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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경석-이윤석 우리말맞춤법 ‘옥에 티를 찾아라’ 다시 뭉쳤다

    서경석-이윤석 우리말맞춤법 ‘옥에 티를 찾아라’ 다시 뭉쳤다

    한글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온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방송인 서경석, 이윤석 콤비와 함께 틀리기 쉬운 우리말 맞춤법에 대한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http://is.gd/v2JupJ)에 27일 공개했다. 7분 분량의 이번 ‘대사 속 옥에 티를 찾아라’ 동영상은 평상시 틀리기 쉬운 우리말 맞춤법에 대한 단어들을 베테랑 및 가을동화 같은 유명 영화와 드라마의 주요 대사들을 인용하여 서경석과 이윤석이 재미있게 분석했다. 이번 영상을 기획한 서 교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큰 화제가 된 틀리기 쉬운 우리말 맞춤법의 사례를 참고해 누리꾼들에게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서경석-이윤석의 대표 개그였던 ‘옥에 티를 찾아라’를 20년 만에 재구성했다”고 전했다. 또한 서 교수는 “그중 누리꾼들이 가장 틀리기 쉬운 ‘어이없다’와 ‘어의없다’, ‘나았어’와 ‘낳았어’, ‘되’와 ‘돼’, ‘오랜만에’와 ‘오랫만에’를 최종 선정, 올바른 표기 및 발음 등을 알기쉽게 코미디 상황극으로 풀어봤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서경석은 “영화 및 드라마의 주요 장면뿐만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익숙한 유명 가수들의 대표 노래가사를 인용하는 등 누리꾼들에게 가장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또 이윤석은 “맞춤법은 우리말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사항이지만 나 역시 헷갈리는 것들이 참 많았다. 이번 동영상 제작을 통해 내가 제대로 알게 된 것처럼 우리 누리꾼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정준하, 정형돈 콤비가 함께 제작한 ‘우리말 요리교실’을 시작으로 이번 동영상은 ‘안녕! 우리말!’ 동영상 캠페인의 두 번째 버전이다. 다음달에 제3탄이 나올 예정이며 내년도에도 꾸준히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알쏭달쏭+] 걸어 vs 뛰어…갑자기 비올때 최대한 덜 맞으려면?

    [알쏭달쏭+] 걸어 vs 뛰어…갑자기 비올때 최대한 덜 맞으려면?

    예고 없이 비가 내려 우산 없이 뛰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가 내릴 때 최대한 젖지 않으려면 뛰어야 할까. 아니면 걸어야 할까. 그에 관한 답을 쉽게 설명해주는 영상 한편이 있어 소개한다. ‘미니츠피직스’(MinutePhysics)라는 유명 유튜브 채널에 수년 전부터 공개돼 있는 이 영상은 꾸준한 방문으로 지금까지 66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감상했다. 특히 이 영상은 우리말 자막도 지원하고 있어 보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 다음은 영상을 볼 여건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내용을 나열한 것이다. 춥고 비 오는 날, 우비나 우산 챙기는 걸 잊었는데 최대한 안 젖고 싶다면…. 빗속에 더 오래 있지만 걸어야 할까? 아니면 측면으로 더 많은 빗방울을 맞지만 뛰어야 할까? 이미 당신이 비에 흠뻑 젖었거나 물웅덩이로 뛰어들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빗방울 한 개를 피해 움직일 때, 다른 빗방울 한 개를 맞게 된다. 그래서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머리 위로 내리는 빗방울의 양은 일정하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빗방울들이 정지된 상태로 있고 당신(당신이 서 있는 땅)이 위쪽으로 빗방울들을 헤치며 움직인다고 생각해봐라! 평행육면체(평행사변형의 입체도형)의 부피가 그 기울기에 영향받지 않으므로 당신이 가로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와 상관없이 매초 같은 양의 빗방울들이 당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머리 위에 있는 빗방울들만 맞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움직인다면, 측면에 있는 빗방울들도 맞게 되고, 더 젖게 된다. 그래서 어느 때이건 가만히 서 있을 때 가장 안 젖게 되고,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 많이 젖게 된다. 하지만,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고 싶다면,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A에서 B로 향하는 길에, 당신이 측면에서 맞게 되는 총 빗방울의 양은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와 상관없다. 차 속도와 상관없이 제설차가 언제나 일정한 도로구간에서 같은 양의 눈을 치워내는 것과 같이 말이다. 빗속을 뛰어갈 경우 역시 평행육면체를 이용해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때이건,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와 상관없이 같은 양의 빗방울이 당신 머리 위로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에서, 똑같은 양의 빗방울을 측면에서 맞을 것이다. 역시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최종적으로 젖게 되는 정도는 ‘머리 위로 초당 내리는 빗방울의 양’ 곱하기 ‘빗속에 있는 시간’ 더하기 ‘측면으로 맞는 빗방울의 양’ 곱하기 ‘이동하는 거리’다. 그래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동하면서 최대한 안 젖으려면, 머리 위로 맞게 되는 빗방울의 양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빗속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라. 사진=ⓒ포토리아(맨위), 미니츠피직스/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악, 이보다 더 새로울 수 없다

    국악, 이보다 더 새로울 수 없다

    “국내에서 반응은 올해부터인 것 같아요. 해외에서 이슈가 되며 국내에서도 주목받았죠. 지난 9월 부산 공연에선 호응이 남달라 깜짝 놀랐어요.” 잠비나이는 세계 월드뮤직 시장에서 가장 ‘핫한’ 한국 밴드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바쁘다. 지난해에만 14개국 38개 도시에서 50여회 공연을 펼쳤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서고 싶은 워멕스와 워매드, 덴마크 로스킬데와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무대 등을 줄줄이 섭렵했다. 올해도 투어는 쉼없이 이어졌다. 최근 약 20일간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3개국 8개 도시 투어를 다녀온 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잠비나이를 만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동기 3명이 뭉쳤다. 피리 연주자 겸 기타리스트인 이일우는 태평소, 생황까지 다룬다. 거문고 연주자인 심은용은 키보드와 실로폰, 트라이앵글도 연주한다. 해금을 켜는 김보미는 정주(밥사발 모양의 전통 타악기)까지 다룬다. 이들이 뿜어내는 것은 국악 그 이상의 새로운 음악이다. 어떤 때는 헤비 록, 어떤 때는 프리 재즈, 어떤 때는 국악처럼 경계를 넘나든다. 이일우는 “국악기로 현대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 자신들을 정의했다. 장르를 떠나 시대에 맞고 자신들이 하고 싶고 또 듣고 싶은 새로운 음악을 하는 팀이라는 게 부연 설명. 음악성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셀프타이틀의 미니앨범은 가장 짧은 곡이 8분, 긴 곡이 17분에 달했고 난해함까지 똬리를 틀고 있었으나 2012년 정규 1집 ‘차연’에선 곡 길이도 대부분 4~5분으로 줄였고 드럼과 베이스 부분을 추가하며 대중에게 조금 더 다가섰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1집 머리곡 ‘소멸의 시간’의 뮤직비디오를 본 네덜란드 에이전시에서 먼저 연락을 해 왔다. 그렇게 올라간 첫 해외 무대가 2013년 5월 핀란드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 한 번 두 번 해외 무대에 오를 때마다 입소문이 쌓이며 세계를 안방처럼 누비게 됐다. 잠비나이는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로스킬데를 꼽았다. “관객들이 우리 음악을 알고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놀랍고 신기하면서도 자신감과 책임감이 생겼다. 그 순간을 위해 달려왔다는 느낌이었다”는 게 김보미와 심은용의 이야기. 잠비나이는 올해 말 국내 인디 밴드들과 함께 이태원 언더스테이지 무대에 오른다. 해외 공연 일정은 2017년 1월까지 15개가 이미 잡혀 있다. 추가 러브콜도 속속 들어오는 중이다. 무엇보다 내년 상반기 정규 2집을 전 세계에 발매할 예정이다. 영국의 음반사인 벨라 유니언을 통해서다.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인디 록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유력 레이블이라 잠비나이로서는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된 셈. 음악 외에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지만 국내 상황을 보면 아쉬움은 분명 있다. “모두들 좋은 음악을 가려낼 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들려줄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안타깝죠.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장성을 좇기보다 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참, 잠비나이. 순우리말 같은데 특정한 뜻은 없다고 한다. 자신들의 음악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문자라고 생각했단다.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장미는 여전히 향기롭다고 셰익스피어가 그랬던 것처럼.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박문각 종로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영어

