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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周永 회장 새달 9일 訪北 의미

    ◎南北 민간차원 經協 활성화 신호탄/남북관계 개선 획기적 계기… 정상회담 실현 기대/분단후 처음 민간인 판문점 통한 왕래 물꼬도 터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다음 달 9일 판문점을 통해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게 됐다.앞으로 남북한의 민간차원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또 민간차원의 교류가 활성화되면 정부차원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활발해 질 전망이다.나아가 남북간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보다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 분단이후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해 방북(訪北)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최근 리틀엔젤스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것도 중국을 거쳐 이뤄졌다.90년대 초 남북간 고위급(총리)회담은 판문점을 통해 이뤄졌지만 정부간의 회담이었다.민간차원의 방북은 제 3국을 거치는 방북만 있었다.이번 방북은 결국 정부간의 접촉에서도 제 3국보다는 판문점을 거쳐 교류나 회담이 이뤄질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그동안 북한은 판문점을 통한 방북 허용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해왔다. 북한 당국은 鄭명예회장의 ‘새로운 방식’에 의한 방북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강경파인 군부는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 동안 판문점을 화해의 장(場)이 아닌 대결과 냉전의 장으로 이용해온 탓이다.북한의 군부는 鄭명예회장의 방북이 이뤄지면 판문점이 화해의 장으로 바뀌는 데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측에서 소를 지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기 때문에 반대해왔다.하지만 날로 악화되고 있는 북한의 경제사정이 군부의 입김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다. 鄭명예회장은 방북하면 금강산 개발 등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鄭명예회장의 방북은 남북간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그 만큼 높여줄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북한은 이에 앞서 지난 20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를 통해 오는 7월26일 최고인민회의 제 10기 대의원대회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통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회를 거친 뒤 1개월이 지난뒤 1차 대의원대회를 열어 국가주석을 선출해왔다.때문에 빠르면 8월 말쯤에는 金正日 당 총비서를 국가주석으로 선출할 것으로 관측된다.그렇게되면북한에도 명실상부한 국가주석이 등장하게 돼 남북한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는 외형상의 ‘격’은 맞게된다는 지적이다. 康仁德 통일부장관은 지난 20일 도산아카데미 초청 조찬간담회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지만 북한의 당 총비서와는 만날수 없다”고 말해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 총비서를 만나는 것은 격은 맞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었다.이에 따라 鄭명예회장의 방북이 무사히 이뤄지고 북한에 국가주석이 등장하게 되면 분단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의 그림이 구체화 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조심스런 전망이다. ◎鄭씨 70년만에 소떼 몰고 고향으로/구제역 발생·북 미온반응으로 한때 긴장/수송 트럭 100대는 북한에 두고 귀환 “자유의 다리를 건너고 싶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70년 만에 ‘소몰이 목동’으로 고향을 찾는다.우여곡절 끝에 소 1,0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거쳐 내외 언론의 플래쉬를 받으며 북녘 고향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한민족의 화합을 위해 한사내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열정일 지도 모른다. 鄭 명예회장이 고향 통천을 멀리하고 남녘으로 내려와 이룬 ‘세계 최고급의 자동차’를 몰고 고향 땅을 밟겠다던 염원을 마침내 이루게 됐다.그는 얼마전 자신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다이너스티를 타고 자유의 다리를 건너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박한 꿈’은 지난 4월 금강산 개발사업 등을 논의하러 북한을 방문했던 현대실무단(임직원 3명)에 의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이후 鄭명예회장은 “소 1,000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각계에 전달했다.처음엔 반응이 좋았다.그러나 때마침 중국에서 발생한 구제역(소·돼지에 발생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북한전역으로 확산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鄭회장의 구상이 차질을 빚는 듯했다. 정부는 차로 소를 수송할 경우 수송차량 등이 구제역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했다.북한도 소떼의 판문점 통과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鄭회장의 염원은 ‘꿈’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 수송차량을 북한에 두고 오기로 한 것도 이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鄭회장의 소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그가 어린 나이에 고향 산천과 부모를 뒤로 했던 것도 소때문이었다.鄭회장은 금강산 자락인 강원도 통천군 아산에서 태어났다.그가 호가 아산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어려서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던 당시 상황과 부모의 한을 그는 잊지 못한다. 그는 통천에서 두번 가출에 실패한 뒤 소 판 돈 70원을 훔쳐 마지막 가출을 시도했다.남쪽에 내려와 그는 오늘의 현대그룹을 일구었다.그래서 그의 남행은 소와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다. 소 한마리만 있었으면….鄭회장이 충남 아산 목장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 지도 모른다.그는 94년 서산목장에 150마리의 한우를 방목하기 시작했다.이후 목장을 방문하면 축사를 먼저 둘러보곤 했다.이제는 1,700마리를 웃돈다. ‘북한으로 시집가는 鄭회장의 소들’은 논밭갈이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鄭회장의 소는 1,000만 이산가족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굳게 닫힌 북녘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어쩌면 그의 방북은 인간 鄭周永과 분단시대의 상황이 빚은 이 시대의 축복이자 불행이다.
  • 6·4 지방선거 D­10/광역장선거 판세 점검

