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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멘트품귀 수그러들 기미 없다/「파동」의 문제점과 전망

    ◎상반기 건축 작년의 갑절… 수요 급증세/매점매석 판쳐 2천원짜리가 5천원/내년부터나 수급균형… 93년엔 공급과잉 전망 시멘트품귀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해마다 장마가 시작되면 건축경기가 한풀 꺾여 시멘트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상례이나 올 여름에는 기나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두배의 웃돈을 주고도 시멘트를 구하지 못하는등 시멘트부족현상과 함께 유통과정상의 매점매석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시멘트파동은 7∼8월의 우기와 혹서기를 지나 본격적인 건축공사가 재개될 9∼10월께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특히 하반기에는 그동안 연기돼 왔던 정부발주공사 가운데 일부의 착수가 불가피하며 분당ㆍ평촌 등의 신도시개발,비제조업 부문의 건축발주등으로 수요증가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상공부는 7월부터 시멘트수출을 전면 중단한데 이어 당초 수입목표 1백25만8천t보다 30만t을 더 수입키로 하는등 시멘트확보를 위한 비상작전에 들어갔다. 또 당초 오는 10월말까지로 돼 있는 국내 7개 시멘트업체의 생산설비증설을15일 정도 단축하고 콘도ㆍ호텔ㆍ안마시술소ㆍ유기장 등 호화사치성 건축허가 제한시한을 9월말에서 올연말까지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시멘트구입난이 11월부터 서서히 풀리게 되고 비수기인 12월을 넘긴 내년부터는 수급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상공부는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여름장마철에도 곳곳에서 천장에 비닐을 치고 공사를 강행할 정도로 건축경기과열현상이 아직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데다 내년부터는 신도시건설공사가 본격화될 예정이고 중앙고속도로건설등 건자재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여 시멘트파동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올들어 유례없는 시멘트파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정책당국인 상공부와 건설부의 수요예측이 주먹구구식이고 그나마 대책마련보다 서로 책임전가에 급급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의 시멘트파동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토지공개념 도입에 따른 2백평이상 나대지(노는 땅)에 대한 공한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한 건축급증 ▲전세금폭등에 따른 전세용 건축증가 ▲정부의 세제ㆍ금융지원에 따른 다가구주택의 건축증가 ▲지하실 양성화와 서울 강남지역의 건축용적률 완화 ▲일정규모 이상 건축물에 대한 주차장설치 의무화조치 등으로 전반적인 건축허가면적이 올 상반기동안 전년동기보다 2배나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상공부는 건설부측이 시멘트를 비롯한 건자재공급대책에 대한 사전협의 없이 건축유발정책을 일시에 발표해 시멘트 품귀가 일어났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건설부는 주택 2백만호 건설이나 수도권 신도시계획등 대규모 시멘트소요사업이 결정된 직후 상공부가 즉각 시멘트수급대책을 세우지 못한데서 온 결과라고 반박하고 있다. 시멘트파동은 엉뚱하게도 양 부처간의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으나 이들이 정확한 시멘트수요 예측에 둔감했고 시멘트부족사태에 대해 기민한 정책적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서 공동의 책임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우리나라의 시멘트수요는 연간 3천6백37만t이나 공급능력은 3천5백9만t에 불과 1백28만t가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7개 시멘트업체들은 올 연말까지 모두 1천2백20만t의 생산설비를 증설할 예정이다. 그런데 증설이 10월말까지 완료되기 때문에 올해 증설기여 능력은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올들어 6월말까지 상반기동안 시멘트수요는 1천6백54만t으로 전년동기보다 17% 급증한 반면 공급은 11% 늘어난 1천5백93만t에 그쳤다. 상반기동안 60만5천t이 부족했고 그만큼 시멘트파동을 부채질한 셈이다. 시멘트의 공장도가격은 한 부대당 1천8백59원,대리점 판매가격은 2천1백원. 이를 건자재상이나 공사장에 팔 경우 최고 5천원을 넘을 정도로 가격폭등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시멘트부족현상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으나 불합리한 유통과정이 시멘트의 실수요자가격을 부풀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올들어 매점매석에 따른 가수요와 가격폭등을 막기 위해 시멘트회사들이 지난 4일부터 실시해 온 사실상의 공장직판체제인 시멘트합동판매제가 브로커와 폭력배들의 횡포로 실수요자들이 골탕을 먹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또 시멘트수출이 전면중단됨에 따라 애써 개척해 놓은 수출시장이 막히는가 하면 수입된 중국산등 외국시멘트가 KS허가기준을 넘지만 국내 시멘트보다 품질이 떨어져 부실공사마저 우려되고 있다. 이밖에 아이로니컬한 것은 시멘트공급과잉에 대한 우려이다. 각 시멘트업체들의 증설계획이 최종 완료되는 93년께는 국내 시멘트생산능력이 5천5백13만t에 이르러 수요보다 공급이 넘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상공ㆍ건설부 등 관계당국간의 확실한 수요예측과 공급대책마련,그리고 철저한 행정당속으로 유통과정상의 불합리한 요인들이 제거되지 않고서는 시멘트파동은 품귀와 과잉생산을 반복하면서 계속 재현될지도 모른다.
  • 김대중·이기택총재 엇갈린 주장의 뒤안

    ◎“수순다툼”… 「야통합」 새 국면에/통합외치며 「지분경쟁」에 돌입/시기싸고 이견… 성사까진 곳곳 암초 평민당의 김대중총재와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는 지난 18일 양당총재회담이후 경쟁적이라고 할 정도로 통합의 당위성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있어 적어도 외견상 통합분위기는 여느 때보다 고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동안 이른바 「세대교체론」에 입각해 김대중총재 2선퇴진론을 염두에 두고있던 이총재가 양당 총재회담직후부터 눈에 두드러지게 강한 톤으로 통합론을 역설하자 정가주변에는 「김·이 밀약설」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두 총재가 의원직 사퇴로 불붙은 통합논의를 경쟁적으로 풀무질하자 정가의 관심은 과연 조기통합이 가능할 것인지,그리고 통합이 된다면 어떤 방식과 수순을 거쳐 귀결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당 총재는 통합시기에 대해서 김총재가 8월,이총재가 9월 정기국회를 전후한 시기로 정해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합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에는 외견상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난 21일 보라매공원 집회에서 밝힌 김총재의 「선 통합선언 후 조직정비」 방안과 이총재의 「3단계 통합」 방안은 창당기간중의 공동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공통분모이외에는 통합신당을 향해 밟아나가는 수순이 판이하다는 점에서 통합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더욱이 이총재가 24일 그동안 대외적으로 언급을 자제해오던 3단계 통합방안과 관련,「통합결의→8월중 국민공감대 형성→9월중 통합선언」 방식을 밝혀 선 통합선언을 주장하는 김총재와 의견을 달리해 협상과정에서의 이견조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는 27일의 평민당전당대회이후 ▲8월초에 평민·민주 양당이 우선 통합을 선언하고 ▲이어 재야의 통추회의가 합류하며 ▲3자가 참여하는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당명으로 등록한 뒤 통합수임기구를 통해 조직책 선정등 구체적 창당작업에 들어가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방식은 야권이 「밀실야합」으로 비난하고 있는 민자당의 합당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아이로니컬할 뿐 아니라 창당작업과정에서 잡음을 없애려면양당 총재간의 「묵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민주당측의 시각이다. 평민당과 김총재가 이처럼 의원직 사퇴이후 조성된 여야 대치국면에 편승해 「조기통합선언」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것은 일단 통합선언만 하면 우세한 조직력을 통해 대세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과거 평민당내 재야입당파 모임인 평민연이 50대50 지분을 주장하며 평민당에 들어왔으나 거의 형체조차 미미할 정도로 「용해」된 전례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이에비해 민주당의 이총재는 지난 21일 보라매공원 집회에서 「통합결의」를 한 여세를 몰아 ▲8월 한달간 김총재·김관석 통추회의대표와 함께 전국을 순회,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이와동시에 「통합추진 15인 협의기구」를 통해 당대표경선·지도체제·지구당조직책 선정을 위한 조직강화특위 구성문제 등 통합방안을 정리하고 ▲9월 중순경 통합선언후 인물본위·체질개선 원칙에 따라 조직책을 선정한다는 구상이다. 말하자면 「선 이견조정 후 통합」 방식의 통합안인 셈이다. 이총재가이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김총재의 강력한 구심력에 따른 일사불란한 평민당에 비해 민주당은 원심력이 큰 당이라는 데 있다는 계산이다. 다시말해 민주당은 통합에 관한 당내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이총재의 일방적인 통합선언이 있을 경우 당내반발과 이탈을 제어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26일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통합에 관한 당론을 수렴키 위해 열리는 민주당 70개 지구당위원장회의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전후 사정과 통합을 바라는 국민정서를 함께 고려한다면 민주당은 이총재가 통합당위성을 계속 강도높게 외쳐 김총재의 조기통합주장에 맞불을 지피면서 김정길·노무현의원 등 협상대표들이 50대50 지분에 의한 실질적 경선등을 주장해 우회적으로 「세대교체론」을 관철해 나가는 양면전략을 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조정역을 맡은 통추회의가 통합성사 여부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총재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전략에 따라 지난 18일 총재회담에서 통합이후 이총재의 위상에 대한모종의 언질을 줬을 경우 통합은 김총재의 방식대로 8월 초순부터 가속화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김총재가 여전히 대권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고 ▲김·이총재간의 신뢰도가 크지 않으며 ▲민주당에 대한 이총재의 지도력이 확고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한다면 그같은 「밀약」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구본영기자〉
  • 미 대법원,보수파 득세 예고/“진보판사”브레넌 전격사임

