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우여곡절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강혜경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군사령부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중국인들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고성 산불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51
  • [일요영화]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KBS 1TV 오후 11시50분) 1960년대를 풍미했던 서부활극 영화의 걸작으로,‘폼생폼사’ 주인공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기에 가까운 총 솜씨가 트레이드 마크인 영화다. 원제는 ‘The good,the bad,and the ugly´. 허리춤엔 총자루를 차고, 먼지가 뒤덮인 망토를 두르고, 늘 시가를 입에 문 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서부를 가르는 신비의 남자 블론디.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때, 블론디는 멕시칸 총잡이 투코(알도 지우프리)와 함께 동업 중이다. 블론디는 현상범인 투코를 신고해 엄청난 현상금을 타내고, 투코가 교수형을 당하는 순간 어디에서인가 총성이 울린다. 하지만 영화 제목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선한 자(The Good)’라기보다 교묘히 법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영악한 인간유형에 더 가깝다. 그는 ‘추한 자(The Ugly)’투코를 잡아 현상금을 타낸 다음 처형을 당하려는 순간에 살려내고, 다시 다른 마을 보안관한테 넘긴다. 한편 ‘악한 자(The Bad)’로 분류되는 청부업자 센텐자(리 반 클리프) 역시 우연히 20만 달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블론디와 투코를 만나게 된다. 이들 셋은 우여곡절 끝에 모두 돈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에서 다시 만나고, 전형적인 서부영화 스타일의 1대1 결투가 아닌 1대1대1의 삼각결투를 벌이게 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제가는 영화를 안 본 사람도 다 알 만하다. 국내에선 김지운 감독이 제작비 110억원을 들여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등을 내세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리메이크해 2008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140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Let’s Go] 해맞이 명소 ‘간절곶’

    [Let’s Go] 해맞이 명소 ‘간절곶’

