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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국민경선 이대로는 안된다/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열린세상] 국민경선 이대로는 안된다/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파행과 혼란을 거듭하던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박스떼기’와 ‘명의도용’을 거쳐 경찰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내일 후보경선이 마감되면 그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범여권의 또 다른 축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도 동원·금권선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후보사퇴의 파행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여 전에 끝난 한나라당 후보경선에서도 후보검증을 앞세워 온갖 추태를 다 보여 주었다. 신문기사를 보면 자유당 시절의 선거인지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오늘의 모습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들 중 누군가에게 다음 5년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 신세가 참으로 암담하다. 당내 규칙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하였으니 사실 파행과 혼란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경선규칙도 합의하지 않고 그저 다 잘될 것이라는 요행만 믿고 후보선출을 덜렁 시작한 정당들의 인식이 한심할 뿐이다. 거대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동네 애들 축구판만도 못하다는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대선후보 경선에 관한 제도와 절차를 미리 정비하여야 한다.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경선에 계속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반영비율과 방식을 둘러싸고 모든 정당이 파행을 겪었다. 당내 지지도와 일반 국민의 선호도가 다른 까닭에 여론조사 반영비율에 따라 유불리가 갈라지니 각 후보들은 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명박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근혜후보에게 뒤졌으나 여론조사에 앞서 승리하였다. 여론조사는 오차범위가 있기 마련이고 설문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투표방법의 하나로 대체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여론조사를 굳이 계속 사용할 것이면, 각 정당들은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일찌감치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경선 도중에 규칙을 바꾸는 혼란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실시하는 모바일투표 역시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고 매표의 가능성도 있다. 옆 사람이 투표하는 내용을 지켜볼 수도 있을뿐더러 돈을 주면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강요하고 감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모바일투표를 수차례 실시한 영국도 한동안 중단하였다.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조직·동원 선거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대선 몇 달 후 있을 국회의원 선거 공천과 무관하지 않다.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대선 후보캠프에 줄서기를 하는 것은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보장받겠다는 계산에서이다. 실제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양 캠프간의 갈등이 도를 넘으면서 공천살생부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자 하는 인사들이 캠프에 들어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불법·탈법 운동을 저질렀다. 결국 공정하고 투명한 국회의원 공천이 보장되어야만 대선후보 경선도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다. 똑같은 국민경선을 하면서도 미국과 비교하여 우리의 대선 후보경선이 더욱 혼탁한 것은 소수 실력자들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는 지금 국회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방의회 출마자들이 각 후보 캠프에서 조직·동원선거에 앞장설 것이다. 5년 후에는 ‘국민경선’이 뜻하는 대로 국민의 손으로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서 경선제도와 절차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공천방식을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대선 상대 후보 흠집내기 ‘무더기 증인’

    대선 상대 후보 흠집내기 ‘무더기 증인’

    지난 11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할지 여부를 놓고 빚어진 국회 정무위 파행사태는 충분히 예견된 수순이다. 대선을 목전에 둔 범여권과 한나라당이 서로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해 법사·재경·행자·환노·건교위 등 관련 상임위에서 무더기 증인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를 어떤 식으로든 증언대에 세우기 위해 최소 4개 상임위에 ‘겹치기 증인신청’ 세례를 쏟아 놓았다. 이에 한나라당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공략 포인트로 정하고 신정아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은 물론 권양숙 여사까지 증인으로 신청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법사위 대통합민주신당이 도곡동 땅 투기 의혹,BBK 주가조작 사건, 위장전입 의혹, 위증교사 사건 관련자로 이명박 후보를 비롯해 39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이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까지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권력형 게이트뿐 아니라 대통합민주신당의 불법경선 의혹과 관련, 손학규·정동영·이해찬 등 경선후보들까지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이명박 후보의 개인정보 열람사건 관련 국정원장과 국세청장도 증인 신청하는 등 전방위적인 역공태세를 갖춰놓고 있다. ●정무위 대통합민주신당이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 등 42명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무더기 신청해놓았다. 이에 한나라당도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경위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이 후보 등 53명의 증인을 신청했고, 한나라당은 신정아·정윤재씨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행자위 대통합민주신당은 상암동 DMC 건설 의혹 등과 관련, 이명박 후보를 서울시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고, 한나라당은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선거인단 접수과정에서의 노무현 대통령 명의도용 사건과 관련해 정동영 경선후보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환노위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한나라당은 우호적인 교수들을 참고인으로 각각 신청했다. ●건교위 우여곡절 끝에 증인채택이 마무리됐다. 상암 DMC 특혜의혹 관련 서울대 정창모 교수와 성균관대 김도년 교수 등 12명이 채택됐고, 대운하 보고서 정치공작 의혹 관련 증인으로 청와대 이승훈 산업정책비서관과 고양수 수자원공사 조사기획팀장 등 4명이 확정됐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새 검찰총장 임채진씨 유력

    임채진 법무연수원장이 다음달 23일 2년 임기가 만료되는 정상명 검찰총장 후임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9일 4년 임기가 끝나는 전윤철 감사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연임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11일 인사추천회의에서 두 직책의 후임 인선을 결론짓고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 검찰총장에는 사시 19회인 임 원장을 비롯,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 정진호 법무차관 등이 후보군으로 검토돼 왔다. 이 가운데 임 원장이 내부 검증과 국회 청문 등을 고려할 때 다른 인물보다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안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연수와 방위병 근무기간이 겹쳐 군 복무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 감사원장 인선은 연임, 교체, 대행체제 등 세 가지 카드를 놓고 고심해 왔으나 결국 전 원장이 연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이수훈”北,국책연구기완장 교류 긍정적”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이수훈”北,국책연구기완장 교류 긍정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은 나빠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 윗부분이 조금 붉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3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측 수행원들과 악수하며 배우 문성근씨가 ‘제가 문성근입니다.’라며 인사하자 김 위원장은 발길을 멈추고 ‘반갑습니다.’라고 친근함을 표시하는 등 소탈하고 자상한 모습도 보여주더군요.” 남북 정상회담에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했던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이수훈(53) 위원장은 “전력사정이 눈에 띄게 좋아진 점 등 북한 경제형편은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고 5일 말했다.2004년에 이어 세번째 방북한 그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히 2001년 8월 민족대축전을 맞아 평양을 방문했을 때와 견줘 이같이 강조했다. ●“늦은밤 평양 환해 전력사정 좋아진 듯” 이번에 찾은 평양 거리에는 우리의 성탄절 분위기와 비슷하게 트리 장식이 돼 있었으며 아파트 등 주택가에도 밤 11시 넘어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등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고 한다.2004년엔 사흘이라는 짧은 체류기간 때문에 자세히 살피지 못했지만 2001년에는 일찍 전등이 꺼지는 등 적막강산이었다고 회고했다. 낮에도 아파트 창문에 비닐 같은 것으로 덮어 씌워 놓는 등 비교적 어두운 느낌을 받았으나 이번엔 도로나 주택가가 말끔히 단장됐다는 느낌을 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북측 인사들은 “우리는 늘 이렇게 하고 있다.”고 뽐냈다고 전했다. 전력 공급이 어떻게 좋아졌느냐는 물음에는 “수년에 걸쳐 소형 수력발전소를 많이 지은 결과”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시내 건물도 깨끗하게 도색해 6년 전과 달리 황폐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인상이 짙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2000년 1차 정상회담이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이번 회담은 화해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큰 의의”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협력과 제반 협의의 틀을 마련한 기회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황해도 해주를 정보기술(IT) 경제특구로 개방하는 문제에 대해 곧바로 수락한 점을 사례로 손꼽았다. 북 해군전력의 60%를 차지하는 이 지역을 놓고 ‘통 큰 결단’을 내렸다는 사실이 한반도의 바뀐 분위기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는 “해주 경제특구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는 사실은 개성공단에서 엿보인다.”면서 “당시 군사시설을 수㎞ 밖으로 물리면서까지 공단을 조성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또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우여곡절이 숱하게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북측이 매우 협조적이었다는 점도 들었다. 방북단 규모를 당초 200여명에서 300여명으로 늘린 점, 노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계획을 통보한 것만 해도 엄청난 준비가 뒤따라야 하는 등 갖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끝까지 남측을 배려해 줬다는 이야기다. 마지막날 발표된 ‘2007 남북 정상선언’ 합의문도 남측이 80∼90%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했다. ●‘인민은 위대하다´는 외교 의전상 배려 노 대통령이 4일 서해갑문을 방문해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는 글을 쓴 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잘라 말했다. 그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말로, 외교 의전상 상대방을 배려한 것”이라면서 “북녘에서 북한이라는 말 쓰면 안 되듯 우리 표현으로 하면 결례”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방명록 서명을 놓고 네티즌들은 “그래서 영혼을 팔아 먹었다는 말까지 듣는 것”“남측으로 치면 국민이라는 뜻으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니 문제 아니다.”라는 등 입씨름이 한창이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겐 (주민인권 등 탓에) 따끔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장은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국책연구기관장들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제안해 북측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었으며 다음달 방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선통일연구원장과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 고위 관계자들이 초청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상회담에 따른 미국과 일본 전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8일 출국한다.16일까지 머물며 빌 클린턴 정부부터 조지 부시 정부 초기까지 미국의 대북 특사를 맡았던 찰스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한인으로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조지타운대 빅터 차 교수, 릿쿄대 이종원 교수 등을 만난다. 이 위원장은 “이들은 한반도 전문가들이기는 하지만 비핵화 문제 등 핫이슈에 대해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직접 회담에 참석한 입장에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이해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선언’ 귀히 여겨야