    ◎5대 4의 보혁균형 깨질듯 미연방대법원의 진보적 판결을 주도해 왔던 윌리엄 브레넌 판사(84)가 20일 밤 전격사임함으로써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50년만에 가장 보수적인 성격이 짙은 연방대법원을 구성할 기회을 갖게 됐다고 법률 분석가들이 21일 말했다. 브레넌의 사임으로 대법원 판사 지명권을 갖고 있는 공화당의 백악관과 이에 대한 인준권을 갖고 있는 상원간의 접전이 불가피해졌는데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상원은 이미 지난 87년에 보수주의자 로버트 보크의 대법원판사 인준을 거부한 바있다. 부시 대통령은 리처드 손버그 법무장관과 존 스누누 비서실장 등의 참모들과 브레넌판사의 후임인선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부시대통령의 결정은 낙태와 기타 첨예한 사회문제에 있어 연방대법원내에서 보수파의 입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취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에 대해 미상원 법률위원회 소속 폴 사이먼 민주당의원은 『대통령이 브레넌의 후임에 이념적으로 극우에 치우친 인사를 지명할 경우 우리는 큰 싸움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명으로 구성된 미연방 대법원은 보수파들이 이미 5대 4로 우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몽고,오늘 첫 자유총선/집권공산당 우세 전망

    【울란바토르 로이터 연합】 공산권을 휩쓰는 개혁의 물결에 따라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인정한 몽고는 22일 사상 처음으로 자유총선을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물을 예정인데 집권공산당이 과거처럼 강력하게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어려울지 모르나 결국 공산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백만명의 국민중 절반가량이 선거자격을 갖고 있는 몽고는 22일 1차 예비선거에 이어 오는 29일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2단계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1차 예비선거에 출마한 2천3백명의 후보가운데 70% 가량이 공산당원인데 이들 후보들중 1차예비선거에서 8백60명이 선출되며 최종투표에서 4백30명이 선출될 예정인데 이번 총선에서 공산당은 여전히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남게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 「생명의 상품화」 미서 논쟁 가열/「장기매매」의 비윤리성 문제화

    ◎“목숨연장 위한 조치” 옹호론도 비약적인 발전을 계속하는 생명공학의 혁명,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금전만능 풍조의 확산,이같은 요인들이 겹쳐져 미국사회는 지금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사회윤리의 대혼란에 빠져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최근 보도했다. 특히 부유한 사람들의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이 신장이나 각막등 자신의 신체의 일부을 팔고 불임부부를 위해 금품수수를 목적으로 대리모출산이 성행하는가 하면 돈을 받고 정자나 난자를 제공하는 일도 보편화되고 있다. 이같이 기존의 생명윤리를 전면부정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이후 오게될 두려운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을 이 신문은 담고 있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 인간 자체에 대한 소유와 매매는 법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돈의 위력」앞에 장기매매산업은 점점더 각광받는 새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내에 장기이식수술을 위해 장기제공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2만6백여명에 달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만 해마다 9천건의 신장이식수술,1천7백건의 심장이식수술,2천2백건의 간장이식수출이 행해지고 있으며 각막이식은 3만건을 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또 이들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이 지불하는 대가만도 1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장기매매와 함께 각광받는 또하나의 산업이 지난 88년 「베이비 M」사건으로 전세계에 화제가 됐던 대리모계약. 「생식산업」이라고도 불리는 이 대리모출산에는 전문중개업자까지 끼어들어 중개업자가 대리모출산을 의뢰하는 불임부부로부터 약4만달러를 받아내고 이중 1만∼1만5천달러만 실제 대리모에게 지불하는 착취도 벌어진다. 더욱이 의뢰부부들이 건강한 아이만을 희망하기 때문에 임신중 태아의 건강여부를 검사하는 품질관리(?)까지 실시,태아의 건강에 이상이 발견될 경우 즉각 유산시킨다는 조항도 계약조건에 반드시 들어가는 비인간적 행위마저 아무 거리낌없이 자행되고 있다. 한편 생명공학의 발달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조지 무어 사건. 무어씨는 지난 76년 캘리포니아대 병원으로부터 자신이 매우 특이한 종류의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비장을 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 병원의 한 전문가가 무어씨의 암세포로부터 특수세포를 배양시키는데 성공,이로인해 약 30억달러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자 무어씨는 자신의 암세포에서 배양한 세포로 발생한 이익이므로 자신도 그 이익의 일부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캘리포니아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은 1심(86년)에서는 무어씨가 패했지만 항소심(88년)에선 오히려 무어씨가 승리,지금 주최고재판소에 계류돼 있다. 결국 암세포까지도 「돈」이 되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장기매매나 대리출산 등이 점점 보편화되면서 이의 허용여부를 둘러싼 찬반논쟁도 격렬해지고 있다. 미법률가기금의 로이 앤드류스씨 같은 사람은 『장기제공자나 수혜자는 물론 사회전체까지도 장기시장으로부터 이익을 얻게될 것』이라며 자유로운 장기매매시장의 창설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반대론이 더 우세하다. 반대론자들은 인체를 물건과 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체의 일부를 파는 것이 허용된다면 결국 자신을 노예로 파는 일도 정당화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인체의 장기나 태아를 매매하는 것은 곧 인명에 대한 전통적인 경외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는데 있다. 인체를 물건처럼 취급하는데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이것이 지금 미국사회가 풀어야할 가장 어려운 윤리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 G7 정상회담 통해본 위상변화(특파원수첩)

    ◎미 영향력 퇴조… 떠오르는 다극체제/바기구 해체뒤 전쟁억지력 효능 상실/기술ㆍ경제력 우세한 일ㆍ서독 위상 격상/“미ㆍ일ㆍ독 3극시대 임박”… 불ㆍ영선 초조 지난 2주일 사이에 런던과 휴스턴에서 잇따라 열린 서방 정상회담은 냉전종식과 더불어 변화된 강대국간 역학 관계와 다극화된 세계의 새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동서 대결시대에 서방측 맹주 노릇을 했던 미국은 단지 세계를 이끌어 가는 여러 강대국 중의 하나로 그 위상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 미국의 많은 국제문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나토 정상회담(런던)과 서방7개국 경제정상회담(휴스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선택적으로 행사 했을뿐 전면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휴스턴에서 농산물 보조금 감축 협상의 진전을 위해 애를 썼고 런던에서는 나토의 군사 독트린과 전략 재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치 강국으로 부상중인 두 경제대국 서독과 일본이 소련­중국에 대한 경제원조 문제에서 자국의 이해를 추구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자 부시 대통령은순순히 두 나라의 뜻에 따랐다. 부시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모두 빡빡하게 대처하면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린 과거와 전혀 다른 시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강조하며 『종전엔 동서간의 군사 대결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거의 해체된 가운데 철수하는 병사의 모습과 민주주의가 전체주의 체제를 대체하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시각은 부시의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는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세계에 강조하면서 집권했던 1980년대의 접근법과는 상이한 것이다. 레이건은 맹방들에게 미국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예컨대 1981∼82년에 레이건은 소련의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에 협력하는 서구 기업체에 대해 제재를 가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소련 위협의 감소와 세계경제의 변화는 이러한 에피소드를 먼 옛날 이야기처럼 만들어 버렸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이 맹방들과 경제적 정치적 파워를 공유함으로써 세계가 다극화 시대로 복귀하는 것을 고무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총리는 최근의 국제질서 변화에 주목하며 『휴스턴 회담에선 미국의 달러,일본의 엔,서독의 마르크 화에 각기 바탕을 둔 3대 국가 그룹이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미국이 언짢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건 사건이 아니라 소련권위협의 감소와 더불어 유럽이 자신의 개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휴스턴에 모인 7개국 가운데 자기주장이 가장 강했던 나라는 서독과 일본이었다. 서독의 헬무트 콜총리는 독일통일에 대한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재빨리 소련에 차관을 제공하고 서방 각국의 동참을 역설했다. 또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 총리는 천안문 사건후 중단된 대중국 차관을 재개키로 결정하고 58억달러 규모의 차관사업 계획을 가져왔다. 미국이 두 나라의 뒤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부시는 두 나라에 대해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청신호를 보냈다. 설령 부시가 서독과 일본의 제의에 동참하기를 원했더라도 돈이 많이 드는 새로운 국제의무를 짊어지는것을 허용치 않는 미국의 방대한 재정 적자 때문에 이에 쉽게 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카터 미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다극화로 나아가는 맹방 관계의 변화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1970년대의 지미 카터 및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에도 유사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와 아주 크게 다른 것은 일본이 단지 경제 초강국으로만 머물지 않고 조심스럽게 정치 초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이 정치적 리드를 서독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냉전의 소멸이 이러한 변화의 주요 원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사실상 해체됨에 따라 전쟁 억지력에서 나오던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기술이나 경제력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브레진스키는 말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거나 새 시대엔 미국의 지도적역할이 끝났다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브레진스키는 덧붙였다. 부시는 미국의 영향력 퇴조를 내다보는 견해에 동조하지도않지만 영향력 유지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입장도 아니다. 냉전 이후의 새 질서가 확산될 경우 어떤 종류의 정책이 전개될 것인지,예컨대 통일된 독일과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지금 헤아리기엔 불확실성이 많다. 가장 불확실한 것은 소련의 향방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소련이 눈을 안으로 돌려 경제위기 해결에 전념하는 한 이 시대의 또하나의 긍정적인 부산물로서 전세계에 걸쳐 지역분쟁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레너드 스펙터는 이라크처럼 강력한 지역국가로 성장한 일부 국가들이 미국의 이해에 도전할지 모르나 소련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세계의 다극화 속에서도 소련의 위축에 따라 미국은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방송4사 제작 정상화/노조 「공대위」,복귀 결정

