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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낯가림/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낯가림/임병선 논설위원

    “해외 관광지에 왁자지껄 몰려오면 중국인들, 한 묶음으로 엮일까 눈치 살피면 한국인들, 이미 자리 피해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인들.” 아시아 쪽 국가들의 특성을 관광객에 빗대어 웃자고 하는 평가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정상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가장자리를 맴돌며 외톨이를 자처하는 듯해 보인 B컷 사진이 일본서 입길에 오르내리다가 한국 소셜미디어에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9월 취임했으나 코로나 탓에 정상들과 대면하지 못한 스가 총리가 외교무대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낯가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놀랍기도 하다. 낯가림이란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 갖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의미한다. 생후 6개월쯤 시작해 두 살이 되면 없어진다. 생후 8개월쯤에 낯가림을 시작하면 중요한 사람들을 분별하고 애착을 형성하는 인지능력이 발달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긍정적인 발달 양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도 이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적잖이 본다. 일본인들이 낯가림에 대해 쓴 책들이 우리말로 많이 옮겨진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다카시마 미사토는 ‘낯가림이 무기다’란 책을 썼는데 감지능력과 관찰력, 공감력을 가진 사람이 낯을 가린다“며 사람이나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해 내는 특유의 센서를 작동해 사람들의 관계와 특성을 프로파일링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나은 소통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에도 제법 알려진 유명 개그맨 와카바야시 마사야스는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를 통해 낯가림과 수줍음이 심해 무명 개그맨으로 고생하던 자신이 껍질을 벗고 변신한 과정을 재치 있는 문장으로 그려 냈다. 돌아보면 핸디캡을 극복해 지도자로 성장한 이가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린 시절 놀림깨나 받은 말더듬이였지만, 지금은 훌륭한 연설가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도 말을 심하게 더듬어 대인기피증이 있었지만 세계대전을 함께 이겨 내자는 명연설로 지금도 영국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도 나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성인이 돼서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어머니가 은퇴하고 고향에서 요양이나 하라고 했지만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 오히려 병마를 이겨 내는 길이란 부인 엘리노어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대공황을 이겨 낸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 됐다. 스가 총리가 ‘결핍’을 이겨 내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면 한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이다. bsnim@seoul.co.kr
  • [똑똑 우리말] ‘애끊다’의 ‘애’는 무슨 뜻일까/오명숙 어문부장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표현할 때 ‘애끊는’이란 말을 쓴다. 초조한 마음을 나타낼 땐 ‘애가 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때 쓰인 ‘애’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애’는 원래 창자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애끊다’(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에 그 뜻이 남아 있다. 지금은 초조한 마음속을 이르는 말로 속이 타들어 갈 만큼 매우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태를 일러 ‘애가 탄다’고 표현한다. 이와 같이 우리말에는 신체와 관련된 관용적 표현이 많다. “부아가 치밀었다”처럼 분한 마음을 나타낼 때 쓰이는 ‘부아’는 ‘허파’를 의미한다. ‘부아가 나다’, ‘부아가 끓어오르다’처럼 쓰인다. “베토벤에 비견할 만한 음악가”에서의 ‘비견’ 역시 신체와 관련이 있다. ‘비견’(比肩)의 ‘견’(肩)은 어깨를 뜻하며 ‘비견’은 ‘대등한 위치에서 견주어지다’란 의미다. 공포감 따위에 맥이 풀리고 마음이 졸아드는 상태를 나타낼 때 쓰는 ‘오금이 저리다’의 ‘오금’은 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을 가리킨다. “슬하에 한 명의 자녀가 있다”와 같이 쓰이는 ‘슬하’(膝下)는 ‘무릎 아래’를 가리키며 주로 부모의 보호를 받는 테두리 안을 의미한다.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으는 일을 나타내는 ‘초미의 관심사’에서 ‘초미’(焦眉)는 ‘눈썹에 불이 붙었다’는 뜻이다.
  • [열린세상] 대통령과 명예훼손/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통령과 명예훼손/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신사가 되기 전 소년은 가난했다. 부친은 파산했고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소년은 나무꾼과 뱃사공으로 일했다. 가게 점원도 했다. 부친은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터로 소년을 보내 노동한 품삯을 받아 오게 했다. 소년은 혼자 공부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다. 훗날 아내를 얻었을 때 “밥상을 차렸으니 식사하라”는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해 장작개비로 얻어맞았다. 책을 읽느라 벌어진 사단이었다. 스물네 살 때 우체국장을 했다. 집배원 역할도 맡았다. 편지와 신문을 배달해 주고 수금을 했다. 청년은 정직했다. 우체국은 정보의 교차로였다. 청년은 우체국에서 책을 읽으며 정치에 눈을 떴다. 신사는 총명했다. 통찰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포용력이 컸다. 신사는 힘이 셌다. 잠시 프로레슬러로 연명할 때 ‘집어던지기’는 그의 주특기였다. 신사는 키가 컸다. 신사를 태운 열차가 중간역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신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이, 나보다 키 작은 양반.” 한 남자가 신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신사는 소리꾼을 연단으로 불렀다. 말없이 소리꾼과 등을 지고 섰다. 신사의 동료가 의자에 올라가 등지고 선 두 사람의 머리 높이를 쟀다. “더 작은 사람은 없다”고 동료가 외쳤다. 신사와 소리꾼은 같이 웃었다. 신사는 목적지를 향했다. 기차에서 내린 신사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미국 남부의 우체국들은 일부 신문을 배달하지 않았다. 링컨이 소속된 공화당에 우호적인 보도를 한다는 이유였다. 선거운동 기간 중 남부의 신문들은 링컨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가 당선되면 연방은 무너지고 자유와 고향과 조국을 잃게 될 것이라고 독자들을 선동했다. 링컨이 당선됐다. 남부의 신문들은 그의 당선을 조롱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냈다. 연방에 잔류하는 것은 불명예의 표지라고 표제를 뽑았다. 남부는 즉시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도 외쳤다.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노예제도는 폐지되고 링컨은 연방의 붕괴를 막았다. 링컨은 일찍이 언론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물리적인 군사전쟁과 선동왜곡을 일삼은 언론의 여론전쟁을 동시에 겪었다. 해리 마이하퍼의 ‘워 오브 워즈’에 상세하다. 염정민이 우리말 책으로 번역했다. 링컨은 자신의 연설이 원문대로 게재되도록 신문사를 찾아가 밤새 조판을 지켜보기도 했다. 적대적인 언론에도 동료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 소통하려고 애썼다. 우호적인 언론이라도 불충분한 보도에 대해서는 반박문을 보냈다. 링컨은 시민과 언론의 모욕과 명예훼손을 견디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한 죄로 기소될 뻔한 시민이 풀려났다. 대통령의 지시로 고소가 취하됐다. 모욕죄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다. 모욕죄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때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을 선고했다. 지금도 헌재에 모욕죄 위헌 제청 사건이 접수돼 있다. 친고죄 때문이었을까? 동물에 비유된 모멸적 표현을 겪으면서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민을 모욕죄로 처벌하지 못했다. 대신 측근들이 대통령을 욕했다며 사람들을 명예훼손죄 법정에 세웠다. 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던 시민은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선 외신기자는 2015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임이 확인됐다. 반의사불벌, 즉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직 대통령들이 표현했더라면 형사 절차가 전개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처벌 여부에 대해 끝까지 침묵했다. 만약 명예훼손죄가 친고죄였다면 대통령들은 시민과 외신기자를 고소했을까?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의 반의사불벌죄 처벌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죄 처벌 운운하며 측근들이 앞장서 봉쇄·겁박하는 일이 가능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비판을 단죄하는 단맛을 알았던 것인지 십여 년 전 어떤 국회의원들은 반의사불벌의 사이버상 모욕죄 제정안을 제출했다. 다행히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 정책과 고위공직자에 대한 언론과 시민의 정당한 감시와 비판이 위축되지 않도록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최소한 반의사불벌의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는 바꾸어야 한다. 참, 링컨은 변호사였다.
  • [똑똑 우리말] 안전과 안정/오명숙 어문부장

