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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박이야 혜성이야”

    [마드리드 AFP AP 연합]‘우박이냐 혜성이냐’스페인에서 지난 8일부터 하늘에서 농구공 크기만한 얼음 덩어리 30여개가 떨어져 시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4㎏정도의 이 물체는 햇볕이 내려쬐는 맑은 날씨에도 떨어지는가 하면 달리던 승용차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운전자를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동부 발렌시아를 비롯해 마드리드 외곽,동북부 사라고사 인근도 괴물체 세례를 받아 스페인이 전례없는 소동에 빠졌다. 이 괴물체의 정체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은 여러갈래다.스페인 과학연구협회 연구팀은 스페인 전역을 돌며 수거한 얼음 덩어리 10여개에 대한 화학성분 분석작업을 하고 있다.프리아스 팀장은 “일단은 혜성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그러나 천체물리학자들은 우박이거나 비행기에서 버린 오줌같은 오물이 얼어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과학협회 연구팀의 분석결과는 21일 공개예정.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8)한수산’욕망의 거리’

    연행 인사들은 대략 2박3일 내지 4박5일 코스로 전혀 예기치 못했던 혹독한고통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우선 당사자인 한수산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나는 공항에서 눈이 가려졌고,신원을 알 수 없는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에게 양팔과 허리를 ‘달랑 들려져’ 차에 태워졌고,우박처럼 쏟아지는 폭행속에서 승용차 재떨이에 이마를 처박힌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거기서의 며칠 몇 밤을 이제와서 떠올릴 분노조차 나는 가지고 있지않다.도구만은 기억한다.찢기고 부서져 가는 내 알몸 위로 쏟아지던 몽둥이,물,전기,주먹과 발길,매어달림….”(신동아 1987.12)작가에게 시종 추궁한 것은 ”현 정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었던 데 비하여 정규웅부장에게는 더 한층 가혹했다.수사관은 정부장을 작가 한수산의 배후 조종인물로 설정하고 그 틀에 맞추려는 낌새였다.어느 필화나 그랬듯이 그 구성요건은 필자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라 배후 조종인물을 가상하고 있다.말하자면 정부장은 반정부적 시각을 가지고 자신이책임지고 있는 신문지상을 통해 한수산으로 하여금 반정부 사상을 사주했다는 식이었다.여기서 끝나면 오히려 간단하다.존재하지도 않는 정부장의 배후 조종세력이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을 테고 그 난이도에비례해서 매타작은 더 더욱 심해지기 련이다. 과연 위에 인용한 구절 때문에 이들은 고문을 당해야만 했는지,국가와 사회에 위해를 끼쳤는지에 대한 해답은 곧 필화사건은 원천적으로 불필요하다는인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사건으로 가장 억울했던 인사로는 박정만 시인을 꼽는다.고려원 출판사편집부장으로 작가 한수산을 몇 번 만났다는 사실 때문에 연행된 박시인에게 가해진 고문은 간첩 불고지죄 정도에 해당하는 가혹한 체벌이었다.시인은‘저 쓰라린 세월’이란 시집 ‘후기’에서 ”나를 죽인 것은 5월의 그날이다…광주사태로 민심은 소란하고 힘을 결집할 곳이 없었다.그런데 왜 가십란에도 못 오르는 뭇매가 나를 때리는가.적어도 나는 건강하게 살려고 했던 이 땅의 보통사람에 불과했다”면서 고문의 고통을 시로 읊었다. ”펄펄 끓는 물솥에수건을 적셔/내 몸의 어혈 위에 찜질도 하고…/탕기에선 한밤내 부글부글/죽은이들 끓는 소리/절명하라,절명하라,절명하라/이를 갈다 이를 갈다/가슴도 부글부글 소리를 내고…/분노도 피딱지도 약에 녹아/하나 되고”작가 한수산은 “전화번호부 두께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다양한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보다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 극복이 더 힘들었습니다”라고 이 사건을 회고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가끔의 폭음과 10여일씩 자취를 감추는 기행을 저지르다가 1988년 9월 일본으로 떠났다.한수산은 이해 5월 28일 교보문고의 ‘작가와의 대화’에서 “일체의 연재를 중단함과 아울러 TV와 영화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영상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어떤 매스컴에도 얼굴을 내놓지 않겠다는 작가로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선언”(이문재의 글)을 한 바 있다. 시인 박정만은 어땠을까.고문 이후 그는 심한 육체적·정신적 공허감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데다 병마까지 겹쳐 1988년 10월 2일 타계했는데,누구도 박정만 시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소설 ‘욕망의 거리’는 80년 5월의 군부독재가 남긴 가장 비인간적인 필화사건의 한 전범으로 남을 만하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기상청, 중부 강수량예측 빗나가자 시민 불신