    ◎부산·울산 무소속 돌풍… 한나라 위협/국민회의 6·자민련 5·한나라 5곳 “유리”/강원­팽팽한 3파전/경기­孫鶴圭,林昌烈 맹추격 6·4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전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여·야는 나름대로의 중간 판세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굳히기 혹은 뒤집기 전략 마련 등에 부심하고 있다.24일 현재 국민회의는 서울과 전남·북 등 6곳의 광역단체장 후보가,자민련은 인천과 충남·북 등 5곳의 후보가,한나라당은 대구 경남·북 등 5곳에서 각각 ‘절대 우세’ 및 ‘우세’를 나타냈다.권역별 판세를 광역단체장을 중심으로 점검해 본다. ▷서울·경기·인천◁ 서울의 경우 국민회의는 高建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절대우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체 분석하고 현재의 우세를 투표일까지 끌고 가기 위해 구역별 공약홍보 강화 등으로 일하는 시장 이미지를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崔秉烈 후보가 TV 토론에서 소신과 추진력이 돋보여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판단하고 李信行 의원 구속영장 발부 등 검찰의 ‘야당탄압’ 수사를 정치쟁점화해 야당바람 일으키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인천은 자민련 崔箕善 후보의 절대우위속에 한나라당 安相洙 후보가 추격중이다.여권은 崔후보의 인지도가 TV 토론 후 그대로 지지로 연결되고 있다며 느긋한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선거바람이 부는 주초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선거벽보 등이 게시되면 반DJP 성향의 유권자들의 응집력이 생길 것으로 보고 이를 安후보쪽으로 결집시키는 묘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선거초반 국민회의 林昌烈 후보가 절대 우세지역이었던 경기는 환란책임 공방을 거치면 한나라당 孫鶴圭 후보와의 접전이 더욱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국민회의는 TV 토론 이후 격차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하면서 정치 아마츄어인 林후보가 앞으로의 방송토론 등에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등 돌발 변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TV토론 후 혼전양상으로 다가서고 있다고 분석하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강원◁ 연합공천이 우여곡절끝에 자민련 韓灝善 후보로 확정된후 공천에 탈락한 강원지사 출신의 李相龍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고 여기에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가 가세해 삼파전 양상. 자민련은 李후보 주저 앉히기에 주력하고 있으며 무소속 李相龍 후보는 자신의 우위를,한나라당은 金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金후보는 韓·李후보가 모두 영서지역 출신이어서 영동지역 단일후보인 자신의 어부지리를 기대하고 있다. ▷대전 충·남북◁ 자민련의 텃밭인 만큼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에게 공간을 좀처럼 내주지 않고 있다.특히 광역단체장의 경우 별다른 돌출 변수가 없는 한 자민련의 석권이 예상되고 있다. 충남은 자민련 沈大平 현 지사가 독주체제를 갖춤에 따라 나머지 경쟁 후보들이 출마를 포기,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분위기다.충북은 서울시장 출신의 李元鐘 후보와 한나라당 朱炳德 후보의 양자대결구도다.朱후보가 자민련의 ‘충청벽’을 허물기 위해 총력을 펴고 있지만 자민련 탈당 경력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어 힘에 부치는 양상이다. 대전에서는 현시장인 자민련 洪善基 후보가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전직 국회의원인 국민신당 宋千永 후보와 대학교수 출신의 무소속 曺明鉉 후보가 도전장을 내고 추격중이다. ▷영남권◁ 한나라당의 체면이 걸린 곳이다.부산,대구,울산,경남,경북 등 광역단체 5곳을 모두 차지한다는 것이 한나라당 목표다.이에 국민회의는 부산과 경남에서,자민련은 울산,대구,경북에서 ‘여당 단체장론’으로 뒤를 쫓고 있다. 그러나 최대 변수는 무소속 후보들의 상승세다.부산과 울산이 대표적이다.부산에서는 한나라당을 탈당,무소속 출마한 金杞載 후보가 한나라당 安相英 후보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金후보는 여성과 젊은 층,건설업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특히 지난 21일 TV토론회가 ‘백중세’를 ‘金후보 상승세’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한나라당 자체 조사도 같은 추세라는 후문이다.국민회의 河一民 후보는 두자리수 지지율을 보이며 분투중이다. 울산에서도 한나라당 沈完求 현 시장을 ‘위협’하는 후보는 무소속 宋哲鎬 후보다.노조 출신인 宋후보는 울산지역 대단위 사업장 노조들의 공개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2강(强)2약(弱)’구도를 일궈냈다.전체 유권자 65만명중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주)SK 등 대규모 공단 노동자들이 20%가 넘는 15만명에 이른다.노동계 표의 결집력이 선거의 최대 변수인 셈이다.두 후보의 뒤로는 여권의 연합공천을 받은 자민련 車和俊 후보가 바짝 다가 서 있다.국민신당 姜正昊 후보는 다소 처진다. 대구와 경남에서는 ‘현역 단체장’인 한나라당 文熹甲 金爀珪 후보가 각각 강세를 보이고 있다.대구에서는 한나라당이 “이변은 없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자민련 李義翊 후보가 막판 역전을 꾀하고 있다.경남에서는 국민회의 姜信和 후보와 무소속 許文道 후보가 한나라당 金후보를 맹추격하고 있다. 경북은 전체 유권자의 21%를 차지하는 포항지역의 표심(票心)이 변수다.포항북이 지역구인 자민련 朴泰俊 총재가 선거전을 진두지휘하며 李判石 경북지사 후보와 朴基煥 포항시장 후보의 동반 당선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李義根 현 지사를 후보로 내세운 한나라당에서는 포항남·울릉이 지역구인 李相得 의원이 ‘소방수’역할을 맡았다.현재로는 지난 95년 李判石 후보에게 3.5%차의 신승(辛勝)을 거둔 李義根 후보가 한발 앞섰다는 분석이다.한나라당이 완승한 ‘4·2재보선’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점도 작용하고 있다. ▷광주 전남·북◁ 호남은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광역·기초의원까지 국민회의가 ‘싹슬이’를 장담하는 ‘텃밭’이다.한나라당 등 야권은 호남전지역에서 광역·기초 단체장 공천을 포기,‘싱거운’선거가 될 판이다.제주의 경우 역대선거에서 보여준 ‘무소속 강세’의 재현 여부가 관심이다. 광주는 우여곡절 끝에 국민회의 공천권을 거머쥔 高在維 전 광산구청장과 무소속으로 나선 李承采 변호사 간에 2파전이지만 高후보의 승리를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남북 지사의 경우 許京萬 柳鍾根 전 지사가 각각 단독 출마,선거라는 요식행위만을 남겨둔 상태다.반면 한나라당은 수도권에 당력을 집중시킨다는 전략아래 공천을 포기했다. ▷제주◁ 禹瑾敏 전 제주지사가 국민회의 후보로 나섰고 국민회의 공천에서 탈락한愼久範 지사가 무소속으로 반격중이다.한나라당은 玄林鍾 전 한양금고대표를 내세워 3파전 양상이다.하지만 禹-愼 후보간에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 분석이다.
  • 6·4 지방선거 D­15/3당 출사표

    ◎“국난극복 압승” “정책난맥 심판” 19일 후보등록을 시작으로 6·4 지방선거의 공식선거전의 막이 올랐다.이번 선거결과는 정계개편과 향후 정국 주도권 장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여야는 사활을 건 일전을 펼것으로 전망된다.3당 선거대책위본부장들로 부터 선거에 임하는 각오와 필승 전략을 들어보았다. ◎국민회의 鄭均桓 본부장/국가 부도 야 심판 기회/여 지지로 정국안정 시켜야/수도권에 당력 총집결/광역장 16곳중 12곳 이길것 국민회의 鄭均桓 선대위본부장은 19일 “경제난국을 극복할수 있도록 국민들이 여당에 힘을 몰아줄 것”이라며 “이 분위기에 자민련과의 공조로 가속도가 붙으면 호남·충청권에 수도권,강원,제주등 광역 12곳에서 필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6·4선거가 갖는 의미는. ▲이번 선거는 부도를 낸 정당과 부도를 막는 정당과의 한판 승부다.현명한 국민은 ‘무엇이 옳바른 선택인가’를 잘 알 것이다. ­필승 전략이 있다면. ▲한나라당의 경제파탄 책임등 모든 것을 사실대로 국민에게 알릴 것이다.국가부도를 막아 경제를 살리려면 정국안정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여소야대구도를 깨야하고 반드시 압승해야한다.그래서 정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선거에서의 목표는. ▲지역갈등이 상존하는 지역에는 장담못한다.광역 시·도지사 16곳중 호남·충청권,수도권,강원,제주등 모두 12곳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초반전략이 있다면. ▲수도권에 당력을 집중시킬 것이다.수도권에는 권역별로 20명씩의 의원과 당직자 의원보좌관 당전문위원등을 투입했다.특히 강원지사의 양보로 자민련과의 연합공천이 매듭지어져 양당공조에 가속도가 붙을 것을 확신한다. ◎자민련 朴九溢 본부장/기초장 80석 이상 확보/공동정권 압도적 승리 자신/경제혼선 야 방해 때문/영남권 열세 극복 선전할것 자민련 朴九溢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은 19일 “광역단체장 석권은 물론 기초단체장도 80석 이상을 확보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선거에 임하는 각오는. ▲공동정권의 명실상부한 한 축으로서 안정적 정국운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도록하겠다. ­현재 판세를 어떻게 보나. ▲광역단체장은 비영남권 지역에서 공동여당 후보가 모두 우세하다.기초단체장도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선거전략은. ▲IMF체제의 극한 위기와 경제난맥을 초래한 근본 책임이 한나라당에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 ­국민회의와의 공조 전략은. ▲각자 개성을 잃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중앙당은 물론 시·도 단위로 공동선대위를 운영할 계획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열세인데. ▲한나라당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국민회의와 공조하면서 우리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실효성있는 정책을 제시하면 승산이 없지 않다. ­강원지사 공천진통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나.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우리당 韓灝鮮후보의 기반이 더욱 굳어졌다. ◎한나라 徐淸源 본부장/여 정책실패·편중인사 부각/영남·수도권서 이길것/아침 TV토론회 절대 반대/개선 안되면 강력 대응 한나라당 徐淸源 선거대책본부장은 19일 “광역단체장의 경우 영남권은 물론 수도권과 강원에서도 2∼3곳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주민 행정의 책임자를 뽑는 것인데,여권이 연합공천을 비롯,초반부터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연계해 원래 의미가 퇴색해버렸다.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후보를 선택하는 기틀을 이번 선거에서 만들어야 한다. ­선거 전망은. ▲광역단체장은 현지 분위기나 여론조사 결과 영남권에서 우리가 우세하다.수도권에서도 우리당 후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강원의 경우도 승산이 있다.수도권에 당력을 결집시킬 생각이다. ­TV토론에 대한 후보들의 불만이 상당한데. ▲방송 3사가 시청률이 낮은 아침 시간대나 투표일에 임박해서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다.국회 문화관광위를 소집,개선을 촉구하고 여의치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는 등 추가 대응책을 마련하겠다. ­선거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선거자금이다.국고보조를 받는다고 하나 법정 한도액 조차 쓸 수 없는 형편이다.TV토론을 적극 활용할 수 밖에 없다. ­핵심 쟁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각 지역의 이슈가 부상할 것이다.중앙당 차원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혼선과 특정지역 편중인사 등 실정을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다.
  • 텅빈 국회… 마음은 지방선거에/具本永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11일 하오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진행된 국회본회의장.李揆成 재경장관등 경제부처 장관들의 답변이 시작되자마자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급기야 자칫 출석의원수가 의사정족수를 밑도는 상황이 우려됐다.그렇찮아도 재적의원(현재 2백93명)의 5분의 1선인 개의정족수를 가까스로 넘겨 본회의가 열린 터였다. 사태가 이쯤되자 金守漢 국회의장이 습관처럼 의원들의 ‘자성’을 촉구했다.金의장은 “질의한 의원들조차 장관들의 답변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등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더욱이 상당수 참석의원들조차 서로 귀엣말을 주고받는 등 마음은 콩팥에 가 있는 듯했다.국민 절대다수가 영향권에 든 실업대란에 대한 정부측의 대책이 ‘보고’되고 있는데도 선량들에겐 6·4지방선거 등이 더 큰 관심사인 듯했다. 맥빠진 본회의장 풍경은 12일 사회·문화 대정부 질문시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정부측 답변을 듣기 위해 하오 2시30분 본회의가 개회될 참이었으나 예정된 시간엔 의원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책상위의 명패들만 휑뎅그렁하게 자리를 지켰다.의원들의 늑장으로 20여분이상 개회가 지연된 것이다. 과정상의 우여곡절이 있지만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다.이른바 진화론적 역사관이다. 그러나 이번 임시국회의 풍속도는 그같은 신념에 회의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선량들의 행태가 10여년전 기자가 처음으로 국회 취재에 나섰을 때에 비해서 하등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그 나마 여야간 상이한 시국관을 상대측에게 설득하려는 진지함마저 당시 보다 엷어진 느낌이었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정치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삶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과정일 것이다.이번 임시국회의 파행상은 그러한 정치본연의 메카니즘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다. 때문에 국회 스스로 달라지지 못한다면 여론이 이를 강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즉 공영방송 등을 통한 본회의장 생중계가 좀 더 활성화되고 의정활동과정이 낱낱이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5·10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역사적 의의

