이부영 의원,민주당 비주류의 통추그룹 등도 가세하고 있다. 내각제 개헌시기도 미합의로 남아있다.DJ는 「16대 국회초반」을 JP는 「15대 국회임기말」을 「거사 시점」으로 주장한다.내각제 개헌을 집권의 수단으로 여기는 DJ와 일생의 최대목표로 삼는 JP사이에서의 「대흥정」만을 남겨둔 상태다.
  • 자살… 표절… “시끄러웠던 한해”/’96 가요계 결산

    ◎서지원·김광석 죽음 이어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소동/룰라 자해파문… 마이클 잭슨 우여곡절끝 공연 올 가요계에는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95년말 김성재의 의문사에 이어 올초 서지원,김광석의 자살 등 한두달 사이 가수들의 죽음이 잇따라 온갖 루머를 낳기도 했다.이들의 사망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즉 가요계에 산재해 있던 병폐들(마약·음반흥행에 따른 부담 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어 지난 4년간 가요계를 좌우했던 그룹「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잠적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들이 정식으로 은퇴기자회견을 갖기전 언론을 필두로 한 온 사회가 서태지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소동이 일어났다. 정초부터 큰 사건들을 겪은 가요계는 이후 남은 기간동안 끊임없이 표절시비 도마위에 올랐다.그룹 「룰라」가 3집 「천상유애」를 발매하기도 전에 표절임이 확인돼 멤버중 한사람이 자해소동을 일으키고 방송활동을 중단한데 이어 김민종이 자신의 「귀천도애」가 일본노래의 표절임을 스스로 밝힌 뒤가수활동 중단을 발표했다.공식적인 표절시인을 제외하더라도 수십곡의 노래가 표절시비를 겪었다.이처럼 올해 표절혐의곡이 유난히 많았던 것은 PC통신에 표절방이 따로 생길 정도로 통신인들을 중심으로 한 보이지 않는 「표절감시단」의 활동이 컸기 때문이다.주로 10∼20대 초반인 이 감시단들은 위성방송 등을 통해 일본노래를 자주 접한 탓에 일본노래를 베끼다시피하는 표절가요들을 놓치지 않고 골라냈다.이때문에 일본문화개방이라는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을 앞둔 찬반여론도 96년의 큰 사건에 속한다.잭슨의 성추행,고액 개런티 등을 문제삼은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반대대책위원회」까지 생겨나 반대활동을 벌였으나 문화개방이라는 대세에 밀려 공연은 성사됐다.이 공연의 성공으로 내년에는 해외가수들의 내한공연이 줄줄이 예정돼있어 우리 공연의 내실을 기해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가뭄속에 단비도 있었다.지난 6월7일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가 완전폐지된 것.이에 따라 정태춘의 5,6집과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다시 살아났다.하지만 방송사의 자체심의는 여전히 남아있어 정태춘의 노래 일부와 패닉의 「벌레」 등은 방송을 타지 못하고 있다.
