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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벌어먹냐” 모욕한 10대 승객 감금한 택시 기사

    늦은 밤 술 취한 10대 승객이 모욕적 발언을 하자 격분해 승객을 차 안에 가두고 때린 택시기사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신혁재)는 특수 중감금 치상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 정모(43)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정씨는 지난 1월 11일 오전 2시 30분쯤 서울에서 태운 승객 A(19·여)씨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간 뒤 차 뒷좌석에서 A씨의 얼굴을 3∼4회 때리고 약 10분간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정씨는 차 안에 있던 청테이프로 피해자의 양손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눈을 가리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몸을 내리누르면서 흉기를 들이대고 “움직이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했다. 정씨는 술 취한 A씨가 “택시회사 밥 벌어먹고 사느냐”, “이런 일 하는 사람의 자식은 무슨 죄냐”고 시비를 걸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은 “나이 어린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 협박하고 청테이프로 신체를 구속한 건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피해자가 모욕적 말을 한 것에 화가 나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여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中군용기, 한국방공식별구역 침범 멈추나

    상호 방문·군사 직통전화 추가 설치 4개월째 침범 잠잠… 갈등 회복세 전망 “中, 한국 압박 필요하다면 강화할 수도” 한국과 중국 국방당국이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논의하면서 앞으로 중국의 KADIZ 침범이 멈출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군 관계자는 6일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열린 한중 국방장관 양자회담에서 KADIZ 침범 등 우발적 군사 충돌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 부장은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 간 국방교류협력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양 장관은 양국 간 군사적 신뢰를 증진하기 위한 방안들과 상호 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회담에서는 중국 군용기의 KADIZ 침범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 논의가 있었고 이런 차원의 일환으로 한중 양 장관은 회담에서 해·공군 간 직통전화(핫라인) 추가 설치를 합의했다. 군 관계자는 “KADIZ 침범 등 우발적 충돌 방지를 강화하는 차원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중국 KADIZ 침범 소식은 지난 2월 이후 4개월 가까이 들리지 않고 있다. 이는 최근 한중 국방 당국 간 교류협력 강화를 추진하면서 한반도 영역에서의 중국의 군사활동도 잠잠해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군용기가 침범하면 F16K 등 공군 전투기가 출격해 대응 비행과 경고 통신을 실시한다. 중국 군용기가 경고통신과 대응비행에도 계속 침범 상태를 유지하면서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따라 강릉 앞바다까지 깊숙한 진입이 이뤄질 때는 합참에서 공식적으로 침범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KADIZ 침범은 공식적으로 8차례, 단시간 침범까지 포함하면 약 140여 차례가 이뤄졌다. 올해 들어서도 중국의 KADIZ 침범은 계속됐다. 지난 2월 23일 중국 군용기 1대가 울릉도 서북방까지 비행해 KADIZ를 침범하면서 올해도 KADIZ 침범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중국이 최근 깊숙한 형태의 KADIZ 침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사드’로 촉발된 한중 군사 갈등이 회복세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논의되고 있고 한중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해 나가기로 한 과정에서 중국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최근 깊어지고 있는 미중 간 군사적 갈등의 여파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KADIZ를 침범해 시끄러워지면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펼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더 강하게 해도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행위가 될 수 있다”며 “그것에 대한 나름의 대차대조표를 점검한 결과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중국 군용기가 군사전략에 따라 언제든 다시 깊숙한 침범을 강행할 수 있는 만큼 의미 부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중국이 자신들의 군사적 목적과 의도에 따라 비행경로를 정하는 만큼 한국에 대한 압박이 필요하다면 다시 침범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활동이 당장 약해졌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승객이 “자식은 무슨 죄냐” 모욕하자 위협·폭행한 택시기사

    승객이 “자식은 무슨 죄냐” 모욕하자 위협·폭행한 택시기사

    모욕적인 발언을 한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을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택시기사에게 1심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신혁재)는 특수중감금치상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 정모(43)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고 연합뉴스가 6일 전했다. 정씨는 지난 1월 11일 새벽 2시 30분쯤 서울에서 태운 승객 A(19)씨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간 뒤 뒷좌석에서 A씨 얼굴을 3~4회 때리고 약 10분 동안 위협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씨는 A씨가 “택시회사 밥 벌어 먹고 사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자식은 무슨 죄냐”는 식으로 시비를 걸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차 안에 갖고 다니던 청테이프로 A씨 양손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눈을 가리는가 하면, A씨 몸을 내리누르면서 흉기를 들이대고 “움직이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가까스로 정씨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났으나 눈꺼풀과 눈 주위에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타박상을 입었다. 재판부는 “술에 취해 늦은 밤 택시에 혼자 승차한 나이 어린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 협박하고 청테이프로 피해자의 신체를 구속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 “피해자가 상해를 입고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죄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재판부는 “피해자를 폭행하고 감금한 시간이 10분에 미치지 않아 감금의 정도가 경미하다”면서 “피해자가 술에 취해 모욕적인 말을 한 것에 화가 나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여 범행 동기·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日정치인들, 불륜·막말·폭행 드러났을 때 쓰는 전형적인 수법은?

    日정치인들, 불륜·막말·폭행 드러났을 때 쓰는 전형적인 수법은?

