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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교육 나서는 노인강사 많다

    ◎「노후복지 교수요원 세미나」에 수강생몰려 열기/교직 등 은퇴후 경험·전문성 살려/노인대학 강사·자원 봉사원 활약 『늘그막 인생에서 무엇을 배우는게 좋은지,어떤 방법으로 살아야 할지를 같은 노인인 우리보다 더 이해하고 잘 도와줄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노인들을 대상으로한 강의나 상담에 또래 노인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노후복지개발연구소(소장 김병국)와 서강대 국제평생교육원이 지난해 9월부터 함께 마련한 「노후복지 교수요원 교육및 노인대학 교사교육 세미나」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은퇴 노인들. 오는 9∼10일 열리는 노인대학 교사교육세미나(서울 역삼동 동 연구소)에는 1백여명이 선생님을 지망하며 수강 신청한 상태다. 한창때의 전공과 경력을 살려 노인대학등에서 유료강사나 자원봉사원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이 중에는 일찍부터 현장에서 뛰고 있는 패기만만한 「전문강사」들도 많다. 『자녀들앞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강조하지요.그래서 강의 내용도 훈계성보다는 아이들에게 다시 가르쳐줄수 있게재미있는 것으로 택합니다』국민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은퇴,의정부의 한 노인대학에서 강의하는 조언상씨(72)가 꼽는 교육요령이다. 「우리말의 순화」등의 인기 강사인 조씨는 요즘 세계 각국의 국가를 다음번 강의소재로 골라 책방을 찾고 있다. 교수요원중 정광복(69)·양재복씨(64)는 부부가 함께 참가한 경우.의사로 은퇴한 부인 양씨는 의료·건강과목 강사로 노인학생들을 찾을 계획이다.『사회복지를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일깨우고 통제하고 봉사하는 「자기복지」를 위한 자세가 우리 노인들에게는 필요합니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은퇴한 남편 정씨는 젊은직장인들에게 강연해온 경험을 같은 노인들에게 나누기 위해 뛰어든 열성파. 『삶의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자신감을 심어주고 어긋난 고부관계등을 풀도록 힘쓰지요』 청소년 상담원으로 일하다 2년전부터 노인 집단 심리상담을 해온 김말자씨.상담에서 얻은 결과를 강사들과 교환하며 더욱 효과를 얻는다고 밝힌다.
  • 일 메지로대 윤학준 교수의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 1·2권

    ◎「한국인 양반의식·문화」 재미있게 풀이/영남대가집 종손 참봉직 세습 이유/조총련내서도 양반·상놈 왜 따지나/학문적 분석보다 에피소드 위주로 엮어 양반제도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양반의식」은 아직 우리 사고방식과 생활 전반에 뿌리깊게 도사려 있다.우리의 양반의식을 유려한 글로 분석한 에세이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1∼2권이 최근 나왔다(길안사 펴냄). 지은이 윤학준씨(63·도쿄 메지로대학 객원교수)는 40여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는 교포 국문학자.파평윤씨(파평윤씨)인 그는 「양반문화의 메카」라는 고향 경북 안동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양반,양반의식,양반문화를 때로 해학 넘치게,때론 심각하게 풀어놓았다. 그는 「영남 벼슬 중에 종손 벼슬이 최고」라는 그 지방 말에서 양반의 실체를 끄집어낸다.대가집 종손은 고향을 지켜야 하므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것이 전통.다만 최하위 관직인 종9품 참봉직을 세습적으로 받을 뿐이다.그런데도 정2품인 지방장관이 집안 종손 앞에서 쩔쩔매는 까닭은 그만큼 종손으로 대표되는 가문의권위(곧 양반층의 질서)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윤교수는 이같은 양반의식이 자신의 고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사람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그 예로 일본생활에서 체험한 조총련 간부들사이의 갈등을 들었다. 조총련의 실력자 K는 스스로 김해김씨 양반이라고 자랑하곤 했다.그런 그가 어느 날 부턴가 부하간부인 C를 원수처럼 미워했다.K의 형이 C의 집안에서 머슴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우연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윤교수는 『출신성분을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조총련 공산주의자들마저도 모두 양반임을 내세우지 상민이라고 밝히는 사람은 못보았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이 책들은 1권 「온돌야화」,2권 「역사에 얼룩진 한국」두편으로 짜여졌다.원래 윤교수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83년과 93년 일본에서 각각 출간해 스테디셀러가 된 것을 이번에 우리말로 옮기면서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한국의 양반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기 보다 에피소드 위주로 엮어 상당히 재미있게 읽힌다. 윤교수는 「6·25」 끝무렵인 53년 4월 일본으로 밀항해 조총련에서 좌익활동,반한운동을 벌여 그동안 귀국이 불가능했다.그후 이념적인 갈등과 조총련 간부와의 불화로 전향해 82년 3월부터 5차례 한국에 다녀갔다.
  • 국립국어연구원 새원장 송민씨(인터뷰)

    ◎“통일대비 종합국어대사전 발간 추진”/한자표준화 위해 중·일과 협력기구 결성 『새 표준어의 제정이 크게 문제시될 통일을 앞둔 현재 종합국어대사전의 발간이 무엇보다 긴요합니다』 최근 취임한 송민(58)국립국어연구원장은 북한과 달리 우리는 아직 국가공인 국어사전이 없는 실정이라면서 종합국어대사전 발간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97년 완성목표로 현재 입력작업과정에 있는 종합국어대사전 발간은 국어연구원이 심혈을 기울여 9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주력사업.송원장은 『통일이 되면 경제면에서 많은 것을 양보할 수 밖에 없는 북한측이 문화면에서 만회하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종합국어대사전 발간은 이에 대한 사전대비작업으로도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송원장은 또 김영삼대통령의 제안에 따른 한자표준화사업으로 『일본국립국어연구소와 중국어언문자공작위원회와의 협의로 협력기구를 결성하고 올 가을쯤 관련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라면서 『이같은 사업추진으로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 3국의 한문글자체가 다른데 따른 불편을 해소할 길이 열리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송원장은 성심여대·국민대교수를 역임한 국어음운론의 권위자.특히 일본어가 우리 언어에 미친 영향에 관한 10여편의 논문을 발표해 일본어의 잔재 정리에 크게 기여한 국어순화운동의 선구자이다.『광복50주년을 맞았으나 외래어의 범람으로 풍부한 형용사를 갖고 조어법이 다양한 우리말의 장점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는 그는 언어순화에는 국민적 언어의식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국어에 대한 애착을 갖고 경제수준에 걸맞는 세련된 국어를 사용해야만 우리말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송원장은 『우리 국민은 서구나 일본에 비해 자국어에 대한 긍지가 높지 않고 남을 감싸주고 위해주기 보다는 헐뜯고 결점을 들춰내는 쪽으로 언어를 사용,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골을 깊게 만드는 경향이 짙다』면서 『세련된 국어의 사용은 우리 사회의 안정과 평화유지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19세기말 아르 누보전 고가구/구미·일서 다시 유행