  • 불황·포르노에 얼룩진 한해/’96 「문학의 해」 결산

    ◎사업표류·내부압력으로 일과성 행사/우화소설류 인기… 대중문학 자리매김 96년은 문화체육부가 정한 「문학의 해」이지만 정작 문단에서는 이런저런 기념행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채 한해를 무덤덤하게 보냈다. 올해 우리 문학은 외적으로는 출판불황,내적으로 이렇다할 주류없는 다채로운 작품경향이 특징아닌 특징이었다. 우여곡절끝에 닻을 올린 「문학의 해」 사업은 일반인들에게 문학을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기보다 일과성 행사에 그쳤다는 의견이 지배적.근대문학관·번역원 설립 등 장기사업구상도 예산과 부지확보 등에서 아직 표류중이다.이벤트 몇개로 독서인구를 부쩍 끌어올릴 수 없는 문학의 속성,시작부터 민족문학작가회의측의 이탈을 불렀던 배타적 주도권,손바닥 예산을 감안치 않은 무리한 사업구상 등이 맞물려 문학중흥에 별무소용한 「문학의 해」가 됐다는 것. 창작에서는 사회참여 혹은 여성작가들의 섬세한 내면지향 등 주도적 경향이 뚜렷했던 80∼90년대초와는 달리 고만고만한 여러가지 개성들이 혼재(혼재)한 한해였다.구효서의 「비밀의 문」,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같은 굵직한 서사물이 배수아,송경아 등 신세대 작가들의 글쓰기와 나란히 나왔다.신진작가 김영하씨는 체험이 아니라 상상력으로만 빚어낸 환상소설을 들고나와 한국문학의 오랜 교양소설적 전통에 대들었고 귀신을 불러들인 신경숙씨의 신작작품집은 10만부 가량 팔렸다.콩트만큼 짧은 엽편소설이 유행했는가 하면 최명희씨의 대하소설 「혼불」이 12월 완간돼 대미를 장식했다.영상매체와 급속한 정보화의 협공속에서 문학이 자기자리 찾기를 위해 다채로운 모색을 펼친 증거이며 이는 조만간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출판계의 관측이다. 끝을 모르는 불황의 터널속에서도 올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로는 단연 「아버지」가 꼽힌다.8월중순 나온 「아버지」는 가장의 몰락,명예퇴직 등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넉달간 50만부가 팔렸으며 기세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우화소설 바람을 업고 상반기 베스트셀러가 된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안도현의 「연어」 등과 함께 「아버지」는 본격소설의 몰락,대중문학의 가능성 등을 암시했다.「아버지」를 펴낸 문이당의 임성규 사장은 『작가와 대중간의 골이 날로 깊어가는 요즘 「아버지」는 독자들이 「눈높이」에 맞는 문학을 갈망하고 있음을 자명하게 보여준다』고 자평했다. 올 연말에는 장정일씨가 본격 포르노소설을 표방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펴냈다가 출판사대표의 구속을 불러온 「사건」을 일으켰다.이 일로 성 담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가는 사회분위기에서 문단내부적으로 포르노문학에 대한 기준마련,입장정리 등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 새 저작권법 발효… “엎친데 덮쳐”/‘96 출판계 결산

    ◎작년비 15% 줄어든 납본… 최악국면 여전/불황·개방속 경영·유통 변신 움직임 활발/정보화엔 적극대처·뜨거운 외설출판물 논란도 96년 출판계는 개정저작권법 시행,도서발행종수 감소추세 등 전반적으로 위축된 분위기속에서도 변화하는 출판환경에 대응하려는 갖가지 움직임이 활발한 한해였다.출판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경영합리화,출판유통현대화 작업 등이 가시화됐으며 정보화시대를 맞아 일반 독자들의 정보화욕구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외설」출판물 논란이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올해 출판계의 가장 큰 이슈는 개정저작권법의 발효.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저작권법의 핵심은 사후 50년이 안된 작가에 대해서는 무조건 저작권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우리 출판계는 이제 거의 모든 외국 유명작가의 저작물에 로열티를 지급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그때문인지 올해에는 저작권이 이미 소멸된 저자들,이를테면 프로이트·헤세·괴테·카프카 등의 전집이 앞다퉈 출간됐다.저작권 강화로 가장타격을 입은 곳은 학술서 전문출판사.이에 대한 지원책으로 우수학술도서를 선정,출판비 일부를 출판금고에서 지원해주는 우수학술도서지원제도가 신설돼 1차분으로 40여종의 학술서가 선정되기도 했다.외국출판물이나 시장에 대한 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번역물 비중이 높은 출판사에 저작권 및 에이전시 관련업무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전문직종이 생긴 것도 눈길을 끄는 현상이다. 올 한해 우리 출판계 사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역시 출판물 통계다.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올 1∼10월 출판물 납본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에 발행된 신간은 모두 2만719종이다.이것은 「단군이래 최악」의 불황이라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9%나 줄어든 것으로,이같은 도서발행종수의 감소추세는 장기적인 독서시장 침체와 개정저작권법 발효 등으로 출판사들의 운신 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출판계는 올해 어렵사리 불황의 터널을 헤쳐나오면서도 정보화시대에 부응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줬다.