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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꿈 이룬 윤정희(尹靜姬)

    학사꿈 이룬 윤정희(尹靜姬)

    문학사(文學士) 윤정희(尹靜姬). 2월 27일 우석대학교(友石大學校) 문리과 대학(文理科大學) 사학과(史學科)를 졸업한 스타 윤정희양 (본명 손미자(孫美子))은 꽃다발과 졸업장을 안은채 어머니 朴「헤레나」 여사의 품에 안겨들었다. 『저의 두번째 소망이 이뤄졌어요』 떨리듯 감회서린 목소리가 尹양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까만 「가운」에 학사모를 쓴 윤정희(尹靜姬)양 모습은 이 날 따라 유달리 예뻐 보였다. 수많은 졸업생 속에서 유달리 환하게 돋보이는 얼굴. 화장기가 거의 없는대로 청초하고 맑은 자태가 과연 「스타」 다 싶다. 이런 차림은 尹양이 몇번인가 「스크린」 속의 꿈이 현실로 옮겨진 실증일까? 영화속에서 미리 해둔 예행연습 때문인지 윤양의 차림새나 동작은 조금도 어색치 않아서 좋았다. 뿐만 아니다. 윤양은 같은 과의 졸업생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 「스타」라는 선입관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이것은 이름만 걸어놓고 졸업장이나 받으러 가는 다른 배우학생들의 경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겹치기 출연에 바쁜 윤정희(尹靜姬)가 어느 틈에 학교생활에 익숙할 겨를이 있었던가? 그녀는 말했다. 『촬영도중에라도 필요한 강의는 꼭 들었어요. 시험도 빼지 않고 다 치뤘고. 학점은 다 땄지만 성적은 시원치 않다나요』 「노트」 필기는 주로 「클라스·메이트」朴모양과 金모양의 협조를 받았다는 얘기. 전남여고(全南女高)를 나온 윤정희(尹靜姬)는 68년 우석대(友石大)3학년에 편입학했다. 여고를 나온 뒤 조선대학교(朝鮮大學校) 영문과(英文科)에 입학했지만 가정사정으로 중퇴(中退). 그때만 해도 『까만「가운」에 학사모를 쓰는게 가장 정실한 소망이었어요』 이 「가장 절실한 소망」이 두번째의 소망으로 후퇴한 것은 3년전 그녀가 「스타돔」 에의 발돋움을 시작하면서다. 윤양은 66년 합동(合同)영화사가 실시한 신인배우 현상모집에서 유일의 당선자로 뽑혔고 「데뷔」작 『청춘극장(靑春劇場)』은 67년 신정 「프로」에서 2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 뒤 전속사와의 의견대립으로 윤양은 5,6개월간 작품을 못 잡고 당황하던 때가 있었다. 그보다 앞서 나온 문희(文姬), 남정임(南貞姙), 고은아(高銀兒) 세 신인 「스타」의 인기가 날로 충천하고 있을 무렵. 어떻게 보면 윤정희(尹靜姬)가 발을 들여놓을 여지가 없을 것 같은 형편이었다. 「스타」가 될 것이냐, 못될 것이냐, 이런 고민을 뚫고 불과 2년만에 윤정희(尹靜姬)는 정상의 「스타」가 됐다. 「톱·스타」가 된다는 가장 큰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제2단계의 소망인 학사모를 마침내 쓰게 된 것. 차곡차곡 뜻을 이뤄 나가는 알토란 같은 아가씨다. 얼마전 각 신문은 윤정희(尹靜姬)혼자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대학원(大學院)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학교 당국자는 윤정희(尹靜姬)의 입학이 「보아줘서」가 아니고 당당한 실력대결이었다고 보장했다. 『특히 영어성적이 퍽 좋았다』는 것. 전남여고(全南女高)의 우등생이었다는 그녀는 『여고때의 기초가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이날의 졸업식에는 윤정희(尹靜姬)의 다섯 동생, 3男2女가 모두 모여 윤정희(尹靜姬) 6남매(男妹)의 우애를 자랑했다. 큰 동생 미애(美愛)양은 올해 숙대(淑大) 음악과를 졸업했고 21세짜리 남동생은 경기고(京機高)를 나와 서울大에 입학했다. 세째 동생(19)은 중앙고교(中央高校)에, 네째 동생(13)은 배문중(培文中)에, 그리고 막내동생(7)은 경희(慶熙)국민학교에 입학. 이들의 학비만도 月10여만원. 어머니 박여사가 이를 위해 통닭집 「姬의집」 을 경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맏딸인 윤정희(尹靜姬)양의 수입이 원천을 이룬다. 윤양의 세번째 소망은 『동생들이 모두 훌륭하게 되는 것』이라고. [선데이서울 70년 3월 8일호 제3권 10호 통권 제 75호]
  • 마음까지 아물게 한 핸드 크림

    마음까지 아물게 한 핸드 크림

    막 자대에 들어와 모든 것이 낯선 이등병 시절이었다. 11월에 있을 호국훈련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준비태세(이하 전면전)를 실시했다. 온몸이 지친 상태에서 나는 백일휴가만을 상상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면전이 걸렸고 이른 아침부터 소대원들은 군장 꾸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보직이 무전병인 나는 군장 외에도 통신장비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동작이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 나는 능숙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욕을 안 먹어서 다행이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오른쪽 검지손가락의 갈라진 틈으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서운 추위 때문에 늘 부르터 있던 문제의 그 손가락이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난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했다. 훈련이 끝난 저녁때가 되어서야 상처 부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꽤 심했다. ‘선임에게 말해서 의무대에 가볼까’‘아니야 지금 훈련 준비 상황이니까 꾹 참고 아물기를 기다리자’ 이 두 가지 생각이 교차된 시점에 내가 택한 것은 후자 쪽이었다. 그 상태로 샤워를 하고 관물대에 앉아서 정리정돈을 하는데 누군가 내 자리에 가만히 다가와 앉는 것이다. 평소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내가 가장 믿고 따랐던 ‘말년병장’이지호 병장이었다. 이 병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상처 부위에 자신의 핸드크림을 정성껏 발라주었다. 연고가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것이 전우애구나, 참 선임의 모습이구나.’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 그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이젠 이지호 병장도 전역했고, 손가락도 깨끗이 아물었다. 그러나 이등병 시절의 그 일은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한상익_육군 상병, 강원 고성군 죽왕면 월간<샘터>2006.10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0) 충주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0) 충주길