    ◎봉건사회 종언… 독립정부 토대 구축/사상 첫 민주선거… 王朝국가서 국민국가로/냉전체제속 ‘반쪽선거’ 분단고착화 초래 ‘역사의 등불은 선미(船尾)만을 비추는가’-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전철(前轍)을 밟기 마련이다.특히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시대인들에게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의 의미를 교훈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국민의 정부’를 맞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새김질하는 차원에서도 더욱 그렇다. ‘5·10 선거’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보통선거다.지리적 이념적으로 ‘반쪽선거’에 그쳐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한민국건국을 위한 합법성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정치적으로는 통치엘리트의 교체를 공식화한 의미를 갖는다.국왕을 정점으로 양반계급내에서 통치엘리트가 충원되던 봉건적 신분제 사회가 막을 내리고 시민계급이 통치행위의 전면에 부상한 계기가 된 것이다.‘5·10 선거’를 기초로 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7월17일에는대한민국헌법이 공포되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다.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논리도 ‘5·10 선거’의 유효성에 근거한다. ‘5·10 선거’가 남한 단독선거로 치르진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간의 치열한 패권주의적 신경전 때문이다.일제 패망이후 한반도내 민주적 임시정부의 구성 문제를 논의하던 미·소 공동위원회가 정부 구성에 참여할 정당·사회단체의 범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미국은 47년 9월17일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한다.미국은 유엔에서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총선거실시안을 추진하지만 소련이 “인구비례에 의한 선거는 남한진영의 승리와 소련에 비우호적인 정부의 수립으로 연결된다”며 반대,결국 남한 단독선거로 귀결된다.국내에서도 단독선거 반대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수립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탄다.이에 따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하며좌익소탕 작업을 벌이던 미군정은 48년 3월1일 ‘조선인민대표의 선거에 관한 포고’를 통해 ‘선거실시’를 공식 발표하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수립운동을 적극 지원한다.당초 선거날짜는 일요일인 5월9일이었지만 기독교계의 변경 요청으로 하루 늦춰진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참여파와 불참파,남북협상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세다툼이 벌어진다.李承晩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한국민주당,민족청년단,대동청년단,서북청년회,대한노총 등 반탁·반공의 우익세력들은 선거를 적극지지한다.특히 朴憲永계의 좌익세력 ‘조선인민공화국’에 맞서 결성된 한민당은 “선거를 반대하는 것은 소련의 앞잡이인 남로당이나 북로당의 모략에빠져 사회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반면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좌익세력은 파업,시위,방화 등 폭력행사를 통해 선거반대 투쟁을 벌인다. 양쪽의 치열한 대립 속에 金九와 金奎植 등 우익 중간파들은 “남한 단독선거는 민족분단을 영구화한다”며 남북협상을 추진한다.金九 등은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에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절박한 심정을 토한다.우여곡절끝에 4월20일 평양을 방문한 이들은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단독선거배격운동을 촉구하는 결정서를 채택하지만 취약한 국내 기반과 국제적 냉전체제의 가속화,협상의 전략적 실패 등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을 접고 만다.이처럼 ‘5·10선거’는 독립정부 수립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분단의 고착화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그러나 왕조국가에서 국민주권국가로 발돋움한 토양을 마련,건국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5·10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 “건설비 분담 등 적극 지원할 것”/申 문화장관 문답

    ◎논의과정 정책혼선 아닌 신중한 결론 도출 “그 동안의 논의 과정이 시간낭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오히려 여러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했기 때문에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게 됐다고 봅니다”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은 우여곡절 끝에 상암동 신축구장을 2002년 월드컵주경기장으로 최종 확정한 데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여러 논의를 거쳐 결국 원래 방안대로 확정하긴 했지만 이는 정책의 혼선이 아닌 신중한 결론을 내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해 달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申장관은 “일부 외국에서도 일본과 한국을 비교,한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정권교체와 IMF 체제 등의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의 입장과 논의 배경을 설명하면 국제사회의 이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지원 방안에 대해 申장관은 “경기장 건설은 서울시와 조직위가 협의해 추진할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건설비용 분담등 정부가 지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申장관은 특히 신축비용 문제에 대해 “이미 확정한 신축비용 배분원칙은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며 “앞으로 남은 4년여 동안 분산 투자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여건 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지적,논의 초기와 달리 신축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申장관은 최근 일부 외국기업이 보이고 있는 투자의사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두고 검토는 해보겠지만 현재로서는 외자유치에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 6·4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누가 나오나