    [박문각 종로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영어

    서울신문은 많은 수험생들이 응시하는 7, 9급 공무원 시험에 대비해 국어·한국사·영어 등 필수과목에 대한 실전강좌를 마련했다. 박문각 종로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문제)어법상 옳은 것은? ①China’s imports of Russian oil skyrocketed by 36 percent in 2014. ②Sleeping has long been tied to improve memory among humans. ③Last night, she nearly escaped from running over by a car. ④The failure is reminiscent of the problems surrounded the causes of the fatal space shuttle disasters. (해석)①중국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2014년에 36% 급등했다. ②잠은 오랫동안 인간의 기억력 향상과 관련돼 왔다. ③지난밤에, 그녀는 자동차에 거의 치일 뻔했다. ④실패는 치명적인 우주왕복선 재난의 원인을 둘러싼 문제들을 연상시켰다. (해설)②전치사 to (~에, ~에게)로 쓰일 때는 뒤에 명사나 동명사가 온다. 따라서 improve가 아닌 improving이 맞는 표현이다. ③그녀는 차에 치이는 것으로부터 피했다는 뜻으로 from running over가 아닌 from being run over가 맞는 표현이다. ④surrounded의 목적어가 the cause를 취하고 있으므로 surrounding을 써야 한다. (정답)① (문제)다음 글에서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Many people have ①heard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②but not until today ③has the origins of this document been ④so widely understood. (해석)많은 사람들이 세계인권 선언에 대해 들어 왔지만, 오늘날에야 이 문서의 기원이 널리 이해됐다. (해설)②③문장의 주어 자리에 ‘not until’ 구문이 나오면 도치로 접근해야 한다, but 이하에서는 주어 the origins of this document와 동사 has가 도치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은 도치가 아니라 수일치 부분이다. 이 경우 주어 origins가 복수이기 때문에 has를 have로 바꿔야 한다. (정답)③ (문제)다음 우리말을 영어로 옮긴 것 중 문법적으로 올바른 것은? ①그는 부주의한 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정지됐다.→He had his license to suspend for reckless driving. ②그 호텔은 매우 인기가 있으니 미리 예약을 해라.→Do book ahead as the hotel is very popular. ③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There is no man but does not love his country. ④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She could not understand what that means. (해설)①운전면허는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to suspend를 suspended로 바꿔야 한다. ③but은 유사관계대명사로서 but 속에 이미 부정의 의미인 not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does not을 없애야 한다. ④주절의 동사인 could가 이미 과거로 나왔기 때문에 종속절의 시제는 현재가 될 수 없다. means는 meant로 바꿔야 한다. (정답)②
  • 걸어 VS 뛰어…갑자기 비올때 어떻게 해야 할까?

    걸어 VS 뛰어…갑자기 비올때 어떻게 해야 할까?

    예고 없이 비가 내려 우산 없이 뛰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가 내릴 때 최대한 젖지 않으려면 뛰어야 할까. 아니면 걸어야 할까. 그에 관한 답을 쉽게 설명해주는 영상 한편이 있어 소개한다. ‘미니츠피직스’(MinutePhysics)라는 유명 유튜브 채널에 수년 전부터 공개돼 있는 이 영상은 꾸준한 방문으로 지금까지 66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감상했다. 특히 이 영상은 우리말 자막도 지원하고 있어 보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 다음은 영상을 볼 여건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내용을 나열한 것이다. 춥고 비 오는 날, 우비나 우산 챙기는 걸 잊었는데 최대한 안 젖고 싶다면…. 빗속에 더 오래 있지만 걸어야 할까? 아니면 측면으로 더 많은 빗방울을 맞지만 뛰어야 할까? 이미 당신이 비에 흠뻑 젖었거나 물웅덩이로 뛰어들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빗방울 한 개를 피해 움직일 때, 다른 빗방울 한 개를 맞게 된다. 그래서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머리 위로 내리는 빗방울의 양은 일정하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빗방울들이 정지된 상태로 있고 당신(당신이 서 있는 땅)이 위쪽으로 빗방울들을 헤치며 움직인다고 생각해봐라! 평행육면체(평행사변형의 입체도형)의 부피가 그 기울기에 영향받지 않으므로 당신이 가로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와 상관없이 매초 같은 양의 빗방울들이 당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머리 위에 있는 빗방울들만 맞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움직인다면, 측면에 있는 빗방울들도 맞게 되고, 더 젖게 된다. 그래서 어느 때이건 가만히 서 있을 때 가장 안 젖게 되고,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 많이 젖게 된다. 하지만,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고 싶다면,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A에서 B로 향하는 길에, 당신이 측면에서 맞게 되는 총 빗방울의 양은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와 상관없다. 차 속도와 상관없이 제설차가 언제나 일정한 도로구간에서 같은 양의 눈을 치워내는 것과 같이 말이다. 빗속을 뛰어갈 경우 역시 평행육면체를 이용해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때이건,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와 상관없이 같은 양의 빗방울이 당신 머리 위로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에서, 똑같은 양의 빗방울을 측면에서 맞을 것이다. 역시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최종적으로 젖게 되는 정도는 ‘머리 위로 초당 내리는 빗방울의 양’ 곱하기 ‘빗속에 있는 시간’ 더하기 ‘측면으로 맞는 빗방울의 양’ 곱하기 ‘이동하는 거리’다. 그래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동하면서 최대한 안 젖으려면, 머리 위로 맞게 되는 빗방울의 양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빗속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라. 사진=ⓒ포토리아(맨위), 미니츠피직스/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8] 닭볶음탕과 감자탕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8] 닭볶음탕과 감자탕