    ◎“「프로그램 투쟁」으로 전환”/KBS 지방 15개 국선 어제부터 참여/“거부 명분 없다” 분위기 큰몫/7백여명 “방송법 철폐” 평화대행진 방송관계법 개정을 반대하며 3일째 제작을 거부해 왔던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 등 4개 방송사노조는 17일 상오5시부터 방송제작에 복귀하기로 했다. 이들 4개 방송사와 지방 MBC노조대표로 구성된 「공동대책위」는 16일 하오4시30분쯤 서울 KBS본사 노조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공동대책위의 결정에 앞서 KBS광주총국 등 15개 지방국은 이날 각 지역국별로 사원총회를 가진 끝에 「공동대책위」의 회의결과와는 관계없이 이날 낮12시를 전후해 모두 제작에 복귀했다. 「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와 민자당이 일방적으로 방송관계법을 통과시킨데 대해 방송4개사가 제작거부투쟁을 벌인 것은 정당한 선택이었으며 그동안의 투쟁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해 제작거부를 마치고 보다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국민연합」 연대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고 지속적인 국민홍보와 프로그램투쟁을 통해 방송악법의 조속한 폐지와 민주언론쟁취 등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 앞으로 「대책위」을 「방송악법철폐 공동대책위」로 개편,민주세력과 연대해 반민자당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공청회 등을 통해 독자적인 방송관계법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이날 「공동대책위」회의에서는 제작거부를 끝내고 즉각 방송제작에 복귀하자는 주장과 방송관계법에 대한 노조측 입장을 담은 프로그램의 방영을 회사측에 요구,2∼3일뒤 조건부로 제작에 복귀하자는 주장이 맞섰으나 즉각 복귀쪽이 우세했다. 「대책위」의 제작복귀결정은 방송관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상 제작거부의 명분이 약해진데다 노조원들의 상당수가 이미 제작에 참여하고 있고 더이상 사태가 악화되면 회사측으로부터의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실정을 감안한 것이다. 노조원들이 제작에 복귀함에 따라 4개방송사의 프로그램은 17일부터 정상화됐으나 「대책위」가 복귀후에도사내투쟁을 계속할 것을 선언하고 있어 방송관계법 개정을 둘러싼 후유증은 한동안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는 제작복귀 뒤에도 노조원들이 주장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및 방송을 할수 있도록 회사에 요구키로 했다. 이에앞서 KBS노조의 실국별 대표자 30여명은 이날상오 본관 6층 제1회의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 끝에 노조측에 대해 『가능한한 빨리 제작에 복귀할 것』을 요청했다. KBS보도본부소속 기자 70여명도 이날상오 기자총회를 열고 『하루빨리 제작에 복귀할 것』을 노조측에 촉구했다. 한편 「공동대책위」는 이날 하오2시30분부터 「언론노련」과 각 방송사 노조원 7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KBS본관앞 5ㆍ16광장 일대에서 「평화대행진」을 갖고 방송관계법을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KBS측은 이날 『제작거부가 계속될 경우 제작거부 사원들에 대해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각 부서별로 근무태만ㆍ근무지이탈 등을 철저히 파악,이를 토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루마니아 5만명 반정시위/민중혁명뒤 최대“구속자석방”요구 도심행진

    【부쿠레슈티 AP AFP 로이터 연합】 루마니아인 5만여명은 13일 부쿠레슈티시에서 학생지도자 마리안 문테아누를 비롯한 지난달 중순의 소요 과정에서 당국에 체포된 인사 1백77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민중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가두시위를 벌였다. 문테아누의 석방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에 중년층 자녀들을 동반한 부부등 많은 시민들이 합세,그 숫자가 5만여로 늘어난 시위군중들은 『자유,자유』『공산당은 물러가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쿠레슈티시 중심의 오페라 광장에서 시북부의 정부청사까지 약3㎞에 걸쳐 가두행진을 벌였다. 정부청사앞에 도착한 군중들은 4명의 대표들이 청사안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성명서를 전달한뒤 다시 오페라 광장을 향해 행진을 벌였는데 일부 시민들은 집권 구국전선이 차우세스쿠의 공산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 외언내언

    「스탈린이라면 당장에 그를 총살해버렸을 것이다. 흐루시초프였다면 연금생활자로 만들어 시골 별장에 유폐했을 것이고 브레즈네프였다면 어딘가 먼 나라의 대사로 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그를 자신의 주변에 둘 생각인 모양이다. 소련개혁의 향방은 이 두 사람의 기묘한 줄다리기에 따라 좌우될 것이 틀림없다」 ◆지난 6월초 소련공산당 급진개혁의 「민주강령파」 지도자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선출됐을 때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옐친을 두고 한 말이다. 방미 길의 캐나다에서 소식을 들은 고르바초프는 『대결의 양상이 보여 걱정이다. 그가 정치적 장난을 하려 든다면 우리는 아주 곤란한 시기를 맡게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가 12일 마침내 공산당 탈당의 폭탄선언을 했다. 고르바초프와의 타협과 협력을 비치기도 하고 갑자기 그를 공격하기도 하는등 종잡기 힘든 태도를 보여온 그가 마침내 정치적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이번 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가 수적 우세의 보수파에 밀려 당대회를 보수파가 원하는 방향의 타협으로 마무리해가는 데 대한 반발이요 견제의도임에 틀림없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유럽에서와 같은 공산당의 완전 몰락을 원하는 것이 옐친의 「민주강령파」들이다. 개혁의 가속화를 위한 것이라 해도 당장의 소 공산당 몰락은 위험천만의 모험일 것이다. 소련은 동유럽과 다르고 너무 크고 복잡한 나라다. 서방세계도 점진적인 고르바초프 방식을 동정하는 눈치다. ◆작년에 13만6천6백명,금년 1·4분기만 8만2천여명이 탈당했지만 아직도 1천9백여만 당원의 소 공산당이다. 민주강령파는 50만 당원의 사회민주당 창당을 표방하고 있으나 대중기반이 약하다. 지난 2월 공산당 1당독재 포기 후 소련엔 이미 60여개 군소정당이 생겨났으나 공산당과는 상대가 안되는 잡당들이란 평이다. 옐친과 민주강령파의 탈당이 공산당을 상대할 수 있는 강력 야당을 탄생시킬 것인지 주목거리다.
  • 고르비위상 타격… 소 공산당 분열위기/옐친ㆍ민주강령파 탈당의 파장