    매일같이 뜨고 지는 태양이지만 1월1일에 뜨는 해는 특별하다. 단순한 또 하루의 시작이 아닌, 새해에 거는 기대와 희망을 듬뿍 안고 새벽을 열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7번 국도와 31번 국도 변에는 일출명소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울산의 간절곶은 의미가 조금 더 남다른 곳. 일부 도서지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여느 여행과 달리 해맞이 여행은 희망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수평선을 희롱하며 솟는 해오름의 장관을 지켜보며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해 보자. #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간절곶 간절욱조조반도(艮絶旭肇早半島). 울산 지역 읍지(邑誌)에 실려 전해오는 문장이다. 울산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의 새벽이 열린다는 뜻. 간절곶은 동해의 맨 아랫자락, 남해와 만나는 귀퉁이다. 부산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다 울산 조금 못 미쳐 서생면 해안에 불룩 솟아 있다. 바다에서 보면 ‘긴 간짓대(막대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간절곶(艮絶串)이라 이름 지어졌다. 간절곶은 몇 년 전만 해도 언덕 위에 등대 하나 서 있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새 천년이 시작된 지난 2000년 겨울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이제 매년 1월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해맞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일출 명소가 됐다. 울산기상대가 전망하는 2008년 1월1일 일출시간은 오전 7시31분 26초. # 겨울 아침의 출발점 간절곶은 자그마한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거센 파도가 쉴 새 없이 부딪치는 바다 끝자락 해안엔 운치 있는 벤치를 마련해 두었다. 언덕 위에는 간절곶 등대가 서 있고, 아래로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신라충신 박제상 부인 석상이 세워져 있다. 관광객들이 소망을 담아 쌓아올린 돌무더기 뒤로는 소망우체통이 우뚝 서 있다. 오전 7시쯤 막 밝아지기 시작한 바다 위로 붉은 기운이 더해 갔다. 해오름이 시작되기 40분 전부터 수평선에 붉은 띠가 깔리더니 1분이 멀다 하고 하늘과 바다 빛이 색깔을 달리했다. 서서히 해가 오르면서 바다 또한 붉게 달아올랐다. 가슴 벅찬 광경. 오메가(Ω) 모양의 태양은 아니었지만, 감동은 그에 못지않다. # 해맞이 행사도 마련 곶이란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간절곶은 예전부터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는 중요한 뱃길이었다. 지금도 원유를 실은 유조선,LPG 수송선, 자동차를 싣고 가는 컨테이선 등 많은 화물선과 어선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주요한 항로였던 까닭에 등대도 일찌감치 들어섰다.1920년 3월 임무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87년째다. 울산 앞바다에 서 있는 등대는 모두 3개.1905년 세워진 울기등대는 북동쪽 항로,1983년 세워진 화암추등대는 울산항 앞바다 그리고 간절곶 등대는 남동쪽을 비춘다. 울산시는 간절곶 해맞이 공원에 쥐띠 해를 형상화한 작품과 지구본 형태의 희망의 빛 등 다양한 상징 조형물을 설치할 예정이다.31일 오후 3시∼새해 1월1일 오전 11시에는 해맞이 축제도 연다.31일 제야 행사에는 비보이팀 댄스배틀, 세계 코믹 서커스 등이, 다음날 해맞이 행사는 소망지 걸기, 상징 조형물 제막식, 가수 공연 등이 펼쳐진다. 간절곶항로표지관리소 052)239-6313). # 우체통에 소망 실어 보내고 지난해 12월 간절곶 등대 아래 세워진 ‘소망우체통’은 관광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전국적인 명물이 됐다. 높이 5m, 폭 2.4m로 국내에서 가장 큰 우체통. 선거법 위반 시비로 진통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남울산우체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우체국 관계자에 따르면 새해 일출을 보러온 시민과 전국의 관광객들이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에게 아름다운 사연을 적어 보낼 수 있도록 무료 관제엽서 1만 500장을 늦어도 19일 이전에 비치한다는 계획이다. 또 시정에 대한 건의 등 민원사항과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수취인 지정엽서 1만 2000장도 함께 비치할 계획이다. 보낸 엽서는 하루 한 번 수거된다. # 경포대, 정동진:강릉 경포대에서는 31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해맞이 행사가 1일까지 이어진다. 정동진에서는 31일 오후 11시45분부터 회전시계 회전식이 열린다.1일엔 해돋이 모닝콘서트가 뒤를 잇는다. 강릉시 관광개발과.033)640-5127∼8. # 동해시 추암:동해시는 촛대바위로 유명한 추암해수욕장과 두타산, 묵호일출공원 등에서 다양한 행사를 연다. 동해시 문화관광과 530-2472. # 영덕:경북 영덕 삼사해상공원에서는 31일 달집태우기 등 전야제 행사가 열린다. 새해 1월1일에는 2008개의 헬륨 풍선을 하늘로 띄워 보내고, 떡국과 과메기 등의 시식행사도 연다.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396. # 전남 해남:땅끝마을 갈두산은 해넘이와 해맞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예년처럼 해남군고공연 등 해넘이제와 띠뱃놀이 등 해맞이제가 갈두항 등에서 열린다. 땅끝관광지 관리사무소 061)533-9324. 글 사진 울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주변 관광명소 경주의 대왕암이 문무대왕이 누운 곳이라면 울산의 ‘대왕암’은 문무대왕 비가 누운 곳. 대왕암 공원에는 100년 가까이 되는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사이사이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울기등대와 고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생포 고래박물관 등도 둘러볼 만하다. 박물관 건너편에는 대대로 고래 고기를 취급해온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울산시청 052)229-3854. #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언양분기점→언양·울산고속도로→14번국도→진하해수욕장→간절곶, 또는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언양분기점. # 숙소 간절곶 주변에는 숙박할 곳이 없다. 간절곶에서 4㎞정도 떨어진 진하해수욕장 주변에 모텔들이 몰려 있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9)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병자호란 다시 읽기] (49)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정묘호란 직후 조선은 후금에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모문룡을 비롯한 한인(漢人)들의 비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후금 사자에 대한 접대나 그들과의 무역에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후금과의 우호 관계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조선이 후금을 ‘오랑캐’로 인식하고 있는 한 ‘내키지 않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파열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후금, 병력 철수하고 조선과 사신교환 정묘호란이 끝난 뒤에도 의주 등지에 병력을 주둔시켰던 후금은 1627년 9월경부터 병력을 철수시켰다. 두 나라의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당시 조선과 후금은 정기적으로 사신을 교환했다. 인조는 신료들에게 호차(胡差·후금 사신에 대한 멸칭)들을 우대하여 환심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후금 또한 호란 직후에는 조선에 매우 우호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 때문에 심양을 왕래하는 조선 사신들의 후금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었다.1627년 5월 심양에서 돌아온 원창군(原昌君) 일행은 인조를 만난 자리에서 ‘후금 사람들이 매우 친절했다.’고 보고했다. 인조가 홍타이지와 후금 신료들의 인물됨을 묻자, 호행관(護行官) 이홍망(李弘望) 등은 모두 뛰어난 인물들이라고 칭찬했다. 인조의 우호적인 태도는 후금 사신들을 접견할 때 잘 나타났다.1627년 5월 서울에 왔던 후금 사신 용골대는 인조를 만났을 때 ‘전하께서는 극진하게 대우하시는데 관리들이 삼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조선 관리들이 그를 인조에게 인도하면서, 대궐 문 앞에서 말에서 내리게 하고 인도자도 없이 한참 걷도록 만든 것이 불만이었다. 인조는 즉각 사과하고 용골대 등이 나갈 때 어로(御路)에서 말을 타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 봉산(鳳山)에 살던 백성 박응립(朴應立)과 황하수(黃河水)가 서울로 올라가던 용골대 일행을 가리키며 ‘죽여야 한다.’고 소리친 사건이 있었다. 용골대 일행이 불만을 터뜨리자 조정은 봉산에 이문(移文)하여 곧바로 그들을 붙잡아 하옥시키고 후금 사신 일행의 경호를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비변사 신료들은 ‘호인들과 기미(羈)하기로 작정한 이상 원하는 물품을 많이 주어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조와 신료들을 막론하고 정묘호란 직후 후금을 대하는 조선의 자세는 유연했다. 그런데 병자호란 무렵이 되면 이 같은 유연함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開市에 대한 후금의 열망 정묘호란 직후 후금이 조선에 가장 강하게 바라던 것은 무역이었다. 그들은 시장을 열어 쌀을 공급해 달라고 간청했다. 쌀뿐만이 아니었다. 생필품과 사치품을 막론하고 후금이 요구하는 물품은 참으로 다양했다.1628년 1월 서울에 왔던 후금 사신들은 홍시와 대추, 알밤 등 과일과 약재 등을 요구했다. 중국산 비단과 청포(靑布), 일본에서 들여오는 후추를 비롯하여 단목(丹木), 칼과 창 등도 그들의 관심 품목이었다. 명과 적대 관계가 지속되면서 과거와 달리 만주 지역으로 몰려오던 중국 상인들이 끊겨 버린 상황에서 후금이 원하는 물품을 공급해 줄 나라는 조선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선은 후금과의 교역에 소극적이었다. 일단 교역의 문을 열어줄 경우, 후금 측의 요구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김상헌을 비롯한 일부 신료들은 특히 중국산 물화를 후금 상인들에게 파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하찮은 오랑캐에게 천조(天朝)의 물품을 넘겨주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1627년 12월 심양에 갔던 회답사(回答使) 박난영(朴蘭英) 일행은, 중강(中江)에서 속히 시장을 열어 교역하자는 후금 측의 재촉에 시달려야 했다. 박난영은 ‘전쟁 때문에 평안도와 황해도가 극히 피폐해졌다.’는 것,‘명나라 산 물자는 조선이 구하기 어렵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지만 후금 측은 집요했다. 후금 측은 ‘조선과 후금이 이미 한집안이 되었으니 어려움을 서로 구제해야 한다.’며 ‘모문룡은 값도 치르지 않고 조선으로부터 쌀을 공짜로 빼앗았지만 우리들은 정당하게 값을 치르고 사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며 회답사 일행을 압박했다. 조선 측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이후 쌀과 과일, 약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산 물품 등도 후금 측에 공급했다. 중국산 물품은 가도를 통해, 일본산 물품은 왜관을 통해 입수되었다. 당시 가도에는 명의 강남 등지로부터 수많은 상선들이 모여들었다. 조선 상인들은 은이나 인삼을 갖고 가도로 가서 비단과 청포 등을 구입하여 그것을 다시 후금 상인들에게 판매했다. 사실상 후금에 중국과 일본산 물자를 공급하는 중개자 역할을 했던 셈이다. 조선은 또한 후금과의 개시를 통해 피로인(被擄人)들을 속환(贖還)하려고 시도했다. 피로인이란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에 사로잡혀 끌려갔던 포로들을 말한다. 호란 당시 무방비 상태였던 서북 지방에서는 엄청난 수의 포로가 생겨났다.1627년 5월 평안도 평양, 강동(江東), 삼등(三登), 순안(順安), 숙천(肅川), 함종(咸從) 등 여섯 고을에서 파악된 포로 숫자만 4986명이었다. 같은 해 6월의 기록에 따르면 심양에서 도망쳐 오는 포로의 숫자가 매일 40명에서 50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였다. 이것을 토대로 계산하면 당시 후금군에 끌려간 피로인의 수는 최소 수만 명을 넘는 수준이었다. 조선은 개시에서 후금 측에 쌀을 공급하는 대가로 피로인들을 넘겨받고자 했던 것이다. ●피로인 송환 등 둘러싸고 분열양상 1628년 2월 후금 측은 개시가 열린 중강에 200여명의 피로인을 데리고 왔다. 그들 가운데 조선에서 우선적으로 속환하려 했던 사람들은 귀의할 수 있는 부모나 형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포로들의 몸값을 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개시 장소에 왔던 200여명 가운데 70명 정도만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행운을 얻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후금 상인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데려온 피로인들을 모두 구입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고국 귀환을 애타게 고대하고 왔다가 후금 병사들에게 이끌려 도로 심양으로 돌아가는 피로인들은 조선 국경 쪽을 쳐다보며 통곡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후금과의 개시는 유지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파열음을 냈다. 우선 개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사뭇 달랐다. 조선은 봄가을 두 차례 개시할 것을 원했다. 후금 측은 봄, 여름, 가을 세 번을 정기적으로 하되 필요하면 제한을 두지 말자고 맞섰다. 그들은 중강 이외에 함경도의 회령에서도 개시하자고 요구했다. 개시할 때 후금 측이 데리고 오는 인원의 숫자도 문제였다. 1628년 2월 중강에서 개시할 때 용골대 일행은 자그마치 1300명의 인원을 데리고 왔다.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과 마초는 전부 조선 측의 몫이었다. 조선은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후금 측은 조선과 명의 전례를 들고 나왔다.‘과거 조선이 명과 개시할 때는 소와 돼지까지 증여했는데 우리에게는 식량과 마초만 주는데 무엇이 부담스러우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선이 계속 식량 공급을 거부하면 서울로 올라가서 소 몇 백 마리와 군사들이 한 달 먹을 식량을 얻어 내고야 말겠다고 협박했다. 조선은 결국 용골대 일행에게 쌀 2000섬을 그냥 주기로 약속했다. 후금에서 도망쳐 온 피로인들을 송환하는 문제도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후금은 수시로 조선에 국서를 보내 조선이 고의로 피로인들을 숨겨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피로인들을 ‘피 흘려 얻은 대가’로 여겨 송환을 요구하는 후금과 ‘살겠다고 도망 온 혈육’을 송환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조선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양국 관계는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權·李·文 본격 표몰이