    [2007 남북정상선언] ‘선언’ 귀히 여겨야

    그제, 3일은 통일 독일의 17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멀리 떨어진 분단 조국의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뉴스 화면들을 이 곳에서 지켜 보면서 필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7년 전에 있었던 첫 번째 정상회담 때 맛보았던 그 때의 짜릿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다는 사실에 우선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 발표된 ‘남북관계발전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많이 도출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우선 확인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다시 확인한 바탕 위에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로 나아가는 디딤돌들을 남북 정상이 탄탄하게 함께 깔아 놓은 점이 우선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내 분위기가 7년 전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도 그렇고, 또 북핵문제로 인한 지루한 국제정치적 공방이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정세 속에서 이번 정상회담에 무슨 특별한 기대를 걸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회의적인 정도가 아니라 정상회담 자체를 아예 반대하거나 아니면 “두 도박사의 만남” 정도로 폄하하는 내외의 부정적인 여론까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일의 선언은 이러한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예상을 뛰어넘고 현안을 거의 언급하면서도 차분하게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한 것도 아닌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번 선언의 내용이 ‘북핵문제’니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부각하지 못했다고 불평할 수도 있고 또 너무 경제문제 중심으로 흘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통일 논의의 활성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국가연합’이든지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지 간에 통일될 남북의 삶의 형식이 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이번 선언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을 강조할 수도 있고 ‘서해평화특별지대’의 설치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번 선언이 많은 합의점을 담고 있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강조점이 서로 다를 수 있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전격적 합의 이전부터 줄곧 논의되어 왔던 평화정착, 상호번영 그리고 통일문제를 상기해 볼 때 이번 선언은 이 세가지 기본적인 문제를 균형감 있게 잘 연결시켰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격변하는 세계와 요동치는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당위성을 우리는 항상 이야기해 왔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현실정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이해관계를 내세우면서 우리 스스로가 당연히 먼저 서둘러 갈 길을 가지도 않았거나 우회(迂廻)하다 보니 귀중한 기회들을 자주 놓쳐 왔다. 이제 우리는 또 한번의 기회를 맞고 있다. 오랫동안 남북관계정상화의 발목을 잡아 왔던 북핵문제도 이번 베이징에서 열렸던 6자회담에서 도출된 핵불능화합의를 통해서 풀리기 시작한 시점에,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남북정상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노력과 함께 앞으로 주변 강대국을 포함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까지 내다보는 눈높이를 서로 맞추기에까지 이르렀다. 장형(張衡)의 말처럼 “먼 곳에 있는 것만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은 천하게 여긴다(貴耳賤目).”는 지적처럼 우리는 워싱턴이나 베이징의 소문만 귀하게 여겼지 서울과 평양의 살아 있는 숨결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기회도 준 정상회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란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의 사진을 보면서 필자는 이곳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을 한때 갈랐던 장벽을 따라 그려진 붉은 선을 생각했다. 인위적인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역사의 진리를 확인하면서 오늘 우리가 맞는 귀중한 성과를 더욱 소중하게 발현시켜야 하는 시대적 의무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확인할 때다.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 [2007 남북정상회담] 盧, 우여곡절 속 아리랑 관람

    [2007 남북정상회담] 盧, 우여곡절 속 아리랑 관람

    정상회담 전부터 논란을 빚었고 비로 인해 취소될 뻔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깜짝 등장’은 연출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3일 저녁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대동강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봤다. 비가 내려 다소 쌀쌀해진 날씨 속에 각각 베이지색과 감색 트렌치 코트 차림으로 나온 노 대통령 내외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나란히 주석단에 앉아 관람했다. 김장수 국방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등 공식 수행원도 함께 했다. 노 대통령 내외와 김 상임위원장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경기장을 가득 채우운 평양 시민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와 ‘와∼’하는 함성으로 환영했다. 노 대통령은 꽃다발을 받은 뒤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오후 8시반쯤 시작돼 1시간30분간 진행된 공연은 6만여명이 일사분란하게 펼치는 초대형 군무와 형형색색의 카드섹션으로 장관을 연출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공연 내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관람 도중 두 차례나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공연 도중 무용복 차림의 아동들이 줄넘기 등 놀이를 마친 뒤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석단으로 달려오자 김 상임위원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공연이 끝나갈 즈음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노 대통령을 향해 환호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출연자들과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공연에서는 노란 옷을 입은 무희들이 현란한 부채춤을 선보였고, 초대형 지구본이 등장하는가 하면 관중석에선 고 김일성 주석의 얼굴도 형상화했다. 카드섹션으로 ‘핏줄도 하나’,‘통일의 문을 우리민족의 손으로’,‘자주·평화·친선’ 등 문구를 만들었다.‘21세기 태양은 누리를 밝힌다. 아, 김일성 장군’,‘무궁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라는 체제 선동적인 글자도 선보였다. 특히 남측의 태권도 시범이 처음으로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민족의 자랑’이라는 글자와 태권도 이단옆차기 그림을 배경으로 수백명의 젊은이가 태권도 시범을 선보여 박수 갈채를 받았다. 노 대통령이 공연을 관람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먼저 방북 전 국내 비난 여론을 무마하느라 애를 먹었다. 공연 내용이 북한 체제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등 ‘정치색’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측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인민군이 총검술로 국군과 미군을 제압하는 장면을 태권도 시범으로 바꾸는 등 문제의 소지가 될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게다가 공연 당일 비가 내리면서 취소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야외 카드섹션이 주류를 이루는 공연의 특성상 많은 비가 내리면 공연의 진행이 어렵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김 국방위원장과의 ‘동반 관람’이 불발로 끝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공연을 보던 김 국방위원장이 대포동 미사일 카드 섹션 장면에서 “이것이 첫 번째 위성발사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한 뒤 북·미간 미사일 협상이 반전된바 있어 이번에도 ‘깜짝 쇼’가 기대됐었다. 아리랑 공연은 북한의 외화획득에 일조하고 있지만, 어린 학생들이 혹독한 연습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영표 강주리기자tomcat@seoul.co.kr
  • [한가위 영화 IN] 이래서 강추! 저래서 비추!

