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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총회/남북한 가입안 내일 결의/개막직후 처리

    ◎이 외무·북측 대표 즉석 수락 연설 【뉴욕=박정현특파원】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확정될 제46차 유엔총회가 17일 상오10시(한국시간 17일 하오11시)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된다. 유엔총회는 이날 상오 총회의장 선출에 이어 하오 회의를 속개,남북한을 비롯한 마셜군도 미크로네시아 발트3국등 7개 신규 회원국의 가입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날 북한은 1백60번째 한국은 1백61번째 회원국으로 유엔에 가입하며 남북한의 유엔가입안 통과 시각은 17일 하오3시10분(한국시간 18일 상오4시10분)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옥외무장관과 강석주 북한외교부 부부장은 유엔가입안이 통과된뒤 하오4시쯤 각각 만장일치로 유엔가입안을 통과시켜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는 유엔가입 수락연설을 한다. 이장관은 이어 총회 회의장 앞의 국기게양대에서 케야르유엔사무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기게양식을 갖고 주 유엔대표부 현판식을 갖게 된다. 이에앞서 이장관은 15일 하오 뉴욕에 도착했으며 16일 데마르크 제45차 총회의장및 케야르총장을 예방,그동안 유엔가입을 지지해준데 대한 사의를 전달하고 앞으로 유엔에서의 협력증진방안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장관은 이어 이날 하오 미·영·불·일등 우방국대사를 초청,오찬을 가진뒤 교민초청 만찬을 베풀 계획이다.
  • 「소 사태의 사후비판」 유감/이경형 정치부 부장급(오늘의 눈)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 천하」로 막을 내린 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정부의 「눈치외교」를 호되게 비판했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외무위에서 한 야당의원은 『탱크를 앞세우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정부가 생각한 것은 아니냐』고 까지 몰아부쳤다.정부의 신중론의 배경에는 『군부쿠데타는 항상 성공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야당총재도 소련사태에 왜 신속히 대처하지 않고 우유부단했느냐고 정부당국을 비난했다. 일부 언론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소련보수파에 대해 왜 정면비판을 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등 원칙없는 외교를 하느냐고 나무랐다. 이들 비판은 설득력에 있어 한가지 공통적인 맹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쿠데타가 명백하게 실패로 끝난 뒤의 사후결과론적 비판이라는 것이다.물론 사후결과를 분석,앞으로 우리 외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하나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의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정치적인 신념과 상황전개에 따른 나름대로의 판단에바탕을 두고 비판을 하는 것이라면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비판을 했어야 했다. 일이 모두 끝난 뒤 군중들 틈에 끼여 「옳소」를 외치는 식의 자세는 보기좋은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과연 정부가 기회주의적인 눈치외교로 일관했느냐는 점이다. 쿠데타가 발생한 19일 정부는 대외적이 언급없이 미국등 우방국과의 협력속에서 사태를 예의주시했다.20일 하오엔 노태우대통령주재의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열어 『소련이 앞으로도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3일째인 21일 상오9시 노대통령은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에게 한소어업협정체결을 위해 소련으로 떠나려던 수산청장의 소련행을 중지시켰다. 노대통령은 그 이유로 『조속한 어업협정체결이 국익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 시점에서 협정체결은 소련정변 획책세력의 지지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쿠데타등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표시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쿠데타 실패가 알려지기 5시간전인 하오4시 정부관계부처는 삼청동 안가에서 회의를 갖고 소련사태에 대한 정부대변인 성명발표를 결정,노대통령에게 보고한뒤 하오6시 발표했다. 최창윤공보처장관의 정부대변인 성명은 「깊은 우려」「개혁정책 계속 희망」「경협집행은 추이 보아 결정」이 골자였다. 표현의 강도는 해석 나름이겠으나 민감한 사안의 외교적 사령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쿠데타세력에 대한 분명한 비우호적 태도표명이었다. 도덕적 당위성보다 국익이 우선되는 외교는 남북분단 상황에서부터 우리의 경제력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위상진단을 바탕으로 신중히 수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 “소 개혁 지속 희망”/정부대변인 성명

    정부대변인인 최창윤공보처장관은 21일 소련사태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지난 19일 이후 소련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으며 사태발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정부는 소련사태가 폭력이나 유혈사태없이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바라면서 소련의 개혁정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대소경협자금 집행문제에 대해 『앞으로의 소련사태 추이를 보아가면서 결정할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 소련사태에 대한 대응문제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옐친 결국 해냈다/선봉서 「반쿠데타」주도… “정신적 지주역”

    ◎국내외 지지 급상승… 「고르비이후」예약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보수파의 이번 쿠데타를 실패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다. 그는 19일 쿠데타 발생직후 러시아공 의사당앞에 진주한 탱크위에 올라가 국민들에게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을 외치며 신군부의 보수회귀를 끝까지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더욱 극적인것은 그가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고르바초프의 미온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난하며 사임요구까지 해왔기 때문에 쫓겨난 고르바초프의 원상회복을 위해 쿠데타세력에 과감히 맞선 그의 행동은 소련국민뿐 아니라 미국 등 우방국에도 소련내 「마지막 희망」으로 간주돼 왔다. 그는 쿠데타군의 탱크로 둘러싸인 러시아공 의사당안에서 자신이 러시아공화국의 통제를 계속할 것을 선언하고 쿠데타에 가담했던 모든 군인들과 KGB요원들에게 대열 이탈을 촉구하는 등 반쿠데타세력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왔다. 이같은 옐친의 용감한 행동에 힘입은 광원들이 파업을 단행했으며 전국적으로 수십만의 시민들은 쿠데타 저지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쿠데타세력이 발붙일 곳을 잃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옐친은 이번사태로 말미암아 국내적으로는 러시아공화국뿐만 아니라 다른 공화국에서도 엄청난 지지를 얻게됐으며 더욱이 서방지도자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고르바초프 이후」의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동갑인 1931년생으로 우랄산맥의 한 농가에서 출생한 그는 우랄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55년 건설기술자로 졸업했다.61년 공산당에 입당,67년부터 85년까지 지방당에서 일하던중 81년 중앙위원으로 승진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을 위한 심복으로 85년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온후 그는 급속도로 지위를 높여 정치국의 소장멤버가 되었고 농업분야의 총책임자로 승진됐었다.그러나 개혁의 속도를 가속화하라는 그의 끈질긴 요구때문에 고르바초프로부터 멀어지게 됐고 87년에는 모스크바시 당위원장직에서 해임됐으며 90년 7월에는 공산당을 탈당하기까지 했다.이같은 그의 과감한 행동은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부터는 고르바초프와 일종의 공동전선을 구성,민주적이고 시장경제지향적인 새로운 소련을 건설하는데 힘을 모아왔다. 공개적인 상호비난은 중단됐고 옐친은 연방정부와 소련공화국간에 새로운 연방조약을 체결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가장 큰 지지를 보냈었다.고르바초프는 이에대한 보답으로 공화국들의 주권을 확대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쿠데타에서 강력하게 고르바초프를 지지한 옐친의 용감한 행동은 러시아공화국뿐 아니라 소련전체의 대중지도자로,또 국제적인 지도자로 그를 변신케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통일주도”… 우리외교 대전환