    중부지방에 예상치의 3배가 넘는 집중호우가 퍼붓자 기상청의 예보 능력에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특히 지난해 여름 전국을 휩쓸며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던 게릴라성 폭우 이후 1,300만달러(약 150억원)의 거액을 들여 일본 NEC사에서 도입한 슈퍼컴퓨터가 무용지물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기상청 예보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슈퍼컴퓨터가 제 역할을 못해서인가,아니면 기상청의 조직과 인적 구조가 문제이기 때문인가. 슈퍼컴은 만능이 아니다? 지난해 7월말부터 8월초에 걸쳐 중부지방과 지리산 등지에 쏟아 퍼부은 게릴라성 폭우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때 기상청은 모든 탓을 “슈퍼컴퓨터가 없어서…”로 돌렸다.그후 정부는 기상청 연간예산의 4분의 1이 넘는 엄청난 금액의 슈퍼컴을 들여오기로 했다.하지만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오히려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고 있다.1년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이번 수해는 지난 해보다도 더 많은 이재민을 양산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슈퍼컴을 이용하더라도 국지성 집중호우의 정확한 강수량이나 강우의 강도(시간당 강수량)를 예측하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밝힌다.다만 예보시간이 빨라져 비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지난해지리산 폭우 당시 집중호우가 시작되기 불과 2∼3시간 전에 호우경보가 내려졌던 것이 올해는 경보가 6∼7시간 전으로 앞당겨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기상청의 이우진(李宇鎭)수치예보과장은 “슈퍼컴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면서 “현재로선 예보 시간을 단축하는 정도로도 큰 진전”이라고 해명했다. 한심한 소프트웨어 기술 슈퍼컴을 통해 유용한 예측결과를 얻으려면 우리나라의 지형 특성에 맞는 소프트웨어와 장기예보 프로그램,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무 것도 갖추고 있지못하다. 기상청은 지금까지 10년간 축적한 고유의 기상용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슈퍼컴퓨터를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이 소프트웨어가 새로 도입한 슈퍼컴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기상청이 지난해의 호우 상황 10건을 슈퍼컴퓨터를 통해 수치적으로 재현,예보능력을 가상 실험한 결과 5건은 어느 정도 예측이 맞았지만 나머지는 최대 강우시간에 대한 예측도 6시간 이상 늦었으며 총강수량도 실제의절반 밖에 예측하지 못했다.많은 자료를 입력해 빠른 시간에 계산해 내는 슈퍼컴이 있지만 이런 자료를 제대로 프로그램화,입력시키는 ‘병렬 프로그램’ 기술을 지닌 전문가가 없는 것도 슈퍼컴의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주원인이다. 인력과 장비도 열악 기상청이 밝힌 우리나라의 예보정확도는 83%.선진국의 예보수준은 85% 이상이다.예보능력을 1% 높이기 위해서는 수십억∼수백억원의 예산과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현재 기상청의 예산은 연간 560억원.이가운데 4분의 3 이상이 경직성 경비인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시작한 수치예보가 도입된 것은 91년.재해를 가져오는 악(惡)기상을 미리 예보하는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인구 100만명당 기상인력이 미국 80명,일본 50명,영국 44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2명에 불과하다. 장비도 열악하다.현재 관측소는 지상 20㎞마다,고층에는 200㎞마다 설치돼있어 입체적인 파악이 어렵다.남서해상과 산악지역은 관측공백으로 남아있다.호우·우박·낙뢰 등 돌발적인 기상현상을 감시하는 기상레이더는 전국에다섯군데밖에 설치돼 있지 않다. 미국의 경우 2만여명의 기상전문인력이 인공위성과 기상레이더,해저관측장비 등 첨단장비를 통해 입체적인 기상예측을 하고 있다.이같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대기와 해류 등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국지적인 기상변화에 대해서도 정확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기상연구소 예보연구실 오재호(吳載鎬)실장은 “기상예보력을 향상시키려면 지표에 집중된 기상관측을 자동화·입체화·종합화하는 것을 목표로 관측자료 수집이나 자료처리 체계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혜리 이지운기자 lotus@
  • 박흥호 나모인터랙티브사장 “3년내 세계시장 석권 자신”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에서 옹골진 실력으로 탄탄한 기반을 쌓아온 ‘나모인터랙티브’가 마침내 본격적인 세계시장 공략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나모는 지난달 29일 홈페이지 제작용 소프트웨어인 ‘나모 웹 에디터 3.0’을 일본에 3년동안 60만개(소비자가 기준 600억원) 수출하기로 현지 에모리(江守)상사와 계약했다.개인용 소프트웨어 수출로는 국내 최대규모. “일본 수출은 시작일 뿐이지만,외국의 개인 컴퓨터이용자들이 한국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첫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슴 뿌듯합니다.” 박흥호 사장(36)은 “일본내 인터넷 인구 1,500만명 가운데 홈페이지를 갖고 있거나 만들 계획인 사람은 한국의 20배가 넘는 1,000만명으로 조사됐다”며 “이 거대시장에서 1년내 2위,3년안에 1위에 오르겠다”고 말했다.곧영어판과 프랑스어판도 미국과 유럽에 대규모로 수출한다.현재 마무리 협상을 진행중인 미국 ‘디지털 리버’나 프랑스 ‘와스카’ 등의 대형 유통망을 타게 되면 앞으로 3년동안 미국 150만개,유럽 30만개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생각한 것을 그대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옮기고 싶은 데 잘 안될 때는 누구나 속 터지게 마련이지요.그래서 애프터서비스를 해외시장 개척의 최고 우선순위로 삼았습니다.” 나모 웹에디터 3.0은 지난 3월 출시 이후 3만여개가 팔렸으며,국내 개인용홈페이지 3개 중 2개는 나모 웹에디터시리즈를 이용해 제작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박사장은 워드프로세서 ‘글글’의 개발 주역으로 알려진 소프트업계의 스타.이력도 예사롭지 않다.‘국어선생님’출신이다.부산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89년 한글의 기계화에 평생을 바친 고 공병우박사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고 이듬해 교직을 떠나 이찬진,김형집,우원식,정내권씨 등과 함께 ‘한글과 컴퓨터’(한컴)를 세웠다. 95년 한컴을 떠나기까지 그는 한글의 컴퓨터화에 작지않은 족적을 남겼다. 컴퓨터 용어의 한글화와 수식 편집기·맞춤법 교정기·한자 자전·유의어 사전·영한 사전·한글학회 큰사전 등의 개발을 주도했고,오늘날의 한글 소프트웨어 도움말 프로그램의 기본틀을 잡았다.한컴이 지난해 한글개발 포기를선언했을 때 누구보다도 한글 살리기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홀로서기에 나선뒤에도 그는 ‘인터넷 속의 한글’에 주력했다.인터넷 브라우저에서 한글을 바로 볼수 있는 ‘나모 HWP뷰어’,인터넷 검색엔진 ‘두레박’ 등 줄곧 이쪽 분야를 개척해왔고,또 100% 소비자들의 만족을 이끌어냈다. 요즘 해외출장이 부쩍 잦아진 박사장의 청사진 속에는 세계 모든 나라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김태균기자
  • [새영화] 포스 오브 네이처

    ‘포스 오브 네이처’(Forces Of Nature·22일 개봉)는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서도 깨지지 않는 결혼제도에 대한 환상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두가지 사랑 가운데 하나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선택’에 초점을 맞춘 영화랄 수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약간은 보수적인 성격의 카피라이터 벤(벤 애플렉분)은결혼식을 치르러 조지아주 사바나의 처가로 떠난다.비행기 바로 옆자리엔 전 남편이 키우는 아들을 오랜만에 보러 가는 집시풍의 새러(샌드라 불럭)가앉아 있다.비행기 사고로 둘은 렌터카에 동승해 사바나로 떠나지만 길 위에는 온갖 험난한 걸림돌이 가로막혀 있다.우박과 태풍을 만나는가 하면 열차를 놓쳐버리고 설상가상으로 지갑까지 도둑맞는다.그런 가운데 둘은 서로 끌린다.약혼녀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벤은 결혼식이 임박할수록 결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만 결국 두사람은 예정된 각자의 길을 택하는 결말로이어진다.‘해리엣 더 스파이’에 이어 두번째 메가폰을 잡은 여성감독 브로넨 휴즈의 사랑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철학이 짙게 배어있는 영화다.남녀 주연의 이미지 변화가 두드러진다.
  • 사고상황 재구성

    대한항공 사고 화물기가 이륙할 때부터 추락할 때까지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해 간추린다. 이륙 직전 15일 오후 대한항공기가 이륙하기 직전 홍치아오 공항에는 옷이 약간 젖을 정도의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은 이륙에 적당한 맞바람인초속 5m의 남풍이었다.지상 300∼1,300m까지는 구름층이었다.기온은 영상 13도.시정도 7㎞ 정도로 양호해 이륙에는 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륙 주기장에 대기하고 있던 대한항공 6316편의 홍성실(洪性實)기장과 박본석(朴本錫)부기장이 공항 관제탑으로부터 이륙준비를 지시받은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오후 4시50분쯤.시동을 건 뒤 유도로를 따라 활주로에 가서 차례를 기다렸다.오후 5시4분 관제탑의 이륙허가가 떨어졌다.이륙은 순조로웠다. 기수는 정남향(180도).적재한 화물중량이 62.3t으로 적재중량의 3분의 2밖에 안됐고 운항거리가 짧아 연료도 많이 싣지 않아 비교적 중량이 가벼운 상태였다. 이륙 직후 정남향으로 날던 항공기가 공항 남쪽 5.4㎞ 지점에 이르렀을 때 관제탑은 “서쪽으로 좌선회(107도)하며 고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때의 고도는 300∼500m,속도는 시속 360㎞정도였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보고 있다.이 때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특히 조종사들은 “주위에 다른 항공기들이 많을 경우 관제탑에서 여러번에 걸쳐 조금씩 각도를 꺾으라고 선회지시를 하는데,한번에 서쪽으로 선회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봐서 주변에 다른 항공기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고 순간 관제탑의 지시대로 서쪽으로 좌선회하면서 속도와 고도를 높이던 6316편이 마지막으로 관제탑과 교신을 한 것은 이륙 2분 뒤인 오후 5시6분.이 때의 고도는 약 1,000m,속도는 시속 450㎞ 정도.구름 속을 날고 있었다. 운항이 순조롭다고 판단한 관제탑은 “고도를 1,500m까지 높인 뒤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기장은 “알았다”고 대답하며 관제탑의 지시를 다시한번 확인했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갑자기 교신이 끊기며 항공기는 관제탑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추락 현장 구름을 뚫고 추락하던 항공기는 홍치아오 공항 남동쪽 10㎞ 지점의 신주앙(莘莊)마을 근처 도시개발지역으로 떨어졌다.비행기 꼬리날개 부분은 400여m나 날아갔으며 기체와 화물 컨테이너는 산산조각이 나 반경 1㎞까지 흩어졌다.목격자들은 “마치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듯이 파편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인근 주택가와 자동차의 유리창이 모두 깨졌으며 승무원 3명과 주민 6명이숨지고 중상 4명,경상은 34명에 이르렀다.추락 직후 상하이 당국은 즉각 400여명의 소방대원과 경찰을 투입,화재 진압과 부상자 구조에 나섰으나 여기저기 울부짖는 부상자들로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전영우기자 ywchun@
  • “추락 KAL기 기체결함”…잔해 흩어진 범위좁아 공중폭발 아닌듯

