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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 Q&A] 베일 속 후계자… 北 권력승계 전망은

    [이슈 Q&A] 베일 속 후계자… 北 권력승계 전망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됐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북한의 차기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생년월일은 물론이고 얼굴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미국조차 김정은에 대해 아는 것이 놀랄 만큼 적다고 고백하고 있다. 김정은을 둘러싼 크고작은 궁금증들을 문답형식으로 알아본다. Q 김정은의 얼굴은 언제 공개되나. A 빠르면 올 10월, 늦으면 201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당 중앙기관 성원 및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와 기념촬영을 했으며, 김정은도 참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 그러나 사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기념촬영까지 한 점으로 미뤄볼 때 곧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속히 북한 주민에 얼굴을 알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게 유리하다. 따라서 10월10일 당 창건 65주년에 맞춰 김정은이 당의 주요 직위를 맡으면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정일도 1980년 6차 당대회를 통해 후계자로 외부에 공식화된 뒤 공개행보를 시작했다. 반면 김정은이 우선 군부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데 주력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28일 “북한이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한 2012년까지 김정은이 외부에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2012년에 맞춰 혜성과 같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을 말한다. Q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떤 식일까. A 김정일 수행. 김정일이 아직은 엄연히 최고지도자인 만큼 전면에 나서거나 연설을 하기보다는 김정일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드러내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도 아직까지 당·정·군의 공식행사에서 한번도 정식 연설을 한 적이 없다. 김정일이 공식행사에서 연설한 것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행사장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고 간략하게 외친 것이 전부다. Q 김정은은 군부에서 인정을 받을까. A 쉽지는 않지만 가능. 아주 쉽지는 않겠지만 김정일의 구상대로 된다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을 가장 잘 실천하는 정권이다. 선군(先軍)정치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이번에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첫 공식직함으로 ‘인민군 대장’이라는 군사칭호를 주고 유명무실했던 당 중앙군사위에 부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은을 앉혔다. 또 리영호를 대장(별 4개)에서 차수(큰별 1개)로 초고속 승진시킨 뒤 김정은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군부를 승계 과정의 제1 동반자로 중시한다는 점을 과시했다. Q 김정은과 후견역할을 한다는 고모 김경희의 사이는. A 나쁘지 않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64)는 불같은 성격으로 알려진다. 아버지(김일성)와 오빠의 반대을 무릅쓰고 장성택과 결혼을 강행했을 정도다. 하지만 김경희는 김정일의 복잡한 여인 관계와 이복형제로 얽히고 설킨 김씨 왕가를 정리하는 데 수완을 발휘하면서 김정일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일의 외도를 아버지 김일성이 모르게 처리하고, 김정일이 셋째 부인 고영희에 빠져있을 때 두 번째 부인인 성혜림을 모스크바로 추방한 것도 김경희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이복형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역할 때문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김정일이 조기에 사망할 경우 권력을 굳히지 못한 김정은과 남편 장성택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질 개연성도 있다. 김정일이 이번에 매제인 장성택 뿐 아니라 김경희를 인민군 대장에 굳이 함께 임명하는 등 부부를 줄곧 동반 중용하는 것은 장성택을 완전히 신임하지 못하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있다. Q 김정은 승계작업은 얼마나 빨리 이뤄질까. A 김정일의 건강이 변수.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후계 절차는 크게 5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당의 영도 절차(당대표자회 개최에서 확정), 2단계 후계자 중심의 당 체제 정비(인사재편 등), 3단계 대대적 우상화 사업 전개, 4단계 당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에 대한 해설권 장악, 5단계 대남사업에 대한 지도권 행사 등의 순이다. 이 중 김정은은 대략 3단계까지는 물밑으로 진척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4,5단계 작업을 본격화하는 등 박차를 가해 늦어도 2012년까지 속성 승계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Q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은 없나. A 김정일의 조기 공백 올 경우 가능. 김정일이 예상보다 일찍 사망한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주체사상에 기반한 수령 유일 지배체제를 김정일이 선호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김정일의 조기 사망으로 권력공백이 생길 경우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집단지도체제 형식이 되면서 혼란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Q 김정은은 결혼했나. A 확인 불가. 확인된 것은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 김정은은 올해 나이 약 27세다. 저돌적 성격에 혈기왕성하다는 그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여자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도 24세 때에 첫 결혼을 했었다. 김정은이 결혼을 했더라도 부부동반을 하지 않는 북한의 특성상 쉽게 알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정치국·중앙군사위 거쳐 2012년 상무위원 선출 유력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정치국·중앙군사위 거쳐 2012년 상무위원 선출 유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27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면서 사실상 후계가 확정됐다. 지난해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노래로 알려진 ‘발걸음’ 속에 나온 ‘청년 대장’이 실제 조선인민군 대장이 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28일 “그동안 직함이 없던 김정은이 매체를 통해 언급되고 공식적인 직위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면서 “후계 구도 공식화 여부는 당 대표자회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20대 청년 김정은이 아무런 직책이 없던 민간인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대장 칭호를 달면서 존재를 드러냈지만 정부가 후계 구도 등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예의주시하는 것은 그의 후계 구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방증한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까지도 김정은에게 군 직위를 줄 것이라는 첩보가 없었는데 이날 새벽에 전격 발표가 나온 것은 그만큼 다급했고 고심한 흔적을 보여준다.”며 “전날 밤새 토론하다가 김 위원장이 결심한 뒤 공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에 앞서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것은 당 대표자회를 통해 직위를 받아 후계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특히 당 중앙위원회와 함께 당 중앙군사위원회 선거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김정은이 정치국뿐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당 중앙군사위는 국방위원회보다는 힘이 약하지만 조명록·김영춘 등이 국방위와 함께 직책을 갖고 있어 당과 군에 함께 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군 칭호를 받은 김정은이 당 대표자회에서 어떤 직함을 갖게 되더라도 외부로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준 것은 선군정치 노선을 고수하면서 후계 구축시 필요한 군에서의 영향력, 성과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면서 “후계를 이으려면 총비서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당 활동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중앙위 명단에는 들어가지만 얼굴이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신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남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측근인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징검다리 역할을 맡김으로써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만드는 ‘섭정체제’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장 칭호는 김정은의 우상화 노래인 ‘발걸음’에 나온 ‘청년 대장’을 실제 타이틀로 바꿔 인민들에게 익숙함을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칭호가 생겼으니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공식 수행하면서 본격적인 후계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 승계의 첫걸음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권력 승계 과정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이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위직까지 올라가지 않고 중앙위 위원이 된 뒤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한 2012년 상무위원이나 비서국 비서 등으로 공식 선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년 정도 과도기를 거친 뒤 이르지만 권력 승계 과정을 밟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뿐 아니라 후계 구축의 후견인이기는 하지만 권력에 뜻을 품고 있는 김경희·장성택 등과의 관계 설정과, 이들보다 훨씬 개혁·개방론자로 알려진 경제라인, 국방위 핵심들과의 조율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38세에 후계자로 공식화되는 등 차근차근 권력 승계 과정을 밟은 것에 비해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경제난 가중, 권력 암투 가능성 등 불리한 점이 많다.”며 “향후 몇 년간의 과도기가 3대 세습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베일에 싸인 김정은 누구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베일에 싸인 김정은 누구

    김정은은 김정일의 성격과 외모를 쏙 빼닮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야심이 강하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알려진다. 이복형 정남에 대해 암살을 기도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성품이 포악하고 잔인하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은은 당초 1983년 1월8일생으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중반부터 북한 당국은 1982년생이라는 말을 은근히 퍼뜨려 왔다. 할아버지 김일성(1912년생)의 출생 100주년인 2012년에 김정일이 70세(1942년생)가 되고 김정은은 30세가 된다는 북한 특유의 ‘끝자리 맞추기’ 식 우상화 논리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김정은의 진짜 나이는 1984년생이라는 정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형 김정남이 2001년 디즈니랜드를 가려다 일본에서 위조 여권으로 붙잡힌 사건 등으로 김정일의 눈밖에 나면서 후계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둘째 형 김정철은 록 콘서트에 자주 가는 등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어 김정일의 인정을 못 받았다. 김정은은 어머니 고영희의 관저가 있는 평북 창성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엔 두 형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8년 형 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로 유학, 2000년까지 공부했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은 ‘자본주의에 물들면 안 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지만 저택 안에 음악단원들을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술·담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으로 돌아온 김정은은 2002~2007년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 특설반에서 공부했고 2009년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진다. 10년간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자서전에서 “김정은이 악수할 때 험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이 녀석은 증오스러운 일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한 왕자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기술했다. 또 “김정은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특히 농구를 좋아했다.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팬으로 항상 로드맨의 등번호가 새겨진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영화광으로 알려진다. 키는 175㎝라는 얘기도 있고 168㎝라는 설도 있다. 몸무게가 90㎏을 넘어 20대인데도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위수동’ vs ‘친지동’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우리 사회에서 ‘위수동’, ‘친지동’이란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다. 주사파들이 운동권 헤게모니를 쥔 1980년대 후반 무렵이다. ‘위수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줄인 말이고, ‘친지동’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축약어다. 줄이기 전엔 김 부자에 대한 북측의 찬양의 뜻이 담겼을 게다. 반면 줄임말들은 북측의 우상화 놀음을 추종하는 남쪽 주사파를 겨냥한다. 그런 개인숭배 동조자에 대한 비아냥이란 말이다. ‘위수동’의 주인공이 고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바뀌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제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방북했던 기독교선교단체 ‘오픈 도어즈’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방북 기간 중 관찰해 봤더니, 과거 김일성을 가리켰던 ‘위대한 수령’이란 호칭을 김정일에게 썼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과 안내원들이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일은 ‘친애하는 지도자’로 구분해 호칭했다고 전제하면서다. 북한 당대표자회의 개최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끈다. 3대 세습 정지작업의 수위를 짐작하게 하는 까닭이다. 보도대로라면 ‘친애하는 지도자’란 호칭은 이제 3대 후계자 김정은의 몫임을 시사한다.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바꿔 불렀다는 보도도 세습의 진전 징후다. 북한은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한 후 1998년 헌법개정으로 주석직을 폐지한 바 있다. 프로야구 대스타의 등번호처럼 영구결번으로 남겨놓았던 주석직을 김일성에게 다시 ‘헌정’한 꼴이다. 대신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은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한 단계씩 올려 세습의 정통성을 강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호칭들은 모국어를 오염시키는 낯간지러운 헌사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안타까운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체제가 단시일 내에 개혁·개방이란 세계문명사의 큰 흐름를 타기 어렵다는 징표라는 점이다. 권력의 혈연적 승계는 봉건성의 강화로, 시대착오일 뿐이다. 러시아처럼 시장경제로의 대변화와도,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진화와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3대 권력세습이 어떤 형태로, 언제쯤 완결될지를 점치기란 어렵다. 왕정이 아닌 ‘공화국(共和國)’에선 유례가 없는 탓이다. 분명한 것은 세습 성공이 곧 체제의 안착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 지도부는 개혁·개방만이 고사 직전의 체제를 살리는 외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사설] 우리는 北 김정은 연구 얼마나 돼있나