    ◎수도권 여야 거물대결에 이목 집중/박찬종씨 불출마 가닥… 서울 양자대결 압축/충남북 모두 맞대결… 호남은 경선부터 이변 ‘앞으로 33일’.6·4 지방선거에 나서는 여야후보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진 채 한판승부를 벼르고 있다. 최대 격전지,수도권은 우여곡절 끝에 ‘대진표’가 거의 확정돼 간다.반면 호남과 영남 등 여야의 ‘텃밭’에선 자체 경선에서 이변이 속출,지도부의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반면 열세지역에서는 거론후보들이 당선 가능성을 이유로 출마를 고사,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형국이다. 최대 관심사인 서울은 국민회의 高建 전 총리와 한나라당 崔秉烈 전 의원의 ‘양자대결’이 예상된다.국민회의는 韓光玉 부총재가 1일 후보사퇴를 선언,高 전 총리의 후보추대가 확실시되고 한나라당 崔 전 의원도 경선대회(4일)를 남겨놨지만 요식행위라는 지적이다.당초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하려던 박찬종 전 의원은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선거 불출마와 야권공조를 위한 최 전 의원 지지를 선언할 예정이다. 경기도는 국민회의 林昌烈 전 경제부총리와 孫鶴圭 전 의원의 한판승부가 벌어진다.林 전 부총리는 ‘환란(換亂)책임자’란 야권의 집중포격에 대해 ‘IMF해결사’란 이미지로 유권자들을 파고들고 있다. 인천은 崔箕善 현시장이 자민련 당적으로 출전,야당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반면 한나라당은 李憲琦 전 노동부장관,崔東鎬 KBS부사장 등의 영입을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다는 후문이다. 호남·제주에서는 현지사들이 무명 인사에게 격침되는 등 국민회의의 ‘대의원 반란’이 이어지고 있다.광주의 경우 高在維 전 광산구청장이 宋彦鍾 현시장과 姜雲太 전 내무부장관을 침몰시켰고 제주도는 禹瑾敏 전 총무처차관이 愼久範 현지사를 따돌렸다.기초단체장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가 속출하자 중앙당은 긴급하게 공천심사위원회를 가동,‘함량미달자’에 대한 선별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부산의 경우 한나라당 安相英 전 시장이 文正秀 현시장을 압도적인 표차이로 이겼고 金杞載 전 의원은 ‘세불리’를 알아채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자민련 아성인 충남북은 사실상 한나라당과의 2파전 양상이다.충남은 沈大平 지사(자민련)와 韓淸洙 전 지사,충북은 李元鐘 전 서울시장(자민련)과 朱炳德 현지사(한나라당)간 대결로 좁혀졌다.경북도 TK탈환을 외치는 자민련 李判石 전 지사와 한나라당 李義根 전 지사가 한판 승부를 준비중이다. 반면 여권은 경남의 경우 무소속으로 나서는 許文道 전 통일원장관을 영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강원도는 李相龍 전 지사(국민회의)와 韓灝鮮 전 의원(자민련) 간의 여권 후보조율을 시도하는 가운데 김진선 전 부지사가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 한나라 임시국회서 강공 벼른다/국회 운영 우여곡절 예상

    ◎정부 失政·‘야당파괴’ 실상 알리기에 총력/상위별·현안별로 對與 전투태세 다시 점검 1일 열리는 제192회 임시국회는 여당의 불참으로 개회 초반부터 공전될 가능성이 높다.반쪽 국회에도 불구,한나라당 지도부는 현 정부의 실정과 야당파괴공작의 실상을 낱낱이 알리는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개회식에 이어 곧바로 본회의장에서 실업대책 토론회를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무단은 이와 함께 상임위 활동의 비중을 감안,상위별 주요 현안을 정리한 문건을 소속 의원들에게 돌려 전투태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이 문건에 따르면 본회의에서는 5분발언 등을 통해 실업대책과 총리임명동의안 처리문제,연합공천 금지 등 정치개혁입법특위 구성 등을 다루도록 했다.또 운영위는 후반기 원구성과 복수상임위 도입에 따른 국회법 개정을 상정했고 법사위에선 환란 및 종금사 인·허가 비리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감사원의 경제실정 감사와 계좌추적권 보유문제,金鍾泌 총리서리의 후임 보건복지부장관 제청의 위헌성 시비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재경위는경제위기 책임론과 재벌정책의 문제점,무역수지상의 제반 오류,기아·한보 등 부실기업 처리 등을 철저히 따지도록 했다. 통일외교통상위에서는 통상교섭본부 체제의 비효율성을 비롯,외교통상부와 산업자원부간의 통상외교창구 다툼,대북정책의 일관성 부재,종군위안부 처리문제 등을 규명할 계획이다.또 국방위에선 국군포로 송환문제와 군인사의 문제점,千容宅 국방장관의 당적이탈 및 전국구 의원직 사퇴여부 등을 따지고 행정자치위는 실업대책기금의 특정지역 편중배정문제에 체중을 싣도록 했다.이밖에 과외단속기준(교육위),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 건립문제와 통합방송법(문화관광위),경부고속철도사업(건설교통위) 등도 주요현안으로 상정했다.
  • 사막에 난로를 판다/김달호 두성전자 대표(굄돌)

    ‘바늘에서 선박까지’.사람과 마약을 빼고는 모든 제품을 수출한다는 종합상사 제도를 만든 것은 지금의 JP(김종필) 총리가 그전에 총리로 재임한 1975년이었다.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판다든지,맨발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신발을 신기자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백출하였다. 나도 이때 상사주재원으로 아프리카에 파견되었다.낙하산을 타고 단신으로 뛰어내린 특공대원처럼 혼자서 진지(사무실)를 구축하고 현지인을 포섭(채용)하여 적진(시장)에 침투(진출)하는 일이었다.사막이 대부분인 리비아에 석유난로를 팔자는 의견을 본사에 보냈더니 “사막에 난로라니…”하고 의아심을 갖는 사람이 많았다.우여곡절 끝에 첫 주문으로 50만달러 어치를 받았고 그 다음해 단일 난로주문으로는 아마 최대인 7백20만달러(현환율 기준 약 1백억원)어치를,그리고 사막국가에 근무한 3년동안 총 1천4백만달러 어치의 난로를 팔았다. 세상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도저히 풀지 못한 문제를 꿈속에서 푼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진정으로 절박하게 원하고 노력하면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꿈이 현실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IMF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다.그중에도 가장 많이 쓰러지는 조직체는 중소기업이다.자금줄이 거의 모두 막히고 이자는 배 가까이 뛰었으며 어음을 받으려는 데는 드물다.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바늘같은 구멍도 보이지 않는지 중소기업 사장들의 가출과 자살 기사가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절망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사막에 난로를 파는 기백으로,수출로 나라를 일으켜 세운 투혼으로,“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뿐”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처럼,옛날의 수출역군들이여!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수출전선으로 돌아가자.
  • 러 키리옌코 총리 인준/하원,또 거부땐 의회해산 우려 ‘찬성

    【朴海沃 기자】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총리서리가 우여곡절 끝에 24일 총리로 정식 인준을 받았다.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이날 키리옌코 총리서리에 대한 3번째이자 마지막 인준 여부를 묻는 표결을 실시,찬성 251대 반대 25로 인준했다.하원 총원 450명중 투표에 참가한 의원은 276명이었다고 하원은 밝혔다.총리 인준에 필요한 득표수는 226표이다.러시아 국가두마가 키리옌코 총리 인준에 동의한 것은 이를 또다시 거부할 경우 스스로 존폐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막판 위기의식이 작용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의회가 마지막 3번째 투표에서마저 총리 인준을 거부한다면 헌법에 따라 곧바로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왔다.따라서 의회로서는 이번 인준 투표를 자신들에 대한 생사여부를 가름하는 투표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현재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새로운 총선이 실시되는 것을 두려워 했다.러시아 유권자들이 현 경제위기로 인해 기존 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당도 선거결과를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총리 인준이 거부된다 해도 옐친 대통령이 키리옌코를 총리 임명자 신분으로 제2인자 자리를 유지토록 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인준에 반대했던 자유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옐친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이 정치적 타협을 일궈낸 22일 이후 급격히 분열되기 시작했다.이는 곧 총리 인준 반대의 핵심세력이었던 공산당마저 분열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공산당내 좌파와 독립적인 의원들은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투표시간이 임박해지면서 인준 찬성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 라 트라비아타/김자경 오페라단

    우여곡절 끝에 올해 첫 오페라공연이 열린다.김자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가 그것.28일∼5월1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올해는 김자경오페라단 창단 30주년이자 한국오페라가 반세기 되는 해.오페라단은 일찌감치 김동진 작곡 ‘춘향전’을 기념작으로 낙점해 뒀었다가 IMF 태풍 탓으로 한국 오페라사 최초 공연작인 ‘라 트라비아타’쪽으로 방향타를 돌렸다. 뒤마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베르디가 작곡한 ‘라 트라비아타’는 한국 오페라 50년간 연주자·관객 양쪽에게 절대 인기를 얻어온 레퍼토리.파리 사교계의 여자 비올레타와 명문가 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통속 줄거리지만 날렵한 베르디의 붓끝에서 주옥같은 아리아가 무수히 피어났다.유명한 이중창 ‘축배의 노래’를 비롯,‘아 그이였던가’‘이꽃에서 저꽃으로’‘프로렌차 내 고향으로’ 등 친근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그득하다. 출연진도 호화롭다.비올레타에 소프라노 박정원·신지화,알프레도에 테너 박세원·안형렬,제르몽에 바리톤 고성진·장유상,플로라에 메조 소프라노 김현주·조영해 등.소문난 실력파 부천시립교향악단이 임헌정씨 지휘로 연주를 맡고 전미례무용단도 우정출연한다.연출 김효경 서울예전 교수.392­3175.
  • 佛 북한문제 전문가 캉파니아 교수 佛誌 기고