    한국에서 정치인들의 막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발언 주제나 강도 등 차이를 제거하고 빈도만 놓고 보면 일본이 한술 더 뜨는 경우도 많다. 집권 자민당에서 소속 의원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이어지자 이를 막기 위한 매뉴얼까지 만든 것이 현 상황을 보여준다. 의도된 것이든 우발적인 것이든 잦은 망언·실언이 정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당사자는 집중공격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요즘 최고 막말 정치인으로 등극한 인물은 30대 중반의 3선 의원 마루야마 호다카(35) 중의원 의원이다. 그는 지난 11일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인 남쿠릴열도 4개 섬 중 한 곳인 쿠나시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전쟁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망언을 했다가 거대한 파문을 자초했다. 일본에서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남쿠릴열도 4개섬은 일본이 러시아에 대해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며 줄곧 돌려줄 것을 요구해온 곳으로, 현재 양국 사이에 반환 관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을 입에 올린 것이다. 마루야마 의원은 문제의 발언을 한 지 사흘 만에 소속 정당인 일본유신회에서 영구제명 조치를 당했다. 일본유신회를 포함한 6개 야당은 마루야마 의원에 대한 의원직 사퇴 권고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이에 그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 쿠나시르 현지에서 만취한 상태로 천박한 성적 발언을 하고 러일 분쟁지역이어서 외출이 금지돼 있는데도 “여성으로부터 접대를 받고 싶다”며 외출을 시도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몸싸움까지 벌인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문제가 계속되자 여야 정치권은 당사자를 불러 진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루야마 의원은 지난달 24일 예정됐던 중의원 의원운영위원회 이사회 청문회 출석을 ‘2개월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 진단서를 제출하고 거부했다. 의원운영위 이사회는 “그렇다면 우리가 30일 직접 방문해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의료진과 상담한 결과 현재로서는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행태에 대해 자민당의 한 의원은 도쿄신문에 “정말로 병원에 있는 건지, 호텔에 있는 건지조차 불분명하다. 누구라도 꾀병이라고 밖에는 생각할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루야마 의원은 의원운영위 이사회에는 자신의 병명을 ‘적응장애’라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기록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도쿄신문은 “적응장애는 최소 1개월 정도는 환자의 상태를 지켜봐야 확진이 가능한 질병”이라는 의료계의 설명을 곁들이며 부적절 발언의 발생시기 등을 감안할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은 마루야마 의원 이전에도 각종 파문을 일으킨 뒤 몸상태 불량을 이유로 잠적하고 위기를 모면해온 다른 정치인들이 적잖았다고 전했다. 2016년 아마리 아키라 당시 경제재생상이 현금수수 정황이 발각되자 ‘자택요양’을 이유로 모습을 감춘 것을 비롯해 2015년 동료의원과 부적절한 교제가 보도됐던 여성의원 나카가와 유코, 2017년 남성비서에 대한 폭언·폭력 행위가 문제됐던 여성의원 도요타 마유코 등도 아무런 질병의 전조가 없었는데도 갑자기 와병을 이유로 행방을 감췄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데 대해 정치평론가 모리타 미노루는 “대부분 정치인들은 자신의 건강상태와 관련해 비밀이 보장되는 단골의사를 확보해 놓고 있기 마련”이라면서 “그런 밀접한 관계 속에서 진단서 작성을 부탁하면 의사는 해당 인사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요청을 들어주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의사에 대한 일반적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온다.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는 “정치인이 불상사를 일으킨 뒤 진단서를 제출하고 자취를 감추는 풍조는 정말로 병을 위해 휴양이 필요한 환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일반환자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재정, 준칙과 함께 확대되어야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재정, 준칙과 함께 확대되어야

    최근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지출은 궁극적으로는 세금에 의해 재원을 조달해야 하지만, 경기 침체에 대응하려고 재정을 확대하는 데 세금을 늘려 재원을 조달하면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경기부양 효과가 떨어진다. 따라서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증세(增稅)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지만, 국채 발행 등을 필요로 해서 흔히 국가부채 증가를 유발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D1)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2018년 기준 38% 내외다.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해 수치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재정지출 증가 속도와 경기를 고려할 때, 과거에 일종의 저지선으로 생각했던 40% 선을 곧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이러한 비율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40% 수치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경제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지수가 2000 아래로 떨어졌다고 그 자체가 주식시장을 폭락시키는 수준이라기보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저지선이 뚫렸다는 관점에서 투자자들이 우려한다고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부채인 국가채무(D1)에다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한 일반정부 부채(D2)는 이미 43%선이고, 여기에 비금융 공기업까지 합한 공공부문 부채(D3)는 60% 내외지만, 이 수치 자체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40%를 절대 넘을 수 없는 수치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자체보다 이를 넘어선 이후에 관리 가능하지 않은 속도로 국가부채가 증가하거나 이로 인해 증세가 불가피한 경우다. 특히 이후에 발생할 국가채무 부담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고려했는지가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사회 변혁이 기존의 세금으로 관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재정 부담이 급증했던 것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1789년 대혁명 이전 프랑스는 추가 세금 징수 없이 미국 독립전쟁을 치른 것으로 생각하며, 국가 재정에 대해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적인 개념으로 보면 실제로는 전쟁으로 인한 우발 채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고, 사실상 국고는 바닥난 상태였다. 결국 재정 위기에 봉착하고 엘리트 계층의 기여만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자 서민 계층에까지 부담을 확대하면서 저항에 부딪힌다. 따라서 재정을 확대해도 재정적자 규모와 부채 증가 속도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중요하다.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40%보다 낮아도 급격히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증가하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재정 위기를 경험한 아르헨티나의 국가부채 비율은 2014년에도 40%대로 보고됐다. 그러나 2018년에는 80%대를 넘는다. 지금 국가부채 비율이 100% 근처인 스페인도 불과 10년 전 재정위기 이전인 2008년 40% 선이었다. 지금은 혹독한 구조조정과 재정개혁으로 국가부채 비율을 60%대까지 끌어내린 아일랜드는 재정 위기로 그 비율이 120%선(2013년)까지 증가한 적도 있었는데, 역시 불과 10년 전인 2008년에는 40% 선에 그쳤다. 그렇다고 현재처럼 경기가 하락할 때 재정이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재정지출은 확대하되 국가부채가 급증하지 않게 관리할 재정 준칙이 필요하다. 재정 준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먼저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재정적자 규모와 부채 증가 속도를 통제하는 재정 준칙이다. 일단 규모와 속도가 관리되면 재정 위기 위험성은 감소한다. 또 한 가지, 국가부채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미래에 짊어질 부담이기에 규모와 속도만 관리된다고 합리화하기 어렵다. 얼마나 생산적인 형태로 재정지출이 사용되느냐에 따라 후속 세대에 가는 부담은 달라질 수 있다. 국가부채가 증가해도 장기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지출이라면 상대적으로 경제성장 대비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부 지출이 사용되는 측면에서의 준칙 역시 필요하다. 그러한 준칙이 없다면 재정지출과 국가부채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 어렵고, 결국 그런 상황에서는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도 재정을 확대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 사회적 연대로 버틴 10년… 쌍용차 해고자의 싸움은 행복했다