    북한이 9월 상순 개최를 예고한 당대표자회가 임박했다. 44년 만에 개최되는 만큼 정권의 향배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까지 징후로 봐선 후계구도를 가시화하는 선택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을 역류하는 3대 세습이 북한정권의 미래를 보장할 순 없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북한이란 폐쇄회로 사회에서 실제로 무엇이 이뤄질지 예단하기란 어렵다. 다만 최근 정황으로 보건대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중국의 경제발전을 칭송하는 사설을 내보내긴 했다. 그러면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론을 중국의 도약 원동력으로 꼽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덩의 개혁·개방 노선에 깔린 실사구시 사상이나 위민(爲民) 정신을 따라 배우려는 정황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큰 물난리를 겪은 신의주 주민을 위해 우리 측이 지원을 제안했는데도 묵묵부답이다. 김씨 가계 우상화에 이용되는 김일성화(花)와 김정일화를 가꾸기 위한 전용비료가 개발됐다는 조선신보의 보도를 보라. 만성적 비료 부족으로 인한 식량난 해소보다는 세습 정지작업이 우선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김정은이 헐벗은 북한주민의 구세주가 될 리는 만무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반도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긴요하다는 점에서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정보라곤 해외 언론에서 보도한 그의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전부다. 관계 당국에서 충분히 자료를 확보한 뒤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를 미루고 있는 게 아니라면 심각한 사태다. 그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그가 이어받을 정권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 철처한 사전 탐구와 대비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 [씨줄날줄] 대통령 기념관/박대출 논설위원

    1963년 11월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미국인들은 애통에 빠졌다. 한 달 뒤 뉴욕국제공항(New York International Airport) 당국은 공항 이름을 바꿨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후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의 관문은 JFK로 불려지고 있다. 암살 현장인 남부 도시 댈러스엔 추모 기념관이 곳곳에 들어섰다. 존 F 케네디 메모리얼광장엔 케네디 기념비가, 저격 장소엔 식스 플로어 박물관이 세워졌다. 미국의 워싱턴 D C엔 대통령 저택인 백악관이 있다. 일대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적인 관광코스다. 국회의사당, 대법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국립미술관 등이 즐비하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역대 대통령 4명을 기리는 시설도 자리잡고 있다. 미국 국부(國父)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 기념탑,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케네디 센터 등이다. 우리는 어떤가. 1950년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재임시 우상화는 정도를 더해갔다. 지폐와 동전에는 얼굴을 새겼다. 생일 때 가정에선 태극기를 달았다. 1955년 3월26일. 80회 생일 땐 정점에 달했다. 서울운동장 기념식에는 부통령과 외국 사절, 한·미 장성 등이 참석했다. 세종로에서는 3군 사열이 진행됐다. 5년 뒤 4·19혁명을 자초했다. 시민들은 서울 탑골공원과 남산으로 달려갔다.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새끼줄로 끌어내렸다. 독재권력 응징은 헌정사의 단절로 이어졌다. 50년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은 9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을 기리는 시설은 빈약하다. 이 전 대통령은 별장이던 제주도 화락관과 강원도 화진포 기념관, 사저이던 이화장(梨花莊)이 전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북 구미 생가만 보존돼 있다. 그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전시관과 서울 김대중 도서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등이 고작이다. 그러다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계획이 의결됐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8년 만에 재개될 계기를 찾았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은 민간 주도다. 정부는 사업비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그래서 뒤편에 머물기 쉽다. 미래 전향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헌정사엔 영광과 오욕이 공존한다. 5년짜리 정권의 자의적인 잣대로 들이댈 일이 아니다. 단절의 역사를 끊고 화해와 통합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러자면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곳에 잘한 기록도, 못한 기록도 남기면 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김정일 방중] “北, 김정은 기념우표 발행 계획”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 기념우표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4일 보도했다. RFA는 지난달 21일부터 3일간 ‘조선-독일우호협회’ 주선으로 방북, 취재에 나섰던 독일 대외 공영방송 도이치벨레의 페터 쿠야트 동아시아 특파원의 말을 인용, 이같이 전했다. 쿠야트 특파원은 “조선우표사 부국장이 유력한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 기념우표의 발행 계획에 대해 확인해 줬다.”면서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북한 측이 김정은 후계 문제를 공표하려고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핵실험이나 천안함 침몰 사건과 같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는 북한 관리들이 김정은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김정은 권력 승계에 대해 조선우표사 부국장에게 질문했으나 ‘우리는 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짧게 답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쿠야트 특파원에 따르면 김정은 기념 우표 발행시기와 관련해 조선우표사 측은 “시간이 걸린다.”며 언급을 피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960~1970년대 주로 남한 비방 문구나 체제 선전,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소재로 우표를 제작해 왔으며, 1980년대부터는 해외 판매를 의식해 동식물·민속·국제행사 등을 주제로 한 우표를 발행했다. 특히 1972년에는 김일성 주석의 탄생 60주년 기념 시리즈인 연쇄우표 16종이 발행됐고, 2007년에는 김일성 주석의 95회 생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5회 생일 우표가 제작됐다. 2008년에는 김 위원장 추대 15주년 기념 우표가 나왔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백석의 전환기 詩세계 엿보는 열쇠

    백석의 전환기 詩세계 엿보는 열쇠

    이번에 발굴된 백석의 동시 세 편은 북한에서 ‘백석 문학의 부재(不在) 기간’으로 알려졌던 시기에 쓰여진 것들이다. 백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세 편의 동시에 대해 ‘1950년대 중후반까지 북한의 문예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이자 아동문학가로서 동화시(童話詩)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활동하던 백석이 1962년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거칠고 노골적인 시를 쓰기까지의 급격한 변화 과정을 설명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아동문학 논쟁의 패배…그리고 숙청되기까지 1957년 5월 북한에서는 아동문학 논쟁이 벌어진다. 남한도 아닌 북한에서, 그것도 수십 년 전에 벌어진 논쟁이 중요할 것은 없다. 하지만 몇 년 전 시인들의 설문조사에서 한국 근대시 100년 역사상 최고의 시집으로 꼽힌 ‘사슴’을 남긴 주인공이자 최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동시 ‘개구리네 한솥밥’의 작가인 백석과 관련된 논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백석은 당시 아동문학 논쟁에서 “계급적인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글감과 정서를 갖고 시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북한 아동문학계의 주류인 리원우 등으로부터 “낡은 사상의 잔재이자 수정주의 우편향”이라며 맹렬히 비판받았다. 결국 그해 9월 그는 이틀 동안 자아비판의 자리에 선다. 그리고 1958년 1월 함경북도 삼수군 관평리 국영협동조합으로 쫓겨간다. 백석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62년 10월 문학계의 대대적인 숙청 작업의 대상이 되며 아예 펜을 빼앗긴다. 그 뒤 숨질 때(1995년으로 추정)까지 더 이상 창작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화시와 체제 찬양시 사이의 간극 메워줘 협동조합으로 쫓겨간 뒤 숙청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국내에 소개된 백석의 작품은 ‘나루터’, ‘강철 장수’, ‘사회주의 바다’, ‘석탄이 하는 말’ 단 4편뿐이었다. 이 작품들은 북한 체제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시어로 이뤄진 것들이다. 충만했던 민족어의 시어(詩語)도, 가득 차오르는 예민한 감성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새로 공개된 3편의 우화시에서 노골적으로 체제를 찬양하는 의도는 쉬 보이지 않는다. 백석 특유의 시적 운율과 우화시의 내용은 유지하는 가운데 한두 줄의 구절을 보태 아이들의 계급성, 혁명성 교양을 요구하는 북한 아동문학계와 타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송아지들은 이렇게 잡니다’를 보면 기존에 알려진 백석 동화시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맨 마지막 줄에 ‘(…)송아지들은 어려서부터 원쑤에게 마음을 놓지 않으니까요.’라는 시구를 덧붙인다. 이는 당시 북한 아동문학계가 요구하는 의식성, 교양성 고취를 다분히 의식한 것이다.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1957년까지 백석이 썼던 동화시와 1962년에 쓴 우상화, 체제 찬양시와는 간극이 너무 컸고 그 변화를 설명해줄 구체적인 작품의 부재는 그동안 백석 연구의 빈틈과 같았다.”면서 “이번 동시 세 편을 통해 그 빈틈이 메워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숙청 분위기를 예감한 백석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바꿔가면서까지 글을 쓰고 싶었던 쓸쓸한 처지를 짐작케 해준다.”고 덧붙였다. 백석 아동문학 연구자인 장성유 동화작가도 “이 동시들은 작품성 자체보다 백석의 삶과 문학 세계를 좀더 자세히 읽을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1962년 협동조합 시기 백석 작품이 좀더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백석은 누구인가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했다. 해방 전까지 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다. 1936년 발간한 시집 ‘사슴’은 민족어의 아름다움과 모더니즘의 시적 형상화에 있어 최고였다는 상찬을 한몸에 받았다. 8·15 광복 뒤 고향으로 돌아가 북쪽에서 살며 아동문학으로 방향을 틀어 여기에 전념했다. 1962년 10월 이후 문학을 비롯한 그의 작품 기록이 남지 않았다. 사망연도가 불명확했으나 최근 들어 1995년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매니저 ‘팬 폭행’ 악순환 계속되는 이유?

    매니저 ‘팬 폭행’ 악순환 계속되는 이유?

    인기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가 소녀팬을 폭행한 정황이 또 한번 드러났다. 인기그룹 샤이니의 매니저가 지난해 한 소녀의 머리를 가격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된 것. 보이밴드 씨엔블루의 매니저가 한 여성을 때리는 모습이 포착된 지 하루 만이다. 일부 매니저들이 저지른 폭력사건으로 가요계는 술렁이고 있다. “극성팬들이 무리하게 몰려들어 과격행동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일어난 폭력은 충격적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반응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암암리에 행해지던 매니저들의 언어나 신체적 폭력이 수면에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실제로 그동안 SS501의 김현중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등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팬들과 사이에서 폭력시비가 종종 불거진 바 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매니저의 팬 폭행 사건, 그 원인은 무엇일까. ◆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인 10대 팬 일부 스타의 매니저들이 저지르는 폭력사건은 대체로 10대 팬들에게 일어난다. 스타들을 우상화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는 10대 팬들이 그들을 따라다니는 과정에서 종종 매니저들과 마찰을 빚기 때문. 담당 연예인을 보호해야 하는 1차 목적을 지닌 매니저들에게 10대 소녀들은 스타의 음악과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닌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변한다. 10대 팬들은 때때로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이지만 부당한 행위에 적절하게 법적 대응을 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일부 매니저들의 그릇된 대우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추억거리쯤으로 여기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 매니저의 전문성 결여 연예계 관계자들은 일부 매니저들이 빚은 불미스러운 사건의 원인을 그들의 그릇된 직업의식에서 찾는다. 매니저들은 담당 연예인들의 신체 보호와 더불어 이미지 관리까지 해야 하는 책무가 있으나 대부분 매니저들은 스타 보호라는 1차적인 소임만 내세워 되려 스타의 이미지를 실추시기고 있다는 것. 수년간 방송업에 종사한 A씨는 “최근 전문 매니저 양성 기관이 생기고 있으나 여전히 전문성이 결여된 매니저들이 허다하다.”면서 “직업의식이 확립되지 않은 이들이 그릇된 관례를 그대로 답습하다가 폭력 사태라는 불상사가 빚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연예인 보호할 인력 부족 일선 매니저들이 하나 같이 주장하는 건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이돌 그룹의 경우 매니저 1명이 공연 및 방송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도 많다. 운전, 일정관리에도 벅찬 매니저가 몰려드는 극성팬까지 막다가 무력진압이 나온 것이라고 항변하다. 가수 김현중도 전문 경호 인력부족을 지적한 바 있다. 김현중은 지난 달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팬들을 막다가 매니저가 욕을 먹는 경우가 있다. 전문 경호원을 써서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팬 관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우리의 현실과 대조적으로 수십만 명의 팬을 거느린 할리우드 스타들은 팬들과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마찰을 빚지 않는다. 매니저를 제외하고도 서너 명에 달하는 전문 경호원을 고용해 팬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스타들의 노력 덕이다. 스타들은 허용된 범위 내에서 사인이나 사진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해 팬 관리와 본인의 안전까지 확보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팬들을 거느리려는 것이 아닌 공존하려는 스타들의 노력과 선진적인 시스템은 매니저가 팬들에게 폭력까지 저지르는 우리 가요계 현실에서 한번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스타의 꿈/함혜리 논설위원