    15일 오후(한국시간) 중국 상하이(上海)공항 남동쪽 10㎞ 지점에서 발생한대한항공 6316편 화물기 참사는 기체결함으로 고도를 제대로 잡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중 양국정부와 대한항공 관계자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16일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상하이시 민항(閔行)구 신주앙(莘莊)진 신춘위앤(沁春園) 이춘(一村) 사고현장에서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현장조사활동을 펼쳤다. 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비행기 잔해가 추락지점에서 100m 범위 안에 있다”면서 기체결함으로 고도를 제대로 잡지 못해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일부 목격자들도 화물기가 사고현장 부근에 이르러 고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강하하면서 아파트 건물모서리를 친 후 추락했다고 말했다. 건교부도 이날 화물기는 상하이공항을 이륙한 지 2분 후 고도 1,000m 상공에서 관제탑과 교신한 직후 레이더에서 사라지면서 통신이 두절된 채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또 상하이 외사판공실 대변인은 “한차례 폭발이 있었으며,그것도 지상에서 일어났다”면서 “폭발사고라는 추정은 아직까지 근거없는 것”이라고 폭발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측은 기체 대부분이 산산이 부서져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파편이 직경 1㎞ 가까이 튀었다면서 공중폭발 가능성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합동조사단의 일원으로 현장을 조사한 대한항공 이태원(李泰元)부사장은 “여러 정황으로 볼때 사고 화물기가 공중폭발한 후 급선회하면서 지상으로 추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확한 사고원인은 블랙박스를 회수해야만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은 아직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해 원인규명이 장기화할공산도 있다. 한편 사고로 입원치료중이던 중국인 노동자 1명이 이날 아침 숨져 사망자는 승무원 3명과 현지인 6명 등 9명으로 늘어났으며,40여명의 부상자 가운데중상자가 4∼5명이나 돼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17일 오후부터는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와 엔진제작사인 프랫앤휘트니사의 전문가들이 현지에 합류,한·중양국과 함께 3국 공동조사가 이뤄질예정이라고 대한항공측이 밝혔다. 김성수 전영우 이상록기자 sskim@
  • 물의‘일생’·’물사랑’ 실천수칙

    오는 22일은 UN이 정한 제7회 세계 물의 날.‘물의 날’을 맞아 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이 소중한 물을 제대로 관리,이용하고 있는지,정부의 물관리에 대한 중장기 종합대책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특집으로 꾸며본다. ◆물과 지구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양은 약 13억 8,600만k㎥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이 중 바닷물이 96.5%인 13억3,800만k㎥이고,지하염수가 0.94%,염호수가 0.006%이며,나머지 2.53%인 3,500만k㎥만이 민물로 존재한다. 민물 가운데 68.7% 정도인 2,400만k㎥은 빙산·빙하 형태이고,지하수는 30. 15%인 1,000만k㎥ 정도며,나머지 1.15%인 100만k㎥가 민물호수나 늪,강,하천등의 지표수와 대기층에 분포하고 있다. ◆물의 탄생 과학자들은 약 46억년 전에 태양을 감싸고 있던 가스구름 속에서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별들이 생겨났고,최초의 지구는 뜨거운 가스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이 가스가 냉각되면서 수소와 산소원자가 안개처럼 한 덩어리로 만났고,여기에서 생긴 수증기 안개가 수백년동안 끊임없이 비를 뿌려지표면이 식어가면서 단단한 층을 이루었다. 태초의 바다인 민물바다가 생겨났고 산들이 깎여 평야가 되고 이 평야는 다시 바다로 씻겨 들어가며 지각 변동으로 바다속에서 새로운 산이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태초의 바다가 만들어지는 동안 생명체의 바탕이 되는 유기물이 만들어졌다.이 유기물은 진화를 거치면서 최초의 가장 간단한 생명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이처럼 지구와 생명체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물이었고,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 한 것도 물이었다.물은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이고,지금도 여전히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르는 생명의 젖줄인 것이다. ◆물의 순환 지구탄생의 역사에서 물은 최초로 생긴 물질 중의 하나이다.과학자들은 지구가 생겨났을 때의 물이 한 방울도 더 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그러나 물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지구의 물은 바다,대기,육지 사이에서 증발하고 비가 되어 다시 내려 대부분은 하천이나 강으로 흐르기도 하고 곧바로 증발하는 등 ‘물의 순환’을 되풀이 하면서 이동한다.지구에 1년간 떨어지는 물의 양은 총 11만3,000㎦ 정도다.얼음을 뺀 전체민물양의 1/4에 이르는 양이 매년 새 물로 바뀌는 셈이다. 대기중의 수분 모두(1만2,900㎦)가 한꺼번에 비가 되어 내린다면 지구의 표면은 25mm의 물로 덮이게 될 것이다.하지만 공기중 물의 총량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대기중의 수증기가 증가하면 증가한 양만큼 비,눈 또는 우박이 되어 반드시 지상으로 돌아온다.물이 이렇게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물을 영구순환자원으로 부른다. ◆물과 사람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그 생명의 원천을 물에 두고 있다.사람도 마찬가지이다.몸속의 수분함량은 사람과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 몸의 약 70%정도가 물이다.어린이 몸속에는 물이 더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적어진다.보통 사람은몸 속에 약 45ℓ의 물을 지니고 있다.그 중 약 2.75ℓ의 물을 날마다 갈아넣고 있다.몸 속의 물이 1∼2% 부족하게 되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고,5%정도가 부족해지면 혼수상태에 빠지며,12% 정도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 물은 이산화탄소,산소,염분과 같은 생명에필요한 물질을 용해하고 분배하는 일을 한다.특히 인체에서는 혈액 순환,배설물 처리,근육 운동 등에 물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사람들이 물없이는 눈 한번 제대로 깜박일 수도 없을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물이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 '물사랑' 실천 25가지 수칙 1.화장실 변기의 누수를 막기 위해 수시로 물감 등을 이용해 테스트한다. 2.변기에 담배꽁초나 이물질을 넣지 않는다. 3.변기물통에 모래나 자갈을 채운 플라스틱 물병을 넣어 둔다. 4.샤워시간을 줄인다. 5.절약형 샤워꼭지나 유량 조절기가 달린 꼭지를 설치한다. 6.목욕시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하지 말고 샤워기를 틀어 적당량만 사용한다. 7.양치질 때에는 물을 틀어 놓고 하지 말고 칫솔에 물을 적신 뒤 컵을 이용한다. 8.면도 때에도 물을 틀어 놓고 하지 말고 세면기에 약간만 받아 놓고 면도기를 씻는다. 9.수도꼭지나 수도관의 누수를 철저히 점검한다.수도꼭지가 조금만 낡아도하루 최고 수백ℓ의 물이 새어 나간다. 10.자동식기 세척기는그릇을 많이 모아서 한꺼번에 가동한다. 11.세탁기도 빨래를 많이 모아서 한꺼번에 한다. 12.설거지를 할 때 물을 틀어 놓지 말고 받아서 한다. 13.채소나 과일을 씻을 때에도 물을 틀어 놓지 말고 받아서 한다. 14.먹는 물은 냉장고에 넣어둔다.수돗물을 받아 먹는 것보다 훨씬 절약된다. 15.누수는 24시간 쉬지 않고 이뤄지므로 수도꼭지 등의 누수여부를 수시로점검한다. 16.잔디 물주기는 정확한 시기를 맞춰서 한다. 17.물주기는 뿌리까지 적실 수 있도록 한번에 충분히 한다. 18.물주기는 날씨가 시원할 때 한다.이른 아침에 물을 주면 증발 방지는 물론 곰팡이균 번식도 막을 수 있다. 19.물주기를 할 때는 정확한 위치에 물을 주고 도랑 등으로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특히 바람 부는 날에는 물을 주지 말아야 한다. 20.나무를 심을 때는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는다. 21.나무나 큰 식물에 물을 줄 때는 윗 덮개를 하여 수분의 증발을 막는다. 덮개를 하면 잡초 번식도 막을 수 있다. 22.보도 등은 물청소 대신 비로 쓰는 게 좋다. 23.세차 때에도 될 수 있으면 물을 쓰지 말고 비누로 닦아낸 뒤 마지막에만물로 헹군다. 24.아이들이 호스나 스프링쿨러 등으로 장난치지 못하게 한다. 25.실외의 호스관,꼭지,연결부 등의 누수를 철저히 막는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4회)