    올 들어 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사고 뒤 신문과 방송에서는 ‘안전’과 관련된 말들이 이어진다. ‘안전 대책, 안전 불감증, 안전 관리, 안전 수칙….’ 이때는 ‘안전’과 ‘안정’을 혼동해 잘못 쓴 예를 찾기 힘들다. ‘안전’이 사고나 위험 등과 관련 있다는 것을 대부분 정확히 알고 쓴다. ‘안전’은 말 그대로 ‘편안하고(安) 온전한(全) 것’이다. 그러니 ‘사고’나 ‘위험’과는 거리가 멀다. ‘안전’은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몇 년 전 정부가 탈원전 정책 추진을 위해 원전 안전성 평가를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데 많은 기사에서 ‘안전성’ 대신 ‘안정성’이란 말을 사용했다. 세계 각국은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 중 평가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되면 계속운전을 승인해 주고 있다. 즉 원전을 계속 운전해도 괜찮은지를 평가하는 것으로 ‘안전’과 관계가 있다. 그러니 ‘안정성’ 대신 ‘안전성’이 와야 한다. 올봄 ‘금배추’ 파동에 이어 ‘파테크’, ‘금달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농축산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달걀값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나 배추나 파는 예전 가격을 회복하고 있다. 즉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안정’은 ‘편안하고(安) 정해진(定) 것’이다. ‘바뀌어 달라지지 않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함’을 뜻한다. ‘성장보다 물가 안정’, ‘전월세 안정’, ‘불황기에도 안정적 매출’, ‘안정된 주가’ 등처럼 쓰인다. oms30@seoul.co.kr
  • 롯데월드타워 입주사 사회공헌 협의체 출범

    롯데월드타워 입주사 사회공헌 협의체 출범

    롯데물산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오피스에 입주한 기업들과 함께 사회공헌 협의체 ‘더 마루’를 출범한다고 3일 밝혔다. 하늘을 뜻하는 순우리말 ‘마루’에 ‘더하다’를 합친 이름이다. 더 마루에는 롯데물산·유한킴벌리·데상트코리아·한국다케다제약 등 9개사 임직원 2000여명이 참여한다. 첫 프로젝트로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가게와 손잡고 물품 기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입주기업 임직원의 개인 물품을 기부받아 이를 아름다운 가게 매장에서 판매하고, 수익금은 나눔 사업 등에 쓰는 방식이다. 이미 이틀 만에 130여점의 기부품을 받는 성과를 내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는 프로젝트 기간 중 1000여점 이상의 기부 물품이 들어올 경우 지점 중 한 곳에서 ‘더 마루’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5·18기록관, 미국 기밀문서 홈페이지 공개

    5·18기록관, 미국 기밀문서 홈페이지 공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1980년대 미국 기록문서를 2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 기록문서는 1980년대 미국 기관에서 생산한 기록문서를 대한민국 외교부가 전달받아 5·18기록관에 제공한 것으로 14건에 총 53쪽 분량이다.이 기록물은 당시 전두환 반란 군부의 동향, 정치적 상황, 5월 광주, 시민·학생 움직임 등 대한민국의 상황 등이 담겨 있다. 한편 5·18을 기록한 미국 국무부, 국방부, CIA, 한국주재 미대사관 등 주요 기관의 문서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기록물의 일부분으로 모두 3471쪽에 달한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2020년에도 비밀해제된 미국측 문서 43건을 전달받아 5·18기록관에 제공한 바 있다. 정용화 관장은 “5·18 당시 상황을 담은 미국 문서는 전두환 반란군부와 외교 관계, 한국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라며 “원문은 공개하고 차츰 우리말로 번역하고 쉽게 풀어 써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똑똑 우리말] 개다와 개이다/오명숙 어문부장

    ‘봄비는 쌀비’라는 말이 있다. 건기인 봄철에 비가 넉넉히 오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봄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 소식이니 장마철만큼이나 맑게 갠 하늘이 기다려진다.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다’란 뜻의 동사는 ‘개다’이다. ‘날이 개다’, ‘비가 개다’와 같이 써야 하는데 ‘날이 개이다’, ‘비가 개이다’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다’는 자동사이기 때문에 피동 접미사 ‘이’를 붙일 수 없다. 즉 날씨가 맑아지는 건 무언가의 힘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자연 현상이므로 피동형을 쓰면 안 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해 말하다’란 뜻의 ‘되뇌다’도 마찬가지다. ‘입 속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처럼 ‘되뇌다’로 써야 할 것을 ‘되뇌이다’로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되뇌다’ 역시 남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뜻의 자동사이므로 피동 접미사 ‘이’가 붙어선 안 된다. 이렇게 ‘이’를 붙여 잘못 사용하는 말로는 ‘마음이 설레이다’, ‘빗속을 헤매이다’, ‘땀이 배이다’, ‘목이 메이다’, ‘불에 데이다’ 등이 있다. 모두 ‘설레다’, ‘헤매다’, ‘배다’, ‘메다’, ‘데다’ 등으로 써야 한다. 한편 ‘해를 가리우다’, ‘샛별로 불리우다’, ‘잠을 못 자 졸리우다’ 등은 불필요하게 사동 접미사 ‘우’를 붙인 경우로 ‘해를 가리다’, ‘샛별로 불리다’, ‘잠을 못 자 졸리다’로 써야 맞다. oms30@seoul.co.kr
  • [제29회 공초문학상] “아직 대표작 없죠, 지금도 시 찾는 여행 중입니다”

    [제29회 공초문학상] “아직 대표작 없죠, 지금도 시 찾는 여행 중입니다”

