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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문화 그리고 놀이… 한국 심장부를 수놓는다

    ‘한글’ 문화 그리고 놀이… 한국 심장부를 수놓는다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문자학자 제프리 샘슨 영국 서식스대 교수) “세종대왕은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미국 소설가 펄 벅) “한글 읽기를 깨치는 데 하루면 족하다.”(프랑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 제570돌 한글날을 맞아 국내외에서 한글 창제 정신을 되새기고, 한글을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8~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한글문화큰잔치’를 연다. 올해 주제는 ‘온 세상, 한글로 비추다’. 8일 전야제 행사에선 한글날 주제 선포식, 성악 공연, 한국무용 및 태권무, 타악 공연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날부터 한글 놀이터가 문을 열어 한글체험관, 한글 자음모음 만들기, 책 사인회 등이 진행된다. 9일 본행사에서는 광화문광장 중앙과 북측광장에서 무용 ‘하늘의 소리 땅의 몸짓’ 등 11개 공연과 한글 도깨비 두두리전 등 7개 전시 및 각종 체험행사가 열린다. 세종로공원 무대에서는 가족 뮤지컬 ‘종이 아빠’와 아동극 ‘돈 도깨비’, 퓨전 뮤지컬 ‘찰리 아저씨의 마술공장’ 등 7개 어린이 대상 공연이 종일 펼쳐지고, 오후 7시 30분에는 ‘한글날 기념 음악회’가 이어진다. 같은 날 ‘세계로 뻗어 가는 한글 붓글씨 잔치’와 ‘한글을 지키고 가꾼 28인’ 전시회 등이 예정돼 있다. 이보다 앞서 6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제8회 한글날 기념 집현전 학술대회가 열려 한글 고전의 역주와 우리말 구조, 학문적 통섭 등을 주제로 한글 고전의 현대 언어학적 해석을 다룬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5일부터 박물관 전시장과 잔디마당에서 특별전 ‘원도, 두 글씨장이 이야기’를 전시하는 한편 훈민정음 목판인쇄체험, 책사랑 가연회, 한글책장터 행사를 진행한다. 아울러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국외 기획특별전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을 7일부터 28일까지 연다. 디자인 작가 23팀이 ‘훈민정음’에 담긴 한글 원형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영상·그래픽·입체 작품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세종의 딸’ 정의공주와 함께 즐기는 도봉한글잔치

    서울 도봉구는 9일 ‘정의공주와 함께하는 제5회 도봉한글잔치’를 연다. 훈민정음 반포 570돌을 기념하는 한글날을 맞이해 열리는 도봉한글잔치는 올해로 다섯 번째다.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로, 훈민정음을 만들 때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시집간 죽산 안씨 문중 족보(대동보)에 남아 있다. 죽산 안씨 족보에는 ‘세종이 우리말이 문자로 상통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 훈민정음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음을 바꾸어 토를 다는 것과 사투리에 대해 아직 연구가 끝나지 못해 여러 대군(大君)을 시켜 풀게 했으나 모두 미치지 못하고 공주에게 내려보냈다. 공주가 즉시 이를 해결해 바치니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특별히 노비 수백 명을 내려 주었다’란 내용이 있다. 훈민정음 창제에는 집현전 학자뿐 아니라 세종의 여러 왕자와 공주들이 참여했으며 특히 정의공주의 활약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봉 어린이들은 한글잔치 동안 열리는 사생대회와 백일장에서 글과 그림 솜씨를 뽐낼 수 있다. 또 탁본체험, 떡메 치기, 나에게 편지 쓰기, 전통놀이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열린다. 지역 역사인물인 정의공주를 재조명한 창작뮤지컬 ‘정의공주 2016 한글 창제’를 야외무대에서 감상하며 한글 창제의 숨은 이야기도 알 수 있다. 한글 창제의 숨은 공신인 정의공주의 이야기를 어린이들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뮤지컬로 풀어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한글날 온 가족이 원당샘공원을 찾으면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게 한글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반포대로에 펼쳐진 지상 최대의 도화지

    반포대로에 펼쳐진 지상 최대의 도화지

    한글날인 오는 9일 서울 반포대로 일대가 거대한 도화지로 변신한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 2일 집중호우로 연기됐던 ‘2016 서리풀페스티벌’의 ‘지상 최대 스케치북’ 행사를 9일 연다. 오후 2시 30분부터 3만㎡(1만여평) 규모의 반포대로 왕복 8차선 도로를 통제한 뒤 한글날에 맞춰 한글 좌우명, 그림 등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서초역에서 서초3동 사거리까지 900m 구간에서 펼쳐지는 행사다. 한글을 넣은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구 공식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서리풀페스티벌이벤트)를 달아 참여하면 심사를 통해 다양한 경품도 지급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회째를 맞는 스케치북 행사는 아이들은 물론 다문화가정, 장애인까지 참여 폭을 넓혔다. 지역 내 어린이집 원아 5200여명도 힘을 보탠다. 한국 거주 10년차인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김하연(32·베트남명 판티마이)씨는 “베트남에는 이런 큰 축제가 없는데 다문화가정까지 참여하는 문화체험행사라 의미가 각별하다”면서 “아이들이 벌써 도로 위에 무지개를 그릴 생각을 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말했다. 오후 4시부터 세빛섬을 출발해 예술의전당까지 반포대로 4.4㎞ 구간에서 펼쳐지는 ‘서초강산퍼레이드’는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36개 팀 1800여명이 참가해 행렬 길이만도 700m에 이르는 대규모 행진이다. 행사와 관련해 오후 6시까지 반포대로 일대가 통제된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문화로 하나 되는 서리풀 축제의 마지막을 보강했다”며 “서리풀은 서초의 순우리말로 상서로운 풀을 의미한다. 축제를 통해 상서로운 기운이 서초와 대한민국에 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말빛 발견] 한글, 기쁨이지만 아픔도 있는 이름/이경우 어문팀장

    ‘한글’은 문자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한글’과 ‘한국어’는 곳곳에서 섞여 쓰인다. ‘한국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는 예는 찾기 어렵지만, ‘한글’이 오용되는 예는 수없이 많다. ‘한글 이름’이라든가, ‘한글로 번역한다’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우리말 이름’이거나, ‘한국어로 번역한다’라고 해야 말이 된다. 이렇게 ‘한글’과 ‘한국어’가 구별되지 않고 쓰이는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붙인 ‘훈민정음’에서 시작해 ‘한글’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표적인 게 ‘언문’이다. 일찍부터 ‘한자’에 대응해 붙여진 이름이다. 애초 낮추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속되다는 의미가 스며들었고 그렇게 쓰였다. 이 외 ‘암글’이나 ‘반절’이라고도 했다. 그러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새로워지면서 나라 문자의 중요성도 커졌다. ‘언문’은 다시 ‘국문’이란 이름을 얻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갑오개혁 때 ‘국문’은 국가의 공식 문자가 된다. 공문서에 ‘국문’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국문’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국문’은 곧 일본의 ‘가나’를 가리키게 됐고 ‘국어’는 ‘일본어’를 뜻하게 됐다. 우리 고유문자를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이 탄생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우리 정신을 지키는 무엇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글’에는 문자 이상의 구실을 한 역사가 있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 [말빛 발견] 한글, 기쁨이지만 아픔도 있는 이름

    ‘한글’은 문자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한글’과 ‘한국어’는 곳곳에서 섞여 쓰인다. ‘한국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는 예는 찾기 어렵지만, ‘한글’이 오류를 범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한글 이름’이라든가, ‘한글로 번역한다’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우리말 이름’이거나, ‘한국어로 번역한다’라고 해야 말이 된다. 이렇게 ‘한글’과 ‘한국어’가 구별되지 않고 쓰이는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붙인 ‘훈민정음’에서 시작해 ‘한글’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표적인 게 ‘언문’이다. 일찍부터 ‘한자’에 대응해 붙여진 이름이다. 애초 낮추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속되다는 의미가 스며들었고 그렇게 쓰였다. 이 외 ‘암글’이나 ‘반절’이라고도 했다. 그러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새로워지면서 나라 문자의 중요성도 커졌다. ‘언문’은 다시 ‘국문’이란 이름을 얻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갑오개혁 때 ‘국문’은 국가의 공식 문자가 된다. 공문서에 ‘국문’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국문’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국문’은 곧 일본의 ‘가나’를 가리키게 됐고 ‘국어’는 ‘일본어’를 뜻하게 됐다. 우리 고유문자를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이 탄생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우리 정신을 지키는 무엇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글’에는 문자 이상의 구실을 한 역사가 있다. 지금 ‘한글’은 모든 언어의 꿈이라고도 불린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 아름다운 상표에 ‘떡찌니’

    아름다운 우리말 상표로 ‘떡찌니’가 선정됐다. 특허청은 4일 제570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우수 상표 7편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번 행사는 한글상표 사용 확산을 위해 특허청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주최하고 국립국어원이 참여해 진행됐다. 총 268건의 상표가 응모된 가운데 네티즌 투표와 3개 기관 전문가들이 평가를 거쳐 최종 7편이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아름다운상표에는 떡찌니, 고운상표에는 산들담은, 정다운상표로는 자연바라기·생각터트리기·따뜻한시선·아이신나라·다함 등 5편이 각각 선정됐다. 우리말 우수상표 시상식은 7일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열린다. 최규완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국장은 “우리말 상표 사용 확산을 위해 관계 부처 간 협업으로 의미있는 행사가 됐다”면서 “한글 보존과 활용을 위해 우리말 우수 상표를 매년 선정,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SNS 새 소통수단 이모지, 세계 공용어·신성장 동력으로