    추석 대목이다. 연휴를 앞두고 9월초부터 한국영화가 쏟아지고 있다.20일 ‘사랑’과 ‘상사부일체’가 개봉하면서 추석 연휴 경합을 벌이는 한국영화만 7편이다. 대작 외화로는 유일한 ‘본 얼티메이텀’이 지난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만만찮은 기세를 보이고 있다.5일간의 연휴, 볼 만한 영화 8편을 골랐다. 관람을 돕기 위해 ‘이래서 강추, 저래서 비추’를 달았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즐거운 인생 대 학 시절 록밴드 멤버였던 상우의 장례식에 모인 세 친구, 기영·성욱·혁수.“애들이 다야?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더 늦기 전에 접어뒀던 록밴드의 꿈을 펼치기로 작정한 ‘늙다리’ 아저씨들. 상우의 아들 꽃미남 현준까지 끌어들인 ‘활화산’은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홍대 앞 클럽을 손쉽게 접수하고 자신들만의 무대까지 세우는 데 성공! 이준익/정진영·김윤석·김상호·장근석/드라마/전체관람가 강추 중년 남성을 위한 찬가.2040세대를 묶는 이야기와 음악. 비추 너무 쉬운 결말. 게다가 부인들은 왜 그리 못됐나. ■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작가 최인호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명중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중견 연기자 한혜숙이 17년 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서 더욱 화제를 모은 작품. 주인공인 작가 최호와 함께 떠올리는 어머니에 관한 가슴 따뜻해지는 추억. 자식 하나 잘되는 것 보고 한 평생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 옛날 어머니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하명중/한혜숙·하상원·하명중/드라마/전체 강추 나이 지긋한 중년층이라면 “저건 내 이야기야.”할 듯. 비추 단순한 플롯, 평이한 연기와 편집은 지루하다. ■ 데쓰 프루프 자동차를 살인무기로 사용하는 전직 스턴트맨 마이크. 능글맞은 미소를 흘리며 약한 여성만을 골라 일을 벌이던 그가 ‘무서운 언니들´을 만나 된통 당하는 이야기.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통쾌할 수 없다! 70년대 B급 영화의 정서를 제대로 살린 타란티노의 엉뚱함과 재기에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쿠엔틴 타란티노/커트 러셀/액션/18세 강추 길고 긴 수다를 참으면 화끈한 발차기가 기다리고 있다. 비추 언니들 무서워서 질질 짜는 마초, 남자들 기분 나쁘려나. ■ 본 얼티메이텀 1편 ‘본 아이덴티티’가 처음 나왔을 때 3편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제임스 본드, 이단 헌트류의 매끈한 바람둥이 첩보원의 대척점에 서있는 제이슨 본. 단 한번도 웃지 않고 “나는 왜 살인기계가 되었나?”라는 정체성 고민의 시초를 찾아가는 본에게 어찌 연민과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액션 장면의 촬영과 편집에서 신기원을 이룬 영화. 폴 그린그래스/맷 데이먼/액션/ 강추 ‘트랜스포머’가 CG의 진수? ‘본 얼티메이텀’은 아날로그의 진수! 비추 2편에서 다 나온 이야기. 오직 액션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 사 랑 “맹세했다. 내 니 지키주기로…” 가까스로 만난 첫사랑 미주. 그러나 이번엔 가질 수 없는 인연이 되어 나타났다. 한 여자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부산 사나이 인호의 순정.‘친구’에서 장동건의 변신을 이끌어 냈던 곽경택 감독, 이번엔 주진모를 택했다. 그의 사투리 연기와 거친 변신이 관전 포인트. 곽경택/주진모·박시연/멜로/18세 강추 “여자는 순간이다.”“저는 아임니더.” 이런 대사에 꽂힌다면. 비추 친구+달콤한 인생+로미오와 줄리엣=사랑. 구시대적 여성관도 흠. ■ 상사부일체 조직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는 큰 형님의 엄명에 따라 회사에 가게 된 계두식. 그가 간 이유는 유일하게 가방 끈이 길어서다. 두식은 뜻하지 않게 능력을 발휘해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회장의 특별 지시로 기획실에 입성한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부당하게 해고되자 성질을 못 참고 회사의 횡포에 분연히 일어선다. 심승보/이성재·손창민·박상면·김성민/코미디/15세 강추 전작의 인기와 기대를 한몸에 받는 ‘추석 단골 손님’. 비추 폭력과 욕설로 웃기는 코미디, 이제 좀 그만하면 안되겠니? ■ 마이파더 22년 만에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온 입양아 제임스 파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버지는 2명을 살해한 사형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의 TV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만든 영화. 낯익어서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에 힘입어 감동 지수를 더욱 끌어올린다. 다니엘 헤니의 슬픈 눈빛과 어눌한 한국말 대사는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황동혁/다니엘 헤니·김영철/드라마/15세 강추 눈요기에 그쳤던 다니엘 헤니가 ‘진짜, 제대로’ 연기한다! 비추 에필로그까지 울린다. 충혈된 눈으로 극장문을 나서기 싫다면. ■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당신 어머니를 우리가 납치했는데.” “뭐라고? 아이, 어머니 또 장난치시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해.” 금지옥엽 키워 한몫씩 일찍감치 챙겨줬는데 납치범의 전화를 받은 자식들 하나같이 무관심이다. 열받은 ‘국밥 재벌’ 권순분 여사의 통 큰 제안.“500억 받아주겠다.” 인질에서 납치 주모자로 변신, 경찰과 납치범들 머리꼭대기에 앉아 모든 사건을 지휘한다. 김상진/나문희·유해진·강성진·박상면/코미디/15세 강추 드디어 주연으로 등극한 ‘국민 어머니’ 나문희가 갖는 프리미엄. 비추 감독, 배우, 설정까지 똑 떨어지는데 웃음도 연기도 2%부족한 맛.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8)정묘호란 일어나다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8)정묘호란 일어나다 Ⅲ