    “시인이 다루는 언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생명체입니다. 순도 높은 언어, 그 본질을 시의 용광로에서 달궈야 하죠. 이를 통해 우주 삼라만상 앞에 겸손한 시가 돼야 합니다.” 한국 서정시의 대표 중진인 허형만(76) 시인은 “아직 내겐 대표작이 없다”고 했다. 이리 혹독한 담금질 끝에 내놓는 시가 어디 그리 쉬울까. “오늘 밤에 쓰는 시가 혹시 대표작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니, 그래서 시인은 희망을 추동 삼아 언어를 그러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파도’ 등 명시를 꾸준히 써 온 시인은 “시를 찾아가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목숨이 끝날 때쯤이면 분명 한 편의 대표작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을 위해 시를 쓴다”고 말했다. 그에게 시는 당대의 현실이나 사상만큼이나 서정성을 잃지 않는, 사상과 정서의 융합을 뜻한다. 고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렸던 ‘녹을 닦으며’에서 보듯 시인은 치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성찰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왔다. 지난해 계간 ‘예술가’ 가을호에 실린 ‘산까치’가 제29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서 진면목을 발견해 내고, 맑고 고운 우리말을 섬세하게 가다듬어 온 시인의 공로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산까치’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시인이 아파트 뒷산에서 산책하는 도중에 나왔다. 산까치 대여섯 마리가 빗속에서도 신나게 지저귀며 뛰어놀자 순간적으로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다가갔지만, 놀란 새들이 나무로 달아났다. 이를 보고 후회 가득한 심정을 담았다.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절실함을 비에 젖으면서도 절실하게 노래하는 산까치에게서 배운 셈이죠. 코로나19로 옹색해진 시대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삶의 무게를 이기고 걸어가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는 희망과 꿈을 발견하는 것, 그런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 아닐까요.” 흔들림 없는 보폭으로 시인의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반세기가 가까워졌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고교 시절 문예부장을 했던 시인은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순천고 재학 당시 국어 교사는 ‘저항 시인’으로 유명한 고 문병란 조선대 교수.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풀잎이 하나님에게’(1984), ‘입맞추기’(1987), ‘공초’(1988) 등의 시집을 내게 된 것도 스승의 영향이다. 1979년 광주에서 ‘목요시’ 동인회를 결성한 시인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에서 직접 겪었다. 1982년부터 목포대 국문과 교수 생활을 했고 2012년 정년 퇴임했다 .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시인은 자신을 ‘시단의 변방’으로 위치시키고 “이 변방의 힘이 시를 쓰게 했다”고 돌이켰다. 평생 몸에 밴 남도 토속어와 우리말을 아름답게 담아내도록 한 힘이다. “대학 강단에서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강의할 때마다 1920년대 ‘폐허’ 동인으로 활동한 공초 오상순 선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방랑하시며 참선하시던 공초 선생도 ‘공’이라는 정신의 변방에서 시를 쓰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지난해 열아홉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산까치’가 포함된 스무 번째 시집도 준비 중이지만, 동시집도 내고 싶다고 한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동시 ‘동전 한 닢’과 같이 독자들과 호흡하고 공감하는 시를 계속 쓰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시인에게는 시대정신을 작품에 어떻게 녹일지 고민하는 것도, 세상과 사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제 작품이 제가 쓴 것이 아니라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도와서 쓴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반성과 감사의 나날을 보내는 이유입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허형만 시인은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1965년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1973년 월간문학 시 당선 ▲1978년 아동문예 동시 당선 ▲1982~2012년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4년 편운문학상 수상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2009년 영랑시문학상 수상 ▲2011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2014년 한국예술상·펜문학상 수상 ▲2019년 윤동주문학상 수상 ▲현 목포대 국문과 명예교수
  • 사전 편찬 장인이 펴낸 어감사전…사전에 담지 못했던 말뜻 속뜻

    사전 편찬 장인이 펴낸 어감사전…사전에 담지 못했던 말뜻 속뜻

    지은이 안상순은 늘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문장 속에서 각각의 낱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어떤 의미를 얻고 확장해 가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우리말 연구자였다. 국어사전을 그럴듯하게 만들 줄 아는 기술을 가진 이였다. 어떠한 국어사전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아는 사전 편찬자였다. 그는 평소 어감, 뉘앙스, 뜻이 미묘하게 다른 낱말의 의미를 좀더 섬세하게 밝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소박한 욕망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국어사전을 만들면서 미처 건드리지 못한 부분이었다. 동의어가 아니라 유의어였다. 유의어는 뜻은 비슷하지만 어감이나 뉘앙스가 다른 말이다. 그렇다 보니 쓰임새에서 차이가 났다. 무의식중에 구별은 하지만 차이가 미묘해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기존 국어사전들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유의어를 동의어로 처리하기도 했다. “공원에 벚꽃이 만개했다”와 “공원에 벚꽃이 만발했다”에서 ‘만개’와 ‘만발’은 꽃이 활짝 폈다는 말이다. 바꿔 써도 차이가 없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뜻빛깔이 다른 유의어다. ‘만개’라고 했을 때는 벚꽃의 개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말이 되고, ‘만발’이라고 했을 때는 공원이 수많은 벚꽃으로 뒤덮였다는 뜻이 된다. 적절한 예문과 함께 자신이 탐구해 낸 지식을 설득력 있고 선명하게 전한다. ‘감사하다’와 ‘고맙다’를 설명할 때는 한자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힌다. 한자어의 유입이 우리말을 위축시키기보다 풍부하게 했다고 보는 게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말한다. ‘감사’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한자어라는 사실도 덧붙인다. 일본어에서 왔다는 통설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러 준다. 그러면서 ‘감사하다’와 ‘고맙다’가 용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걸 실례를 들어 보여 준다. 이런 내용이다. ‘감사하다’는 동사와 형용사로 쓰이지만, ‘고맙다’는 형용사로만 사용된다. “나한테 감사해라/고마워라”에서 ‘고마워라’가 어색한 건 형용사여서다. 동사로 쓰인 ‘감사하다’를 형용사 ‘고맙다’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고맙다’를 동사로 바꾸면 가능해진다. ‘-어하다’를 붙이면 동사 ‘고마워하다’가 된다. ‘나한테 고마워해라’는 자연스럽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에선 ‘감사하다’가 형용사로 쓰여서 ‘고맙다’도 어색하지 않다. 품사가 같다고 항상 자연스러운 건 아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라/고마워하라”에선 ‘고마워하다’ 대신 대부분 ‘감사하다’가 선택된다. 대상이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일 때는 주로 ‘감사하다’가 쓰인다. 이런 설명은 국어사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안상순은 국어사전이 순환 정의에 빠져 있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것이다. ‘모습’의 정의는 “사람의 생긴 모양”으로, ‘모양’의 정의는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모습” 식으로 풀이돼 있다. 모습은 모양으로, 모양은 모습으로 뜻풀이가 쳇바퀴처럼 순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의미를 변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앞선 연구물들을 폭넓게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주관이나 직관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도 했다. 그러기 위해 말뭉치 같은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했다. 말뭉치란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 놓은 언어 자료’를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웹을 통해 검색할 수 있는 언어 자료를 통틀어 말하기도 한다. 그는 이 책이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이들에게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에게는 유의어라는 벽을 쉽게 뚫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바랐다. 일상에서 많이 쓰거나 접하지만 알쏭달쏭한 말, 그러나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해결되지 않는 말, 인터넷 검색으론 갈피를 잡기 어려운 말들을 논리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밝게 짚어 냈다. 30여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노하우, 언어에 대한 민감성으로,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언어의 세계를 현실감 있는 우리말로 풀어냈다. 평생 국어사전 만들기를 해온 그의 슬기가 묻어난다. 안타깝게도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이경우 전문기자 wlee@seoul.co.kr
  • [똑똑 우리말] ‘-지 않다’와 ‘-지 않는다’/오명숙 어문부장