    문경새재 넘기가 숨이 차기는 찼던 모양이다. 제3관문을 넘어 산을 다 내려오기도 전에 나그네들이 쉬어가던 마을이 나온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고사리마을. 조선시대 충청도로 접어드는 영남대로의 첫 숙박지 신혜원(新惠院)이 있던 곳이다.17∼18세기에는 주막만 100여가구가 될 정도로 많았으나 광복후에 자취를 감췄다.3관문을 지나 2㎞쯤 밑에 있는 고사리는 새재 7∼8부 능선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주민 이종언(73)씨는 “옛날에 제1관문과 대안보에 역촌이 있었는데 상놈이 많다며 양반들이 두곳을 피해 ‘고 사이에서 잠을 자고 가자.’고 하면서 ‘고사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고 전했다. 마을에는 말을 재우며 묶어놓았던 마방터가 있었으나 10년 전에 헐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현재 민박집이 있고 이 집 유리문에 대문짝만 하게 쓰여진 ‘마방터’라는 글씨만이 옛날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고단한 나그네들의 쉼터 고사리 마을 1914년까지 이 마을은 연풍현(군) 고사리면이었다. 산속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번화했음을 알 수 있다. 면사무소가 있던 터에는 한 기독교인이 철제 십자가를 세워 놓았다. 세월이 꽤나 흘렀는지 녹이 슬어 있다. 마을 안으로 폭 2m쯤 되는 길이 나 있다. 이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에 갔다가 경호원을 따돌리고 혼자 문경새재를 넘어 이곳을 거쳐 충주로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귀경한 직후 도로포장을 지시, 공사가 시작됐으나 갑작스러운 서거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고 김옥길씨가 이 마을에서 은거하기도 했다. 공사가 중단된 얼마 후 김씨의 별장을 찾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이같은 사연을 듣고 도로를 완공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은 부인 홍기 여사가 김씨의 별장에 머물자 이곳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별장은 길 옆에 있다. 대문 양쪽에 ‘금란서원(金蘭書院)’과 ‘이화학당’이라고 새긴 문패가 달려 있다. 지금은 이화여대 수련원으로 쓰인다. 마을 밑에 이 대학 대형 수련원도 있다. 이 마을에서 문경장은 40리, 충주장은 61리이다. 이씨는 “어릴 적에 장날이면 걸어갔는데 충주장보다 문경장을 더 많이 다녔다.”고 회고했다. 관광지로 변한 이 마을 산기슭 여기저기에는 외지인들이 지은 펜션이 들어차 있다.20여가구 주민들은 관광객과 문경새재 신선봉을 찾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음식점과 상점을 열고 있다. 마을에서 내려오던 길은 다시 높아지며 작은새재(소조령)에서 이화령쪽으로 뻗어나온 국도 3호선과 만난다. ●냉천에서 목 축이고 수안보로 고사리 길이 소조령과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자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 사시마을이 나온다. 지난해 4월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는 ‘냉천(冷泉)’이 있다. 주민들은 ‘찬물내기’라고 부른다. 주민 김지연(84)씨는 “길(국도 3호선)을 넓히면서 샘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냉천의 전설까지 명맥을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평생 약초를 캐 살아가던 노인이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이 옹달샘에서 선녀와 동자가 ‘이곳에 한양가는 길이 나고 목마른 행인들이 많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노인은 이 물로 농주(濃酒)를 빚었고 이를 얻어 마신 한 유생이 이를 ‘냉천’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다. 이후 영남대로가 나면서 마을에는 목을 축이고 가려는 행인들이 줄을 이어 마방과 주막이 성행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2㎞를 채 안 내려와 ‘대안보’ 마을이 나온다. 조선시대 ‘안부역’이 있던 곳이다. 수안보보다 커 대안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역(驛)은 말만 갈아타는 곳이고 원(院)은 말도 바꿔타고, 잠까지 자던 곳이다. 마을 주민 허남순(83)씨는 “지금은 마을 옆으로 큰 도로가 났지만 옛날에는 마을 한가운데로 난 게 선비들이 과거보러 가던 길이었다.”고 내려오는 얘기를 전했다. 이 길은 마을 안에 있는 구릉 위를 오솔길처럼 지나는 형태로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회관 도로 옆에는 공덕비 등 비석 여러개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옛길에 늘어섰던 것을 마을회관을 신축하면서 주민들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길경택 충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당시 이 길로 행인들이 많이 다니다보니 현감 등이 자기 공적을 자랑하려고 비를 많이 세웠다.”고 설명했다. ●마당처럼 넓은 바위 천하명당 ‘패랭이번던’ 대안보에서 2㎞ 더 가면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가 있다. 당초 ‘물탕(온천이 나오는 샘)’만 있었던 거리였다. 수안보 전문 향토사학자 조일환(70)씨는 “수안보가 대안보보다 커진 것은 불과 100년도 안 됐다.”면서 “일제가 수안보 온천을 개발하면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충주시내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수안보면 수회리가 나타나고 도로변에 ‘마당바위’가 있다. 마당처럼 넓은 바위로 이 산이 ‘패랭이번던’이라고 불리는데 유래가 재미있다. 번던은 ‘언덕’을 의미한다. 조선 명종 때 한 지관이 충주에 머물다 꿈에 선인을 만나 따라간다. 선인은 이 마당바위에 술과 안주를 마련하고 서쪽 산을 가리킨 뒤 구름을 타고 날아가버리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다음날 지관은 선인이 가리킨 방면으로 가다 이 바위에 패랭이를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이곳이 ‘천하명당’임을 발견하고는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를 보고 몰려든 행인들이 ‘패랭이번던’이라고 불렀고 이 길을 지날 때면 경치를 구경하며 쉬어가곤 했다. 이 산은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 주민들은 이 바위가 국도 3호선 확장공사로 절반쯤 잘려나갔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길 실장은 “산림종자연구원 안의 ‘서유돈 불망비’가 새겨진 바위가 마당바위”라고 확인해줬다. 지금은 잡목이 우거져 접근이 쉽지 않다. 서유돈은 조선조 현감이다. 이 바위 앞으로 영남대로가 지나갔었다. 1950년대까지 주막 3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국도 3호선이 생기면서 완전 폐쇄됐다. 길 실장은 “행인들이 많이 지나는 큰 길이어서 선정비를 새겨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당바위 앞과 중앙경찰학교 등을 지난 옛길은 국도 3호선과 겹치거나 갈라지면서 충주시내로 들어간다. 글 사진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난동부리는 사람 곤장 30대씩 쳐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길거리에서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은 서른대의 볼기를 치고 관청에 보고한다.” 1700년대 관청에서 고사리면 온정동(수안보온천)과 관련해 승인한 동규절목(洞規節目·향약)의 한 대목이다. 주민들이 8개 항목의 이 향약을 만들어 관에서 허가를 받아 시행할 정도로 질서가 문란했음을 보여준다. 향토사학자 조일환씨는 “당시에는 온천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수안보가 대형 병원역할을 했고 아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서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부모께 불효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없는 사람은 법적 조치한다.’‘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경멸하면 서른번 볼기를 친다.’‘남녀간에 분수를 모르면 볼기를 친다.’는 것 등이 있다. ‘소나무를 마구 베거나 산불을 내면 마을에서 볼기 서른대를 친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조씨는 “환자들이 수없이 몰려들었지만 숙박집이 부족해 노숙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난방이나 밥을 해먹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면서 산들이 모두 벌거숭이로 변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관인’이 선명히 찍힌 동규절목 원본은 수안보면 온천1구사무소에 보관돼 있고 기념비도 물탕공원에 설치됐다. 수안보는 18세기 초 안보뜰에 보(堡)가 축조되면서 그 안쪽을 물탕거리라고 해 ‘물안보’로 불렸다가 ‘물’이 ‘수’자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한 걸인이 이곳으로 추위를 피해 왔다가 피부병이 나은 것을 보고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 때부터 수안보온천이 기록에 나타나고 태조와 숙종 등이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녀탕이 따로 만들어진 것은 1885년에 이르러서였다. 현재 수안보에는 호텔과 콘도가 3개씩 있고 여관 등 숙박업소 21개, 욕탕 2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조씨는 “동규절목은 영남대로상 교통의 요충지로 온천창과 온정원이 설치됐을 정도로 수안보온천이 큰 영화를 누렸음을 방증하는 중요한 자료”라면서 “다른 온천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해외여행 선호 등으로 갈수록 찾는 이들이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문명비평가’ 새 면모 발견