    ◎美中 정치타협이 한반도통일 전제 프랑스의 대표적인 북한문제 전문가인 앙드레아 캉파니아 플로랑스대학 교수는 아시아 지역 전문잡지인 ‘뮈티아시옹 아시아티크’ 최신호에 실린 ‘한국의 재통일’이라는 기고에서 “한국의 통일은 동북아 안정에 기여할 것이며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인 타협이 전제되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다음은 기고문 요지이다. ○동북아 안정에 이바지 모든 한국사람들은 통일을 바라고 있다.특히 일제 치하에서 미분단 상태의 한국을 기억하고 있는 고령자일수록 통일을 더욱 꿈꾸고 있다.북한 지도층도 방법이야 어찌됐건 통일을 지상명령의 과제로 삼고 있다.반면 한국의 젊은 노동인구층과 경제계는 경제적인 풍요함에 만족하며 통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재벌들은 단지 값싼 노동력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공식적으로 한국정부는 통일을 원하고 있지만 점진적인 통합을 주창한다.전문가들은 한국의 통일비용은 독일의 20배에 달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그래도 통일은 여러가지 이득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공업화가 이루어져 있고 우수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북한의 경제체계는 상호보완적이다.통일이 된다면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金正日 체제가 여전히 경직되어 있고 정치선동을 일삼고 있어 남북대화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지난 80년대와 90년대 한국의 경제는 북한을 절대성장과 효율성 부문에서 월등히 앞서기 시작했다.따라서 독일이 통일됐을 때처럼 북한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의 가능성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물론 흡수통일의 전제조건도 잘 갖춰져 있다. ○중국 객관적 자세 주목 90년대 들어 한국과 북한간의 공식적인 통일방식은 현실적인 면에서 유사점을 찾아가고 있다.북한은 ‘1국2체제 원칙“을 고수한다.한국은 북한과의 ‘점진적인 경제통합’에 중점을 두고 있다.이러한 통일 접근방식은 이론적으로 유연한 연방체제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국제정세의 변화 덕분에 한반도 상황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냉전종식으로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한국과 북한간의 경쟁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과 냉전시기 이전인 해방 직후 정치적 타협을 찾을 수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이는 한국을 항상 완충국으로 여기는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에 한반도 문제가 종속되어왔던 게 가장 큰 이유다. 베이징에서 있었던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 이후 한반도 긴장은 점차 완화되어가고 있다.중간중간 북한의 돌출행동으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분위기는 한결 좋아졌다.특히 지난 96년 6월 한국과 미국과 제안한 한국,북한,미국,중국의 4자회담이 성사되면서 더욱 무르익고 있다.한국과 점점 더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이 전보다 한반도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자세를보이고 있다는 대목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北 상황따라 빨라질수도 물론 남북한 당사자간의 관계는 APEC과 ASEAN 등 동아시아의 통합 움직임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그러나 통일은 위한 협상은 강대국들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따라서 먼저 온건정치 및 자유경제와 강경한 국수주의의 정치기류 사이에서 망설이는 중국과 경제적 실리와 완고한 인권옹호 정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미국의 타협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지금부터 한국의 통일은 미국과 중국이 관계된 일인 셈이다. 그러나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주변상황에 변화가 없고 북한이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국제사회가 한국 문제를 UN에 회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재통일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 소설가 金周榮(이세기의 인물탐구:168)

    ◎날로 확대­심화해온 소설세계/봇짐장수 삶 그린 ‘객주’ 5년간 본지에 연재 호평/대작 ‘임꺽쩡’ 등에 비견되는 역사소설 주로 집필 180센티의 큰키에 언제나 말이 없고 진실한 이미지가 작가 金周榮의 모습이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이문구에 의하면 그는 ‘어진 사람’‘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며 ‘교통순경과 방범대원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분야는 깜깜하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를 끊임없이 이룩해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소설의 지평을 개척하는가하면 성장소설의 아름다움과 민중적 역사소설의 높은 봉우리를 역력(歷歷)하게 정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소리가 메아리져 돌아오는 생의(生意)의 소설’을 쓰고 있다. ○분단소설 지평 개척 그의 초기소설은 주로 ‘상경한 촌놈이 겪는 도시의 세상물정’이 주류를 이룬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타관의 물을 먹고나면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타산과 세파에 시달려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지켰다. 이러한 풍자는 단편소설에서는 ‘경쾌한 속도감, 재치의 반전으로 소설적 재미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구성의 묘(妙)로써 문학적 향기’를 뿜어내고 장편소설에서는 ‘걸쭉한 입담과 해박한 풍물묘사에 의존한 특유의 지구력으로 수준높은 세태풍속’을 그려나간다.그중에서도 그가 유년의 시골장터에서 목격한 봇짐장수들의 고달프고 강인한 삶을 그린 ‘객주(客主)’는 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근현대 역사소설의 빛나는 업적들인 ‘임꺽정’과 ‘장길산’ 등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갖춘 취재가방을 둘러메고 장이 서는곳마다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집한 언어들로 문학적 생동감을 소설속에 되살려내고 있다. 그와 한평생을 어울려 지낸 소설가 이문구는 김주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깨알같이 메모해둔 노트를 보고 ‘이것은 피다.이것은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쓴적이 있다.그의 문학생활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89년의 ‘절필선언’을 들수 있다. 정상을 달리던 한 중견작가가 갑자기 ‘절필’을 선언하고 일간신문연재를 중단해버리자 문단은 온통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평론가 정현기와의 한 대담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소설을 돌아볼때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너무 심하다는 것’, 근 10년동안 줄기차게 신문연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업적 측면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과 신문소설이 요구하는 반문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문학적 성채(城砦)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마침내 절박감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상업성 우려 89년 절필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자신에게 가하는 나의 검증’이며 ‘비평가들의 비판이나 상찬이나 독자의 갈채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으로 독자를 교묘하게 속일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고료와 인세가 나의 생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야한다. 그럴수는 없다’는 절규가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하는 이들의 양심에 칼날이 되어 타성적인 문학행위에 충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껑충한 허우대와 맑고 박(撲)한 성정, 씩씩한 소년티를 벗지못한 소탈한 모습’에서 ‘눈크고 키큰 용량만큼이나 외로운 자기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천부적 질박함이 그의 문학적 원형질’임을 실감할수 있게 했다. 그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배고프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청에 다니던 金海允씨의 2남1녀중 장남. 가난과 더불어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왔고 ‘이틀돌이’로 품앗이를 다니는 어머니를 동구밖에서 기다리는 핍색(逼塞)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기는 ‘길가의 잡초’였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간직한채 16살때 대구로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일삼으며 대구 농림고를 졸업, 다시 서울에 올라와 친구집에 기식한채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자 서정주 박목월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문학의 앞길에 서조(瑞兆)가 비치는 듯했다.그러나 박목월씨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쓸것을 권유받았고 이후10년간은 연고지가 아닌 안동에 내려가 엽연초생산조합에 취직하고 있었다.가족은 고향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부인 金震得씨와의 사이에 3남2녀. ○단편 ‘휴면기’로 등단 조직이란 사회에 일단 자신을 내던지게 되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중뿔나게 아는체도 고독한체도 하지 않았고 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르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술자리로 데리고 갈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자기학대는 결국 ‘문학에 대한 끊이지않는 욕구’때문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71년, 단편 ‘휴면기(休眠期)’로 문단에 등단하자 ‘숨결이 야무지게 살아있는 언어’‘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문장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취미는 낚시에다 절륜의 술실력.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노래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그는 전9권에서 5권의 역사소설전집만을 주로 내다가 최근 한 10년만에 한권짜리 장편소설인 ‘홍어’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중견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으로 눈이 시릴 정도의 박꽃같은 순백한 사랑을 순정미학(純正美學)의 진수(眞髓)로 그려낸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긴 도정을 지나 그는 그의 삶의 결핍된 부분들을 인간적 정서와 무르익은 인간미로 채우는 시기다. 결국 그의 문학은 우여곡절을 지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문학에 대한 심한 갈등과 의혹과 고뇌를 되풀이하는 어쩔수없는 작가의 자세를 지킨다. 그는 처음에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더니 오늘도 여일하게 진실한, 이 시대 ‘대기거영(大器巨影)’의 얼굴이다. □연보 ▲1972년 소설 ‘휴면기(休眠期)’(월간문학)로 등단 ▲1976년 경향신문에 첫장편소설 ‘목마위의 여자’ 연재 ▲1979년부터 서울신문에 ‘객주(客主)’연재 ▲1983년부터 중앙일보에 ‘활빈도(活貧盜)’ 연재 ▲1988년 한국일보에 ‘화척(禾尺) 7년 계약, ‘중국기행’연재 ▲1991년 동아일보에 ‘야정(野丁)’ 연재 ▲1995년 서울신문에 아프리카기행 연재 장편소설 ‘객주’ 전9권 (81년 창작과 비평사) ‘아들의 겨울’(82년 전예원) ‘천둥소리’(86년 민음사) ‘활빈도’ 전3권(87년 중앙일보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88년 민음사) ‘외설 춘향전’(94년민음사) ‘화척’ 전5권 (95년 문이당) ‘야정’ 전5권(96년 문학과 지성사) ‘홍어’(98년 문이당)출간, 단편집 ‘겨울새’(83년 민음사) ‘새를 찾아서’(87년 도서출판 나남)등 소설문학상(82년) 유주현문학상(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3년) 이산문학상(96년)
  • 꼬이기만 하는 정치현안들