    깡마른 체구의 한민관을 주목받는 개그맨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라는 유행어 한마디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에 출연 중인 그는 스타 지망생들에게 명함을 뿌리는 연예 매니저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그의 개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우리 사회에 스타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용맹한 장군이나 정복자, 지혜가 뛰어난 현인들이 우상이었지만 20세기 들어서 매스미디어 보급이 일반화되고 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대중 스타들이 우상이 됐다. 이들은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대중음악, 스포츠 등 대중 문화를 통해 빼어난 외모와 재능, 기량을 발휘하며 대중들의 열광과 흠모를 받는다. 대중스타의 우상화를 부추긴 것은 할리우드의 스타시스템이다. 1930∼40년대 스타들을 대량 확보한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사들은 이들의 이미지를 영화 흥행에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스타시스템이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스타들의 출연료를 지나치게 높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에서 시작된 우리 대중문화의 스타시스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장르로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류 열풍으로 TV드라마, 가요, 영화에서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스타들의 몸값은 수직 상승했다. ‘겨울연가’의 한류스타 배용준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1회 출연료로 1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고 한다. 이병헌도 ‘아이리스’에서 편당 1억원을 받았다. MC 유재석과 강호동은 회당 출연료가 900만원에 육박한다. 가히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하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의 경우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 따르면 회당 50만원 이상을 받는 연기자는 10%에 불과하다. 회당 출연료가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스타들은 연기자협회에 등록한 1700여명의 연기자 가운데 0.01%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연기자들의 70%는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무명배우들은 출연료가 회당 10만∼15만원에 불과하다. 엑스트라의 경우 생활고는 이들보다 더 심하다. 2008년 국세청에 소득세를 신고한 가수, 배우, 탤런트 등 연예인은 2만 7115명이라고 한다. 대중스타가 인간소외의 산물이라거나 소비적인 우상에 머물던 시대는 지났다. 스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기원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김정일위원장 수행빈도로 본 北 권력지도

    김정일위원장 수행빈도로 본 北 권력지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방 군부대와 경제시설 등을 찾는 ‘현지지도’에 소수의 최측근 인물을 대동함으로써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인물일수록 실세로 꼽힌다. 2009년 한 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은 누구일까. 24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현재 모두 157차례 현지지도를 했고, 여기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내민 주요 인물은 13명이다. 그중 최다 수행은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108차례나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85회),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77회), 현철해 북한군 총정치국 상무부 국장(56회), 이명수 국방위윈회 행정국장(48회) 등이다. 김기남 비서는 선전·선동과 김정일 우상화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대표적 구호인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도 그의 작품이며 김 국방위원장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주요 문헌이나 각종 축하문의 경우 대부분 김 비서의 손을 거친 것이다. 특히 그는 향후 북한 후계 구도에서 김 위원장의 3남 정은의 우상화 작업을 담당할 유력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김 비서는 신중하고 침착한 언행으로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우며 매사 꼼꼼하고 일처리에 실수가 없어 한 번도 숙청을 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 비서에 대해 “김정일 앞에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측 조문단의 단장으로 서울을 찾았다. 2005년 8월에는 북한 인사로는 처음 서울의 국립 현충원을 방문했다. 장성택 행정부장은 김 위원장의 매제다. 그는 한때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04년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좌천되면서 2005년에는 단 한 번도 현지지도에 동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6년부터 권력을 회복, 올해 김 위원장의 측근으로 회생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 그는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져 있다. 현철해 국장은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수행 횟수에서 상위권을 지켰다. 그는 10년간 모두 435회 현지지도에 동행했다. 과묵한 성격에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이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유럽 ‘현대소설 백화점’ 한번 들러볼래

    유럽은 우리에게 가깝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곳 중 하나가 유럽이다.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고, 한 번 비행기 타고 날아간 뒤 간편하게 국가간 이동도 할 수 있는 ‘배낭여행자의 학교’ 같은 곳이었다. 또한 유럽의 예술, 문화, 역사 역시 중·고등학교 미술시간, 세계사 시간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쭈욱 배워왔으니 어느 나라, 어느 대륙보다 친숙한 지역이다. 하지만 유럽의 현대 문학이라면? 프랑스나 독일 등 그나마 알려진 작가들 한 두 명 정도를 떠듬거리며 댈 수 있을까? 난감해진다.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유럽, 소설에 빠지다’(전2권·민음사 펴냄)가 나왔다. ‘유럽 도시의 삶’이라는 공통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같은 문화권에 있는 작가들이지만 조금씩 다른 국가별 문학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그나마 알려진 나라는 물론,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헝가리, 불가리아 등이 망라됐다. 한국 주재 외교관 등으로 구성된 문학 모임 ‘서울문학회’ 창립에 기여했고, 시를 쓰고 있는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와 민음사의 공동 기획물이다. 대부분 2000년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다.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스토야노프의 ‘프랑스어 수업’은 한 아이가 부모님의 강요로 프랑스어를 배우며 겪은 문화적 충격과 빈부 격차,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에 닥쳐 느끼는 혼란스러움, 불안함에 대한 작품이다. 고작 7쪽의, 소품에 가까운 단편소설이지만 동유럽 국가의 현재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스페인의 서른세 살 젊은 작가 하비에르 몬테스는 ‘대담무쌍 알프레도’에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영웅이 만들어지고, 우상화되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대형 화재 사건이 벌어진 뒤 비극을 덮기 위해 언론은 열 명이 넘는 사람을 구했다는 인물에 대해 주변을 취재하고 당시 상황의 증언들을 앞다퉈 싣는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까지 ‘영웅 알프레도’의 존재는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실체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바리외 대사는 “유럽은 민주주의, 인권존중 등 공동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진정한 힘의 원동력은 서로 다른 차이점에 있다.”면서 “이 소설집이 EU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메니스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메니스탄/오일만 논설위원

    쉽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11시간30분만에 이스탄불에 내려, 또 3시간40분을 날았다. 총 비행거리는 7550마일. 아슈가바트,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에 드디어 도착했다. 그런데 이스탄불에서 와야 할 짐이 오지 않았다. “내일 오라.”는 항공사 직원의 말에 이곳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발길을 돌린다. 어이가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첫 대면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부른다.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로선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어쩌면 통일에 대한 대비책일지 모른다. 북한과 흡사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수도 아슈가바트 곳곳에 15년간 철권 통치를 했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금빛 동상이 세워져 있다. 자신의 철학을 담은 저서 ‘루흐나마(Ruhnama)’를 청소년에게 강제로 읽혔다.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작업과 맥을 같이한다. 현 대통령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의 초상화는 관공서는 물론 심지어 상점과 음식점 대부분에 걸려 있다. 결혼을 하면 중립국 기념탑이나 독립공원에 있는 니야조프의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고 한다. 북한은 신혼 부부들이 평양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 숙소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바라본 시내 정경이 왠지 낯이 익었다. 2년전 평양 방문 당시 양각도 호텔에서 찍었던 사진을 얼른 꺼내 보았다. 평양과 아슈가바트의 스카이 라인은 거의 똑같았다. 누가 누구 것을 베낀 것인지 모를 정도다. 밤이 되면 더욱 가관이다. 유럽풍의 고급 아파트와 기념물들이 곳곳에서 멋진 야경을 뽐낸다. 하지만 아파트의 대부분은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의 이목 때문인지 밤마다 환하게 전등을 켜고 있는 것이다. 독재국 특유의 ‘폼생폼사’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필자가 접촉한 관료들은 외국인들을 경계하는 눈치다. 질문 공세를 펴도 ‘원칙적’인 이야기 외엔 입을 다물었다. 면담시 모든 발언을 젊은 배석자가 적고 있었다. 그는 명함도 주지 않고 기념사진 촬영도 거부했다. 현지 한국 대사관 직원이 정보부에서 파견된 감시자라고 귀띔한다. ‘공포 정치’는 독재국의 전형적인 정치 행태다.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에 한·투르크메니스탄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중에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묻자 현직 부총리가 무릎을 꿇고 답변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한다. 한 대사관 직원은 “대통령 눈에 거슬리면 법적인 조치없이 곧바로 일명 사막 수용소로 불리는 정치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전한다. 이러한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년전 집권한 현 대통령은 젊고(52세) 영리했다. 전임자와 달리 국민들의 숨통을 터주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서구문화라고 금지시킨 오페라 공연을 부활시켰고 야간 통금을 완화하고 시내에 PC방 설치를 허용,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용인했다. ‘투르크판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것이다. 아슈가바트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2년전 가본 평양 거리가 떠올랐다.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와 활기를 잃은 시민들의 발걸음, 체제 찬양에 열을 올리는 관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북한이란 화두는 늘 가슴을 짓누르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軍정훈교육 유신당시 박정희 우상화”

    “(박정희 대통령은) 5000만 겨레의 염원인 조국통일 대업을 위해 유신(維新)의 횃불을 밝히신 전략가이며 개척자”(1973년 국방부 기본정훈교재 중),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께서 원대한 경륜과 포부, 철학과 신념을 가지시고…새 영도자로 추대”(1984년 국방부 간부교재 ‘선진국군’ 중). 국군 정훈교육이 정권교체 때마다 통치권자의 의도에 따라 정치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장영주 예비역 대령이 광복군부터 참여정부까지 각 시대별 군(軍) 정훈교육을 분석한 경남대 박사학위 논문 ‘한국군 정훈교육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드러났다. 장 예비역 대령은 4일 “정권 교체와 통치이념은 정훈교육 교재의 개편주기 및 내용 변화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정훈 교재 내용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개편됐다. 박정희 정부 때는 5·16쿠데타와 1972년 10월 유신을 기점으로 정훈교육이 바뀌었다. 특히 유신체제에선 박 대통령 우상화 경향도 나타났다. 국방부가 1973년 발간한 기본정훈교재는 유신 헌법과 체제의 당위성 등 정치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대북관에 변화가 온 것은 김영삼(YS) 정부 때였다. 1993년 YS 정부 출범 초 제작된 국군정신교육교본에서 북한을 지칭한 ‘우리의 적’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삭제됐다. YS 때에는 북한 비판에 유화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김대중(DJ) 정부 집권 후인 1998년 제작된 국군정신교육교본에는 북한을 주적으로 한 뚜렷한 대적관이 부활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후 개편된 2003년판 정신교육교재에서 ‘우리의 적’, ‘통일안보’ 등 기존 용어가 모두 삭제됐다. 장 예비역 대령은 “정훈교육의 이론적 배경과 전문성이 낮아 정권교체 때마다 해바라기성 정훈교육이 되풀이된 경향이 있다.”면서 “통치이념의 주입보다는 정신전력 강화라는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구서/안재승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구서/안재승