    사회적 연대로 버틴 10년… 쌍용차 해고자의 싸움은 행복했다

    오는 6월 말 쌍용차 해고 노동자 48명이 복직한다. 마지막 남은 이들이다. 해고가 부당하다고 아우성쳤지만 오히려 불온 세력으로 몰려 공장 밖으로 쫓겨난 이들이 10년 만에 당당히 사원증을 발급받게 된다. 하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처벌과 탄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해고 노동자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불법으로 규정됐다. 쌍용차 해고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 또한 이들의 가슴을 깊게 후벼 팠다. 마치 병을 옮기는 전염병 환자를 보는 듯 경계 어린 시선에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고통을 받았다. 거리로 나온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게는 ‘전문 시위꾼’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간다. 10년의 싸움 끝에 얻어낸 복직. 이제는 국가를 상대로 싸운다. 김득중(49)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남은 과업도 하나씩 풀어낼 것”이라면서 “사회적 연대의 힘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2009년 사태 이후 서른 명이 죽었다. 행복한 싸움이 맞나. “다른 사업장보다 어려웠고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도움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 2011년 봄부터 복직 투쟁에 나선 32명에게 매달 99만원씩 생활비를 줬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체불한 적이 없다. 1년이면 4억원에 달한다. 투쟁기금도 그때그때마다 채워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데 수년 동안 어떻게 가능했을까. 도움을 준 단체를 세어 보니 150개가 넘더라. 연대의 힘이라는 게 놀라운 거다.” -조합원들도 같은 마음인가. “지금껏 우리를 버티게 한 게 사회적 힘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제는 우리가 되돌려줘야 한다. 복직한 분들에게도 기금을 걷고 있다. 전체 기금 중 20%는 사회연대기금으로 정해 올해 초부터 도움을 줬던 단체에서 하는 행사에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합의 이후에는 외부 기금을 일절 안 받고 있다. (기금을) 전달하겠다는 문의가 오면 더 필요한 사업장으로 안내한다.” -이달 복직하나. “합의서에 이달 말까지 나머지 40%(48명) 채용한다고 나와 있다. 확실한 건 오는 30일 복직명령서가 나온다는 거다. 복직은 되는데 부서 배치가 안 되면 당장 일을 못하고 연말까지 기다려야 될 수도 있다.” -71명이 먼저 복직했다. 복직 기준은 뭔가. “조합 총회에서 복직 순서를 ‘기여도’로 하자고 정했다. 지난 10년 동안 얼마만큼 복직을 위해 참여했느냐. 단계적으로 복직될 경우를 상정해 열심히 한 사람부터 순번을 작성해 놓은 게 있다.” -복직한 노동자들은 적응 잘 하고 있나. “적응은 본인 몫인데, 10년 동안 손에서 놨던 일이라 힘들어 한다. 숙련이 안 돼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매달려 일하는 중이다. 그래도 복직 전과 후의 표정이 달라졌다.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아이들 등하교도 도와주고, 가족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려고 하는 것 같더라.” -노조가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시선도 있다. “2009년 파업하기 전부터 노조는 노동계에서 상당한 질타를 받을 정도로 양보안을 내놓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일자리 나누고 임금, 복지도 축소하기로 했다. 주변에서 해고 이후 삶을 직접 봤기 때문에 그것만은 피하고자 함께 살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지난해 노조가 발견한 당시 사측 문건을 보면 회사가 파업을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가 설마 전기까지 끊을 줄은 몰랐다. 전기를 끊으면 도장반 페인트가 굳어 다 들어내야 한다.”-당시 경찰은 뭐했나. “회사가 동원한 구사대는 사방팔방에서 새총을 쏘아댔다. 주먹 크기 만한 볼트, 너트가 날아오는데 방패막이로 삼은 합판이 뚫려 나갔다.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해 7월 중순부터 보름 정도는 두려움 속에서 지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공장을 봉쇄하고 압박해 들어왔다. 밤에도 잠을 안 재웠다. 오전 3~4시에 전투경찰(전경)들이 마치 공격해 들어오는 것처럼 철판을 두들겨 심리적 불안감을 일으켰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현장에서 우발적 사고가 발생할까 걱정했다.” -경찰의 강제 진압이 공권력 과잉 행사로 조사됐다. “지난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것처럼 그해 8월 4~5일 양일간 경찰 진압은 끔찍했다. 당시 공장 옥상에서 폭력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을 안 하려고 한다. 진압 당한 이후 컨테이너에 끌려가서도 엄청 두들겨 맞았다고 들었다. 아들뻘 되는 전경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으면서 느꼈을 모멸감, 자멸감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비참했겠나.” -그때 연행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년 3일간 구치소에 있었다. 1심에서 징역 3년형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3년)로 풀려났다. 제 공소장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들은 북한 불온 서적을 탐독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 조직된 사람들이다’라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게 살려고 한 노동자들한테 국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올해 3·1절 특별사면 대상에 쌍용차 사건도 포함됐던데. “정부가 쌍용차 파업 사건 관련자 7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했다. 경찰관 1명도 포함됐는데 경찰은 형 선고 실효 및 복권 대상이고, 나머지 6명은 복권만 됐다. 6명도 당시 금속노조 임원들이고, 직접 당사자인 쌍용차 조합원들은 포함 안 됐다.”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는 있었나. “없었다. 당시 과잉 진압한 책임자들,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국가가 진정으로 사과를 했으면 한다. 경찰청장이 (쌍용차 본사가 위치한) 평택에 와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심리치유센터 ‘와락’도 방문하고, 당사자들과 진심으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 한다.”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자까지 포함해 21억원이 넘는다. 노조는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조정을 통해 철회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경찰청에 냈다. 경찰관 치료비·위자료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급하려고 한다. 하지만 경찰청은 진상조사위의 손배 취하 권고가 나온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게다가 지난 1월 복직 노동자 임금 일부를 가압류하면서 분노를 증폭시켰다. 가압류를 해제할 때도 선별적으로 했다.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작은 단위의 투쟁부터 하려고 한다. 7월 1일부터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거다. 만 10년이 되는 8월 6일 전에는 해결이 돼야 하지 않겠나.” -최근 현대중공업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을 것 같다. “현중 사태를 보면 혼란스럽다. 이분들도 2009년 저희처럼 살기 위한 투쟁이고 발버둥이다. 그동안 장기적 갈등이 있던 노사 문제에 정부가 참여해 해결한 것처럼 정부가 이번 사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언론이 왜곡 보도하면 노사 대화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쌍용차 사태란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하며 공장 점거 농성을 벌인 노조의 파업은 3개월여 만에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종결됐다. 해고 노동자 180여명이 복직 투쟁에 나섰고, 사측과 2015년 1차 합의(45명), 지난해 9월 2차 합의(119명)를 통해 복직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10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사한 해고 노동자와 가족은 확인된 것만 30명에 달한다.
  • 밀착하는 중일… 日방위상, 10년 만에 방중 추진