    ◎換亂수사­여,검찰수사 불개입·야 “경제청문회 개최”/연합공천­여 “정당연합은 대세” 야 “나눠먹기식 흥정”/총리인준­여 정계개편론 압박·야 金 총리 사퇴 요구 검찰의 외환위기 수사,金鍾泌 총리서리 인준안 처리 등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국면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경색정국이 오래가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그러나 영수회담 등을 통한 극적인 일괄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현안별로 여야의 입장을 짚어본다. ▷換亂 수사◁ 여야는 검찰의 외환위기 수사를 둘러싸고 가시돋힌 설전(舌戰)을 벌이고 있다.선제공세를 편 쪽은 한나라당.趙淳 총재가 13일 검찰수사 중단을 요구하면서 대신 경제청문회 개최를 주장했다. 여당측은 14일 일제히 대변인 성명으로 반박했다.국민회의 辛基南 대변인은 “趙총재의 주장은 사실을 잘못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여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자민련 邊雄田 대변인도 “경제파탄의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실정이 드러날 경우 지방선거에서 참패를우려한 비열한 발상”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여야가 검찰수사에 이렇듯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국주도권과 지방선거 영향때문이다.한나라당은 검찰이 외환위기,종합금융사 인허가,PCS비리 등 ‘문민의혹’을 전면적으로 파헤치려는 것은 ‘야당파괴’의도가 있다고 본다.경제청문회의 조기실시를 통해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생각이다.반면 여당측은 검찰수사를 적절히 활용,거대 야당을 제어하는데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내비친다. ▷연합공천◁ 지자제 연합공천 문제도 여야간 뜨거운 쟁점이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우여곡절끝에 수도권 연합공천 후보를 확정하자 이를 비난하는 성명과 논평을 쏟아부었다.孟亨奎 대변인은 “국민회의 자민련간의 나눠먹기식 흥정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망국적 행위”라고 흥분했다. 여권은 연합공천은 정치현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민주선거에서 정당끼리 연합이나 협조는 자연스런 대세라는 설명이다.국민신당까지 포함,주요정당이 모두 ‘반(反)한나라당 전선’에 합류할 움직임을 보이자 한나라당측이 트집을 잡는 것으로 치부한다. ▷총리서리 인준◁ 金총리서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는 서로한치의 양보없이 팽팽하다.한나라당은 ‘3·2 국회 본회의 표결의 유효’,‘서리체제 위헌’등의 기본입장에서 전혀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한나라당측은 “金총리 인준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안된다”면서 “金총리가 물러나든지,이미 행해진 국회 본회의 투표결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강경태도가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여권은 다각도로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정계개편,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등 강온 양면의 무기가 모두 동원된다.특히 자민련은 정계개편에 적극적이다.金총리서리가 崔箕善 인천시장을 자민련 몫으로 하는데 집착한 것도 인천 지역 한나라당 의원 추가영입을 염두에 둔 것이다.
  • 당권 굳히기냐… 독주 견제냐/한나라 총무경선 전망

    ◎비당권파 “세과시 호기”… 대표주자 물색/당권파선 현경대·이상득 전·현 총무 준비 ‘잔치는 끝났다,원내총무를 노려라’­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의 ‘실세 총무’자리를 놓고 당내 세대결이 치열하다. 총재단에서 우위를 확보한 당권파는 원내총무까지 장악,실질적인 구심점을 확보한다는 생각이다.반면 비당권파는 당권파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총무직을 결코 양보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특히 비당권파는 총재경선이 무산된 터에 총무경선을 세과시의 호기(好機)로 삼는 분위기다.대여(對與) 협상창구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제1야당의 총무 자리를 놓고 당내 세대결이 다시 불을 뿜은 셈이다. 그러나 당내 경선에 앞서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각각 누구를 대표주자로 내세울지,내부 교통정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일찌감치 거론된 3∼4명 말고도 경선 총무를 희망하는 인사들은 늘고 있다.10명에 가깝다.그중에는 출마포기의 반대급부로 상임위원장이나 다른 당직을 노리는 ‘거품’도 있다. 당권파에서는 李相得 현 총무가 출마의지를 다진 가운데 玄敬大 전 총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비당권파에서는 이미 출사의 뜻을 내비친 河舜鳳 의원 말고도 姜在涉 金重緯 朴熺太 邊精一 의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내 세대결과는 무관하게 여권에 강성(强性)으로 맞설 적임자로 ‘姜三載 카드’도 유력하게 오르내린다.몇몇 다른 인사들도 “나도 있다”며 머리를 디밀고 있다.당내 경선 이전에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내부 조율과정에서부터 우여곡절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 유럽연합 극복해야할 과제 많다/파스칼 세뇨(地球村 칼럼)

