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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 “통석” 사과와 양국관계 앞날

    ◎「과거사」 매듭… 선린우호의 새 지평 열다/주ㆍ객체 명시… 우리측 요구 대체로 수용/대 미ㆍ중국 사과보다 훨씬 더 강도 높아/경협ㆍ교포지위 등 현안타결 가시화가 진실성 좌우 새로운 한일 우호선린관계의 개막을 위한 최대의 걸림돌이 일단 제거되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 일왕은 그동안 한일 양국간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과거사과」 문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책임과 반성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에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지난 84년 언급했던 「과거사유감」(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발언을 상기시킨 후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고 밝혔다. 일왕의 이같은 과거사에 대한 강도있는 사과표명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요구해왔던 ▲일제식민지 지배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시 ▲분명한책임과 반성의 표현을 대체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과문은 일 식민지배의 가해자가 일본이며 피해자는 「귀국의 국민」 즉 한국인임을 적시했고 사과의 주체가 「본인」 즉 일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반성의 정도는 『통석(일본용어이나 우리말로 풀어보면 「뼈저리게 뉘우치는」의 뜻)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심도있는 반성」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이러한 「사과수준」은 그의 선왕인 히로히토 일왕의 지난 84년의 「유감」보다는 크게 진전된 것이며 히로히토 일왕 재위시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행한 사과수준 보다는 훨씬 강도가 높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아키히토 일왕의 대한사과는 일단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일왕 사과에 이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 총리가 이날 하오에 있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문제와 관련,『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한 데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한다』고밝힌 점은 과거사에 대한 일측의 반성정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일본측의 사과에 대해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솔직히 사과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논평하고 『이러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이 각 분야에 반영되어 한일간에 상호존중과 이해ㆍ협력의 바탕이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공식논평은 일왕및 일 총리의 「과거사 사과」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로써 한일 양국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역사적인 첫 매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측의 심도있는 사과는 대체로 2가지 이유에서 연유되었다고 보여진다. 첫째는 한일간에 있어 과거문제를 가지고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는 인식이 일본정부 수뇌부에 그런대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서간의 벽이 무너지는등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서 우선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점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접국인 한국과의 선린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게 급선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촉진되는 아키히토 일왕의 한국방문이 성사되기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 종결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왕의 대한 사과는 그가 일본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통합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일양국 관계발전에 족쇄가 되어온 과거역사의 그늘과 잔재를 치우는 일대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인 「반성」과 「책임」을 표시하는 데 있어 일본식 표현인 「통석의 염」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측 요청사항을 교묘히 우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왕의 사과발언은 우리국민 감정까지 감안할 경우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고 지적된다. 