    [글로벌 인사이트] SNS 새 소통수단 이모지, 세계 공용어·신성장 동력으로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이 매년 12월에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는 시대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에는 ‘셀프카메라’를 뜻하는 신조어 ‘셀피’(selfie)가, 2014년에는 전자담배를 피우다는 의미의 ‘vape’를 뽑는 등 대중의 관심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런 옥스퍼드 사전이 지난해 12월에 선정한 ‘2015년 올해의 단어’는 바로 ‘기쁨의 눈물이 가득 찬 얼굴’(Face with Tears of Joy) 모양의 이모지(emoji)였다. 일본어로 그림을 뜻하는 에(繪)와 문자를 의미하는 모지(文字)를 조합한 이 단어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림문자 혹은 상형문자쯤 될 것 같다. 이모지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은 ‘2030’ 세대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문자 대신 이모지로 소통하는 현 시대를 읽었기 때문이다. 캐스퍼 그래스워홀 옥스퍼드 사전 회장은 “강렬한 시각 효과와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21세기 사회에서 기존 문자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이모지 같은 그림문자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만 해도 페이저(삐삐)를 통해 8282(빨리빨리), 1004(천사) 등 같은 암호화된 숫자를 주고받는 수준에 머물던 그림문자들이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99년 일본 NTT 도코모의 디자이너 시게타카 구리타가 세계 최초로 이모지를 만들어냈을 때만 해도 종류가 176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수만 개의 이모지가 사용되고 있다. 2~3년 전부터는 카카오와 라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캐릭터형 이모지도 큰 인기를 모으면서 이젠 문자보다 이모지가 자신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수단이 됐다. 외국어를 몰라도 이모지를 보면 직감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 이모지가 세계의 공용어로 얼마나 진화할지 주목된다. ●다문화 가족 등 시대 반영 표현 추가 우리나라에서는 키보드에 존재하는 문자와 기호 등을 조합한 (^_^) (〉_〈) (-_-) (@_@) 등 이모티콘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그림문자인 이모지를 구별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보통 이 둘을 나눠서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모티콘은 1982년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교수인 스콧 팔먼이 학내 온라인 게시판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보려는 취지로 처음 사용했다. 최근에는 이모티콘 사용이 줄어드는 대신 이모지가 이를 대체해 가는 추세다. 이모지 검색 사이트 ‘이모지피디아’는 이모지를 “얼굴 같은 그림들을 휴대전화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캐릭터들”이라고 정의한다. 현재 PC와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매일 60억 건 이상의 이모지가 전송되고 있다. ‘온라인 그림문자’가 된 이모지는 글로벌 공용어 역할을 하는 만큼 세계 표준이 있다.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 2009년 722개의 공통 이모지를 공개한 뒤로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원산지가 일본이다 보니 일본 전통인형과 도시락, 화투 등의 일본풍 이미지가 상당수다. 최근에는 동성 부부와 다문화 가족 등 달라지는 시대를 반영하는 표현들이 속속 추가되고 있다. 최근 애플은 홈페이지를 통해 검은색 권총 모양의 이모티콘을 연두색 물총으로 대체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가지 이모티콘을 자체적으로 추가했다. 성소수자 지지의 뜻을 가진 무지개 깃발도 더했다. 특히 총 모양 이모지에 대해 애플이 특별한 언급은 하고 있지 않지만 최근 잇따른 미국 내 총기사고와 관련해 총기 규제 지지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美선 대선후보 표현 새 연구 분야 떠올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된 이모지는 정치 영역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정치인의 본질이 이미지에 있다 보니 이모지와 가장 잘 맞는 분야이기도 하다.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8월 정부 차원에서 이모지를 제작해 공표했다. 다음달 치러지는 미국 대권 레이스에서도 민주·공화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이모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의 이모지는 힐모지(힐러리+이모지)로도 불린다.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이모지를 선거에 활용하는 ‘이모지 폴리틱스’를 새로운 연구 분야로 보고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종합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이모지로 보는 대통령 선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권자들이 트위터에서 대선 주자들을 언급할 때 어떤 이모지를 사용하는지를 분석했다. 이 결과 트럼프의 경우 이모지 1위는 경찰 경광등(25.8%)이 차지했다. 클린턴 등 다른 후보들이 대부분 성조기가 1위가 된 것과 대조적이다. 트럼프가 “모든 이슬람 입국 금지” 같은 발언을 쏟아낸 것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특정 후보에 대해 한 개의 이모지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이름 초성을 딴 ‘ㅂㄱㅎ’과 웃음 이모티콘을 결합해 만든 이모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카카오·삼성물산·라인, 상품 사업 확대 단순한 감정표현 정도의 도구로 여겼던 이모지는 이제 캐릭터 산업과 결합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이모지 비즈니스’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 간 모바일 메신저 캐릭터 경쟁이 주목받고 있다. 카카오프렌즈는 7월에 서울 강남역에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한 달 만에 누적 방문객이 45만명을 돌파하는 등 순항 중이다. 카카오프렌즈는 캐릭터를 활용한 인형, 리빙, 패션, 아웃도어, 음식, 화장품 등 1500여종의 여러 가지 제품을 갖췄다. 삼성물산의 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에서도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한 티셔츠와 가방 등을 내놨다. 메신저 ‘라인’의 ‘라인프렌즈’도 국내외에서 오프라인 이용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카카오보다 상대적으로 국내 사용자층이 적은 네이버는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해 동남 아시아 지역 사업 등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라인 메신저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어 시장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카카오와 라인을 중심으로 한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만 해도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도 이모지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샴푸 회사 도브는 지금까지 공개된 이모지들이 모두 생머리를 갖고 있다면서 곱슬머리를 가진 이모지를 내놨다고 전했다. 사용자들이 이모지를 사용할 때마다 브랜드와 제품 이미지를 상기할 수 있어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팝스타 비욘세도 비공식 뮤직비디오 ‘드렁크 인 러브’를 이모지로만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저스틴 비버도 앱스토어에 자신의 이모지앱을 등록했다. 국내 배우인 이광수도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의 메신저 위챗에 한국 연예인 최초로 이모지가 제작돼 관심을 모았다. ●“차세대 트렌드” vs “따라 하기 효과” 이모지 제작업체 모지의 올리버 카밀로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이들이 자기만의 이모지를 갖게 될 것”이라면서 “이는 모바일 분야에서 차세대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부에선 지금의 이모지 전성시대가 ‘남들이 하니 나도 일단 하고 보자’는 밴드웨건 효과일 뿐이라는 지적도 한다. 특정한 이모지를 사용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찾아 다운로드하고, 스마트폰 키보드 세팅을 바꾸는 과정이 장기적으로 사용자에게 귀찮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광고 대행사 오길비 앤드 마더의 테디린 최고 광고 책임자는 “마케터들에게 중요한 건 사용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내놓는 것이지 (반짝 인기를 끄는 이모지를 내세워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라고 최근의 이모지 열풍을 지적하기도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교황, 고려 충숙왕에게 서한 보냈다”

    “교황, 고려 충숙왕에게 서한 보냈다”

    1333년 로마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내는 서한의 필사본이 로마 바티칸 문서고에서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진에 의해 발견됐다. 다큐멘터리 ‘금속활자의 비밀들’ 제작팀은 지난해 8월 바티칸 문서 수장고에서 이 서한을 촬영했다고 29일 밝혔다. 제작팀은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이 유럽에 전파됐을 가능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서한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라틴어로 된 이 서한은 프랑스 아비뇽 유수기 당시 요한 22세가 쓴 것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A4 1장 정도의 분량이다. ‘존경하는 고려인들의 국왕께’로 시작하며 하나님을 잘 받들면 국가의 평안과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왕께서 그곳(고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대해 주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는 내용 등은 당시 교황청 사제들이 고려에 왔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1594년 임진왜란 때 세스페데스 스페인 신부가 한반도에 온 최초 유럽인으로 기록돼 있다. 서한 전달은 니콜라스라는 사제가 맡았는데 최종적으로 충숙왕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우광훈 감독은 “금속활자 기술이 고려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하는 가설들은 많지만 직접 증거는 없었다”면서 “유럽과 고려가 직접 교류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나온 것은 금속활자 전파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다큐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인 고려 직지심체요절(1377년 발간)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 캐나다인 데이빗 레드먼이 독일계 한국인 명사랑과 함께 유럽 5개국, 7개 도시를 돌며 금속활자의 기원을 좇는 과정을 담았다. 내년 상반기 국내 개봉 예정. 정지영 감독의 ‘아우라픽처스’가 제작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헬조선 뜻 내가 정의한다면?