    “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 대중가요 가사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시인 박인환(1926∼1956).‘세월이 가면’‘목마와 숙녀’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준수한 외모와 도회적인 낭만성으로 말미암아 ‘명동백작’‘댄디보이’ 같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정신으로나 행동으로나 세련된 멋을 추구한 인물이었다. 김경린·김규동·조병화·박태진·이봉구·장만영·조향 등 당시 함께 활동했던 문인들의 회상이 이를 증명한다. 러시아풍 코트와 바바리 코트의 시인, 장 콕토와 로랑생과 이상과 스티븐 스펜더를 흠모했던 ‘마리서사’ 서점의 주인, 전후 한국문단의 앙팡 테리블….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런 이미지와 달리 박인환은 탈식민지를 지향하거나 자본주의를 비판한 시, 영화비평, 산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글을 남겼다.1940년대 후반에 쓴 시 ‘인천항’‘남풍’‘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자본가에게’, 전쟁의 고통을 소재로 한 산문 ‘암흑과 더불어 3개월’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 만큼 박인환을 단순히 ‘센티멘털리스트’ 시인의 범주에 가두는 것은 그를 지나치게 좁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의 타계 50주년을 기념해 나온 ‘박인환 전집-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문승묵 엮음, 예옥 펴냄)은 시인의 면모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핀 박인환 문학의 완성판이다.‘언덕’‘1950년의 만가’‘봄은 왔노라’‘봄 이야기’‘주말’‘3ㆍ1절의 노래’‘인제’ 등 7편의 시와 44편의 산문 등 모두 51편이 이번 전집을 통해 처음으로 발굴 소개됐다. 1950년대 박인환이 추구한 모더니즘은 어디까지나 ‘모더니즘적’일 뿐이라는 가혹한 평가가 있다. 그의 과장된 포즈와 감성이 모더니즘의 정신과 기법을 덮어 버렸다는 것. 그러나 이번에 새로 발굴된 작품들을 통해 박인환 시는 새로운 문학적 평가의 지평을 열었다. 시인이기도 한 박현수(경북대 국문과) 교수는 ‘전쟁’이라는 시대소(時代素)를 통해 박인환의 작품을 논하며 “가장 1950년대다운 시인”으로 그를 꼽는다. 경향신문에 실린 시 ‘1950년의 만가’는 게재 시점이 한국전쟁 발발 한달여 전인 1950년 5월16일. 그러나 발표 연대를 확인하지 않으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전쟁체험 시로 읽힌다.“불안한 언덕 위에로/나는 바람에 날려간다/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속으로/나는 죽어간다/(중략)/불안한 언덕에서 나는 음영처럼 쓰러져간다/무거운 고뇌에서 단순으로/나는 죽어간다/지금은 망각의 시간/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출판사 측은 이번 전집을 펴내는 과정에서 1954년 월간 ‘신태양’에 실린 시 ‘센티멘탈 저니’에 ‘수영(洙暎)에게’라는 헌제(獻題)가 붙어 있었지만 1년뒤 출간된 박인환의 ‘선시집’에는 그것이 떼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인환이 친구인 시인 김수영과 멀어진 가운데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미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박인환과 김수영은 모더니즘 시를 주창한 ‘신시론’의 동인이자 친구였지만 둘은 끝내 갈라섰다.“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어떤 사람들은 너의 ‘목마와 숙녀’를 너의 가장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목마’도 ‘숙녀’도 낡은 말이다. 네가 이것을 쓰기 20년 전에 벌써 무수히 써먹은 낡은 말들이다.” 김수영이 쓴 ‘박인환’이란 제목의 글의 한 토막이다. 박인환은 정말 김수영이 말하듯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단 말인가.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새로 발견, 정리된 시와 산문들의 총목록에 비춰 보면 박인환에 대한 기존 평가는 너무 인색하다.”며 “그가 쓴 글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일련의 글들과 칼럼 및 잡문 등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해, 산문가 박인환의 넓이를 보여 준다.”고 평가한다. 방 교수는 박인환을 “다면적 문화비평가이자 문명비평가”로 본다.3만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홍보책이 재밌어요”

    서울 동작구가 미래의 주역인 관내 초등학생을 위해 만화로 된 구 역사·문화 홍보책자를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구의 역사와 문화유산 등을 재미있는 내용의 만화로 꾸민 ‘나루와 보라의 생생동작 탐험’이라는 만화책 1만권을 제작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책은 4·6배판 크기의 컬러판 130쪽 분량으로 학습 만화작가인 이창우씨와 정우열씨가 그렸다. 내용은 악당인 ‘무기력 마왕’이 동작구의 상징인 장승배기 장승을 훔쳐 구민들이 기운을 빼앗자 초등학교 5학년생인 ‘나루’와 ‘보라’가 동작구 각 지역을 다니며 힘을 얻어 마왕을 물리치고 장승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꾸며져 있다. 책에는 자연스럽게 수양버들이 울창했던 노들나루와 조선시대 교통의 중심이었던 동재기 나루, 충절의 대명사인 사육신묘, 국내 최대 수산물 전문 도매시장인 노량진 수산시장, 우애의 모범인 양녕대군의 지덕사 부묘소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부록으로 동작구 지도와 캐릭터 스티커, 아이들에게 필요한 동네 독서실과 청소년 문화의집 전화번호 등이 수록돼 있다. 구 관계자는 “미래의 주인공인 초등학생들에게 애향심과 긍지를 심어 주기 위해 제작했다.”면서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통해 동작구의 유서깊은 문화유산과 역사, 그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는 만화책을 관내 초등학교에 배부하는 한편 구청을 방문하는 초등학생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다. 문의는 구청 문화공보과(820-1253).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그리스·터키 군용기 에게해서 충돌