여기에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대목은 일왕과 일 총리의 심도있는 사과만으로 과거청산의 완전종결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일본측이 얼마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사과수준에 상응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사과의 진실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과거사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재일 한국인 법적지위,특히 교포 1ㆍ2세에 대한 3세와 상응한 조치여부,원폭피해자ㆍ사할린 동포 지원에 있어 일본의 성의정도가 바로 사과의 진실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의 사과수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증폭된 욕구가 조성되는 것도 일본의 「행동」 가시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선린의 동반자관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잔재의 청산과 병행하여 미래지향적인 협력체제가 서서히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만성적인 무역역조의 개선,통상ㆍ경제분야의 협력,특히 과학기술의 협력 등은 바로 그 징표가 될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과 관련,국내적으로 「큰짐」이 되었던 과거사 문제가 이런 수준에서 일단 타결된 것은 그의 일단계 방일성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 「통석의 염」의 해석/이경형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과거사 사과」 발언을 하면서 구사한 「통석의 염」이란 말을 놓고 해석이 구구하다. 24일 저녁 아키히토 일왕은 노태우대통령을 위해 베푼 만찬석상에서 그동안 한일 양국의 최대현안이 되어왔던 「과거」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 통석의 염이 우리말에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임을 감안,「뼈저리게 뉘우치는 마음」으로 풀어 한국기자들에게 공식 발표했다. 이에앞서 일본측으로부터 사전에 사과문안을 수교한 한 당국자는 이 대목이 「아픈 마음으로 뉘우침」을 의미한다면서 이같은 한국측의 번역에 대해 한일 정부간에 이미 양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외무성이 한국말로 번역,배포한 만찬사에는 「통석한 마음」으로만 되어 있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더욱이 노대통령의 방일활동을 경쟁적으로 취재보도하고 있던 일본기자들은 한국측의 번역이 「과잉번역」이며 통석의 사전적 의미가 「대단히 슬프게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한결같이 매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통석이라는 단어는 일본인들이 통상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 용어이며 「뼈저리게 뉘우치는 것」으로 번역되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기자들은 한국보도진들에게 『한국신문에는 「통석」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보도되느냐』고 몇번이고 캐물었다. 그러나 문제는 통석의 사전적 의미가 과연 어떤 것인가보다 통석의 단어를 구사하기까지의 양국 정부당국자들의 속마음이 과연 무엇이었던가가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측은 통석이란 잘 사용치 않는 용어를 씀으로써 일본국민들에게 일왕이 한국측에 「머리를 조아리는」 반성을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한국정부는 일왕의 사과와 관련,증폭된 국민욕구를 무마하기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확대번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일단 갖게 해주고 있다. 외교적 사령가운데는 이따금 상대방이 서로 편리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교가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불행했던 과거」 매듭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 겉치레 말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 부임앞둔 주한 일대사 야나기 겐이치(인터뷰)

    ◎“「교포3세」문제 원만한 타결 확신”/“과거의 불행한 역사 깊이 반성”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 주재대사로 임명받아 서울에 가게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의 우호를 증진시키기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할 생각입니다』­야나기 겐이치(유건일)신임 주한 일본대사의 한국말은 대단히 유창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사말 뿐이었고 사실은 지난 2월 주한대사로 발령받으면서부터 1주일에 2번씩 부인과 함께 외무성 어학연수소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부임을 앞두고 4일낮 일본외무성에서 주일한국특파원들과 만난 야나기 대사의 관심도 역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과 재일한국인3세의 법적지위 보장문제에 쏠려있는 듯,대단히 진지하고 성의있게 답변했다. 『노태통령의 방일은 일본측 사정으로 과거 2번이나 연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빠른 시일내에 꼭 실현되도록 두 나라 정부당국이 현재 일정을 조정 중이나 아직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과 일본은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어 왔습니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일 두 나라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중요한 뜻을 갖는 것입니다』 현재 한일 양국에 최대 현안이 되어 있는 3세 문제에 대해서도 야나기대사는 『그 역사적 특성과 정주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내에서 충분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의를 갖고 노력중이며 양국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원폭피해자 보상,사할린 잔류동포 처우,무역적자의 해소,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문제 등 각 부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성심성의껏」이라는 어휘를 7∼8번이나 반복했다.