    일상어(신어, 생활용어), 지역어, 전문용어, 옛말 등 100만 단어를 등재하고, 일반 국민들도 단어의 뜻풀이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단어 등록을 청원할 수 있는 개방형 국어사전이 인터넷에 개통된다. 국립국어원은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사전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을 새달 5일 개통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를테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헬조선’ 같은 단어를 등재하거나 뜻풀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꽃청춘’이나 ‘식감’처럼 방송을 통해 등장한 일부 새로운 단어들은 이미 우리말샘에 등재됐다. 이번 개방형 국어사전의 특징은 사용자가 뜻풀이·발음·방언·용례 등 어휘 정보를 더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국립국어원이 최대한 많은 실생활 단어들을 사전에 등록할 수 있게 처음으로 문호를 개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50만 단어에 신어·생활어 7만 5000단어, 지역어 9만 단어, 전문용어 35만 단어를 더해 모두 100만여 단어가 표제어로 제시된다. 반대말·높임말·비슷한 말 등 관련된 어휘를 그물망처럼 표시한 ‘어휘 지도’와 개인별 단어장, 자모·초성 등 다양한 방식의 검색 기능이 제공된다. 해당 단어가 언제, 어떤 문헌에 나타났는지 기록한 역사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처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를 걸러내기 위해 제안된 정보를 전문가가 감수하는 절차도 마련했다. 참여자 제안정보와 전문가 감수정보를 따로 보여주고 편집이력도 공개한다. 우리말샘은 기존 표준국어대사전과 별도로 운영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이 교육·언론 등 공적 언어생활의 기준을 제시한다면 우리말샘은 실생활에서 국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게 목적이다.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한국어 규범이나 표준적 쓰임을 확인하고 싶을 때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다양하고 생생한 한국어의 모습을 보려면 우리말샘을 참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은 5만여 기본 어휘를 담은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과 이 사전을 러시아어·몽골어·베트남어·스페인어·아랍어·영어·인도네시아어·일본어·태국어·프랑스어 등 10가지 외국어로 번역한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도 함께 개통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인재 경영 특집] 대림산업, 임직원 봉사활동 통해 사회적 인재 육성

    [인재 경영 특집] 대림산업, 임직원 봉사활동 통해 사회적 인재 육성

    대림은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창출한다’는 한숲정신을 인재육성에도 적용하고 있다. 대림은 이를 바탕으로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직원들의 인성을 올바르게 하고, 이를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한숲’은 대림(大林)의 순수 우리말이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은 직접 소외 계층의 주거 시설을 개선하는 ‘행복나눔’ 활동을 2005년부터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 사랑의 집짓기 연합회 서울지회와 손잡고 서울, 수도권 노후주택 밀집지역과 복지단체 시설을 개선하는 ‘사랑의 집 고치기’ 활동을 펼쳤다. 대림의 집 고치기 활동은 건설업체 직원들의 재능을 살려 도배나 장판 교체뿐만 아니라 단열작업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복지단체 시설의 경우는 휠체어를 타고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 내부를 무장애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전국의 건설현장에서는 현장 직원들로 구성된 한숲봉사대원들이 지역사회의 복지단체를 찾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대림 관계자는 “인성이 바른 직원들이 일도 잘한다”면서 “봉사활동을 통해 바르고, 사회적 책임이 있는 인재를 육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12일-토찰산 다라케 계곡으로의 짤막한 나들이  새벽 3시부턴가 시작한 허재 감독 인터뷰 기사를 끙끙대며 결국 낮 12시 조금 못돼 마쳤다.  약간 시장끼는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택시 서비스로 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 가겠다고 했더니 국경일이라 쉰단다. 이 나라 박물관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만 열거나 아니면 쉬는 날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대안이 뭐냐고 했더니 산에 가란다. 케이블카도 있고 좋댄다. 시간은 44분 걸린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결코 44분 걸릴 거리가 아니었으며 케이블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사실 가동한다고 해도 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택시가 멈출 때까지 1시간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신호만 제대로 지키면 안 그럴텐데 서로 빨리 가겠다고 우겨대니 생기는 현상이다. 또 목적지 근처에 이르자 양쪽에 차를 모두 주차해 길이 좁아 옴짝달싹 못했다. 여튼 택시에서 내렸다. 이 자리에 서 있어 안 그러면 내 손전화로 전화해 어쩌구저쩌구.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난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못하니 이런 바보들이 없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헤어질 경우에 대비해 내게 기사 전번을 적어 건넸다. 페르시아의 주인답게 아라비아 숫자 따위는 쓰지 않는데 일일이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또박또박 ´09126336256´이라고 써줬다. 처음 편도에 40만리라라고 하더니 내가 왕복한다고 하자 잠깐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돌리더니 대기시간 2시간 포함해 100만리라라고 했다. 30달러 정도의 왕복 차비에 2시간 대기가 포함됐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괜찮은 흥정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100m쯤 나아갔을까. 선글래스를 뒷좌석에 놔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땡볕이 쏟아졌다. 헐레벌떡 달려가 움직이는 차를 붙잡았더니 이 기사는 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뒷자리에서 선글래스를 꺼냈더니 그제야 ´투 아워스, 히어´라고 한다.  토찰산이다. 해발 고도 3972m로 카스피해를 넘은 구름이 부딪쳐 11월만 돼도 흰눈이 쌓인다. 스키장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다. 내가 간 곳은 다라케 계곡인데 분명 택시 서비스 아자씨는 ´다르반´이라고 했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땡볕 아래를 열심히 걸었다. 초반에 조금 무리를 했는지 숨이 차오르는 게 심상치가 않다. 제법 고산증세가 오는 듯 미식거리는 것도 같고 욕지기 같은 것도 올라오는 것 같다. 해발 2000쯤 되는 것 같았다.  여튼 간간이 하릴없는 청춘 남녀나 오래된 부부 같은 이들이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의 비율로 산을 오르내린다. 우리로 얘기하면 설악산 비선대산장과 비슷하게 절의 요사채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그 위로는 길이 흐릿하고 더군다나 푹푹 미끄러지는 자갈길이라 자칫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택시 내릴 때가 오후 2시였는데 이 마을에서 시게를 보니 3시다. 얼추 됐다. 내려간다.  내려왔다. 기사가 탄 차가 안 보인다. 선글래스를 되찾은 지점에 있나 싶어 갔더니 없어 계속 내려가다 한 호텔 앞에서 남자 둘이 노닥거리고 있길래 사정을 설명했더니 친절하게도 전화를 걸어줬다. 기사는 아마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자기도 내려온 지 얼마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 젊은이는 기사가 나보고 원래 내렸던 자리에 가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로 힙겹게 돌아 올라갔는데 또 없다. 그렇게 건너편으로 건너가 아까 호텔 앞보다 조금 더 내려간 다른 호텔 앞에서 이번에는 남녀 커플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남의 청 거절 못하게 생긴 녀석이 아 짜증나 하는 것이 분명한 여친을 달래며 전화를 건다. 여자는 내가 기분나빠 할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눈을 내리깔았다. 엄청 더운 날씨에 선 채로 전화를 걸어 기사 아저씨와 통화하니 나로선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 했다.  10분인가 20분쯤 뒤에 감격의 상봉을 했는데 이 기사는 또 2시간 전에 헤어진 내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 틀림없다. 연신 자기가 딱 두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조금 늦었다고 미안해 한다. 아니 웬걸, 난 괜찮은데. 오케이 소리를 열번 이상 외친 것 같은데 그는 호텔에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쏘리쏘리를 해댄다. 속으로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팁이라도 좀 내놔 할까봐 나름 조마조마했는데 그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날 돌아보며 손을 꼭 잡으며 굿데이를 외쳐댔다.  씻고 침대에 누워 개기작거리다 오후 7시 식당에 갔더니 중국인 셋이 저녁을 먹고 있다. 내가 자리에 앉고 조금 이따 일본인 심판들이 들어와 한중일 삼국지가 다시 펼쳐졌다.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는 일하면서 먹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며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오후 8시 시작한 카타르와의 경기를 그와 함께 취재했다. 마침 한국인 응원단이 옆 자리에 있길래 경기장 이름이 왜 ´1만 2000´이냐고 물었다. 교민 네 분이 계셨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고 옆의 이란인 친구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그만한 숫자가 들어와서 그런다고 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 좌석에 그많은 숫자가 앉을 수 있느냐고 캐물었더니 교민들은 “이 나라에서 그렇게 따지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라고 설명해 “아 네”라고 답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30분쯤이었다. 동료 혼자 식사하겠다고 해 헤어져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이란의 척박하지만 나름 매력있는 산자락을 밟아본 행복한 하루였다.  13일-돌아오는 날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아보다  새벽 4시 눈을 떴다. 