    ■2·8독립선언 주역 徐 椿 지난 97년 8월 독립유공자 후손 한 사람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독립유공자 적용배제 취소청구소송’을 서울고법에 냈다.그는 보훈처가 자신의 선친의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96년 10월 보훈처는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사 가운데 친일경력자가 일부 포함돼 있다는 재야 역사학계의 지적을 토대로 재심사를 벌여 5명에 대해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바 있다.해당자 5명은 徐椿·金羲善·朴淵瑞·張膺震·鄭廣朝 등이다. 소송을 낸 사람은 서춘의 아들 서인창씨(69·서울거주).서씨는 소장에서 “아버지는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혐의로 금고 9개월의 형을 받은 공적으로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애국지사임이 명백하다”며 “기자출신인 아버지가 일제때 쓴 기사 5,000여건 중 16건의 기사를 문제삼아 (독립)유공자에서 배제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서씨는 승소하였다.서울고법은 “‘예우배제’에 앞서 유족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은 절차상 하자가 인정된다”며 서씨의 손을 들어주었다.이에 대해 보훈처는 작년 12월 대법원에 상고,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특별1부에 계류중이다. 보훈처와 유족간에 독립유공자 예우문제를 놓고 소송으로 비화한 徐椿(창씨명 大川滋種·1894∼1944)은 어떤 사람인가?그의 아들이 소장에서 언급한 대로 그는 일제하 언론인 출신으로 ‘2·8독립선언’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초기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독립유공자로서 공적을 인정할만 하다.특히‘2·8독립선언’에 참가한 사실이나 초창기 일제의 통치정책,특히 경제정책을 비판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그러나 그가 일제말기에 친일논조의 기사를쓴 사실도 부인할수 없다. 서춘은 1894년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태어났다.‘매일신보’(1944.4.6)에 난 그의 부음기사에 따르면,그는 정주 오산학교를 거쳐 동경(東京)고등사범 박물학과에 적을 두었다가 중도에 자퇴하고 동양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경도(京都)제대 경제학부에 입학,대정 15년(1926년)에 졸업한 것으로나와있다.‘2·8독립선언’의 동지이자 나중에 같이 친일대열에 섰던 춘원李光洙는 “그는 재사(才士)이기보다는 근면한 사람이었다”고 평한 바 있다. 일본 유학시절 그는 조선유학생학우회에 가입,활동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민족의식이 강한 청년이었다.1917년 연말 망년회 모임에서 그는 李琮根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하였다.이듬해 연말 그는 도쿄기독청년회 주최로 도쿄YMCA 강당에서 열린 웅변대회에서 연사로 나서 미국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 원칙아래 독립운동을 벌이자고 역설하였다. 그는 崔八鏞 등과 함께 1919년 2월 8일을 기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로 결의하고 국내 민족지도자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1월 중순 宋繼白을 서울에파견했다.2월 8일 도쿄YMCA 강당에서는 예정대로 독립선언식이 열렸고 그는현장에서 체포돼 그 해 6월 26일 제2심에서 출판법 위반혐의로 9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동경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한편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 동양대학과 경도제대 경제학부를 졸업(1926년)한 후 귀국하여 10월 동아일보에 입사하였다.이듬해 2월 그는입사 4개월만에 경제부장에 임명되었는데 이후 그는 일제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경제평론가로 자리를 굳혔다. 초창기 그는 일제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주로 썼다.당시 그는 동아일보는 물론 각종 잡지에도 활발히 경제평론을 기고하였으며 각종 사회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 초빙되어 경제와 교양·상식에 관한 계몽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국내 민족진영 인사들의 변절행진이 시작되자 그 역시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그는 “현대전에서교전국간의 경제전이라는 것은 환언하면 협력전이다.협력! 이것은 정신의 힘이다.정부가 국민정신 총동원주간을 설치했으므로 한사람 한사람이 총후(銃後,후방)용사다.국민총력이 있고서야 총후가 공고하다”(‘四海公論’1938년 6월호)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공공연히 찬양하였다. 이 무렵 그는 내선일체론자들로 구성된 ‘방송선전협의회’의 강사로 일하면서 친일파로서 모습을 드러냈다.1938년 그는 일제가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내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실천하고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후원하기 위해 군관민 각 방면 유력자들로 조직된 ‘목요회(木曜會)’의 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1940년대 들어서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등 주요 친일단체에서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또 지원병제도가 실시되자 “반도청년 제군,제군에게는 이제 절호의기회가 온 것이다.내선일체,이것이 제군이 취할 절호의 기회다….1.대군(大君,일황)을 위해 태어나고,2.대군을 위해 일하고,3.대군을 위해 죽는다는 정신을 갖지 않는 자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우리 일본의 대화혼(大和魂)에서 말한다면 대군을 위해 죽는 일은 신자(臣子)된 자의 본분임과 동시에 죽는 그 사람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다”(‘총동원’1939년 10월호)며 지원병 출진을 권유하였다. 19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다시 ‘성은(聖恩)에 감읍(感泣)하며’라는 글에서 “소화 18년(1943년) 5월 13일!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멸사봉공의 열의에 불타는 반도 1,500만 민중은 이날 또다시 광대무변한 성은에 감읍하여 마지 않을 감격과 광영에 우뢰같은 환성을 폭발시켰다”(‘春秋’,1943년 6월호)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선전하였다.학도병 권유 역시 빠지지 않았다.그는 학도병 지원 권유 조직인 경성익찬회 산하 종로익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또 학도출진격려대회에서 연사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그는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 때마다 조선청년을 사지(死地)로 내모는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그의 변절은 ‘약육강식’을 합리화한 제국주의 논리를 수용한데서 비롯됐다.그는 일본유학 당시에도 “…노국(露國,러시아)이 침략하자 일본은 자위상 드디어 조선을 병합하기에 이르렀다.요컨대 약자가 강자에게 병탄되는 것을 면할 수 없는 것은 생물상의 원칙이다.…”며 이같은 의식세계를 드러낸바 있다.그런 그는 일본이 청일·러일전쟁에 이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서승리하자 조선독립에 대한 희망을 접고만 셈이다.그는 오히려 일제권력과 타협,일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겉으로는 ‘실력양성론’을 표방하였지만 이는 사실상 일제의 강압통치를 인정한 것이다.그는 식민지하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에 입사한지 10개월만인 27년 8월 그는 평안도 출신들이 대세를 이루던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취체역(중역)겸 주필에 임명되었다.1940년 동아.조선이 폐간되자 그는 다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주필로 자리를옮겨 친일언론지의 논설책임자가 되었다.1944년 4월 5일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이 자리에 있었다.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록한 ‘공적조서’에는 ‘변절여부’를 확인하는항목이 있다.서춘의 경우 이 항목에 저촉되는 사람이다.따라서 1963년 그에게 추서된 대통령 표창은 심사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하겠다.‘친일’문제는유족의 주장대로 친일기사의 건 수로만 따질 문제는 아니다.그런 식이라면춘원 이광수도 포상해야 한다.춘원은 ‘2·8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알려진인물이다. 이 소송사건은 엄격히 말해 그가 친일을 했느냐,안했느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예우박탈’을 둘러싼 행정절차 문제에 관한 것이다.따라서 서씨의 유족이 최종심에서 승소를 한다고 해도 서씨의 친일문제를 둘러싼 논란은여전히 남는 셈이다. ‘2·8독립선언’ 80주년이 되는 오늘 도쿄 현지에서는 원로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갖는다.‘2·8선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그의 ‘친일행적’이 문제가 돼 소송이 진행중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그는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鄭雲鉉 jwh59@
  • 친일의 군상:18/명성왕후 시해 가담 禹範善(정직한 역사되찾기)