    조선 사신이 ‘재조지은을 배신할 수 없다.’며 침략을 힐문했을 때 아민은 즉각 반박했다. 반박의 핵심은 ‘조선이 명의 은혜만 기억할 뿐 자신들이 베푼 은혜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민은 과거 울라(烏拉)의 부잔타이(布占泰)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자신들이 부잔타이를 설득해 침략을 중지시켰던 것, 심하 전역 때 포로로 잡은 조선 병사들을 송환해 준 것 등 ‘은혜’를 열거했다. 그러면서 조선이 모문룡을 편들고 군량을 제공했던 것, 누르하치가 죽었을 때 조문(弔問)하지 않은 것 등을 침략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형제관계를 받아들이다 아민은 자신들이 군사를 일으킨 것이 정당하다고 강변하면서, 조선 사신들에게 계속 싸울 것인지 화약(和約)을 맺을 것인지 택일하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은 조선의 토지와 백성에 아무런 욕심이 없으며 조선이 화의를 바란다면 국왕이 신임하는 사람을 속히 보내라고 닦달했다. 아민은 사신인 강숙 일행이 돌아가는 편에 자신의 사자 아본(阿本)과 동나미(董納密) 등을 동행시켰다. 그들이 떠난 뒤 전진을 멈추고 중화에서 1주일을 더 머물렀다. 휴식을 취하면서 조선의 답변을 기다리자는 심산이었다. 당시 후금군이 화의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월28일 아민이 보낸 사신 일행이 강화도 건너편의 풍덕(豊德) 부근에 당도했다. 조선 조정은 ‘오랑캐 사신(胡差)’을 어느 길로 들이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인조는, 조선인들이 평소 이용하지 않는 샛길로 호차를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호차가 전하는 국서를 직접 받지 않겠다고 했다. 화약을 맺어 후금군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급하기는 했지만 ‘오랑캐’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2월2일, 호차가 갑곶(甲串)을 통해 강화도로 들어왔다. 그가 소지한 국서에는 ‘명과의 관계를 끊되, 후금이 형이 되고 조선이 아우가 되는 형식으로 화약을 맺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인조는 신료들을 불러모았다.‘명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대의에 어긋나는 것이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이 다시 확인되었다. 인조는 형제의 명칭은 다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조선은 후금 측이 조선과 명 사이의 기존 관계를 용인해 준다면 화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척화파들이 들고 일어났다.2월3일, 태학생 윤명은(尹命殷) 등이 상소를 올렸다.‘오랑캐 사신의 목을 베어 명나라로 보내고 의병을 일으켜 성을 등지고 결전을 벌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예빈직장(禮賓直長) 강유(姜瑜)도 비슷한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이 주축인 비변사는 뜨끔했다. 비변사는 ‘오랑캐와 화친하려는 것은 전쟁을 완화시켜 종사(宗社)를 보전하려는 부득이한 계책’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외방에서는 ‘조정이 대의를 망각하고 더러운 오랑캐와 우호를 맺으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조는 여론을 의식하여 다시 교서를 반포했다.‘종사의 위기를 늦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랑캐와 화친하지만 명과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만은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오랑캐와 화친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광해군 정권을 타도하고 들어선 인조정권은 광해군대의 ‘화친’을 반복하는 데에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강홍립과 유해의 화의 주선 2월5일 조정은 회답사 강인(姜絪)을 임시로 형조판서에 임명하여 적진으로 보냈다. 그가 가져간 국서에서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또 의연히 천계(天啓) 연호를 사용했다. 후금 측은 반발했다. 그들은 ‘천계’의 ‘계(啓)’ 자 대신 ‘총(聰)’ 자를 쓰라고 종용했다. 자신들의 연호를 사용하라는 요구였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울까지 진격하여 1년 동안 머물며 철수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후금군 지휘부는 계속 전진할지의 여부를 놓고 의견이 서로 달랐다. 총사령관 아민은 다른 장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서울로 전진할 것을 고집했다. 귀순한 한인(漢人) 출신 장수 이영방(李永芳)이 반대하자 아민은 이영방에게 “내 어찌 너 같은 오랑캐 놈을 죽이지 못할까?”라고 면박을 주었다. 졸지에 ‘오랑캐’로 전락한 이영방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민의 동생 지르갈랑(濟爾哈朗)과 다른 장수들이 모두 나서서 설득한 뒤에야 아민은 전진하겠다는 고집을 꺾었다. 2월9일, 후금 측이 보낸 강홍립과 박난영(朴蘭英), 호차 유해(劉海)가 강화도로 들어왔다. 후금군 지휘부는, 천계 연호를 포기하지 않는 조선 측의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화친을 깨려는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2월10일, 인조는 강홍립과 박난영을 접견했다. 두 사람 모두 심하 전역에서 투항했던 이후 9년 만의 귀환이었다. 상당수 신료들은 강홍립의 목을 쳐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인조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강홍립은 인조에게 “모진 목숨 죽지 못하고 9년 만에 전하를 뵈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후금 측의 내부 사정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강화를 맺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유해는 본래 한인(漢人)으로 후금으로 귀순한 인물이었다. 후금 측이 그를 사신으로 보낸 것은, 조선이 한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상황을 염두에 둔 조처였다. 실제로 유해는 조선 조정으로부터 과거 명의 칙사들처럼 대접받고 싶어했다. 그는 ‘조선이 오로지 명분에만 집착하여 종사가 망하고 백성들이 죽어 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화친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촉구했다. 조정은 원창부령(原昌副令) 구(玖)를 원창군(原昌君)으로 삼아 그를 왕제(王弟)라고 칭하여 후금군 진영으로 보내기로 했다. 일종의 볼모였다.2월15일에는 목면 1만 5000 필, 면주(綿紬) 200 필, 백저포(白苧布) 250 필 등을 후금군 진영에 보냈다. 일종의 세폐(歲幣)였다. 원창군을 파견하고 세폐를 보냄으로써 화친을 위한 기본 토대는 마련되었다. ●인조, 맹세 의식에 태연 조선과 후금의 화의 과정에서 마지막 걸림돌은 화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하늘에 고하고 맹세(盟誓)하는 문제였다. 후금 측은 국왕과 후금 사신이 동참한 가운데 흰말(白馬)과 검은 소(黑牛)를 잡아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식을 거행하자고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그것을 비루하게 여겨 거부하려 했다. 언관(言官)을 비롯한 상당수 신료들은 ‘존엄한 천승지국(千乘之國)의 임금이 개돼지와 더불어 맹세하는 것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격렬히 반대했다. 후금 측은 완강했다. 아민은, 맹세를 기피하는 것은 겉으로만 화친하려는 것으로 끝내 거부한다면 다시 싸워 승부를 가리자고 협박했다.‘청실록’이나 ‘만문노당(滿文老)’을 보면 누르하치가 주변 부족들을 복속시킬 때마다 희생을 잡아 회맹(會盟)하는 장면이 나오거니와 만주족의 입장에서 맹세는 서로의 신의(信義)를 담보하는 의식이었다. 신료들과는 달리 인조는 맹세 의식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맹세는 대의와는 무관하다. 두 마리 가축을 아끼려다가 위망(危亡)을 초래할 수는 없다.”며 맹세와 관련된 책임은 자신이 모두 지겠다고 나섰다. 3월8일, 인조는 대청에 나아가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는 예를 몸소 거행했다. 조선 신료들과 호차들이 각각 동쪽과 서쪽 계단에 도열하여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인조가 예를 마치고 행궁으로 돌아가자 만주인들이 흰말과 검은 소를 잡아 피와 골을 그릇에 담았다. 조선 신료들과 호차들은 새로 만든 서단(誓壇)에 서서 맹세문을 낭독했다.‘조선이 향후 후금을 적대시하여 나쁜 마음을 품으면 이와 같이 피와 골이 나오게 되고, 후금이 나쁜 마음을 품으면 역시 피와 골이 나와 하늘 아래서 죽게 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묘호란이 화친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괄의 난이 남긴 후유증을 비롯한 내정을 추스르기에도 여유가 없었던 조선과 잠시 서진(西進)을 멈추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절실했던 후금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새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KBS 1TV의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이 새달 24일 오후 7시30분 처음으로 안방을 찾아간다. 이 드라마는 17년 동안 방영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후속작. 농촌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귀농가족과 베트남 신부 등의 이야기로 ‘대추나무…’와는 또다른 농촌의 모습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출은 ‘명성황후’와 ‘황금사과’의 신창석 PD, 대본은 ‘결혼합시다’,‘전쟁 같은 사랑’ 에 참여한 유윤경 작가. 반효정, 양금석, 이은우, 조은숙, 이진우 등이 신세대 며느리와 종부 시어머니의 이야기, 베트남 여인과의 우여곡절 신혼생활을 생생하게 펼쳐낼 예정이다.
  • 첫삽 뜨는 기업도시… 갈길 까마득

    첫삽 뜨는 기업도시… 갈길 까마득

    10개 혁신도시 중 최근 제주혁신도시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가운데 진척이 어려울 것이라던 기업도시가 18일 태안에서 첫 삽을 뜬다. 태안기업도시는 현대건설이 사업을 추진한다. 태안은 아산·서산과 함께 서해안 시대의 거점지역으로 현대의 서산농장과도 인접해 사업 추진력과 시너지 효과는 기대할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다른 기업도시는 아직 사업진척이 지지부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발전 축 태안, 14조원 생산유발효과 태안군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는 태안읍과 남면의 천수만 간척지 B지구 1464만㎡로 일산 신도시와 맞먹는 규모다. 현대건설이 태안군과 함께 2020년까지 9조 156억원을 투입, 인구 1만 5000명 규모로 조성한다. 14조원의 생산 유발,16만명의 고용 유발 등 경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완공 후 2조 4000억원의 관광 매출과 6만여명의 취업 효과도 예상된다. 주민들은 착공 하루를 앞두고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로 구성된 태안군 기업도시유치추진위원회 강홍순 위원장은 “기업도시가 안면도로 가는 길목에 있어 그곳 주민들은 피해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주민은 반기고 있다.”며 “주민들은 기업도시가 낙후된 태안지역 경제를 크게 활성화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을 뺀 전국 5개 기업도시의 일부는 참여업체간 이견 등으로 늦어지고 있다. 토지보상 등 문제도 향후 추진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전남 무안 산업교역형 기업도시는 법정 자본금의 10%에 크게 미치지 못해 건설교통부 기업도시위원회의 심의·승인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자금금이 374억원으로 전체 개발비의 10%인 1240억원에 못 미치고 있다. 쌍룡·프라임그룹 등이 출자하고 있다. 이들은 무안읍, 청계·망운·현경면 일대 35㎢의 부지 가운데 15.3㎢만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무안·무주·원주 등 착수시기 지연 전남 해남·영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도 참여업체간 이견으로 지연되고 있다. 선도사업인 ‘F1(포뮬러원)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열 경주장만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착공됐을 뿐이다. 전북 무주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도 당초 올해 말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2008년 말로 늦춰졌다. 이 착공시기마저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대한전선이 추진하고 있으나 주민반발이 있는 데다 문광부 승인 및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탓이다. 강원 기업도시도 토지보상을 둘러싸고 토지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12년까지 부지조성을 끝내고 기업체들의 입주를 받을 예정이나 당초 계획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다. 충북 충주 지식기반형 기업도시는 내년 2∼3월 착공될 예정이다. 참여업체간 이견으로 3개월 늦어졌다. 포스코와 주택공사, 임광토건 등이 참여한다. 하지만 전체 부지의 54%가 사유지여서 ‘보상비가 너무 낮다.’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등의 이유로 주민과 토지주들의 반발이 예상돼 적지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종합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열린세상] 노대통령은 뭘 우려하는가?/김종배 시사평론가