양호하다. 어제 밤 10시 50분쯤 잠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잤다. 발제하고 기사 쓰고 간간이 카톡 주고받으니 6시반쯤 됐다.  동료와 마지막 아침을 함께 먹는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간다고 하니까 한참 검색한다. 결론적으로 여기는 아주 찾기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근처에 볼만한 라이브러리나 뮤지엄이 너무 많아서다. 모두 그게 그거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길 물어본 어느 인간이 얘기해준다. 택시는 부러 내리기 좋은 곳을 찾아 뱅뱅 돌며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방향 감각 없는 듯 이 사람 저 사람 라이브러리 안내하는 게 달라 혼란스럽다.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특정 단어만 꽂혀 안내하는 듯햇다. 예를 들어 라이브러리면 라이브러리, 뮤지엄이면 뮤지엄 한 단어에만 꽂히는 듯  결국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남자가 따라오라고 해 내셔널 뮤지엄 오브 이란 티켓 창구 바로 앞 라이브러리를 알려준다. 한 중늙은이,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셋이 앉아 수다 떨다가 웬 동양 떨거지가 이런 데도 다 오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엔사이클로피디아 등 장서의 다양함이나 섹션 분류가 모두 훌륭하다. 사람의 손길을 잘 탔다. 특히 2층은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첫눈에 봐도 오래된 책들이어서 호기심은 발동했지만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이런 때 써먹게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싶었다. 책의 향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며 이왕 내셔널 뮤지엄에 들를 계획이라면 공짜이고 이슬람 책 사랑의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강추할 만했다.  티켓 창구에서 20만리라-이슬람 시대, 30만리라-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두 종류가 있길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뭐 이런 바보같은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으로 당연히 30만리라를 추천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 다음에 테헤란 들를 일 있으면 당연히 이슬람시대를 추가로 보겠지만.  선사 유적지 발굴 현장과 비화 등을 사진과 상상도 등으로 흥미롭게 꾸며놓았고 전시된 물품의 다양성이 뛰어나다. 페르시아 문명의 독창성, 풍부함을 느끼기에 손색 없었고 특히 이 뮤지엄의 1호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다리우스 황제 즉위식 부조는 정말 한번은 꼭 볼만하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는데 1층이 조금 나중, 다시 말해 청동기와 철기이고 2층이 선사시대라 2층 먼저 보고 1층 내려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푹 빠져볼 만했다. 뮤지엄 나와 길 건너편 분수대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이어 방향도 모른 채 의자상가, 전자기기 상가 등을 헤매며 과자 사고 과일 샀다. 과자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과자였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꽤 괜찮았다. 과일 장수는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 고려의 문물 교류에 대해 흥미있다며 한국인과의 만남, 특히 농구대회를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와 얘기를 나눈다는 데 대해 많이 들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즐거운 쇼핑을 했다.  슈퍼 바로 나와 택시를 탔다. 타고 나니 이 동네가 완전 청과상 골목이다. 꼭 뭐를 찾다가 어쩔 수 없이 하급품으로 만족하면 좋은 것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역시 올림픽 호텔 하니 못 알아듣고 올람픽 호텔이라고 하니까 급반색, 40만리라쯤 나올 거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한 번 길을 묻고 도착한 뒤 미터기를 보니 31만리라쯤이었다. 10만 짜리 석 장 건네고 소액권 찾았더니 관두란다, 나름 길을 돌았다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것 같았다.  낮 12시 15분쯤 호텔에 도착해 일행에게 과자랑 과일 한 보따리 넘기고 작별 인사하고 체크아웃, 택시 서비스로 가 신청했더니 80만리라, 엄청 비싸다니까 공항이 완전 외곽에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멀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느낌,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고, 황무지도 그런 황무지가 없다. 테헤란에 불어오는 모래바람, 전날 밤 호텔에 돌아가면서 봤던 다운타운 상공을 뒤덮은 연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도로변 수박을 쪼개 파는 사람들, 참 힘들게 먹고 산다.  1시 조금 넘어 공항 도착해 체크하고 짐 부치고 과자 사고 캐셔는 유로로 계산해 신용카드 결제하려다 여의치않아힘들어 하길래 달러로 하겠다고 했더니 급반색, 100만리라가 넘었던 것 같은데 35달러라고 해서 50달러와 5달러 건네고 20달러 돌려달라고 했더니 계산 해보고 또 해보고, 애들 참 암산 같은 것 못한다.  카페 가면 와이파이 쓸 수 있을까 해서 커피 사먹으려는데 4달러란다. 웬 과자 봉지 둘을 건네길래 커피는 어디있느냐, 이래갖고 커피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니까 씩 웃으며 저쪽 가면 커피준댄다. 진작 얘기했으면 그렇게 정색하고 따지지 않았을텐데.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니 다 모른댄다. 이 가게 종업원들인데 그런다. 누가 아느냐니까 밑에 어느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 가보랜다. 그야말로 구걸을 하라는 얘긴데 커피맛이 좋고 과자맛도 좋아 용서해준다. 과자는 하이바이-HIBYE, 세상에 과자 이름이 독창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과연 무슨 뜻에서 붙인 이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투박한 모양치고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시간은 정말 후딱 흘렀다. 어느 순간 불현듯 시계를 보니 얼추 보딩 시간이 가까워온다. 서둘러 비행기를 탔더니 에어버스인데 거진 사람들이 다 앉아, 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우리가 못 가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게중에는 정말 태어나서 동양인 50대 남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중동 촌놈들이 상당수 있다. 어느 눈 큰 여자도 지 옆에 남자가 찰싹 달라붙어 시종 뭐라고 촐삭대는데도 날 노골적으로 할끔거린다. 이래도 되냐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도대체 어느 언어로 쏘아붙여야 통쾌한 반응을 얻어낼지 자신이 안 서 참았다.  내가 앉고도 20명 정도, 특히 맨 마지막 나타난 190cm에 100kg는 돼 보이는 잘 생긴 40대-이 녀석은 도대체 국적을 가늠할 수가 없다. 생긴 건 할리우드 톱클래스인데 늦어서 마구 뛰었는지 땀을 연신 훔치며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5분쯤 지나자 그제야 비행기가 움직인다.  점심도 안 먹고 커피 한 잔에 과자 두 개 주워 삼키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정말 이란 떠난 기념으로 와인이나 맥주 있냐고,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또 물었다. 역시나 없단다. 그냥 물달라고 해서 반쯤 남겼다가 양치에 쓰려고 아꼈다.  통로 건녀편 여자가 또 할끔거리다 이제는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남정네는 잠에 골아떨어졌다. 쯔쯔.  이스탄불에 오후 6시 내려 나갈까 말까 고민 한참 했다. 문제는 석양이었다. 낮시간이라면 황홀한 이스탄불 풍광을 즐기기 위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수속 받고 나가면 6시반, 어두워지기까지 90분, 이동하면 끝, 보스포러스 크루즈 탈까 했는데 그것도 너무나 많은 변수-예를 들어 쉬는 날일 수도 있고, 예약자가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테러나 강도당하거나 아니면 봉변 당할 수도 있으니  그냥 공항에 있기로 했다. 공항 내리니 역시나 사람 천지다. 휴대폰 충전하고 약 1시간 남짓 이 여행기를 대충 적었다.  와이파이 연결하려 했더니 위클리 120분이었단다. 7일 새벽에 사용했는데 13일 오후니 기간 만료라는 얘기다. 당시는 분명 원데이 120분이라고만 했던 것 같은데. 불편한 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는데 환승 공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도대체 잠이 들 수가 없다. 어디나 사람이 많다. 저녁 시간 이 공항에 도착해 6시간 이상 환승해야 한다면 반드시 바깥 바람을 코에 불어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란 여행기를 갈무리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취재 틈틈이 엿본 이 나라도 모순 투성이다. 반미 운동의 기지와 같은 곳이었지만 길거리에 영어 좀 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유럽 어느 여인네 못지 않게 명품 선글래스를 차도르나 히잡과 함께 보여주는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모른다.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남자와 찰싹 달라붙어 대화를 나누는 여성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어렵지 않게 앞 자동차와 추돌하며 주차한 차들을 볼 수 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나라에 멋진 분수와 나무들 사이로 지하수들이 흐른다. 길 한복판에서 달러화를 중개하느라 목청껏 소리지르는, 마치 뉴욕 증권거래소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도 충격적이었다. 한대 맞을까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지 못했는데 적잖이 후회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향기를 품은 많은 박물관들, 나중에 세계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테헤란 근교의 토찰산 너머 카스피해 쪽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데 돌아봐야겠다. 출장이라 아스파한이나 페르세폴리스 같은 고대 유적 도시들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색다른 매력으로 반짝이는 이란을 다시 찾을 날이 올 것이다. 글 사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과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테헤란 여행기 3] 토찰산 트레킹과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다