    대선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7일 군소 후보들도 표몰이에 나섰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북유럽 3개국의 주한 대사들과 간담회를 통해 정책 정당의 이미지를 다졌고, 최근 범여권 단일화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민주당 이인제·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도 ‘마이 웨이’를 지속했다. 권영길 후보는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3개국의 주한 대사들과 정책선거의 필요성에 대한 교감을 나눴다. 권 후보는 “11명의 대선후보 중 제가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서 정책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사회보장제도를 이야기하면 다른 정당들은 구시대적인 복지체제를 사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공격하지만 우리는 정책 정당으로의 면모를 보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이인제 후보는 이날 제주 유세를 강행했다. 이 후보는 다음주 초 발표되는 TV토론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향후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제주도 의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주가 진정한 특별자치도이자 국제적 자유무역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며 국제자유도시 성장 지원, 제주대학 내 영어마을 설치, 제주도민 총생산 20조원 시대 개막 등의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의 단일화 논의를 사실상 접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대전과 청주, 수원을 돌며 충청권 및 수도권 유세에 진력했다. 후보 단일화 문제 때문에 유세 일정을 중단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심기일전해 나서는 지역 유세다. 문 후보는 이날 대전 으능정이 거리와 청주 육거리 시장을 돌며 ‘믿을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적극 홍보하면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정부에 중소기업부를 만들어 대기업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출 고속도로를 뚫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2배로 높이고 5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향수병’ 이천수 국내서 휴가

    네덜란드 프로축구 리그 에레디비지에서 뛰고 있는 이천수(26·페예노르트)가 향수병 치유차 일시 귀국,2주간 휴식을 취한다. 에이전트인 IFA의 김민재 대표는 27일 “이천수가 최근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 있다. 구단에 쉬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해 2주의 휴가를 허락받았다.”고 말했다. 컨디션 난조로 지난 25일 FC그로닝겐전 출전 명단에서 빠졌던 이천수는 이르면 28일 돌아온다. 김 대표는 “구단에서도 외국 선수들이 현지 적응하는 과정에서 흔히 겪는 일이라고 보고 배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여름 우여곡절 끝에 유럽 재진출에 성공한 그는 비자 문제로 네덜란드 입성이 지연된 데다 지난달 21일 엑셀시오르전에서 데뷔전을 치를 정도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데뷔전 사흘 뒤 2군 경기를 거쳐 11일 맞수 아약스전에 네덜란드 진출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다. 출전 기회가 드문드문 이어지면서 향수병을 얻은 것으로 현지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가뜩이나 치열한 주전경쟁의 와중에 2주의 공백은 이천수에게 악재임이 분명하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최태환칼럼] 창(昌)의 반격

    [최태환칼럼] 창(昌)의 반격

    대선 격랑이 매섭다.‘창(이회창)’의 반격이 처연하다. 고군분투다. 그는 스스로 죄인이라 불렀다. 집중포화를 받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대업 망령을 떨쳐냈다. 거칠 것이 없다는 태도다. 검푸른 파도를 뚫는 노장의 표정이 오히려 편안하다. 마지막 희망을 찾고 싶었던 걸까. 덧칠된 세상의 손가락질을 떨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했던 걸까. 그는 절해고도의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빠삐용을 떠올린다. 영화 주제가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가 귓전을 맴돈다. 출전 3번째의 그다. 이제야 바람과 같은 자유를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창의 돌출’은 그럼에도 재앙이다. 여야 주자들은 과거로의 회귀라며 무차별 공격했다. 언론도 가세했다. 정당정치, 민주정치의 후퇴라고 공박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창을 불러냈나?기성 정치권이 공범이다. 기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반감, 불안감이 그를 불렀다. 자업자득이다. 집중포화후에도 그의 지지율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나아가 부동층은 더욱 늘고 있다. 창의 공간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앞선 후보들은 부끄러운 빛이 없다. 한나라당이 그의 결행을 유도했다. 이명박 후보의 정치력 부재, 뺄셈정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후보의 오만의 귀결이다. 그럼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창의 반란’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는 우여곡절끝에 후보 자리에 올랐다. 범여권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지지율이 아니었다. 반등을 예상했지만 제자리였다. 이회창씨가 출마를 선언하자 곧바로 지지율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아직도 1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가 20%를 넘는 지지율을 보였어도 창이 나설 수 있었을까. 정동영 후보나 범여권은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이회창 비난에 앞서 자성하고 부끄러워 해야 할 대목이다. 창은 이번 전투의 승패를 초월했는지 모른다.20%에 가까운 지지만으로도 자유를 다시 찾았다. 방황하던 20%에게 꿈을 준 것만으로도 승자가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 모처럼만에 포만감을 맛보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의 세력화는 그 다음 문제다. 통합에 목을 매고 있는 범여권이 안쓰럽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통합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 원칙, 명분을 벗어던진 지 오래다. 지분 다툼의 악취가 진동한다. 정동영 후보는 또다시 리더십 시험에 들었다. 그는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강아지 손이라도 빌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력을 소진한 것일까. 초라한 지지율이 안타까울 정도다. 이명박·박근혜 갈등의 파고를 넘긴 한나라당에는 BBK가 기다리고 있다. 김경준 수사만 지켜보는 신세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도덕성에 심각한 회의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일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혹 부풀리기, 네거티브 전략, 정책실종의 선거운동은 여전하다. 어지럽다. 정당의 정체성 상실, 후보들의 난투극이 정당정치, 책임정치 실종을 불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의 말을 뱉지 않는다.‘불안한 후보’,‘검증 안된 후보’의 심리가 이회창을 다시 불러냈다. 정치권의 창을 향한 손가락질은 자신에 대한 손가락질이나 다름없다. 정글의 대선판이다. 대선 이후가 더 걱정이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지역 숙원사업 가속도 붙는다

    지역 숙원사업 가속도 붙는다

    지역 발전을 촉진할 각종 사업 관련 특별법이 대거 국회를 통과해 자치단체들의 숙원사업 추진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19일 새만금사업 추진을 위한 특별법안(새만금법안)과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태권도공원법안), 연안권 발전 특별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이들 법안은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21일 법사위 전체회의와 23일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만금법안과 태권도공원법안이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자 전북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지난 17년간 끌어왔던 새만금 내부개발사업과 무주태권도 공원 조성사업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법 제정 9부 능선 넘었다” 전북 축제분위기 전북도는 법사위 소위원회가 이날 난상토론 끝에 새만금법안과 태권도공원법안을 가결, 전체 회의에 회부하자 “전북도민의 열망인 새만금법의 연내 제정에 한 발 다가서게 됐다.”며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전북도애향운동본부와 전북도상공회의소협의회 등 도내 각계 단체도 “새만금법안과 태권도공원 법안의 소위원회 통과는 사실상 법 제정의 9부 능선을 넘어선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그간에 전 도민의 노력과 열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환영일색이다. 이번에 통과된 새만금법은 새만금 내부 개발을 위한 법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과감한 경제 특례를 통한 외자 유치 촉진을 골자로 하고 있다. 새만금 내부개발을 위해서는 30여 개의 인·허가 처리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특별법이 제정되면 이를 간소화할 수 있다. 부담금 감면, 보조금 교부 등 각종 경제 특례 등의 혜택을 받게 돼 국내외 자본 유치도 쉬워진다. 특히 최장 100년간 토지 임대를 허용할 수 있어 싼 토지 공급을 조건으로 외국 자본을 쉽게 유치할 수 있고 철도와 공항·항만 등 사회적 인프라 구축 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어 내부 개발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초에 새만금 내부 토지의 이용개발 구상안을 확정했는데 총 토지 2만 8300㏊ 가운데 71.6%(2만 250㏊)를 농지로, 나머지 토지는 산업과 관광·도시·에너지·환경 분야로 나눠 개발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북도는 사업 초기와는 달리 시대와 주변 환경이 많이 바뀐 만큼 전체 토지의 70%를 농지가 아닌 산업 및 관광용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국비 확보·민자 유치 수월해져 태권도공원 법안의 소위 통과로 전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가 될 무주 태권도공원 조성사업도 탄력을 받게 됐다. 이 법은 국·공유 재산의 사용과 기부금품 모집, 각종 인·허가의 조속한 처리절차 등을 담고 있어 국비 확보가 한층 쉬워지고 사업 추진도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또 태권도공원 조성을 법적으로 뒷받침해 안정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민자를 유치하는 데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주군은 “특별법 제정이 가시화됨에 따라 태권도 공원을 기반으로 태권도를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로 육성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며 크게 환영했다. 무주 태권도공원에는 2013년까지 사업비 7400억원을 투입,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240여만㎡에 태권도 명예의 전당, 종주국 도장, 종합수련원, 세계문화촌, 호텔, 전통 한방요양원 등이 들어선다. ●동·남·서해 연안도 개발 탄력 경북도 등 동·남·서해안 10개 광역자치단체가 공동 건의한 ‘연안권 발전특별법’도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해 지역 해안 개발 및 발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특히 연안권 발전특별법은 연안권 지역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지원과 환경규제 완화 등을 담고 있어 해안 SOC 확충을 앞당기고 투자촉진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 동해안 고속국도와 철도 및 동해안관광벨트사업, 대규모 관광개발과 산업단지 조성사업 등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특구 지정 등도 이 법을 통해 한층 쉬워질 전망이다. 이를 위해 경북도와 울산시, 강원도는 지난 12일 3개 시·도가 참여하는 ‘동해안발전포럼’을 창립, 환동해권시대의 동해안지역 발전전략을 구체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경북도 관계자는 “이 법안은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제4차 국토종합계획의 U자형 해양 경제축 개발 전략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21세기 해양의 시대에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경남도 역시 남해안시대 구현을 위해 전력 투구해온 ‘남해안권발전 특별법안’이 두 차례나 명칭을 바꿔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자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6) 自强論의 이상과 현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46) 自强論의 이상과 현실