    지난 1974년부터 1996년까지 영공 분쟁으로 인해 세차례나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와 터키 군용기들이 23일 에게해 동쪽 카르파토스섬 근처 공중에서 충돌했다고 그리스 정부가 밝혔다. 에반겔로스 안토나로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크레타섬의 수다 공군기지를 발진한 자국의 F16 전투기가 이날 터키 R-F4 정찰기를 요격하려다 카르파토스섬 남쪽 19㎞ 지점에서 충돌했다고 밝혔다. 현재 조종사들을 구조하기 위해 헬리콥터와 프리깃함 등을 급파했다고 밝혔다.그리스 국방부는 자국 전투기가 영공을 침범한 터키 정찰기를 요격하기 위해 출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터키 외교부나 군은 이를 즉각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영공 분쟁이 일었던 이 해역 근처에서 양국 전투기들은 공중전에 가까운 추격전을 벌이는 일이 잦았다. 그리스는 영공을 16㎞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터키는 영해와 같은 거리인 6㎞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96년 충돌 이후 그리스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지하고 코스타스 카라마날리스 그리스 총리가 레젭 타입 에르도간 터키 총리와의 각별한 우애를 과시하는 등 양국 관계는 상당히 개선돼 왔다.그러나 이번 충돌 사고가 진정 국면을 맞았던 에게해 영유권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씨줄날줄] ‘변호사님’/오풍연 논설위원

    미국은 변호사 수가 100만명을 넘는다. 인구 280명당 1명 꼴이란다. 일본은 7000명당 1명. 한국의 9300명당 1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히 ‘변호사 천국’이랄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소송 건수도 어마어마하다.1990년대 초반 한 해의 소송건수가 무려 2억건에 달한 적이 있었다. 미국민 1인당 1년에 한 건씩 소송을 제기한 셈이다. 툭하면 “당신을 고소하겠다.(I will sue you)”라고 하는 말도 과장이 아닌 듯하다. 변호사는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높은 보수에다 정치권 등으로의 진출도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법치주의가 정착되는 데 따라 전문성을 갖춘 이들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로펌이 관료 배출 창구의 기능을 한 지 오래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 변호사의 발탁이 두드러진다. 노 대통령부터가 변호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출범 초기에는 ‘변호사 참여정부’라고 할 만큼 변호사들이 득세했다. 특히 ‘민변’ 소속 변호사가 7명이나 수석·비서관 등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강금실 열린우리당, 오세훈 한나라당, 박주선 민주당 후보도 변호사여서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는 전직 판·검사 출신을 많이 배려한다. 이른바 관행처럼 자리잡은 전관예우다. 소송 의뢰인들이 갓 개업한 이들의 사무실을 먼저 찾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승소율이 높은 덕이다. 엊그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는 ‘피고인’이 ‘변호사님’으로 둔갑해 방청석을 어리둥절케 했다. 검찰이 브로커 윤상림씨와 부정한 돈거래를 한 혐의로 기소된 검찰 고위간부 출신에게만 ‘변호사님’이라고 깍듯이 예우한 것이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에게는 또박또박 ‘피고인’이라고 했다. 법정에서는 직책에 상관없이 호칭을 피고인으로 해야 한다. 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피고인으로 불렸다. “변호사는 우애와 신의를 존중하며, 상부상조·협동정신을 발휘한다.”는 변호사 윤리강령이 있다. 검찰이 본분을 망각한 채 이 대목을 원용한 것일까. 검찰은 추상 같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법치주의도 확립된다. 정실에 이끌려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해서야 되겠는가.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내가 뭐 한게 있다고…”

    “전국에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상까지….”(전옥연·75·여·춘천시 서면)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합니다.”(최일순·66·여·전북 일실군 청웅면, 민정기·71·남·서울 종로구) “그저 오래오래 살아 주시면 고맙지요.”(권옥화·70·경북 안동시 와룡면) “남보다 나은 게 없고, 칭찬받을 일 하지 않았는데….”(김양순·65·여·충남 서천군 문산면) “의당 해야 할 일인데 부끄럽습니다.”(변종희·46·여·전남 곡성군 옥과면 이문리) 어버이 날인 5월8일 정부로부터 장한 어버이와 효부·효자로 선정돼 훈장과 포장을 받는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이다. 하나같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 어른을 봉양하는 따뜻한 마음과 겸양이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의 살아온 모습도 다양하다. 전옥연씨는 4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자녀 4명 모두 석·박사로 훌륭히 키워냈으며, 최일순씨는 남편을 여의고 치매에 걸린 90세 시어머니를 정성스레 돌보고 있다. 어려운 가정에도 집에서 키운 채소를 팔아 돈을 마련하면서 자녀 6명을 우애롭게 키워냈다. 권옥화씨는 2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7남매를 키우며,100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어머니와 생일이 같아 본인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드물다고 한다. 김양순씨는 언어장애가 있는 남편과 살면서 3남매를 키워냈다.30년 전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간식을 제공하는 등 처지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민정기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버지 민병욱(104세)옹을 40년 동안 정성스레 모시고 있다. 그는 검소하게 살면서 경로당에 쌀을 보내고,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있다. 그는 자신을 “결혼을 하지 못한 불효자”라고 말했다. 변종희씨는 10년 동안 시할머니·시어머니모시고 살다 두 분이 세상을 뜨자 시외할머니까지 모셨으며, 김치수씨와 송재희(80·여·울산시)씨 등도 부모를 봉양하고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다. 특히 송씨는 장한 어버이상 수상을 한달앞두고 사망,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전국종합
  • 국민대 19일 ‘한·일 대학생 가요제’