    [열린세상] 노대통령은 뭘 우려하는가?/김종배 시사평론가

    다수가 전망한다. 변양균·정윤재씨의 ‘부적절한 행위’가 검찰 수사결과 ‘측근 비리’로 확인되면 노무현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생뚱맞다. 이치가 그렇다.‘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엔 다른 사실이 전제돼 있다. 지금까지 레임덕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을 놓고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예측하는 건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대선은 이제 석 달 남았다. 대선이 끝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고 국정 인수인계작업이 개시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석 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진다고 해서 국정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일은 거의 없다. 실제가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에도 몇 개의 역점과제를 입법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민연금법을 개정했고 로스쿨법을 통과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입법내용에 가감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목표치를 달성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선방을 한 셈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퇴임 1년여를 앞두고 식물 상태에 빠진 것과 견줘보면 아주 효율적으로 선방을 해온 셈이다. 게다가 임기 막바지에 남북정상회담까지 치를 계획이니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기회까지 남아 있다. 여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법한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변양균씨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됐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한편으론 목을 곧추세우고 할 말 다 했다.“원칙 없는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자신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참여정부 공격을 선거 전략으로 채택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원칙 있는 승리라야 승리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고,“원칙 없는 기회주의자들의 싸움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측근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각을 세우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확인되는 게 있다. 여한은 몰라도 여망은 있다는 점이다. 그게 뭘까? 역사의 평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정하고 정당한 역사의 평가다. 자신의 퇴임과 동시에 ‘악의적 왜곡언론’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협공은 자연스레 풀린다. 공정하고 정당하게 평가받을 조건이 갖춰진다. 역사의 심판정에서 궂은 일 도맡을 대리인만 세우면 된다. 바로 계승세력이다. 대선 승패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원칙 있는 승리”가 아니라면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자신의 노선이 계승되는 게 아니다. 반대로 “원칙 있는 패배”라면 계승세력이 이른바 민주개혁진영의 본류가 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관건은 승패가 아니라 원칙이다. 결과가 아니라 가치다. 특히 측근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감자요인으로 돌출된 상황에선 더더욱 중요하다. 어떻게든 자산을 지켜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다. 털어낼 건 최대한 빨리 털어내고 남은 자산은 최대한 증식시켜야 한다. 이 맥락에서 레임덕이란 개념은 재조정된다. 권력누수가 아니라 평가누수 측면에서 레임덕이란 개념을 정립하면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은 새롭게 곱씹어야 한다. 검찰 수사결과 측근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측근 비리’로 확인된다면, 그래서 국민의 질타와 이반이 심화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자산 증식은 벽에 부딪힐 수 있다. 역사의 심판정은 배심제이기 때문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 시·도 교육청 ‘특목고 불허’ 반발

    시·도 교육청 ‘특목고 불허’ 반발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밝힌 ‘특목고 불허 방침’과 관련해 외국어고 설립을 추진 중인 각 시·도교육청과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자녀를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보내야 했던 광주시와 울산시 등 외국어고가 없는 광역시권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하다. 중학생 자녀를 둔 이모(49·광주 서구 치평동)씨는 7일 “교육부가 특목고 신설 유보 조치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b다. 행정 당국도 지역 인재 육성과 기회 균등을 주장하며 외고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광주는 부지까지 선정 광주시와 시교육청은 사립 외고 설립을 위해 수년간 설립자를 공모하는 등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최근에야 지역 중견 건설업체인 호반건설 계열 학교법인 ‘태성학원’을 후보자로 선정했다. 학교법인은 오는 2010년 개교를 목표로 동구 선교동 공영개발 부지 3만 6363㎡에 24학급·720명 규모의 외고를 설립키로 하고 교육부와 사전 협의 절차를 진행 중이다. 광주시는 “문화중심도시, 국제회의도시로 지정된 만큼 외국어에 능통한 인력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지역 사정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외고 설립’은 안순일 광주시교육감의 핵심 공약이자, 시교육청이 광주시와 체결한 인재양성 및 교육발전을 위한 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처로 이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광주만 영원히 외고가 없는 지역으로 남게 됐다.”며 “앞으로 시민들의 불만과 원성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교조 광주지부는 논평을 통해 “교육부의 특목고 불허 방침은 환영할 일”이라고 밝혔다 ●울산 “설립자 최종 선정 단계인데…” 울산시교육청은 최근 공모에 응한 울주군과 북구 등 2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최종 외고 설립자 선정을 앞두고 있다. 시교육청은 2010년까지 15학급 규모의 외고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의원, 상공회의소, 학교운영위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 ‘국제외고 설립추진위’를 구성했다. 또 ▲울산공단내 인력수요 충당 ▲근거리 배치에 따른 학생·학부모 불편 해소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외고 설립 당위성의 홍보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외고 유치를 위해 전력투구해 왔으나 교육부의 제동으로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민 김모(54·울산 북구)씨는 “지역에 입주한 기업에 충분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외고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교육부의 이번 방침이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원·충남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밖에 충남도와 강원도도 2008∼2009년 개교를 목표로 외고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학교 설립권을 시·도교육감에 주고 있으나 같은 법 시행령은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 3개 특목고 지정·고시(설립)는 교육부장관과 사전 협의하도록 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1626년(인조4, 천계6) 1월23일 누르하치는 영원성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20만이라는 설도 있고,13만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누르하치의 대병력이 나타나자 영원성의 전면에 머물던 명의 관민(官民)들은 경악했다. 대릉하(大凌河), 소릉하(小凌河), 행산(杏山), 탑산(塔山) 등지의 명군 지휘관들은 가옥과 곡식을 불태우고 도주했다. ●영원대첩(寧遠大捷)의 실상 누르하치는 영원성에 대한 공격에 앞서 자신이 데리고 온 한인(漢人) 포로를 풀어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를 통해 누르하치는 원숭환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우리는 20만의 대군이다. 성은 분명히 함락될 것이다. 여러 관인들이 항복한다면 높은 관작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환의 회답은 간단했다.“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공격해 왔는가? 나는 성을 사수할 것이다.” 1월23일, 누르하치는 공격을 명령했다. 후금이 자랑하는 철기(鐵騎)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방패를 손에 쥔 경보병(輕步兵)들을 비롯하여 후금군 병사들이 성을 향해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20만이라고 큰 소리치는 대병력이었다. 영원성의 원숭환 병력은 대략 1만 정도에 불과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병력 수만 보면 승패는 이미 끝난 셈이었다. 성으로부터 홍이포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사격은 정확했다. 포탄은 벽력같은 굉음을 내며 돌격해 오는 누르하치 병사들의 대열 중간으로 떨어졌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도 쏟아지는 화살 앞에 나가 떨어졌다. 후금군의 사상자가 속출했다. 1월24일, 누르하치는 전차(電車)를 투입해 다시 총공격에 나섰다. 포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야 했지만 날은 춥고 땅은 꽁꽁 얼어 있었다. 다음날에도 후금군은 희생을 무릅쓰고 돌격을 계속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누르하치는 흥분했다. 그는 병사들의 선봉에 서서 전투를 독려했다. 홍이포의 포탄은 누르하치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않았다.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누르하치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스물 다섯부터 전장을 주유했던 누르하치였다. 그동안 누르하치는 명군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연전연승했다. 거기에 철기의 기동력이 더해지면서 명의 오합지졸들은 후금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1619년 사르후 전이 그러했고, 이후 줄곧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홍이포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는 후금군의 신속한 기동과 병력의 집중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원숭환은 그동안 상대했던 명군 지휘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그 스스로 영원성을 점찍어 성벽을 수축하고 군량을 비축해온 ‘준비된 지휘관’이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여러 장수들과 혈서를 써서 수성(守城)을 맹세했다. 원숭환의 탁월한 영도 아래 만계(滿桂), 조대수(祖大壽) 등 부하 장수들도 선방했다. 연이은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자 누르하치는 병력을 거둬 심양으로 철수 길에 올랐다. 청실록에서는 유격(遊擊) 2명, 비어(備禦) 2명이 전사하고 500명의 병사들이 죽었다고 적었다. 영원성의 승리가 남긴 영향은 컸다. 이후 후금은 함부로 산해관을 넘보지 못했다.1641년(崇禎 14) 홍승주(洪承疇)가 송산과 행산전투에서 무너질 때까지 산해관 앞의 영원을 거쳐 금주(錦州)에 이르는 요새와 성채들은 후금의 서진(西進)을 차단했다. ●전투 부상 후유증으로 누르하치 사망 1626년 8월, 누르하치는 영원성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윽고 후금의 버일러(貝勒)들은 홍타이지(皇太極)를 새로운 한(汗)으로 옹립했다. 그는 누르하치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여덟 번째 아들이 최고 권력자로 즉위했다는 사실 자체가 명이나 조선의 눈으로 보면 이채로운 것이었다. 무조건 장자가 계승하는 관행으로 보면 말이다. 홍타이지(1592~1643)는 잘 알려진 것처럼 훗날 제위에 올라 태종(太宗)이 되고,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에게서 치욕적인 항복을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그의 모친은 몽골족 여자였다. 누르하치가 1615년 황(黃), 홍(紅), 남(藍), 백(白) 등 사기(四旗)를 확대하여 팔기(八旗)를 창설했을 때, 스물 두 살의 홍타이지는 정백기(正白旗)를 관할하는 버일러가 되었다. 그는 이 무렵부터 다이샨(代善), 아민(阿敏), 망굴타이(莽古爾泰) 등 그의 형들과 더불어 ‘사대 버일러(四大貝勒)’로 불리면서 정무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홍타이지는 누르하치를 수행하여 전장을 누비면서 탁월한 전공(戰功)을 쌓았다. 특히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그가 세운 전공은 혁혁하여 누르하치는 ‘내 아들 홍타이지는 사람들이 의지하기를 인체로 치면 마치 눈과 같은 존재’라고 찬양했다. 홍타이지는 무략(武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여진족의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한문에도 능통했다. 홍타이지가 개인적으로 탁월한 인물이고, 추대에 의해 한으로 즉위했지만 즉위 직후 그의 위상은 보잘것이 없었다. 일견 만장일치에 의해 옹립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즉위 직후 당장 그의 사촌형 아민이 삐딱하게 나왔다. 아민은, 홍타이지를 한으로 인정하지만 자신은 소속 기인(旗人)들을 이끌고 독립하겠다고 통보했다. 홍타이지는 긴장했다. 아민의 독립을 허락하면 나머지 각 기들도 전부 이탈하려 들 것이고, 그럴 경우 후금의 연맹 조직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즉위 직후 그는 아민을 설득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권력강화를 위한 홍타이지의 노력 아민을 겨우 설득했지만 홍타이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었다. 누르하치 시대 만주족은 분권(分權), 합의제(合議制)에 기초한 전통적인 부족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르하치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각 버일러들은 자신의 권력이 왜소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당연히 누르하치를 견제하려 들었다. 부족제의 전통이 강한 상황에서 홍타이지는 더욱이 서열상 사대 버일러 가운데 맨 꼴찌였다. 나머지 버일러들이 누르하치의 후계자로서 막내인 홍타이지를 옹립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의 권력을 억제하고 전통적인 부족제 본래의 통치체제로 돌아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즉위 직후 홍타이지는 백관들로부터 조하(朝賀)를 받을 때 세 명의 형들과 나란히 앉아 남면(南面)했고, 제례(祭禮)를 거행할 때도 그들과 동렬(同列)에 섰다. 그것은 사실상 공동 집정이었다. 홍타이지는 이름만 한일 뿐 실제 가지고 있는 권력 면에서는 세 명의 버일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인(漢人)과 몽골인들에게 주목했다. 당시 후금 사회에는 많은 한인과 몽골인들이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포로로 획득하거나 귀순해 온 사람들이었다. 누르하치는 한인들을 좋게 봐주지 않았다. 그들을 복속시키려고 위해 탄압을 일삼았다. 만주인들이 그들에게 약탈을 자행해도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자연히 만주인들과 한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한인들은 침학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물론, 만주인 관인들을 암살하거나 우물에 독을 풀기도 했다. 무리를 지어 반란을 일으켰다. 홍타이지는 한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을 바꾸었다. 만주인 귀족이나 관원들이 한인들을 함부로 약탈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인과 만주인들을 분리시켰다. 한인들의 거주 지역에 만주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한인 관리들을 시켜 그들을 통제하도록 했다. 능력 있는 한인들을 발탁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홍타이지의 포용정책에 힘입어 많은 한인들이 관직에 진출했다. 한인 관료들의 경륜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홍타이지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1627년 무렵, 홍타이지는 산해관을 향한 서진을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힘썼다. 동시에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조선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박기철의 플레이볼] 국내 도핑테스트 앞두고