    우여곡절 끝에 후금과 화친함으로써 정묘호란은 끝났다. 인조 정권은 어렵사리 종사(宗社)를 보전할 수 있었지만 남겨진 과제는 참으로 버거웠다. 먼저 후금군과 이렇다할 전투 한 번 변변히 치러보지 못하고 강화도로 피란했던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반성론이 제기되었다. 병력을 뽑아 조련시키고, 조총을 비롯한 무기를 확보하며, 군량을 마련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바야흐로 조정에서는 자강(自强)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높아가고 있었다. ●“후금에 복수” 군비 강화론 급부상 1627년 4월 1일,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 인조는 신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내가 좋아서 오랑캐와 화친했겠는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친한 것은 적의 기세를 늦춰 설욕하려는 것이니 그대들은 빨리 장수를 선발하여 병사들을 조련시켜라.” 화친한 것 때문에 척화파 신료들로부터 ‘항복한 임금’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던 인조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군대를 길러 적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실제 정묘호란 직후 인조는 과거와 달리 부쩍 상무(尙武)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조는 ‘우리 장사들이 갑옷 착용을 기피한다.’고 비판하고 갑주(甲胄)를 제대로 마련하라고 유시했는가 하면,1628년 10월에는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무사들을 시험하고 기예가 뛰어난 자들을 시상하기도 했다. 인조의 지시를 계기로 호란 직후부터 후금에 복수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적 방책들이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1627년 4월, 병조판서 이정구는 전국의 모든 주(州)·부(府)·군(郡)·현(縣)에 지휘관을 파견하여 정예롭고 건장한 장정들을 뽑으면 최소 5만∼6만의 병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지방의 병사(兵使)나 수령들에게 능력 있는 무신을 수시로 천거토록 하여 지휘관을 양성하고, 서울에 도체부군문(都體府軍門)을 설치하여 지휘관들을 집결시켰다가 유사시 지방으로 파견하여 현지의 병력을 지휘토록 하자는 방책을 제시했다. 부제학 정경세(鄭經世)를 비롯한 홍문관 관원들은 무기와 군량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그들은 기동력이 탁월한 후금군의 돌격을 막으려면 조총수(鳥銃手)의 확보가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지에서 1만의 장정을 뽑아 조총을 교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습이 끝난 뒤에는 사격 시험을 치러 3발을 쏘아 2발 이상을 명중시킨 자를 선발하자고 했다. 또 성능이 뛰어난 일본산 조총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왜관(倭館)이나 대마도로 보내 수입해 오자고 건의했다. 비변사 또한 각 도에 비축된 군기(軍器)들을 점검하여 병사들의 수와 일치하는지를 조사하고, 감사와 병사들을 채근하여 수시로 점검토록 하자고 강조했다. 정경세 등은 군량과 군수 확보를 위한 방책도 제시했다. 그는 먼저 군량 마련과 관련하여 인조와 비변사가 제시한 대책들을 비판했다. 그는, 몇몇 하급 관리와 서리의 숫자를 줄이고 왕실의 제수(祭需)와 어공(御供)을 감축하여 절약된 비용으로 군량에 보태자는 논의는 명분만 그럴 듯 할 뿐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일축했다. ●군포 징수등 근본 대책 싸고 논란 정경세는 반정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군관(軍官)들을 아예 혁파하고, 왕자나 공주 등 궁가(宮家)에서 독점하고 있는 토지와 어장(漁場), 염전(鹽田) 등의 면세 특권을 없애고, 인조의 사금고나 마찬가지인 내수사(內需司)를 없애라고 요구했다. 정경세 등은 더 나아가 군사 재정 확보를 위해 근본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양반들에게도 군포(軍布)를 거두자는 주장이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물론, 여염의 품관(品官)이나 사대부들에 이르기까지 직접 군역을 지지 않는 양반들에게서 포를 징수하면 1년에 수십만 필을 거둘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재정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법제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군사 재정이 어느 정도 확보될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실시하자고 촉구했다. 정경세 등은 그러면서 ‘전하께서 애절한 마음으로 솔선수범하려는 자세를 보이면 외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명령을 따르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 요구되는 주문이었다. 인조는 물론, 궁가들과 반정공신, 그리고 일반 양반들까지 지배층 전체가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가 있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개혁안이었다. 인조는 궁가의 특권을 폐지하고 내수사를 없애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신료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그가 내세운 명분은 ‘조종(祖宗)의 옛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정경세 등은 ‘군사와 군량이 없어 나라가 보존되지 못하면 궁가의 재산도 결국 적의 소유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인조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광해군 때 궁가들이 점유했다가 인조반정 이후 국가로 소유권을 넘긴 토지와 어장을 본래의 궁가들에게 반환하는 것을 묵인하기도 했다. 전쟁 때문에 빚어진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려면 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막상 무엇부터 손을 대고, 어떤 특권부터 혁파해야 할지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 정묘호란 이후 조선의 현실이었다. ●개혁 부진속 흔들리는 민심 1628년 8월, 광주(廣州)의 선비 이오(李晤)는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당시를 ‘기강이 무너지고 탐풍(貪風)이 치성하여 염치가 사라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역모가 빈발하고, 오랑캐의 공갈 속에 인심이 흉흉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는 호패법(號牌法) 폐지 이후 도망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장정들을 군적(軍籍)에 올리기 위해 친족과 이웃까지 닦달하면서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적이 물러간 지 1년이 지나자마자 비변사 신료들은 끽연과 우스갯소리나 일삼고, 지방의 지휘관들은 기생을 끼고 앉아 술타령을 벌이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상황이 정돈되지 않고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역모 사건이 빈발했다. 이인거(李仁居)가 일으키려 했던 반란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1628년 1월, 유효립(柳孝立) 등이 모반을 기도한 사건이 발각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제천에 유배되어 있던 북인 잔당 유효립 등은 “반정공신들이 포학하여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 있다.”는 등의 명분을 내걸고 거사를 도모했다. 그들은 광해군을 복위시켜 상왕(上王)으로 모시고 인성군(仁城君,宣祖 7子)을 추대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공초(供招) 과정에서는 ‘환관을 시켜 인조를 시해하려 했다.’는 진술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 50여 명이 자복(自服) 후에 처형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1628년 3월에는 유학(幼學) 임지후(任之後)의 고변(告變)이 이어졌다.“공신들을 모두 죽이고 광해군을 복위시킨 뒤 인성군에게 전위토록 한다.”는 내용으로 ‘유효립 사건’과 거의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다. 관련자 심길원(沈吉元)은 심지어 “반정 당시에도 200명으로 성공했는데 지금 무슨 어려움이 있을쏘냐?”고 진술하여 인조정권을 경악케 했다. 정묘호란 이후 인조정권은 분명 기로에 섰다. 전란으로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고 집권 이후 줄곧 내세웠던 명분을 실천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하지만 ‘군비를 강화하여 후금에 복수하자.’고 외치면서도 정작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근본 대책은 마련하기 어려웠다.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조가 내수사를 움켜쥐고 궁가들의 특권을 비호하는 한 양반들에게 군포를 거두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실제 양반들에게 군포를 거두자는 논의(戶布論)는 이후 200년이 훨씬 더 지난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가서야 실현된다. 정묘호란 이후, 자강의 방책을 둘러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이지운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가슴 설레는 무연고 조선족동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드디어 부자가 될 수 있는 열쇠를 받았습니다.” 40대 초반의 조선족 교포 전모씨. 최근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사증’ 발급 대상자로 선정된 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 가서 돈을 벌어올 때 그는 답답한 속만 삭여야 했다. 산업연수생의 문은 너무 좁았고, 친척도 없어 남들처럼 초청을 받지도 못하는 형편이 더욱 안타까웠다.그는 “헤이룽장(黑龍江)성 고향에서 ‘한국에 사는 친척’은 부(富)를 가르는 기준이었다.”고 말한다. 친척 초청으로 한국에 간 이웃들은 돈을 벌어오면서 점점 부자가 됐다.갈수록 그들과의 소득 격차가 커졌고, 아예 별도의 계층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사증은 전씨 같은 이들을 위해 탄생했다. 만 25세 이상 중국·구소련 동포에게 5년간 유효한 복수사증을 발급,1회 3년간 체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대상은 한국어 시험을 치른 뒤 전산추첨을 통해 선발된다. 이번에는 모두 2만 6000여명이 신청,2만 2863명이 선정됐다.재미·재일동포 등 선진국 동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중국 동포 등에게 기회를 넓혀주자는 취지도 있다. 제도 도입에 우여곡절도 많았다.우선 중국 정부는 아직도 이 제도가 마뜩지 않다.“왜 다같은 중국 공민인데 조선족만 우대하느냐. 한족을 포함한 모든 중국 소수민족에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 인사는 “심지어 일부 중국측 관계자들이 ‘한국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대해 분열·이간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과거 산업연수생 제도를 중국인에게도 확대하는 ‘고용허가제’가 양국간에 논의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어 시험 선발과정에서 학원 과열 등 부작용도 야기됐다. 하얼빈(哈爾濱)의 한 학원에서는 학비가 몇 개월치 월급 수준인 5000위안(약 60만원) 이상으로 치솟을 정도로 과열 양상을 빚기도 했다. 오는 12일부터 방문취업사증 신청이 시작된다. 지금 무연고 동포들의 마음은 설렌다.jj@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단장’의 야구 보고 싶다