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지난 52년 외무성에 들어가 주영대사관1등서기관,주시애틀총영사,경제협력국장,파키스탄 및 호주대사를 역임한 그는 지난 83년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당시 총리의 한국방문 때 공식수행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등 72년이후 12년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일본의 방위력 증강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깊이 반성하면서 헌법의 규정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가 군사국가가 되지 않도록 결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도쿄=강수웅특파원〉
  • 「태극나래」모스크바에 첫 안착

    ◎김포서 10시간17분비행끝 셰레메치예프공항에/본사 이중호특파원KAL기취항 동승취재기/한복교민50명””어서오세요””뜨거운 환영 “”몇년전만 해도 생각못한일””승객들 감격 「승객여러분 저희 항공기는 방금모스크바의 세례메치예프 공항에 도착했읍니다. 지금시각은 상오1시58분입니다.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첫 취항에 탑승해 주신 것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모스크바의 4월은 역시 봄인데도 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그러나 기온은 예상보다 포근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40분 4백10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을 떠난 대한항공 913편(기장이상재.58)보잉747기가 10시간17분만에 모스크바 공항에 안착하는 순간 이곳에서 내린 45명의 승객은 물론, 이항공편으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스위스 취리히까지 가는 3백55명의 통과여객들도 모두 마음속으로부터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태극마크도 선명한 KAL기는 계류장으로 들어가 멎었고 로딩브리지를 통해 소련땅을 처음밟았다. 탑승객들은 공항청사 입구에서부터일단의 환영인파에 휩싸였다.이곳에 사는 교민 50여명이 손에손에 태극기와 소련기를 들고「어서오십시오」라며 일행을 따뜻이 맞았다. 이 가운데는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교민3.4세 청소년들도 끼어 있었다.치마 저고리를 곱게 받쳐 입은 여성들도 여러명있었다. 승객들이 이들환영객의 안내로2층입국장에서 입국수속을 밟을때 3층트랜짓라운지(통과여객대합실)로 가던 통과여객들은 아래층의 모스크바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부러운듯 모두난간에 줄지어 서서 내려다 보았다. 소련의 공항당국자들은 다소 행동이 느린듯했으나 우리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승객들은 5층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한밤중인데도 성대한 아에로플로트 관계자와 공노명초대소련영사회처장과 재소교민회의 미하일박회장,허진부회장등 많은 교민들이 참석했다.공처장은 기념사를통해「1945년12월 모스크바에서삼상회담이 열리던 때만해도 45년뒤 이와같은 큰역사적인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상기시키고「돌이켜보면 양국항공사에는 대단히 가슴 쓰라린 일도 있었으나 이제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애를 다져나가자」고 말했다. 서울∼모스크바 정기항공노선의 개설축하를 위해 함께도착한 우리측이헌석사절단장(교통부 항공국장)은 도착성명에서 그동안의 양국 항공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오늘날 한.소간에 정기노선의 교류가 트이게 된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접합점을 이루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지적하자 특히 소련측 관계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소련의 항공관계자들은 아에로플로트의 서울취항과 함께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취항은 두나라 관계개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51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모스크바행 첫KAL기는 강릉상공을 지나 30분만에 동해로 빠져 9시32분 일본영공에 들어섰다.도쿄관제탑과의 교신에서 안두찬부기장은「주긴항로인 니가타(신석) 상공까지 갔다가 소련영내로 들어가는 대신 카두보로 직항하겠다」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도쿄관제탑은 곧 항로수정을 허용하겠다고 알려왔다.하오10시40분「여기는 하바로프스크,다이얼을 12450으로맞추어라.현재 위치와 속도.고도를 말하라」는 소련관제자의 영어무선방송이 들려왔다. 소련 상공을 유유히 날으고 있는 KAL기와 소련관제탑과의 첫교신이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고 별빛은 초롱초롱했으나 아래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이 여객기로 2일부테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되는 비행안전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합승 한 한국항공대 홍순길교수(52)는 「모스크바에 태극날개가 취항하다니….형용할 수없는 감개를 느낀다」고 말하고 10년전외국항공기로 모스크바공항에 1시간 기착했을때 무슨일이 없을까 마음조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비행10시간17분만에 기수는 드디어 아래로 숙였다.모스크바였다.