    ◎당정분리등 개혁수용 미흡에 반발/지지세력 적어 「홀로서기」엔 의문도/당내균형 깨져… 본격적 정치다원시대 신호탄 소련공산당내 급진개혁파 기수이며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 12일 탈당을 선언한데 이어 당내 급진개혁세력인 민주강령파도 신당결성을 위해 탈당한다고 발표,소련공산당은 혁명후 초유의 분당사태를 맞게됐다. 이들의 탈당은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1903년 갈라선 이래 87년만의 일로서 당내외에 적지않은 파문을 그려갈 것으로 보인다. 옐친과 민주강령파가 12일 탈당선언을 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옐친은 지난 5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당선된후 6월에는 「보다 나은 지도자가 되기위해」 공산당원 자격을 유보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또 공산당대회 대의원 25명을 대표하여 12일 탈당을 발표한 민주강령파 지도자인 쇼스타코프스키도 오래 전부터 당대회에서 만족할만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당을 떠날 것이라고 말해 왔었다. 이들이 요구해 왔던 것은 ▲국가에 대한 당의 지도적 위치 폐기 ▲각급 행정ㆍ군ㆍ공장에 조직된 당세포조직 해체 ▲조속한 시장경제로의 이행 ▲민주집중제 포기 등이었다. 28차 당대회를 앞두고 옐친은 이 가운데 ▲당명변경 ▲당강령(민주집중제)변경 ▲제민주세력과의 연합 등으로 요구사항을 축소했으며 고르바초프와 나란히 앉아 담소하는 등 타협의 신호를 보냈었다. 그러나 당대회가 진행되면서 보수파의 수적 우세가 확인되고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공고히 하는 대신 당강령에 민주집중제를 유지시키고 또 공산주의를 「문명발전의 유일한 전망」으로 규정하는 등 보수파의 주장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고르바초프가 민주강령파 소속대의원을 상당수 중앙위원회 명단에 포함시키긴 했으나 옐친 등의 생각보다는 적었고 부서기장에 개혁적 보수파인 V 이바시코가 당선되는 등 급진개혁파의 당내 입지가 죄어 들어오는 형국이 됐다. 게다가 12일 당대회 토의에서 당내 파벌을 계속 불허키로 의견이 모아짐에 따라 탈당의 벼랑으로 내몰렸다. 이처럼 급진개혁파의 탈당이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으며 이번 당대회 과정을 통해 불가피해진 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탈당선언은 당내외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급진개혁파의 전격적인 탈당은 지금까지 보수파,고르바초프의 중도개혁파,옐친이 이끄는 급진개혁파 등 3개 파벌이 벌이던 「당내경쟁」 이 이제는 「당외경쟁」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련된 3개 세력 모두 상당한 위상변화를 겪게 됐다. 이번 당대회 기간동안 수적우세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의 능란한 솜씨에 영향력 행사의 어려움을 겪었던 보수파로서는 급진개혁파의 탈당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인 셈. 보수파의 리더격인 리가초프가 『당이 오히려 잘 돌아갈 것』이라고 반색한 것만 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옐친과 민주강령파의 탈당선언이 당원의 대거 탈당으로 이뤄질 경우 이들은 중도개혁파와 급진개혁파간의 알력으로부터 어부지리를 얻으려 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입장은 간단치 않다. 일면 「눈의 가시」가 빠져 나감으로써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보수파와 급진개혁파를 양쪽 균형추로 중도개혁의 곡예를 펼치던 고르바초프로서는 한쪽 균형추를 상실함으로써 보수파의 공격에 직접 노출되는 부담이 생기는 등 이번 당대회의 승리가 공허해질 우려도 있다. 또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으로서 독자적인 노선을 취할때 겪게 될 어려움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탈당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빼든 급진개혁파도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 민주강령파는 4천6백여 대의원 가운데 소속대의원이 1백여명에 불과하다. 당원 40%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도부도 3개 세력으로 갈려 있고 지지자 40%가 탈당에까지 동조할지도 의문이다. 쇼스타코프스키가 12일 오는 가을 신당창당을 위해 공산당을 떠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소속원들에게 당분간 공산당적을 버리지 말라고 한 것도 지지확보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노선도 분명하지 못하며 아직은 소련사회에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당에 필적할 실력과 지지가 없어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이들은 이러한 약점보완을 위해 60여개 군소 제정당과의 연합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든 급진개혁파의 분당은 단순히 공산당의 분열이라는 차원을 넘어 다당제의 시발이며 소련사회의 급격한 다원화를 예고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 소 공산당대회가 남긴 것(사설)

    제28차 소련공산당대회가 10여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기로에 선 소련공산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개혁은 이루어질 것인가. 전통보수파와 급진개혁파 그리고 그 중간에서 협공을 당하는 고르바초프 중도개혁파간의 갈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이번 소 공산당대회를 바라보는 세계적 시선들의 초점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볼때 이번 소 공산당대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마디로 타협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을 준다. 고르바초프 개혁시작이후 소 공산당은 개혁을 거부하는 리가초프 중심의 강경보수파와 보다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는 옐친중심의 급진개혁파,그리고 그 중간의 점진적이고 질서있는 개혁을 추구하는 고르바초프 중심의 중도개혁파등 3파전 양상을 보여왔다. 그런 양상은 그대로 이번 당대회에도 반영되었으며 당대회가 이들 3파간의 격렬한 공방설전으로 시종된 것은 그러한 배경의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파는 공히 파국을 원하지는 않았으며 격렬한 설전의 이면에서는 행동의 타협을모색했다. 그것은 소련이라는 국가와 그들 3파가 처한 현실에 의해 강요된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건설적 타협으로 원하지는 않으나 참을 수는 있는 탈출구를 모색했다. 그 구심점의 역할을 한 것이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겸 공산당서기장이었다. 서방정치인을 능가하는 정치수완으로 정평이 나있는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소련을 자본주의로 몰아간다고 비난하는 보수파를 향해 개혁이냐 암흑에로의 복귀냐를 택일하라고 공박하면서도 지난 5년의 개혁이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은 솔직히 인정하면서 앞으로 2년의 여유를 요청했다. 2년내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자신을 포함하는 현 지도부가 사퇴하겠다는 약속은 개혁에 임하는 고르바초프의 자신과 불굴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수ㆍ급진 양파의 협공을 동시에 무마하고 견제하는 것이었다. 급진개혁파에 의해 개혁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공산당 자체의 개혁문제에서도 타협점이 모색되었다. 당초 서기장제를 폐지하고 당의장제를 신설하는 한편 당정치국도 폐지하고 간부회의를 신설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고 부서기장제를 신설해 당무를 총괄케 하는 한편 정치국을 확대시키기로 한 것은 명분상 보수파의 요구를 반영하는 한편 실질상으로는 개혁파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타협이었다. 그것은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을 통한 개혁을 추진하되 당의 개혁을 통해 그것이 앞으로는 개혁의 방해물이 아니라 촉진제가 되도록 하겠다는 쪽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당관료들의 와중에서 공산당의 그러한 개혁이 도대체 가능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타협과 개혁파가 극력 반대하고 있는 당강령의 이른바 「민주집중제」 유지결정등에서 느끼는 일반적인 인상은 이번 공산당대회가 고르바초프의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그의 승리라고는 하지만 보수파의 견제가 강력하게 반영된 일면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보수파의 수적 우세에 밀려 양보와 타협에 응한 것으로 보이는 급진개혁 민주강령파의 이제부터의 동향이야말로 소 공산당 당대회이후의 가장 중요한 주목거리가 이닐 수 없다.
  • 「자주국방과 국방비 수준」안보 토론회