    “가요 부르기 한·일전으로 우애 다져요.”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두고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양국 대학생들이 서로의 가요를 부르며 문화를 교류하는 행사가 열리게 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일 대학생 가요제 코다마’로 이름붙여진 이번 행사는 국민대 국제학부 일본학과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주최하는 것으로 19일 학교 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가요제에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지만 딱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한국 학생들은 일본 노래를, 일본 학생들은 한국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 참가 신청은 8일까지 우편이나 인터넷을 통해 받고 12일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할 양국 6개씩 모두 12개 팀이 가려진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치러진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른에게 드리는 글’을 서울 곳곳에 뿌렸습니다. ‘어린이를 내려다 보지 마시고, 쳐다 보아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보드랍게 해 주십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십시오.’ 83년이 지난 지금도 되새겨 봄직한 말입니다. 어른들의 욕심에 어린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사진은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어린이 평화축제’에 참여한 새싹들입니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팔랑개비처럼 어린이들의 마음과 몸도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알뜰파에 안성맞춤 동네서 ‘잔치’ 즐겨요 가 정의 달인 5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각 구청에서 여는 행사들을 확인해보자. 동네에서 열려 거리도 가까운데다 대부분 무료여서 ‘알뜰파 가족’에게 안성맞춤이다. 영화, 연극, 뮤지컬, 전통문화 체험, 클래식 공연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족 나들이 떠나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5일부터 7일까지 ‘역사야 포토야 형무소가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직원들이 일제시대 남학생, 여학생, 헌병, 수감자 복장을 하고 수감생활, 사형집행, 형무소 출감 등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4만여명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됐고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수감된 역사적인 장소다. 금천구는 13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주관으로 산기슭공원에서 ‘어린이 책문화 큰 잔치’를 연다. 동화책 읽어주기, 동화책에 나오는 전래놀이(고양이 쥐잡기, 줄다리기, 아카시아 파마 해보기, 대동놀이 등) 체험, 친환경 먹을거리 장터 등이 마련된다. 강서구는 5일부터 7일까지 허준박물관에서 왕실과자 만들기, 총명탕 시음, 한약비누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와! 어린이 세상이다 중구는 5일 충무아트홀 건물 전체를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바꾼다. 대극장, 소극장, 갤러리 등지에서 판화체험, 신문지놀이 등 놀이미술, 어린이 마임극인 ‘빨간코 아저씨의 이야기보따리’, 재활용 인형들이 펼치는 ‘띠용이와 떠나는 환경 캠프’, 장난감 나라 전시회 등이 열린다. 서대문구는 7일까지 서대문문화회관대극장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뮤지컬인 ‘책키북키’를 보여준다. 노원구는 26일부터 27일까지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호두까기 인형과 해설을 곁들인 발레여행을 진행한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춤, 아라비아춤, 중국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성동구는 5일 소월아트홀에서 사상좌춤, 사당춤, 사자춤, 양반춤 등 총 7과장을 선보이는 봉산탈춤 완판 공연을 연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고전으로 서민생활의 어려움과 특권 계층 비판 의식이 담긴 중요무형문화재다. 종로구는 7일까지 인사동 일대에서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 주관하는 ‘인사전통문화축제’를 연다. 떡메치기, 길쌈시연, 짚풀공예 등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경기민요·남도민요·태평무 등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송파구는 주말마다 서울놀이마당에서 마들농요, 송파산대놀이, 선소리산타령, 호남살풀이춤 등을 놀이판을 벌인다. 용산구는 20일 전쟁기념관에서 궁중 혼례를 재현한 결혼식을 선보인다. ●‘로맨스 그레이’를 위해서 어버이날을 위한 행사도 있다. 강남구는 18일 강남구립문화회관에서 ‘부부를 위한 사랑의 콘서트’를 연다. 가수 김종환을 초대해 ‘사랑을 위하여’‘존재의 이유’‘사랑하는 날까지’ 등의 노래를 선사한다. 광진구는 광진문화예술회관에서 가수 김수희와 최진희를 초청,‘孝 콘서트’를 연다. 강북구 문화정보센터, 도봉구의 쌍문동 청소년문화의 집, 동작청소년 문화의 집 등은 말아톤, 피노키오, 나니아 연대기 등 가족용 영화를 상영한다. 특히 노원구는 9일 서울여대 잔디밭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여준다. 봄기운이 도는 캠퍼스에서 가족간의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기회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우리구 최고야!] 은평

    [우리구 최고야!] 은평

    저는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사는 주부 김수정(39)입니다. 은평구의 ‘은평구자원봉사센터’를 자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나섰습니다. 은평구(구청장 노재동)의 자원봉사시스템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동네와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원봉사센터가 생길 때부터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런 과정을 잘 압니다. ●등록 봉사자 1만 5100여명 은평구자원봉사센터는 지난 1999년 7월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는 4대째 박정자 소장이 센터를 이끌고 있습니다. 발족한 지 7년여가 채 안됐지만 자원봉사자수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현재 등록된 자원봉사자수만해도 모두 1만 5152명에 달합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31%가 늘어난 것 입니다. 이 가운데 40대가 38.8%로 가장 많고요.50대가 17.3%,60대 이상이 14.4% 입니다.40대 이상이 70.5%나 됩니다. 특히 이 가운데 연간 10시간 이상 봉사자의 비율도 절반이 넘는 53.7%에 달합니다. 진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평을 밝히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수해 복구·집 고쳐주기등 내 일처럼 지금까지 펼쳐온 자원봉사만해도 다 펼쳐놓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불우이웃 집고쳐주기에서 부터 수해현장 복구, 보육원 어린이 돌보기와 어르신들 목욕도우미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은평구에는 특히 자랑할 만한 것들도 많습니다. 지난 2004년 4월 처음으로 조직된 ’공무원자원봉사활동단’을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성공무원으로 구성된 목욕봉사단도 추가됐습니다. 민간의 봉사활동과 어우러진 은평구만의 미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은평자원봉사센터는 여러가지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됩니다. 우선은 ‘제1기 가족자원봉사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가족간 우애와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해체돼 가는 가정을 올바로 세우고 더불어 나누는 공동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자원봉사 준전문가(para-professional)로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자원봉사 캠프 및 상담가를 추가로 육성해 파트너십을 구축할 예정이랍니다. 또 호스피스봉사단, 민요봉사단, 명예구청장 봉사단 등 자원봉사 소그룹을 적극 활용한다고 하네요. ●무료 건강검진등 사업 확대 은평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유명하고 각광을 받는 분야가 웃음치료, 미술심리치료 등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가운데 발마사지 교육프로그램은 특히 인기가 있습니다. 올해 수요에 맞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답니다. 자원봉사 마일리지제(할인가맹점), 무료건강검진, 통·반장 자원봉사단 운영, 시각장애인 마사지봉사단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인 만큼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구 자원봉사를 자랑하는 것은 보다 많은 구민들이 자원봉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랍니다. 김수정 녹번동 주부 ■ 은평구자원봉사센터가 하는 일 은평구자원봉사센터의 설립목적은 구민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사회에 잠재된 자원을 찾아 이를 체계적으로 통합하고 지원·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자원봉사정신을 확산시키고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은평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운영은 구청 사회복지과 (자원봉사팀)에서 맡고 있다. 주요추진업무 가운데 하나는 자원봉사자의 모집·배치 및 교육 등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는 것이다. 또 자원봉사단체 상해보험의 가입 및 관리, 자원봉사 수요자의 자원봉사활동 요청시 이를 지원하고, 자원봉사 캠프(Camp) 및 상담가(Advisor)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99년 7월24일 문을 열었으며 2003년 10월31일에는 은평구 자원봉사활동 지원조례가 제정됐다. 이어 2004년 6월1일에는 은평구 자원봉사활동 지원조례 시행규칙이 제정됐다. 같은 해 7월21일에는 은평구자원봉사협의회를 구성해 초대 회장으로 조규환 은평천사원장이 선임돼 2년간 은평구자원봉사협의회를 이끌고 있다. 자원봉사센터의 운영지원 및 발전에 관해 적극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 [로버트 김 희망 메시지] 또 파업입니까