    ◎유엔가입 이후 방향/이 외무가 밝힌 전망/대중 수교등 탄력성 붙이는 계기/헌장정신 입각,남북 협력을 모색 『유엔가입이 우리 외교에 새로운 탄력을 불어 넣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43년 한국외교의 최대 과제로 남아 있던 유엔가입문제를 해결한 이상옥외무장관은 유엔안보이가 남북한 유엔가입 권고결의안을 채택한 다음날인 9일 하오 외무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대유엔외교방향·유엔을 통한 대북외교 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부임이후 연내유엔가입·대미외교강화 등 6대외교목표를 세우고 매진해온 이장관은 8개월만에 결실을 거두었다. 이장관은 이날 『우리의 유엔가입 신청을 안보리 이사국 전원의 찬성으로 총회에 권고하기로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며 『특히 남북한 유엔가입신청이 안보리에서 일괄 처리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유엔가입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방향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유엔외교」는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요. ▲현 단계에서 외무부는 유엔가입이후의 외교 방향을 2가지로 모으고 있습니다.첫째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신규 회원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유엔헌장 정신과 제반규정을 준수하면서 유엔이 추구하는 세계의 평화및 안정 그리고 인류공동번영을 위해 남북이 함께 기여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통해 평화적 통일이 촉진될 수 있도록 대유엔외교를 전개,남북이 진지한 대화를 갖고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그러나 유엔에 가입하더라도 우리외교의 근간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유엔내에서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유엔주재 대표부를 통한 남북간 접촉을 감행할 복안은 없습니까. ▲지난5월말 북한이 유엔가입 의사를 밝힌 직후부터 우리는 유엔주재 대표부 외교관간 접촉을 북측에 제의했지만 그동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번 안보리의 가입권고 절차와 관련,남북대표부간 부대사및 참사관급 접촉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유엔가입후 쌍방 대사및 대표부 직원간자연스럽게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미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양국간 고위정책협의회에서 양국은 주로 무엇을 논의했으며 한반도 핵문제도 협의대상이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한미양국은 안보문제를 비롯한 주요정책문제를 그동안 수시로 협의해 왔습니다.이번 하와이 정책협의회도 양국간 정례적 협의의 일환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현재로서는 한미간 안보상황 등을 전반적으로 폭넓게 논의했다는 것 외에는 밝히기 어렵습니다. 진행중에 있는 외교교섭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게 외교상식이듯이 우방국간 주요 정책협의 내용도 진행중에 있을 경우 미리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적절한 시기에 그 내용은 공개될 것입니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한·중수교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한중수교가 영사처등 중간단계를 거칠 것인지 아니면 곧바로 수교로 이어질 것인지요. ▲한중수교가 북방외교의 주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양국수교는 꾸준히노력해야할 사항입니다.따라서 수교시한을 정해 놓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양국 국교정상화가 가능한 빨리 이뤄지는 것이 양국 이익에도 부합되고 동북아 평화·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한반도 핵정책 변화/한·미 현안 조율 안팎/북 사찰전제,쌍방협의로 구체화/“미군핵 있건 없건 「우산효과」 동일”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한미정부가 한반도핵문제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은 걸프전이후 미국주도의 국제정치질서형성,북한의 핵개발 완전포기유도,남한내 미전술핵무기배치의 의미축소,남북한 유엔가입및 동북아의 새 질서태동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문제는 남한핵과 북한의 핵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남한핵문제는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상전술핵무기의 철수를 의미하며 북한의 핵문제는 녕변등 핵시설에 대한 국제핵사찰과 핵재처리시설의 폐기등 핵개발기도의 완전포기를 뜻한다고 할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미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그것은 한국내의 핵존재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NCND정책기조속에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는 한반도주변 핵보유국인 미·소·중국간에 핵전략협상을 통해 논의될 성질의 것이고 동시에 이들 주변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만의 비핵지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달말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있은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에서도 나타났듯이 걸프전이후 미국은 군사면에서 대소우위를 사실상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굳이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정도의 고밀도 핵전략이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된 것이 핵문제변화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뿐만아니라 남한내에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아니면 육상에서 철수하는 대신 해상이나 오키나와기지를 중심으로한 미공군에 배치하더라도 미국의 한국방위에 따른 「핵우산정책」의 효과는 마찬가지라는 현실적인 전략평가도 배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핵개발의사를 완전히 포기토록 하는 대북카드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미양국은 지난달 노태우­부시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저지를 위해 기본입장을 밝혔다. 즉 북한의 핵개발이 지역변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고 따라서 북은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물론 사찰에 응해야 하며 그같은 서명·사찰은 무조건적(주한미군의 핵과 불연계)이어야 한다.한미 양국은 나아가 이를 위한 「외교적 공동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특히 노­부시회담에서는 대북 핵협상은 한국이 주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다짐했다. 지난 6,7일 미하와이에서 열린 한미고위정책협의회의 중점논의대상의 하나도 바로 「한국주도의 대북 핵협상」에 따른 사전조율작업이었다. 미국무부는 9일 이번 회의와 관련,『북한의 핵개발문제가 심도있게 다뤄졌으며 한미양국은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이 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라는 견해에 인식을 함께 하면서 북한이 다른 문제와 결코 연계시킬 수 없는 이같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계속 경주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미국무부의 발표는 기존의 대북핵개발저지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호놀룰루회의가 미국의 한반도 핵정책에 대한 재평가기류속에 오는 27일의 평양 남북한총리회담을 앞두고 열렸고 또 오는 9월24일 노대통령이 유엔총회연설을 하게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대북핵협상과 관련한 「중요한 내부조정」을 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먼저 국제법상의 의무를 이행,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사찰을 받은후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한반도의 핵문제를 협의한다는 기본수순을 이번 회의에서 설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북한이 한반도 핵문제를 협의한다고 할때 우리의 대북협상카드는 말할 것도 없이 남한내의 미군 핵철수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카드의 사용수순은 어디까지나 「선북한핵개발포기 후미군핵철수」가 될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핵사찰과 주한미군핵이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북한이 핵재처리시설폐기를 포함한 핵개발 능력 및 의사를 완전히 포기할 경우 주한미군의 핵도 철수될 것임을 북측에 인식시키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 및 핵사찰 수락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핵개발의사의 완전포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은 핵무기제조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핵재처리시설의 폐기는 「서명」이나 「사찰」수락만으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간의 핵문제협상도 결국 남북한 군축 또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병행해 이뤄질수 있을 것이다. 「선북한핵포기 후남한전술핵철수」와 관련,북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주한미군핵철수」를 알리느냐는 문제는 좀더 시간을 두고 논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적절한 시점에 「남한내에 상시 배치된 핵무기가 없음」을 공식선언하는 방안이 집중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핵문제에 대한 정책변화의 핵심은 핵배치여부와 관계없이 핵전략상 「우산효과」에 별영향이 없는 주한미군의 전술핵 카드를 최대로 활용하여 북한의 핵개발의사를 완전히 포기시키자는 것이라고 할수있다.
  • “미군 아태에 계속 전진배치”/체니,의회 증언

    ◎“주한미군 급격 철수 없을 것”/“냉전무드 완화 불구,주둔 필요”/솔로몬차관보 【워싱턴 연합】 리처드 체니 미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철수할 경우 다른 국가들이 이 지역에서 힘의 공백을 메우려고 함으로써 불안정,군비경쟁,극적인 세력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장기적인 미군사력 전진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체니장관은 이날 하원 예산위에 출석,탈냉전시대 미국의 국방정책과 장기적인 국방예산 전망에 관해 증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체니장관은 리처드 더빈의원(민주·일리노이주)등 일부 의원들이 경제대국인 일본등에 대해 미국이 계속 안보지원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데 대해 『우리는 우방국들에 대해 안보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 군사력을 주둔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로니아(폰페이) 로이터 연합】 미국은 아시아지역에서 냉전무드가 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앞으로도 계속 태평양세력으로 남을 것이라고 리처드솔로몬 미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가 1일 말했다. 솔로몬차관보는 이날 남태평양의 폰페이섬에서 개막된 제22차 남태평양포럼에서 행한 개막연설에서 『미군의 주둔은 지난 40년동안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보구조에 있어 균형추의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 “유엔가입후 동북아 새 질서에 능동 대응”