국립중앙도서관이 지난 2월26일부터 공중정보통신망을 통해 국제표준도서번호(ISBN)에 의한 출판도서정보를 온라인 서비스한 것이 대표적인 예.또 8월에는 출판사·서점 등 출판관련업체와 독자·도서관 등을 컴퓨터 통신망으로 연결해주는 출판 VAN(부가가치통신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한국출판정보통신(대표 강경중)이 창립됐다.이밖에 한울·영진·삼성 등 몇몇 출판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으며 문학동네는 출판사 공동서버 구축을 계획하고 있는 등 정보화추세에 대비하는 구체적인 몸짓을 보여줘 주목된다. 우리 출판계가 안고있는 최대현안 가운데 하나인 출판유통 현대화작업도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였다.우선 올초 국내 380여개 출판사 및 서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주)한국출판유통(대표 윤석금)을 들 수 있다.지난 8월 본격 활동에 들어간 한국출판유통은 98년까지 첨단설비와 정보시스템을 갖추고 보관·판매·배송·수금·정보·금융 등 출판물 유통관련 업무를 일괄처리함으로써 출판물유통 현대화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또 지난 88년 처음 발의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던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가 10월 1일 수도권정비 실무위원회에서 「수도권내 공업지역」으로 확정된 것도 기록할만한 일.파주단지측은 늦어도 97년 상반기중에 용지를 분양하고 98년 하반기까지는 본격적인 건축사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편 92년 「즐거운 사라」이후 출판계가 다시 외설논쟁의 진원지가 된 것도 올해의 「사건」으로 꼽힌다.「에로스 훔쳐보기」(심지)로 촉발된 외설시비는 「아마티스타」(열음사)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에까지 이어졌다.특히 열음사와 김영사에 대한 행정·사법적 제재는 표현의 자유와 외설의 한계라는 「고전적」 명제를 다시금 생각케 한 사례였다.
  • 건축가 김원(이세기의 인물탐구:113)

    ◎자연·인간 하나로… 청수한 공간 조성/하나의 작품 맡겨지면 환경을 먼저 생각/KOEX·독립기념관 등 대형 프로젝트 단골 『내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어도 밥먹으러 가자거나 퇴근시간에 술한잔 하자는 사람도 없었다』 건축가 김원이 대학졸업후 김수근건축연구소에 다니던 안국동시절의 초상화다.아침에는 일찍 나와서 사무실 청소에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도면을 그려나갈 80자루 이상의 연필들을 깎아서 갈아놔야 했다.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수많은 책들을 읽을수 있었다.「건축철학」에서 「공간심리학」「네덜란드의 종합국토계획」에 이르는 방대한 독서를 할수 있었고 일본책을 읽기위해 혼자서 일어공부를 하기도 했다.이것이 모태가 되어 후에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용어를 구축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일이 주어지면 선배들은 「서울대학에선 이렇게 가르치느냐?」고 힐난했다.1년이 지나서야 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있는 그를 발견한 김수근씨가 67몬트리올 박람회 한국관 프로젝트를 맡겼다.이 기간동안 그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 나갔다.여수수족관 정부종합청사 조선호텔을 설계하거나 여의도종합개발 과학기술연구소설계에 참여하고 70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설계를 담당했다.인내로써 신뢰를 쌓으면서 성공적인 안국동시대를 거쳤다. 대학생활은 허무와 방황의 나날이었다.경기고에 다닐때는 조각가를 꿈꾸면서 천재조각가 권진규의 지도를 받기도 했으나 부친 타계후 혼자서 2남3녀를 키운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대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으나 대학은 「서울대생은 당연히 한국 건축계의 지도자가 돼야한다」는 자부심만을 키워주었고 전문교육이 아닌 「자율교육」을 유도하고 있었다.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않아 강의실밖에서 빙빙 돌다가 걸핏하면 산에 오르거나 「술독」에 빠져 비분에 찬 논쟁만을 일삼았다. ○고교시절 조각가 꿈꿔 건축가 김원은 결국 지난 30년동안의 건축실무와 경험에서 「건축은 유행가처럼 히트하는 것이 아니며 건축가는 영웅일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다.그리고 『사람이 어디에 사는가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디에 살고있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나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의 반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맡겨지면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을 위한 다방면의 연구에 들어간다. 영화진흥공사의 종합촬영장을 설계할 때는 모스크바 모스필름스튜디오 부다페스트의 마자르필름 이탈리아의 치네치타(시네시티) 등 세계 30여군데의 촬영장을 꼼꼼히 돌았다.국악당을 맡았을때도 황병기 박동진등 국악 관련자와 독주자 합주자 지휘자 무용가들을 고루 만나 인터뷰하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가야금연주에서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소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극장조건이 가장 이상적인가.