    [로버트 김 희망 메시지] 또 파업입니까

    한국에 파업이 시작되는 것을 보니 봄이 오고 있다는 징조다. 한국의 파업은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꼭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항공파업의 소용돌이가 우리 시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또 철도파업이라는 소용돌이를 겪었다. 이번에는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고 해고자복직, 신규인력충원, 비정규직종업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 주요 요구인 것 같다. 이러한 요구조건들은 조합원들의 처우개선에 하나도 직접적인 요인이 못 되는 것을 가지고 파업을 단행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조합원들의 동료사랑은 전우애와 같다고 하나 이런 요구조건을 가지고 파업을 한다는 것은 일반시민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이기주의에 강한 거부감마저 들어 동정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일반 서민들의 발을 묶어버릴 수 있다는 무기를 가지고 이렇게 파업을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마치 총알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총알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을 향해 사용하는 것과 같다. 대중교통의 파업은 생명에 직접적인 피해는 안 준다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이다. 이번 파업은 대중교통에 의지해야 하는 일반 서민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이러한 파업은 우리나라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노동자 생산성은 OECD 회원국가에서 가장 하위에 있는데 파업 때문에 이같은 오명을 확고하게 지킨다면 우리나라에 투자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결국 노동자들의 직장유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대중교통사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손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사측에서는 노동자의 수를 조절하면서 손해를 줄이는 것이다. 그래야 경영을 할 줄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동자가 해고될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해고를 당했을 것이고 노동자수는 경영자가 사업을 경영하는데 그 정도의 인력이면 적정하다는 계산이 나와서 그 인원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신규인력 충원의 필요성은 경영자가 할 사항이다. 사(使)측은 노동자의 정직한 8시간의 일을 기대하면서 산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규 비정규 제도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측에서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한 노동자 비율을 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노(勞)측에서 하라 말라 할 성격이 못 되는 것이다. 또 객차 여승무원들이 사복을 입고 업무수행을 하겠다고 하는데 고객인 승객들이 어떻게 일반 여성승객과 여승무원을 분간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승객이 승무원이 필요할 때 어떻게 알아보고 도와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승무원들은 남자나 여자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아무리 철도사업이 대중교통사업이라고 하지만 손해가 없어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경영자가 노동을 착취하면서까지 사업을 경영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노동임금은 선진국의 노임에 비해 높거나 비슷한 편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영주들은 노동자들의 복리와 의견을 존중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권리 찾는데 민감한 투쟁단체라는 것은 세계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바이다. 이번에도 검은 조끼에 붉은 띠를 이마에 두르고 주먹을 흔드는 장면이 미국 TV에 방영되어 한국노조의 힘을 유감없이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노동자들도 애국자들이다. 노동자 없이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이렇게 발전시킨 노동자들은 지금과 같은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와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노동을 했다. 그래서 그들도 가난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분들 때문에 한국경제가 세계 11위에 오르게 된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방에 과시할 수 있었다. 철도공사 노조가 직장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이 들려 반가운 일이지만 정상적인 철도운행을 하기까지는 또 며칠이 걸렸다. 서민들은 그만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노조지도자들은 파업을 단행하기 전에 시민들의 입장도 생각하면서 좀더 심사숙고하는 행동을 취해 주었으면 한다.
  • 서울중앙지법에 ‘자매판사’

    “사법시험 준비로 힘들 때 힘이 돼 주던 사이였는데 이젠 근무지에서 인연을 이어가게 됐네요.” 최근 이뤄진 법관 정기인사에서 같은 법원에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는 ‘자매 판사’의 소감이다. 주인공은 예비판사를 마치고 올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에서 정식 법관 생활을 시작한 진현지(사진 오른쪽·연수원 33기) 판사와 예비판사로 같은 법원 민사합의14부로 발령받은 진민희(왼쪽·연수원 35기) 판사 자매. 소속 재판부가 똑같이 같은 법원 18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자매 판사는 복도 등 법원 곳곳에서 수시로 만나게 됐다. 언니 진 판사는 경기여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 4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개포고 출신의 동생 진 판사는 고려대 법대 재학 중에 4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진 판사 자매는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시절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건넸고 심신이 지칠 때엔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을 만큼 우애가 돈독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연합뉴스
  • 의좋은 3형제 합동결혼식