    ◎노 대통령 임시각의 지시내용/대북관계 개선위한 전향적 조치 강구/통일 대비,국제적 위상 확고히 구축을 미국 및 캐나다 국빈자격 방문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커졌으며 이들 나라와의 관계가 보다 중요해지고 긴밀해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와 걸프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구축이 모색되고 있으며 동북아지역에서도 질서개편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미국·캐나다 방문이 이루어졌다는 데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이번 미국·캐나다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정에서 어떻게 우리 안보를 다지며 나아가서는 평화적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이에관한 나의 구상에 대해 부시대통령은 전적으로 공감과 지지를 표시하면서 앞으로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할수 있다. 한반도문제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관건이며 우리의 통일은 우리가 주도해나가고 미국등 주변국가들은 통일에 유리한 여건조성을 통해 우리의 노력을 지원해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나와 부시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통일과정에서 뿐 아니라 통일후에도 성숙되고 영속적인 파트너십을 구축,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데 미·캐나다 정상과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지지하기 위하여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대북 안보공약 재확인 부시대통령은 미국의 대한안보공약이 확고함을 재확인했으며 나는 우리의 안보도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부시대통령 및 멀로니총리와 아·태지역의 화해와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금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태각료회의(APEC)에서 APEC의 발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공동노력을 해 나가는데 합의했다.미국은 우리의 북방외교를 적극 지원했으며 우리의 소련내 자원개발사업 진출과 관련,미국 및 캐나다 기업과의 공동진출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이번 미국·캐나다 방문을 마치면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결정할 매우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으며 또한 역사적으로 아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고 느꼈다.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모두는 이제 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비록 우리 국토의 분단은 주변국들에 의해 만들어진 불행한 결과였지만 이제 우리의 통일은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이룩해야 한다. 올가을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계기로 남북한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주변여건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현명하면서도 용의주도한 대응이 긴요하다. ○“통일과정 우리가 주도” 우리의 외교도 이제는 통일후의 한국의 모습까지도 염두에 두고 동북아지역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위치와 위상을 확고히 구축해 나가는 중장기적인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동북아 질서개편 과정에서,그리고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담당해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발상의 전환은 물론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전향적이면서도 현실성 있고 또 구체적인 대북조치들을 계속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방국과 경협 증진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통상문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상대국에 분명히 함으로써 불필요한 불신과 마찰이 야기되지 않도록 하고 일단 약속한 일은 철저히 이행하도록 할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등 국제경제질서 형성과 관련해서는 다른 나라의 요청에 의해서라기 보다 우리 자체의 필요성에 의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이렇게 함으로써 미국 등 우방들과의 경제협력관계도 보다 원활해질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는 서방 선진7개국의 일원이며 잠재력이 큰 나라인 만큼 투자확대·공동경제진출·기술협력 등 협력관계를 더 한층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노 대통령 북미순방 수행 취재기/이경형특파원

    ◎통일 이끌 「동방외교」 기틀 확고히/테니스회동 통해 한미 신뢰 확인/「국빈방문」,시장개방과 연계 우려 불식 수행기자들이 귀국길에 오르는 대통령특별기에 탑승하기전 밴쿠버 국제공항 격납고에서 보안검색을 받기위해 한동안 대기하고 있었다. 캐나다의 한 보안요원이 『노태우대통령과 부시미대통령이 테니스를 쳤다는데 누가 이겼느냐』며 관심있게 물었다. 『양국대통령은 같은 조였고 상대는 워싱턴및 서울주재 양국대사조였는데 대통령조과 이겼다』고 답변하자 그는 한국대통령이 미국대통령과 테니스를 함께 쳤다는데 매우 흥미를 가졌다. 한미정상간의 2일하오 테니스회동은 노·부시간의 친밀함과 함께 한미양국의 긴밀한 동반자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었다. 1주일에 1∼2명의 세계 각국원수들을 만나는 부시대통령이 이들과 「회담」 「오찬」 「공식만찬」외에 함께 스포츠를 즐기는 일은 매우 드물다. 부시대통령이 각국 원수들과 스포츠회동을 가진 경우는 취임후 지금까지 무바라크이집트대통령과 미식축구구경을 함께 갔고 호크호주수상과 골프를 같이 쳤으며 예정된 것은 내일(미국시간 7일)열리는 미·캐나다 정상회담후 멀로니총리와 야구올스타전을 함께 관람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테니스회동은 정상간의 친분·신뢰확인면에서도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섭씨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속에서 환갑을 훨씬 넘은 부시대통령은 경쾌한 푸트워크로 경기를 했고 노대통령은 특유의 강력한 투 핸드 스트로크를 구사,멋진 기량을 발휘했다.양국정상은 공을 멋지게 쳐 넘길땐 서로 「굿 파트너」 「나이스 파트너」라며 파트너(동반자)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시간동안의 경기가 끝난뒤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과 서로 사용한 라켓을 선물로 교환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라켓을 가리키며 『이 라켓은 미제인데 내가 이 라켓을 구입해 사용한 이래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서 쓰고 있다』면서 『내가 (한국이 흑자를 보일때) 한미간의 무역불균형시정을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고 조크해 웃음이 터졌다. 노대통령의 「미제」언급에는 「한국이 미국과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테니스회동에 앞서 열린 양국정상회담에서 양국간의 통상시장개방문제는 극히 간단하게 언급됐을 뿐이다. 노대통령의 방미 출국전 국내 야당총재가 『이번 국빈방문예우는 미국이 한국의 쌀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장개방문제는 확대회담에서 잠깐 거론되었지만 구체적으로 품목이나 대상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의 「미제」언급을 통해 자유무역질서유지를 위한 한국의 자발적인 노력에 어떤 신뢰감을 느꼈을 것같다. 노·부시단독회담에 기록을 위해 배석했던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은 『흔히들 한미정상회담이라고 하면 한미간의 안보재확인·양자간의 통상무역문제 논의등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좁은 시각에서 얘기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한반도문제·동북아질서·세계정세의 흐름과 양국협력관계등 대단히 넓은 시각에서 양측의 입장이 솔직하게 개진되고 그자리에서 바로 공통분모를 찾아낸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의 방미직전과 그리고 방미과정에서 청와대당국은 이번 미국·캐나다 방문을 통해 남북통일을 촉진시킬수 있는 우방국과의 협력구도를 짜게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자들은 무언가 「안개먹고 구름내뱉는 식」의 공허함과 함께 시장개방과 관련한 미국의 압력을 호도하기위한 연막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부시대통령 입에서는 『남북한의 모든 국민들에게 미국이 한국의 영원한 평화(남북한통일)를 위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음을 분명히 알리고 싶다』(백악관 환영사),『이제 당면한 모든 도전에 공동대처하는 동반자의 관계』(백악관 만찬사)라는 말이 나오자 뭔가 통일에 따른 한미간의 구도가 짜이고 있다는 감에 접했다. 노대통령도 오타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부시대통령과 통일의 「그림」을 그렸느냐는 질문에 『분단은 외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통일은 당연히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통일전략의 핵심은 불행한 과정을 겪는 통일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라면서도 『남북간에마음을 주고받는 단계가 아닌 상태에서 어느 일방이 통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통일추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서 더이상의 언급을 자제했다. 노대통령은 미국과 캐나다방문 일정을 마치고 밴쿠버에 기착한 5일저녁 수행장관및 비서진에 대한 지시형식으로 북한이 제의해온 8·15국토종단순례행사등의 공동개최를 비롯,방북희망자에 대한 과감한 허용방침을 발표했다. 이번 방미가 북방외교와 대칭되는 자리에 통일을 위한 「동방외교」를 다지는데 의의가 있다는 사실을 8·15행사의 남북공동참여라는 「밴쿠버발표」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실감할수 있었다.
  • 한반도평화「노태우구상」가시화/위싱턴정상회담의 의의와 전망/긴급대담