    “경보 체계가 목적에 걸맞지 않는다.“ “경보 체계가 목적에 걸맞지 않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단어의 쓰임을 두고 이게 맞나 싶어 사전을 찾는 경우가 가끔 있다. 위 문장에 쓰인 ‘않다’와 ‘않는다’도 그중 하나이다. ‘-지 않다’의 형태로 쓰이는 ‘않다’는 보조 용언으로 앞말(본용언)의 품사에 따라 보조 동사 또는 보조 형용사로 쓰인다. 즉 앞말이 동사이면 ‘않다’ 역시 보조 동사로, 앞말이 형용사이면 보조 형용사로 쓰인다. 따라서 동사 뒤에 오는 ‘않다’는 동사의 활용 형태인 ‘않는다’처럼 쓰이고 형용사 뒤에서는 형용사의 활용 양상을 따라 ‘않다’로 쓰게 된다. 위 문장의 ‘걸맞다’는 형용사이므로 뒤에 형용사형 활용인 ‘않다’가 와야 한다. 반면 동사인 ‘맞다’ 뒤에는 동사의 활용 형태인 ‘않는다’를 써야 한다. 따라서 “걸맞지 않다”와 “맞지 않는다”가 바른 표현이다. ‘않으냐’와 ‘않느냐’ 역시 앞말의 품사에 따라 ‘-지 않느냐’와 ‘-지 않으냐’의 형태로 쓰인다. 즉 앞말이 동사일 때는 ‘-느냐’를, 형용사일 때는 ‘-으냐’를 쓴다. ‘아니다’, ‘기쁘다‘, ’행복하다‘는 형용사이므로 “아니지 않으냐”, “기쁘지 않으냐”, “행복하지 않으냐”처럼 쓰인다. 그러나 ‘잡다’, ‘주다’, ‘신나다’의 경우는 모두 동사이므로 “왜 잡지 않느냐”, “왜 생활비를 주지 않느냐”, “여행 가니 신나지 않느냐”와 같이 사용한다. oms30@seoul.co.kr
  • [서울광장] 위트를 아는 대통령/임병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위트를 아는 대통령/임병선 논설위원

    밥 돌(98) 전 미국 상원의원이 쓴 ‘대통령의 위트’를 다시 읽고 있다. 우리말로 옮겨진 것이 2007년인데 그 무렵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였다. 대통령 선거철이 돌아오며 거칠어진 말본새, 하잘것없는 시비에 벌써 짜증이 밀려온 탓도 있어 그런지 모른다. 조선의 영·정조 시대이던 18세기 중반부터 2000년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 41명의 유머 감각을 재단하는 이 책을 들추며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여론조사에 오르내리는 잠재적 대권 후보들의 메시지는 너무 잦고 한없이 가볍다. 대통령이란 자리를 감당할 자질이, 깜냥이 안 된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려 애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검찰총장을 지낸 야권 선두주자는 시쳇말로 ‘간만 보고’ 있다. 좋게 말하면 마오쩌둥이 국민당 군대가 퇴각해 텅 빈 베이징 입성을 일주일 미루고 고대 황제들이 제국을 어떻게 통치했는지 돌아본 것에 비유할 만하다. 돌직구를 던지자면 그는 준비가 안 됐다. 과연 이 시대 가장 긴급하고 절실한 과제가 무엇인지 많은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민족과 젊은 세대에 제시할 청사진과 어젠다를 정립하고 고민의 시간을 축적할 때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답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과 언론은 지지율과 당과 후보들의 합종연횡에만 관심을 갖는다. 극렬 지지자들의 팬덤에 스스로를 가두게 만든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보다 그냥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급급하다. 소셜미디어로 지지율 붙들기에 바쁜 후보들이 경쟁에서 이긴들 나라에 어떤 미래가 주어지겠는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면 유머리스트가 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윌리엄 로저스의 격언을 되뇌며 시작하는 ‘대통령의 위트’는 대통령이 대권을 쥔 사람을 넘어서 국가 지도자로 올라서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돌아보게 만든다. 앰브로즈 비어스는 대통령직을 “미국 정치라는 야외 경기의 기름 친 돼지”라고 정의했다. 야당은 ‘죽어라’ 협조를 안 하고 언론은 독설을 응당 해야 할 도리라 여긴다. 당선에 공을 세웠다며 한자리 달라는 무뢰배들에 시달린다. 허버트 후버는 손녀의 출생 소식에 “상원의 승인이 필요 없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관료주의를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하는 데 붙어사는 너무 많은 기생충”이라고 규정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지식인을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1996년 대선에서 패배한 저자가 꼽은 유머리스트 대통령 순위는 당대 사람들이나 역사적 평가와 다르지 않다. 늘 근엄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가장 윗길이었고, 대공황과 전쟁을 이겨 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어깨를 견줄 만했다. 최악의 유머 감각을 드러낸 대통령의 직무 수행은 정비례했다. 루스벨트는 유머 감각과 균형 감각을 같은 것으로 봤다.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시기에 “난 웃지 않으면 죽는다. 이 약은 내가 필요한 만큼 여러분에게도 필요하다”면서 야당을 달랬다. 정적이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공격하자 “만일 제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루스벨트는 선거에서 많이 이긴 만큼 져 봤다. 한날 아내와 어머니를 잃었고, 막내아들을 1차대전 때 잃었다. 하지만 늘 웃음으로 눈물을 해독했다. 아들 ?틴이 자신과의 접견을 기다리는 의원 넷과 함께 있던 방안에 슬쩍 뱀을 풀어놓아 놀라게 했던 일을 곧잘 입에 올렸다. 의원들을 각성시키는 그만의 방법이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대통령들은 어땠나. 엄두도 나지 않게 무서웠던 이, “본인은”만 되뇌며 국민 따위는 안중에 없었던 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고 왜 따라하지 않지 했던 이, 옆구리 찔린 듯 웃던 이 등이 있었다. 가장 화사하고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지을 줄 알았던 대통령이 그래도 역사와 민족 앞에 굵직한 선 하나를 남겼다. 그가 인간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이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 하나가 유머 때문 아닐까 짐작한다. 위트와 유머란 단어의 근원을 따지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시대를 꿰뚫고 민족과 세계의 앞날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지혜, 대통령직이란 위험한 일을 감당해 낼 배짱과 안목이 없다면 지지율에 취해 그 자리를 욕심내면 안 된다. 두서 없는 이 글의 결론은 이런 거다. 스스로 웃을 줄, 남을 웃길 줄, 위트할 줄 모르는 인물이라면 대통령 할 생각하면 안 된다. 큰일 난다. bsnim@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부처님오신날