  • 고구려ㆍ발해사 공동연구바람직/52년만에고국방문 연변대 정판룡부총장

    ◎“학술교류 확대… 연구성과 높여야” 『우리 대학이 발해ㆍ고구려의 옛터에 자리잡고 있는 이점을 살려 최근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한국의 여러대학과 학술ㆍ인적교류를 더욱넓혀나가겠습니다』 52년만에 고국땅을 처음 밟고 우리나라의 대학을 둘러보면서 틈틈이 고향의 친척 등을 만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중국 연변대학의 정판룡수석총장(58)은 1일 최근의 한중학술교류 분위기에 대해 북한을 의식한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부총장은 지난달 17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로부터 현대중한사전 출판기념회에 감수인자격으로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내한했다. 한국의 발전상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는 정부총장은 『고향인 전남 담양을 가보니 옛집과 동네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을뿐 아니라 주민들도 자신을 기억해줘 무척 감회가 깊었다』며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말했다. 정부총장은 지난38년 고향을 떠나 줄곧 중국땅에 살면서 고생끝에 49년 연변대 1기생으로 입학한 이후 북경대ㆍ모스크바대 등을 유학,조선어문학을 전공한뒤 30년동안연변대에서 강의를 맡아왔다. ­이번에 나온 「중한대사전」에 대해. 『한중학술교류의 첫 완성작이다. 중사전은 18만단어가 수록돼 있다. 일본에서 제일방대한 「중일대사전」도 14만단어에 불과할 뿐 아니라 중국에서조차 그 이상가는 사전은 없다. 오는 6월 나올 대사전은 30만자로 세계최대의 중국어사전이다』 ­연변교포들의 생활상과 연변대학을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중국전체에서 「중상」정도의 경제수준이며 「조선족자치구」를 형성해 우리말과 글을 쓰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연변대학은 지난49년 우리민족 스스로 중국정부의 지원없이 자체모금으로 설립됐으며 교수ㆍ교직원의 80%,학생은 70%가 조선족인 명실상부한 민족학교다』 ­국내대학과의 학술교류계획에 대해. 『한국의 여러 대학과 공식적인 자매결연이나 학술교류는 아직 없지만 민간적차원에서 왕래가 빈번해지고 있다. 고구려사ㆍ발해사ㆍ독립운동사 등은 서로간에 교수ㆍ학생의 인적교류와 자료 등의 물적교류가 없이는 연구에 한계가 있다. 이때문에 공동연구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우선 고려대의 재정지원으로 「발해사연구실」을 설립할 예정이다』 ­교수나 유학생의 구체적인 교류계획은. 『연변대의 최원길교수가 이번 1학기동안 고려대에서 중문학강의를 맡게될 예정으로 문교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대학과도 교수나 유학생교류문제를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동포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연변의 교포들은 직접 고국에 와보길 원하며 한국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어 한다. 사전류를 비롯해 고국을 더 잘알고 이해할수 있는 책들을 많이 보내줬으면 한다』
  • 자오즈민양,한대 중문과 입학(조약돌)

    ○…지난해말 안재형선수(25)와 결혼했던 중국 탁구스타 자오즈민양(초지민ㆍ26)이 13일 한양대 중어중문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 학교측은 초양의 입학에 대해 『중국어보다는 우리말을 얼마나 익히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면서 『입학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시일이 걸렸지만 일단 등록한 이상 일반학생들과 다름없이 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경기도 강화군의 서도면에는 「포」음 출장소가 있다. 그 관내에는 포음도ㆍ「말」도가 있고 현지인들은 전자를 포름ㆍ보름이라 했고 후자는 말섬이라 불렀다. 그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서 생긴 괴상한 글자가 괄호안의 사이비 한자. 그 글자는 한자가 아닌 한자다. 「돌이」라 부르는 토박이 이름을 한자로 쓰려면서 「돌이」라 적는 그 「돌」자의 경우와도 같다. ◆가령 「동국여지승람」을 들여다 보자. 고을 이름 다음에는 건치연혁이라는 것이 나온다. 전라도의 영광군을 펼친다면 「본디 백제의 무시이군」이라 적혀 있다. 이 「무시이」가 토박이 이름의 한자표기. 어떻게 읽느냐에 대해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견해를 펼친다. 민세 안재홍에 의하면 「무시이」는 「뭇재」 혹은 「물재」. 신라가 「무령」으로 고쳤는 바 이 때의 「영」도 우리말 「재」의 한자표기라는 것이다. ◆「가마골(굴)」이라는 데에 산소가 있어서 시형을 지내는 집안도 있을 법하다. 하나,그 곳을 나타내는 족보의 표기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뜻으로 적었다 할 때 현곡ㆍ흑곡ㆍ오곡ㆍ부곡이 될 수도 있고 소리로 적은 경우라면 가막곡ㆍ가마곡ㆍ가말곡ㆍ갈마곡이 될 수도 있다. 지방에 따라 「가매골」이라 한다면 다시 가매곡 같은 표기도 나온다. 이와 같은 문물제도의 한화는 신라 경덕왕 때가 그 시작이라 말하여진다. ◆얼마전 일본 만뇨슈(만엽집)의 해독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논쟁 대상이었던 일반적 어휘뿐 아니라 땅이름도 우리 토박이 이름과 관련지어 보면 어원은 쉽게 풀릴 수가 있다. 가나가와켕(신내천현) 가마쿠라(겸창)의 어원에 대해서만도 제설이 분분하지만 그게 곧 「가마골」. 아이치켕(애지현)의 가마고리(포군)도 「가마골」이니 그들의 도예문화와 함께 생각하면 된다. ◆새로 건설되는 분당 새 도시에 토박이 땅이름이 53곳이나 생겨나리라 한다. 문자생활이 한글화해가는 추세 속에서 바람직스러운 현상. 「백현」을 「백현」이라 쓸 바에야 「잣고개」 쪽이 얼마나 더 친근감을 주는 것인가.