    메이저리그를 볼 때 부러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번 월드시리즈가 보스턴의 우승으로 끝나면서 하나가 더 늘었다. 단장으로 번역되는 GM들의 활약과 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물론 보스턴의 단장 세오 엡스타인이다. 2003년 28세의 사상 최연소로 단장에 올랐을 때 많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주전 25명 가운데 22명이 그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언론이 ‘어린애’가 단장이 됐다고 보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에 대한 보스턴 팬이나 지역 언론의 태도는 모두 적대적이었다. 더구나 보스턴의 새 구단주가 다른 지역에서 실패한 인물들로 구성돼 팬들의 눈총은 따가웠다. 엡스타인 단장의 기용은 그가 펜웨이파크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라 명문 예일대를 나온 보스턴의 토박이라서 지역 여론을 달래려는 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 직전까지만 해도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풋내기 단장 엡스타인은 세이버메트릭스란 희한한 통계를 동원, 이해가 안 되는 트레이드를 해댔다. 보스턴 최고의 스타인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까지 트레이드시켰을 때 비난은 극에 달했다. 양키스에 3연패 뒤 4연승하는 우여곡절 끝에 86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다음, 여론은 어떻게 변했을까? 팬의 여론이야 당연히 천재 단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보수성이 강한 보스턴 언론들은 ‘어린애’는 그냥 심부름에 그쳤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래리 루치아노 사장의 공이 큰 것으로 돌렸다. 올해 또 우승한 후에는? 팬들이야 엡스타인을 천재를 넘어 신으로 모신다. 지역 언론도 그의 실력과 세이버메트릭스의 위력은 인정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곱지는 않다. 엡스타인은 첫 우승 후 맞은 본인의 재계약 때 10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거부하고 팀을 떠났다. 지난해 1월 팀과 복귀에 합의했지만 최종 서명은 10월에야 이뤄지는 등 애를 먹였다. 이런 북새통에 대해 지역 언론은 우승이 어느 한 사람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이 모아져서 나온 결과라며 호들갑 떠는 팬과 젊은 단장에게 훈계했다. 복귀한 첫해 또 우승하자 구단주, 사장, 단장 3각 편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애써 단장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메이저리그가 단장의 야구라면 한국은 감독의 야구다. 프로 구단이면 당연히 단장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단장이 활약할 무대 자체가 좁다. 선수단 구성이 단장의 핵심 역할인데 그 수단인 신인 선발, 트레이드,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등에서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트레이드의 경우 성공한 팀의 단장이 세운 공은 감독에게 돌아간다. 반면 실패한 팀은 단장이 책임지는 탓에 과감한 트레이드의 발목을 잡는다. 우리는 언제나 단장의 야구를 볼까?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어떤 이는 지난해인 2006년이 모나리자 탄생 500주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 1507년 완성된 것으로 보아 2007년이 500주년이라고 얘기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검은 의상을 입고 상반신을 우측의 관객 쪽으로 향하면서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며 입가에 신비스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 스푸마토(Sfumato)기법의 상반신 유화초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눈썹은 면도로 밀었는지 없고 머리엔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일을 쓰고 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이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과 두 개의 원주를 뒤로 한 채 반원형 나무의자에 앉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왼손 손목 위에 포개 놓고 있다. 모나리자 때문에 떼돈 번 사나이 얘기부터하자. 오래 전 미국의 흑인 저음가수 낫킹콜이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공연할 때 그 유명한 노래 ‘모나리자’를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신비한 미소를 띤 부인이여....” 1950년 6월 10일 낫킹콜이 발라드풍의 ‘모나리자’를 불러 이를 모나리자에게 바치자 300만장의 레코드판이 팔려나가는 기적적인 매상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젊은 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흐르고 있다. 나의 가라오케에서의 18번의 하나는 바로 이 노래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모나리자로 큰돈을 챙긴 여인은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이다. 그녀는 2003년 모나리자 이름을 빌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즐리 여대에 새로 부임한 미술사 교수로 출연하면서 몸값으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 약 2백 80억 원을 챙겼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 모나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슨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2005년 말 화란의 암스테르담 대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의 감성 인식 컴퓨터를 통한 그림 이미지 공동연구 결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의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 중에서 행복 83%, 불쾌함 9%, 두려움 6%, 분노 2%, 무표정 1%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라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나리자의 정체를 놓고 몇 가지 대조적인 주장이 있다. 1)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죽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주장에 의하면 피렌체의 비단 장사였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 본다. 그리하여 조콘도의 여성형인 ‘라 조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 혹은 라 조콘다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와서 이고 그 전에는 ‘한 피렌체부인의 초상’ 혹은 ‘면사포를 쓴 창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이 화가의 화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솔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낸다. 2) 벨연구소의 슈와르츠 박사는 컴퓨터로 디지털 해상분석을 통하여 얼굴 라인을 대조한 결과 이 그림은 여성화되긴 했으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여장남인으로서 다빈치의 얼굴윤곽을 닮은 가공의 여인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3) 미술 감정가 헨리 퓰리처는 다빈치의 후견인이었던 밀라노의 메디치가(家)의 쥴리아노의 부인 프랑카빌라 공작부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애칭도 ‘라 조콘다’였다. 4) 다른 연구가 뤼르센은 그림의 여인은 밀라노 공작의 부인인 아라곤 이사벨라라고 주장하였다. 다빈치는 11년간 밀라노 공작을 위하여 궁정화가로 일하였었다. 다른 유명화가 라파엘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보통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그려져 있다. 모나리자의 화폭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53 cm이다. 35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모나리자의 몸값은 얼마짜리인가? 기네스북에 의하면 보험에 든 그림 중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1962년 당시 미국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들 때 실제로 1억불로 감정하였다. 이것을 현가(2006년 기준)로 치면 적어도 6억 7천만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6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모나리자를 욕보인 남자들은 누구인가? 1) 1956년 신원미상인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하반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2) 같은 해 12월 30일 남미 볼리비아사람인 우고 비예가스는 모나리자에 돌멩이를 던져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림에 방탄유리를 씌어 전시 중이다. 3) 1911년 8월 21일 이태리인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루브르미술관 목공 직원은 모나리자를 훔쳤다. 그녀를 납치(?)후 2년간 자기 아파트에 감금하였다가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게리에게 팔았고 이것이 뒤 미쳐 알려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태리에서 순회전시가 끝나면서 루브르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페루지오는 나폴레온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이태리의 문화유산을 도루 찾아오기 위할 목적으로 훔쳤다고 증언하였으나 실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에 고용되었었다. 그는 모사전문 화가 이브 쇼드론에게 모나리자의 모작을 그리게 하여 진품이라고 속이고 미국의 부호 여섯 명에게 각각 팔아치워 큰돈을 챙겼다. 페루지오는 1년 15일 감옥에 있다가 이태리에 대한 애국적인 입장을 참작하여 풀려났다. 이를 사람들은 20세기 최대의 미술품도난 및 사기 사건으로 일컫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나리자 때문에 구치소 신세를 졌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프랑스의 전위 시인 기욤 아포리넬리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의 친우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어서 체포 구금되었다. 나중 그들은 풀려났지만 피카소는 일생 모나리자의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 모나리자의 인연은? 1963년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은 현대적 아이콘으로 모나리자를 나염 천에 그려 넣음으로써 그가 즐겨 그린 마릴린 몬로와 함께 자기의 마스코트임을 나타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모나리자가 미국 나들이를 했을 때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마릴린 몬로와는 앤디워홀의 붓끝을 통해 모나리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연계되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나리자의 관계는? 미국의 뉴요커 지는 1999년 2월 8일 모나리자 이미지를 모니카르윈스키와 합성한 그림 ‘모나 모니카’를 표지에 실음으로써 클린턴에게 아픔을 주었다. 모니카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리는 오랄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모나리자의 콧수염? 1919년 다다이즘화풍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과 염소 턱수염을 단 그림을 발표한바 있으나 이에 한 술 더 떠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54년 콧수염 달린 자신의 초상화를 모나리자 스타일로 형상화하였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토요 영화] 헤드윅