    [이경우의 언파만파] 부처님오신날

    세상에 태어난 날 ‘생신’(生辰)은 ‘생일’(生日)의 높임말이다. 이 낱말들의 ‘신’(辰)도, ‘일’(日)도 고유어 ‘날’과 통한다. ‘일’이 ‘날’과 의미가 통한다는 건 ‘공휴일’, ‘기념일’, ‘매일’, ‘월요일’처럼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그렇지만 ‘신’에 ‘날’의 의미가 있다는 건 ‘생신’과 ‘생일’을 비교할 때 겨우 확인된다. 그것도 누군가 말을 꺼내야 ‘아, 그렇지’ 하고 다시 깨닫게 될 때가 많다. 그만큼 ‘생신’의 ‘신’은 ‘날’과 꽤 멀리 있다고 보인다.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탄신’으로 가면 ‘신’은 ‘날’과 더 멀어진 듯하다. ‘탄신’은 흔하지만 ‘탄일’은 드문 것도 이유일 수 있다. ‘세종대왕 탄신일’,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라고 한다. 이를 놓고 한쪽에서는 ‘생신’과 ‘생일’의 관계를 예로 들어 가르친다. ‘탄신’에 ‘일’, ‘날’의 의미가 있으니 뜻이 겹친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세종대왕 탄신’이나 ‘이순신 장군 탄신’은 낯설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탄신’이 아니라 ‘탄신일’이어야 자연스럽고 의미가 잘 통한다고 본다. ‘신’과 ‘일’이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이기는 하지만, 똑같다고 여기는 건 아닌 것이다. ‘생일’의 ‘일’과 ‘날’과 통한다는 걸 알아도 ‘생일날’이라고도 말한다. ‘생신’에도 ‘날’이 쉽게 붙는다. ‘신’과 ‘일’과 ‘날’이 똑같은 말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뉘앙스, 어감의 차이도 있다. 지금은 ‘부처님오신날’이 됐지만, 오랫동안 부처가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명칭은 ‘석가탄신일’이었다. 불교계는 1975년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뒤 줄곧 ‘부처님오신날’로 명칭을 변경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석가’가 ‘샤카’라는 인도의 특정 씨족 이름을 가리킨다는 것과 ‘한글화 추세’에 따라 부처님오신날이 더 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여기서 ‘한글’은 문자 이름이니 쉬운 우리말을 쓴다는 취지겠다. 이 과정에서 ‘탄신일’과 ‘탄신’의 문제 역시 불거지기도 했다. 불교계는 또 ‘석탄일’이라는 약칭은 광물 석탄과 헷갈릴 수도 있다고 했다. 2017년 10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부처님오신날’이 공식 명칭으로 확정됐다. 말은 사소한 것이든 커다란 것이든 늘 논란이다. 불교에서는 언어를 극히 경계한다. 언어는 사실이 아니라 이미지이고 껍데기 같은 것일 뿐이라고도 한다. 언어는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쉽게 왜곡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인간은 진실에 이르는 길에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적절한 말, 상황을 온전하게 반영하는 말을 찾는 데 끊임없이 수고로울 수밖에 없다.
  • ‘버터 왕자’로 돌아온 BTS “그래미 수상·빌보드 1위 도전”

    ‘버터 왕자’로 돌아온 BTS “그래미 수상·빌보드 1위 도전”

    두번째 영어곡…“청량한 느낌의 고백송”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신나고 경쾌한 서머송 ‘버터’(Butter)로 돌아왔다. 지난해 메가 히트를 기록한 ‘다이너마이트’에 이은 두번째 영어곡이다. 이날 발매를 맞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멤버들은 “귀여우면서도 중독성 있는 고백송”이라고 신곡을 소개하며 “빌보드 ‘핫100’ 1위를 또 한 번 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공개한 새 디지털 싱글 ‘버터’는 청량감 있는 신스 사운드의 댄스팝으로 “버터처럼 부드럽게 녹아들어 너를 사로잡겠다”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멤버들의 호흡이 돋보이는 군무와 ‘쿨한 매력’에 초점을 맞춘 유닛별 안무 등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눈길을 끈다. ‘버터’에는 외국 작사·작곡진이 대거 참여했다. 롭 그리말디, 스티븐 커크, 론 페리, 제나 앤드류스, 알렉스 빌로위츠, 세바스티앙 가르시아 등 여러 뮤지션이 함께 만들었다.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으로 곡을 받아 정했으며, 리더 RM도 랩 메이킹에 참여했다. 랩 파트의 절반 가량을 쓴 RM은 “슈가와 제이홉도 같이 블라인드 테스트에 참여했고 제가 쓴 부분이 선택됐다”면서 “모국어가 아니라서 위화감과 괴리도 있었지만, 저희 스타일대로 소화했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RM “블라인드 방식으로 영어 랩 만들어 참여”지난해 11월 발매한 미니앨범 ‘비’(BE)가 팬데믹 현실 속 일상과 위로에 초점을 둔 우리말 노래였다면, ‘버터’는 미국 주류 팝의 느낌을 더 많이 담았다.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1위와 미국 최고 권위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올랐던 ‘다이너마이트’처럼 글로벌 흥행이 주목되는 이유다. 슈가는 “빌보드 ‘핫 100’ 1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내겠다”면서 “그래미 수상 역시 다시 도전 해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최고의 성과를 올린 이들은 다음달 데뷔 8주년을 맞는다. 최근 멤버들끼리 향후 활동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밝힌 지민은 “요즘 멤버들 사이의 최대 화두는 8주년과 연관이 있다”고 운을 떼며 “지난 6개월간 팀에 대한 고민과 팬분들과의 관계, 어떻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RM은 “BTS가 하고 싶은 것, 사람들이 우리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서 “뉴노멀 시대를 맞아 어떤 가치를 좇아야 하는지 책임감을 느끼는데, 앨범과 음악이 그 순간에서 찾은 최선의 답”이라고 덧붙였다. 제이홉은 “코로나19로 인해 혼란스러운 감정도 느꼈지만, 계획에 없던 앨범 작업으로 새로운 감정도 많이 느꼈다”면서 “음악의 힘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고 돌이켰다. “뉴노멀 시대 음악·가치 고민…퀸 협업도 기다려”최근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이 방탄소년단의 티저 영상을 리트윗 했다가 삭제하며 협업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버터’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에 담긴 베이스 라인이 퀸의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를 연상시켜 샘플링이나 오마주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멤버들은 이는 아니라고 밝혔다. 멤버 진은 “아직 협업에 대한 논의는 없다”면서 “퀸 선생님들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깜짝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해 월드투어를 비롯한 여러 활동이 무산되면서 방탄소년단은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했다. 다음달에는 팬 이벤트인 ‘페스타’도 온라인으로 연다. 지민은 “많은 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팬들에게 콘텐츠 제작과 예능 출연이 선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뷔도 “오프라인으로 ‘페스타’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버터’의 첫 무대는 오는 24일 ‘2021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펼친다. 올해 방탄소년단은 ‘톱 듀오·그룹’, ‘톱 셀링 송’, ‘톱 송 세일즈 아티스트’, ‘톱 소셜 아티스트’ 등 4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레이블인 컬럼비아 레코즈는 최근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현지 라디오 DJ들에게 신곡을 들려주는 ‘버터 버스 투어’ 프로모션을 벌이는 등 홍보도 나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문대통령 만난 한국계 의원들 “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문대통령 만난 한국계 의원들 “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한국계 의원 4인방 간담회 참석앤디 김 “감격스럽다” 소회 밝혀선서 때 화제된 스트릭랜드 의원간담회에서 울먹이는 표정 짓기도“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한국 역사를 보면 오뚜기처럼 복원력이 강한 나라다.” 20일 오후(현지시간) 미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미 하원 지도부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민주당 소속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워싱턴) 연방하원의원은 “한미 양국 간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스트릭랜드 의원 외에도 민주당 앤디 김(뉴저지)·공화당 미셸 박 스틸(박은주·캘리포니아), 공화당 영 김(김영옥·캘리포니아) 등 한국계 하원의원 4인방도 참석했다. 앤디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미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며, 나머지 3명은 초선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분들은 ‘영옥’, ‘은주’, ‘순자’와 같은 정겨운 이름을 갖고 있다. 더욱 근사하게 느껴진다”며 이들의 당선을 축하했다. 이에 취임선서 때 한복을 입은 것으로 화제가 됐던 스트릭랜드 의원은 자신의 SNS에 “땡큐 프레지던트 문!”(Thank you President Moon!)이라고 화답하기도 했다.이날 앤디 김 의원은 “50년 전 부모님이 가난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면서 문 대통령을 의사당에서 만난 데 대해 “매우 감격스럽다”고 했다. 이어 “한미 관계는 북한이나 중국에 대한 관계 차원이 아니라 한국 자체만으로도 미국의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영 김 의원도 “양국 의회 간 교류 활성화를 바란다. 한미정상회담도 건설적으로 진행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스틸 의원은 “지난해 민주·공화 각 2명씩 4명의 한국계 의원이 당선됐다. 매우 중요한 양국의 동반자 관계가 계속 강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한국계 의원 말고도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신 분도 있었고, 스트릭랜드 의원은 대화 도중 울먹이는 표정도 지었다”고 전했다. 한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올해 문 대통령이 보낸 신년 인사 카드를 꺼내 보이면서 “아주 예뻐서 간직하고 있다. 그 안의 내용에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글도 감동적이었다”며 카드를 꺼내 흔드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똑똑 우리말] 표지와 표식/오명숙 어문부장