    ◎주택·공공시설물 장식으로 활용/영 매킨토시자 캐비닛 9억 호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풍미했던 「아르 누보」풍의 가구들이 다시 유럽은 물론 미국·일본등지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아르 누보란 정형적이고 도식적인 구도를 탈피해 새로운 개념의 미술을 추구한다는 사조로 19세기말에 프랑스에서 시작돼 전유럽에 퍼졌다. 요즘으로 치면 우리말로 「현대식」「신개념」이란 수식어가 붙는 풍조가 그당시에 유행했던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같다. 그런 것이 최근 들면서 다시 가구예술을 중심으로 보통사람들의 인기를 끌면서 주택의 장식이나 공공시설물의 장식등 생활무대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르 누보풍의 가구들이 다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일본인들이 이를 찾으면서 런던의 소더비,뉴욕의 크리스티경매장등에서 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아르 누보 대가인 매킨토시가 만든 흑단칠을 한 마호가니 캐비닛이 뉴욕에서 1백20만달러에 팔리는가 하면 프랑스의 에밀 갈레, 조르주 드 푀르등 대가들이 만든 가구는 한점당 평균 17만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아르 누보풍 가구의 특징은 정형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전적으로 비정형은 아니다.간결하면서도 요소요소에 화려한 장식을 가진 채 우아한 멋을 내고 있다.화려한 장식이 있어 어떤 사람은 싫어 한다 하다가도 간결한 멋에 심취되기도 하고 호리호리한 간결함에 싫증을 느끼다가도 곧 화려한 장식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 아르 누보가 유행할 당시에는 바로크·로코코등 화려함의 극치시대를 지나 산업혁명이 전유럽을 강타했을 때 기계로 마구 찍어내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장인의 독특한 수공의 멋이 다시 빛을 보게 된 때이다. 건축 쪽에서는 파리에 몇개 남은 고풍스러운(지금 보면 고풍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참신했던)지하철역 입구 장식에서 아르 누보의 편린을 볼 수 있다.일본식 우산살을 연상케해 우리에게는 거리감이 있지만 위로 솟은 유리덮개를 받치는 처마를 대나무같은 모양의 날렵한 기둥이 받치고 있다. 미국에서 아르 누보 풍조를 다시 상기시키는 주역은 지신도 한때 이같은 풍의 예술활동을 했던 프란시스 루이스.이 퇴역 예술가는 지난 60년대부터 아르 누보 시대에 만들어진 가구들을 모아오기 시작해 지금은 그의 리치먼드 집에 이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의 소유물중 눈길을 끄는 명품은 잠자리 모양으로 된 세개의 다리가 받치고 있는 작은 원형 탁자.에밀 갈레가 만든 이 탁자는 최근 2만5천달러에서 3만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등 경매장 관계자들이 한껏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곳은 최근의 아르 누보풍의 부흥을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 소설 포청천/석옥곤 지음(화제의 책)

    ◎연기 TV외환 「판관 포청천」의 원작소설 현재 TV드라마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판관 포청천」의 원작소설로 원제목은 「충렬협의전」이다. 백성을 위해 정의롭고 엄정하게 법집행을 한 중국 송나라 때 실존인물 포증의 일대기를 그렸다.「청천」이란 당시 사람들이 그의 청렴강직함이 「푸른 하늘」과 같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부농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청천이 아버지가 꾼 불길한 꿈 때문에 버림받은 어린 시절,왕조·마한·장룡·조호등 4대 호법을 만나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청년기,황실과 승상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악인을 처벌하는 장년기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오직 백성만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모습이 돋보이는 한편으로는 ▲사건을 파헤쳐가는 추리기법 ▲전조와 4대 호법이 펼치는 무협소설식의 활약상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19세기 말에 나온 이 소설은 중국인들에게 「삼국지」「수호지」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무협소설 작가 박영창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미래사 전 4권,각권5천원.
  • 매캐한 잿더미속 「평화고무」 간판만…/“지진 시름” 일 교민사회

    ◎신발공장·철공소 수백곳 폐회로/거의 영세업체… 하루벌이 교민 큰 걱정/민단 옷·식량 제공… “동포애 한가락 위안” 효고현 지진발생 3일째인 19일 낮.교포공장과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고베시 나가타구 오가이도로는 폭격을 맞은듯 폐허더미로 변해 있었다.벽돌더미와 전신주등이 지진으로 쓰러지면서 골목길들을 막고 있었다. 상가주택가 한쪽편에서는 경찰과 군인 10여명이 모여 있었다.대형 크레인과 굴착기를 동원,무너져 내린 지붕위에서 뭔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다.지진 3일째인 이날까지도 아직 흙더미에서 깔려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의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다음 발길을 재촉했다.스가하라(관원)시장을 통과했다.이 시장은 연기속에 불길이 3일째 계속해서 솟고 있었다.연기가 사라진 쪽으로는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는다』며 몇몇 젊은이들이 시장 이곳 저곳을 바삐 오갔다.한국인 공장의 상징과도 같은 「평화고무」에 다다랐다.화학공장이 많아서인지 매캐한 냄새가 구역질을 일으켰다. 「평화고무」라고 쓴 큰 간판이 무너진 지붕위에 걸쳐있었다.평화고무는 30년전 우리 교포가 세운 신발공장으로 이국땅에서 받은 차별의 한과 내일을 위한 꿈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4층건물로 모두 16개사가 입주한 평화고무.한국인의 피와 땀으로 깃든 한국인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재로 변한 것이다.대부분 종업원이 10∼20명 안팎이었다.영세 신발공업주들은 그러나 『경영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하루벌어 하루먹는 근로자들이 더 걱정이다』면서 한숨을 지었다. 「평화고무」에 세든 박주영씨(55·삼지제화대표)는 『나만 해도 피해액이 1억엔이상 될 것이다.하지만 이 공장에 모든 생계를 건 우리 근로자들의 생활은 정말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주변 5백여개의 군소 신발공장 가운데 80%인 4백여개의 공장이 전파됐다』고 말하고 『일본 케미컬 슈스의 80%를 생산하는 이곳의 공장피해만도 1천억내지 2천억엔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평화고무」와 비숫한 「고쿠에이철공소」「다이큐우가공소」도 사정은 비슷했다.모두 한국인 땀이 밴 한국인의 생활터전이라는 점에서.교포 김상복씨(65·신발가공업)는 『각 공장등이 현재상태로 재개되려면 15년이 걸릴 것』이라며 『중국인과 한창 경쟁하는 시점에서 지진이라는 또하나의 적을 맞았다』고 하소연 했다. 가와니시(천서)도로를 빠져 큰길인 오미치(대도)길을 건넜다.아스팔트가 2백여m 가량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푹 꺼져 있었다.교포가 많이 수용돼 있다는 가구라(신락)소학교를 찾았다.강당·복도·는 물론 들어선 로비에도 「피난민」이 가득했다.5백여명의 수용자가운데 30%가 한국인이라는 설명이었다.입구 정문에는 수용자명단과 함께 사람을 찾는 광고문도 보였다. 우리말이 서툰 김마사코(70)란 할머니는 『세간살이 하나라도 더 꺼내려다 노인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오미치 길옆 한 블록을 건너 하스이케(연지)마을.재일대한기독교 고베교회가 눈에 들어왔다.이곳은 별다른 피해가 없어 한 관계자는 『피해 교포를 돕기 위해 모금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다시 한 블록을 건너 고베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유도대회가 열렸다는 현립 문화체육관을찾았다.로비에서부터 「수용소」였다.이곳 저곳에서는 노인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대부분이 지진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듯 얼빠진 모습이었다. 체육관을 빠져 나오며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쓰노(송야)지역의 불에 타버린 목조2층주택들.바로 이곳은 월세 1만엔 안팎의 우리 근로자의 안식처였으나 모두 사라져버렸다. 시모야마테 민단건물로 향하는 동안 민단 구호물자를 싣고 어디론지 가고 있는 소형 마이크로버스가 눈에 들어왔다.본격적인 교포구호활동이 시작된 것이다.오사카 관서은행은 19일 6백만엔의 성금을 민단에 기부했다.관서제조협회,재일동포대한기독교회등 각종 단체와 교포들도 모포·옷·비상식량·의약품등을 민단으로 보냈다.대지진의 폐허 속에서도 동포애가 비극의 슬픔을 조금은 달래는 듯 했다. ▷신원확인 교포 사망자◁ ◇고베(신호)시 ▲김현수(72)▲진옥려(73)▲심일춘(32)▲최수광(20)▲진강작(71)▲장경자(40)▲박정옥(77)▲박열기(63)▲김효구(61)▲남관자(41)▲고수정(68)▲박영호(72)▲김무부(55)▲김상권(81)▲김순자(39)▲박영치(70∼75)▲신순이(연령불명) ◇니시노미야(서궁)시 ▲한동래(70)▲김일수(67)▲박용령(23)▲김천수(42)▲임숙혜(66)▲임정부(64)▲오행강(연령미상) ◇아시야(호옥)시 ▲김두오(75) ◇효고(병고)현 ▲이일평(연령미상) ◇이단시 ▲박금자(47)▲장순갑(70·서궁시)▲김군자(59·장전구)▲김성기(8·〃)▲안화대(33·〃)▲김향일(36·〃)▲고태윤(70·〃)▲김선주(60·〃)▲남홍(63·명석시)▲박옥용(44·장전구)▲박윤생(64·〃)▲정외선(56·〃)▲김서거(81·〃)▲현양순(67·〃)▲정우연(56·〃)▲이학선(83·〃)▲박열재(50·탄구)▲여양일(53·이기시) ◎교포기업 피해 1천억∼2천억엔/민단,전국 지부·지회에 생필품 지원 지시/효고현 피해규모·구호 현황 이번 효고현의 최대 피해지역인 고베시의 우리 교민은 모두 8만4천여명(외무부집계).이 가운데 한국국적으로 재외 국민등록을 마친 사람이 4만1천3백명.나머지는 조총련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일 현재 고베시 민단본부가 밝힌 인명 피해는 사망이 23명.그러나 효고현 경찰측은 이날 까지 사망한 한국인의 수가 19일 상오 현재 15명이라고 공식 집계하고 있다. 지진피해가 가장 컸던 고베시 나가타구의 우리교포는 1만여명인데 바로 이들 가운데 사망자는 적어도 50명에 이를 것으로 민단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교포들의 피해는 나가타구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들 교포들의 피해액을 집계해보면 교포들의 전체 피해액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민단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나가타구에는 평화고무(대표 강순찬)·국영고무(대표 남창웅)·대구라버(대표 김해수)등 우리교포 기업들이 약 5백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대부분은 고무·화학계통의 기업.고무·화학계통으로서는 전일본을 통틀어 약 80%의 생산량을 맡고 있다.나가타시의 공업생산량은 효고현 전체의 60%로 일본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로 이 지역의 교포대부분은 고무·화학계통의 영세기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한국인이 경영하는 이 기업들에 취업하고 있다. 효고현의 한국인 기업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비공식집계로 교포의 전체 기업피해액만 1천­2천억엔이 이를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같은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지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19일 아직 이렇다할 복구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효고현 당국의 복구가 대부분 전기·전화등 공공시설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또 일본 당국도 복구를 위해 최선은 다하고 있으나 피해지역이 광범위한데다 통신·교통수단이 두절돼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시 관계자들은 『복구보다도 현재 실종된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까지 밝히고 있다.따라서 당분간 전기·통신·가스등 공공기반시설의 복구외에는 개별적인 복구착수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민단측은 18일부터 일본 전국 각지부·지회를 통해 구호활동지시를 내려놓고 있다.19일 현재까지 고베시의 시방(서번)지부와 와카야마(화가산)현지방본부에서 생수·라면·손전등·모포 두 트럭분을 보내와 교포들이 수용돼 있는 각 수용소별로 구호활동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구호품의 수집이나 배분에 있어서도 곳곳에서 교통소통에 애를 먹고 있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다.
  • 국사편찬위 6명,「일본 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 출간