길놀이와 뒷풀이를 위해 객석과 무대간의 유리감을 줄이고 안방같은 극장,혹은 마당같은 무대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마음껏 구사한 작품은 단연 보석전문점인 명보랑의 빙갤러리를 들수 있다.남산에서 하얏트호텔입구에서있는 이 첨단건물은 도시의 숲속에 파묻힌 한아름의 다이아몬드처럼 낮에는 종일 태양빛에 빛나고 밤에는 별빛아래 영롱하다.국내에선 낯선공법인 멜로 시스템을 적용한 노출된 내장마감과 하얀 알루미늄판으로 외곽을 덮으면서 지붕도 벽도 창문도 구별없이 건물전체가 수정처럼 각진채 「먼 우주를 향해 떠가는 비행체」 또는 「현대추상회화」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그외엔 주한 러시아연방대사관이 큐빅(정육면체)형의 독특한 외곽시도로 시선을 모았고 화순 남평에 짓고있는 광주가톨릭신학대학이 내년 7월로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는 본래 서울 북아현동에서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등 화단의 대가들이 드나들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외무부 부산출장소에 파견된 부친을 따라 국민학교를 부산에서 다녔고 공부는 물론 음악 미술 글짓기에서 재능을 보여 어릴때는 「신동」소리를 듣기도 했다.지금도 건축뿐 아니라 뛰어난 건축이론과 건축수필로 오늘의 건축에 대한 문제점을 유려한 필치로 전개하여 올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을 받았다. 건축가들의 대부분이 「대장간에 칼이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택을 갖지못한 것과는 달리 그는 67년 이미 정릉꼭대기에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지은 일이 있고 3년전에는 종로구 동숭동에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인 「광장」빌딩을 신축,지금은 10년전에 다시 지은 옥인동 자택에 살고있다.부인 박정애씨와의 사이엔 남매,두주불사의 애연가다. 그는 시인같고 대학의 청년강사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풍수지리의 대가로도 이름이 높다.일본의 유명한 야기충언은 그의 저서 「한국의 풍수사들」에다 김원을 특별하게 따로 다루고 있고 독립기념관과 국립예술종합학교를 이문동 중정자리에 추천한 것도 바로 김원 자신이다. 그의 사고력은 「어느때는 넓은 물과 같고 어느때는 깊은 산속같다」는 말을 듣는다.건축가 공일곤에 의하면 『하나에 파고들면 끝장을 내고야마는 건축계의 몇안되는 완벽주의자의 한사람』이다.그러면서도 하나의 건축을 이룰 때마다 「불사불루」,지나치게 사치하지 않고 그러면서 누추하지 않은 누구나 「애정」을 가질수 있는 부드럽고 청수한 공간을 조성한다. ○풍수지리연구회장 역임 김원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딛고 이제 건축계의 기린아로 우뚝 서있다.76년이래 독립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시대를 앞장서는 수많은 작품을 이룩하였고 80년대이후 대규모의 정부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의 업적은 신문지 한장이 모자랄만큼 「한 일」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건축계의 엘리트로 상징되는 그의 위상은 지금 가장 왕성하고 의욕적으로 자신에게 축적된 모든 것이 용해되어 창작품으로 흘러나오는 시기다.그의 꿈은 자연과 인간이 완전히 일체감을 이루는 「자연속의 건축」을 이루는 일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항상 도전하고 연구하고 고뇌하는 엘리트의 모습을 변치않고 있다. □연보 ▲1943년 서울 출생 ▲65년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65∼70년 김수근 건축연구 소근무 ▲73∼78년 이대 및 동대학원 출강 ▲76년 건축연구소 「광장」 개소 ▲79∼89년 한국풍수지리연구회 회장 ▲82년 제1회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해마다 출품),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종합기획위원 ▲84년 예술의 전당 건축설계 자문위원 ▲85년 「세계현대건축가 101인」(일본 가지마 출판사 선정) ▲87∼95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도시계획분과위원장 〈현재〉 한국건축가협회·한국실내디자인학회·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명예이사,건축환경연구소「광장」 및 도서출판「광장」대표,대한건축학회 정회원,국제박물관협의회(ICOM)정회원 〈작품〉 67 조선호텔계획,엑스포 70 (일본 오사카)한국관,한국종합전시관(KOEX),박경리기념관,독립기념관,국립국악당,명보낭(빙갤러리),경주 신라민속촌,영화진흥공사 종합촬영소,통일연수원,외무부 외교센터,서울원서동 불교박물관,주한러시아연방국대사관,분당시범단지공동주택외 성당 수도원 신학대 등 200여점 〈저서〉 건축평론집 「우리시대의 거울」,수상집 「한국현대건축의 이해」 「빛과 그리고 그림자」외 논문다수 〈수상〉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79·80·81·82·83·85·86··91·95년)한국인테리어 디자이너협회작품상(84년) 엄덕문건축상(91년)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96년)
  • 정부의 최종안을 보고/김종태 서울대 경영대학장(특별기고)