    고위급 교류 확대·핫라인 조기 개설도 이달말엔 G20서 시진핑·아베 정상회담 관계 개선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방위 분야에서도 교류를 확대해 가고 있다. 우선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올해 안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일본 방위상의 연내 방중이 실현되면 2009년 3월 이후 10년 만이다. 2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와야 방위상은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과 회담을 갖고 연내 이른 시기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중일 국방장관 회담은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참가를 계기로 이뤄졌다. 회담에서 이와야 방위상은 “중일 관계가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고, 웨이 부장은 “양국의 상호이해를 촉진해 미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이와야 방위상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일본과 중국 간 방위교류를 진행해 상호이해와 신뢰양성을 위해 노력해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웨이 부장에게) 남중국해 등에서의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다”면서도 “향후 양국 방위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의견 교환이 회담의 주제였다”고 강조했다. 중일은 회담에서 일본 통합막료장(한국의 합참의장)과 중국 연합참모부 참모장의 상호방문 등 고위급 교류를 촉진하기로 했다. 또 자위대와 중국군의 우발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간부 간 핫라인(전용전화)도 조기에 개설하기로 했다. 자위대 대표단의 연내 방중과 중국 해군 함정의 방일 추진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일본 호위함이 국제관함식 참가를 위해 7년여 만에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2년 일본이 영유권 분쟁지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면서 극도로 냉각됐던 중일 관계는 지난해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계기로 급격히 호전되고 있다.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후 아베 총리가 연내 다시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은 샹그릴라 대화를 통해 미국·호주와의 밀착도 과시했다. 이와야 방위상은 1일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 린다 레이놀즈 호주 국방장관과 함께 북한에 대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적 방법이 존재한다”면서 유엔 대북 제재 결의를 계속 이행하기로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애인 불 붙여 살해하려한 40대에게 징역 6년형

    애인이 다른 남자와 어울렸다는 이유로 휘발유를 뿌린 뒤 불 붙여 살해하려해 징역 6년형을 받은 40대 남자의 항소가 기각됐다. 대전고법 형사1부(이준명 부장)는 30일 “애인 B씨와 말다툼을 한 뒤 범행에 쓸 휘발유를 준비한 점 등으로 미뤄 살해할 고의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49)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자신의 행위로 피해자들이 숨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살해의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1·2심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주점을 운영하는 B씨와 2011년부터 연인 관계로 만났으나 B씨가 남자 손님들과 어울리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B씨의 주점 폐쇄회로(CC)TV로 내부 상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지난해 7월 7일 밤 애플리케이션으로 주점 내부를 살피다 B씨가 남자 손님과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점으로 찾아가 욕설을 퍼부으며 B씨를 폭행했다. 이어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주점을 다시 찾아가 B씨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주점에 함께 있던 B씨의 지인에게도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B씨와 지인이 주방 싱크대로 재빨리 뛰어가 불을 끄지 않았다면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대표적인 인물은 이동휘(대통령장,1995년) 선생이다. 2005년 3·1절에 몽양 여운형(대한민국장) 등 사회주의 계열 54명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는 등 2007년까지 다수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훈장을 받았다. 그중에 주세죽이 있다.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 코뮤니스트. 당대의 ‘얼짱’. 3·1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항일투사. 여성해방운동가.” 주세죽의 일생은 파란만장하고 비극적이다. 주세죽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수년 전 손석춘 작가의 ‘코레예바의 눈물’과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이야기’를 통해 생애가 알려졌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손 작가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여행을 갔다가 발견한 주세죽의 자필 기록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주세죽은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1901년생이다. 중농 집안에서 태어난 주세죽은 영생여학교 고등과에 다녔고 피아노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3일 함흥 장날,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주세죽도 참가했다가 붙잡혔다. 한 달 동안 입에 담기 어려운 모멸적인 성고문을 받고 출소했다. 풀려난 주세죽은 함흥 시내 병원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일했다. 일본인 의사의 성추행에 또다시 진저리를 친 주세죽은 중국 상하이 유학을 결심했다. 그곳에는 한 살 아래 친구 허정숙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상하이에서 주세죽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허정숙의 소개로 박헌영을 만났다. 박헌영, 김단야 등은 주세죽이 오기 한 달 전인 1921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했다. 박헌영은 책임비서였고 주세죽도 고려공청에 가입해 기관지 ‘올타’를 편집하는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박헌영을 뒤따라 주세죽은 1922년 3월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국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벌이겠다는 의지에 불타 있었다. 먼저 갔던 박헌영과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김단야는 귀국 정보를 알아낸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세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다. 주세죽은 여성해방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미인으로 통했다. 박헌영의 친구인 소설가 심훈은 대리석으로 깎은 얼굴이라고 했다. 주세죽을 모델로 ‘동방의 애인’이라는 소설도 썼다. 주세죽, 허정숙, 김단야의 동거녀 고명자를 당시 언론은 여성 트로이카라고 불렀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은 남자 삼총사였다. 주세죽과 허정숙은 반봉건, 여성해방의 뜻으로 단발머리를 했다. 주세죽은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1924년 5월 서울 천도교회관에서 조선여성동우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이었다. 고무공장, 비단공장, 정미소를 찾아다니며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 항일운동단체 근우회에도 동참했다. 1925년 5월 조선공산당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을 추동할 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도 창립했다. 박헌영이 고려공청 책임비서를 맡았고 주세죽은 후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우발적인 술자리 사고로 조직이 탄로 났다. 김단야만 피신했고 주세죽, 박헌영, 임원근, 허정숙이 검거됐다. 주세죽은 증거 부족으로 한 달 만에 풀려났다. 순종의 국장일인 1926년 6월 10일,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또 보름 만에 풀려났다.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기획한 공청 중앙위원이었지만, 박헌영이 아니라고 보호했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심한 고문을 받았고 정신이상자가 됐다. 그러나 이는 위장이었다. 박헌영은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주세죽과 박헌영은 요양을 이유로 함흥으로 간 뒤 소련 블라디보스토크로 배를 타고 탈출했다. 임신한 주세죽은 도착하자마자 딸 영(影)을 낳았다. 1928년이었다. 그해 11월 두 사람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김단야가 먼저 가 있었다. 김단야는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선담당관이었다. 주세죽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박헌영은 국제레닌학교에 입학했다. 박헌영은 주세죽에게 ‘코레예바’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줬다. 고려의 여성이라는 뜻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 사람은 1932년 초 딸을 국제유아원에 맡겨놓고 상하이로 갔다. 영에게 ‘비비안나’라는 다른 이름을 지었다. 상하이에서 주세죽은 박헌영과 조선공산당 활동을 지원하고 기관지를 국내로 들여보냈다. 이듬해 7월 박헌영은 체포됐다. 그 사이 주세죽과 김단야는 도망쳤다. 김단야는 박헌영이 고문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주세죽을 연모한 김단야의 거짓말이었다. 그러고는 사랑을 고백했다. 둘은 1934년 1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박헌영이 죽었다고 믿은 주세죽은 김단야와 결혼했다. 1937년 소련은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워 김단야를 체포했다. 이성태란 사람의 모함이었다. 이듬해 2월 13일 석 달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주세죽도 5년 유배형을 받았다. ‘제1급 범죄자의 아내로서 사회적 위험분자’라는 죄목이었다. 1938년 5월 주세죽은 유배지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김단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은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병에 걸려 죽었다. 유배지 크질오르다는 사할린에서 활동하던 홍범도 장군이 강제이주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광복 후 지하에서 활동하던 박헌영은 월북한 뒤 1946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주세죽은 프라우다지에 난 기사를 보고 박헌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당시 18세이던 비비안나에게 아버지임을 알렸다. 박헌영은 주세죽이 유배된 사실을 알고 최대한의 배려를 요청했다. 주세죽은 그다음 날 거주 제한이 풀렸다. 박헌영은 비비안나를 만났다. 그러나 주세죽을 만날 의사는 없었다. 주세죽은 스탈린에게 조선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스탈린은 거부했다. 주세죽은 딸에게로 가다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휴전 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나이 52세 때였다. 두 남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3년 후 죽임을 당했다. 주세죽의 첫 남편은 미제 스파이, 두 번째 남편은 일제 스파이로 몰려 죽은 것이다.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을 지내고 1991년 89세로 사망했다. 고명자는 일제의 고문으로 원치 않는 전향을 했다가 친일적인 글을 쓰기도 했고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1989년 소련 당국은 주세죽과 김단야를 사면했다. 1991년 박비비안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박헌영의 고향 충남 예산에서 가져간 흙을 주세죽의 묘비에 뿌려줬다. 비비안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무덤이라도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비안나는 무용수와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2013년 사망했다.우리 정부는 2007년 주세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단야에게는 독립장을 추서했다. 임원근은 앞서 1993년 애국장을 받았다. 중국 태행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사망한 윤세주(독립장)와 진광화(애국장)도 건국훈장을 받았다. 님 웨일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장지락)에게도 2005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빨갱이’에게 무슨 훈장이냐”는 우파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현실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념의 무덤에서 독립유공자를 파내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사업가 납치·살해 가담 조폭 등 구속