    ◎명성왕후 시해·시신 소각 등 지휘/‘씨없는 수박’ 만든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부친/무관 출신… 친일 개화세력과 돈독한 관계 유지/일 공사 미우라에 포섭돼 을미사변때 병력 동원/사건후 일 망명… 1903년 일 지방도시서 피살 일본인 여류저술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84)씨는 지난 90년 ‘나의 조국(わが祖國)’이라는 책을 출간했다.얼핏 책 제목만 보면 본인의 자서전 같다.그러나 부제를 보면 남의 이야기를 쓴 책임을 알 수 있다.부제는 ‘우박사(禹博士)의 운명의 씨앗(種)’.부제에 나오는 한국인 성(姓)을 가진 ‘禹박사’는 과연 누구인가?흔히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주인공으로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쓰노다 여사가 우 박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데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난 쓰노다 여사는 1960년대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동안 일본 군인들의 전기(傳記)를 주로 집필하였다.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부터 한일관계사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첫 작품이 87년에 출간된 ‘민비암살(閔妃暗殺)’이다.쓰노다 여사는 자료수집차 85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한국인 학생으로부터 민비(명성황후) 암살에 가담한 조선군 대대장 우범선(禹範善)이 우장춘 박사의 부친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쓰노다 여사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우 박사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육종학자였던 데다 그동안 그런 얘기를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쓰노다 여사는 이후 3년간 한일 양국을 오가면서 우 박사의 흔적을 뒤지고 우 박사 유족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나의 조국’은 이런 인연에서 탄생한 우 박사 집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1895년(을미년) 10월8일 새벽 5시30분경.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정체불명의 한 무리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들이닥쳤다.일본군과 일본인 복장을 한 이 괴한들은 궁궐을 수비하고 있던 훈련대 연대장 洪啓薰 일행을 살해하고는 곧바로 근정전을 지나 건청궁(乾淸宮)으로 쳐들어갔다.이들은 국왕(고종)의 침전인 곤령전에 난입,난폭한 행동을 자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국왕은 옷이 찢겨지는 등 수모를 당하였다.또 왕세자는 일본군 장교복장을 한 폭도에게 상투를 잡힌 채 그가 휘두른 칼에 목을 맞고 쓰러졌으나 다행히 칼등을 맞아 목숨을 건졌다. ○시해후 시신능욕 만행도 이들중 한 무리는 인근 왕비의 침전인 옥호루(玉壺樓)로 내달렸다.궁내부 대신 李景稙이 길을 막고 나서자 폭도들은 이경직을 총으로 사살하고는 고종이 보는 앞에서 다시 칼로 무참히 베었다.이어 왕비 침전에서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려퍼졌다.궁녀 3명과 왕비(민비,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됨)의 비명소리였다.폭도들은 궁녀와 왕세자 李拓(순종의 본명)을 통해 피살된 자 중의 한 사람이 민비임을 확인하고는 민비의 시신를 홑이불에 싸서 인근 녹원(鹿園) 솔밭에서 석유불에 태워버렸다. 여기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않은 비화 한토막을 소개하면,폭도들은 민비를 시해한 후 민비의 시신을 능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일본인 사학자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77년 작고)는 당시 구한국 정부의 고문으로 있던이시즈카(石塚英藏)가 사건 직후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 내용(‘…왕비를 끌어내 2∼3 군데 도상(刀傷)을 입히고 또한 발가벗겨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했다…’)을 인용,“폭도들이 사체(死體)를 능욕했다”(‘日本の韓國倂合’·1966년 출간)고 폭로한 바 있다.이에 대해 崔文衡(한양대·사학과) 교수는 “시체에 대한 국부검사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능욕’이란 표현도 적당치 않다”며 “왕궁침입에 앞서 이미 술에 만취한 자들이 시간(屍姦,시체를 강간함)도 서슴치 않았다고 봐야한다”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일국의 왕비가 괴한 무리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능욕을 당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진상이다.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을미사변’은 비참하고 치욕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치욕스런 사건의 음모 단계에서부터 가담한 조선인이 한 명 있었다.바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부친 우범선(禹範善·1857∼1903)이었다.당시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은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에게 포섭돼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이 사건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훈련대 병력동원.상황이 전개되자 당초 임무대로 훈련대 제2대대 병력을 차질없이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민비의 시신 ‘처리’도 맡았다.폭도들에 의해 시해된 후 불태워진 민비 시신의 타고 남은 재는 궁궐내 우물에 버려졌고 유해 일부는 우범선의 지시로 휘하의 尹錫禹가 땅에 묻어버렸다.증거인멸을 위해서였다. ○20세 되던 해 무과 급제 민비 시해에 적극 가담한 우범선은 어떤 인물인가.대한제국 시절에 군인으로 활동한 것은 분명하나 ‘대한제국관원이력서’나 ‘구한국 관보(官報)’ 등 공식자료에는 그의 출신·경력사항이 나와있지 않다.야사(野史) 몇 군데서 일부 확인될 뿐이다.‘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라는 책에 따르면 우범선이 (별기군의) 참령관(參領官)으로 근무할 당시 생도들이 그를 ‘자네’라고 불러 그가 반발했던 사실로 봐 출신성분은 그리 대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송촌 池錫永이 尹雄烈에게 그를 추천하면서 ‘무위영(武衛營) 집사(執事) 우범선은 구세군교가(九世軍校家)에 병학(兵學)이 한숙(숙달됨)한 인물’이라고 평한 걸로 봐 무술에 능했음은 분명하다. 실지로 우범선은 무인(武人)집안 출신으로 20세가 되던 해(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별기군(別技軍)이 창설되자 여기에 참여했다.별기군은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의 건의로 1881년 한국군의 군제(軍制)개혁의 일환으로 창설되었는데 그가 친일로 나선 첫 실마리는 이로부터 시작된다.여기서 그는 친일 개화세력들과 교류하면서 개화정책에 눈을 떠 개화파에 가담하였다.1894년 6월 일본군이 무력으로 경복궁을 침입,민씨 정권을 몰아내자 그는 개화파들의 천거로 군국기무처 의원이 돼 갑오(甲午)개혁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4월 친일정권에 의해 훈련대가 창설되자 그는 제2대대장에 보임됐다. 훈련대는 나중에 일제의 친일세력 확장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무렵 민비는 러시아와 손잡고 친일세력 축출을 기도하고 있어 친일세력으로선 궁지에 몰린 입장이었다.일본은 국면전환을 위해 공사를 이노우에(井上馨)에서 육군중장 출신의 미우라로 교체하였다.미우라는 부임직후 ‘여우사냥’ 운운하면서 민비시해계획을 세우고는 당시 한국에서 암약하던 일본인 낭인(浪人)패거리들을 끌어 모았다.낭인 가운데는 친일신문 ‘한성신보(漢城新報)’ 사장 아다치 겐조(安達謙藏)와 시바 시로우(柴四郞)등 일본의 대표적 명문대 출신의 지성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이들 중 더러는 나중에 각료·중의원 의원 등을 지냈다). 미우라는 이들 외에 조선인 협력자를 물색하던중 평소 친일성향을 가진데다 당시 민씨정권의 훈련대 해산계획에 불만을 품고있던 우범선을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우범선은 미우라에게 “조선의 정치개선은 당우(黨羽)를 일소하지 않으면 어렵다”며 민비시해를 통한 친일정권 수립을 역설하였다.이어 훈련대 제1대대장 李斗璜(중추원 부찬의·전북 도장관 역임),제3대대장 李軫鎬(총독부 학무국장·중추원고문 역임) 등이 속속 포섭되자 미우라는 당초 계획날짜를 이틀 앞당겨 거사(?)를 결행하였다.결국 ‘을미사변’은 일본 공사관의 주도 아래 일본인 낭인무리와 조선인 친일군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일 여인과 결혼뒤 거처 옮겨 사건 후 우범선은 이두황 등과 함께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도쿄에서 망명생활 도중 사카이(酒井ナカ)라는 일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1903년 구레시(吳市)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 해말 자객 高永根에게 암살당하였다.그의 비명횡사는 일본으로 도망갈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현재 그의 묘는 살해된 구레시와 도쿄 두 군데 있다.도쿄 청산(靑山)묘지에 있는 묘는 일본인 후원자가 유골을 분골(分骨)하여 그의 사후 1년 뒤인 1904년에 만든 것이다. 우범선에게는 우장춘 이외에 유복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차남은 명문 제1고등학교·동경(東京)제국대학 법과를 졸업,일본 유수의 회사에서 중역으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였다.그는 모계(母系) 집안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완전한 일본인이 되었다.반면 우 박사는 6·25 와중에 귀국,일생을 조국의 농업발달을 위해 연구에 전념했다.우 박사로서는 그 길이 아버지의 과오를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 주택가 우박오듯 파편 소나기/인천 미사일 오발사고 현장 이모저모