    ◎경제통합으로 회원국간 이해조정 바람직 유럽연합(EU)의 개혁은 15개 회원국 정상들의 결정에 따라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가입을 허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발트해국가들중에서도 에스토니아가 가입을 타진중이며 크로아티아도 회원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여곡절 겪게 될듯 EU는 이제 15개국에서 21개국으로 늘어나며,그리고 2단계로 가입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리투아니아 라크비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까지로 확대되면 모두 26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리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가입심사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우여곡절도 겪게 될 전망이다. 확장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국가는 우선 유럽의 축이 된 독일일 것이다.중유럽에서 독일은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그랬듯이 최고의 후원자이자 투자자로 이들 3개국의 가입은 독일 영향권의 거대한 역사적 재결합 형태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발트해 국가들도 독일을 모태라고 여기고 있다.이들의 가입 역시 새로운 한자동맹(13세기이후 함부르크 등 북독일 상업도시들이 맺은 도시연합체,북해·발트해 연안으로 상업권을 넓히는 계기가 됨)권으로서의 영향권 형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독일은 91년 이래 세르비아에 맞서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지지해왔고 오늘날 자그레브는 남유럽에서 독일 영향권의 중심지가 되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변수는 미래의 회원국 가운데 키프러스의 가입 요구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것 같다. 프랑스 역시 그들의 연대감을 형성할수 있는 권역을 만들기에 현재 주력하고 있다. 터키의 가입 거부는 또 다른 성격의 세력권 형성을 가져올 전망이다.현재 EU의 가입 거절은 매우 단호하다.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이슬람 국가이면서 쿠르드족과 내전을 벌이고 있는 터키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터키는 단지 2년전에 가입한 유럽관세동맹을 통해서만 EU와 관계를 가지게 될 것 같다. ○터키의 영향력 심대 터키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터키 언어권의 국가들을 규합하고 있다.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구소련의 중앙아시아국가들이 주인공들이다.타지키스탄만이 페르시아 언어권이다.이들 국가의 인구만도 7천5백만명으로 새로운 권역을 형성할 수 있어 향후 이들의 행보 또한 주목된다. EU가 추구하는 바가 서로 상반되는 두가지라는 대목도 확장 과정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리적으로는 EU를 동유럽까지 확대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회원국들 사이에 기능적 구조나 권력을 통합·강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수직적인 통합과 동시에 수평적통합을 이루려는 도전적인 시도인 셈이다. 15개국중 99년부터 유로통화에 참여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국이 중심이다.57년부터 유럽통합을 이들 국가들이 주도해왔다.여기에 나머지 9개국들로 오늘날의 15개국이 되었다.9개국중에는 스페인처럼 실질적인 통합에 적극적인 국가도 있는 반면,영국처럼 부정적인 나라도 없지 않다. ○일련의 보호약정 간주 이런 상황에서 수평적 통합이 새로운 회원국들의 가입으로 이뤄지게 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그런데 새로운 회원국들의 생각 또한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이들은 EU 가입을 일련의 보호약정으로 보고 가입하려 하고 있다.따라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단지 참여를 위한 참여만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오늘날 유럽인들의 권리를 구성하고 있는 8만 페이지에 달하는그 규정들을 이들 국가의 입법내에서 공고히 하기 위해서만도 수년이 걸릴게 확실하다. 이들의 가입으로 EU가 미국과 역설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동유럽 가입국가들은 EU에 대해서는 경제에 대한 기대를 갖는 반면 안보에 대해서는 미국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사실이 좋은 예다. 그러나 유럽이 화폐통합과 경제통합을 이루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믿는다.유러통화체계는 유럽에 새로운 역사적인 기회로 다가설 것이다.단일화폐는 그들의 정치마저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U의 씨를 뿌린 장 모네는 유럽을 이렇게 설명하기를 좋아했다.유럽은 경제적인 분위기를 타면 결코 정치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 創軍(대한민국 50년:14)

    ◎해방 직후 좌우익 군사단체 60여개 난립/“치욕 되풀이 말자” 강력한 군사력 국민적 열망/미군정 견제속 육군·해군·해병대·공군 순 창설 대한민국 국군은,1948년 9월5일 남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됨으로써 정식 출범했다.정부 수립 21일만이었다.해군도 곧이어 발족했고 해를 넘겨 49년에는 4월15일에 해병대가,10월1일 공군이 창설돼 초창기 4군체계를 확립했다. 나라를 세운 뒤 곧바로 창군(創軍)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하기까지에는 간단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것은 정치단체만이 아니었다.각종 사설·유사 군사단체가 곳곳에서 깃발을 올렸다.이에는 까닭이 있다. 먼저 35년만에 국권을 되찾은 한민족에게는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강력한 군사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아울러 해방정국에는 독립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만군·학도병·공산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을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좌우 이념대립에따라 군을 선점하려는 양쪽의 경쟁이 작용한 것도 군사조직 난립에 큰영향을 미쳤다. ○사설 군사단체 끼리 충돌 해방 이틀 뒤인 45년 8월17일 서울 교동국민학교에서 귀환장병대(후에 국군준비대로 개편)가 발족한 것을 필두로 그달 말에는 일본 육사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임시군사위원회(위원장 李應俊)가,9월1일에는 좌익 성향의 학병동맹(위원장 王益權)이 잇따라 조직됐다.이밖에 학병단·학도대·광복군국내지대·보안대·한국혁명군·장병대·장총단·조선국군학교·대한민국 군사후원회·육해공군 출신 동지회·한국장교단 등 수많은 군사단체가 등장해 나름대로 활동을 벌였다. 45년 11월 현재 미군정청에 등록한 군사단체는 30곳을 넘어섰으며 비등록조직을 합하면 60여 단체가 존재했다. 이같은 군사조직의 난립에 당황한 미군정은 한국군 창설을 가시화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45년 11월1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해 창군 기본계획 수립을 맡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한 데 이어 12월5일에는 군간부 양성을 목표로 군사영어학교를 세웠다. 그럼에도 군사단체들의 발호는 그치지 않았고 무력충돌도 적잖게 발생했다.46년 1월18일 학생동맹은 서울 도심에서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시위대를 습격했다.이에 따라 경기도경은 張澤相 부장의 지휘아래 다음날 새벽 학생동맹 본부를 기습해 해체시켰다.이날 金斗漢이 이끄는 우익단체 대한민청은 좌파그룹인 조선국군준비대(총사령관 李赫基)에 총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미군정은 결국 46년 1월20일 사설군사단체해체령을 내려 강력한 단속에 들어갔고 그에 따라 각종 군사조직은 점차 퇴색했다. 한편 창군작업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됐다.국방경비대는 병력 600명으로 제1연대 제1대대를 편성,46년 1월15일 서울 태릉에서 입대식을 갖고 출범했다.2월7일에는 국방경비대 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해 4월까지 병력을 8연대로 늘렸다. 국방경비대 사령부는 국방부를 거쳐 통위부로 이름을 바꾸었고 남조선국방경비대도 국방경비대­남조선경비대 순서로 개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의 모태로 자리잡았다.정부 수립 직전 남조선경비대의 규모는 5여단,15연대에 장교 1천403명,사병 4만9천87명이었다. 육군에 비해 해군 창설작업은 훨씬 순조로웠다.해방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21일 孫元一을 중심으로 해사대가 조직됐다.孫元一은 중국 남경 중앙대농학원 항해과를 나와 외항선에서 선원생활을 한 인물로,뒤에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장관(53∼56년)을 역임한다. 해사대는 그해 11월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확대되면서 100t급 2척과 40t급 1척 등을 갖고 미약하나마 해안경비에 나섰다.46년 6월15일에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조선해안경비대로 개편된 뒤 전국 주요항구에 기지를 건설하고 총사령부를 서울에 두는 등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해병대는,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면서 그필요성이 인정돼 49년 4월15일 해군에서 차출한 병력 400여명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출범했다. ○공군 연락기 20대로 창설 공군은 가장 늦은 49년 10월1일 조직됐다.해방직후 국내외 항공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항공건설협회로 출발했으며 48년 5월15일 육군항공부대로 탈바꿈했다.육군 예하 항공군으로서 기틀을 닦은 공군은 창설 당시 1천600여 병력과 연락기 20대를 보유했다. 창군을 전후한 시기에 군은 숱한 시련을 겪었다.근본적으로 한미간에 시각차가 있었다.정부수립에 앞장선 정치 지도자들은 내심 북진통일을 바래 강력한 군대를 원한 반면 전쟁을 원치 않은 미국은 일정수준 이상의 군사력 확보를 견제했다.군맥(軍脈)에 따른 내부갈등이 있었고,‘여순반란사건’‘대구 6연대 사건’ 등 군에 침투한 좌익세력에서 비롯된 상쟁도 여러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창군 2년이 채 안돼 발발한 6·25였다.소련의 강력한 지원아래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북한 인민군의 공격에 국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짧은 세월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됐다. ◎“美는 李承晩의 北侵을 경계했다”/초대 주한대사 무초의 진술서 첫 확인 대한민국이 처음 군을 조직할 때 한국과 미국 정부사이에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한국은 당연하게 강력한 군대를 갖기를 원한반면 미국은 상당히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다.이는 ‘한국이 강한 군대를 보유하면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통일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같은 의혹에는 당시 한국정부 고위인사들의 경솔한 언행도 크게 작용했다.李承晩 대통령이 1949년 9월30일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고문인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李承晩은 이 편지에서 “나는 지금이 북한에 있는 우리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합세해 평양에 있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우리는 金日成의 부하들을 산악지역으로 몰아내 거기에서 굶어죽게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우리방위선이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6·25 발발 아홉달전쯤에 쓴 이 편지는,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 극복’이라는 통일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미국이 한국군 전력강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근거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편지는 1950년 가을 유엔에서 공산측에 의해 ‘북침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당시 미 정부는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후에 올리버는 진짜임을 확인해 주었다. 李承晩의 편지가 한국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면 미국의 판단을 보여주는 자료로 무초의 진술이 있다.대한민국 주재 첫 미국대사인 무초는 1973년 12월 트루만 대통령도서관의 기록담당자에게 재임 때 경험을 토로했다. 현재 문서로 남아 있는 이 진술에서 무초는 “한국인들이 국토를 자체방위케 하는 한편 북한 진격이라는 그들의 열망을 억제해야 했다”고 회고했다.그는 “미국은 매우 어렵고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왜냐하면 우리가 李承晩과 한국군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다면 그들은 북진을 개시했을 것이고,북한도 동일하게 남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명은 우리몫이 됐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초 대사의 진술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 영장 발부­연기 수차례 ‘곡절’/權寧海씨 구속되던 날