     을씨년스런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 때에는 매운 양념의 닭볶음탕이나 감자탕을 먹는 게 제격일 것이다. 닭고기 찜 또는 돼지 등뼈 고기에다 고추, 파, 마늘, 생강 등 알싸한 맛의 향신료가 양껏 들어가기 때문에 속이 든든하고 후끈해진다. 또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감자와 고소한 들깨 가루가 듬뿍 들어가는 것도 두 음식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런데 닭볶음탕과 감자탕은 둘 다 ‘억울한 운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제 이름에 대해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때문이다. 진짜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닭볶음탕은 생닭을 한입에 먹기 좋게 토막을 내 매운 양념장으로 고루 버무린 뒤 큼직하게 썬 감자와 양파, 당근 등을 넣어 바특하게 끓인다. 뻘겋게 졸여진 찜 요리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래 국물이 흥건해야 하는 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오죽했으면 닭볶음탕과 사촌 관계인 안동찜닭은 탕이 아닌 찜이라고 했을까.  감자탕에는 돼지 등뼈와 감자, 우거지 또는 시래기, 깻잎 등이 들어간다. 물론 매운 양념은 닭볶음탕과 비슷하다. 굵게 썬 감자에 돼지 등뼈의 맛이 흠뻑 배어 구수한 맛을 낸다. 돼지 등뼈에는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B1 등이 풍부하기 때문에 감자탕은 남성의 스태미나에, 여성에겐 낮은 칼로리가 필요한 다이어트에, 또 노인에겐 노화 방지와 골다공증 예방 등에 두루두루 좋다. 술안주로는 물론, 우거지나 시래기 덕분에 숙취 제거에도 좋다. ● 닭도리탕 ‘도리’는 일본어 ‘새’가 아닌 ‘도려내다’란 우리말 주장도 닭볶음탕이나 감자탕 모두가 화끈한 별미 음식인데, 어째 그 이름이 석연치 않다. 닭볶음탕은 과거 닭도리탕이라 부르던 것을 표준어로 바꾼 이름이다. 학계는 닭도리탕에 대해 ‘우리말인 닭+일본어 토리(とり·鳥)+한자어 탕(湯)’이 합쳐져 이상한 이름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닭볶음탕이라 바꾸면서 사전에서 ‘닭고기를 토막 쳐서 양념과 물을 넣고 끓인 음식. 경우에 따라 먼저 볶다가 물에 끓이기도 한다’고 정의했다.  그러나 닭볶음탕에는 이름과 달리 불판에 볶는 조리 과정이 없다. 자작하게 물을 부어 끓일 뿐이다. 우습게도 이름이 바뀐 뒤 닭고기를 먼저 볶는 현상마저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요리업계는 우리 음식에 볶음과 탕 등 두 가지 조리 형태를 동시에 표현한 이름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학계 일부에서도 닭도리탕의 토리(とり)가 일본어의 새가 아닌 ‘도려내다’에서 나온 순수 우리말이고, 닭고기를 잘게 써는 조리법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후기의 평양 등 서북 지방에서 닭도리탕과 비슷한 도리탕을 즐겼다는 여러 고서의 기록을 근거로 삼았다. 오이를 잘게 썰어 소금에 절인 뒤 불판에 데친 ‘외보도리’라는 전통 음식의 이름도 있다.  새로운 이름이 납득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니까, 닭볶음탕이 지금도 시중에서는 닭도리탕, 닭감자탕, 닭매운탕, 닭감자조림 등 중구난방으로 불리는 게 아닐까. 우리의 닭도리탕이 괜한 오해를 받고 있는 듯하다. ● 감자탕 ‘감자’는 돼지 등뼈를 ‘감자뼈’라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감자탕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감자탕에는 본래 감자가 들어가지 않았다. 삼국시대 호남을 중심으로 돼지 등뼈로 만든 탕을 먹었을 때나 1899년 경인선 철도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감자탕으로 허기를 달랠 때에도 감자는 없었다. 감자탕 맛은 근세기 이후 인천에서 완성된다.  사연 많은 감자탕은 1970~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아마 누군가 “감자탕에 왜 감자가 없어요”라고 하면서 결국 감자가 들어갈 것은 아닐까. “붕어빵에 왜 붕어가 없어요”라는 농담과 비슷한 가정이다. 우연한 조리법이었지만 돼지 등뼈 국물과 감자의 맛 궁합은 썩 잘 맞는다.  그런데 감자탕의 어원에 대해서도 감자가 예부터 돼지 등뼈를 지나는 척수를 감자라고 불렀다는 설, 돼지 등뼈를 원래 ‘감자뼈’라고 했다는 설, 그게 아니고 감자를 넣은 무명의 탕 음식에 돼지 등뼈를 넣으면서 감자탕이라고 했다는 설, 마지막으로 달착지근한 돼지고기 음식을 뜻하는 한자어 감저(甘猪)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논란이 분분하다.  이런 주장들 속에서 혹시 우리는 수천 년이 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얕보면서 그 이후 등장한 중국이나 일본, 서양 등의 것만 무작정 추종하고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학계는 우리말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통해 혹시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왜곡이 방치되고 반복되면 진실은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조행> 조선의 문신 권벽   시골 주막 닭 울음에 일어나 촌길을 말 따라 타고 가는데 북두칠성도 그믐달 따라 지고 은하수는 새벽 구름과 함께 걸렸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씨줄날줄] ‘톨레랑스 제로!’와 ‘솔리다리테’/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톨레랑스’와 ‘솔리다리테’다. ‘톨레랑스’란 타인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종교와 사상, 정치적 신념을 존중해 주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다른 생각까지도 너그럽게 용인하는 것이다. ‘솔리다리테’를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連帶) 의식, 혹은 동지애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던 그들에게 톨레랑스와 솔리다리테는 불안한 세상을 온전하게 지탱해 주는 소중한 가치로 존재해 왔다. 관용의 역사는 부르봉 왕조의 초대 왕인 앙리 4세가 1598년 내린 ‘낭트칙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교도였던 앙리 4세는 스스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각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통해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이후 18세기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과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자유주의, 평등주의로 확산돼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는 진정한 자유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의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유럽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범죄와 테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내무장관 시절 모든 범죄를 예외 없이 다스리겠다면서 ‘톨레랑스 제로!’를 선언했다. 사르코지가 너무 강경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이에 동조했다. 지난 13일 밤과 14일 새벽까지 파리의 공연장과 축구장, 레스토랑 등 6곳에서 총기 난사와 자살 폭탄공격 등 최악의 동시 다발 테러가 발생했다. 프랑스 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이번 테러의 배후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목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프랑스인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함께 뭉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도움을 주는 행동은 바로 ‘솔리다리테’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톨레랑스’는 사라지고 있지만 ‘솔리다리테’가 프랑스인들에게 유전자처럼 남아 있음을 이번 테러 사태가 입증했다. 충격 속에서도 국가를 부르며 차분하게 축구장을 빠져 나가는가 하면 테러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 주기 위해 3시간 이상씩 줄을 서고 있다. 대피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주는 시민들도 많다. 지나온 역사에서 그랬듯이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솔리다리테’에 있음을 이들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한글 사랑한 외솔의 정신 ‘한글 특화’ 기념관서 만나자