    ◎「통일이후」 구도 접근… 영속 파트너십 구축/“미·북한관계 핵과 묶어 상당한 외교압력”/「북방정책」에 대한 미 일부의 불신 완전해소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미국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신질서구축에 공동노력키로 다짐함으로써 한미관계를 상호보완의 협력관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유정렬교수(외국어대)와 김국진교수(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의 긴급대담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전망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유정렬교수 김국진교수 (무순) ▲김국진교수=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통일과정뿐 아니라 통일후에도 외교·경제·안보등 모든 면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성숙되고 영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것은 탈냉전으로 변화하는 동북아의 새로운 정세에 맞게 한미관계를 다져나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다시말해 한반도가 동북아 냉전탈피의 핵심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태우대통령은 탈냉전분위기에 맞게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 의사를 밝혔으며 부시 미대통령은 이에대해 적극지원을 다짐한 것입니다.양국정상은 또 국제사회에서 격상된 한국의 위상을 토대로 통일과정뿐 아니라 통일이후에도 한국이 동북아정세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유정렬교수=해방이후 한미관계를 보면 50,60년대의 대미의존적 과정과 70,80년대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거쳐 이제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이같은 한미관계의 위상변화속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접근,동북아평화구축등에 있어 양국간의 역할과 기능등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 주변은 최근 몇년사이에 급속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북방외교는 소연과의 수교에이어 중국과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또 북한역시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고 따라서 미·북한간의 관계도 멀지않은 시점에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이같은 국내외정세의 변화속에서 양국정상들은 우선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한반도의 통일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신장된 경제력등을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사회로 끌어내기위해 각급 남북대화를 시도하는등 꾸준하게 북한과의 대화노력을 기울여 온게 사실이지요.이런 바탕위에서 미국 역시 우리의 통일노력과 남북이 자주적인 노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도록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원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김교수=양국정상들이 북한측에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안전협정체결을 촉구하면서 핵관련시설과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사찰을 요구한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양국은 북한측이 핵안전협정의 당사국이 돼야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와 아울러 핵개발 가능성이 있는 핵연료재처리시설도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확인한 것입니다.북한의 핵개발은 남북관계의 차원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주변국가와 동북아평화질서 구축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뿐만아니라 소련·일본·중국등이 공동으로 우려하고 있는 현안입니다.따라서 일본·미국등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파탄에 직면한 경제적위기를 모면해보려는 북한으로서도 결국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교수=그렇습니다.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체결과 핵관련시설및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핵사찰을 촉구한 것은 북한에 대한 상당한 외교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북한은 유엔가입 발표이후에도 핵사찰 거부등으로 인해 유엔가입을 거부당할까봐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미국측은 오는11일 열릴 미일정상회담에서 가이후(해부)일총리에게 북한의 핵사찰문제를 일북수교협상의 확실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할 것으로 관측됩니다.또한 이번 회담에서 북의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철수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것은 북한의 억지주장 가능성에도 쐐기를 박은 것이라 할수 있죠.그리고 핵사찰 이행 문제는 경제난 극복등을 위해 대미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는 북한에게는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김교수=이번 회담은 특히 시기적으로 적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한일정상회담(1월)을 비롯,미일(4월),일소(4월),한소(4월),중·북한(5월),중소(5월)정상회담등 동북아 국가정상들의 행보가 잦아지고 있잖습니까.특히 소련이 선린우호조약체결을 우리에게 제의한 시점에서 한미정상이 만나는 것은 북방외교의 속도를 조절하고 우방국들과 동반자 관계의 동방외교를 다져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또한 다변화되어 가는 국제정세변화 과정에서 최근 걸프전이후 강화되어온 양국 협력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다져졌다고 여겨집니다. ▲유교수=특히 한반도 통일을 성취하기까지는 한미안보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한다는 점을 양국 정상이 재확인한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한미방위조약에 근간을 둔 한미군사협력관계는 동북아 안보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교수=미국방부는 지난 4월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거듭 확인한 바 있습니다.우리측 입장 역시 남북간의 군사대치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구도에서 일정수준의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요.따라서 양국정상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입장조정의 측면보다는 향후 전략변경이 있을 경우 사전 협의해 나간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유교수=이번 회담에서 주한미군철수여부 문제도 언급됐습니다만 이는 양국간의 견해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와 주변정세변화 등과 관련,입장을 정리해 놓기 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올가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실현될 경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대체,유엔사령부 해체등의 문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김교수=노대통령이 후버연구소 연설에서 아태각료회의(APEC)의 발전을 강조한 것은 APEC를 주축으로한 아태지역협력에 미국도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한미간 양자적 협력관계가 이제는 국제기구의 다변화 현상 속에서 새로운 양자 협력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것이죠.유럽공동체(EC)의 시장단일화,북미자유무역협정(FTA)등 지역경제 블록화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아태지역내 자유무역경제협력의 필요성은 어느때보다 증대되고 있습니다. ▲유교수=이번 회담은 우리의 북방외교추진과 관련한 미국의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전통적인 한미간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외교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결코 미국의 이익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는 점입니다.미국이 소연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북한측과도 관계개선을 기울여 나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그동안 우리의 북방외교결실이 미국측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도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교수=6·25라는 동족상잔을 경험했고 남침의 당사자인 김일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남북한간의 통일을 위한 당사자간 노력은 상호신뢰와 평화체제의 구축이 전제돼야 할것입니다. 이같은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한과 주변국가들의 관계정립을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라고한다면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남북대화체계를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라 할수 있습니다. 이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뤄지면 주변분위기의 성숙과 함께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위한 본격적인 남북협상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교수=한미양국은 작년에 통상마찰을 겪기도 했지만 양국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자유무역체제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천명했습니다.자유무역체제원칙은 우리의 통상·무역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따라서 농산물 시장을 비롯한 시장개방은 불가피할 것이지만 이문제는 해당 국가의 특성을 고려,급속히 이뤄져서는 곤란하리라 봅니다.결국 양국 관계장관회의를 비롯한 실무자 협의를 거쳐 어느정도 조정되어야 할것입니다.
  • 평화통일 앞당기는 계기 될것/「북한 핵사찰」관철 성과 기대

    ◎여야,미·가 순방 성명 여야는 29일 노태우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한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박희태 민자당 대변인=이번 방미는 좀처럼 없던 국빈초청으로 6·29선언 이후 노 대통령의 끊임없는 민주장정에 대해 우방국가가 표시한 최대의 예우에 따른 것으로 본다. 양국 정상은 걸프전 이후의 국제질서 재편을 논의하고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궁극적으로는 조국의 평화통일의 길을 확실하게 열어 놓게 되길 기대한다. ▲박상천 신민당 대변인=이번 회담에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확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대원칙하에 남북한유엔동시가입,북한에 대한 핵사찰,미­북한간의 관계개선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자주와 협력의 바탕에서 정책조정이 강구되는 성과가 있길 기대한다. ▲신현기 민주당 부대변인=노 대통령의 이번 미주방문이 과도기에 처해 있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평양 다녀온 스칼라피노 진단