    ◎“미군철수땐 국방비 한해 37억불 더 부담”/공군 방공망 확충ㆍ해군전력 강화 급선무/방위비 30% 늘려야 북한도발 억제가능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소장 권문술교수)는 28일 하오 대학원 복지관에서 「자주국방과 국방비적정수준」에 대한 안보학술토론회를 가졌다. 이 토론회에서 안보문제연구소 박춘삼교수는 「남북한 군사비의 비교」,단국대 정용석교수는 「주한미군철수대비 전력증강방안으로서의 추가국방비 소요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교수의 발표논문요지는 다음과 같다. 폴 월포위치 미국방차관은 지난 4월19일 주한미군 3단계 철수계획을 의회에 보고하면서 1단계(90∼92년)에는 7천명을 감축하고 2단계(93∼95년)에는 2사단의 병력구조를 재조정 감축하며 3단계(96∼2000년)에는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맡고 미군은 지원적지위로 물러선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철수에 따른 전투력보강을 위해서는 한국의 국방비 추가부담이 요구된다. 주한미군의 한국주둔소요경비산출은 3가지 범주로 나누어진다. 첫째 주한미군유지를 위해 미군이 연간 부담하는 비용을 산출하는 방법으로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4만3천명의 주한미군을 위해 26억달러의 유지비가 든다고 보도했다. 이는 급료ㆍ수송비ㆍ시설유지비 등에 소요되는 비용만 계산한 액수로 89년도 한국 국방예산 90억달러의 4분의1에 해당된다. 둘째 보유자산과 서태평양지역 미군유지비까지 합쳐 산출하는 방법으로 주한미군 자산 45억달러와 서태평양유지비 3백억∼3백50억달러중 주한미군의 활동과 관련된 비용 1백억달러와 유지비 26억달러를 합한 1백71억달러이다. 셋째 유럽주둔 미군의 총체적 유지비와 비교하는 방법인데 30만 유럽주둔 미군을 위해 연간 1천5백억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유럽주둔 미군의 7분의1에 해당하는 주한미군의 수에 대비하면 1백5억달러가 소요된다.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산출방법이 상이하며 철수분에 대한 전력보강 산출도 상이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한미군이 철수할때 한국은 적어도 북한의 군사력만큼 신속히 한국의 전력을 증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전력증강은 전쟁재발 예방을 위해요구되는 힘이며 북한과의 화합과 평화통일의 길로 유도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선행조건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화합과 평화통일은 오직 양측의 군사력균형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군사력균형이 파괴될때 우세한 쪽이 약한 쪽을 무력으로 흡수통일했다. 6ㆍ25동란이 그랬고 베트남에 의한 자유월남의 무력화가 그 예이다. 반대로 분단 쌍방의 군사력이 대등할때 상호협력과 평화통일의 길이 열린다는 발전법칙은 동서독의 경우와 남북예멘의 통합에서 실증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포함해서 전력지수가 북한의 70%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현 군사력 수준에서는 취약한 군사력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군이 철수하면 제7공군이 통제하고 있는 조기경보체제도 철수하게되고 전술항공통제본부도 빠져나가 한국의 방공망에 큰 구멍이 뚫리게된다. 또 제7함대의 지원을 즉각 받아 낼 수도 어려워지게 되며 후방상륙작전이나 항만봉쇄작전같은 해군작전을 수행하기도 어렵게 된다. 주한미군의 철수로 GNP대비 방위비부담률이 5%에서 8%로 증가한다면 경제성장률은 연간 8%에서 5%로 둔화하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족한 병력과 전투력을 보강하기 위해 현재병력의 30∼50%를 증원해야 한다. 사병의 의무복무기간은 30개월에서 48개월로 늘어나야하며 예비군복무연령도 35세에서 40세까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기와 장비에 있어서 30% 떨어지고 있는 현 수준을 균형시키려면 89년기준 국방예산을 연간 30%씩 증가시켜야 한다. 장비와 무기에 있어서의 30%부족은 병력의 차이 극복처럼 단순히 30%의 방위비증감으로 메울 수 없다는데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족한 30%의 무기와 장비는 수백억달러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금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지상군 가운데서도 최강의 정예부대로 꼽히는 2사단은 기계화율이 90%에 이르는 중무장사단이다. 2사단이 철수하는 경우 한국군이 화력을 보충하려고해도 3개 보병사단,1개 특공연대,1개 포병여단,1개 기갑여단,1개 방공포대대 등을 거느리는 1개 군단을 창설해야 한다. 한국국방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89년 현재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앞으로 5년간 5백85억달러가 추가로 요구된다고 한다. 지상군증강비로 1백50억달러,공군증강비 1백억달러,해군증강비 1백억달러,경보체제 및 통신장비 35억달러,추가운영비 2백억달러로 세분되어 있다. 주한미군은 육군전력에 있어서는 한국군의 5.5%밖에 안되지만 공군에 있어서는 30%에 해당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군은 한국에 상주하고 있지는 않으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즉각 지원해올 병력은 한국해군 50%이상의 전력에 이른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총체적 유지비가 1백71억달러에 해당된다는 계산도 있다고 앞서 밝힌 바 있다. 이 액수에 준거하면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 떠나버린 미군의 전력효과를 메우기 위해 한국은 1백71억달러를 투입해야 한다. 5년으로 나누어 분할 한다고 해도 연간 37억달러의 국방비를 추가해야 한다. 이 경우 한국의 국방예산은 지금보다 30%이상 증대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국내외정세의 피상적 흐름으로 방위비축소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6ㆍ25남침때나 지금이나 적화통일야욕에 있어 크게 변화하지않고 있다. 주한미군철수가 어려운 안보환경을 새롭게 제기한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
  • 검찰,야의원 관련설도 계속 수사/김 전 철도청장,구속의 언저리

    ◎“시간 끌면 비리척결 의지 약화”… 전격 집행/“열차도입때 1천만원 수뢰”진정내용 조사 ○…김하경 전 철도청장은 지난 3월부터 익명의 투서 및 진정사건 등으로 두차례에 걸쳐 검찰의 내사를 받을 정도로 구설수에 자주 올랐으나 그때마다 혐의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문제가 되지않았다가 이번에 청와대 특명사정반에 덜미를 잡혀 결국 구속. 특히 검찰관계자들은 김전청장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고 있음에도 25일 상오까지 『김전청장에 관한 자료를 청와대로부터 넘겨 받은 적도 없고 소환할 계획도 없다』고 연막작전을 펴다가 하오 늦게부터 중앙수사부 과장회의를 갖더니 태도를 돌변. 김전청장은 25일 하오6시쯤 청와대 특명사정반원이 서초구 반포동 서래아파트 자택으로 들이닥치자 가족들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한뒤 순순히 연행에 응했다고 수사관계자들이 전언. 이에따라 검찰은 삼청동 검찰청 별관에서 김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철야조사를 벌인 끝에 혐의사실을 자백받는데 성공. ○…검찰은 김전청장을 상대로 시중에서 나돌고 있는 영등포 민자역사 신축사업과 관련,뇌물수수 부분에 대해 집중조사를 벌였으나 김씨가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데다가 공사허가 시점이 전임청장 시절이어서 이와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그러나 김전청장이외에 야당의원 가운데 일부가 이 사업에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일단 김씨를 구속한뒤 이부분에 대한 수사는 계속할 방침. 검찰은 이와함께 김전청장이 지난 88년부터 2년동안 새마을객차도입과정에서 국내굴지의 H,D중공업으로부터 각각 1천만원씩을 받았다는 진정서도 접수,이부분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계획. ○…김전청장의 비위를 조사해온 특명사정반은 김전청장을 검찰에 언제 넘기느냐로 고심했다는 후문. 사정반은 김전청장의 비위사실을 확인했으나 당장 구속할 경우 공직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당초 7월로 넘기려했으나 면직이후 시간을 너무 끌면 고위공직비리척결의 의지가 약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우세해 전격 구속키로 결정. ○…문제가 된 부평민자역사는 지하3층 지상8층에 연면적 1만1천8백평 규모로 94년4월 완공예정이 었으나 아직 건축허가도 나지않은 상태. 철도청과 대아개발이 25%와 75%를 출자해 지하1,2층은 역무시설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4백35개의 점포를 입주시켜 대규모 상가를 조성할 계획. ○…고위공직자의 부정비리에 대해 청와대특명사정반과 함께 공조수사르 벌이고 있는 대검중앙수사부는 김전철도청장을 끝으로 차관급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될 것임을 시사. 이와관련,검찰의 한 관계자는 26일 『차관급 등 고위인사에 대한 수사는 이번주 안에 모두 매듭지어질 것』이라면서 『나머지 하위 공직자의 부정비리에 대한 수사가 각지검,지청별로 계속될 것』이라고 수사방향을 전망.
  • “남북군축 3단계 구체방안 연구”(의정중계 26일 본회의)