    ▶등장인물: 어머니,아들,딸,아버지(1인1역),외교통상부 관계자,무장단체 요원들,기자들,시민들,각 단체 대표들(해병전우회장,기독교단체장,시민단체장),동시통역사(이상 1인다역) ▶시간 및 공간: 현대,대한민국 ▶무대: 이 극은 장면의 전환이 많다.따라서 기본적으로 빈 무대를 사용하며,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의 분위기를 상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품들을 사용한다. 1장 방 세 개짜리 반 지하방의 거실.한밤중.붉은 색,취침등이 켜져 있다.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잠시 후,다시 울리는 전화벨.거실 한 구석에서 토막잠을 자던 어머니,잠에서 깨어 전화기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손을 뻗는다.어머니,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전화벨이 끊어진다.잠시 후,다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딸이 방문을 열고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나온다. 딸 에이 씨! 어머니 그들일까? 딸 시끄러워.빨리 받아. 어머니,쉽게 전화를 받지 못한다.아들,방에서 나온다.어머니,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여보세요? 외교통상부 (소리)여기 외교부인데요! 어머니 (말을 자르며)어디요? 외교통상부 외교통상부요! 어머니 무슨 일이시죠? 외교통상부 (소리)조금 전에 주 파키스탄 대사관에 이 전화번호하고,김만수씨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무장단체의 메시지가 전달됐는데요.저희도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을 해야 해서요.김만수씨 집에 계시면 좀 바꿔주시죠. 어머니 제 남편요?그럼요.지금 방 안에서 자고 있는걸요.잠깐만요. 어머니,남편의 방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린다. 어머니 나와서 전화 좀 받아봐요! 정적.아무런,인기척이 없다.어머니,남편의 방문을 다시 두드린다. 딸 그냥 열어! 어머니 항상 잠겨 있잖니. 딸,아버지 방의 문고리를 거칠게 돌린다.쉽게 열린다.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아버지의 방은 파키스탄 어느 민가로 전환된다.환영처럼,어둠 속,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 무장 단체 요원들.무장 단체 요원 중 한 명이 커다란 아랍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한다.옆에서 다른 요원이 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으려 하는 도중,무대 밝아진다.거실,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 언제 없어진 걸까?(사이)너하곤 종종 얘길 하지 않았니. 아들 옛날 얘기예요. 딸 정확히 3년 전이야!내가 연기학원을 그만둔 날이었으니까. 아들 저녁을 먹는데 느닷없이 ‘난 파산했다.’고 말했죠. 딸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지. 어머니 ‘양심적으로 갚으려고 했는데.이젠 돌려막기도 한계에 다다랐구나.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얘기했어. 아들 침묵.한참 후에 엄만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살죠?’라고 물으셨죠. 어머니 니 아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니?’라고 대답했고. 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들 그 이후,우리가 있을 땐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죠. 어머니 산 입에도 거미줄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딸 우리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도. 아들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죠. 딸 어쩌다 가끔 소리는 들려왔어. 아들 아직 살아 있구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족들의 기억에 따라,아버지의 방 너머에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어머니 한참을 누군가와 애기하는 듯했지. 아들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딸 끙끙 앓는 신음소리. 어머니 다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아들 무서운 비명소리. 딸 귀신이 곡하는 소리. 어머니 깊은 한숨소리. 아들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소리가 시작되었죠.우리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어머니 아주 서툰 연기였지. 아들 동정을 바랐겠죠.아니면 자기 역시 힘들다는 걸 알리고 싶었거나. 딸 TV 볼륨을 높이면 더 크게 소리를 내.소리를 죽이면 멈추고.마치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아들 우리의 일과에 맞춰,늘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서 정해진 시간에 끝이 났죠. 침묵.소리,사라진다. 딸 유령 같았어.살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아들 방 안에서 도대체 뭘 했던 걸까요? 어머니 시간을 죽였겠지. 딸 바깥의 상황을 살피며 어떡하면 더 불쌍하게 보일까 궁리했든가. 아들 우리가 나가고 나면? 어머니 밥을 먹거나,TV를 보거나.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기듯이. 아들 외출은? 어머니 가끔 신발의 위치가 바뀌어 있긴 했는데.먼지가 그대로인 걸 봐서는 멀리 다녀온 것 같지는 않더라. 침묵. 어머니 신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더라? 아들 (사이)이주 전쯤 이었을 거예요.아버진 누군가와 얘길 하고 있었어요.누군가와 비밀스런 대화를 하듯,‘이브라힘!’이라는 말을 반복했죠.미친 게 아닐까 의심했어요.제 인기척이 느껴지자 급하게 전화를 끊더라고요.그러곤 다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죠.늘 그랬던 것처럼.갑자기 짜증이 밀려 왔어요.그래서 제가 한마디를 했죠.(사이)에이! 씨발.조용해지더군요.평화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머니 네가 좀 심했구나. 아들 씨발.아버지가 즐겨 내뱉던 단어죠.침묵을 제외한 유일한 단어. 딸 아빤 언제나 화가 나 있었어. 아들 늘 긴장해야 했지요. 어머니 말을 안 하니까 더 불안했지. 딸 그래도 얼굴엔 다 쓰여 있었어.알아서 기어라! 아들 복종과 침묵의 룰.일종의 계약이었죠. 딸 누구 맘대로? 아들 아빠 맘대로. 딸 왜? 아들 그야,이 집의 가장이니까. 사이.어머니,갑자기 하품을 한다. 어머니 이러면 안 되는데….자꾸 졸음이 오는구나. 딸,크게 하품을 한다. 어머니 니 아빠가 지금 잡혀있는 곳이 어디라 했지? 아들 파키스탄요. 어머니 거긴 어떤 곳이니? 아들 끝없는 모래사막 주변으로,깎아놓은 듯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요. 어머니 경치가 무지 좋겠구나. 딸 이런 홀가분한 기분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아. 아들 신경 써야 할 무언가가 없다는 거. 딸,바닥에 눕는다.하품이 전염된다.아들 역시 하품을 한다.아들도 바닥에 눕는다.어머니도 하품을 한다.어머니,졸음을 참는다.어머니,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진다. 아들 왜요? 어머니 오늘이 이자 내는 날이구나. 딸 에이-씨.기분 잡치게 그딴 소린 왜 해. 어머니 미뤄달라고 사정 좀 해볼까? 아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아들과 딸,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어머니,고민한다. 어머니 근데 니 아빠는 왜 거길 간 걸까?(사이)진짜 아버질 죽일까?(사이)이자는 어떻게 마련하지? 무대 천천히 어두워진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밝아지는 무대.그 소리에 잠에서 깨는 어머니.조심스럽게 현관으로 걸어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애쓴다.누군가 밖으로 난 거실의 창문을 열려는 시도를 한다.어머니,아들의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간다.어머니,아들을 앞세워 걸어 나온다.현관문과 거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이번엔 확실하지? 아들 그냥 아무도 없는 척해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딸,부스스한 모습으로 방문을 열고 나온다. 딸 (소리를 지르며)에이-씨!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머니와 아들,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딸을 바라본다.조금 전보다 더 격렬하게 현관문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딸 뭐야? 어머니 그들. 딸 아빠,파키스탄으로 도망갔다고 해. 아들 그럼 우리가 갚아야 돼. 딸 왜? 아들 가족이니까. 딸 더 이상은 아니라고 해.아버지는 우릴 버리고 떠났다.그래서 우리도 기억에서 아버지를 죽였다.그러니까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딸,현관문을 벌컥 연다.일제히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아들,딸을 밀쳐내고 문을 닫는다.딸,화장실로 뛰어간다. 어머니 뭐였니? 아들 기자들. 어머니 왜? 아들 인터뷰하러. 어머니 뭘? 아들 우리. 어머니 왜? 아들 테러리스트에게 가장을 인질로 잡힌 가족,극적이잖아요. 딸,화장실에서 나온다.세수를 하고 나온 얼굴이다.급하게 화장품을 바른다. 딸 에이 씨,쌩얼이었는데.인터넷에 엽기사진으로 돌아다닐 게 분명해. 아들 이 상황에 그딴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니? 딸 내 미래가 걸린 심각한 상황이니까. 아들 미친년! 어머니 (소리를 지르며)그만. 아들과 딸,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갑자기 굳게 닫혀있던 창문 틈 사이로 머리 하나와 마이크가 불쑥 들어온다. 기자1 김만수씨는 왜 파키스탄에 간 겁니까? 어머니 (당황해서)몰라요. 기자1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어머니 정말 몰라요.한 달 간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으니까. 기자1 암중모색! 기자1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2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2 와신상담!그렇다면 어떤 큰 결심이 있으셨단 얘기군요.최근 평상시와는 다른 특별한 말이나 행동은 없었나요? 어머니 늘 신음소리와 한숨소리뿐이었죠. 기자2 고뇌에 찬 인간의 탄식!집에선 주로 어떤 생활을 하셨죠? 어머니 유령처럼 살아있다는 작은 흔적만 남겼어요. 기자2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1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1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수양!그리고요? 어머니 가끔 TV를 봤어요. 기자1 어떤 프로그램이었죠? 어머니 동물의 왕국. 기자1,안간힘을 다해 버틴다.기자1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3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3 저희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이군요.인터뷰를 종합하면 김만수씨는 한 달 동안의 칩거를 통해 생태계의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 뜻을 펼치고자 파키스탄에 가신 거네요? 기자3의 얼굴이 사라진다.창 밖에서 기자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무대 점점 어두워지고,주변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증언한다.증언자의 기억에 따라,아버지의 모습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여성 그 아저씨,특별했어요.전 한 무리의 고양이들이 아저씨네 집 창문 앞에 모여 있는 걸 자주 봤어요.‘야옹!야옹!’고양이들이 선창을 하면,‘야옹!야옹!’아저씨는 화음을 넣었죠.합창하듯이.무언가 교감이 이루어지는 듯했어요.그걸 지켜보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청년 마치 축지법을 연마하는 도인 같았어요.매일 아침,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수련이 시작되죠.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제 창문 앞을 스쳐 지나가요.‘사-삭!사-삭!’지면과 발바닥의 마찰이 없는 것처럼.잠시 후 다시 ‘사-삭!사-삭!’제 창문 앞을 스쳐지나,집으로 들어가면 수련이 마무리됐죠.아저씨 손에는 언제나 수련의 징표가 들려있었죠.요 앞 지하철역에서 나눠주는 무가지요. 무대 밝아오면,거실에 심각하게 앉아 있는 가족. 딸 에이 씨!아빠가 무슨 사이비 교주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잖아.내 미니홈피는 온통 악플로 도배야.(엄마에게)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들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면 되지. 딸 진실이라 해도 안 믿어. 아들 거짓말이라도 해서 믿게끔 만들어야지. 딸 난 결백하다,자살이라도 해야 겨우 믿을 걸? 아들 이런 건 어때?예를 들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파키스탄에 갔다고 하든가,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갔다고 하든가.그러면 악플 달 이유가 없는 거잖아. 딸 (비아냥거리며)아빠가 틈만 나면 욕을 퍼붓든 두 가지네. 아들 조작하면 어때?직접 확인할 수도 없는데. 어머니 있잖니….아버지 말이다.예전에 교회를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구나.결혼하기 전에.해병대에서. 딸 (화를 내며)그게 뭐 어쨌다고! 아들 해병대와 교회!완벽한 알리바이야!(사이,아들 부산을 떤다)엄마는 아빠 서랍장에서 해병대 군복을 찾으세요.그리고 넌 십자가 목걸이 가져오고.빨리!지금부터 우리 집 가훈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예수천국 불신지옥!’아버진,신의 부름을 받고 귀신을 잡기 위해 파키스탄에 간 거야! 무대 점점 어두워진다,해병대 군복을 입은 해병전우회장(이하 해병)이 성명서를 발표한다. 해병 김만수 해병이 왜 파키스탄에 갔느냐?호랑이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잡아요.네!김만수 해병은 귀신처럼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스스로 인질로 붙잡힌 겁니다.세계 평화를 위한 김만수 해병의 희생을 우리가 헛되이 하면 되겠습니까?테러리스트를 쓸어버리고 김만수 해병을 구합시다,여러분! 이에 질세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띠를 두른 한 기독교 단체 대표(이하 기독교)가 성명서를 발표한다. 기독교 할렐루야!김만수 신도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홀로 미개한 땅 파키스탄에 간 것입니다.배고픔과 병으로 죽어가는 파키스탄을 어린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사탄과 악마의 소굴로 몸소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김만수 신도,죽으면 천국 갑니다.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다 죽은 자,반드시 하나님의 땅에서 영생을 누립니다.하지만 김만수 신도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서,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자는 사탄의 총칼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간증해야 합니다,여러분! 암전. 2장 무대 밝아지면,다시 거실.아버지의 방문에는 빛바랜 해병대 군복이 훈장처럼 걸려 있다.군복엔 반짝이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다.아들과 딸,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들 아버지는 언제나 해병대 정신과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며 사셨지만,단 한 번도 저희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시진 않았습니다.저희에겐 언제나 관대하셨죠.그래서 저희 가족은 교회에 나가지 않은 거고,저도 해병대에 가지 않은 겁니다.하지만 자신에게만큼은 엄격하셨습니다.항상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세계평화와 전도에 자기 한 몸을 바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셨죠.(동생에게)그렇죠? 딸 (대답하지 않는다) 아들 감사합니다.여기까지 하죠. 일상의 거실로 되돌아온다. 딸 오빠,거짓말 진짜 잘하더라. 아들 다 우릴 위해서야.(답답하다는 듯)그래,너 연기하고 싶어 했잖아.그냥 지상 최대의 연속극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거라 생각해. 