  • 한글학회등서 동ㆍ다리ㆍ역등 53곳 “작명”

    ◎분당=돌마 사송동=앞들골 백현동=잣고개/분당 「우리말 거리」로/유래ㆍ지형등 살려 옛 정취 물씬 나게/전철역 5곳은 「재안」ㆍ「궁안」등으로 새로 건설되는 분당 신도시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동이름과 도로ㆍ교량 등의 이름을 순우리말로 붙인 「한글도시」로 탄생된다. 한글학회와 땅이름학회는 건설부의 의뢰를 받아 3일 분당 신도시지역의 22개 동 및 10개 주요도로,16개 주요교량,5개 전철역 이름을 예스러운 멋과 유래 등을 살린 우리말로 새로 지었다. 분당 신도시 새이름짓기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한글학회의 유중달씨(52)와 땅이름학회의 정재도회장(65) 및 이영택부회장(69) 등 3명. 이들은 우선 신도시의 이름을 분당 대신 「돌마」로 바꾸어야 한다고 추천했다. 분당을 「돌마」로 불러야하는 이유는 이 지역이 성남시가 생기기 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이었으며 지금의 중원구가 되기전에는 성남시 돌마출장소가 관할하던 지역으로 돌마는 예로부터 이곳을 일컫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돌마는 한자로 돌마로 쓰고있기는 하나 그뜻은 「돌진하는 말」이 아닌 「돌이 많은 마을」의 순우리말식 표현이라는 것이다. 건설부가 당초 신도시에 새이름을 지으려 한 것은 과거 과천시를 만들면서 지명이 1단지,2단지… 하는 식으로 획일화돼 운치가 없어졌고 행정면에서도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는데다 분당이라는 이름이 중국을 일컫는 당자가 들어있어 우리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한글학회와 땅이름학회는 지명개정시안을 2개로 정해 제출했다. 하나는 순한글식이고 또 하나는 현재의 지명을 살리고 한자로도 쓸 수 있도록 만든 안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사송동과 이재동의 일부가 포함될 새 동네는 「앞들골」 또는 「대평동」으로 명명하고 있다. 개정안은 또 지금의 「동」을 그냥 쓸 수도 있고 동대신 「골」을 쓸 수도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현재 지명의 유래와 동네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참작해 완성했다. 서현ㆍ수내동을 묶어 「볕고개」로 정했다. 두 마을을 잇는 고개가 바로 볕고개(양현)이기 때문이다. 수내동은 「숲안」과 「글재」 「역말」이 된다. 수내라는 이름자체가 「숲」과 「안」이라는 음과 뜻을 각각 빌려만든 이름이고 각각 마을 이웃에 「글재」(글고개ㆍ서현)와 「낙생역」(역)이 있었다는 뜻이다. 「잣고개」는 백현동의 뜻을 풀어 쓴 것이며 「밤나무」와 「오리」는 각각 동네뒷산에 밤나무와 오동나무가 많아 붙여졌던 옛 이름이다. 분당신도시에 들어설 5개의 전철역가운데 2곳은 「재안」 「궁안」 등의 순우리말로,우리말로 바꿀수 없는 3개역은 「와소」 「은행」 「구미」 등으로 하되 한글로만 표기토록 했다. 건설부 신도시개발기획단 측은 분당신도시에 대한 세부개발계획이 변동되지 않는다면 이 개정안을 곧 경기도 성남시 지명위원회에 회부,신도시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전 확정할 방침이다.