    ◎일 정사의 한국고대사 부분 집대성/고구려·백제·신라·발해 등 관련 내용 풍부/3년만에 결실 “역사연구에 깊이 더할 훌륭한 자료” 일본의 정사에 기록된 우리 고대사 관련부분을 한데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덧붙인 책 「일본 6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가 최근 나왔다(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간). 국사편찬위원회 최근영 사료조사실장을 비롯한 고대사 연구자 6명이 함께 낸 이 책은 일본의 개국신화에서부터 서기 887년까지의 역사를 실은 정사서 6종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발해에 관한 내용을 가려뽑은 것이다. 「일본 6국사」란 일본 역사책 가운데 고대사를 다룬 「일본서기」「속일본기」「일본후기」「속일본후기」「일본문덕천황실록」「일본삼대실록」들을 말하며 이 역사책들은 ▲일본왕 지시로 편찬,정부에서 간행했고 ▲체제가 편년체로 된 공통점을 가져 모두 정사로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일본서기」만이 번역됐을 뿐 나머지 사서는 별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더욱이 「일본후기」「속일본후기」「일본문덕천황실록」「일본삼대실록」등 4종은 일본에서도 아직 현대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들이다. 따라서 한국 고대사에 관한 일본측 사료를 집대성한 「6국사 역주」는 앞으로 우리 고대사 연구에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기초자료로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이 책에는 서기 660년 백제멸망후 일본에 건너간 왕족·귀족의 후손들이 일본 조정에서 고위관리로 자리잡은 뒤 760년 무렵 신라침공을 구체적으로 준비한다는 기록등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많이 나온다.또 현재 문헌자료가 드문 발해관련 기사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한편 최근영실장은 『「임나일본부설」이나 「광개토대왕비문」해석에서 보듯 한일 양국은 전혀 다른 입장에서 고대사를 연구해 왔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한일관계를 다룬 사료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런데도 국내에는 「6국사」번역본 하나 제대로 없어 『이러다가는 일본 관학자들의 견해마저 반박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역주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다만 「6국사」가 일본 조정에서 편찬한 역사서이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발해들을 마치 속국이나 되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면서 이 점은 책을 읽는 일반인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연구의 질을 높이려면 우리나라에서 나온 관찬서(정부간행 역사책),사찬서(민간에서 나온 것)는 물론이고 중국·일본등 주변국가의 사서에 등장하는 한국관련기사를 발굴해 부문별로 모으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예컨대 단군을 연구하려면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재야사학자들이 근거로 삼는 「환단고기」등의 모든 기록을 한데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번 「6국사」역주에 꼬박 3년이 걸렸다고 밝힌 최실장은 『함께 작업한 국사편찬위원회 최원식·김영미·박남수·권덕영·전미희씨 등 젊은 연구자들이 정말 고생했다』면서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렸다.
  • 「좋은이름…」·「작명대전」·「…한글이름」/작명서적 인기