    올해 한국야구의 최대 뉴스는 확실시되는 관중 400만명 시대의 재진입이다. 관중 400만명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26번의 시즌 중 불과 네 차례밖에 없던 일이라는 점에서도 대단하지만 200만명대까지 추락했던 야구 인기의 회복이란 점에서 더욱 반갑다. 어떤 분야든 한번 인기의 정점에 섰다가 추락하면 그 인기를 다시 찾기란 처음보다 훨씬 어렵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무대를 떠난 연예인의 복귀가 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떠난 사연이 불미스러운 것이었을 경우는 더하다. 올 메이저리그 최고의 화제였던 배리 본즈의 홈런 신기록은 정상적이라면 전 미국이 들썩이는 축제가 돼야 했고 야구 인기에 엄청난 도움을 줘야 했다. 그러나 신기록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에 항상 붙어 다닌 약물 의혹이라는 꼬리표는 신기록 달성이 과연 야구 이미지에 도움을 주는 일인지 헷갈릴 정도다.프로스포츠로서의 뿌리가 가장 깊은 메이저리그이고 종주국인 미국이라 파업과 약물 파동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겠지만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 화려한 선수들의 플레이와 기록이 약물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이미지가 심어지면 관중 수를 집계할 의욕을 상실할 정도로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약물은 마리화나·코카인 등 마약류와 스테로이드로 불리는 근육강화제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마약류는 범죄이고 근육강화제는 그저 운동을 잘하려는 뜻에서 한 짓이라 대강 넘어가도 되는 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반대다.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부르짖은 데 대해 찬성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마약은 질병이다. 근육강화제는 순전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선택으로 복용된다. 범죄다. 인기를 먹고사는 분야 가운데 프로야구는 마약류에 관한 한 범죄란 인식이 확고했고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였다. 하지만 근육강화제는 운동보조 약품으로 알고 복용한 사람도 있을 정도로 범죄로 여겨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운동 선수는 0.1초의 기록을 단축시켜 주거나, 타율 1푼을 올려 준다는 보장만 있다면 목숨 1년과 바꾸자는 유혹에 버티기 쉽지 않은 경쟁사회에 산다. 이런 선수들에게 근육강화제는 엄청난 유혹이다. 근육강화제를 금지하는 첫째 이유는 인기 하락이 아니다. 먼저 정신적·육체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염려가 너무 커서 선수를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국내에도 도핑테스트가 실시된다. 유능한 선수를 잃는 것은 구단에도 손해다. 굳이 빨리 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한·미·일 모두 리그 당국이 서두르고 선수협회가 몸을 사렸다. 선수라는 이유로 일반인보다 사생활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주장의 골자였지만 약물은 사생활이 아니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해외 입양 스토리 다룬 ‘마이 파더’에서 연기 변신 다니엘 헤니