    ◎반경 5㎞ 2만여개 쏟아져 전쟁터 방불/파편 건물 지붕 뚫고 곳곳 유리창 박살/아파트 주민 대피 소동에 인근 아수라장 4일 미사일이 공중폭발해 크게는 하수관,작게는 손가락 마디만한 파편 2만여개가 우박처럼 쏟아진 인천시 연수구 동춘·옥련동 일대는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파편에 맞아 반경 5㎞ 이내의 도로 곳곳이 움푹 패이고 건물 지붕에 구멍이 났는가 하면 아파트촌 등 건물과 차량 유리창이 박살났다. 주민도 4명이나 다쳤다. 깜짝 놀란 주민들은 한꺼번에 거리로 뛰어나왔고 차량도 길가로 대피하는 등 아수라장을 이뤘다. 경찰서와 구청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주민들은 “총기라면 몰라도 미사일이 오발됐다는 얘기는 세계적으로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분개했다. ●무게 20㎏ 길이 8m의 미사일 로켓 추진체가 떨어진 대우자동차 야적장앞 도로는 깊이 50㎝쯤 파이고 파편 덩어리가 곳곳에 나뒹굴었다. 건영아파트앞에도 70㎝ 크기의 파편 등 수백개의 파편이 쏟아졌다. ●부대 부근 고물상 옆 밭에서 일하던 朴재수씨(43)가 파편에 맞아 머리에 찰과상을 입었고 孫광욱씨(45)는 놀라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쳤다. 동춘동산 38 尹찬영씨(65) 집에는 검정색 미사일 파편이 떨어져 지붕이 뚫렸다. ●인천 시민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을을 보이면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인천시내에는 대형가스·유류저장시설과 화약공장,군부대 등 위험시설이 많기 때문이다. 朴成華씨(45·회사원·남구 관교동)는 “인천에는 가스저장시설과 한국화약 공장 등이 몰려 있는데 만약 미사일이 이들 시설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끔찍하다”고 말했다. 金成淑씨(40·여·연수구 동춘동)는 “미사일이 북한으로 가 떨어졌으면 전쟁이 나는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공군은 민간의 인적·물적 피해에 대해 해당 부대에서 즉각 보상토록 지시히고 피해 배상액이 클 경우 공군 차원에서 보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많은 시민들은 동춘동 일대에서 이곳 저곳에 널려 있는 파편을 주웠다. ◎미사일 제어장치/‘나이키’ 발사후 20초내 적기 폭파/목표물 잘못 겨냥 공격땐 자폭장치 가동 공중 폭발 해안이나 산간 지역에 위치한 방공포대는 전투기 등 항공전력의 방어공격을 피해 공격해 오는 적 항공기를 나이키 호크 등 지대공 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방공포대의 통제소(소장 소령)는 각종 레이다지기 등에서 적 항공기를 포착,오산의 공군작전사령부 등을 통해 미사일 발사 준비태세를 명령받으며 표적탐지등과 적기경보등을 잇따라 작동한 뒤 3개 반으로 나뉜 발사대에 미사일 발사준비를 하달한다. 동시에 미사일 유도레이다를 가동시킨다. 나이키 미사일은 통상 발사후 3마일의 속도로 목표물을 추적,20초 내에 폭파시킨다. 통제소는 발사된 미사일이 목표물을 잘못 겨냥해 날아가면 미사일에 내장된 자폭장치를 가동,공중 폭발시킨다. 또 목표물이 아군 항공기로 판명되면 ‘아군’ 스위치를 작동,최초의 표적을 우회해 또다른 적기를 공격하도록 탄도를 수정한다. 이번처럼 레이다의 유도를 받지 못해 목표물이 정해지지못한 경우 발사후 3초이내에 미사일 스스로 공중폭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중 폭발하더라도 탄두가 부착된 나이키 미사일의 경우 2만여개 이상의 파편으로 분산돼 많은 피해를 주게 된다. ◎미사일 어떻게 발사되나/정상적 상황서는 통제소서 명령/적 공격에 한쪽 기능 마비되면 통제소나 발사대서 직접 ‘버튼’ 나이키미사일 발사 임무를 맡고 있는 공군 방공포부대는 방공기지의 레이더에 ‘이상물체’가 발견되면서부터 비상이 걸린다. 중대 규모인 발사통제소(소장 소령)는 이상물체가 적기로 확인되면 발사반에 발사준비를 지시한다. 9∼12명으로 구성된 발사반은 미사일통제시스템(SCG)을 통해 2∼3㎞ 떨어진 발사대를 선정하고 조원 안전키를 꽂는다. 발사통제소 밑에는 3개의 발사반이,1개 발사반은 3개의 발사대를 통제한다. 조원 안전키를 꽂은 뒤 지정된 발사대에선 1단계 로켓에 불을 붙이는 장치인 점화 케이블을 연결한다. 이어 87∼89도로 발사대를 세운 뒤 통제소의 최종명령에 따라 발사스위치를 누르면 발사가종료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통제소의 명령에 따라 발사대가 미사일을 쏘도록 돼어 있지만 적의 공격으로 어느 한쪽의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에 대비해 통제소가 직접,또는 발사대가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 라니냐 재해대책 세우도록(사설)

    올 겨울은 라니냐의 영향으로 90년대 들어 가장 춥고 눈이 많이 내릴 전망이라고 한다.기상청에 따르면 올 겨울 평균기온은 따뜻한 겨울이 지속된 지난 10년간의 평균기온 보다 섭씨 1.5도 이하 떨어지고 12월 중순 이후 폭설과 폭풍이 몰아치는 등 악천후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미국 해양대기청과 영국 기상청도 한반도 지역의 겨울 저온현상을 예보하고 있다.기상이변에 따른 돌발적 기상재해에 대한 대비책을 당국이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 같다. 동태평양의 해수온도가 낮아지는 라니냐 현상에 따른 한파(寒波)는 이미 유럽을 강타해 130명이 넘는 동사자가 속출했다.기상재해의 무서움을 우리도 이미 체험했다.엘니뇨의 영향으로 지난 봄엔 한여름 폭염같은 이상고온과 병충해·우박·백화현상 등을 겪었고 여름엔 기습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귀중한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따라서 올 겨울의 라니냐 재해 대책을 지금부터 하나하나 점검해 나가야 할 것이다.우선 제설(除雪)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불과 몇 ㎝의 눈이 내려도 우리 도시들은 마비되는 경우가 많다.지자체들이 제설차량·염화칼슘 등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데다 훈련부족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바로 제설작업에 나서야 함에도 늑장을 부리다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이미 예보된 올 겨울 폭설마저 그런 식으로 대처해서는 안될 것이다. 폭설은 도시기능 마비 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 붕괴·정전 사고 등도 초래할 수 있다.그럴 경우 농작물을 시설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는 농축산 가족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농림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 할 것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려면 불조심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겠다.화재 발생건수가 해마다 거의 10% 이상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올 겨울 들어서도 벌써 부산 냉동창고 화재,서울 광장시장 화재 등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혹한이 예상되는 올 겨울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은 물론 각 가정에서도 소방 안전 점검을 철저히 실시해야 할 것이다. 기상예보 체제도 강화해야 한다.기상자료 수집을 철저히 하고 면밀한 분석으로 빠르고 정확한 기상예보를 하는 것 이 무엇보다 효과적인 기상재해 예방대책이기 때문이다.아울러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길바닥에 내몰린 노숙자들을 추위와 굶주림에서 보호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겠다. 아무리 예측하기 힘든 기상재해라 하더라도 사전준비와 체계적인 구난(救難)체제를 갖춘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 “기상예보 틀려 피해땐 보상”