    ◎국교생 개명 허용­발표후 판매 급증/역학기초·성명학이론 등 내용 다양 국민학생 이름바꾸기가 허용되면서 이름짓기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종로서적 등 대형서점에서는 국민학생에 한해서 올 한햇동안 개명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대법원 발표가 지난 연말 나간 뒤 이름짓기책에 관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판매량도 30%정도 늘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이름짓기 책은 10여종으로 역학에 바탕을 둔 성명학 책과 한글이름짓기 책으로 나누어진다.성명학 책으로 최근 인기가 높은 「좋은 이름,자녀를 위한 최고의 선물」(미리언출판사)은 20년 이상 이름연구를 해온 은행원 주영제씨가 쓴 것으로,역학의 기초에서부터 성명학이론·작명법·개명절차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기술했다.「작명대전」(신도희 지음·가림출판사)과 「작명보감」(정보국·밀알)은 성명학연구자들이 수리공식비법,작명비법,공개되지 않은 작명공식 등 작명법을 위주로 정리·구성했다.이밖에 성명학에 관한 책으로 명문당의 「성명학」(남수원),갑을당의 「좋은 이름 이렇게 짓는다」(김상연) 등이 있다. 한글이름짓기 책으로는 미래사에서 발간한 「한글이름짓기사전」(김슬옹·김불꾼·신연희)이 단연 인기.한글이름펴기와 우리말운동을 해온 세 젊은이가 함께 펴낸 이 책은 한글이름짓기의 가치·역사·방법·문제점과 실제적인 적용사례 등을 자세히 수록했다.해냄출판사의 「고운이름 한글이름」은 지난 76년부터 한글이름보급운동을 펼쳐온 배우리씨가 쓴 책으로 84년 초판 발간이후 판을 바꿔가며 통틀어 18쇄에 이르고 있다.이밖에 「샘이나는 한글이름」(토담),「한글이름을 온누리에」(일신서적),「밝한샘 이름말」(아름나라)이 서점에 나와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즐겨 부른 노래(연변 조선족 1백년:11)

    ◎구성진 민요가락에 고달픈 삶 절절이/1914년께 찬송가 보급… 항일가사 붙여 불러/해방이후 대중가요 첫선… 지금은 노래방서 모국가요 판쳐 중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말을 해왔다.「조선사람 사는 마을엔 논밭이 있고,벼농사 하는 곳엔 조선사람이 있다」고….조선사람은 황무지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다.밭을 논으로 바꿔 벼농사를 지으니 중국인이 보기에는 영농엔 도가 튼 조선인이라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을 것이다.19세기초,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에 살던 우리 민족은 봄만 되면 강을 건너 중국땅에서 황무지를 일궈 가꾸었다.그리고 가을이 되면 알곡을 잔뜩 지고 다시 강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이 무렵 중국땅에서 피땀 흘려가며 개간하던 우리 농민들 사이에선 이런 민요가 불려졌다. 「월편이 나붓기는 갈잎대 가지는/애타는 내가슴을 불러야 보건만/이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신세타령 농요 많아 이름하여 「월강곡」이다.아마도 현행법으로는 월강이 불법인 줄은 알면서도 그곳에 가서 농사를 지어오는 농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것 같다.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주민들은 국경 의식이 적었던 모양이다.그도 그럴것이 예로부터 강 북쪽이 어디 외국영토였던가.한때는 우리의 삶터였기도 했고,선조들이 묻힌 땅이었다.현실이 어찌 그들의 의식을 제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무렵 중국땅으로 건너가 개간하던 빈농들이 부른 민요는 거의 삶의 몸부림이었다.노동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위한 민요도 있고 신세타령도 있다. 농사꾼이 있는 곳엔 대장장이가 없을 수 없다.대장장이는 농사꾼을 따라다니며 농기구를 고치거나 만들어주며 목숨을 유지한다.그러나 이것도 만만치는 않다.천하디 천한 직업으로 대장장이에게 시집올 처녀가 없다. 「대장일 십년에/망치깨만 남겼네/후렴 어깨넘어 실포장도/네 날 살려주렴아/후렴 누덕저고리 진자지고름/나를 살려주렴아/후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난한 농민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월강하여 그곳에 정착을 했다.그리하여 조선족 마을을 형성했다.뒤따라 자리 잡은 것이 천주교와 기독교였다. ○우리말 찬송가 나와 중국조선족이 민요 다음으로 맞이한 노래가 신식학교 창가과에서 부른 찬송가였다.1914년이래 기독교,천주교 계통에서 간도일대에 많은 학교를 세웠다.용정에 「명신여자학교」와 「은진중학교」 「해성학교」등이 생겼다.그러나 조선인 신식학교로는 1906년에 이상설선생이 세운 서전의숙이 처음이다.1892년 한글로 번역된 찬송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자발음으로 불렀다.예를들면 「예수 사랑하심」을 「주 예수 아이워」와 같은 경우다. 이렇게 창가는 찬송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보급되면서 찬송가 곡조에 새 가사를 바꾸어 넣어 부르는 일이 많았다.그리고 나서 찬송가와 비슷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특히 지적할 것은 중국조선족이 세운 사립학교 창가과에서의 반일사상을 담은 새창가 개발이었다.예컨대 당시 집안현의 광성학교에서 사용한 창가교재에는 「모험맹진가」 「운동가」등이 있었고 통화현의 배달학교 창가교재에는 「학도가」 「세계이주가」 「부모의 은덕」등이 있었다.전체적으로봐서 두 주류의 의도가 있었으니 하나는 반일사상을 고취시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지식을 고취시키자는 것이었다. 용정은 나라 잃은 민족의 항일구국독립운동의 산실이자 중국조선족의 교육의 중심지였다.그러다보니 일본도 이곳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용정에 일본영사관을 세우고 겉으로는 중국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탄압했다.1930년대로 접어들자 독립군의 조직과 활동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이 무렵 이정호가 만든 조선의용군행진곡이 불려졌다. ○작곡 정율성씨 유명 중국조선족 사회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중에 정율성(1918∼1976)이 있다.그는 40년 동안에 3백60여곡을 남겼으며 장르도 다양하여 가요·행진곡·아동요·합창곡 등으로 분류된다.1936년 중국의 남경에서 개최된 「5월문예사」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처녀작 「5월의 노래」로 데뷔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연변에도 「우리의 향토」「여성행진곡」「아침은 빛나라」등 해방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대중가요가 나왔다.이어서 「토지 얻은 기쁨」「농민의 노래」「새아리랑」등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이 소작생활을 청산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가요들이 나왔다.그리고는 한국동란으로 인해 북한에 동조하여 한국으로 진격하자는 내용의 가요들도 나왔다.그러나 1966년부터의 10년간은 문화혁명시기로 대수난기를 맞는다.대비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음악부분이 당하는 과녁은 민족전통예술분야였다.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이 비판을 받으면서 고난의 10년이 흘렀다.그리고 다시 원상을 회복했다. 연변을 처음 찾은 것은 1990년 7월이었는데 이 무렵은 이미 한국의 관광객이 붐비던 시기였다.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대중가요 테이프를 틀어가며 감상하고 있었다.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내게 「사랑의 종말」을 부르라고 강요받아서 모두 합창한 경험이 있다.지금은 노래방이 성시를 이루어 그 시절은 벌써 옛날이 되었다.
  • 음주 풍속도(외언내언)