딸 지상 최대의 사기극이겠지. 아들 사기라니?이건 아버지,어머니,그리고 너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라고. 딸 그럼 오빤? 아들 나는 예비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팔고 있잖아.법조인으로서의 내 인생은 오늘로 끝이라고.후회는 안 해.가족을 위해 나 스스로 포기한 거니까. 딸 그토록 바라던 게 이루어졌네. 아들 신문에 니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실릴 걸.졸지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는 거지.넌 그냥 내 계획대로만 따라와.그럼 모든 게 잘 될 테니까. 딸,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아들,자리에 눕는다.TV를 튼다.TV에선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아들,잠시 웃는다.그때,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소리 뉴스 속봅니다.조금 전 파키스탄에 납치된 김만수씨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입수되었습니다.인질범들의 구체적 협상 조건이 담긴 테이프가 몇 시간 전 알 자지라 방송국에 우편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알 자지라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무대 어두워지면,어둠 속,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몸엔 폭탄으로 보이는 물체가 매달려 있다.폭탄을 두른 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한 명의 무장 단체 요원이 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는다.인질 석방을 위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된다.외교통상부 관계자,해병전우회장,기독교단체장,무장단체 요원이 나온다.동시통역사가 진행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과장된 무장단체 요원의 몸짓을 따라하며 통역을 하는 동시통역사.가족들도 토론의 장에 불려 간다.이들은 토론에 참여한 방청객으로,패널의 말을 듣고 반응한다. 동시통역사 우리는 김만수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탈레반 인질 10명의 맞교환을 요구한다. 외교통상부 인질범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의 철칙입니다.테러리스트의 석방이라니요?국제사회의 비난이 불 보듯 뻔합니다. 해병 일단 교환합시다.교환하고 나서 아예 싹쓸이해 버리자고요.해병 1개 연대면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독교 하나님은 김만수 형제를 사랑하십니다.잘못된 길로 빠진 테러범들도 사랑하십니다.일단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고,테러범들이 하나님 앞에 참회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무장단체 요원,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몸에 감긴 폭탄을 터뜨리겠다. 기독교 오,지저스!당장에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해병 저런 사지를 찢어죽일 놈들. 외교통상부 인질 맞교환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미국 정부와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기독교 세계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미국도 하나님의 나랍니다.우리는 형제입니다.형제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미국은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을 겁니다. 해병 미국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나랍니다.국민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군사작전도 불사합니다.안보문제라면 해병 전우회라도 특공대로 보냅시다.해병대는 예비역도 귀신 잡습니다. 무장단체 요원,황당한 표정이다.한참을 고민한 끝에 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협상시한은 내일 낮 12시! 기독교 자,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김만수씨의 무사 생환을 촉구하는 예배를 올립시다.다 같이 일어나십시오!기도합시다!(손뼉을 치며,찬송가를 부른다.) 해병 전우여,해병의 힘을 보여줍시다.김만수 해병,우리가 구해옵시다.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반동에 맞추어 ‘팔각모 사나이’를 부른다.) 상대에게 질세라,목청 높여 노래한다.무장단체 요원,어이없다는 표정이다.가족들,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아 제지당한다.무장단체 요원,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다만……. 모두 숨을 죽인 채,통역이 되기를 기다린다. 동시통역사 미화 100만달러를 지불한다면,인질을 석방할 용의가 있다. ‘와~’,기독교 단체와 해병전우회가 서로 끌어안고 환호한다. 기독교 기적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해병 저 놈들,겁먹은 거야!해병대의 패기에 얼어버린 거야! 그때,시민단체장(이하 시민단체)이 나타난다.젊은 여성이다. 시민단체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낭비할 순 없습니다! 해병 지금 사람 생명보다 돈이 중요해! 기독교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이 중하다 말씀하십니다. 시민단체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마련합니까!외교부 예산에서 마련하시겠습니까?아니면 국방예산에서 마련할까요?종교인에게 세금을 거둘까요? 침묵. 해병 솔직히 100만달러면 바가지 아니야? 기독교 목사님들,항상 베풀기 때문에 배고픕니다. 해병 정부가 나서서 협상금 내려야 하는 거 아니야? 기독교 자,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김만수씨의 협상금을 낮추는 예배를 올립시다.다 같이 일어나십시오!기도합시다! 해병 전우여,해병의 힘을 보여줍시다.김만수 해병 협상금,우리 깡으로 깎아봅시다.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시민단체 잠깐!왜 팔각모 사나이죠?여해병도 있는데!이건 남녀 차별이에요!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바쁘다.참다 못 한 어머니,토론장으로 뛰어들어 말한다. 어머니 사람 목숨 가지고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그 돈,우리가 갚을 테니,일단 살리고 봐요! 침묵. 외교통상부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미화 100만불을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무장단체 측에 공식적으로 통보합니다.단,추후 김만수씨 가족에게 협상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 일체를 청구하되,도의적 차원에서 이자는 받지 않겠습니다.이상.기자회견을 마칩니다. 가족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다.어머니를 노려보는 딸과 아들. 딸 에이- 씨! 아들 도대체 왜 나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침묵. 아들 젠장 무덤에 들어가서도 청구서 받게 생겼군. 딸 둘이 알아서 잘 해봐.그 돈 갚느라 내 청춘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 아들 니 청춘은 금값이고,내 청춘은 똥값이냐? 딸 오빤 장남이잖아. 어머니 니들은 걱정 말아라.내가 갚으마.일을 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 뭐 생명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거 있어? 그때,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아무도 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마지못해 딸이 현관문을 연다. 딸 에이 씨!누구야! 얼굴을 내미는 검은 양복의 대부업체 직원. 대부업체 여기가 김만수씨 댁이죠? 아들 인터뷰 안 해요.그냥 가요. 아들,문을 닫으려 한다.대부업체 직원,필사적으로 문을 막아서고 안으로 들어온다. 대부업체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이밀며)하지만 계약서상에는……. 아들 약속 취소합시다. 대부업체 그러면 법적인 문제가……. 아들 기자양반.기자 양반이 양심이 있어야지.아무리 특종이 밥 먹여 준다 해도,당사자가 원치 않는 취재를 하면 쓰겠어! 대부업체 기자라니요?전 희망캐피탈에서 나왔는데요,김만수씨 대출금 관계로. 아들의 표정이 굳어진다.대부업체 직원 얼굴에 미소를 띠고,친절하게 말한다. 대부업체 경황이 없을 줄은 압니다만,국가에서 청구한 돈을 먼저 갚으시느라 연체 이자가 산처럼 불어나는 상황에 처하게 되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찾아왔습니다.상환일은 앞으로 삼일.만약에 그 기한 내에 갚지 못하시면,김만수씨의 협상금 중 일부를 차압할 계획입니다.뭐,확실히 돈을 갚으시겠다는 약속만 해주시면 도의적인 차원에서 일주일정도 기한 연장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암전. 3장 어머니가 가사도우미를 하는 아파트의 베란다이다.의자 위에 올라가 창과 창틀을 닦는다.매우 힘겨워 보인다.허리가 아파 쉬는 어머니.크게 하품을 한다.어머니,다시 창을 닦는다.창을 닦는 속도가 느려지고 어머니,꾸벅꾸벅 존다.그 모양이 위태롭다.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어머니.초겨울 낮의 나른한 햇살에 평화롭게 잠든 어머니.잠시 후,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어머니,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존다.누군가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존다.휴대전화가 울린다.휴대전화 소리에 놀란 어머니,균형을 잃고 창문 밖으로 떨어질 뻔한다.다시 균형을 잡고 전화를 받는 어머니. 어머니 여보세요. 아들,무대 오른쪽에 나타난다. 아들 나예요! 어머니 웬일이니.아침밥은 챙겨먹었니? 아들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어머니 잠깐만…….누가 왔나보다.조금 있다가 다시……. 아들 문 열면 안 돼요. 어머니 왜? 아들 경찰이에요. 어머니 경찰? 아들 아래를 봐요. 어머니,아래를 내려다본다.무대 왼쪽,고개를 쳐들어 위를 바라보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 어머니 어디 구경거리라도 있니? 아들 엄마. 어머니 나를 왜? 아들 자살하려는 줄 아니까요. 어머니 (큰 소리로)저기요!전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들 미쳤어요?당장 죽을 것처럼 행동하세요. 어머니 왜 그런 거짓말을 하니. 아들 우리를 살리는 거짓말이니까요.아버지 얘기를 해요.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해서,돈을 모으는 거예요. 딸,무대 왼쪽에 나타난다. 딸 (비명을 지르며)엄마!죽으면 안 돼!내려와 제발! 사람들,딸을 쳐다본다. 어머니 (창 밖을 내다보며)저 아래서 소리 지르는 애,미애 아니니? 딸,실신한다.사람들,딸의 얼굴에 물을 붓고,뺨을 때린다. 어머니 어머,쟤 왜 저래.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들 연기하는 거예요. 어머니 내려가 봐야겠구나. 아들 가만히 계세요.제가 그러라고 시킨 거예요.극적 효과를 위해서.모든 게 제가 짠 시나리오예요.얘기를 시작하세요.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사람들 관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으니까요.일단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어머니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아들 (화를 내며)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좀 하세요.이게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고 희망이에요.(사이)저는! 어머니 (작은 목소리로)저는. 아들 크게!그래서 저 사람들한테 들리겠어요? 어머니 (큰 소리로)저는. 사람들,딸을 내팽개쳐 둔 채,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들 파키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김만수의 아내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 파키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김만수의 아내입니다. 아들 제발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어머니 (큰 소리로) 제발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사이.사람들,웅성거린다. 아들 저는 죄인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저는 죄인입니다. 아들 협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어,차라리 남편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협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어,차라리 남편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아들 이젠 우세요. 어머니 (큰 소리로)이젠 우세요. 아들 (화를 내며)진짜 울라고요! 어머니의 실수에 사람들 동요한다.실눈을 뜬 채 상황을 지켜보던 딸,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딸 (비명을 지르며)엄마!죽으면 안 돼! 사람들,딸을 쳐다본다.어머니,우는 시늉을 한다. 아들 더 크게 울어요. 어머니,대성통곡을 한다.사람들,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들 좋아요.사람들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자 이번엔 발을 하나 밖으로 빼세요. 어머니,망설인다. 아들 뭐 하세요!빨리요! 어머니,발을 하나 뺀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사람들 웅성거리며,눈을 가린다. 아들 아주 좋아요!어,잠깐….저게 뭐지?큰 일이에요.옥상에서 구급대원들이 내려와요.(사이)그냥,뛰어내려요.안전 매트 때문에 죽지는 않을 거예요! 어머니 여기서? 아들 여기서 끝나면 해프닝이지만,뛰어내리면 충격이 돼요.남편들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려 한 어머니를 보며 잠시나마 사라졌던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겠지요.주부들은 가슴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편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거고요.그리고 그런 기회를 준 어머니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지갑을 열겠지요.따지고 보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에요. 어머니,망설인다. 아들 어머니!빨리요!그들이 와요! 어머니,뛰어내린다.딸,비명을 지르며 실신한다.암전. 4장 거실.어둠 속,아들과 딸이 나란히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아들 얼마야? 딸 기다려. 딸,조심스럽게 클릭을 한다. 아들 (손으로 자릿수를 셈하며) 9억 5천 백……. 딸 7십 4만 5천원. 아들 (환호하며)됐어.성공이야. 딸 (아들을 기쁘게 끌어안으며)지금도 계속 들어와. 아들 (감격에 겨워)고생 끝났다. 딸 이게 다 오빠 아이디어 덕분이야. 아들 니 연기가 큰 몫을 했지.(비명 지르며 쓰러지는 흉내를 내며)아! 딸 근데 솔직히 아깝다.협상금을 다 모은 걸 알게 돼도,사람들은 계속 돈을 보내줄까? 아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계좌추적 해 보는 것도 아니고. 딸 더도 말고 한 5억만 더 들어왔으면 좋겠다. 아들 우선 집 한 채 사고,작은 가게 하나 내고,남으면 차 한 대 사고…. 딸 왜 집하고 가게야?그냥 똑같이 반으로 나눠. 아들 가게해서 돈 많이 벌면,너 시집갈 때 한 몫 단단히 챙겨줄게. 딸 그럼 가게는 내가 할게. 아들 널,뭘 믿고. 딸 오빤,뭘 믿고? 어머니,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아들,어머니를 보며 반가워한다. 아들 다녀오셨어요. 딸 다녀오셨어요. 어머니,말이 없다.넋이 나간 사람 같다.어머니,외투를 벗어들고 딸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들 (은밀하게)어머니한테는 돈 얘기 하지마.괜히 신경 쓰시게 하지 말자고. 딸 남은 돈,모두 돌려주라고 할까봐 그러지? 아들 그렇게 되면 어머니나 너한테도 안 좋은 일이잖아. 어머니,옷을 갈아입고 나온다.아들,어머니를 부축해 자리에 앉힌다. 아들 (어깨를 주무르며)피곤하시죠. 어머니 일은 잘 처리됐니? 딸 아직 많이 모자라요. 아들 그래도 협상금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 한 시름 놨구나. 딸,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큰일이다.일,그만 나오라는구나.협상금은 해결됐다고 해도,당장 사채 갚을 일이 막막하네. 아들 걱정마세요.이제 일 그만두셔도 돼요.