    50대 부동산업자를 납치 살해하는데 가담한 광주 폭력조직 국제PJ파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이 각각 발부됐다. 달아난 부두목 조모(60)씨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조치를 하고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24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김모(65)씨를 구속했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병원에서 치료 중인 홍모(61)씨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전날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감금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조씨의 친동생(58)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9일 광주의 한 노래방에서 부동산업자 A(56)씨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시신을 차량에 태운 채 양주시청 부근까지 와서 주차장에 차량을 버리면서 시신을 함께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구체적인 범행 장소와 방법,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A씨가 나이가 어린데 반말을 하길래 발로 찼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와 홍씨가 시신 유기 직후 근처 모텔로 가 수면유도제를 먹고 양주경찰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는 행동을 한 점으로 미뤄, 살인을 저지르고 조씨를 도피시키기 위한 전략까지 사전에 계획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국제PJ파의 실질적인 두목으로 알려진 조씨는 13년 전인 2006년에도 광주에서 ‘건설 사주 납치사건’을 주도한 전력이 있으며, 당시 5개월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검거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부동산업자 납치 살해한 국제PJ파 부두목 출국금지

    부동산업자 납치 살해한 국제PJ파 부두목 출국금지

    조폭 하수인2명 신병확보… 범행후 수면제 자살기도부동산업자 시신, BMW 뒷좌석서 발견… 핏자국도“거액 투자손실에 의한 금전문제로 범행 저지른 듯”광주지역 폭력조직 국제PJ파의 부두목이 주도한 50대 부동산업자 납치살해 사건의 공범 2명에 대한 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이 신청됐다. 피살된 부동산업자의 시신은 BMW 승용차에서 발견됐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24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김모(65)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인 홍모(61)씨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국제PJ파 부두목 조모(60)씨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조치를 하고,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은 조씨의 투자손실로 A씨에게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것으로 정확한 투자 및 손실금액과 배후세력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앞서 전날 광주 서부경찰서는 조씨의 친동생(58)도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감금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19일 광주의 한 노래방에서 A(56·부동산업)씨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A씨의 시신을 차량에 태운 채로 경기도 양주시청 부근까지 와서 주차장에 차량을 버리면서 시신을 함께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씨의 친동생이 운전해 광주에서 서울 강남 논현동에 들른 사실이 파악됐으나, 구체적인 범행 장소와 방법, 동기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들은 “(A씨가) 나이가 어린데 반말을 하길래 발로 찼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와 홍씨가 시신 유기 직후 근처 모텔로 가 수면유도제를 먹고 양주경찰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는 행동을 한 점으로 미뤄, 살인을 저지르고 조씨를 도피시키기 위한 전략까지 사전에 계획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들은 자살기도 후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홍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려면 며칠간 회복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시신은 지난 21일 오후 10시 30분쯤 양주시청 부근 한 주차장에 주차된 BMW 승용차에서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색 중 발견했다. 발견 당시 A씨는 얼굴 등 온몸에 둔기 등에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으며, 재킷과 무릎담요로 덮인 채 뒷좌석에 쓰러져 있었다. 시트에는 핏자국도 남아 있었다. 현재 국제PJ파의 실질적인 두목으로 알려진 조씨는 A씨에게 거액의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보면서 사건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주식,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은 A씨가 광주 국제PJ파나 부산 칠성파와 자금거래를 하는 등 폭력조직과 금전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한편 조씨는 13년 전인 2006년에도 광주에서 ‘건설 사주 납치사건’을 주도한 전력이 있으며, 당시 5개월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검거돼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골프채로 아내 살해한 유승현 전 김포복지재단이사장 검찰 송치