  • 언어 표준화로 민족 동질성 회복/이 문화장관

    ◎「문화주의 새사업」 구상 발표/범종교 예술제ㆍ재외 교민축제 추진/「까치소리 전화(735-1990)」로 여론 수렴 정부는 한국인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국민의 문화 향수권과 참여권을 신장하며 미래문명에 적응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등의 문화주의 새 사업계획을 추진키로 했다. 이어령문화부장관은 15일 후기산업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 현상을 문화적 힘으로 치유하고 남북한간의 이질화 현상을 문화적으로 접근,통일 여건을 마련하며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민족 뿌리찾기 사업을 개발하는 등의 「문화주의 새 사업 벌이기」를 발표했다. 이장관은 동질성회복을 위해 우선 우리말의 표준화 작업에 착수하고 종교문화의 진흥을 위해 범종교 예술제를 개최하며 한복 바로입기ㆍ향토음식 발굴ㆍ풍류적 주거환경 모델 제시ㆍ신명나는 놀이문화 프로그램 개발 등 우리 고유의 멋과 맛을 지키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민족 문화대축제를 교포 밀집지역에서 순회개최하고 북경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중ㆍ소지역 거주 교민들을 대상으로 예술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문화 향수권과 참여권을 신장시키는 방안으로 지역문화 동호인등으로 하여금 문화소집단운동을 활성화시키고 예술인ㆍ종교인들에게 문화그림엽서 보내기운동을 권장,문화가족운동을 적극 펴나가는 한편 관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박물관ㆍ미술관을 관객을 찾아가는 곳으로 만들며 문화지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금까지 사장되다시피한 지방문화원을 「문화사랑방」으로 꾸며 지역유지 연고기업인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내고향 문화가꾸기 운동센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근로청소년들이 동경하는 문화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는 한편 서울의 인사동 명동 이태원과 대구 약령시장 등 문화적 명소와 거리를 정비하고 안방속에 우리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문화소개 비디오프로그램도 대량으로 제작보급한다. 이장관은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문화부에 「까치소리 전화」(02-735-1990)를 설치,국민들의 여망과 민원건의사항을 수렴하며 문턱없이 일하기,생색내지 않고 일하기,사심없이 일하기 등 「3불 운동」과 이끼입히기,두레박놓기,부지깽이되기 등 「3가 운동」을 문화행정의 추진방법으로 설정했다고 강조했다. ◎계층­지역갈등ㆍ남북 이질화 치유작업/“90년대를 문화의 시대로” 정책의지 천명(해설) 문화부가 15일 발표한 90년대 새로운 문화정책의 제시는 ▲문화의 위상 재정립 ▲민주화와 문화와의 동질성 인식 ▲문화의 국제화 ▲정책실현 가능성의 제고라는 측면에서 90년대를 문화의 시대로 정의하는 강력한 문화발전 의지를 보인 것이다. 새 사업중 우선 문화 위상의 재정립은 그동안 정치ㆍ경제의 종속적 주변의 위치에 있던 문화가 세대ㆍ계층간ㆍ지역간의 갈등현상 및 남북한간의 이질현상 등을 치유할 수 있는 주제적 위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민족의 언어 혼란을 막기위한 우리말 표준화의 실시와 여러 종교간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교리를 초월한 범종교 예술제의 추진은 주목할 만하다. 또 한민족 문화대축제를 교포 밀집지역을 방문,개최하고 이들 새로운 문화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이벤트 문화기획단」을 구성키로 한 것은 큰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민주화와 문화의 동질성 인식은 문화향수권과 문화참여권의 신장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잘 살아보자」는 이제까지의 구호가 「인간답게 살아보자」로 바뀌게 되는 생활문화 선언의 뜻을 담고 있다는 데서 주목할 만하다. 구체적으로 문화부는 문화가족운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하는데 이는 청소년 선도와 문화보급의 복합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보급 방식을 관객을 찾아가는 형태로 개선운영함으로써 시설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며 귀향문화운동의 일환인 문화사랑방운동도 지역문화의 새로운 창출로 받아들여진다. 또 「까치소리 전화」의 설치ㆍ운영은 문턱없는 행정과 여론수렴 행정을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의 국제화로 우리 문화상품의 국제적 보급,국제문화행사 개최,한국 문화권의 세계적 확대,한국어의 세계언어화가 포함되어 있는 것과 최저 경비로최대효과를 거둔다는 정책실현 가능성 제고 방안에 있어 현행 전통민속 보존마을을 활용한 「예술인 창작마을」 조성,지방문화원을 이용한 「문화사랑방운동」 등은 기존시설의 활용및 창작의욕을 부추길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로 보인다. 신설 문화부가 새 사업계획에서 이처럼 광범위한 문화전반의 문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정책발표에 대해 구체적 실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어령문화부장관은 『앞으로 문화부는 집 짓는 일(하드웨어) 보다는 속을 채우는 일(소프트웨어)에 주력하겠다』고 말해 이의 실현이 가능함을 명백히 했다.〈나윤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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