어머닌 이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잖아요.잡지 인터뷰도 줄을 이을 거고,방송출연 요청도 쇄도할 거예요. 침묵. 어머니 남 속이는 일은 그만하자. 아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어머니 나중에라도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떡하니. 아들 용서하겠지요.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이면,모두 용서되는 시대니까요. 침묵. 어머니 뉴스에 니 아버지 소식은 없었냐? 아들 만날 똑같은 뉴스의 반복이죠.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침묵. 어머니 니 아버진 벌써 죽은 게 아닐까? 아들 아버진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에요.의지가 강한 분이잖아요.평생을 자기 뜻대로만 살아오신 분이에요.심지어는 우리들까지도 자기 뜻대로 만드셨죠. 어머니 그래서 걱정되는구나.테러범들한테까지 제 고집 부릴까봐. 아들 걱정하지 마세요.(사이)도장 좀 주세요.일단 돈 좀 찾아서 아버지 협상금부터 보내야겠어요. 어머니 네 침대 밑에 있어. 아들 제 침대요? 어머니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침묵. 아들 그럼 쉬세요. 어머니 법아. 아들 네? 어머니 아니다. 어색한 침묵.아들,자기 방으로 들어간다.어머니,자신의 주머니에서 카드 명세표를 꺼내 본다.한동안 아들 방을 쳐다보다,고개를 푹 숙인다.그때,방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딸 큰 일 났어. 아들,자기 방에서 뛰어나온다.딸,TV의 전원을 켠다. 소리 다시 한 번 전해드립니다.무장단체에 피랍된 김만수씨와 관련된 새로운 동영상이 유튜브에 게시되었습니다.이 동영상은 알자지라에 의해 공개된 테이프의 원본으로 보이는데요.아마도 누군가가 테러범들의 컴퓨터를 해킹해 인터넷상에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무대 어두워지면,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 두 명의 무장 단체 요원들. 한 명의 무장 단체 요원,커다란 아랍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한다.옆의 다른 요원,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는다.아버지의 목에 칼을 대고 있던 무장단체 요원,칼을 떨어뜨리고,성명서를 읽던 무장단체 요원의 말이 꼬인다.그 순간,아버지가 피식하고 웃는다.갑자기,해병전우회장과 시민단체장이 무대 위에 난입해 설전을 벌인다. 해병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 미소라?이게 바로 해병대 정신입니다. 시민단체 돈 뜯어내려고 연기하다 실수하니까,지들끼리 히히덕거리는 거 아닙니까.이건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입니다.정부가 얼마나 물러 터졌으면,이런 사기를 칩니까. 해병 해병대는 오로지 악입니다. 시민단체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아직도 사기꾼을 우상화하실 작정입니까? 해병 해병대는 오로지 깡입니다. 시민단체 속아서는 안 됩니다.어젠 김만수 부인이 국민을 상대로 쇼를 벌이더군요.누가 봐도 어설프지 않습니까?실제 자살하려는 사람은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아요!김만수 부인이 떨어진 건 의도된 거라고요.뒷조사를 해봤더니,김만수씨 빚이 조금 있더군요. 해병 그게 뭐요?요즘 은행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시민단체 다 사채빚이라는 게 문제지요.여기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해병 뒷조사는 불법 아니에요?정의니 어쩌니 떠들어 대더니 다 가식이구먼? 시민단체 (당당하게)어쨌든지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습니까!이건 다 정부의 무능 때문이에요.정부가 일을 확실하게 했다면,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뭐,가족은 진실을 알겠죠.내일 12시,외교통상부에 나와서 가족들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합니다. 해병 네,해병대 정신으로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세요. 두 사람,사라진다.가족들,둘러앉아 있다. 딸 에이- 씨.좀 어떻게 좀 해봐.다 오빠가 벌인 일이잖아. 아들 (화를 내며)나도 지금 생각중이야. 어머니 솔직하게 이야기하고,돈 돌려주자. 아들 미쳤어요? 어머니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니까,용서해 줄 거야. 아들 그럼 나랑 미애는?평생 빚쟁이한테 시달리면서 살라고? 딸 차라리 죽어버리지! 침묵. 아들 일단 아버지가 왜 웃었는지만 밝히면,어머니가 벌인 자살소동에 대한 의심은 사라질 거예요.아버진 도대체 왜 웃었을까? 딸 저번처럼 그냥 모른다고 할까? 아들 오히려 더 의심할걸? 딸 모르는 게 사실이잖아. 아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거짓을 말해야 믿는 게 사람들이잖아.(사이)이건 어때?아버지는 무서우면 웃는 버릇이 있다. 딸 그러면 해병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하겠지. 아들 그럼 이건?아버지는 지금 납치범들의 행동을 비웃는 것이다.웃음은 의지의 표현이다. 딸 그러면 시민단체에서 의심하겠지.그렇게 의지가 있는 사람이 사채를 끌어다 썼느냐고. 아들 (화를 내며)에이- 씨! 사이,가족들 생각한다.딸,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문갑 위,작은 액자를 들고 온다. 딸 이게 언제지? 어머니 아버지 생일파티 같구나. 딸 여기 날짜가….내가 여덟 살 때네? 아들 난 케이크 자르는 칼을 들고 있고. 딸 난 그 앞에서 편지를 읽고 있고. 아들 아버진 웃고 있어. 어머니 얼마 후,니 아버진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지.그 친구를 잡겠다고 전국을 헤매다가 정작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보지도 못했고. 아들 그때부터였어.아버지가 웃지 않은 건.아버진,그때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딸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머니 마지막으로 웃었던 그때를? 그때,아들 휴대전화의 벨이 울린다.아들,전화를 받는다. 아들 여보세요. 무대 한 쪽,이브라힘의 모습이 나타난다.한국어를 제법 구사한다. 이브라힘 안녕하세요. 아들 누구시죠? 이브라힘 이브라힘이다. 아들 (잘 못 알아듣는다)누구요? 이브라힘 만수형님 같이 일하던 이브라힘이다.집에도 몇 번 갔다. 아들 이브라힘? 이브라힘 그래 이브라힘이다.지금 옆에 누구 있냐? 아들 가족들요. 이브라힘 노 폴리스? 아들 네. 이브라힘 만수형님,나랑 같이 있다. 아들 뭐라고요? 이브라힘 걱정 말아라.만수형님 다 좋다. 아들 무슨 소리예요?아버지가 왜 당신이랑 있죠? 이브라힘 믿어라.내가 만수형님 목소리 들려준다. 이브라힘,수화기에 녹음기를 가져다 댄다.아들,전화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한다. 아버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모든 건 다 내가 꾸민 일이다.대충 모든 게 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구나.협상금이 전달되면,나는 협상금의 3분의1을 이브라힘 몫으로 떼어주고,나머지를 해외 계좌에 송치해 둔 채 한국으로 들어갈 거다.그 돈이면 내가 진 빚 갚고도 넉넉히 남으니까,사업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사이)일단 이브라힘한테 빌린 돈으로 그럭저럭 지낸다.솔직히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잠자리도 불편해 죽겠다.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구나.(사이)메시지 받거든,그곳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브라힘한테 좀 전해라.꼭! 어머니,전화를 끊어버린다.긴 통화대기음,암전. 5장 외교통상부 내의 작은 방.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가족이 앉아 있다.긴 침묵. 어머니 지금 몇 시니? 아들 7분 남았어요. 딸 시간, 뒤로 미뤄. 아들 무슨 꿍꿍이냐고 더 의심할 걸? 딸 그럼 빨리 결정하든가?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난 아까 결정했어. 어머니와 아들,딸을 쳐다본다. 딸 난 우릴 속였다는 게,용서가 안 돼. 아들 그래서? 딸 협상금 주지 마. 어머니 그럼 아빤? 딸 어떻게 되겠지. 아들 이브라힘이 순순히 보내줄까? 딸 알아서 해결하겠지. 어머니 그래도 그럴 순 없다. 딸 왜? 어머니 니들 아버지니까. 딸 아버지다워야 아버지지.다 늙어서 그나마 엄마 대접 받고 살려면,엄마도 결정 잘해.어떡할 거야? 엄마,충격을 받은 듯 무너진다. 딸 에이-씨!시간 없어.빨리 결정해!아니면 나가서 내 맘대로 말한다! 딸,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아들 아버지가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딸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가겠지.난 더 이상 그렇게는 못 살아.그나마 아버지한테 빚이 있었으니까,우리가 숨이라도 쉬면서 살았던 거 아니야?아마 빚 갚고 나면 그 빌어먹을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서 다시 우리 숨통을 조일 거야.우리가 빚이라도 진 것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청구하겠지. 아들 그래도 아버지는 돈은 잘 벌어 왔잖아.그걸로 우리도 한동안 먹고살았고. 딸 결정적인 순간엔 아버지 편드는 걸 보니까,오빠도 별 수 없는 남자구나. 아들 누구 편을 들어!솔직히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나보다 몇 배는 많았잖아. 딸 돈을 주니까 그게 사랑인 줄 알았고.하지만 지금은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알아.난 그냥 먹이를 주면 반사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랑 다를 바 없었어. 아들 네 허영심을 채우려면 돈이 필요하니까,그래서 꼬리친 건 아니고? 딸 마약이라도 발라 놓으셨는지,끊어버리기엔 너무 달콤하더라고. 아들 그 돈이 아깝다.내가 그 돈을 가지고 장사를 했으면 재벌 됐겠다. 딸 나도 더러워서 진즉에 독립하려 했어.근데 빌어먹을 집구석이 당장에 원룸 마련해줄 돈 한 푼 없는데 어떻게 해!우리 협상금 나눠 갖고,여기서 다 갈라서자.아빠야 그냥 납치범들한테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지.사실 우리한테 아빤 죽은 거나 다름없었잖아.그리고 엄마한테 한 가지 충고하는데,이 새끼한테 밥 얻어먹을 생각 하지도 마.말하는 본새가 아빠랑 똑같아. 어머니,딸의 뺨을 때린다. 아들 그 년 잘 맞았다!계집애가 주둥아리를 함부로 나불대더라고.어디 오빠한테 대들어! 어머니,아들의 뺨을 때린다. 어머니 이놈의 종자들 다 지긋지긋해.애비나 새끼나 다 돈 생각뿐이야.돈이 가족보다 중요해?(사이)그럼 나도 이참에 엄마 딱지 버리고,돈 한 번 밝혀볼까?(사이)앞으로 모든 일은 내가 알아서 해.토 달면 알몸으로 확 내쫓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조심해! 어머니,아들의 전화기를 빼앗아든다.이브라힘에게 전화를 한다. 어머니 여보세요?이브라힘?나야.김만수 아내.남편한테 전해.협상금이고 뭐고 땡전 한 푼 보내 줄 수 없으니까,알아서 오든지 거기서 살든지 맘대로 하라고. 뭐?난 모르는 일이니까,빌려준 돈은 알아서 받아! 무대 한 쪽,단상이 마련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어머니,아들의 가방에서 협상금이 담긴 통장을 꺼내든다.그리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다. 어머니 우선 제 남편 일과 관련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저희 가족은 남편이 왜 목에 칼이 들어온 순간에 웃었는지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솔직히 전 남편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예전에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고,먹고살 만하니까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고,욕심 부리다 쫄딱 망해먹고 나선 가족 볼 면목이 없다고 방에서 나오질 않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남편이 왜 파키스탄에 갔느냐를 두고 말이 참 많았습니다.듣고 있으면 하나같이 다 그럴듯합니다.근데 자기들 맘대로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합니다.하긴 그게 직업이니까,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겠지요.그래도 이건 아닙니다.먹고사는 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해서 다 용서가 됩니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어머니,통장을 단상 위에 놓는다. 어머니 남편은 지금 무장단체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닙니다.같이 일하던 파키스탄 노동자가 임금체불에 대한 대가로 사기극에 가담해 달라고 협박한 모양입니다.네,베란다 사건은 다 쇼입니다.남편이 진짜로 붙잡힌 줄 알고, 사기를 친 겁니다.다들 엄청난 돈을 보내주셨더군요.‘이 끔찍한 땅에도 아직까지 온정이란 게 살아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남편의 협상금에 보태라고 보내주신 돈,여기 그대로 있습니다.한푼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다들 찾아가세요.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제가 국민여러분을 기망했으니 책임을 져야죠.저를 사기 미수죄로 처벌하십시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욕 하실 분들,실컷 욕하십시오.하지만 저도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욕 좀 해봅시다.자기만 배불리 먹겠다고 돈 떼어 먹은 최동렬,돈 제때 갚지 못한다고 인질 협상금까지 차압하겠다는 희망캐피탈,니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에필로그 어머니와 가족,거실에 둘러앉아 있다.어머니,상 위에 장부를 펼쳐놓고 있다.그 옆에서 아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놓고 있다. 아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에요.사기 미수죄는 처벌할 수 없다는 거,정말 기막힌 아이디어였어요. 딸 덕분에 떼인 돈도 받아낼 수 있었고,사채이자도 탕감 받을 수 있었고.정말 연기가 죽여줬어요. 어머니 니들만 잘난 줄 알았지?니들이 누구 배에서 나왔는데! 아들과 딸,웃는다.어머니의 표정은 냉담하다. 아들 근데 아버지는 왜 안 돌아오세요? 어머니 그 인간 고생 좀 할 거야.이브라힘한테 돈 부쳐주면서 그랬지.그 인간 정신차릴 때까지 한 달 정도 파키스탄에서 일 좀 시키라고 했거든. 딸 그래도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어머니 그 인간이 한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그건 그거고,계산을 마저 끝내 볼까? 아들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어머니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는 거,이게 너희들 사고방식 아니니?싫으면 집 나가시든가. 아들 어디까지 했죠? 어머니 부부생활 항목. 아들 섹스를 하는데 들어가는 노동 비용을 20~24세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어머니 니 아버진,평균에도 못 미쳤다.최저로 계산해. 딸 (자판을 두드리며)시간당 최저 임금은 삼천 칠백 칠십 원이야! 아들 그럼 반올림해서 시간당 사천원.칼로리 소모가 보통 노동의 10배는 될 테니까 시간당 4만원을 잡고……. 어머니 1시간까지 가본 적은 없는데?보통 30분 안에 끝났어. 아들 그럼 최저 임금의 이분의 일인 이만 원에 한 달 평균 20회 정도 관계를 맺는다고 치고……. 어머니 스무 번은커녕 열 번도 채 안 됐어. 아들 그럼 열 번으로 계산하면 40만원,그 대가로 얻게 되는 쾌락의 비용을 성매매를 하기 위해 지불하는 최소비용 회당 7만원……. 어머니 내가 칠만 원짜리밖에 안 돼 보이니?십만 원으로 해. 아들 거기에 엄마가 얻게 되는 쾌락의 비용을 오만 원 정도 더하고……. 어머니 난 절정에 다다른 적이 없었어.기껏해야 다섯 번에 한 번 정도? 아들 그럼 쾌락의 비용을 만원으로 계산하고,모두 더하고 빼면 대략 한 달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 오십만 원,일 년이면 육백만 원.어머니가 결혼한 지 30년이 됐으니까……. 어머니 솔직히 너 중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관계를 안 했다. 아들 그럼 14년치만 계산 하면,총 팔천사백만 원. 어머니,장부에 기재한다. 어머니 자,다음 항목은 가사 노동에 대한 미지급분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딸 (자판을 두드리며)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시급 이만 오천 원에서 5만원 사이래. 어머니 시급 사만 원 정도가 적당하겠구나. 아들 하루 평균 15시간의 가사노동을 했다고 가정하고……. 어머니 깨어 있는 동안은 다 가사노동 아니야?난 평균 5시간도 채 못 잤어! 아들 그러면 계산이……. 어머니 이리 내.넌 대학까지 나온 놈이 뭐 그렇게 계산이 느려.들인 돈이 아깝다.이러다 너랑 미애 청구서는 오늘 안에 만들지도 못하겠네. 암전.
  • 北 처녀가 애를 뱄을때