    ◎민간기상업체 K웨더 날씨보험 새달 시판/야외행사·기업 등 대상 날씨예보가 빗나갈때 피해를 보상해주는 ‘날씨보험’이 국내에서도 곧 선보인다.민간기상업체인 K웨더는 국내 보험회사와 함께 기상보험 상품개발에 들어가 이르면 8월초부터 판매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개발중인 기상보험 상품은 일반보험과 특정보험 등 두 가지. 일반보험은 체육대회 야외결혼식 등을 준비하거나 농수산물을 유통시키다가 기상예보가 틀려 낭패를 본 경우,이를 보상해 준다.가입자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반면 특정보험은 수자원공사나 한국전력,가스공사,전자업체 등 날씨에 민감한 공공 및 민간기업이 대상.이용자는 적지만 보험가격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은 이미 다양한 날씨보험 상품이 시판되고 있다.미국은 곡물경작에 대한 우박 및 강우보험이,영국에서는 윔블던 테니스대회 등의 이벤트 성사를 위한 보험이 보편화돼 있다.
  • 가을 소나기에 낙뢰피해 속출/어제/영동 호우·해상 폭풍주의보

    ◎곳곳 정전… 신호등 고장 교통마비 26일 전국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렸고 서울을 비롯한 중·서부지방에는 낙뢰와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잇따랐다. 비는 27일 하오 늦게부터 점차 그쳐 휴일인 28일에는 전국이 대체로 맑겠다. 25일부터 27일까지 3일에 걸친 예상 강수량은 영동지방이 50㎜,나머지 지방에서는 5∼30㎜이다. 강원 북부 산간지방에는 27일 새벽 첫 눈이 내릴 전망이다. 26일의 소나기는 북서쪽에서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찬 공기층이 지상의 더운 공기와 충돌,기층이 불안정해지면서 쏟아졌다. 이날 낮 서울에서는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내렸고 변압기가 낙뢰로 타버린데 따른 정전사고가 속출,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하오 1시쯤부터 서울시내 40여곳의 교통신호등이 정전으로 작동하지 않아 차량들이 뒤엉키면서 극심한 교통혼잡을 빚었다.
  • WFP 사무국장 캐서린 버티니 일문일답

    ◎“북 식량 바닥… 올 부족분 80만t”/4년연속 홍수·가뭄으로 식량난 가중/교통사정 최악… 식량분배에 어려움 유엔식량계획(WFP)의 캐서린 버티니 사무국장은 31일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심각한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 금년말까지 필요한 식량 80만톤을 충당할 수 있도록 서방국가들이 원조물량을 확대해줄 것을 촉구했다.다음은 버티니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 ­북한의 식량상황은. ▲지난 5월과 6월중에 북한정부의 식량분배 창고는 바닥이 났다.이제 외국정부 혹은 WFP의 원조로 지탱하고 있다.올 수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가뭄이다.이때문에 20∼25%의 감산이 예상되고 있다.둘째는 주민들이 너무 배고픈 나머지 이삭이 패기도 전에 조기수확을 하는 형상 또한 식량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70만∼80만톤의 식량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각국의 쌍무적인 원조가 절실히 요구된다. ­북한 식량부족의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자연재해에 의한 것으로 91년 외국의 원조가 끊어진 이후 94년 심각한 우박피해와 95년의 홍수,96년의 더 큰 홍수,97년의 가뭄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그러나 이같은 자연재해는 문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북한 정부의 농업정책의 잘못이 가장 큰 원인이다. ­북한주민에의 식량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접촉이 낯설어 생긴 것이다.두번째는 교통의 불편으로 인한 것으로 우리는 헬기를 빌려서 다닐수 밖에 없었다.헬기는 식량분배의 모니터 뿐아니라 전체적인 북한 농촌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식량분배 제도의 문제점및 감시제도는. ▲북한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공공분배제도의 붕괴에서 문제가 비롯되고 있다.WFP는 현재 평양에 주사무소가 있고 3개 지역사무소가 있으나 아직 충분치 못하다.그러나 점차 모니터 기능을 강화해가고 있다.일반주민이 100g인데 비해 6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1일 250g 배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75%의 목표달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기근이 아프리카의 기근과 다른점은 무엇인가. ▲북한의 기근은 주민들이 집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프리카의 기근과는 다르다.그들은 나름대로의 인프라스트럭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95년 업무 개시 이래 나름대로의 평가는. ▲우리는 진정으로 국제사회와 북한간의 새로운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이것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나 현재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이것이 우리에게 보다 많은 식량을 자신있게 요청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 죽은 김일성의 이적 선전/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밤 10시쯤 어둡던 하늘이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지면서 2m 직경의 붉은 구름덩어리 3개가 연이어 솟아 올라 평양방면으로 비를 뿌리며 내려 갔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멎으면서 어버이 수령님의 동상 상공에 쌍무지개 영명하게 비꼈으며,밤 10시40분 경에는 또다시 내리던 비가 멈추고 어둠이 가셔지더니 동상 상공에 유난히 밝은 큰별이 솟아 빛을 뿌렸다” “황해남도내 여러 지방에선 맑은 하늘에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울면서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현상이 나타났다.원산시에서는 맑게 개인 하늘에서 갑자기 3분동안 소나기가 쏟아진 후 햇살이 비치면서 어버이 수령님 동상 상공에 12분 동안 쌍무지개가 펼쳐졌다”­북한이 김일성 3주기기간중 조작,최근 관영방송들을 통해 유포시켜 온 허무맹랑한 우상화 설화들이다.이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들이 마구 지어낸 얘기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요약하자면 죽은 김일성이 금수산궁전에 누워 잇따라 이적을 일으키며 인민들이 잘 살수 있게 돌봐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몇년동안 천재지변으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93년 냉해를 시작으로 94년엔 우박이 쏟아져 농사를 망쳐 놓더니 95,96년엔 수해가 잇따랐고 올핸 ‘왕가뭄’때문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그렇다면 죽은 김일성은 붉은 구름덩어리와 큰 별을 솟게 하고 쌍무지개는 뜨게 할 수 있어도 날씨를 고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인가.죽어서도 자기 동상을 환히 비추는 일이나 하지,굶주리는 주민들의 호구지책 같은 것엔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더욱 답답한 것은 적지 않은 북한 주민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눈과 귀와 입이 막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물론 사람이 다급한 지경에 처하면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잔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아무리 위급해도 마지막까지 해서는 안될 것도 있고 지켜야할 것도 있다.죽은 김일성이 갖가지 조화를 부린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전자에 속한다.아니,그 정도면 죄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북측에 촉구한다.소도 웃을 가당찮은 거짓말로 동포들을 더이상 속이지 말라.더이상 죄를 짓지 말라.
  • 가뭄 극심/산림황폐·열해로 피해 가중