    의좋은 3형제 합동결혼식

    바빠서 “너먼저” 하는 형에 “형님 먼저 들어가셔야죠” 長幼有序(장유유서)라는 유서깊은 질서원리에 따라 세 신랑과 그들의 신부의 이름을 읽어보자. 신랑 宋榮燮(송영섭) 군(29) 신부 劉澤蓮(유택연) 양(24) 신랑 宋顯燮(송현섭) 군(26) 신부 金景珉(김경민) 양(23) 신랑 宋顯洙(송현수) 군(23) 신부 朴京子(박경자) 양(22) 3형제의 키는 후리후리한 장신.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분간할 수 없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신랑들인데 2시5분이 되자 그중 한 신랑이『형님 빨리 들어가세요!』소리친다.『너 먼저…』정신 없는 형님이 입장순서에 자칫 혼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동생이 다시 소리친다.『아니, 형님이 먼저 들어가셔야죠!』 주례 李漢溪(이한계)전도사 (성동구 중곡동 감리교회)가『첫째 신랑 입장』하자 첫째신랑이 씩씩하게 걸어들어오고 뒤를 이어 첫째 신부가 흐르는『웨딩•마치』를 따라 흘러 들어오는데, 신부의 친척되는 이가 팔에 매어달려 따라들어온다. 이어서『둘째 신랑 입장』『세째…』복잡하게 들어온다. 손님들은 와글와글 웃고 주례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나간다. 첫째 한 쌍은 석달 전 중매, 둘째•세째는 오랜 연애로 세 쌍의 신랑신부 6명이 돌아서서 손님들을 향해 선다. 맏형 榮燮군은「워커힐」등에서 일해 왔는데 곧「롯데」제과 판매부에 입사하게 되어 있고 신부 澤蓮양은 영등포우체국 교환원으로 있다가 결혼 결정과 더불어 직장을 그만 두었다. 둘째 顯燮군은 大林산업에 근무중이고, 세째 顯洙군은 韓林農園(한림농원·원장 韓太鉉)의원예사. 첫째「커플」은 3개월 전에 중매로 알게 된 사이고, 둘째와 세째는 4~5년간 熱愛(열애)을 해온 연애졸업생. 신랑 3형제와 그들의 신부들은 한결같이 홀어머니뿐. 그러니까 퍽 신통하게도 세「커플」은 편모슬하라는 점에서부터 평등한 셈. 신랑들의 어머니 朴順伊(박순이·56)씨에 의하면 원래는 첫째만 결혼시키기로 되어 있었는데, 결혼식 불과 1주일 전에 3형제 합동결혼식의 결정을 보았다. 합동결혼 결정의 주요 이유는 경비절약. 가령 3형제가 각각 결혼하려면 50만원쯤 들 경비가 동시에 식을 올리면 25만원으로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이야기. 따라서 가정의례준칙을 솔선이행하는 모범시민의 자격을 선취한 셈이기도 하다. 원래는 첫째만 하려다가, 경비절약 1주 전에 결정 뿐만 아니라 성동구중곡동 山1에 사는 宋씨 3형제는「3형제집」이라고 불릴만큼 동네에서도 우애 있기로 소문난 형제들. 그래서 동네사람들과 중곡동 감리교회(3형제는 모두 감리교 신자)에서는 합동결혼식을 종용, 권유했고 宋씨 일가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모든 집안일에 家長(가장)격으로 관여, 사실상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맏형 영섭군은 가족회의를 주재하면서 동생들과 같이 결혼하기로 결정, 그런 의도를 신부 澤蓮양에게 말해서 동의를 얻었다. 동생들의 신부, 어머니들도 쾌히 승낙, 각「커플」들은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례자의 식사가 끝나자 찬송가.「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그리고 주례의 간곡한 기도를 지나서 각「커플」의 서약.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신부는 신랑에게 시계를 각각 예물로 교환. 다시 기도. 공포. 교회 성가대「트리오」의 축혼가. 가족대표의 인사 史上 가장 짧은 인사.『바쁘신 중에 왕림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쌍의 부부는 네명의 어머니가 앉아 계신 쪽을 향해 돌아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신랑들의 어머니 朴順伊씨는「예수」의 말처럼『다 이루었다』는 안도감에 푹 젖은 표정으로 세쌍의 부부를 바라본다. 『감격스럽지요…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버지는 십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시골에(全北월천면) 땅좀 가지고 있다는데… 남의 빚보를 서다가 다 날리고 병이 나서…』 朴여인은 세 딸과 세 아들 6남매를 데리고 상경, 용산구이태원에 셋방을 얻었고 10년동안 자식들을 키워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 시장에서 각종 장사를 해왔고 행상 노릇도 했다. 신랑집 두 누나와 3형제, 한울타리 안에서 살기로 세 딸은 아들 3형제의 손위 누나들인데 둘째 딸만 홧병으로 33세에 죽고 나머지 두 딸은 어머니의 집과 한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즉 어머니 및 세 아들이 사는 집과 두 딸들이 사는 집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한울타리 안. 3형제가 각각 집은 얻어 놓았느냐고 묻자 영섭군은『아뇨, 같이 살기로 했읍니다』라고. 즉 지금 어머니와 3형제가 살고 있는 셋집에서 맏아들 내외가 살고 바로 옆에 사는 두 누나네 집의 방을 하나씩 비울 수 있으니까 두 동생들은 각각 그 방으로 들어가면 만사는 OK라는 것. 3형제 합동결혼식이 끝나자 가족사진을 3번 찍는데 3형제의 어머니 朴여인은 세번 다 들어가고, 3형제중 맏형 신랑부부가 찍을 때는 나머지 두 동생 신랑이 가족의 자격으로, 다음 둘째가 찍을 때는 다른 두 신랑이 가족의 자격으로 사진을 찍는 식이어서 복잡무쌍. 이번 결혼식에 3형제가 쓴 결혼비용은 24만원. 신혼여행은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생략. [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 ‘쥬만지’ 후속작 ‘자투라… ’

    ‘쥬만지’ 후속작 ‘자투라… ’

    ‘자투라-스페이스 어드벤쳐’(23일 개봉)는 지난 97년 ‘쥬만지’ 이후 10년만에 선보이는 후속작이다.‘쥬만지’가 주사위를 던져 말을 전진·후퇴시키는 보드게임의 이름에서 따온 것처럼,‘자투라’(Zathura) 역시 우주선 레이싱 게임의 이름이다. 쥬만지처럼 크리스 반 알스부그의 32쪽짜리 동화를 영상으로 옮겼다. 그런 만큼 ‘형제간의 우애’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는 영화다. 월터(조시 허치슨)와 대니(조나 보보)는 항상 토닥거린다. 월터는 아직 어려서 야구나 미식축구도 같이 못하는 주제에 계속 같이 놀아달라고 칭얼대는 동생 대니가 귀찮기만 하고 대니는 그런 형이 밉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대니는 고풍스러운, 그래서 음산하기까지 한 아버지(팀 로빈스)의 집 지하실에서 ‘자투라’ 게임을 발견한다.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에 형에게 가져가는데, 이게 상상치도 못한 결과를 불러온다. 우주선을 전진시키고 명령 카드를 뽑아들었을 때 그 명령 카드가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 유성우가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집은 광활한 우주를 날고, 샤워하려던 성질 고약한 누나 리사(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동면에 들어가고, 고장난 로봇과 해적 ‘조르곤’은 형제를 위협한다. 방법은 어서 빨리 게임을 끝내는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형제가 힘을 합쳐야 하는데 늘상 으르렁대던 형제가 화해할 수 있을까. 귀여운 아역배우과 푼수떼기 리사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눈에 띈다. 전체 관람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피는 물보다 진하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전우를 살리려는 애틋한 마음이 소속 부대는 물론 다른 부대 장병들에게까지 번지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16일 육군에 따르면 수도권의 6사단 예하 포병대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안상현(21) 일병은 지난달 두통과 숨가쁨 등의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6사단 장병들은 안 일병을 살리기 위해 헌혈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이 소식을 들은 인근 30사단과 7포병여단, 서울지구병원 소속 장병 수십명도 헌혈에 동참하고 나섰다. 육군 정책홍보실의 손병환 중령은 “소속이 다른 부대의 장병을 위해 앞다퉈 헌혈 러시를 이루는 것은 보기 드문 사례”라면서 “안 일병 소식을 들은 각 부대 지휘관들이 선뜻 헌혈 동참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특히 장병들은 안 일병이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비 모금운동까지 벌이는 등 진한 전우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안 일병의 부모는 “도움을 주신 사단 장병과 다른 부대 장병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중동판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으로 갈라선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루고 있다.25일 실시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도 한 형제의 숙명 같은 대결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형 지브릴 라주브(사진 왼쪽·52)는 집권 파타당 소속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마무드 아바스 수반의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고 있다. 동생 나예프 라주브(오른쪽·47)는 무장단체 하마스의 일원으로 두 사람 모두 이번 총선에 출마했다. 동생 나예프는 지금껏 5번 체포당했는데 한번은 형 지브릴에 의해서였다. 지브릴은 요르단강 서안 치안대장과 국가안보위원장 등 줄곧 치안책임을 맡아왔다. 지난 2004년 사망한 야셰르 아라파트 전 자치정부 수반의 측근으로 한때 후계 물망에도 올랐던 거물이다. 형제는 처음부터 ‘적’은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닮았다.1987년 1차 ‘인티파다(봉기)’ 당시 둘 다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주도했다. 그 뒤 형은 제도권에 몸담아 이스라엘과 협상을 벌이면서 하마스의 극단적인 무력투쟁을 제압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 그러나 동생은 한번도 형을 원망한 적이 없다.“형이 나를 하루 만에 풀어줬다.”고 고맙다는 듯 말하기도 했다.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출마한 두 사람은 모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약진하는 하마스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그나마 형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파타당과 하마스가 한 정부에서 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자살폭탄 테러를 통해 얻은 게 없다. 하마스가 실용적으로 변하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동생 나예프는 “파타당은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이라며 응수했다. 나머지 11명의 형제 자매들의 정치적 성향도 제각각이다. 정치적인 성향만 그렇지 형제는 매일 통화할 정도로 우애가 깊다. 형 지브릴은 “팔레스타인에 민주주의가 있다는 증거”라며 “정치적 관계가 형제애를 해치지는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쌍둥이 전우 ‘멋진 하모니’