    골프채로 아내 살해한 유승현 전 김포복지재단이사장 검찰 송치

    경기 김포경찰서는 23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한 유승현(55) 전 김포복지재단이사장의 죄명을 살인죄로 변경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한 유 전 이사장의 휴대전화에서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검색어가 수차례 발견된 점 등을 토대로 죄명을 살인으로 변경했다. 아내를 골프채 등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유 전 이사장에게 살인죄가 적용돼 검찰에 넘겨졌다. 유 전 이사장은 이날 오전 9시쯤 김포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살인 혐의를 인정하느냐. 휴대전화로 살인과 관련한 단어를 왜 검색했느냐”는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이어 승합차에 탄 유 전 이사장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으로 이동했다. 유 전 이사장은 지난 15일 오후 4시 57분쯤 김포시 양촌자택에서 술에 취해 아내를 주먹과 골프채로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경찰은 아내시신에서 폭행으로 인한 심장파열과 여러 갈비뼈 골절도 확인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구두소견을 토대로 범행 당시 유 전 이사장이 아내의 사망을 예견을 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유 전 이사장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아내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유 전 이사장은 2012년 제5대 김포시의회 의장을 지냈고 2017년부터 김포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다 이번 사건으로 지난 16일자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경찰, ‘아내 폭행’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 살인죄 적용

    경찰, ‘아내 폭행’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 살인죄 적용

    경찰이 아내를 골프채와 주먹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유승현(55) 전 김포시의회 의장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경기 김포경찰서는 22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수사를 벌여온 유 전 의장의 죄명을 살인죄로 변경하고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유 전 의장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 분석해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단어가 검색된 정황을 포착했다. 또 유 전 의장이 골프채 2개가 부러지도록 A씨를 폭행한 점 등을 봤을 때 아내 A(53)씨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죄명을 변경했다. 유 전 의장은 지난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전 “아내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느냐”는 고개를 저었고,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아내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며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의 몸에서 폭행에 따른 심장파열과 다수의 갈비뼈 골절도 확인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구두소견을 들어 유 전 의장이 A씨가 숨질 것을 알았다고 판단했다. 유 전 의장은 지난 15일 오후 4시 57분 김포시 자택에서 술에 취해 A씨를 주먹과 골프채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범행 뒤 119구조대에 전화해 “아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신고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피가 묻은 채 부러진 골프채 2개와 빈 소주병 3개가 발견됐다. 소주병 1개는 깨진 상태였다. 유 전 의장은 경찰에서 “자택 주방에서 아내를 폭행했고, 이후 아내가 안방에 들어갔는데 기척이 없었다. 성격 차이를 비롯해 평소 감정이 많이 쌓여 있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후임병 구타하다 역공에 다리 골절…법원 “국가배상 책임없다”

    후임병 구타하다 역공에 다리 골절…법원 “국가배상 책임없다”

    군대에서 선임병이 후임병을 구타하다가 반발한 후임병에게 되레 얻어맞아 다쳤다면 이에 대해 국가가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이종광 부장판사)는 후임병을 구타하다 역공으로 다친 A씨가 국가와 후임병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깨고 국가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A씨는 육군 일병으로 복무하던 2017년 1월 같은 중대 이병이던 B씨의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구타했다. 구타를 당한 데 화가 난 B씨가 A씨를 때렸고, 이로 인해 A씨는 다리가 골절되는 등의 부상을 입었다. 이에 A씨는 자신을 다치게 한 B씨와 국가의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소송을 냈다. 1심은 B씨와 국가에 70%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연대해 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따르면 A씨가 선임병이라 해도 후임병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폭행하거나 권한 없이 명령·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럼에도 위법하게 B씨를 폭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법한 폭행에 순간적으로 흥분한 B씨가 A씨를 폭행해 상해를 입힌 것으로, 이는 우발적인 싸움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지휘관들이 전혀 예견할 수 없던 상황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싸움에서 생긴 A씨의 상해에 대해, 가해자인 B씨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더라도 그 관리·감독자인 국가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A씨는 B씨가 이른바 ‘관심병사’로서 집중적 관리·감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지만, 재판부는 B씨가 관심병사라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노무현 서거 10주기] 盧가 공들였던 서해평화지대… 판문점·평양선언으로 구체화

    [노무현 서거 10주기] 盧가 공들였던 서해평화지대… 판문점·평양선언으로 구체화

    2007년 김정일에 “서해문제, 차비 뽑아야” 10·4선언 ‘서해 공동어로수역 지정’ 성과 남·북·미 신뢰 축적을 대북정책 원칙으로 통일담론 확장… ‘한반도 평화’ 단초 마련“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 가야지요. 서해 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원장님 말씀도 듣고요.”(노무현 전 대통령) “‘서해 문제도 군사회담에서 꼭 상정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나는 그 부분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남아 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노 전 대통령) “(김양건 부장에게) 내 회의도 저녁 시간으로 다 돌려라. 오늘 외무성 사람들 몽땅 모여서 방향을 얘기하려는데.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 2시 반에 하는 걸로.” (김 위원장)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3일 오전 평양에서 한 정상회담에서 막판까지 조율하지 못한 사안은 북방한계선(NLL)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문제였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를 추후 실무 회담으로 넘기자고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오후에 회의를 연장해 논의하자며 배수의 진을 쳤다. 결국 오후까지 이어진 회의 끝에 다음날 10·4 선언에는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미완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서해평화지대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이라며 “아주 중요한 성과로 판단하고 있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서해평화지대를 비롯한 10·4 선언의 합의 이행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이뤄지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10·4 선언 체결 이듬해에 “이 나무가 좀 말라비틀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서해평화지대 등 10·4 선언의 합의 사항 대부분을 지난해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반영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 철학을 계승한다. 특히 10·4 선언에서 원론적으로 처리됐던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구체화했으며 9·19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 등을 통해 남북 간 적대행위 금지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해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고조되고 북미 갈등이 치열할 당시에도 ‘남·북·미 간 신뢰’를 대북 정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는 ‘성공과 좌절’에서 “정부가 어느 한쪽으로 확 기울어 버리면 어느 쪽도 불신 때문에 마음 놓고 결단을 할 수가 없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의 축적”이라고 강조했다.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집권 이후 한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을 번갈아 열며 남·북·미 정상 간 신뢰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역사상 최초로 1·2차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다만 지난해에는 정상 간 개인적 신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했으나 이 신뢰가 실무진까지 확장되고 제도화되지 못하면서 현재 남북·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문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남북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연결시킴으로써 통일 담론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동북아 평화 구상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정책으로 이어 오고 있다. 그는 “동북아 평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4대 강국이 서로 협력하는 질서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부부의 날, 남편 외도 고백한 이혜정 “지금은 고마워”[종합]