    ◎수확 앞둔 옥수수·벼에 엄청난 타격/5년째 자연재해… 식량난 해결 막막 93년 이후 내리 4년째 잇따라 수해 등 자연재해를 겪었던 북한이 이번엔 극심한 가뭄과 이상고온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중앙통신이 25일 전한 북한의 가뭄정도와 피해는 엄청나다.50여일간 북한 전역을 휩쓸고 있는 심각한 「왕가뭄」으로 큰 수원지들의 저수상태가 10∼20%로 줄어들고 중소규모 저수지 6백20여개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또 5천3백여개의 중소하천과 12만6천개의 지하수시설들이 능력을 상실,농경지들이 말라터지고 농작물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중앙통신은 보도했다.이같은 극심한 가뭄 때문에 21일 현재 29만여 정보가 피해를 입었으며 무려 70만4천t의 알곡손실이 예상된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또 가뭄으로 23만7천여마리의 가축이 폐사되고 4만6천정보의 산림이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북한 당국의 가뭄피해 보도에 대해 북한문제전문가들은 한해가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으로부터 더 많은 식량지원을 받아내기위해 부풀렸을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실제로 북한은 지난 95,96년의 수해규모 발표 때도 그랬고 지난 2월에 식량재고량을 발표 할 때도 신빙성에 많은 의문을 제기했었다. 북한의 가뭄은 지난 6월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이상고온현상과 함께 7월 들어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도됐다.지역별로는 동북부 내륙의 곡창지대인 황경남도와 북도,서해안의 평안남북도 및 황해북도 농촌에서 가뭄이 심해 농작물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북한 중앙통신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전체 논 면적 58만㏊ 가운데 30% 가량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또 1백85만㏊에 이르는 밭 대부분에는 옥수수가 경작되고 있기 때문에 옥수수의 피해도 막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북한지역에서 가뭄피해가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평년에 비해 비가 적게 내린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산을 개간해 다락밭을 만드는 바람에 산림이 황폐해진데도 큰 원인이 있다.비가 내리더라도 민둥산이어서 수분저장이 잘 되지않는데다 폭염으로 쉽게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또 시기적으로 옥수수는 결실기에 접어들고 벼는 이삭이 패는 등 농작물에 수분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여서 피해가 가중됐다.이 때문에 앞으로 해갈이 되더라도 벼와 옥수수의 수확량은 격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밖에 95,96년의 잇딴 수해로 많은 제방이 망가져 저수량이 크게 줄어 관개용수마저 부족한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현재 북한에서는 이같은 가뭄외에 비료 부족과 벼병충해가 크게 번져 수확량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자연재해가 잇따라 지난 93년에는 냉해,94년 우박피해,95년엔 1백년만의 대홍수에 이어 96년에도 수해가 겹쳐 93년 이후는 곡물수확량이 평년작에 비해 크게 못미쳐왔다.따라서 올 가뭄은 가뜩이나 심각한 북한의 식량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보이며 식량난해결을 갈수록 막막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북 “또 홍수나면 끝장” 수방 비상

    ◎수해 겹치면 식량난 심화… ‘승계’도 지연/군인 등 동원 제방보수·조림사업 부산 장마철에 접어든 요즘 북한 지도층이나 주민들은 하늘에 새카만 구름만 몰려와도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심각한 식량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 농사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데,지난 95년과 96년 잇따라 큰 비가 내려 막대한 수해를 입었던 악몽의 7월하순이 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북한 전역에서는 수방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사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북한엔 아직 이렇다할 큰 비가 내리지 않았으나 북한당국은 전체 경제부분에 걸쳐 만반의 홍수대책을 세우라고 연일 다그치고 있다.올해에도 수재가 겹친다면 지난 2년간의 홍수피해마저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 농사에 치명타를 가해 식량난 해결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선전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전역에서는 제방공사,배수시설 및 저수지 보수 등 수해대책 마련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최근 중앙방송은 평북 철산,선천군에서는 배수문 공사 및 강하천 제방보수에 주력하고 있으며 용천,박천,영변,운산군에선 고인 물을 뺄 수 있게 배수·양수설비 준비작업에 힘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특히 황북도 금천군에서는 근로자,군인들이 대거 동원돼 제방공사에 쓸 채석기지를 조성하고 보보수와 제방 잔디입히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또 노동신문은 올 장마는 시작과 끝이 뚜렷하지 않고 변화가 심하다면서 강우량이 많은 지역들에 대해 집중호우에 철저히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당국이 이번 장마 기간중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기는 이달말이고 그 대상지역은 지난 2년간 비피해가 컸던 청천강 상류와 대동강 중류,임진강 중류 및 하류지역 등이다.‘1백년만의 큰 물’이었다는 지난 95년의 경우에도 7월26일부터 8월4일까지 많은 비가 내린데다 96년에도 7월하순에서 8월초사이에 폭우가 쏟아졌다.그 당시 대표적인 수해지역은 이들 강을 끼고 있는 희천,철원,토산지방 등이었다. 2년 연속 엄청난 수해를 경험한 북한은 지난 95년부처 뒤늦게나마 나무심기,사방사업 등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국토관리사업에 나섰다.주체농법시책에 따라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 산기슭을 개간,다락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웬만한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되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산사태가 나고,토사가 흘러 하상이 높아져 강이 쉽게 범람하는등 치산치수를 소흘히 한 폐해가 갈수록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도 수해복구가 되지 않은 지역이 많은데다 치산치수사업마저 시작단계에 지나지 않아 큰 비가 내렸다하면 피해는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수재에 대해 인재가 아닌 천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지난 93년에 냉해,94년 우박피해에 이어 95,96년의 수해등 연 4년간 자연재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95,96년의 비피해가 엄청났던 것은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없지 않았지만 삼림을 훼손한 인재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올해 북한의 벼 작황은 이상 고온으로 약간의 피해는 있으나 현재로선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이번에 많은 비가 내려 농작물에 많은 피해가 있을 경우 지난 8일로 김일성 3년상을 끝내고 오는 10월쯤 공식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정치일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만풍년」을 구가하며 승계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면서 총비서 등에 취임하려는 정치시나리오가 뒤틀릴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충북·경북북부 우박/고추 등 농작물 큰피해

    19일 하오 충북 제천시 및 단양군 일부와 경북북부지역에 때아닌 우박이 떨어져 담배·고추농가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날 하오 2시58분부터 5분동안 제천시 청풍면 학현·북진리 등 14개리에 지름 0.5㎝ 가량의 우박이 떨어져 학현리 497 박기덕씨(59)의 밭 9천9백㎡와 북진리 264 권용섭씨(44)의 밭 9천9백㎡의 담배 잎에 2∼4개씩 구멍이 뚫리는 등 이 일대 상당수의 담배 및 고추 재배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경북 안동시 예산 등 3개면에도 하오 4시 30분부터 10분간 직경 5∼10㎜ 크기의 우박이 강한 비바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등 경북북부지역에 우박이 내려 많은 농작물의 피해를 냈다.
  • 마포·용산 등 18만가구 정전/송전탑 낙뢰로 25분간

    ◎중부 번개·우박… 곳곳 피해 20일 밤 서울·경기 및 충청 이북지역에 우박이 떨어진 것을 비롯,천둥을 동반한 낙뢰로 곳곳이 정전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하오 6시37분 서울 은평구 구파발 부근 송전철탑에 낙뢰가 떨어져 마포구·은평구·서대문구·용산구 및 경기도 문산·일산 일부지역 18만7천여가구가 7시2분까지 25분동안 정전됐다. 사고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서울 서부지역을 관통해 경기도 양주까지 연결되는 양주 송전선로가 번개에 의한 충격으로 전류 주파수가 떨어지면서 저주파수계전기가 전류를 차단하면서 발생했다.저주파수계전기는 전류 주파수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전류를 차단하는 장치이다. 한국전력은 사고가 나자 정상주파수를 회복시킨뒤 전력공급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인천 일부지역에서는 이날 하오 9시3분부터 8분까지 1.2㎝정도의 우박이 떨어져 농작물단지의 비닐하우스가 찢어지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강우량은 서울의 경우 5.8㎜,인천 5.9㎜,수원 3.6㎜,철원 11.5㎜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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