    우리는 술에 대해 비교적 관대해온 사회였던 것 같다.술에 핑계대면 웬만한 실수도 쉽게 용서를 받고,취중에 한 짓은 별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은근히 만연해 있다.사람을 소개할 때도 흔히 주량을 기준으로 한다.『말술을 마시는 사람』이라고 하면 호탕하고 대범한 사람인 것처럼 평가되기도 하고 『술 한말 지고 가라면 못지고가도 마시고는 갈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걸출한 사람인 것 같은 분위기를 띠게도 된다. 모든 행사에서는 취하도록 마시는 것을 성과로 여기고 술때문에 폐인이 되어버린 사람이 아니라도 자주 인사불성이 되어 길에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이 연말연시의 술추렴이고 대학가의 음주 풍속이다.망년회 폭주가 예사로 죽음을 부르고 신입생 환영주가 젊음의 꽃봉오리를 피기도 전에 지워버리는 경우가 해마다 숱하게 생긴다.올 연말에도 술에 의한 횡액의 희생이 적지 않았고 대학사회에서는 온갖 술마시기 유행이 연신 창출되고 있다. 「원자폭탄」이니 「수소폭탄」이니 하는폭탄시리즈는 올드 패션이 되었고 「파도타기」「네버게임」「진실게임」「흑기사와 흑장미」「숫자부르기」「우리말 애용하기」따위 술마시기 이름이 대학가에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젊음의 낭만과 어우러지는 대학가의 풍습이므로 새로운 것이 개발되는 일은 이해할 수 있지만 새 이름이 생겨날 때마다 더욱 자극적이고 「죽음에 이르는」위험을 동반하는 것은 옳은 발전이 아니다.젊은이 어른 할 것 없이 이렇게 거칠고 과격한 음주풍습으로 치닫는 것은,비명횡사를 부르기도 하고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무책임한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술은 배울 때부터 조심해야 평생동안 술로 인한 후회를 하지않는다고 술예법을 익혀주시던 것이 우리네 선인들의 지혜였다.그런 전통을 살리는 노력으로라도 잘못되어가고 있는 술풍습은 바로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싶다.
  • 물러난 장·차관 35인 뭘하나

    ◎개인사무실서 세계화 연구/최형우/새학기 고려대 교수로 복귀/한승주/차관급 출신 수명 정부기관장 하마평 「12·23」개각과 후속 차관급인사로 장·차관급 인사만 35명이 현직을 떠났다.그들은 현직을 떠나면서 홀가분해 하거나 다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에는 현직을 떠난지 며칠도 안되어 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누적된 피로를 씻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여유로운 이들도 있다.그러나 이들 퇴임 장차관 가운데 많은 인사들은 전문분야의 경험을 새정부가 아낀다는 점에서 멀지 않아 새로운 역할을 맡을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퇴임후 더 바쁜 활동을 계속하는 인사들은 역시 정치인 출신.최형우전내무부장관은 겨우 며칠 휴식을 즐기고는 27일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 노모를 뵙고 선산에 성묘한 뒤 곧바로 지역구인 부산에 내려가 조직을 점검하는등 바쁜 일정.그는 새해초 개인 사무실을 얻어 「세계화」이론 개발및 경제·통일문제등에 대한 중점적인 연구작업을 벌일 예정.새정부 출범 때부터 장관자리를 지켰던 이민섭 전문화체육부장관은 주변에 인사를 한뒤 곧바로 지역구인 강원도 춘천·인제에 내려가 지구당회의를 여는등 지역구활동에 복귀.서청원 전정무1장관은 하루에도 4∼5차례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의 불우시설및 송년모임에 참석하는등 바쁜 모습.김우석 전건설부장관은 퇴임하는 날부터 송파갑지구당으로 출근,지역주민들을 접촉.남재희 전노동부장관도 지역구인 강서을지역에서 활동을 재개했으며 쉬는 시간에는 취미활동인 「고서적 모으기」에 열중. ○…경제각료등 행정관료출신들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진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지만 새 자리가 주어질 것에도 기대.김철수 전상공부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에 출마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러나게 되어 사무실도 없이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신임 박재윤장관이 청와대와 외무부·통상산업부등 관계부처를 동원해 김전장관의 WTO사무총장 후보유세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외무부 본부 대사에 임명될듯.황영하 전총무처장관은 쉬면서 독서에 전념할 예정이며 황길수 전법제처장은새해초 서울에서 변호사개업을 할 생각. ○…교수출신 퇴임각료들은 대부분 학원 복귀를 희망하거나 복귀 준비.한승주 전외무부장관은 28일부터 일주일동안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 휴식을 취한 뒤 새해 하반기부터는 고려대 정외과 교수로 복귀할 계획.김시중 전과학기술처장관은 새학기부터 그동안 휴직했던 고려대 화학과 교수직으로 돌아갈 예정.김전장관은 입각하기전부터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해 왔던 영문판 무기화학교과서를 우리말로 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박윤흔 전환경처장관도 경희대에 복직할 계획. ○…전문관료 출신으로 차관급에서 물러난 인사들은 대체로 다른 자리에 갈것이라는 하마평도 나오고 있으며 본인들도 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눈치.이효계 전내무부차관은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주변에서는 토지개발공사사장등으로 기용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김용진 전재무부차관과 김시형 전총리행조실장은 각각 은행감독원장과 산업은행총재로 갈 것이 유력하다는 전망.이흥주 전총리비서실장은 특별한 계획은 없으나 공직유관단체나 투자기관등에 새로운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는 소문.청와대 수석비서관에서 물러난 정종욱 전외교·안보수석은 꾸준히 미국·유엔등 주요국대사로 나갈 것이라는 얘기이며 김정남 전교육·문화수석은 당분간 휴식을 취한뒤 국민정신교육등에 대한 연구작업을 재개할 계획.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1위/서울지역 출판노조「올 좋은책20」선정

    ◎「토지」·「인도로 간 또또」도 뽑혀 출판관계자들은 올해 나온 2만여종의 책 가운데 어떤 책들을 좋은 책으로 꼽고 있을까. 문학작품으로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솔 펴냄)와 현기영의 소설 「마지막 테우리」(창작과 비평사),최영미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가 뽑혔다.또 예술서적으로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가 으뜸으로 선정됐다. 이는 서울지역출판노동조합이 단행본 출판사 70곳의 대표및 편집자,주요 서점 50곳의 영업책임자,일간지및 출판전문지의 담당기자 40명등 모두 2백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올해의 좋은 책 20」선정에 따른 것이다. 이 결과 인문분야에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유홍준·창작과비평사),「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강영희·사회평론),「답사여행의 길잡이 1∼3」(한국문화유산답사회·돌베게),「우리말 유래사전」(박일환·우리교육)등 4종이 뽑혔다.사화과학서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두레)와 「놀이와 인간」(로제 카이와·문예출판사)등 2종을 선정했다. 이밖에 부문별 선정도서는 ▲어린이 「최열아저씨의 우리 환경이야기」(최열·청년사),「인도로 간 또또」(강석경·한양출판) ▲청소년 「주제별로 가려뽑은 우리 고전문선」(정병헌등·심지),「역사로 읽는 우리 과학」(과학사랑·아침) ▲교육 「살아 있는 글쓰기」(이호철·보리) ▲역사 「청산하지 못한 역사」(반민족문제연구소·청년사),「서양문명의 역사 1∼2」(번즈·소나무) ▲자연과학 「21세기와 자연과학」(서울대 교수 31명·사계절) ▲철학 「삶과 철학」(한국철학사상연구회·동녘) ▲환경 「시민을 위한 환경이야기」(신현국·김영사)들이다 한편 각부문을 통틀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66%)이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54%),「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52%),「청산하지 못한 역사」(40%),「토지」와「최열아저씨의 환경이야기」(이상 38%)들이 그 뒤를 이었다.
  • 꿈·환상·모험의 나라로 여행/읽을만한 어린이 도서 풍성