    [명인·명물을 찾아서] 한글 사랑한 외솔의 정신 ‘한글 특화’ 기념관서 만나자

    지난 14일 울산 중구 동동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초등학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최현배(1894~1970) 선생의 삶과 업적을 메모하고, 한글 탁본과 틀리기 쉬운 한글 문제풀이 등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2010년 3월 문을 연 외솔 기념관과 생가를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념관 일대에는 한글마을도 조성되고 있다. 한글과 역사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외솔 기념관과 생가는 2010년 3월 23일 동동 613 일대에 문을 열었다.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개 동으로 건립됐다. 생가 3개 동도 복원됐다. 한글학자이자 교육가, 독립운동가로 한글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친 외솔 선생의 업적을 기리려는 것이다. 전국 유일의 한글학자 기념관이자 한글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주민과 함께하는 한글 교육, 문화 및 체험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울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를 창립하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드는 등 한글 보급과 교육에 힘썼다. 해방 이후 교과서 행정의 기틀을 잡았고, 한글학회 이사장과 연세대 부총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쳤다. ‘우리말본’, ‘한글갈’ 등의 저서를 남겼다. 외솔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은 2001년 말 울산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선생의 생가터를 ‘울산시 기념물 39호’로 지정한 이후 2002년 10월 생가복원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화됐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유품과 관련 자료를 기탁하면서 2008년 3월 착공해 2009년 9월 준공했다. 기념관은 외솔의 업적과 유품, 저서 등으로 채워진 전시관과 영상실, 한글교실 등으로 만들어졌다. 선생의 저서와 한글 관련 서적 1만여점, 타자기·초상화 등 유품 30여점 등이 1층에 전시돼 있다. 2층 다목적 강당에서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글교실을 운영한다.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외솔 선생의 업적 등을 설명해 준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기념관에 가면 최현배 선생의 동상(높이 2.5m)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는다. 한복을 입고 오른손에 안경, 왼손에 책을 든 모습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오른쪽 전시관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나라사랑의 길’, ‘한글갈’, ‘우리말 큰사전’, ‘조선민족갱생의 도’ 등 선생의 대표 저서와 지팡이, 노트, 타자기, 직접 쓴 원고 등 주요 유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시관 코너를 돌면 선생이 방에서 책을 보는 모습과 일제에 의해 3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상황을 재현한 밀랍 인형을 만난다. 전시관 벽에는 ‘한글갈’, ‘우리말 큰사전’, ‘나라사랑의 길’ 등 선생의 주요 저서를 설명하고 흥업구락부사건, 조선어학회수난사건, 교육자의 길, 한글기계화 등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으로 가득하다. 2층은 다목적 강당으로 사용된다. 노인 한글교실과 토요 문화학교 등이 열린다. 강당을 내려와 밖으로 나가면 초가집이 눈에 들어온다. 외솔 선생이 1894년 태어나 1910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 실제로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집이다. 안채, 아래채, 부속채 3개 동으로 이뤄진 생가는 아궁이와 가마솥, 장독대, 담, 디딜방아까지 세세하게 재현했다. 기념관은 울산시 지정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다. 울산지역 전문박물관은 외솔 기념관을 비롯해 울산박물관, 암각화박물관, 울산대 박물관, 대곡박물관, 장생포 고래박물관, 외솔 기념관, 울산해양박물관, 울산옹기박물관, 울주민속박물관 등 모두 9개다. 기념관 건립 이후 주변에 한글을 모티브로 한 건물들도 늘고 있다. 매년 10월 한글날 행사도 열려 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또 이달 중 기념관 인근에 외솔 도서관(한옥도서관)이 개관한다. 지상 1층으로 된 외솔 도서관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한글 관련 자료를 비롯해 다양한 일반 서적도 비치된다. 도서관 기능뿐 아니라 주변에 은행나무를 심고 돌계단, 흙길 등을 만들어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될 전망이다. 외솔 기념관은 한글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중구는 기념관을 확대한 한글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한글마을은 기념관의 취지에 맞게 한글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마을, 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는 마을, 체류하며 느낄 수 있는 마을 등 4개 주제별로 만들어지고 있다. 병영사거리에서 서동사거리까지 1250m 구간에 한글상징 가로등 46개와 잔디등 12개를 설치했다. 기념관 입구 주차장 일대에 설치한 정육면체 모양의 잔디등에는 선생의 저서인 우리말본 머리말 내용을 표기했다. 외솔 생가와 기념관을 중심으로 한글을 테마로 한 ‘외솔 탐방길’도 조성되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선생의 한글 사랑을 기리고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다. 외솔의 생가를 중심으로 병영교회, 병영초등학교 주변 1㎞ 구간에 조성되고 있다. 이 길에는 한글을 형상화한 벤치와 조형물이 들어서고,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보도블록이 설치된다. 구 관계자는 “나라 사랑의 얼이 깃든 이곳에 평생 한글 사랑에 헌신한 외솔 선생의 한글마을이 조성되면 한글을 사랑하는 내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탐방길이 조성되면 외솔 생가와 병영성 등을 연결하는 2㎞ 구간의 도심 둘레길이 새롭게 구축돼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생가 주변인 병영 사거리에서 병영성 지하터널 입구까지 840m 구간의 모든 간판도 한글로 교체한다. 연말까지 이 일대 163개 점포와 상징물을 한글거리에 맞게 바꿀 예정이다. 한글로 완전 교체가 어려운 외래어 간판은 한글과 외래어를 병행 표기하고, 한글의 크기를 키운다는 방침이다. 한편 외솔의 고향인 병영(동동)은 울산 3·1운동 순국열사 위패를 모신 ‘삼일사’, 병사를 양성하던 경상좌도 ‘병영성’, 울산 3·1운동 본거지인 ‘병영초등학교’, 병마절도사 공덕비가 있는 ‘병영1동 주민센터’ 등이 있다. 나라 사랑의 정신을 간직한 지역으로 꼽힌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씨줄날줄] 지방재생, 지방창생/주병철 논설위원

    지방재생(再生)과 지방창생(創生). 지금 인구 감소로 신음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화두다. 지방재생은 우리말로 농촌, 시골 등 죽어 가는 지방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지방창생은 농촌 소멸에 도시 소멸까지 포함한 광의의 의미로, 지방재생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진화된 개념이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게 지방재생을 넘은 지방창생이다. 농촌과 도시를 건강하게 살리자는 몸부림이다. 야마구치 요시노리 일본 사가현(?) 지사의 얘기를 들어 보면 실감이 난다. 총무성 관료 출신인 그는 그제 서울신문사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가 ‘한국과 일본의 지역(지방) 재생 및 창성’을 주제로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사가현의 지방창생 사례를 들었다. 지방창생만이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길이라는 게 핵심이다. ‘자발적 지역 만들기’를 비롯해 고향에 세제를 통해 공헌할 수 있는 후루사토(고향) 납세, 지방부흥협력대(인구 유치 사업) 등이 눈길을 끌었다. 다카다 히로후미 일본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는 ‘일본의 지방창생 대응’을 주제로 농촌 인구의 도심 진출 이후 도시가 다시 고령화를 거쳐 사라지는 도시 소멸론을 우려했다. 이소영 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장은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재생 방안’이란 발표에서 “우리나라 시·군·구 가운데 30%를 웃도는 69곳이 인구,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복합적인 쇠퇴 현상을 겪고 있다”며 지역공동체 쇠퇴의 심각성을 진단했다. 일본 측의 발표에서 심히 우려되는 대목은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내후년인 2017년부터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유소년 인구가 노년층보다 적어지게 된다. 저성장 고착화 구도, 복합디플레이션 우려, 인구절벽 등이 일본을 그대로 닮아 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3년 ‘저출산 사회대책 기본법’을 제정하고 저출산 대책 담당 부서를 신설해 특명 담당 장관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가 없다. 2001년부터 15년 동안 초저출산 국가에 머물고 있다. 양국이 함께 고민하고 있는 인구 감소 원인이 결혼 기피, 만혼, 보육문제, 소득 문제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저출산 대책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효과를 거둔다고 해도 앞으로 태어날 세대가 아이를 갖기까지 수십년 동안 인구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가천대 소진광 대외부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방재생과 지방창생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앞으로 나라 전체의 인구, 연령(세대)별 인구, 공간(지역)별 인구의 적정 규모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물리적인 기준이 아닌 인간의 삶을 기준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몽리면적 대신 ‘물 댈 면적’ 어때요”