    ◎노동법 개정은 경제회생 위한 용단 진통을 거듭해왔던 노동관계법 개정이 3일 정부의 최종안으로 확정되었다.그동안 개정안의 주요쟁점이었던 이른바 3금·3제,즉 「3금지」인 제3자개입금지,복수노조금지,정치활동금지와 「3제」인 정리해고제,변형근로시간제,근로자파견제중 파견근로제만 제외하고 모두 확정되었다.뿐만 아니라 국제규범상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에 대한 개정안도 마련하였다. ○「삼금·삼제」 합리적으로 수용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노동과 노사관계의 양상이 급변하고 있으며 새로운 차원의 노사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경제,기술,사회적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노동환경이 종래와는 달리 형성되고 노사관계도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다.특히 경제적 측면의 개방화와 세계화의 물결은 노동상품의 무한경쟁시대를 예고하고 있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이다.따라서 노동수요측인 사용자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제고를 위하여 3제를 주장하는 것은 국민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당연한것이고,이에 정부가 단안을 내린 것은 미흡한 점은 있으나 시의적절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한편 근로자파견제도입을 제외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대신에 대체고용제허용의 문을 열어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대체고용제」 허용한건 다행 정부가 이번에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를 기업경영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과감히 도입하기로 한 것은 경제난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우리 경제의 고비용구조를 개선하는데 주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리해고제의 경우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로 신기술,신공정의 도입과 산업구조 변경,생산규모 축소 등을 폭넓게 인정,불가피할 경우 기업이 인원정리와 인건비부담완화를 통해 경영의 숨통을 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산업민주화의 사회적 정의차원에서 노동의 참여를 높이고 최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과 국제노동기구(ILO)진출에 따라 요구되는 국제적 노동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정부가 재계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측이 주장해온 「3금」해제를 단위사업장에 대해 5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복수노조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교원·공무원단결권 유예 등 미진한 측면도 있으나 일단 노사개혁의 의지를 보여준 용단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밖에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는 조합비상한선 폐지,노조에 대한 행정관청의 업무조사권 폐지,공익사업 및 직권중재대상 축소,노동위제도 개선,자유출퇴근·재량근로제의 도입 등 나름대로 의미있는 대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노동환경의 많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고비용구조 개선 주목적 늦게나마 정부가 이와 같이 개정안을 확정지은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그것이 옳은 선택이냐 아니냐 하는 시비를 떠나서 노사관계 정책당사로서의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늦게나마 단안을 내린 것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노사 양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해오면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할때는 정부의 소극적 자세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기도 하였다.왜냐하면 노동관계법 개정은 어느나라든지 정부와 정당의 강력한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 개혁의 의지와 행동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과 역사가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현행 노동관계법을 한꺼번에 손질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던 정부의 노동법개정안은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오는 11일쯤 국회로 넘겨지게 된다. ○정부·정당 합심 성과 기대 노동계가 총파업을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개정보다 어렵다는 노동법개정이 과연 정부의 의지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되지만 국회에서는 미흡한 점을 보완하며 정부와 정당이 합심하며 이해집단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동관계법을 개정할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그럴때 노동관계법 개정의 취지대로 경제의 성장과 삶의 질향상도 가시적인 성과를 낳을 것이다.