    해외 입양 스토리 다룬 ‘마이 파더’에서 연기 변신 다니엘 헤니

    “디피컬트(어려웠다.)” 다니엘 헤니는 수십 번도 더 넘게 같은 말을 뱉었다. 스스로 원했건 아니건 완벽한 매력남의 이미지만을 소비해온 헤니는 ‘마이 파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는 다섯 살 때 해외로 입양된 뒤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온 제임스 파커를 연기했다. 배역은 딱 맞는 옷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2년 만에 만난 아버지가 사형수라는 것을 알고 갈등하는 연기에서 그가 많이 깊어졌음을 느낀다. 표정은 더욱 섬세하고 풍부해 졌으며, 진심을 발산하는 눈빛은 보는 내내 감정선을 건드린다. “촬영할 때마다 대본을 보고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다가도 일단 카메라 앞에 서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도 모를 정도였죠.” 김영철, 김인권 등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한 건 “굉장한 축복”이었다.“경험은 가장 미천한데 배역이 커서 부담이 됐다.”는 그는 “매일 매일이 수업이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활동한 지 2년2개월. 첫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목을 받은 뒤 두 편의 영화에서 주역을 맡는 등 초고속 성장이다. 가만 있어도 ‘그림’이 되는 그의 외모가 분명 한몫했다. 그런 탓에 어쩌면 우리가 그를 많이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한계를 묻는” 질문을 자주 듣는데 그런 걸 마음에 품은 적이 없다. 지금껏 가진 재능을 표출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 파더’는 분명 그의 이력에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하다. 시사 이후 그의 연기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연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것은 분명 근사한 일이죠. 그러나 저에겐 칭찬보다 비판이 더 약이 됩니다.” 누구보다 자신이 혹독한 비평가라는 그는 스스로에게 무서워 출연작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심지어 ‘…김삼순’도 드라마가 끝난 뒤 혼자 맥주 마시며 봤다고 했다. 그는 알다시피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1100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동네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남다른 외모는 놀림감이 됐다.“아이들이 좀 잔인(mean)하잖아요.” 수도 없이 싸웠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학교에 불려 다녔다.“고등학교 때 변기에 처박혀 코뼈도 부러지고 손가락 열 개도 다 부러졌죠.”라며 열 손가락을 쫙 펴보인다. 이런 동질적인 경험이 자연스러운 몰입을 이끌지 않았을까. 그는 조심스럽다. 영어 대사가 더 많아서 연기가 나아졌다는 평을 듣는 것 아닐까. 우려 아닌 우려를 한다.‘…김삼순’ 때 의미도 모른 채 앵무새처럼 뱉었던 한국말 대사의 어색함을 기억한다. 기자가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고 했더니 웃으며 “절대 보지 마세요.”한다. 이미지에 흠이 간다며 한국말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는 여성팬들도 더러 있다. 친구들로부터 편하게 배우는 한국말 연기는 그에게 약간은 부담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아버지, 사랑합니다.” 면회실 유리창 너머 등 돌려 가는 아버지를 향해 울먹이며 내뱉는 어눌한 한국말은 가슴 밑바닥을 친다. 어제 오늘 내일 딱 3일치의 일만 생각하고, 노래방 가는 것과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들이길 좋아하는 그는 “보통사람”임을 거푸 강조한다.“이런 수트 차림도 사실 질색”이라며 눈을 찡긋했다. 친구 같은 매니저는 “정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친구”라며 거든다. 그를 한꺼풀 더 벗겨낼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질 수밖에.‘마이 파더’는 6일 개봉한다.15세 관람가.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열린세상] 공무원연금 개혁의 주요 과제/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열린세상] 공무원연금 개혁의 주요 과제/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이 확정되면서, 공무원연금 제도 개혁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증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제 개혁 필요성은 이미 작년부터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되어 제기되어 왔으며, 연초에 정부에서도 개혁안을 마련하여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더 내는 개혁’에서 ‘덜 받는 개혁’으로 수정되어 통과됨에 따라, 국민연금과 연계되어 운영되도록 설계된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그 내용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번에 이루어진 국민연금 개혁이 매우 복잡한 과정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힘들게 국회에서 통과된 것을 보면, 공무원 연금개혁의 길도 결코 순탄치 않은 항해가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시일을 끌면 끌수록 국민 부담이 증대되고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국민적인 합일점을 도출하여 개혁해 나가야 할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공무원연금은 외국의 경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의 하나로서 도입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연금을 퇴직 후 노후생활보장적 성격만이 아니라, 재직 중의 낮은 보수와 신분적 제약에 대한 공로보상적 성격, 재해보상적 성격, 퇴직금적 성격 및 기타 인사정책적인 요소 등을 포함한 종합적 복지 프로그램으로 활용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 발전에 따라서 공무원 근무여건도 점차 발전되어 왔다. 공무원 보수 수준과 민간 보수 수준과의 격차는 많이 줄어들고 있으며, 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이 허용되는 등 공무원과 민간과의 차별성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 최근에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공무원연금의 종합 복지프로그램적 성격을 분리하여, 필요한 것은 남기고 나머지는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공무원연금의 특수성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개혁을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공무원 보수가 대폭 인상되기 이전의 퇴직자와 보수인상이후의 퇴직자간 형평성 확보 방안, 개혁 후 예상되는 신규 공무원과 기존 공무원간의 연금 차별에 따른 위화감 해결방안, 성과급 비중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성과급의 연금반영 방법, 은퇴 후 삶의 질 보장을 위한 적절한 연금하한액과 상한액, 선진국에 비하여 매우 낮은 정부와 공무원의 부담률 상향 조정 방안, 그리고 연금재정적 요인에 따른 공무원 정년연장의 타당성 여부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대부분의 쟁점들이 국민과 공무원, 퇴직자와 현직자, 현직자와 신규자, 상위자와 하위자 등 각 집단간의 이해관계로 얽혀 있으며, 서로가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다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따라서 정부당국만이 아니라, 언론과 시민단체 및 공무원노동조합, 학계 전문가 등 관계자들이 합심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여러 선진국에서 연금제도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고, 연금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국가적으로 이익이며 그만큼 재정손실을 줄일 수 있다. 지금이 다음세대에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한 선배 세대가 아닌 자랑스러운 조상이 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용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 후보 8명 너나없이 孫 공격

    27일 오후 열린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예비경선 후보간 첫 정책토론회는 일부 주자들이 토론회 당일 불참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불협화음 속에서 열렸다. 이해찬·한명숙·신기남 후보 등 친노 주자 3명은 이날 오전 회동을 갖고 일부 후보들의 선거인단 부정 접수 의혹을 제기, 토론회 불참 등 파행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동안 선거인단에 대해 함께 문제 제기를 했던 유시민 후보가 국회에서 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동안 회동을 가져 유 후보를 배제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9명 후보 모두 제 시간에 토론회장에 도착, 토론회에 참여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민주신당의 첫 정책토론회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지만 한나라당의 경우와 달리 후보들 지지자간 장외 응원이나 신경전은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토론회였던 만큼 네티즌들의 ‘댓글 응원’이 이를 대신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생중계 게시판에는 2시간30분간 6000여건의 댓글이 달렸다. 각 후보 지지자들은 해당 후보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고 비방 댓글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각 후보가 서로 자신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대항마임을 강조한 가운데 범여권 지지율 1위인 손학규 후보는 예상대로 다른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에 손 후보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특정 후보가 손 후보를 공격할 때면 나머지 후보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습도 포착됐다. 토론 중 가장 ‘열’을 낸 건 천정배 후보였다. 토론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겉옷을 벗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는 등 작심한 모습을 보였다. 목이 타는지 토론 내내 물을 들이켜기도 했다. 천 후보는 특히 손 후보를 겨냥,“같이 토론하는 것 자체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는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김두관 후보는 좌중을 웃기는 감초 역할을 했다. 유 후보의 ‘멧돼지’‘배스’ 공약을 언급하며 해군과 해병대를 투입한 ‘깔따구’ 소탕을 제안했다. 후보가 많아 토론을 나눠서 진행하다 보니 나머지 후보들은 지루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상호토론의 경우 특정 후보에 질문이 집중돼 김두관·신기남·추미애 후보 등이 소외되기도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박찬구 기자의 정국 View] 범여권의 ‘동상이몽’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최근 범여권의 대선 행보를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내놓은 우려 섞인 관전평이라고 한다. 후보보다는 구도와 정책 중심의 대선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일찌감치 이번 대선의 지향점이 ‘후보보다는 정당, 정당보다는 정체성’에 맞춰져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정체성도 상실하고 민심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의 현주소에 노 대통령이 착잡함을 느꼈을 법하다. 대의(大義)도 잃고, 대세(大勢)도 놓친다면 대선은 물론 대선 이후를 도모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이명박 후보와 ‘잔펀치’로 싸우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면서 “정책 정당의 구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구도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전장(戰場)의 분위기는 다르다. 옛 열린우리당 당직자 110여명은 세력간 지분 조정의 틈바구니에서 민주신당에 몸을 담지 못하고 하루 아침에 ‘정치 미아(迷兒)’신세로 전락했다. 열린우리당의 가치와 신념을 지켜 왔다고 자부하는 한 고위 당직자는 “갈길은 먼데 갑갑하다.”면서 “민주신당이나 청와대나 모두 야당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다.”고 토로했다.민주신당은 정파간·주자간 권력 다툼과 세력확장에만 매몰돼 있고, 청와대는 시급하지도 않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등으로 대선 지형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푸념을 덧붙였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민주신당 대선 후보들은 다음달 3∼5일 컷오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내공을 쏟아내고 있다. 친노(親盧)후보의 단일화, 민주개혁세력의 적자(嫡子)논쟁, 주자별 당내 경선 경험과 조직력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범여권의 분열로 지난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보다 흥행성과 시너지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텃밭’인 영남에서 이긴 후보가 이례적으로 경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의 사례가 민주신당에서 재연될지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정치컨설팅업체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민주신당에서도 광주에서 이긴 후보가 결과적으로 패배할 수 있다는 가설을 상정해 볼 수 있다.”면서 “한나라당에 이어 민주신당에서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정당사상 의미 있는 변화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이후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려는 노 대통령과 과거의 판을 복구하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이몽과 대립 관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등을 언급하며 열린우리당 전 지도부를 질책한 것은 ‘대선 본선에 내가 원하는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당내 경선 후보들에게 하나의 기준표를 제시하고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전 대통령의 직설법에 노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주변 참모들 사이에서는 시간적·지형적 여유가 없는 현실에서 또다른 분화와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만이 감지된다. 대선 전후의 지분 확장을 꾀하는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신경전이 범여권 경선 과정에서 숨가쁜 절정에 이르는 형국이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의 향배가 결정할 것이다.ckpark@seoul.co.kr
  •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초반 朴 우세… 서울표서 희색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초반 朴 우세… 서울표서 희색