    관정은 ‘우물‘, 몽리면적은 ‘물 댈 면적‘, 사토는 ‘모래흙’으로. 전남도가 11일 제20회 농업인의 날을 맞아 어려운 농업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 사용하는 ‘순우리말 농업용어 사용’ 운동 확산에 나선다고 밝혔다. 순화된 농업용어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난달 한글날을 기념해 농촌진흥청과 함께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109개를 골라 쉬운 우리말로 다듬은 것이다. 농업기반 용어 28개, 농작물 28개, 재배기술 40개, 축산물 분야 13개 등으로 이뤄졌다. 농식품부는 매월 ‘이달의 순우리말 농업용어’를 5개씩 선정해 홍보하고 있다. 이달에는 흔히 쓰는 말과 겹쳐 농업용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한자어 시비, 수도, 위조, 도복, 천식 등 5개 단어를 뽑았다. 시비는 비료주기, 수도는 논벼, 위조는 시듦, 도복은 쓰러짐, 천식은 얕게 심기로 각각 다듬었다. 도는 농식품부와 함께 우리말 농업용어의 주민 사용 확산을 위해 관련 공공기관과 각종 농업인 행사, 영농교육 추진 시 순우리말 농업용어 사용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주민과 소통하는 농업 용어 109개 및 ‘이달의 순우리말 농업용어’는 전남도와 농식품부를 비롯해 농촌진흥청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진하 도 농업정책과장은 “출처도 불분명한 외래어와 한자어 등으로 뒤섞여 어렵게만 사용됐지만 순우리말 농업용어로 다듬어 사용하면 농민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모든 행정기관이 앞장서 순우리말 농업용어 사용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흩어진 한민족의 얼과 글, 문학의 길을 함께 걷다

    흩어진 한민족의 얼과 글, 문학의 길을 함께 걷다

    문학평론가 김종회(왼쪽·60) 경희대 국문과 교수가 문학과 문화에 대한 사유를 담은 문학평론집과 산문집을 동시에 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가운데·문학과지성사)과 ‘글에서 삶을 배우다’(오른쪽·비채)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은 해외동포 문학과 북한 문학 등 디아스포라 문학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평론집이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외부 강압에 의해 자신의 삶터에서 흩어진 유대인 집단거주지나 그렇게 이산된 상황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을,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36년간 식민 지배의 참혹한 시기를 보내며 타국으로 이주하거나 전쟁 후 억지로 분리돼 살게 된 한민족의 역사에 대입했다. 그는 “역사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및 세계 곳곳으로의 유랑은 한민족의 상황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한민족 문학에 디아스포라라는 어휘를 연계하는 일은 논리적·심정적 양 차원에서 매우 용이한 발생론적 구조를 갖고 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연구는 동서양 각지에서 꽃핀 한민족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한문학을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출발점으로, 중국 조선족문학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 일본 조선인문학, 미주 한인문학을 모국어 생산지에서 방사된 각론의 지점으로 봤다. 김 교수는 “이 여섯 개 지역은 한민족 문화권의 ‘2+4 시스템’”이라며 “여섯 개 지역의 문학이 모두 다 자기 몫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소통이 어렵기로 금세기 으뜸인 남북한문학의 접점과 교류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민족 디아스포라라는 좀더 큰 틀의 무대와 자리가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글에서 삶을 배우다’는 문학에서 시작해 문화, 사회 전반으로 사색의 지평을 넓힌 산문집이다. 황순원, 박완서 등 그동안 문학의 길에서 만난 문인들의 숨은 이야기, 우리 시대 문화의 현주소를 논한 인문학적 사색, 삶 속에서 발견한 지혜, 우리가 진정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 사회의 일원이자 나라의 국민으로서 해야 할 사고와 행동, 글로벌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말과 글 그리고 의식의 경계 등 김 교수의 목소리가 오롯이 담긴 60편의 글이 실렸다.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비판할 땐 예리하게 날을 세우지만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 척박한 땅에 문화의 꽃을 피우려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땐 더없이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김 교수는 “문학은 사람을 배움으로 이끄는 가장 감동적인 방법이고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알기 위한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동그라미(조두환 지음, 문학예술사 펴냄) 1975년 시집 ‘중랑천근방’으로 등단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한국의 전통적 정서로 세계 문학의 문을 두드리는 시인의 치열한 정신이 곳곳에 묻어 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도 돋보인다. 135쪽. 1만원. 정의를 부탁해(권석천 지음, 동아시아 펴냄) 칼럼이 흔히 쓰는 주관적 표현은 때로는 진영 논리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된다. 25년을 기자로 살아온 저자는 이를 치열한 현장성으로 너끈히 메워 낸다. 칼럼 전체를 읽고 나면 한국 사회의 총체적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416쪽. 1만 5000원.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모리스 버먼 지음, 김태언·김형수 옮김, 녹색평론 펴냄) 공화정치를 표방하는 미국이 실은 개인의 탐욕 추구-허슬링-에 기반한 사회이며, 이는 미국이 갖는 태생적 한계의 배경이 됨을 정치·문화적 사례를 들어 설파한다. 272쪽. 1만 5000원. 10년후 세계사(구정은·정유진 지음, 김태권 그림, 추수밭 펴냄) 고용 불안정, 전쟁과 빈곤, 노령화, 도시화 등 전지구화한 신자유주의의 짙은 그늘 속 자칫 암울해질 수도 있는 2026년을 준비해야 하는 세계 시민의 자세에 대한 계언을 담는다. 288쪽. 1만 4000원. 행복해 행복해 정말 행복해(대니 파커 지음, 권준성 옮김, 키즈돔 펴냄)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을 그렸다. 연필 선을 살린 서정적이고 따뜻한 그림과 간결하면서도 훈훈한 글이 돋보인다. 32쪽. 1만 2000원. 네모 돼지(김태호 지음, 손령숙 그림, 창비 펴냄) 분홍빛 냉장고처럼 생긴 네모 돼지, 풍선처럼 하늘을 날게 된 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타난 호랑이 등 과감한 상상력을 통해 현 시대의 문제점에 경종을 울리는 일곱 편의 동화가 실렸다. 120쪽. 9800원. 남녘말 북녘말(김완서 지음, 현북스 펴냄) 하나의 대상에 대해 달리 지칭하는 말들에 치중돼 있던 기존 남북한 언어 비교를 벗어나 남과 북이 함께 쓰지만 의미에서 차이가 나는 주요 사례들을 모아 남북 언어 차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128쪽. 1만원.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사랑하세요 궂은날에도 좋은날처럼