    [토요 영화] 헤드윅

    ●헤드윅(OCN 오전 11시)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고 그때까지 단 한편의 ‘록뮤지컬 영화’만 보도록 해주겠다면 당신은 무슨 영화를 보겠는가. 머릿속에 언뜻 ‘헤드윅’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당신은 아직까지 이 영화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일 테다. 농삼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2000)’은 내용은 물론이고 작품성과 완성도면에서도 탁월한, 그야말로 ‘물건’이다. 존 카메론 미첼은 록뮤지컬 ‘헤드윅’이 오프브로드웨이와 세계 순회공연에서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자, 직접 감독 겸 주연으로 나서 영화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는 곧 ‘21세기형 로키 호러 픽처쇼’라는 찬사를 받으며 갖가지 영화제의 주요상을 휩쓸기 시작했다.‘선댄스 영화제’의 관객상과 감독상도 그중 하나.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수상 이력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영화 자체의 미덕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한 것. 내용은 원작 뮤지컬과 다르지 않다. 동 베를린 출신의 한 남성이 미국 록스타로 발돋움하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다루고 있다. 평범했던 독일 소년이 미군 병사의 결혼 제의를 받고 성전환 수술을 하는 과정, 하지만 이 수술이 실패해 영문제목 ‘the angry inch(성난 1인치)’가 암시하는 것처럼 성기부분에 1인치의 살덩어리만 남게 된 아픔 등이 생생히 그려진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사랑의 배신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록스타로 우뚝 서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이와 함께 뮤지컬에서도 그랬듯이 중간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이며, 영화 전반에 깔린 록뮤지컬 감성의 사운드트랙 등은 비극의 승화와 감정의 조율을 제대로 이뤄내며 영화의 작품성을 드높인다. 국내에서 ‘헤드윅’은 뮤지컬이 지난 2005년 4월부터 시작해 600회가 넘는 공연 동안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누렸다. 주인공 ‘헤드윅’을 맡은 조승우, 오만석 등은 ‘조드윅’‘오드윅’이란 별칭을 얻으며 일약 뮤지컬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뮤지컬 ‘헤드윅’의 원작자이자 영화감독 겸 주연배우 존 카메론 미첼이 직접 방한해 헤드윅 콘서트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헤드윅’의 인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러닝타임 90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포신도시 연내 첫 삽 뜬다

    김포신도시 연내 첫 삽 뜬다

    조성 면적이 서너 차례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김포신도시가 오는 12월 착공된다. 30일 김포시에 따르면 건설교통부가 지난 23일 신도시에 대한 실시계획을 승인함에 따라 12월 부지조성 공사에 착수,2012년 12월 완공하기로 했다. 김포시 양촌면, 운양·장기동 일대 1172만㎡(장기지구 88만㎡ 포함)에 들어설 김포신도시는 아파트 4만 5787가구 등 모두 5만 2812가구가 입주하게 된다. 수도권에 들어선 기존 신도시들이 서울을 주생활권으로 하는 주민들을 위한 베드타운 성격인 데 비해, 김포신도시는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등이 들어설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해 지역경제와 함께하는 자족형 도시로 개발된다. 신도시는 한강변의 풍부한 수자원 등을 활용해 국내 최대의 수로도시로 만들어진다. 신도시 중앙을 흐르는 김포대수로(길이 3.1㎞, 폭 20m) 주변을 중심으로 생태환경지구, 문화교류지구, 복합업무지구로 구분해 모두 16㎞의 단지내 수로가 건설되며 대수로 양측에는 수중보를 설치해 유람선의 운행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실개천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도심의 온도를 낮춰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또 철새들이 즐겨 찾는 한강변 습지 60만㎡는 조류생태공원으로 조성되고 여기에 환경체험학습관(에코센터)이 건립돼 수도권 주민들의 환경학습장으로 활용된다.45만㎡ 규모의 생태주거단지에는 단독주택과 텃밭이 만들어져 태양열을 이용해 채소 등을 재배할 수 있는 자원순환형 주거단지로 조성된다. 아울러 신도시 교통편의를 위해 한강변을 따라 고촌면에서 운양동을 연결하는 김포고속화도로(11㎞)와 서울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역과 신도시를 잇는 경전철(23㎞)이 건설된다. 주택 분양은 내년 6월 3000여가구를 시작으로 2009년 말까지 진행된다. 아파트의 공급가격은 분양가상한제 등의 영향으로 당초 예상했던 3.3㎡(1평)당 900만(전용면적 85㎡ 미만)∼1200만원(전용면적 85㎡ 이상)보다 낮아진 800만∼1100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공동주택은 전용면적 60㎡ 미만이 1만 3490가구,60㎡∼85㎡가 1만 7567가구,85㎡ 이상이 2만 90가구이다. 건교부는 2003년 5월 1584만㎡의 김포신도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가 같은해 10월 주민공람시 1643만㎡로 늘렸다. 이어 2005년 6월 국방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1313만㎡로 다시 줄어들었다가 2005년 12월 지구지정시 1172㎡로 최종 결정됐다. 김포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김포신도시 연내 첫 삽 뜬다