    ◆12일 토찰산 다라케 계곡으로의 짤막한 나들이 새벽 3시부턴가 시작한 허재 감독 인터뷰 기사를 끙끙대며 결국 낮 12시 조금 못돼 마쳤다. 약간 시장끼는 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택시 서비스로 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 가겠다고 했더니 국경일이라 쉰단다. 이 나라 박물관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만 열거나 아니면 쉬는 날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대안이 뭐냐고 했더니 산에 가란다. 케이블카도 있고 좋댄다. 시간은 44분 걸린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결코 44분 걸릴 거리가 아니었으며 케이블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사실 가동한다고 해도 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택시가 멈출 때까지 1시간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신호만 제대로 지키면 안 그럴텐데 서로 빨리 가겠다고 우겨대니 생기는 현상이다. 또 목적지 근처에 이르자 양쪽에 차를 모두 주차해 길이 좁아 옴짝달싹 못했다. 여튼 택시에서 내렸다. 이 자리에 서 있어 안 그러면 내 손전화로 전화해 어쩌구저쩌구.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난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못하니 이런 바보들이 없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헤어질 경우에 대비해 내게 기사 전번을 적어 건넸다. 페르시아의 주인답게 아라비아 숫자 따위는 쓰지 않는데 일일이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또박또박 ‘09126336256’이라고 써줬다. 처음 편도에 40만리라라고 하더니 내가 왕복한다고 하자 잠깐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돌리더니 대기시간 2시간 포함해 100만리라라고 했다. 30달러 정도의 왕복 차비에 2시간 대기가 포함됐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괜찮은 흥정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100m쯤 나아갔을까. 선글래스를 뒷좌석에 놔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땡볕이 쏟아졌다. 헐레벌떡 달려가 움직이는 차를 붙잡았더니 이 기사는 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뒷자리에서 선글래스를 꺼냈더니 그제야 ‘투 아워스, 히어’라고 한다. 토찰산이다. 해발 고도 3972m로 카스피해를 넘은 구름이 부딪쳐 11월만 돼도 흰눈이 쌓인다. 스키장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다. 내가 간 곳은 다라케 계곡인데 분명 택시 서비스 아자씨는 ‘다르반’이라고 했다.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땡볕 아래를 열심히 걸었다. 초반에 조금 무리를 했는지 숨이 차오르는 게 심상치가 않다. 제법 고산증세가 오는 듯 미식거리는 것도 같고 욕지기 같은 것도 올라오는 것 같다. 해발 2000쯤 되는 것 같았다. 여튼 간간이 하릴없는 청춘 남녀나 오래된 부부 같은 이들이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의 비율로 산을 오르내린다. 우리로 얘기하면 설악산 비선대산장과 비슷하게 절의 요사채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그 위로는 길이 흐릿하고 더군다나 푹푹 미끄러지는 자갈길이라 자칫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택시 내릴 때가 오후 2시였는데 이 마을에서 시게를 보니 3시다. 얼추 됐다. 내려간다. 내려왔다. 기사가 탄 차가 안 보인다. 선글래스를 되찾은 지점에 있나 싶어 갔더니 없어 계속 내려가다 한 호텔 앞에서 남자 둘이 노닥거리고 있길래 사정을 설명했더니 친절하게도 전화를 걸어줬다. 기사는 아마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자기도 내려온 지 얼마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 젊은이는 기사가 나보고 원래 내렸던 자리에 가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로 힙겹게 돌아 올라갔는데 또 없다. 그렇게 건너편으로 건너가 아까 호텔 앞보다 조금 더 내려간 다른 호텔 앞에서 이번에는 남녀 커플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남의 청 거절 못하게 생긴 녀석이 아 짜증나 하는 것이 분명한 여친을 달래며 전화를 건다. 여자는 내가 기분나빠 할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눈을 내리깔았다. 엄청 더운 날씨에 선 채로 전화를 걸어 기사 아저씨와 통화하니 나로선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 했다. 10분인가 20분쯤 뒤에 감격의 상봉을 했는데 이 기사는 또 2시간 전에 헤어진 내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이 틀림없다. 연신 자기가 딱 두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조금 늦었다고 미안해 한다. 아니 웬걸, 난 괜찮은데. 오케이 소리를 열번 이상 외친 것 같은데 그는 호텔에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쏘리쏘리를 해댄다. 속으로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팁이라도 좀 내놔 할까봐 나름 조마조마했는데 그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날 돌아보며 손을 꼭 잡으며 굿데이를 외쳐댔다. 씻고 침대에 누워 개기작거리다 오후 7시 식당에 갔더니 중국인 셋이 저녁을 먹고 있다. 내가 자리에 앉고 조금 이따 일본인 심판들이 들어와 한중일 삼국지가 다시 펼쳐졌다.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는 일하면서 먹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며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오후 8시 시작한 카타르와의 경기를 그와 함께 취재했다. 마침 한국인 응원단이 옆 자리에 있길래 경기장 이름이 왜 ‘1만 2000’이냐고 물었다. 교민 네 분이 계셨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고 옆의 이란인 친구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그만한 숫자가 들어와서 그런다고 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 좌석에 그많은 숫자가 앉을 수 있느냐고 캐물었더니 교민들은 “이 나라에서 그렇게 따지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라고 설명해 “아 네”라고 답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30분쯤이었다. 동료 혼자 식사하겠다고 해 헤어져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이란의 척박하지만 나름 매력있는 산자락을 밟아본 행복한 하루였다. ◆13일 돌아오는 날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설핏 맡아보다 새벽 4시 눈을 떴다. 양호하다. 어제 밤 10시 50분쯤 잠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잤다. 발제하고 기사 쓰고 간간이 카톡 주고받으니 6시반쯤 됐다. 동료와 마지막 아침을 함께 먹는다. 택시 서비스 아자씨가 말렉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간다고 하니까 한참 검색한다. 결론적으로 여기는 아주 찾기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근처에 볼만한 라이브러리나 뮤지엄이 너무 많아서다. 모두 그게 그거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길 물어본 어느 인간이 얘기해준다. 택시는 부러 내리기 좋은 곳을 찾아 뱅뱅 돌며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방향 감각 없는 듯 이 사람 저 사람 라이브러리 안내하는 게 달라 혼란스럽다.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특정 단어만 꽂혀 안내하는 듯햇다. 예를 들어 라이브러리면 라이브러리, 뮤지엄이면 뮤지엄 한 단어에만 꽂히는 듯. 결국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남자가 따라오라고 해 내셔널 뮤지엄 오브 이란 티켓 창구 바로 앞 라이브러리를 알려준다. 한 중늙은이,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셋이 앉아 수다 떨다가 웬 동양 떨거지가 이런 데도 다 오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엔사이클로피디아 등 장서의 다양함이나 섹션 분류가 모두 훌륭하다. 사람의 손길을 잘 탔다. 특히 2층은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첫눈에 봐도 오래된 책들이어서 호기심은 발동했지만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이런 때 써먹게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싶었다. 책의 향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며 이왕 내셔널 뮤지엄에 들를 계획이라면 공짜이고 이슬람 책 사랑의 편린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강추할 만했다. 티켓 창구에서 20만리라-이슬람 시대, 30만리라-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두 종류가 있길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뭐 이런 바보같은 놈이 다 있냐 하는 표정으로 당연히 30만리라를 추천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 다음에 테헤란 들를 일 있으면 당연히 이슬람시대를 추가로 보겠지만. 선사 유적지 발굴 현장과 비화 등을 사진과 상상도 등으로 흥미롭게 꾸며놓았고 전시된 물품의 다양성이 뛰어나다. 페르시아 문명의 독창성, 풍부함을 느끼기에 손색 없었고 특히 이 뮤지엄의 1호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다리우스 황제 즉위식을 묘사한 부조 ‘알현’은 정말 한번은 꼭 볼만하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는데 1층이 조금 나중, 다시 말해 청동기와 철기이고 2층이 선사시대라 2층 먼저 보고 1층 내려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푹 빠져볼 만했다. 뮤지엄 나와 길 건너편 분수대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이어 방향도 모른 채 의자상가, 전자기기 상가 등을 헤매며 과자 사고 과일 샀다. 과자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과자였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꽤 괜찮았다. 과일 장수는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 고려의 문물 교류에 대해 흥미있다며 한국인과의 만남, 특히 농구대회를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와 얘기를 나눈다는 데 대해 많이 들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즐거운 쇼핑을 했다. 슈퍼 바로 나와 택시를 탔다. 타고 나니 이 동네가 완전 청과상 골목이다. 꼭 뭐를 찾다가 어쩔 수 없이 하급품으로 만족하면 좋은 것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역시 올림픽 호텔 하니 못 알아듣고 올람픽 호텔이라고 하니까 급반색, 40만리라쯤 나올 거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한 번 길을 묻고 도착한 뒤 미터기를 보니 31만리라쯤이었다. 10만 짜리 석 장 건네고 소액권 찾았더니 관두란다, 나름 길을 돌았다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것 같았다. 낮 12시 15분쯤 호텔에 도착해 일행에게 과자랑 과일 한 보따리 넘기고 작별 인사하고 체크아웃, 택시 서비스로 가 신청했더니 80만리라, 엄청 비싸다니까 공항이 완전 외곽에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멀었다. 한도 끝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느낌,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고, 황무지도 그런 황무지가 없다. 테헤란에 불어오는 모래바람, 전날 밤 호텔에 돌아가면서 봤던 다운타운 상공을 뒤덮은 연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1시 조금 넘어 공항 도착해 체크하고 짐 부치고 과자 사고 캐셔는 유로로 계산해 신용카드 결제하려다 여의치않아힘들어 하길래 달러로 하겠다고 했더니 급반색, 100만리라가 넘었던 것 같은데 35달러라고 해서 50달러와 5달러 건네고 20달러 돌려달라고 했더니 계산 해보고 또 해보고, 애들 참 암산 같은 것 못한다. 카페 가면 와이파이 쓸 수 있을까 해서 커피 사먹으려는데 4달러란다. 웬 과자 봉지 둘을 건네길래 커피는 어디있느냐, 이래갖고 커피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니까 씩 웃으며 저쪽 가면 커피준댄다. 진작 얘기했으면 그렇게 정색하고 따지지 않았을텐데.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니 다 모른댄다. 이 가게 종업원들인데 그런다. 누가 아느냐니까 밑에 어느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 가보랜다. 그야말로 구걸을 하라는 얘긴데 커피맛이 좋고 과자맛도 좋아 용서해준다. 과자는 하이바이-HIBYE, 세상에 과자 이름이 독창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게 과연 무슨 뜻에서 붙인 이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투박한 모양치고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시간은 정말 후딱 흘렀다. 어느 순간 불현듯 시계를 보니 얼추 보딩 시간이 가까워온다. 서둘러 비행기를 탔더니 에어버스인데 거진 사람들이 다 앉아, 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우리가 못 가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게중에는 정말 태어나서 동양인 50대 남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중동 촌놈들이 상당수 있다. 내가 앉고도 20명 정도, 특히 맨 마지막 나타난 190cm에 100kg는 돼 보이는 잘 생긴 40대-이 녀석은 도대체 국적을 가늠할 수가 없다. 생긴 건 할리우드 톱클래스인데 늦어서 마구 뛰었는지 땀을 연신 훔치며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5분쯤 지나자 그제야 비행기가 움직인다. 점심도 안 먹고 커피 한 잔에 과자 두 개 주워 삼키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정말 이란 떠난 기념으로 와인이나 맥주 있냐고,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또 물었다. 역시나 없단다. 그냥 물달라고 해서 반쯤 남겼다가 양치에 쓰려고 아꼈다. 이스탄불에 오후 6시 내려 나갈까 말까 고민 한참 했다. 문제는 석양이었다. 낮시간이라면 황홀한 이스탄불 풍광을 즐기기 위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수속 받고 나가면 6시반, 어두워지기까지 90분, 이동하면 끝, 보스포러스 크루즈 탈까 했는데 그것도 너무나 많은 변수-예를 들어 쉬는 날일 수도 있고, 예약자가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테러나 강도당하거나 아니면 봉변 당할 수도 있으니 그냥 공항에 있기로 했다. 공항 내리니 역시나 사람 천지다. 휴대폰 충전하고 약 1시간 남짓 이 여행기를 대충 적었다. 와이파이 연결하려 했더니 위클리 120분이었단다. 7일 새벽에 사용했는데 13일 오후니 기간 만료라는 얘기다. 당시는 분명 원데이 120분이라고만 했던 것 같은데. 불편한 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는데 환승 공항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도대체 잠이 들 수가 없다. 어디나 사람이 많다. 저녁 시간 이 공항에 도착해 6시간 이상 환승해야 한다면 반드시 바깥 바람을 코에 불어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란 여행기를 갈무리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취재 틈틈이 엿본 이 나라도 모순 투성이다. 반미 운동의 기지와 같은 곳이었지만 길거리에 영어 좀 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유럽 어느 여인네 못지 않게 명품 선글래스를 차도르나 히잡과 함께 보여주는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모른다.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남자와 찰싹 달라붙어 대화를 나누는 여성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어렵지 않게 앞 자동차와 추돌하며 주차한 차들을 볼 수 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나라에 멋진 분수와 나무들 사이로 지하수들이 흐른다. 길 한복판에서 달러화를 중개하느라 목청껏 소리지르는, 마치 뉴욕 증권거래소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도 충격적이었다. 한대 맞을까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지 못했는데 적잖이 후회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향기를 품은 많은 박물관들, 나중에 세계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테헤란 근교의 토찰산 너머 카스피해 쪽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데 돌아봐야겠다. 출장이라 아스파한이나 페르세폴리스 같은 고대 유적 도시들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색다른 매력으로 반짝이는 이란을 다시 찾을 날이 올 것이다. 글·사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삼천리, 상생 위한 자원봉사 눈길