    ◎용산 미 기지 이전 부담경비 밝혀라 질문/남북 신뢰조성까진 휴전체제 필요 답변 ◇조순승의원(평민)=정부는 7월중 한소수교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할 예정으로 있으나 소련관계자들은 수교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소련이 유보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며 수교시기는 언제쯤으로 전망하는가. 정부는 한중 수교문제를 협의키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현재 어느정도 관계진전을 보이고 있는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우리의 통일방안을 결정할 의사는 없는가. 일본은 우리나라 예산의 4배가 넘는 군사비를 쓰고 있는데 일본의 군사정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박관용의원(민자)=남북한 대결은 남의 「경직된 안보논리」와 북의 「폐쇄적 주체논리」의 소산이다. 이제 더이상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은 종식되어야 한다. 북의 군축제안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없고 핵무기 개발 등도 고려해야겠으나 소련이 개혁과 군축을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의 제안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긴장완화의 호기로 이용해야 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남북한 불가침협정의 수용이나 선후없는 교류협정 및 선 군사문제 해결방안을 수용할 의사는. 북측의 군축제안에 대한 우리측의 대안은 무엇인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개정용의는. 통일원의 위상제고와 예산증액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몽준의원(민자)=한소 정상회담등 북방외교의 성공적 전개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약화시키거나 혼란상태에 빠뜨릴 위험은 없는가.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일부 젊은이의 좌경화 환상을 일깨워 줄 교육계획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재래식무기 감축이 실효가 있겠는가. 군축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은 무엇이며 북한이 지난 5월31일 제안한 군축안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무엇인가. 군비통제조정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용산기지 이전의 소용기간과 우리측부담경비를 밝혀라. ◇강영훈국무총리=북방외교는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개외교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초당적 접근방식을 취해나가겠다. 한소 수교원칙은 합의됐으나 그 시기는 보류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는 정식외교 수립에 우선 비중을 두고 있으나 실질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소련은 경제협력문제등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다소 입장차이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교시기문제등은 양국이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갈 것이다. 대통령의 지난 방일때 아키히토 일왕과 가이후총리등이 과거 한일문제에 대해 명백히 사과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제 과거사는 일단락 짓고 한일간 선린우호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일왕의 우리나라 방문은 양국 국민들의 환영하는 분위기가 성숙될 때 실현될 것으로 본다. 최근 북한의 군축제안은 현실여건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용어사용등에도 신중을 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대내외 선전에 더큰 비중을 두고 있어 근본적으로는 종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고위회담등이 성사될 경우 적극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군비통제문제등을 다루기 위해 군비통제종합조정기구의 설치를 검토중이다.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의 남침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될 경우 한미 양국간에 신축성있게 논의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상황변화등을 반영,개정할 수 있으나 국가의 안전보장 차원에서 현행골격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최호중외무장관=외교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교섭과정에는 불가피하게 비밀로 할 때가 있다. 한소 정상회담도 북한의 존재를 의식,소련측의 비밀요청이 있었으며 소련도 고르바초프대통령 측근 몇명만 정상회담 개최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청구문제는 지난 65년의 청구권협정 조인으로 법적으로는 이미 매듭된 것이다. 김­오히라메모는 외교교섭과정에서 행해진 일로 공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일본의 군사비 증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주권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나 주변국가들의 과거경험을 고려,전쟁포기를 명시한 일 헌법과 자위권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직ㆍ간접적으로 충고했다. ◇이상훈국방장관=유럽의 군축모델은 개별국가간 협상을 벌여야 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주도하고 주변국가가 지원하는 형태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군축을 위해 3단계의 구체적 추진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2천명의 주한미군 감축은 미 국방성이 사전 검토한 바 없으며 미 의회보고과정에서 급작스레 결정된 것이며 한미간에 충분히 협의되지 못했다. 주한미군 감축은 비전투군 중심으로 최소한 감축예정이며 유사시에 대비한 공동작전문제를 협의중이다. 7천명의 규모만 결정된 감축문제는 오는 11월 한미 안보회의에서 구체적 시행시기와 대비책등이 결정될 것이다. 북한은 22개 여단의 특수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북한의 40% 수준에 있다. 장비도 북한의 우수부대에 비해 열세에 있으며 한국군내 특전부대가 최정예부대다. 군조직 개편은 독자적인 군지휘체제로 자주국방을 이루려는 것으로 남북한 군비통제 가능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홍성철통일원장관=북한의 군축제의는 종래 대남전략과 달라진 게 없다. TV와 라디오의 일방적 개방은 대남 기본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상호개방이 바람직하다. ◇조희철의원(평민)=정부는 대소정책에 자신감과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그리고 국내 소련관련 연구현황을 밝혀라. 6공화국이후 최근의 샌프란시스코회담까지 북방외교 추진과정에서 사용한 자금내역을 밝혀라.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가. 민족동질성 회복과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문화ㆍ경제분야 및 TVㆍ라디오 등 전파교류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핵보유 보도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밝혀라. ◇박승재의원(민자)=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외교ㆍ안보ㆍ통일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소수교가 언제 실현되며 수교가 계속 지연될 때 이에 대한 대비책은. 북방정책의 성과나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를 통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대폭적인 대북한 화해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한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통해 북한측에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 밝혀라. 정부는 7ㆍ7선언이후 북한과 미 일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측면지원한 내용은. ◇강총리=북한은 남북한 정상회담에 아직까지 부정적 입장이나 국제환경등을 감안할 때 계속 거부키는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평화통일에 접근하고 남북 신뢰조성에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며 이를 국내정치에 이용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대치하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남북간 신뢰조성 및 평화정착이 될 때까지 휴전협정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간 민족공동체헌장이 제정되고 남북연합이 제도화돼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 대외여건 변화와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실천적 대북 화해조치를 꾸준히 전개하겠다. 북한의 자존심을 손상안주는 방향에서 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 ◇최외무=한ㆍ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은 북한의 선동 대남정책과 우리의 통일정책 그리고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는다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김일성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으며 노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것 ▲우리는 북한에 군사적 우위를 행사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ㆍ소교포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문제는 거주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데다 교포들이 고국에 대해 과다한 기대를 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국방=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성실하게 남북대화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북한을 군비통제협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전력증강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서독이 동독보다 3배이상의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경제ㆍ군사력 양면에서 우세를 보일 때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
  • 올 하반기 주식수요 공급량 크게 웃돌듯/증시안정에 큰 보탬

    올 하반기 증시에서는 주식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보여 침체장세 회복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12월까지의 하반기에 공급될 주식은 기업공개와 유상증자 물량을 비롯,모두 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나 수요는 증시안정기금과 고객예탁금등 모두 6조4천5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매수여력이 공급물량보다 2조4천5백억원 정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채권관리기금(BMF)과 환매채 등의 간접수요가 2조9천억원에 달하고 신규 기관투자가로 지정된 연금 및 기금에서 주식매입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현재 1조원을 넘고 있는 미수금 및 미상환융자금과 종합주가지수 8백20선위에 포진하고 있는 대기매물을 소화해 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증권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증시에서의 전반적인 수급상황은 수요가 단연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가장 확실한 매수세인 증안기금이 주가상승시마다 매물화되는 미수금및 신용상환물량을 비롯한 대기성매물을 소화해내는 데는한계가 있으므로 고객예탁금의 증가여부가 장세회복의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 스포츠서울 창간5돌 각계 인사 참석 축하연

    스포츠서울 창간5돌을 기념하는 자축 리셉션이 22일 하오6시30분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창간기념 리셉션에는 정원식문교ㆍ정동성체육부장관,국회 이자헌ㆍ정대철의원,김종렬대한체육회장,서기원KBS사장,문태갑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이우세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 등 각계 인사와 스포츠서울 고정필진,프로복싱세계챔피언 유명우ㆍ영화배우 김지미ㆍ신성일ㆍ강수연ㆍ장미희,가수 변진섭 코미디언 김형곤 등 유명 스포츠스타와 연예인들이 참석해 창간을 축하해 줬다.
  • 본사 6ㆍ25 40주맞아 성인남녀 1천명 의식조사