    ◎“북한에 개방추구 3개 그룹 있다”/동구유학생/북송교포/외교관/김정일의 자질 의심… 세습 쉽지 않을듯 북한사회에는 변화를 촉진할 3개의 잠재적인 세력군이 존재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권력세습은 순조롭게 이뤄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미국의 저명한 아시아통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버클리대)가 25일 말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이날 워싱턴의 우드로 윌슨 센터에서 열린 한미 관계 세미나에서 지난 5월 자신의 평양방문을 토대로 북한 실정을 진단하는 가운데 이러한 변화 촉진세력으로 ▲유학 등으로 외부 세계를 경험한 젊은 엘리트 그룹 ▲1959년 이후 일본서 이주해온 10만명의 북송교포 ▲국제사회의 변화를 잘 아는 외교관 그룹 등을 열거했다. 그는 평양이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 대안이 없어 개방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한편으론 경제난 극복을 위해 개방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폐쇄적인 정치체제를 고수하려는 데 그들의 딜레머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사회에서 김정일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그의 권력 승계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한국은 이에 따른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광범위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일성 후계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된다면 자신은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안정협정에 일단 서명할 경우 일­북한간 국교정상화는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하고 북한은 대미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으로는 자급자족 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근대화된 기술의 결여와 엄청난 군사비 부담 등이 그 요인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설공사장의 약 60%의 인력이 군인들이라는 얘기가 있고 원유부족도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외무역은 50∼55%가 소련과 이루어졌는데 소련이 최근 수출대금의 경화 지불을 요구함으로써 어려움은 더 가중됐다. 이같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심각한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필요로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론이 김정일에 대한 기사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이는 김정일의 후계체제가 확고하지못하다는 것을 반영하는지 모른다.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후계승계 과정에서 군 내부에 김일성과 같은 세대인 오진우 등 3∼4명이 살아남아 있으면 중요한 중간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에 대해 공적으로는 다르지만 사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얘기하고 있으며 중국은 「최고의 우방국」 「큰 이웃」으로 지칭하고 있었다』
  • 캄보디아 4개파,내전종식 합의/무기한 휴전·군원 거부 결의

    ◎지도부 구성·유엔 통치 방법엔 이견/「평의회」 의장에 시아누크 옹립 【파타야 AFP 로이터 연합】 내전 종식을 위해 24일 태국의 휴양지 파타야에서 최고민족평의회(SNC) 회담을 시작한 캄보디아정부와 3개 반군세력 대표들은 이날 무기한 휴전과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 종식에 합의했으며 이제 세부사항의 논의만을 남겨놓고 있다고 성명을 봉해 발표했다. 이들은 또 사흘간으로 예정된 이번 회담의 의장직을 맡은 반군 지도자 노로돔 시아누크공이 앞으로도 SNC 의장직을 맡고 시아누크의 지도 아래 유엔에 SNC 대표를 파견하기로 합의하는 한편 국가와 국기에도 합의했다. 시아누크공은 성명에서 SNC가 『24일부터 무기한 휴전에 들어가는 한편 외국으로부터의 군사지원 수수를 종식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3개 반군세력이 24일부터의 휴전에 동의했으며 크메르루주 지도자 키우삼판도 휴전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방국들에게 무기공급 중단과 무기한 휴전에 관한 우리의 결정이행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고 이어 『유엔 통치의 형태는 앞으로 남은 SNC회담에서 검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성명은 모든 참가자들이 24일자로 무기한 휴전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는 23일의 전격 발표 하룻만에 나온 것으로 시아누크공은 『회담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이제 모든 참가자들이 상냥하고 신축성 있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아누크공은 23일 자신과 훈센 총리가 차기 SNC회담을 처음으로 프놈펜에서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고 말하고 휴전과 외국무기공급 중단,그리고 지도부 문제에 관한 세부사항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까진 무장해제방법등 걸림돌 산적(해설) 캄보디아의 4개 적대파벌들이 24일부터 무기한 휴전에 들어가고 외국의 무기원조를 받지 않기로 하는 등 몇 가지 기본원칙에 관한 합의를 도출해낸 것은 지난 12년간 지속돼 온 캄보디아 내전의 종식전망을 밝게 해주는 청신호로 일단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88년 7월 자카르타회담을 시작으로 파리 도쿄 등지에서 캄보디아 평화회담이수없이 열렸고 휴전합의가 이뤄졌던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유엔 평화안에 따라 총선 때까지 캄보디아의 통일문제를 논의할 최고민족평의회(SNC)가 지난해 9월 구성된 이래 외부 중재세력을 배제시키고 시아누크공 주재하에 자체적으로 열리기는 파타야의 이번 회담이 처음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그러나 SNC의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파벌간의 요직안배와 휴전 후 무장해제 등 핵심적인 문제들이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3개 반군파벌 중 최대세력으로 집권기간중 1백만명 이상의 동족을 학살해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만든 크메르 루주와 훈센이 이끄는 프놈펜정부간의 뿌리깊은 불신과 적대감도 평화해결의 불확실성을 더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놈펜정부가 SNC 지도부 구성에 대해 이달초 자카르타에서 열린 시아누크·훈센 회담의 결정대로 프놈펜정부측의 6명과 3개 반군파벌에서 각 2명씩 총 12명으로 하되 반군측의 시아누크공을 의장으로 하는만큼 부의장은 훈센이 단독으로 맡아야한다고 기득권을 주장하는 반면 크메르 루주측은 훈센뿐 아니라 다른 2개 파벌에서 각 1명씩 모두 3명이 부의장을 맡아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휴전 후 유엔 평화유지군을 치안행정 이양과 각 파벌의 무장해제 문제에 대해서도 프놈펜정부측은 크메르 루주가 세력확장을 꾀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총선 전까지는 응하지 않을 눈치이다.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크메르 루주가 지난 79년 베트남의 도움을 받은 훈센측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난 이후 시아누크공의 민족주의그룹 및 손산이 이끄는 인민민족해방전선과 제휴,지루하게 전개해온 내전의 터널에 이제 빛이 보이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총선에 의한 민주정부 구성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기까지는 아직도 다소간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 같다.
  • 6·25와 노병·모범 용사들(사설)

    또다시 맞은 6·25. 그때 아기로 태어난 사람이라도 이제는 40의 장년이 된다. 지금처럼 눈부시게 변하는 시대의 40년은 길고 긴 세월이다. 그러므로 「6·25」는 우리에게 화석이 되어버린 역사일만큼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6·25가 아물어버린 상처로 보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 않다. 약간 아문 정도로 보거나(42%) 전혀 아물지 않은 것으로 보는 사람(25%)까지 합하면 이 동족전쟁의 상처를 직접 간접으로,상처로 느끼는 것은 우리 국민의 대다수인 듯하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남침을 당하여 낙동강을 피로 물들이고서야 기사회생한 이 전쟁을 「북침」이라고 날조하고 싶어하는 시나리오에 동조하려는 상당수의 젊은이가 있기도 하다. 더러는 그런 논리가 진보적이고 새로운 것이어서 매력있는 것이기라도 하다는 듯 흥미본위의 이론을 추구하는 지식인 학자도 있다. 북측의 「남침」을 도와준 주변국 당사자들이 스스로 역사자료를 공개하며 회고록도 쓰고 고백도 하고 증언도 하면서 남침을 입증하는 데 의연하게 북침논리를 「주체사상」의 논리와 함께 신성불가침한 경전처럼 받드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 속에 뿌리 내리고 성장해온 것은 애석하고 통탄스런 일이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계속 안보의 불안한 그늘이 지는 일도 애석하지만,비뚤어진 지식에 오염되어 바람들어버린 나무처럼 상한 「재목」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더욱 속상하고 가슴아프다. 23일에는 재향군인회가 벌인 평화통일대회가 있었다. 6·25참전용사 상이군경 전몰군경유족 우방국 참전용사 등이 참가하여 거리를 메우는 행진을 했다. 참전자들이 직접 증언하는 전쟁의 진상이 이 행진만으로도 역연했다. 우방국 참전용사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사람들이다. 그들 중 전사한 유엔군을 위한 묘지도 우리땅에는 있다. 「걸프전」에서도 그랬듯이 평화를 침범하는 전쟁에만 유엔군은 참전한다. 「노병」도 거의 사라져 얼마남지 않은 그들이,그들이 지켜준 보람으로 번영하고 있는 한국을 대견해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숭고했다. 이런 것 모두를 보면서도 여전히 「북침」 타령을 하는 지각없는 소수에 대해서는 그들의 병 깊음을 한탄할 뿐 이제 탓할 거리도 못되는 성싶다. 참전 노병들의 행진을 보며 다시 한 번 우리는 이 땅을 우리의 조국으로 살아남게 해준 장병들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북쪽을 고향으로 둔 한국인은,지금 그들이 「신음하는 북한인」이 아닌 것만으로도 삶의 큰 위로가 된다. 그것이 모두 장병들의 수호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이 땅에서 국군으로 산다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직접 군인이든 그 가족이든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라를 지키며 살아왔고 살아간다. 국군모범용사를 초청하여 우리는 그 뜻을 전하기도 한다. 6·25를 맞아 우리가 할 수 있는 따뜻하고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체 중에서 가장 수고하면서도 비바람치는 한데 내앉혀 놓은 지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위로를 보내며 마침내 유엔회원국이 될 만큼 능력있고 성숙한 나라가 된 우리 자신의 노고에 긍지를 함께한다.
  • 남·북은 기능적통합 서둘러야한다/이용필서울대교수·정치학(서울시론)