    후보들은 결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결정 작업은 마지막까지 혼선에 혼선을 거듭했다. 개표 과정 내내 투표율과 승패를 놓고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소문이 퍼졌고, 결과가 알려진 뒤 대의원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일 잠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는 대의원과 당원 1만 500여명이 입장했다. 개표는 오후 1시30분부터, 대의원 입장과 행사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됐지만 오전부터 행사장 근처는 미리 도착한 당원들로 북적였다. 개표 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카펠라 공연과 경선 과정 파노라마 영상물 상영이 이어졌지만, 대의원의 눈은 행사장 1층에 놓인 투표함으로만 향했다. ●유리한 정보 전파하며 승리 기원 전국 16개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올라온 286개의 투표함을 둘러막은 철망 안으로는 출입이 금지됐지만, 캠프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모인 주변으로는 승패를 가늠하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서울 개표가 끝났는데, 박근혜가 이겼다.”라는 소문이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이명박이 조금 졌지만, 이명박에게 몰표가 나오는 지역만 남아 있다.”는 말이 곧 쏟아졌다. 이명박 후보측과 박근혜 후보측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채택해 전파하며 승리를 기원했다. 지지자들의 ‘세싸움’은 여전했다. 이 후보가 장내에 입장하면서 일부 지지자들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행사장에 들어서자, 박 후보측이 항의하며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자개표는 빠르게 진행됐다. 초반 박 후보 지지세가 강한 대구·경북 지역이 집중적으로 개표되며 박 후보측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서울 표가 개표되면서 이 후보측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는 전언은 오후 3시쯤 나왔다. 이 후보측은 환호하면서도 “현장 투표에서 830여표 지고, 여론조사에서 2500여표 앞서서 이긴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박 후보측은 일제히 고개를 떨궜고, 일부는 행사장을 빠져나가 마음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결과 발표 뒤에도 대의원들 몸싸움 이 후보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뜨거웠던 경선전을 마무리짓기 위해 한나라당은 ‘화합의 토크 한마당’ 행사를 마련했다. 송지헌 아나운서가 진행한 행사에서 후보들은 경선 과정에서 인상적인 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다. 서로를 위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이 후보는 “네 후보가 때론 격렬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원칙을 지켜 가면서 끝까지 잘 선전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많은 우여곡절과 고난을 겪은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받들기 위해 이번 경선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원희룡 후보는 “기분 같아서는 경선을 한달쯤 더했으면 좋겠지만, 본선 준비를 위해 마감해야 한다니 아쉽다.”면서 “도와준 많은 분들께 빚을 졌으니, 평생 힘을 다해 당의 승리를 위해 애쓰겠다.”며 웃었다. 홍준표 후보는 “경선 과정 내내 제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면서 “경선 뒤 한마음으로 단합해 정권쟁취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경선 과정에서 기억에 남은 사건으로 이 후보는 “대구 재래시장에서 손을 붙잡고 ‘경제를 살려 달라.’며 울던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많은 분들이 지지선언을 해주셨는데, 서울 지역 노점상과 자영업자 2800여명께서 해주신 지지선언문이 지금도 맴돈다.”고 회상했다. ●‘여론조사 무효´ 현수막 들고 항의 무대 바깥에서 화합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박 후보 지지자들은 “경선무효”를 외쳤다.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이 득표수를 발표할 때에도 소란은 계속됐다. 이 후보로 후보자가 확정되자 박 후보 지지자들은 자리를 떴다. 행사가 끝난 뒤 박 후보 지지자 100여명은 ‘투표는 승리, 여론조사는 원천무효’라고 손으로 거칠게 쓴 현수막을 들고와 30여분 동안 거칠게 항의했다. 한편 박 위원장이 투표 현황을 발표하기에 앞서 박 후보측 유정복 의원이 박 후보에게 쪽지를 건넸다. 뒤이어 김무성 의원도 박 후보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박 후보는 쪽지를 유심히 보다가 호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그는 경선에 승복하고,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인사말을 할 때 그 쪽지를 다시 꺼내들고 읽어 내려갔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saloo@seoul.co.kr
  • [지방시대]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가?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뒤풀이 모임을 가졌다. 늦게 끝나 전주행 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지만 나의 장래가 걸린 문제를 상담하다 보니 고속버스 막차를 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걱정이 되어 여러 곳에 차편을 알아보게 되었다.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철도 회원권을 가지고 있어 전화를 넣었다. 기계음이었지만 친절한 여성의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철도고객센터입니다.”하더니, 이어 “지금은 모든 상담 전화가 통화 중이어서 연결해드릴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라며,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경우 통화 요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밤 11시40분을 넘어선지라 다른 교통편은 없을 것이고, 상담 전화가 많다는 것은 기차편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하였다. 세 번 정도 위의 상황이 계속되니 친절한 안내고 뭐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전화를 하자,“상담원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음과 함께 경쾌한 음악이 전달되었다. 슬슬 올라오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편이 있을까 하고 묻기 위해 목청까지 가다듬으며 귀를 수화기에 바짝 대고 있는데,“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며 기대를 저버렸다. 다시 통화 단추를 눌렀다. 이번에는 제법 비장한 어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KTX와 함께하는 철도고객센터입니다. 상담원 상담 시간은 매일 오전 06시부터 밤 12시까지입니다. 자동응답 ARS를 원하시면 *표를 눌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였다.20여분을 통화 중이더니 밤 12시가 넘자 상담원 상담시간이 끝나버린 것이다. 오기도 생기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통화 단추를 누르고 시키는 대로 계속 눌러 보았다. 예약은 몇 번으로 해라, 출발역을 가·나·다 순으로 눌러라, 도착역을 가·나·다 순으로 눌러라, 차표 시간은 언제 필요하냐. 기계음의 요구대로 하다가 틀려서 다시 시작하고, 못 들어서 다시 시작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들려온 최종 목소리는 전주까지 가는 기차는 오전 7시까지 없다는 대답이었다. 한 시간의 씨름 끝에 나온 대답치고는 너무 간단명료했다. 죄없는 전화기만 던져졌다. 아침 7시 조찬 모임에 맞추기 위해 술 한 잔을 더하다가 새벽 3시쯤 내 생애 가장 비싼 택시요금 15만원을 내고 전주에 돌아왔다. 철도역에 가보면 표파는 곳이 표사는 곳으로, 표받는 곳이 표내는 곳으로 바뀌어 있다.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즉 소비자를 중심으로 안내판이 바뀌었다는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자동응답 안내로 인해 불편을 느끼고 난 뒤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 것은 허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안내는 철도공사뿐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관이 그렇게 하고 있다. 따라서 철도고객센터를 예로 든 것뿐이지 철도공사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인력을 줄여 예산을 절감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불편해도 이용할 사람은 이용할 것이라는 배짱도 있을 것이다. 조금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책 결정권자는 차표를 구입하거나 이용할 때 이런 불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보자. 기계음에서 사람으로 바꾸어 안내하면 고용 창출에 기여할 것이고 소비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 측면에서도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지 공론화해 보자.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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