    한자 가운데는 뜻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일체’와 ‘일절’ 같은 경우다. ‘일체’와 ‘일절’은 같은 한자(一切)를 쓴다. 그렇지만 문장에서 ‘모두’라는 뜻이면 ‘일체’가, ‘전혀, 절대로’란 뜻이면 ‘일절’이 된다. 한자 ‘識’도 이에 해당한다. 이것이 ‘알다, 깨닫다’의 뜻이면 ‘식’으로 발음하고 ‘표시하다’나 ‘적다’란 뜻이면 ‘지’로 발음한다. ‘지식’(知識)이나 ‘식별’(識別), ‘식자우환’(識字憂患) 같은 단어들에서는 아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두 ‘식’으로 읽는다. 그렇다면 ‘標識’는 ‘표식’과 ‘표지’ 중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정답은 ‘표지’이다. ‘표지’는 ‘표시나 특징으로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함. 또는 그 표시나 특징’이란 뜻이다. 즉 ‘표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표를 해 놓은 것’ 또는 ‘표로 표시한 것’이란 의미이므로 ‘표식’이 아니라 ‘표지’로 읽어야 한다. ‘도로표지’, ‘교통표지’, ‘표지등’, ‘안내표지’ 따위로 쓰인다. 한편 ‘표지’와 비슷한 말로 ‘표시’가 있는데 두 말의 차이를 헷갈려 하는 이들도 많다. ‘표시’(標示)는 ‘(어떤 사실이나 내용을) 문자나 기호, 도형 등으로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가령 “밑줄을 그어 표시를 해 뒀다”라고 할 때 그 행위는 ‘표시’를 하는 것이고 밑줄 자체는 ‘표지’가 된다. 즉 표시해 둔 마크가 곧 표지인 셈이다.
  • 개호→간병, 공란→빈칸, 직경→지름… 일본식·어려운 법령 용어 쉽게 고친다

    ‘공란은 빈칸으로, 직경은 지름으로.’ 법제처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법령 속 일본식 용어와 어려운 용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식 용어를 정비한 대표 사례로는 공란과 개호(간병), 잔고(잔액), 음용수(먹는물) 등이다. 직경과 전주(전봇대), 장관골(팔다리의 긴 뼈), 측구(길도랑) 등 어려운 용어들은 알기 쉽게 손질했다. 법제처는 19일 “국민에게 쉬운 법령을 만들고자 최근 3년간 법령 속 어려운 용어와 일본식 용어를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해 지금까지 모두 973개 법령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법제처가 법령 정비 과정에서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법령 이해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82.5%를 차지했다. 이 중 어려움을 겪은 적이 매우 많다는 응답이 30.4%로 나타났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전문용어나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낯선 용어가 많아서’(44.3%), ‘한자로 표기되거나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서’(29.1%)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에 따라 법제처는 올해 조세·부동산·노동·안전 4대 분야의 12개 법령을 우선 선정해 알기 쉬운 법령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국민 아이디어를 공모해 법령을 정비한 사례도 있다. 교육연구시설 내부 불연마감제 의무 사용 범위를 당초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중학교 등 모든 교육시설로 확대하도록 건축법 시행령을 고친 게 대표적이다. 한부모가족에 대해 아동양육비와 생계급여의 중복 지원을 금지한 한부모가족 지원법이 불합리하다는 제안에 따라 중복 지급을 허용하도록 정비하기도 했다. 법제처는 “청년세대에 불합리한 차별 법령이나 가산금 등 산정요율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규정된 법령도 집중 발굴해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월드피플+] 1000년 수도원 40m 돌기둥 꼭대기서 나홀로 20년…고행승의 하산