    김포신도시 연내 첫 삽 뜬다

    조성 면적이 서너 차례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김포신도시가 오는 12월 착공된다. 30일 김포시에 따르면 건설교통부가 지난 23일 신도시에 대한 실시계획을 승인함에 따라 12월 부지조성 공사에 착수,2012년 12월 완공하기로 했다. 김포시 양촌면, 운양·장기동 일대 1172만㎡(장기지구 88만㎡ 포함)에 들어설 김포신도시는 아파트 4만 5787가구 등 모두 5만 2812가구가 입주하게 된다. 수도권에 들어선 기존 신도시들이 서울을 주생활권으로 하는 주민들을 위한 베드타운 성격인 데 비해, 김포신도시는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등이 들어설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해 지역경제와 함께하는 자족형 도시로 개발된다. 신도시는 한강변의 풍부한 수자원 등을 활용해 국내 최대의 수로도시로 만들어진다. 신도시 중앙을 흐르는 김포대수로(길이 3.1㎞, 폭 20m) 주변을 중심으로 생태환경지구, 문화교류지구, 복합업무지구로 구분해 모두 16㎞의 단지내 수로가 건설되며 대수로 양측에는 수중보를 설치해 유람선의 운행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실개천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도심의 온도를 낮춰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또 철새들이 즐겨 찾는 한강변 습지 60만㎡는 조류생태공원으로 조성되고 여기에 환경체험학습관(에코센터)이 건립돼 수도권 주민들의 환경학습장으로 활용된다.45만㎡ 규모의 생태주거단지에는 단독주택과 텃밭이 만들어져 태양열을 이용해 채소 등을 재배할 수 있는 자원순환형 주거단지로 조성된다. 아울러 신도시 교통편의를 위해 한강변을 따라 고촌면에서 운양동을 연결하는 김포고속화도로(11㎞)와 서울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역과 신도시를 잇는 경전철(23㎞)이 건설된다. 주택 분양은 내년 6월 3000여가구를 시작으로 2009년 말까지 진행된다. 아파트의 공급가격은 분양가상한제 등의 영향으로 당초 예상했던 3.3㎡(1평)당 900만(전용면적 85㎡ 미만)∼1200만원(전용면적 85㎡ 이상)보다 낮아진 800만∼1100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공동주택은 전용면적 60㎡ 미만이 1만 3490가구,60㎡∼85㎡가 1만 7567가구,85㎡ 이상이 2만 90가구이다. 건교부는 2003년 5월 1584만㎡의 김포신도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가 같은해 10월 주민공람시 1643만㎡로 늘렸다. 이어 2005년 6월 국방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1313만㎡로 다시 줄어들었다가 2005년 12월 지구지정시 1172㎡로 최종 결정됐다. 김포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전(2국)] 백홍석 5단, 파란만장한 승리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전(2국)] 백홍석 5단, 파란만장한 승리

    총보(1∼253) 젊은 패기로 뭉친 영남일보가 2007한국바둑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26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한국바둑리그 13라운드 1경기 최종국에서 영남일보는, 김형우 2단이 제일화재의 진동규 3단을 백불계로 꺾는 수훈에 힘입어 팀 승리를 챙겼다. 이로써 영남일보는 리그전적 10승3패를 기록, 남은 울산 디아채와의 대국결과에 상관없이 1위 자리를 굳혔다.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영남일보는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 플레이오프전에서 승리를 거둔 팀과 최종우승을 다툰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바둑이 또 있을까? 시종일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번 결승2국은 신인왕전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바둑중 하나로 손꼽힐 것이다. 백홍석 5단은 초반 우상귀 접전이후 계속해서 유리한 형세를 이끌었지만, 고비 때마다 원성진 7단의 승부수를 허용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국이 끝나자마자 원성진 7단의 손이 향한 곳은 우상귀.〈참고도1〉 흑1로 붙였을 때 〈참고도2〉의 평범한 진행을 거부하고 백2로 반발한 것이 과한 수였다는 지적이다. 흑7로 끊긴 뒤 백은 바꿔치기를 노렸으나 결국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 (69,74…59 72…66 136,142…116 139…113 208,214,220,226,232,238…140 211,217,223,229,235,243…205 215…166 216…168) 253수 끝, 흑 불계승 (제한시간 각10분, 초읽기 40초 3회, 덤6집반)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전(2국)] 백,마지막 승부수도 불발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전(2국)] 백,마지막 승부수도 불발

    제17보(223∼245) 원성진 7단이 마지막 노림수를 작렬시키며 국면을 요동치게 만들었지만 문제는 과연 충분한 팻감이 있느냐이다. 백은 우하귀 쪽에 많은 여러 개의 팻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흑도 패를 하는 과정에서 흑247의 곳으로 끊어 잡는 보너스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백이 웬만한 이득을 보아서는 전체적인 형세를 뒤집기 어렵다. 또한 좌변에는 <참고도1>흑1,3이 선수로 듣고 있어 흑이 설령 패를 지더라도 거대한 대마전체가 잡히는 일은 없다. 흑227의 팻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백으로서는 불행하다. 물론 백이 패를 해소할 수는 있지만 흑이 228로 늘어 하변 일대를 모두 수중에 넣는다면 백은 패를 이기고도 바둑은 지게 된다. 그나마 하변 백은 234로 끊는 순간 살아있다. 계속해서 흑이 <참고도2>흑1로 이어도 백2로 단수친 뒤 4로 이으면 알뜰하게 두 집을 만들 수 있다. 원성진 7단이 244로 팻감을 쓰자 잠시 형세를 살펴보던 백홍석 5단은 245로 시원하게 패를 해소한다. 흑으로서는 우하귀를 크게 살려주더라도 흑247에 손이 돌아오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승부의 차는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흑253을 본 원성진 7단은 흑돌 하나를 반상위에 내려놓으며 패배를 인정한다. (226,232,238…△ 229,235,243…223)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옴부즈맨 칼럼] ‘정책선거’ 실천하는 보도 기대/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경선으로 한바탕 내홍(內訌)을 치렀던 한나라당은 어느 정도 수습되어 이명박 후보가 단일 후보로 막바지 표심 모으기에 한창이고,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가, 민주당은 이인제 후보가 대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대선정국 초기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로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대통합민주신당이다. 지난 몇 주 간 각종 언론에서 앞다투어 1면에 다뤘을 만큼 이들의 진흙탕 정치는 독자로서, 국민으로서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박근혜, 이명박 후보의 경선으로 네거티브 정치의 한 단면을 이미 볼 대로 봐버린 독자로서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에 대한 일말의 희망마저 없애버리는 듯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정동영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지만 네거티브 정치의 극단을 지켜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번 주 서울신문에서는 본격적 대선구도가 가시화됐음을 보여주듯 15일자 1면의 “정동영 신당 대선후보 확정” 기사를 시작으로 16일자 1면의 “鄭 ‘이명박 공약 입시지옥 만들 것’”,17일자 1면의 “李 ‘국정실패 주역’ 鄭 ‘정글 자본주의자’” 등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공방전을 1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헤드라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두 후보의 대선 레이스도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질 조짐이다.18일자 1면의 “후보검증 공방 멱살잡힌 국감”에서 이러한 조짐은 현실로 나타났다. 국가기관의 국정운영 실태를 감사하는 국정감사가 후보검증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18일자 1면 톱사진은 “첫날부터…”란 제목과 함께 사건의 실상을 잘 보여줬다. 이어진 관련기사들도 국감중계, 국감하이라이트, 국감뉴스라인, 국감 말말말, 행정 국감메모 등으로 나누어 국감의 면면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만이 나열돼 있어 아쉬웠다. ‘가장 객관적인 기사는 가장 주관적인 기사’라는 말이 있다. 사건 자체는 객관적으로 보되,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기자나름의 해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사건 자체만 나열하는 것은 기자가 아닌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글이다.‘기사’는 기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국정감사 기사들은 객관적인 보도에 너무 치우쳐 있다. 또한 실질적으로 독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다. 국정감사는 국정전반에 대한 점검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다. 따라서 독자들은 국정감사 기사를 통해 국정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작 신문에서는 공직자의 비리나 공공기관의 부정에 관한 기사들이 정치적 공방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작게 보도되고 있다. 국정감사가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국정’은 없고 ‘감사’만 있는 보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지역 대학생의 66%가 이번 대선에 꼭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386세대들이 보면 한숨 쉴 만큼 낮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음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국정감사까지 후보검증의 진흙탕이 되어버린 판국에 젊은층을 막론하고 누가 대선에 참여할 마음이 들겠는가. 이런 가운데 서울신문이 매니페스토운동의 선두에 서서 정책선거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뜻에서 꾸준히 연재하고 있는 ‘대선후보 정책진단’시리즈는 바람직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면 언론은 이를 알리고 바로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아무리 후보들끼리 네거티브공방이 치열하더라도 언론은 결코 이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반드시 중심을 잡고 정책 중심의 정정당당한 선거가 되도록 여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 대우인터내셔널 파푸아뉴기니발전소를 가다