    ◎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조사방법/현대리서치연구소 최근 6ㆍ25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서울신문사는 현대리서치연구소(대표 박종선)와 공동으로 우리 국민들의 6ㆍ25관ㆍ대북관ㆍ통일관 등에 대해 전국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조사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20세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상대로 지난 현충일 전후 사흘동안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반까지 실시되었다. 이번 조사는 조사대상을 시도별 인구비례로 각 시도에 할당한 다음,해당 시도의 전화국번을 일렬로 나열하고 난수표로 할당된 표본수만큼 전화국번을 추출하였다. 이렇게 추출된 전화국번에 대하여 난수표로 네자리 숫자를 부여하여 그것을 전화번호로 삼았다. 그리고 대상 가구에서는 전국인구 구성특성에 따라 남녀ㆍ연령을 할당하여 최종적인 조사대상자를 선정하였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 구성은 지역별로 서울 2백50명,경기ㆍ인천 1백65명,강원 40명,충청ㆍ대전 1백5명,전라ㆍ광주 1백34명,경상ㆍ부산ㆍ대구 3백6명,제주 10명이다. 성별로는 남자 5백3명,여자 4백97명이며 연령별로는 20대 3백48명,30대 2백39명,40대 1백76명,50세이상 2백37명이다. 이번 조사의 표본추출이 완전 무작위 추출이라고 보면 오차는 신뢰수준 95%에서 ±3.1%이내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6ㆍ25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험이나 기억이 남아있을 만45세이상을 6ㆍ25세대,만44세이하를 전후세대라고 규정해 분석개념으로 사용하였다. ◎“한반도서 전쟁가능성 점차 줄고 있다” 66%/“그 상흔 아직도 잊을 수 없어” 61%/전쟁발발 책임은 북한ㆍ소ㆍ미ㆍ일 순/6ㆍ25세대 40%만 “북한은 공동번영의 동반자” 간주… 전후세대는 53%가 긍정적/“김일성후 김정일 권력승계” 57%/“통일정책 더 과감히 추진을” 44% ○가슴속에 응어리로 6ㆍ25가 일어난지 올해로 40년이 지났는데 과연 국민들의 마음속에 어떤 상처가 남아 있을까. 우선 6ㆍ25의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응답자의 29.3%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고 31.9%가 「약간 남아 있다」는 반응을 보여 전체적으로 우리 국민의 6할이상(61.2%)이 현재 6ㆍ25의 상처를 간직하고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대별로 보면 6ㆍ25세대는 상처가 남아 있다는 응답이 무려 79.3%(많이 50.3%,약간 29%)인데 비해 전후세대는 53%(많이 19.9%,약간 33.2%)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6ㆍ25세대는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는 반응이 월등히 많아 6ㆍ25세대에게 6ㆍ25는 아직도 대단한 상처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후세대도 6ㆍ25세대보다는 적지만 전체적으로 두사람 중 한 사람이 6ㆍ25의 상처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향민 아픔은 계속 6ㆍ25의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상처나 피해의 내용을 물은 결과 가족이나 친지의 부상이나 사망이 32.3%,실향이나 이산가족이 21.5%,분단고착이 17.9%,나라발전 저해가 16.4%,재산피해 10.3% 등으로 나타났다. 인명피해나 재산피해 등 좀더 직접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6ㆍ25세대의 상처가 더 깊으며,분단고착이나 나라발전 저해 등의 간접적인 상처는 전후세대에 약간 더 많다. 반면실향이나 이산가족이라는 반응이 6ㆍ25세대(14.7%)보다 전후세대(26.1%)에 더 많은 점이 주목된다. 직접적인 상처는 시간과 세대가 경과하면 어느정도 줄어들고 있지만,고향을 잃어버리고 혈육이 나뉘어진 아픔은 세대가 바뀌어도 오히려 증폭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남북대화」하면 우선 이산가족이 떠오르는 것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민족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남침은 엄연한 사실 최근 6ㆍ25 책임론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북침설까지 운위되는 실정이다. 이번 조사에서 6ㆍ25발발에 책임이 무거운 나라를 두나라 지적하게 한 결과 역시 북한이 56.0%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소련(51.9%) 미국(34.1%) 일본(22.3%) 남한(17.1%) 중국(11.9%)이며 「모르겠다」는 응답도 6.7%이다. 이 결과를 보면 최근의 다양한 전쟁책임론이 다투고 있지만 6ㆍ25는 역시 북한과 소련에 의해 야기된 전쟁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이라는 지적도 34.1%에 이르러 최근의 대미감정이 부분적으로반영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6ㆍ25에 직접개입한 중국이 전쟁발발에는 가장 책임이 없는 나라로 인식되는 점도 흥미롭다. 세대간에도 인식의 차이가 있어 6ㆍ25세대는 주로 북한과 소련에 책임을 묻고 있는데 비하여 전후세대는 북한ㆍ소련ㆍ미국ㆍ남한 등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전후세대에서는 북한이라는 지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며 반대로 미국ㆍ남한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어 부분적이나마 젊은 세대의 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북녘 얼음도 녹을 것 최근에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화는 우리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크게는 공산세계의 변모를 예고하는 일이고 좀더 직접적으로는 대북관계,나아가 통일문제에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화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물어본 결과,「개방화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53.2%에 달하며 「변화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23.7%이다. 반면,「더욱 폐쇄적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15.8%에 불과하다(「모르겠다」는 7.3%). 이러한 결과는 북한은 변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인식이 일각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결국은 북한도 개방화의 물결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대별로 보면 북한도 개방화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6ㆍ25세대(47.7%)보다는 전후세대(55.7%)에 더 많다. ○동반자 인식이 우세 현재 우리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양면적 시각이 갈등을 겪고 있다. 하나는 공동번영의 동반자라는 인식이고 또 하나는 대립적인 적대세력이라는 인식이다. 과연 일반국민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물어본 결과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48.7%이고 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은 32.5%로 나타났으며 『꼭 어느쪽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도 18.8%였다. 이처럼 북한은 기본적으로 동반자라는 인식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적이라는 인식도 적지않다. 이러한 결과는 북한을 기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우리 사회내에서 당분간 더 논란을 벌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세대별로 더욱 크다. 6ㆍ25세대는 북한이 적이라는 의견이 47.4%,오히려 동반자라는 인식(40.0%)을 앞서고 있다. 반면 전후세대는 동반자라는 인식(52.6%)이 적이라는 인식(25.8%)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꼭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이 6ㆍ25세대(12.6%)보다 전후세대(21.6%)에서 많은 점도 흥미롭다. ○「세습체제」수용 자세 한반도 장래에 관한 문제 중에 「김일성 이후」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김일성 이후 문제의 핵심은 김정일이 권력을 이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김정일이 권력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56.6%로,권력을 잇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34.5%)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모르겠다」는 8.9%). 세대별로 보면 권력을 계승하리라는 전망이 6ㆍ25세대에서는 50.0%인데 비해 전후세대에서는 59.6%에 달하고 있다. 한편 권력을 계승한다는 응답자(5백66명)중에서 북한이 앞으로 개방화로 나갈 것이라는 의견이 45.4%인데 비해 권력을 계승하지 못한다는 응답자(3백45명)중에는 개방화 전망이 65.2%이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김정일의 권력계승이 북한의 개방화에 약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이는 김정일 체제를 김일성 체제의 연장으로 인식하는 일반적 통념에 근거한다고 보여진다. 이번 조사결과는 그러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거의 6할이 「김일성이후는 김정일 체제」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인다고 해석된다. ○전쟁 재발성은 희박 6ㆍ25와 그 이후의 격렬한 대립의 시대를 지내온 우리 국민들은 최근 급변하는 내외 정세 속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전쟁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견이 66.0%로,「전쟁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반응(17.9%)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대로」 6.1%,「모르겠다」 10.0%). 더구나 이러한 의견은 세대간에도 거의 차이가 발견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걷히고 있다는 인식이 상당히 광범위한 셈이다. 최근 소련과 동구의 개방화로 촉발된 동서 해빙물결이 우리 사회에도 밀려왔고 특히 지난번 한소정상의 만남이 그런 물결을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했다고 보여진다. ○성급한 평화분위기 이처럼 유례가 없는 평화분위기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통일정책의 추진속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물어본 결과,43.7%가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라는 의견인 반면,37.4%는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라는 주문이다(「지금처럼」8.0%,「모르겠다」10.5%). 이러한 결과는 국제적 해빙물결,북한의 개방기대,한반도의 평화분위기 등에 비추어 보면 의외로 신중론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세대별로 보면 6ㆍ25세대는 적극론(35.6%)보다는 신중론(41.3%)이 오히려 우세하며 전후세대는 적극론(47.4%)이 신중론(35.7%)을 앞서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전쟁가능성,북한의 개방 가능성 등 현상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는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를 바탕으로 한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여론이 양분되어 있다. 이런 양분된 의견이 자유롭게 토론되어 하나의 국민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추진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과제일 것이다. ◎설문 내용ㆍ응답 ▲올해로 벌써 6ㆍ25가 발발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님께서는 어떤 형태이든지간에 6ㆍ25로 인한 상처나 피해가 현재 ○○님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상처나 피해가 많이 남아 있다(29.3%) ②약간 남아 있다(31.9%) ③상처나 피해가 없다(38.8%) ▲○○님께서는 6ㆍ25발발의 가장 커다란 책임을 져야할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음 중에서 책임이 큰 나라를 두나라만 말씀해 주십시오. ①남한(17.1%) ②북한(56.0%) ③미국(34.1%) ④소련(51.9%) ⑤중국(11.9%) ⑥일본(22.3%) ⑦모르겠다(6.7%) ▲○○님께서는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점차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점차 줄어들고 있다(66.0%) ②점차 커지고 있다(17.9%) ③그대로(6.1%) ④모르겠다(10.0%)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동반자」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님께서는 북한을 우리의 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아니면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적으로 보아야 한다(32.5%) ②동반자로 보아야 한다(48.7%) ③꼭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18.8%) ▲최근에 소련과 동유럽에서 이른바 개방화 물결이 일고 있는데,○○님께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더욱 폐쇄적으로 갈 것이다.(15.8%) ②개방화로 갈 것이다(53.2%) ③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23.7%) ▲○○님께서는 만약 김일성이 사망하면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물려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물려받을 것이다(56.6%) ②물려받지 못할 것이다(34.5%) ▲○○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43.7%) ②지금보다 더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37.4%) ③지금 정도가 알맞다(8.0%) ④모르겠다(10.5%) ◎“6ㆍ25세대­전후세대의 인식차 좁혀야”/조사를 마치고/박종선 현대리서치연 대표 6ㆍ25가 일어난지 거의 한세대가 바뀐점에 비추어 이번 조사는 세대간의 인식차이가 어떠한가에 주목했다. 우선 6ㆍ25로 인한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있는가,6ㆍ25 발발의 책임있는 나라는 어디인가,북한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통일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6ㆍ25세대와 전후세대 간의 인식의 차이가 크다. 6ㆍ25세대가 6ㆍ25로부터 파생된 피해의식이나,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전후세대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은 어떠한가,북한이 개방할 것인가,김정일이 권력을 계승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세대간의 차이가 비교적 작거나 거의 없다. 이러한 결과는 한반도 현실에 대해서는 피해의식이나 적대감에 연연하지 않고 말 그대로 오늘날의 현실에 근거하여 냉정히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기성세대는 보수적이고 완고하며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고 유연하다는 식의 단순논리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6ㆍ25의 피해의식,북한에 대한 좀더 적대적인 이해 등에서 6ㆍ25세대는 전후세대보다 완고하지만 한반도의 보다 현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후세대와 별 차이없이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전후세대도 6ㆍ25세대보다는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돋보이지만 일반적 통념보다는 훨씬 절제되고 냉정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6ㆍ25관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전후세대도 6ㆍ25가 북한과 소련에 의해 도발된 전쟁이라는 인식에는 이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일정책의 추진방식에 있어서도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라는 의견(43.7%)이 우세한 편이지만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라는 의견(37.4%)도 결코 적지 않다. 전후세대 역시 6ㆍ25세대와 대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식을 공유하면서 점진적으로 그들 특유의 진취적 가치를 가꾸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조사를 통해 세대간의 차이와 일치가 공존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리 사회는 세대간의 일치만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력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세대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혀 나가면서 간격을 좁혀 나갈때 우리사회는 좀더 성숙한 사회로 전진할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가 바로 그런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민자ㆍ평민 3역회담… 여야 입장과 전망