    삼천리, 상생 위한 자원봉사 눈길

     삼천리는 사회적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기 위해 정기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삼천리 사내 자원봉사팀 ‘너나들이’는 2008년부터 매월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지적장애 등을 가진 장애 아동·청소년들과 수도권 인근에서 야외체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너나들이란 ‘서로 너니 나니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는 뜻을 지닌 순 우리말로, 소외계층에게 다가가 함께 온정을 나누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삼천리는 또 국내 최대 도시가스 기업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어려운 이웃의 가스안전을 위해 노후 가스시설을 무상 점검·보수·교체해주는 ‘가스안전 사랑나눔’ 활동도 하고 있다.  특히 고 이천득 삼천리 부사장과 이만득 삼천리 회장 형제가 사재를 출연해 1987년 설립한 ‘천만장학회’를 통해 총 1842명의 장학생에게 52억여원의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아울러 삼천리그룹 임원 부인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모임을 결성해 아동양육시설과 한센인 시설에서 정기적으로 환경정화활동과 김장 담그기를 진행하는 ‘임원부인회 봉사활동’ 등도 하고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삼천리 스포츠단’을 통해 홍란, 배선우, 윤선정, 박지연, 최이진 등 프로골퍼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 글씨 본뜬 ‘외솔체’ 만든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 글씨 본뜬 ‘외솔체’ 만든다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의 글씨를 본뜬 ‘외솔체’가 개발된다. 울산 중구는 ‘한글 도시’의 위상에 걸맞은 한글 전용 서체를 만든다고 18일 밝혔다. 한글 전용 서체는 울산 출신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이 남긴 서체를 본떠 제작할 예정이다. 최현배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됐고, 한글 가로쓰기 연구에 매진했다. ‘우리말 큰 사전’과 ‘우리말본’, ‘조선민족 갱생의 도’, ‘한글갈’ 등 주요 학술서를 썼고 친필 글씨는 병영삼일사 비문 원고, 삼일사 노래 가사 원고, 손자·손녀에게 보낸 편지 등에 남아 있다. 선생의 글씨는 작고 가늘지만 힘이 느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구는 선생의 글씨 중 보기 좋고 읽기 좋은 특정 글자를 골라 글씨체를 만드는 방안과 가로획이나 세로획을 따서 다른 글씨체와 연계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선생이 참여해 개발한 ‘외솔타자기’ 활자를 복원, 활용하는 방법도 검토한다. 내년 상반기 외솔체 개발 연구용역을 맡겨 8월쯤 개발을 완료해 공문서, 시설안내표지, 버스노선 안내도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외솔체를 무료 배포해 많은 주민이 이용하게 할 방침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강진 순간에 지상파는 드라마…시청자 “속이 뒤집어진다”

    강진 순간에 지상파는 드라마…시청자 “속이 뒤집어진다”

    국내 최대 규모인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해 국민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정규방송을 그대로 내보내고, 뒤늦게 이어진 재난보도마저 허술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3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12일 오후 7시 44분 규모 5.1로 처음 발생한 데 이어 50여분 뒤인 오후 8시 32분 규모 5.8로 더 커졌다. 주민들이 머물던 아파트에서 뛰쳐나와 갈팡질팡하고 있는 시간에 방송사들 가운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재난보도로 긴급 전환한 곳은 없었으며 대부분이 정규방송을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방송 중간에 뉴스특보를 끼워 넣긴 했지만 TV를 통해 지진 대피요령 등에 대한 정보를 갈구하고 있던 시청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던 방송사들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인 KBS 1TV는 1차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우리말 겨루기’를 방송한 데 이어 8시 25분부터 일일연속극 ‘별난 가족’을 그대로 내보냈다. MBC TV는 오후 8시쯤부터 ‘뉴스데스크’를 방송했지만 9번째 뉴스로 지진 소식을 처음 전한 뒤 후반에 지진 뉴스를 추가했다. 이어 오후 9시부터는 일일드라마 ‘워킹맘육아대디’를 예정대로 방송하다 9시 32분부터 뒤늦게 지진에 대한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SBS TV는 오후 8시부터 시작한 ‘8시 뉴스’에서 4번째 뉴스에서 지진 소식을 전했다가 후반에 뉴스를 추가했다. 이어 9시부터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을 그대로 방송했다.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이날 밤 늦은 시간을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으로 채웠다. TV조선, 채널A, MBN, JTBC 등 종편 채널들은 지진 발생 당시 정규 뉴스를 내보냈으나 JTBC를 제외하고는 지진 소식을 신속하게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청자들은 대부분의 방송사가 이번 강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한가하게 드라마 등 정규방송을 내보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누리꾼인 ‘MY WAY’는 “국민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공영방송은 여유롭게 연속극만 내보내 속이 뒤집어진다”는 댓글을 관련 기사에 남겼다. 네이버 아이디 ‘kim6****’는 “지진 때문에 겁에 질려 TV를 켰더니 KBS는 여전히 드라마만 보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jack****’는 “부산에 사는데 7시40분경 지진 나고 10분 뒤에 전화 문자 보니 지진 났으니 주의하라고 했다”며 “불안해 TV를 틀어봐도 죄다 드라마, 예능이고 자막만 나오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음 아이디 ‘안녕아프리카’는 “도대체 공중파 3사는 재난 상황에서 이래도 되는 거냐”며 “세월호 때도 그러더니”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네이버 누리꾼 ‘coli****’는 “정규방송 그만하고 재난방송 좀 하라”며 “수도권이 멀쩡하면 재난 아닌지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며 수도권 중심의 보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kald****’는 “1차 5.1의 강진에 국민이 떨고 있었을 때 바로 드라마 끊고 재난방송을 보냈어야 옳았다”며 “그렇게 했으면 뒤이어 5.9의 강진이 왔을 때 덜 우왕좌왕했을 것이고 미리 준비라도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집이 흔들려 가구와 식기들이 깨지는 것을 목격한 국민이 무서움에 비명을 지르며 비 오는 거리로 도망치듯 거리로 뛰어나와 떨고 있는데 국민이 드라마보다 못했는가? 그래서 화면 하단에 자막 넣는 것으로 재난방송을 다했다고 말하는가?”라고 물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아대 ‘2016 부산 사투리 노래자랑 대회’ 개최