    사랑하세요 궂은날에도 좋은날처럼

    국민배우 김혜자(74)가 1년여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작품 선정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가 심사숙고 끝에 택한 연극은 극단 로뎀의 ‘길 떠나기 좋은 날’이다. 나날이 퇴색해져만 가는 가족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요즘 해체되는 가족들이 많아요. 조건이 좋을 땐 사랑하고 불행해지면 사랑의 언약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약간 진부한 얘기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번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잊고 사는 가족의 의미, 사랑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서요. 사랑을 절대 가치로 두지 않고 돈, 환경, 외적 요소를 너무 따지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길 떠나기 좋은 날’은 다리 부상으로 삶의 전부였던 축구를 접고 절망에 빠진 남편 ‘서진’, 남편이 실의를 딛고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희망이 돼주는 아내 ‘소정’, 그리고 두 사람의 딸 ‘고은’ 가족의 애환을 시적인 언어로 그린 작품이다. 김혜자는 하늘이 그 어떤 불행을 내려도 기꺼이 이겨내며 남편과 딸의 버팀목이 돼주는 소정 역을 맡았다. “소정은 절망에 빠진 남편과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상처받는 딸을 격려해주고 가족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는 역할이에요. 남편을 사랑으로 품어 유명한 사진작가로 거듭나게 하고, 가난한 나라의 피부색 검은 청년과 결혼하려다 편견의 벽에 부딪힌 딸에겐 그 모든 걸 이겨낼 사랑이 있지 않느냐며 위로해줘요.” 남편 서진은 딸의 애인을 싫어한다. 딸이 왜 하필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딸은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딸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아빠가 싫다고 다른 데로 보낼까, 아빠를 갈아치울까, 아버지는 고운이가 잘못한다고 고운이를 버릴까, 고운이는 잘못한 게 없을까”라고. 김혜자는 “이 대사가 참 좋다”고 했다. “가족은 그런 거예요. 절대 바뀔 수 없어요. 아무리 아들이 못생겼다고 해도 아들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세상엔 정말 우리가 지켜야 할 아름다운 가치가 있어요. 항상 옳은 것도 있고요. 바로 소정이 몸소 보여주는 사랑이에요. 성경에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말이 있어요. 사랑은 정말 많은 걸 덮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잊고 살아요. 옳은 게 뭔지는 알고 살아야죠.” 이번 작품의 백미 중 하나는 한국적 정서로 가득한 아름다운 대사다. “대사가 참 고와요. 시적이에요. 우리말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됐어요. 관객들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어요.” 지난해엔 1인 11역을 소화하는 모노드라마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출연했다. 백혈병에 걸린 10살 소년 오스카와 소아 병동의 외래 간호사인 장미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 가슴을 정말 뛰게 한 연극이었어요. 소년은 신에게 계속 물어요. 나는 왜 죽을 병에 걸렸는지. 그러다 내 삶은 잠깐 빌린 것이고 죽음은 내가 본래 있던 곳으로 간다는 걸 깨닫게 돼요. 죽음은 또 다른 세상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두려움을 이겨내죠. 이번 작품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번 작품은 연출가 하상길이 처음부터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극본을 썼다. 하 연출가는 “김혜자를 위한 작품을 쓰고 싶었고, 대사의 리듬이 그에게 가장 잘 맞도록 썼다”고 말했다. “연출가가 저를 위한 작품이라고 말해 더 부담스러워요. 연륜도 있고 이름도 있으니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소정이 돼 무대에 올라야죠. 부부나 온 가족이 오셔서 이번 공연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시고 난 뒤 정말 좋은 연극을 봤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다음달 4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화암홀, 3만 5000원~5만원. (02)765-888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삶에 정해진 길 없어…끊임없이 진로 재탐색해 꿈 찾아”

    “삶에 정해진 길 없어…끊임없이 진로 재탐색해 꿈 찾아”

    “22번 이후 세는 것을 포기해 버릴 정도로 많은 수술을 받았는데, 눈을 감싼 붕대를 풀 때마다 병원 침대 곁에 늘 엄마가 계셨어요. 그 얼굴을 항상 기억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신순규(48)씨는 시각장애인이다. 9살 때 시력을 잃어버린 뒤 지금은 희미한 빛조차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졸업한 뒤 21년째 활동하는 월가 애널리스트이자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로 이름을 높이게 됐다. 그가 자신의 삶과 일 속에서 빚어낸 희망의 여정을 정리한 책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 펴냄)의 출간에 즈음해 한국을 찾았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씨는 “점자 컴퓨터로 3년에 걸쳐 원고를 써 내려갔는데 영어 점자 타이핑보다 서투르고 우리말 표현도 익숙하지 않아 사전을 계속 찾아보며 쓰느라 오래 걸렸다”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노력과 인내로 성공을 이룬 사람의 자서전이 아니라 남다른 환경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생각과 가치관을 에세이처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5살 때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비장애인도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출발은 어머니의 의지였지만 완성은 쉼 없이 꿈꾸는 그만의 능력이었다. 신씨는 “어린 시절 안마사만은 시키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피아노를 쳤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말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장애인 유학생이 겪은 현실의 높은 벽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의 낙천적인 성격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거기에서 음악적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한 뒤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겠다며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꿨고, 그것이 막히자 의사를 꿈꿨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지만 지금은 투자은행에서 애널리스트 일을 하고 있다”면서 “삶에 정해진 길이 따로 없는 만큼 끊임없이 꿈과 길을 재탐색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1년 9·11테러, 2011년 ‘월가 점령 운동’이 그가 일하는 회사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 세상의 불평등에 대한 그의 시선도 낙관, 그 자체였다. 그는 “창문을 ‘내다보면’ 바로 앞에서 시위대들이 구호를 외치는데 정말 미안해서 막히는 출근길에도 전혀 화나지 않았다”면서 “(세상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예컨대 수감자 자녀, 탈북자 자녀, 조손 가정, 보육원 아이들에게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그만큼 세상의 불평등을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대표기업 16곳 ‘신한류 어깨동무’