    ◎산업등 하부구조 이질성 활용해야 북한 당국이 지난달 27일 마침내 유엔 가입신청 결정을 발표함에 따라서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함이 확실하게 되었다. 북측은 그들이 『유엔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분열주의적 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불가피하게 취하게 되는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유엔 가입이라든지 또는 통일이라는 과업이 북측의 일방적 의도와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고 하겠다. 북측이 유엔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 것은 소련 및 동구권에서의 급격한 변화,동서간의 긴장완화 그리고 그중에서도 북방정책의 성과라고 하겠다. 특히 정부가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과의 국교수립,3차에 걸친 한소정상회담 그리고 중국과의 꾸준한 관계개선 등의 파급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하겠다. 사실 북측의 유엔 가입신청 결정은 소련 및 동구권의 격변과 국제정세의 전반적 추세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립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국제정세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보려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북측은 「하나의 조선」이라는 명분에 얽매여 남과 북이 통일 후 하나의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거나 통일 전에 단일 의석으로 가입하는 것만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과 북이 독자적으로 유엔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반통일적 분단을 고착화하는 것이라고 비난해 왔다. 이와 같은 북측의 논리는 그들의 전통적 우방국가들인 소련이나 중국에도 설득력을 잃었으며 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유엔가입의 보편성 원칙에 입각해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적극 지지하는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난 상황에서 북측은 어쩔 수 없이 그 추세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북측의 태도변화는 심각한 경제적 난국을 극복하려는 저의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조속히 실현함으로써 일본의 경제적 협조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김일성 자신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후에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표명한 데서도 북측의 속사정이 어떤 것인가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북측에 다가온 일련의 대내외적 중압은 북측으로 하여금 교조적 명분추구보다는 국제정치의 변화 흐름에 불가피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리 만큼 가중되고 있으며 또한 그것만이 그들의 생존을 위한 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북측이 유엔 가입의사를 표명하게 된 것은 조만간 그들의 대남 및 통일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도달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북의 당국자들은 이미 고려민주연방제안을 수정한 것이라는 뜻을 여러번 개진한 바 있다. 어떠한 형태의 통일방안이 제시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북측이 근년에 들어와서 자주 언급하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독일식의 흡수통일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남북의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의 연형묵 총리나 다른 고위급 관리들의 언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북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동구권에서와 같이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밀어닥친다면 권력체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북측으로서는 현재의 위험스러운 고비를 넘기는 것이 가장 긴급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북측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교조주의적 명분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실리적 정책을 점진적으로 추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북측은 우리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도 접목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려면 부분적으로,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단계적으로 수정 보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그들의 저의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것은 결국 남북이 공존공생의 바탕 위에서 통일방안을 합리적으로 도출하도록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측이 유엔 가입을 결정함으로써 그들이 종래에 주장해 오던 「고려민주연방제안」을 어떤 형태로든지 수정해야만 한다. 고려민주연방제안은 지역정부를 그대로 두면서 그 위에 연방정부를 수립한다는 안 자체를 최종형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안에서는 남과 북의 두 체제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체제로 존속되는 상태를 통일의 최종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측의 유엔 가입결정은 두 체제를 고착시키는 추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미묘한 모순된 입장을 정당화하고자 북측은 통일과 유엔 가입이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엔가입이 결코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남과 북의 두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은 공존공생의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간의 기능적 통합의 가능성이 점차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기능통합론자들의 이론이나 그들의 명제들을 좀더 심층적으로 음미해 보고 또한 그 적실성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기능통합론자들에 의하면 통합의 단위체들이 동질성일 때,통합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의 이질성(예컨대 산업구조의 이질성)이 오히려 기능적 하위단체들 간의 통합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경험적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남과 북간에는 40여 년 간 이질화된 부문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문화 그리고 경제부문들의 기능적 하위부문간의 이질화는 점진적 방법에 의한 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독일통일의 점진적 및 단계적 성취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북측의 유엔 가입신청 결정은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를 계기적 통합과정의 초기 단계에 진입시키게 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물론 남북의 계기적 통합과정에는 극복되어야 할 중간단계가 가로놓여 있지만 남북의 기능적 하위부문간의 점진적 통합과 그에 따른 파급효과는 공존공생을 위한 남북연합의 제도화에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만이 우리 민족이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 북한 태도변화땐 특별이사회 소집/정부 방침

    정부는 북한이 오는 9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우방국들과 전략회의를 갖고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과 IAEA간 문안 정리를 위한 전문가 협의과정을 지켜보면서 북한이 협정에 서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면 우방국들과 협의를 거쳐 오는 7월 특별이사회를 소집,협정체결촉구결의문 채택을 감행할 방침이다.
  • 「유엔카드」로 대북한「핵사찰」압력/IAEA,「사찰결의안」유보 안팎