    동아대 ‘2016 부산 사투리 노래자랑 대회’ 개최

    동아대가 부산지역 언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보존하기 위한 ‘2016 부산 사투리 노래자랑 대회’인 ‘어서 오이소! 사투리 한번 들어보입시더’를 다음 달 9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이 대회는 동아대 국어문화원(원장 김영선)이 올해 처음 여는 대회로, 지난 2년간 개최했던 ‘부산 사투리 뽐내기’에 변화를 줘 재미와 참여도를 높였다. 개인이나 팀별로 참가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가사를 부산 사투리로 개사해 직접 노래를 불러야 한다. 전 가사를 사투리로 개사할 필요는 없지만 활용도가 높을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다. 평가요소는 개사의 창의성, 사투리 사용의 적합성, 무대 매너 및 관객 호응도 등으로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상장을 비롯한 상금 70만원, 우수상·장려상·인기상은 각각 50만, 30만, 20만원을 부상으로 받는다.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동아대 국어문화원 홈페이지(kor.donga.ac.kr)에서 참가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 국립문화원 이메일(kor2016dau.ac.kr)로 오는 26일 낮 12시까지 제출하고 국어문화원(051-200-7180)으로 전화 확인하면 된다. 예선은 다음 달 3일, 본선은 9일이며, 총 10개 팀이 본선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밖에 국어문화원은 올바른 언어사용을 위한 ‘제3회 아름다운 우리말 되살리기 UCC 공모전’도 연다. 개인 또는 팀이 ‘방송 통신 용어, 청소년 언어순화’, ‘아름다운 순우리말 또는 재미있는 사투리 소개’ 중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해 아름답고 재미있는 우리말을 3분 내 영상으로 소개하면 된다. 상금은 50만, 30만, 20만원이다. 참여 방식은 사투리 대회와 동일하며, 다음 달 7일까지 접수하면 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新전원일기] 철학을 심고 삶을 일군다…욕심 버리고 생명 키운다 …속도 줄이고 느리게 걷자

    [新전원일기] 철학을 심고 삶을 일군다…욕심 버리고 생명 키운다 …속도 줄이고 느리게 걷자

    귀농이나 귀촌, 생태운동이나 자연농법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추천하는 ‘최고의 귀농 바이블’이 바로 일본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이다.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을 실천하는 완전 자연농법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 책을 번역한 최성현(60) 작가는 무려 30년째 귀농 생활을 해 온 자급농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전 세계 16개국 언어로 번역돼 자연주의자들의 귀감이 됐고, 지금까지도 ‘자연에 가장 해를 덜 끼치면서 인간 스스로에게도 가장 이로운 농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는 친구의 추천을 통해 생태적 귀농의 또 다른 대부라 할 수 있는 야마오 산세이의 ‘더 바랄 게 없는 삶’, ‘어제를 향해 걷다’를 읽으며 ‘과연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번역자가 누굴까’ 하고 궁금해했다. 그리고 지난주 그를 만났다. 그는 충북 제천 산골에서 홀로 지내며 자연농법을 실험하다가 지금은 가정을 이루어 강원 홍천에서 3대가 함께 사는 귀농 생활의 주인공이 됐다.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와 어머니께서 풍성한 시골 밥상을 그득하게 차려 놓으신 채 기다리고 계셨다. 때아닌 진수성찬을 얻어먹으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알고 보니 최씨 부부는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통해 작가와 독자의 인연으로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최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지구학교’를 열어 지금까지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 온 자연농법의 기술을 가르친다. 지구학교는 커다란 건물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원두막에서 자연과 벗하며 최씨가 자연농법을 배우는 살아 있는 귀농 멘토링 장소다. 그는 ‘쥐구멍에 볕들이기’라는 정감 어린 이름의 모임도 함께 운영하며 ‘경청’을 유일한 원칙으로 삼아 그 누구도 서로에게 갑질을 하지 않는 완전한 평등을 추구하는 소통과 놀이문화도 실험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00% 책의 영향이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이다. 내게는 복음서였다. 그만큼 강력했다. 1988년 3월에 충북 제천으로 귀농했다. 마을과 3㎞ 정도 떨어진 산속이었다. 집 한 채가 있을 뿐인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2007년 무렵 제천시가 새로 제정한 문화·관광 개발 지역에 그곳이 포함돼 됐다. 떠나야 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제3의 터전을 찾을 생각이었다. 부부간에 긴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 내 고향을 사원으로 삼기로 했다. →보통 귀농 하면 도시 생활의 염증 때문에, 복잡하고 비정한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안티 도시’로서의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최성현 농가의 귀농은 좀 다르다. -그것도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 준 영향 때문이다. 그 책을 읽은 뒤로 나는 누굴 만나나 자연농법을 이야기했다. 그 얘기밖에 할 줄 몰랐다. 그렇게 길이 정해졌다. 높은 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게 내버려 두고, 나는 바닥에서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을 하며, 철학을 연구하고, 시를 짓고 싶었다. 그게 가장 좋다고 그 책은 나에게 아주 강력하게 말했다.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후쿠오카의 말에 나는 100% 공감했다. →주로 어떤 농작물을 어떤 농법으로 기르고 있는지, 올해 폭염 때문에 힘들진 않았나. -1000평 정도의 땅에 주곡인 벼농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콩, 수수, 녹두, 팥, 옥수수, 보리, 호밀과 같은 잡곡 농사도 하고 있다. 감자, 고구마, 야콘, 땅콩, 배추, 무, 파, 오이, 호박, 고추, 부추, 들깨, 수박, 참외, 오크라, 딸기, 가지, 토마토, 옥수수, 토란 등이 있고, 산야초나 과일나무도 있다. 처음엔 땅이 황폐했다. 화학비료와 트랙터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밭이라 땅이 기력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연농법을 실현한 지 5~6년 만에 그동안 떠났던 수많은 벌레들, 풀들, 동물들이 돌아오며 땅이 살아났다. 땅이 웃음을 찾게 된 것이다. 땅을 갈지 않기 때문에 물을 더럽히지 않는다. 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땅을 더럽히지 않는다. 풀 두고 가꾸기를 하기 때문에 지구의 열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자연농법은 가뭄에 강하다. 모든 논과 밭이 풀과 풀의 잔사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병충해에도 강하다. 벌레를 죽이는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천적들이 알아서 균형 있는 생태계를 유지한다. →농사 수익은 어느 정도인가. -완전 자급농이다. 상업적으로 농산물을 내다 파는 것이 거의 없다. 가족들 먹고사는 것이 풍족하지 않지만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어서 좋다. →농촌에서 가정을 꾸려 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가사노동 분담은 어떻게 하나. -아내와 어머니가 계시기에 요리는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 설거지를 할 뿐이다. 쓰레기통 비우기와 분리 배출은 늘 내가 한다. 청소도 하고 그러지만 어머니나 아내가 보기에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우리 애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이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튼튼한 몸, 둘째는 책 읽는 버릇이다. 우리 부부는 그걸 돕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도 아이에게 좋다. 그리고 혼자서도 자연농법으로 논밭 농사를 해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자연농법은 정말 좋다. 인류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 아이 인생에 자연농법을 선물로 주고 싶다. →‘오래 봐야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에 보면 살아오면서 느낀 자연의 가르침, 일상의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귀농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라면. -만약 귀농을 하지 않고, 일이 잘 풀렸다면 지금쯤 대학의 철학 선생이 돼 있을 것이다.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지만 대학 바깥은 바깥대로 좋다.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워 좋다. 아무도 연구비를 주지 않는 건 아쉽지만(웃음). 인류는 현재 지구를 파괴하는 부끄러운 방식으로 밥상을 차리고 있다. 인류의 농업은 환경 파괴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나는 그 길을 찾고 있다. 씨앗을 뿌리며, 논둑을 거닐며…. 그 길에서 찾은 새로운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생태적인 비전을 꿈꾸는 지구학교는 어떤 곳인가. -인류는 인류라는 우물에 갇혀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로 살고 있다. 우물에서 나와 지구에서 보면 인류는 큰 벌레다. 무서운 속도로 숫자가 늘어나고 있고, 경악스러운 속도로 지구를 먹어치우고 있다. 앞날이 걱정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탈이 날게 분명하다. 자연농법은 현재까지 인류가 찾아낸 가장 지구에 좋은 길이다. 거기서 출발하자는 게 지구학교다. 교재는 나의 논밭이다. 자연농법의 철학과 실제를 배운다. 3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한 번 모인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인다. 고등학교 학생, 무직자, 가정주부, 종교인, 회사원부터 정년 퇴직 대학 교수까지 다양하다. 30대가 가장 많다. →귀농·귀촌을 준비하거나 꿈꾸고 계신 분들께 조언을 해 준다면. -세상에서, 혹은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먹는 것을 먹고,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살아도 좋다고 여기는 자리까지 가면 좋다. 그것이 편하고 미래도 밝다. 환경과 나는 하나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나와 나 아닌 것은 하나다. 나는 나 아닌 것이 있어서 산다. 나 아닌 것에 잘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한다. 남에게 욕을 하면 금방 욕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처럼 공기와 물, 땅에서도 같다. 돌아온다. 반드시 돌아온다. 소나 닭이나 돼지도 같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의 농가에서 잊을 수 없는 세 가지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농가의 밥상이었다. 그의 부인과 어머니께서 직접 차려 주신 농가의 밥상에는 고기나 생선이 전혀 없이도 최고의 맛을 내는 고유의 식재료들이 가득했다. 햇감자와 강낭콩을 가득 넣어 만든 잡곡밥, 집에서 빚은 된장의 구수함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된장찌개, 온갖 나물과 푸성귀들로 만든 밑반찬들, 그저 고추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맛있는 오이, 그리고 멜론처럼 연둣빛 빛깔을 내면서 멜론보다 훨씬 달콤한 맛을 내는 신기한 참외까지. 그 모든 것이 자연농법의 축복이었다. “많이들 먹어요”를 연발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배가 이미 부른데도 먹고 또 먹었던 풍성한 밥상은 잊지 못할 환대의 기억이다. 두 번째는 탐나는 작업실이었다. 툇마루와 장지문과 구들장이 남아 있는 낡은 한옥이 그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는데, 작업실의 분위기가 너무 아늑해 저절로 글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설렘을 느꼈다. 밤에는 쏟아지는 별빛과 은은한 달빛을 벗 삼아 더욱 용맹정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번째는 바로 내가 떠날 때 그가 손에 쥐여 준 햇밤 세 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워낙 비가 쏟아져서 차가 막힐까봐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려고 황급히 자동차문을 닫으려는 내게 그는 ‘햇밤 세 알’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방금 밤나무에서 떨어진, ‘제때 여물어 제때 떨어진’ 밤알들이었다. 느림의 철학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그를 인터뷰하고는 나도 모르게 ‘빠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지금도 그 햇밤 세 알을 새하얀 접시에 담아 두고, 방 안으로 성큼 쳐들어온 때 이른 가을 향기에 뭉클한 희열을 느낀다. 남들보다 빠르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까지도 착취하며 살아왔다. 뒤돌아보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더 성숙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때로는 나 자신이 ‘조숙함’을 넘어 ‘웃자라 버린’ 느낌에 쓸쓸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성장 신화의 내면화’였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오래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존재의 모습이 아니라 인공의 신화였다. 그렇게 빨리, 많이, 오래 피는 꽃은 생화가 아니라 조화인 것이다. 내 방 안에 조금 일찍 도착한 가을 소식, 이 햇밤 삼형제를 당분간 먹지 않아야겠다. 이 눈부신 가을의 징표로, 그리고 ‘지구학교’를 다녀온 ‘미숙한 청강생’의 마음으로 간절한 바람을 실어 보낸다. 아직 너무 늦지 않았기를. 우리가 자연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 순간이 ‘지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학교’에 입학하기에 너무 늦지 않은 순간이기를. 글쓴이 작가 정여울 2013년 제3회 전숙희 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 조선 마지막 공주 혼수목록 어땠을까