    [월드피플+] 1000년 수도원 40m 돌기둥 꼭대기서 나홀로 20년…고행승의 하산

    40m 돌기둥 꼭대기에서 홀로 수행하던 고행승이 하산했다. 1993년 감옥에서 출소해 돌기둥으로 기어 올라간 지 20여 년 만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캅카스의 조지아(옛 그루지야)에는 중세 초기의 비밀을 간직한 전설의 돌기둥이 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서쪽으로 약 200㎞ 떨어진 카츠키 마을에 우뚝 솟아있는 ‘카츠키 기둥’이 바로 그것이다. 40m 높이 석회암 기둥 꼭대기에 세워진 수도원은 조지아에서 신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는 곳이기도 하다.수도사 막심 콰타라제(67)는 수도원의 존재가 밝혀진 후 카츠키 기둥에서 ‘주상고행’을 자처한 처음이자 마지막 주행승이다. 주상고행은 말 그대로 기둥 위에 올라가 세상과 연을 끊는 수행을 말한다. 주상고행의 첫 수도사였던 시리아 성 시메온(390~459)은 최고 20m 높이 기둥까지 올라가 은수(隱修) 생활을 했다. 그 뒤로 주상고행에 뛰어드는 수도사 행렬이 이어졌다. 이처럼 주상고행을 자처하는 수도사를 스타일라이트(stylite)라고 한다. 희랍어 스틸로스(stylos 기둥)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말로 주행승 혹은 기둥성자나 주상성자라고 부른다.이런 주행승에게 더할나위 없는 수행장이었을 카츠키 기둥 위 수도원은 1944년 산악인 알렉산더 자파리드제와 작가 레반 고투아가 이끄는 탐험대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50㎡(약 45평) 면적의 기둥 꼭대기에는 외벽 구조물과 잔해, 수도실과 무덤 유적, 고행자의 유골이 남아 있었다. 관련 연구는 1999년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2006년에는 포도주 저장고의 잔존물, 2007년에는 옛 조지아어 ‘아솜타브룰리’가 새겨진 13세기 석회암 비문이 발굴됐다. 고고학자들은 9~10세기 세워진 수도원이 조지아가 주변국 손에 넘어간 15세기 버려진 것으로 결론 내렸다. 수도원에서 발굴된 유골은 600년 전 마지막 주행승 것으로 추정했다.18세기 그루지야 왕자이자 역사가, 지리학자였던 바쿠슈티가 남긴 문헌에서 수도원에 대한 기록도 발견됐다. 문헌에는 “상당히 높은 바위가 서 있다. 바위 꼭대기에는 작은 수도원이 하나 있지만 아무도 올라갈 수가 없다.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40m 높이 돌기둥까지 올라가 수도원을 세웠는지, 어떻게 꼭대기까지 오르내렸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수도사 막심은 1993년 41세 나이로 감옥에서 출소한 후 곧장 돌기둥으로 향했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서 신을 만나고자 함이었다. 마침 공산주의 붕괴로 그루지야가 구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정교회 불씨도 되살아난 터였다. 막심 수도사는 “내게는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 속에서 신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돌기둥 위에 몸 뉠 곳이라고는 낡은 냉장고 하나뿐이었지만, 하루 7시간씩 기도하며 고행을 이어갔다.더 쉽게 기둥을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 ‘천국의 계단’을 설치한 막심 수도사는 1995년부터 마을 주민과 정교회 공동체, 정부의 지원 속에 본격적인 수도원 복원에 착수했다. 복원에 필요한 자재는 도르래를 이용해 운반했다. 13년에 걸친 복원 작업은 2009년 비로소 끝이 났다. 현대식으로 재건된 수도원에서도 막심의 기도는 끊기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 두 번, 설교 때나 지상으로 내려왔을 뿐 2015년까지 자그마치 22년을 홀로 기둥 위에서 살았다. 마지막 주행승의 뒤를 이어 600년 만에 수도원의 문을 다시 열어젖혔던 수도사 막심은 현재는 건강 악화로 기둥에서 내려왔다. 한때 관광객 방문이 허용됐던 꼭대기 수도원도 막심 하산 이후 2018년부터 정교회 관계자 외 방문객 출입이 제한됐다. 이로써 중세 초기 비밀을 간직한 채 수 세기 만에 모습을 드러낸 수도원의 고행자 대도 끊기게 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메타버스

    [이경우의 언파만파] 메타버스

    미국 공상과학 소설가 닐 스티븐슨은 1992년 ‘스노 크래시’라는 소설을 썼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 가상공간의 구현과 원리를 완벽에 가깝게 표현했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다. 먼저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 ‘아바타’. 아바타는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인도 신화에서 인간이나 동물 형상을 한 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또 하나의 용어는 ‘메타버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시대 더욱 달아오른 말이 됐다. ‘초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가리키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아바타로 소통하는 디지털 세상’이라고도 한다. 메타버스가 성큼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아이돌그룹 블랙핑크는 지난해 9월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전 세계 팬 약 5000만명이 들어와 블랙핑크 아바타와 인증 사진을 찍었고 사인을 받았다. 구찌·나이키·컨버스·디즈니 같은 패션 기업들이 입점을 했다. 순천향대는 지난 3월 메타버스 입학식을 치렀다. 각자 자신의 아바타로 입장한 신입생들은 서로 자기소개를 이곳에서 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자사 메타버스 서비스 ‘점프 버추얼 밋업’을 활용해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자신의 아바타로 접속한 지원자 600여명이 설명회에 참석했다. 사무실 출근을 없애고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도록 한 업체도 있다. 직원들은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이 공간에서 동료 아바타와 회의를 하고 업무를 본다. 가상이지만 현실이고, 현실이면서 꿈같기도 한 메타버스. 그 세계도 여전히 낯설지만 용어도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지난 2월 메타버스를 다듬은 말로 ‘확장 가상세계’를 제시했다. 그러나 반응은 시원치 않고 ‘메타버스’가 대세를 이룬다. 국어원은 더 이전에 ‘아바타’를 다듬은 말로 ‘분신’, ‘가상 분신’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바타’가 널리 퍼졌다. 지난주 국어원에서 ‘메타버스’를 대신할 쉬운 우리말을 찾는 논의가 다시 있었다. 더 적절하고 와닿는 용어를 찾아서 소통을 쉽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동안 다듬은 말들을 놓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지만, 쉬운 말로 다듬어 정착된 말들도 적지 않다. ‘도시락’(벤또), ‘댓글’(리플), ‘갓길’(노견), ‘누리꾼’(네티즌), ‘대중매체’(매스미디어)…. ‘메타버스’를 대신해 더 쉬운 우리말이 만들어지려면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wlee@seoul.co.kr
  • “65년간 해온 갓일은 천직… 아들과 다음 세대로 명맥 잇는 게 소원”

    “65년간 해온 갓일은 천직… 아들과 다음 세대로 명맥 잇는 게 소원”