    ◎겨울방학 맞아 출판사들 앞다퉈 출판/「교과서에 실린 명작」「문학상 수상작」 시리즈 출판/「마틴 루터킹」「삼강행실도」「만화… 경제」도 선보여 겨울방학을 맞아 서점가에 어린이책들이 쏟아져 나왔다.동화책하면 으레 「인어공주」나 「피노키오」따위 세계 고전명작들을 연상하기 쉽지만 요즘에는 훨씬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가진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선 눈에 띄는 책들이 새롭게 기획한 외국 명작동화시리즈이다. 「세계 교과서에 실린 명작동화」(전 9권,일과놀이 펴냄)는 각 나라 국민학교 저학년 교과서에 실린 동화·동시들을 모은 책.어느 나라나 아이들에게 상상력·어휘력·사고력들을 키워주기 위해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교과서에 싣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내용이 재미있으면서도 나라마다 특색이 있어 아이들에게 그 나라 정서를 알려준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현재까지 미국·일본·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이탈리아·남미국가편이 나왔고 곧 영국·이스라엘편을 낼 계획이다. 이에 견주어 중앙미디어에서 낸 「세계 아동문학상」시리즈 6권은 독일·프랑스·미국·오스트레일리아·노르웨이의 이름높은 아동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6권 모두 최근 작품들이어서 고전명작과는 또 다른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현대 감각으로 보여준다. 장편동화이고 신나는 모험이야기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한길사에서 펴낸 「꿈과 모험의 나라 나르니아」시리즈(전 7권)는 영국의 학자이자 공상소설 작가인 C S 루이스의 대표작이다.어른들은 갈 수 없는 곳,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리는 환상의 땅 「나르니아」에서 벌이는 모험이야기로 각권마다 등장인물과 사건전개가 달라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박상률씨가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겼다. 이밖에 「어린이 글짓기 소프트 200」,「마틴 루터 킹」,「삼강행실도」시리즈,「만화로 배우는 경제」시리즈들이 권할만한 책이다. 「어린이 글짓기…」(문학동네 펴냄)는 엄마시인 12명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쓰게 할까」를 함께 고민하다 내놓은 글짓기교재.논설·설명·기록문과 동화·동시등 각 장르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예문을 곁들였다.시인 이탄·박제천씨가 편집했다. 창작과비평사가 낸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우다 암살당한 흑인목사 킹의 일생을 그린 전기.그동안 어린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만화로 배우는…」(전 2권,능인)은 어린이라도 경제개념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줄거리를 가진 만화로 쉽게 풀이했으며,「삼강행실도」(전 3권,서해문집)는 나라사랑·부모사랑·이웃사랑등 3가지 주제로 나눠 그같은 삶을 산 선조들을 소개함으로써 교훈을 주고 있다.
  • 한국인으론 첫 독일 지방의원 당선/이지숙씨(인터뷰)

    ◎“독일생활 30년… 향수 여전해요”/「독일서 온 한국여자」 출판맞춰 방한 『가끔 고향생각이 날때믄 정이 투덕투덕 묻어나는 남도 사투리가 젤로 그리웠지요』 독일에서 개업의로 일하면서 최초의 한국인 지역구의원이 된 이지숙(49)씨가 자신의 곡절많은 삶을 털어놓은 「독일에서 온 한국여자」(문학동네간)출판에 맞춰 한국에 왔다.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 2학년때 독일사회의 복지정책을 배워오리라는 꿈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목포처녀는 독일인 남편을 만나면서 뜻밖의 인생행로로 접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6년간 의대를 다니고 병원을 열고 마침내 인정받는 개업의가 되기까지 「외국여자」이자 「세아이의 엄마」였던 이씨는 끊임없는 편견과 부딪치며 길을 뚫었다. 『일도 열심히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돌보는데 그쪽 환자들도 감동했나봐요.인정은 어딜가도 통한다는 걸 느꼈어요.』 독일에서 뿌리를 내렸지만 고향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아 부지런히 한국신문을 보며 항상 이쪽 소식에 귀를 기울여 왔다.한인 집회에서 만난 윤흥길,송기숙,문병란씨 등 우리 작가들과의 친분도 두텁다.이처럼 우리 신문을 챙기고 소설을 부지런히 섭렵해 온 덕에 독일생활 30년이 다 돼가는데도 이씨의 목포사투리 밴 우리말은 막힘이 없다. 이씨는 『그간 한국엔 4∼5차례 다녀갔는데 이번에 보니 교통이 「병적으로」 막히더라』면서도 『내나이 50을 앞두고 그동안의 삶을 돌아본 책을 내게 돼 살풀이라도 한 기분』이라고 모국에 돌아온 푸근한 마음의 일단을 내비췄다.
  • 광고문안과 우리말/김창화 연극 평론가(굄돌)

    서울의 구석구석을 지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우선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이다.우리말과 외국어의 심각한 뒤섞임이 거리를 채우고 있으며 알 수 없는 내용 때문에 머리가 아파진다.광고란 미처 모르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것일텐데 광고 자체가 어렵다. 우리말의 으뜸꼴이 도대체 무엇인지 깨치기도 전에 아이들은 세계의 언어와 시대의 언어에 휩싸여 자란다.왜 우리말이 이렇게 뒷전에 밀려앉게 되었을까.우리말로 광고를 하면 제품의 질에 대한 보장이 불가능해서? 말도 안되는 표현에 사람들은 이미 길들여져 있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탈리아 사람은 소설을 쓰기 전에 언어학에 대한 공부를 했다.특히 언어의 동시대적 쓰임새를 기호학으로 풀어보기 위해 북부 이탈리아의 상업도시에 등장한 외국어로 쓰여진 간판과 방송매체에 등장하는 광고문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중세의 암흑기에 교회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 예배를 드렸고 성직자들과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타틴어는 유일한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에코는 교회의 기록을 면밀하게 검증해본 뒤 역사 조작의 흔적을 찾아냈고,자신의 역구결과를 소설의 형태로 대중화한 것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만 믿고 쌓아올린 탑이 바벨탑이며,하늘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베벨탑이 무너진 뒤 인간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이때부터 인간들에겐 오직 혼돈과 무질서만 남게 됐다고 한다. 서울의 거리에 등장한 다국적 문화집중 현상은 우리의 확신과 능력을 파괴하는 혼돈이며 세계를 향한 우리의 꿈을 가두어 버리는 조작된 기호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움베르토 에코가 방송과 광고의 문안들이 중세의 라틴어처럼 우리들의 건강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상징기호일 뿐이며 조작된 문자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처럼.
  • 콜드 피스(임춘웅칼럼)

    요며칠 사이 콜드피스(Cold Peace)라는 말이 부쩍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차가운 평화」「얼어붙은 평화」정도의 말이 될 것이다.어떤 사람은 이를 냉전의 대응개념으로 내세우기 위해 냉화라고도 번역하고 있다. 지난 5∼6일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M) 52개국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처음으로 쓴 신조어다.옐친은 정상회담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방안을 거부하면서 『유럽은 지금 새로운 콜드피스 시대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동구권의 와해와 함께 나토에 맞서 생겼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자 미국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인 동유럽제국을 나토에 흡수시키기 위해 그동안 꾸준히 정지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러시아의 불만인 즉슨 미국이 나토를 내세워 옛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나라들까지 모두 미국의 영향하에 두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안보회의에서의 「반란」이외에도 러시아는 최근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된다는 주장을 펴며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으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의 중동평화 방안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보였다. 보스니아 사태에서도 러시아는 서방국들의 이해와는 명백히 상반된 입장을 견지했다. 이번 옛소련 영토였던 체첸공화국에 대한 군사력투입도 서방의 개입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였던게 분명해 보인다. 이같은 러시아의 일련의 외교적 몸짓은 소연방이 무너진 이후 보여왔던 러시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러시아의 새로운 변신은 무엇보다 91년 소연방해체 이후 극도로 혼란에 빠졌던 러시아경제가 이제 한고비를 넘겨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데서 온 자신감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여겨진다.때맞춰 러시아내 민족주의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지난해 12월총선에서 러시아민족주의자들의 약진이 눈부셨던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이제 한숨 돌렸으니 옛소련의 영광을 되찾아 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러시아는 러시아 만으로도 강대국이 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나라다.반세기에 걸쳐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제국의 영토와 인구,인력자원 대부분이 러시아의 것이다.러시아는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연자원을 자급할수 있는 땅덩어리를 갖고 있다.방대한 소련군사력의 태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를 일시에 파멸시킬수 있는 핵무장을 하고 있는 나라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후 영국의 재상 윈스턴 처칠은 전후 소련의 패권추구를 경계해 콜드워(Cold War·냉전)란 말을 만들었다.그냉전이 끝난후 러시아의 대통령이 미국의 독주를 경계해 콜드피스란 말을 쓰고있다.역사의 유전을 실감한다. 갚을 능력도 없는 나라에 30억달러씩이나 왜 돈을 빌려 주었느냐며 으스댈 때가 아니다.여전히 강력한 러시아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때다.
  • 생수명칭 「먹는 샘물」로/국회 노동환경위 명칭 확정