    조선 마지막 공주 혼수목록 어땠을까

    13일부터 편지 등 자료 41점 전시 순원왕후가 남긴 ‘혼수 발기’ 백미 조선 23대 왕 순조(1790~1834)와 왕비 순원왕후(1789~1857)의 막내딸이자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의 한글 혼례 자료가 최초로 공개된다. 오는 13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덕온공주 한글 자료’를 통해서다. 특별전에선 덕온공주의 혼례 과정과 혼인 생활을 보여 주는 한글 편지 등 41점의 자료가 소개된다. 혼례 당시 사용됐던 노리개, 비녀 상자, 화각 모필 등 단국대 소장 7점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공개되는 물품들이다. 한글박물관은 올 초 덕온공주가(家)의 후손들에게서 덕온공주 관련 자료 200여점을 구입, 이번 전시를 통해 1차로 34점을 선보인다. 전시 개막일인 13일은 179년 전 음력 8월 13일로, 덕온공주가 혼례를 올린 날이다. 혼례 당시 공주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 순원왕후뿐이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된다. 1부 ‘1837년 덕온공주의 혼례’에선 덕온공주가 16살 되던 해 치른 생원 윤치승(1789~1841)의 아들 윤의선(1823~1887)과의 혼례 과정을 자세히 다룬다. 순원왕후가 덕온공주와 사위에게 준 ‘한글 혼수 발기’(사람이나 물건 이름을 죽 써 놓은 글)가 백미다. 덕온공주의 혼수 발기는 길이만 5m가 넘으며 노리개, 비녀, 댕기 같은 장신구부터 가위, 인두 등 바느질 도구까지 온갖 물건이 적혀 있다. 윤의선 혼수 발기는 길이가 2m가 넘고 남자 의복과 관련된 물건들이 기입돼 있다. 한글박물관은 “덕온공주 혼수 발기는 궁중의 공주와 관련된 발기 중 발·수신자가 밝혀진 유일한 것”이라며 “‘단쵸’(단추), ‘쳔니경’(천리경) 등 당시 우리말 어휘도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2부 ‘덕온공주의 혼인 생활’에선 순원왕후가 딸과 사위에게 보낸 한글 편지를 통해 덕온공주의 결혼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순원왕후는 주로 사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봉투엔 윤의선의 작위인 ‘남녕위’(南寧尉) 또는 임금의 사위를 뜻하는 ‘도위’(都尉)라고 쓰여 있다. ‘덕온도 일전 두드러기 기운이 있고, 마른 안질도 있고 깔깔하게 말라 보이기에 오창렬에게 물어 약방문을 내어 그제와 어제까지 두 첩 먹었으나….’(순원왕후가 사위에게 보낸 한글 편지 중) 한글박물관은 “두드러기 기운에 눈병까지 있는 딸을 위해 의원에게 물어 약을 지어 보내는 등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이 깊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농장과 공장사이

    [김욱동 창문을 열며] 농장과 공장사이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낱말은 모음 하나 차이로 뜻이 크게 달라진다. 자음도 마찬가지다. 가령 ‘농장’과 ‘공장’은 자음 ‘ㄱ’과 ‘ㄴ’밖에 다르지 않은데도 의미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전에서는 농장을 농사지을 땅과 농기구·가축·노동력 따위를 갖추고 농업을 경영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밀 농장, 돼지 농장이니 하는 곳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은 원료나 재료를 가공해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설비를 갖춘 곳이다. 한마디로 농장이 살아 있는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곳이라면 공장은 생명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최근 애완용 강아지를 대량 공급하는 이른바 ‘강아지 공장’에 대해 정부가 전수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강아지 공장의 동물 학대 문제가 논란이 되자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농림축산식품부는 20마리 이상을 키우는 전국의 개 번식장 4천여 곳에 대해 석 달 동안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조사에서 미신고 영업 같은 위법 행위가 발견되면 계도를 거쳐 벌금이나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얼마 전 방영된 한 공중파 TV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전남의 한 개 번식장에서 개를 강제로 임신시키고, 수의사도 아닌 농장주가 마구잡이로 제왕절개를 하는 장면이 방송된 것이다. 이후 동물보호단체 등이 ‘강아지 공장 철폐 서명 운동’을 주도했고 무려 30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강아지를 사육하는 ‘농장’이 아니라 차라리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도대체 왜 강아지 공장이 생겨났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소비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인형이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라면 강아지는 이제 어른들에게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길거리나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반려동물 인구가 무려 1천만명에 이른다. 한때는 보신탕용으로 개를 사육하더니 이제는 반려동물로 개를 사육하는 것이다. 반려용 개를 기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공급이 달리고, 공급이 달리다 보니 무리하게 공장에서 강아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왕 ‘강아지 공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서양에서 개를 비롯한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기계로 처음 간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였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소나 개 같은 동물한테는 인간과는 달리 영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분법적 논리에 따르면 영혼이 없는 동물은 기계와 다름없다. 소는 우유를 만드는 기계일 뿐이고, 소가 ‘음매’ 하고 소리 내어 우는 것은 기계가 기능 장애를 일으켜 ‘끼익’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논리대로 한다면 개는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인형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그의 관점에서 보면 강아지를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약 데카르트가 지금 문제가 된 ‘강아지 공장’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계를 공장에서 생산하지 그러면 농장에서 생산하느냐고 되레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데카르트의 반대편에는 “신은 죽었다”고 부르짖은 19세기의 이단아 니체가 서 있다. 니체가 이탈리아 투린 지방을 여행할 때다. 호텔 문을 막 나선 니체는 마부가 채찍으로 말을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아무 말 없이 말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잡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바닥에 나뒹군다. 니체의 전기 작가들은 이 순간부터 니체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마 마부한테 채찍을 맞는 말을 보고 눈물을 흘릴 리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제 데카르트 편에, 아니면 니체 편에 설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지구상에서 생물이 사라지는 지금 답은 명약관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생물 다양성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동물 보호를 넘어 동물 복지를 내세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 에이프릴 진솔 ‘보니하니’ 생방송, 통통 애교+능숙 진행 ‘초통령 될까’

    에이프릴 진솔 ‘보니하니’ 생방송, 통통 애교+능숙 진행 ‘초통령 될까’

    걸그룹 에이프릴 진솔이 ‘보니하니’ 생방송 진행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진솔은 1일 방송된 EBS1 ‘생방송 톡!톡! 보니 하니’에서 ‘NEW 하니’ 마지막 후보로 나서 생방송을 진행했다. 이날 데뷔 후 첫 생방송 진행임에도 불구하고 진솔은 통통 튀는 애교를 겸비한 능숙한 진행 실력으로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코너 ‘우리말 대사전’에서는 ‘보니’ 신동우와 함께 콩트 연기에 코믹한 댄스까지 선보이며 완벽한 케미를 자랑했다. 이날 ‘보니하니’ 방송 말미 진솔은 “언제 어디서나 1초도 지루하지 않은 방송을 만들겠다”며 ‘NEW 하니’에 대한 굳은 의지와 각오를 드러냈다. 진솔은 2일 생방송 ‘NEW 하니를 찾아라–초통령 뽑기’를 통해 12대 ‘하니’ 최종 결정전에 나선다. 사진 = EBS1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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