    ◎在美교포 “北과 내통 응징” 승용차에 달걀 세례/구인장 집행 거부하자 법원,변호인 대리신문 2일 밤 權寧海 전 안기부장에 대한 구속절차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법원의 구인장 발부,權씨의 영장실질심사 거부,법원의 영장 발부,權씨의 건강악화를 내세운 변호인단의 영장집행 연기 요청,서울구치소 수감 등으로 우여곡절을 거듭했다. ○…權씨는 이날 자정 쯤 그동안 치료를 받았던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구치소로 향했다.權씨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수사관 3∼4명에게 이끌려 베이지색 코트 차림으로 6010 특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뒤검찰 차량에 올랐다. 權씨는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승용차가 구치소로 출발하려는 순간 미국 LA에서 신문을 발행한다는 50대 裵모씨는 차량을 향해 달걀 3개를 던져 2개를 뒷 유리창에 맞췄다.裵씨는 “북한과 내통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검찰 수사관들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하오 9시30분쯤 서울 강남성모병원權씨의 병실에 도착했으나 權씨의 변호인단이 “權씨가 식사를 전혀 못해 하오 5시부터 포도당 주사를 맞고 있다”면서 “혈당치가 떨어져 수액을 모두 맞기 전까지는 이동이 불가능하다”며 집행연기를 요청,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이날 상오 10시50분쯤 黃丙敦 남부지청 검사 등 2명이 權씨의 병실을 찾아와 權씨를 퇴원시켜 서울지검 남부지청으로 데려가 피의자 신문조서에 서명토록 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서울구치소로 이감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權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영장전담판사인 金益鉉 판사법원는 이날 하오 4시20분쯤 영장 실질심사를 하겠다며 權씨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했다. 權씨는 그러나 구인장 집행에 불응하며 완강히 버텼고 金판사는 하오 7시30분쯤 변호인인 鄭永一 변호사와 金오수검사를 ‘대리출석’시켜 신문한 뒤 하오 8시20분쯤 영장을 발부했다. ○…權씨에 대한 영장집행을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들은 權씨의 차림새 등을 놓고 한때 실랑이. 검찰은 양복차림에 부축을 받은 채 병실을 나와 영장집행에 응해주기를 요청한 반면 변호인단은 權씨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혈당치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를 들어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주장. ○…權씨의 변호인단은 이날 하오 기자들에게 “權씨는 부하직원들이 모두 구속된 마당에 구속을 각오하고 있다”면서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장집행을 강행하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
  • SOC 증액…경기 부양·고용 창출/국회통과 추경예산안 특징·의미

    ◎“사회불안 있어선 안된다” 여·야 공감대/교통세 탄력세율 10% 올려 財源 확보 우여곡절끝에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올해 추가경정 예산안은 고용촉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을 정부안보다 늘린게 가장 큰 특징이다. 국회 예결위는 총액규모에서 당초 정부안(73조7천6백51억원)보다 3천1백53억원을 증액시킨 74조8백4억원의 수정안을 통과시켰다.IMF 권고에 따라 긴축재정을 겨냥한 정부안의 골격을 살리되 경기부양과 고용창출을 위해 SOC투자를 늘리는 ‘절충안’을 채택한 것이다.추경편성이 긴축재정을 지향했던 만큼 SOC투자의 삭감폭을 놓고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권은 불요불급한 SOC 투자를 당초 예산보다 1조4천6백억원 가량 삭감하는 정부안 수용을 고수했다.반면 한나라당은 소폭 삭감으로 맞섰으나 결국 정부안보다 3천4백26억원을 증액하는 선에서 결론을 맺었다.최근 급증하는 실업으로 사회불안이 야기되고 있는데 대해 대책을 마련하지않을 수 없다는데 여야가 공감한 셈이다.재원마련은 교통세의 유류 탄력세율을 10% 인상,약 3천억원을 확보하는 등 3천7백42억원의 세입 증액으로 충당키로 했다. 구체적으로 고속도로 신설·확장(3백3억원),지하철건설(8백50억원),근로자 주택건설(3백억원),공항·항만(3백50억원)에 SOC예산을 배정,고용창출 효과에 무게를 뒀다.대신 추경예산과 별도로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국채발행한도를 2천억원 증액,국민주택기금에 추가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공무원 봉급삭감으로 마련한 1조1천억원의 실업재원은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실업자를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키로 했다.기존 5조원의 실업기금을 합해 모두 6조원이 넘는 실업기금을 확보한 것이다. 농어촌 지원을 위한 영농자원 대출금리와 관련,고금리 상황 때문에 정부는 현행 5%에서 2·5%포인트 올린 7·5%를 제시했지만 “농어민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정치권의 반대로 결국 6·5%로 낙착을 봤다.
  • ‘大洞制’를 지자체 개편 모델로/孔民培 창원시장(공직자의 소리)

    ○구청과 洞의 중간 기능 IMF한파와 더불어 지방행정의 경쟁력이 다시금 문제가 되고 있다.오는 6월의 지방선거 이후 지방행정 조직의 개편작업을 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 창원시의 행정동을 절반으로 감축한 대동제(大洞制)시행을 생각해 본다. 지난해 초 창원시의 인구는 50만명에 이르렀다.당시 지방지치법에 규정된 구청을 설치할 것인가를 두고 공직사회와 시민들간에 논란이 분분했다. 침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구청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그러나 구청 설치는 현행 3단계의 행정계층을 4단계로 복잡화하고 이에 소요되는 인력과 예산 낭비도 만만치 않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같은 양측의 일응 타당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전산화에 힘입어 행정동의 업무량은 50% 이상 감축되는 추세임에 틀림없다.따라서 새로운 행정서비스의 공급체계를 모색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됐고,그 결과 창원시가 시행하고 있는 대동(大洞)의 도입을 결정하게 된것이다. 대동제는 기존의 2∼3개 동을 생활권으로 묶어 1개 동으로 만들고,구청과 동의 중간적 기능을 부여해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 자리잡게 했다. ○예산절감 500억원 효과 대동제 시행 후 창원시의 동은 종전 24개에서 12개로,동별 인구는 1만8천900명에서 3만7천700명으로,공무원 수는 동당 평균 17명에서 30명으로 각각 늘었다.이는 400여명의 인력과 5백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왔으며,동별로 늘어난 인력은 규모의 이익을 가져와 시청에서 처리하던 90여종의 민원사무를 과감하게 동으로 위임할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시 본청은 물론 최일선 행정조직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특히 남은 동사무소 12개를 시민의 문화·복지공간으로 활용,삶의 질을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뒀다. 대동제 도입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승진기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는 산하 공무원들의 불만,그리고 선거구조정에 따라 의원 수가 감축되는 시의회의 아픔 등 넘어야 할 산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21세기를 바라보면서 ‘경쟁력있는 창원’으로 만들고자하는 시민들의 지지와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시의원들의 대승적 판단,시장을 믿고 따라준 산하 공무원들의 신뢰 등이 어우러져 국내 최초의 대동제는 시행될 수 있었다. 지방행정의 새로운 모델로 정착되고 있는 창원시의 대동제가 다가오는 지방조직 개편시 하나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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