  • 어음보험기금 도입 막바지 조율(정책기류)

    ◎국고지원 500억∼1,000억 사이서 줄다리기/가입대상 중기 「매출액 10억이상」으로 가닥 어음보험기금을 도입하기 위한 최종조율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어음보험기금은 당초 중소기업청의 제안에 의해 도입이 추진됐으나 예산당국인 재정경제원이 제동을 걸면서 물건너간 듯하던 사안이다.내년도 예산을 짜면서 중소기업청이 요청한 어음보험기금에의 정부출연금 1천억원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가 지난달 『어음보험기금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바뀌어 현재 당정간 작품을 내놓기 위한 막바지작업이 진행중이다. 어음보험기금은 물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한 기업이 이를 구입한 기업의 도산 등으로 외상매출채권(어음)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는데 주목적이 있다.현재 프랑스와 영국 및 독일 등의 선진국에서 민간에 의해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간이 아닌 국고지원을 통해 이 기금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기금도입은 수도권 총량규제대상 공장면적,국민주택기금을 통한 중소기업 자금지원방안 등과 함께 「소규모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에 담길 핵심사안의 하나로 패키지형식으로 처리된다. 당정이 풀어야 할 기금도입을 위한 선결과제는 기금재원조달을 위한 국고지원규모,기금가입 중소기업대상,기금의 운영주체 등 세가지로 압축된다. 기금의 재원은 국고지원과 보험가입자의 보험료에 의해 충당되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하게 될 기금에의 출연액을 얼마로 할지가 관건이다.혜택을 입게 될 중소기업대상이나 그 효과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고지원액은 중소기업청이 당초 재경원에 요청한 1천억원과 이의 절반수준인 5백억원 등 두 가지를 놓고 줄다리기중이다. 재경원은 그러나 국고지원액이 얼마이든 현단계에서는 내년 예산에 한푼도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다른 부문에서 떼어내야 하는 점을 들어 1천억원을 출연하기는 어렵다는 쪽의 의견을 강력히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그렇다고 국고지원액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예산에 반영돼 있는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에의 출연액을 일부 떼어내 충당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재경원 관계자는 『우여곡절을 겪은 사안인 만큼 당장 시행초기부터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십시일반으로 중소기업을 도운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5백억원으로 결정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기금재원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금에 들 수 있는 대상중소기업도 일정한 선에서 한정짓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경원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평균어음부도율은 1%이상일 정도로 기금운영에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모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며 『매출액 10억원이상인 기업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고 밝혔다.물품대금 등으로 받은 어음의 발행기업도 역시 매출액이 10억원이상으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어음보험기금의 운영주체를 누구로 하느냐는 문제도 걸려 있다.기금운영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아니지만 기금에 대한 업무감독권한 및 관련정책의 수립부서,중소기업분야에 대한 업무영역확대라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내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중소기업청은 수출보험공사를,재경원은 신용보증기금을 각각 운영주체로 내세우고 있다.그러나 중소기업청은 각론에 집착하다가 「성사」를 그르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기금도입에 더 비중을 둘 것으로 보여 신용보증기금에 낙점찍힐 것이 유력해 보인다. 당정은 소규모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한 빠듯한 일정을 감안,조만간 이런 쟁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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