    대우인터내셔널 파푸아뉴기니발전소를 가다

    |포트 모르즈비(파푸아뉴기니) 이건규특파원| 인구 580만명의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 이곳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 파푸아 발전소가 가동 9년째를 맞았다. 그 사이 현지 수도권 전력 사용량의 40% 이상을 담당하며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우 파푸아 발전소는 1999년부터 하루 460㎿의 전력을 수도인 포트 모르즈비 등에 공급하고 있다. 아직도 공항·호텔 등 주요 시설에서 하루 몇차례씩 정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푸아 발전소 덕분에 현지 전력사정이 예전보다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이상하 대우 파푸아 법인장은 21일 “2003년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지난해 매출액 2032만달러, 순이익 407만달러를 내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지역주민들에게도 신뢰도가 높아 이곳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호의를 보인다.”고 전했다. 파푸아 발전소 사업은 1995년 대우인터내셔널의 전신인 ㈜대우가 국제입찰로 낙찰받았다. 하지만 진행 초기에 외환위기가 발생해 자금난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식 명칭은 ‘한중 파워’로 ㈜대우가 771만 8000달러, 두산중공업(당시 한국중공업)이 803만 2000달러를 각각 투자했다. 이 법인장은 “현지인들이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한 점을 고려해 부지 확보를 정부에 맡기고, 송전선 공사로 인한 주변 부족과의 마찰을 일자리 제공으로 무마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원만한 관계를 최우선해 고려한 것이 성공 원인”이라고 말했다. 파푸아 발전소 계약기간은 2014년까지다. 이후 계약을 연장하거나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566만달러에 되사가게 돼 있다. 대우는 재계약이 안 되더라도 이곳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필리핀, 베트남, 아제르바이잔 등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발전소 프로젝트를 펼칠 계획이다. letsdream@seoul.co.kr
  • [사설] 정동영 후보, 짐이 무겁다

    정동영씨가 어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최종 확정됐다.1개월여에 걸친 경선 과정에서 선거인단 동원 의혹과 경선 일정 잠정중단 등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레이스가 세 주자의 완주 속에 막을 내린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 후보와 신당은 경선과정과는 다른 모습으로 연말 대선까지 선전하기 바란다. 우리는 정 후보에게 축하에 앞서 쓴소리부터 건네고자 한다. 이는 유감스럽지만 정 후보를 포함한 신당 예비주자들이 자초한 일이 아닌가. 정 후보는 신당의 ‘국민경선’이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를 곰곰이 따져보기 바란다. 폭발적 국민 참여로 경쟁력있는 후보를 뽑으려던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차떼기니 박스떼기니 하는 조직·동원선거 논란으로 유권자의 외면을 불렀다는 뜻이다. 정 후보와 신당은 이처럼 변칙과 편법으로 얼룩졌던 경선에 대한 자성과 함께 새출발하기를 당부한다. 패배한 손학규, 이해찬 두 주자는 경위야 어쨌든 경선룰에 동의하고 레이스에 참여한 만큼 결과에 대승적으로 승복하기 바란다. 정 후보도 경선과정서 캠프 관계자의 연루의혹이 제기된 대통령 명의도용 사건 등에 대해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당원과 유권자에게 대국적으로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선 본선에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는 연말 대선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독주가 아니라 경쟁력있는 복수의 후보들 간의 페어플레이 속에 치러지기를 바란다. 난립 중인 친여 성향 주자들을 단일화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범여권 지지자들에 대한 도리라는 얘기다. 정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통합과 화합을 강조한 그대로 손·이 후보 그룹 등 당내 제세력들을 껴안고 가는 포용력부터 보여줘야 할 것이다. 가칭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예비후보와, 이인제씨로 사실상 결정된 민주당 후보와의 범여 후보단일화 성사여부도 정 후보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있다고 본다.
  • [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정동영 그는 누구

    [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정동영 그는 누구

    평화시장을 오가는 언덕길은 가파랐다. 숨이 턱에 차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어머니가 만든 아동복 바지를 팔러다니던 시절.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는 데 감사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그 가난이 싫어 ‘본격적으로 옷장사를 할까.’마음먹기도 했다. 이대로 잘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도 같았다. 바느질한 천을 메고 청계천을 걸으며 청년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옷장사가 천직이 될 뻔한 청년이 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어렵고 고단하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환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홀어머니와 세명의 동생 정동영 후보는 1953년 7월27일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진철(1969년 타계)씨와 어머니 이형옥(2005년 타계)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 형만 넷이었다. 그러나 얼굴도 보지 못한 형들이다. 모두 정 후보가 나기도 전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누구에게나 가혹했던 시절이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일 무렵. 고단한 병치레를 계속했던 아버지가 조용히 세상을 등졌다. 충격이었다. 우상으로 여겨왔던 아버지다. 아프고 또 아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 정 후보는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을 그때로 꼽는다. 방황도 많이 했다. 뒤에 남겨진 건 홀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 그리고 가난이었다. 혹독한 현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에겐 무거운 짐이다. 계속 방황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부터 정 후보는 가장으로서 삶을 살았다. ●서울대 재학중 시위·투옥·징집 ‘10월 유신’이 선포된 1972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가난한 시골 청년은 굴곡많은 현대사와 마주보게 됐다.72학번 동기들의 징역형을 합하면 100년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다. 투옥과 수배가 반복됐다. 정 후보도 1973년 시위에 참가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다. 최초의 유신반대 학생시위로 기록된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시위다. 당연한 듯 구치소에 구금됐다. 다음해에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또다시 3개월간의 구치소 생활. 이번에는 출감하자마자 강제 징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의 어머니가 눈에 선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18년 기자 생활… 80년 광주 취재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정 후보는 문화방송(MBC)보도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1996년까지 18년을 기자로 지냈다. 아직 신참티가 남아 있던 1980년 5월 그는 광주 도청 앞에 서있었다. 봉쇄된 광주에서 흘러 나오는 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도보로 직접 광주 시내로 들어갔다. 눈으로 지켜본 광주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총알이 빗발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취재를 해야만 했다. 목숨을 내놓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의 리포트는 보도되지 못했다. 당시 리포트는 올 5월 우연히 발견돼 27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1995년 정 후보는 정치인으로 변신을 결심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정 후보는 1996년 4월 전주 덕진구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2000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당 탈당 ‘배신자´ 비난 듣기도 그리고 그해 12월 김 전 대통령 면전에서 당시 권력 최고실세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른바 ‘정풍운동’이다. 결국 10일 후 권력의 정점에 있던 권 최고위원은 자진 사퇴한다. 정치인 ‘정동영’을 국민 뇌리에 각인시킨 사건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치 실험에 돌입했다. 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모험이었다. 민주당 분당의 원흉으로 몰렸다. 그러나 정 후보는 열린우리당을 다시 탈당했다. 비난이 쏟아졌다.‘배신자’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었다. 이제는 다시 민주당에 손 내미는 상황에 처했다. 아이러니다. 2002년 정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꼴찌를 밥먹듯했다.1승 15패. 참담했다. 고통이 극심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그러고는 승자 노무현 후보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마치 자기 선거인 것처럼. 그런 정 후보가 이제 5년 만에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나선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선거다.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