    “우와∼, 저 사람은 못 다루는 악기가 없네.” 지난해 12월 해군 1함대 군악대가 강원도 동해시에서 개최한 군악 연주회에서 시민들은 잇따라 등장한 한 병사가 드럼, 북, 꽹과리 등 타악기에 이어 클라리넷 등 관악기까지 자유자재로 연주하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나중에 종합연주 코너에서 똑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이 각각 드럼과 클라리넷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고서 그들이 쌍둥이인 줄 알게 됐다. 쌍둥이 형제가 한 부대 군악대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형제애와 함께 전우애까지 키워 가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해군 1함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최원일(23) 병장과 원두(23) 상병으로, 최 병장이 30분 먼저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두 사람은 2003년 11월 최 병장이 1함대에 배치된 데 이어 이듬해 12월 입대한 동생도 같은 부대에 배속돼 형은 타악기를, 동생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형제간 소송/오풍연 논설위원

    배 고팠던 시절. 형제·자매간에도 잦은 다툼이 있었다. 고구마, 떡, 옥수수, 사탕 한 개를 놓고도 옥신각신했다. 어린 순이는 나중에 먹으려고 과자 몇 개를 다락방에 숨겨 놓는다. 이 같은 속셈을 뻔히 알고 있는 오빠와 언니는 곶감 빼먹듯 하나씩 슬쩍한다.1∼2개만 남아 있어도 그나마 다행. 착한 순이는 모두 없어진 것을 알고 한바탕 울음보를 터뜨린다. 오빠와 언니는 엄마로부터 “동생 것을 뺏어 먹으면 되느냐.”며 몇 대 쥐어 맞는다. 그것으로 끝이다. 순이는 금세 재롱을 피워댄다. 경제사정이 훨씬 나아진 지금 먹는 것 가지고는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안 챙겨 먹는다고 성화들이다. 각종 개발 붐과 함께 땅값이 치솟으면서 가족간 재산 싸움을 종종 보게 된다.80대의 아버지가 다 장성한 50∼60대 아들을 고소까지 하는 형국이다. 부모의 재산을 탐내 살인을 저지르는 패륜행위도 가끔 눈에 띈다. 그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가진 사람 주변의 얘기들이다. 상속도 꽤 많이 받은 지인에게서 “남동생이 없었으면 (부모)재산을 모두 물려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형제간 재산다툼으로 볼썽사나운 모습들을 연출하고 있다. 얼마 전 두산그룹 형제들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고소·고발에다 소송을 하더니 이번에는 한진그룹마저 형제간 소송에 끼어들었다. 현대그룹 형제의 난도 재산에서 비롯됐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한마디로 짜증스럽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기업인들의 재산타령을 누군들 곱게 보겠는가. 일말의 수치심이라도 있다면 소 취하 등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들 가족에게 쏟아지는 비판의 강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없으면 아쉬운 게 재산이다. 돈이 없어 목숨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곱씹어보자. 그것 때문에 형제간 우애가 곧잘 금간다. 형제끼리 아예 발길을 끊고 사는 예도 많이 본다. 이 경우 재산은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다.“없이 살아야 우애라도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허언은 아닌 것 같다. 재산타령을 않고 사는 우리네가 더 부럽지 않겠는가.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儒林(50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2)

    儒林(50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 (22) 노씨부인의 이러한 열녀적 행동은 실록에도 실릴 만큼 모범적인 것이었다.‘인조실록’에는 노씨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사 조익(趙翼)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신이 듣기로는 이이는 나면서부터 남달리 뛰어나 말을 배울 적에 이미 문자를 알았다고 합니다.… 이이는 집이 가난하여 형제가 모두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하였는데, 그의 처가는 재산이 조금 있어 장인 노경린이 서울에 집을 사주어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의 가난함을 차마 못 보아서 곧 그 집을 팔아 무명을 사다 나누어 주었으며, 끝내 한 고랑의 터전도 없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갈 수 없는 가난한 모든 형제를 불러다 같이 살며 죽을 쑤어 함께 먹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폐질을 앓았으나 죽을 때까지 예의와 공경을 다하고 삭망(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지내는 제사) 때마다 자제들을 불러 모아 예절을 다하였습니다. 집안에서의 몸가짐이 이와 같았으니 인륜을 다하였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실록의 기록을 참조하면 율곡은 그 무렵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할 정도’로 몰락한 가문의 후예였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과거시험을 보았던 이유를 ‘우리 집안이 대대로 생업이 없으므로 곤궁하여 가계를 지탱하지 못해 노친이 집에 계셔도 능히 맛있는 음식을 드리지 못 한다.’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다행히 아내 노씨가 비교적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서울에 집을 사주어 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보이나 율곡은 이를 팔아 그 당시에 화폐역할을 했던 무명을 사다 형제들에게 나누어줄 만큼 가족의 우애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 노씨는 이에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실록에 나와 있듯이 예의와 공경을 다해 남편을 섬겼던 현모양처였다. 이러한 남편공경은 노씨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병약한 몸이었으나 노씨는 율곡이 간 뒤에도 8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자초한다. 이른바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자 주위에서는 피란을 가라고 권유하였으나 노씨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단연코 거부하였다고 한다. “하늘처럼 섬기던 어른을 잃은 지 벌써 8년이 지났으니, 내 목숨이 너무 모질다. 그러니 구차하게 살아 목숨을 부지하여 무엇 하겠느냐.” 왜병들이 쳐들어오자 노씨 부인은 신주를 품에 안고 시부모와 율곡의 묘가 있는 파주의 선영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마침 적병들이 노씨를 찾아 무덤까지 올라오자 그녀는 신주를 안은 채 왜병을 향해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네, 이놈들.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칼을 들고 무례히 침입할 수 있느냐. 하늘이 무서운지 모르겠느냐.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왜병들은 일제히 칼을 들어 노씨 부인을 베었으며, 그 길로 노씨 부인은 왜병들의 칼에 난자당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남편의 무덤가에서 장렬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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