    부부의 날, 남편 외도 고백한 이혜정 “지금은 고마워”[종합]

    요리연구가 이혜정이 남편 고민환 교수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다. 21일 오전 방송된 KBS1 ‘아침마당’의 ‘화요초대석’ 코너에는 ‘부부의 날’을 맞아 결혼 40주년을 맞은 이혜정, 고민환 부부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이혜정, 고민환 부부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고민환은 “서로 대칭적이다. 식성도 다르다. 그런데 같은 게 하나 있다”면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젊을 때 많이 싸웠지만 서로 좋아하는 요소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이혜정은 즉흥적, 고민환은 계획적인 성격으로 서로 차이를 보인다고 밝혔다. 고민환은 “이혜정이 즉흥적으로 산다. 즉흥적으로 사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 생각했고, 결혼까지 이어졌다”면서도 “다른 표현으로는 우발적인 것이다. 갑자기 어디를 가다가도 ‘먼 곳으로 가자’고 하는 등 즉흥적이어서 화가 났다. 싫은 소리를 하니 싸움이 났다”라고 털어놨다. 이날 이혜정은 남편 고민환과의 위기에 대해 말하던 중 “결정적인 위기가 있었다. 매일이 결정적인 일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혜정은 “남편이 바깥 것에 관심이 많아 가슴 아픈 적이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미안해. 마음 아프게 했어. 내가 잘할테니 기다려봐’라고 하더라”며 “그 말이 정직하게 들렸다.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이혜정은 지난해 방송된 KBS1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우리 남편이 바람을 한 번 멋지게 피운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이혜정은 “그 바람이 지금은 고맙다. 그때 안 피웠으면 평생 잘난 척했을 건데 그것 때문에 꼬리가 내려가서 요새는 찍소리도 못한다”고 밝혔다. 이혜정은 “저는 150만원 월급으로 통장을 11개 만들었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남편이 그러니 분했다”면서 “어머니께 말하는데 저희 어머니는 듣지도 않고 무조건 사위 편만 들었다. 그날 어머니가 또 갈치를 사서 제일 큰 토막을 구워서는 ‘먹고 가면 집에 와 있을 거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혜정은 “눈물이 너무 나더라. 자괴감이 너무 들었는데 ‘해보자. 안 해봤잖아’ 생각이 들더라. 나도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서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거다”고 요리를 시작한 계기를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아침마당’ 이혜정-고민환 “우발적으로 한 결혼, 40주년”

    ‘아침마당’ 이혜정-고민환 “우발적으로 한 결혼, 40주년”

    ‘아침마당’에서 요리 연구가 이혜정과 고민환 교수 부부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21일 오전 김재원 이정민 아나운서 진행으로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의 ‘화요초대석’에는 이혜정 고민환 부부가 출연했다. 패널로는 코미디언 김학래, 이승연 아나운서가 참석했다. 이혜정 고민환은 올해로 결혼 4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혜정 고민환은 서로 다른 성격으로 과거 많은 싸움을 벌였다고 했다. 이혜정은 “제가 사납게 생기고, 남편 고민환이 유순하게 생기다 보니 제가 싸움 거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고 말하며 답답해 했다. 고민환은 즉흥적인 이혜정에게 불만이라고 했다. 고민환은 “즉흥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도 있어서 이혜정과 결혼한 거다. 그러나 즉흥적이라서 우발적인 것도 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이혜정은 “어느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는데, 싱싱한 생선이 있어서 사자고 했다. 그런데 고민환이 ‘말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 이건 죽었다. 산듯이 싱싱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고 반격했다. 이어 이혜정은 “밥도 아침이 먹기 싫으면 안 먹고, 점심을 두 개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러면 고민환이 ‘너는 왜 이렇게 두서가 없냐’고 한다”고 고민환에 대해 폭로했다. 그러면서 이혜정은 “남편 고민환은 계획에 없는 걸 하는 걸 싫어한다. ‘계획표에 있는 거냐’고 종종 물어 본다. 이런 점이 저에게는 사는 동안 고통이었다”고 했다. 이를 들은 김학래는 이혜정의 편을 들어줬고, 이에 이혜정은 “다음 생인 김학래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고민환은 아내 이혜정의 건강을 걱정하며 “이혜정은 삶이 불규칙하다. 늦게 들어오고 빨리 나가니까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남편의 걱정을 들은 이혜정은 “자랑할 것이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놀러 갔는데 남편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보고싶다’고 문자 하더라”고 말하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경찰관에게 가위 휘두른 30대 집유

    경찰관에게 가위를 휘두른 30대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전주지법 형사1단독 김형작 부장판사는 소란을 피우다 출동한 경찰관에게 가위를 휘두른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A(35)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80시간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8일 오전 10시 17분쯤 전주 시내 한 빌라에서 동거인과 말다툼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가위를 휘둘러 팔목에 상처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경찰관이 왜 왔느냐. 들어오면 죽여버린다”면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위험한 물건인 조리용 가위를 휘둘러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해 그 죄질이 좋지 않다”며 “다만, 잘못을 시인하고 우발적 범행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아름다운 세상’ 의식불명 남다름 눈 떴다 “아름다운 기적”