    北 처녀가 애를 뱄을때

    연애나 결혼은 커녕「데이트」한 번 하는데도 당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북한(北韓).눈 한 번 잘못 맞았다가는 본인들은 물론 일가친척들까지도 신세가 망하는 판국이다. 최근 자유를 찾아 월남해 온 박모(39) 김모(34) 부부가 말하는 북한의 남자와 여자의 생활-. 「 데이트」도 남몰래 숨어서 “자아비판” 에 최고는 사형 북한에서는 일에 대해서만은 남녀의 구별이 없다. 남녀 구별이 없이 누구나 일을 해야 하고 일한 성적에 따라 배급이 나온다. 주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일터에서 남녀가 같이 일을 하다보면「로맨스」가 꽃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서로 눈이 맞았다고 해서 섣불리 연애를 한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오직 일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데이트」니 연애니 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 비록 한 직장에서 일을 할 망정 절대로 서로 넘보지 말라는 당의 명령이다. 그러니까 어쩌다 남녀가「데이트」를 할 기회가 생겨도 마땅한 장소가 있을 턱이 없다. 고작해야 강변이나 거닐기 마련. 평양의 경우에는 모란봉 근처나 대동강변 아니면 극장에 가는 게 고작이다. 다방이나 음식점, 또는 오락장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극장의「프로」는 한결같은 공산당 선전영화. 따분한 영화에 싫증이 나서 같이 간 옆자리의 아가씨 손목이라도 슬쩍 만졌다가는 큰 일 난다. 사상이 썩었다는 증거라는 것. 따라서「데이트」란 말 자체가 이곳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일에만 취미를 가지고 일에서만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일 이외의 것에서 즐거움을 가질 수는 없는 일. 그런데 북한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5가지의 춤과 노래를 안다. 군중 무용이라는 이름의 춤과 노래. 당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것인 이것을 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소위 천리마작업반원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감시의 눈을 피해서 몰래 사랑을 속삭이다 들키면 자아비판을 받아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회의장에서「데이트」했던 사실을 그대로 보고해야 한다. 자아비판을 받은 젊은이들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처녀 총각이 서로 좋아하다가 임신이라도 하는 날이면 큰 일. 피임약이 있을 턱이 없는 데다가 병원이라곤 오직 작업능률을 올리는 데 한해서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뱄다하면 도리 없이 낳아야 한다. 다행히 남자와 여자의 출신성분이 의심스럽지가 않다면 결혼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결혼도 못하고 망신만 당한 후 강제 이별을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지주의 후예거나 월남 가족이 있다면 절대로 결혼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만약 당의 명령을 어기고 결혼할 경우에는 양쪽 집안이 모두 풍비박산이 되고 만다. 여자편력이 3명 이상일 때는 5년의 징역, 7명 이상일때는 사형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우두머리들은 비밀의 장막속에서 여자들을 끼고 놀아나고 있다. 북한에는 여러가지「운동」이 많다.「샛별보기 운동」「이고 지고 달리기 운동」「책 들고 다니기 운동」등이 그것. 소위「천리마 운동」이라고 해서 쉴새 없이 노동에 시달리며 한편으로는 김일성을 우상화시킨 책을 강제로 외어야 하는 고역을 치르고 있는 것. 「60청춘」구호 내세워 노인들까지 혹사 공산당에서 만든 영화 중에「60에 청춘 90에 환갑」이란 것이 있다. 60살을 넘어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72살난 할머니와 75살난 할아버지가 등장해서 달밤에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영락 없이 허수아비가 달밤에 체조하는 형상. 북한에서 가장 활개칠 수 있는 직업은 군인이다. 당에 의해 선발된 극소수의 대학진학자도 군대에 갔다 와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취직을 하려해도 우선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군대에 갈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총을 잘 쏜다고 해도 군대 근처에 얼씬할 수 없다. 박씨 부부가 월남한 것은 67년 8월. 북괴군 대위로 철원지방 휴전선 부근에 근무했던 박씨는 당에서 신임을 받던 장교였다. 치안유지 책임자로 휴전선 근방 마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날 당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왔다. 박씨의 책임구역 안에 있는 나이 어린 소년 6명의 사상이 불순하다면서 처벌하라는 것. 2년 전부터도 대한민국 방송을 들으면서 공산당에 대해 회의(懷疑)를 느껴 오던 터에 이런 명령을 받고 보니 더욱 더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겹쳤다. 『고민을 하다가 결심했읍니다. 이 사람(부인)을 데리고 밤중에 탈출을 한 거죠. 마침 휴전선 근방에 대한 지리는 환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읍니다』 자유의 품에 안겨 모 운수회사에 다니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 부부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한마디로 보통 상식으로는 상상이 되어지지 않는 세상이랍니다』 <영(英)> [선데이서울 72년 2월 6일호 제5권 6호 통권 제 174호]
  • [씨줄날줄] 평양 리모델링/함혜리 논설위원