    한국 대표기업 16곳 ‘신한류 어깨동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이 480억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미르를 설립하고 한류 확대를 위해 힘을 모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7일 재단법인 미르가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위치한 사무국에서 현판 제막식을 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롯데, GS, 한화, KT, LS, 한진, CJ, 금호아시아나, 두산, 대림, 아모레퍼시픽 등 16개 그룹으로부터 486억원을 받아 발족했다. 순우리말로 용을 의미하는 미르는 문화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용솟음을 의미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그동안 한류가 한국 기업·제품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만큼 재단을 통해 한류문화를 더욱 확산하고, 이를 통해 문화 융성과 창조경제의 시너지가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재단 미르는 해외 각국과 상호 문화 교류를 위한 공동 페스티벌 개최, 문화 거리 조성 등의 활동에 나선다. 글로벌 통합 벤처단지 조성, 문화 콘텐츠 창작자 발굴 지원, 콘텐츠 박람회 등 문화창조기업 육성과 해외 동반 진출 지원 체계도 구축한다. 특히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브랜드화하는 전통문화 가치 발굴, 문화 상품 마케팅 지원 등을 통해 ‘신(新)한류’를 창출한다는 복안이다. 재단 이사장을 맡은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장은 “개별적으로 문화재단 등을 운영하던 기업들이 재단 미르를 통해 다양한 협력 사업과 행사를 추진해 문화 융성의 혜택을 모든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국전 참전용사와 情 나눔의 잔치를/김창후 LG전자 고문·한국외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글로벌 시대] 한국전 참전용사와 情 나눔의 잔치를/김창후 LG전자 고문·한국외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외국 생활의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하게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대부분 터키인들이 배내 시절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정(情)이 싹트여 자라온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한반도의 8배가 되는 큰 나라이건만 전국의 거래선을 만나 상담하고 고객과 대화를 하노라면 예외 없이 따뜻하고 우호적인 정감을 깊이 느낀다. 터키는 우리와 역사적 혈맹 관계로 6·25 때 참전해 수천 명의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바쳤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 당시 한국 관중이 대형 터키 국기를 들고 보여 준 응원은 집에서 TV를 보던 터키 국민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했다. 두 나라 국민 사이에 강한 우정의 흐름을 다시 한번 확인케 됐던 것이다. 지구의 건너편 한국에 터키 국민이 지속적으로 보여 준 애정은 무형의 값진 자산이다. 터키인들이 우리 외에 다른 어느 국민에게 이처럼 우호적이었을까 자문해 보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도 그동안 받은 정을 갚으며 진정한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기업으로 ‘받은 정(情)을 다시 정(情)으로 보답’하는 문화행사를 해 보자고 마케팅 부서장에게 지시했다. 터키 전역의 한국전 참전 용사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정 나눔의 잔치’을 하자는 것이었다. 행사는 보스포루스해협 언덕에 위치해 야경이 장관인 곳에서 하기로 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옛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뒤로하고, 해협 건너편 아시아 방향으로 달리면 6·25 때 퍼져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터키 민요 ‘위스크다르’의 유래지인 마을이 있다. 세월이 흘러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모두 팔순의 할아버지가 됐다. 베테랑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터키말로 인사를 했다. 모두 두 손으로 꽉 잡는다. 한국전 참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부분 전쟁 당시 지급된 군 정복을 정갈하게 입고 와서 불패의 군인정신을 되찾은 모습을 보인다. 왼쪽 가슴에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어 무공을 세운 전사에게 주는 양국 정부의 훈장을 정연하게 달고 나왔다. 많은 훈장의 무게가 무거워서인지 처진 어깨가 더 처져 보인다.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팔척 장신 알리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헌병이었다고 한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거쳐 간 문산·영등포 등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에 조그만 단어 암기장 같은 것을 들고 왔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우리말로 인사했다. 전쟁 당시 한국어를 배우면서 정리한 회화 공책이라며 보여 준다. 60년 전 받아 필기한 공책을 아직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참 감동적이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기 전 마케팅 부서에서 미리 터키어로 준비해 주어 여러 번 연습한 환영의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발음과 억양이 서툴지만 모두 마음으로 이해를 완벽히 하는 분위기다. 한국인으로서 그간 역사적으로 보여 준 터키인의 두터운 애정을 우리는 늘 감사히 생각하며 잊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그리고 현지 법인 회사의 대표로서 이곳 형제의 나라에 와서 여러분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자주 만날 것을 희망한다고 했다. 이어서 참석한 여러분들을 보니 어렸을 때 귀동냥으로 배운 터키 민요를 기억한다고 하면서 ‘위스크다르’ 서너 구절을 무반주로 불렀다. 놀랍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가사를 외우면서 수십 번 연습한 애창 민요의 독창 시도를 나의 터키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시로 받아 주며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조금이나마 빚을 갚은 기분을 갖고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했다.
  • [스타뷰] 대중적인 거? 나쁘진 않죠! 자기 색깔의 랩을 할 수 있다면…

    [스타뷰] 대중적인 거? 나쁘진 않죠! 자기 색깔의 랩을 할 수 있다면…

    국내 대중음악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힙합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힙합 음악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등을 통해 발표되는 노래는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곤 한다. 인기 래퍼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관심의 대상이다. 때로는 랩 가사가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래퍼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다. 청소년들이 거리를 오가며 스스럼 없이 랩을 연습하는 모습도 일상이 됐다. 30대도 힙합을 배워 보고 싶다고 줄을 설 정도다. 공연 출연료, 노래 피처링 단가도 아이돌 그룹 못지않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의 경우 수억원을 번다는 소문도 있다. 최근 힙합 음악 시장의 현주소를 반영한 사건이 일어났다. 대기업인 CJ E&M이 힙합 전문 레이블 중 하나인 하이라이트 레코즈를 인수한 것이다. 힙합 음악이 산업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국내 힙합계에서는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한다. 국내 언더그라운드 힙합 1세대인 가리온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마냥 부정하기도, 박수만 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이 힙합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방송 프로그램 하나에 요동을 칠 정도로 허약한 국내 힙합 음악계의 체력을 그대로 보여 준 것 같아요.”(MC메타) MC메타(44·이재현)와 MC나찰(38·정현일)로 구성된 힙합 듀오 가리온은 한국 랩의 자존심이다. 영어를 섞지 않고 한국어만으로 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MC메타의 경우 경상도 사투리로 만든 ‘무까끼하이’란 곡을 발표했을 정도다.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정서를 제대로 전달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한국어 랩으로 승부하는 게 제일 멋있겠다고 생각했단다. 팀 이름도 순우리말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국어사전을 펼쳐 한장 한장 넘겨 가며 찾은 단어다. 가리온은 몸은 희고 갈기가 검은 말이라는 뜻으로, 백두산에서 사는 전설의 동물을 일컫는다고. 팀으로는 지금까지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놨지만 힙합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2004년 선보인 1집은 힙합 음반으로는 보기 드물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6년 뒤에 나온 2집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등 3관왕을 차지했다. 피-타입, 넋업샨 등 친분이 두터운 힙합 뮤지션들과 불한당이라는 크루를 결성해 2013년 선보인 ‘불한당가’는 이들이 추구하는 한국적인 랩의 멋을 제대로 보여 주며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노래로 뽑히기도 했다. 사실 가리온도 2012년 시작한 쇼미더머니의 첫 번째 시즌과 두 번째 시즌을 통해 방송을 탔다. 힙합계에서 가리온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출연해 쇼미더머니를 비판하는 랩을 할 정도로 애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리온은 미디어와 자본의 힘을 빌려 힙합이 대중화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힙합 고유의 정신과 문화가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미 힙합 문화 중에서도 자극적인 요소가 미디어를 통해 부각되며 오해와 편견이 쌓이고 있다는 게 가리온의 시선이다. 또 스스로 원치 않는 음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했다. “힙합의 진면목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출연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늑대 소리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양떼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죠.”(MC메타) “각자 살아온 방식이 있고 철학이 있는데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 랩을 한다는 게 안타까웠죠. 대중적인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이전에 발라드랩을 비판하던 친구들이 어느새 발라드랩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죠. 발라드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구요, 다만 재능 있는 친구들의 다양성이 받아들여지는 건강한 시장이 생겼으면 좋겠어요.”(MC나찰) 힙합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타도 여럿 나왔지만 대부분은 음악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가리온만큼 음악성을 인정받은 힙합 뮤지션도 없지만 현재 상황에선 음악성이 먹고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며 한숨을 내쉰다. 가리온의 주 수입원은 힙합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레슨이다. 그럼에도 가리온은 예나 지금이나 돈벌이를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은 낯설고 멋없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힙합 열풍에 래퍼는 날이 갈수록 숫자가 늘고 있지만 신인은 직접 대관하지 않고서는 공연 한번 해 볼 공간도 없다. 이러한 갈증을 해결하려고 가리온이 총대를 멨다. 2013년 12월 ‘모두의 마이크’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6개월을 한 시즌으로 주말마다 36명이 선착순으로 무대에 올라 실력을 겨루는 무료 공연을 이어 가고 있는 것. 가리온과 힙합평론가 김봉현, 특별 게스트, 관객들의 평가로 매 공연 순위를 정하고 그 성적을 합산해 시즌 우승자를 결정한다. 현재는 격주로 무대를 꾸리고 있다. 지난 8월 시작된 시즌3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휠라 코리아의 지원으로 우승자를 위한 음원 작업과 뮤직비디오 작업이 가능해졌다. 명실상부한 실력파 래퍼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또 작은 연습실을 떠나 번듯한 클럽으로 무대를 옮기게 됐다. 다음달 22일 시즌3 우승자가 나오면 그동안 함께했던 특별 게스트들과 신인 래퍼들이 뭉쳐 29일 홍대 브이홀에서 콘서트 무대를 열 예정이다. “선착순 출연이다 보니 오전부터 공연장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열정이 너무 고맙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죠. 저희가 음악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MC나찰) “이전에는 쇼미더머니 정도는 나가야 공연 섭외가 들어오곤 했어요. 이제 모두의 마이크도 그런 역할을 조금은 하고 있죠. 언젠가는 모두의 마이크를 랩, 디제잉, 비보잉, 그래피티를 아우르는 힙합 페스티벌로 키워 보고 싶어요. 래퍼들이 서로 부대끼며 서로의 음악을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힙합 클럽을 꾸리는 것도 꿈입니다.”(MC메타) 최근 새 둥지를 찾은 가리온은 정규 3집 앨범 준비 등 음악 작업도 재개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록 밴드 해리빅버튼과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싱글도 조만간 발표된다. “앞으론 정기적으로 싱글을 발표하는 등 조금 더 활발하게 음악으로 인사드릴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꼰대’ 이야기를 들을까봐 이런 인터뷰도 상당히 조심스러운데요, 하하하.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음악적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잖아요.”(MC나찰) “한국 힙합의 미래를 짊어지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70세에도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고희 힙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된다면 후배들에게 작은 희망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날까지 한국어 랩으로 최고가 될 수 있게 멈춤 없이 계속 가겠습니다.”(MC메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톡!톡! talk 공무원] 안정애 법제처 법제총괄 사무관