    “조상 4대째 이어져온 갓일을 천직으로 알고 65년동안 해왔는데 한 점 후회도 없습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갓일전통 명맥이 끊기기 전에 우리 아들과 다음세대로 갓 명맥이 계승돼 갔으면 좋겠습니다.” 증조부 때부터 120년간 4대째 갓일을 이어받아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박창영(79) 중요무형문화재는 14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내년 팔순을 앞둔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보유자 박창영옹은 전국적으로 갓의 고향인 경북 예천군 예천읍 청복동 돌티마을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갓을 접했다. 80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갓을 만들던 전통적인 갓마을로, 박옹의 증조부 박항길 선생 때부터 시작해 조부 박형석 선생이 대를 이어 받았고 백부 박주해 선생과 중부 박월해 선생, 부친 박경해 선생이 모두 갓을 만들었다. 모두 갓방을 경영하며 총모자와 양태 및 갓을 만들어 예천갓의 중심이 됐다. 갓은 예전에 어른이 된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로 순 우리말이다. 갓을 한자로 입(笠), 흑립(黑笠), 칠립(漆笠) 등으로 표기하는데 검게 칠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흑립이며, 옻칠해 견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칠립이다. 근래의 갓은 총대우와 양태에다 성근 명주를 덧씌워 옻칠한 것이 일반적이나 바람이 세찬 해안에서는 총대우에 깁싸개를 하지 않는 음양립을 즐겨 썼다. 갓은 조선시대 말까지 성인 남자는 모두 쓰고 다녔으나 한말 개혁 정책으로 단발령과 함께 근대화로 인해 갓 착용이 줄어들었다. 일제 강점기 중엽까지만 해도 전국 어느 곳에서나 만들었는데 이 중 광복 후까지 활발하게 제작이 성행했던 곳은 경북 예천, 경남 통영, 대구, 전북 김제·남원 등이다.●갓 무형문화재는 박옹을 포함해 전국서 4명뿐 현재 갓 무형문화재는 박옹을 포함해 전국에서 4명뿐이다. 갓 제작은 한번 앉아 아침부터 시작하면 점심때까지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7~8시간 동안 계속한다. 까다롭고 섬세한 공정을 모두 익히려면 짧게 잡아도 10년은 족히 걸리는 취약노동이다. 박옹은 갓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먼저 머리카락보다 가는 말총을 작은 쇠갈고리처럼 생긴 바늘로 정교하게 엮은 뒤 먹칠을 해 총모자를 완성한다. 차양 부분인 양태는 대나무를 삶아 쪼개고 문질러 머리카락굵기로 만들어 이은 뒤 다시 명주실이나 대올을 덧입혀 옻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완성된 총모자와 양태는 인두질과 아교칠·먹칠·옻칠을 반복하면서 조립해 다양한 갓을 만들어내는 일이 입자장”이라고 덧붙였다. 갓을 만드는 데는 가느다란 대나무로 갓의 테를 만드는 ‘양태일, 말총으로 총모자를 만드는 ‘총모자일’, 양태와 총모자를 맞추어 갓을 완성시키는 ’입자일‘ 등 크게 3가지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개의 갓이 완성된다. 동네 이웃에 사는 최경희 소하동 통장은 “우리동네에 이렇게 훌륭한 국가무형문화재가 살고 있는데도 여태 몰랐다”면서, “희귀한 우리 전통문화가 끊기지 않고 주민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광명시에서 집앞에 문화재 현판이라도 달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작도구는 화로와 숯불·인두 등 모두 15가지 내외로, 이 중 가장 중요한 게 트집잡는 인두란다. 마지막은 옻칠로 마무리한다. 대나무 재료는 3년생이 가장 적당한데 참죽과 분죽이 있다. 분죽은 연하고 잘 쪼개지며 참죽은 테두리할 때 사용한다.●명성황후·장희빈 등 사극에 나오는 갓은 거의 박옹 작품 옛날에는 갓을 완성하는 입자일에서 금목, 골배기, 은간짓기· 천개짓기, 트집잡기, 갓모으기 등 4명이 분업화해 갓을 만들었다. 갓 형태미를 완성하는 것은 양태의 완만한 곡선을 잡는 ‘트집’을 잘 잡아야 제대로 모양이 나온다. 10월이 되면 추석명절과 제사철이라 갓이 없을 정도로 잘팔려 대목날이었다. 그러다 60년대 이후 갓이 잘 안팔리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1978년 서울로 이사했다. TV 드라마나 영화 속 사극의 인물들이 갓을 쓰고 나오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방송국을 찾아가 갓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영화 ‘스캔들’에서 주인공 배용준이 쓰고 나온 갓과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과 ‘태양인 이제마’, ‘명성황후’, ‘장희빈’ 등 사극에 등장하는 갓은 모두 박옹의 작품들이다. 박옹은 “어떻게 알았는지 전국에서 알음알음으로 많은 국악인들이 찾아왔다. 박동진 명창을 비롯해 조상현·송순섭·남상일 명창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라며 ,“욘사마 배용준이 스캔들 영화에서 선뵌 갓을 일본사람이 수천만원을 주고 구입해가기도 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30년 넘게 서울 독산동에 살다가 10여년 전 광명시로 거처를 옮겼다. 박옹은 복원한 갓 중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먼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조선시대 철종어진에서 나온 것으로, 왕이 군복에 착용하는 갓인 전립을 꼽았다. 두 번째로 조선시대 선조때 인물인 약포 정탁이 쓰던 갓을 복원한 것으로, 모자의 높이가 24cm(8치)로 기록에서 나온 갓의 형태와 같다. 양태의 꾸밈은 보통 직선으로 붙여 만드는데 이 유물은 둥그렇게 돌아가면서 죽사가 붙여져 있어 독특한 광택이 난다. ●조선시대 철종어진 갓 복원한 작품 가장 애지중지 세 번째는 박쥐모양갓이다. 박쥐는 행운을 빌어준다고 해서 갓에 새겨넣어 창작한 귀한 작품이다. 명주로 복을 상징하는 박쥐문양을 떠서 양태에 붙였으며 모정(帽頂)에는 선비의 청백리 상징인 옥으로 장식했다. 이 밖에도 갓의 꼭지모양이 둥그러운 작품, 갓 꼭지 크기가 좁고 길다란 작품 등 5개 작품은 팔지 않고 평생 아들에게 물려줘 계승시키고 싶다는 걸작품으로 박옹이 고이 간직하고 있다.2009년 갓일을 배우기 시작한 아들 박형박(47)씨가 5대째 이어오고 있다. 대학에서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석사를 마친 후 단국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박형박씨는 “갓일은 5대째 가계로 이어져 저에게 대물려지고 다음 세대에게 가계로 대물림을 통해 전통이 전승되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통이 전승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 못하는 것 아쉽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갓일은 정적인 작업이라 농악이랑 시설을 같이 사용하면 시끄럽고 일을 집중할 수 없어 부적절하다. 소하초중고교 근처에 있는 소하동 어린이그루터기 공원내 운동시설이 있는데 가능하면 이곳에 통합전수관을 세워 작업공간과 전시관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광명시에 제안했다. ●작은 작업실·전시실 마련해 갓전통 계승하는 게 바람 또 “19세기말 고종시기에 통영갓이 나오는데 실제로 통영갓의 실체는 사실상 없으며 안동·예천·통영 일대 문중에 이전 시기의 갓들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제작과정의 시현 모습을 광명시내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보급체험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박옹은 “국가가 일정부분 지원하고 있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는 별도로 대우해 주고 있다. 광명시는 지금까지 아무런 지원이 없으며, 살고 있는 집 앞에 국가무형문화재 존재를 알리는 간판 하나도 없다”고 서운해 했다. 이와 관련해 광명시 관계자는 “그러잖아도 박옹의 작업실 등에 대해 여러 방안을 고민해 왔다. 추경예산을 확보해 놓은 상태로 6월부터는 일정금을 지원해줄 예정”이라며, “2024년 완공되는 광명역 복합문화회관에 무형문화재 작업실과 전시관을 마련해 박옹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똑똑 우리말] 이상, 이하, 초과, 미만/오명숙 어문부장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500~600명대를 넘나들고 있다. 청정 지역으로 여겨졌던 제주도에도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4차 대유행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가정의 달인 5월은 모임이나 행사가 많은 만큼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를 지키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거리두기 조치로 5인 이상, 100인 미만, 500명 초과 등의 세부 지침이 등장하는데 기준 수의 포함 여부를 두고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을 의미하는 명사 ‘이상’(以上)은 기준이 수량으로 제시될 경우 그 수량이 범위에 포함되면서 그 위인 경우를 가리킨다.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고 하면 5명부터 그보다 많은 인원에 대한 모임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하’(以下)는 그 수량이 범위에 포함되면서 그 아래인 경우를 가리킨다. ‘18세 이하 청소년 관람 불가’라 하면 18세를 포함한 그 아래 나이의 청소년은 영화를 관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만’(未滿)은 그 수량이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그 아래인 경우를 가리킨다. 거리두기 2단계 조치로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의 경우 100명 미만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99명까지 모임 인원을 허가한다는 의미다. 반대말인 ‘초과’(超過)는 그 수량이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그 위인 경우를 가리킨다. oms3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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