    ◎음용수관리법안은 「먹는 물 관리법안」으로/제조시설기준등 곧 마련… 내년 5월 시판 내년 5월부터 시판이 허용되는 생수의 명칭이 「먹는 샘물」로 최종 확정됐다. 국회노동환경위(위원장 홍사덕)는 13일 지난 6월 정부가 제출한 「음용수관리법제정안」을 「먹는 물 관리법안」으로 명칭을 바꿔 수정 의결했다. 위원회는 광천음료수(생수)를 「먹는 샘물」로 용어를 변경한 것을 비롯,음용수는 「먹는 물」로,공동음용시설은 「먹는 물 공동시설」등으로 15개의 관련용어를 국민들이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쳤다. 위원회는 이와함께 광천수·용천수와 함께 먹는 샘물의 수원으로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지표수도 「지속적인 수질의 안전성이 유지될 경우」라는 조건을 붙여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 법안은 또 무분별한 지하수개발로 인한 수자원오염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수원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환경처장관에 신고만 하면 되도록 돼있던 원안을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바꿨다. 또 사업을 희망하는 경우 원수채취로 인한 주변환경에미치는 영향등에 대한 조사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희망자가 자체적으로 환경영향조사서를 작성,정부에 제출토록 돼있던 것을 반드시 외부전문기관이 작성한 환경영향조사서를 환경처장관에게 제출토록 했다. 이와함께 먹는 샘물에 대한 관리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국제품도 국내의 기준과 규격에 맞아야 우리나라에서 시판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처는 이 법안이 법사위와 국회본회의에서 처리되는대로 수질기준과 제조시설,용기의 재질과 규격,유통기간 등을 정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내년 5월부터 시행키로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먹는 샘물제조업체는 현재 무허가 40여개를 포함,60여개에 이를 전망이다.
  • 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 지음(화제의 책)

    ◎그리스·로마신화 처음 집대성한 작품 서양문화의 뿌리라고 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처음 집대성한 작품으로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한 후세 신화집의 모태라 할 만하다.원전은 장편 서사시로 구성됐지만 이번에 우리말로 옮기면서 산문체로 바꾸고 자세한 주를 덧붙이는 등 읽기 쉽도록 만들었다. 지은이는 문화의 황금기를 이뤘다는 로마 아우구스투스시대의 사람(서기전 43∼서기 18년)으로 앞선 시인들의 작품에 자신이 채집한 내용을 추가해 그리스·로마 신화의 뼈대를 만들었다.또 이를 소재로 한 유명 미술품 사진을 많이 집어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그리스·로마 신화 해설서인 「뮈토스」3권을 냈으며 소설「장미의 이름」「푸코의 추」등을 번역한 소설가 이윤기씨가 우리글로 옮겼다. 민음사 2만3천원.
  • 연극배우 이호재(이세기의 인물탐구:64)