    [톡!톡! talk 공무원] 안정애 법제처 법제총괄 사무관

    ‘印紙額(인지액)이 1千(천)원 이상의 경우에 100원 미만의 端數(단수)가 있을 때에는 그 端數는 이를 計算(계산)하지 아니한다.’ 안정애(53) 법제처 법제총괄 사무관(계약직 나급)은 21일 “이 문장을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는 ‘인지액이 1000원 이상이면 100원 미만은 계산하지 않는다’라고 쓰는 게 옳다”고 말했다. ●법령문엔 일제 잔재 여전 안 사무관은 법제처에서 2006년부터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약칭 알법)’ 사업을 통해 1000여건의 부적절한 법령 용어나 문장을 쉬운 우리말로 바로잡은 전문 공무원이다. 어려운 한자어를 정비한 사례에는 ‘인육(印肉)→도장밥’, ‘주말(朱抹)하다→붉은 선으로 지우다’, ‘이면(裏面)이나 보전(補箋)→뒷면이나 보충지’ 등이 있다. 일본식 한자어로는 ‘일부인(日附印)→날짜 도장’, ‘지득(知得)하다→알게 되다’ 등이 있다. 또 ‘완제(完濟)→완전 변제 또는 다 갚다’, ‘선차(船車)→선박·차량’ 등은 지나치게 줄여 쓴 용어의 사례다. 법제처와 안 사무관이 고친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 등의 용어는 법무부 등 관련 행정 부처와 국회에 권고안으로 전달됐다. 그 가운데 상당수 용어는 수정 절차를 밟고 있지만, 법령문의 성격상 해석에 시비가 없도록 분명하게 써야 하는 용어는 권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다. 안 사무관은 “20여년을 국어 교사와 신문사의 교열기자로 일했기 때문에 우리말이나 한자어에 대해선 꽤 자신감이 있었는데, 공문서나 법령문에는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용어나 아무리 사전을 뒤져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려웠던 점으로 “교단이나 신문사에선 정확하게 지적된 잘못이 즉시 고쳐졌는데, 법령문 또는 공직 사회의 속성상 수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절차를 거쳐야 했다”고 밝혔다. ●“국민들에게 도움 되고파” 우리가 이처럼 이상한 용어를 쓰게 된 까닭에 대해 “우리 기본법의 문장은 마치 일본 법을 일한대역(日韓對譯)한 것처럼 그대로 옮겨 썼다”면서 “그러나 일본 법도 과거 서양의 국제법 등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일본이 서양에서 잘못 베낀 것을 우리가 거듭 그대로 쓰면서 어색한 용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법(法)이라는 한자어는 물(水)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去)는 뜻인데, 정확한 뜻의 법령문이 국민에게 전해지면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문화마당] 똥 묻은 어른, 겨 묻은 아이들/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똥 묻은 어른, 겨 묻은 아이들/김재원 KBS 아나운서

    한글날을 맞아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우리말, 한글 사랑의 반짝 특수다. 올해는 청소년 언어오염 기사가 유난히 많았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은 모르는 말로 대화한다는 것이다. 청소년과 어른의 말이 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분명 어른들이 모르는 단어를 쓰려고 애썼다. 오염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더럽게 물듦, 또는 더럽게 물들게 함이라고 정의한다. 청소년 언어가 더럽다는 얘기다. 욕을 달고 살고, 단어를 줄여서 말하며, 생소한 외계어를 쓴다는 것이다. 물론 욕 달고 사는 아이들까지 편들 생각은 없지만 그들의 언어가 오염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더러울까? 대부분 부모는 내 아이는 그런 말을 안 쓰는데 다른 아이들 때문에 물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 다 쓰는 그런 말을 전혀 안 쓰는 아이에게도 문제는 있다. 어쨌든 잘못의 원인은 찾아봐야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이고 언론의 책임이다. 애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아이들에게는 분출구가 없다. 대학에 어떻게든 들어가려면 죽은 듯이 공부해야 한다. 집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선생이 눈 번득이며 감시하는 터라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다. 10분 관계, 아이들은 고작 쉬는 시간, 점심 먹고 잠깐, 학원에서 다른 학원으로 이동하는 10분이 놀 수 있는 최대치다. 그래서 아이들은 줄여서 말해야 한다. 감시하는 어른들이 못 알아듣도록 외계어를 써야 한다. 입시제도에 대한 분노는 욕밖에 안 나온다. 못하게 하는 것들만 넘치니까 사방이 막힌 아이들에게 뚫린 곳은 입뿐이다. 교육제도가 아이들의 입을 거칠고 바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국민가수 장자크 골드만의 ‘일생동안’이라는 뮤직비디오는 청년과 기성세대가 편을 나눠 번갈아 노래하는 형식이다. 청년세대는 당신들은 자유와 평화와 일자리를 다 가졌다고 말하고, 기성세대는 그것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며 너희들은 게으르고 일도 안 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상대에게서 원인을 찾는 이 뮤직비디오는 사회단체 후원을 위해 만들어진 의도와 달리 세대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도 세대 간의 언어불통의 책임을 청소년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해 준 언론은 찾기 힘들었다. 도대체 어른들은 잘하고 있느냐 말이다. 애들 국사 책을 놓고 극과 극으로 갈라져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어른들에게 타협과 화합을 어찌 배우랴. 국정감사에서 피 감사대상을 몰아붙이는 국회의원들에게서 배려와 충고를 어찌 배울까. 인터넷에는 낯 뜨거운 사진과 기사, 광고가 넘쳐난다. 방송 자막에는 오자와 비문과 외국어가 흘러넘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재미라는 명분하에 은어와 속어가 속출한다. 제발 드라마에서는 싸우지나 않고 죽이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하는 일을 잘 몰랐다. 하지만 요즘 똥 묻은 어른들의 행태는 청소년들이 그대로 보고 있다. 말 그대로 더럽게 물든 오염이다. 물론 언어의 위생과 안전은 필요하다.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언어는 건강해야 하고 폭력성과 상처를 생각하면 언어는 안전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겨가 묻은 것은 똥 묻은 어른들 잘못이다. 어른들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자. 어디 심심한 여론 조사기관이 있다면 어른이 잘못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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