    ‘아름다운 세상’ 의식불명 남다름 눈 떴다 “아름다운 기적”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났다. 의식불명에 빠져있던 남다름이 드디어 눈을 뜬 것. 이에 시청률은 전국 4.3%, 수도권 5.3%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제공, 유료가구 기준) 지난 18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 제작 MI, 엔케이물산) 14회 엔딩에서 박선호(남다름)가 기적적으로 눈을 뜨며, 시청자들까지 감동에 젖어들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선호 핸드폰에 담긴 녹음파일을 증거로, 오진표(오만석), 서은주(조여정), 오준석(서동현)의 조사와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진술이 이뤄졌다. 진실과 거짓이 오고가는 가운데, 선호가 의식을 찾으며 종영까지 2회 남은 ‘아름다운 세상’에 새로운 희망과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선인장화분에서 찾은 선호 핸드폰을 통해 사고 당일 녹음파일을 들은 박무진(박희순)과 강인하(추자현). 특히 “다희(박지후)를 성폭행하고 협박했다고 어른들한테 전부 다 말하라”는 선호의 목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선호와 준석이 다투는 소리, 무언가 추락하는 소리, 그리고 신대길(김학선)에게 사주하는 은주의 목소리는 무진과 인하의 분노를 유발했다. 무진은 아이들이 선호한테 보낸 협박 메시지까지 모두 남아있는 선호 핸드폰을 들고 박형사(조재룡)를 찾아갔고, 음성파일로 토대로 수사가 진행됐다. 공항으로 떠나는 아침, 박형사의 연락을 받고 경찰에 출석한 은주와 준석. 두 사람은 모든 일을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은주는 “순간적으로 운동화를 갖다 놓은 건 맞지만 끈은 제가 묶은 게 아니에요. CCTV를 없앤 것도 몰랐어요”라며 잘못을 대길에게 떠넘겼다. 대길이 돈을 주지 않으면 핸드폰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 준석도 “그날도 선호가 절 오해했고 먼저 때렸어요. 그래서 다투다가 사고가 난 거”라며 학교폭력까지 부인했다. “저흰 준석이보다 그 부모들이 강력한 처벌을 받길 원하고 있습니다. 더 큰 잘못을 한 건 그 부모들과 어른들”이라는 무진의 바람과 달리 친족 간의 특례법으로 정상참작이 되면 벌금형에 불과했다. 진표와 은주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건 대길의 살인교사혐의뿐.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없어”라는 인하의 의지로 무진은 최기자를 만났다. 녹음파일을 전해주는 대신, 다희에 대해선 어떤 것도 언급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또한 “기사의 초점을 준석이가 아니라 진실을 은폐한 부모, 어른들한테 맞춰주셔야 합니다”라고 부탁했다. 선호 사건을 재조명한 최기자의 기사가 배포되고, 학교에서 준석은 유령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행복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성공하면 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성공하면 그뿐이야”라며 진표처럼 변해버린 준석의 모습에 자신의 잘못을 상기한 은주. 심지어 준석은 은주가 대길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인하를 찾아간 은주는 “전부 다 내 잘못이야. 준석인 사실대로 말하고 싶어 했어. 내가 못하게 했어”라며 무릎 꿇고 울며 사과했다. 하지만 인하는 “우리 선호 영영 못 깨어나면 넌 우리 식구 모두를 죽이는 거야”라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린 은주는 진표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박형사는 준석의 핸드폰을 통해 다희 생일에 준석과 다희가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부모에게 선호를 성폭행 가해자라고 한 것과 달리 선호에게는 준석의 잘못인양 말한 다희. 하지만 신고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서 의혹만 계속 될 뿐이었다. 또한, 다른 아이들의 진술로 준석이 선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특히 이기찬(양한열)은 뒤늦게나마 죄책감이 담긴 눈물을 터트렸고, 준석이 주동자임을 숨겼던 조영철(금준현)도 선호가 준석에게 라퓨타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말했다. 선호와 준석은 함께 시간을 보냈던 학교옥상을 라퓨타라고 불렀던 것. 점차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는 가운데, 입원실에 누워있던 선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선호야, 엄마 목소리 들려?”라는 인하와 “선호야, 아빠야. 힘내. 이제 일어나야지. 일어나 선호야”라는 무진의 목소리와 함께 선호의 눈꺼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원실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고, 가족들의 간절한 눈빛을 받던 선호의 눈이 힘겹게 열렸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아름다운 기적이 펼쳐지면서 안방에 감동적인 여운이 감돌았다. ‘아름다운 세상’ 매주 금, 토 밤 11시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놀랜드 “한반도 통일 초기 비용만 1191조원 예상” 막대한 이득도 계산해야

    놀랜드 “한반도 통일 초기 비용만 1191조원 예상” 막대한 이득도 계산해야

    16일 아침 한반도 통일 비용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도 제법 얼굴이 알려진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수석 부소장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카네기국제평화기금 토론회에 참석해 한반도 통일 비용이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에 버금가는 1조 달러(약 1191조원)가 될 것으로 점쳤다고 국내 몇몇 언론이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보통 통일비용은 통일 후 10년 동안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통일이득은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기자는 VOA뉴스 홈페이지를 살펴 원문 기사를 찾아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야후 닷컴의 뉴스 검색 등을 해봤는데 마찬가지였다. 뉴시스와 아시아경제 등은 놀랜드 부소장이 1조달러는 북한을 당장 안정시키기 위한 초기 비용에 불과하다면서 “한국 정부가 어려울 때를 대비한 재원을 축적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아주 보수적인 재정 정책을 펼칠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대규모 우발적 채무(contingent liability)가 있을 것이기 때문”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모든 재원을 끌어 모아야 하며, 여기에는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의 협력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놀랜드 부소장은 통일 후 북한을 안정시키는 과정에 국제금융기구의 역할과 공공 자본의 투입만큼 중요한 것이 민간 투자라면서, 이들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북한 내 사유재산을 확실히 보장할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독일의 사례를 들어 통일 후 매매 대상이 된 동독 자산의 95%가 서독인 소유로 넘어갔고, (서독) 기업들은 동독 공장을 사들여 이들을 폐쇄한 뒤 현지 영업 사무소로 전환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재벌이나 다른 투자자들이 반경쟁적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놀랜드 부소장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가 1996년 10월에 주최한 제11차 한미안보연구회의에 제출한 논문을 통해 2000년 한반도 통일을 이룰 경우 10년 동안 3조 1720억 달러를 북한에 투자해도 25년이 지나야 북한은 한국의 60%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예측한 일이 있다. 이번 보도가 맞다면 무려 20년 전에 한 예측보다 오히려 통일비용이 상당히 줄어든 것인데 이렇게 예측치가 줄어든 이유가 궁금해진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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