    ◎“국회운영 전초전”… 쟁점법안 논리대결/현안마다 대립… 절충에 난항 예상/「줄 것」ㆍ「밀어붙일 것」 결과따라 구획 여/지자제 정당공천등 융통성 보여 야 제1백50회 임시국회가 여야타협으로 생산적인 성과를 낼 것인가를 가름짓게 될 민자당과 평민당간의 당3역회담이 22일부터 시작된다. 여야는 이번 3역회담을 통해 정국운영의 장애가 되고 있는 쟁점법안과 현안에 관한 이견을 좁혀 되도록 타협을 통해 임시국회에서 이를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으나 각 현안에 대한 입장차가 현격해 절충에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16일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평민당총재간의 청와대회담에서 지자제법ㆍ국가보안법 등 주요 쟁점사안에 대한 여야의 상반된 시각이 명백해진 이래 민자ㆍ평민 어느 당도 자신들의 입장을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 따라서 3역회담은 여야 모두가 대화노력을 벌였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성급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면 지난해 5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중진회담이란 방식을 통해 지자제 실시및 전두환 전대통령의 국회증언등 당시로서는 기대키 어려웠던 파격적 합의를 도출했던 만큼 이번의 당3역회담의 결과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격언도 있듯이 각 당의 총장ㆍ총무ㆍ정책위의장 등 다수인이 반공개적으로 만나 현안을 논의할 때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 이제까지 우리 정치의 모습이었다. 즉 1대1의 비밀접촉을 통해 은밀한 「주고받기」가 있어야 협상이 타결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중진회담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야합의 성격을 띤 타협보다는 다수가 모여 논리대결을 통해 보다 설득력이 있는 방안이 채택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는 6공이 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란 분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전에는 여야 영수회담에서 근본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당3역등 하위레벨에서 절충이란 불가능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양상이 다르다고 보여진다. 노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총재회담에서 김대중총재에게 국가보안법ㆍ지자제법 등은 당대표회담 혹은 당3역간 대화를 통해 절충해 보도록 당부했듯이 현안처리에 당의 융통성이 커졌으며 야당측에 상임위원장 4석할애등의 결정이 그 대표적 예라 볼 수 있다. 이에따라 여야가 이번 3역회담을 통해 무언가 이뤄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회담의 성과를 기대해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여야는 22일의 첫 3역회담에서 회담운영방식및 의제를 결정한 뒤 다음주부터 3역연석회담과 함께 개별회담및 실무전문의원회담을 병행,현안에 대한 본격절충을 벌일 예정이다. 민자당은 3역회담의 의제로 지방의원선거법ㆍ광주보상법ㆍ국군조직법ㆍ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ㆍ남북교류특별법ㆍ경찰법 등 7개 쟁점법안을 주로 다루려 하고 있다. 평민당측은 회담의 의제를 크게 5공청산문제와 개혁,민주화입법으로 나눠 5공청산 관련사항으로는 광주보상법과 5공ㆍ광주 등 과거관련 특위 해체를 다루고 개혁ㆍ민주화입법으로 지자제법ㆍ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 등을 절충하자는 입장이다. 당3역회담이 실질문제에 대한 토의에 들어갈 때 최대쟁점은 지자제 실시시기와 방법이 되리란 것이 민자ㆍ평민 양당 모두의 지배적 관측이다. 평민당은 지방의회및 단체장선거가 실시될 경우 지역당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당의 위상을 어느 정도 쇄신할 수 있다는 기대아래 지자제법 통과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와관련,여야합의가 이루어지면 연내라도 지방의회를 구성하겠다는 민자당측의 공언이 무게가 실리지 않았음을 눈치챈 평민당이 지자제 실시를 정치공세의 호재로 여기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평민당은 내년초 지방의회선거및 단체장 직선을 한꺼번에 실시하는 데 민자당이 동의해줄 경우 정당공천제나 선거운동 규제등 쟁점부분에서 융통성을 보일 수도 있다는 입장까지 피력하고 있다. 현재의 일반적 전망은 3역회담에서도 지자제법 처리에 대한 절충이 이뤄지지 못하고 연내 지자제 실시가 흐지부지되리란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해 5월 중진회담에서 당시 민정당이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1년내 지방의회 구성­2년내 단체장 직선실시」에 합의해준 전례를 볼 때 지자제법 절충이 전혀 비판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당공천문제에 대한 절충이 성공해 연내 지방의회선거가 가능할 수도 있고 평민당측 주장을 일부 수용,적절한 시기에 지방의회및 단체장선거를 동시 실시한다는 여야합의가 극적으로 도출될 수도 있다. 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 등 개혁입법에 대한 여야간 타협도 쉽지 않은 문제다. 민자당은 현재 자신들이 국회에 제출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최대한 전향적인 것이며 이제 더 절충을 하려면 법 폐지나 대체입법밖에 없는데 현시점에서 폐지ㆍ대체입법은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자당은 평민당측이 끝까지 보안법의 폐지 내지는 대체입법을 주장할 경우 이번 임시국회에서 이를 처리치 않고 다음 회기로 넘긴다는 전략이다. 광주보상법과 과거관련 특위해체문제는 여야절충이 조금은 기대되는 대목이다. 민자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국군조직법을 비롯해 각종 민생ㆍ경제법안을 통과시키는 것과 함께 광주보상법을 처리하고 광주및 5공특위등을 해체시켜 과거청산문제를 종결시키겠다는 것에 최대한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광주보상법에 있어서 보상금액등에 융통성을 보이는등 상당정도로 절충노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광주지역과 평민당과의 특수관계를 감안할 때 완전한 여야합의는 어렵겠지만 평민당측의 요구를 적정수준 수용한 뒤 「조용한 반대」속에 광주보상법과 특위 해체를 단독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의석수의 압도적 우세에도 불구,안건의 일방처리가 가져다 주는 부담을 잘 알고 있는 민자당측이 「야당측에 줄 것」과 「밀어붙일 것」의 경계를 어떻게 구획짓느냐에 3역회담의 결과가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 크렘린에 권력투쟁 “먹구름”/고르비 당서기장 사퇴압력의 안팎

    ◎보수파,실세만회 겨냥 선제공격/급진파선 개혁실패 들어 맹비난/「서기장 사임」발언은 당정분리 노린 애드벌룬 일수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러시아공화국 공산당대의원총회 이틀째인 20일 강경보수파들로부터 서기장직 사임요구를 포함,실정에 대해 집중 공격을 받음으로써 그의 입지가 약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등 급진개혁파들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미온적이라며 비판의 소리를 높여왔으나 리가초프 농업담당 정치국원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보수파들은 상대적으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 왔었다. 그러나 이날 보수파가 고르바초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고르바초프는 이제 급진 개혁ㆍ보수파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리가초프는 20일 『고르바초프가 정치국원들과 협의하지 않고 중요한 경제ㆍ외교정책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면서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을 촉구했다. 그는 또한 『고르바초프 자신과 공산당 그리고 소련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왔다』며 고르바초프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동시에 보수파의 결속을 강조했다. 리가초프는 ▲시장경제로의 이행 ▲통독 ▲당의 권위상실 ▲동구의 발전 ▲해외에서의 소련의 힘 약화 ▲발트 3국문제 등에 관한 보수파의 불만을 한꺼번에 털어 놓았다. 소련정치권내 보수파들의 입지는 지난 85년 3월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장악한 뒤부터 줄어든게 사실. 특히 보수파의 기수인 리가초프는 오는 7월2일의 당대회를 위한 대의원선거에서 지방으로 선거구를 옮겨 겨우 당선될 정도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내 보수파들은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정책이 역전될 가능성이 없는 현실에서 더 이상 한데로 몰리는 것을 막고 실세를 만회하기 위한 방편으로 7월 공산당대회의 전초전인 러시아공화국 대의원총회에 배수진을 치고 선공의 화살을 고르바초프에게 겨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러시아공화국은 1천9백만 소련공산당원 가운데 58%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공화국으로 비록 옐친이 지난 5월 최고회의의장으로 당선된 곳이지만 아직은 보수파의 우세지역이다. 때문에 보수파들은 러시아공화국의 대의원총회 분위기를 달궈놓은 다음 그 여세를 당대회까지 몰고가 고르바초프를 당서기장직에서 몰아낸다는 「거세작전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보수파들의 이같은 「희망사항」의 실현 가능성과 그들이 당서기장직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대권이 없는 허세이기 때문에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선 일부의 풀이대로 고르바초프가 20일 당서기장직 사임의사를 밝힌 것은 그동안 그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곧잘 사용해온 「사임카드」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당정의 분리를 주장,권력의 핵심이 민주화의 일환으로 당에서 정부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혀왔고 또 실제대통령으로서 절대적 권한을 움켜쥐고 있다. 게다가 현재 당의 힘이 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당서기장직 사임이 고르바초프의 권력유지에 큰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소련관측통의 지배적인 견해다. 현재 소련내 정국의 흐름은 페레스트로이카에도 불구,실생활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중도ㆍ보수ㆍ급진파의 「어울리지 않는 악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입지강화를 바라고 있는 서방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발트 3국의 독립운동ㆍ종족분규ㆍ경제문제와 함께 이번에 노정된 권력투쟁으로 고르바초프의 통치권이 어떻든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정치의 귀재로 통하는 고르바초프가 이 어려운 3파의 대립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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