    ◎“9월 총회때 서명 다짐” 일단 수용/약속 어길 땐 「강제사찰」 거의 확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13일 오는 9월 정기 이사회에서 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하겠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논란이 일었던 북한에 대한 핵사찰 촉구 결의안 상정이 유보되었다. 북한의 진충국 대표는 핵사찰의제(11항 B)가 논의된 이날 회의에서 서명의사를 재확인하고 이사국들이 오는 9월까지 북한의 태도를 지켜본다는 결정에 따라 결의안 상정이 유보되었다. 진 대표는 이날 입장설명을 통해 핵안전협정의 표준협정안에 대해서는 충실히 지키겠지만 이 협정안의 26조 표준문안의 문구조정을 위해 북한과 미국이 오는 7월 협상을 벌여 최종문안이 확정되면 오는 9월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겠다고 밝혔다. 북한측이 문안조정을 위해 미국측과 협상하겠다고 한 26조는 효력의 발생과 정지를 규정한 부분으로써 북한은 여기에 「이 협정이 발효된 이후 북한은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제거되지 않거나 북한에 대한 핵위협이 계속될 경우 이 협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문구로 북한의 자의적인 결정으로 안전협정조치의 의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협상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대표부는 북한이 9월 이사회에 서명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북한이 26조 문안조정을 핑계삼아 안전협정의 의무수행을 회피할 의도도 갖고 있다고 보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날 북한의 핵사찰 촉구 결의안이 상정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우방국 전략회의에서는 북한이 서명의사를 공표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북한의 유엔가입문제와 연계시키겠다는 방안과 특별사찰제도를 도입하자는 방안이 논의됐다. IAEA의 현행 핵안전협정에는 협정체결 당사국이 IAEA에 신고한 핵물질 및 시설만을 사찰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IAEA의 자체적인 판단과 결정에 따라 핵무기개발 의혹 국가에 대한 해당물질과 시설에 대해 강제적으로 사찰을 할 수 있는 특별사찰제가 이번 회의에서 거론된 것은 북한에는 핵안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큰 압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새로운변화는 북한이 이번 이사회를 앞두고 통고해온 핵안전협정협상과 동의일정에 성실히 응하지 않을 때 당초 일부 이사국들이 추진해온 핵사찰 서명촉구 결의안의 채택보다 더욱 엄격한 국제적인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경고의 표시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엔도(원등철세) 대사가 제시한 특별사찰제도는 북한이 약속한 핵확산금지조약의 서명일정을 늦출 경우 이사국들 사이에 큰 공감대를 이뤄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초 이번 이사회에서는 북한에 대한 핵사찰 촉구결의안 채택이 거의 확실시되어 회의가 개막된 지난 10일까지만 해도 35개 이사국 가운데 결의안 제안국인 호주를 비롯,25개국이 지지태도를 보였었다. 이같은 분위기는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지난 2월 이사회 때 북한에 대해 6월4일까지 실무팀을 보내 협정문을 검토한 후 29일까지 서명여부를 분명히 하라고 촉구한 데 대해 북한측이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핵사찰촉구결의안이 상정될 가능성이커지자 지난 7일 진 대사가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에게 『7월15일부터 5일간 실무자를 파견해 IAEA와 협상을 벌인 뒤 오는 9월 정기총회에서 승인을 받아 동의하겠다』는 통보를 해 와 결의안 상정문제가 재검토됐었다. 이 때문에 결의안 채택을 강행하자는 이사국들과 북한이 협상일정을 알려온 만큼 일단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자는 이사국을 사이에 의견이 맞서 연일 각국 대표들간에 막후 절충이 진행되었었다. 결의안 채택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진 대표는 12일 한스 블릭스 사무총자을 만나 북한의 핵안전협정 동의의사 통고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자리에서 진 대표는 9월 총회에서 서명할 것을 재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안전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주한미군의 철수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 약속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미루어왔으나 이번 이사회에서는 이같은 전제조건을 달지 않은 것이 과거와 다른 태도를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태도변화는 유엔가입을 앞두고있어 국제적으로 유리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 데다 안전협정 서명촉구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과의 수교가 경제적인 난국타개를 위해 절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핵사찰 수용촉구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게 된 동기도 북한이 85년 12월 NPT에 가입했으나 가입 후 18개월내 체결해야 할 안전협정을 5년이 지나도록 거부하고 있는 데다 최근 영변에 건설중인 핵 관련시설 중 재처리시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핵무기 개발의혹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이유로 일본·호주 등은 북한에 조기서명 압력을 넣는 방법으로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게 된 것이며 일본의 엔도 대사는 회의 첫날 북한측으로부터 서명확답을 듣기 위해 5개항의 질의를 한 뒤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었다. 우방국 전략회의에서는 당초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핵안전협정 동의통보로 지난 11일 결의안을 수정,북한의 서명촉구 시일을 9월 총회에서 7월 특별이사회를 열어 승인받도록 한다는 수정결의안까지 마련해 북한의 서명 지연작전에 쐐기를 박으려했었다. 그러나 촉구결의안을 상정하더라도 24시간이 지난 후 토의토록 규정돼 있어 이번 이사회에서는 채택이 불가능해 유보키로 했지만 각국 대표들이 북한의 유엔가입문제,특별사찰제도의 도입 등 북한측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압력을 가중함으로써 북한은 결의안 채택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은 자신들이 제시한 핵안전협정 서명일정을 그대로 시행하지 않을 경우 보다 엄격한 제재를 감수해야만 될 전망이다.
  • 북한,“핵사찰 반대안해”/IAEA 북 대표/주한미군 핵철수와 분리

    ◎「대북 서명촉구 결의안」 유보 【빈=이기백 특파원】 진충국 북한 외교부 순회대사는 13일 상오 11시40분(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행한 대IAEA 핵안전협정 체결의사 통보해명발언을 통해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대북한 핵사찰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진 대사는 IAEA 이사회 폐막 하루 전인 이날 연설에서 북한이 핵안전협정 표준문안에 합의하겠다고 IAEA에 통고했으며,오는 7월 중순 북한 전문가 대표단을 IAEA에 파견,표준협정문의 근본내용에 대한 수정없이 최종문구 조정만을 거친 뒤 이 최종협정문을 IAEA의 승인을 얻기 위해 오는 9월의 정기 이사회에 제출키로 동의했다는 기본입장을 밝혔다. 진 대사는 또 북한이 핵안전협정표준문 제26조(핵안전협정의 효력은 해당국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해 있는 한 계속 발효된다는 조항)에 『주한미군 핵무기가 철수되지 않을 경우 이 협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항목을 추가삽입하자는 기존입장에서 후퇴,이 문제가 『북한과미국간에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말함으로써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란 전제조건과 북한의 핵안전협정 체결문제를 분리시켰음을 확인했다. 이장춘 한국대사 겸 빈주재 국제기구대표는 이날 진 대사의 발언에 뒤이어 IAEA 이사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북한이 오는 9월 핵안전협정체결의사를 밝힘에 따라 한국과 우방국들이 추진해온 대북한 핵안전협정체결 촉구결의안 상정을 보류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 이모저모