    평양(平壤)은 ‘평평한 땅’ ‘조용한 지대’라는 뜻 그대로 벌판이 넓고, 강을 끼고 있어 살기 좋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유리해 일찍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지로 번창했다.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이후다.1953년의 내각결정 제125호가 그 발판이 됐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 걸맞은 계획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삼아 강변으로 구릉 기복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고, 김일성 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산업시설을 배치하는 등의 계획이 이 결정에 담겼다. 김일성광장, 평양학생소년궁전, 인민문화궁전, 인민대학습장, 만수대예술극장 등 크고 웅장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이 계획에 따라 설계되고 지어졌다. 평양은 1980년대 ‘평양 대개조 계획’에 따라 전세계를 향한 전시용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한다.1982년 4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맞아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크고 웅장한 우상화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섰다. 현대건축의 흐름을 따르는 건축물도 계획됐다. 그중의 하나가 유경호텔이다. 보통강 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호텔은 높이 323m,105층에 평행사변형 꼴로 동서쪽으로 뻗어있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에 즈음한 1992년 완공을 목표로 1987년 8월 착공됐으나 북측의 대금체불 등을 이유로 프랑스 기술진이 1989년 5월 철수했고,1992년 이후엔 공사가 완전 중단됐다. 오랜기간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던 이 호텔이 지난 3월부터 외자유치로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다.‘평양 국제도시화 계획’에 따른 도시 리모델링의 일환이다. 최근 북한의 외모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향후 개방에 대비하려는 징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핵 문제의 진전 속에 식량 3만 8000t을 선적한 미국 선박이 지난 29일 북한에 도착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옥수수 5만t을 거부했다. 통미봉남이라지만 어이가 없다. 그들의 사고도 리모델링할 수는 없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호텔서 밤새는 여고생

    호텔서 밤새는 여고생

    「호텔」「나이트·클럽」에서 새벽까지 춤추고 나오는 젊은이들을 수상히 여겨 경찰이 덮쳤다 잡고보니 의젓한 차림을 한 숙녀의 정체는 가발을 쓴 10대 여고생. 그 상대는 요즘 한창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있는「그룹·사운드」의「멤버」-. 그들은「팝스」음악을 즐기는「팬·클럽」의 같은 회원이었다는데…. 「그룹·사운드·멤버」가 상대…「프리·섹스」어쩌구 풍문도 5월 28일 새벽 1시30분 남대문서는 가발을 쓰고 모「호텔」의「나이트·클럽」에서 밤을 새면서 춤추고 나오던 여고3년생 김(金)모양(18) 등을 적발. 김양 등이 새벽까지 어울려「고고」를 함께춘 T「그룹·사운드」의 신모씨(26)도 함께 연행되었다. 이들은「그룹·사운드」를 중심한「팝스·팬·클럽」○○회의 회원들. 한창 공부할 나이의 여학생이「나이트·클럽」에 드나들기 위해 가발까지 쓰고서 화장을 하고 밤새 춤추도록 내버려둔 가정(김양의 경우는 상류급)에도 책임은 있지만 10대의 여고생들이「그룹·사운드」의「사운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멤버」에 반해버려 거의 미치다시피된다는 사실이 우려되는 것. 따라서 그들과 어울려 최신음악을 서로 즐기고 배운다는 구실로 ○○회 등「팬·클럽」을 만들어 10명 또는 20명씩 몰려다니며 심지어는「섹스·파티」같은 문란한 정경도 빚고 있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 물론「그룹·사운드」나 그들을 둘러싼「팬·클럽」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일부 이러한 몰지각한「그룹·사운드」의「멤버」나 젊은 학생들이 있고보면 사회적인 문제로 다시 한번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방송의 인기「팝스·프로」나「그룹·사운드」등「팝스」계열엔「팬 ·클럽」이 갈수록 성행-. 회원은 2~3백명에서 최고 1만여명이 넘고있다. 회원은 거의가「팝스」를 즐기는 고교생들. 따라서「팝스」계열의「그룹」이나「싱어」는 10대에겐 거의 우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팬·클럽」회원이 그런건 아니지만 회원가운데는「팬·클럽」본래의 한계를 넘어 여고생이 가발까지 쓰고 숙녀복 차림으로「고고·하우스」를 드나들며「프리·섹스」행위설까지 있고보면 자녀를 거느린 학부모들에게 적지않은 근심거리. 밤마다 어울려「고고」즐겨… 학업중단 여고생도 있고 방송이나「보컬」및「솔로·싱어」등이「팬·클럽」을 갖고있는 것은 지금의 새삼스런 현상은 아니다. 방송의 경우는 시청자 확보를 위해서,「싱어」들의 경우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모임. 「팝·뮤직」을 즐기는「팬」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프로」나「그룹·사운드」를 택해 「팬·클럽」회원이 되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데 그치면 더 바랄나위없는 일인데-. 방송의「팝스」「프로」도 그렇지만 특히「그룹·사운드」의 인기는 10대「팬」에 어필하고 있다. 「스타」급의「그룹·사운드」는 거의 자신들의「팬·클럽」을 갖고있다. 회원은 몇백명 정도. 이중「극성파」는「그룹·사운드」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며 이들과「파트너」가 되어 요즘 유행하는「고고」에 열광한다. 「고고」에 거의 미친 어떤 여고생은 학업까지 포기하는 예도 있는 듯. 끝내는 완전「프로」급으로 전향,「고고·룸」에서 지내며 불미스런 잡음을 퍼뜨릴 뿐 아니라 문란한 성문제에까지 발전하고 있다는 풍문도 있다. 「고고」에 미쳐 여고 2학년에 학업을 중단한 C모양의 경우도 집안은 부유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이면 나타나「고고」를 즐긴다. 그래서 이들을 아는 사람들 사이엔「고고·걸」로 통할 정도. 짙은 화장에 나이 감추고… 날로 늘어만 가는「고고」족 가발을 했는지 진짜머리인지 겉으로 보면 성인같으나 알고보면 여고2, 3년 정도밖에 안되는 이들「고고」파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원색무늬가 어지럽게 이어진 이른바「사이키」「디자인」의 옷까지 걸치고 다닐 때가 많다. 「살롱」가의 한 연예인이 전해주는 말인즉- 언젠가 어떤 젊은 여성이「고고」를 추자고 제의해와 밤새껏「고고」를 즐겼다는 얘기. 그런데 이튿날 그 아가씨의 정체를 알고보니 여고2년을 다니다 춤에 미쳐 중퇴한 아가씨라는 것. 그런 얘기를 듣고는 자기집 애들 생각이 나서 소름마저 오싹 끼치더라는 것이다. C양의 이런 생활을 집안에서도 알고있으나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고고」가 좋은데 어찌하란 말이냐』는게 본인의 말. 현재 본격적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진「팬·클럽」은 MBC「라디오」의 심야「프로」인『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 수 있는데 이「프로」의 담당 DJ 이종환(李鍾煥)씨도 깊은 우려를 표명. 시청률 확보와 시청자의「서비스」를 위해 신곡가사를 회원들에게 배부해주고 간혹 희망자를 모집, 야유회도 갖는 것이 이 모임에서 하는 일. 『회원이 많다보면 잡음도 있겠죠, 그러나 내가「팬·클럽」을 만든 것은 음악의 세계를 통해 건전하게 청소년을 선도하자는데 있었던 것인만큼 탈선행위란 말도 안됩니다. 만약 그런 사례가 있다면「팬·클럽」을 접어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근절시켜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이씨는 말한다. 모「그룹·사운드」의 한「멤버」는『몇몇「그룹·멤버」의 불미스런 행동으로 건전한「그룹·사운드」의 「멤버」까지 피해를 입어서야 되겠어요. 설령 유혹의 손길이 뻗쳐와도 철저한 자중이 필요하다고 느껴요』라고 자못 비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걸(杰) [선데이서울 71년 6월 6일호 제4권 22호 통권 제 139호]
  • “인형을 ‘모하메드’라 부른건 신성모독”

    이슬람권에서 예언자 모하메드의 이름을 잘못 붙였다간 큰 코 다친다. 이슬람 국가 수단에서 영국인 여교사가 수업시간에 곰인형 테디 베어에게 모하메드란 이름을 무심코 붙였다가 태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26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수단 수도 하르툼의 유니티학교 교사 길리언 기본스(54)가 모하메드를 모욕한 혐의로 체포돼 수감 중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9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동물수업. 곰을 주제로 한 시간에 곰인형에게 이름을 붙이는 놀이가 진행됐다. 아이들은 압둘라, 하산, 모하메드 등 이름 8개를 놓고 투표를 했다.23명의 아이들 중 20명이 이슬람권에서 가장 친숙한 ‘모하메드’를 곰 인형 이름으로 선택했다. 아이들은 일기에 이런 사실을 적었고 표지에 곰 그림과 함께 ‘내 이름은 모하메드’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한 몇몇 부모들이 수단 교육부에 항의하면서 기본스는 지난 25일 체포됐다. 일기도 압수됐다. 형법 125조 믿음과 종교에 반하는 모욕죄가 적용됐다. 이슬람법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예언자 모하메드를 의인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법 샤리아에 따르면 징역 6개월 또는 태형 40대에 처해질 수 있다. 기본스의 대변인은 “아이들이 ‘모하메드’란 흔한 이름을 곰인형에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교장 로버트 불로스도 “예언자에 관한 일은 민감한 주제”라면서도 “그녀는 결코 이슬람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명백한 실수다.”고 해명했다. 기본스가 수감 중인 경찰서 밖에서 항의 집회가 열리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학교측은 불상사를 우려해 내년 1월까지 휴교에 들어갔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87년생들 ‘87년 6월항쟁’ 만나다

    6월만 되면 어디선가 피끓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부르짖던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방송가는 다양한 ‘6·10항쟁 특집’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KBS가 가장 다채롭고 풍성하다. 주말인 9∼10일 오후 8시에는 ‘KBS스페셜’로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가른 스무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1987년 6월10일부터 29일까지 과연 무엇이 수십만명의 시민을 매일같이 바리케이드 앞에 서게 했던 것일까. 또 그 열망들은 20년이 지난 오늘 얼마나 성숙하게 자리잡았을까. ‘미디어 포커스’도 9일과 16일 오후 10시30분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데 동원된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을 되돌아보는 ‘제1편: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 와 ‘제2편:하늘이 내린 대통령’을 차례로 방송한다. 또 9일 밤 10시50분 ‘특집 콘서트 7080’과 10일 오후 5시50분 ‘특집 열린 음악회’도 1980년대를 기억하는 문화인들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밖에 10일 오후 11시10분 ‘6월 항쟁 20주년 대토론’에서는 함세웅, 신영복, 최장집, 조희연, 김호기 등 당시 항거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학자들로부터 의미와 과제 등을 들어본다.SBS는 10일 오전 6시50분부터 ‘6·10민주항쟁 20주년특집-나의 6월 이야기’를 1,2부에 걸쳐서 방송한다. EBS는 기성세대의 중심이 된 386세대와 갓 성년이 된 1987년생들로부터 민주항쟁의 의미를 들어보고, 그들의 인식 차이를 엿보는 시간을 마련했다.‘시사, 세상에 말 걸다’는 8일 오후 10시50분에 6월 항쟁 당시 역사의 현장에서 선봉 노래패 역할을 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 대한민국 민주화와 동갑내기이지만 ‘운동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노찾사’ 노래에 공감하지 못하는 1987년생 대학생들도 만난다. 케이블 히스토리채널의 ‘역사 특강, 숨은 그림 찾기’는 9일 오후 6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에서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 이후 민주화 열망이 본격적으로 타오르는 과정을 들여다본다.MBC ‘100분 토론’은 7일 오후 11시5분 서울광장에서 ‘1987년 6월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로 특집 생방송을 진행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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