    ◎혼신 연기… 무대 오를 때마다 “천의 얼굴”/자연스런 동작­낭랑한 목소리로 객석 사로잡아/지독한 「연습벌레」… 극중인물 영혼까지 파고들어/고교 졸업후 드라마센터 1기생으로… “한국의 데이비드 개릭” 평가 연극계는 원로배우 김동원을 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경에 비유하곤 한다.그러나 그 외에도 아테네극장에서 숨진 루이 주베나 영국 드루어리 레인디어터의 에드몬드 킨,랄프 리처드슨같은 명우들이 있다고 거론되어지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다만 별빛처럼 빛나던 함현진 추송웅을 잃고 드라마센터가 배출한 이호재를 우리 연극무대의 주역으로 손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이호재의 연기는 어느 역을 만나도 자유자재로운 것이 두드러진다.물 흐르듯 동작이 유연하고 그의 발성은 객석에 진동하면서 관객의 가슴속에 반향같은 메아리로 잦아든다. 연출가 김우옥은 이호재의 목소리의 특질은 풍부한 볼륨과 감정의 뉘앙스가 담긴 음조의 변화에 있다고 말한다.「그의 대사는 또렷하고 낭랑하다.따라서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중후한 음의 압력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지나치게 매끄러운 나머지 대사의 맺고 끊고 힘주는 대목이 청산유수에 묻혀 희석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긴 대사 숨막힐듯 소화 지난 88년 호암아트홀에 올렸던 정복근 원작의 「덫에 걸린 집」에서 누구도 흉내 낼수 없이 격렬하고 빠르고 긴 대사를 숨막힐 듯이 소화 해내는 그의 연기를 지켜보다가 상대역인 이호성이 막상 자신의 대사를 놓친 에피소드가 이를 증명한다. 「생일파티」에서의 질서정연하고 조직적인 골드버그,「오델로」의 간교한 이아고,고민하는 세조에서 소년과 노인으로 분장하는 「페르긴트」에 이르기까지 이호재는 역할에 맞는 독창적인 인물을 그때마다 탄생시킨다.그의 연기는 어느 때는 악랄하고 어느 때는 결곡하다.어느 때는 관객을 선동하거나 뜨거운 감명에 몰아넣고 혼자서 무대를 누비는 모노드라마에선 예측불허의 즉흥연기를 종횡무진으로 표출해낸다. 통상 그의 겉모습만으로는 구수하고 텁텁한 친근한 이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그래서 대사가 튀는 번역극보다는 창작극이 어울리고 창작극중에서도 진짜 장터에서 입심 좋게 떠드는 약장수가 제격인 듯도 하다.이른바 「언제 봐도 친숙하고 구수한 이미지」로 병신춤에서 봉사흉내,넉두리와 너스레로 연극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명료하게 제시해준다.리듬감이 흥청거리는 요설조의 「약장수」를 보고 연극평론가 김방옥은 『사투리 민요 재담 판소리 사설 속어 유행어등 우리말이 갖는 청각적 묘미를 이호재 특유의 연기스타일로 장구치고 북치듯 순발력 있게 둘러대고 알록달록 짜섞어 작품으로서의 품격과 독자적 가치를 갖추게했다』고 평한다. 이런 흥미와 재미와 작품성을 염두에 둔 연기력 덕분에 언제부턴가 관객은 이호재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러 극장에 오게 된다.배우가 한낱 대사를 외울 뿐이라면 그 연극은 죽은 무대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데 어떤 경우에서도 관객을 실망시키거나 역할에서 실패한적이 없는 배우가 이호재라고 감히 단언 할 수 있다. 특히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정력과 생명력이 넘치는 부리부리한 두눈에 쏠듯한 푸른 광채를 번뜩이며 집요한 유혹과 차가운 결단력으로 파우스트 몰락을 휘몰아치듯 전도시키고 있다.「맥베드」의 경우도 그렇다.지난 봄 핀란드의 저명한 크리츠토프 바비츠키가 연출한 「맥베드」에서 던컨왕과 벵코장군을 죽이고 던컨의 장자에게 맥베드가 살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시정과 비창미를 극도로 미화시킨 「비극적 감각의 압권」으로 호평된바 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죽음을 향해 가는구나.오늘 그리고 내일 또 내일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이렇게 다가가는구나」­ 실생활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지극히 꺼리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만사에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연극을 위해 헌신노력하거나 연극 때문에 목숨을 내걸만큼 비장한 각오를 내색하지도 않는다.오래 연극을 해왔고 술잘마시고 호방해 보이는 탓에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연극이 끝나면 또 다음 연극을 위해 미련없이 떠날 뿐이다.그의 그런 일면은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끼리 술한잔 마시는 쫑파티에도 얼굴을 내밀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때 꿈은 외교관 이호재는 다른 예인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연극배우를 꿈꾸거나 그래서 그 꿈을 이룬 형은 아니다.어릴 때는 정치가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우연찮게 들어선 연극의 길에서 의외로 「타고난 배우」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의 종로 3가인 종로구 비파동에서 교동국민학교를 다녔고 휘문고 시절에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부친(이병진)의 날염공장이 망하자 본래의 희망인 정외과 지망을 포기하고 드라마센터 연극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이 연극배우가 된 동기다.그때까지는 연극의 「연」자도 몰랐고 단 한번도 연극구경을 가본적도 없다.멋모르고 연극을 시작했으나 유덕형을 만나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비로소 연극의 재미에 빠져들어 무대와 객석이 일체감을 이루는 전율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연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연극적 재능을 승화시키기 위해 셰익스피어전집과 명배우 연기론을 탐독하는가 하면 시적인 영감과 진지한 사색끝에 자신의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성립해 나갔다.그때 만난 것이 전무송이다. 이호재가 씩씩하고 터프하고 선이 굵다면 전무송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그래서 언제부턴가 한 사람이 악이면 다른 한쪽은 선이고 한 사람이 약하면 다른 한쪽은 강하게 무대에서의 불꽃 튀기는 연기의 앙상블을 펼칠수 있었다. ○2시간전 공연장 나와 그는 하나의 역할을 맡으면 전의 역할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새로운 인물과의 조우를 위해 몸에서 대본을 떼어놓지 않는다.수십번씩 대본을 읽고 역할을 분석하는 그의 연습태도는 그래서 곧잘 「고시공부」에 비유된다.공연날은 남보다 두 시간전에 나와 공연장 분위기를 몸속에 익히고 막이 오르기 전에는 종교는 없지만 반드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미 전제하다시피 그는 극중 인물의 사상과 성격을 도식적으로 그리기보다 영혼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어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끄집어 내고야 만다.그리하여 박력이 넘치는 생동감과 맥박이 충만된 현장감이 그가 이루는 무대의 특징일 것이다. 「입가에 잔혹한 냉소를 새긴 험상궂은 얼굴이며 살기 가득찬야멸찬 언어,사정없이 상대방을 꼬집고 할퀴거나 능청스럽게 수작을 부리다가도 어느 틈엔가 달착지근한 가락을 띤 간사한 어조」로 관객의 등덜미를 찔러대는 섬뜩함은 그만의 노련한 연희라고 할수있다.따라서 낭창조형의 그의 연기는 지적인 관찰에 바탕을 둔 「자연」의 연기라는 점에서는 그 옛날 영국이 낳은 데이비드 개릭을 연상시킨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것 같다.또 극중의 특정한 한 인물은 자신의 어떤 일면과 비슷할수 있으며 모든 스토리 조차도 그의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사람에겐 이런 요소도 있고 저런 요소도 있다.교활하거나 거룩하거나 둥글수도,모날수도 있다.그런 중에도 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리는 탓에 연극계 일각에선 그의 오만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연기를 딱부러지게 해내는 이상 모든 잡음은 무의미 할 수밖에 없다. 연극초기에는 분장도구가 없어 장판니스를 얼굴에 칠하고 휘발유로 분장을 지운적도 있고 술값이 없어 개런티 대신 받은 반돈짜리 금반지를 술집에 맡기고 가난에 대한 울분을 풀기도 했다.그러나 이제모든 고생은 옛날이야기처럼 돼버렸다.그동안 많은 상을 타고 텔레비전등에 얼굴을 비치면서 두 아들(종화 군입대,창익 고2)을 교육시키고 수십차례의 전월세 전전끝에 올해초에는 생전 처음 종로구 명륜동에 다세대 주택이지만 집도 마련했다.부인 최정자씨(46)는 보험회사(국민보험 잠실소장)에 나간다. 요즘은 지난달 호암아트홀에서 막을 내린 여인극장의 「아내란 직업의 여인」이후 4일부터는 동숭동 학전소극장의 뮤지컬 「별들은 세상에 하나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에 출연하는등 내년 가을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잡혀 있다.언젠가 한 신문에 그는 배우로서의 고뇌를 쓴적이 있다. 「예술가를 지망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결단은 엄숙한 일임에 틀림없다.순진하게 잠든 아이들,그리고 아내를 보고있노라면 나는 지금 겁도 없이 너무나 엄청난 일을 혼자서 저지르고 있는 것같아 두렵기만 하다」고. 그러나 「막이 내릴때마다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는 관객이 있는 한 무대를 떠날수 없으며」 연극을 끝내고 텅빈 객석을 뒤로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사라져 갈 때의 소리」라는 루이주베의 말은 연극배우만의 최상의 행복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연보◁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휘문고 졸업 ▲1963년 데뷔무대 존 스타인벡 작 「생쥐와 인간」(드라마센터) ▲1964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현 서울예전)제1회졸업,극단 동랑레퍼토리 창립기념공연 유치진 작 연출「마의태자」,해럴드 핀터「생일파티」 ▲1966∼69년 군입대 월남근무 ▲1973년 오태석작「약장수」(카페 데아트르공연 이후 장기공연) ▲1974년 대구효성여대 불문과 불어극「맹진사댁 경사」연출 ▲1975∼80년 국립극단 단원 ▲1977·80년 국제극예술협회및 록펠러재단초청 극단 동랑레퍼토리 해외공연 ▲1991년 여인극장 25주년기념 셰익스피어 작「맥베드」 ▲1993년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1백편째(2개월) 「돼지와 오토바이」(3개월) 폴란드의 크리츠토프 바비츠키 연출 「맥베드」 ▲1994년 서머싯 몸 작「아내란 직업의 여인」,김정일 작 송미숙 연출 뮤지컬「별들은 세상에하나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학전 소극장서 공연중) 동아연극상,백상예술대상,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서울연극제 연기자상,연극의 해 남자연기상,이해랑연극상 「생명」「태」「하멸태자」「초분」「리어왕」「햄릿」「오텔로」「말괄량이 길들이기」「쇠뚝이놀이」「베케트」「뜻대로 하세요」「고도를 기다리며」「뻔데기전」「물보라」「시즈위벤지는 죽었다」「수족관」「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밤주막」「피가로의 결혼」「파우스트」「요나답」「이방인들」 「화엄경」「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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