    ◎「세 불리」 느낀 북한,“핵협정 동의”로 선회/“결의안 저지 노린 술수” 우리측 분석/제3세계 이사국들,평양주장 지지/일 대표 질의에 대한 북측의 해명 여부가 변수 ○활발한 막후 접촉도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는 당초 북한에 대한 핵사찰수용촉구결의안이 총 35개 이사국 중 25개국의 지지를 얻어 채택될 것이 확실시됐으나 이사회 개막 사흘을 앞두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안전협정 체결 동의의사를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에게 통보해옴으로써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이같은 북한의 갑작스런 통보는 결의안 통과선인 35개 회원국의 3분의2를 넘는 25개국이 결의안 지지 태도를 보임에 따라 기습적으로 나온 전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북한의 안전협정 동의의사 통보로 지금까지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던 이사국이 『북한의 서명을 3년 가까이 기다려온 터에 오는 9월까지 3개월을 못 기다린대서야 말이 되느냐』며 결의안 상정마저 유보하자는 태도를 보여 결의안 채택 지지국과 반대국가간의 막후 접촉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서명조기유도 총력 ○…이번 이사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중인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 겸 빈 주재 국제기구 상주대표인 이장춘 대사는 북한의 기습적인 통보가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한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점을 강조,결의안 공동제의국인 일본·호주·캐나다·벨기에·체코와 미국 등 우방국 대표와 매일 접촉을 갖고 북한의 서명을 조기에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 수립에 분주. 이사회 진행규정상 의안을 상정한 뒤 24시간 후에 이에 대한 토론을 거쳐 의안을 표결에 부치도록 되어 있는만큼 우방국들은 핵사찰 의제인 11항 B가 논의되는 12일중 북한의 공식해명을 듣고 결의안을 상정,13일 토의를 거쳐 표결에 부친다는 전략. 결의안 지지국들은 북한이 일본 대표의 5개항 질의에 대한 해명을 안하거나 또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는 결의안을 상정한다는 방침이나 지금까지는 북한이 『일본 대표의 질의는 제국주의적 태도』라며 해명을 거절하고 있어 북한의 해명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대사 변명 급급 ○…북한 외교부의 순회대사인 진충국 대표는 이사회 회의보다는 제3세계 대사와 기자들을 상대로 홍보·선전활동에 주력하고 있어 눈길. 진 대사는 상오에는 회의장에 잠깐 얼굴을 내밀거나 아니면 아예 참석도 하지 않은 채 로비에 나타나 대기중인 기자들에게 결의안 자체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북한의 입장 홍보에 전력하는 모습. 진 대사는 11일에도 한국 기자들과 30여 분 간 로비에서 회견을 갖고 『우리는 모두 부모처자를 가진 동포로서 우리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역설. 75세로 알려진 진 대사는 주제네바 대사로 10년간 근무하는 동안 73년 북한의 국제보건기구 가입을 성사시킨 장본인으로서 뉴욕대표부를 개설한 한시해와 더불어 북한 외교의 실무원로로 꼽히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사무총장을 「총관리국장」으로,핵안전협정문을 「표준문」,협정서를 「담보문」으로 표현하는 데다 가끔 불분명한 부분을 영어로 부연설명하기도 했으나 노령인 데다 사투리가 심해 혼선을 빚게 만들기도. 진 대사가북한의 실력자이며 빈대사관 참사관인 윤호진을 지원키 위해 순회대사 명칭으로 이곳에 나타나 활동하는 것 자체가 북한의 한 속임수 전략이라는 것이 우리측의 분석. ○…북한의 진충국 대사가 한국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을 약속했던 11일 회의장 로비에서는 진 대사가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난 상오 11시10분까지 나타나지 않자 마침 이곳에 나타난 한 중국 대표를 진 대사로 오인,그를 에워싸고 질문공세를 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1백65㎝의 키에 생김새마저 한국인과 비슷한 중국 대표가 로비에 나타나자 한 기자가 『진 대사다』라며 달려가자 10여 명의 기자·카메라맨들이 그를 둘러싸고 『결의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정말 핵안전협정에 서명할 것이냐』고 대답할 틈도 안 주고 질문공세. 그러나 중국 대표는 시종 미소를 띤 얼굴로 질문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옆에 있던 중국 기자에게 통역을 부탁,그는 북한 대표들에 대한 한국 기자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야기된 해프닝임을 알고 『중국은 모든 핵안전협정이 원칙적으로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나름대로의 입장을 표명. ○유럽 언론 태도 냉담 ○…이번 IAEA이사회 회의에 관해서는 한국·일본·미국 기자들만 관심을 가질 뿐 유럽 언론에는 거의 기사가 보도되지 않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 유럽 언론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회의장에는 프레스센터 등 지원시설이 전혀 없어 기자들은 우체국 시설을 이용하느라 여간 애를 먹고 있지 않다. 빈시 다뉴브강변 북쪽 인터내셔널센터에 자리잡고 있는 IAEA 사무국의 상주직원은 1천4백여 명.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원국 수가 1백13개국이나 됐으나 독일 통일로 현재는 1백12개국으로 줄어들었다. IAEA·UNICEF 등 각종 국제기구가 들어선 인터내셔널센터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중립을 보장하고 국제회의 개최에 따른 외화수입을 위해 정부재정으로 지어 유엔에 연 임대료 1달러(7백10원)를 받고 임대해주고 있다고.
  • 북한의 협정체결 지연전술 봉쇄/IAEA 수정결의안 추진 배경

    ◎「9월 서명」 표명 불구 진의 아리송/이 대사,“우방과 합의… 채택에 자신” 10일부터 열리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북한의 핵사찰수용촉구결의안을 일부 수정,7월에 IAEA특별이사회를 열어 북한의 조기서명을 촉구키로 한 것은 일단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겠지만 핵안전협정은 조기에 유도하겠다는 압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우리 정부는 북한의 7월 중순 협상,9월 총회 서명의 일정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우방 이사국들과 교섭을 벌였으나 10일 밤과 11일에 걸친 우방국들과의 접촉결과 「북한이 새로운 제안을 제시한만큼 일단 지켜보겠지만 과거와 같이 지연전술을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수정결의안의 채택여부는 12일 회의에서 토론을 거친 뒤 결정되겠지만 우리측 대표인 이장춘 주오스트리아 대사는 『우방 이사국들과의 협의를 거쳐 마련된 안』이라고 밝혀 채택에 자신감을 표시했다. 당초 마련했던 결의안에서 수정된 내용은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시기를 총회가 열리는 9월에서 앞당겨 「7월에 특별이사회를 열어 결정한다」는 내용이지만 북한이 핵사찰 수용의사 표명 후 일부 3세계 이사국들이 「일단 북한이 정식통보한 이상 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사를 표시함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이번 IAEA이사회에 핵안전협정에 체결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엔가입을 위한 유리한 배경을 조성하고 ▲일·북한 수교의 필요성 ▲국제적인 압력 등이 주요요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제네바평가회의를 앞두고도 국제적인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핵안전협정 체결교섭 용의를 밝혔으나 시간끌기를 한 뒤 평가회의가 지난 다음 유야무야한 일로 넘겨버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해와는 달리 북한이 유엔가입을 하기로 돼 있는 데다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일본과의 수교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돼 있다. 이 때문에 IAEA이사회의 35개 이사국 중 호주·일본·캐나다·체코·벨기에 등이 공동제의키로 한 핵사찰수용촉구결의안에 대해 25개 이사국이 동의할 움직임을보이자 북한은 지난 4일 협정 동의의사를 IAEA사무국에 전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들 이사국들은 북한에 대해 계속 안전협정 서명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며 북한의 유엔가입과도 연계시킨다는 방침이다. 주오스트리아 대사 겸 빈 주재 국제기구 상주대표인 이장춘 대사도 일본·호주·캐나다·벨기에·미국 등과 10일 밤에도 회의를 열고 결의안 채택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이사회에서 핵사찰수용촉구결의안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일본으로 이사회 첫날 엔도(원등철세) 빈 주재 국제기구 대표가 북한이 안전협정 체결에 동의한 진의를 묻는 5개항을 질문했다. 엔도 대표가 이같은 질의를 하는 동안 북한측의 진충국 순회대사 등 대표단 일행은 회의장을 빠져나갔다가 엔도 대사의 질의가 끝난 뒤 회의장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진 북한대사는 퇴장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우리가 IAEA에 동의하기로 통보하고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한만큼 엔도 대사의 발언은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첫날 이사회가 끝난 뒤 전체적인 분위기는 『북한이 새로운 제안을 한만큼 북한의 최종확정안 심의 및 통과에 새로운 상황이 제기된 것』으로 보고 북한의 자세를 당분간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이 때문에 호주 등 결의안 제안국들은 10일 밤에 이어 11일에도 북한측과 접촉을 갖고 일본 대표가 제시한 5개항에 대한 북한측의 태도를 알아보는 등 결의안 채택여부를 둘러싸고 상황파악을 하는 데 주력했었다. 우리측의 이 대표도 이들 우방국 대사들과 회담을 갖고 북한이 일본 대표의 발언시 퇴장한 일과 과거 북한의 태도로 볼 때 성실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 대표는 특히 IAEA 안전조치협정안은 이를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는 2자택일이 있을 뿐이지 여기에 동의하겠다고 통보한 뒤 협상을 갖겠다는 것은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북한이 일본 대표가 제시한 5개항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을 지켜본 뒤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북한 대표의 발언이 있을 13일까지는지켜보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사국들의 입장은 IAEA 안전협정 체결은 입국사증(VISA) 기재사항과 같은 것이어서 기재할 사항을 놓고 협상을 하자는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또 북한이 유엔가입을 앞두고 있는만큼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환경조성을 위해서라도 이번 이사회에서만큼은 과거와 같이 함부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더욱이 북한이 이번 빈 이사회에 협정 체결의사를 통보하면서 그 동안 그들이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 핵사찰 수용 문제를 거론해왔던 것과는 달리 이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은 데다 진 북한 대표도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핵문제나 한국측의 문제를 일체 거론하지 않고 있어 각국 대표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진 북한 대표는 특히 한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서도 『내일(11일) 봅시다』라고 여유있는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남한측이 결의안 채택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일을 망친다』고 충고조로 말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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